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05일(목요일).
봉래산(395m) : 부산광역시 영도구.

 

산행코스 : 신선동복지센터-복천사-산제당-해돋이전망대-장수바위-손봉-자봉-봉래산-

흰여울문화마을-절영해안산책로-중리맛집거리 산행완료.

산행시작 : 신선동복지센터 10시 00분.

산행종료 : 중리맛집거리 15시 12분.

전체거리 : 약 12km.

전체시간 : 05시간 11분.

운동시간 : 04시간 34분.

휴식시간 : 00시간 37분.

누  구  랑 : 화랑산악회따라서.

 

10 : 00  신선동복지센터출발.

10 : 18  복천사.

10 : 29  산제당.

10 : 48  해돋이전망대.

11 : 12  장수바위.

13 : 05  봉래산.

14 : 06  흰여울문화마을.

15 : 12  중리맛집거리 산행종료.

 

10시 00분 : 신선동복지센터 출발.

 

▲ 도로를 건너서..

 

▲ 신선초교 방향으로..

 

▲ 200여미터 가량 올라 오면 신선초교 담장이 나오고...

 

▲ 신선초교 정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150여미터 더 올라가면..

 

▲ 봉래산둘레길 들머리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는 간이 마을 쉼터가 나오고..

 

▲ 쉼터 옆으로 복천사로 가는길이 있다...

 

▲ 복천사 입구에서 보통걸음으로 12~3분 가량 지점에 있는 복천사주차장 옆으로..

 

▲ 봉래산둘레길 주등산로가 접속 되고... 좌로 가던.. 우로 가던 한바퀴 돌아오면 원점이 된다.

 

▲ 산제당쪽으로 가는 둘레길 입구.. 복천사를 둘러 보고 다시 오기로 한다..

 

▲ 월공당 도해 대선사 복천사중창 사적비..

 

 

10시 18분 : 복천사 대웅전..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의 말사다.

구전에 의하면 고려 말기 나옹 선사(懶翁禪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시대 해운암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해 왔으며, 조선 시대에 이르러 억불 정책과 함께 왜적이 자주

침입한다는 이유로 절영도에 마을이 폐쇄되고 목마장으로 운영되는 동안 사찰은 명맥만 유지하다가

1800년대에 직지사의 승려 김선주가 옛 명맥을 살펴 이곳에 토굴을 만들고 수행 정진하면서 다시

수행 승려들의 발길이 머물기 시작하였다.

 

▲ 복천사에서 바라 본 남항대교..

부우연 회색유리로 가려놓은듯한 미세먼지로 오늘의 조망은 "아니올시다~.." 이다.

남항대교는 경부고속도로 - 광안대교 - 북항대교 - 남항대교 - 명지대교 - 부산권으로 이어지는

부산남부순환로의 한 구간이다. 이 대교가 개통됨에 따라 기존 암남동 - 영도가 30분 거리에서 3분 거리라는

효과를 내고 있으며 영도에서 서부산권으로 나가는 시간이 단축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10시 22분 : 다시 봉래산둘레길 들머리에서..

 

▲ 봉래산 둘레길은 도심에 있는 산답게.. 곳곳에 갈림길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정표가 너무나 잘 되어 있기에.. 가고자 하는 방향 설정만 잘하면 어렵지 않게 진행할수가 있다.

 

▲ 오늘의 첫 과제는 산제당이 목표다..

 

▲ 봉래산 둘레길이 환고리 처럼 조성되어 있어서 정상으로 가는 갈래길이 곳곳에 보인다.

 

▲ 천마산 승학산 구덕산 능선이 엊그제 처럼 기억이 뚜렷하고...

큰아버님댁이 보수동에 있어서 책방골목 언덕계단을 오르내리던 어릴적 추억이 그립다.

 

10시 29분 : 산제당.

 

▲ 아씨신당과 할배신당..

 

▲ 열려있는 왼쪽이 아씨신당이고 오른쪽은 고씨 할배신당이라는데.. 열려있는 방만 살짝 들여다 보자..

 

▲ 오른쪽이 삼신제왕할매이고.. 왼쪽이 하씨할매라고 하는데.. 어느분이 영도 할매인지.. 복잡하다..

 

▲ 다시 둘레길을 찾아서..

 

▲ 산제당을 찾았으니.. 두번째 과제는 유림아파트를 지나 해돋이전망대가 목표다..

 

▲ 유림아파트를 지나면..

 

▲ 편백산림욕장이다.

 

▲ 편백수림이 끝나면 철망사이로 길은 이어진다..

둘레길 조성하랴.. 최소한의 통행로 확보를위해 소유주와 협의하랴.. 담당자의 고충이 미루어 짐작이 간다.

 

▲ 담안쪽은 주막집 소유의 땅인가 보다..

 

▲ 세련된(?) 고급 주막집이다..

 

▲ 보이는 흰색건물이 해돋이전망대이다..

 

10시 48분 : 해돋이전망대.. 올라가 본다.

 

▲ 전망대에서 바라 본 부산항대교.. 미세먼지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 동쪽으로 오륙도가 떠있고.. 이기대가 보이는 곳인데 아쉽다..

 

그래도 인증샷은 해야지..ㅎㅎ~

 

▲ 다시 철망울타리 사이로..

 

▲ 해돋이 전망대를 지났으니 세번째 과제는 조내기고구마역사공원이 목표다..

 

10시 55분 : 청봉약수터.. 음용수 적합이다.. 달고 시원하다..

 

▲ 철망울타리를 나가면.. 혜련사로 가는 차도를 만난다.

 

11시 01분 : 조내기고구마역사공원.

 

▲ 조내기고구마 시배지 기념탑과 역사적 배경..

 

▲ 여기서 화랑의 히어로 산대장님을 만난다..

 

▲ 조내기고구마역사공원..

 

▲ 네번째 과제인 장사바위 가는길은 이정표가 없어서 초행길인 사람은 잘 모른다.

조내기고구마역사공원에서 차도를 따라 혜련사 방향으로 가다가...

 

▲ 바로 가면 혜련사로 가고.. 여기서 좌측의 가로등 뒤를 보면..

 

▲ 아무런 표시도 없는 열린 철망문이 장사바위 가는 길이다... 국제신문을 보고 알게 되었다.

 

▲ 철망문에서 2~3분 가량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포스가 남다른 방구돌이 내려다 보고 있다.

올라갔다가 이곳으로 다시 내려 온다.

 

▲ 방구돌 오른쪽으로 길이 있어서 따라가 보니.. 무속행위가 물씬나는 부처상이 있고 길은 없다.

 

▲ 되돌아 나와서 방구돌 왼쪽으로 올라 간다.

 

▲ 장사바위 위..

 

봉래산의 장사바위는 옛날 키가 9척이나 되는 힘쎈 장사가 이곳에 살았는데, 어느날 마을에

크다란 괴물이 나타나 마을처녀를 잡아가는 소동이 있었고, 그때 이곳에 살고 있던 장사가

격투끝에 괴물를 껴안고 죽었다고 하며, 그후 장사의 무덤이 이렇게 크다란 바위로 변했다고 하며

바위모양이 마치 장사의 신발같다 하여 장사바위로 불리어 지고 있는곳이고, 지금도 커다란 바위

위에 마치 장사의 신발과 같이 생긴 또다른 크다란 바위가 얹혀 있는것을 볼수 있다...

 

▲ 미륵사약수터... 이곳은 얼었는지 바짝 말라 있다.

 

▲ 장사바위도 찾았으니.. 다섯번째 과제는 고신대학교 방향의 임도를 찾는 것이다.

 

▲ 작은 임도를 만나면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 오늘 산행중에 가장 그냥 지나치기쉬운 자봉 갈림길이다. 무심코 가다보면 자봉으로 가게된다.

반도보라아파트쪽으로 조금 내려 가면 넓은 임도와 만나게 된다.

 

▲ 정확한 궤도진입에 성공으로.. 임도를 만났다.

 

▲ 이곳도 손봉으로 오르는 길이기는 하지만..

이길로 올라가게 되면 봉래산 최고의 하일라이트인 조망바위를 못만나고 지나치게 된다..

 

11시 47분 : 손봉 오름길.. 여섯번째 과제도 정확하게 찾았다..

 

▲ 임도 입구에서 7~8분을 가파르게 치올리면..

 

▲ 넓은 시야가 트이며 배들의 주차장인 묘박지(錨泊地)이다.

바다에는 배가 듬성듬성 떠 있는데.. 저곳을 묘박지(錨泊地)라 한다.

부산의 암남공원 앞과 영도 바다 사이가 배들의 고향인 묘박지(錨泊地)이다.

묘박지는 부산으로 들어오는 배들이 며칠씩 쉬어가는 숙박지와 같은 뜻으로

자동차로 말하면 주차장과 같은 의미이다.

배들이 한데 모여서 쉬는 곳.. 즉 "배들의 고향"이라고 말할수 있다..

육지로 올때는 작은배를 타고와서 생필품을 구해간다.

 

▲ 30대 초반에 가보고는 여태껏 가보지 못한 태종대가 태종산 너머에 있고..

하산지점인 중리해변의 맛집거리가 지척이다.

 

▲ 시공한지 1주일도 안되었을 것 같은 데크의 향기가 그대로 코끝에 묻어 난다.

 

▲ 오늘 최고의 조망바위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줄곧 선두로 왔는데.. 다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 봉래산(蓬萊山)은 영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산 앞바다를 끼고도는 주변 경치가

한 폭의 풍경화와 같은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원래 봉래산이란 동쪽 바다 한가운데 있어서

중국의 전설속에 신선이 살고 불로초(不老草)와 불사약(不死藥)이 있다는 상상속의 영산이다.

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로 영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래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조봉(祖峰)이라 하고 그 다음의 봉우리를 자봉(子峰), 그 아래의 것을 손봉(孫峰)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찾아 오라며 동쪽으로 보낸 서복이 불사약을 보았다고 보고한 곳이기도 하다.

 

▲ 봉래산에 올랐다가 하산할 동선이다.

 

▲ 팥배나무. 

