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3일(수).

해인사12암자 : 경남 합천군.

 

트레킹코스 : 해인사입구-성보박물관-보현암-금강굴-삼선암-금선암-원당암-

홍제암-용탑선원-해인사-성철스님사리탑-지족암-희랑대-백련암-국일암-약수암.

트레킹시작 : 해인사입구  09시 20분.

트레킹종료 : 해인사입구  14시 28분.

전체거리 : 약11km.

전체시간 : 05시간 08분.

운동시간 : 04시간 24분.

휴식시간 : 00시간 44분.

 

09 : 20  해인사입구.

09 : 31  성보박물관.

09 : 42  보현암.

09 : 46  금강굴.

09 : 57  삼선암.

10 : 01  금선암.

10 : 10  원당암.

10 : 28  홍제암.

10 : 42  용탑선원.

10 : 51  해인사.

11 : 34  성철스님사리탑.

12 : 35  지족암.

12 : 53  희랑대.

13 : 19  백련암.

13 : 55  국일암.

14 : 03  약수암.

14 : 28  해인사입구.

 

09시 20분 : 해인사입구 도착.

대구서부정류장을 08시 01분에 출발하여 약 1시간20분이 소요되었다. 요금은 8900원..

 

지난주인 11월 07일에 경북 성주군 법전리에서 가야산정상을 오르고 토신골을 경유하여 이곳으로 하산하였는데..

해인사에 들리지 못한 아쉬움에 6일만에 다시.. 해인사와 12암자를 탐방하기 위해 역순으로 올라간다.

 

불자가 아닌 내가 사찰을 찾는 이유는...

자연과 잘 어우러진 각종 문화재와 사찰건물의 아름다운 선과 예술적 감각을 느껴보고자 함이 더크다...

계절로는 가을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계절이기에 길을 나선 이유다.

 

해인사 상가를 지나..

 

09시 31분 : 해인사성보박물관..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법보종찰 해인사의 박물관으로, 보물 11건 및

9건의 지방유형문화재를 포함한 약 7천여 점에 달하는 불교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사찰 박물관이다.

 

허덕교..

성보박물관 좌측으로 올라오면 풍광이 멋진 계곡을 건너는 허덕교는.. 예전에 이 자리에 허덕사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아직은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조용한 가을길은... 이제는 단풍길이 아닌 낙엽길이 되어 간다.

 

 오늘은 해인사를 포함한 가까운 주변의 12암자를 찾아보기 위해.. 먼저 보현암과 금강굴을 찾아간다.

 

 향지교(向止橋)를 건너.. 좌측의 보현암과 금강굴을 다녀와서 오른쪽의 삼선암으로 갈것이다.

 

 보현암 가는길..

 

향노교에서 3분정도 올라오니 노랑물감이 한창인 은행나무 뒤쪽으로 보현암이 보인다..

 

09시 42분 : 해인사 보현암은...

1973년 혜춘(慧春)스님(1919~1998)이 비봉산 남쪽자락에 창건하여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구니 수행처인 보현암 법당과 연못..

보현암의 연못은 마음심(心) 모양으로 참선하는 것은 마음을 닦는 것으로 더욱더 수행 정진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함께 길을 나서준 짝지부터 챙겨준다...

 

보현암과 이웃한 금강굴(금강암).. 규모가 작은 사찰을 굴(窟)이라고 표현 한다.

 

금강굴은..

성철스님 세속의 따님인 불필(不必)스님이 보현암에서 수행하던중에.. 비구니 스님들의 수가 많아져서 성철스님이 계시는

백련암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1976년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금강굴의 삼층탑과 백송.. 백련암에도 백송이 있다.

 

금강굴의 법당인.. 금강보전에는 성철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금강굴 석조여래입상.

 

 금강굴에서 바라본 환선대 아래 백련암 방향...

 

비구니 사찰답게 정갈한 금강굴을 뒤로하고..

 

 혜춘스님의 보현암창건 연혁과 시비..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는가.. 오고감이 하나일새.. 청풍은 만리로다.

 

보현암과 금강굴을 둘러보고 향지교로 돌아와서 향지교를 건너지 않고 삼선암 방향으로 향한다.

 

삼선암입구에 예쁘게 만들어 놓은 식수대.. 이쁘니까 물맛도 달다.

 

09시 57분 : 삼선암 입구 현판에는 반야선원(般若禪院)이라 되어 있다.

 

삼선암 약사전아래에서 스님들이 낙엽을 쓸고 있다.

 

해인사 삼선암(三仙庵)은..

1893년(고종 30) 자홍(慈紅)스님께서 창건한 뒤로 1904년에 보찬(普讚)스님과 지종(智宗)스님 두 분이 중건한 바 있으며, 1945년에 정성문(鄭性文)스님이 반야선원(般若禪院)을 개원하였으며 6·25한국전쟁 당시에도 많은 비구니 스님이 이 선방

에서 참선에 들었다고 한다... 삼선암(三仙庵)이라는 이름은 마당에 있는 3개의 바위에 3명의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삼선교를 건너와서 바로 이웃해 있는 금선암으로 간다..

 

 방금 다녀온 삼선암... 가을이 주는 참으로 멋진 그림이다.

 

 금선암은.. 1945년에 하담스님께서 창건한 비구니 수도처다.

 

10시 01분 : 금선암 법당.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지만 대웅전이라 칭하지 않고 법당이라고 쓰여진 이유는 해인사에 큰 법당(대적광전)이 있어서

다른 명칭을 쓸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선암을 지나서 올라오니 단풍이 한창 곱다.

 

카페.. 수다라.

수다라(修多羅)라는 부처님 말씀을 적은 경전으로.. 이 좋은 가을날에 이곳에서 차 한잔 하면서 수다를 떠는것도 좋을듯...

 

 원당암 달마선원으로...

 

불자가 아니어도 무생교를 건너면 속세의 허물이 벗겨질까나...

 

10시 10분 : 원당암 전경..

원당암이 지금은 암자이지만 해인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원래 하나의 절이었다고 한다.

신라 애장왕(哀莊王)은 공주의 난치병이 낫자 부처님의 가호(加護)라 여기고 해인사의 창건을 발원한 순응(順應) 대사를

몸소 크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왕은 서라벌을 떠나 가야산에 임시로 작은 집(원당)을 지어 절(해인사) 공사를 독려하고

정사(政事)를 보기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당암이라는 것이다.

 

창건당시에 이곳의 산 모양이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비봉산 자락에 있다 하여 봉서사라 하였으며 진성여왕때 부터

본격적인 신라왕실의 원당이 되어왔기에 원당암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원당암 미소굴과...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스님의 법문 말씀이다.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가 죽는것이 사는 길이다.. 옳은 마음으로 옳은 일 하면 안 죽어요."

 

▲ 미소굴..

혜암스님의 유품을 진열해둔 곳이다.

 

▲ 조금전에 지나왔던 전망대에 다시 올라가 본다.

 

▲ 고분처럼 생긴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운봉교라는 전망대다. 이곳에서 내려다 본 해인사 풍경이 장관이다.

 

▲ 내려다 본 원당암전경..

원당암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혜암(慧菴) 스님이 머무른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혜암 스님은 해인사의 정신적 지주

라고 할 수 있는 해인총림 방장(''93년~''96년)스님을 지내시고 1999년 4월에 조계종 제10대 종정 스님으로 추대되었다.

 

▲ 보광전 앞의 다층석탑(청석탑)과 석등은 신라시대 유물로 보물 제518호이다.

 

▲ 볼거리와.. 생각꺼리가 많았던 원당암 산문을 나선다.

 

▲ 홍제암으로..

 

10시 28분 : 홍제암(보물 제1300호)은...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수도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에서 따왔다.

광해군 6년(1614)에 혜구대사가 사명대사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

 

▲ 홍제암 보승문.

 

▲ 홍제암 법당.

 

▲ 홍제암 서래당은...

도봉당(道峰堂) 종성(宗性) 대종사가 주석처인 홍제암 서래당에서 입적했다.

 

▲ 홍제암 자운대율사영각(慈雲大律師影閣).

 

▲ 홍제암 사명대사탑석정비.

 

사명대사 석장비와 함께 있는 승탑과 비석들.

 

▲ 사명대사 석장비(보물)..

비석은 1612년에 건립되었다가 1943년에 일본인이 깨트린 것을 1958년에 복원한 것이다.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으로 비문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지었다고 한다.

 

▲ 백용성 선사 승탑과 탑비..

 

▲ 해인사로 가는 외나무다리..

과거에는 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못된 관리들이 말을 타고 사찰경내에 들어오는 걸 저지하기

위하여 만든 다리라고 전해진다..

 

▲ 10시 28분 : 용탑선원.

3.1독립운동의 민족대표 용성스님의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암자라고 한다.

 

▲ 용탑선원 육화당.

육화는 불교의 진리를 깨치고자 수행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경하며 화합하여 깨달음을 성취해야 하는 여섯 가지 도리다.

 

▲ 용탑선원 미타굴 법당.. 납골당을 겸하고 있는 석조 미타굴  법당이 있다.

 

▲ 석조 미타굴 법당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 용탑선원 극락교 입구에..

3.1독립운동 민족대표..  백용성조사 유적도량이라는 글이 기둥에 나란히 새겨져 있다...

 

▲ 토신골탐방지원센터.. 지난주 11월 7일에 가야산정상에서 하산하였던 들머리다.

 

▲ 6일전에 들러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기위해 해인사로..

 

10시 51분 : 해인사.. 가까운 대구에 60여년을 살면서도 한번 와보지 못했던 곳이다.

 

▲ 타이밍이 좋았는지.. 법고행사를 하고 있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부처님의 말씀이 세간에 널리 전하는 것을 북소리가 울려퍼지듯 한다..라고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이 북소리를 듣고 중생이 모든 번뇌를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 해인범종.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 해인사 스님들의 법고 치는 솜씨는 예전부터 최고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큰 울림으로

전해져 오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 마당에는 만(卍)자 형식의 해인도(海印圖)를 크게 그려져 있고 경전을 외우며 이 구역을 한바퀴 따라 돌게 되어 있다.

 

▲ 해인사 구광루.

원래는 기능상 재식시(齋式時) 법요(法要)를 집행하던 곳이었으나.. 사찰의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하층의

경우 홍보를 위한 홍보시설과 서점 등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층은 설법과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 해인호국도량 대적광전으로 올라가는 문...

 

▲ 해인사 대적광전 마당의 석등.

 

▲ 해인사 대적광전 마당의 삼층석탑.

 

▲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木造毘盧舍那三尊佛)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해인사는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이정(利貞) 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10월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된 화엄도량이다.

 

1398년 고려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운되면서 법보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특히 해인사는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화재로 그때마다 다시 지어졌는데,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조선 말에 중건된 것이다.

 

합천 해인사는 양산의 통도사, 순천의 송광사와 더불어 국내 3보(三寶) 사찰 중 법보사찰로 팔만대장경 경판(국보)과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경판전(국보)등 15점의 보물과 2백여 점의 사보 등 수많은 국가유산과

고적이 있다.

 

▲ 해인사 대적광전과 왕이 주로 사용한 우물.. 어수정이다.

 

▲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판전으로 가는 문.

 

▲ 보안당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읽음으로써 두루 관찰하는 눈이 생긴다는 뜻이다.

 

▲ 수다라장은... 부처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다.

 

▲ 법보전.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판'이 소실되자 국난 극복을 염원하며 고려 고종(1237~1248) 때 새롭게 판각한 경판이다.

조성된 경판이 8만여 개에 달하고,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이 수록됐다고 해서 팔만대장경으로 불린다. 제작된 지 80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 국보로 지정됐다.

 

유네스코는 1995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2007

년에는 팔만대장경을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했다.

 

▲ 해인사는 신라때 지어졌고 팔만대장경은 고려때에.. 그리고 대장경을 보관하는 이곳 장경판전은 조선시대 만들어 졌다. 

 

▲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가이드 라인을 따라 마당에서 한바퀴 돌아나간다.

 

▲ 뒤돌아 본  팔만대장경판전 전경.

해인사 천년고찰과 함께 해온 고려팔만대장경은 우리의 희망의 역사다..뿌듯한 자긍심을 안고 돌아선다..

 

▲ 가야산 감로수도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 바로옆 해인사 홍보판에 대장경 실내사진이 있다.. 실물크기 그대로 찰칵..

 

▲ 해인사 독성각앞을 돌아가니..

 

▲ 해인사 학사대(學士臺) 고운 최치원상.

신라의 학자 고운 최치원이 해인사에 머물며 집필하면서 말년을 보낸 장소로 평소 짚고 다니던 전나무 지팡이를 꽂아두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는데..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 큰 나무로 자랐다고 하는 나무였는데.. 그러나 2019년 태풍 "링링" 의

피해로 인해 쓰러진 나무의 밑둥치로 좌대를 만들고 그위에 최치원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 해인사 학사대(學士臺)에서 바라본 남산제일봉 아래가 최치원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홍류동계곡으로 농산정이 있다.

 

▲ 해인사 구광루에서..

 

▲ 해동원종대가람 해탈문을 나선다..

 

▲ 해인사 국사단과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원나무..

국사단은 산을 관리하는 산신과 가람을 수호하는 국사대신을 모신 단으로 보통 사찰의 산신각에 해당하는 전각이다.

 

▲ 해인총림 봉황문.. 안에서부터 구광루.. 해탈문.. 봉황문이 차례로 보인다.

