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25일(일).

소백산/금계바위 : 경북 영주시.

 

산행코스 : 산수방가든앞-금강사입구-조망바위-금계바위-독가촌-산수방가든앞.

산행시작 : 산수방가든앞  09시 45분.

산행종료 : 산수방가든앞  15시 23분.

전체거리:  약 6.8km.

전체시간 : 05시간 38분.

운동시간 : 04시간 12분.

휴식시간 : 01시간 25분.

누구하고 향기나팀.

 

09 : 45  산수방가든앞.

09 : 53  금강사입구.

11 : 38  조망바위.

12 : 03  금계바위.

14 : 04  독가촌.

15 : 23  산수방가든앞.

 

 09시 42분 : 경북 영주시 풍기읍 욱금리 산수방가든앞.

 

▲ 금계저수지 데크길은..

소백산자락길의 12자락길중에 2자락길로 삼가주차장에서 금계저수지를 경유하여 희방사역까지의 5.6km의 구간이다.

 

▲ 금강사 입구로 가는 길..

 

▲ 풍기인삼 개삼터길은 풍기인삼 최초 재배지이며.. 정감록의 제1승지인 풍기읍 금계리 일원에 조성되어 있다.

 

▲ 금강사 입구에 세워진 "법황청".

"법황청"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찾아보니..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강사를 본청으로 하여 지난 2023년 10월 22일 도솔산 금강사에서

발기인 대회를 가진 종교 단체라고 한다. 금계바위 들머리는 오른쪽 축대가 끝나는 화살표 지점에서 시작한다.

 

▲ 금계바위 들머리..

 

▲ 들머리에서 2~3분 올라가면 주능선에 닿게되고 등로는 왼쪽으로 이어진다.

 

▲ 능선길을 계속 이어가면 곰너미재와 희방사에서 올라오는 깔딱재를 경유하여 소백산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11시 20분 : 367봉.. 생각보다 많은 시그널이 걸려 있다.

 

▲ 오른쪽으로 솔숲사이로 보이는 금계바위.

 

11시 37분 : 조망바위.

 

▲ 조망바위 너머 지척으로 보이는 "금계바위"..

 

▲ 조망바위 하늘문으로 본 "금계바위".

 

▲ 아직은 청춘인 향기나팀은.. 조망바위에서 우리 생애 가장 젊은날의 하루를 화려한 퍼포먼스(performance)로 즐긴다~..

 

▲ 동남쪽으로는.. 올라왔던 능선길..

 

▲ 북서쪽으로는..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 북쪽으로는 소백산 국망봉과 달밭골..

 

▲ 원적봉아래 삼가동 방면의 곰바위..

 

▲ 당겨 본 곰바위..

 

▲ 서남쪽으로는 죽령에서 흘러내린 도솔봉능선...

 

▲ 그야말로 막힘 없이 그림이 좋은 조망바위에서 사방을 둘러보고... 다시 하늘문에서..

 

▲ 비온 뒷날의 깨끗하고 화창한 봄날의 한낮을 한동안 즐기고..

 

▲ 금계바위도 당겨 보고..

 

▲ 금계바위로 가는 길에 또다른 금계바위 조망바위로 가는길..

 

▲ 가까워진 금계바위..

 

▲ 조망바위.. 발디딤이 좋아서 올라갈수도 있지만.. 오늘은 참는다..ㅎ~.

 

▲ 바위에 올라가서 보나 여기서 보나.. 느낌의 차이만 조금 다를 뿐이다.. 여기서 보아도 멋지다.

 

▲ 금계바위 입구..

 

▲ 올라서니 작은굴이 나오고.. 위로는 밧줄을 잡고..

 

▲ 여기서 담배라도 피웠는지 꽁초가 버려져 있다... 문디.. 올라올 자격이 없는자가 올라 왔다..

 

▲ 올라서면 바로 바람문이 나오고..

 

▲ 다시 올라서면..

 

12시 03분 : 금계바위 꼭지다..

 

▲ 이곳 금계바위에도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있다.

옛날 금계바위 가운데는 많은 금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닭의 눈이 되는 부분에 두개의 보석이 박혀 금계마을을 지켰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수호신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나그네가 그것을 알고는 보석을 빼기위해 가파른 절벽을

올라갔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덮히기 시작하고 캄캄해지면서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다...

이로인해 금계바위의 일부분이 무너져 내렸고 나그네는 깔려 죽었다고 한다.

 

▲ 또한 보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런일이 있은 후 마을은 점점 더 가난해 졌다고 한다..

금계마을의 지세는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으로 정감록의 심승지중 제1승지이며 1541년 주세붕 선생이 소백산에서

자생하는 산삼종자를 채취해서 풍기읍 금계동의 임실마을에서 재배를 시작한것이 오늘날의 인삼 발원지로 명성을 알리고 있는

금계마을 이라고 한다.

 

▲ 아래쪽 바람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온 야대장님.. 오른쪽 위로 조금전에 내려온 조망바위 하늘문이 보인다.

 

▲ 당겨본 조망바위 하늘문..

 

▲ 금계바위에서 내려가는 길에 반대편 아래를 보니 또다른 바람문이 있고.. 돌아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 또다른 바람문.. 아래는 수십길 단애다.

 

▲ 바람문 틈새로 독가촌 지붕이 보인다.

 

▲ 바람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 올라왔던 곳으로 다시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살짝 에돌아가면..

 

▲ 오늘의 하일라이트.. 아찔한 단애와 만난다..

 

▲ 마주 보이는 풍혈바위..

 

▲ 야대장님의 러브스토리 담아주고..

 

▲ 뒤쪽으로 더 돌아가 보니.. 끝이다..

 

▲ 독가촌과 금계바위골.. 저곳으로 하산할 것이다.

 

▲ 돌아 가는길..

 

▲ 참으로 자연의 오묘함이다... 어찌 이런 모습이 만들어 졌는지.. 이런곳을 지나간 우리 향기나님들도 대단하다.

 

▲ 여기서 보니.. 오른쪽 바위는 피라밋이고... 왼쪽은 얼굴바위처럼 보인다.

 

▲ 자연이 만든 잔도다..

 

▲ 얼굴바위에 가있던 김프로님의 작품 1..

 

▲ 얼굴바위에서 김프로님의 작품 2..

 

▲ 얼굴바위에서 김프로님의 작품 3..

 

▲ 풍혈속 액자에 담아본 금계바위.

 

12시 41분 : 향기나팀 최고의 밥자리..

 

▲ 이런 곳에서.. 무사 하산을 위하여 건배!~..

 

13시 32분 : 풍혈이 있는 얼굴바위와..

 

▲ 금계바위 아래의 거친길은 피하고..

 

▲ 좌측의 안전한 길로 하산하면서 올려다 본 금계바위의 위용을 뒤로 하고..

 

▲ 이런 곳에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 부채바위로 가는 길목... 금계바위의 감동이 컸기에 부채바위는 통과..

 

▲ 부채바위... 반대편의 곰바위에서 보면 바위결이 부채살처럼 보여서 부채바위라고 한단다..

 

14시 03분 : 독가촌.

주인장의 모습은 없고.. 생활의 흔적은 생생하다. 아마도.. 거주는 하지 않고 출퇴근하는 직장같은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 모종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고추밭..

 

▲ 당겨본 금계바위..

 

▲ 왕래는 자주 하는듯... 길은 반듯하다.

 

▲ 낙엽갈비를 긁어 모으는 갈쿠리..

길 중간중간에 낙엽을 치운 흔적이 있다. 내고향 경남에서는 소나무 갈비를 긁어 모은다 해서 "갈비채" 라고 하였다..

 

▲ 민백미꽃..

꽃말은... "그대 곁에 있고 싶어요" 이다..

 

▲ 불두화.

꽃말은.. "마음의 평화".. "겸손".. "성스러움"이다.

꽃이 부처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불두화이며 불교적 상징성이 있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을 때 적합한 꽃이다.

 

▲ 가죽나무. 가짜 죽나무라는 뜻에서 온 이름이다.

 

▲ 최근에 사용한 듯한 지게... 입구에 있는 걸 보면.. 출근하는 독가촌이 맞다.. 올라갈때 지게를 지고 갈 것이다..

 

▲ 풍기북부초등학교 삼가분교 이정표...

 

▲ 소백산 비로봉이 보이고 약2km정도 올라가면 삼가주차장이다..

 

▲ 층층갈고리둥굴레... 처음보는 꽃이다.

 

▲ 금계저수지.

 

15시 23분 : 산수방가든 앞 산행종료...

 

▲ "사람을 살리는 산" 소백산의 또 하나의 명소이며..

십승지중에서도 최고의 길지로..연화봉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능선 중턱에 있는

수탉의 벼슬을 닮은 바위 금계바위를 다녀 왔다...

2025년 05월 21일(수).

삼칭이능선/가산 : 경북 칠곡군.

 

산행코스 : 윗산당경로당-북창저수지-두리봉-2봉-3봉-유선대-가산-가산바위-암문-여리재-남원1리정류장.

산행시작 : 윗산당경로당  10시 08분.

산행종료 : 남원1리정류  16시 08분.

전체거리:  약 10.2km.

전체시간 : 06시간 00분.

운동시간 : 04시간 24분.

휴식시간 : 01시간 35분.

누구하고 : 바우님/김더덕님.

 

10 : 08  윗산당경로당.

10 : 25  북창저수지.

11 : 38  두리봉(1봉).

12 : 01  2봉.

13 : 18  3봉.

13 : 54  유선대.

14 : 08  가산.

14 : 26  가산바위.

14 : 55  암문.

15 : 40  여리재.

16 : 08  남원1리정류장.

 

▲ 10시 04분 : 경북 칠곡군 가산면 윗산당경로당 도착.

만평로터리 만평역1정류장에서 08시 40분에 출발하는 300번농어촌버스를 타고 칠곡군 가산면 가산2리 한뜸정류장에서 하차..

 

▲ 8각정에서 산행채비를 하고..

 

▲ 북창저수지 쪽으로..

 

▲ 마을길에서 바라본.. 일명.. 삼칭이능선으로 알려져 있는 1. 2. 3봉과 가산.

 

▲ 윗산당마을 전경..

높은 산꼭대기에 높이 마당처럼 펼쳐 있으며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 볼 수 있다 하여 웃산댕(윗산당)이라고 부른다.

 

▲ 북창저수지 아래에 잘 만들어진 주차장과 데크계단이 보인다.

 

▲ 데크계단을 오르기 싫어서 배수로를 따라 올라간다.

 

 10시 25분 : 북창저수지.

 

▲ 북창저수지에서 바라 본.. 팔공산국립공원..

 

▲ 북창저수지에서 바라 본.. 북창마을..

조선조 인조 18년 군량미 보관창고로 활용하기 위해 북쪽에는 북창.. 남쪽에는 남창을 두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 북창이다...

 

▲ 가산에서 흘러내린 삼칭이 능선이 저수지의 고요한 수면에 비친 반영이 아름다운데... 잔물결이 일어서 아쉽다.

"삼칭이 능선" 은 칠곡군 가산리 윗산당 마을에서 시작하는 능선상의 봉우리 3곳을 말하며 3층계단식으로 "층"이 경상도 사투리인

"칭" 으로 바뀌어 "삼칭이능선" 이라고 부르는듯 하다.

 

▲ 한듬마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 가산산성 진남문에서 한듬마을로 가는 팔공산둘레길 7구간이다..

 

▲ 낮최고 28도.. 아침부터 여름을 방불케하는 후텁지근한 날씨에 벌써부터 배낭을 맨 등줄기로 육수가 흐른다.

 

▲ 계곡으로 접어드니 며칠전에 내린비로 시원한 계류가 청량하다.

 

▲ 첫번째 이정표에서 계류를 건너고..

 

▲ 두번째 이정표에서는 계류를 건너지 않고.. 상류에 있다는 영창대폭포를 보고 두리봉으로 가기로 했지만..

 

▲ 정확한 위치를 몰라.. 짐작만으로 찾아서 올라가다가 보니 계곡에 물이 없고 옹기조각만 흩어져 있다..

 

 물없는 폭포는 앙코없는 찐빵이다.. 찾기를 포기하고.. 화전민의 흔적이 있는 곳에서 두리봉으로 간다.

 

 누군가는 지나간듯한 희미한 흔적의 능선을 따라서 올라가다 보니..

 

 김연아가.. 아이스링크에서 두팔 벌리고 묘기를 하는 모습의 소나무다..

 

 두리봉의 누운 소나무..

 

 11시 38분 : 두리봉 정상.. 정상표지는 없다.

 

 두리봉 바로 밑의 피톤치드향이 좋은 삼칭이 조망쉼터다.. 초록은 동색이라 2봉과 3봉의 경계가 사진상으로는 모호하다.

 

 두리봉에서 2봉 오름이 만만치가 않다.

 

 12시 01분 : 삼칭이 2봉 정상..

 

 2봉을 내려와서 3봉으로 가는길의 암벽..

 

 이쁜구석은 하나도 없는 거친 바위를 지나면...

