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03일(목요일).
형산/옥녀봉 : 경북 경주시 / 포항시.

 

산행코스 : 국당리형산입구-기원정사-형산-농바위-옥녀봉-생태공원전망탑-소형산-형산입구.

산행시작 : 국당리형산입구 07시 32분.

산행종료 : 국당리형산입구 12시 26분.

전체거리 : 약 13.2km.

전체시간 : 05시간 54분.

운동시간 : 04시간 16분.

휴식시간 : 00시간 37분.

누구하고 : 정명님.  둘리님. K님. 요산(필자). .

 

07 : 32  국당리형산입구.

08 : 13  기원정사.

08 : 22  형산.

10 : 02  농바위.

10 : 13  옥녀봉.

10 : 23  생태공원전망탑.

12 : 07  소형산.

12 : 26  형산입구.

 

▲ 07시 31분 : 경북 경주시 국당1리 입구.

 

▲ 정국사 빗돌에서 좌측 공터에 파킹하고.. 국당리방향으로 1분가량 진행하면..

 

▲ 피라밋형상의 지붕이 보이는 지점의 형산들머리에서 하산하게될 소형산과 눈인사를 하고..

 

▲ 산죽이 보이는 곳에서 희미한 산판길로 접어 든다.

 

▲ 철탑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듯한 산판길을 따라.. 3~4분가량 올라가면..

 

▲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위를 좌측으로 에돌아가면.. 전망바위가 나온다.

 

▲ 전망바위에서 형산강을 따라 바라본 포항 시가지방향..

 

포항(浦項)의 '포(浦)'는 '갯가'를 의미하고.. '항(項)'은 '목'을 의미한다. 따라서 '포항'은 '갯가의 목처럼 좁은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며... 지리적으로 포항은 형산강과 관련이 깊은 지역으로, 포항강(현재의 칠성천)과의 관계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지역은 수군 진지인 '통양포만호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포항 지역이 연일현의 옛 소재지로 불리며 '고현면(古縣面)'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현재의 '포항'이라는 이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제산..

 

이왕 이자리에 섰으니.. 이지역에서 전해지는 형산과 제산과 형산강에 얽힌 설화를 한번 살펴보자. 지금의 형산강을 기준으로 남쪽은 "형산"이고 북쪽이 "제산"이다. 이곳은 옛부터 "형제산"이라 하여 두 산이 붙어 있었는데 산이 막혀 있어서, 경주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안강에서 지대가 낮은 신광으로 흘러갔다고 한다. 삼국통일 이전이나 이후에도 비가 많이 올 때면 큰 홍수가 나고 침수가 되어 신라의 수도인 경주 계림 궁궐 마루까지 침수가 되곤 했다. 삼국통일 후 인구가 50만~80만이 살았다고 하는데, 몇 백년 동안 홍수가 반복되면서 피해가 극심해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왕과 군신들이 고민을 거듭했지만 이렇다 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때.. 무열대왕과 김유신 장군이 내기를 했고 그 방법은 산을 잘라서 강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라시대가 오늘날과 같은 중장비 기계가 눈부시게 발달한 시기도 아닌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이 매우 어려운 묘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무열대왕과 김유신 장군이 생각해낸 묘책은 다름 아닌 “산을 자를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진 용(龍)이 되면 되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용’이 된 김유신이 하늘로 승천하면서 용의 꼬리로 힘껏 쳐서 산을 잘라 형산강이 생기니 이때부터 산에 막혀서 고여 있던 물이 물길이 생기면서 형산강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김유신이 아닌..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 김충(마의태자)가 용이되어 산을 잘랐다는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AI시대의 눈으로 보면,, 용의 꼬리로 산을 잘랐다고 하는 얘기는.. 김유신이던.. 마의태자던..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해서.. 아래와 같이 이지역에 홍수가 범람하였던 상황을 나름대로 유추해 보았다.

 

▲ 윗 지도를 보면..

첫째.. 안강들판에서 빠져 나가는 물길이 "ㄱ"자 곡각지점에서 물흐름이 둔화 되었을 것이고..

둘째.. 형산과 제산이 원래 하나로 붙어 있지는 않았고 좁은 수로로 병목 현상이었지 않았을까?..

 

아래지도를 보면.. 그렇게 상류에서 흘러온 물의 양에 비해 빠져 나가는 물이 적으니 상습 침수로 자연 호수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김유신이나 마의태자가.. 민생시찰을 나갔을때.. 큰 홍수가 발생하여 급격하게 불어 났던 물의 엄청난 압력으로 형산과 제산에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토사가 밀려 내려가면서 병목이었던 물길이 트이고 강폭은 넓어 졌을 것이다. 이때 때맞추어 현장에 있었던 김유신.. 또는 마의태자에게 백성들의 감사함이 세월이 흐르면서.. 설화로 둔갑하지 않았을까...

 

▲ 형산 전위봉에 올라서니.. 우람한 바위들이 보이고.. 굿당의 흔적도 보인다.

 

▲ 주변의 바위군..

이곳이 풍수적으로 용의 뿔에 해당하는 곳이란다. 이곳은 남쪽에서 맥을 이어오다가 어깨를 틀어 동쪽 하늘로 청룡이 승천하는 형이며, 용머리가 큰 바위로 모여 있으며 용머리에서 형산강으로 뻗어 내려간다.  조계종 수월대종사 큰스님께서 불기2538년에 기원정사에 오셔서 산을 둘러보시고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명당 청룡혈 이라고 하셨으며, 몇십년전 풍수지리에 최고로 이름을 날리던 육관도사 손석우님께서 불기 2539년에 당 사찰에 초청하여 와보시고 우리나라에서 청룡혈로서는 최고의 명당이라고 하였다.

 

▲ 보기에도 섬뜩해지는 실타래도 주렁주렁 걸렸다.

 

▲ 청룡혈 머리 앞에 갓바위 관세음보살님.. 불기 2544년(서기2000년)도에 큰 바위로 조각하여 몸체높이가 14자이며 좌대까지 높이가 20자다. 약사여래불로 약단지를 들고 있다.

 

▲ 기원정사 갓바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포항시.