 

▲ 해인사 애장왕 고사목.

신라 40대 애장왕 8년(서기 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애장왕이 이 은덕에 보답

코자 법당과 승료 등 많은 가람을 헌공하여 해인사를 창건하고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진다.

 

이 느티나무는 1200 여년의 긴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해 오다가 1934년 수명을 다해 고사하고 지금은 밑둥치만

남아 해인사의 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해인사 일주문.. 산문 안쪽은 "해동제일도량"이고..

 

▲ 산문을 나가서 사바세계에서 보면 "가야산해인사" 다..

 

▲ 일주문 축대에 불기2975년이라 음각되어 있다. 아마도... 서기 1948년에 일주문을 개축하였던게 아닐까..

 

▲ 일주문앞의 구조물.. 무슨 용도였을까..

 

▲ 일주문 밖 당간지주..

 

▲ 영지..

일주일 전만해도 화려했던 단풍이 다 떨어져 앙상하다.

 

▲ 원경왕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碑)로,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해인사 경내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거북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색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숙종 9년(1104)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 길상탑.

최치원이 지은 탑지(塔誌)에 따르면, 신라 진성왕대에 오랜 내란으로 해인사 주변에서 전몰한 승려와 백성을 위해

문수보살의 가피를 빌고자 해인사 승훈 스님이 895년에 세운 위령탑이라고한다.

 

▲ 해인사 비림(碑林)... 사적비를 비롯 20기의 공적비가 안치되어 있다.

 

11시 34분 : 1993년에 입적하신 성철스님 사리탑..

기존의 사리탑과는 사뭇 다르게 현대적 미적감각으로 조성되었다. 구(球)는 완전한 깨달음과 참된 진리를 상징하고 등을

맞대고 있는 반구(半球)는 활짝핀 연꽃을 표현하고.. 크기가 다른 정사각형 3단은 3학과 수행과정을 의미 한다고..

성철스님의 '자기 공덕은 자기가 쌓아야하고..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해야한다'라는 말씀을 새기며 지족암을 찾아 간다.

 

▲ 지족암으로 가기위해 대장경연구원쪽으로..

 

▲ 도로를 따라 대장경연구원을 지나 올라가면..

 

▲ 해인사 경내인 구내식당쪽이 보이는 곳도 스치듯 지나가고...

 

▲ 오른쪽으로 희랑대로가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 오른쪽 아래로는 극락전 건물 뒤쪽이 보인다.

 

▲ 처음에는 아마도.. 스님들이 암자를 왕래하기위해 걸었던 길이었을 것이다.

 

▲ 전남 강진의 만덕산 자락의 다산초당으로 가기 위해 다산 정약용이 걸었던 "뿌리의 길"이 생각나는 길이다.

 

11시 51분 : 자그마한 봉우리에서 마음에 점을 찍고..

 

▲ 솔향기와 만추의 가을이 내려앉은 낙엽길을 걷다보면..

 

▲ 차도와 만나게 되고...

 

▲ 지족암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와서 희랑대로 갈 것이다..

 

▲ 지족암 가는길...

 

12시 35분 : 지족암 일주문.

 

지족암은 신라말 고려초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로서 원래 이름은 도솔암이었다고 하는데.. 옛모습은 하나도 없다..

 

▲ 지족암 법당인 대몽각전.. 큰꿈에서 깨어난 자 즉.. 부처님 계신 곳이라는 얘기다.

 

▲ 마당을 지나가면..

 

▲ 돌아서 내려오게 된다.

 

▲ 동곡교에서 좌측 계단으로 오르면 희랑대다.

 

▲ 문이 닫혀 있어서.. 약간은 난감했는데 안내문을 보니 멧돼지 때문이니 열고.. 그리고 잘 닫고 들어오란다..

 

▲ 쌓아올린 축대를 보니 상당한 불사였겠다..라는 생각이다..

 

▲ 축대를 이용하여 공간 텃밭도 만들어 꽃도 심어 놓았다..

 

▲ 해남 달마산 도솔암과.. 경기 관악산 연주대처럼 자연 암릉 사이를 쌓아올려 희랑대를 지었다.

 

▲ 희랑대는... 희랑대사가 머물렀다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이자..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준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12시 54분 : 독성각.

신라 말에 희랑(希朗)이 창건하여 수도하였던 곳으로서,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으나 나한 기도처로서 유명하다.

 

해인사 희랑대는.. 청도 사리암, 서울 삼성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나반존자(독성) 기도도량이다.

 

▲ 희랑대 너머로 지족암이 보인다.

기묘한 지형과 빼어난 풍치가 경관을 이루고 있어 흔히 금강산 보덕굴(普德窟)과 비교된다.

천연의 절벽을 뒤로 하고 바위와 바위 사이로 돌을 쌓아 평평한 터를 만들어 그 곳에 삼성전(三聖殿)을 세웠는데, 이 삼성전

에 모셔진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는 그 영험이 불가사의하다고 하여 수많은 기도객이 찾고 있다.

 

▲ 계단을 올라 능선길을 따라가면 백련암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 그 자체다..

 

산이 구름을 탓하지 않고..

물이 굴곡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은.. 자연을 닮은 삶.. 그것이 곧 긍정이라 했다..

 

▲ 길은 뚜렷하고 전선줄을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 산죽길을 올라서면.. 지능선에 닿게되고..

 

▲ 희랑대를 출발하여 13~4분이면...

 

▲ 백련암이 내려다 보이는 암릉이 나온다.

 

▲ 한눈에 들어오는 백련암이 바로 아래다..

 

▲ 잠시 바위를 즐기고 내려가면..

 

▲ 백련암 적광전..

 

▲ 백련암 천태전..

 

13시 19분 : 백련암 고심원..

행사가 있는지 엄청많은 남여 신도들이 북적댄다.

 

▲ 백련암 고심원 앞의 연꽃바위라는데... 우매한 나의 눈에는 두꺼비처럼 보인다.

 

▲ 백련암 고심원은 성철 스님깨서 입적하신 후에 지었으며.. 스님의 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 백련암 고심원에 모셔져 있는 성철스님 좌상..

성철스님은 1980년대 조계종 종정일때 조계종 분규를 비탄하며 백련사에 오신후 열반전까지 이곳 백련사에 머물었다.

1936년 출가해서 해인사에서만 57년 동안 칩거해 온 스님은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가부좌한 채 입적하셨다.

 

▲ 백련암의 백송..

 

▲ 백련암의 자연석으로 부처님을 닮은 불면암(佛面岩)이라는데..

 

▲ 동서남북 아무리 둘러 보아도.. 불자의 눈이 아니어서 그런지.. 내사마 도통 모리거따..

 

▲ 내눈에는 오히려 해학적인.. 안동 하회탈처럼 보인다.

 

▲ 원통전.. 백련암 가람중에 가장 고색창연 하다..

 

▲ 일주문이라는 안내표시가 있어서 정념당 아래로 내려간다.

 

▲ 무슨 행사인지 전국에서 모여든 차량들로 주차장이 초 만원이다.

 

▲ 잎이 붙어있는걸 보니 고사목은 아니고.. 그냥 고목이다...

 

▲ 백련암을 내려서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성철스님의 화두의 의미를... 알듯.. 모를듯..

 

13시 55분 : 국일암 법당.

국일암 법당은 1637년 벽암(碧巖)스님께서 중건하였으며, 조선 인조가 벽암스님에게 국일암대선사의 호를 내렸다고

하여 국일암이라 부르게되었다고 한다. 국일암은 비구스님들의 선원이다..

 

▲ 국일암 와송..

 

▲ 매우 오래 된듯한 해우소..

 

14시 04분 : 약수암..

1904년 흥선대원군의 수양딸인 성주스님이 궁의 지원을 받아 창건하였으며 1927년 도삼스님이 중건하였다.

이곳은 비구니 도량으로 약물이 나온다고하여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 약수정..

 

▲ 처음보는 약수터 모습이다..

 

약수물이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어 한센병 환자들이 이 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 죽림선원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죽림선원은 약수암 창건시 양철로 지붕을 덮은 선원이 개원되었다. 그 후, 허물어진 선원을 일으키기 위해 비구니 스님들이

탁발을 도모하여 개축하였으며, 1972년 법공스님이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선원을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 약수암을 끝으로 12암자 탐방을 마치고..

 

▲ 주차장으로 가는길이 가을스럽게 아름답다.

 

깃대종(flagship species)이란...

유엔환경계획이 만든 개념으로서,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주요 동·식물을 뜻한다.

'깃대'라는 단어는 해당 지역 생태계 회복의 개척자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상징적 표현이다.

가야산의 깃대종에는 "가야산은분취" 와.. "삵" 이 있다.

 

14시 12분 : 치인주차장까지 1.1km..이정표

14시 40분에 대구로 가는 차가 있다.. 약15분이면 갈수있는 거리다..

 

▲ 허덕교에서 바라본 해인사 단풍인데.. 6일만에 이렇게 변했다..

 

▲ 14시 28분 : 해인사입구 정류장..

 

▲ 트랭글을 정리해보니 1사 12암자를 걸어온 거리가 만만찮다.. 운동거리 11km에 평균속도 2.5km/h다.

 

▲ 해인사입구 정류장 지킴이 들냥이..

 

▲ 버스를 기다리는동안 10배줌으로 당겨온 가야산 정상부..

 

비록 불자는 아니지만..

언젠가 걷고 싶었던 명산 대찰인 해인사와 12암자 도보탐방을..

 

보현암 혜춘스님 말씀처럼..

불현듯..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다녀간다..

 

가을의 끝자락..

자연이 내어준 아름다운 길위에서 마무리 할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다..

2024년 11월 07일(목).

가야산국립공원 : 경남 합천군/경북 성주군.

 

산행코스 : 법전리2주차장-마수폭포-법전리개방코스-칠불봉-상왕봉-토신골-성보박물관-해인사주차장.

산행시작 : 법전리2주차장  09시 36분.

산행종료 : 치인리주차장  15시 45분.

전체거리 : 약12.6km.

전체시간 : 06시간 09분.

운동시간 : 05시간 02분.

휴식시간 : 01시간 07분.

 

09 : 36  법전리2공영주차장.

09 : 41  법전리1공영주차장.

09 : 45  법전탐방지원센터.

09 : 49  마수폭포.

10 : 28  법전리개방코스입구.

12 : 53  칠불봉.

13 : 10  상왕봉.

13 : 46  토신골석조마애불.

15 : 34  성보박물관.

15 : 45  치인리주차장.

 

09시 32분 : 경북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2공영주차장 도착..

 

아박산이 올려다 보이는 법전리 마수골 일대는 조선시대의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서 언급한 십승지지(十勝之地)중의

한 곳인 '가야산 만수동'을 가리키는 마을이다. 실제로.. 마수리(법전동) 뒷산에 만수동이란 글씨가 쓰여진 표지석이 있다.

 

가야산을 배경으로 화랑님들의 단체샷..

오늘은 겨울의 문턱인 입동날이다.. 풍수지리 사상에 기반해 전란이나 흉년, 질병을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다는 십승지지

(十勝之地)의 명당마을인 법전리에서 역전의 용사들 답게 화랑님들의 홧팅!~ 소리도 우렁차다..

 

올라야 할 가야산 마루금을 가늠해보고..

 

 09시 36분 : 간결하면서도 실속있는 안내도를 보며 가야산을 향해 출발!~..

그런데.. 내용중에 이해가 안가는 옥의 티가 보인다.. 칠불능선과는 거리가 먼 "칠불능선 탐방로입구"라고 되어 있다.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 안내도.

선비산수길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총 11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독용산성에서 성주호 제방까지를 1코스로

‘성주호 둘레길(26.2㎞)’을 만들고.. 2코스는 마수폭포에서 청휘당까지 ‘가야산 에움길(11.3㎞)’을 조성하었다.

 

오늘의 등반코스인 법전리~가야산 개방구간은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인 에움길을 따라가다가 법전리 탐방로입구에서

가야산까지 새로 조성한 개방구간으로 올라갈 것이다..

 

 올가을에 본 단풍중에 제일 고운것 같다..

 

가야산 상왕봉과 칠불봉.

가야산의 최고봉은 칠불봉으로 해발 1433m이지만 가야산 주봉으로서의 지위는 1430m인 상왕봉에게 뺏겼다.

칠불봉은 경북의 성주군에 속하고 상왕봉은 경남 합천에 속한다.. 주봉의 지위 뿐만 아니라 산의 이름까지도 성주 가야산이

아닌 합천 가야산으로 빼앗겼는데.. 가야산에는 가야산보다 더 유명하고 우리나라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해인사가 있고

그 해인사가 합천군에 있으니 가야산은 합천 가야산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가야산은 몰라도 해인사는 다 안다..

가야산 자락에 해인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해인사가 가야산을 품고 있는 것이다.

 

09시 36분 : 법전리1 공영주차장(승용차 전용).

 

 09시 45분 : 법전탐방 지원센터.

 

봉양법전탐방로입구.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 에움길의 시작점이다.

에움길은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가야산 법전탐방지원센터에서 성주군 수륜면 신파리 청휘당까지 11.3km다.

 

마수폭포에 다녀오기로 한다..

 

 09시 49분 : 마수폭포(일명 죽전폭포).

 

다시 봉양법전탐방로입구로 돌아와서...