 

 10m정도 아래에 있는 석굴이 보여서 바우님과 김더덕님이 다녀온다.. 3인의 합의로 더덕굴이라 명명 하기로 한다..

 

 삼칭이 능선은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다..

 

 수십길 절벽을 우회하며 오로지 선답자들의 희미한 족적을따라 힘겹게 올라서면..

 

 아슬아슬한 절벽끝에 멋드러진 소나무가 분재처럼 자라고 있다.

 

 분재송과 계곡을 타고 오르는 한점 바람에 힘들게 오른데 대한 보상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깊은 골짜기에.. 한가로운 언덕이 있다하여.. 한뜸마을.. 군량미창고가 있다하여 북창마을.. 높은 곳이라하여 산당마을이라 했다

라는 3개 마을의 가산리에도 전원주택이 들어서면서 마을 모습은 점점.. 서구의 어느 마을처럼 바뀌어 간다.

 

 고향이 칠곡쪽이라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김더덕님.. 점점 변해가는 북창마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다시 한번 이끼길을 더듬어 3봉을 향해 가파르게 올라가니...

 

 3봉 오르기 직전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바위에 오른다..

 

 내려다 보니 아찔한 바위 협곡이다.

 

 자연이 이끼로 그린 그림도 감상하고..

 

 12시 33분 : 가산산성 북문쪽...

 

 올라온 북창저수지와 두리봉과 2봉.. 그리고 저 너머로 유례없는 대산불의 진앙지였던 의성땅이다.

 

 의성의 진산.. 금성산과 비봉산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이번 산불로 소실된 천년고찰 고운사가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곳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고..

 

 전망대를 내려서 3봉가는길의 협곡..

 

 3봉 가는 이끼길..

 

 손에 잡힐듯한 용유대와.. 삼칭이 3봉사이는 어마무시한 협곡이다.

 

 13시 19분 : 삼칭이 3봉 도착..

 

▲ 용유대.. 무협지 속의 백학을 탄 신선이 나타날것 같은 분위기다..

 

▲ 삼칭이 3봉..

 

▲ 삼칭이 3봉을 내려가는 길이 험하다.

 

▲ 슬링(sling)을 준비해온 바우님..

 

▲ 내려온 3봉 바위 절벽길과..

 

▲ 내려와서 올려다본 삼칭이 3봉..

 

▲ 가산 오름길의 전망대에서..

 

▲ 다시 돌아다 보이는 삼칭이 3봉..

 

▲ 붉은병꽃나무꽃..

꽃말은... "전설" 이다..

 

▲ 가산산성.

 

▲ 가산산성 북문가는길..

 

 13시 54분 : 유선대.

 

▲ 유선대 전망대.

 

▲ 건너편의 용바위..

 

▲ 장대터는.. 가산의 해발 901m 정상부에 있다.

장대는 돌과 흙으로 쌓아 다진 부지에 정면 5칸, 측면인 -자형으로 지은 서향 건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춧돌 13개가 확인되었고

가로 길이는 10m에 이른다. 가운데에 중심이 되는 칸의 기둥의 간격을 넓게하여 조망이 쉽도록 하였고.. 건물 앞에는 빈 공간을

두었다. 이 건물이 세워지기 전후에 조성된 다른 건물의 기단.. 아궁이.. 줄고래 등이 중복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가산산성이 지어진 시기를 추정 할 수 있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명문기와.. 전돌.. 자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장대터는 발굴

조사 후 흙으로 덮어 보존하였다.

 

 14시 08분 : 가산 정상석.

가산산성(架山山城)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잇따라 외침을 받은 후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높이 901m의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10여km에 이르는 내·중·외성을 축조하였는데.. 현재 4개의 문터와 암문· 수구문터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내.. 중..외성은 시대에 따라 연차적으로 축성되었는데.. 내성은 1640년(인조 18)에 관찰사 이명웅(李命雄)의 장계로 축성하기 시작

하여 8년간의 공사를 거쳐 1648년에 완성하였다... 이후 숙종 26년(1700)에 외성이 완성되었고, 영조 17년(1741)에 관찰사 정익하

(鄭益河)의 장계가 윤허됨에 따라 중성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 가산바위로..

 

 14시 17분 : 가산산성 중문..

 

 14시 26분 : 가산바위 반석.

바위 위는 약 100여평의 평지로 되어 있고 사방의 조망이 막힘이 없다.

 

▲ 가산바위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유학산..

유학산과 가산 사이가 한국 전쟁때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를 벌렸던 다부동이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지만 몇년전 가산산성일대에서 6.25 전사자들의 유골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뒤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쌓았지만..실제로는 한국전쟁 때 국군과 인민군의 치열한 교전지가

됐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 가산바위의 전설이 어려 있는 바위혈.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 도선대사가 지기(地氣)를 다스리려고 바위 구멍안에 쇠로 만든 소와 말의 형상을 묻었다고 한다.

그후 조선시대 관찰사 이명웅이 성을 쌓으면서 메워버렸다고 한다.

 

▲ 가산바위 석각.. "반암".

해서체로 쓰여진 소반 <반 : 盤> 바위 <암 : 巖>자  "반암"<盤巖>이다...

 

▲ 가산바위 석각.. "가암"

전서체"<篆書體>로 쓰여진 시렁 <가 : 架> .. 바위 <암 : 巖>자다.. 글자 옆에 갑진서(甲辰書)라는 글자도 보인다.

 

▲ 가산산성 개미들의 대반란인지.. 모두 밖으로 나와서 꼬물거린다..

 

▲ 으아리..

꽃말은... "사랑의 고백" 이다..

 

 14시 55분 : 가산산성  암문에서 여리재로..

 

 15시 40분 : 여리재 하산날머리..

 

▲ 국립공원이 되면서 처음보는 시설물이 많이 보인다.

 

▲ 여리재는 과거 보부상들이 다니던 고개 였던가 보다..

 

▲ 여리재는 칠곡군 동명면 구간에서 학명리 득명마을과 그 동쪽 남원리를 잇는 고개이다.

"여리재" 의 본명은 "열재"라 했다. 우리 음보에 맞춰 발음하려다 보니 "열이재"가 되고 "여리재"가 됐다는 뜻이라고 한다.

 

▲ 여리재에서 도로를 따라 남원1리로 내려간다.

 

▲ 남원1리의 과거 자연부락의 이름이 "헌방마을"이다..

뒷산 일부가 철분 섞인 물로 색깔이 붉은데 임진왜란때 이여송과 김덕령 장군이 가산 바위에서 천기를 보고 있으니.. 남쪽에 오색

구름이 날아와 이여송과 김덕령에게 왜장이 타고온 구름을 가르쳐주었다. 김장군은 양겨드랑이의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날아가

왜장의 목을 베었다. 그피가 흘러 가산산성과 헌방에 떨어저 뻘겋고, 시체는 헌방아 같이 떨어졌다고 해서 헌방이라고 이름지었다.

 

▲ 16시 08분 : 남원1리 정류장 산행 종료...

마침.. 타이밍이 절묘하게 16시 15분에 출발하는 칠곡3번 버스를 타고 동명면으로 가서 돼지국밥으로 하산식을 하고 해산..

527번을 타고 태전삼거리2 에서 708번으로 환승하여 귀가..

 

▲ 북창저수지에서 가산산성 북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산사태로 유실되어서 길찾기가 어려워 등산로 정비를 해야 될것 같았고.

삼칭이능선길도 산꾼들이 잘 다니지 않아서 인지 거의 잊혀져 가는 길이 되어 가는것 같았다.

2025년 05월 15일(목).

백두대간수목원 / 문수산 : 경북 봉화군.

 

산행코스 : 국립백두대간수목원-방문자센터-트램역-호랑이역-호랑이숲-수목원주차장-주실령-예배령-문수산-축서사-주차장.

산행시작 : 국립백두대간수목원  10시 46분.

산행종료 : 축서사대형주차장  16시 34분.

전체거리: 수목원 약 6.3km / 문수산 8.6km.

전체시간 : 05시간 48분.

운동시간 : 04시간 46분.

휴식시간 : 01시간 02분.

누구하고 산이좋아산악회.

 

10 : 46  백두대간수목원.

10 : 48  방문자센터.

10 : 57  트램역.

11 : 21  호랑이역.

11 : 25  호랑이숲.

12 : 20  수목원주차장.

13 : 09  주실령.

14 : 16  예배령.

15 : 16  문수산.

16 : 06  축서사.

16 : 34  축서사대형주차장.

 

 10시 46분 :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체규모 약 5,179ha(15백만평)로 아시아에서는 최대이며.. 전 세계에서도 남아공 국립한탐식물원(6,229ha)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보전 가치가 높은 식물자원과 전시원, 백두대간의 상징 동물인

백두산호랑이와 세계 최초의 야생 식물종자 영구 저장시설인 시드볼트(Seed Vault : 종자은행)를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

의 수목원이다.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1,400㎞의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자생식물 33%가 서식하고 있는 중요 생태축이다.

 

그중 특산식물 162종(45%), 희귀 식물 326종(57.1%)가 있으며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증진시켜 대자연과 인간의 풍요로운 상생

을 이끌고자 한다. 이 외에도 산림생물자원 및 봉화군 향토생물자원의 산업화 연구를 통한 지역경제 개발 등에 기여하고 있다.

 

▲ 방문자 센터.

 

▲ 입장료 매표소.

어른 개인 5000원.. 20인 이상 단체 4000원.

청소년 개인 4000원.. 20인 이상 단체 3000원.

어린이 개인 3000원.. 20인 이상 단체 2000원.

무료대상자.. 6세이하 65세 이상.. 기타 장애인 및 유공자..

65세 이상은 신분증 제시후 입장권을 발급 받아야 된다.

 

▲ 봉화 무릉화원은...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꽃 축제로, "백두대간 봉자페스티벌" 행사가 열리고 있다.

"봉자"는 봉화 자생꽃 페스티벌의 줄임말로, 이 축제는 지역에서 재배된 자생식물을 주제로 다양한 전시와 체험을 할수 있다...

 

▲ 발급받은 티켓으로 체크인후 수목원 입장..

 

▲ 트램(tram)역..

 

▲ 씨앗 무료배부..

방명록에 서명하면 씨앗을 나누어 준다.. 나도 서명후 "스위트 바질" 선택..

 

▲ 트램(tram)편도요금 2000원은 산이좋아산악회에서 지원..

 

11시 06분 : 트램(tram)출발..

 

▲ 출발에 앞서 수목원 안내도를 보면..

트램(tram)을 타고 호랑이숲 근처에 있는 상부역까지 올라가서 호랑이숲의 백두호랑이를 보고 걸어서 내려올 것이다.

 

11시 21분 : 트램(tram) 상부역도착. 약 15분 소요..

 

호랑이숲.. 백두호랑이를 볼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일반동물원과는 달리 넓은 자연공간 그대로의 환경에서 호랑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현재 백두대간수목원에서 관리하는 백두산호랑이는 세계적으로도 500마리 이하로 남아 있는 희귀종들로 100여년 전에 사라진

멸종 위기종으로 개체수 보호를 위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한다.

 

 이곳에서 관리하고 있는 호랑이는 총 6마리로 "한청".. "우리".. "한".. "도".. "무궁".. "태범"이라고 한다.

 

 두마리씩 번갈아 가며 나온다고 하며.. 해설사의 말로는 이름이 "한"이라 했고 다른 한마리는 자세히 못들었다..ㅎ~..

 

 가끔은 포효하는 모습도 보여 준다는데.. 오늘은 착한 녀석들인지...

 

 호랑이의 포효소리는 산천이 울리는 느낌이라는데.. 아쉽게도 어슬렁거리다가  돌아 선다.

 

 오늘따라 순해빠진 호랭이보다 산이좋아 회장님이 더 멋집니다..

 

 순간포착..

 

 산딸나무..

 

전설에 의하면.. 산딸나무는 "예수 그리스도" 께서 못박히셨다는 나무다.

예수께서는 산딸나무를 측은히 여기시고 더 이상 못박는 형주로 사용되지 않도록 그 나무가 작아지게 하셨고,

꽃받침에는 예수의 손에 못이 박힌 자국이 나타나게 하셨다는 것이다.

 

▲ 가을연못..이라 이름지어진 걸 보면.. 연못에 비치는 단풍의 반영이 아름다운 모양이다.

 

▲ 설악산 귀때기청봉에서 만났던 백당나무꽃 같은데... 아리송하다..

 

▲ 정향나무..

꽃말은... "위엄" 이다.

 

 금낭화..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이다.

 

도깨비 부채..

1997년에 산림청이 선정한 멸종위기 식물이다...

 

 제목... "첩첩산중"...

 

12시 20분 :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투어를 마친후 수목원주차장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고...

 

 13시 09분 : 봉화군 춘양면에서 물야면으로 넘어가는 주실령에 올라서니.. 아랫마을에서 곰탕을 끓이는지 뽀오얀 김이 온산을

휘젓고 다닌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면서 세종대왕 나신날이다.. 아마도...아랫마을 생달에서 스승의 은혜와 세종대왕을 기리기 위해

물좋은 오전약수로 진하게 끓였는지 안개구름이 뽀얗게 우러나왔다.

