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20일(목요일).
대미산/악어봉 : 충북 충주시.

 

산행코스 : 내사2리 몽선암입구-몽선암-대미산-월악수리봉-큰악어봉-악어봉-게으른악어휴게소.

산행시작 : 내사2리 몽선암입구 09시 13분.

산행종료 : 게으른악어휴게소  15시 19분.

전체거리 : 약10.0km.

전체시간 : 06시간 08분.

운동시간 : 05시간 26분.

휴식시간 : 00시간 41분.

누구하고 : 산이좋아산악회.

 

09 : 13  내사2리몽선암입구.

09 : 41  몽선암.

10 : 49  대미산.

11 : 58  월악수리봉.

13 : 10  큰악어봉.

14 : 36  악어봉.

15 : 19  게으른악어휴게소.

 

 09시 10분 : 충북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 몽선암 입구.

 

▲ 동장군의 심술로 다시 찾아온 반짝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언제나 열정 넘치는 산이좋아님들의 에너지를 조용한 시골

마을에 내려 놓고..

 

▲ 대미산 들머리인 몽선암을 찾아가는 길가에 과거 6~70년대에 전국에 붐이 일었던 정겨운 간판 "우리슈퍼"가 보인다..

 

▲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라서.. 마침 열려있는 문으로 안쪽을 살짝 엿보니 생필품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 삼거리에서 오른쪽 몽선암 방향으로 따라가면..

 

▲ 추위속에서도 과수원의 나무들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위한 물오름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 충주에도 사과 과수원이 많이 보인다.

1907년에 최초로 재배된 충주사과는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빛깔, 당도, 향기에서 으뜸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지역 대표적인 특산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 마을 끝자락에 자리한 민박 펜션을 마지막으로 민가를 벗어나서...

 

▲ 호젓한 길가에 현대식(?) 벽돌집인 서낭당을 지나면서 부터는...

 

▲ 시멘트길은 산속을 찾아가고 몽선암까지 가파르게 올라가는 된비알의 연속이다..

 

09시 41분 : 몽선암.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절터를 일러주었다는 몽선암(夢仙庵)은 대한 불교 천태종 소속의 아담한 절집이다.

 

▲ 대미산 들머리는 몽선암 마당의 입구 좌측으로 연결된다.

 

▲ 몽선암에서 올라가는 길은 응달이라서 녹지 않은 눈이 발목까지 덮는다.

 

▲ 대미산 눈은 가루눈이다..

가루눈은.. 얼음의 미세한 결정으로 되어 있는데 전혀 뭉쳐지지 않는 건조한 가루모양의 적설을 의미하며 대체로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한 날씨에서 나타난다. 뭉쳐지지 않아서 밟으면 함박눈보다 더 미끄럽고 눈가루가 신발안으로 들어온다.

 

▲ 안부에서 대미산은 왼쪽으로 본격적인 계명지맥을 따라가는 숨가쁜 겨울산행이 시작 된다.

 

▲ 오늘의 대미산길이 만만치 않다는걸 예고라도 하듯이 바위가 날카롭다.. 낙엽에 자칫 잘못 자빠지면 엉치뼈를 다치기

십상이다.. 오늘의 산행 컨셉은 느림이다.. 서두르지 말고 잘 살펴서 가자..

 

▲ 계명지맥임을 알리는 준.희님의 표지기가 붙어 있다.

계명지맥이란 백두대간의 마패봉옆의 745m봉에서 분기하여 지릅재-북바위산-석문봉-망대봉-대미산-남산-계명산-대문산

(탄금대공원)의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탄금대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6.7km의 산맥을 말한다.

 

▲ 나무가지 사이로 충주호가 보인다.

 

▲ 대동강 물도 풀린디는 우수를 지났건만.. 봄처녀가 오시는 봄의 길목을 내어주지 않으려는듯 눈길이 차갑다.

 

▲ 하지만.. 세월은 가고 오는것이기에.. 동장군이 시간을 거부한다고 봄처녀가 오지 않을까..

 

10시 49분 : 대미산.. 정상 표지판은 김문암님의 작품이다.

 

▲ 계명지맥은 대미산에서 오른쪽 방향이고.. 악어봉길은 직진인데..

 

▲ 엉덩썰매 길이다..ㅎㅎ~

대미산 내림길이 눈과 낙엽으로 상당히 가파르다.. 모래처럼 뭉쳐지지 않고 가루처럼 날려서 그냥 서 있어도 몸이 아래로

밀려 간다.. 눈과 낙엽속 바닥에 날카로운 돌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 엉덩썰매를 타는 어른이들이~ㅎㅎ.. 요령이 생겼는지 잘도 내려 간다.

 

▲ 엉덩썰매도 못타고 엉거주춤하는 사이 두 어른이들은 저 밑 안부까지 내려 갔다..

 

▲ 동물생태 감지카메라를 지나고.

 

▲ 이 봉우리가 두루뭉실 두루봉 같은데.. 표지기는 없다.

 

▲ 두루봉의 정상부는 두루뭉실인데..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다.

 

▲ 수리봉 오름길에는 날카로운 바위들이 초병처럼 서 있다.

 

▲ 오름도 만만치 않다.

 

11시 58분 : 목책이 있는 수리봉... 여기서부터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하는 산이다.

산 이름은 태초에 천지개벽이 일어나 홍수가 났을 때 산봉우리에 수리 한 마리 앉을 정도만 남고 모두 잠겼다고 해서 붙여

것이라고 한다.

 

▲ 전혀 두루뭉실하지 않은 곳에 두루봉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 역시나 수리봉 내림이 거칠고 미끄럽고 눈에 빠지고.. 힘든다..

 

▲ 급기야.. 우람한 바위가 막아선다.. 오른쪽은 수십길 낭떠러지고.. 길은 좌측으로 열려 있다.

 

▲ 방구돌 사이를 파고든 소나무의 경이로운 생명력이다.

 

12시 20분 : 커다란 방구돌이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마음점을 찍고..

 

▲ 공포의 밧줄구간..

진행방향으로는 수직 절벽이고.. 좌측으로 밧줄이 보인다..

 

▲ 내려다 보니 사진으로는 식별이 잘 안되지만.. 실제로는 "악~"소리가 날 정도로 거의 수직이다..

산에서는 평탄한길도 있지만.. 어느순간 장애물 경기장이 되는 것은 산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 올려다 보니 눈만 없다면 별것 아닐것 같은데.. 밧줄도 바닥도 미끄럽고.. 발디딤도 그렇고 힘들게 내려 왔다..

 

▲ 그렇게 내려 왔는데.. 이번에는 무당이 작두를 타는 것처럼 칼능선이다.. 노송도 이길이 험한 길임을 말해주는것 같다..

 

▲ 오늘 오름길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이다.. 하지만.. 어쩌라... 어차피 오르고 가야 할 길인 것을...

 

▲ 방구돌 사이로 내어주는 길이 있어 차근차근 살피면서 올라가면 못 오를것도 없는 길이다.

 

▲ 거칠고 힘든길을 보상이라도 하듯.. 오른쪽 멀리 월악산 영봉이 보이고..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 온다.

 

▲ 월악의 장엄함을 눈앞으로 당겨온다. 대단함의 극치를 본다.. 자연은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13시 56분 : 큰악어봉..

 

▲ 큰 악어봉이라길래 대형악어들이 사는곳인줄 알았더니.. 조망은 1도 없다..

 

▲ 처음으로 만나는 지름길.. 서서히 지쳐 가는지 지름길이 좋다..ㅎㅎ~

 

▲ 악어봉으로 가는길.. 오른쪽으로 보이는 충주호..

 

▲ 무심코 직진하면 알바하는길.. 좌측으로 완전 돌아 간다.

 

▲ 오늘 산행중 첫 조망이다..

 

▲ 악어봉이 가까워지니 충주호가 만드는 바람이 거세게 분다.

 

▲ 악어봉 오름길..

 

▲ 뒤 돌아본 오른쪽의 큰악어봉.

 

▲ 드디어 만나는 악어들..

 

▲ 인공의 충주호와 자연이 만든 걸작품이다... 악어라고 이름을 잘도 지었다..

 

▲ 충주호는..

1985년에 충주댐 건설로 생긴 충주호는 ‘내륙의 바다’라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크다. 댐 건설로 충주, 단양, 제천 등 3개

지자체에 걸쳐 66.48㎢가 수몰됐고, 약 5만명의 수몰 이주민이 생겨 고향을 잃은 이들에겐 가슴 아픈기억의 장소지만,

지금은 수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충주, 단양, 제천 3개 지자체에 걸쳐 있는 호수이기에 주변으로 월악산국립

공원, 송계계곡, 청풍 문화재단지, 단양 8경, 고수동굴, 구인사, 수안보온천, 노동동굴 등 수많은 관광자원이 있다.

 

▲ 2021년 3월 26일에 다녀갔던 사진이다.. 전망대가 없어니 그림은 더 좋다.

 

▲ 오늘 "B"팀들이 다녀온 심항산도 당겨 보고..

 

▲ 얼음위에 흙을 뿌려 놓았어도 미끄럽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15시 19분 : 산행 종료..

악어산 지역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란 명목으로 월악산국립공원에 묶여 버린 곳이기에 그동안 이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하여 찾은 사람들은 범법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정작이 법정보호종은 단 한 종도 서식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

되어 수많은 민원 끝에 2020년12월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해제되고, 2024년 9월 11일 월악로에서 악어봉까지 0.9km의

탐방로가 마침내 개설되었다.

 

 

16시 19분 : 수안보로 옮겨서..

 

▲ 두부버섯전골.. 6만원 / 4인기준(1인당 15000원)..

 

▲ 산대장님의 건배..

 

이 세상의 모든것이

고맙고 감사하지 않은것이 없다고 했다.

 

산행이란.. 마음수련을 위해 오르는 행위도 포함 된다.

마음에 안드는 상황이라고 화를 낸다면 산을 오를 이유가 없다.

 

충주호에 우글거리는 악어들의 풍광이 있어 감사하고..

