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6월 23일(목요일)

북악산(342m) : 서울특별시 종로구.

 

트레킹코스 : 칠궁앞 - 백악정 - 만세동방 - 청운대 - 1.21소나무 - 북악산 - 창의문 - 무궁화동산.

트레킹시작 : 칠궁앞 11 48분.

트레킹종료 : 무궁화동산 13시 46분.

트레킹시간 : 1시간 58분.

 

11 : 48 칠궁앞 출발.

12 : 09 백악정.

12 : 22 만세동방.

12 : 51 청운대.

12 : 54 1.21소나무.

12 : 58 북악산정상.

13 : 22 창의문.

13 : 46 무궁화동산.

 

11시 48분 : 칠궁에서 도로를 건너 칠궁의 담장과 함께 올라 간다.

 

 담장 너머로 저경궁.. 대빈궁.. 경호궁 지붕이 보인다.

 

 인도의 블럭에 북악산 가는길의 안내를 잘하고 있다..

 

11시 54분 : 북악산 들머리 도착.

 

한양도성 안내소.. 실질적인 들머리인 셈이다.

 

등산로 표시가 붙은 철문으로.. 곳곳에 안내원이 친절하게 가이드를 하고 있다..

 

철책과 담장... 이중으로 되어 있다.

 

뉴스나.. 사진으로 보이던 북악산 방구돌이 내눈 앞에 있다..

 

인왕산이 지척이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삼청안내소를 통해 올라오는 길이다.

 

12시 09분 : 백악정.. 정자인줄 알았더니 쉼터다..

 

백악정에서 보이는.. 남산타워.. 아래 두분은 안내원들이다..

 

여기도 안내원이 상주하며.. 비소식이 있는데 우산준비가 되었냐고 묻는다.. 당연 준비다..

 

이 구간이 신규로 개방된 일방통행구간이다..

 

여기까지 신규개방구간이 끝나고.. 청와대 전망대는 좌측으로 가야 되고.. 일방통행이라 조금전의

안내소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왔던길로 올라와야 된다.

다른사람의 등산사진을 보니 청와대전망이 별로여서 통과 하고.. 만세동방으로 간다.

 

12시 22분 : 만세동방..

"만세동방 성수남극" 이라 각자 되어 있다..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의 글이라고 한다.

만세(萬世) : 만년의 세월(오랜 세월)

동방(東方) : 삼천 살을 살았다는 전설 속의 동방삭.

성수(聖壽) : 성스러운 수명(임금의 수명)

남극(南極) : 남극 하늘에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전설..

 

▲ 만세동방에서 "늦은 점찍기" 를 하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 다행히 바람없이 착하게 내리는 비여서 청운대쪽으로 고고다..

 

▲ 숙정문쪽 능선에 커다란 암반위에 소나무가 그림이다.. 비소식으로 카메라를 갖고오지 않아서 아쉽다..

 

▲ 숙정문코스 갈림길..

 

한양도성을따라 올라가는길이 짧지만 제법 가파르다..

 

비구름에 시야가 가려 조망은 없지만.. 고성에 내리는 비의 운치가 있다..

 

12시 51분 : 청운대(293m)..

 

12시 54분 : 1.21사태 소나무..

 

 

북악산 고스락을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지나온 길... 저 길로 계속가면 북한산 백운대로 갈수가 있다.

 

12시 58분 : 북악산 정상...

정상석에는 백악산이라 되어 있다...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 칭했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다고...

 

▲ 북악의 정수리 바위.. 올라서면 북한산도 보일것이고 사방이 막힘없는 조망이 압권일텐데 아쉽다..

 

창의문 하산길... 처음부터 급경사 내림이다.. 빗길에 조심조심..

 

한양도성은.. 조선 건국 초에 태조는 한양 천도를 위하여 일차적으로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다음,

1395년(태조 4) 9월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성터를 측정, 조사하게 하였다. 정도전은 백악(白岳)을 비롯하여 인왕(仁旺), 목멱(木覓), 낙산(駱山)에 올라

실측하여 사산(四山)을 연결하는 5만 9500척의 성터를 결정하였다.

 

 이듬해 1396년(태조 5) 정월부터 전국의 민간인 장정이 무려 11만 8,000명이나 동원되어

600척을 한 단위씩으로, 축성구역을 97구(區)로 나누어 정하였다.

구역마다 천자문의 자호(字號)를 표시하여 백악산 동쪽에서부터 천자(天字)로 시작하여

낙산, 남산, 인왕산을 거쳐 백악산 서쪽에 이르러 천자문의 97번째 글자인 조자(弔字)까지 구획하였다.