 

▲ "B팀" 은.. 백두대간상의 옥석산과 박달령으로 가고.. "A팀"은 20m정도 뒤쪽에 있는 문수산 들머리로 간다.

 

▲ 주실령의 유래는... 산림이 울창하고 다래와 머루가 많다고 해서 주실령이라하고, 또 다른 설은 술집 주인이 이곳 고개를 넘어서

도망갔다 고 해서 주실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주실령은... 동서트레일 전체 55구간중 봉화군 지역을 지나는 47구간인 호랑이길과 외씨버선길 10구간이 교차하는 고개다.

동서트레일은 경북 울진에서 충남 태안까지 5개 시..도, 21개 시..군, 87개 읍..면의 239개 마을에 849㎞를 연결하는 숲길이다.

 

▲ 또한.. 주실령은.. 외씨버선길 10구간인 약수탕길로 조선 제일 약수라는 두내약수탕과 오전약수탕을 지나 옛 보부상들이 지나

다녔던 길을 따라 강원도로 넘어가는 준비를 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군이 모여

만든 이 4색(色) 13길이 합쳐지면서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과 같다하여 외씨버선길로 불려지게 되었다.

 

13시 12분 : 문수산 들머리 데크계단..

오후부터는 그냥 구름이 많은 흐린날씨라고 예보 되어 있다. 비는 오지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문수산 5.6km의 첫발을 올린다.

 

▲ 문수 지맥(文殊枝脈)은...낙동강의 서쪽과 내성천(乃城川)의 동쪽을 흐르는 산줄기로, 백두대간 박달령과 도래기재 사이에 솟은

옥돌봉(1,244m)에서 남으로 갈래친 산줄기는 문수산(文殊山 1,207.6m)으로 내려와 봉화군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명호의

만리산(791.6m), 도산의 용두산(665m)을 거쳐 녹전의 봉수산(569.6m), 북후의 불로봉(482m)으로 이어진 뒤 안동의 조운산

(朝雲山 635m)을 지나 안동 학가산(鶴駕山 874m)에 이른후 내성천에 합수하며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14.5km의 산줄기이다.

 

▲ 고도를 높여 갈수록 가시거리는 50m내외로 몽환적이다.

 

▲ 민백미..

꽃말은... "그대 곁에 있고 싶어요" 이다..

 

▲ 강원도 정선의 두위봉 철쭉이 생각난다.

 

▲ 각시붓꽃..

꽃말은... "기쁜소식"이다..

 

▲ 굴 세개가 나란히 있다.. 토끼가 버리고 간 토끼굴 같다.. 토끼굴이건.. 아니건.. 토끼굴에 대해서 한번 언급하고 가자..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개 판다는 말이다..

토끼가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은 숨을 굴을 셋이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위험을 대비해야 함을 깨닫게 해주는

고사성어다. 중국의 사기(史記)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그 내용을 인용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전국시대 말엽.. 제(齊)나라의 재상인 <맹상군(孟嘗君)>과 그 집의 식객으로 있었던 <풍훤>이라는 사람과의 있었던 일을 배경으로

한다. <맹상군(孟嘗君)>은 설읍(薛邑)이라는 도시에 1만호를 다스리며.. 집안에는 항상 수천명의 식객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제나라의 재상 <맹상군>으로부터 설(薛)땅의 차용금을 거두어 오라는 명령을 받은<풍훤>은 설(薛)까지 수레를 몰고가 현지의 관리

들을 시켜 부채가 있는 자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모은 후, 그 부채의 증서들을 한자리에 모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설(薛)의 백성들은 이 일을 보고 매우 기뻐했으나 맹상군은 매우 못마땅 해 하였는데.. <풍훤>은 맹상군에게 "당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은의(恩義)올시다. 차용증서를 태워버리고 그 대신 당신을 위해 은의(恩義)를 사왔습니다." 라고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맹상군>이 제나라 민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 영지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설(薛)땅

사람들은 백리 앞까지 마중을 나와 그를 따뜻이 맞이했다. 이것이<풍훤>이 <맹상군>을 위해 마련한 첫 번째 굴이었고, <맹상군>은

그때서야 <풍훤>의 의도를 이해했다. 이때, 맹상군이 재상에서 물러나자 수천명의 식객도 떠나고.. 오직<풍훤>만이 곁에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풍훤>은 위나라의 혜왕(惠王)에게 <맹상군>을 재상으로 맞으면 부국강병을 이룰 것이라고 설득하여, 위나라는 맹상군을

맞이하기 위해 황금 천금과 수레 백량을 세 번이나 보냈으나 맹상군은 풍훤이 미리 알려준 책략대로 위나라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소문을 듣고 민왕은 두려움을 느껴 사신을 보내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재상으로 임명하였다. 이것이 두 번째의 굴이

었다.

 

<풍훤>은 설(薛)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도록 <맹상군>에게 건의하여 세움으로써,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민왕도 감히 그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므로 세 번째 굴이 되었다. 이리하여<맹상군>은 재상에 머문 수 십년 동안 아무런 화도

입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풍훤>이.. <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의 숨을 굴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작금의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진정한 리더(leader)를 선출하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숨막하게 돌아가는 국제사회 틈바구니에서 우리 국민들이 안락하게 살수있는 세가지 숨을 굴을 마련해 줄 리더는 누구일까?..

 

▲ 수 많은 인연의 발자욱들이 만들어 놓은 기분 좋은 문수지맥길이다.

 

숲은 신체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자연적으로 치유시키는 데 가장 좋은 장소로, 휴먼(Human) 건강증진센터라고 할 수 있다.

숲을 바라만 보아도, 숲 속에서 서있는 것만으로.. 앉아있는 것만으로, 아니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을 편안

하게 해 주는 곳이 숲이다. -- 성기홍 -- <자연종합의학연구원 교수·한국워킹협회 부회장>...

 

▲ 단풍취 나물.. 깊은 산이라서 그런지.. 키는 커도 부더럽다.

 

14시 16분 : 예배령..

 

▲ 설명문을 보기전에는 박해를 피해 산골로 숨어 들었던 천주교인들과 관계가 있나 했었는데 아니다..

옥의 티라면.. 예배고개라고 하면 될것을 굳이 예배령고개라고 한 것은 역전앞이나 똑같다.. 한자를 우선숭배하던 시대의 산물이다.

 

▲ 임도.. 다시 한번.. 국가의 소중한 자원인 삼림을 관리하고 보호하는데는 임도의 역할이 크다.. 서구 유럽의 울창한 숲은 임도가

잘되어 있어서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생한 경북 의성 산불에서도 임도가 없어서 피해도 더 컸고.. 진화하는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14시 46분 : 촉촉한 낙엽은 아프다는 소리도 못내고..세상의 고요함.. 운무속의 수채화 같은 길을 1시간 20분정도 걸었을까..

 

▲ 문수산 1.1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반갑다.

 

▲ 내가 원했던 문수산의 그림은 아니었지만... 걷는 내내 굴곡진 숲은 짙은 운무에 갇혀 매혹적인 풍경의 연출이었다.

 

▲ 축서사 탈출로를 지나서 부터는..

 

▲ 문수산 마지막 오름인듯한 목계단을 올라서니..

 

▲ 육산에서 보기 드문 방구돌이 나타나고..

 

▲ 운무속에 좀비같은 바위가 보이는 곳으로.. 샛길이 보여서 찾아가 본다..

 

▲ 그래도 아직은.. 바위길이 좋아서..

 

좀비바위 위쪽에 올라서니 깎아지른 절벽이다..

 

15시 16분 : 문수산에 도착..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문수산은 오랜 세월에 걸쳐 고관대작과 노승성불이 난다는 전설이 있으며 문수산 아래 ''축서사''가 지닌터는

독수리가 짐승을 낚아채는 형국이어서 축서사로 명명했고 독수리 부리의 날카로움과 불교의 대승보살 중.. 지혜를 자랑한다는 문수

보살을 함께 일컬어 문수산이라 불리어 졌다고 한다.

 

문수산 삼각점.

쉴곳도 그렇고.. 조망도 그렇고.. 인증만 하고 주저없이 하산이다.

 

▲ 문수산과 마주보이는 옥돌봉에 600년된 철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문수산 철쭉도 3~400년은 되어 보인다.

 

▲ 문수산 내림 능선은 암릉으로 되어 있어서...

 

우회하는 길도 만만치 않게 가파르고..

 

 물기있는 바위는 미끄럽고..

 

 낙엽길은 마사토와 진득거린다.. 조심조심이다.

 

지금쯤이면 들려와야 할 5월의 새.. 검은등뻐꾸기.. "홀딱벗고"새의 애잔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날씨 탓인가?..

 

 문수산 정상에서 30여분을 내려오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무덤이 나오고.. 하산길은 오른쪽이다.

 

 초록초록한 사초길이 눈이 시원해 진다.

 

드디어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 온다.. 홀딱벗고~.. 홀딱벗고~.. 홀딱벗고~..

"홀딱 벗고새" 의 애잔한 여운의 노래소리가 들린다.

 

검은등뻐꾸기..

러시아 동남부에서 인도, 네팔, 중국, 한국에서 번식하고, 동남아시아에서 월동한다.

 

<검은등뻐꾸기>라는 새인데 지저귀는 소리가 마치.. "홀딱 벗고!~" 처럼 들린다고 해서 얻어진 별명이<홀딱 벗고 새>이다.

공부는 하지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환생하였다는 전설의 새이다.

원성스님의 글. "홀딱 벗고 새의 전설" 

홀딱 벗고 마음을 가다듬어라.

홀딱 벗고 아상도 던져 버리고.

홀딱 벗고 망상도 지워 버리고.

홀딱 벗고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홀딱 벗고 정신차려라.

홀딱 벗고 열심히 공부하거라.

홀딱 벗고 반드시 성불해야 해.

홀딱 벗고 나처럼 되지 말고.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해마다 5월이면 암컷을 찾는 구애(求愛)의 소리다..

신기하게도 6월이면 사라진다...

 

 문수산 축서사 인공 이끼폭포..

 

 석굴 같은데..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위쪽으로는 참선중이므로 발길을 돌려 달라는 안내문..

 

 축서사 보광전..

 

▲ 축서사 보광전..

석조비로자나불 좌상 및 목조광배(보물 995호)

 

이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불상높이가 108cm, 대좌높이가 96cm로 867년에 제작하였는데 동시에 제작한 석조광배는 파손되어

일부만 남아있고 현재 불상뒤에 안치된 목조광배는 1730년에 제작한 것이다.

 

축서사 괘불탱(보물 제1379호).

 

보광전 석등(경상북도 문화재 158호)..

 

 축서사 대웅전..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673년(문무왕 13) 의상(義湘)이 창건했다.

당시 인근 지림사(智林寺 : 지금의 水月庵)의 주지가 어느 날 밤 산 쪽에서 서광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가 의상에게

이를 고하고 함께 산에 올라가 보니 비로자나불이 광채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의상은 이곳에 축서사를 짓고 이 불상을 모셨

다고 한다. 867년(경문왕 7)에 부처님 사리 10과를 얻어 부처님 사리탑을 조성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하고 왼쪽으로는 문수 보살상, 오른쪽에는 관세음 보살상을 모셨다.

 

 삼존불.

 

 대웅전에서 바라본 사리보탑.. 절묘한 대칭구도다.

 

경북 영주 부석사와 봉화 축서사는 흔히 "형제 사찰"로 불리며... 두 사찰 모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의상대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축서사를 짓고 나서 3년 뒤 영주 부석사를 지었다고 한다.

 

 사리보탑 보궁.

 

 선열당... 24시간 개방되어 있는 대중 선방이다.

 

 심검당... 종무소..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5층사리탑과 주차장 사이의 계단에 위치하고 있는 보탑성전은 사리탑 쪽으로 대형 유리창을 만들어

사리탑과 대웅전을 향해 기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리보궁 첨탑꼭대기에 보기 드문 산까치가 앉아 있다.

 

안양원(安養院).

 

▲ 범종각.

우주의 근원, 진리의 소리를 내는 것이 범종이다. 마음으로 진리의 소리를 들으며 번뇌를 없애고 지혜를 일으켜 중생의 고통을 벗어

나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하는 정화된 마음이다.

 

 공양간..

 

 축서사 보탑성전.

 

축서사에서 바라본 봉화군 물야면 방향..

사찰은 서향을 하고 있는데다 앞이 탁 트여 저녁노을이 아름답다고 한다.

 

문수산 기슭의 취서사에서 문수보살처럼 지혜로운 이가 이땅의 새로운 리더가 선출되기를 간절히 빌며...

독수리(취:鷲)도 잠시 깃들어 쉰다(서:捿)는.. 축서사의 산문을 나선다..

 

 문수산의 운무..

자욱한 운무로 내림길이 다소 거칠었지만.. 지금 올려다 보니.. 또 다른 추억이 되었다.

 

16시 34분 : 축서사 대형버스주차장에서 산행 종료..

