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14일(일).

계룡산국립공원 : 충남 공주시.

 

산행코스 : 갑사주차장-갑사-연천봉-등운암-관음봉-자연성릉-삼불봉-남매탑-동학사-동학사주차장.

산행시작 : 갑사주차장 09시 59분.

산행종료 : 동학사주차장 15시 17분.

전체거리 : 약 11.36km..

전체시간 : 05시간 18분.

운동시간 : 05시간 05분.

휴식시간 : 00시간 13분.

 

09 : 59  갑사주차장 출발.

10 : 13  갑사.

11 : 38  연천봉.

11 : 46  등운암.

12 : 11  관음봉.

12 : 42  자연성릉.

13 : 32  삼불봉.

13 : 48  남매탑.

14 : 34  세진정.

14 : 37  동학사.

15 : 17  동학사주차장.

 

09시 59분 : 갑사주차장.

 

▲ 주차장에서 갑사를 가르키는 목교를 건너면...

 

▲ 갑사 괴목대신( (槐木大神).

수령이 1600년 된  회화나무 또는 홰나무라 불리는 이 나무는 1990년대 초반에 태풍으로 부러져 밑동만 남아 있는 상태다.

임진왜란때에는 영규대사와 많은 승병들이 모여.. 이 나무밑에서 금산벌 전투를 위한 작전을 세우기도 하였다는 호국불교

신수(神樹)로.. 예로부터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이자 대표적인 당산나무다..

 

갑사 황매화 축제가  2024년 4월 19일부터 4월 21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 계룡산 갑사 일주문.

 

▲ 일주문을 지나 용추교에서 바라본 갑사계곡의 하대천... 계룡산의 서쪽을 흐르는 하천이다.

계룡산의 동쪽에는 용산9곡, 서쪽에는 갑사9곡이 있는데, 용산9곡은 취음 권중면선생이 국권회복을 바라며 만든 구곡이며

갑사9곡은 친일민족반역자 윤덕영(尹德榮)이 갑사계곡의 절경에 취해서 개인적으로 만든 9곡이다.

 

▲ 갑사 1곡... 용이 노닌다는.. "용유소" 도 보이고... "삼갑동문" 이라는 글자도 있다.

 

▲ "간성장"이라는 각자가 보인다.

간성장에 대해서는 조금후에 언급할 것이다.

 

▲ 갑사 황매화는.. 축제가 열리는 다음주쯤이면 만개할것 같다.

 

▲ 사천왕문을 지나면..

 

▲ 갑사 입구가 보이고..

 

▲ 계룡갑사.. 갑사의 강당인 지장전이다.

현판의 글씨는 조선 고종 24년(1887) 충청 절도사 "홍재희"가 쓴 것이다.

 

그런데... 조금전 일주문에서 보았던 계룡(鷄龍)과.. 지장전의 계룡(雞龍)이 계자가 다르다.

일주문의 계(鷄)는 새 조(鳥)를 품었고.. 지장전 강당의 계(雞)는 새 추(隹)를 품었다. 두글자 다 같은 새라는 의미 이지만..

(鳥)는 꼬리 긴 새를 말하고.. 추(隹)는 꼬리짧은 새의 의미라고 한다.. 두 현판의 글씨가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 갑사 입구 왼쪽에는 범종각이고.

 

▲ 오른쪽에는 갑사 동종(보물 제478호).

 

▲ 갑사 동종(보물 제478호)은...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구름을 조각한 종거(鐘鐻)에 매달려 있다.

원래 이 동종은 1584년 이전부터 있었는데.. 1583년 북방 오랑캐가 난을 일으키자,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 있는 사찰의

모든 종을 공납하여 무기로 만든 탓에 없어졌고, 이듬해 갑사에서 철 8천 근을 들여 다시 만들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태평양 전쟁 때문에 공출되었다가 다행히 광복 후 갑사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 갑사 공우탑... 소의 공적을 기린 특별한 탑이다.

정유재란으로 파괴된 갑사는 국왕의 성수를 비는 사찰이라 하여 전쟁이 끝나자 즉시 중건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주지 스님

의 꿈에 소가 나타나 절을 지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날 이후 소 한 마리가 매일 재목을 등에 싣고 공사 현장에 날랐다.

그리고 갑사가 완공되던 날 소가 죽었다. 이에 스님은 갑사 중건에 도움을 준 소의 공을 기리고자 공우탑을 세웠다고 한다.

 

공우탑이 원래 있었던 자리는 대적전 가는길의 계곡옆에 화살표 지점에 있었는데.. 지금의 이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전의 "간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화살표쪽 계곡으로 간다.

 

▲ 갑사 공우탑의 원래의 자리를 찾기 위해 대적전 방향으로 약 30m정도 내려 간다.

 

▲ 갑사 9곡중에 5곡인.. 금계암과 마주보는 자리에 공우탑이 있었다.

아마도 계룡산이 풍수학에서 말하는 '금계포란'과 '회룡고조'의 명당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가 보다.

 

▲ 여기서 위쪽을 보면.. 저 건물이 "간성장"이다.

윤덕영은 갑사 옆을 흐르는 계곡을 '구곡'이라 이름 붙이고 나서 간성장이란 별장을 짓고서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한때.. 갑사 전통찻집이었다가 지금은 갑사 요사채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 친일반역자 윤덕영은 황실의 외척으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으며, 1910년 경술국치 때는 치마속에 옥쇄를 감추고

내놓지 않았던 순정효황후를 위협해서 옥쇄를 강탈한 후 순종에게 한일합방늑약에 옥쇄를 찍도록 강권하여 조인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윤덕영은 노년에 갑사앞 계곡 가에 지은 간성장(艮成莊) 이라는 별장에 머물며 갑사 옆을 

흐르는 계곡 2㎞ 정도에 걸쳐 갑사9곡을 설정하였다... 간성장은 당시 공주 갑부 홍원표가 갑사로 부터 30년 임대계약으로

계곡옆 대지위에 지어 윤덕영에게 바친 한옥식 별장이다... 간성장은 윤덕영이 애용하다가 해방후에는 공주 출신의 국회

의원을 지낸 박충식(1903~66)의 별장으로 사용했으며, 그 후 한동안 전통찻집으로 활용되다가 지금은 외부 손님이 묵는

갑사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 다시.. 공우탑으로 돌아 와서..

위의 단에는 공(功) 아래의 단에는 우탑(牛塔)이라 쓰여 있고...

1층 탑신에는 4언 4구의 명문이 아래의 사진과 같이 새겨져 있다.

 

▲ 오른쪽 부터 세로로..

와탑기립(臥塔起立)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니..

인도우학(人道偶合) 사람의 갈 길과 우연히 합치 되었다.

삼회을을(三會乙乙) 모든 공이 이루어 지려면 3세판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세번을 수고하고 수고했으니..

궐공거갑(厥功居甲) 그 공이 여기 갑사에서 펴 나간다.

 

친일반역자 윤덕영이 쓰러져 있던 탑을 일으켜 세운 자신의 노력이..

"사람의 도리에 합치" 된 것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고증이 없다고 한다.

 

▲ 5월 15일의 석탄일을 맞아 대웅전 마당의 연등이 화려 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세상에 들어와 있다.

 

▲ 으뜸을 의미하는 갑(甲)을 사찰이름으로 쓰는 갑사(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산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420년(백제 구이신왕 1)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다는 설,

556년(백제 위덕왕 3) 혜명대사가 창건했다는 설,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혜명대사가 중창했다는 설이 있다.

 

▲ 679년(문무왕 19)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건물 1,000여 칸을 더 짓고 절 이름을 계룡갑사에서 갑사로 바꾸어 화엄대학

지소로 삼았으며, 이때부터 화엄십찰의 하나가 되었다. 1579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모두 불타버리고, 1654년

(효종 5) 사정.. 신휘 등이 관청의 도움을 받아 중수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강당.. 대적전.. 천불전.. 응향각..

진해당.. 적묵당.. 팔상전.. 표충원.. 삼성각.. 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 갑사에는.. 월인석보 판목이 이곳에 보관돼 있다...

이 판목은 ‘월인석보’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던 판각으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판목이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석보상절’을 설명으로 하여 세조 5년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연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석보상절’은 조선 세종 28년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

대군이 불경을 참조하여 지은 것이고, ‘월인천강지곡’은 세종 29년에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은 것이다... 이 판목은 논산 쌍계사에 보관하였다가 현재 갑사에 소장되어있다 한다.

 

▲ 여기에서 연천봉으로..

 

▲ 갑사 석조여래입상..

 

▲ 갑사 석조여래입상..

갑사 중사자암에 있던 것을 현재 위치로 이안했다고 한다.

 

▲ 갑사 석조여래입상의.. 바로 옆 계곡은 민족 반역자 운덕영이 만든 갑사9곡중 6곡인 명월담이다.

 

6곡인 명월담 아래에.. "순화임원"이라는 바위가 누워 있다.

순화는 무궁화꽃을 말하는 것인데.. 이곳에 무궁화 동산이 있었던 모양이다.

 

▲ 10시 23분 : 이제부터 연천봉 코스의 시작이다.

 

▲ 신록이 시작하는 기분좋은 숲의 향기를 맡으며 작은 능선 하나를 넘고..

 

▲ 우리나라 4계절중에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연두나라의 연두길로..

 

▲ 잠시.. 대자암길을 만나서 나란히 걷다가..

 

▲ 연천봉 등로로 바꾸어 걷는다.

 

▲ 이 부근에 원효가 수련하던 곳이 있다고 하는데.. 위치는 알수가 없다.

 

▲ 원효대를 지나면서 부터는 본격적인 연천봉 오름길이다.

 

▲ 오를수록 경사는 더욱 가팔라진다... 나만의 계단 오르는 방법이 있다...

발끝만 보고 한계단 한계단 오른다.. 위는 올려다 보지 않는다.. 쳐다보면 여전히 까마득 하니까..

숨은 길게 들이 마시고.. 천천히 내뱉는다.. 산속의 공기를 길게 마시면.. 머리가 맑아진다.. 맑아지면 피로감도 덜하다.

 

발끝만 쳐다 보아도 이쁜 꽃들과 나누는 무언의 대화가 있다..

 

그렇게 오르다가..  허리 한번 펴고 보면 어느새 돌계단 끝단위에 서게 되고.. 머리위로 하늘이 열린다.

 

11시 29분 : 연천봉 고개..

 

▲ 200m의 연천봉에 다녀 온다.

 

▲ 등운암 갈림길.. 내려올때는 등운암으로 올것이다.

 

▲ 헬기장을 지나고.

 

▲ 이 소나무가 사는법.. 나.. 이렇게 산다우~~.

 

11시 38분 : 연천봉 정상.. 정상석이 없다.

 

연천봉의 바위에 새겨진 석각.

방백마각(方百馬角)에... 구혹화생(口或禾生)..

 

▲ 조선왕조는 건국한 지 472년 만에 종말을 맞는다는 메시지다.

방백은 네모진(方) 백(百)이라는 뜻이고... 400이라는 숫자가 도출된다.

마(馬)는 자축인묘진사오미로 세어가면 오(午)에 해당하는 말[馬]이다. 오(午)는 십이지 가운데서 일곱째에 해당한다.

각(角)은 뿔이다. 뿔은 대개 2개다. 마각(馬角)은 72다. 따라서 방백마각은 472년이 된다.

구혹(口或) 을 결합하면 나라 국(國)자가 된다. 화생(禾生)을 결합하면 옮길 ‘移(이)’ 자로 통용된다.

구혹화생을 해석하면 ‘나라를 옮긴다’가 된다. 조선이 472년 만에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생긴다는 의미다.

 

▲ 영빨이 세다는 연천봉에서 계룡산을 배경으로..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은 쌀개봉으로 기운을 전하고.. 쌀개봉은 북으로 꿈틀대며 올라가 관음봉(816m)을 만들고 거기서

용맥은 서쪽으로 내달아 문필봉(756m)을 거쳐.. 마침내 연천봉에서 마지막 기맥을 일으키곤 비로소 멈춘다.

즉.. 연천봉이 천황봉을 바라보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의 용맥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 작년 10월의 어느날.. 머리봉.. 문다래미.. 쌀개봉이 주마등처럼 지나 간다..

계룡산은 우리나라 제 2호 국립공원으로 충남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이다. 옛부터 정도령 설화의 본무대인 신도안이 있는 

곳으로 지금은 3군 통합 사령부인 계룡대가 위치해 있어 공원의 절반이 탐방 금지 구역으로 묶여 있다.