꽃이 배꽃을 닮았으며 열매가 붉은 팥알처럼 생겨서 팥배나무라고...꽃말은...매혹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의 산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감당(甘棠)이라는 이름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나무다.  중국 사기(史記)의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라는 부분에서

감당지애(甘棠之愛) 라는 말이 나온다.

감당지애(甘棠之愛) 라는 말은 훌륭한 행정가를 그리워하는 민생들이 사랑의 뜻을 전한다는 말이다.

연나라 시조인 소공(召公)은 주(周)나라 성왕(成王)으로 부터 섬서지방을 다스리도록 명을 받았다.

소공은.. 모든 지역 주민들에게 평등하게 정치를 펼치기 위하여 시골마을이나 도읍을 순회할 때는

팥배나무(감당甘棠)를 찾아 그 아래서 정사(政事)를 처리하였고, 

송사(訟事)를 판결하기도 하고, 또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 여기서 산대장님과 같이 올라 오신 화랑의 꽃.. 총무님을 만나서 한컷.. 완전 프로모델 포즈십니다.ㅎㅎ~

 

▲ 산대장님과 총무님의 일행들이 손봉쪽으로 올라가고..

동료와 둘이서 점심을 먹는데.. 어디서 무언가가 지켜본다는 느낌이 들어서.. 보니 들고양이다..

 

▲ 생선반찬의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뱃가죽이 등짝에 붙지 않은걸 보니 굶지는 않았나 보다..

생선대가리를 던져주니 넙죽물고 사라진다.. 어딘가에 아지트가 있겠지..

 

12시 42분 : 손봉..

 

▲ 손봉에서 내려다 본.. 조도(朝島)의 아치산은..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東三洞)에 딸린 섬으로 영도(影島) 남단 1.8㎞ 지점에 있으며.

아치섬이라고도 한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원래는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도(冬柏島)라고 하였으나

부산포(釜山浦) 해전 때 아군이 섬에 주둔해 있던 왜군의 기치(旗幟)를 눕히고 섬을 탈환하면서

와치도(臥幟島)로 바뀌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치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공식 명칭인 조도(朝島)는

와치섬의 '와치'가 '아침'으로 발음되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해군의 요새사령부

관할로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시켰으나 8·15광복 이후 해산물 채취를 위하여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1967년 방파제 건설로 육지와 연결되었고, 1974년 이곳에 거주하던 103세대의 주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킨 후 부지를 조성하여 한국해양대학교를 설립하였다.

 

▲ 손봉에서 자봉으로 가는길도 만만치 않다..

 

12시 55분 : 자봉.. 보이지 않던 회원님들이 여기서 만난다.. 아마도 자봉갈림길에서 바로 올라온듯...

 

▲ 자봉 안부에 데크전망대가 있다 올라가 보자..

 

13시 05분 : 봉래산 정상..

 

▲ 봉래산 할매바위와 돌무더기..

 

▲ 하산은 함지골청소년수련관 쪽으로..

 

▲ 쉬고 있는 산객에게 물으니.. 능선길은 멀고... 수련관 쪽으로 가라고 한다..

 

▲ 잘 만들어진 식탁이 있는 능선길을 버리고 수련관 쪽으로..

 

▲ 수련관 내림길이 처음부터 급경사 하강이다..

 

▲ 급경사에 돌길.. 오늘 등산로중에 가장 미운길이다..ㅎ~..

 

▲ 영봉약수터.. 아주머니 한분이 음용불가라며.. 바로 밑에 음용이 가능한 약수가 따로 있단다.

 

▲ 영봉약수에서 아래쪽으로 2~3분 거리에 모천약수가 있다..

 

▲ 물을 받으러 오신 동네 아지매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모천약수 자랑이다.

과거에 충청도에서 온 남자가.. 맨손으로 땅을 파서 지금의 모천약수를 찾았다고 한다..

1년 열두달 마르지도 않고.. 물맛이 좋아서 계속 감사하며 물을 떠간다고 한다.

마셔보니 명불허전이다... 고맙습니다~~ 하고 바쁜 걸음에 자리를 뜬다.

 

▲ 오늘의 부산의 날씨는 영상 9도에 바람 1~2m/s 다.. 등줄기로 땀깨나 흘러 내린다..

 

약 300여미터의 거리가 멀게 느껴질 즈음 임도의 끝이다..

 

▲ 능선길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 오늘의 정상적인 산행코스는 복천사 주차장까지 갔다가 내려가는 길이지만.. 여기서 임의로 하산 한다..

 

▲ 바다건너에 두도와 암남공원이 보인다.. 두차례나 다녀온 암남 공원길이다. 계속 직진한다.

 

▲ 길 건너에 흰여울문화마을길 입구가 보인다.

 

▲ 남항대교쪽... 절영해안산책로는 작년에 태풍으로 유실되어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 당겨보니 시멘트 타설작업을 하고 있다... 개통시기는 이달.. 1월 20일 쯤이라고..

 

▲ 변호인 영화 촬영지..

 

▲ 주중인데도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 공사구간을 당겨보니 시멘트를 양생중이다.

남항대교에서 중리까지 이어지는 절영해안산책로는 3-3구간에 속한다..

 

▲ 아래쪽에 해안산책로 터널이 보여서..

 

▲ 한번 당겨 보고..

 

▲ 또 당겨보니.. 출입금지다..

 

▲ 흰여울문화마을 전경.

피난민들의 애잔한 삶이 시작된 곳이자 현재는 마을주민과 함께하는 문화마을공동체 흰여울문화마을이

자리한 곳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원도심 흰여울길은 봉래산 기슭에서 굽이쳐 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2011년 12월, 낡은 가옥을 리모델링하면서 현재는

영도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독창적인 문화예술마을로 거듭났다.

 

▲ 여기서 중리까지는 해안산책로로 갈수가 있다..

 

▲ 해안산책로 내려 가는길..

 

▲ 해안터널 반대쪽으로 내려 왔다.

 

▲ 손으로 만들고 쓴 완전 오리지날 아날로그 간판이 정겹다..

 

▲ 자연의 힘앞에는 인간의 노력은 아주 작다..

 

▲ 태풍의 흔적..

 

▲ 대마도전망대.. 맑은날 보이는가 보다..

 

▲ 중리해변의 하산지점이 보이는 곳에서 도로를 따라 가기로 한다.

 

▲ 목장원방향으로 도로를 찾아 올라간다.

 

14시 59분 : 75광장에서 올려다 본 손봉 바위전망대..

 

▲ 도로를 따라 하산지점으로 이동..

 

▲ 중리해변 맛집거리 주차장에 선행팀들이 기다리고 있다.

 

15시 12분 : 산행 종료..

 

 

15시 38분 : 태종대주차장.. 30대 초반에 다녀간 태종대의 감회가 새롭다.

 

▲ 부산 주변의 산들은 거의 다 올랐는데.. 미답으로 남아 있던 봉래산을...

오래전부터 언젠가는 한번 가봐야지 했었는데 화랑산악회 덕분에 오늘에야 봉래산 숙제를 풀었다.

하산뒷풀이를 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니 40여년전의 태양은 그대로 인데..

환경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많이도 바뀐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며 귀가길에 오른다.

2023년 01월 01일.
대덕산(1291m) / 초점산(1249m) : 경북 김천시.

 

산행코스 : 덕산재-대덕산-초점산-탑선동 지경부락 산행완료.

산행시작 : 덕산재 10시 43분.

산행종료 : 지경부락 16시 19분.

전체거리 : 약 7.45km.

전체시간 : 05시간 35분.

운동시간 : 04시간 07분.

휴식시간 : 01시간 28분.

누  구  랑 : 야등팀(6명).

 

10 : 43  덕산재출발.

12 : 54  대덕산.

14 : 58  초점산.

16 : 19  탑선동 지경부락 산행종료.

 

08시 07분 : 2023년 새해첫날 아침 신천의 일출...

야등팀의 첫 산행지인 김천 대덕산 출발지인 두류해물로 가는길에 도심의 아파트위로

계묘년의 일출이 신천을 붉게 물들인다..

 

토끼가 들어가는 사자성어로 교토삼굴(狡兎三窟)이 있다..

영리한 토끼가 위험한 고비를 피하려고 3개의 굴을 판다는 뜻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 우크라이나전쟁 등의 악재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고.. 그리고.. 고금리 시대에 적합한 말이다.

토끼는 지혜롭고 장수와 부부애.. 그리고 화목한 가정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힘든 시대에 토끼의 좋은점을

배우고 지혜롭게 대처하여 토끼처럼 깡총하고 뛰어 오르는 한해가 되기를 바래본다.

 

10시 41분 : 덕산재.

덕산재(德山재)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 사이에 위치한

백두대간의 고개다. 다른 이름으로 주치령(走峙嶺)이라고도 한다.

높이는 해발 544m이며 이 곳을 경계로 하여 경상북도와 전라북도가 도 경계를 이룬다.

 

▲ 전북 무주군 무풍동은 남사고의 십승지지중 하나로 알려진 고장이기에 유명하다.

 

10시 43분 : 대덕산 들머리 출발..

허~참.. 오늘따라 무에그리도 바쁜지.. 출발 인증샷도 없이 재빨리 올라간다.

 

▲ 백두대간길 답게 수많은 시그널들이 이길을 지나간 사람들을 대신하고 있다..

 

▲ 간신히 선두팀 꼬리를 잡고 길거리 인증샷..ㅎ~

 

▲ 많은 눈을 기대(?) 했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많지는 않다.

 

▲ 야등회장님 새해 첫산행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산행초입이라서 그런지 등로는 착한 오르내림으로 이어 간다..

 

▲ 올라갈수록 눈쌓임이 발목까지다..

 

▲ 다른 블로그에서 쌍둥이바위라고 하던 이곳을 지나면서 부터는..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근디... 어디서 많이 본것 같은 사람이네요..ㅎㅎㅎ~

 

급한 오름으로 변하고... 바람길을 피해 잠시 숨을 돌린다.

 

▲ 다른 산님들의 사진을 보니..