 

램블러를 정리해 보니.. 8.6km를 평균속도 2.6km로 주파.. 한마디로 문수산 산행길이 비교적 평탄했다는 얘기다.

 

18시 30분 : 봉화군 봉성면의 다덕약수관광지..

 

 닭백숙...

 

가 본다 하면서도 가보지 못했던 백두대간수목원..

오늘따라 심드렁하게 어슬렁거리기만 했던 백두산호랑이 였지만..

한번쯤은 와볼만한 곳이었고.. 문수산 길이 몽환적인 분위기였기에..

감성은 더욱 풍성했던 하루였다..

 

그리고.. 내가 사찰을 찾는 이유는..

선과 선이 만나는 아름다운 곡선의 미를 보기 위함이다..

 

불자가 아님에도 그렇게 만난.. 축서사의 절묘한 가람배치는..

완전.. 힐링 대박이었다.

2025년 05월 05일(월).

삼정산 : 경남 함양군.

 

산행코스 : 음정마을정류장-영원사-영원령-벌바위(와운카페)-빗기재-삼정산-약수암-실상사-공영주차장.

산행시작 : 음정마을정류장  08시 37분.

산행종료 : 백일공영주차장  15시 38분.

전체거리 : 약 14.4km.

전체시간 : 07시간 21분.

운동시간 : 06시간 17분.

휴식시간 : 01시간 03분.

누구하고드림산악회(정명님).

 

08 : 37  음정마을정류장.

08 : 49  영원사골 입구.

09 : 34  도솔암갈림길.

09 : 34  영원사.

11 : 13  영원령.

11 : 21  벌바위(와운카페).

12 : 34  빗기재.

13 : 21  삼정산.

15 : 11  약수암.

15 : 51  실상사.

15 : 38  공영주차장.

 

 07시 40분 : 함양산삼골 만남의 광장에서 조식..

 

오늘은 어린이날이면서 부처님 오신날이다..

대구드림에서 삼정산 7암자순례길을 간다기에 불자는 아니지만.. 30여년전의 실상사에서 영원사로 내려왔던 기억이 나서 신청을

하고 반월당에서 탑승하였는데.. 이런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1. 3주의 목요일에 산대장직을 맡고 있는 정명님이 타고 있다.

 

좌석도 같이 동석하고.. 일정을 물으니 영원사에서 108배를 하고 요즘 산꾼들 사이에서 핫하게 회자되는 벌바위(와운카페)를 찾아

보고 삼정능선을 경유하여 실상사로 갈 것이라고 한다. 어차피 불자도 이닌터라.. 이렇게 만난 인연에 충실하고자 따라 붙이겠다고

하니 흔쾌히 오케이다..

 

 08시 33분 : 음정마을 정류장의 벽소령길 입구 빗돌..

 

음지말이라고도 부르는 음정(陰丁)마을은 음지정쟁이라고도 부르며.. 음지에 위치한 집단촌으로 취락을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7암자 순례자들은 도솔암으로 가기위해 음정마을을 경유하는 길로 가고.. 우리는 영원사로 가기위해 양정마을 방향으로 간다.

 

 양정마을 입구에서 영원사길로...

양지말이라고 부르는 양정(陽丁)마을은 양지정쟁(陽地停莊)이라고도 부른다. 장(莊)은 고려시대에 특수한 행정구역인데, 고려때

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찰은 농토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승려가 아닌 주민들이 전답을 소작으로 경작하여 세미를

바치며 어렵게 생활해 왔다


삼정은 영원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어서 서산(西山), 청매(靑梅), 사명(四溟), 포광(包光)등의 대사들이 수도하였던 큰 절이었다.

따라서 부자절 이었기에 절의 혜택을 입고 생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집단촌이 양지정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오전은 쾌청.. 오후에는 구름이 많아지고 흐려지면서 늦은 오후부터 비소식이 있다.

 

 직진하면 영원사 임도를 따라 가는 길이고.. 왼쪽은 계곡을 경유하는 길이다..

 

▲ 혼자 보다는 둘.. 뜻하지 않았던 인연에 감사한 길이다..

 

09시 31분 : 계곡길에서 임도로 올라서게 되고..

 

 임도를 따라 3~4분이면...

 

09시 34분 : 도솔암 갈림길.. 오른쪽 화살표는 영원령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올려다 보니 산채처럼 보여진다.

 

 정명님은 108배를 올리기 위해 법당으로 들어가고.. 나는 기다림의 수행(?)..ㅎㅎ~..

 

 삼영전.

 

▲ 산령각..

 

▲ 내용은.. 이곳 출신인 백초월 스님이 독립운동가로 참여하셨다는 기록이다.

 

▲ 영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고...신라 진덕여왕(재위 647∼645)때 영원(靈源)이 창건하였다.

 

▲ 영원사 유래..

절 이름은 창건자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2가지 창건 설화가 전한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영원이 범어사에서 수행하다가 욕심 많은 스승을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가 10년 후에 다시 돌아와 보니 스승은

흑구렁이로 변해 있었다. 영원은 불쌍한 스승의 영혼을 인도하여 지리산으로 돌아가다가 만난 한 부부에게 열 달 후 아들이 태어 날

것이니 7세가 되거든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하였다. 영원은 이후 절을 짓기 시작하여 7년 만에 완성하였고, 그곳으로찾아온 동자를

제자로 삼았다. 그는 동자를 방 안에 가두고 문에 작은 구멍을 낸 후 그 구멍으로 황소가 들어올 때까지 열심히 수행하라고 하였다.

훗날 동자는 문구멍으로 황소가 뛰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 영원사 유래...

다른 하나는 영원이 이곳에서 8년간이나 수도하였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다른 곳으로 가려고 산을 내려가는데.. 한 노인이 물도 

없는 산에서 낚시를 하면서 영원을 향하여 혼잣말로 8년간 낚시를 했는데 아직 고기를 낚지 못하였다. 그러나 2년만 있으면 큰 고기

를 낚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영원이 이 말을 듣고 다시 2년간 더 수도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절을 지었는데..

그것이 영원사였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그 노인을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수행처로 이름나 고승 109명이 안거하였다고 한다.

 

무량수전은 불교에서 아미타불을 모시는 전각이며... "무량수(無量壽)" 는 "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뜻이다..

 

 불제자가 아니다 보니.. 사찰에서 공양 받는게 매우 쑥스럽다.. 한데 젊은스님이 드시고 갈래요? 하고 먼저 묻는다..

얼른 예~~라고 답하자 안에서 바로 나온다~..

 

 처음 받았을때 찍을껄.. 잘 비비면 맛깔스럽게 보일까 했더니.. 먹다가 찍은것 처럼 보인다..ㅎ.. 부처님 잘 먹었습니다..

 

 깨끗한 물에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깨끗하게 담아놓았다..

 

 주변의 기이한 나무도 보고..

 

 상무주암으로 가는길목도 확인하고 나니.. 108배를 마친 정명님이 나온다..

 

 빗기재 방향이 아닌 영원령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10시 15분 : 영원사 식수공급탱크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삼정산 주능선을 향해 지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름길에 하늘을 보니 구름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10시 58분 : 삼정산 주능선에 도착하여 좌측 영원령으로..

 

 11시 13분 : 삼정산 주능선상의 영원령에 도착..

 

남쪽으로 영원령 능선 끝지점에 우뚝 솟은 별바위등을 따라가면 지리산 주능선을 만나는 삼각고지에 닿게 된다.

 

몸을 좌측으로 살짝 돌리면 동쪽 방향에 지리산 천왕봉이다.

 

 영원령에서 조망을 마치고 능선을 따라 2~3분 가량 진행하면 서쪽으로 벌바위로 가는 길이 뚜렷하게 보이고 이어서 바위길이다..

 

 벌바위 뒷쪽 몸통.. 바위 위쪽은 다시 돌아갈때 올라가 보기로 한다.

 

 벌바위(와운카페)로 가는 바위 협문.. 바닥에 위험한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어서 발디딤이 좋게 나무를 걸쳐 놓았다.

 

 바위 협문에서 위를 보면 공기돌이 박혀 있다.

 

 두번째 바위문을 나오면..

 

 오른쪽에는 위압감을 주는 직벽바위가 수직으로 서있고..

 

11시 21분 : 벌바위(와운카페) 최고의 명품 천년송이다...

와운카페라고 작명한 뜻은 모르겠지만 최고의 풍경맛집임에는 부인할수가 없다.. 정명님이 따라주는 커피맛이 일품이다.

 

▲ 이 자리를 "와인카페" 라고 할것 같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구름도 누워간다는 와운마을이 바로 아래 이고 여기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좌측(동쪽)의 지리산 정상

으로 솟아 오르는 일출을 볼수 있고 서쪽(만복대)로 넘어가는 일몰이 장관일것 같다..

 

▲ 벌바위를 돌아서 가보니..

 

▲ 수십길 절벽에 푸른 노송이 자태를 뽐내고 그 사이로 안전하게 갈수 있는 길도 있다.

 

▲ 정명님 덕분에 오직 나만을 위한 와운카페의 주인이 되어 본다.

 

▲ 3~4분 정도 아래쪽에 있는 조망 바위에서 올려다 본 와운카페..

와불산의 안락문처럼 여기도 이름하나 있음직 한데.. 워낙 외진 곳이라 고명하신 대사님들도 여기는 모르셨던가 보다..

 

▲ 카페를 지키고 있는 정명님..

 

▲ 벌바위를 다시 한번더 눈도장을 찍고 올라간다.

 

11시 57분 : 마음대로 쥔장 노릇을 하였던 와인카페도 아니온듯 자리를 뜬다.

 

▲ 다시 협문을 나가서..

 

▲ 벌바위 위에 올라 선다.

 

▲ 협문에서 보았던 공기돌이 보인다.

 

▲ 훤걸찬 지리능선을 배경으로 훤칠한 키로 우뚝서니...

 

▲ 훤~~하게 주변을 압도하는 남다른 포스(force)가 완전 압권입니다..

 

▲ 훤걸찬 지리산의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 오는 최고의 조망처다. 뱀사골이 길게 누웠고.. 천년송이 있는 와운마을은 바로 아래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구름도 누워간다는 뜻으로 "와운" 이라하며 양지바르고 온후한 지역으로 구름도 쉬어가는 평화로운 마을이라

하여 눈골 또는 "누운골" 이라고도 한다..

 

와운마을의 역사는 1595년 영광 정씨와 김녕 김씨가 국난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정착하면서 시작 되었다..

이후 한국전쟁때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주민들이 피난 갔으나 이후 다시 들어와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이곳 벌바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부터 반야봉.. 바래봉.. 덕두산까지 보이는 최고의 풍경맛집이다.

 

▲ 석이버섯.

 

▲ 영원사애서 올라왔던 지점을 다시 지나고..

 

▲ 가야할 삼정산..

 

12시 34분 : 빗기재..

영원사길은 30여년전.. 산죽비트의 다발총을 겨누고 있는 인민군을 보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던 기억에 지금도 식은 땀이 난다..

 

▲ 긴~ 기럭지로 성큼성큼이라.. 정명님이 4걸음을 떼면 나는 5걸음을 떼야할 정도인데..

 

▲ "질투".. "바람난 여인" 이라는 꽃말을 가진 얼레지 군락지에서 한컷 담는 사이에...

 

▲ 정명님은 벌써 저만치 멀어진다.. ㅎㅎ~..

 

▲ E.T 같은 바위.

 

▲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한컷을 보는듯...

 

▲ 상무주암을 앞두고 쉼터에서.. 아니온듯 쉬어가기..

 

▲ 빗기재에서 올라왔던 봉우리..

 

▲ 지리의 총사령부 천왕봉이 바로 계곡 건너로 마주한다.

 

▲ 벌바위(와운카페)가 있었던 영원령과.. 반야봉이 멀어졌다..

 

▲ 상무주암 지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삼정산으로..

 

13시 21분 : 삼정산(1,182m)은...

경상남도 함양군의 마천면 군자리.. 덕전리.. 삼정리 일대에 걸쳐있는 산으로 지리산 주능선의 삼각고지(삼각봉)에서 북쪽으로 맥이

뻗어 삼정산이 되었다. 삼정산의 북쪽 기슭에는 남원시 산내면이 위치하였고, 동쪽으로는 함양군 마천면이 입지하였다.

"함양군지" 에는 삼정산(三丁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삼정산이란 이름이 산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 하정.. 음정.. 양정이란 세 마을

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면.. 삼정산(三丁山)이라는 한자 이름이 정확한 표기가 된다.

 

14시 09분 : 삼정산능선의 마지막 조망처에서..

 

▲ 금대암의 전나무는 잘 있는지..

 

▲ 남원시 산내면...

 

▲ 마지막 내림길이 매우 가파르고 낙엽으로 미끄럽다.

 

14시 26분 : 삼불사 갈림길을 지나고..

 

▲ 세상 편한길이구나 했더니.. 빗방울이 듯는다..

 

15시 11분 : 약수암(藥水庵) 보광전은...

시원한 샘물과 1780년 만들어진 고색창연한 목각 탱화인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421호)으로 유명하다. 일년 내내 맑고 청정한

약수가 솟아나 붙여진 이름이며... 1937년 불자의 시주금으로 중건되었다고 한다.