 

형산강 유역에는 윗부조장과 아랫부조장 두 곳의 장시가 개설되었었는데, 부조(浮助)의 ''부(浮)' 는 배가 물에 뜬다는 뜻이고, '조(助)'는 돕는다는 뜻이다. 과거 형산강을 오가던 선박과 상업 활동을 통해 지역 경제가 발전했던 역사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아랫부조장은 영일현 서면 중명리(현 연일읍 중명리) 일대에 1750∼1905년까지융성했다고 ‘경상도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함경도 명태, 강원도 오징어, 포항 연안의 청어. 소금을 내륙으로 팔고 전라. 경상도의 농산물을 교역하는 상거래 요지로서, 형산강 일대에 수많은 황포돗대와 객주. 여각은 물론 창고업, 위탁판매업, 숙박업이 번성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조선시대 3대 시장의 하나였다.

 

‘경주부읍지’에도 “윗부조장(현 경주시 강동면 국당리)에서 갈라져 나와 아랫부조장(연일읍 중명리)이 새로 생겼었고 윗부조장이 선박 접안이 불편한 반면.. 아랫부조장은 접안시설이 좋고 포구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고, 후에 아랫부조장이 전국 규모의 부조장으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 한국의 철강산업을 이끌었던 포항제철..

 

 08시 13분 : 기원정사..

무량수전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보물 제1615호 이 불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환성사미타삼존조성결원문을 통해 1466년에 조성역사를 시작하여 1474년에 비로소 완성으며, 불상의 조성발원에는 왕실종친부 및 지방관료. 양반. 양민 등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형산기원정사는 천삼백년 전 신라시대 때 고찰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신라 때는 형산사였는데 옥련사, 왕룡사, 왕룡사원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기원정사이다.

 

▲ 용왕전..

목조문무인상이 모셔져 있다. 두분 중 한분은 신라중엽에 무열대왕이시고 또 한분은.. 용이되어 형제산을 갈라 물길을 텃다는 김유신 대장군이라 한다.

 

▲ 형산으로 가는길은 용왕전 맞은편 향나무 사이로 진입한다.

 

▲ 기원정사 공덕비..

 

▲ 맑은 날씨였다면.. 운제산과 무장봉.. 멀리 묵장산까지 보일텐데..

 

▲ 08시 22분 : 형산 정상.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산객의 발길이 뜸했던지 칡넝쿨이 무성하다.

 

▲ 아쉬움에 경주쪽을 다시 살펴보고..

 

▲ 형산의 습지.

신라 시대에는 형산을 북형산(北兄山)이라 불렀다. 산 정상부에 왜구를 지키기 위해 673년(신라 문무왕13년)에 쌓았다는 토석성(土石城) 북형산성이 남아 있다는데 지금은 숲이 우거져 알수가 없다. 

 

▲ 기원정사길을 만나서 우측으로..

 

▲ 기원정사길에서 국당2리로 내려가다가 옥녀봉쪽으로 급 죄회전..

 

▲ 경주땅에서.. 포항 시경계로 가는길..

 

▲ 포항시에서는 가깝지만 행정구역이 다르고.. 관리주체인 경주에서는 내버려둔듯.. 관리가 되지않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09시 28분 소형산 갈림길.

40여분간 풀섶을 헤치며 어렵사리 올라와서 만나는 포항시경계.. 이정표가 너무나 반갑다.

 

▲ 이땅의 소나무.. 한국의 소나무.. 우리의 미인송이 하나둘 우리곁을 떠나려고 한다.

 

▲ 관리가 잘되어 있는 옥녀봉 가는길.. 좌측은 포항시.. 우측은 경주시다..

 

 09시 51분 : 253봉.. 운제산 갈림길..

 

 10시 02분 : 농바위..

양반댁 아씨와 머슴의 사랑이야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러브스토리 텔링이다.

 

▲ 옥녀봉 가는 길에는.. 격몽요결도 있고.. 명심보감도 있고..

 

▲ 옥녀봉 가는길..

포항쪽은 등산로는 잘되어 있는데.. 주등로에서 벗어난 정상은 잘 안가는가 보다.. 묵은길이다.

 

▲ 10시 13분 : 옥녀봉..

 

▲ 근처에 전망탑이 보여서..

 

 10시 23분 : 생태공원 전망타워..

 

 가야할 마지막 오름인.. 소형산을 가늠해 본다.

 

▲ 기원정사를 당겨본다.

 

▲ 배롱나무..

 

매끄러운 살결 위로..

붉은 실타래가 타오른다.

 

붉고 분홍의 구름 같은 꽃송이들을..

가지마다 걸어 두고..

 

백일이 넘도록

바람이 머물다 가고 햇빛을 품는다.

 

긴 여름을 건너며 피어 있는 것은..

꽃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것을

너는 말 없이 보여준다.

 

▲ 숨은 그림찾기.

 

▲ 포항 환경학교.

 

▲ 중명생태공원은..

2022년 여름 초대형태풍 힌남로가 포항을 초토화시켰다. 4년이 지났지만 잊어지지 않은 이름이다. 여기 중명자연생태공원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복구하는데만 4년 여의 세월이 흘렸고 복구와 동시에 입구에 번듯한 3층건물(포항환경학교)가 새로 오픈되었다.

 

▲ 소형산가는길은 바닥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오른다.

 

 11시 31분 : 소형산 갈림길.

 

▲ 소나무 그루터기에 핀.. 노루궁댕이..

 

▲ 소형산 가는길의 운치있는 수제의자..

 

 12시 07분 : 소형산..

몇년전에 부조정(정자)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철거해 버렸다고 한다.

 

▲ 건너편의 형산과.. 형산강..

 

형산강의 발원지는 원래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의 백운산 탑골샘이었는데, 논쟁 끝에 경북 경주시 서면 도리의 인내산인출샘으로 바뀌었다. 국토지리원은 인출샘에서 강 하구까지 유로길이가  65.5Km로 탑골샘에서 하구까지의 62.2Km보다 3.3Km 더 길다며 형산강의 발원지를 변경한 것이다. 이렇게 형산강의 발원지가 경주 인내산의 인출샘으로 변경된 것은 2000년 5월 건설교통부에서 발간한『한국하천일람』에서도 확인된다.