생명의 젖줄인 물이 있어 우리가 생명을 유지할수 있어 감사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풍경을 만들어 낸 대자연에 감사하다.

 

그리고 무엇 보다 빨래판 같이 오르내림이 심했던 길을..

무사무탈로 안전하게 종주를 마친 내 몸에 감사하다..

충북 단양군 소백산 천동계곡의 다리안국민관광지 주차장.

 

비로봉 7km... 오늘은 비로봉 정상이 목적이 아니다..

다리안 폭포를 경유하여 천동계곡을 따라 가다가 산악회에서 주어진 4시간 안에 원점으로 돌아오는 트레킹이다.

 

 고산자 김정호님의 추모비..

역사책에 단 두 줄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남겨놓은 업적은 어마어마한..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鎬)님의 출생과 사망

연도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1804년경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1866년경에 옥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분도 명확하지 않고 언제 서울로 상경했는지 알 수 없으나..살던 곳은 당시 남대문밖(현재 중림동 약현성당 부근)이었

으며.. 가족으로는 아내와 외동딸이 있었다...라고 전해지며.. 고산자의 대동여지도는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

주고자 했던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작품이다.

 

지금도 대동여지도 판목 1매가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 있고.. 11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그리고 "대동여지도" 인쇄본

은 이십여종 이상이 여러 곳에 있다고 한다.

 

 산악인 허영호 기념비.

 

 내려다 본 다리안폭포.

폭포탐방은 돌아올때 내려가 볼것이다.

 

바위 정상에 특이한 사각굴이 보여서..

 

 당겨보니 동굴이 맞다.. 어떻게 생긴 굴인지 올라가서 들여다 보고싶어 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소백산국립공원 북부사무소였었는데... 재정비 공사중이다.

 

 그 옆에 임시건물인 지원센터를 보니.. 북부사무소 건믈을 천동탐방지원센터로 리모델링 하는모양이다.

 

▲ 천동탐방로 입구.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군과 경계를 이루며 맞닿아 있는 소백산의 7개 등산코스증에 가장 난이도가 낮은 쉬운 탐방로다.

 

 올라갈때 들리지 못한 다리안폭포로 내려 간다.

 

 다리안폭포..

폭포가 자리한 곳으로 들어오려면 구름다리를 건너야만 했다고 하여 다리안(橋內/다리 교.. 안 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국의 산악회 차량들.. 저 속에 대구에서 온 산악회는 3팀이다.

 

 경북 영주시 먹골집의 성공지문으로 들어선다..

 

누룽지 닭백숙.. 4인기준 50000원에 넉넉한 량이다..

보조반찬의 맛이 괜찮다.. 감자전.. 고추가루로 버무린 시금치.. 된장맛도 일품이다.

2024년 11월 10일(일).

월류봉둘레길 : 충북 영동군.

 

트레킹코스 : 월류봉광장-원촌교-회도석-완정교-목교-반야교-관음상-반야사-문수전-반야사주차장.

트레킹시작 : 월류봉광장  10시 22분.

트레킹종료 : 반야사주차장  14시 09분.

전체거리 : 약11.2km.

전체시간 : 03시간 46분.

운동시간 : 02시간 54분.

휴식시간 : 00시간 52분.

 

10 : 22  월류봉광장.

10 : 34  원촌교.

10 : 37  회도석.

11 : 14  완정교.

11 : 42  목교.

13 : 07  반야교.

13 : 19  관음상.

13 : 28  반야사.

13 : 38  문수전.

14 : 09  반야사주차장.

 

 10시 19분 :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 월류봉광장 도착..

달이 머문다는 월류봉이다.. 달의 음기가 강한 이곳에 오늘은 가을을 즐기려는 행락객들로 가득하다..

 

▲ 초강천 건너 용연대위에 세워진 "월류정"이 한폭의 그림이다..

한천 팔경중에 1경이 월류봉이고.. 4경인 용연대는 월류봉 앞에 있는 절벽으로 산줄기가 평지에 우뚝 솟아 나와 초강천을

휘감아 도는 깊고 푸른물인 용연에 이르러 형성된 돌머리 모양의 대이다.

 

▲ 월류정을 병풍처럼 둘러선.. 월류1봉에서 4봉이 나란히 키재기를 하고 5봉은 오른쪽으로 조금떨어져 있다.

 

10시 22분 : 월류봉둘레길 1구간인 "여울소리길" 들머리 출발.. 월류봉광장에서 동쪽으로 진행한다..

 

충북 영동의 명물인 호두 가판대 아저씨 옆에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반야사까지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너무나 그림이 좋은 월류정 용연대와 작별의 눈인사를 하고..

 

월류봉 둘레길은 2016년부터 준비하여 2018년 6월에 여울소리길을 개통하였고.. 2021년에 나머지 구간도 개통이 되어

가을에 가장 걷기좋은 길로 입소문이 나면서 해마다 가을이면 장사진을 이루는 가장 핫(hot)한 코스로 자리매김 되었다.

 

▲ 한천정사(寒泉精舍)<문화지자료 28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 1607∼1689) 은 선조(宣祖) 40년(1607)에 옥천군(沃川郡) 이원면(伊院面) 구룡촌(九龍村)에서

출생한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대(大) 유학자(儒學者)로 그의 유학사상은 이율곡(李栗谷)의 학통(學統)을 계승하여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朝鮮) 인조(仁祖)대부터 숙종(肅宗)대에 이르는 4대(四代)에 걸쳐 노론(老論)의 대표로서 정계(政界)에서 크게 활약

하였으며 뛰어난 학식으로 많은 학자를 길러내었다.

 

▲ 한천정사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학문을 연구하며 지내던 곳이다.

우암의 제사를 모시는 한천서원을 세웠었는데.. 고종 5년(1868)에 서원을 철거하였고 후에 후학들이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 끝에

온돌방을 두었다.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앞면에 문을 두었는데 앞면 양측에 은행나무가 있었다.

 

▲ 우암 송시열 유허비(충북 기념물 46호)..

 

▲ 우암 송시열 유허비를 나오며 마주하는 용연대와 월류정.

 

▲ 월류1봉.

 

10시 28분 : 월류봉둘레길에서.. 초강천을 건너가는 월류봉등산로 갈림길.

월류봉은 400m대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한반도형상과 주변의 멋진풍경으로 꾸준히 사랑받는 산이다.

 

▲ 초강천 징검다리를 건너가서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월류봉이다.

 

▲ 사군봉은 황간면 뒤편 북쪽에 있는 명산으로 저곳에서 몸과 마음을 연마하면 나라의 사신(使臣)이 된다는 곳이다..

 

▲ 논둑을 따라 걷는 정감있는 데크길이다.

 

▲ 초강천과 석천의 합수점.

초강천은 영동 민주지산에서 발원하여 황간을 거쳐 영동 심천에서 금강에 합류되는 강을 말하며. 석천은 보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상주 모동면.. 반야사 앞을 경유하여 황간면 원촌리에서 초강천에 흡수된다.

 

▲ 석천을 가로지르는 원촌교를 건너자 말자 좌측으로 둘레길이 이어진다.

 

▲ 좌측은 월류봉 둘레길이고... 나는 도로건너 산책로를 따라 약200여m 떨어진 "회도석"을 만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 주행속도 30km라는 안내판에서 초강천 제방으로 간다.

 

▲ 초강천과 배바위...

배바위는 풍수지리적으로 "들어오는 배가 아니고 떠나가는 배"의 형국이라고 한다.

 

10시 37분 : 초강천변의 회도석(回櫂石) 과 월류봉.

영동군지 750쪽과 영동향교지 699쪽에 의하면.. 회도석은 220여년전 황간 현감 이운영(李運永)이 이름지었고

박시화(朴時華)의 글씨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운영(李運永) 현감은 지금부터 250여년 전에 황간 현감으로 근무하면서 무술년(戊戌年,1778)에 회도석을 세워서 현민

(燃民)들의 애향심을 북돋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선정(善政)을 베풀고 당시 지역 산업 발전에 힘쓰는등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으로 1781년까지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 오고 있다.

 

회도석(回櫂石)의 회도를 풀이하면 '뱃머리를 돌려라' 라는 뜻이 된다.

회(回)'자는 '돌아오다'의 뜻이고.. '도(權)'자는 선진목(船進木).. 즉 배를 젓는 '노'를 뜻한다. '석'(石)은 돌이다.

그 옛날 초강천에 배 모양의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황간의 지형이 즉, 풍수지리학적으로 황간이 커다란 호수형인데 거기에

배가 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배가 돌아오는 배가 아니라 떠나가는 배라는 것이다.

이 배바위가 황간의 재물을 싣고 내려가는 형국이므로 이를 막고자 하여 회도석을 세웠다고 한다.

 

어느 지관(地官)의 설(說)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리도 신통스럽게 보았는지 실로 감탄할 만하다

그래서 떠나가는 배를 다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한 인위적(人爲的)인 지형지물을 만들었음이 쉽게 짐작이 간다.

 

결국 월류봉(月留峰) 근처 강 한가운데 배바우가 지금도 있는데 그 배바우와 연관지어 호수 대신 연못을 파고,

거기에 회도석을 굳건히 세워 놓음으로써 우선 마음의 회도석을 세우고, 풍수적인 회도석을 세우고, 나아가 지역 발전의

내실(內實)있는 다목적 회도석이 되게 하였던 선조들의 지혜와 선견지명에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없다.

 

이렇듯 이 고장 수호석(守護石)이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귀한 회도석이.. 그 후 2백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잘 보존되어 있다.

 

▲ 다시 원촌교로 돌아와서 둘레길을 따라간다.

 

▲ 월류봉 광장에서 완정교 까지의 여울소리길은 심심하지 않은 오르내림이 있다.

 

▲ 여울소리길은.. 월류봉 광장에서 원촌교를 건너 완정교까지 약 2.7km구간이다. 석천과 초강천 합류지점의 여울소리가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여서 "여울소리길"이라 이름지었다. 석천을 왼쪽에 두고 걷는 길이다.