 

약수암 경내에 들어서니 우산을 쓰거나 우의를 입어야 할 정도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 약수암 주차장에서 샛길로...

 

▲ 약수암으로 갈수 있는 차도에 빗물이 고일 정도다..

 

▲ 오를때는 높게만 보이던 백운산과 금대산을 여기서 보니 낮아 보인다.

 

15시 51분 : 실상사(實相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동.서 삼층석탑(南原 實相寺 東·西 三層石塔)은 남북국 시대 신라의 탑 2기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7호로 지정되었다.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데서 

비롯된다. 선종(禪宗)이 처음 전래된것은 신라 제36대 혜공왕(惠恭王) 때인데, 발전을 못하다가 도의(道義)와 함께 당나라에 수학

하고 귀국한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이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으뜸 사찰로 발전하였다.

 

도의는 장흥(長興) 가지산(迦智山)에 들어가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곳에 실상사를 세워 많은 제자를 배출, 전국에

포교하였는데 이들을 실상사파(實相寺派)라 불렀다. 그의 제자로 수철(秀澈) ·편운(片雲) 두 대사가 나와 더욱 이 종산(宗山)을

크게 번창시켰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어 약 200년 동안 승려들은 부속암자인 백장암(百丈庵)에서 기거하다가..

조선 제19대 숙종대에 이르러 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세웠다.

그러나 1882년(고종 19) 사찰 건물이 소실되는 수난을 겪고.. 다시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중건되어 현재에 이른다.

 

실상사(實相寺)..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 보물 제33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4호인 수철

화상능가보월탑비.. 보물 제36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37호인 3층석탑 2기(基).. 보물 제38호인증각대사응료탑(凝寥塔).. 보물

제39호인 증각대사응료탑비..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 보물 제41호인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 보물 제420호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1호인 약수암목조탱화(藥水庵木彫幀畵)가 있다.

 

15시 38분 : 백일공영주차장.

 

▲ 영원령구간과.. 삼정산 내림길에서 씨름을 하자고 하는 쓰러진 나무들을 일일히 상대할수가 없어 피해다니느라 걸음이 다소 느려

졌지만.. 전체적으로 큰 무리없는 진행이었고.. 예쁜 이름 만큼이나 아름다운 와운카페의 비경을 소개 해준.. 생각지도 못한 정명님

의 인연에 감사한 하루다.

2025년 04월 27일(일).

초례봉(636m) : 대구시 동구.

 

산행코스 : 매여동종점-경북대학술림-삼형제바위-초례봉-임도-밧줄구간-체육시설-나불지정류장.

산행시작 : 매여동종점 09시 43분.

산행종료 : 나불지정류장 16시 42분.

전체거리 : 약 8.3km. .

전체시간 : 06시간 58분.

운동시간 : 05시간 14분.

휴식시간 : 01시간 44분.

누구하고 : 향기나팀.

 

09 : 43  매여동종점.

09 : 50  경북대학술림.

11 : 24  삼형제바위.

11 : 40  초례봉.

15 : 14  임도.

15 : 32  밧줄구간.

15 : 57  체육시설.

16 : 42  나불지정류장.

 

09시 32분 : 대구시 동구 매여동종점.

경북 의성 산불로 인해 심각단계 발령으로 입산금지가 확산된 가운데.. 다행히(?) 동구 초례봉일원은 4월 1일부터 해제된 곳이다.

 

 매여동 지하 천연 암반수. 

2006년 7월에 매여동 작목반이 구성 되면서 2011년에 대구시에서 비닐하우스 관정설치비를 지원 받아 300m 지하 암반수를 끌어

올려 청정미나리를 재배하여 입소문이 나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물맛이 좋아 대구시내에서도 물 받으러 오며 마을 공동전기로 운영되므로 약간의 물값을 협조비조로 받고 있다.

 

산행계획은 매여동에서 경북대학술림을 경유하여 초례봉정상을 찍고 혁신도시의 나불지로 하산할 것이다.

 

경북대학교 학술림.

대구학술림은 다양한 교육 및 체험학습과 임학분야 교수연구 및 학생실습, 시민과 소외계층을 위한 산림 체험 및 교육, 전시회 등

산림교육 및 체험과 산림복지 증진을 위한 공간이다.

 

▲ 초례봉 들머리는 학술림 건물 바로 왼쪽의 철망대문으로 들어 간다.

 

▲ 학술림안내판에서

 

바로 앞쪽에서부터 초례봉을 가장 빠르게 올라갈수 있는 코스가 시작된다.

 

▲ 첫번째 쉼터.

매여동에서의 초례봉 오름길은 소나무숲이 사시사철 푸르고 편안한 오름길이다.

 

▲ 오늘의 향기나팀의 산행 컨셉은...권이사님의 제안으로 "바쁨이 없는 편안함"이다..

주어진 시간안에 산행을 마쳐야하는 등산목적이 아니라 싱그런 봄날의 시간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는 하루 만들기에 만장일치다..

 

▲ 쉼터에서 바라 본 팔공산 비로봉과 동봉.

 

 양파같은 바위속의 바위.

 

11시 24분 : 삼형제 바위...

왜? 삼형제바위 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부르고 있어니.. 나도 그렇게 부를수 밖에..

 

▲ 매화말발도리..

 

11시 30분 : 초례봉 갈림길..

 

▲ 초례봉 명품송..

아래에 보이는 거북이는 하산때 만나기로 한다.

 

▲ 대구시내 방향.

 

▲ 안심방면...

팔공산전투에서 대패한 왕건이 도망을 가다가 더 이상의 추격이 없기에 안심(安心)을 하였다는 "안심 마을"이다.

 

경산 진량 하양 방면.

 

11시 40분 : 초례봉은...

왕건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곳 중에 하나다.

 

서기 927년 팔공산 기슭의 공산전투에서 패한 왕건이 후백제군의 포위망을 뚫고 겨우 목숨을 부지한 후에 초례봉에 올라 "왕으로서

의 위엄을 갖추고 천지신명에게 제(祭)를 올린 곳이다"라고 해서..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전설로는.. 약1500년전 어씨라는 초부(樵夫:나뭇꾼)가 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선녀와 만나 가례(嘉禮 :혼례)를 이루고

이 봉우리에서 초례(전통혼례식)를 치렀다고 해서 초례봉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하기도 한다.

 

 향기나 산대장님..

요로코롬 사진으로 봉께로 얼굴에 살이.. 쬐까 빠져뿌렁거 같소~~잉..

향기나 산대장님 잘~ 묵고 힘 내씨요.. 산대장님이 건강해야 향기나도 방향을 잃지 않고 건강해 진다오~.. ㅎㅎ..

 

 서울에 "불.. 수.. 사.. 도.. 북"이 있다면 대구에는 "가. 팔. 환. 초"가 있다.

왼쪽에서 부터 가산. 팔공산. 환성산... 그리고... 여기 초례봉에서 약 45Km의 꼬리를 내린다.. 갓바위는 환성산에 가려서 안보인다.

 

 연두와 초록의 배합이 환상적이다.

 

11시 58분 : 초례봉의 초례예물 음식..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가 최불암씨에서 최수종으로 바뀌었다.. 최수종씨 한국등산인들의 밥상은 취재해볼 생각은 없수?...

 

 거의 2시간 가까이 느긋함을 즐기고.. 캔 압착전문가의 솜씨로 떠난자리는 흔적없이 지우기를 한다..

 

 다시 초례봉에 올라서..

 

 하산길의 나불지 방향을 가늠해 보고..

 

 거북바위.

 

15시 14분 : 임도.

국가의 소중한 자원인 삼림을 관리하고 보호하는데는 임도의 역할이 크다.. 서구 유럽의 울창한 숲은 임도가 잘되어 있어서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생한 경북의 산불에서도 임도가 없어서 피해도 더 컸고.. 진화하는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삿갓바위..

 

 나불지로 내려가는 이곳도 20여년전에 산불피해를 보았던 곳이다.. 이제는 어느정도 숲의 모양새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름도 요상한 나불지와 초승달.. 야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왜?.. 나불지일까.. 나불나불의 어학적 의미는..

얇은 물체가 자꾸 가볍게 나부껴 흔들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이라고 되어 있다.

 

16시 42분 : 나불지 주차장.

 

 이름도 향기로운 향기나팀과..

초례봉길에서 바쁨을 내려놓고 나불나불 가벼운 마음으로 나눈정의 하루는.

바쁘지 않아도 괜찮은 길이었고. 하루를 꽉 채우지 않고.. 느리게 걸어도 되는 하루였다.

2025년 04월 10일(일요일).
조도바래길 : 경남 남해군.

 

산행코스 : 큰섬선착장-다이어트센터-노랑비렁전망대-당산(장산곳)-유리다리-도장게전망대-작은섬선착장-웃는우물-큰섬선착장.

산행시작 : 큰섬선착장 10시 51분.

산행종료 : 큰섬선착장 12시 55분.

전체거리 : 약3.77km.

전체시간 : 02시간 05분.

운동시간 : 01시간 38분.

휴식시간 : 00시간 27분.

누구하고 : 백호트레킹.

 

10 : 51  큰섬선착장.

10 : 55  다이어트센터.

11 : 04  노랑비렁전망대.

11 : 18  당산(장산곳).

11 : 33  유리다리.

11 : 39  도장게전망대.

11 : 55  작은섬선착장.

12 : 47  웃는우물.

12 : 55  큰섬선착장.

 

▲ 경남 남해군 조도 / 호도 위치도..

 

09시 53분 : 경남 남해군 미조면 미조항 도착.

 

10시 02분 : 조도호 타는곳과 승선대기 휴게실도 확인하고..

 

▲ 승선대기실 직원의 말에 의하면..

 

미조항에서 도상거리 약 5~10분 정도인 조도와 호도를 왕복 운항하는 정규 운항시간은 11시 10분이고.. 승선 정원이 28명이다..

하지만.. 단체객들의 편의를 위해 1 ~ 2조로 나누어 정규시간 전인 10시 40분에 출항하여 큰섬선착장에 내려주고 다시 돌아와서

나머지 승객을 태우고 큰섬에 데려다 주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1 ~ 2조간의 시차는 약20분 정도라고 한다.

 

 약 30분간의 시간 공백을 메우기위해 미조항 등대까지 다녀 오기로 한다.

 

 미조항 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빨간등대와 건너편의 하얀등대..

 

 미조항 빨간등대..

누구나 등대를 보면 무언가 위로를 받는 느낌일 것이다.. 아마도.. 어두운 바닷길을 밝히는 따뜻함과..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걷게 될.. 조도와 호도가 지척이다. 해무로 시야가 깨끗하지는 않다.

남해 금산은 우리나라에서 기도발이 가장 잘 받는 곳 중에 하나로 꼽고 있다. 이렇게 인식하게 된 배경에는 이성계가 남해 금산

삼불암 아래서 왕이 되게 해 달라고 100일 동안 기도를 하자 조선 태조에 등극하도록 응답해 준 금산의 영험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금산의 영험한 기도발과 성스럽고 복됨이 넘치는 마을인 미조.. 그 미조 앞바다에 봉황새가 날아가는 형상을 지닌 상서로운 섬

조도(鳥島 : 새섬).. 그리고 호랑이가 웅크린 형상의 호도(虎島 : 범섬)에서 걷게 될 바래길의 기대감을 안고..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조항 너머로 남해의 진산 "금산"에서 흘러내린 가마봉이 보인다.

미조(彌助)마을은.. 이름 자체에서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이 풍기는 마을이다. 아득한 옛날 남해 금산에서 기도를 마친 석가세존이

돌배를 타고 인도로 되돌아가기 위해 금산에서 미조 쪽으로 큰 걸음을 내딛자 그 발이 바다에 빠지려고 했다. 그 순간 미조 땅끝이

길게 뻗쳐 나가 석가세존의 발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도왔다고 한다. 그렇게 도톰하게 늘어난 땅이 도톰바리고 "미륵을 도운 땅"

이라 해서 미조(彌助)라 불렀다고 한다.

 

석가세존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미조 앞바다에 어족을 풍성하게 해 주었으며 그로 인해 미조 사람들은 늘 다양한 수종의 고기를

잡아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고 한다. 미조 땅에는 길거리에 다니는 개도 만원짜리를 입에 물고 다녔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살기 좋은

곳이었다고 한다.

 

 남해군수협 수산물 위판장.

 

 뉴스에서나 보았던 경매사들이 경매하는 곳인듯..

 

조도호는...

2012년 9월에 신조(新造)되어 조도와 호도를 하루 네 차례 왕복하다가 2014년부터 7번 운항하는 것으로 섬과 섬을 연결하고 있다..