 

▲ 공주시 계룡면의 계룡저수지..

 

▲ 문필.. 관음.. 삼불봉의 산그리메...

 

11시 46분 : 등운암..

1300여년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사찰로, 등운암은 민족의 영산 계룡산의 관음봉, 쌀개봉, 국사봉, 천황봉 등 병풍처럼 펼쳐

있는 봉우리중에서 가장 영험하다는 연천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신원사의 말사이다. 유래는 신라 진덕여왕 때 경주에 사는 영특한 아이 “진광세”가 있었다. 불국사에 출가하여 부설

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등운대사(騰雲大師)가 신라 문무왕 8년(668)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대사는 이 곳에서 암자를 짓고

수도 하였으며, 그는 부설거사(浮雪居士)의 아들이다.

부설거사는 한때 스님이었으며, 기이한 인연으로 묘화(妙花)라는 여인과 결혼해 환속하여 속가에 살면서 아들 등운(騰雲)

과 딸 월명(月明)을 낳았다. 부설거사는 대각(大覺)을 이룬뒤 열반에 들고, 아들은 등운암에서, 어머니 묘화부인과 딸 월명

은 변산반도로 들어가서 움막(훗날 월명암)을 짓고 수도하여 득도를 하였다.  이 후 묘화부인은 장흥 보림사로 들어가서

살았는데, 그들은 신족통(神足通)을 얻어 밤이면 등운암에 자주 모여 함께 수도 하였다고 한다.

 

▲ 11시 49분 : 연천봉고개에서 관음고개로...

 

▲ 12시 06분 : 관음봉고개...

여기서 직진하면 은선폭포를 경유하여 동학사로 내려 간다.. 좌측.. 관음봉으로 올라간다.

 

▲ 천황봉.. 쌀개봉.. 머리봉 능선이 생각나지만... 갈수 없는 곳이다.

 

▲ 12시 10분 : 관음봉..

인증샷 대기자들이 줄을 섰다.

 

▲ 인증샷을 교대하는 팀에게 정상석만 찍고 가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 자연성릉을 가기위해.. 정자쪽에서..

 

▲ 더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

 

▲ 삼불봉.. 남매탑 쪽으로...

 

▲ 관음봉에서 바라본... 자연성릉.. 기억으로는 20년도 넘은것 같다.

 

▲ 동학사계곡..

 

▲ 멀리 갑사 주차장이 보인다..

 

▲ 관음봉에서 자연성릉 내림길은 양방이 구분되어 있다...

 

▲ 용의 등줄기 같은 자연성릉의 암릉...

 

▲ 내림길 보다 오름길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사량도 가마봉 내림길과 비슷한것 같다.

 

▲ 당겨 본 동학사..

 

▲ 까마득한 삼불봉을 가까이 당겨 본다...

 

▲ 자연성릉 명품송 1...

 

12시 35분 : 오늘 최고의 밥자리..

동학사계곡의 시원한 통바람이 올라오는 곳이다.

 

▲ 최고의 밥자리에 앉아서 발아래 은선폭포도 내려다 보고...

 

▲ 자연성릉 명품송 2...

 

▲ 자연성릉 명품송 3...

 

 

▲ 자연성릉 명품송 4...

 

▲ 자연성릉 명품송 5...

 

▲ 자연성릉의 고목이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다...

 

▲ 신흥암의 천진보탑이 혹여나 보일까...

 

▲ 당겨보니 보탑은 보이지 않고 돌탑 2기만 확인된다...

 

▲ 삼불봉이 아닌 삼불봉 같은 봉우리...

 

▲ 자연성릉 명품송 6...

오름길에 지쳤는지.. 포커스(focus)가 조금 흔들렸다.

 

▲ 진짜 아닌 가짜 삼불봉 전망대...

 

▲ 계룡의 에너지를 가슴에 품는다...

 

▲ 가짜 삼불봉에서 바라본 진짜 삼불봉.....

 

▲ 어머무시한 바우를 돌아서...

 

▲ 올라가 보아도... 삼불봉은 아직도 저만치 서있다.

 

13시 20분 : 금잔디고개 갈림길..

 

▲ 진짜배기 삼불봉 오름계단.....

 

13시 32분 : 삼불봉...

천황봉이 계룡산의 정점이라면.. 삼불봉은 불교의 깨달음의 정점이고, 관음봉은 그 중간에 위치한다.

삼불봉은 멀리서 보면 세 분 부처가 앉아서 참선하는 것 같다 하여 유래한다.

 

▲ 삼불봉의 뷰(view) 맛집이다...

 

▲ 삼불봉의 내림도 양방향 따로다.

 

▲ 삼불봉 내림길에서 드디어 보인다.. 장군봉에서 신선봉.. 그리고 상신리 하산.. 다시 한번 더 가고 싶은 코스다.

 

13시 40분 : 삼불봉 고개..

 

▲ 남매탑 내림길.. 이제는 더 이상의 오름길은 없다.. 하지만.. 돌계단이 쉽지 않다.

 

13시 48분 : 남매탑(제1284호와 1285호)..

남매탑은 동학사 창건의 기원이 되는 상원조사의 전설이 있는 두 개의 탑이다.

 

상원조사가 토굴을 만들어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입 속에 큰 가시가 있어 뽑아 주었더니,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 와 내려놓고

갔다... 처녀는 경북 상주 사람으로 혼인을 치른 첫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 남매탑(제1284호와 1285호)..

겨울이라 눈이 쌓여 돌려보낼 수 없어 계절이 바뀐 뒤 처녀를 돌려보냈다. 처녀의 부모는 다른 곳으로 시집보낼 수도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스님에게 부부의 예를 갖추어 주길 바랐다. 이에 스님은 고심 끝에 처녀와 의남매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

로서 수행하다가 한날한시에 입적했다고 한다.

두 분을 기리기 위해 제자인 회의화상이 사리를 담은 탑을 세웠는데, 남매탑 또는 오누이탑이라 불리게 되었다.

 

▲ 1.7km의 돌계단이 지루하다..

 

14시 30분 : 목교..

 

▲ 14시 30분 : 세진정..

계룡산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맑은 물로 세속의 먼지들을 씻어 내는 정자다..

맑게 흐르는 물속에 풍덩하고 싶지만... 국립공원이다.. 대신.. 계곡을 타고 오르는 상쾌한 바람으로 크게 호흡한다.

 

공주 동학사는 한때 서원이 될 뻔한 사찰이다.

작은 암자였던 동학사는 신라가 망하고 류차달이라는 이가 이곳에 신라의 충신 박제상을 제사하기 위해 동학사(東鶴祠)

라는 사당을 지으면서 일신했다. 사당이 번창하자 절 이름도 아예 동학사(東鶴寺)로 고쳐 지었다.

현재 박제상을 모신 사당 이름은 동계사(東鷄祠)이다.

 

▲ 14시 37분 : 동학사 3층석탑과 대웅전..

신라중엽 때 사원선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때 회의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마곡사의 말사이자 비구니들의 전문 강원이나 고려조에 와서 도선국사가 중수했으며 태조의 원찰로 삼아

국태민안을 빌었고, 그 뒤 순조대와 고종원년(1864년)에 크게 중건하고 개수 되었다.

 

▲ 동학사 길건너 산책로를 따라 가는데..  동학사 지척에 미타암과..

 

▲ 관음암이 담장 하나 사이로 붙어 있다.

 

▲ 동학사 부도군..

 

 14시 37분 :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

여기에도 현판이 꼬리 짧은 새 추(隹)를 품은 계(雞)룡산이라 되어 있다.

 

공주 동학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23년(724년) 상원조사의 제자인 회의화상이

절을 짓고, 반야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이라고 해서 이름을 청량사(淸凉寺)라 하였다가, 고려 도선국사가

920년에 중창을 하고, 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다 하여 동학사라 개칭하였다. 조선시대(1457년)에 매월당 김시습이

단종과 안평대군, 김종서, 사육신의 제사를 이 곳에서 지냈고, 간화선을 떨친 경허스님이 이 곳에서 교학 강의를 했다.

한국전쟁으로 거의 파괴된 것을 1975년에 새로 지었다.

 

▲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 앞에 홍살문이 있다..

사찰에 홍살문이 있는 이유는 왕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기 때문이다. 세조에 의해 폐위된 단종과 사육신 등의 위패가 이곳에

있어 왕릉 입구에 있는 홍살문이 있는 것이다.

 

▲ 계룡산 동학사 탐방지원센터..

 

▲ 계룡산 동학사 상가지역도 지나고..

 

▲ 계룡산 호텔 아래에...

 

▲ 대형버스주차장이 있다.

 

15시 17분 : 계룡산 자연성릉길 종료..

 

▲ 20여년만의 계룡산 자연성릉길..

화창한 날씨 만큼이나 찬란한 하루였다..

2024년 04월 11일(목).

보해산 : 경남 거창군.

 

산행코스 : 양암마을정류장-보해산주능선-원남산갈림길-회남재.

산행시작 : 양암마을정류장 10시 50분.

산행종료 : 회남재 15시 41분.

전체거리 : 약 7.1km..

전체시간 : 04시간 50분.

운동시간 : 04시간 11분.

휴식시간 : 00시간 39분.

 

10 : 05  용산마을정류장.

10 : 20  마을버스 승차.

10 : 27  가북면 하차후 도보.

10 : 50  양암마을정류장 도착 산행시작.

12 : 18  보해산 주능선.

13 : 26  거가마을 갈림길.

14 : 17  원남산마을 갈림길.

14 : 39  남산2구 갈림길.

15 : 12  원보광마을 갈림길.

15: 41  회남재.

 

▲ 10시 05분 : 용산마을 정류장.

용산마을 주차장에 파킹하고..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양암마을에서 산행을 하려고 한다.

 

▲ 가조에서 10시 10분에 출발하는 농어촌버스를 기다린다.

 

▲ 기다리는 동안 용산마을회관 위로 보이는 보해산도 가늠하고...

 

▲ 흐더러진 수양벚꽃을 감상하는 중에 버스가 도착한다... 헌데.. 우리의 목적지인 양암마을로 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해서.. 가북면까지 타고 가서 산행들머리인 양암마을까지 걸어 가기로 하고 무조건 승차 한다.

 

▲ 가북면에서 내려서 양암마을을 향해 걸어가는데 앞쪽으로... 2020년 3월에 해평교에서 올라갔던 능선이 보인다.

 

▲ 요즘에는 거의 보기 힘든 토종 하얀만들레가 반갑다.

 

▲ 2020년 3월에 보해산으로 올랐던 해평교 들머리다..

 

▲ 10시 50분 : 양암마을정류장 도착.

 

▲ 건너다 보이는 양암마을.

 

▲ 산행은 계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간다.

 

▲ 11시 02분 : 사방댐.

 

▲ 많이 찾는 코스는 아닌듯... 하지만 길은 뚜렷하다.

 

▲ 화전민의 흔적인듯...

 

▲ 괭이밥.

꽃말은..."빛나는 마음"이다.

 

▲ 초기의 등산로 개설때의 축대도 보이지만...

 

▲ 관리가 되지않아서 차츰 잊혀져 가는 코스다..

 

▲ 가파른 오름에...

 

▲ 잠시 숨을 고르려고 앉아 있으니... 발앞에 진달래 통꽃잎이 툭하고 떨어진다.

4월 10일..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었던 총선이 끝났다.

 

일월영측(日月盈昃)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니.. 권불십년(權不十年)이어라~~..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영원한 왕좌는 없다~.

 

무룻.. 국가의 천년 대계를 세우고.. 큰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이는..

개인의 감정적인 앙갚음을 하기 위해 권력을 도구로 이용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 오늘의 목적산은 보해산이지만...

세번이나 다녀온 정상이기에 정상석 인증은 생략하고..

 

▲ 이 바위에서 보해산 정점을 찍고.. 안가본 회남재 코스로 하산하기로 하고 방항을 오른쪽으로 바꾼다.

 

▲ 꽃수술이 유난히 길다..

 

▲ 보해산 주능선에서 회남재까지는 시작부터 끝까지 진달래와 함께 걷는 길이다.

 

▲ 13시 26분 : 거기마을 갈림길. 회남재까지 4.3km..

 

양각지맥을 걸어간 수많은 시그널..