 

▲ 오늘의 둘레길구간중에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 좋을때다.. 우리..

아름다운 계절에 자연소리 여울소리 들어며 걸을수 있다는 것...

 

▲ 그래요.. 두발로 걸을수 있을때 까지.. 우리 함께 꽃길만 걸어 가자구요..

 

▲ 그리고.. 웃자구요..

 

▲ 청봉 회장님.. 1년내내 웃는 모습에 덩달아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 청봉의 직전회장님.. 빨리 가도 나의 레이다망은 못 벗어 납니다..ㅎㅎ~

 

▲ 같이... 함께 걸읍시다..

 

▲ 길 위에서 잠시 쉬어감도 함께...

 

▲ 바위돌과 부딪치는 하얀포말의 잔잔한 소리.. "여울소리길" 아름다운 이름이다.

 

11시 14분 : 완정교..

완정교를 건너가면 여울소리길은 끝이다.

 

▲ 내 카메라의 주인공이 되어 영광이라는 구조대장님.. 아는 사람은 앱니다..ㅎㅎ~..

 

▲ 월류봉둘레길 2구간.. 우매리까지의 3.2km "산새소리길" 의 시작점이다..

 

▲ 석천은.. 하천 바닥에 황색으로된 암석이 많아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 지나가는 젊은과객에게 부탁하여.. 나도 길위의 식구가 된다.

 

▲ 가을하늘이 들어가 있는 잔잔한 석천에 떠있는 작은 바위섬들이 정겹다.

 

▲ 나도.. 찍어주기만 하다가 무리속에 들어가니 찍히는 재미가 좋다..ㅎ..

 

▲ 지나가시던 가을추녀님.. 멋지게 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1시 42분 : 완정리 목교.

 

▲ 월류봉둘레길을 찾아온 팀들이 너무 많아서 밥자리 찾기도 쉽지않았는데.. 용케도 최상의 자리를 찾았다.

 

▲ "홍어"가 월류봉둘레길을 찾아 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햇살아래 야외에서 맛보는 홍어삼합... 카!~..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잭다니엘이 꿀맛이다...

 

▲ 여기서부터 반야교까지의 3.1km가 마을로 연결되는 시멘트길이라 숲과 그늘이 거의 없는 구간이다.

 

12시 54분 : 월류봉둘레길 3구간 반야사까지 2.5km의 "풍경소리길" 시작점이다.

 

▲ 석천속의 섬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건너고..

 

▲ 두번째 징검다리...

 

13시 00분 : 반야사 1.6km남았다.. 하산시간 14시까지는 충분하다..

 

▲ 석천 제방을 따라가는 시멘트길이다.

 

▲ 반야사 문수전까지 0.9km 남은 지점..

 

▲ 버스가 보이는 도로를 따라가도 반야사로 갈수있지만.. 관음상을 보기위해 반야교를 건너간다.

 

▲ 관음상 삼거리.. 20여m의 관음상을 보고온다.

 

13시 19분 : 관음상.

 

▲ 백화산둘레길 갈림길...

직진하면 경북 상주시 모동면 옥동서원으로 가는 백화산 호국의길 둘레길이다.. 저길도 언젠가는 가볼것이다.

 

▲ 반야샤로 가는 잠수교..

 

▲ 여기서도 반야사를 지켜준다는 백화산호랑이 형상의 너덜이 보인다.

 

▲ 중화당 좌측으로 문수전을 다녀오고자 한다.

중화당은 템플스테이 사무실과 종무소로 사용되는 최근의 건물이다.

 

▲ 문수전 가는길..

 

▲ 문수전에서도 백화산 호랑이 돌너럭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 문수전에서 내려갈때는 반대로...

 

▲ 세종대왕이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목욕을 하였던 곳이라고...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인 영동 반야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문성왕 8년(846년)에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신라 성덕왕 19년

(720년)에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하나인 상원조사가 창건하였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영동 반야사의 명물 세 가지는 백화산 호랑이와 삼층석탑 그리고 배롱나무다.

백화산 아래에 돌들이 자연적으로 흘러내려 생긴 길이가 300m나 되는 돌너덜의 모양이 꼬리를 치켜 세운 호랑이의 형상을

하고 있고, 500년이 넘은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진분홍색 꽃을 피우고 있으며, 그 앞에 삼층석탑이 다소곳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 영동 반야사의 백화산 호랑이 돌너덜...

 

▲ 14시 09분 : 트레킹 종료..

 

 

14시 52분 : 영동읍 감골 생고기...

 

▲ 청봉 회장님의 건배에 앞서 1년의 짐을 내려놓으려니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지난날의 감회가 밀려오는지..

못내.. 마음한켠이 울컥해 지는모양이다.. ㅎㅎ~..

 

▲ 건배!~...

수고해주신 덕분에 1년이 즐거웠구요.. 감사했습니다.

 

▲ 6순그룹에 갓 들어오신 재무님을 축하합니다...

 

▲ 병아리 6순 재무님.. 늘~ 넘치는 에너지 잃지 마시고 활력소가 되어 주시길...

 

▲ 청봉님들 덕분에...

매월 두번째 일요일이 행복했고 1년이 즐거웠습니다..

내년에도 기대하겠습니다.

2024년 10월 13일(일).

장태산휴양림 : 충남 대전시.

 

산행코스 : 휴양림제1주차장-출렁다리-스카이타워-떡갈봉갈림길-형제산-형제바위-휴양림제1주차장.

산행시작 : 휴양림제1주차장  11시 14분.

산행종료 : 휴양림제1주차장  13시 53분.

전체거리 : 약4.03km.

전체시간 : 02시간 39분.

운동시간 : 01시간 43분.

휴식시간 : 00시간 55분.

 

11 : 14  휴양림제1주차장.

11 : 30  출렁다리.

11 : 41  스카이타워.

13 : 03  떡갈봉갈림길.

13 : 17  전망대.

13 : 24  장태루.

13 : 13  형제바위.

13 : 53  휴양림제1주차장.

 

 11시 14분 : 장태산휴양림 도착..

대전 장태산(大田 長泰山) 휴양림은 국내 유일의 메타세콰이어 숲이 울창하게 형성된 이국적인 경관과 더불어 가족단위의

이용객이 산림욕을 즐기는 휴양림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트레킹코스로도 유명세를 타면서 봄. 가을 시즌에는 주차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전국에서 많은 차량들이 몰려드는 곳중에 하나다. 오늘도 수많은 차량들과 사람들로 완전 북새통이다.

 

거의 포화상태인 제2주차장을 지나서 새로설치하였다는 출렁다리를 찾아 간다..

 

 형제산에서 흘러내린 우람한 암릉이 장태산휴양림 입구에서 멈추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있다.

 

장태산휴양림을 조성한 선각자에 대한 예의일 같아서.. 입구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독림가 고 "송파 임창봉" 선생의

동상을 보고 다시 입구로 나와서 오른쪽 제3주차장 위쪽에 있는 출렁다리로 간다..

 

▲ 보기만해도 시원한 "살아있는 화석식물" 인 메티쉐콰이어가 사열받는 병사처럼 부동자세다.

 

▲ 장태산 휴양림 창립자 "송파 임창봉" 선생의 동상.

장태산자연휴양림 조성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72년부터 개인이 200억원을 투자하여 대전시 서구 장안동 산48. 해발 400m

의 장태산 기숡에 나무를 심고 가꾸어 평생의 노력을 쏟아온 결과 숲이 울창하고 경관이 좋아 자연 발생적으로 많은 사람들

로 부터 알려지기 시작 하였다.

 

‘91년 5월 산림청으로부터 24만3천평의 면적에 전국 최초로 민간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받아 ’94년까지 71억원을 들여 조성

운영하여 왔으나안타깝게도 금융권의 부채로 경매처분하게 되었다.

2002년 대전시에서 인수하여 관리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 출렁다리 가는길..

한사람의 노력으로 이런 아름다운 휴양림이 조성되고 멋진 시설까지 합쳐지니 대전시민뿐만 아니라 전국민의 복이라 할

것이다.

 

▲ 제3주차장을 지나고..

 

▲ 급하게 올라가는 데크계단을 오르면..

 

▲ 두번째계단에서 오른쪽은 전망대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출렁다리길이다.

 

▲ 11시 30분 : 출렁다리..

 

▲ 출렁다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전망대가 보인다.

 

11시 35분 : 어더벤쳐(adventure) 숲길..

출렁다리를 건너와서 스카이타워로 가는 새로운 경험의 길 입구다..

 

▲ 지나온 출렁다리..

 

▲ 하루중 피톤치드가 왕성하게 배출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마음은 벌써 평안함으로 채워진다.

 

▲ 스카이타워 입구.

마치 주차타워를 올라가듯.. 나선형으로 올라 간다.

 

▲ 가운데는 각종 자연의 모습을 한 모빌이 이색적이다.

빙글빙글 돌아올라 가고 약간의 흔들림이 있다보니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어지럽다고 한다.

 

11시 41분 : 스카이타워 옥상 도착...

그 뜨거웠던 폭염도 시간앞에서는 꽁지빠지게 도망가고 산행하기 딱 좋은 가을 하늘이다.

 

▲ 건너편의 형제바위를 당겨 본다.

 

▲ 메타세콰이어는 1940년대까지도 화석으로만 존재하던 나무였다고 한다.

 

▲ 그런데..

1945년 중국 사천성 양자강 유역의 마도계(磨刀溪)라는 계곡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나무가 발견됐다.

중국의 한 임업공무원이 이 나무 표본을 북경대학에 보내 조사케 했는데.. 놀랍게도 메타세콰이어로 밝혀졌고 다음 해 중국

지질학회지에 살아 있는 메타세콰이어로 실리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 살아있는 화석식물 목록에 은행나무.. 소철 등과 함께메타세콰이어가 추가된 것이다. 

이 때부터 이 나무 묘목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됐고 우리 나라에도 1960년대쯤 공원수나 가로수 등으로 식재 되었다.