 

무늬가 있는 단풍담쟁이를 처음본다.

 

뒤 돌아보니 경사가 상당하고 성 밑에도 등산로가 보인다..

 

13시 22분 : 창의문...

 

자하문고개로 하산 하자 말자..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 퍼붇는다..

자하문로를 따라 경복궁까지 도보로 약30여분 걸어야 되는데 택시도 없고..

가자.. 걷자..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정종수 경사 순직비와 동상.. 1968년 1월 21일 종로경찰서에 근무중...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 31명과 교전중에 전사 하였다..

바로 옆에는 종로경찰서장이었던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도 있었는데... 신호등이 바뀌어 담지 못했다.

 

칠궁뒷길 삼거리의 북악산 들머리가 보인다.

 

칠궁뒷길 삼거리가.. 무장공비와 교전하다가 순직했던 장소다..

 

13시 46분 : 청와대 시화문 앞... 무궁화동산 정자에서 모질게 내리는 비를 피한다.

 

▲ 경복궁 안내도... 8년 만에 다시 와보는 경복궁이다..

 

13시 58분 : 신무문안에서 바라본 청와대 본관...

다행히 드세게 내리던 비가.. 비교적 착한비로 바뀐다..

 

여기는 70세가 아닌..  65세이상 무료다..~

 

광림문(廣臨門)...

광림(廣臨)은 "널리 내려다 본다" 라는 뜻이다.. 현재의 현판은 2005년 태원전 복원공사때 만들어 졌다.

 

▲ 향원정..

향원(香遠)의 뜻은 "향기(香)가 멀리(遠) 간다" 라는 뜻이며..

건립 시기를 1885년(고종 22년) 안팎으로 추정한다. 이후 과 왕실 가족들이 휴식처로 활용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도 무사하여 지금까지 남아있다.

 

▲ 열상진원샘.. 경복궁으로 흘러 드는 샘이다..

 

▲ 향원정 뒷편에 보이는 건물은.. 국립민속박물관이다.

 

고궁의 낙수..

 

▲ 만시문(萬始門).

만시(萬始) 란 만물자시(萬物資始) 에서 온 말로 “만물이 의뢰하여 비롯하다.” 란 뜻이다.

『주역』의 건괘를 설명하는 단전에서 유래한다.

“위대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의뢰하여 시작하니, 이에 하늘을 통괄한다.” 라고 하였다.

 

경회루에서 바라 본 인왕산...그리고,, 치마바위..

 

▲ 경회루(慶會樓) 국보 224호.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고쳐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때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는 왕비의 침전 뒤편에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 경회루와 북악산...

 

▲ 수정전(修政殿).. 보물 제1760호.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이던 건물로서,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재건되면서 명칭이 바뀌었다.

 

▲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는 복도 형식의 건물인 행각(行閣)이다.

 

▲ 행각에서 바라본 근정전 측면..

 

▲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경복궁은,,,1395년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조선의 도읍으로 정하고

처음 지은 궁궐로 330여 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정도전이 붙인 궁명 "경복(景福)" 은 <시경>에

"임금이여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소서(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라는 구절에서 나온

이름으로 ‘덕으로써 영원한 복을 누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867년 고종대에 중건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각의 90% 이상이 헐렸으나 1995년부터 꾸준한 복원사업을 벌여

고종 때 중건 모습의 30% 정도를 되찾았다.

 

▲ 물빠짐이 좋아서... 옛사람들의 지혜가 안보이는곳에 숨어 있다.

 

근정전에 이르는 길 좌우에는 정승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차례로 놓여 있으며,

햇빛을 가릴 때 사용하였던 고리가 앞마당에 남아 있다.

근정전은 조선 중기 이후 세련미를 잃어가던 수법을 가다듬어 완성시킨 왕궁의 위엄을 갖춘

웅장한 궁궐건축이다.

 

▲ 근정전(勤政殿) 국보223호.

만인지상의 임금님이 정사를 보시던 근정전이다.

 

근정전은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태조 3년(1394)에 지었으며, 정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하였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 다시 지었는데, 

처음 있던 건물에 비해 많이 변형하였다. 앞면 5칸·옆면 5칸 크기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여진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며

그 형태가 화려한 모습을 띠고 있다.  건물의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기둥에 훌륭한 솜씨로

12지신상을 비롯한 동물들을 조각해 놓았다.

 

임금이 다니는 길이다..