양각지맥은 백두대간 대덕산에서 분기한 수도지맥의 수도산(1,317m) 서쪽 1,7km (우두령 3,7km) 지점인 시코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동쪽으로 가천천, 서쪽으로는계수천을 경계 지으며 양각산(1,151m), 흰대미산(1,018m),

보해산(911,5m), 금귀산(837m), 박유산(712m), 일산봉(625.4m), 오가리재를 지나 가천천과 황강이 만나는 가천교에서

끝나는 도상거리 약38km 산줄기이다.

 

▲ 영수 영취산이나.. 거제 대금산의 진달래 처럼 대단지의 화려함은 없지만.. 시골적인 꽃길이다.

 

▲ 뒤쪽에서 바라보는 거창의 진산 우두산과 작은 가야산능선이 보여서..

 

▲ 당겨 본.. 우두산 능선..

 

▲ 돌아보니.. 보해산도 저 멀리 멀어져서.

 

▲ 눈앞으로 당겨 온다.

 

▲ 회남재길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약간의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 14시 17분 : 원남산마을 갈림길.

 

▲ 사유지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과 철조망.. 소나무의 몸속까지 파고든 철망의 아픔을 주인장은 아시는지..

 

▲ 비슷한 분위기라서 몇km를 걸어 와도 그자리가 그자리 같다.

 

▲ 14시 39분 : 남산2구마을 갈림길..

 

▲ 나.. 양각지맥을 걸어 보았소이다.. 하고 걸어놓은 명함 같은 시그널 중에는 눈에 익은것도 보인다.

 

▲ 집착..

 

▲ 15시 12분 : 원보광마을 갈림길..

 

▲ 마지막까지 길동무를 해준 진달래와 작별이다.

 

15시 41분 : 회남재.

 

▲ 회남재와는 조금 떨어진 생뚱맞은 곳에 서있는 안내도...

 

▲ 회남재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가조택시를 불러서 용산마을로 돌아간다.

 

16시 20분 : 다시 돌아 온 용산마을..

보해산에서 숙제로 남아 있던 회남재 코스를 마무리 한다..

2024년 04월 07일(일).

이기대해안산책길 : 부산시 남구.

 

트레킹코스 : 용호부두선착장입구-용호별빛공원-어울마당-밭골새-농바위-오륙도스카이워크-오륙도유람선선착장.

트레킹시작 : 용호부두선착장입구 10시 38분.

트레킹종료 : 오륙도유람선선착장 14시 11분.

전체거리 : 약 5.8km..

전체시간 : 03시간 32분.

운동시간 : 02시간 38분.

휴식시간 : 00시간 54분.

 

10 : 38  용호부두선착장입구.

10 : 43  용호별빛공원.

10 : 50  동생말전망대.

10 : 57  구름다리.

11 : 12  돌개구멍.

11 : 17  어울마당.

12 : 41  밭골새.

13 : 25  농바위.

14 : 04  오륙도스카이워크.

14 : 11  오륙도유람선선착장.

 

▲ 10시 38분 : 용호부두선착장입구 출발.

 

▲ 10시 43분 : 용호별빛공원.

부산의 8경 중에 하나인 이기대(二妓臺)는 장자산 장산봉과 바다로 이루어진 해상자연공원으로 해안 일대 약 2㎞에 걸쳐

기기묘묘한 바위로 이루어진 암반들이 바다와 접해 있어 낚시를 즐기기에 좋은 곳으로,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낚시터로

꼽힌다. 순환도로와 오륙도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공원 곳곳에 각종 운동기구도 설치되어 있다. 1993년

시민들에게 개방되기 전까지 군사작전지역으로 통제되었던 곳이라 희귀한 식물과 곤충이 서식하는등 자연보존 상태가

좋다. 1999년 10월경 바닷가 바위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면서 남구청에서 이 일대를 정비하여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 부산의 진산.. 장산과.. 부산의 명물인 광안대교..

 

▲ 10시 50분 : 동생말전망대.

"동생말"은.. 동쪽 산의 끝 이라는 뜻이며.. 이기대 해안산책로와 해파랑길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 용호부두방파제 등대.

 

▲ 이기대 해안산책로 출발점..

 

▲ 이기대 해안산책길은 용호동 동생말에서 오륙도까지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 구리광산 2호갱도 터.

 

▲ 이기대 조망대에서 바라본 해운대쪽..

봉긋이 솟은 동백섬은 APEC 정상 회담과 G20 재무장관 회의가 열렸던 섬이다.

 

▲ 10시 12분 : 이기대(돌개구멍).

이기대(二妓臺)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1850년 좌수사 이형하(李亨夏)가 편찬한 '동래영지(東萊營誌)'에 좌수영 남쪽으로 

15리에 두 명의 기생(二妓)의 무덤이 있어 이기대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영성(水營城)을 함락시키고 축하연을 열고 있을 때 수영(水營)의 의로운 기녀가 왜장을

술에 취하게 한 뒤 끌어안고 바다로 투신하여 함께 죽은 곳으로서 이기대가 아니라 의기대(義妓臺)가 올바른 명칭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당시 두 명의 기생이 함께 왜장을 끌어안고 돌개구멍바다에 투신한 데서 유래된 명칭이라고도 한다.

이밖에 경상좌수사가 두 명의 기생을 데리고 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고도 한다.

 

▲ 이기대 돌개구멍은...

이러한 현상은.. 갯바위의 틈에 있던 자갈이나 모래가 파도에 의해 회전하면서 오랜 시간 바위의 표면을 깎아 만들어진

것이다. 이기대 일대에는 약 800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암반과 지층이 남아 있다.

 

▲ 11시 17분 : 어울마당... 계단 위쪽은 휴게소다.

이곳은.. 2009년에 개봉한 영화 "해운대"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 해안가 뷰(view)가 절경인 곳에 먼저 개업한 솔잎님들 옆에..

 

▲ 우리도 양맥(양주 맥주)을 겸한 바(bar)를 신장개업 한다. 메뉴가 보통이 아니다..ㅎㅎ~

 

▲ 먹고 마시고... 적당히 즐기고 다시 출발..

 

▲ 모퉁이를 돌아가니.. 좋은 장소에서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회장님팀을 만난다.. 홧팅의 인증샷 날려주고..

 

▲ 오늘의 최고의 포토제닉상 감이다..~~ 조고문님 모델이 완전 굿입니다..

 

▲ 부산 이기대의 두명의 의기(義妓) 포스다..

 

▲ 이데올로기의 산물.. 해안초소의 소총 좌대가 녹슨채 남아 있다..

 

▲ 고비..

 

▲ 양지꽃..

꽃말은... "사랑스러움" 이다.

 

▲ 2005년에 에이팩(APEC) 회의가 열렸던.. 동백섬의 누리마루APEC 하우스의 하얀지붕이 보인다.

 

▲ 서민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어민은 배를 타고.. 산을 좋아하는 이는 산을 오른다..

 

▲ 조밥나물꽃..

꽃말은 "선언".. "눈치가 빠른".. "눈썰미가 좋은".. "헛수고".. "단정한 사랑"이다.

 

▲ 보라색 제비꽃..

꽃말은... "성실".. "겸손"... "사랑" 이다.

 

▲ 산딸기꽃..

꽃말은... "애정".. "질투" 이다.

 

▲ 갈림길에서.. 회장님팀과 조우하고..

 

▲ 아래쪽에 치마바위가 보인다.

 

▲ 보리수..

 

▲ 부산은..우리나라 제2의도시이자.. 제1의 항구도시 임에도 전혀 오염이 되지않은 물빛이 너무나 고운 에메랄드다.

 

▲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숲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걷는 최고의 명품 산책로다...

 

▲ 부산의 "잔도" 다.

벗들과 함께 걷는 길..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드는 길... 참 좋다.

 

▲ 치마바위를 지나서...

 

▲ 밭골새로 간다.

 

▲ 밭골새 내려 가는 길...

 

▲ 밭골새 기암 아래에서...

 

▲ 두번째 식당을 열고...

 

▲ 국산 먹거리를 넘어서...

 

▲ 꼬부랑글씨의 먹거리도 투입된다...

 

▲ 아름다운 경관과 먹거리를 즐기고... 머물렀던 자리는 아니온 듯.. 깨끗하게 흔적을 지우고 떠난다.

 

▲ 농바위 전망대에 다왔다.

 

13시 23분 : 농바위 전망대.

 

▲ 절벽에 절묘하게 얹쳐있는 농바위 위로... 오륙도와 스카이워크가 보인다.

 

▲ 우리일행들의 인증을 지켜 보던 화끈한 부산 아지매가... 날더러 함께 서라며 찍어 주겠단다..

농바위를 놓치지 않고 울타리 사이로 담았다.. 부산 아지매요.. 고맙심더~..

 

▲ 절묘한 모습이다.

 

▲ 농바위를 당겨 본다.

농바위(籠岩)의... "농" 이라는 것은, 버들채나 싸리 따위로 함처럼 만들어 종이를 바른 궤를 포개어 놓도록 된 가구인데..

과거에 제주도의 성산포 해녀들이. 부산의 남천동 해안가에 와서 물질을 하면서 특정바위에 이름을 지어 서로 연락하는

수단으로 농을 닮은 이 바위를 <농바위>라고 불러왔다는 유래가 있다.. 돌부처바위나 망부석바위로도 불린다.

 

▲ 바다 가마우지..

요즘 우리나라에 토착화 하여 텃새가 되어버린 이녀석들 때문에 생태계가 문제라고 한다.

 

▲ 점점 다가오는 오륙도 전경..

지금은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바라 보고 있지만... 그리 멀지도 않은 수십년전에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노예처럼..

현해탄을 건너가던 통한의 바닷길 이다..

 

▲ 오륙도 해맞이 공원..

 

▲ 오늘로 네번째 오는 곳이다.. 내가 처음 왔을때.. 저 언덕에 피어 있던 루드베키아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 해파랑길(Haeparang Trail)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최장 트레일 거리이다. 오륙도에서 강원도 고성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상징인 "태양과 걷는 사색의 길"로, 총 길이는 750km다.  2010년 9월 15일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동해안 탐방로

이름으로 해파랑길을 선정하였으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남해안은 "남파랑길"이고.. 서해안은 "서파랑길"이다.

 

▲ 스카이워크로 간다.

지금은 수선화가 제철인데.. 아쉽게도 끝물이라 져버렸다.

 

▲ 꽃피는 동백섬에 봄은 왔건만... 현해탄아 말해다오..

지금은 소리없는 메아리로.. 돌아오는데.. 요트가 한가롭다..

 

▲ 입장료는 무료이며.. 스카이워크의 유리 긁힘을 방지하기 위한 덧버선을 신고..

 

▲ 가까이에서 본 오륙도.. 수리섬 뒤로 송곳섬.. 굴섬.. 등대섬이 겹쳐서 숨어 있다.

오륙도 뱃길은.. 일제강점기때 나라잃은 설움으로 눈물로 현해탄을 건너던 곳 이며..

우리 선조들의 애환이.. 부서지는 파도 만큼이나 수 많은 사연이 서린 부산의 관문이다..

 

▲ 부산 시내쪽.. 영도의 대표산인 봉래산을 선두로 지봉..손봉을 거쳐.. 태종대까지 등산하기 좋은 그림같은 능선이다..

그리고.. 자갈치시장과 가까운 천마산이 살짝 보이고 신선대도 지척이다.

 

▲ 오륙도를 다시 조망하고..

오륙도는 용호동 앞바다의 거센 물결 속에 솟아 있는 6개의 바위섬으로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섬으로 세찬 바람과 파도를

막아 준다는 방패섬, 섬의 꼭대기에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솔섬, 갈매기를 노려 독수리가 모여 들었다는 수리섬, 작고

모양이 뾰족한 송곳섬, 가장 큰 섬으로 커다란 굴이 있는 굴섬,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륙도의 유래는 방패섬과 솔섬이 물때에 따라 썰물이면 하나로, 밀물이면 두개로 분리되어 5개 또는 6개의 섬이 되는

현상에서 오륙도라 불린다고 한다.

 

▲ 내려오면서 뒤 돌아본 스카이워크..

 

▲ 오륙도 SK뷰 아파트 아래 주차장에서 트레킹을 마무리 한다.

 

▲ 트랭글을 정리하고..

 

▲ 자갈치시장과 한블록 이웃하고 있는 자갈치 신동아상가의 수산물 종합시장 3층 회센터로 올라 간다.

 

▲ 솔잎 집행부에서 준비한 8번 회센터..