1972년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 당시 내무부의 시범지역으로 지정되면서 3~4년생 메타세콰이어 묘목을 심었는데 매년

1m씩 자라나 지금은 하늘을 덮는 울창한 가로수가 되었다고 하는데.. 처음 이 나무가 담양의 가로수로 채택될 무렵만 해도

무척 귀한 나무여서인지 삽목을 하기 위해 밤중이면 이 나무가지를 베어 가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 스카이타워를 내려와 본격적인 등산로 들머리는 가파른 데크로 이어진다.

 

▲ 대전의 오늘 한낮기온이 25도.

 

배낭의 무게는 인생의 무게라는 말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를 이겨내며 한발한발 정상으로 향하는 줄기에는

기분좋은 육수가 살짝 배여 나온다.

 

▲ 데크계단이 끝나면.. 바람길이 좋은 주능선에 올라서게 되고..

 

12시 11분 : 그늘좋고 평평한 곳에서..

 

▲ 오늘도..

권회장님의 잭다니엘과 조고문님의 양주.. 그리고 솜씨좋은 님들의 맛깔나는 먹거리로 느긋하게 호사를 누린다.

 

13시 03분 : 떡갈봉 갈림길.

 

떡갈나무 유래.. 예전 사람들은 더운 여름철에 딱딱한 바닥에 떡갈나무 잎을 깔아 에어매트처럼 이용하거나.. 떡을 찔 때

사이사이에 넣어두어 달라붙는 것을 막고 잎 향기가 떡에 스며들게 했다고 하며 떡갈나무란 떡을 찔 때 넣는 참나무, 즉..

"떡갈이나무" 란 뜻이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 13시 17분 : 석탑.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장안저수지와 팔마정.

<팔마정 유래>

이곳 장안저수지 일대가 과거 물이 잠기기 전 팔마(八馬)마을이라고 불려졌던 곳으로 팔마(八馬)는 여덟마리의 말이 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에서 유래되었다.

 

▲ 장태루..

 

▲ 아래 골짜기는 물통골이고 건너편 산은 안평산 끝자락이다.

안평산은 “산 속에 만인이 피난을 와도 살 곳이 있다”고 해서 안평산(安平山)이라 부르게 됐다는 설이 있다.

 

13시 30분 : 형제바위..

장태산휴양림에서 또 하나의 멋진 조망처인 핫 플레이스(Hot place)다..

여기서 내려다 보면  장태산자연휴양림의 출렁다리와 스카이타워가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조망맛집이다.

 

▲ 하산길에 바라본 어더벤쳐 숲길..

메타세쿼이아 숲이 붉게 물들었더라면 한층더  풍경이 좋았을텐데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하산길이다.

 

13시 53분 : 휴양림제1주차장 산행종료.

 

▲ 트랭글 정리.

 

15시 11분 : 충남 금산군 진산면 막현리 느티나무식당.

 

▲ 200년이 넘은 마을수호목 느티나무 두그루..

 

▲ 느티나무 아래에서 호박잎과 콩잎을 다듬고 있기에.. 콩잎은 경상도에서만 먹는데 여기 충청도에서도 콩잎을 드시냐고

물으니.. 경상도에서 시집온 이후 콩잎장아찌를 담아 먹는다고 한다.

 

▲ 회장님의 건배제창... 소리질러!~~~..ㅎㅎ

 

▲ 느티나무식당을 뒤로 하고..

 

17시 02분 : 금산세계인삼축제장으로.. 오늘이 축제 마지막날인가 보다..

 

▲ 핑크뮬리..

 

▲ 금산인삼도 이제는 글로벌 시대다.. 국내축제에서 세계인의 축제가 되었다..

 

▲ 18시 00분 : 금산인삼축제장 주차장으로..

 

지난 여름의 유례 없는 폭염으로 단풍적기가 1주일 늦어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서서히 가을이가 익어가기 시작하는 날에..

좋은 님들과 함께 나누었던..최상의 하루였다.

2024년 09월 08일(일).

농다리. 초평호둘레길 : 충북 진천군.

 

산행코스 : 농다리주차장-농다리-야외음악당-초롱길-하늘다리-둘레길-미르309출렁다리-용고개-농다리주차장.

산행시작 : 농다리주차장  11시 19분.

산행종료 : 농다리주차장  14시 58분.

전체거리 : 약4.8km.

전체시간 : 03시간 39분.

운동시간 : 02시간 27분.

휴식시간 : 01시간 12분.

 

11 : 19  농다리주차장.

11 : 28  농다리.

11 : 36  용고개.

11 : 38  야외음악당.

11 : 43  초롱길.

11 : 57  하늘다리.

12 : 07  둘레길.

13 : 03  미르309출렁다리.

13 : 34  야외음악당.

14 : 10  농다리.

14 : 58  농다리주차장 종료.

 

 11시 19분 : 농다리 소형차주차장.

 

농다리 대형차 주차장.

소형차주차장과 길 하나를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대형차주차장이 매우 협소해서 전국에서 모인 차들로 이미 만차가 되어..

여기서 하차하고 버스는 다른곳에 가 있다가 다시 태우러 온다고 한다.

 

 농다리주차장에서 초평호둘레길 입구인 농다리까지는 약 550m를 걸어가야 한다.

 

구산동 마을 표시석.

진천군 문백면 구산동은 고려초 개국공신 상산 임씨의 천년 세거지다...상산(常山)은 진천(鎭川)의 옛 지명이다.

상산(진천) 임씨의 시조 임희(林曦)는 고려 혜종비 의화왕후(義和王后)의 아버지로서 상산백(常山伯)에 봉해진 것을 연유로

상산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농다리 스토리움(Nongdari Storium)..

스토리움은 스토리(Story)와 공간(Rium)의 합성어다. 이야기가 있는 공간, 역사문화관 등의 전시관이다.

 

▲ 중부고속도로 밑을 지나가면...

 

▲ 미호강 건너편에 인공폭포가 시원하게 흐른다... 폭포 위에 "생거진천" 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2009년에 설치되었고 높이 80m, 폭 24m 이다.

 

▲ 이곳 충북 진천에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속담으로..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

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힌다는 뜻이다.

이 속담은 단순히 살아있는 곳과 죽은 후에 묻히는 곳을 구분하는 의미뿐 아니라, 효도와 선조를 존경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 부교와 농다리.

농다리에 관해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전설에 가깝다. 임장군 임연은 매일 아침 세금천(현 미호강)에서 세수를 했는데,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하천 건너편에서 젊은 부인이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고 친정에 가기 위해 내를 건너려 하고 있었다.

임장군은 여인의 지극한 효성을 배려해 즉시 용마로 돌을 실어 날라 하루아침에 다리를 놓아 부인이 무사히 건너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진다.

 

▲ 농다리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위치한 길이 93.6m, 너비 3.6m, 높이 1.2m의 옛 돌다리이다.

고려 초에 권신과 임장군이 축조했다는 천년이 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돌다리인데 생김새 또한 특이한 게

자랑이다. 하늘의 28수 별자리를 따라 28칸 돌 교각으로 조성되어 있었으나. 오랜기간 일부 교각이 유실로 25칸만 남아

있다가.. 2008년 28칸으로 원형 복원을 완료하였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 작은 돌을 물고기비늘처럼 쌓아올린후 지네모양을 본떠 만들어진 모양으로 인해 "지네다리"라고도 불리기도한다.

 

미호강은 충북 음성에서 발원하여 진천, 청주를 거쳐 세종시에서 금강에 합수되며 길이는 89km이다.

 

▲ 뜻밖에도 10수년전에 같이 산악회 활동을 하던 회원님(남자)을 만났다.

 

▲ 오랜만에 만나는 추억의 아이스께끼~..

 

▲ 용고개의 청룡..

 

▲ 초평저수지가 조성되기전에 화산리라는 마을이 있었고..마을로 넘어 다니던 "용고개"에 얽힌 전설따라 삼천리 이다.

 

▲ 고개너머에는 황룡이다.

 

11시 38분 : 현대모비스 야외음악당.

2015년 미르숲 개장 이후 야외음악당에서 양희은.. 이은미.. 박미경 등 유명 가수들이 공연을 펼치면서 미르숲 음악회는

힐링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고... 미르숲은 진천 대표 관광지인 농다리, 초롱길, 하늘다리와 연결하면서 전국적인 생태

명소로 떠올랐다.

 

▲ 초평저수지 전경.

충북 진천군은 현대모비스의 사회공헌사업인 미르숲 조성을 하면서 현대모비스는 2010년 공모사업에 진천군을 선정해

사회공헌사업비 100억원을 기부하였고... 진천군은 초평면 화산리 산 7-1 일대 군유림 108㏊를 사업 대상지로 제공했다.

사업은 자연환경국민신탁이 맡아 2012년부터 10년간 숲 조성과 관리를 담당하였고... 2021년 12월 28일 진천군에 관리가

전환 되었다.

 

▲ 초롱길 진입..

먼저 미르309출렁다리로 가서 시계 역순으로 한바퀴 돌려다가 미르309출렁다리쪽은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피하고..

시계 순방향인 초롱길에서 부터 시작 한다.

 

▲ 코로나가 다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요즘에는 가급적 사람 많은곳을 피하는게 좋다.. 호젓해서 좋다..

 

▲ 이쪽은 초롱길이고 건너편은 초평저수지 둘레길이다.

 

▲ 쏘가리를 닮은 바위 주둥이에 미끼를 끼워 놓았다..

 

▲ 초평저수지 어업권을 가진 어부가 어로활동을 하는지 한가롭다...

 

▲ 짚라인도 있는가 보다.

 

12시 21분 : 바람길이 좋은 초평저수지 둘레길에서... 조촐하고 오분순한 점찍기다..

 

잭 다니엘에.. 오징어 초장.. 환상적인 조합이다.

 

▲ 미르309출렁다리에서 회장님을 만난다.

 

▲ 미르309출렁다리.. 미르는 용(龍)의 순 우리말이다. 