얼음폭포까지의 30m를 왕복으로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생기는 폭포라서 그냥 통과다.

 

▲ 쎈스많은 야회장님이 안가본다고 섭섭해 하는 이정표의 마음을 읽고 얼른 달래 준다..ㅎㅎ~

 

▲ 급한 오름을 올라 바람벽이 되어주는 곳에서..

 

▲ 하얀 눈위에 서서 꿀에 찍어 먹는 가래떡 맛이라니.. 안먹어 본 사람은 말을 마시라.. 잘 먹었습니다.

 

▲ 초라하기 짝이 없는 샘터에 비해.. 약수터 예찬의 시는 완전 노벨문학상감이다..

 

야회장님이 스틱으로.. 약수터 예찬시 표지판 아래에 명필 한석봉이 울고 갈..

 

▲ 일필휘지로 새하얀 눈 화선지 위에.. 봉황이 춤을 추듯이 거침없이 쓰내려 간다.

 

▲ 대덕산에 남긴 주옥같은 글씨.. 야등 러브다..ㅋ~

 

▲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어 하시는 조고문님을 기다리며...

 

▲ 야회장님의 사진 매출 올리기 특별 이벤트.. 하얀 토끼같은 눈을 한가득 퍼담아서...

 

▲ 토끼의 기운.. 야등팀에 내리사~.. 올한해도 모든 님들 무사무탈 하시길..

 

▲ "사랑은 미안해 하지 않는거야"~.. 라는 명대사를 남긴 겨울 영화의 백미 <러브 스토리>에서..

 

주인공 올리버와 제니가 쌓인 눈위에서 뒤로 넘어지며 장난치는 모습을 패러디 하네요..ㅋㅋ~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정상에 가까워 질수록 나무에도 눈이 걸렸다.. 땅바닥의 눈보다 머리에 이고 있는 눈이 멋지다..

 

▲ 이쪽지역은 반달곰이 나타나는 곳이다.. 눈까지 선명해서 반달곰이 얼어서 돌이 되었나 보다 했다..

 

▲ 내린눈위에 바람에 실려온 눈이 쌓여 깊이가 1m 정도다..

러셀산행을 어느분이 했는지 고생좀 하였지 싶다.. 길을 만들어 준 분께 고마운 마음이다.

 

▲ 대덕산이 완전 육산인줄로만 알았는데.. 바람을 막아주는 큰 바위가 있다..

 

▲ 큰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어 포근하다..

 

▲ 솔잎사랑하는 마음... 하트에 담아 대덕산에 남기고 간다..

 

▲ 멀리 대덕산 주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 오늘 일기는 미세먼지 나쁨이다.. 파란 하늘이 나쁨을 뚫고 깨끗하다.

 

▲ 대덕산 올라서기 직전... 여명이 밝아오는 듯한 분위기다..

 

12시 53분 : 대덕산..

 

▲ 야대장님의 배려로 나도 일행이 되고.. 야회장님의 손바닥이 부처님 손 같아서 턱을 올렸더니..

 

▲ 안하던 짓을 하면 겸연쩍은 웃음이 난다..ㅋㅋ~  그런데 훔쳐 보시는 홍여사님도 개구지십니다..ㅎㅎ..

 

▲ 대덕산은 투구봉이라고도 불리었는데 옛날 한 도인이 이 산에서 백일기도 후에 공덕을 쌓고

도가 통하였다고 하여 부르게 된 이름 이라고도 하며.. 대덕산의 옛 이름은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리어

졌으며 선조 31년(1598년)정유재란 때 전라병사 이광악이 왜적을 물리쳤고 영조4년(1728년)이인좌 난 때는

이 고장의 의병들이 반란군을 물리쳐 국난이 있을 때마다 고장을 지켜 주었던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 정상은 아주 넓다.. 사방이 일망무제로 조망이 좋은 산인데.. 미세먼지로 시계가 좋지 않아서 아쉽다.

산 이름이 대덕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곳으로 살러오는 사람들마다 모두 큰 재산을 모음에 따라 산의 덕을

입었다는데서 연유됐다. 옛날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하며.. 영·호남 지방의 분수령으로 금강의 지류인

무풍천과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甘川)이 발원하는 산이다.

 

▲ 소사동방향으로 하산이다.

 

▲ 초점산을 바라보며..

 

▲ 정상에서 2~3분 가량 내려오니 다시 넓은 공터가 나오고..

 

▲ 공터 좌측으로 소나무 아래 새둥지같은 곳에 밥자리를 잡는다..

 

13시 06분 : 정나눔의 시간.. 그런데 헐!~.. 저기 머꼬?.. 이 산꼭대기에 학꽁치 회가 올라 왔다..

 

▲ 일본에서 "사요리"라고 하는 학꽁치 회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 야회장님의 학꽁치회 먹는법 시연.. 김에 싸서.. 돌돌 말아서 입으로..

 

▲ 정나눔의 한잔 술에 산상에서의 별식 안주로 건배주 일발 장진.. 새해에도 모두 건강 합시다!~..

이것이 진정한 소확행(小確幸)이요..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이요 힐링이다.

 

▲ 소확행의 잔잔한 감동을 주고 받았던 새둥지를 나오니 둥그스럼한 정상쪽이 아름답다.

 

▲ 미세먼지로 덕유산이 희미하다.. 오른쪽은 무주군 무풍면이다..

무풍은 남사고의 풍수지리설에 따라 전쟁, 전염병, 흉년이 없는 피난하기 알맞은 땅 열 곳,

즉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히던 곳이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큰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곳으로 피난 왔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무풍에서는 무풍승지(勝地)라는 말을 지역브랜드처럼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또한 무풍에는 임금이 유사시 피난하기 위해 만든 명례궁이라는 행궁(行宮)이 있었다.

조선말 민비의 친척인 민병석이 건립한 궁실인데 난세의 피난처로 삼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지금은 흔적도 찾기 어렵게 됐다.

 

▲ 지나온 대덕산..

 

▲ 초점산을 향하여..

 

▲ 가파르게 내려가는 길은 햇볕이 좋은 양지바른 곳이라..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곳도 있다.. 조심조심..

 

▲ 대덕산과 초점산 사이 안부도 지나고...

 

▲ 초점산 오름길에 뒤돌아 보니.. 대덕산이 세개의 봉우리로 보인다..

 

▲ 눈이 많아 힘이 드는 벅찬 오름길에서..

 

▲ 천년청자의 비취색 하늘을 핑계삼아 쳐다보고 허리한번 편다..

 

▲ 이제 마지막 피치를  올리면 초점산이다..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14시 58분 : 초점산...

 

▲ 초점산(1,249m)삼도봉(三道峯)은..

전북 무주군 무풍면, 경남 거창군 고제면, 경북 김천시 대덕면의 3개 도에 걸쳐 있는 봉우리다.

남한에 삼도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3개다. 모두 백두대간 줄기이다.

1) 지리산의 서부능선에 위치한 삼도봉(1550m) 은 경남(하동)과 전남(구례) 전북(남원)의 경계지점이고..

2) 충북(영동) 경북(김천) 전북(무주)의 경계점에 위치한 민주지산의 삼도봉(1177m)은 경계를 가르는

도(道)가 완전히 달라서 "오리지널 삼도봉"이라고 한다. 정상엔 3개 도 주민들이 세운 대화합기념탑이 있다.

3) 이곳의 삼도봉(三道峯 초점산 1,249m)은 경북 김천, 전북 무주, 경남 거창을 구분짓는 봉우리다.

 

▲ 원래의 산행계획은 덕산2리로 하산 할 계획이었으나..

 

▲ 수리봉.. 덕산2리쪽 등산로는 러셀이 되어 있지 않다.. 1~2사람정도 내려간 후에는 후등자 발자욱이 없다..

<러셀>이란 겨울철 적설기 등반에서 선두가 눈을 헤쳐 나가며 등산로를 내는 방법인데 체력 소모가 많다.

이 용어는 미국의 러셀회사에서 유래 되었는데... 1886년 이 회사에서 제조된 제설차를 보고 일본에서

이를 등반용어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는 "눈다지기" 또는 "눈 헤쳐나가기" 이다.

야대장님과 홍여사님도 안전하게 소사고개로 하산하자...에 전원 만장일치 합의다.

 

15시 13분 : 국사봉 갈림길..

초점산에서 여기까지는 능선길이라 평탄하게 왔는데.. 소사고개 하산길이 만만치가 않다..

 

▲ 소사고개 하산길에 건너다본 덕유산은 여전히 미세먼지로 희미하다.

삼봉산을 마주하며 따사로운 햇살에 녹아내리는 질퍽함과 눈밑에 낙엽들과 마사토.. 그리고 급경사다.

 

▲ 무풍면 전경..

소사고개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이고 왼쪽은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이다.

무풍면은 행정구역상 전북에 속한 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는 경상도 쪽에 가까운 곳이다.

 

▲ 급경사 낙엽길... 매우 가파르다..

 

▲ 벌목지대인데..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고 했는데.. 벌목꾼들로부터 용케도 살아 남았다..

 

▲ 소사고개로 가는 백두대간길은 있지만 개인사유지가 많아 농장 경유가 많다..

우리는 마을길인 도로를 따라 내려가기로 한다.

소사고개라는 이름은 연중 미풍이 불어 집 마루에 모래가 쌓일 틈이 없다고 하여,

기쁜 마음에 웃음이 나온다는 뜻으로 "소사현笑沙峴" 으로 불렀다고 한다.

 

▲ 마을길을 따라 내려 가다가 돌아본 대덕산과 초점산..

 

16시 19분 : 지경부락.. 산행 종료.

지경부락에 사시는 마음좋은 인연님께서 덕산재까지 흔쾌히 태워 주신디고 한다..

 

▲ 마당의 집지킴이도 주인을 닮았는지.. 순하고.. 잘생겼다..

 

▲ 지경마을에서 덕산재까지 거리가 27km다. 정월 초하루부터 정말 고마운 인연이다. 감사합니다.

 

16시 46분 : 덕산재로 회귀..