 

▲ 포항시 연일읍과 경주시 강동면을 잇는 국당리의 부조천..

 

▲ 국당리 입구.. 환종주 마감..

 

▲ 13.2km를 평속 3.1km/h로 주파..

 

▲ 귀구길에 영천시장 할매국밥.

2026년 08월 27일(목요일).
육화산/흰덤봉 : 경북 청도군 매전면.

 

산행코스 : 장수골장연사입구-부처산전망데크-흰덤봉-능사지굴-고추봉-육화산-장연사입구.

산행시작 : 장연사입구 07시 10분.

산행종료 : 장연사입구 13시 17분.

전체거리 : 약 11.9km.

전체시간 : 06시간 06분.

운동시간 : 05시간 11분.

휴식시간 : 00시간 55분.

누구하고 : 정명님.  둘리님. K님. 요산(필자). .

 

07 : 10  장수골장연사입구.

08 : 21  부처산전망대.

09 : 10  흰덤봉.

09 : 40  능사지굴.

11 : 26  고추봉.

11 : 56  육화산.

13 : 17  장연사입구.

 

▲ 07시 10분 : 경북 청도군 매전면 장수골 장연사입구.

 

 이정표가 가리키는 흰덤봉 방향으로 3분가량 진행하면 장연사길과 만난다. 오늘산행은 흰덤봉에 먼저 올랐다가 육화산에서 하산하는 시계 순방향으로 진행하는 원점회귀다.

 

▲ 정명님의 귀환으로 4인조 완전체로 재결합...

 

▲ 07시 35분 : 흰덤봉 들머리 접속.

 

▲ 08시 01분 : 흰덤봉 지능선 쉼터.

흰덤봉을 지나 마지막에 오르게 되는 육화산까지의 능선길은 약간의 업 다운(up-down)이 있어나.. 육산과 골산의 적당한 배치로 진행상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거리가 좀 멀다.. 해서.. 자기만의 산행리듬에 맞추어 페이스(pace)조절을 잘 해야 산행이 순조롭기에 적당한 휴식은 필수다.

 

 방구돌 홈통을 지나니.. 가파른 사면길에 쭉 곧은 갈참나무 한그루가 쓰러져 있다.. 나무의 키에 비해 뿌리 넓이가 빈약한걸 보니 하늘 높은줄만 알았고.. 땅 넓은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ㅉㅉ..

 

▲ 08시 20분 : 부처산 전망대.

 

 청도 제일의 조망처다. 남서쪽으로는 가야할 고추봉과 육화산이고.. 꼬깔봉 너머로는 청도 남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 매전면에 S자로 굽이치는 동창천 주변의 전답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들이 정겹다. 강이 만든 비옥한 땅에 취락을 형성한 전형적인 모습이다. 지리학적으로는 구하도 지형을 자랑한다. 구하도(舊河道)는 말 그대로 과거에는 하천이었으나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 흔적이 남은 지형을 말한다. 주변 산세에 흠뻑 취하고, 휴식할 때는 장구한 시간을 관통하며 변해온 동창천의 지형을 감상할 수 있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산하다.

 

▲ 바위도 멋진데... 묘하게도 바위 정수리를 휘감아 도는 소나무가 더 멋짐 뿜뿜!~..이다.

 

▲ 08시 59분 : 689m봉인데.. 등산로 입구에서 1.89km의 표시는 여기에서 끝나고 이마에 흰덤봉이라고 되어 있다. 육화산으로이어진다.. 아마도.. 청도군에서는 여기를 흰덤봉으로 인증 하는가 보다.

 

▲ 구만산 갈림길.. 흰덤봉은 오른쪽으로..

 

▲ 09시 10분 : 흰덤봉.

 

▲ 준.희님의 운문지맥..

운문지맥은 낙동정맥길의 가지산에서 분기하여 운문산..억산.. 낙화산.. 비학산을 거쳐 밀양강과 엄남천 합수점에서 그 끝을 맺는 산행거리 45km의 지맥길이다.

 

▲ 흰덤봉에서 능사지굴이 있는 666m봉을 내려 서면.. 이정표를 따라서 능사지굴로..

 

 능사지굴 가는길... 오른쪽 위에 먼저 가신 산님의 추모비가 있다.. 아마도.. 바위 절벽길을 조심하라는 의미도 있는것 같다. 심약한 사람은 선뜻 도전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 최소한의 산행 경험만으로도 조금만 주의를 기우리면 능사지굴에.. 충분히 갈수 있다.

 

▲ 자연굴이 아닌 인공굴인 능사지굴은 절벽의 중간에 위치하여 아래도 아찔한 절벽이고 위쪽도 절벽이다.. 언제 누가 무슨 용도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곳에서도 자료를 찾을수가 없다..

 

▲ 능사지굴은 작은굴 두개.. 중간굴.. 큰굴.. 네개가 있다.

 

 09시 40분 능사지굴.. 네개중에 가장 큰 굴이며 가장 안쪽에 있다.

 

▲ 능사지굴 안에서 밖으로..

 

▲ 능사(능구렁이)가 살았다는 능사지굴.. 그러나 배~암이 굴을 파지는 않았을터...

 

▲ 능사지굴에서 바라본.. 육화산.

 

▲ 능사지굴에서 돌아 나올때도 조심조심..

 

▲ 얼굴 바위..

강한 턱선에 굳게 다문 입.. 지그시 내려 감은 눈.. 세상을 초월한듯.. 무념무상이다.

 

▲ 능사지굴 조망바위에서..

 

▲ 능사지굴에서부터 고추봉까지.. 육산의 편안함도 있고..

 

▲ 눈요기 하라는 암릉에서는 돌아가면 되고.. 한데.. 조금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때 쯤에..

 

▲ 흰덤봉과 육화산의 중간쯤에 612봉에 닿게 되고..

 

▲ 멋진 조망바위가 지루함을 달래준다.

 

▲ 가야할 고추봉과 육화산.. 그리고.. 하산길의 백미인.. 암릉구간..

 

▲ 돌아보면.. 흰덤봉이 저만치서 조심히 잘 내려가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온다.

