2022년 11월 10일(목요일).
금성산성. 시루봉. 광덕산. 신선봉. 강천사 : 전남 순천시 낙안면.
▣산행코스 : 금성산성주차장-전우치동굴법당-시루봉-광덕산-신선봉-구장군폭포-강천사-강천사주차장.
▣산행시작 : 금성산성주차장 출발 09시 52분.
▣산행종료 : 대형버스주차장 도착 14시 42분.
▣전체거리 : 12.62km.
▣전체시간 : 04시간 49분.
▣운동시간 : 04시간 27분.
▣휴식시간 : 00시간 22분.
▣누 구 랑 : KJ산악회.
09 : 52 금성산성주차장 출발.
10 : 12 전우치동굴법당.
10 : 32 보국문.
11 : 08 시루봉.
12 : 21 광덕산.
13 : 05 신선봉.
13 : 38 구장군폭포.
14 : 07 강천사.
14 : 42 대형버스주차장 산행종료.
▲ 09시 52분 : 금성산성주차장 출발.
2022년의 가을이 가기전에 금성산성 종주와 보국문과 충용문을 보고자 했었는데..
마침 kj에서 간다고 하여.. 무조건 신청..
▲ 산행들머리는.. 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100여미터 진행하면..
▲ 왼쪽으로 유럽풍의 펜션 "슈트라하우스"를 지나 언덕에 오르면..
▲ 오른쪽으로 금성산성 들머리인 임도를 따라 간다.
▲ 대나무의 고장답게 임도가에는 굵은 대나무가 지천이다.
▲ 고도를 높여가면서 왼쪽으로 담양의 명산인 "추월산"이 반긴다.
▲ 동학농민혁명군 전적지 비..
금성산성은 동학농민운동의 마지막 격전지로..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녹두장군 전봉준의 농민군은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하자 금성산성으로 후퇴했다.
전봉준이 금성산성전투에서 농민군을 지휘하다가 옛 전우를 찾아 식량보급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친구의 밀고로 관군에게 체포되고 1천여명의 농민군이 희생되거나 체포 되면서
산성의 모든 시설이 전소 되었다는 내용이다.
▲ 10시 08분 : 연동사 갈림길.
금성산성에 오기전에 미리 보아두었던 연동사의 동굴법당을 보기위해 연동사로 간다.
▲ 10시 12분 : 연동사동굴법당(전우치동굴법당).
▲ 문화재인.. 연동사의 고려석불입상과.. 고려삼층석탑을 보고싶었지만.. 거리상 포기하고 여기서 돌아간다.
연동사(煙洞寺)는 정유재란 때에 금성산성에서 죽은 시체를 절과 가까운 골짜기에 쌓아 두었는데 그 수가
2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왔으나 수많은 유골더미 속에서
가족을 찾을 길이 없어 체념한 유족들이 유골더미 위에 향불을 하나씩 피웠는데 그 향 연기가 안개처럼
온 산을 뒤덮었다고 한다. 절은 고려시대부터 그곳에 있었으나 그때부터 연기 연(煙) 자에 마을 동(洞)자를
쓰서 연동사(煙洞寺)라 했다고 한다.
▲ 내려 갔던 길을 되돌아 올라와서 보국문으로..
▲ 뿌리의 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정승호>의 시 일부...
▲ 하트바위.
▲ 전우치 동굴법당에 다녀오는 바람에 꼴찌였는데 kj일행들의 꼬리를 만난다.
▲ 길이 두갈래로 갈라지지만 어느길로 가나 똑같다.
▲ 두꺼비바위.. 바위위에 세개의 두꺼비조각상을 올려 놓았다.. 무거웠을텐데 그정성도 대단하다.
▲ 길은 잠시 착하게 이어지는듯 하더니..
▲ 금새 주능선에 올라서고..
▲ 10시 32분 : 보고 싶었던 "보국문" 앞에 선다.
▲ 담양군 금성면과 전라북도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금성산(603m)에 위치한 금성산성은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산성은 철마봉, 운대봉, 장대봉을 연결하여 이중 산성을 이루고 있으며,
외성은 6.486m, 내성은 859m에 달하는 석성이다.금성산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성의 주위 여건 및 고적의 증거로 보아 삼한시대로 추정된다.