지난 16년간 주민들의 발이었던 갈매기호가 수명이 다해  2010년 조도와 호도 마을 주민들의 건의에 따라 총 4억5,000만원을 들여

19t급의 도선으로 제작됐다.. 예전의 갈매기호는 정원이 13명이었는데 신조된 조도호는 32명으로 주민들의 불편을 크게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명절과 주말에는 사람들이 몰리는데 이제는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조도와 호도는 낚시 천국으로 낚시꾼들이 평일에도 많이 찾아온다. 또 아름다운 두 섬의 자연을 즐기려고 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편의를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단체관광객들의 불편함은 여전히 해소해야 할 숙제인것 같다.

 

 선착장관리자의 말대로 10시 40분에 1팀 출발..

 

 대명 남해리조트 쏠비치가 다음달 5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10시 50분 : 조도 큰섬선착장.

 

 하선을 완료하고..

 

 안내도를 숙지...

조도는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우는 남해군 미조면(彌助面) 미조리(彌助里)에 딸린 섬으로  새섬이라고도 하는데 모양이 새를 닮아

붙인 이름이다.  조도는 미조마을에서 보면  큰 섬 끝의 뾰족한 부분이 부리이고  가운데 불룩하니 솟아오른 섬 봉우리가 몸통이며

작은 섬은 꽁지처럼 보인다.  조도는 멀리서 관찰하면 섬이 두 개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중 큰 섬에 마을이 있고  그곳을 큰섬(大島)

조도라고 부른다.. 라는 안내문과 함께.. 산 정상 장산곳에 264년이나 되었다는 소나무가 있고.. 2009년 9월에 상수도 시설이 완공

되었다는 내용이다.. 

 

10시 51분 : 본격적인 트레킹 시작이다..

원점회귀산행이라 어느쪽으로 가도 되겠지만.. 집행부의 안내로 시계방향으로 출발한다.

 

 10시 55분 : 미조초등학교 미남분교장의 옛 터에 세워진 다이어트센터... 아직도 공사중인가 보다.

미남분교는 1946년 9월 개교하여 34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9년 3월 폐교되었다.

 

 죽암도.

 

 죽암도를 당겨 보니..

 

 바위에는 대나무가 아닌.. 소나무가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한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

 

 조도바래길은..

남해바래길의 본선16코스와 지선 4개코스에 속하는 길로... 최근에 남해도 주변의 아름다운 유인도 섬 3곳(조도, 호도, 노도)에 바래길을 만들었고... 일명 섬바래길이라고 한다. 조도바래길과 호도바래길.. 노도바래길이다.

 

"바래"라는 말은 남해 어머니들이 가족의 먹거리 마련을 위해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조개..미역..고둥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는 작업을 일컫는 이 지역의 토속어이다.

 

 이제야 알게 된 남해의 조도바래길.. 야자매트가 닳을 정도로 많이들 다녀 갔다..

 

 언덕에 올라.. 뒤 볼아본 치유센터와 죽암도..

 

11시 04분 : 노랑비렁전망대.

 

봉황의 깃처럼 펼쳐진 해안절벽을 따라 가는 바래길은. 남해 바다의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호수 같은 느낌

이 들어 정겨움과 함께 낭만이 서려 있어 무척 아름답다.

 

 오후에 가게 될 호도가 바로 코앞이다.

 

 조도(새섬)의 정상인 장산곳에 264년이 되었다는 소나무를 보기위해 다녀 오기로 한다.

 

 왕복 20분 소요 예정으로 다녀 온다.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길은 뚜렷하고...

 

약간의 경사길이지만.. 길 안내를 해주는 밧줄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다..

 

 11시 17분 : 9분만에 오름 완료.. 의자도 있는 걸 보니 초기에 등산로를 개설한 듯..

 

 조도(새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400년전이라고 하는데 섬에서 가장 높은곳에 있는 당산 나무는 264년이 되었다고 한다.

 

 264년을 버텨낸 소나무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다시 내려온 노랑비렁전망대.

 

11시 33분 : 유리다리..

 

11시 39분 : 도장게전망대.

 

 그물의자..

 

 왼쪽이 작은섬이고.. 오른쪽이 큰섬.. 두섬을 방파제로 이어서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전기가 들어왔고 축대가 보이는걸 보니 마을터였던 모양이다.. 복사꽃이 더욱 붉었다면.. 여기가 무릉도원이다..

 

 보리수..

 

따스한 봄볕에 이불빨래도 널고..

 

 이정표 뒤쪽으로 데크가 있는 작은섬으로 간다.

 

 최근에 만들어진것 같은 데크..

 

 여기서부터는 갯바위 시작이다.. 아마도 낚시꾼들을 위한 배려인듯 하다.

 

 호도를 배경으로.. 갯바위에서 민생고를 해결한다.

 

자연의 파도소리가 만들어내는 작은음악회를 뒤로하고...

 

 조금전 지나왔던 큰섬바래길..

 

 갑자기 고기들이 뛰어 올라서 급하게 셔트를 눌렀는데 잘 찍혔다. 날치는 아닌것 같고 멸치인것 같다.

 

 작은섬선착장..

 

 주민들을 위한 운동기구들..

전국에서 전남 다음으로 많은 섬을 보유하였고 섬 거주 인구와 가구수가 전국1위인 경남지역에서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오늘날 섬이

직면한 현실은 녹록치 않다고 한다. 정부가 2027년까지 1조 5천억 원을 투입해 섬 지역 생활 인프라 개선의지를 밝힌 가운데 경남도

역시 활성화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한다.

 

실제 한국섬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82만명 이상이었던 유인도 인구는 2022년 79만 여명으로 집계되었다.

6년 사이 4.8% 감소한건데.. 오는 2042년에는 인구가 이보다 18% 가량 줄어든 65만명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큰섬선착장으로 가는길은.. 마을 끝까지 가서..

 

12시 47분 : 웃는 우물..

우물을 반쯤 덮은 모습이 꼭 섬사람이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란다.

 

 관리가 안되어 병들고 있다.

 

 바다의 날씨는 변화무쌍 그 자체다.. 갑자기 해무가 몰려 오더니..

 

 건너편의 미조항을 순식간에 감추려고 한다..

 

 하얀 민들레..

꽃말은... "내 사랑 그대에게 드려요"이다.. 정말 오랜 만에 본다.

 

12시 55분 : 조도바래길을 종료하고..

 

 호도행을 기다리며 트랭글을 정리하고...

 

13시 34분 : 해무를 뚫고 호도행 조도호가 들어 온다..

 

13시 37분 : 호도로 출발..

 

 호도선착장으로 가기전에 작은섬선착장에 잠시 들린다..

 

엔진이 일으키는 하얀포말의 물보라에서 살아 있음의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 힘차게 밀어내는 다이나믹(dynamic)함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 호도는...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에 위치하고 새섬 옆의 "호랑이 모습을 한 범섬" 으로 남해도 남단에서 1.2km 부근에 고도..목과도.. 조도..

예도.. 등이 있다.  호도는 일명 범섬이라고도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해군기지로 이용되었다.

 

13시 47분 : 호도 안착...

 

2025년 04월 10일(일요일).
호도바래길 : 경남 남해군.

 

산행코스 : 호도선착장-호도마을-사철나무군락지-그물전망대-마당바위-미륵바위-호도선착장.

산행시작 : 호도선착장 13시 51분.

산행종료 : 호도선착장 14시 46분.

전체거리 : 약2.09km.

전체시간 : 00시간 54분.

운동시간 : 00시간 47분.

휴식시간 : 00시간 06분.

누구하고 : 백호트레킹.

 

13 : 51  호도선착장.

13 : 53  호도마을.

14 : 09  사철나무군락지.

14 : 16  그물전망대.

14 : 30  마당바위.

14 : 43  미륵바위.

14 : 46  호도선착장.

 

▲ 호도바래길 역시 원점산행이기에 어느쪽으로 가나 마찬가지다.. 시계방향으로 출발한다.

 

호도마을 모노레일 하부역...

호도마을 주민들이 이동할 때 이용하는 모노레일의 멋진 풍치는 그대로 살아 있다.

 

 마침 아래로 내려가는 모노레일을 담아 보았다.

 

 모노레일 상부역..

 

 호도마을은 바닷가에는 넓은 땅이 없어서 산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호도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람이 지나가도 꿈쩍도 하지 않는 하룻강아지 같은 어린독사다..

 

 해무는 산위에까지 올라 왔다.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멍때리기 좋은 곳 같은데 아쉽다.

 

 아래쪽 해안가에는 부딪치는 파도소리만 올라오는데 볼수가 없다..

 

 사철나무군락지.

 

 그물의자 쉼터에서 반대로 오는 사람들과 만난다.

 

 선괭이밥.

꽃말은... "당신을 버리지 않음" 이다..

 

 마당바위..

 

파도소리 들으며 잠시 멍때리고 싶다..

 

 미륵바위..

 

 미륵바위와 한판 씨름...

 

14시 46분 : 호도선착장 트레킹 종료..

 

 

 모노레일 하부역..

 

 백운에 감춰진 금산쪽도 가늠해 보고..

 

15시 55분 : 조도호가 들어 오고..

 

조도선착장을 떠나며..

백호트레킹에서..호랑이의 기상이 어려 있다는 호도를 왔는데.. 정작.. 호도의 호랑이는 부끄러운듯 해무속에 숨어버렸다..하지만..

오히려 몽환적인 바래길이 되어 오랫동안 기억 되어질 것이다.

 

 멸치잡이배가 들어오고 있다...

 

15시 05분 : 미조항선착장..

 

 젓갈용 멸치라고 한다...

 

 바다사나이들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미조항은 국도3호선과 국도19호선의 출발점이다...

 

 무민사(최영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고려말 충신이자 명장인 최영 장군이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쌓았다는 죄목으로 이성계에 의해 처형을 당했다. 그때 장군은

"만약 내 평생 탐욕이 있어 남의 것을 탐했다면 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고, 결백하다면 내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했는데, 장군의 무덤에선 풀이 돋지 않았다고 한다. 권력자에게 죽임을 당한 뒤, 금산과 남해를 지켜주는

신이 된 최영 장군의 충직한 모습을 떠올리며 아름답고 성스러운 마을.. 미조항을 떠난다.

 

16시 49분 : 미조도가 보이는 3번국도변의 쉼터에서..

 

 백호트레킹의 회장님과 총무님표 칼치회무침..

 

 처음 먹어보는 칼치회무침.. 새롭고 독특한 맛이었네요..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봉황의 깃털 같은 조도바래길과..

백호의 기상이 서린 호도바래길의 하루를 축복이라도 해주듯...

바람에.. 꽃비가 내린다..

2025년 04월 06일(일요일).
지리산 : 경남 통영시.

 

산행코스 : 금북개마을-지리산-불모산-가마봉-연지봉-옥녀봉-옥녀봉들머리.

산행시작 : 금북개마을 10시 29분.

산행종료 : 옥녀봉들머리 15시 06분.

전체거리 : 약6.46km.

전체시간 : 04시간 36분.

운동시간 : 03시간 28분.

휴식시간 : 01시간 07분.

누구하고 : 솔잎산악회.

 

10 : 29  금북개마을.

11 : 59  지리산.

13 : 10  성지암갈림길.

13 : 36  불모산.

13 : 52  대항갈림길.

14 : 10  가마봉.

14 : 22  연지봉.

14 : 37  옥녀봉.

14 : 47  금평항갈림길.

15 : 06  옥녀봉들머리.

 

 09시 28분 : 경남 고성군 하일면 용암포항...

 

▲ 오늘의 사량도 일정은..

오전 10시 00분에 출발하는 풍양 카페리를 타고 갔다가 사량도 내지항에서 오후 16시 30분에 나올 것이다.

 

▲ 카페리호 접안시설에서 사량도의 불모산(달바위봉)이 빤히 건너다 보인다.

 

▲ 시산제 산행으로 많이들 찾는 좌이산이 올려다 보이는 용암포항은..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사량도로 가기위해 산악회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인데 오늘은 다소 한산한 분위기다.. 진주팀과 우리팀뿐이다.

한사람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발생한 대형산불로 전국이 심각단계 발령중이지만.. 사량도 전역은 입산금지는 아니다.

 

▲ 09시 50분부터 차량들이 카페리호에 실려지고..

 

▲ 10시 정각에 솔잎 애마도 함께 사량도로 출발이다..

 

10시 05분 : 출발한지 불과 5분인데.. 벌써 용암포항을 멀리도 밀어 내어 버렸다.

 

▲ 뱃머리에 정면으로 보이는 섬은 수우도이고.. 좌측으로 사량도 꼬리가 살짝 보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기차 여행보다 배타고 떠나는 바다여행을 더 좋아 하는 편이다.

아마도.. 어릴때 부터 갯가를 보며 자란 고향의 바다가 그리움으로 마음자리에 남아 있기 때문 이리라.. 차창밖을 스쳐가는

풍경이 있는 기차여행도 좋지만.. 바다위를 달리며 섬들과 섬사이로.. 넘실거리는 파도와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가슴이

뻥 뚫리는 배타고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레임이다.

 

 안장섬을 지나가는데..

 

 갈매기 한마리가 계속 따라오면서 날개짓을 뽐내기에 모션(motion)별로 담아 본다..

 

 10시 18분 : 사량도(윗섬)이 지척으로 다가온다.