 

▲ 청도군 매전면의 장수골과 매전 들녁.. 그리고 생육을 살찌우는 동창천.. 동창천은 밀양강(密陽江)의 상류지류로써.. 울산광역시 울주군 고헌산 큰골샘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밀양강에 합류하고 본격적으로 밀양강이라 불리우다가 다시.. 삼랑진에서 낙동강을 만나 부산 을숙도에서 바다로 흘러든다.. 참고로.. 길이 100km를 흘러가는 밀양강은.. 우리나라 5대강 중에서  가장 긴 낙동강 물줄기의 7지류중에 가장 짧다.

 

▲ 10시 50분 : 657m봉.. 송백리로 내려 가면 구만굴을 만날수 있다.

 

 657m봉에서 육화산 가는길은 웃자란 나무들로 거의 밀림수준이다.. 그러나 길은 뚜렷하다.

 

 고추봉 가는길.

 

▲ 육화산.. 고추봉에 들렀다가 갈것이다.

 

▲ 고추봉 암릉 끝자락의 전망대..

 

▲ 밀양의 진산이며.. 영남 알프스의 천황산.. 재약산에서...

 

▲ 청도의 기라성 같은 산군들..

 

▲ 그 너머로 창녕의 진산 화왕산도 명함을 들이민다.

 

▲ 청도의 진산 화악산.. 남산까지..

 

▲ 11시 28분 : 고추봉 인증샷. 여기도 유래는 없다.

 

▲ 자연이 쌓은 난공불락의 석성위 소나무 뒤에 사람의 흔적이 보여서..

 

▲ 분명히 사람의 흔적이다.. 무슨용도로 덮개를 쌓았을까..

 

▲ 육화산 갈림길에 다시 돌아와서..

 

▲ 이 구간도 밀림이다..

 

▲ 안부에 내려서니.. 동문사 내림길이다..

 

▲ 11시 56분 : 육화산 정상.

 

▲ 육화산은..

청도문화원이 발간한 '마을지명 유래지'에 따르면 육화산의 육화는 "큰 산. 작은 산. 청계수. 폭포. 적석. 흑석 등 6가지를 꽃에 비유하여 미화시킨 이름"이라고 한다. 이처럼 화려한 이름에 걸 맞는 풍광은 8부 능선에서 정상사이에서 볼수 있다. 큰 산과 작은 산이 역동적인 마루금을 형성하고 청계수와 폭포수는 하얀 포말로 장수골을 타고 흐르며 적석. 흑석은 산허리를 관통한다.

 

▲ 장수골 하산거리.. 2.0km.

 

▲ 하산길 능선에 하얀 암릉길이 보인다.

 

▲ 데크길을 만들지 않았다면 다소 위험할 수 도 있겠다.

 

▲ 흰덤봉 능선 너머로.. 억산.. 사자봉.. 북암산.. 사자봉의 문바위와 수리봉쪽은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능선이다. 산천은 그대로인데.. 내 몸에 시간만 쌓여 간다..ㅠㅠㅠ..

 

▲ 육화산 치마바위..

 

▲ 고소공포증이 없는 내가..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암벽 길의 풍광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해발이 600m대로 낮은데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런 곳에 아름다운 경관의 산이 존재하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 육화산의 작은 자연성릉..

 

▲ 이곳에 내가 있음이.. 이 얼마나 자유롭고 복된 시간인가?... 이 산이 여기에 있기에 나는 오늘 이 복 받은 풍광속에서 삶의 에너지를 한껏 담는다.

 

▲ 조선시대 축조물로 추정된다는 내리산성은 지리적 잇점을 이용한 천연의 방어벽이기도 하지만 돌 하나하나에 이런 민초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을 것이다. 성 돌을 밟고 가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 같은 지형에 또 성을 쌓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시대 때 쌓은 석성 내리산성이다. 규모와 구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조사된 바가 없다고 한다. 육화산에서 줄기를 타고 뻗어 내린 능선의 서편으로 돌출한 험한 지형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1.3km 떨어진 장연리 산성과 함께 육화산성이라고 부른다고. 학자들은 두 성의 지리적 특성에 따른 상호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적막한 산성에 찾는 이 뉘 있을고...

이렇게 찾아드는 길손 한가롭지만 끊이지 않네!~...

 

▲ 동창천은.. 어찌 저리도.. 자연을 살찌우고 키워 내면서도 무언의 겸손으로 유유히  흐르는지.. 동네곳곳에 심겨진 감나무들.. 모두 씨없는 반시를 맺는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다.

 

▲ 다시.. 4인조 완전체로 재결합하여...

 

▲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마냥 즐거운데..

 

▲ 갑자기.. 하늘님이 시샘이라도 나셨는지.. 속이 거북하신지.. 우르르르르!~~번쩍 콰강쾅!~..

 

▲ 소리도 요란 하시더니.. 그예.. 못참으시고.. 한방울 두방울 비를 뿌리신다.. 걸음이 빨라진다..

 

▲ 한방울 두방울 비를 받아주고 막아주던 숲길도 끝나고.. 폭우가 내린다면.. 고스란히 맞을수 밖에 없는 임도 위에 섰다.. 부처산.. 흰덤봉도 비구름에 가렸다..

 

치매 예방용 고스톱판에서 가끔 쓰는 말.. 하느님도 자식 키우시겠지...ㅎㅎ~.. 믿는 마음으로 찍사의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산 이야기는 마무리 하고자 한다.

 

▲ 육화산 정상의 장수골 하산거리.. 2.0km가 여기까지 인가 보다...

 

▲ 육화산 등산로 입구를 지나서..

 

▲ 마을 공동작업장 앞을 지나는데.. 드디어 천둥소리 요란하더니 굵은 장대비가 쏟아진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실례를 무릅쓰고 농막안으로 피신.. 우리의 애마가 있는곳까지는 231m다..

 

궁즉통(窮則通)이라 했던가.. 아침에 나올때 아무 생각없이 배낭에 넣어 온 우산이 생각 난다.. 이래서 세상사 묘한 이치에 한치 앞을 모른다고 했다.. 둘리님이 우산을 보더니.. 혼자 가서 차를 가지고 오겠다고 한다..