새해첫날 산행을 큰덕을 펴는 대덕산의 기운을 듬뿍 받았고..

정상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대암님의 학꽁치회에 조이사님의 양주로 짜릿한 목넘김의 여운을 맛보았고..

언제나 요술주머니 같이 뚝딱 나오는 홍여사님의 전과 고추튀각의 매콤함에 입안이 개운하였다.

그리고... 야대장님.. 야회장님.. 두분의 명쉐프 작품.. 뜨끈뜨끈한 떡국라면은... 천하일미여!~~.

 

초점산 하산길에 만난 고마운 인연으로 덕산재 무사귀환...

출발전 차안에서.. 따라주는 쐬주한잔이 어찌나 달던지..단숨에 쭈~욱..ㅎㅎ

 

야대장님 말씀처럼 대단한 대덕산.. 초점산에서..

야회장님 말씀처럼 정말 오분순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나눈..

소확행(小確幸)을 만끽한 야등팀 119번째 정나눔의 하루였다.

2022년 12월 28일(수요일).
함백산(1573m) : 강원도 정선군.

 

산행코스 : 만항재-창옥봉-함백산-중함백-갈림길-정암사주차장 산행완료.

산행시작 : 만항재 10시 49분.

산행종료 : 정암사 14시 30분.

전체거리 : 약 9.3km.

전체시간 : 03시간 40분.

운동시간 : 03시간 16분.

휴식시간 : 00시간 24분.

누  구  랑 : 대구KJ산악회.

 

10 : 49  만항재출발.

11 : 08  창옥봉.

11 : 58  함백산.

12 : 48  중함백.

13 : 32  자작나무샘터갈림길.

14 : 30  정암사주차장 산행종료.

 

10시 27분 : 태백산 유일사들머리... 강한 바람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한때 번창했던 안내산악회였는데.. 코로나로 신청자가 급감하여 새로운 돌파구로 2개산을 묶어서 운영하는

"묶음산행"의 운영방법을 취하고 있다.. 18명중 12명이 태백산을 타기위해 유일사입구에서 내린다.

 

10시 49분 : 6명만 만항재에 내려 출발...

강한 바람에 날라가 버렸는지 눈은 내리지 않는다.

 

▲ 백두대간길인 창옥봉(1373m)의 완만한 오름길..

숲으로 드니 바람은 막아주고 상고대가 피어서 좋은데.. 잔뜩 흐린 하늘이라 배경이 좋지 않다.

 

11시 08분 : 아무런 표식도 없는 평탄한 구릉에 올라서니.. 여기가 창옥봉이라며.. 트랭글이 알려준다..

 

▲ 갑자기 안테나 너머로 파란 하늘이 열리며 함백산이 보여서 셧터를 누르는데 찰나의 순간에 묻혀 버린다.

 

▲ 함백산 기원단(咸白山 祈願壇).

태백산 천제단은 국가의 부흥과 평안을 위해 왕이 천제를 지내던 민족의 성지인 반면...

함백산 기원단은 옛날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민간신앙의 성지였다.

과거에는 함백산 일대에 석탄이 많아 광부 가족들이 함백산 주변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광부들이 지하막장에서 석탄을 생산하던 중 잦은 지반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자

가족들이 이곳에 찾아와 무사안전을 위해 정성을 다하여 기도했던 곳이다..

 

▲ 함백산 기원단(咸白山 祈願壇) 제단.

나는 함백산을 찾아 온 사람이니 함백산 문턱에 다다르면.. 파란 하늘문이 열려주기를 기원해 본다.

 

▲ 운탄고도 1330 6길.

강원도 정선과 태백, 영월 일대의 산악지대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길을 말하며.

함백산(1572m) 백운산(1426m) 두위봉(1466m) 7부 능선을 휘감는 운탄고도는 1960~70년대에 석탄을

운반하던 탄차가 다니던 길이였다.

지금은 관광 상품으로 개발되면서 "구름이 양탄자 처럼 펼쳐져 있는 고원의 길(雲坦高道)"이라는 뜻도

갖게 됐다.  운탄고도의 전체 길이는 100km에 가깝지만 정선에만 80km가 넘는구간이 남아 있다.

이 길들은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로 탄차의 운행이멈춘지 10년을 훌쩍 넘겼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그런 곳이지만 산비탈을 보수해 최근부터 트레킹 코스로 거듭나고 있다.

 

▲ 함백산 등로는 운탄고도 1330(서학로)를 건너 이어 진다..

 

▲ 운탄고도 1330은..

석탄을 운반하던 가장 높은길인 만항재의 해발고도가 1330m다.. "운탄고도 1330"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지금은 관광로로 개발되어 "서학로"라는 도로명도 부여 받고 대한체육회태백선수촌과 태백시로 이어진다.

 

▲ 함백산 들머리를 지나서 넓은 임도를 따라서..

 

▲ 약 150m정도 진행하면 또 다른 차단기가 있는 들머리를 지나게 된다.

 

▲ 함백산 오름은 들머리에서부터 정상까지 거의 지그재그가 없는 직등이라 힘은 들지만..

해발 1350m지점에서 출발이라 거리는 약 700m로 보통걸음으로 3~40여분 정도 소요된다.

 

▲ 함백산기원단에서의 바램이 하늘에 닿았는지.. 하늘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 하늘은 내편!~~이라는 감사한 마음으로 올려다 본다.

 

▲ 다시 안개구름이 몰려와 머리위로 지나가고.. 길은 고개를 숙일줄 모르고 여전히 직등이다..

내몸을 내가 밀어 올리지 않으면 결코.. 정상에 설수 없다.. 쉬엄쉬엄 서두르지 말자.

 

▲ 작년에 올랐던 덕유산의 상고대보다는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고맙고 좋다..

 

▲ 역시나.. 오른자에게만 보여지는 자연의 선물이다.. 은빛눈꽃이 곱게도 피었다.

 

▲ 같은 길위에서도.. 황홀경과..

 

▲ 땅과 하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신비감이 교차한다..

 

▲ 주중이고 날씨탓인지 정상이 한산하다..

 

▲ 정상에 오르기 전에 셀카로 한장..ㅎㅎ

 

11시 58분 : 함백산 정상..

함백산(咸白山)은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사이에 우뚝 솟은 해발 1,573m의 산으로

정상에서는 태백산, 일월산, 백운산, 가리왕산을 조망할 수 있다.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 한 가운데 위치하여 사방이 산으로 겹겹 둘러 싸인 땅으로 함백산은 태백의 진산이다.

 

▲ 코로나 이전의 주말이면 몰려든 산객들로 정상인증샷이 쉽지 않은 곳이다..

소백산 바람은 저리가라 할정도로 강한 바람에 모자가 인증샷 하자말자 휘~익 날라가 버린다..ㅎㅎ

그런데.. 바람은 강한데.. 살을 에이는 차가움은 느껴지지 않는 조금은 시원한 그냥 강한 바람이었다.

 

▲ 다행히 멀리 날아 가지 않고 바위끝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역시나.. 착한 사람의 모자는 멀리 가지 않는다..ㅋㅋ~.

 

▲ 중함백으로 가는 하산길..

 

▲ 2014년 8월에 두문동재에서 금대봉~비단봉~매봉산을 지나갔던 추억이 어제같이 생생하다..

고랭지채소 재배지인 바람의 언덕과 풍력발전기도 보인다.

 

▲ 건너편의 풍력발전기가 보이는 능선은 두위지맥이다.

 

▲ 헬기장을 가로질러 간다.

 

▲ 은대봉 금대봉 비단봉이 줄지어 섰고

비단봉 뒷쪽은 천상의 화원인 대덕산인데 짙은 스모그에 같혀 식별이 어렵다.

 

▲ 내려오면서 돌아다 본 함백산쪽.. 태양도 얼어 있다.

 

▲ 주목군락지로 접어 든다.

 

▲ 당겨 본 반생반사의 끈질긴 생명력이 경외스럽다.

 

▲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주목이다.

 

▲ 뒤 돌아본 함백산 정상..

 

▲ 함백산과 중함백의 사이 안부에서.. 6명중에 일행들을 만난다.

 

▲ 중함백의 오름도 만만치 않다..

 

▲ 바위길이지만.. 오히려 눈이 쌓여 발디딤이 좋다..

 

▲ 눈구경에 힘든줄 모르게 어느새 주능선에 올라선다..

 

12시 48분 : 중함백 정상.

 

▲ 중함백에서 다시 큰형인 함백이에게 눈인사를 하고 정암사 갈림길 안부로 내려 간다.

 

▲ 조망이 압권인 전망바위.. 좌측 골짜기에 고한읍이 졸고 있다..

 

▲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 계곡..

 

▲ 나이 탓인지.. 신갈나무고목이 길게 누워 있다.

 

13시 32분 : 정암사갈림길(자작나무샘터). 그런데 정암사로 가는 표지가 없다.

네이버산행앱을 확인해 보니 여기가 맞다..

 

▲ 돌울타리를 해놓은 이곳은 무슨 표시일까?.. 좌우당간 이곳에서 왼쪽을 살펴야 한다..

 

▲ 국립공원 안내판에 매직으로 적조암이라 적혀 있다.. 쉼터 평상이 2개가 있는 이곳에서 좌틀이다.

 

▲ 백두대간길인 두문동재로 가는 등로는 신작로라면.. 정암사길은 골목길 수준이다.

 

▲ 내려오다보니 아래에서 위로 가는 곳에는 샘물쉼터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그런데 왜?.. 위에는 없는건가..

 

▲ 이 추븐날에 엉덩짝을 다 드러 내어놓고 머하는기고?..

 

13시 47분 : 적조암 정암사 갈림길..

 

▲ 계곡으로 내려 오는길이 무지 가파르다.. 그러나 눈이 쌓여 미끄러지듯이 내려 온길을 뒤돌아 본다..

 

▲ 지점번호가 서 있는 곳에서 부터는 보통의 경사로 내려 간다..

 

▲ 1000m가 넘는 큰산의 골짜기는 그늘이 빨리 짙어져서 인지 걸음이 나도 모르게 빨라진다..