조선초기의 사량도 지명은 ‘박도(樸島)였으며.. 두 섬은 ‘상박도’와 ‘하박도’, 이를 아울러 일명 ‘상하박도’라 칭했다.

한편 여기 두 섬 사이를 가로 흐르는 물길이 가늘고 긴 뱀처럼 구불구불한 형세를 이룬것에서 유래하여 이 해협을 사량

(蛇梁)이라 일컬었는데, 당시의 수군진이 육지로부터 여기로 옮겨와 설치되면서 이 사량 지명을 따서 사량만호진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진영이 더욱 번성해지자 점차 원래의 섬이름인 ‘박도’보다는 ‘사량진’. ‘사량’등으로 일컬어지게

되었으며, 조선후기에 이르러 결국 이러한 군영의 이름이 섬지명으로 전용되어 보편적으로 ‘사량섬’. ‘사량도’라 칭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내지항 위로 지리산이 손에 잡힐듯 하다.

사량도의 면적은 26.83 ㎢로 인구는 약960가구에 약1600여명으로 섬주민들은 소규모 연안 어업과 대부분 특용작물 및 

원예작물을 재배한다. 섬안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는 충분히 자급자족이 된다고 한다. 기타로는..여행객들을 상대로 민박을

하며 낚싯배 운영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 곧 도착하므로 차량에 승차하라는 선내방송에 따라 버스에 탑승..

 

 10시 29분 : 버스에 탑승한 채로 내지항에 하선하여 지리산 들머리인 금북개 도착.

 

 10시 31분 : 금북개 들머리는.. 사량도 지리산 종주코스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들머리를 알리는 이정표에 화기수거함이 매달려 있다.. 화기소지자는 양심껏 자진납세 하라는데.. 과연 실효성은?...

 

동백꽃은 세번을 핀다고 한다..

나무에서 한번.. 땅에서 한번.. 그리고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한번 핀다고 한다..

 

나는 간절히 바래 본다.. 여기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이 하트를 바라보면서.. 마음마다에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서.. 이땅..이 산하에서는 두번 다시 산불재해가 일어 나지 않기를...

 

 초반에는 부더러운듯 이어지다가..

 

 섬산 특유의 가파름이긴 하지만.. 주능선까지는 육산으로 이어지다가..

 

능선에 올라서서부터는  육산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된비알의 너덜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들머리인 금북개 마을과 내지항이 내려다 보인다.

 

 사량도는.. 섬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암릉으로 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출발 하였던 용암포항이 보이고.. 경남 고성의 내로라 하는 산들이 연봉으로 이어진다.

 

 오름 오른쪽으로 행정 소속이 통영시 사량도 부속섬인 수우도가 보인다..

 

 11시 33분 : 사량도의 암석은.. 약 1억만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돈지항과 낚시꾼들의 중요 포인트라는 대섬이 내려다 보인다..

섬산행의 묘미는.. 긴장을 놓을수 없는 바위길은 지루함이 없어 좋고.. 짭쪼름한 해풍은 이마의 땀을 훔쳐주고. 탁트인 바다

조망은 시원함을 안겨 준다.

 

▲ 지나온 칼날암릉.. 동석산 보다는 못하지만...지나 올때의 아찔함은 대단하다.

 

▲ 이왕 올라온 암릉이니 암봉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본다.

 

▲ 암봉위에서 바라본 사량도 아랫섬의 칠현산..

 

암봉에서는 지리산으로 갈수가 없다.. 사진상으로는 식별이 어렵지만 침니구간으로 절벽이다.

침니(Chimney)란...암벽에 난 굴뚝 모양의 세로로 갈라진 큰 균열로 바위와 바위사이가 갈라져 있는 것을 말한다.

 

지리산 오름길에 뒤 돌아본 암봉.. 저기를 올라 갔었다.

 

12시 00분 : 사랑도 지리산.

이곳에서 보면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잘보인다 하여 지리망산(智異望山)이라 불리었는데.. 어느순간부터 그냥 지리산으로

되어 버렸다.

 

통영시 사량면 윗섬(상도)에 있는 산으로...사량도 윗섬 돈지리와 금평리에 걸쳐 동서 방향으로 길게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남북 방향의 능선은 폭이 좁고 지형이 험난하다.  1872년 지방지도(사량진)에는 동쪽의 옥녀봉에서 차례로 병암(屛岩)..

교봉(轎峯).. 월암(月岩)으로 표시하고.. 험준한 바위산으로 묘사하고 있다. 산 남쪽의 바위벼랑이 새드레(사닥다리)를 세워

놓은 모양의 층애를 형성하고 있어서 새드레.. 새들산이라고도 불리었다. 지명유래에 대해서 몇 가지 설이 있다.

 

사량도에서 제일 높고 험하다고 하여 유래되었다는 설과..

사량면 돈지리의 돈지(敦池)와 내지(內池) 마을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여 유래되었다는 설이며..

정상에서 지리산(智異山) 천왕봉이 보인다고 하여 지리망산(智異望山)이라고 불린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가야할 불모산을 확인하고..

 

 지리산 바로 아래 조망좋은 곳에서..

 

 12시 08분 : 사랑도 지리산 맛집을 개업한다...

 

 가마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아랫섬을 잇는 사량대교도 보인다.

 

 금북개에서 올라온 능선을 뒤돌아 보고..

 

 13시 10분 : 성지암 갈림길..

 

 그런데.. 이정표가 무언가 1%가 부족하다.. 가장 먼저 나와야할 불모산(달바위봉)이 빠져 있다.. 왜 그랬을까?..

 

 불모산(달바위봉) 우회로..

 

달바위봉(불모산) 정상.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풀한포기 나지 않는다 하여 일명.. 불모산(不毛山)이라고도 한다.

 

 달바위봉(불모산)의 내림길이 최대의 난코스이다.

 

 대항 전경.

 

13시 52분 : 대항 탈출로.

 

대항 내림길이 급하고 자갈이 많고 별로 좋지 않다..

 

지나온 달바위봉(불모산).

 

 가마봉 오름길..

 

거의 수직에 가까운 계단으로 사량도에서 가장 위험한 내림길이다.

 

14시 22분 : 연지봉 제1구름다리..

 

연지봉 제2구름다리..

 

 연지봉 제3구름다리..

 

 옥녀봉 가는길..

 

 사량면소재지 금평항.

 

14시 37분 : 옥녀봉. 옥녀의 슬픈 전설을 위로하며..

옛날 이곳 사량도의 외딴 집에는 혼기가 찼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며 섬에 결혼할 총각마저 없기에 시집 못간 딸과 홀아비 단

둘이서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정절을 잃고 자살하여 이 섬에서 아버지와 딸은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혼기가 꽉찬 딸을 늘 연민으로 지켜 본 아버지와 홀아비의 외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옥녀! 어느 날 아버지는

옥녀에게 욕정을 느껴 범하려 하자 옥녀는 인륜(人倫)의 도리(道理)로는 아버지를 차마 받아들일 수 없으니 짐승의 탈을

쓰고서라도 아버지가 산꼭대기까지 기어 올라 오시면 받아들이겠다며 집을 뛰쳐나와 산으로 몸을 피했다고 한다.

 

이미 이성을 잃은 아버지는 죽은 아내를 빼 닮은 딸의 모습에 더욱 넋이 나간 아버지는 소가죽을 뒤집어쓰고 욕정을 채우려

소울음 소리를 내며 뒤따라 산으로 기어올랐다. 옥녀는 산 정상까지 뒤쫓아 오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더 이상 피할

곳도 없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는데...

지금까지도 비가 내리면 옥녀가 죽은 자리에는 옥녀의 피가 흐르는 듯 붉은 이끼가 피어난다고 한다.

 

 대항방면으로.. 하산..

 

 큰개별꽃..

꽃말은 "은하수" 이다.

 

 남산 제비꽃..

꽃말은... 성실.. 교양.. 품위 있는 가인.. 나를 생각해 다오.. 소박함.. 순진무구한 사랑이다...

 

 현호색.

꽃말은 "사랑의 고백"으로.. 사랑과 열정을 상징한다.

 

15시 06분 : 산행 종료...

 

 

15시 30분 : 전원 하산완료하여 내지항으로 이동..

 

15시 45분 : 내지항.

 

16시 30분 : 내지항을 출발.

 

17시 26분 : 삼천포항의 "삼ㅊ포 싱싱회센터".

 

 삼천포대교.

1시간여의 하산식 뒤풀이를 마치고 나오니.. 삼천포대교에 노을이 곱게 걸려 있다...

 

18시 36분 : 집으로 갈 시간이다..

사량도 바위길에 하늘빛..바다빛이 아름다웠던 최고의 복받은 날이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하루가 떠나고 있다.

2025년 04월 03일(목요일).
월아산 : 경남 진주시.

 

산행코스 : 금호지주차장-계양재-국사봉-질매재-숲속의 진주-돌탑봉-장군대봉-두방사-청곡사-청곡사주차장.

산행시작 : 금호지주차장 09시 43분.

산행종료 : 청곡사주차장 14시 33분.

전체거리 : 약11.9km.

전체시간 : 04시간 50분.

운동시간 : 04시간 18분.

휴식시간 : 00시간 31분.

누구하고 : 화랑산악회.

 

09 : 43  금호지주차장.

09 : 52  계양재.

11 : 17  국사봉.

11 : 39  질매재.

11 : 44  숲속의 진주.

12 : 43  돌탑봉.

13 : 01  장군대봉.

13 : 31  두방사.

14 : 10  청곡사.

14 : 33  청곡사주차장.

 

09시 41분 : 금호유원지주차장에서...

 

오늘은... 대구 화랑인들과 함께 산은 낮지만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진주의 진산 월아산 산행이야기를 시작 하려고 한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하시기를...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산을 즐기는 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 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라고 했다..

 

기록은.. 산을 즐기기에도 필요하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도 기록은 필요하다... 내용이 비록 미흡하더라도 훗날의 기억을

돕기 위해 산행기는 일기처럼 남겨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적자생존.. 적는자 생존이다.. 치매예방도 하고..ㅎㅎ~

 

금호저수지.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의 금호지(琴湖池)는 전체 면적이 62,000평에 달하고 둘레가 5km 정도로 저수지의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신라 때 형성된 자연 못이라고 전해지며,

울창한 송림에 둘러싸여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명주실꾸리 3개가 들어 갔다고 전할 만큼 깊은 수심으로 인해 어종이 풍부

하여 낚시터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금호저수지에는 옛날부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황룡과 청룡이 공중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 결국 청룡이 땅에 떨어졌고, 청룡이 땅에 떨어지며 꼬리로 쳐서 금호(琴湖)

가 생겼다. 청룡은 한 동안 호수 속에서 머물고 있었다. 청룡이 다시 비천(飛天)하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던 어느날 밤...

금호지에 비친 월아산의 달을 여의주로 착각한 슬픈 청룡이 덥석 달을 물었다가 또 다시 땅에 떨어지는 비운을 겪었다.

 

청룡이 떨어진 곳이 청곡사터라고 한다. 금호지는 청룡을 닮아 항상 맑고 푸르다고 한다. 또한,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금호지를 둘러봤느냐?"라고.. 묻는다고 한다... "안 둘러봤다..."라고 하면 게으른 놈이라고 벌을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승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저수지이다..

 

월아산 들머리로 가는길은.. 놀이시설이 있는 금호저수지 수변테마공원길을 따른다..

수변테마공원은..1995년대형 산불로 황폐화 되었다가 진주시와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푸른 숲을 되찾은 곳이다.

 

▲ 수변테마공원 산책로를 따라 오다가 쉼터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계양재(진양 정씨 재실).. 맞은편에..

 

 월아산 등산로 들머리가 시작된다.

 

입산금지라는글자만 보여서 깜짝 놀랐다.. 다시보니 통제가 아니고.. "화기소지자" 입산 금지다.

 

한사람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대한만국 건국이래 최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될 산불 재해가 발생했다..수 많은 사람들이

보금자리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지옥의 아수라 같은 화마로 숨져간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의.. 그 아픔을 어이 할꼬~~..

 

온국민이 가슴 졸이며 지켜 보았던 참혹함도.. 이 또한 지나 가리라~.. 라는 말처럼 지나갔지만.. 남은상처는 너무나 크다.

다시 한번... 목숨을 걸고 현장에 뛰어 들어 밤낮 없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모든 관계자와 진화대원들께 감사 드립니다..

아울러 희생되신 모든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입구부터 잘 만들어진 길을 진주인들이 많이도 다녔을 것이고.. 나도 편하게 따른다.

 

▲ 어제 오후까지도 꽃샘추위가 남아 있더니 오후부터 풀리면서.. 오늘은  낮최고 15~6도에 풍속은 2~3m/s다..

 

솔숲에도 봄의 기운이 감돌고.. 초반의 짧은 오름에도 등줄기에 기분좋은 땀샘이 열린다.

 

▲ 능선으로 이어지는 착한 솔향길의 환영을 받는 순간 나도 숲의 바람이 된다..

 

진주시 금산면 장사리 안심방(安心坊)마을은...