 

▲ 솔잎회원중에 농사를 지었다는 상추와 돌미나리.. 채소가 푸짐하다.. 잘 먹었습니다.

 

▲ 솔잎회장님의 기운찬 건배사..

 

▲ 김프로 이사님의 건배.. 총무님이 진행을 참 잘하네요~~..

 

▲ 황새 고문님의 건배..

 

▲ 이어서.. 황소 고문님의 건배..

 

▲ 뻑쩍지근.. 푸짐하게.. 먹고 마시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색이 천년의 청자 빛이다.

 

▲ 자갈치시장 장보기 투어..

 

▲ 신식건물의 자갈치 시장..

 

▲ 거기 멍교?.. 멍게 아인교.. 멍게도 사고..

 

▲ 갈치도 사고..

 

▲ 할매요 갈치를 떠러미 해삔네요..

 

▲ 주차장 가는길의 자갈치항.. 몇십년 전만해도 오염으로 악취가 심했던 곳인데 지금은 낚시를 할 정도다.

 

▲ 2019년 1월에 천마산에서 암남공원까지 걸었던... 그 해의 1월이 생각난다..

 

▲ 깨끗해진 물빛에 비친 반영도 이쁜 부산항을 떠나며...

 

다달이 일취월장의 발전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솔잎산악회 집행부에 박수 보내고..

다음달의 산행을 기대 한다.

2024년 04월 04일(목).

선운산 : 전북 고흥군.

 

산행코스 : 삼인학습장입구-문학비공원-형제봉-노적봉-구황봉-안장바위-청룡산-천마봉-선운사-선운사주차장.

산행시작 : 삼인학습장입구 09시 54분.

산행종료 : 선운사주차장 16시 09분.

전체거리 : 약 16.51km..

전체시간 : 06시간 15분.

운동시간 : 06시간 06분.

휴식시간 : 00시간 09분.

 

09 : 54  삼인학습장입구.

10 : 00  문학비공원.

10 : 36  형제봉.

10 : 49  노적봉.

11 : 05  구황봉.

11 : 48  안장바위.

12 : 01  병풍바위.

12 : 49  비학산.

13 : 00  희어재.

14 : 02  청룡산.

14 : 42  천마봉.

15 : 48  선운사.

16 : 09  선운사주차장.

 

▲ 09시 54분 : 삼인학습장입구.

 

▲ 구황봉능선을 가로지르는 "풍천터널"을 배경으로..

시속에서 통칭하는 "산꾼"이 아닌.. 공인기관에서 인정해 주는 "산꾼"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호칭이 있다면..

그 호칭을 부여받을 자격이 충분한.. 전문 산꾼들이 모인 대구 화랑산악회의 4월 산행은 고창 선운산 자락에서 출발한다.

 

▲ 단체 인증을 마치고.. 삼인안전 체험관쪽으로..

 

▲ 삼인종합학습장.

2018년에 폐교된 삼인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고창군 안전체험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 삼인초등학교운동장은 폐교후 조각공원이었다가.. 지금은 문학비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 공원 안쪽으로 가면..

 

▲ 산행 시그널이 달려있는 곳이 산행 들머리다..

 

10시 08분 : 구황봉 갈림길..

공원에서 약 6~7분정도 오르면 구황봉 주능선에 닿게 되고.. 왼쪽은 오계봉으로 가는 길이다.

 

▲ 능선에는 소나무와 산죽이 엉켜있지만 길은 잘보이고 양호한 편이다.

어제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고.. 오늘의 고창은 흐림이고 오후 3시경에 0.1mm의 비가 예보되어 있다.

 

10시 36분 : 형제봉 도착.

 

▲ 잘 빠진 형제봉의 명품송도 올려다 봐주고.

 

▲ 진행 방향의 노적봉과 구황봉을 가늠해 본다.

 

10시 49분 : 노적봉.

산이름 작명가인.. 서래야님의 코팅지가 무사히 달려 있는걸 보니.. 산이름과 현재 위치가 부합 되는가 보다.

맞지 않으면 후답자들이 가차없이 떼어 버린곳을 많이 보았다. ㅠㅠ~~..

 

▲ 구황봉 오름길의 방구돌에...

 

▲ 바위에 각자가 되어있는 글자가 보여 가까이 다가가 보니.. 위에서 부터 용산오국(龍山吳國)주씨양(主氏陽)이다..

가로로.. 세로로 아무리 읽어 보아도.. 도대체가 영문을 알수 없는 글이다..???..

 

▲ 바위 위에 올라가 본다.

 

▲ 구황봉 바로 아래의 구암마을에 있는 "병바위" 와 "소반바위"가 보인다.

 

11시 05분 : 구황봉 정상에는 산성인지 알수없는 돌담이 보인다...

 

구황봉을 중심으로 정상 주변에는 9개의 암벽과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 구황봉을 지나자 말자 급내림이더니...

 

▲ 바로.. 조망이 좋은 구황봉 탕건바위가 기다린다.

 

▲ 가야할 능선에 선바위와 안장바위가 기다린다..

 

▲ 당겨본 선바위.. 여기서보면 하나의 바위지만..가까이 가보면 두개다.

 

▲ 탕건바위를 내려와서.. 조망이 없어서 패쓰했던..인경봉 내림길과 만나고..

 

▲ 곧 이어..주 등로에서 살짝 비껴있는 선바위로 간다.

 

▲ 가까이 다가서면 우람한 몸집의 선바위가 두개로 나뉘어져 있다.

 

▲ 선바위에 둥지를 튼 소나무가 12년이 지난 지금도 푸르다..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키도 몸집도 키우지 말고 그모습 그대로 천년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합장으로 기원하며 돌아선다.

 

11시 24분 : 도솔제 갈림길..

 

▲ 늪지를 지나면서 부터..

 

▲ 안장바위가.. 어서 오라며 머리를 내밀어 주는데 오름이 제법 가파르다.

 

▲ 도솔제의 물빛이 푸르다 못해 시퍼렇다..

 

▲ 오름길에 주변경관을 둘러보는 사이에...

 

▲ 안장바위가 가까워 졌다.. 안장바위는 두개의 바위로.. 건너편의 사자바위능선에서 보아야 안장처럼 보인다.

 

▲ 뒤돌아 본..구황봉.

누구나 삶에 지치고 힘들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산행도 그렇다..

 

▲ 두개의 안장바위에서 첫번째 바위로.. 이리로 가면 올라갈수가 있다..

 

▲ 두번째 안장바위... 올라가 본다.

 

▲ 구암마을의 거북바위.

흐려서 아쉽지만.. 안장바위 전망대에서 본.. 구암마을의 병바위와 소반바위.

전설에 의하면 선동마을 뒤 선인봉의 선인이 반암뒤에 차일을 치고 잔치를 하고 있는 집에서 술에 몹시 취해 버렸다.

만취한 선인이 일어서면서 한발로 소반을 걷어차자 소반 위 술병이 굴러 떨어져 주진천에 거꾸로 꽂힌 것이 병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이쪽에서 평범한 바위지만..

 

▲ 지나와서 돌아다 보면..이런 모습이다... 노승바위라고도 하고.. 일명 해골바위라고도 한다.

 

▲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여주인공 "오드리 햅번"이 사자(동상)입에 손을 넣고 화들짝 놀라는 장면이 생각난다.

 

12시 01분 : 병풍바위에서..

 

▲ 비학산 아래.. 삼천굴도 가늠하고..

삼천굴은 백제 의자왕이 삼천궁녀와 함께 피난 왔다는 굴이다. 전설을 뒷받침 하듯이 골짜기 이름도 삼천골이다.

 

▲ 멀리 운곡저수와 화시산 능선과...

 

▲ 구암마을을 내려다 보며.. 에너지 보충을 한다.

 

▲ 왕복 400m의 삼천굴을 다녀 오고 싶지만.. 오늘의 산행거리가 너무 멀다.. 아쉽지만 통과다.

 

▲ 비학산 오름길에 만난 단독주택..

 

12시 49분 : 비학산..

빛바랜 표지판이 "준.희"님을 대신하여 근무에 충실하고 있다.

 

▲ 급경사의 비학산 내립길... 습기 머금은 바위가 미끄럽다.. 조심조심..

 

▲ 내려다 본 희어재...

왼쪽은 아산면 월성에서 오는길이고.. 오른쪽은 도솔제로 이어 진다.

 

13시 00분 : 희어재...

희어재는 고창군 아산면 월성에서 선운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무장면 해리쪽에서 선운사로 가는 이 고개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을 지니고 있다.

 

선운사 사내 암자인 참당암을 지을때 새끼를 월성 마을에 맡겼다. 절을 지으면서 새끼를 가지러 가니 그제서야 짚을 추리고

있지 않은가? 당장 써야 할 새끼를 이제야 꼴 채비를 하고 있으니 낭패다. 발을 동동구르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니

새끼 머리를 꼬아 주면서 끌고 가라고 했다. 충분히 쓸 수 있도록 대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월성에서 새끼를 꼬고 참당암에서 끌어당겨 썼기 때문에 고개가 닳고 닳아 희어져서 "희어재"라고 한다는 것이다.

월성에서 새끼를 고아 댄 사람은 도인이었던가 보다.

 

▲ 쥐바위쪽으로...

 

▲ 쥐바위 오름길에 내려다 본 아산면 월성... 아래 가운데 보이는 축산농가 앞에 이정표가 있다.

 

▲ 지나온 비학산...

 

▲ 청룡산으로 이어지는 쥐바위능선... 암릉구간에 우회로가 있다..

 

▲ 당겨 본 암릉구간...

 

▲ 부처님의 옆얼굴 같다...

다소 먼거리의 산행길에 부처님의 가피로 무사무탈로 산행을 마치게 하여주옵소서!~~.. 

 

▲ 기암..

 

▲ 는개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마음은 바빠지고.. 그럼에도.. 쥐바위 너머로 배맨바위가 살짝 보여서...

 

▲ 당겨 보니... 영락없는 거북이다...

 

▲ 걸어온 길... 멀리도 왔다..

 

▲ 암릉구간...

는개비에 바위가 미끄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전을 생각하고 우회로로 갔더니.. 완전 낭패다.

 

▲ 조금만 내려가면 되겠지... 했었는데...

 

▲ 이런 제기... 끝없이 내려갔다가 올라간다.. 안전하게 가려다가 판단 착오다.. 후답자분들은 우회하지 마시길..

 

▲ 국기봉 아래 갈림길에서 국기봉은 통과하고 청룡산으로...

 

▲ 가야할 쥐바위에 선답자들이 보인다....

 

▲ 도솔저수지로 가지 않고 도솔암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계속 청룡산으로 고고~..

 

▲ 쥐바위 오름길의 돌탑.. 12년만의 해후다.. 반갑다..

 

▲ 짙어진 는개비에 세상이 온통 회색이다...

 

▲ 쥐바위...

 

▲ 쥐바위 천길 단애... 아차하면 영영~ 저차 된다..

 

▲ 습기에 바위가 미끄럽다...

 

▲ 천천히 안전하게..

 

▲ 쥐바위 아래의 기암...

 

▲ 14시 02분 : 청룡산...

 

▲ 이곳에 처음 올라온 동료만 찍어주고 나는 패쓰...

 

▲ 선운사쪽으로...

 

▲ 가야할 천마봉과 낙조대...

사진상으로는 표시가 안나지만.. 배맨바위에서 천마봉까지가 은근히 지루한 구간이다.

 

▲ 달팽이귀신 바위라고...

 

▲ 배맨바위...

 

14시 42분 : 천마봉...

 

▲ 천마봉에서 내려다본 도솔암과 마애불과 내원암...

 

▲ 마애불도 당겨서 모시고...

 

▲ 사자바위를 향해 기어가는 애벌레..

 

▲ 천마봉에서 도솔암으로 바로 내려가는 데크계단...

내림 난이도가 원주치악산 사다리병창만큼이나 급경사다.. 패쓰하고.. 조금 돌더라도 용문굴쪽으로 간다..

 

▲ 낙조대에서 용문굴로..

 

14시 57분 : 용문굴..

 

▲ 도솔암과 내원궁 갈림길..

 

▲ 천마봉에서 내려오는 계단길..

 

▲ 선운사도솔암마애불(磨崖如來坐像)보물 제1200호.

백제의 위덕왕이 선사 검단(黔丹)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을 조각하고, 그 위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

장사송이라는 이름은 과거에 이곳이 장사현에 속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장사송은 적송으로 큰 가지가 여덟으로 갈라져 우리나라 8도를 상징하는 듯 하다.