진천군이 80억원을 들여 금년 2024년 4월 12일에 국내 주탑 (主塔·주 케이블의 최고점을 지지하는 탑)이 없는 출렁다리 중

가장 긴 진천군 “초평호 미르309 출렁다리”가 개통했다. 폭 1.6m이며, 일반적인 교량과 달리 주탑과 중간 교각이 없어

짜릿함을 느낄수 있을 뿐 아니라 탁 트인 초평호의 전경을 만끽할 수 있으며 초평호 둘레길인 초롱길 초입에 있는 “미르숲”

과 주변 산의 등산로와 연결 되어 있다.

 

▲ ㅎㅎㅎ~

용의 입에 여의주 대신 머리를... 초평저수지 용에게 용용 죽겠지 하고 눌리는 겁니까?..ㅎㅎ

 

▲ 웃음으로 더위를 날려 버리는 멋진 퍼포먼스(performance) 였습니다..ㅎㅎ~.

 

▲ 발밑에 초평저수지가 선물하는 보석같은 "윤슬" 이다.

 

▲ 농다리 처럼 발이 많이 달린 지네다리다.. 70kg 성인 1650명이 동시에 건너갈수 있는 안전한 다리로 설계 되었다.

 

▲ 하늘에서 내려다본 초평저수지다.. 한반도 지형을 둘러싼 용의 모습처럼 보인다.

 

▲ 아래쪽의 황토길을 가기위해 내려가는데...

 

▲ 119구급대가 떳다... 70대라고 하는데 더위에 지쳤나 했더니.. 심장병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 여기서 청봉의 핵심 임원님들을 만난다.

 

▲ 황토 맨발숲길로 진입하려는데.. 관리인이 신발을 신고는 못간다고 한다.... 벗고 씻고 귀찮아서 안갈랍니다..ㅎㅎ~.

 

▲ 현대모비스 야외음악당에서.. 물멍~..

중심봉에서 내려 오면 한반도 전망대가 있다. 거기에서 보는 초평저수지가 가히 선경의 경지다.

 

▲ 용고개..

 

▲ 다시 중부고속도로 밑을 지나오니..

 

▲ 농다리문화공간에..

 

▲ 진천군 출신들의 명사들과 소개글을 새겨 놓은 동판을 길바닥에 설치해 놓았다..

 

▲ 진천 만뢰산 아래에 김유신 생가가 있다.

 

▲ 물봉선화.

꽃말은... "나를 건더리지 마세요" 이다.

 

▲ 대형버스주차장은 아직도 만원이다.

 

▲ 진천을 다녀간 지방수령들의 공적비.

 

▲ 임수전부자 충신문.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임수전.. 임현 부자의 정려각이다.

임수전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아들 임현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죽산 봉성에서 격전

을 벌이다 전사하였다.. 아들 임현은 만주의 부차성 전투에서 명의 원군으로 나가 싸우다 전사하였다.

임수전 부자 충신문은 임수전 부자가 나라를 위해 순국한 뜻을 기리는 정려각이다.

 

▲ 15시가 다 되어 청봉의 애마가 오고.. 하산식 장소로 이동한다.

 

▲ 상호가 농민 쉐프의 묵은지 화련이다... 하산주 장소인데.. 상호가 이쁘다.

 

▲ 가게로 들어서니 주인장의 취향을 짐작할수 있는 진열장이다..

 

▲ 살아서는 진천에 살으리랐다 했는데.. 살고 있지는 못할지언정... 객의 발길이 인연따라 여기까지 왔으니 인심 좋고

푸짐한 진천의 밥 한상을.. 배 두드리며 먹어 보기나 하자..

 

▲ 좋은땅에 오니 기운이 솟는가 봅니다.

 

▲ 직전 회장님의 익살에... 회장님도 웃지요.. 청봉님들도 마냥 웃지요.. ㅎㅎㅎ~.. 이런 웃음이 평범한 일상의 행복입니다.

 

▲ 곳간에서 인심 난다 라는 말처럼... 커다란 가마솥에서도 살기좋은 진천의 넉넉한 인심이 묻어나는것 같다.

 

▲ 생거진천의 땅에서... 미르(용)의 기운까지 받았는데.. 천하대장군.. 여장군도 함박웃음으로 배웅해 준다..

그리고.. 한결같은 청봉님들의 환대에 감사합니다..

2024년 09월 01일(일).

속리산국립공원 도명산 : 충북 괴산군.

 

산행코스 : 화양동주차장-운영담-화양3교-첨성대-515봉-도명산-마애불-학소대-와룡암-능운대-만동묘-화양동주차장.

산행시작 : 화양동주차장  10시 59분.

산행종료 : 화양동주차장  15시 57분.

전체거리 : 약8.93km.

전체시간 : 04시간 57분.

운동시간 : 04시간 01분.

휴식시간 : 00시간 56분.

 

10 : 59  화양동주차장.

11 : 16  운영담.

11 : 25  화양3교.

11 : 28  첨성대.

12 : 24  515봉.

13 : 52  도명산.

14 : 10  마애불.

14 : 55  학소대.

15 : 02  와룡암.

15 : 12  능운대.

15 : 25  만동묘.

15 : 57  화양동주차장 종료.

 

 10시 59분 :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동주차장... 2009년 10월에 왔어니 15년만에 이자리에 다시 왔다.

 

 주차장휴게소도 15년전보다 깔끔하게 단장 되어 있다.

 

도명산탐방지원센터앞을 통과하여 화양구곡쪽으로..

 

기암이 약250m지점의 그자리에 옛모습 그대로 앉아 있다.

 

우리의 솔잎님들이 지나간 길가에.. 가을이가 한점.. 내려 왔다.

 

화양천을 건너는 화양2교에서 바라본 상류쪽의 운영담 방향.

화양구곡은 조선 영조가 "송자(宋子)"로 칭한 우암 송시열(1607~1689)이 1666년부터 1688년까지 머물면서 산수를

즐기며 제자에게 강학했던 곳이다.

 

 11시 16분 : 화양구곡중에 제2곡인 운영담(雲影潭).

 

10배 줌으로 당겨온 운영담(雲影潭) 각자(刻字).

운영담(雲影潭)은...화양천 계곡에서 빠르게 흘러내려온 맑은 물이 잠시 고여 구름의 그림자를 맑게 비추며 숨을 가다듬은

후에 다시 흘러간다는.. 주자(朱子)의 시(詩)인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의 뜻을 따온 ‘운영담’이라는 글씨

바위에 새겨져 있다.

 

화양구곡중에 제3곡인 읍궁암(泣弓岩).

계곡을 향해 누운 펑퍼짐한 이 바위 위에서 우암 송시열이 효종임금이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41세 젊은 나이에 승하

하신것을 슬퍼 하며 한양을 향하여 활처럼 엎드려 통곡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효종 임금을 기리며 매일 새벽과 효종의 제삿날인 5월 4일에 엎드려 곡을 했다고 한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외로운 충정만 하늘에 닿았도다.

새벽이 되도록 통곡만 하다가..

또 다시 엎드려 무릎 끌어안고 탄식하노라~.

 

권상하(權尙夏)의 시(詩)...

읍궁암(泣弓岩)..

 

하마비.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젊었을때 이곳을 지나는 길에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하여 만동묘지기(혹은 지역 유생)에게 패대기를

당하고 얻어맞는 등의 고초를 당했다는 야사가 전해지고 있다.

 

화양동서원과 만동묘..

하마비 오른쪽에 있어며... 하산길에 들러볼 생각이다.

 

 화양동서원 묘정비(廟庭碑).

묘정비는 서원에 세우는 비로.. 사원을 건립하게 된 동기와 모시는 인물을 찬양하는 내용을 기록해 두는 비석이다.

영조 23년(1747)에 세웠으며.. 이재가 글을 짓고.. 유척기가 글씨를 썼다. 묘정비는 서원철폐령이 내려진 후 일본인들이

고의로 글자를 지우고 땅에 묻어버렸다. 일본인들이 글자를 모두 쪼아 없애 버렸기에 해석은 불가능하다.

이후 만동묘와 함께 복원되었다.

 

 화양천 건너편의 암서재(巖棲齊)와.. 화양구곡중의 제4곡인 금사담(金沙潭).

금사담(金沙潭)은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금싸라기 같이 보이는 게곡속의 못이라는 의미이다.. 암서재 아래 붉은 타원형

점선안에 "금사담"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암서재 아래 화살표에..

 

금사담(金沙潭)이라는 각자(刻字)가 뚜렷하다.

 

 금사담(金沙潭)오른쪽 석벽에는...

 

창오운단(蒼梧雲斷).. 명나라의 황제가 살던 시대의 구름이 끊기고..

무이산공(武夷山空)...주자(朱子)가 살던 무이산은 비어 있다는 뜻으로 주자학의 본산인 명이 사라지고 없음을 의미한다.

 

 화양천 건너편의 암서재(巖棲齊)는..

금사담(金沙潭) 물가의 큰 반석위에 있는 서재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송시열(宋時烈)이 정계에서 은퇴한 후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화양구곡(華陽九曲)에서..

화양(華陽)이란 '중국 문화의 햇빛'이라는 뜻이다.  송시열은 이 골짜기에 작은 중화(中華:중국의 문화)를 이루려고 했다.

송시열은 이곳에 들어온 후 일상생활도 되도록 중국의 생활방식을 따르기 위해 옷도 명나라 옷과 평정건(平頂巾)을 썼다.

 

11시 25분 : 화양3교... 도명산 들머리.

 

 11시 28분 :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화양구곡 중에 제 5곡인 첨성대(瞻星臺)를 둘러본다.

만절필동(萬折必東)은..황하가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을 향해 흘러간다(충신의 절개는 꺾을수 없다)는 뜻이다.

 

첨성대.

 

가운데 글씨는...비례부동(非禮不動)으로...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대명천지(大明天地)는.. 조선의 하늘과 땅은 명나라 것이고..

숭정일월(崇禎日月)은.. 조선의 해와 달도 숭정 황제의 것이라는 의미로...극치의 사대주의를 보여주는 씁쓸한 글들이고.