 

▲ 고요한 눈쌓인 깊은 계곡을 혼자 걸어온길이 천년전 자장율사의 순례길이었다..

정암사에서 적조암까지.. 자장율사가 걸었다는 길이다..

 

 

▲ 수마노탑 가는길..

27살때 이곳을 지나면서 들렀었다.. 실로 40여년이 넘어서 이곳을 다시 찾는다..

그때의 기억으로는 잘생긴 노송이 있는 완만한 오솔길이었는데.. 많이 변했다.. 그래도 감회가 새롭다..

 

▲ 오름계단이 길지는 않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불자도 아닌 내가 기를 쓰고 올라가는 이유는..

 

▲ 수마노탑(국보 332호)...

천년전.. 종교의식의 하나로 만들어진 자연과 잘 어울려진 아름다운 선과 예술적 감각을 느끼고자 함이다.

1964년 9월 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10호로 지정되었으며.. 2020년 6월 25일 국보 제332호로 승격되었다.

 

▲ 남쪽에서.. 그리고 동쪽에서..

수마노탑(水瑪瑙塔)은 적멸보궁 뒤의 산비탈에 세워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7층 모전석탑이다.

 

▲ 북쪽에서 남쪽으로.. 그리고..탑부..

수마노탑은 모전 석탑 양식의 탑이다. 모전(模塼)이라고 하는 것은 석재를 벽돌 형태로 가공해 축조한

석탑을 말하는데 마노석을 뜻하는 ‘마노탑’ 앞에 왜 물을 의미하는 물 수(水)자가 붙었을까?

그것은 자장이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자장의 도력에 감화해서 준 마노석으로 탑을 쌓았고 물길을 따라

마노를 가져왔다고 해서 물 ‘水’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水瑪瑙塔)’이라 불렀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정암사와 수마노탑은 현존하는 적멸보궁 가운데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석탑을 이용해 보궁을 형성한

사례로 주목받는 곳이다.

 

▲ 일심교를 건너 정암사 경내를 지나서..

 

▲ 정암사 적멸보궁.

우리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사찰 중의 하나다.

적멸보궁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적멸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고 여긴다.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법당에서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을 갖춰 놓으며.

또한.. 법당의 바깥이나 뒤쪽에 사리탑을 봉안했거나 계단(戒壇)을 설치한다.

 

 

▲ 범종각..

타사찰에서의 범종각은 일반적으로 개방형 루각인데 반해.. 정암사 범종각은 폐쇄되어 있는 느낌이다.

 

▲ 일주문을 나가면 사바세계다..

 

▲ 태백산 정암사라 되어 있다..

 

14시 30분 : 정암사 주차장에서 산행 종료.

 

▲ 함백산의 시작은 흐림이었으나 그 끝은 오른자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더라~..

태백산팀이 내렸던 유일사 입구에 도착했을때에 그렇게 강하게 불던 바람과 흩날리던 눈발은

만항재에 올라 서면서 부터는 눈도 그치고 창옥봉의 완만한 오름에서부터 상고대가 피더니

함백산문턱에서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은빛눈꽃이 황홀감을 주었다.

태백산팀의 하산지점인 당골주차장에서 16시 30분에 출발하여 대구 성서홈플 19시 10분 도착..

▲ 고산골 공룡공원의 관리자분께 부탁하여 인증샷 남기고 송년산행 출발.

 

▲ 용두골의 마애불을 알현하기 위해 옥수천길로 접어든다.

 

▲ 볼에 스치던 차가운 공기도 햇살이 퍼지면서 영상으로 올라 두꺼운옷이 거추장스럽다..

 

▲ 바람 0%.. 햇살 100%의 쉼터..

 

▲ 따끈한 유자차 행렬..

 

▲ 간식타임을 마치고..

 

▲ 장암사위쪽 삼거리의 마애불가는길...

 

▲ 해님이 잠깐 스쳐가는 외진골짜기에 녹지 않은 눈이 있다.. 조심조심..

 

▲ 급한 오름을 피해서 안전한길로 살짝 돌아서 올라간다..

 

▲ 마애불표지판이 머리위에 달려 있어서.. 잘 못보고 지나가 버리는 곳이다..

 

▲ 용두골 마애불..

내년에도 야등팀의 두발에 힘을 주시옵고 무사무탈한 산행이 되게해 주이소~..

 

▲ 팀원들은 밧줄이 있는 직등으로 올라가고 나는 평소 궁금했던 바위뒷편으로 돌아가 본다.

 

▲ 무속의 흔적이 보인다..

 

▲ 먼저 올라온 팀원들이 양지바른 방구돌에 자리를 잡았다.

 

▲ 조고문님의 양주와 닭튀김이 없었더라면.. 맹숭함에 차가움을 더할뻔 했다.. 고맙습니다..

 

▲ 오늘이 야등팀... 118번째 산행이다.. 117번의 시간들도 모두모두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오늘의 이자리는 유독 많이 웃었던 곳이다.. 두고두고 지나갈때마다 오늘이 그리운 추억으로 떠오를 것이다..

 

▲ 귀한술 쏟아버린 사람은 다른사람들 마실때 한번 굶어라...ㅎㅎㅎ~

그리고 이어서.. 발이 달리지도 않은 컵이 감쪽같이 사라졌던 기가막힌 사건..

조사하면 다 나온다 했다.. 컵이 왜?.. 거기서 나와~~??...ㅋㅋㅋ~~

우리 9명만 아는 마애불길위에서의 행복의 웃음 보따리다.. 웃어서 목이 아픈 경험은 처음이다~

 

▲ 어느 산꾼님의 철학이 담긴.. "새옹지마 작비금시" 시그널..

새옹지마(塞翁之馬)란..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작비금시(昨非今是)란.. 전에는 그르다고 여겨지던 것이 이제는 옳은 것으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 구름한점 없는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다..

 

▲ 그러나.. 우리 야등팀의 마음은 야회장님표 정성의 샌드위치로 햇살만큼이나 따뜻하다..

 

▲ 모두들 야회장님의 정성을 음미하는데.. 야대장님은 머할라카능교?..ㅎㅎ~

 

▲ 낭창한 가지에 걸린 배낭도 살랑춤을 춘다 ㅎㅎ~

 

▲ 샌드위치 잘 먹었습니다..

 

▲ 경찰학교에 입교하는 아들을 태워주느라 산행은 참석 못하고

송년식 자리에 오겠다는 "해님"과 "토끼"님의 전화를 받고 하산길에 든다..

 

▲ 바위고개를 넘어 오는 야대장님의 뷰가 좋아서..

 

▲ 사진 한장의 매출을 올리고..ㅎㅎ

 

▲ 앞에 간 송고문과 권이사님도 다시 불러서.. 매출울 올린다..

 

▲ 권이사님이 봉덕동의 회타운에 예약하고 쏘겠다고 한다..

 

▲ 전망데크에서..

 

▲ 선답한 젊은산꾼에게 부탁하여..

 

▲ 다른 포즈로 해 보라고 하는데.. 사진 보니 마카다 그자세가 그자세다...ㅎㅎ~

 

▲ 멀리 앞산 정수리 한번 바라보고..

 

▲ 대구를 가로질러 흐르는 신천도 당겨보고..

 

▲ 봉덕동 회타운.. 해님과 토끼님도 합류하고.. 야회장님의 1년 무사산행 마무리 건배다..

 

▲ 야회장님 마음고생 많이 했습니다.. 내년에도 오늘만 같아라.. 홧팅!~~..

 

▲ 대방어에 쐬주.. 빵빵하게 얼큰하게.. 그리고 무얼하는 곳인지 모르는.. 노래연습장이 보인다..

 

▲ 코로나로 잊고 있었던 노래하는곳이다..ㅎㅎ~

 

▲ 야대장님의 열창.. 동녘 먼동은 우째 그리도 늦게뜨노..ㅋㅋ~

 

▲ 조고문님은... 뜨거운 가슴으로 노래한다..

 

▲ 야회장님의 마무리 인사..

 

▲ 송고문님의 덕담으로...

 

▲ 2022년의 야등팀 송년행사가 막을 내린다..

큰 이벤트가 많았던 한해다..

강원도 고성의 운봉산.. 통일전망대.. 뱀바위봉 기획산행에 이어..

여름휴가는 거제 저도의 대통령별장길을 걸었고..

1년에 단한번 산문을 여는 설악의 달마봉과.. 하조대.. 죽도.. 휴휴암..

경기도 오산의 전국등산대회 참전.. 3등 트로피와 상장.. 귀한 경험이었다..

야회장님은 잠자리 스케쥴잡고 동선 준비하고..

야대장님은 기획하고 운전 보시하고.. 홍여사님은 맛깔나는 먹거리 보시..

덕분에 1년이 꿈 같이 흘러 갔습니다. 

함께하신 울님들 즐거웠고 행복 했습니다.

▲ 수성구 대표 캐릭터 <뚜비>

"뚜비" 는 망월지에 살고 있는 두꺼비와 수성구 전설에 나오는 돌 두꺼비의 중의적인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아서 "뚜비"라는 캐릭터를 개발하였다.

 

▲ 망월지는 1920년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전국 최대 두꺼비 산란지로 201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의해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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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0일(화요일).
두리마루숲길 : 대구시 수성구.

 

산행코스 : 연호역-뒷동산숲길입구-연호내지-운곡사-두리봉삼거리-오솔숲길-연호역 산행완료.

산행시작 : 연호역 10시 38분.

산행종료 : 연호역 15시 00분.

전체거리 : 약 11.2km.

전체시간 : 04시간 22분.

운동시간 : 03시간 43분.

휴식시간 : 00시간 38분.

누  구  랑 : 김선생님. 도사장님.

 

10 : 38  연호역출발.

10 : 45  솦길입구.

11 : 13  연호내지.

12 : 17  운곡사.

13 : 52  두리봉삼거리.

14 : 20  오솔숲길.

15 : 00  연호역 산행종료.

 

09시 38분 : 칠성교 밑 신천의 왜가리들도...