1409년(조선 태종 9)에 개축하였으며, 임진왜란 후 1610년(광해군 2)에 파괴된 성곽을 개수하고 내성을
구축하였다. 1622년에 내성 안에 대장청(大將廳)을 건립하고 1653년(효종 4)에 성첩(城堞)을 중수하면서
견고한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
▲ 성안에는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다.
또한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으나 동학농민운동 때 불타 없어졌다.
동서남북문의 터가 있는데 이 4개소의 통로 외에는 절벽 등으로 통행이 불가능하여, 요새로는 더할 데 없이
좋은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에 탔다.
▲ 외성에 속하는 남문(보국문).. 도울 보(輔) 나라에 도움을 주는 문이다..
▲ 보국문에서 바라본 담양군 금성면.. 여기도 비닐하우스가 많다.
▲ 보국문에서 바라본 담양군의 명산 추월산 능선.. 보리암이 흰점으로 보인다.
▲ 보국문과 충용문..
▲ 보국문에서 바라본 내성의 남문인 충용문.
▲ 길게 이어지는 외남문의 성벽..
금성산성 안에는 조선 말기 130여호의 민가가 있었고.. 관군까지 2천여명이 머물렀다고 한다.
성안에 29개의 우물을 파고 2만여석의 군량미를 저장했을 정도였다지만 동학농민운동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마을과 관아. 절 등이 소실되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동서남북의 4개의 문과 성곽은
1990년대 들어 복원되었다..
▲ 보국문이 한폭의 그림이 된다.
▲ 단풍은 이제... 시기적으로 거의 끝물이다.. 다음주면 이모습도 보기 힘들것이다.
▲ 충용문 오름길에 바라본 보국문..
▲ 금성산성길... 노적봉과 철마봉으로 가는 길이다.
▲ 동자암쪽으로... 가을을 담는 여심..
▲ 10시 42분 : 보국사터 갈림길... 오른쪽 동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 동자암 가는길...
▲ 동자암 일주문(?)..
▲ 동자암 대웅보전..
2004년경부터 보리스님은 청산스님과 슬하에 세자녀와 함께 금성산성에 터를 잡고 지난 18년간 금성산성을
알리고 가꾸는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금성산성을 지키고 서산대사의 맥을 잇는 전통 승군무예
를 수련하며 세자녀(황룡, 청룡, 구봉스님)와 함께 금성산성을 산상정원으로 가꾸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무술을 하는 동자승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 동자암 요사채..
청산스님은 지난 2014년경 지병으로 입적하였으며.. 보리 스님은 동자암을 찾는이들을 위해 제철의 토란을
캐서 탕을 끓이고 토란 반죽에 국화를 올려 화전을 만들어 낸다. 2020년 9월에 EBS 1TV 시사교양 프로그램
<한국기행>에서 "마음이 허기질 때, 절밥"으로 방송되었다.
▲ 동자암을 나서며 뒤돌아보니.. 태양광 패널이 보인다.
▲ 내성동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시루봉으로 갈수 있지만.. 암릉의 오르내림이 심하고 위험하다..
▲ 1km전방의 외성인 동문으로 가서 시루봉으로 간다.
▲ 11시 01분 : 동문 도착..
여기서 직진하면 금성산성 종주길이며.. 북바위 연대봉으로 가게 된다.
▲ 이정표가 가르키는 광덕산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 시루봉 가는길은 군경계로 왼쪽은 순창군이고.. 오른쪽은 담양군이다.
▲ 허물어진 산성의 흔적..
▲ 동문에서 4~5분 진행하면 시루봉이 고개를 쳐들며 반긴다.
▲ 시루봉 직전에 광덕봉을 가르키는 이정표.. 시루봉에 다녀와서 여기로 내려간다.
▲ 시루봉 오름길에 조망되는 추월산..
▲ 시루봉 오름이 만만치 않다..
▲ 11시 08분 : 시루봉 정수리.. 정상석이 없다.