 

입동날 아침에 매우 추울거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걸음수가 더해짐에 따라 몸이 기분좋게 더워지고.. 산과 숲과 햇살이 보듬어주는 분위기 좋은 가을길이다.

 

지난해 환경부가 국립공원 가야산 내 신규탐방로로 지정.고시한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칠불봉 간 2.8km 구간을 성주군

에서 국립공원 가야산을 종주할 수 있는 길이 52년 만에 열려 명실공히 ‘성주 가야산 시대'가 열렸다.

 

화랑의 히어로(hero)인 산대장님이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산대장은 산악회의 얼굴이요.. 거울이다.. 늘~ 웃음띤 얼굴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09시 49분 : 법전리탐방로 입구..

아래는 또.. 칠불능선탐방로라고 되어있다.. 차라리 "칠불봉탐방로" 라고 하던지.. 성주군은 가야산국립공원의 신규탐방로

인 ‘가야산 법전리~칠불봉’ 간 2.8km의 구간을 2024년 6월 24일부터 개방햐였다.

 

써~억.. 고운 단풍색깔은 아니지만... 지난 여름날의 모진 폭염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그래도 이 만큼의 단풍색을 보여주려고 몸부림을 쳤을 나무들에게 수고했노라고 격려해주고 내년울 기대 한다.

 

단풍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광합성과 관련이 있다. 나무는 봄과 여름 동안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잎 속의 엽록소를 사용한다. 엽록소는 녹색을 띠며.. 이 성분이 햇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잎이 녹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더 이상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엽록소가 분해되기 시작하면서.. 나뭇잎의 초록색이 점차 사라진다.

엽록소가 사라진 후에는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이라는 다른 색소가 나타나게 되고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등의

아름다운 단풍이 만들어 진다.

 

탐방로 안내도를 보니 법전리개방구간을 3분의 1정도 올라 왔고.. 지금부터 난이도가 가팔라진단다.

 

 개방된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날것 그대로의 원시림이다..

 

아직도 아물어지지 않은 상처..

 

 11시 21분 : 처음으로 조망이 터지는 바위전망대..

 

 칠불봉에서 동성봉으로 이어지는 동장대능선..

 

 경북 성주군 방향...

 

 전망바위를 지나서부터는 오름길이 더욱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조여사님의 배낭꼬리도 잡고.. 핵폭탄님의 포도로 당보충을 한다.. 잘먹었습니다..

 

 첫 계단..

 

 두번째계단은..

 

 제법 길게 이어진다..

 

 세번째 계단..

 

 네번째 계단에서는 뒤를 돌아보는 핑계로 숨을 고른다.

 

노각나무.. 지대가 높고 척박한 곳인데도 이렇게 굵게 자랐다.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학명에 ‘koreana’라는 지역 이름이 들어간 순수 토종나무인 노각나무 이름의 유래로는 사슴뿔처럼

보드랍고 황금빛을 가진 아름다운 수피라는 뜻에서 녹각(鹿角)나무라고 하다가 발음이 쉬운 "노각나무"로 되었다.

 

고도가 높아지니 고드름이 꽁꽁이다..

끝날것 같던 계단은 올라서면 또 나타나고... 그렇게 지겹게 나타나던 계단을 서너개 지나고 나서..

 

 여덟번째 철계단을... 마지막으로 올라서니...

 

 경북 김천방면으로 시야가 터진다..

 

 서릿발..

 

 12시 40분 : 주능선에 다 올라 온것 같아서..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민생고 해결..

 

길가에 풍혈이 보여서 안쪽을 들여다 보니 대략6~7m의 깊이다.

 

 12시 46분 : 드디어 능선에 도착..

칠불봉100m...상왕봉 200m.. 먼저 칠불봉에 다녀 온다.

법전리 개방코스는 한마디로 두번 다시 오르고 싶은 생각은... 1도없는 코스다.. ㅠㅠ~.

 

경북과 경남의 경계지점에서 바라 본.. 상왕봉...

 

 대구방향..

 

가야산의 이름은 가야산(伽倻山) 외에도 우두산(牛頭山). 설산(雪山). 상왕산(象王山). 중향산(衆香山). 기달산(怾怛山)등

여섯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監)"권30 택리지에 가야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높고 수려함과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영험함을 말하여. 명산으로 불렸다 한다.

 

 12시 53분 : 칠불봉 도착..

칠불봉(七佛峯)은 가야국(伽倻國)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아들 거등(居登)은 왕위를 계승하여. 김씨(金氏)의 시조(始祖가 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의 성씨(姓氏)를 따라서

허씨(許氏)의 시조가 되었고. 나머지 7명의 왕자는 허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후 도를 깨달아 생불(生佛)이 되었다. 하며 그 밑에 칠불암(七佛庵) 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되어 이름 지어졌다.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열반에 들기 위해 칠불봉에서 수행을 했는데 오르기가 너무 험해서.. 어머니 허황후가 왔다가

되돌아갔다는 안타까운 옛이야기가 전해지는 봉우리다.

 

 동성봉의 동장대 능선..

 

서장대(상아덤)와 만물상 능선..

가야산은 여신인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하가 처음 만난 곳이다.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르는 신이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여신의 바위란 뜻의 상아덤에 내려앉았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기록은 최치원의 석순웅전'과 '동국여지승람'에 전해 오고 있다.

 

가야국 수로왕에게는 아들이 열 명 있었는데 1인은 태자가 되고  2인은 허씨를 내리고 일곱 사람은 인간 세상을 끊는 데

뜻을 두어, 보옥선인을 따라 가락산으로부터 운상원에 들어가 도를 배워 부처가 되었는데 그들을 일곱명의 부처 칠불

이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가야산에 존재하는 명칭인 상아덤 그리고 칠불봉이 생겨난 것이란다.

 

▲ 경북 성주군의 칠불봉에서.. 경남 합천군의 상왕봉으로..

 

▲ 난공불락의 철옹성처럼 우뚝 솟아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상왕봉..

 

▲ 상왕봉 오름계단.. 작년에는 고무발판이었는데 새로 바뀌었다..

 

13시 11분 : 상왕봉 정상석에는 가야산 우두봉이라 되어 있다.

가야산국립공원은 1972년 10월 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됐으며 전체면적은 7만 6256㎢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가 서로

잇대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산의 우뚝 솟은 상왕봉은 해발 1430m의 늠름한 위용을 자랑하며 가야산 전체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가야산은 오래전부터 해동(海東)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난 곳으로, 현재 우리나라

10대 명산으로 꼽혀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옛 선현들은 "산형은 천하에 절승(絶勝)하고 지덕(地德)은 해동에서 제일"이라고

가야산을 극찬했다. 범상치 않은 기상과 수려한 풍광은 예나 지금이나 훌륭하다. 가야산에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

으로 '팔만대장경'를 봉안한 해인사가 있으며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 도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경 가운데 가히

으뜸이라 불린다.

 

▲ 봉천대 가는길.

 

상왕봉에서 바라 본 칠불봉.

 

▲ 우두봉의 우비정... 소의 콧구멍에 해당된다고 한다.

자연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다.. 바위뿐인 이곳에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이다.

 

▲ 해인사 하산길..

 

▲ 뒤돌아 본 상왕봉.

 

▲ 가야산 제18경인 봉천대(奉天臺)... 가야산 중턱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 봉천대의 깍아지른 바위절벽이.. 마치.. 인디언 추장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이다.

 

▲ 시절이 하수상 하니... 꽃들도 정신을 못차린다.

 

13시 35분 : 일명.. 만세바위.

 

▲ "만세바위"라고 어느분이 지었는지.. 두손을 번쩍들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다.

 

▲ 봉천대 암릉이 어마무시하다..

 

▲ 가야산 생태계 감시카메라..

 

13시 44분 : 가야산 석조여래입상 가는길. 50m다..

 

▲ 13시 46분 : 가야산 석조여래입상..

 

▲ 마당바위..

 

▲ 유(柔:부더러움)함이 강(强:단단한것)함을 시간으로 이기는 방법이다..

 

▲ 용탑선원 칠불보궁..

용탑선원은 3.1독립운동 민족대표 백용성 조사(1864~1940)의 유덕과 유훈을 기리는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해

1945년 경성선사를 비롯 문도들이 세운 절이다.

 

용성조사의 용(龍)자와 사리탑의 탑(塔)자를 취해서 용탑선원이라 하고 참선정진하는 도량으로 창건하였다.

용성선사 용탑과 비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보물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72권을 소장하고 있다.

칠불보궁전에는 용성스님과  12제자의 초상이 보전되고 있으며  석굴암인 미타굴이 있다.

 

15시 14분 : 토신골탐방로 입구..

 

▲ 하산시간 15시 30분까지 주차장 도착은 무리일것 같아서 해인사 탐방은 통과.

 

▲ 해인사 일주문..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곧.. 있는 그대로의 세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세계이니

바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해인삼매는 또한 오염됨이 없는 청정무구한 우리의 본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우리의 마음이 명경지수의 경지에

이르러 맑고 투명해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한없이 깊고 넓으며 아무런 걸림 없는 바다에 비유되어 거친 파도, 곧 우리들 마음의 번뇌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해인삼매라 하였다.

 

▲ 영지..

가락국 허황후가 가야산 칠불봉으로 출가한 일곱 왕자들을 그리워하여 그림자라도 보게 해달라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했다는 곳이다... 가야산 정상이 이 연못에 비쳤다고 한다.

 

15시 34분 : 해인사성보박물관..

 

15시 45분 : 치인리주차장 산행종료..

 

▲ 트랭글을 정리해 보니..

전체거리 12.6km중에 개방구간 2.8km의 난이도가 높은 철계단구간을 포함해도 평균속도 2.5km/h의 아주 양호한편이다.

 

▲ 거창 오도산 너머로 하루해가 숨어든다...

 

중용(中庸)에..

등고자비(登高自卑).. 행원자이(行遠自邇)라 했다..

높은 곳을 오를 때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먼 곳을 갈 때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가야산은.. 한국의 명산으로..

첫째.. 산신을 상징하는 정견 모주라는 여신의 산이고...

둘째.. 호국불교의 성지로서 상징되는 산이고...

셋째.. 최치원(崔致遠)의 은둔 이후 역대 문인들의 유람과 풍류의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산이다.

 

가야산..

그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가장 낮은 자세인 민초들의 삶이 녹아있는 법전리에서 출발 하였고

그 멀고도 먼 이상과 진리의 세계를 엿보기 위한 천리길을 한걸음부터 시작하였다.

 

시간에 쫏겨 해인사에 들리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지만..

무사무탈에 감사한 하루다.

2024년 10월 27일(일).

용지봉 : 대구시 수성구.

 

산행코스 : 용지역-대덕지-용지봉-애기봉-체육시설-조망바위-법니산-지산동대포항횟집.

산행시작 : 용지역  08시 58분.

산행종료 : 대포항횟집  16시 14분.

전체거리 : 약8.59km.

전체시간 : 07시간 16분(의미없음).

운동시간 : 04시간 18분.

휴식시간 : 02시간 57분.

 

08 : 58  용지역.

09 : 11  대덕지.

13 : 29  용지봉.

14 : 00  애기봉.

14 : 36  체육시설.

15 : 00  조망바위.

15 : 34  법니산.

16 : 14  지산동대포항횟집.

 

 08시 58분 : 3호선 용지역에서 산행출발..

집에서 나올때 까지만 해도 오늘의 대구날씨는 흐리지만 비소식은 없다는 예보였다..

그런데 흐리기는커녕 의외로 용지역의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빛이다..

 

수성구의 복명초등학교 높은 담장위로 한줌의 아침햇살이 머물고 있는 용지봉을 향해서...

 

 09시 07분 : 814시내버스 종점이면서 공영주차장을 가로질러서..

 

대덕지 제방에 가득한 국화향에 취하고..

 

향기나의 미소도 피우고...

 

진밭골입구의 대덕지.. 그런데 수성구청에서는 "가라지"라고 부른다...

 

대덕지 상류를 지나자 말자 급경사로 치오름을 하는 입구에서부터 하늘빛이 이상해 진다..

방구돌을 돌아가는 급경사구간을 마지막으로 치고 오르면..

 

용지봉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지능선 마루금에 올라선다..

 

▲ 잣나무숲길에서는 완전히 습도가 높아지고..

 

 가지버섯..

포자식물이 좋아하는 조건이 되었는지 길가에 온통 가지버섯 군락지를 만난다..

 

 가지버섯 대박에..

 

기분좋은 항기나팀은 현풍아우가 가져온 음양곽주로 즉흥파티가 벌어진다..

음양곽(삼지구엽초)은 염소가 이풀을 먹고 하루에 백번을 교미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풀이다.. 좌우지간 좋다..ㅎㅎ~

 

 그렇게 시작된 한잔이... 음양곽 1병을 비워버리고.. 조고문님의 특제양주까지 나오고.

 

 이렇게 판이 커져 버렸다.. 바쁠것 없는 근교산행이라 느긋하다..

 

다시 길을 이어가는데 가지버섯이 또다시 유혹한다...

용지봉이 내어주는 것을 우리는 향기나원칙에 따라서 합동생산을 하고 공동분배를 한다.

 

12시 20분 : 이번에는 꼬부랑술과..

 

 꼬부랑과자 잔치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느맛과도 비교불가한 산상 커피다.

 

하늘님은 무슨 배알이 그렇게나 틀렸는지.. 잔뜩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방울 두방울 듯기 시작한다..