송시열의 숭명(崇明)사상이 고스란히 새겨진 글씨다

참고로.. 숭정(崇禎)은 북경의 경산공원에서 1644년에 자살한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지리산 상내봉의 안락문 같은 분위기다.. 반쯤 들어가다가 일행들과 너무 떨어진것 같아서 부지런히 올라간다.

 

드디어.. 계단위에 솔잎의 꼬랑자가 보인다..

 

 간식거리로 정나눔을 하는 팀들과도 만나고..

 

오늘의 괴산 날씨도 32도를 오르내린다.

도명산 2.2km남은 지점까지 올라와도 바람끼가 없다... 에어컨이 꺼진걸 보니 괴산의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가 보다..ㅎ~

 

무리하지 말자.. 다시 너럭바위에서..

 

 재충전을 하고..

 

 발 딛기가 까탈스런 너덜겅을 만나는데.. 다행히 직등이 아니고 사면으로 수평이동이다.

 

 약간의 오름을 치고올라.. 도명산에서 오른쪽의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올라선다.

 

 515봉 된비알 오름의 시작이다.

 

 발아래 화양계곡따라 멀리 우리가 출발하였던 화양동 주차장이 보여서...

 

 줌으로 한껏 당겨 보니 산악회 차들이 제법 보인다. 화양계곡은 여름산으로 많이들 찾는 곳이다.

 

 도명산 정상이 눈높이로 다가오고..

 

 12시 34분 : 515봉 도착..

 

13시 00분 : 간간히 불어주는 그늘에서.. 점찍기가 늦었다고 아우성치는 속 달래기... 먹고 마시고..

 

 도명산 정상이 지척이다.

 

 도명산 통천문..

 

영암 월출산 천황봉의 통천문 보다는 길이가 짧지만.. 들어서니 시원한 통바람이다.

 

 최고의 연리목이 있는 사랑산과 남군자산.. 그너머로는 군자산이 버티고 섰다...

 

 솔잎의 히어로.. 윤회장님..점점 일취월장에.. 플러스 알파로 잘하고 있습니다.

 

 카페 서핑으로 솔잎을 찾아 왔다는데.. 산꾼의 포스(force)가 묻어난다.. 매달 함께 산행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산행을 해보시면.. 참~ 좋은 언니들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겁니다.

 

도명산은 국립공원 속리산에 속하여 있으며 그 중에 예로부터, 천하 절승지로 이름난 화양동계곡 남쪽을 가로 막고

서있는 명산으로 화강암의 바위봉과 기암석벽이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도명산에서 마애불로 가는 내림길이 장난 아니게 가파르다..

 

14시 09분 : 도명산 낙영산 갈림길..

 

▲ 14시 11분 : 마애 삼존불.

 

 왼쪽 동떨어진 암벽에 새겨진 또하나의 불상은 5.4m로 다른 불상과 달리 돋을새김 기법으로 곡선미를 잘 보여준다.

.

석벽엔 마치 밑그림 처럼 불상이 선각(線刻)되어 있다.

삼존불 중 오른쪽 불상은 9.1m 높이에 안면 길이만 2m에 이른다. 가운데 불상은 더욱 커 높이가 14m나 된다.

 

▲ 마애불 앞의 거대한 통바위..

이 바위로 팔공산 갓바위처럼 입체형 불상을 조각하였다면.. 완전 도명산의 유명한 불상이 되었을 것이다.

 

▲ 상류에 낙영폭포가 있는 사지목골에는 매미소리도 더위에 지친듯 고요하다...

 

14시 52분 : 학소대교.

 

화양천 상류..

 

화양천 하류쪽.

화양구곡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에 있는 경승지로... 1974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4년 속리산국립

공원에 포함되었다. 조선 중기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은거하며 이곳의 경치가 중국의 무이구곡에 버금간다고 보고 아홉

개의 구비마다 이름을 붙이면서 화양구곡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2014년 대한민국 명승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화양구곡 중에 제8곡인 학소대(鶴巢臺).

청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학소대(鶴巢臺).

 

 상류에는 퇴계 이황이 거닐었다는 선유구곡이 있다..

 

▲ 화양구곡 중에 제 7곡인 와룡암 (臥龍岩).

비스듬히 계곡을 질러 뻗은 바위가 용이 꿈틀거리는 듯하여 와룡암이다.

 

▲ 와룡암 (臥龍岩).

 

▲ 화양구곡중에 제 6곡인 능운대(凌雲臺).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능운대라 한다.

 

▲ 첨성대..

 

▲ 아침에 지나쳤던 화양서원으로..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은... 조선 후기의 정통 성리학자로 본관은 은진으로.. 주자(朱子) 의 학설을 전적으로 신봉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평생의 업을 삼았으며, 17세기 중엽 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했다. 보수적인 서인, 특히 노론의 입장을 대변했으며, 명나라를 존중하고 청나라를 경계하는 것이 국가정책

의 기조가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1689년 숙의장씨가 낳은 아들(뒤의 경종)의 세자책봉이 시기상조라 하여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미움을 사서

모든 관작을 삭탈당하고 제주로 유배되었다. 그해 6월 서울로 압송되던 길에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 만동묘로 들어가는 양추문..

 

▲ 송시열은 숙종15년(1689)에 사약을 받고 죽게될 지경에 처하자 제자 권상하(1641-1721)에게 명나라가 멸망한지 50년

이 지났건만, 명나라의 신종 만력제와 의종 숭정제의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라고 유언을 내리자 제자 권상하가 숙종

30년(1704) 인근 유생들의 협력을 얻어 화양서원내에 만동묘를 창건하고 스승의 유언대로 만력제와 숭정제의 신위를 봉안

하여 제사를 올렸다. 이후 조선 임금들도 만동묘를 융숭하게 대우하였다. 영조 2년(1726) 나라에서 만동묘에 제전과 노비

를 내려주었고 그 후에도 예조에서 90명이 돌아가며 묘우를 지키게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지원을 했다. 정조는 직접 사필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만동묘는 이후 서원 폐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받았다.

지역의 백성들에게 노역을 빼주겠다고 강요하여 돈을 받아내고 서원의 제사 비용을 부담케 하고.. 할당된 비용을 내지 못한

백성들을 함부로 붙잡아서 폭행하거나 고문하는 등 만행이 심했다. 심지어 거슬리는 백성을 멋대로 사형시켜도 처벌받지

않을 지경이었다. 당시 이 일대에 "원님 위에 감사.. 감사 위에 참판.. 참판 위에 판서.. 판서 위에 삼상(삼정승).. 삼상 위에

승지.. 승지 위에 임금.. 임금 위에 만동묘지기"라는 노래가 퍼졌을 정도였으니 횡포가 대단했었던 모양이다.

 

결국 고종 2년(1865)에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를 할때 동시에 만동묘를 철폐하고 만동묘에 소속된 재산을 국가와 지방

관청에 귀속시켰다.

 

▲ 만동묘 계단..

만동묘의 계단은 발디딤의 폭이 매우 좁고 단이 높은데, 명나라 황제가 계신 곳을 무엄하게 그냥 걷지 말고 기어서 올라

가라는 의미가 있다...실제로 올라가 보니 단은 높고 폭은 좁아서 바짝 긴장하고 조심해서 올라야 된다. 내려올때 위험하다.

 

▲ 만동묘..

만동묘라는 이름의 유래는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조종암(朝宗巖)에 새긴 선조의 어필 만절필동(萬折必東)을 모본하여

화양리 첨성대 바위에 새겼는데, 그 첫 글자와 끝 글자를 따서 "만동묘"라고 하였다..

 

▲ 만동묘 시당..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화양계곡 내에 위치한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신종(만력제)과 명나라

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숭정제)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만동묘는 사적 제417호, 만동묘정비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 화양서원(화양동서원) 내부에 있던 시설로 화양서원은 서원 철폐 이후 터만 남았다가 1999년 사적

으로 지정 후 2001년부터 04년까지 만동묘와 승삼문, 송자사등 일부 건물을 복원하였다.

 

화양서원.

1695년(숙종 21)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하기 위해 권상하(權尙夏).. 정호(鄭澔) 등 노론이 건립을 주도했으며, 1696년 창건

하고 사액을 받았다. 1716년(숙종 42)에는 어필로 편액을 받았다. 서원의 명칭인 '화양'의 뜻은 중화의 정신을 널리 알린다.

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주차장으로 가는길에 부회장님의 삼인방..

 

 15시 57분 : 화양동주차장 산행종료.

 

 

16시 50분 : 산막이옛길의 맛집.. 지난 7월에 하산식을 했던 집이다.

 

 순두부전골...

 

 회장님의 건배에 이어...

 

 직전회장님의 건배로 마무리..

2024년 08월 15일(목).

삼성산. 용봉. 마성산 : 충북 옥천군.

 

산행코스 : 삼양리철도교-삼성산-용봉-마성산-사목재-4코스-자연휴양림-방문자안내소.

산행시작 : 삼양리철교  09시 53분.

산행종료 : 휴양림방문자안내소  15시 26분.

전체거리 : 약10.8km.

전체시간 : 05시간 34분.

운동시간 : 05시간 08분.

휴식시간 : 00시간 25분.

 

09 : 53  삼양리철도교.

10 : 21  삼성산.

11 : 22  용봉.

13 : 25  마성산.

14 : 04  사목재.

14 : 26  4코스 탈출.

15 : 09  자연휴양림.

15 : 26  방문자안내소 종료.

 

09시 53분 : 삼양리 철도교.

 

주민들이 많이들 이용하는 동네산답게 안내판과 신발먼지털이도 잘 설치되어 있다..

 

급하지 않은 완만한 경사를 4~5분 가량 오르면..

 

삼성산 안부에 올라서고 등로는 주능선으로 이어 진다..

 

성터 흔적.

성터 안내문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돌무더기다.

 

백제와 신라간의 전투 중 가장 치열하였다는 관산성전투의 위치가 고리산이라는 설과 삼성산이라는 설이 있어

옥천향토사쪽에서는 어디가 관산성이라고 정하지 않아 이 곳을 삼성산성이라 부르고 있다.