급강하 했던 수은주가 오늘은 많이 오르고 날씨가 풀리면서 하루 출발의 몸을 풀고 있다.

 

10시 38분 : 연호역 출발.

 

▲ 연호역 3번출구에 세워진 "두리마루숲으로"의 안내도를 숙지하고..

1구간에서 6구간을 원점으로 종주하는 대순환로(10.94km)를 걸을 것이다.

 

▲ "범안로" 옆길을 따라 약300m가량 진행하다가 오른쪽에 보이는 산불초소를 조금더 지나가면..

 

10시 45분 : "숲으로 가는길"의 입구를 만난다.. <뒷동산숲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 범안로를 수없이 지나 다니면서.. "저기에도 등산로가 있구나.." 하면서 지나치던 곳이다.

 

▲ 뒷동산숲길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

 

▲ 컵으로 만든종이 매달려 있다.. 무슨 용도일까?..

 

▲ 뚜렷한 산길은.. 길 이름처럼 뒷동산을 오르는 기분이다..

 

▲ 진행하다가 좌측의 연호내지로 가라는 안내판이다.

 

▲ 쉼터에 김춘수님의 시가 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읽어 보는데 총탄자국이 있다..

누군가(엽사)의 눈에는 아름다운 글귀가 과녘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문디 자슥~..

 

▲ 이 심플한 표지는 거의 100m마다 서있는것 같다. 오늘 산행중 가장 많이 만나는 표지다.

 

▲ 며칠 추웠는데 오늘은 햇살이 너무 좋다.. 수렛길 같은 넓은 길은 좌측으로 꺽이며..

 

▲ "통훈대부행적성현감이공지묘(通訓大夫行績成縣監李公之墓)" 를 지난다.

통훈대부란... 정3품 상계인 통정대부 이상을 당상관(堂上官)이라 하고,

하계인 통훈대부 이하를 당하관(堂下官)이라 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에 직계가 제정될 때 정3품 상계는 통정대부..

하계는 통훈대부로 정하여져 『경국대전』에 그대로 법제화 되었다... -- 다음백과 --

 

11시 12분 : 연호마을회관.

 

▲ 마을회관앞 도로 건너편 가드에 뒷동산숲길이 끝났으니.. 재넘이숲길로 가라는 이정표.

 

▲ 연호내지..

마을길에서 이정표가 안보인다..

마을로 가야하는지.. 저수지상류로 가야 하는지.. 한참을 둘러 본다.. 황당하다..

쿼바디스 도미네(Quo Va dis Dominé..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 드디어 찾았다.. 땅 광고처럼 전봇대에 붙어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두리마루길을..

마을회관 앞의 뒷동산숲길.. 재넘이숲길 이정표를 여기에 세웠어야 했다..

 

▲ 연호내지 상류의 수문쪽으로 간다..

 

▲ 수로를 따라서..

 

2~3분 진행하면.. 수성구의 대표 캐릭터인 <물망이>가 다시 재넘이숲길을 가르쳐 준다.

 

▲ 재넘이 오름길이 나도 산이라며... 바짝 치켜든다.

 

▲ 짧지만.. 급한 오름길을 8부쯤 오르면..

 

▲ 묘하게 꼬인 가죽나무가.. 힘들면 앉았다 가라며 허리를 내어 준다.

 

▲ 의자나무다.. 그래 잠시나마 쉬어가게 해주어서 고맙구나~..

 

▲ 정수리에 올라서니 아래서 볼 때와는 달리.. 펑퍼짐하다

 

▲ 월드컵주경기장이 보이고.. 2020년 11월에 올랐던 유건산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 재넘이길 답게.. 착하게 이어지다가..

 

▲ 또 한차례 가파른 재를 올라 간다.

 

▲ 올라서면 그네의자에 잠시 몸을 맡기고 흔들어 본다. 이왕이면 그네앞 나무들을 정비했더라면 해본다.

 

▲ 쉼터 벤치가 있는곳.. 최고의 조망처다.

 

▲ 벤치에 앉아서 바라본 초례봉.. 낙타봉..  환성산.. 팔공의 주능선..

 

▲ 당겨보니.. 범안로가 시원하게 달려가고 있다.

 

▲ 친절한 <물망이>가 여기가 재넘이숲길 끝이고.. 마루숲길이 시작 된단다..

 

▲ 조금더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두리봉은 좌측으로 가라는 표지판..

 

▲ 여기서 좌측으로 가도 되지만.. 3~4분정도 더 진행하다가..

 

▲ 여기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 담티고개로 직진해도 되지만..  운곡사로 가기위해 관계삼거리로 간다.

 

▲ 여섯개의 숲길중에 가장긴 <소나무숲길>이 여기서부터 두리봉까지 이어 진다.

 

12시 17분 : 운곡사.. 대한불교 태고종소속이다. 사찰건물에서 샤머니즘적인 분위기가 난다.

 

▲ 운곡사에서 30m가량 내려가서.. 관계삼거리 방향으로..

 

▲ 반짝 한파로 꽁꽁 얼어있는 구름지 옆으로..

 

▲ 목교를 건너 산길로..

 

▲ 소나무 한그루 한그루마다 2020년 5월 31일에 재선충 검사를 하였다는 노란띠가 묶여 있다.

 

▲ 한국에서는 무속의 대상인 서낭당 돌무더기이고.. 서양에서는 산길을 표시하는 케른(cairn)이다..

 

▲ 무속적인 면도 있지만.. 걸음에 지장을 주는 흩어진 돌들을 한곳에 모으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 북구의 태복산에서 보았던 움막쉼터 분위기다..

 

▲ 캬!~~.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곤봉이다.. 60여년만에 보는것 같다.

 

12시 36분 : 쉼터에서 마음점찍기.. 얼마나 따뜻하고 양지가 바른지 떠나기 싫어질 정도다.

 

▲ 그런데.. 쉼터옆에.. 이런 글이 있다..

가튼 갱상도 말이라도 우찌 이리 어렵노..내사마...먼 뜻인지 알수가 엄따.. 아시는 분 연락좀 하이소~..ㅎㅎ

 

13시 07분 : 범물동 갈림길.

 

▲ 조금전 지나온 운곡사에서 산삼을 뿌려 놓은 곳이란다..

 

13시 31분 : 지산동 갈림길..

다음에는 만촌역에서 두리봉터널을 지나 두리봉 삼거리에서 이리로 와서 무학네거리를 경유하여

지산동 무학산으로 가는 등산로를 걸어 보려고 한다.

 

▲ 이곳에도 오도방구들이 오도방정을 떠는 모양이다..

 

▲ 낡은 가드밧줄울 새로 교체한듯 야무지게 잘해 놓았다.

 

▲ 신천지아파트 갈림길에서 두리봉은 직진이다.

 

 두리봉 정상은 군부대 안에 있다.

 

13시 52분 : 두리봉 삼거리.

 

▲ 만촌역으로 가는길... 다음에 이길로 올라올 것이다.

 

▲ 오늘은 원점 순환코스라서 연호역 쪽으로..

 

▲ 길고 긴 소나무숲길이 여기까지다..

이제는 너울숲길의 시작이다.. 너울길이라면 파도를 타듯이 잔잔한 오르내림이 있는가 보다.

 

14시 01분 : 짧은 너울숲길이 끝나고.. 이제부터는 마지막 코스인 오솔숲길이다.

 

▲ 마지막코스가 착한 오솔길이어서 좋다..

 

14시 45분 : 숲으로 가는길 종점..

 

▲ 이천동마을을 지나서..

 

▲ 석가사를 마주보며 좌측으로..

 

15시 00분 : 연호역 산행종료..

 

▲ 수성구에 이렇게 아름다운 매력의 숲길이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테마가 있는 숲길이 있는 줄을 오늘 걸어보고서야 알았다.

2022년 12월 18일.
형제봉(193m) : 대구시 수성구.

 

산행코스 : 만촌역-모명재-형봉-제봉-산너머산아래-동대사-만촌역.

산행시작 : 만촌역 09시 28분.

산행종료 : 만촌역 12시 54분.

전체거리 : 약 6.66km.

전체시간 : 03시간 26분.

운동시간 : 02시간 37분.

휴식시간 : 00시간 49분.

누  구  랑 : 야대장님. 김프로. 요산. 게스트.

 

09 : 28  만촌역 출발.

09 : 34  모명재.

09 : 55  형봉.

10 : 30  제봉.

11 : 17  산너머산아래.

12 : 00  동대사.

12 : 54  만촌역 산행종료.

 

▲ 모명재 가는길..

 

오늘의 야등팀 산행은 가까운 만촌의 형제봉이다..

지하철을 타고 산행출발지인 만촌역으로 가는동안 휴대폰에서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날이니 바깥출입을

자제하라는 메세지가 연신 울린다. 오늘의 기온은 -8도에서 낮최고 -3도로 어제보다 5도가 낮아졌다고 한다.

 

만촌역 지하에서 09시 22분에 약속한 멤버들과 만나 에스컬레이트를타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데

차가운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다행히 바람이 크게 불지 않아서 산행하기에는 무난 할 것 같다.

 

▲ 명정각(命旌閣).

명정각은 두사충의 7대손인 두한필(1823~1893)의 효행을 알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내린 것이다.

 

▲ 모명재 입구.. 소슬대문의 현판에 "만동문"이라 되어 있다.

1592년 임진년에 임진왜란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은 중국 명나라에 지원군을 요청 한다.

이에 명나라는 이여송을 대장으로 임명하고 풍수전략가인 두사충을 참모로 하여 파견 된다...

이듬해인 1593년 조선의 관군과 의병...그리고 이여송과 두사충(杜思忠)이 이끈 명나라 원군은

왜군을 격파하여 평양성을 탈환한다.

 

그러나 승전의 기쁨도 잠시...경기도 고양의 벽제전투에서 왜군에게 대패한다.

패전의 책임이 진지의 구축을 맡은 두사충(杜思忠)에게 책임이 돌아가 참수하려고 하자...

 

참패의 원인이 진지 위치가 아니라 병사들의 사기 문제였다는 우의정 정탁(鄭琢)등 조선 대신들의

구명운동으로 두사충은 위기를 면한다.