 

진밭골에서 올라오는 주등로와 만난다.

 

용지봉으로 가는 가을길... 분위기 좋고 조코!~..

 

비는 다행히 는개비수준이라서... 산행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대덕산에 드리운 구름띠..

 

헐티재를 넘어 비슬산으로 이어지는 가창방면의 병풍산 능선..

 

언제나 그렇듯이 용지봉 돌탑이 여전히 반겨준다.

 

13시 29분 : 용지봉(龍池峰).

과거 큰 홍수가 나서 한 마리의 용이 앉을 공간만 남기고 모두 침수되었다. 그때 침수되지 않고 남은 부분이 마치 용의

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철탑이 있는 올라왔던 능선 그 뒤쪽은 대덕산이고... 오른쪽 골짜기끝에는 진밭골이다.

 

수성구 최고의 조망터인 용지정.

 

 당겨 본 청룡산.

 

 향기나의 살림꾼 안방마님들..

 

용지봉은 구름에 잠기고..

 

 꽃향유 군락지..

 

14시 36분 : 체육시설..

 

 청음정(淸音亭).. 맑고 청아한 자연의 소리를 듣는 곳이다.

 

15시 00분 : 조망바위.

 

15시 34분 : 법니산..

 

지산배수지 방면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불교한방병원이 보이는 지점으로.. 산행종료

 

 

하산식의 향기나님들..

 

오늘의 용지봉 산행은..

맑았다가 흐리고 급기야 비까지 내렸지만..

 

다행히 큰비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내어준 선물에 감사하고

하산하여서는 현풍에서 먼길에도 한달음에 달려와준 아우님들 고마우이~

2024년 10월 25일(금).

가야산국립공원 : 경남 합천군.

 

산행코스 : 길상암주차장-보궁-노구승천암-입술바위-오봉산-남산제일봉-돼지골갈림길-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산행시작 : 길상암주차장  09시 24분.

산행종료 : 해인사터미널  15시 15분.

전체거리 : 약6.91km.

전체시간 : 05시간 51분.

운동시간 : 04시간 02분.

휴식시간 : 01시간 48분.

 

09 : 24  길상암주차장.

09 : 35  마야불모전.

09 : 59  보궁.

11 : 13  돌고래바위.

11 : 17  노구승천암.

11 : 50  입술바위.

13 : 15  오봉산.

13 : 56  남산제일봉.

14 : 20  돼지골.

15 : 15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07시 30분 : 서부정류장에서 함께할 동료를 만나고..

 

▲ 해인사로 갈때는 08시 00분에 출발... 올때는 오후 16시 00분차로...

 

▲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까지의 요금은 8900원.. 예매..

 

▲ 서부정류장 2번승차장에서 해인사행 리무진버스탑승.

 

09시 21분 : 해인사 길상암주차장..

한글 길상암은.. 국산표기법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자는 중국식표기법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이다...

"불타미아무나".. 헷갈린다.. 부처님도 한국에서는 한국법을 따르라고 하실텐데..ㅎㅎ.. 나무 아미타불!~~..

 

▲ 오늘의 산행코스는 길상암을 병풍처럼 둘러선 암릉.. 길상암에서는 묘길상봉이라 부르는.. 저곳으로 오를것이다.

 

▲ 길상암 불광보탑.

미얀마 불교협의회의장 종정 우쇼비타 대종사가 모시고 있던 사리를 불기 2538년(서기1994년) 1월 15일 미얀마를 방문한

명진 스님께 9과와 가사발우 일체를 전하고 2539년(1995년) 11월 3일 25과의 사리를 합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

34과를 모신 탑이다.

 

▲ 길상암 입구.

창건 일화를 보면 자운스님이 1969년에 스리랑카 사타티싸 스님으로부터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사리 2과를 모셔왔고 영암

스님과 함께 봉안할 장소를 찾다가 1972년에 이곳에 창건하였고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보궁이 있다.

 

▲ 길상암 오름계단에서 좌측으로 열려있는 길을 따라서 한국에서는 여기 한곳 뿐이라는 불모전에 들린다..

 

▲ 마야불모전.

 

▲ 마야부인상.

아기 석가모니가... 왼손은 땅을.. 오른손가락은 하늘을 가르키며.."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라!~~ 하고.. 이 연사 힘주어 외칩니다!~.. 하는 모습이다..

 

▲ 다시 길상암으로...

 

▲ 길상암과 마주보이는 835봉.. 서장대에서 흘러내린 능선상의 봉우리로 기운이 좋은 곳이라고 한다.

 

▲ 길상암 나한전에서 보궁으로 가는길로 올라서면...

 

▲ 관음전 터.

1999년 8월 2일에 발생한 화재로 복원중이라고 한다.

 

▲ 대각천이라는 샘이 있다... 깨달음을 얻는 샘이라는 뜻인듯 하다..

 

▲ 계단을 올라서면 제일먼저 동종이 반긴다..

 

09시 59분 : 길상암 보궁에는 진신사리와 세분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다.

 

▲ 길상암 보궁 오른쪽계곡에 출입금지라는 표지앞을 지나서..

 

▲ 노구승천암으로 가는 들머리는 길상암 보궁앞을 지나면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 며칠전에 내린 비로 낙엽과 마사토가 쓸려 내려와 길을 덮었지만.. 흔적은 보인다.

 

▲ 안부에 올라서면 엄청난 바위가 길을 막고 섰지만..

 

▲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충분히 오를수 있는 홈통을 오른다.

 

▲ 삼지창바위가 거친모습으로 서있고 천천히 살펴보면 바위틈 사이시이로 내어주는 길을따라 올라선다.

 

▲ 삼지창바위에 올라서면 밑에서 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암봉이다.

 

▲ 암봉을 넘어서..

 

▲ 두번째 암봉 중간 지점에 올라서니 선답자님이 저 슬링밧줄을타고 올라가지 말라고 했던 간이밧줄이 보인다.

저기로 올라가면 그위에 더 높은 절벽길이 있어 올라가지 못하고 결국은 돌아서 내려 와야 한다고 한다.

 

▲ 오른쪽 절벽에서 내려다 보니 암릉 밑으로 돌아가는 안전한 길이 보인다.. 다시 내려 간다..

 

▲ 암봉밑을 돌아서 선답자가 올라가라고 했던 지점을 만난다.

 

▲ 아래로는 암릉위의 멋진 소나무가 있고...

 

▲ 바로 위에는 돌고래를 만난다.

 

▲ 여기.. 돌고래바위가 풍경맛집이다..

서북쪽으로 치인리 집단상가 마을이 보이고 김천의 단지봉도 보인다.

 

▲ 북쪽으로는 해인사가 눈에 들어오고...

가야산에서 거창의 우두산과.. 김천의 단지봉으로 이어지는 두루봉 능선이 마루금을 그리며 달려 간다.

 

가야산은 백운에 싸여 있다.

 

▲ 당겨 본 해인사 성보박물관.

 

▲ 가야할 암릉을 올라서니..

 

11시 17분 : 노구승천암..

 

▲ 꼭 만나고 싶어서 힘들게 올라온 노구승천암이기에 자꾸만 눈이 간다.

하늘로 오르려는 거북이의 형상이라는 늙은거북이다.. 그래서 노구승천암(老龜昇天巖)이라 부른다고 한다.

 

▲ 넌 뭐냐?...

 

▲ 입술바위 오름길..

온통 바위뿐인것 같아도... 이렇게 길을 내어 준다.

 

▲ 입술바위 오른쪽으로 그 누구의 오름도 허락하지 않을것 같은 별개의 암봉이 있다.. 그래도 누군가는 오를것이다..

 

▲ 근래에 만나지 못한 노거송을 여기서.. 만난다.. 굵기가.. 성인남자 5~6명을 합친 정도다..

 

13시 15분 : 오봉산..

 

 13시 45분 : 돼지골갈림길 쉼터..

 

남산제일봉까지 0.7km.. 왕복 1.4km.. 다녀와서 치인리 주차장으로 하산할 것이다.

 

▲ 돼지골쉼터에서 올라가는 마지막 마의계단이다.

 

▲ 남산제일봉은...

멀리서 보면 정상의 형상이 이글거리는 불꽃과 같아서 화기(火氣)의 기운이 강한 산이라고 한다.

 

▲ 남산제일봉의 오엽송이 여전히 늠름하다..

 

13시 55분 : 남산제일봉에 전에 없던(?) 죠스바위가 있다...

 

▲ 남산제일봉에 묻혀 있는 소금단지 전설.

해마다 단옷날이 되면 해인사 스님들이 산꼭대기에 다섯 개의 소금 단지를 동서남북의 네 방향과 중앙에 묻으며 한 해 동안

불이 나지 않기를 기원하는데.. 소금을 묻는 행사는 불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남산제일봉의 기운이 해인사 대적광전의 기운과

맞부딪쳐 큰불이 일어난다 하여 남산제일봉이 품고 있는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해마다 계속되어 왔다고 한다.

 

▲ 청량사방향 하산능선...

만물상에 버금가는 멋진능선인데.. 버스시간을 못마출것 같아서 아쉽지만 돼지골로 하산한다.

 

▲ 불꽃바위..

 

▲ 절묘하게 받치고 있는 바위조각..

 

▲ 척박한 바위사이에 홀로선 오엽송에게 응원을 보내준다..

2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푸르름 잃지 않고 그모습 그대로 서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움이 든다.

 

▲ 앞뒤의 바위가 겹친 모습이 새처럼 보인다...

 

▲ 길가에 노송의 고목이...나는... 속을 다 비워버리고 수많은 시간을 견디며 이자리를 이렇게 지켜 왔노라며... 인간의 얕아

빠진 마음보를 나무라는 것 같다..

 

▲ 돼지골의 가을은 시작도 하기전에 말라 비틀어 떨어지는 잎이 더 많은것 같다.

 

▲ 작년 2023년 4월에만 해도 영업중이었던것 같았는데... 일부는 허물어지고 있다.

 

15시 07분 : 돼지골탐방지원센터.

 

▲ 치인리 집단상가지역..

 

15시 15분 : 치인리..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 어느날 인터넷 서핑중에 눈에 확~ 들어온 노구승천암... 그곳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듬뿍 받은 탓인지 몸도 가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16시 정각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치인리를 떠난다.

2024년 9월 22일 오늘의 동선이다.

 

오늘의 향기나번개팀은 경북 경주시 외동읍 아기봉산(236m)에 올랐다가 감포읍 전촌항의 사룡굴과 단룡굴을 보고 감포항

수협활어직판장에서 회를 구매하여 대구로 오면서 물좋고 정자 좋은곳에서 하산식을 할 예정이다.

 

2024년 09월 22일(일).

아기봉산/전촌용굴 : 경북 경주시 외동읍/감포읍.

 

산행코스 : 수곡사주차장-아기봉산-아암-건국사-수곡사주차장.

산행시작 : 수곡사주차장  09시 25분.

산행종료 : 수곡사주차장  11시 07분.

전체거리 : 약2.52km.

전체시간 : 01시간 42분.

운동시간 : 01시간 42분.

휴식시간 : 00시간 00분.

 

09 : 25  수곡사주차장.

09 : 56  아기봉산.

09 : 58  아암쉼터.

10 : 15  아암정상.

10 : 49  건국사.

11 : 07  수곡사주차장.

 

09시 25분 : 수곡사주차장.

 

대구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경주IC를 빠져 나오니 14호 태풍 "풀라산"의 영향으로 "는개비"가 내리더니 수곡사

에 도착하여서는 이슬비로 바뀐다...

 

아가봉산은 등산로 정비도 잘되어 있고 전체 산행거리도 짧은 산이라서 우산을 쓰고서라도 올라가자는 쪽으로 일치...

그런데 등산로 입구에 커다란 거울이 설치되어 있다.. 어떠한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으로 추측컨데 바른 마음과

단정한 산행복장인지를 비춰보고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다시 거울앞에 서서 오늘의 걸음이 자연에 부끄럽지 않은 산행을

하였는지를 반성해 보라는게 아닐까... 라는 의미를 부여해 본다.

 

수곡사주차장에서 원점회귀산행을 하는 소요시간이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산인데도 갈림길 요소요소에 이정표 하나는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아담싸이즈의 앙징스런 꼬마 이정표도 안내를 거들고 있다...

 

▲ 기암(권총바위)...

바위는 바라보는 각도와... 보는 사람마다의 느낌이 각기 다르다..

 

▲ 지능선에 올라서니... 비 멎은 싱그런 숲속공기가 너무 상큼하다..

 

▲ 등산화 바닥으로 전해지는 촉촉한 마사토흙을 밟는 촉감도 좋고..

 

▲ 안개가 자욱하지만 솔바람에 묻어오는 피톤치드향에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아기봉산의 아기가 사용하던 요강바위일까.. 아니면.. 아기장수의 태를 담은 신주단지 일까..

 

 09시 56분 : 아기봉산(236m) 정상인데 아무런 표시가 없다.

여기서 화살표를 따라 가면 커다란 방구돌들이 있는데 습기를 머금은 이끼가 미끄러워서 통과다.

 

 09시 58분 : 아기봉산의 아기바위(兒巖) 쉼터.

 

아기바위 쉼터에서 아기봉전설을 알리는 안내판을 읽어보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 아이가 죽임을 당한 뒤 포대기에 싸여 줄로 묶였다는 형상의 바위다.

 

앞쪽에 있는 아기봉 전설을 보면..