 

충북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 남성골에서 고구려산성이 발견이 되고.. 대전의 월평산성 발굴에서는 백제성터 밑부분에서

고구려 토기가 발견이 되었는데.. 예산상의 문제로 발굴을 중지했다고 한다.

또한 대전 복용동 당산마을 유적 발굴과정에서  마을이 한꺼번에 화재로 인하여 파괴된 흔적이 발견이 되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고구려 남하정책과 더불어 전쟁으로 인하여 마을이 불 타버렸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관산성은 바로 코앞까지 내려온 고구려의 남진을 방어하기 위해 약 486년을 전후로 나제동맹을 근거로 백제 땅에 신라가

만든 산성일 것이라고 추측을 한다.

 

 10시 21분 : 삼성산.

동국여지승람에 이 산에 3개의 성이 있다고 하여 삼성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바위도 세 조각으로 되어 있다.

 

▲ 삼국사기에 의하면 관산성전투는 백제와 신라 간의 전투 중 가장 유명하며 또 기록상으로 삼국시대 전투 중 가장 자세

하게 기록된 전투다. 흔히 백제 성왕의 죽음으로 잘 알려졌다.  4세기 후반 때처럼 백제, 가야, 왜국 대 신라의 적대 구도가

다시 부활하였고, 6세기 중반에서 7세기 중후반 신라의 삼국통일까지 이어지는 후기 삼국 시대의 판도에 큰 영향을 끼친

매우 중요한 전투다.  554년 7월, 관산성에서 신라와 백제 사이에 건곤일척의 결전이 벌어진다. 고구려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아 국가 중흥을 이루려는 백제와 한강 유역 일대를 장악하여 한반도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신라가 국운을

걸고 맞붙은 싸움이었다. 이 전쟁으로 "백제는 좌평 네 사람과 장병 29,600명이 참살되었고 말 한필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라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해진다.

전투는 신라의 승리로 끝났고, 이 전투에서 백제 26대 성왕은 적군에게 목숨을 잃었고 약 3만 명의 백제군도 전사하였으며,

120년간 유지되던 나제 동맹이 깨어지게 되었다. 백제는 관산성 전투 패배의 후유증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반면 백제를 패퇴시킨 신라는 사방으로 영토를 넓히며 삼국 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

 

▲ 신라에 붙잡힌 백제 성왕의 목을 하급병사에게 베라고 한것도 부족하여 신라는 성왕의 목을 신라 왕궁 북청의 계단 밑에

묻고 신라 귀족들이 모두 밟고 지나가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고, 나머지 몸은 백제로 반환되었다.

 

이에 분노한 백제측에서 기병을 이끌고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지만.. 성왕이 죽은 구진벼루 위쪽 관산성 아래에서 대패를

당하게 된다. 이후 의자왕때 백제군이 대야성 전투에서 승리한후 김춘추가 가장 사랑했다던 막내딸과 사위의 목을베어

백제의 수도 사비성으로 보내 성왕의 복수를 하게 된다. 결국 김춘추는 그 일로 한을 품고 굴욕을 참아가며 당나라의 협력

을 얻어와 백제를 멸하게 된다.

 

▲ 관산성전투 참고도.

백제 성왕을 붙잡아 죽인 전공을 세운 장군 김무력은 이후 초고속 승진을 한 기록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

551년 단양 신라 적성비나 553년 7월 《삼국사기》의 신주 군주로 김무력을 임명할 때 김무력은 신라 17관등 가운데 여섯째

등급인 아찬이었는데, 555년 세워진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나 561년 창녕 척경비에서는 3번째 등급인 잡찬으로 관등이

3등급 승진했다. 거의 약 2년 만에 3관등 승진인데 신라의 다른 기록을 봐도 이렇게 짧은 기간에 3단계 승진은 거의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속 승진이다. 관산성 전투에서 활약한 전공을 인정받은 듯하다.

 

▲ 용봉을 넘어 마성산으로 가는 능선길.

이 능선이 관산성 전투가 벌어지던 백제 성왕시절의 신라군 최전방 라인 이다.

 

▲ 국사봉..

삼국시대라면 백제땅이다.

 

▲ 식장산..

건너편 능선은 백제의 최전방 라인인.. 식장산이 코 앞에 있고 그 너머가 바로 대전이고 보면 대전 옆의 백제의 구도인

공주(웅진)과 새로운 도읍인 부여(사비)에서 멀지 않은곳 이니 만큼 백제로써는 한치도 더 이상 물러나서는 안되는 절대

사수의 지역인 셈이다..

 

▲ 용봉 오름길에 바라본 옥천읍 전경..

옥천의 신라시대 지명은 고시산군 이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는 상주의 관성군으로 바뀌었다가 고려시대에 옥주(沃州)를

거쳐 조선시대에 옥천으로 변했다고 한다. 옥천(沃川) 이라는 이름은 강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기름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옥주가 옥천으로 변한것은 조선 태종때의 일인데, 계수관 제도로 인하여 각 지역의 주요 거점 도시만 주(州)를

사용하도록 하고 기타 고을 주(州) 자가 들어가는 다른 도시는 모두 산(山) 이나 (川) 으로 변경 하도록 했다고 한다.

당시 경상도에 속하던 옥주는 태종의 명으로 보은, 황간, 영동, 청산과 함께 충청도로 소속 변경을 하게 되었는데 이미

충청도에는 주요 거점도시로 충주, 청주, 홍주, 공주가 있어 그 이름을 유지했고, 옥주는 옥천이 되었다고 한다.

 

▲ 멀리 도덕봉이 보인다.

예전에는 도둑들이 극성을 부려 도둑봉 이라 불리다가 도덕봉 으로 고쳤다고 한다.

대전 수통골에 있는 도덕봉과 이름의 유래가 똑 같은걸 보면 전국의 도덕봉이란 그 고상한 이름과 달리

대부분 도둑들의 소굴이 이쁜 이름으로 포장 되었을 듯 싶다...

 

11시 22분 : 용봉.

 

▲ 용봉까지는 선명하던 길이었는데... 마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흔적이 희미하다.

 

11시 45분 : 동평성터.

 

▲ 11시 22분 : 성재.

옥천읍 마암리로 내려가는 탈출로다.

 

조여사님의 작품...

밑에서 찍어 드렸다고 한컷 해주시네요.. Give and Take...기브 앤 테이크.. 조여사님 감사합니다.ㅎㅎ~

 

바위지대를 넘어서면 오른쪽으로 옥천군 군서면 평야지대가 보이는데.. 바로 그 평야지대 끝에 현재 지도상에 "말동산"

이라고 되어 있는 성티산성이 있다. 당시 백제의 기마병이 주둔을 했던곳으로 백제의 성왕이 고위 관료들과 함께 그곳에서

전장을 지휘했던 곳이다. 이곳의 백제 기병을 상대하려고 삼년산성에서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 장군의 기병이 내려와

구진벼루(충북 옥천군 군서면 월천리)에 숨어있던것인데, 그걸 알리없는 성왕은 늘 다니던대로 고리산에서 백제의 주력을

이끌고 있는 태자 "부여창"을 만나러 가다가 잡혀서 황당한 참살을 당하게 된다.

 

 마성산성 흔적..

 

마성산 정상.

컨디션 난조로 마성산 정상을 패쓰 했는데.. 김더덕님이 보내주셨다.

 

 마성산 정상의 돌탑... 김더덕님의 작품..

 

마성산성 안내문... 김더덕님의 작품이다..

 

마성산 하산길에 바라본 장령산..

장령산(壯靈山 : 656m)은 장룡산(壯龍山)이라고도 부른다.

충청북도 옥천군의 군서면, 이원면, 옥천읍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한국지명총람』에 '장룡산(壯龍山)'이 기록되어 있으며, 산에 '용바우'라는 바위와 '용암사(龍岩寺)'라는 사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지명의 유래가 소개되어 있다. 현재는 장령산 자연 휴양림 지역으로 유명하다.

 

▲ 어느새 식장산도 멀어져 간다.

 

14시 04분 : 사목재.

사목재는 옛날 군서 사람들과 금산 사람들이 옥천읍을 오가는 주요 이동로 였다.

사목재란 이름의 유래는 옛날 이곳에 도둑이 많아 이 고개를 넘으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넘어라.. 라는 의미와..

용암사 스님들이 세상의 이치를 생각하며 넘었던 고개 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목재 장령산 들머리.

오늘따라 컨디션 난조로.. 더 이상 장령산으로 진행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또한.. 장령산은... 천태산. 대성산. 장령산.  마성산을 잇는 일명 "천.성.장.마"라 하여 약25.6km를 이어가는 종주능선이다..

이중에 천태산. 대성산은 올랐는데 삼성산.. 용봉.. 마성산이 미답산으로 남았었는데.. 오늘 그 마무리가 되었으니..

여기서 임도를 따라 하산 하기로 결정 한다..

 

이길은 장령산 등산로중에 "4코스"에 해당하는 길로.. 오늘로써 세번째 내려 가는 길이다..

 

3코스 접속지점..

 

장령산 자연휴양림을 지나서 주차장에 왔는데 산이좋아의 애마가 보이지 않는다.

회장님께 전화로 문의 하였더니 휴양림측에서 대형버스 진입금지로 한곳에 모여 있다가 차를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15시 26분 : 휴양림 방문자 안내소에서 산행 종료.

 

버스가 올때까지 대기하는 동안 트랭글을 정리..

 

산이좋아산악회 회장님의 건배.

 

 이어서 김고문님의 건배.

 

화랑산악회 회장님까지 건배의 잔을 들고~.. 일배일배부일배~..

 

옥천표,, "장군녹두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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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탈출하는 바람에 빼먹은 장령산 코스를 과거의 사진을 부록으로 이어 간다.

 용암사 가는길..

 

▲ 용암사 대웅전.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이다.