 

▲ 차가 올동안.. 램블러 정리.. 오늘도 평속 2.3km면 양호한 편이다.

 

▲ 우리의 애마를 타고..

 

▲ 청도읍으로 논스톱.. 쏘맥 한잔도 논스톱으로 목젖을 타고 넘는다..ㅎㅎ~.

 

밀양 구만산 바로 옆에 있는 산이지만..

구만산의 위용에 가려 산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청도의 숨은 명산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인생의 꽃은 만남이다.

성품의 꽃은 겸손이다.

청년의 꽃은 열정이다.

중년의 꽃은 배려이다.

노년의 꽃은 건강이다.

 

꽃 중의 꽃은 바로...

청도군 육화산 여름 산행을 함께 완주한..

바로.. 건강한 우리들이다.

▲ 07시 50분 : 연석산 가는길의 미녀산.

거창 가조의 미녀산 아래로 한가로히 흘러가는 한줄기 백운과 미인의 조화가 가히 몽환적이다.

 

▲ 08시 46분 : 전북 진안 마이산 상행휴게소에서 바라 본..

 

▲ 마이산 수바위(왼쪽)와.. 암바위(오른쪽).

 

▲ 09시 21분 : 연석산주차장. 전북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2026년 08월 20일(목요일).
연석산 : 전북 완주군 동상면.

 

산행코스 : 연석산주차장-468봉-박쥐동굴-중봉-연석산-산지당-연석산주차장.

산행시작 : 연석산주차장 09시 31분.

산행종료 : 연석산주차장 15시 17분.

전체거리 : 약 7.6km.

전체시간 : 05시간 45분.

운동시간 : 04시간 21분.

휴식시간 : 01시간 24분.

누구하고 : 산이좋아산악회.

 

09 : 31  연석산주차장.

10 : 07  468봉.

11 : 50  박쥐동굴.

12 : 49  병풍바위.

13 : 13  중봉.

13 : 20  연석산.

14 : 40  산지당.

15 : 17  연석산주차장.

 

▲ 09시 34분 : 연석산주차장에서..

 

▲ 연석산 서릉을 타기위해 연석사 방향으로..

 

▲ 능소화..

연석산 산행시작 지점인 이곳.. 연동(硯洞)마을의 ‘연(硯)’자 역시 벼루를 의미하며, 연동마을 남쪽에 있는 시평(詩評)마을은 유명한 문장가와 명필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와 문장을 논하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시평’이라 불렸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하며, 옛 선비들이 ‘시회(詩會)’를 즐기던 정자터에 모정(茅亭)이 남아 있어 연석산의 유래를 뒷받침하고 있다.

 

▲ 연석산가든 맞은편의..

 

▲ 연석사 방향으로..

 

▲ 오늘의 연석산 코스는 468봉쪽으로 올랐다가 연석산에서 연동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다.

 

▲ 연석산 서릉 들머리는.. 연석사로 가는 곡각지점에서 화살표의 좌측을 보면..

 

▲ 버려진것 같은 농기계 옆 밭둑길을 따라가면 안쪽에 고추밭이 나온다.

 

▲ 농작물훼손에 주의하며 고추밭고랑을 조심스럽게 지나가면.. 감나무 아래 울타리가 열려있다.

 

 울타리를 10여m가량 따라 가면.. 연석산을 가리키는 오래된 이정표가 서 있다.

 

▲ 이정표에서부터 자비심이라고는 1도 없이 코가 닿을듯한 급경사가 이어진다. 이지역의 오늘 날씨는 구름에 낮최고 30도.. 습도 80%.. 비도 오지 않고 가뭄에 폭염으로 에어컨사용이 급증하여 과열되어 정전이라도 되었는지.. 바람은 "0"다...

 

▲ 바람끼없는 날씨에 온열질환에 주의하며 최대한 천천히 오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괜히 애꿎은 길가의 돌맹이에게도 시비를 걸어 보고...

 

▲ 척박한 급비탈에 뿌리를 박고 힘겹게 살아가는 소나무에게도 시비를 걸며..

 

▲ 10시 07분 : 468봉.

쉬엄쉬엄 올라가니 468봉 정수리에 산대장님과 선답회원님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올라온 468봉의 급오름 경사각은 완만한 오름길로 바뀌는 상수리나무 군락지에..

 

▲ 군계일학처럼.. 독야청청한 딱 한그루의 소나무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 여전히 바람끼 없는 오름길을 힘겹게 올라서니..

 

▲ 소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이 좋은..

 

▲ 쉼터에 약한 바람이지만.. 간헐적으로 불어 주는 곳에서 충분히 쉬어 간다.

 

▲ 11시 27분 : 안내도상의 쉼터전망대일것 같은 곳에서 올려다 보니..

 

▲ 가야할 연석산이 보이고.. 산속의 공기질이 좋아서 인지 소리전달이 잘되어 정상에 오른 선답자들의 말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 하산길의 연석산에서 흘러 내린 연동계곡 너머로 덕태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마이산이 두 귀를 쫑긋거리며 서있다.

 

▲ 연석산에서 서북쪽으로 흘러내리는 사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긴 대슬랩이 있다.

 

▲ 바위가 험한 연석산에 정형외과적인 수술을 했는지.. 호치키스로 꿰매 놓은 왼쪽에 동굴이 보인다.

 

▲ 11시 50분 : 박쥐동굴.

통바위굴이 아니고 위에서 떨어진 바위가 걸쳐지면서 생긴 자연동굴이다.

 

▲ 동굴안..

 

▲ 동굴안에서..

 

▲ 때 맞춰 올라온 K님을 모델로..

 

▲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병풍바위.

 

▲ 사람의 키보다 더큰 조릿대길.. 길은 뚜렷하다.

 

▲ 연석산(硯石山)은 한자 이름 그대로 벼루돌산이다. 동상면 사봉리 연동부락 동쪽에 우뚝 솟아있는 산으로.. 벼루 연(硯).. 돌 석(石)자를 써서 벼루돌산이라고 한다는데.. 어느 바위봉이 벼루돌산인지 알수가 없다..

 

▲ 가까워진 병풍바위..