옛날에 하늘나라 선녀가 한 남자와 연애를 하다가 임신을 하게 되어 하늘나라에서 쫓겨나서 이곳 바위에서 아기를 낳았고그 아기는 너무 똑똑하여 삼칠일(21일)만에 일어나 걸으며 말을 하고.. 힘이 장사여서 석굴 앞에 있는 바윗돌(지름 50cm..

길이 1m)을 밧줄로 묶어지고 이웃 동몽산 꼭대기에 갖다 놓기를 반복하였다고 한다.

 

이 내용이 소문이 나서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갔는데 장차 왕의 자리가 위협이 될 듯하여 아이를 죽이라고 했다.

이에 군사들이 선녀가 잠자는 틈을 타서 아이를 죽여서 끈으로 묶고 포대기에 싸서 시체를 들고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

 

군사들은 놀라서 아이 시체를 버려두고 모두 도망쳤는데 이때 잠에서 깬 선녀는 돌로 변한 아이의 시체 위에 엎드린 채

죽고 말았다. 그 뒤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 봉우리를 아기봉이라 불렀고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이 바위에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 그런데.. 난데 없는 한국풍수선양재단 성지라는 비석이 서있다.. 자장율사.. 원효대사.. 의상대사 까지..

 

▲ 아기봉산 제1석문..

우리나라 에서 가장 석문이 많은 곳이 이곳 아기봉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곳곳에 석문이 형성되어 있다.

 

▲ 아래쪽에 쫏겨난 선녀가 기거했던 곳이 아닐까 싶은 커다란 굴이있다..  누군가가 관리를 하는것 같은 흔적이 보인다.

 

▲ 아기봉 암릉.. 사진 찍기 정말 멋진 장소다.

 

▲ 향기나 팀.. 참 보기좋은 팀이다.

 

▲ 이암릉에도 올라서면.. 사진 찍기가 좋은곳인데 이끼가 미끄럽다.

 

▲ 역시나 향기나산대장님이다.. 나도 일주일만 젊었어면 올라갔을텐데 ㅠㅠ~.. 오늘은 참는다.

 

▲ 차~암 보기 좋다.

 

▲ 다들 협곡건너 아기봉암릉 아래 포토존에서 향기나 모드(1)로...

 

향기나 모드(2) 기차놀이로...ㅎㅎ~.

 

▲ 이번에는 향기나 모드(3) 아이돌 자세로...

내가 카메라를 놓지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키는 자세로 다 한다ㅋㅋ~.

 

▲ 누가 더 오늘의 향기나 아이돌인지 당겨 본다...ㅎㅎ~.

 

우리는 향기나~야...

우리는 아기봉에 올랐어~...

우리는 어른돌이 아니야.. 향기나는 아이돌이야~.. 오~예..

 

▲ 아기봉산 제2석문..

 

▲ 차~~~ 암.. 더더욱 보기 좋다.

 

▲ 저 멀리 기암 전시장같았던 마석산마루에 구름이 쉬고 있다.

 

▲ 아기봉산 제3석문..

 

▲ 아기봉산 제4석문..

 

▲ 아기장사가 괴나리봇짐처럼 등에 지고 다녔다는 돌이다.. 줄을 맨 흔적이 뚜렷하다..

 

▲ 외동읍 전경.. 국제신문에서 소개한 봉서산.. 삼태봉이 오라고 손짓한다.

외동읍이라는 지명은.. 경주에서 동쪽 끝에 가장 멀리 있는 동네라서 외동이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 아기를 씻겼다는 돌 대야가 보이고 물이 흐른자국이다.

 

▲ 아기장수가 향기나팀을 따라 왔는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위를 밀고 있다.

 

▲ 수많은 시간과 사연이 켜켜히 쌓여있는 아기바위에서 천상선녀의 마음으로 하늘의 소리를 들어 보려고 하였으나

잔뜩 흐린 하늘을 뒤로하고 툭툭 털고 일어 난다.

 

▲ 아기봉산 제5석문을 통하여 쉼터로 내려 간다... 5석문외에도 더 있지만.. 바위가 미끄러워 찾아다니지를 못했다.

 

▲ 아기봉산 쉼터 내려가는길이 매우 미끄럽다 조심조심..

 

▲ 아기봉산 쉼터에서 양맥에 막걸리까지..

 

▲ 하산은 건국사쪽으로..

 

▲ 바위에 붙어서 힘겹게 살아가는 생명에게 악착같이 살아남아라는 응원을 보낸다..

 

▲ 과거에 석봉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자연인의 집처럼 되었다.

 

▲ 건국사 극락보전..

절간같이 조용하다.. 라는 말처럼 정말 적막강산이다..

 

▲ 사찰에서는 처음보는 성사전이다... 건물 뒤쪽의 바위가 아미타불을 닮은것 같다.

 

▲ 건국사주차장이 제법 넓은것으로 보아서는 한때는 잘나갔던 사찰이었던 모양이다.

주차장에서 아래로 바로 내려가면 수곡사주차장까지는 한참을 돌아서 가야 되기에...

 

▲ 주차장 윗쪽에 있는 철계단을 타고 숲으로 가면 지름길이고 수곡사 경내로 연결 된다.

▲ 수곡사 뒷길로 들어가면...

 

▲ 수곡사 장돗대... 규모를 보니 꽤나 많은 신도들이 다녀가는가 보다..

 

▲ 수곡사 대웅전...

 

수곡사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제시대.. 일본 미쓰비시사에 강제징용 되었던 징용자들이 해방을 맞이하여 1945년 10월 11일 귀국선을 타고 돌아오다가

큐슈섬과 대마도 사이에 있는 이끼섬 부근에서 태풍을 만나 배가 침몰하며 탑승했던 징용자 168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

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 일을 가엾게 여긴 이끼섬 아시베항에 위치한 천덕사 주지 니시다니 도구린 스님께서 사고 이듬해부터 매년 11월 18일에

위령제를 모셔왔다고 한다. 1987년 수곡사 주지스님이 이 소식을 듣고 감사패 전달 후 위령패를 외동 수곡사에 옮겨와서

지금까지 격년제로 위령제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 수곡사 경내가 잘 정돈되어 있고 정갈하다...

 

11시 07분 : 수곡사 주차장 산행종료.

 

11시 10분 : 수곡사를 뒤로 하고 전촌항의 용굴을 찾아 간다...

 

 12시 02분 : 전촌항..

평생을 바다의 삶을 살아오신듯한 노어부가 그물 손질을 하고 있다.

 

태풍 "풀라산"이 동해로 빠져 나갔는지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 전촌용굴 가는길은 해파랑길 11구간의 일부다..

 

▲ 사룡굴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런데 소나무가 이상하다.

 

▲ 산불이 났었나? 하고 자세히보니 아니다.

 

▲ 재선충이다.

 

▲ 당국에서 사전 예방이나 막을수는 없었는지.. 안타깝다.

 

▲ 사룡굴 가는길을 지나서.. 단룡굴부터 먼저 다녀오기로 한다.

 

▲ 단룡굴은... 감포마을을 지키는 용이 한마리 살고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파도와 갯바위 접근이 상당히 까다롭고 위험하여 가까이는 갈수가 없다..

 

▲ 2022년 8월 15일 광복절에 다녀왔던 단룡굴 내부 인증샷이다...겨울날 아침에 이곳에서 보는 일출이 아름답다고 한다.

 

▲ 파도가 발밑까지 튕긴다... 이크!~~ 깜짝이야... ㅎㅎ.

 

▲ 역시나 바다는 파도다.. 강한 에너지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

 

▲ 파도를 뒤집어쓴 갯바위에 폭포가 생겼다.

 

▲ 사룡굴 내려 가는길...

 

▲ 사룡굴...

파도와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 조각품으로... 해식동굴인 "용굴" 이다..

사룡굴에는 동서남북의 각 방위를 지키는 네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 사룡굴위에... 용보다 더 용같은 용송이었는데 재선충으로 말라버렀다..

 

▲ 사룡굴앞에서...

젊은 아가씨에게 인증샷 부탁하였더니 파도가 칠때 타이밍을 잘 잡았다..

 

앞으로 7~80년 후쯤이면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가 이땅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나무가 사라지면 어떤 수종이 그 멋진 그림을 만들어 줄까..

 

▲ 전촌항으로 돌아가는길..

 

▲ 절묘한 순간 포착..ㅎㅎ.

바다를 바라보는 두사람의 뒷모습을 찍으려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획~ 돌아선다.. 오히려 기가막힌 타이밍이 되었다..

 

12시 58분 : 전촌항에서..

 

▲ 전촌항 길냥이가.. 이동네 터줏대감을 몰라본다며 괘씸하다고 노려본다..

 

▲ 용의 마을답게 전촌항 방파제에도 온통 용이다..

 

14시 07분 : 감포항활어직판장..

전촌항에서 출발 할때는 쾌청했던 날씨가 감포항에 도착하자 말자 빗방울이 굵어 진다..

 

▲ 태풍으로 조업을 못해 어종이 다양하지 못하다.. 전어는 아예 없다. 그래도 여성향기나님들이 횟감을 사고..

 

▲ 먹을곳을 찾아야 된다...

여기서 7~8분이면 가는 송대말등대로 가다가 방파제에서 자리를 펴면 되는데..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진다..

 

▲ 비내리는 감포항을 바라보다가 송대말등대는 포기하고 대구로 가다가 적당한 장소를 찾기로 하고 출발..

 

▲ 감포항에서 토함산을 넘고 불국사를 지나고 경주보문단지도 건너뛰고 경주IC 직전에서 농로로 접어드니.. 오는 내내

따라다니던 비도 그치고.. 그야말로 물좋고 정자좋은곳을 만났다. 마치 우리를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것 같은 장소다.

 

▲ 싱싱한 횟감으로 하산식 잔치다.. 홍여사님이 바리바리 준비한 깻잎 고추 된장.. 그리고 쐬주 한잔..

오늘의 향기나팀들의 컨셉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짜라짜라 짠짠이다.

 

▲ 푸짐한 회와 쐬주로 기분좋게 먹고 마시고..

누렇게 익어가는 벼처럼 풍성한 마음으로 마실을 둘러본다. 바로 건너보이는 기와집은 경주IC건물이다.

 

▲ 대천 상류쪽을 보니 경주 서면의 인내산에서 흘러내리는 대천을 사이에 두고 벽도산과 선도산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선도산은 태종무열왕릉이 있는 산이다.

 

대천 하류쪽은 형산강으로 합류된다.

 

▲ 서울방향의 경산휴게소에서 평소에 보기만하고 가보지는 못했던 신상리고분군에 올라가 본다.

 

▲ 초례봉.. 환성산.. 무학산너머로 하루가 넘어간다.

 

▲ 향기나 아이돌 놀이에 재미가 붙었다..ㅎㅎ.

 

▲ 오며가며 하루종일 핸들잡느라 고생많았습니다.

 

▲ 태풍따라 갔다가 태풍을 동해에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늘에서 가을이가 보인다.

 

오늘도 그렇게..

더더욱 항기나는 하루였다..

2024년 09월 19일(목).

박월산 문암산 쪼록바위 : 강원 태백시/경북 봉화군.

 

산행코스 : 장성터널입구-체육공원-박월산1-박월산2-애경바위-문암산-화성재-평천삼거리-쪼록바위봉-현불사주차장.

산행시작 : 장성터널입구  10시 28분.

산행종료 : 현불사주차장  17시 35분.

전체거리 : 약9.12km.

전체시간 : 07시간 07분.

운동시간 : 04시간 54분.

휴식시간 : 02시간 12분.

 

10 : 28  장성터널입구.

10 : 41  대명사.

10 : 47  샘터.

10 : 49  장성체육공원.

11 : 29  박월산1.

11 : 48  박월산2.

12 : 08  애경바위.

12 : 24  문암산.

14 : 25  화성재.

14 : 34  평천삼거리.

15 : 50  쪼록바위봉.

17 : 35  현불사주차장 종료.

 

 10시 28분 : 장성터널입구 로터리.

 

태백산 안내표지판 밑으로... 노견이 없는 도로를 따라 조심조심 3분가량 진행하여...

 

장성터널입구에서 좌측임도를 따른다.

 

절골을 향하여...

오늘 산행은 강원 태백시와 경북 봉화군이 경계를 이루는 산간 오지에 속하는 박월산과 문암산을 거쳐 경북 봉화의

쪼록바위봉을 오르는 오지산행이다..

 

길가에 잘 가꾼 토란이 보여서...

 

 나도송이풀...

꽃말은... "욕심" 이다..

 

대명사라고 하는데.. 사찰이라기 보다는 일반 기도원 같은 분위기다..

 

 대명사에서 1분 가량 진행하면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누군가가.. 도랑치고 가재라도 잡았는지.. 물길을 잘 다듬어 놓았다.

 

 물길을 올라서니.. 반듯한 등산로가 설치되어 있다.

조금전의 사방댐 진입로에서 7~80m만 더 진행하였더라면 저 다리로 건너오게 된다.

 

10시 47분 : 샘터..

안내문에 관리를 하고 있는 약수터라고 되어 있어서.. 마셔보니 달고 시원하다.

 

 10시 49분 : 장성체육공원.

 

이끼 낀 돌탑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습도가 80%가 넘는 느낌이다..

 

높은 습도에 양치식물군들이 좋아하는 환경에 "관중"들은 초록의 생기가 넘친다..