 

▲ 진흥굴..

신라 24대 진흥왕이 말년에 부인과 중애공주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는 "진흥굴"이다...

 

▲ 진흥굴안에서 바라본 모습..

 

▲ 도솔천의 물이 검게 보이는 이유는 도토리의 타닌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 연리목..

 

▲ 청송 주왕산의 주왕굴 입구의 급수대 바위와 비슷하게 보인다...

 

▲ 선운사 쉼터..

도솔제와 투구바위 능선 갈림길이기도 하다..

 

▲ 선운사 동백나무 숲..

선운산은 동백숲으로 유명하다.  4월에는 동백꽃과 벚꽃, 진달래꽃이 한데 어우러져 흐드러지게 핀 장관을 볼 수 있다.

동백숲(천연기념물 184호)은 선운사 뒤쪽 5천여평의 산비탈에 수령 5백년을 자랑하는 동백나무 3천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춘백으로도 불리는 선운사 동백은 가장 늦게 핀다.하동의 매화가 지고난 4월부터 꽃봉오리를 터뜨린다.

절정은 4월 하순, 선운산 동백은 4월초부터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여 5월초순까지 피어나 선운사 뒤쪽 동백숲은

꽃병풍을 두른 듯 장관을 연출한다.

 

미당 서정주는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라고 늦은 동백을 노래하고 있다.

 

▲ 선운사.. 그 천년의 세월을 붙들고 살아온 담쟁이..

 

▲ 선운사 천왕문..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

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선운사 만세루..

검단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 선운사 영산전 뒤편의 동백숲..

선운사 동백나무는 사찰 창건당시 동백열매의 기름을 등유로 사용하기 위하여 식재한 것으로 추정되며... 동백나무숲은

선운사 대웅전으로부터 400m 지점 뒷산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웅전 뒷산을 병풍처럼 둘러쳐 16,500㎡에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최 북방에 위치하고 있는 자생지로 학술적 연구자료가 되어 1967년 2월 11일 천연기념물 184호로

지정되었다.

 

▲ 5월 15일 부처님 오신날의 준비로.. 스님들이 대웅전앞에 연등달기를 하고 있다.

 

▲ 선운산 아래 선운사 경내를 나서며... 선운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도솔산(兜率山)이라 하였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禪雲寺)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일주문에는 도솔산 선운사로 되어 있다.

 

▲ 송악을 보려고 갔더니.. 도솔천이 범람하여 건너 갈수가 없다.

 

▲ 송악(천연기념물 367호)..

고창 삼인리의 송악은 줄기의 둘레가 80cm에 이르고 높이가 15m.. 내륙에 자생하는 송악중에서 가장 큰 나무로 짧은 가지

끝에 여러개가 둥글게 모여서 달린다.  약용으로 쓰이는 송악은 본래 따뜻한 지역에서만 자라는 늘 푸른 덩굴식물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남부의 섬이나 해안지역의 숲 속에서 주로 자라며, 동해는 울릉도까지, 서해는 인천 앞 바다의 섬들까지

퍼져 있다.  그러나 내륙에서는 이곳이 송악이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이다.

이 나무 밑에 있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으며.. 소가 잘먹는다고 하여 "소밥나무"라고도 한다.

 

15시 09분 : 선운사 주차장 산행 종료..

 

▲ 16.5km.. 오랜만에 많이 걸었다. 평균 속도 2.7km.. 꽤나 괜찮은 성적이다.

 

16시 39분 : 선운사 주차장에서 약 3~4분 거리의 서ㅇㅇ식당(풍천장어)에서..

 

▲ "힘좋아탕" 으로.. 속을 달랜다.

바로 옆 테이블에 계신 산여울 선배님이 일행 네분과 소규모 건배를 하시는데.. 건배사가 재미 있다.

선창... 가자가자 뿅가자!~...

후창... 뿅가자!~~...  이 건배사를 다른데 가서 써먹어야 겠다..ㅎㅎ..

 

▲ 당분간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의사의 말대로.. 얼른 한그릇 뚝딱하고 밖으로 나오니.. 식당 바로 뒤가 주진천이다.

"풍천장어"는 전북 고창군을 흐르는 주진천과 서해가 만나는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부근에서 잡히는 뱀장어를 가리킨다.

"풍천장어"라는 명칭의 유래는 한 두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 지역주민들은 주진천을 풍천강이라고 부른다. 민물에서 7~9년 성장하다가 산란을 위해 태평양으로 회유하기 전

바닷물과 민물이 합해지는 풍천강에서 장어가 많이 잡혀서 풍천장어라는 이름이 붙었다..

두번째.. 주진천에 하루2번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자연산 장어가 바닷물과 바람을 함께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바람풍 자와

내천 자를 써서 풍천장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 여기서 차로 7~8분 가면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서해 바닷가가 나온다. 선운리는 미당 서정주 선생의 생가다.

바다 쪽 갯벌이 간척되기 전, 바닷물은 지금보다 훨씬 내륙 안쪽으로 들어 왔다고 한다.

 

빼어난 경관을 만끽 하고자 설레임으로 다시 찾은 선운산..

받쳐주지 못하는 흐린 날씨에 아쉬움도 컸지만...

무사무탈 완주산행을 마친 하루에 감사하다..

2024년 03월 31일(일).

잉어등 : 대구 달성군.

 

산행코스 : 에코테마파크정류장-한천교 징검다리-잉어등-육각정자-체육시설-가창교갈림길-선미봉-가창농원.

산행시작 : 에코테마파크정류장 09시 30분.

산행종료 : 가창면 행정리 가창농원 15시 44분.

전체거리 : 약 5.3km..

전체시간 : 06시간 14분.

운동시간 : 04시간 39분.

휴식시간 : 01시간 35분.

 

09 : 30  에코테마파크정류장

09 : 38  한천교징검다리.

10 : 01  잉어등.

10 : 04  육각정자.

10 : 47  체육시설.

11 : 35  가창교갈림길.

13 : 23  선미봉.

15 : 44  가창농원.

 

▲ 09시 30분 : 에코테마파크앞 정류장에서 가창방면 구.도로를 따라 출발.

 

▲ 잉어등능선.

가창에 가면서 늘 바라보던 능선을 언젠가는 가봐야지 했는데...

얼마전에 비슬산 둘레길의 일부구간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음을 알고 답사의 인연을 가진다.

 

▲ 가창 구.도로의 성주식당 맞은편으로...

 

▲ 잉어등 이정표가 있다.

 

▲ 한천교 아래의 징검다리를 건너간다..

 

▲ 한천바위.

팔조령에서 흘러 내리는 신천 냇물 한가운데 떡하니 앉아 있는 바위다.

옛날 유학하는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시를 짓고 술잔을 기울이며 연회하던 곳으로.. 주부자의 무이구곡을 빌려 수남구곡을

지었는데.. 제1곡이 이곳 한천이었다.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562번지의 대법서원사 울타리안쪽에 찬물이 나는 샘이 있다. 이 샘을 한천이라 한다.

지금은 대법서원사 철판으로 덮개를 만들어 한천(샘)을 덮어 놓았다. 찬샘 안쪽 뒤편 넓적한 돌에 한천(寒泉)이라 음각된

글씨가 있고 찬샘이 있는 곳이라 이 부근의 지명을 모두 ‘찬새미’라 부르고 있다.

 

▲ 한천바위 전설.

이 바위에 왼손으로 돌을 던져 바위 위에 얹혀지면 아들을 낳고, 얹혀지지 않으면 딸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약 150여년 전 냉천골에는 "서찬규"라는 사람이 살았다.

서찬규는 글도 잘하고 집안이 부유하여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어 늘 쓸쓸했다.

그러던 중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되어 한천바위로 가 돌을 던져 보았다. 서찬규가 던진 돌은 한번에 바위 꼭대기에

얹혀졌다. 서찬규는 크게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했다. 과연 부인이 잉태를 하게 되었다.

두 부부가 손꼽아 기다린 해산날이 다가왔다. 부인은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낳았다. 서찬규는 너무나 기뻐서 "내가 아들을

얻은 것은 오로지 이 바위의 덕이다." 라고 말하고, 바위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서찬규는 바위에게 음식이나 돈을 줄 수가 없으므로 바위에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다.

그때 마침 그 바위가 있는 냇물이 아주 찼으므로 이름을 "한천(寒泉)'이라 새겼다고 한다.

 

▲ 돌계단을 올라서면...

 

▲ 왼쪽능선을 올려다 보면.

 

▲ 거친 바위들이..

 

▲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것 같은 위압감을 준다..

 

▲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라.. 낙엽과 바위들이 엉켜 걷기에 매우 불편하다.

 

▲ 잉어등을 가리키는 마지막 이정표 아래에..

 

▲ 외로운 벤치가 산꾼들을 기다리고 있다..

 

▲ 사람이 그리웠을 벤치에게  야등팀의 정담(情談)을 들려 준다..

 

10시 01분 : 능선에 올라선다...

이 능선이 잉어등일까?.. 하늘에서 보면 잉어가 힘차게 솟아 오르는 모습이라고 한다.

 

▲ 활짝 핀 진달래를 따라 아래쪽으로 2~3분 진행하면..

 

10시 03분 : 육각정자 도착.

 

▲ 정자에서 바라보는 대구쪽의 가창면소재지.. 대구텍(구..대한중석)본사도 보인다.

 

▲ 야등팀의 정나눔으로.. 나도 막걸리 한병의 무게를 줄인다..

 

▲ 지도상의 323m봉을 향한다.

이정표도 잘되어 있고.. 쉼터 벤치도 있고 쉬기좋은 정자도 만들어 놓았는데.. 왜? 찾지 않을까..

 

▲ 323m봉을 넘어 281m봉 가기전의 안부에서 왼쪽으로 내려 가면..

 

10시 47분 : 체육시설을 만난다.

 

▲ 햇볕이 잘드는 양지바른 곳이다.

 

▲ 이정표가 가리키는 용지봉쪽으로..

 

▲ 나란히 줄지어 걷는 야등팀 8명을 보니.. 마치 산악회에서 45명을 풀어 놓은듯한 분위기다.

 

▲ 잉어등에서 이어지는 이 코스는 오늘 처음 걷는 길인데.. 너무 착하고 좋다.

그래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새로움을 만나는 것이다.

 

▲ 누구랑?...

 

▲ 같이 걸어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과 함께...

 

▲ 착한 길도 길게 이어지면 조금은 지루하다고.. 방구돌도 보여주고..

 

▲ 요상한 소나무도 보여주면서.. 길은.. 그렇게 한동안 착하게 이어지다가..

 

▲ 길에서 약 30m정도 위에 우람하고 멋진 바위가 보여서.. 찾아 올라간다.

 

▲ 이쪽 저쪽을 살펴보아도 올라가는 길이 없고.. 비행기가 지나간 하늘색이 너무 예쁘다..

 

▲ 방구돌 포스가 예사롭지 않은데 왜?.. 산꾼들이 가만히 두었을까.. 로프하나도 걸려 있지 않다.

 

▲ 길을 찾는 와중에도..

어느새 야등회장님이 잽싸게 둘러보고 내려 온다.. 위쪽에도 길이 안보인다고 한다. 빠른 포기는 안전의 지름길이다.

 

▲ 다시 등산길로 내려와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착한길을 따라 간다.

 

▲ 체육시설을 출발한지.. 약 40여분 만에.. 가창교로 이어지는 능선갈림길을 만난다.

 

▲ 멋지게 서 있는 오지송밑에서..

 

▲ 이동식 가두 음식점을 차린다... 메뉴 한번 보시라.. 오곡밥에.. 영양죽에.. 돼지 수육.. 족발.. 감태.. 달래양념장.. 곰피..

고추부각.. 그리고.. 양주. 막걸리.. 와인.. 으휴~.. 배터질라!~~.. ㅎㅎ.. 방송국 피디님들요..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에서

"등산먹거리"도 한번 취재해 보이소... 연락 주시면 출연료는 안받을께요..ㅋㅋ~.

 

▲ 먹고 마시며.. 여름휴가 계획도 하고.. 설악의 마등령에도 가만히 앉아서 입으로 다녀 온다.

 

▲ 이 길로 내려가면 가창교와 만난다.

 

▲ 거대한 참나무에서 범접 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 다시 길위에 서서... 선미봉을 향한다..

 

▲ 선미봉 오름도 녹록하지가 않다.