▲ 시루봉능선... 조금전 내성 동문에서 올라오면 보이는 암릉을 넘어야 된다.. 아래에 밧줄이 보인다.
▲ 가야할 광덕봉 능선을 시계 역방향을 따라 가면...
▲ 광덕산 정점을 찍게 된다.
▲ 금성산성능선상의 북바위.. 운대봉.. 산성산(연대봉).. 오래전 올랐던 북바위의 노송이 그립다.
▲ 당겨 본.. 북바위와 노송...
▲ 시루봉을 내려와서 광덕봉으로 가는 내림길이 매우 상그럽다.. 조심조심..
▲ 여기서부터는 일행들을 앞지르고 온전히 홀로가는 혼산이 된다.
▲ 싱크홀이나 맨홀처럼..뚝 떨어지는 급경사 계단.. 난간을 잘 잡고 내려가야 된다.
▲ 올라가려면.. 코가 닿을것 같은 급경사다..
▲ 지나온 시루봉과 암릉..
▲ 11시 33분 : 하성고개...
▲ 무위자연(無爲自然)..
무(無)에서 유(有)가 나고.. 유(有)는 다시 무(無:자연)의 자리로...
본래의 곳으로 돌아 간다..
우리 인생도..
▲ 친절한 순창군에서 두가닥으로 갈라진 "가랑이소나무" 이름표를 붙여 놓았다.. 149번까지 보았다.
▲ 시루봉에서 적우재(헬기장)까지는 약간의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 애기단풍이 곱다..
▲ 11시 55분 : 적우재.. 여기서 보기에는 광덕산이 그렇게 가팔라보이지 않는데.. 실제로는 매우 가파르다.
▲ 쉼터의자에 앉으니.. 지나왔던 시루봉이 보여서 당겨 본다..
▲ 물한모금 마신후.. 방향을 확인하고 출발..
▲ 여기서 이길로 내려가면 쉽게.. 구장군폭포로 접근하지만..
▲ 오늘의 산행은 광덕산을 경유하는 코스다..
▲ 순창 광덕산(廣德山)은 넓은 광자에 큰덕의 산으로... 큰 덕을 펴는 산인데... 가파르기가 장난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친절한 관리사무소에서 "미끄럼 주의" 라고 했을까... 여기서 잠깐 한숨돌리고..
▲ 이제부터는 가파른 철계단이다.. 설치한지가 오래 된 모양이다.. 불가사리 참나무가 파이프를 물고 있다..
물고 있는 깊이로 보아서는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얘기다..
▲ 중간에는 새로운 데크로 되어 있는걸 보니 보수교체공사를 했던 모양이다.
▲ 마지막은 롤러코스터를 달리는 은하철도999다..
▲ 온전히 혼산을 하며 생각이 많아진다..
문득... 돌방구에 비치는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서 빛의 존재만 있는게 아니라..
그속에서.. 또 다른 나를 본다..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림자는 그사람의 모습이다..
그림자에서 "그"를 빼면 <임자>가 된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언제나 한결같은 믿음의 자태로 늘~ 나와 함께 있다.
▲ 마지막 밧줄구간.. 광덕산 오름이 가파르기도 하지만.. 한낮의 햇살이 뜨거워 더 힘이 든다..
▲ 12시 21분 : 광덕산 정상..
마침.. 50대 중반의 남성이 더웠던지 속옷을 벗고 있다..
▲ 인증샷 부탁..
전북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와 전남 담양군 금성면 덕성리 경계에 있는 광덕산(廣德山 563.9m)은
지역 주민들에게 덕을 많이 쌓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강천산(剛泉山)의 옛 지명도 광덕산이었다. 광덕산은 순창군 쌍치면의 국사봉과 같이 임금이
신하들을 모아놓고 조회를 하고 있는 천제봉조(天帝奉朝)의 형상이다.
광덕산이 위치하고 있는 장안리는 예부터 순창에서 제일 좋은 터로 알려졌으며,
1914년에 장안(長安)으로 명명했는데, ‘장안’이란 동양의 수도를 의미한다.