 

박월산 안부능선까지는 500m도 채 안되는 거리인데.. 바람 한점 없는 급경사에 지그재그도 아닌 직선구간에 마사토

길이라 체력소모가 많다.. 가파른 급경사 오르막을 앞사람 발뒤꿈치를 보고 따라가며 뒷사람 숨소리에 쫒기는 기분으로

급하게 오르다 보니 땀이 아닌 물이 이마에서 뚝뚝 떨어진다. 모두가 상의는 땀으로 흥건하다..

 

 11시 23분 : 박월산 안부능선에서 좌측의 박월산<1>정상에 다녀 온다..

 

배낭을 내려 놓고 박월산<1>으로...

 

 11시 29분 : 박월산<1>...

김문암님의 정상 표지목을 확인하고 톡으로 사진 전송..ㅎ~..

 

배낭을 놓아둔 박월산 능선 안부로 돌아와서...

장성체육공원에서 올라왔던 길을 째려 보며.. 너는 어찌 그리도 못됐노?.. 하는 눈으로 흘겨주고 박월산<2>로 향한다~..

 

박월산<2> 오름길...

 

▲ 깊이를 알수 없는 싱크홀 같은 수직굴이 악마의 입처럼 벌리고 있다.

 

 11시 48분 : 박월산<2>.

 

두개의 박월산 중에 지역주민들은 박월산<2>를 인정한다고...

 

편한 우회길로만 가다보니.. 용바위로 가는 길을 지나쳐 버리고...

 

두번째 암릉길 부터는 놓치지 않으려고 올라간다.

 

문암산 공룡능선...

 

남쪽으로 달바위봉이 보여서...

 

당겨 본 달바위봉..

 

 12시 08분 : 애경바위.

 

2014년 5월에 강원 태백시 장성동 기관장들의 모임인 장수회는 관내 문암산 일대 문화자원조사를 통해 애경바위에서

터번을 쓴 인물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염라대왕이 망인의 죄를 비쳐보는 업경(業鏡)처럼 바라보는 이의 선악이 비쳐진다

는 애경(崖鏡)바위가 절벽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전설에따라 이번에 발견된 터번을 쓴 인물상은 문암산(960m)에서 박월산

(915m)방면, 용 바위 이전의 커다란 암벽 아래쪽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인물상은 마치 녹슨 청동거울 마냥 푸르게 산화되어 있고 박월산으로 가는 등반객들을 공손히 맞이하는 형상으로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라 오랜 풍화작용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 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번 가보고 싶어서 아래로 내려 가는 길을 찾아 보았지만 워낙 발걸음이 뜸한 산이라.. 찾을수가 없다.

 

 태백시의 기라성같은 산군들..

 

12시 24분 : 문암산 정상.

 

문암산 정상... 940M(2008년 태백경찰서 산악팀)으로 소문자 m이 아닌 대문자 M 으로 표기되어 있다..

 

 안원덕 산대장님이 톡으로 보내주신 작품.. 감사합니다.

 

안원덕 산대장님이 톡으로 보내주신 작품.. 감사합니다.

 

사통팔달.. 일망무제의 막힘없는 풍경 맛집인 문암산에서 바라본 태백산 문수봉능선.. 좌측으로는 백두대간이 흐른다..

 

 동북쪽으로는... 우금산 아래 장성광업소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태백의 진산 백병산이다.

 

 북쪽으로는 연화산과 바람의 언덕으로 유명한 매봉산 사이에 태백시가 살짝 보인다..

 

 박월산에서 지나온 능선..

박월산(896m)과 문암산(940m)은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 동점동에 위치한 산이다. '태백금강'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경관이 수려한 산이다. 두 산은 태고적부터 사이에 구슬을 놓고 용쟁호투를 벌이고 있는 형세로 문암산은 용에 박월산은

호랑이에 비유 된다.

 

 동쪽으로는 삼방산 연화봉이 우뚝하고...

 

남쪽으로는.. 가야할 쪼록바위봉이 산넘어 산으로 갈길이 멀다.

 

내려온 문암산 암괴..

 

참나무 그루터기에서 기생하는 버섯..

 

문암산에서 화성재로 가는길은 오르내림의 기복이 심하고.. 바람이 잠깐만 멎어도 숲의 열기가 대단하다.

 

13시 13분 : 콧구멍재.

잘록한 안부가 콧구멍처럼 작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철탑봉에서 가야할 화성재 방향을 가늠해 본다.

 

14시 25분 : 화성재에서..

뒤로 넘어가면 강원도 태백시 금천동으로 가는 길이고.. 좌회전하면 경북 봉화군 석포면 평천 마을이다.

 

강원도 땅에서 경상북도로 넘어 왔다.

 

평천마을의 고랭지 배추.. 그런데 예년같지 않은 폭염으로 배추가 물러 졌다.. 농심도 얼마나 무너졌을까..

 

쪼록바위능선 아래 평천마을..

평천(坪川)은 300여년 전 강원 정선에서 이주해 온 강릉김씨(江陵金氏)와 강원 삼척에서 이주해 온 김해김씨(金海金氏)가

정착하여 오다가.. 그 후 진주강씨(晋州姜氏)가 이곳 평천에 온 후 땅을 일구어 주로 옥수수, 감자 등의 밭농사를 지어 현재

드르네라는 마을을 이루었다. 고지대의 평지로서 마을 한가운데로 연화봉에서 비롯된 내가 흐르고 있었으나 평천마을

입구에 1961년 2월 1일 영풍산업 (주) 연화광업소가 건립되면서 평지에 사원사택을 지어 5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그 후 1993년 9월 연화광업소 휴광으로 인구가 급속히 감소되었고 대현리 주민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평천 입구 상류지점에 위치한 소천석회광업주식회사는 연간 석회를 4만2천톤을 생산하여 우수 철강생산업체인

동국철강 외 3사에 납품하였으며 농한기에는 이 곳 주민들의 유휴노동력을 활용 하였으나 지금은 폐업된 상태이다.

 

참 살기좋은 마을.. 도르네(평천)

오지에서도 웃음 잃지 않고 행복을 키워가는 주민들 속에도 애환(哀歡)은 누구나 있을 것인데...  마냥 평화스러워 보이는 마을 풍경에 마구 웃으며 지나간 우리들의 존재가 도르네의 꿈을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조금은 염려스럽기도 한다.

 

▲ 드르네(坪川)는 자연부락으로 들(坪)과 내(川)를 합쳐서 그렇게 부른다는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14시 34분 : 드르네(坪川)삼거리에서 우회전...

 

▲ 축대가 끝나는 지점에서... 희미한 족적을 따라 올라가면..

 

▲ 비교적 뚜렷한 길이 나타났다가..

예상치 못한 산판길이 가로막으면서 약간의 알바가 시작되었지만.. 금방 주등산로와 다시 만난다.

 

▲ 여기서부터 쪼록바위봉까지는 태백산국립공원구역이란다...

 

▲ 국립공원 표시에서 부터는 오름이 가팔라진다...

 

▲ 14시 34분 : 쪼록바위봉...

여기에도 해발고도 1087M으로 표기되어 있다. 해발고도를 표기할때는 대문자 M이 아니라 소문자 m을 써야 한다.

쪼록바위의 소속은 태백산국립공원이지만.. 국공에서도 변방의 마을산으로 치부하고 별다른 관리는 없는것 같다.

 

이제라도 국공에서 바른 표기로 새로 세운다면 모르겠지만.. 1998년 4월에 지방산악회인 대현청년회에서 표기법이 정립

되어 있지 않았던 26년전에 힘들게 세운것이니 여기에서 잘 잘못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바른 표기법이 그렇다는 얘기다.

 

▲ 김더덕님이 톡으로 보내준 작품... 감사합니다.

 

▲ 당겨본 현불사...

현불사는 불승종(佛乘宗)의 총본산으로 1990년도에 창건되었으며 설송(雪松) 종정스님이 창건 했다는 사찰이다.

설송 스님은 1990년 되던 해 속랍(俗臘) 40대 중반에 설송(雪松)이라는 법명을 받고 수원의 모 사찰에서 법화경을 깨쳤다

는 스님이다.. 스님은 속랍(俗臘) 91세 되던 해인 2009년 5월에 이곳 현불사에서 입적했다고 한다..

 

설송 스님은 총선이나 대선을 앞둔 대선 후보들의 승패를 점쳐많은 정치인들이 찾아와 유명세를 탔던 스님이다.

그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했던 적이 있어서 세간의 화젯거리가 된 일도 있었다. 이 외에도 80~90년대의 많은

청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현불사를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현불사(1980년 창건)에는 임진왜란, 관동 대진재(關東大震災), 을미사변, 제2차 세계대전 때 목숨을 잃은 5만 8000

여 명의 넋을 기리는 영령 위로 탑이 세워져 있다.

 

▲ 쪼록바위봉...

쪼록바위봉을 바위에 붙은 이끼들이 푸르게 보인다하여 초록바위봉 또는 조록바위봉으로 또는.. 졸암봉으로 부르기도

하고 있으나 원래의 이름은 수반 위에 올려놓은 산수경석 같은 암봉들이 올망졸망 쪼로록 연이어져 있다하여 쪼록바위다.

 

쫄병바위, 졸병바위라는 이름도 이에서 연유한다. 그래서 이 마을 대현청년회에서 1998년 4월에 세운 정상석에도

"쪼록바위" 라 음각되어 있다. 해서.. 나도 지역민들의 뜻에 따라 쪼록바위봉이라 표기하였다.

 

▲ 쪼록바위봉... 바로 아래 쉼터에서 한숨을 돌리며 쉬고 있는데.. 머리위에서 누군가 내려다 보고 있는 느낌이다..

육구당님의 시그널이 지켜보고 있었다..ㅎㅎ~

 

▲ 쪼록바위봉에서 바라본 달바위봉과 진대봉.. 오늘의 최고의 뷰(view)다...

 

▲ 다시 당겨 본 달바위봉.. 2021년 11월의 감동이 되살아 난다.

 

▲ 쪼록바위봉 내림길.. 아차하면.. 저차되는 좁은 이끼 길이다.

 

▲ 절벽의 저 이끼길을 건너왔다.. 꺼져 버릴까 전전긍긍이다.. 그러면서 아슬아슬 건너왔다.

위험구간을 지날 때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속된 마음은 나도 모르게 내려놓게 된다.

 

▲ 오늘의 하산길중에 최고의 감사한 시간이다.. 박수 보냅니다..

안대장님이 발붙이기도 힘든 미끄러운 바위길에 간이밧줄을 걸고 회원님들을 안전하게 내려주고서야 내려온다..

 

그 어렵고 힘든 내리막 길에 아무런 사고하나 없이 무사하게 내려온 내 자신에게 감사하고 어렵게 간이밧줄을 매어가며

길 안내에 수고하신 산대장님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 쪼록바위봉에서 백천계곡까지의 하산길.. 한치의 부더러움과 온정은 1도 없는 급경사 내림길이다.

그래서 자연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편히 쉬게 해 주는 곳이지만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도 주기도 하는 곳이다.

 

▲ 산악앱으로 검색해보니.. 다행히 쪼록바위봉에서 흘러내리는 병오천 지계곡이  국립공원구역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유독 많이 흘린 땀으로 흥건한 상의를 벗고... 환복..

 

▲ 약300m 상류에 있는 현불사 주차장으로..

 

▲ 산은 멀리서 보라 했다..

여기서 올려다 보이는 쪼록바위봉이.. 마치.. 수반 위에 올려놓은 산수경석 같은 암봉들이 올망졸망 쪼로록 연이어져 있다.

 

17시 35분 : 현불사주차장 산행종료...

 

▲ 트랭글을 정리해보니... 9.12km에 휴식시간이 2시간을 넘었다..

부실(?)해진 체력 탓을 하기전에.. 날씨탓을 하고 싶은 그런... 오늘이다..

 

▲ 18시 13분 : 봉화 다덕약수의 식당에서...

 

▲ 산이좋아회장님의 건배...

 

▲ 먹고.. 마시고...

 

▲ 박월산에서 쪼록바위봉까지...

높은 습도에 오지게도 오르내린 오지산행이었지만..

 

때 묻지 않은 원시 숲에서 나오는 천연향료같은 피톤치드로 인해 달고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갈 때는

제아무리 산행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 고통은 쉽게 잊어지며 수행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노력하는 것만큼 볼 수 있고 느낄 수도 있는 법이다.

덕분에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2024년 09월 05일(목).

지리산국립공원 대성골 : 경남 산청군/하동군.

 

산행코스 : 거림계곡주차장-거림탐방지원센터-천팔교-세석고원갈림길-음양수샘터-대성골-의신마을.

산행시작 : 거림계곡주차장  10시 20분.

산행종료 : 의신마을 선학정  17시 14분.

전체거리 : 약14.3km.

전체시간 : 06시간 43분.

운동시간 : 05시간 52분.

휴식시간 : 00시간 51분.

 

10 : 20  거림계곡주차장.

10 : 28  거림탐방지원센터.

11 : 30  천팔교.

11 : 38  북해도교.

13 : 02  세석교.

13 : 24  세석고원갈림길.

13 : 38  음양수샘터.

14 : 07  대성골갈림길.

16 : 09  대성골.

17 : 14  의신마을선학정 종료.

 

 10시 20분 : 거림계곡주차장.

 

거림계곡상가지역.

 

 길상암 갈림길.