 

▲ 이 바위가 벼루돌산인지..

 

▲ 연석산이 손에 잡힐듯 가까워 졌다.

 

▲ 12시 49분 : 연석산 기암.. 돌고래바위라고도 하고..

 

▲ 거북이가 입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 보는것 같다하여 거북바위라고도 하고..

 

▲ 12시 50분 : 원사봉마을 갈림길.

 

 드디어 눈높이로 다가온 중봉과 연석산..

 

 연석산에서 서봉(칠성대).. 운장산.. 구봉산으로 이어진다.

운장산 일대는.. 조선 중기 학자이자 서예가인 송익필은 서얼(庶孼) 출신이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고, 그의 뛰어난 학식과 인품으로 당시 유명했다고 한다. 탁월한 지략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선친의 정변 밀고에 연루되어 유배를 왔고, 이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운장산에서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서얼(庶孼)이란 양인(良人) 출신의 첩이 낳은 서자(庶子)와 천민 출신의 첩이 낳은 얼자(孼子)를 통칭하는 신분을 의미한다.

 

▲ 13시 13분 : 중봉.

 

▲ 13시 20분 : 연석산..

연석산은 선비들의 문방사우인 '벼루'를 상징하는 우아한 이름을 가졌지만.. 연석산 일대는 골짜기가 깊고 숲이 울창해 외부인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천혜의 요새와 같은 곳으로.. 유배의 아픔, 생존을 위한 화전, 그리고 이를 지키려던 지역 주민들의 치열한 삶이 녹아 있는 완주의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 연석산에서 다시 바라본 운장산 능선..

그리고..운장산 서봉에 얽힌 전설.. 옛날 운장산 깊은 골짜기에 작은 절이 있었다. 절에는 한 스님이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지으며 수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일곱 명의 청년이 찾아왔다. 이들은 망태를 둘러메고 있었는데 이목구비가 수려하게 잘생겼으며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 청년들은 스님에게 배가 고프다며 요기시켜 달라고 했다. 스님은 "나 먹을 밥도 없다"고 냉정히 거절했다.

 

이들은 절을 떠나 산을 올라 어느 암자에 이르렀다. 암자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선비에게 밥을 달라고 간청했다. 마침 저녁밥을 준비하던 선비는 "불공을 올린 다음 밥을 줄 테니 기다리라"며 불공을 올리려 했다. 그러자 일곱 명의 청년들은 화를 내며 "배고픈 사람의 사정도 모르면서 무슨 벼슬을 하겠냐"며 밥상을 지팡이로 내리쳤다. 선비가 놀라 쳐다보니 그들은 사라지고 공부하던 책도 없어졌다고 한다.

 

청년들은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이었으며 스님과 선비를 시험하기 위해 내려왔다가 실망해 하늘로 올라갔다. 그 후 선비는 자신의 모자람을 깨닫고 벼슬의 꿈을 버린 채 수도승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암자가 있던 곳을 칠성대라 부르게 되었다. 운장산 서봉에 얽힌 전설이다.

 

▲ 칠성대는..

조선 선조때 율곡과함께  8대 문장가로 꼽힌  구봉  송익필이 유배 생활중에  공부하였던 곳이라 하여  오성대라고도 한다.. 칠성대에는.. 숨기고 또 숨겨도 부끄러운 우리 민족의 치욕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치욕의 삼전도 굴욕의 인연이 저기에 숨어 있다.

 

저 바위 밑에는.. 조선 인조때, 평양감사였던<박엽 장군>과 그의 부하<용골대>가 젊은시절.. 무예를 수련하며 미래를 꿈꾸던 곳이다..

 

충남 서천 출신인 <용골대>는. 19세 무렵 전국을 유랑하다가.. 우연히 구봉 <송익필선생>의 눈에 띄어 무차(武借)라는 무예를 연마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숙야 박엽장군과도 상봉하는 인연을 만들었다. 그 무예수련 장소가 바로 운장산 칠성대다.

 

인조반정에 연루되어 평양감사 박엽장군(광해군과 동서간)이 사약을 받고 숙청되자.. 그의 부하였던 <용골대>는 청(靑)나라로 망명해 버린다.

 

그후.. 1636년 인조 14년인 병자년 압록강이 꽁꽁 얼어붙은 12월 초에 청나라 태종은 직접 12만의 군사로 조선을 침략하는 병자호란을 일으키고는 조선의 지리에 밝은 <용골대>를 앞세워 일사천리로 한양을 접수한다.

 

1637년 1월 30일 남산에서 사방으로 포위당한 <인조>는 삼전도(지금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 부근)에서 청 태종 앞에 친히 나아가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할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짓찧어

이마가 피범벅이 되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 하산은 연동마을 주차장으로..

 

▲ 조망이 좋은 전망바위..

 

▲ 연동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하산길.. 주차장이 멀다..

 

▲ 연동계곡은 등산로보다 한참이나 아래쪽이여서 하산길은 멀고 계곡길은 짧은 편이다.

 

▲ 연동계곡의 산지당 가는길..

 

▲ 이지역도 가물었지만 땀을 닦아 낼수있는 물은 된다. 그래도 암반수여서 시원하다.

 

▲ 씻고 환복하고..

 

▲ 샤머니즘(shamanism)적인 원시종교인 굿당 같은 곳이다.

 

▲ 산신이 아닌.. 불상을 모셔 놓았다..

 

▲ 사봉리를 지나가는 55번 지방도를 만나고..

 

▲ 15시 17분 : 연석산 산행완료..

 

▲ 램블러 정리..

 

▲ 15시 33분 : 화심순두부..

 

▲ 16시 51분 : 마이산 하행 휴게소..

 

▲ 대구 완주간 사이에 마이산 휴게소가 있어 오며가며 들리게 된다...

 

오늘도 걸을 수 있는 산이 있어 좋았고!~..

때로는 나 혼자 생각에 잠길 수 있어 좋았다!~..

 

급경사 길을 땀흘려 올라가 풍경 맛집에서 내려다 보는..

형언할 수 없는 그 맛!~.. 오늘도 나는 그 맛을 즐겼고..

 

오름길의 힘들었던 생각들은 하산주 소맥한잔에 다 날려 버렸고..