광덕산의 물줄기는 남쪽은 영산강으로 흐르고, 동쪽은 구림천을 통하여 섬진강으로 흐른다.
▲ 지나온 시루봉과.. 금성산성의 기라성 같은 산군들...
▲ 아미산과 장안리를 내려다 보며... 점찍기를 한다..
▲ 광덕산을 내려 서자말자.. 눈사람같은 바위에 독야청청의 소나무에게 홧팅의 응원을 보낸다...
▲ 무명봉 오름길에 멋진 조망바위..
▲ 건너편의 강천산(剛泉山 583.7m)이 눈높이로 마주한다.
강천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처에 기봉이 솟아 있다.
원래는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렸으며,
광덕산, 산성산(山城山 603m)과 능선으로 이어진다.
또한 깊은 계곡과 계곡을 뒤덮은 울창한 숲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강천사와 삼인대, 강천사 5층석탑, 금성산성 등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산재하고 도처에 비경이 숨겨져 있다.
▲ 12시 51분 : 무명봉.. 옥호봉갈림 이정표..
▲ 무명봉에서 신선봉 내림길은 대체적으로 완만하다..
▲ 헷갈리는 이정표.. 강천사로 가면 구름다리로 못가고 삼인대로 빠지게 된다..
전망대 방향으로 가야 구름다리로 연결 된다..
▲ 13시 06분 : 신선봉 정자..
▲ 강천사가 내려다 보이는 강천계곡..
▲ 당겨본 강천사..
▲ 표식하나 없는 신선봉...
▲ 이정표에 신선봉이라 되어 있고... 하산은 현수교로 내려 간다.
▲ 강천계곡까지 끊임없는 계단이다..
▲ 데크광장..
▲ 강천계곡은 8km구간에 천인단애를 이룬 병풍바위 아래 벽계수가 흐르고 군데군데 폭포와
그 아래 소를 이룬 곳이 10여 군데나 된다. 옥수와 같은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용소는 명경지수 그 자체이다.
▲ 두번째 데크광장 쉼터 조망대.
▲ 내려다 보이는 현수교(구름다리).. 현수교는 점검중이라 년말까지 통행금지다.
▲ 강천계곡 하단부.. 강천사와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 출입통제 현수막..
▲ 강천계곡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엄청 가파르다..
▲ 13시 30분 : 강천계곡 안착..
▲ 구장군폭포까지 다녀 오기로한다.
▲ 강천산 애기단풍은 1988년부터 수년에 걸쳐 심은 것이다.
30년 세월에 약 1만그루에 달하는 단풍나무가 2.5km 산책로를 형형색색의 터널로 변화시켰다.
▲ 가을의 끝자락에서 강천산의 마지막 애기단풍을 보려는 행락객들과 등산객들이 엄청 많다.
▲ 백룡이 오르샤~~.. 비경의 구장군폭포..
▲ 2005년에 설치한 폭포는 120m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인공폭포라고 믿기우지 않을 정도다..
▲ 백제이전의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 졌는데 순창에는 소석색국이 있었다고 한다.
옛날 마한시대 혈맹을 맺은 아홉명의 장수가 전장에서 패한 후 이곳에 이르러 자결하려는 순간 차라리
자결할 바에는 전장에서 싸우다 죽자는 비장한 각오로 마음을 다지고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아홉장군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 천년사랑 거북바위..
옛날 강천산 산골 마을에 한 청년이 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구하러 강천산의 깊은 산속을 돌아다니다 산삼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그만 폭포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 때 마침 용소에서 목욕을
하던 선녀가 청년을 발견하고 청년의 정성에 감동하여 산삼을 찾아주고 사랑에 빠졌다.
이 소식을 들은 옥황상제는 그들에게 천년동안 폭포에서 거북이로 살게 하고 천년이 되는 날 동트기 전
폭포 정상에 오르면 하늘로 올려 주리라는 약속을 했다.마침내 천년이 되는 날 암거북을 먼저 정상에 올려
보낸 숫거북이 정상으로 향하는 순간 호랑이를 만나 숫거북을 공격하게 되고 숫거북은 호랑이와 다투다
동이 트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옥황상제는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을 영원히 지켜주고자 그들을
바위로 변하게 했다.