 

▲ 선미봉 오름이 얼마나 대단한지 뒤돌아보니 거의 수직이다. 저길을 올라오는 야등팀은 더 대단하고..

 

▲ 앞산 순환도로의 파동IC가 바로 보인다...

 

13시 23분 : 선미봉 정상.

 

▲ 선미봉 진달래를 배경으로... 아등팀 꽃님들의 사진을 담아 주려고 하다가..

 

▲ 이 일을 우짜모 좋노...

 

▲ 야등팀 꽃님들이 사라져 버렸다...

 

▲ 진달래가 야등팀 꽃님 같고...

 

▲ 야등팀꽃님들이 진달래가 되었는지.. 찾을수가 없다.

 

▲ 선미봉이 무릉도원 이다.

 

▲ 선미봉에서 신선놀음을 즐기고 있는데.. 야대장님과 조고문님이 이제사 올라온다.

 

▲ 선미봉과 수성못 갈림길.. 지난주에 올라 왔던 길이다.

 

▲ 스모그현상도 없고.. 초미세먼지도 보통수준에 팔공산능선이 시원하다.

 

▲ 잉어등을 타고 오른 등용정...

 

▲ 권이사님표.. 꼬부랑 미제 먹거리..

 

▲ 길위에서 길을 묻고.. 행정교를 찾아서..

 

▲ 느티나무 보호수.. 300살..

 

▲ 최정산 능선상의 주암산.. 저 능선만 쳐다보면.. 놀란 멧돼지가 꽁지빠지게 도망가던 생각이 난다.

 

15시 44분 : 가창농원..

 

18시 30분 : 가창스파밸리2 정류장.

 

▲ 잉어를 타고 함께 했던 야등팀의 하루가 간다.

잉어는 불교에서 늘 깨어있는 물고기처럼 수행이나 학문을 정진하라는 의미가 있고..

한꺼번에 많은 알을 낳아 다산과.. 자손의 번영과.. 재물을 상징한다. 또한 출세의 등용문 이다...

꿈에 잉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본다면, 새로운 시작이나 변화의 징후를 의미한다. 삶에 새로운 에너지가 도래하고 있다.

꿈에 잉어를 안으면.. 자아의 수확이나 자기 만족을 상징할 수 있다. 성공적인 업적을 이룬다는 것을 뜻하며,

자신의 노력이 보상받을 것임을 시사 한다.

야등님들.. 잉어꿈 꾸시고.. 소원 이루시고 아프지 맙시다! ~~..

2024년 03월 27일(목).

우락산(764.8m) : 경남 함양군.

 

산행코스 : 갈고개-우락산-인삼밭-도천리마을쉼터.

산행시작 : 갈고개 11시 02분.

산행종료 : 도천리마을쉼터 13시 02분.

전체거리 : 약 3.03km..

전체시간 : 02시간 00분.

운동시간 : 01시간 41분.

휴식시간 : 00시간 19분.

 

11 : 02  갈고개 출발.

11 : 38  우락산.

12 : 49  인삼밭.

13 : 02  도천리.

 

▲ 11시 02분 : 갈고개 출발.

경남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 산73-2.

 

▲ 거기리와 도천리를 잇는 도로공사를 하고 있는지.. 통행금지다.

 

▲ 우락산은 좌측의 산소쪽으로 올라간다.

 

▲ 경남 함양의 진산 황석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첩첩골짜기에..

 

▲ 갈고개 아래의 송계리 거기마을이 하늘아래 첫동네처럼 모여 있다.

 

▲ 산소 묘역을 지나자 말자 황량한 벌목 현장이 나타난다.

 

▲ 갈고개 벌목현장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남덕유산이 보인다...

 

▲ 살짝 당겨보니 어제 내린 비가 눈으로 바뀌었던 모양인지.. 제법 많은 눈을 이고 있다..

 

▲ 넓은 지역에 벌목을 하였음에도 등산로는 훼손하지 않아서 진행하기에는 어렵지 않다.

 

▲ 산상마을인 거기마을 전경..

 

▲ 벌목지대를 통과하니 제법 뚜렷한 등로가 이어진다.

 

▲ 갈고개에서 가파른 오름길을 30여분 힘겹게 올라서니..

 

▲ 우락산 고스락에 올라선다.

 

▲ 우락산(優樂山)은 예로부터 산세가 좋고 우아하게 생긴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정상석에서 20여미터 떨어진곳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 산불초소 앞쪽의 바위에 올라서면 조망이 아주 좋은 곳인데 이름이 새겨져 있다..

 

▲ 먼저 남서쪽의 백운산 영취산을 시작으로..

 

▲ 서쪽에는 덕운봉이..

 

▲ 서북쪽에는 깃대봉과 할미봉이..

 

북쪽에는 남덕유산과 월봉산이 버티고 있다..

그 아래 도천(道川)마을은 풍수지리학상으로 마을의 지형이 칡덩굴 같다 하여 갈고개(葛峴)라 하였고 서상중학교가 있는

곳이 갈꽃(葛花)이라는 명당이라고 한다. 마을과 우락산 사이의 골짜기에 서당골이 있는데 옛날 그곳에 서당이 있었으며

"신처로" 라는 선비가 강학하던 곳이라 전하고 있다.

도천마을을 처음 개척할때 칡덩굴과 다래덩굴을 걷어내고 마을을 개척하였다 라고 한다.

 

▲ 당겨본 남덕유산.

 

▲ 다시.. 동북쪽으로 몸을 돌리면 월봉산 주능선 너머로 금원산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 동쪽의 거망산과 그 뒤쪽에 기백산도 살짝 보인다.

 

▲ 그리고 동남쪽의 황석산까지..

금원산.. 거망산.. 기백산.. 황석산을 하늘에서 보면 다이아몬드 형상으로 1000m 이상급으로 꿈의 종주코스다.

 

▲ 우락산에서 도천리 하산길은..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은듯 희미한 흔적의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 거칠지는 않지만 제가락대로 자란 나뭇가지들이 불청객의 온몸을 붙든다.

 

▲ 약간의 바위지대도 있지만..

 

▲ 사람이 다닐수 있는 틈새는 내어 준다.

 

▲ 바위지대를 내려서니..

 

▲ 용도 폐기된 헬기장에 잡초만 무성하다.

 

▲ 다시 벌목현장과 인접하게 내려가다가..

 

▲ 관리를 안하는 밤나무단지에 들어서고.. 밤나무 버섯이 있어서..

 

▲ 인삼밭...

 

▲ 임도에 내려서니 도천리가 지척이다.

 

▲ 하산지점인 도천리 쉼터..

 

▲ 뒤돌아서서 올려다 본 우락산..

 

13시 02분 : 2시간의 짧은 산행을 마치고..

 

▲ 트랭글을 정리하고.. 경북 고령의 말응덕산으로..

 

2024년 03월 27일(목).

말응덕산(111m) : 경북 고령군.

 

산행코스 : 봉화대주차장-봉화산-낭만공원-봉화대-봉화대주차장.

산행시작 : 봉화대주차장 16시 24분.

산행종료 : 봉화대주차장 17시 22분.

전체거리 : 약 3.02km..

전체시간 : 00시간 58분.

운동시간 : 00시간 58분.

휴식시간 : 00시간 00분.

 

16 : 24  봉화대주차장.

16 : 41  봉화산.

16 : 48  낭만공원.

16 : 56  봉화산.

17 : 08  봉화대.

17 : 22  봉화대주차장.

 

▲ 16시 24분 : 봉화산전망대 주차장.

 

▲ 주차장 입구에 봉화대방문자를 위한 주차장이라고 써여져 있는데.. 생각보다 넓다.

 

▲ 봉수대가 올려다 보이고 그 아래로는 주택단지 조성이 한창인지 기계음 소리가 요란하다.

고속도로에서 자주 보던 고령의 봉화대를 오늘에야 가까이 가본다.

 

전봇대에 봉화대로 가는 안내표지를 따라 마을 안쪽으로.

 

▲ 표지판을 따라 진행하다가..

 

▲ 마지막 표지판이 가리키는 이 지점에서 좌측 마을길로..

 

▲ 길모퉁이에 서있는 이정표를 따라..

 

▲ 능선에 올라서면.. 수백그루의 벚꽃이 이제 몽오리를 맺은 중이다.. 이번 일요일(31일)이면 완전 터트릴것 같다.

 

▲ 16시 33분 : 오른쪽의 봉화산성을 먼저 다녀오기로 한다.

 

▲ 봉화산성..

정상에 돌을 쌓아 만든 테뫼식 산성으로 전체길이 700m 높이 3m 폭 3.5m로 이 산성을 축조한 목적은강건너 대구방면에

위치한 신라군을 경계하기 위해서라고 하며 이 봉화산성이 무너지면 대가야 궁궐이 있는 읍내까지 바로 침공할 수있는 곳

이라 아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 봉화산 유적지..

봉화산 정상부에 위치한 봉수시설은 조선시대 제2봉수로의 간봉으로 부산 가덕도 천성보와 칠곡 각산봉수 사이 10번째에

해당하는 말응덕산(末應德山) 봉수의 연조(煙, 불을 피워 연기나 횃불을 올리던 굴뚝)와 물품을 보관하던 건물지다.

 

▲ 88낙동강교..

차타고 지나다닐때에는 올려다만 보았는데 오늘은 내려다 본다.

 

▲ 16시 41분 : 말응덕산(봉화산)봉수지.

봉화산은 지형을 살펴보면 거북이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물 위에서 나란히 마치 어디론가 가고 있는 듯한 정감어린 기이한

자연현상이며 또한 말의 힘찬 기운을 느낄수 있는 말 엉덩이를 닮았다 하여 "말응덕산" 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 눈이 힐링되는 멋진 뷰(view) 다.

 

▲ 조팝나무꽃..

 

▲ 산성 남쪽 아래에 있는 사망정(四望亭)을 보려고 내려 간다..

 

▲ 16시 41분 : 사망정(四望亭).

사망정은 높은 언덕에 있어 사방을 훤히 보여 지으진 이름이라고 하며...

조선시대에 고령과 인근 지역에서 이름을 떨쳤던 선비 7명을 기리기 위한 정자라고 한다.

고령(高靈)의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송암(松菴) 김면(金沔)..

옥산(玉山) 이기춘(李起春)의 네분 선생과 성주(星州)의 한강(寒崗) 정구(鄭逑)선생..

그리고 현풍(玄風)의 대암(大庵) 박성(朴惺)선생.. 성주군 수륜면 신파리 청휘당(晴暉堂) 이승(李承)선생등 일곱분이다.

 

▲ 사망정(四望亭) 본채.

사망정과 봉화산 일대를 "낭만공원"이라고도 한다.

 

▲ 낙강칠현시비.

만경창파욕모천(萬頃蒼波欲暮天)... 1589년 5월에 일곱 분이 개산포(開山浦)에서 강정(江亭)멍드미에서 사망정(四望亭)에

이르는 강 위에서 선유(船遊)를 하면서 ‘만경창파욕모천(萬頃滄波欲暮天’이라는시구칠자(詩句七字)로 분운(分韻)하여

각기 오칠음절구(五七音絶句)로시(詩) 한 수(首)씩 읊어 그날의 흥취(興趣)와 정황(情況)을 흡족(洽足)하게 표현하였다.

 

▲ 육일헌 이홍랑 선생의 유적비와 광산 이씨 가문의 선비들 유허비.

 

▲ 애국지사 광산 이선생 추모비..

이홍우선생 등은 임진왜란때 김면 장군과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물리쳤다고 한다..

 

▲ 사망정(四望亭)에서 바라본 고령교..

현대 건설에서 낙동강 고령교 공사는 인생 최대의 시련이자 고비였다.

그 공사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현대"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1947년 건설회사를 차린 정주영은 1953년 한국전쟁 때 폭파된 고령교(대구 달성과 경북 고령을 잇는 낙동강 다리) 복원

공사를 수주한 것이다. 하지만 전후 인플레에 따른 자재 가격 폭등, 장비 및 기술력 부족, 지형상의 악조건 등이 겹쳐 공사

가 중단 위기에 몰렸다. 거기다 장마철 홍수로 애써 박은 교각이 떠내려가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24개월의 공기를 맞추기도 힘들었고 대규모 적자는 불을 보듯 뻔했다. 회사 간부들은 모두 공사 중단 및 반납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주영은 정부 공사에서 신용을 잃을 순 없다며 강행을 결정했다.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신용은 한 번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인부들에게 줄 월급조차 없으니 자금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자동차 수리공장 땅은 물론 동생과 매제의 집을 팔고,

인맥을 총동원해 사채를 끌어들였다. 밤낮 가리지 않고 공사에 속도를 낸 결과 공기를 불과 2개월 넘기고 준공할수 있었다.