조선에서 다시 태어난 두사충(杜思忠)은 전쟁이 끝나고 조선에 귀화 하였다.

 

▲ 모명재..

두사충(杜思忠)이 대구 대명동에 자리를 잡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매달 초하루에 대덕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제단을 쌓고 배례를 올렸다.

명나라를 그리워 한다는 뜻으로 모명재(慕明齋)라 하였다.

 

현재의 모명재 건물은 1912년 경산 객사가 헐리자 그 재목을 사와 두사충의 묘소 밑에 지은 것인데

건물이 너무 낡아 1966년에 중수하였다.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의 글씨는 이순신장군이 두사충에게 지어준 시다.

 

봉정두복야(奉呈杜僕射) : 두복야(복야는 두사충의 호)에 드리는 시..

북거동감고(北去同甘苦) : 북으로 가서는 고락을 같이했고

동래공사생(東來共死生) : 동으로 와서는 생사를 같이하고

성남타월야(城南他月夜) : 성곽 남쪽타향의 달밤아래서

금일일배정(今日一盃情) : 오늘은 한잔술로 정을 나누세~.

 

▲ 술잔을 나누는  이순신장군과 두사충...

 

풍수지리에 밝은 두사충 장수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두차례에 걸쳐 원군의 지리참모로 참전하였다.

두사충은 충무공 이순신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 출정하였으며 이순신장군이 전사하자

묏자리를 잡아 주었다고 한다.

 

특히 이순신장군이 한산도에 주둔하였을때 서로 시를 지으며 친분을 쌓았으며

이순신장군은 그때의 감회를 <봉정두복야>라는 시로 화답하였다.

 

두 장수가 전쟁중에도 나라를 떠나 군인으로써 우정을 쌓으며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고민하던 모습을 떠 올려 본다.

 

▲ 햇볕 좋은 모명재 담벼락에서 산행채비를 하고..

 

▲ 두사충의 묘를 경유한다.

 

▲ 두사충의 묘..

 

명나라 최고의 풍수가답게 죽음을 예감한 두사충은 오래전에 자신의 묘 터를 스스로 점지해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누울 자리를 찾아서 형제봉 앞을 지나던 중 그만 숨을 거두게 된다.

그 바람에 두사충이 묻히고자 했던 자리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그 자리가 지금의 고산지역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그의 묘는 모명재 뒤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의 후손인 두릉두씨(杜陵杜氏) 역시 지금까지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 두사충이 대구에 자리를 잡은 지도 어느덧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두사충 마음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면

대덕산(앞산)을 올랐다. 산에 올라 고향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리움이 한없이 메아리 치자 두사충은 아예 대덕산 밑으로 집을 옮겨와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동네 이름을 <대명동>이라 붙이고, 제단을 쌓아 매달 초하루 관복을 입고 명나라 황제가

살던 북쪽을 향하여 배례를 올렸다... 두사충이 배례를 올렸던 대덕산 일대는 현재까지 '대명동(大明洞)'이라

부르며, 대명동은 11동까지 있는 대구에서 면적이 가장 큰 동이 되었다.

 

▲ 형제봉 중에 형봉에 도착..

옛날에 이 산골에 힘이 장사인 남매가 살았는데, 나물 캐고 쑥 캐며 살던 남매는 하루는 산 쌓기 내기를 했다.

오빠와 누이동생은 각자 입은 옷을 이용해 산을 쌓았고, 아침에 해 뜰 무렵 산을 쌓기 시작해서 해 질 때까지

더 높이 쌓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였는데 오빠는 저고리 옷섶으로 흙을 날라 산을 쌓았고 여동생은 치마폭으로

흙을 쌓았다. 저고리 옷섶보다는 치마폭이 넓었고, 당연히 동생이 더 빨리 흙을 쌓을 수 있었다. 해가 질 무렵

동생이 쌓은 산이 더 높은 것을 발견한 오빠가 심술이 나서 동생 산을 짓밟아 버렸다 한다. 이 때문에 동생이

쌓은 산은 뭉텅하게 낮아졌다는 유래가 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끝이 뾰족하고 높은 산을 형봉, 뭉툭한 산을

제봉이라고 불렀다 하며, 또한 이 제봉은 누이동생이 쌓은 산이라고 해서 매봉(妹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형봉과 제봉을 지나.. 제봉건강쉼터에서 오른쪽으로..

 

▲ 오랜만에 와 보는 곳이다.. 전라도 아지매가 그만 두면서 발길이 뜸해 졌다..

 

▲ 야대장님의 친구분께서 게스트로 참석해 주셔서.. 반가웠습니다.

 

▲ 동대사가 있는 서당지..

 

▲ 서당지와 쌍둥이 저수지인.. 옥내지..

 

▲ 동대사 입구의 호랑이상.. 동대사는 천태종 소속이다.

 

▲ 동대사 관음전.

 

▲ 동대사에서 다시 형봉으로..

 

▲ 뷔페에서 하산주 한잔..

 

▲ 역시나 웅크리기 보다는.. 무언가를 행하고자 하는이에게 길은 열린다..

오늘의 형제봉 산행이 그랬다.. 막상 산속으로 드니 곳곳에 내어주는 햇살좋은 쉼터는..

오분순한 정나눔이 되었다...

이런 것이 소소하지만 큰 행복이다..

2022년 12월 16일(금요일)
포은 단심로 : 경북 영천시 임고면.

 

산행코스 : 임고서원주차장-기룡지맥-조옹대-임고서원-임고서원주차장.

산행시작 : 임고서원 주차장 11시 43분.

산행종료 : 임고서원 주차장 14시 43분.

전체거리 : 약 8.79km.

전체시간 : 03시간 00분.

운동시간 : 02시간 49분.

휴식시간 : 00시간 11분.

누  구  랑 : 나홀로.

 

11 : 43  임고서원주차장 출발.

12 : 39  기룡지맥.

14 : 15  조옹대.

14 : 34  임고서원.

14 : 43  임고서원주차장 산행종료.

 

11시 43분 : 임고서원주차장 바로 옆의 임고파출소에서 산행 출발.

내가 본 우리나라 파출소 건물중에 가장 쾌적해보이는 한옥 파출소다.

 

▲ 파출소 바로 뒷편에 포은단심로 들머리가 있다.

오늘 아침에 영천 기룡산을 검색하다가.. 국제신문의 임고서원 <포은 단심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산행시간도 약 3시간이라 하고.. 가는길도 우리집에서 54분 소요라서 적당하다..

그런데... 온이 낮 3~4도에 바람이 3~4m라고 해서 망설여진다.. 창을 열고 밖을 보니 하늘은 청명하다.

구라청을 믿고(?).. 출발!~.. 현지에 도착하니 역시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바람 한점 없다.

 

▲ 계단에서 뒤돌아본 들머리 모습.. 주차장과 파출소 사이에 들머리가 있다.

 

▲ 계단 중간에 설치된 간이 전망대..

 

▲ 임고서원(구.서원) 전경.

 

▲ 해발150m대의 낮은산이지만 오름이 가파르다.

 

▲ 주능선에 올라서니.. 이정표가 전망대에 다녀오라고 한다.

 

▲ 전망대 가는길..

 

▲ 주변의 나무들이 키높이로 자라서.. 전망보다는 바람길이 좋은 쉼터다.

 

▲ 구 서원과 신 서원 사이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마주치는 삼거리..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잘되어 있다..

 

▲ 동네 야산의 수레길 같은 편안한 길에..

나뭇잎의 바스락거림도 없고.. 새들의 지져귐도 없는 고요함이다.

 

▲ 낮은 언덕같은 구릉을 기분좋게 몇번 오르내리면..

 

▲ 봄이면 도화(桃花)가 만발하여 무릉도원이 될것 같은 복숭아 밭..

 

▲ 갈림길에 어김없이 서 있는 친절한 이정표..

 

▲ 송전탑속의 세계..

 

▲ 그늘이 좋은 포은 정몽주의 단심로에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죽어서도 고려 임금을 섬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는 <단심가>를 읊조려 본다..

음미 할수록 포은의 의리와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여운으로 남는 시다.

 

▲ 이 좋은 숲길을 오롯이 혼자 걷는길.. 오늘은.. 내가 주인이다.. 바람도 없고 안 왔더라면 후회 할뻔 했다.

 

12시 21분 : 일성부원군묘소 갈림길..

"일성부원군(정운관)"은.. 포은 정몽주의 아버지다.

그래도 큰 성인을 내신 분의 묘소라서 가보려고 500m 정도 진행하니 계곡 바닥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모양인지 농장이 보인다.. 아니다 싶어 되돌아 간다. 알바 아닌 알바를 한 셈이다..

 

▲ 일성부원군 갈림길에서 8~9분 올라가면 "기룡지맥길"과 만나게 된다.

 

▲ 길가에 햇볕 좋은 산소가 있어서 쉬어 갈겸 가보니...

 

▲ "해우처사벽진이공승학지묘"라 되어 있다.

처사(處士)라 함은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을 일컷는 말이다. 아마도.. 후손이 크게 성공한 모양이다. ㅎ~

 

▲ 삼거리.. 여기에도 친절한 이정표가 서 있다.

 

▲ 얕으막한 정수리에 올라서니 다시 일성부원군묘소로 가는길이다.. 포기하고 직진으로 내달린다..

 

▲ 일성부원군(정운관)의 묘.

가보지 못한 아쉬움에 다른 블로그에서 빌려 왔다..

 

▲ 벤치도 있고.. 길의 경사가 완만해 그리 힘들지도 않고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은 호젓하다.

 

13시 06분 : 기룡지맥 갈림길이며 단심로의 반환지점이다.

그 친절했던 금자씨 말고 이정표가 막상.. 꼭 있어야 할 곳에 없다. 양쪽다 많이 다녔는지 길이 반들거린다.

그러나.. 공부한 사람만이 아는 동물적 감각으로 여기가 기룡지맥 갈림길임을 알고.. 지세도 살필겸..