 

 길상암을 품고있는 도장골의 시천천은 촛대봉에서 발원하여 와룡폭포를 만들고 거림의 내대천과 합류한다..

 

 거림탐방지원센터 앞의 상가.

약 40년전에 다녀 간곳이라.. 그때도 상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을 소환해 보아도 아리송하다.

거림계곡길은 분명 그자리인데 환경은 많이 낯설게 변했다.

 

탐방로를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건물뒤로 돌아 가면..

 

10시 28분 : 거림탐방지원센터를 지나.

 

 거림탐방로 대문을 들어서서 데크계단을 1~2분 올라서면...

 

 노송아래 쉼터가 있다.

 

거림(巨林)이라는 마을이름처럼 과거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게 계곡을 메우고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군수용

으로 많이 베어졌고.. 8·15광복 후에는 땔감으로 마구 베어져 한때 벌거숭이 계곡이 되기도 했다.

 

 거림(巨林)계곡은..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에 있는 계곡으로 지리산 주능을 제일 편안하게 오를수 있는 코스 중에 하나이다.

 

 오름길은.. 여전히 착하게 이어지지만.. 이곳 경남 산청의 낮기온이 33도로.. 여름 더위가 식을줄 모른다..

 

그나마.. 거림계곡을 타고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가 있어 다소 위안을 삼으며.. 쉬엄쉬엄 진행한다.

 

11시 17분 : 거림탐방로 대문을 통과한지 1시간이 되어 간다... 아주 이상적인 산행속도다.

 

 11시 30분 : 천팔교 도착.

불교에는 백팔번뇌가 있고 지리산은 산이 넓어니 천팔번뇌가 있어서 천팔교일까?ㅎㅎ~.

그러나.. 알고 보니... 천팔교라는 이름은 여기가 해발고도 1008미터라서 천팔교라고 이름 지어 졌다고 한다.

 

천팔교를 지나서 약간의 오름을 치고나면 다시 편안한 산죽길로 이어지고..

 

충분한 수량도 아니고 요란한 굉음도 아니지만 물보라를 튀기며 떨어지는 소리는 더위를 잊기에는 충분하다.

 

다시.. 살짝 고도를 올리면...

 

 11시 38분 : 북해도교 도착...

왜? 하필 북해도(홋카이도)교 라고 이름 지었을까..

북해도교라는 명칭은 거림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현 위치에 도착과 동시에 피부에 찬 기운이 느껴져 추운지방을 연상케

하는데에서 유래되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추운것을 연상하는것이 일제강점기시절 일본의 북해도를 아주 추운곳이라 여겨

이름을 북해도교라고 지었다고 한다.

온 나라가 일본 잔재의 흔적지우기를 하고 있는 마당에 아름다운 명칭으로 바꾸면 어떨까..

 

북해도교를 지나면... 거대한 방구돌이 버티고 선 이곳에서 부터..

 

능선을 타고 오르는 된비알의 시작이다...

 

여기까지 오는동안은 그래도 잊을만 하면... 간간히 불어주던 바람도 된비알 오름에서는 조용하다.

 

힘든구간임을 국공에서도 아는지...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물도 마시고 화랑 총무님이 정성의 손길로 담아주신

삶은계란 두알과.. 두유 한팩.. 바나나 하나... 그 중에 바나나로 더위에 힘들어 하는 몸을 달랜다.

 

쉼터에서 4~5분 올라서니... 된비알은 끝나고..

 

난간없는 데크길이 나오고...

 

 길가에 벌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옆에서 보니 "뽀뽀바위"처럼 보인다...

 

꽃며느리밥풀.

꽃말은... "질투" 다..

 

무명다리.

 

12시 32분 : 두번째 쉼터..

 

쉼터 저 멀리 남부능선 끄트머리에 흰구름이 넘실거리고 있는 삼신봉이 까마득하게 다가온다. 여기서 점찍기를 한다.

 

지리고들빼기..

꽃말은... "순박함" 이다.

 

13시 02분 : 세석교..

 

흔히들 지리산은 어머니 산이라고 한다. 해발고도 1400m가 넘는 곳에서 생명의 젖줄인 맑은물이 흐른다..

 

해발 1500m대의 세석고원에서 물을 품었다가 내어주는 소중한 물이다.

 

13시 24분 : 세석고원갈림길..

세석산장까지는 약 500m이지만.. 왕복1km다.. 오늘은 의신마을 하산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울 같아서 통과하기로 한다.

 

과남풀..

꽃말은... “당신의 슬픔을 함께 합니다.” 이다.

 

과남풀은 우리의 이름으로는 "칼잎용담"이라는 아주 좋은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남풀이라고 불리운다.

용담’은 뿌리가 용의 쓸개처럼 아주 쓰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칼잎용담은 그런 용담을 닮았고, 잎이 칼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과남풀이라고 불리우는것은 한이름에 근거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관음초(觀音草)라고 하는데.. 관음초가 음이 변하면서

‘관음’이 ‘과남’이 되고 ‘초’가 ‘풀’로 쓰이면서 과남풀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다른.. 자료에서는 꽃잎의 색깔이 지나치게 남색이라고 해서 과남풀이라고 명명했다는 주장도 있다.

 

음양수 너럭바위..

1953년 여름, 여성 빨치산 김점분이 자기대원 15명과 함께 여기서 포위당하자 모두 권총으로 자결했다는 곳이다.

그 옛날 깊은 상처는 이제 다 아물었을까.. 뭇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여기 앉아 노닥거리고 밥도 먹고 쉬었다 간다.

 

음양수 너럭바위에 있는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 선생의 기도제단(좌선대)..

 

산을 사랑했기에 산에 들어와 산을 가꾸며 산을 오르는 이의 길잡이가 되어 살다 산의 품에 안긴 이의 이야기가 있다.

이 글은 중산리 법계교 부근에 있는 우천 허만수 추모비(宇天 許萬壽 追慕碑)뒷면에 새겨진 전문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산이 좋아 처자식도 버리고 홀로 지리산에 들어간 우천선생은 세석고원 음양수샘 아래 초막을 짓고 30여 년간 산짐승처럼

살면서 지리산 곳곳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샘터를 개발, 보수하는가 하면 숱한 사람을 안내하고 구조하는데 한평생을 바친

전형적인 산악인이자 지리산을 가장 사랑했던 산사람이다. 그래서 산악인들은 그를 "지리산 산신령"으로 부른다.

 

우천 허만수(宇天 許萬壽)선생은 1916년 진주 옥봉동에서 태어났다.

열 살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입명관(立命館) 중학교시절 ‘동정(童貞)클럽’이라는 등산반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했다. 동정클럽이란 이름은 산을 즐기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공부보다 산을 더 좋아하는 아들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부모는 그를 일시 귀국시켜 강제로 혼인시켰는데 선생의 나이 스물

둘이었다. 다시 부인(전경림)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광복을 맞아 부인과 세 딸을 데리고 귀국

해 진주에서 대동서점을 열었지만 몸과 마음은 늘 산에 있었다. 결국 2년 만에 서점 문을 닫고 산으로 떠났다.

 

자굴산에서 땅굴을 파고 원시인처럼 2년여를 보내고 지리산에 들어가 오직 지리산을 위해 여생을 받쳤다.

그러다 그가 회갑 년이 되던 해 1976년 6월에 정든 세석의 철쭉을 뒤로 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는데 칠선계곡, 거림골,

도장골 또는 신선너덜에서 아무도 모르게 숨을 거두었으리라는 말만 무성할 뿐 그의 최후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평소에 칠선계곡에서 영면 할것이라고 자주 시사했다고 한다.

 

 너럭바위 아래에 있는 음양수 샘.

오른쪽에서 나오는 하나는 음이요 왼쪽위에서 나오는 하나는 양이요, 두 물줄기가 합쳐 샘을 이룬다는 음양수 샘이다.

이곳이 이상향이라 믿었던 일단의 사람들이 여기 들어와 살다가 아래로 강제 철수되어 청학동에 정착했다는 말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음수"라 하고..

 

 좌측 위쪽에 "양수" 있다.

 

 음양수샘에서 0.5l 페트병에 담아서 마셔보니.. 거부감이 없고 시원하다.

 

▲ 산오이풀꽃.

꽃말은... "애교" 다...

 

▲ 비만 오면 물길이 되는 하산길이라 발목 부상을 조심조심....

 

▲ 돌확.. 돌절구.. 사람이 거주하였다는 증거다.

 

▲ 동자꽃.

꽃말은... "기지".. "정열".. "기다림" 이다.

 

▲ 거림옛길로 내려가면 북해도교와 만나고... 우천 허만수 선생이 거처하던 초막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 이 길은 쌍계사길과 청학동으로 이어지는 삼신봉까지의 남부능선을 따라가는 길이다..

의신마을은 조금더 가다가 오른쪽으로 탈출이다.

 

13시 54분 : 조망바위에서.. 촛대봉과 시루봉. 그 사이에 청학연못이 있다.

 

촛대봉과 시루봉(장군봉) 능선 중간 서쪽 아래 해발고도가 1500m도 넘는 세석고원에 신비한 연못이 있다.

자연 상태의 연못이 아니고 청학동의 이상향을 완성시키는 의도에서 옛 선인들이 의도적으로 지형을 갖추려는 듯 인공

으로 조성된 연못이다. 대슬랩이 앞 물을 막아주고 둥글게 돌조각을 세워 뒷물 길을 막았다.

 

청학연못의 길이는 대략 10~15m 넓이는 대략 6~7m 정도 되며 깊이는 대략 1m 내외로 짐작되는 타원형의 연못이며

대슬랩에 새겨진 몇 개의 파자(破字)가 있는데 정확한 해석은 아직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청학연못의 조성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소 엇갈리는데 대략 150년 전 쯤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인들의 기록을 기초로 하여 고려조까지 거슬러 말하는 사람도 있다.

 

▲ 촛대봉 아래의 청학연못.

청학(靑鶴)은 날개가 여덟이고 다리가 하나이며 얼굴이 사람같이 생겼다는 상상의 길조(吉鳥)로서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전설의 새라고 한다. 이 새가 울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하여 옛 사람들은 청학이 사는 청학동을 신선의 고장이라 여겼다.

이상향의 청학동 위치는 지금의 삼신봉 아래 청학동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 당겨 본 세석고원.

지리산은 1967년 12월 20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483㎢로서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국내 최대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지리의 웅장함과 광활함을 보여주는 곳이며 지리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말해주는 곳이기도 한 세석평전은 고원지형을

형성하고 있어 세석고원으로 지칭되기도 하는 곳이다. 세석(細石)이란, 잔돌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뜻으로 불리는 것이

라고 한다. 세석고원은 예전에는 세석평전이라고 하였는데.. 일본의 잔재라고 하여 고원이라고 바뀌어 지고 있다.

 

▲ 지리 주능선상의 영신봉과 창불대.

창불대는 부처님을 찬양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 좌측으로는 지리 주능선의 칠선봉.. 덕평봉이 성삼재 방향으로 달려 간다.

 

▲ 남부능선의 암릉을..

 

넘고 넘어서..

 

14시 07분 : 의신마을 갈림길... 5시까지 하산이라 마음이 바쁘다.. 6.9km밖에 안남았다..ㅎㅎ~

 

▲ 화랑 대성골...뫼들.. 군대에서 챠트 글씨 깨나 써본 솜씨다.. 멋집니다.

 

▲ 조망바위가 있어 올라가 보니.. 저 멀리 하동의 진산 형제봉이 아스라히 보인다.

 

▲ 발아래로 길게 뻗어나간 하산길의 대성골.. 어디가 그 계곡의 끝인지 전혀 가늠 할 수가 없다.

 

14시 44분 : 큰세개골 도착.

 

▲ 여기서부터 대성골까지는 거의 너덜길이다.

 

▲ 대성골이 의신마을까지 중간지점이다.

 

▲ 이곳 무명폭포를 지나면서 부터.. 미구에 닥쳐올 자연 재난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갑자기 앞서가는 여성 회원님들이 고함을 지른다.. 말벌이다!~~ 라는 비상 싸이렌을 울린다.

뒤에 따라가던 우리 다섯명.. 가운데 선 나를 뺀 앞뒤 두명에게 벌들의 총공격이다. 모르긴 몰라도 기관총은 총도 아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가운데에 선 나는 벌들의 공격이 전혀 없다.

아마도 벌들이 그랬을 것이다.. 우리 말벌 보다 더 지독한 넘을 만났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공격을 안한다ㅎㅎ..

 

벌이 공격해 오면 당황하지말고 침착하게 빨리 그곳을 벗어 나는게 상책이다.

앞뒤 모두가 벌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고함을 치며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두팔을 마구 휘젓는다..

그런 행동을 하면 벌들이 공격해 오는줄 알고 더 달려 든다.. 침착하라는 내말은 이미 귓등이다..

내가 벌에 쏘이지 않은 것은 침착하게 조용한 행동으로 걸음을 빨리하여 지나왔기 때문이다.

 

▲ 한바탕 소동이 있고서야 위험지대를 벗어 난다.

 

▲ 백금녀..오천평보다도 더 펑퍼짐한 엉덩짝으로 바위를 뭉개버렸다.. 얼마나 숨통이 막히랴!~ㅋ..

저 방구돌은 전생에 무슨 업보를 받고 태어났을꼬?..ㅎㅎ..

 

▲ 작은세개교.

 

▲ 작은세개골.

 

▲ 드디어 대성골 진입.