 

▲ 근정전 현판.. 철종때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이흥민"의 글씨다.

 

 용상(어좌)..

건물 안쪽은 아래·위가 트인 통층으로 뒷편 가운데에 임금의 자리인 어좌가 있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악도" 병풍을 놓았고, 위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몄다.

 

▲ 용상(어좌) 위의 천정...

 

▲ 사정전(思政殿).,, 보물 1759호

이 전(殿)은 모든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라는 뜻의 편전(便殿)으로

왕이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고 종친 대신들과 주연을 함께 하기도 하고

왕이 친림(親臨)하여 문· 무 과거를 보이기도 한 곳이다.

 

 

▲ 천추전..

경복궁의 편전인 사정전의 보조 전각으로 사정전 서쪽에 있다.

왕과 신하들이 주로 가을과 겨울에 편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편전은 평상시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의논하고 경연을 하던 곳이다.

천추(千秋)' 뜻은 직역하면 '천 년(千)의 가을(秋)'이며 '길고 오랜 세월'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오랫동안 바른 정치를 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 강령전.

조선전기 왕이 거처하며 침전으로 사용한 궁궐건물이다.

 

▲ 연생전..

강녕전의 보조 침소로 강녕전 동남쪽에 있다.

 

▲ 연길당.

의 식사를 데워 수라상에 올려 들이던 중간 부엌이다.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과 강녕전 간 거리가 꽤 있어 상을 가지고 오는 동안 음식이 식을 수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음식을 한 번 더 데울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 교태전.

왕비의 정식 침전, 즉 중궁전이다.

 

▲ 함원전..

교태전의 부속 건물이다. 이름은 "원기(元)를 간직(含)한다"라는 뜻이다.

 

▲ 우물..

 

▲ 교태전 후원의 아미산(峨嵋山)과 보물 811호인 굴뚝...

궁궐로 들어온 여인들, 한번 들어오면 살아서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궁중여인들이다.

평생을 구중궁궐에 살아야만 하는 중전을 위해 경회루 연못을 만들때 나온 흙으로 만든 화초의 꽃마당이다.

아미산은 중궁전의 가장 깊은 후원이다.

중국 산동성 박사현 이라는 곳에 있는 명산인 아미산을 만들어 중전의 시름을 덜어 주었다.

굴뚝은 교태전(交泰殿)의 구들과 연결되어 있고 십장생이 새겨져 보물 811호다.

 

▲ 다시 근정전앞으로 나와서..

 

▲ 근정문을 나간다..

 

▲ 근정문 뒤로 북악산이 보이고... 비님 오시는 고궁에 한복 아가씨들의 웃음이 발랄하다..

 

근정문(보물 812호)은..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의 정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정말 근정문 바로 앞까지 들어섰다.

근정문 앞에 있던 흥례문은 헐려 사라지고, 금천은 메워졌다.

그럼에도 근정문은 무사했고 6.25 전쟁의 화마도 무사히 비껴가 오늘날까지 옛 모습대로 남아있다.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1985년에 보물 제812호로 지정받았다.

 

▲ 흥례문도 나가고..

 

▲ 뒤 돌아 본 흥례문(사적 117호)..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1912년 철거되었다가, 문민 정부에서

옛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 10월 26일에 완공했다.

 

▲ 국립고궁박물관.

 

▲ 어좌.. 박물관에 보관중이니 이 어좌가 진품인가 보다..

 

▲ 태조 이성계의 초상.

함경도 영흥의 준원전에 보관되어 있던 이성계의 초상을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하였다.

 

 

▲ 이런 제기~... 조금더 둘러 보면 좋으련만...

승차시간이 아직 1시간 가까이 남았는데.. 비가 와서 다니지 못한 사람들이 일찍와서는

빨리 가자고 한다... 라는 메시지가 가이드로 부터 연신 날라온다.. 이래서 노털들이다..ㅠㅠ~~

 

▲ 박물관에서 바라본 경복궁...

 

▲ 안쪽에서 바라본 광화문.. 서울이 랜드마크중의 하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어면서 가장 많이 오욕의 역사로 점철된 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협생문.

광화문으로 나가지 않아도 협생문으로 해서 주차장으로 갈수가 있다..

 

▲ 다시 돌아 본 경복궁..

짧은 시간.. 많은 걸 보고 걷느라고 매우 바쁜 하루였다..

무더위에 맑은 날씨였다면 지쳤을 것이고.. 조망은 없었지만 오히려 시원해서 좋았다..

 

15시 36분 : 경복궁 주차장..

 

16시 05분 :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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