3~4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오늘 산행중에 제일 높은 238.8m에 다녀 오기로 한다.

 

13시 11분 : 기룡지맥의 238.8m봉.

기룡지맥이란... 보현지맥 보현산 1,124m 동쪽 1.64km 지점에서 분기하여 갈미봉(786.5mm) 외미기재.

기룡산(965.5m). 시루봉(대구. 포항고속도로) 28번국도를 건너 신령천이 금호강(자호천)에 합수하여

영천시 오수동에서 유봉지맥과 마주보며 끝나는 도상거리 32.2km의 산줄기다.

 

▲ 이제 오로지.. "조옹대" 만 바라기하며 하산이다.

 

▲ 과거에.. 성황당(서낭당)이 있었음직한 고개마루다.

 

▲ 하산길은 포은산책로인가 보다..

 

▲ 단심로를 걸으며.. 드라마나 역사를 통해 배운 파란만장했던 포은의 삶이 생생하여

그의 어머니가 지은 "백로가' 도 읖조려 본다.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 마라 

성난 가마귀 흰빛을 새우나니

창랑(滄浪)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아들 포은이 이성계(조선 태조·1335~1408)의 역성혁명을 반대하다가 죽임을 당할것을 예감이라도 했을까..

포은의 절의가 그 어머니에게서 기인했음을 짐작케 하는 시다...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 길이 두갈래다.. 어디로 가든 만날것 같다.. 이왕이면 군자대로행이라 했다.. 큰 길로 가자..ㅎㅎ~

 

▲ 높지는 않지만.. 수직 절벽아래 자호천이 시퍼렇게 흐르고 임고면 양평리의 너른 들이 시원하다.

 

▲ 북쪽방향의 양평리 너머로 영천의 기라성 같은 산군들이 보인다. 꼬깔산 아래에 영천호가 있다.

 

▲ 동쪽으로는 운주산 도덕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영천지역의 산줄기는 백두대간 상의 태백산에서 남으로 뻗어 나온 낙동정맥의 지맥이 영천에 이르러 산세가

약해지면서 운주산(806m), 도덕산(703m), 관산(394m)이 동쪽 경계를 형성하고 서쪽은 팔공산(1,193m),

태실봉(466m) 등이 솟아 있으며 남쪽은 금박산(432m), 구룡산(675m), 사룡산(685m)이 연이어 있고,

북쪽은 보현산(1,124m), 화산(828m), 수석봉(821m), 모자산 등이 급경사의 산지 사면으로 둘러싸여

동서 방향으로 이어져 있어 영천의 지형은 완전한 분지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 여름날 자호천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너무나 시원할 것 같아서 야등팀이 생각난다.

 

▲ 하산길에서 첫번째 정자..

 

▲ 조옹대 가는길.. 빗나간 구라청 바람예보로 등짝에 땀이 맺혀도 좋다.. 너무 좋다~ㅎㅎ..

 

▲ 임고초등학교.. 보건소.. 복지센터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 영천은 삼한시대 부족국가 골벌소국이 형성된 이후 절야화군, 임고군, 영주 등의 이름으로 불리다가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州)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川)과 산(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여 영천(永川)이라 하였다.

 

▲ 두번째 정자.

 

▲ 조옹대가 보인다.

 

14시 15분 : 조옹대 도착..

정자 입구현판에는 무괴정(無愧亭)이라 되어 있다.. 부끄럼이 없다는 뜻이다. 포은이 그랬다..

 

▲ 뒷쪽의 임고서원마당에서 잘보이는 곳에는 조옹대(釣翁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포은 선생이 이곳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해서 후세 사람들이 조옹대라 부르고..

또 선생이 낚은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용(龍)이라고 해서 조룡대라고도 불렀다고도 한다.

 

▲ 포은의 호중관어(湖中觀魚)... 중국 장자(莊子)의 추수편(秋水篇)에 실린 이야기.

 

잠재심연혹약여(潛在深淵或躍如).. 깊은 못에 잠겨 있되 힘차기도 한 것을

자사하취저우서(子思何取著于書).. 자사는 무엇 때문에 글에다 썼던가.

단장안공분명견(但將眼孔分明見).. 다만 분명하게 살펴보니

물물진성발발어(物物眞成潑潑魚).. 모든 것이 팔팔한 고기와 같네.

어응비아아비어(魚應非我我非魚).. 고기는 내가 아니고 나 또한 고기 아니니

물리참차본부제(物理參差本不齊).. 만물은 들쭉날쭉 본디 같지 않건만

일권장생호상론(一卷莊生濠上論).. 호량의 논의를 쓴 장자의 한 권의 책이

지금천제사인미(至今千載使人迷).. 이제까지 천년동안 사람을 어지럽히네~..

 

▲ 퇴계 이황의 <임고서원>

 

포옹풍열진오동(圃翁風烈振吾東).. 포옹은 명성과 절개가 우리나라에 떨쳤으니

작묘양양장학궁(作廟渠渠壯學宮).. 커다란 사당에 장한 학관도 만들었네

기어장수제사자(寄語藏修諸士子).. 수양하는 선비에게 한 말씀을 부치나니

연원절의양감종(淵源節義兩堪宗).. 연원과 절의 둘 다 조종이라 할만하다~..

 

▲ 목은 이색의 억정산기(憶鄭散騎)...

 

▲ 조옹대에서 바라본 임고서원.

임고서원은 정몽주를 추모하기 위하여 1553년(명종 8) 부래산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3년(선조 36)에 중건되었으나..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65년 복원하여 1990년부터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기존의 서원 옆에 새로이 서원을 세워 웅장한 규모를 갖추고 있다.

현재는 보이는것 처럼 옛 서원과 새로 지은 서원이 공존하고 있다.

 

▲ 정몽주유물관.. 충효관.. 계현재.. 포은연수관등등..

 

▲ 은행나무와 선죽교와.. 왼쪽의 송탑비가 한눈에 보인다.

 

▲ 포은유물관..

꽃피는 봄날에 임고서원 주변을 다시 불러 보고자 한다.

 

▲ 포은 정몽주 선생이 낚시를 하였다는 조옹대가 그림이다.

 

▲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 송탑비(頌塔碑).

글씨는 퇴계선생의 유묵 중에서 집자(集字)한 것이다.

 

▲ 조선시대 어제어필(御製御筆). 임금의 시와 글이며... 숙종. 영조. 고종의 시들이 적혀 있다.

 

▲ 임고서원(신 서원)..

조선 명종 8년(1553) 부래산에 창건하여 사액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 이곳에

중건하고 재사액(再賜額) 되었다.

 

▲ 정문의 역할을 하는 누각은 영광루(永光樓)다.

영광루의 아래쪽에는 경앙문(景仰門)이고.. 우측문만 열려 있다.

 

▲ 임고서원.

정몽주의 본관은 영일, 호는 포은이다. 1355년 아버지 상에 3년, 1365년 어머니 상에 3년간 여묘하였으며

1357년 과거에 합격한 후 예문검열 등을 거쳐 벽상삼한삼중대광 수문하시중 판도평의사사사 병조상서시사

영경령전사 우문관대제학 익양군충의백에 제수되었고 명나라와 일본에 사신으로 갔으며, 내정, 외교, 교육

등에 공적이 많았는데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에 의하여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이로써 고려는 474년의 사직(918~1392)을 닫게 된다.

 

▲ 주 건물인 흥문당(興文堂)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고 흥문당 좌우에 전사청(典祀廳)과

심진각(尋眞閣)이 위치하고 있다.

 

흥문당(興文堂)대청마루.

 

▲ 흥문당 오른쪽의 경의협..

 

▲ 흥문당 왼쪽의 명성협..

 

▲ 통정대부 공조참의로 추증된 최선매의 공적을 기록한 비석이 신 서원 좌측에 세워져 있다.

최선매는 임진왜란 때 서원이 소실될 위기에 처하자 포은선생의 영정과 위판을 기룡산 석굴에 피안시켜

난리가 평정된 후 서원을 중건하여 다시 안치한 분이다.

 

▲ 수령 600여년의 임고서원 은행나무..

서원이 부래산에 있었을때부터 심겨져 있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없어진 서원을 이곳에 다시 지을때

함께 옮겨 심었다고 한다.

 

▲ 600년의 세월이 피워내는 노란 은행잎이 아름다운 가을에 와도 좋을듯 하다.

 

▲ 임고서원을 뒤로 하고..

 

▲ 선죽교쪽으로..

고려시대에는 난간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4년(1780) 정몽주의 후손 정호인이 개성유수로 부임하여 난간을

설치하여 통행을 제한하는 대신 행인을 위하여 바로 옆에 좁은 돌다리를 가설하였다.

 

▲ 선죽교.

정몽주선생이 후에 태종이 된 이방원 일파에게 피살된 장소인 선죽교(善竹橋)가 복원이 되어 있다.

원래는 선지교(善地橋)라 불렀는데, 정몽주가 피살되던 날 밤 다리 옆에서 참대가 솟아 나왔다 하여

선죽교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글씨는 한석봉의 작품이다.

 

▲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159호인 선죽교는 개성 남대문에서 동쪽 약 1km 거리의 자남산 남쪽 개울에

있는 다리로 고려 태조 왕건이 919년 송도의 시가지를 정비할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8.35m,

너비 3.36m의 화강석 다리다.

 

▲ 개성의 선죽교를 실측하여 그 규모대로 임고서원 앞에 가설하고 한석봉이 쓴 선죽교 돌비석 또한

탁본하여 세우게 된 것이다.

 

▲ 산수유..

 

14시 43분 : 임고서원 주차장 산행종료.

 

▲ 충성심과 효심을 아울러 구비한 불사이군의 충신으로 추앙을 받는 포은 정몽주선생을 모신 임고서원을

둘러 보고.. 선죽교를 건너니 겨울만큼이나 시린가슴이었다.

1388년 5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고려 멸망.. 억불숭유 통치의 조선 500년.. 조선총독부.. 일제강점기..

독립.. 동족상잔의 6.25.. 그리고.. 대한민국의 오늘을 돌이켜 보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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