지리산 대성골..하면.. 빨치산 토벌이야기를 빼놓을수가 없다.

57사단을 결성한지 1개월도 안된 52년 12월 2일, 군경의 제1차 대토벌작전이 시작된다. 먼저 남부군 직속 81사단, 92사단

과 합동작전인 경남 하동군 악양지서 습격사건인 악양전투는, 대토벌작전 하루전날 대공세 준비중인 수도사단의 아가리에

뛰어 들어가는 대실패였다. 같은 달에는 경남 함양군 법화산에서 수도사단의 공세에서 수백명의 빨치산이 몰살당했고,

 

52년 1월 17일경 지리산 천왕봉 근처 대성골 전투에서 경남도당과 남부군 57사단은 군경의 포위에 결정적으로 괴멸된다.

당시 전투는 소설 <남부군>에서 이태가 ‘남부군 최후의 날’이라는 소제목으로 묘사하며, 자신이 소속된 81사단만 포위되어

작살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92사단은 물론 경남도당과 57사단, 그리고 전남도당과 전북도당 일부 부대

까지 군경의 포위공세에 토끼몰이 식으로 밀려 대성골에 총집결했다가 싸그리 괴멸한 전투였다.

 

<실록 정순덕>에서 정순덕은 1만명의 빨치산이 대성골에 빽빽이 들어찼다고 했지만, 그건 남한내 총 빨치산의 숫자에

가깝고, <빨치산의 딸>에 의하면 그 1/10인 대략 1천명 남짓이 포위된 상태였다. <이현상 평전>, <전남유격투쟁사> 등

여러책을 종합해 봤을 때 전남도당에서 ‘투쟁인민’이라고 하는 후방의 노약자들만 1천명이고 전투병은 수백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들은 이 대성골 전투로 결정적인 손실을 입는다.

 

특히 경남도당 지휘부는 부위원장 김삼홍을 제외하고 아예 전멸해버렸는데, 정순덕은 이때 경남도당 위원장 남경우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다. 토벌대측에서는 항공기로 소이탄을 떨어뜨려 대성골 일대를 불태웠는데 불길이 얼마나 강한지

한겨울에도 무려 5일간 타들어 갔다. 정순덕은 좁은 바위틈새에 숨어 선채로 최소 5일 이상 버티며 살아남는다.

그러나 남편 석성조는 이 전투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며칠후 생존자에게 듣는다.

 

▲ 정순덕의 증언에 의하면 2천명(?)이나 되었다는 57사단은 대성골 전투로 불과 60여명 남았다. 

잔존 병력은 2개 중대로 편성되었고 부대장 이영회는 부상으로 그때까지 복귀하지 못해 참모장 박창선이 대신 이끌었다.

정순덕의 중대장은 삼천포 출신의 임학주였다. 정순덕은 중대부(본부) 소속으로 간병, 취사, 환경정리를 담당하였다.

 

1952년 1월 17일, 각지에서 쫓기던 빨치산들이 이 대성골로 밀리고 밀려 집결하던 날 토벌군은 의신에서 종일 야포로 이곳

을 때렸고 이후 미군 비행기는 휘발유통을 떨어뜨려 이곳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한다.

그 이후 남부군은 급격한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급기야는 완전 토벌되고 말았다.

 

▲ 원 대성동마을.. 집터가 있었던 축대가 보인다.

지리산 전투 중 가장 처절했다는 대성골전투, 그 대성동마을에 드디어 도착했다.

1968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전국 모든 화전민들을 산 아래로 강제 이주시켰고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1970년 저 아래 대성마을로 내려갔다고 전한다.

 

▲ 원 대성동마을 쉼터.

 

▲ 대성동마을 2.1km 지점에서부터...

 

▲ 시작된 너덜겅은 마음까지도 완전히 너덜거리게 만든다.

 

▲ 대성동마을에 사람들이 쓰던 물건 흔적을 만난다..

 

▲ 재만 남은 대성동마을... 지리산 대성동휴게소, 일명 ‘대성주막’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한때는 산꾼들에게 막걸리한잔으로 피로를 풀었던 곳인데...ㅠㅠ~

 

▲ 불에 탄 흔적들... 2023년 3월에 발생한 산불로 대성계곡 일대가 모두 타버린 상태다.

 

▲ 지금도 혼자 거주 중인 임현종씨가 밭일을 하고 있다.

그는 4대째 여기서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집 근처에 후박나무 수백 그루를 심어 유명한 지리산 산림왕 고 임봉출씨다.

 

산사면에 있는 집들은 다 타서 무너졌고 계곡 쪽 가옥 한 채만 멀쩡했다.

 

▲ 개집 같기도 하고..

 

▲ 대성동 동구밖에 노송만이 그날의 아픔을 알고 있겠지..

 

▲ 벌때 습격사건으로 출동한 소방대원들.. 회원들 중에 누군가가 119에 신고를 하였다고 한다.

아무런 탈이 없어야 될텐데..

 

▲ 두번째 팀..

7방인가 9방인가 쏘였다는 분과 사고경위 청취..

 

16시 30분 : 의신마을 1.8km.

 

▲ 산불에 탄 흔적들..

그나마 다행인것은 소나무는 타버렸지만 활엽수는 1여년만에 자연적으로 회복된 듯 하고..

소나무림이 적고 활엽수의 밀도가 높아 숲 내부에는 바람이 세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축구장 170개에 달하는 면적이

불탔다고 알려졌는데 그당시 산불 진화 과정에서 진화대원 1명이 숨지기도 했다는데 다행히도 산불 발생 하루만에  비가

내리면서 진화가 되었다고 한다.

 

▲ 길은 착한 오솔길이지만.. 지친 발걸음 때문인지 가도가도 줄어들지 않는 느낌이다.

 

▲ 세번째 소방대원팀..

 

▲ 꽃무릇..

지금 전남 영광 불갑산에는 꽃무릇축제가 한창이다.

 

▲ 세석탐방로 입구까지 구급차가 올라 와 있다.

 

 

▲ 항일투사 30인 의총(義塚).

한일 강제병합이 있기 2년전 1908년 2월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온 몸으로 저항하며 결사항전하다 최후를 맞이

한 항일 무명 영웅 30인이 이곳 지리산 화개면 의신마을 공동산에 잠들었다.

 

이곳에 묻힌 항일의병은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맹활약하다 1908년 1월말 의신마을에 도착했다.

의병들은 마을 서당에 본부를 두고 배명고지(지리산역사관 뒤 능선)에 초병(哨兵)을 세우고 벽소령 길목을 경계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베 한 조각을 나누어 주면서 토시와 발등덮개를 만들게 하고 음력설을 쇠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월 2일(음력 설날) 아침 승려로 가장한 일본군이 절골(용화정사 터)에 있는 마을 주막으로 오는 것을 발견하고

발포하였으나 일본군의 유인작전이었다. 일본군(변장대)은 마을에 침투하여 의병을 향해 기습공격을 하였다.

항일의병 80여명은 일본군에 맞서 이틀간 격렬히 저항했지만 일제의 막강한 화력 앞에 의병 50여명이 전사하고 생존자는

산청쪽으로 몸을 피했다. 이후 의신마을 주민들은 항일 의병의 시신을 수습하여 산제 등, 진평전 및 계곡 산허리에 묻어

주었으며 이곳 30명의 무명 항일영웅들의 묘는 그 중의 하나이다.

 

▲ 의신마을에서 세석까지 9.1km 오름길은 추천 하고 싶지 않은 길이다.

 

▲ 마을길따라 바로 올라가면 서산대사가 출가하였다는 원통암가는 길이다.

 

▲ 마을에도 구급차가 3대가 와 있다..

 

▲ 서산대사길..

편하고 힐링의 길이다. 2017년에 서산대사길과 원통암을 다녀왔었다.

 

▲ 의신(義信)마을 유래.

선인들의 말씀과 기록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 길지(吉地)로 십승지지(十勝之地)가 있는데, 지리산(智異山)에는 청학동

(靑鶴洞)이 있다. 지리학자들의 기록이나 구전에 의하면 지리산 덕평봉(德平峰) 회포(回包) 40여리라고 하니 오늘날 대성리

전역이 청학동 범위에 위치하는데.. 그 중에 의신마을은 가장 길지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 의신동천..

 

17시 14분 : 의신(義信)마을 선학정 산행 종료.

의신마을로 하산이 전부 완료되면 약800m 거리에 있는 의신마을 아래쪽 주차장에서 버스가 올라오기로 함..

 

▲ 후미팀이 내려 올동안 트랭글을 정리하고..

후미에 섰던 산대장님도 내려 오고 벌에 쏘인분들도 다행히 말벌이 아니어서 위급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소방대원들도 전부 철수하면서 벌쏘임 사건은 일단락 되고.. 하산주장소로 이동.

 

▲ 덕장 회장님의 배려로 씻지도 못하고 하산한 회원님들을 위해서 물 좋은곳에서 잠시 정차.. 역시나 덕장다운 배려다.

▲ 18시 09분 : 화개장터 인근 식당..

 

▲ 산대장님의 건배..

 

▲ 이어서 회장님의 건배..

용장(勇將)밑에는 약졸이 없고.. 덕장(德將)밑에는 배신자가 없고.. 지장(智將)밑에는 잔꾀 부리는 사람이 없다" 라는

말이 있다.. 한데.. 용(勇)과 덕(德).. 그리고 지(智) 까지 갖추었으니 화랑산악회의 홍복이라면 홍복이다.

 

모든 회원님들의 무사무탈..

산악회 회장으로서는 최고의 하루일 것이다.

2024년 08월 18일(일).

주왕산국립공원 절골계곡 : 경북 청송군.

 

산행코스 : 주산지입구-절골탐방지원센터-신술골입구-반환점-운수암절터-주산지입구.

산행시작 : 주산지입구  11시 28분.

산행종료 : 주산지입구  14시 36분.

전체거리 : 약7.14km.

전체시간 : 03시간 08분.

운동시간 : 02시간 08분.

휴식시간 : 00시간 42분.

 

11 : 28  주산지입구.

11 : 38  절골탐방지원센터.

12 : 22  신술골입구.

12 : 28  반환점.

13 : 13  운수암터.

14 : 19  탐방지원센터.

14 : 36  주산지입구 종료.

 

절골탐방지원센터 주차장의 협소로 대형버스진입금지라서 주산지입구에서부터 탐방지원센터까지 걸어서 간다.

 

연일 한 여름의 폭군인 염제(炎帝)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이곳 청송의 날씨도 34도다.

 

 11시 38분 : 주왕산국립공원 절골탐방지원센터.

이곳은 2009년 9월 13일에 처음으로 찾은 곳이니... 15년만에 다시 섰다.

 

절골입구의 대문현판에 운수(雲水) 길이라고 되어 있다.

"절골"이라는 유래는... 옛날 계곡속에 "운수암"이라는 절이 있어 절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절골계곡은 2017년도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선정한 국립공원 힐링로드 10선에 선정되었던 곳이다.

절골계곡의 맑은 계류를 기대했었는데.. 가뭄으로 물길이 끊기고 메말랐다.

 

 그럼에도 올해의 가을 단풍은 그 어느해보다 고울것 같다.

 

12시 28분 : 대문다리 가기전의 바람길이 좋은 곳에서..

 

권이사님이 준비한 잭 다니엘을 즐기며 쉬었다가 원점회귀하기로 한다.

 

▲ 운수암터 안내문..

운수암은 조선시대 인조 때 창건 되었다고 한다.

운수암이라는 이름은 200년 전 청송 출신의 선비 서원모의 책 "주왕산지"에 등장한다. “계곡십리 길이 끝나는 곳에 평탄한

언덕이 하나 있으니 바로 암자가 위치한 곳이다.”라고 되어 있고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돌아가는길에..

 

▲ 지금의 솔잎산악회를 너무나 잘 운영하고 있는 회장님팀을 만나 젊은 에너지와 함께 한다..

 

▲ 버들치.

우리나라 전국의 강이나 계곡수에서 흔히 볼수 있다.

전북 지역에서는 버들치를 조선 중기의 고승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와 연결짓는 전설이 전한다.

전설에 따르면, 진묵이 물가를 지나가는데 청년 유생들이 물가에서 버들치를 잡아 솥에 끓이는 참이었다. 청년들은 지나

가던 진묵을 불러놓고는 억지로 물고기를 먹으라 강요하였다. 마지못해 진묵이 먹으니 이번에는 "중놈이 고기를 먹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놀리는데, 진묵은 "승려인 내가 어찌 살생을 하리오? 도로 산 채로 내놓으리다." 하더니 허리춤을

내리고 큰 일을 보았는데, 놀랍게도 버들치들이 산 채로 나와서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때문에 버들치를 전라도 지역에서는 '중고기' 또는 '중태기'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진묵대사의 신통력을 강조하면서도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시대상을 함께 보여주는 전설이다.

 

▲ 가을이 머지 않은것 같다..

 

 

 14시 36분 : 주산지 입구 산행종료..

 

 

▲ 마평교 쉼터.

청송군 주왕산면 지리 마평교 쉼터에서 하산식.

 

▲ 윤회장님의 건배..

 

▲ 이어서 산대장님의 건배.

 

▲ 청송이 고향인 선임자문님의 건배를 끝으로..능이 찹쌀유황닭백숙으로 여름 보신...

 

▲ 아니온듯 깨끗히 정리하는... 솔잎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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