용암사는 서기 552년 신라 진흥왕 13년에 의신조사가 속리산에 법주사를 창건하기 저에 이곳의 산세를 보고 감탄을하여

절을 세웠다고 한다. 사찰의 규모가 원래는 상당하였는데, 임진왜란때 불타고 간신히 명맥만 유지 해오다가 근래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중건 되었다고 한다. 용암사라는 이름은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

이 파괴 하였다고 하며 신라 마의태자가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려는 아버지를 떠나 금강산으로 가다가 용암사에 들려

한동안 머물면서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며 통곡하곤 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대웅전에는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고, 그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1880년 복장을 열었을 때 '순치 8년 신묘년'에 만들어진 다라니경이 발견됨으로써 이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조선 효종 2년(1651)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 보물 제 1338호 용암사 쌍석탑.

 

▲ 마애불은 바위의 중간, 마치 공중에 뜬 것같은 형태로 연화대좌 위에 서 있다.

언제 칠했는지 모르지만, 마애불에는 붉은 채색을 칠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 운무전망대..

운무대는 구름이 춤추는곳이고.. 운해가 아름다운곳이다.

특히..운해와 어우러진 일출이 아름답다고 소문난곳이며..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50곳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곳은 낮과 밤 기온차가 큰.. 봄철과 가을철이면 운무가 짙게 내려앉아 아름다운 운무해돋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 일명 "틈새바위".

 

▲ 정면에서 바라본 거북바위.

 

▲ 잘생긴 거북바위.

 

 

▲ 왕관바위 틈새를 빠져나와..

 

▲ 마주선 왕관바위..

 

▲ 장령산 정상.

장령산은 장용산으로 불리다가 옥천군에서는 옛날부터 주민들이 부르던 장령산으로 바꾸어 달라는 군민의 희망에 따라

국립지리원 중앙지명위원회에 개명을 신청하여 1995년 5월 1일에 장령산으로 변경되었다.

 

▲ 5코스 데크길의  2전망대.

 

▲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산의 진산 "서대산".

 

▲ 중간의 사목재에서 탈출하는 바람에 못갔던 장령산 길을 과거의 사진으로 이어 보았다.

2024년 07월 07일(일).

산막이옛길 : 충북 괴산군.

 

산행코스 : 산막이옛길주차장-출렁다리-호랑이굴-쉼터전망대-앉은뱅이약수-선착장-산막이옛길주차장.

산행시작 : 산막이옛길주차장 11시 21분.

산행종료 : 산막이옛길주차장 13시 45분.

전체거리 : 약 5km.

전체시간 : 의미없음.

운동시간 : 의미없음.

휴식시간 : 의미없음 .

 

▲ 11시 13분 : 충북 괴산군 칠성면 수전교위에서 바라본 괴산댐.

괴산군 칠보산으로 가려던 계획이었으나.. 잠시 교착상태를 보이던 장마전선이 북상을 하면서 중부지방은 완전 장대비가

쏟아진다.. 우중산행은 무리라는 판단하에.. 회장단에서 발빠른 대응으로 산막이옛길로 변경하여.. 가는길에 괴산댐에서

흘러나온 달천이 범람할 정도로 물이 불어나 있다.

 

▲ 11시 21분 : 충북 괴산군 산막이 주차장.

헐!~~.. 이럴수가.. 서울..경기.. 강원.. 전북.. 전남.. 광주.. 경남.. 부산.. 경북.. 대구.. 전국의 산악회들이 다 모였다..

아래위 주차장을 얼핏 살펴보아도 약 40여대는 넘는다... 줄잡아 40대 X 40명 = 1600명.. 일반차량들까지 합치면 대충 2000명이 산막이옛길에 모인 셈이다..

 

▲ 집행부에서 하산식 장소로 오후 2시에 사전예약을 하였다는 식당앞을 지나가는데.. 다행히 빗줄기는 소강상태를 보이며

잦아든다.. 우산을 쓰고.. 산막이길을 걸어도 될것 같아서 갈데까지 가보자며 길을 나선다.

 

▲ 수많은 인파로 카메라를 들이댈수 없을 정도이지만.. 사람들의 무리와 무리사이의 틈새에서 한컷씩 담아 본다.

 

▲ 산막이옛길은..

2014년 5월 4일에 다녀 갔으니... 딱 10년만에 다시 온 것이다..

 

▲ 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이어지는 ‘산막이옛길’이며.. 괴산군에서 13억을

들여서 2009년에 4km 길이의 산책길을 조성 하였다. "산막이" 라는 말은 "산의 마지막"으로 "산으로 가로막혔다" 라는 뜻

이며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 갔던 피란민들이 산에 막혀 더이상 가지 못하고 머물렀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 가판대 거리... 10년전의 그모습 그대로다.

 

▲ 10년전에는 없었던 시설물도 있고..

 

▲ 산막이옛길 안내도를 보며... 하산식 식당도착이 14시까지이니 주어진 시간은 약 3시간이다.. 가는데 까지 가보자..

 

▲ 등잔봉과.. 천장봉이 안보고 갈거냐며 물어 본다.

 

등잔봉의 유래는

옛날 한양으로 과거보러간 아들의 장원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렸다는데서 유래하였으며.. 

지금도 그 효험이 있다고 여겨서 알음알음 자식들을 위해 정성을 드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천장봉은..

하늘아래 펼쳐진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하늘도 감탄하여 숨겨놓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 고인돌쉼터의 남근석..

남근석은 농경사회에서의 일손을 얻기위한 남아선호로 다산(多産)을 상징하던 남근석을 마을 마다 세워 놓았다..

 

▲ 괴산댐.

간밤에 비가 많이도 내린 모양이다.. 온통 누런 황토물이다. 현재 수위조절로 물이 빠진 상태다.

괴산댐은 유역면적에 비해 저수용량이 턱없이 부족해 집중호우에 아주 취약하다. 장마철만 되면 침수 피해가 발생하기

일쑤다. 2023년 지난해 7월 집중호우 때는 물이 댐 위로 넘치는 월류가 발생, 주민 수천 명이 긴급 대피하고 수백억의 재산

피해를 내기도 했다. 댐 수위 저하로 괴산호 유람선 운행이 제한되면.. 산막이옛길 상권 주민들이 생계에 타격을 입게 되고.

그러면서 침수 피해를 겪은 아래마을 주민들은 수위 저하를 반기는 편이다.. 이래저래 주민들은 불만을 갖고 있으며

괴산댐 수위 문제는 “동전의 양면같은 상황”이라고 한다.

 

▲ 한폭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다.

괴산댐 건너 비학산 능선 자락에 백운이 걸렸다..

 

백운은 산을 마다하지 않고

산꾼이 어찌.. 비를 마다 하랴~~

 

▲ 등잔봉 들머리..

 

▲ 호랑이 굴.

바닥은 부더러운 흙이고, 천정은 자연암석으로 되어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1968년까지 실제로

호랑이(표범)가 드나들며 살았던 굴이라고 한다.

 

▲ 매바위.

금방이라도 날아 오를것 같은 매의 형상바위다.

 

▲ 여우비 바위굴.

산막이 마을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여우비를 만나면 굴속에서 쉬어 갔다고 한다.

 

▲ "스핑크스" 바위라고 하는데.. 암만 봐도 글쎄올씨다~..이다.

 

▲ 앉은뱅이 약수터.

옹달샘이 있었는데 길을 가던 앉은뱅이가 물을 마시고 효험을 얻고 걸어 갔다는 전설이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 가는데 까지 가보자...

 

▲ 괴산호 수력발전댐..

괴산댐 건설 공사 계획이 수립된 것은 1951년. 6·25 전쟁 과정에서 전력설비가 파괴돼 전력 사정이 최악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발전소 건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먹고살기조차 힘든 시절, 당시로선 초대형 토목공사였던 댐 건설이 쉽지는 않았다. 설계를 마친 후 1952년 11월

공사가 시작됐지만 화폐 개혁, 예산 부족, 시멘트 부족, 물가 급등 등의 이유로 공사가 3번이나 중단됐다.

 

1957년 4월 댐 준공식은 이승만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와서 행사를 참관했을 정도로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지금 현재도 연간 1,083㎾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 오늘의 트레킹은 여기까지다...

 

▲ 역광이어도 좋다..

 

▲ 비록 그림은 어둡지만..

운치 가득한 괴산호에서 함께하는 마음은 너무나 밝고 멋지다.

 

▲ 오늘도 한번 써먹어야 겠다..

식객 허영만님.. 이런 기똥찬 맛은 못드셔 보았을 겁니다.. ㅎㅎ~

 

▲ 오늘 최고의 포토상입니다.

 

▲ 이런 모습이 솔잎속의 멤버쉽입니다.

 

▲ 망세루 가는길의 부엉이..

 

▲ 망세루(忘世樓)에서 바라본 괴산호수력발전댐.

세상의 모든 시름이 잊혀지고 자연과 함께 평안함을 느끼는 곳이다.

 

▲ 망세루(忘世樓)에서 바라본 군자산 방향.

세상시름 다 잊는곳이라니.. 풍광 역시 정말 아름답다.

 

▲ 망세루(忘世樓)를 나오며 부엉이 엉덩이도 쳐다 보고..

 

▲ 연화담..

과거에는 벼농사를 짓던 논이었는데.. 연못을 만들어 연꽃을 피게 하였다.

 

▲ 다시 돌아온 등잔봉 입구.. 한바퀴 돌아오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 기묘한 소나무... 나.. 이렇게 산다우..

 

▲ 회장님의 건배..

집행부의 발빠른 대응으로 솔잎의 하루는 또다른 행복으로 기억 되어 질 것이다.

 

▲ 귀가길에.. 문경휴게소에서..

 

▲ 쐬주 한잔에 문어한점.. 쩌~업..

술을 금하라는 의사의 절대적인 엄명을 기억하며.. 슬며시 자리를 뜬다.~

 

▲ 문경휴게소에서 바라 본 오정산..

 

회원님들은 쐬주 한잔으로 기분내고..

나는 오정산의 토끼비리암릉길과 태극길의 추억속에서 기분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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