연석산의 또 다른 매력만 남았다.

2026년 08월 13일(목요일).
백악산 : 경북 상주시 화북면.

 

산행코스 : 옥양폭포주차장-물안이골-수안재-부처바위-대왕봉-덕봉-백악산-옥양폭포주차장.

산행시작 : 옥양폭포주차장 07시 36분.

산행종료 : 옥양폭포주차장 14시 00분.

전체거리 : 약 14km.

전체시간 : 06시간 23분.

운동시간 : 05시간 27분.

휴식시간 : 00시간 56분.

누구하고 : 둘리님. K님. 요산(필자).

 

07 : 36  옥양폭포주차장.

07 : 51  입석분교.

08 : 57  수안재.

09 : 23  부처바위.

10 : 00  807봉.

10 : 05  대왕봉.

10 : 39  덕봉.

11 : 13  백악산.

13 : 51  옥양폭포.

14 : 00  옥양폭포주차장.

 

▲ 07시 36분 : 옥양폭포주차장..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1리.. 날머리인 옥량폭포 입구를 확인하고.

 

▲ 32번 지방도를 따라서 화북초교 입석분교쪽으로..

 

▲ 입석교를 건너자 말자 좌측의 입석분교를 보며 물안이골 입구로 진입..

 

▲ 어모사(籞侮祠) 가선문(嘉善門)..

김령 김씨 이암공파 사당이며.. 어모장군(禦侮將軍)은 조선 시대.. 정3품 당하관의 무관 품계다.

 

▲ 입석분교에서 1.8km의 물안이골 도로를 따라 지루하게 이어지는데.. 그렇게도 서슬퍼렇게 맹위를 떨치던 폭염도 태풍영향으로 한풀 꺾이면서 열대야도 물러가고 낮은구름이 드리워 땡볕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 물안이골 도로가 거의 끝나는 지점에 나타나는 본격적인 백악산 산행 들머리다.

 

▲ 주인을 잃은 움막같은 폐가인데.. 땔나무 창고에는 다 태우지 못한 땔감이 남아 있고.. 연기를 멈춘 굴뚝이 을씨년스럽게 서있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길고 긴 물안이골이다.. 폐가에서부터 수안재 아래까지 몇차례의 개울을 건너고 나서야..

 

▲ 수안재 오름길이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산사태로 쓸려나간 사면길을 조심스레 지나가는데..

 

▲ 잘생긴 영지가 홀로 서있다.

 

▲ 08시 57분 : 수안재..

입석분교에서부터 바람끼 1도 없는 물안이골을 따라 1시간 가량을 힘들여 수안재에 올라서니 충청북도 괴산군의 대방골에서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장난 아니게 시원하다. 완전 에어컨 바람 수준이다.

 

▲ 09시 23분 : 부처바위.. 라는데..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부처님스럽지가 않다..

 

▲ 부처바위에서 서북쪽으로 바라본 낙영산군.. 그너머에는 도명산인데 무영봉에 가리웠다. 암골미가 뛰어난 낙영산은 충북 괴산의 명산으로 명나라 의종 황제가 세수를 하는데.. 대얏물 속에 이 산의 그림자가 비치었다하여 낙영산이라 불리웠다는 산이다.

 

▲ 낙영산에서 이어지는 가령산 뒤편으로는 사랑산에서 칠보산까지 병풍처럼 도열해 있다.

 

▲ 내려다 보이는 부처바위..

 

▲ 당겨 보아도 부처님의 모습은 안보인다.

 

▲ 침니바위 갈림길..

 

▲ 침니바위에 자라는 소나무.. 경이롭다.

 

▲ 침니(Chimney)란..암벽에 난 굴뚝 모양의 세로로 갈라진 큰 균열로 바위와 바위사이로 사람의 몸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이 있는 것을 말한다.

 

▲ 10시 00분 : 807m봉... 여기에서 약 5분 거리의..

 

▲ 대왕봉에 다녀오기로 한다.

 

▲ 10시 05분 : 대왕봉.

 

▲ 대왕봉에서 바라본 속리산..

 

 가야할 백악산 방향.. 지난번에 다녀온 도장산이 반갑다며 눈도장을 찍는다..

 

▲ 대왕봉 돌탑 오석비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대한민국의 번영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대왕봉에 오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전국의 돌을 모아 위 소망을 기원하는 이 탑을 쌓았습니다. 산 사랑을 위한 실천 부탁드립니다. 2010년 7월 3일. DS25 산악회(덕성초교 25회).

 

▲ 덕봉 오름길에 뒤돌아본 물안이골.. 위에서 보아도 길고 멀다.

 

▲ 위쪽에 덕봉으로 가는 밧줄이 걸려 있다.

 

▲ 덕봉 가는길이 쉽지는 않다.. 밧줄을 잡고 왼쪽으로 몸을 옮겨서 올라가면 쉽게 오를수 있다.

 

▲ 10시 39분 : 덕봉.

 

▲ 덕봉은..

돔형바위라고도 하는데.. 국토지리 정보원 지도에는 주추리봉(822m)으로 나온다. 360도 조망이 가능하다.

 

▲ 사통팔달.. 덕봉의 풍경 맛집 메뉴는 사방으로 막힘이 없다. 만경창파에 한 점 돌섬바위를 향해 첩첩이 몰려드는 파도처럼 끝도 없는 산야가 겹겹이 둘렀고 곳곳에 우뚝우뚝한 대야산.. 군자산.. 속리의 문장대와 저마다의 봉우리속에 감춰진 기암괴석들은.. 언제 쌓아 올려놓고 천 번을 쓰다듬고 만번을 씻어 어루만지며 기다린 세월이 얼마인지 만상을 연상케 한다.

 

▲ 가야할 백악산..

 

▲ 밧줄이 없다면 상당히 어려운 구간이다.

 

▲ 내려와서 본 모습.. 마치.. 거대한 맘모스의 귀밑으로 지나 오는것 같다.

 

▲ 뒤 돌아본 덕봉.

백악산 오름길의 전망좋은곳에서 뒤 돌아본 덕봉과 언제 말라 죽었는지 하얀 뼈만 남은 앙상한 고사목도 함께.. 한참을 그렇게 바라 본다.