임진왜란때 국사봉이 감싸주는 마을이라서 안심하고 난을 피할수 있었다고 하여 안심뱅이라고 하다가 한자로 옮기면서

안심방(安心坊)이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한번 들어와서 살았다고 하면 안심하고 눌러 살았다고 하여 앉음뱅이 마을이

라고도 불린다.

 

 첫번째봉인 230m봉을 만나 지름길은 버리고 직등한다...

언제나 함께 해주는 나의 짝꿍과 동행인 더덕님과 세사람은 오늘은 지름길은 피하고 직선길로 오르자고 약속한다.

 

 두번째봉도 직등이다.

 

 제법 그럴듯한 암릉길도 만나고..

 

 정수리에 올라서니 집현산쪽일 것도 같고..

 

 세번째 봉 직등은..

 

▲ 월아산은 질매재 위로 떠오르는 달 모양을 보고 달을 토해내는 듯하다고 하여 낭만적이고 여성스런 산인줄 알았더니..

 

▲ 아름다운 장미가 가시를 품었듯이.. 보기보다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월아산이다..

 

▲ 아래로는 남강이 흐르고.. 멀리 의령의 진산 자굴산이 우뚝하다.

 

▲ 산허리를 구비구비 돌아치는 남강의 유장한 물길이 뛰어난 풍광이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이 쓴 누실명(陋室銘)에서...

 

산불재고(山不在高) 유선즉명(有仙則名)..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산다면 곧 명산이요...

수불재심(水不在深) 유룡즉령(有龍則靈)..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머물면 곧 신령한 물이니라.. 하였다.

 

▲ 네번째 봉우리인 410m봉도 직등이다.

 

 남산 제비꽃..

꽃말은... 성실.. 교양.. 품위 있는 가인.. 나를 생각해 다오.. 소박함.. 순진무구한 사랑이다...

 

▲ 칼등같은 암릉도 있고..

 

▲ 기어서 올라야 하는 방구돌도 있다.

 

 저기 방어산 아래는..

국내굴지의 세계적 기업인.. 삼성.. 효성.. 금성 그룹의 창업자들이 어릴때 다녔다는 지수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이 있다.

 

 월아산 최고의 명품송...

 

아기자기했던 암골미의 가시를 숨기고 부더러운 흙길과 피톤치드 왕성한 소나무숲길을 지나면...

 

 국사봉이 올려다 보이는 폐헬기장이다.

 

월아송(月牙松).

국사봉 오름길에 서 있는 한그루 소나무 위에 달빛이 내려 앉는다고 하여 이지역 사람들이 월아송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11시 17분 : 국사봉 돌탑.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아산(月牙山)은 월아부곡(月牙部谷)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월아산 지명은 질매재 위로 떠오르는 달 모양을 보고 월아산이 달을 토해 내는 듯하다고 하여 달엄산, 또는 달음산으로

불렀던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국사봉에서 진주목사가 제주가 되어 기우제를 올렸다.국사봉 정상에는 무지개터가

있어 풍수학적으로 그곳에 묘를 드리면 재상이 난다고 하여 암매장이 많았는데 해마다 날씨가 나쁘거나 한재가 계속되면

기우제를 지내고 제단 주위에 암매장묘가 있으면 해골을 내동댕이 쳤다고 전한다..

 

 진주시가지 너머로 지리산 주능선이 보일텐데 도시 매연 때문인지 희미하다.

 

▲ 월아산 국사봉(月牙山 國師峰).. 월아산(月牙山)의 이름은 아산토월(牙山吐月)에서 따왔다고 한다.

달(月)을 토(吐)해낸다고 했으니 달뜨는 장면을 아주 낭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월아산은 국사봉과 장군대봉 두개의 봉우리가 봉긋이 솟아 있는데 국사봉을 또다른 이름으로 달임산이라 하고 남쪽의

장군대봉을 달음산이라고 부른다.. 남북의 두 봉우리사이로 보름달이 떠올라 산아래 금호지에 비치는 모습을 아산토월

(牙山吐月)이라 하여 진주 12경중에 하나다.

 

 국사봉에서 바라본.. 함안의 방어산과 괘방산.

 

국사봉을 뒤로 하고 질매재로 내려가는 길에 돌탑세상이 눈길을 끈다..

 

 국사봉에서 매우 가파르게 내려 가다가 다시 올라야 할 건너편 장군대봉 능선의 돌탑봉이다..

 

11시 39분 : 질매재생태통로에서 좌측으로 "숲속의 진주" 라는 휴양림의 수선화를 보고 오려고 내려 간다.

 

내려 온.. 국사봉.

 

"숲속의 진주" 라는 휴양림.

월아산 숲속의 진주는 정원문화의 확산과 정원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2023년과 2024년에 정원박람회가 개최 된

곳이기도 하다. 오는 6월 진주시 초전공원 일대에서 개최되는 ‘2025년 대한민국 정원산업박람회’ 때 월아산에서도 박람회

와 연계한 수국축제가 함께 열릴 예정이다.

 

월아산 "숲속의 진주"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에 힘입어 지난해 7월, 개장 6년 3개월 만에 누적방문객 1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지난해에만 35만 여 명이 다녀 갔다.  2023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산림청 우수 목재문화체험장과 경남도

산림휴양시설 우수기관으로 선정됐고 2024년 산림청 산림휴양분야 우수사례로도 선정되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산림

복지의 새로운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12시 17분 : 다시 돌아온 질매재 생태통로.

 

 생태통로 위에서 바라본 진주시 금남면 쪽 질매재..

질매는… 길마의 사투리로 소의 등에 얹어 물건을 운반하는 데 쓰는 말굽모양의 연장을 말한다.

 

 생태통로 위에서 바라본 진주시 진성면 쪽..

 

 생태통로에서 좌측 임도를 따라 장군대봉으로 간다..

 

임도를 따라 가면 장군대봉으로 갈수 있지만.. 시멘트길도 싫고.. 돌탑봉을 가지 못하기에...

 

 여기서 오른쪽으로 돌탑봉 지름길로 도전이다...

 

 돌탑봉 직등길의 경사각은.. 악~ 소리나게 가파르다. 보이는 쉼터바위에서 쉬어 간다.

 

 건너편의 국사봉과 비슷하게 눈높이도 높아졌다..

 

▲ 내려다 본.. "숲속의 진주" 휴양림..

 

▲ 분홍색 노루귀.

 

▲ 분홍색 노루귀의 꽃말은..

"애정".. "다정함".. "보살피는 사랑" 이다.

 

▲ 흰색 노루귀의 꽃말은.. 순결.. 순수함이다.

 

12시 43분 : 돌탑봉.. 직등 입구에서 19분 소요 되었다.

 

장군대봉에 갔다가 청곡사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아 와야 한다.

 

13시 01분 : 장군대봉.

 

 장군대봉..

월아산의 사실상의 주봉은 장군대봉이다. 장군대봉 원래의 이름은 달빛이 타고 올라왔다 하여 달 울음산이라 하였다가 

달음산 또는 달엄산이 되었다가 한자 표기로 바뀌면서 현재는 달빛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의 월아산이 되었다.

 

장군대는 예로부터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고..

임진왜란때에는 광주 무등산 출신의 김덕령장군이 목책성(木柵城)을 쌓고 본영을 삼았던 곳이다.

 

 산불감시요원이 배경을 바꾸어 보라고 해서.. 돌아서니 철책 배경이 없어서 훨~ 낫다.

 

 장군대봉에서 두방사 내려가는길..

 

 누군가가 정성으로 쌓은 돌담장 만리장성..

 

13시 31분 : 두방사(杜芳寺) 무량수전.

신라 49대 헌강왕 4년(878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아주오래된 절이고 청곡사 암자로 두방암이라고 불렸으나 1962년

해인사 말사로 등록하면서 두방사로 승격되었다.

 

 두방사(杜芳寺) 다층석탑.

 

 청곡사 가는길..

 

 

13시 58분 : 체육공원.

 

가족쉼터로 가는 출렁다리..

 

 청곡사 전경..

 

 청곡사 입구..

도선국사는 15세에 출가하여 전국을 다니면서 수도를 하고 19세에 신승(神僧)으로 추앙받아 전국에 많은 사찰을 지었다...

이곳 청곡사터를 처음 찾은 신라의 도선국사는... 남강변에서 청학(靑鶴)이 날아와 서기가 충만함을 본 도선국사가 절터로

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청곡사에 들어가는 다리이름이 ‘방학교(訪鶴橋)’이다.

 

청곡사 환학루(喚鶴樓)...

학을 맞아들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곡사 대웅전의 전면을 통유리로 바꾸어 놓은 것이 이색적이다.. 부처님도 밖이 잘 보여서 좋아하실것 같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879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는데.. 월아산 남쪽 남강변으로 청학(靑鶴)이 날아오니 서기(瑞氣)가 충만

하므로 이 자리에다 절을 지었다고 한다.임진왜란(1592)때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조선 광해군 4년(1612) 포우대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청곡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靑谷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 보물 제1688호, 1615년).

본존인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오른쪽에 문수보살좌상, 왼쪽에 보현보살좌상이 배치되어 있다.

 

1750년에 작성된 개금발원문을 통해 1615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방형의 넓적한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 단조로우

면서도 힘 있는 옷주름 등이 특징이다.

 

 업경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9호).

중생들이 생전에 쌓은 업을 심판하고 교화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명부전(冥府殿),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 명부시왕.. 판관.. 금강역사 등이 모셔져 있다.

 

 청곡사 수양벚꽃..

 

 청곡사 서별전.

 

 청곡사 할매산신각.

 

 청곡사 대웅전 앞 괘불대는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석인(石人)과 석수(石獸)의 조형물이 이채롭다.

네발로 납작 엎드린 형태가 개구리 같기도 한데 머리 부분을 보니 영락없는 사람이다.

 

 청곡사 석인(石人)과 석수(石獸)는..

중국 신화에서 달에 산다는 여신인.. 항아(姮娥)를 새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9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트리고 곤륜산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얻었던 항아는 남편 '예' 몰래 혼자서 불사약을 먹고 월궁으로

향했지만 남편을 속인 죄과로 두꺼비가 되고만 절세가인이다.


보름달이 아름다운 <월아산> 자락에 있는 청곡사의 괘불지주라면 가능한 일일 수 있다. 가만히 뜯어보면 남편을 속인 죄를

속죄하고 있는 듯한 표정 같기도 하고. 하여튼 괘불대를 만들었던 석공의 생각을 알수가 없다.

 

 청곡사는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러브스토리가 전해 지고 있다.

고려말 이성계는 지리산 지역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무학대사와 함께 청곡사를 찾았다.. 우물가에 당도한 

이성계는 물을 긷던 여인에게 마실물을 청했다… 그런데 여인이 건네준 표주박에는 초록의 버들잎이 띄워져 있었는데

급체할수 있으니 천천히 마시라는 의미였다. 여인의 마음씨에 반한 이성계는 훗날 둘째 왕비로 맞는다.. 이 여인이 바로

진양 강씨 신덕왕후다.

 

 청곡사 부도탑.

 

청곡사의 위치는 청학포란형(靑鶴抱卵形)으로 신선이 타고 다니는 청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으로 청학의 머리부분

혈처에 자리 잡고 있는 명당이라고 한다.

 

 청곡사 뒤편에는 야생 차나무가 자생하면서 여름철피서 장소로도 많이들 찾는다.

 

학의 그림자가 비친다 하여 "학영지(鶴影池)" 이다.

 

▲ 충장공 김덕령장군 전적비.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김덕령장군(1567~1596)은 무등산 자락인 충효마을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동하며 여러차례 왜군을 무찔렀다. 이몽학(李夢鶴)이 반란을 일으키자 도원수 권율의

명을 받아 진주에서 운봉(雲峯)까지 진군했지만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모함으로 체포되었다. 이에 정탁..김응남(金應南) 등

이 그의 무고를 힘써 변명하였으나 20일 동안에 여섯 차례의 혹독한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그의 나이 불과 29세때 였다.

 

14시 33분 : 청곡사주차장 산행종료.

 

 

15시 48분 : "ㅇㅈ국밥" 과 현수막..

고 산악인 강연룡과 관련이 있는 집인듯.. "코리아 루트"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어.. 찾아보니 작가 산악인 박명환씨가

히말라야 14좌를 신 루트를 개척해서 오른.. 고 강연룡에 대한 평전이 2024년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는 내용이다..

유명 산악인과 관련이 있는 식당에서의 하산식이라 의미가 있다. 고 강연룡은 2018년 등반 훈련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참고로.. 세종도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매년 발표하는 도서 선정사업의 약칭이다.

 

▲ 체인점인데.. 많은 맛객들이 다녀갔음직한 괜찮은 맛이다..

 

▲ "ㅇㅈ국밥" 주변의 배꽃과 꽃잔디..

 

불교에서 자리이타행 (自利利他行) 이라는 말이 있다.

즉..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타자리행(利他自利行)이란 말도 있다.

이 말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기를 이롭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이 그 말 같지만...

그 말이 또한 이 말이 아니다..

 

오늘의 월아산 산행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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