건설업계에선 기적이라고 했다. 고령교 공사에서 정주영은 6600만환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적자를 냈으나 ‘신용’이라

는 최고의 자산을 얻었다. 전화위복이었다. 이후 한강 인도교 공사까지 따낼 정도로 각종 정부 공사에서 선두 건설사로

급성장한 배경이 되었다. 지금은 고령교 외에 88고속도로 상.하행선 교량 2개.. 자동차 전용도로 교량 1개 등 총 4개의 교량

이 낙동강을 횡단하고 있다.

 

▲ 17시 08분 : 봉화대.

봉화산 전망대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봉화산 산책로와 봉수대 조형물을 조성하여 개방하고 북쪽으로 대구 화원읍과

고령군 다산면을 이어주는 "사문진대교"와 남쪽으로 대구 현풍읍과 고령군 개진면을 이어주는 "박석대교" 를 조망할 수

있고 특히 야간 풍경도 감탄을 자아내며 광주대구고속도로와 낙동강이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산책할수 있는 곳이다.

 

▲ 봉화대 내부 모습을 둘러보고 전망대로 올라 간다.

 

▲ 봉화대의 벚꽃이 만개하면...

 

▲ 낙동강과 어울려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어 낼듯 하다..

 

▲ 광주 대구 고속도로.

 

▲ 강정마을의 명품소나무..

 

▲ 17시 22분 : 봉화대 주차장..

 

▲ 수없이 지나 다니면서 한번 가봐야지 했었는데... 벚꽃이 만개하는 날 다시 와야겠다.

2024년 03월 24일(일).

용지봉(633m) : 대구시 수성구.

 

산행코스 : 수성못입구-법이산-조망바위-용지봉-조망바위-용지역.

산행시작 : 수성못입구 09시 35분.

산행종료 : 용지역 16시 20분.

전체거리 : 약 6.2km..

전체시간 : 06시간 45분.

운동시간 : 04시간 51분.

휴식시간 : 01시간 54분.

 

09 : 35  수성못입구 출발.

11 : 17  조망바위.

12 : 25  용지정자.

14 : 19  용지봉.

14 : 29  조망바위.

16 : 20  용지역.

 

▲ 흐리고 간간히 비가 내리는... 용지봉 정상의 육각정 쉼터에서

김프로님의 홍어와 묵은지에 조고문님의 수육 한점을 올려 놓은 삼합 한쌈은 가히 환상적인 조합이었고..

막걸리와 양주가 목젖을 타고 흐르는 소리는 이태백이도 부러워 할 소리였다..

열량 높은 권이사님의 꼬부랑글씨가 그려진 쵸콜렛은 행복촉진제가 되었고..

따끈한 라면 국물과 달달한 커피 한잔과 야등팀의 열정앞에 썰렁한 날씨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보다 더 좋을수 없는 야등팀의 하루였기에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하산후 뒷풀이 장소로 가는 뒷모습 조차도 행복한 모습들이다.

2024년 03월 21일(목).

동석산(219m) : 전남 진도군 지산면.

 

산행코스 : 하심동마을-미륵좌상굴-칼능선전망대-동석산-석적막산-큰산-큰애기봉-세방낙조주차장.

산행시작 : 하심동마을쉼터 11시 11분.

산행종료 : 세방낙조주차장 14시 49분.

전체거리 : 약 6.07km. .

전체시간 : 03시간 38분.

운동시간 : 03시간 29분.

휴식시간 : 00시간 08분.

누  구  랑 : 산이좋아산악회 따라서...

 

11 : 11  하심동마을 출발.

11 : 44  미륵좌상굴.

11 : 59  칼능선전망대.

12 : 13  동석산.

13 : 09  석적막산.

13 : 48  큰산.

14 : 03  큰애기봉전망대.

14 : 49  세방낙조주차장.

 

10시 33분 : 진도대교를 건너서..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과 진도군 군내면을 연결하는 다리인 진도대교는..

길이 484m, 너비 11.7m, 왕복 2차로의 한국 최초의 쌍둥이 사장교(斜張橋)이다. 1980년 착공하여 1984년 완공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으로 유명한 울돌목 해협은 조류가 거세어 당시의 국내 기술력으로는 해상구조물 시공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이에 영국 RPT사의 설계 및 감리 아래 양쪽 해안에 교대와 교각 등 하부 구조물을 설치한 한 후 콘크리트

교각 위에 높이 69m의 강재주탑을 세우고 케이블로 교량 상판을 지지하는 사장교를 건설하였다.

 

 11시 09분 : 동석산이 올려다 보이는..

 

▲ 하심동 마을 쉼터에 도착하여..

 

▲ 11시 11분 : 산행채비를 하고 출발..

 

산행 들머리에 있는 종성교회는..

산행지 입구라는 입지적 조건으로.. 전국의 산꾼 들에게는 가장 많이 알려진 교회일 것이다..

 

▲ 종성교회 입구를 지나면 여기가 공식적인 동석산 산행들머리다.

 

▲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아니한 춘래불사춘이라 했던가...

이번주 들어서 기습적으로 몰아친 꽃샘추위로 봄의 전령사 진달래도 움츠리고 생기가 없다..

 

▲ 칼날같은 나아프릿지 암릉으로 구성된 틈새바위를 지나면..

 

▲ 본격적인  암벽구간이 시작 된다.

 

▲ 처음으로 나타나는 철계단에서 좌측의 조망 좋은 바위에 올라..

 

동석산이라는 이름은 "구리 동(銅), 주석 석(錫)"자로서.. 그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 천길 단애에 매달린 소나무애개.. 격려의 눈맞춤으로 안아 준다.

 

▲ 심동저수지 너머로 돈대산의 추억과 도리산 전망대의 일품 조망이 아름다운 상.하조도가 보이고 그 뒤쪽으로는

세번을 다녀 왔어도 그 풍광이 더욱 새록새록해 지는 관매도를 떠 올려본다.

 

▲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동석산의 모습은 서남쪽의 조도에서 보면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조망을 끝내고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니..

 

▲ 지나왔던 조망바위에는 동료들이 아직도 풍광을 즐기고 있다.

 

▲ 아찔히게 수직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거칠고 위험해 보이지만 발디딤이 좋아서 난간대를 잘 잡으면 쉽게 오를수 있다.

 

▲ 오른쪽 바위 상부에 미륵좌상굴이 보인다..

 

▲ 당겨본 미륵좌상굴.. 조금후에 다녀올 것이다.

 

▲ 예전에 비하면 안전시설이 보완되어 있어서 별다른 위험성은 없다.

 

▲ 첨탑을 오른다..

우리들은 산을 보고 산을 오른다.

그러나 산이 나를 불러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산을 오르고 싶은 욕구가 솟아 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는 힘의 욕구... 그것은.. 곧.. 내가 살아있는 생명력인 것이다.

 

▲ 지나온 암릉과.. 안전계단.. 안전시설이 전혀 없었던 초창기에는 오로지 밧줄 하나에 매달려 올라 왔었다.

 

▲ 그리고.. 올라가야 할 암릉..

 

▲ 그 암릉을 배경으로.. 나도 암릉의 일부가 된다.. 사진 담아 주신분 감사합니다.

 

▲ 아래쪽의 미륵좌상굴 가는길..

 

▲ 내려와서 보니 역시나 급경사 내림이다.. 그래도 다들 잘도 내려온다..

 

▲ 오른쪽 천종사쪽으로 약100m가량 내려간 지점의 바위에 미륵좌상굴이 있어 다녀온다.

 

▲ 11시 44분 : 미륵좌상굴(일명 : 중업바위)..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암굴에 수도승이 한명 살았다고 한다.

 

이 굴에서는 신기하게도 한사람이 먹을수 있을 만큼의 쌀이 매일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수도승은 먹을 식량걱정이 없으니 탁발도 다닐 필요도 없이 늘 태평한 얼굴로 항상 기름기가 자르르 흘렀다.

동네사람들은 보릿고개마다 먹을거리가 떨어져 모두가 피골이 상접한데도 이 수도승은 탁발도 안다니면서 얼굴은

늘 기름져 있어서 동네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딜가나 궁금증은 못참는 사람들이 꼭 한두명은 있는법이다. 이동네도 그런사람이 한사람 있어서 어느날 몰래

그 스님의 동태를 살피는데... 이윽고 밥지을 시간이 되자 이 스님은 중업바위의 굴속에서 쌀을 담아 오는것이 아닌가?...

 

이 동네사람은 혼자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몰래 들어가서 그 구멍엘 가보니 쌀이 한줌밖에 나와있질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 구멍속을 후벼 팠더니 더이상 쌀은 안나오고 대신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지 않은가?....

깜짝 놀란 이사람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가다가 그 바위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후로 그 수도승도 시름시름 앓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는데.. 지금도 한 종지의 물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 미륵좌상 암굴위 전망대.

 

▲ 미륵좌상 암굴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석산 정상쪽.

 

▲ 지나온 암릉...

 

▲ 아래쪽의 천종사(千鐘寺)...

천종사(千鐘寺)라는 이름은 "세찬 바람이 거대한 바위산 양쪽 골짜기로 불어와 바위에 부딪히면 마치 천개의 종소리가

나는 것처럼 들린다."라고 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초간단 미니발판..

 

▲ 억겁의 시간 저편에서 급격하게 식어버린 화산암..

 

▲ 시간의 무정함이여~~.. 잎은 없어도 무성한 잔가지들이 파란하늘 도화지에 그림을 만들어 주던 나무였는데..

이제는 해풍에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 언젠가는 너도 쓰러지겠지..

 

▲ 동석산정상이 670m남은 지점에서 등로를 살짝 벗어나서..

 

▲ 낡은 밧줄과 링이 있는 암벽을 타고 올랐다가 다시 내려 와야 한다..

 

▲ 링을 붙잡고 기어이 올라가는 이유는... 바로.

 

▲ 동석산 하일라이트.. "칼날능선"을 보기 위함아다.. 병풍같은 바위 두께가 1m도 안되기에 지나갈수는 없다.

저기를 건너 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사람일것이다..ㅎㅎ

이곳 진도군의 119구급대에는 이런 애기도 있다고 한다. 경남 사량도의 <옥녀봉>도 험하지만.. 떨어지면 살아날 확율도

있어서 구급차가 쏜살같이 달려 가지만.. 동석산에서 떨어졌다고 하면 100% 사망이라.. 구급차가 천천히 간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동석산이 위험 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 다시.. 링이 없는쪽의 릿지를 타고 내려온다... 보기 보다 미끄럽지는 않다.

 

▲ 동석산 정상 방향으로..

 

▲ 동석산 칼날능선으로는 갈수가 없기에 왼쪽으로 우회한다.

 

▲ 동석산 칼날능선의 위용..

 

▲ 칼날능선을 병풍삼아..

 

▲ 바로가면 동석산 정상가는 길이 편안하고.. 오른쪽은 다소 품이 들어가는 전망이 좋은 길이다.. 당근 오른쪽으로..

 

▲ 칼날능선.. 조금전에 올랐던 방구돌에서 반대편으로 왔다.

 

▲ 동석산 정상이 지척이다..

 

12시 13분 : 동석산 정상인데... 이럴수가..

 

헐!~~.. 이럴수가.. 불과 3년만에 동석산 지킴이 소낭긔가 말라 버렸다.

 

▲ 2020년 8월 1일의 그날과는 너무나 다르다.. 저렇게 푸르고 싱싱했었는데..

 

▲ 가야할 석적막산과 애기봉 능선..

 

▲ 머리위에 드론이..

 

▲ 12시 21분 : 동석산 바로 아래에서.. 서해를 바라보며.. 마음점을 찍는다.

 

▲ 능선을 따라서 잘가고 있는데 조자룡같은 초병이 수하를 하며 길을 막고 가학마을 쪽으로 돌아서 가라고 한다.

 

▲ 오른쪽으로 우회 하여..

 

▲ 잠시 착한길을 따라 가다가 능선에 올라서니..

 

▲ 이번에는 장비같이 험상궂게 생긴 초병이.. 왼쪽으로 우회하라고 한다.

 

▲ 칼날능선의 위용에 버금가는 우람한 암릉이다..