▲ 백룡의 승천이다..
▲ 기암 괴석 사이로 굽이쳐 흘러 내리는 폭포는 높이가 120m로 신의 조화로써 이뤄진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 구장군폭포 인증샷.
강천산(剛泉山)은 사적 제353호이며.. 높이 585.8m.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노령산맥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광덕산·산성산·추월산 등이 있다. 산은 낮으나 기암절벽과 계곡 및 울창한
숲 등이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강천산· 강천호· 광덕산· 산성산을 포함한 일대가 1981년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총면적은 15.7㎢이다.
▲ 수좌굴.. "설담"과 "뇌암"이라는 수도승이 이 굴에서 도통을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 모과나무.
수령 약300년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 모과나무를 지난 1981년 보호수로 지정하고 관리하다가
1998년 1월 9일에 기념물 제 97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 삼인대.. 모두가 단풍에 취해 쳐다 보지도 않는다.
삼인대는 1515년에 폐비 신씨의 복위를 주청하는 상소를 올린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류옥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폐위된 연산군의 처남으로 중종반정 때 피살된 좌의정 신수군의 딸인
폐비 신씨는 후환을 염려한 반정공신 박원종 등에 의해 폐출 되었다. 새로 왕비가 된 장경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직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고, 관직에서 물러남은 물론 죽음을 각오하며,
폐비 신씨의 복위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이들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귀양에 처해지는 형벌을 받았다.
후에 호남과 순창지역의 유림들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비와 함께 비각을 세우고 삼인대라고 불렀다고 하며,
삼인이란 명칭은 세 개의 직인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 절의탑.
임진왜란, 병자호란, 중종 반정 등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이 많아서 순창은 예부터
절의(節義)의 고장이라 부르고 이 고을 곳곳의 돌을 모아 절의탑(節義塔)을 세웠다.
▲ 14시 07분 : 강천사.. 오층석탑과 대웅전.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887년(진성왕 1년)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혹은 1482년(성종 13)에 작성된 『강천사모연문』에 보면
신령(信靈)이 광덕산(廣德山)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한다고 나와 있다.
또한, 이 절에는 천년을 살아 온 지네가 인간으로 변신하려다가 법당에서 피우는 향내음이 너무 독해서
인간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앙갚음으로 요괴가 되어 매일 밤 승려 한 사람씩을 죽였다는 전설과
거지· 승려 그리고 돈에 얽힌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 일주문 현판에는 강천문이라 되어 있다.
▲ 강천계곡의 메타쉐콰이어..
▲ 거라시(걸인)바위.
이곳은 예로부터 문전걸식 구걸해온 걸인들이 이 굴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냥을
받아 강천산 스님에게 시주를 하고 부처님께 복을 빌었다는 나눔을 실천했던 장소로 전해오고 있어
거라시 바위(굴) 또는 걸인 바위라 부른다.
▲ 당겨 본.. 옥호봉의 금강문.
▲ 금강문은 1316년덕현이 절 주위의 풍치가 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전한다.
자연암석으로 된 사각문으로 높이 8m, 너비 4m이다.
▲ 14시 30분 : 병풍폭포.
▲ 14시 35분 : 매표소..
▲ 상부 주차장.
목요일인데... 주중인데... 이렇게 많은 차량들이...
▲ 셔틀 버스(?).. 하부주차장까지 실어다 준다.
▲ 14시 42분 : 상부 대형버스 주차장 하산종료.. 주차 빈곳이 한군데도 없다.. 여기가 전라도인데..
30여대의 버스 중에 광주 넘버 2대.. 전북 2대.. 전남 3대.. 경상도(부산. 울산. 경북. 경남차 포함..)가 18대다...
거기에 아래주차장에는 몇대가 될지... 지나가던 경상도 산악인..왈.. 갱상도 아이모 장사도 안되거따.. ㅎㅎ~
▲ 혼자 휘적휘적~~ 볼거 다보고도.. 1등승차..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금성산성길만 원점으로 환종주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