 

▲ 올려다 보니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

 

▲ 암릉이 바람을 막아주어 따뜻한 우회로에 무언가 기다릴것만 같은 예감이다...

 

▲ 예감은 적중이다.. 봄처녀 "제비꽃"이 수줍은듯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둘러보아도 다른 야생화가 안보인다..

제비꽃의 꽃말은... "순진한 사랑"... "나를 생각해주오" 이다..

 

▲ 척박한 바위 꼭대기에도 생명을 이어가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 척박한 바위에서의 나무는 물한방울 이라도.. 지나가는 구름 한조각 이라도.. 모두 생명을 이어가는 중요한 것들이다.

 

▲ 바위에 코가 닿을 정도로 가파르다..

 

▲ 우회한 암릉의 뒷모습이다..

 

▲ 저 바위봉이 삼각점봉이다.. 초창기에는 저기가 동석산 정상인걸로 알았었다.

 

▲ 전에는 직등으로 암릉을타고 올라갔었는데... 일주일전에만 왔어도 올라갔을텐데..ㅎㅎ..

 

▲ 길을 걷다가 보니 혼자다...

노자(老子) 왈.. 지지불욕(知足不辱)이면.. 지지불태(知止不殆)라 했다..

"만족을 알면 모욕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라는 말이다.. 아서라 말어라 안전한 길로 가자..

 

▲ 아마도.. 동석산 전구간을 통털어서.. 발디딤이 제일 난해한 곳으로.. 여기가 제일 난코스였던 곳인데

지금은 안전발판이 설치 되어 있다...

 

12시 56분 : 삼각점봉.. 정상석은 없고 텅빈 자리를 삼각점이 외로히 지키고 있다..

동석산은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으로 새벽 동이 틀 무렵이면.. 도포를 입고 지팡이를 쥔 노승이 불공을

드리다가 사라진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동석산의 암릉이 마무리 되어가는 아쉬움인가?... 지나온 암릉길을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 가야할 석적막산과 큰애기봉을 다시 가늠해 본다..

 

▲ 언젠가 저 산봉들을 타볼려고 하다가 무산된 일이 있다..

 

▲ 동석산 삼각점봉을 지나서부터는 등산로 환경이 육산으로 바뀐다..

 

▲ 석적막산 오름길의 전망바위에서 마지막으로 동석의 암릉을 뒤돌아 본다..

 

▲ 13시 09분 : 석적막산..

 

▲ 석적막산과 동석산 암릉..

 

▲ 석적막산을 지나면서부터는 소사나무 육산길로 편안하게 이어 진다.

 

▲ "현호색".. 신비의 색깔이 아름답다..

꽃말은... "빛나는 마음".. "보물주머니".. "비밀".. "희소식" 이다.

 

▲ 동석산에서도 귀한 인연을 만났다.. "노루귀" 다..

노루귀의 꽃색은... 흰색.. 분홍색.. 보라색.. 파란색 등으로 다양하며.. 꽃색에따라 꽃말도 다르다.

흰색 노루귀의 꽃말은... " 순결" 과.. "순수함" 이다..

 

▲ 분홍색 노루귀의 꽃말은..

"애정".. "다정함".. "보살피는 사랑" 이다.

 

▲ 정말 그렇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이제막 피우기 시작하는 "산자고".. 너도 그렇다..

 

13시 30분 : 가학마을 갈림길..

 

▲ 큰산(일명.. 작은 애기봉) 오름이 장난아니게 가파르다...

 

▲ 큰산에서 바라본 큰애기봉...

 

▲ 때로는 역광의 진달래 꽃잎이 이쁘다...

 

▲ 콩자개덩굴...

 

▲ "흰색노루귀" 군락을 만난다..

 

"산자고"의 꽃말은... 가녀린 미소다..

산자고에서 자고(慈姑)는 자비로운 시어머니라는 말이다. 

이 식물이 산자고라 불리게 된 데에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홀로 삼남매를 키운 여인이 있었는데, 딸 두 명을 시집보내고 막내아들만 남았지만 하도 가난해 아무도 시집을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봄날 한 처녀가 보따리를 들고 나타났다. 물어보니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다가 아버지가 죽자

유언에 따라 그곳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 처녀를 며느리로 삼았다... 그들은 아주 행복했지만 사람들이

부러워했기 때문일까? 그만 며느리가 등창이 나고 말았다... 날로 고름이 심해졌으나 돈도 별로 없고 마땅히 의원을 찾아

갈 수도 없이 보내다가 어머니가 우연히 산에서 이 꽃을 발견해 며느리의 등창이 난 곳에 발랐더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로 이 작은 꽃을 산자고라 부르게 되었다.

 

▲ 현호색..

혼자 걷지만 혼자가 아니다.. 야생화가 덤으로 주는 선물에.. 쪼그리고 앉아서 꽃잎 가까이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이맛에

나는 어느새 자연과 하나가 되어 간다.. 꽃잎 하나마다 품고있는 작은 세상의 색깔이 너무 황홀하다.

 

▲ 13시 57분 : 전망대 갈림길..

 

▲ 14시 03분 : 큰애기봉 전망대..

큰애기봉 바로 아랫마을의 가치리(加峙里)는 한때 200여호의 큰 동리였기에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고 그 동쪽 외진 곳에

개들샘이란 유일한 공동우물이 있고 마을 앞 지척에는 원뚝이라는 포구(浦口)가 있었다.
지금은 간척지가 된 당시의 그 원뚝 포구는 진섬, 가사도, 사자도, 손가락섬, 발가락섬, 굼섬 조도 등지에서 모여든 어선

들로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어 비릿한 생선냄새와 술 익어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큰애기봉의 전설>

그런 세월의 어느 날 가치리 부잣집 정씨네 집에서 담살이(가정부)를 하던 순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우물길에 나선지 벌써 몇 번 째
 집안의 물항아리는 이미 차고 넘쳤건만, 귀신에 흘린 듯.. 총각 선원 하나가 빨래를 하는 그

우물을 들락거리는데 열 일곱 순이는 총각의 복쟁이 마술에 걸렸던 것이다 

그런 순이 맘을 벌써 간파한 총각이 불쑥 말을 건넸다.

 

"총각"ㅡ 거시기말여.. 큰애기는 참말로 이쁜디.. 이름이 머여?'
"순이"...ㅡ 근디 남자가 먼 빨래를 요로콤 많이도 헌다요?'
"총각" ..'응 나는 아부지와 단 둘이 사는디 섬에는 물이 귀하잔여ㅡ'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총각의 입에서  '순이 우리 언제 어디서 한 번 만나자 우리 아부지는 순이 같이 착하고 이쁜 며느리

를 바란당께ㅡ'... 순이는 터지기 직전의 가슴을 움추리며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때 저ㅡ만큼서 수다쟁이 각제네가 오고 있었다  '순이 어서 대답해ㅡ 누가 오고 있응께 말여'
'응 쩌ㅡ그.. 저 봉우리'.. 너무 다급한 나머지 순이는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지금의 큰애기봉을 가르켰던 것이다..

 

그 다음 날부터 순이는 나무하러 간다는 핑개로 약속 장소인 그 봉우리를 오르내리기 시작 했다
그러나 그 총각 선원은 죽었는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본래도 호리호리하던 순이의 몸매는 그리움에 날로
가을 날 억새

풀이 말라가듯 매말라 갔다.. 동네엔 들불처럼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불쌍한 순이가 귀신에 흘려 미처간다는 소문에..

파도가 허옇게 이랑지기 시작하는 늦 여름에 주인은 쓸모 없는 순이를 내어 쫓았다, 

날로 순이의 모습은 가치리에서 사라지고 그해 섣달. 이웃 마을 사냥꾼이 봉우리에 올랐다가 칠흑 같은 댕기머리에

소복을 입은 처녀가 하염 없이 섬들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왠 큰애기여ㅡ' 하며 처녀의 어깨를 흔들자 그녀는 그만 눈사람처럼 폭삭 무너지고 말더라는 것이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봉을 큰애기봉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변덕을 떠는 바다처럼 바람 같은 뱃사람

말을 철석 같이 믿었던 순이야말로...큰애기봉의 정령이요, 혼백이요, 메아리임이 분명 하다며...
수많은 등산객이 찾아와 큰애기봉의 전설을 담고 간다..

 

▲ 세방낙조 인근의 섬들에는 재미난 전설이 전해 온다..

낙조가 잘 보이는 지력산 동백사에 한 스님이 있었다고 한다...

석양 무렵, 노을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학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스님도 학들을 따라 지력산으로 날아올랐다.

그런데 수행이 부족해 학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만 바다에 추락하고 말았다. 이때 스님의 장삼(長衫) 위에 걸치는 가사가

떨어진 곳은 가사도(加沙島), 장삼이 떨어진 곳은 장삼도, 바지가 떨어진 곳은 하의도, 상의가 떨어진 곳은 상의도,

발가락이 떨어진 곳은 양덕도, 손가락이 떨어진 곳은 주지도, 심장이 떨어진 곳은 불도(佛島)가 되었다는 것이다.

 

▲ 올망졸망 고만고만한 섬들이 그림이 되어준다...

 

전망대에서 동남쪽의 여귀산..

 

▲ 하산지점인 낙조전망대를 확인하고 나서..

나 또한 시원하게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소리에서... 큰애기 순이의 흔적을 찾아 보았다 마는.. 허공에 흩어지는 애잔한

마음을 전망대에 남겨 두고 나그네는 발길을 돌린다.

 

 14시 13분 : 세방낙조전망대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서..

 

▲ 개별꽃...

꽃말은..."귀여움"이다.

 

▲ 동백숲 군락지인데 급경사 내림길이다.

 

바알갛게 멍들었다는 동백꽃은..

무슨 사연이 그리 많아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그리움으로 지새웠을꼬~.

 

▲ "분홍색 노루귀"..

 

▲ 봄까치(일명 개불알꽃).. 꽃말은..."기쁜 소식"이다..

 

▲ 임도를 가로질러.. 세방 낙조 전망대로 간다.

 

▲ 3년전 까지도 있었던 8각정이 무슨 연유로 사라졌다.

 

▲ 큰애기봉을 올려다 보니 전망대에 사람이 보인다.

 

▲ 당겨본 발가락바위..

 

▲ 손가락바위..

 

14시 49분 : 세방낙조 주차장이 나오고 오늘의 산행은 마무리 한다.

 

▲ 트랭글을 정리해 보니.. 암릉길은 암릉길인가 보다.. 평균속도가 1.7km다..

약속된 하산시간이 16시까지 인데 1시간10분 가량 일찍 내려왔어니.. 그만하면 양호한 편이다.

 

▲ 주차장 아래쪽의 세방낙조 전망대를 둘러 본다.

진도 해안도로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세방낙조 전망대" 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의 경관은 압권이다. 

이곳에서 보는 낙조는 환상적이다... 해질 무렵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일몰의 장관은 주위의 파란 하늘을 단풍보다

더 붉은빛으로 물들인다...라고 한다

 

▲ 조류의 흐름이 빠르다.. 저런곳에 빠지면 어른 장정도 속수무첵으로 빨려 간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악마의 조류라고 하는 맹골도가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곳이다..

 

▲ 윤슬이 아름다운 각흘도 저 너머에 맹골도와 세월호의 아픔이 있는 방향이다.

 

▲ 진도타워..

 

▲ 진도대교 밑의 명량해협 울돌목..

좁은 해협의 물살이 빨라서 마치 물이 우는듯 하다 해서.. <울돌목>이라 불리우며... 또한.. 울돌목은 이 충무공의 3대 해전

중의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1597년 정유재란떄 <이순신 장군>이 빠른 물살을 이용해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무찌른 역사의 현장이다..

 

16시 39분 : 진도대교 인근의 "임ㅇㅇ한정식 뷔페식당" 에서..

 

▲ 원거리 산행에서 오는 기분 좋은 피로감을 내입에 맞는 음식물로만 듬뿍 담아서 먹고 마시고 속을 풀고 달랜다.

 

▲ 산이좋아 회장님의 건배.. 산이 좋아라.. 사람이 좋아라~~..

 

작지만 암팡지고 옹골찬 동석산의 암벽을 넘어면서 스쳐간 풍광들은

용아장성의 비주얼에 버금가는 암릉 능선이었고 다도해의 일품 조망은시원한 안구정화 였기에.

세번째 오른 동석산이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다시오고 싶어지는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무엇보다.. 동석이가 내어준 야생화와의 만남은 덤으로 받은 희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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