 

▲ 11시 13분 : 백악산(857m).

 

 백악산(857m)은..

속리산 문장대에서 북쪽 화양동 계곡 방면으로 이어진 긴 능선 위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 경북 상주와 충북 괴산의 도계를 이루고 있어며.. 규모는 작지만 화강암으로 된 여러 형상의 바위들이 웅장미를 보여주며 자연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백악산은 백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라 해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 신선대라 이름지어도 좋을만한 바위다.

 

▲ 멀리 희양산이 보여서 당겨본다.

 

▲ 사진으로는 감이 오지 않지만.. 상당히 까탈스런 백악산 내림길이다.

 

▲ 안부에서 헬기장이 있는 832m봉 오름길이 오늘의 오름구간중에 가장 힘들었던 오름길이다.

 

▲ 뒤 돌아 본 백악산.. 덕봉 능선..

 

▲ 12시 06분 : 헬기장이 있는 832m봉.

 

▲ 오늘 하산길 중에 가장 까탈스런 마사토 내림길이다.

 

▲ 12시 43분 : 솥뚜껑바위.

안내문을 보니 예전에 "강아지 바위"로 불리웠었는데.. 솥뚜껑바위라는 이름은 국립공원 페이스북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름이라고 되어있다.

 

 솥뚜껑바위를 지나서 부터는 편안한 능선길을 이어 가다가..

 

▲ 여기서 능선길을 버리고 옥양골로 내려 간다.

 

▲ 보굴암(寶窟岩)과 약사여래불. 계단 끝부분에 석굴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보굴암에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만한 흥미진진한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1873년 고종때 서유영(徐有英)이 지은 야담집(野談集)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전해지는 얘기다. 의령 현감을 지낸 서유영은 암행어사의 무고로 유배됐다가 풀려나 고향인 충남 금산에 돌아와서 이 책을 썼다. 말년의 외로움을 달래고 소일을 위해 일생 동안 보고 들은 141편의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역사와 설화를 버무려 쓴 이야기들이 제법 흥미진진하다.

 

세조에게는 공주 하나가 있었다. 어질고 덕이 많아서 단종이 물러나고 김종서와 육신(六臣)이 죽자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먹지 않았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능이 파헤쳐져 옮겨지는 일이 발생하자 공주는 울면서 옳지 못한 처사라고 끊임없이 아버지 세조에게 말했다. 세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분노했다. 이에 정희대비가 유모를 불러 보석을 주면서 공주를 데리고 도망가도록 했다.  충북 보은에 도착한 공주와 유모는 한 청년을 만나 함께 살게 된다. 그렇게 1년 정도 사는 동안 청년과 공주는 사랑하게 되었다. 둘은 혼인을 하면서 서로의 신분을 밝히게 된다.

 

 보굴암(寶窟岩)과 약사여래불.

 

공주는 세조의 딸이고.. 청년은 김종서의 손자였다. 세조는 말년에 사찰을 다니며 참회했는데... 하루는 공주가 사는 마을을 지나다 자신을 몹시 닮은 아이를 만났다고 한다. 그 아이를 따라가 공주를 만난 임금이 크게 기뻐하면서 가마를 보낼 테니 서울로 오라고 했다. 다음날 승지를 보냈지만 공주는 이미 가족과 함께 도망치고 없었다. 야사에 의하면 세조는 자신의 딸이 숨어 살고 있음을 알았지만 모른 척하고 족보에서 이름을 지웠다고 한다. 더 이상 천륜을 저버리지 않고 딸의 행복을 바라는 아비의 마음이었을까. 그들이 숨어 살던 굴은 결국 원수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굴이라 하여 '보배로운 굴'인 '보굴'이라 불리게 되었다. 세조가 죽은 뒤 그들은 보굴암을 떠났다.

 

세조가 죽은 지 400여 년이 지난 뒤에 딱 한 편 설화집에 나온 이야기를 사실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부 꾸며낸 이야기라는 확증도 없다. 세조에게 딸 둘이 있었는데.. 둘째 딸 의숙공주만 기록으로 남아 있고..  큰딸의 행적은 묘연하니 말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보굴암은 소원을 성취하는 기도처로 이름이 났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는 김만성 스님이 보굴암 아래 초암(草庵)을 짓고 암울하고 흉흉하던 시절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기도처로 삼았다. 초암은 1970년경에 미등록 사찰이라 하여 철거 되었다.

 

▲ 보굴암 약사여래불과 마주보는 약사전..

 

▲ 보굴암 아래 석벽에 새겨진 석문동.. 석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 석문사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중요무형문화재 74호인 성재(誠齋) 신응수(申鷹秀) 대목장이 지었다고 한다. 그는 숭례문 해체와 보수작업을 했고 광화문 복원을 총지휘한 장인이다. 석문사는 극락세계의 주인인 아미타불을 모신 기도 도량으로 1990년 이굉용(李宏龍)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어느날 스님의 꿈에 가사를 곱게 입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났다고 한다. 스님은 부처님과 함께 황금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길을 달리고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다가 비탈길을 내려가 어느 들판에 섰다. 부처님이 손수 땅을 파헤치자 땅속에서 청룡과 황룡이 불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때 부처님이 손가락으로 흰 바위로 뒤덮인 산을 가리켰는데 그곳에 거북 모양의 큰 바위산이 보였다. 바위산으로 향하자 온통 바위투성이인 산에서 길이 열렸다.

 

부처님이 어느 바위 굴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팔베개를 한 채 모로 누우니 총과 칼로 무장한 수많은 군인들이 나타나 부처님을 호위했다. 굴 아래에는 작은 초가 한 채가 있었는데 노인 내외가 키질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기 위해 쌀을 손질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눈처럼 흰쌀을 수레에 싣고 굴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스님은 꿈에서 깨어났다. 이후 스님은 꿈에서 본 들판과 바위산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입석리 들판이었고.. 바위투성이 백악산과 보굴암이었다.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스님은 이곳에 절을 짓고 석문사라 했다. 석문(釋門)은 '부처님을 맞이하러 나아가는 문'이란 뜻이다...

 

 석문사 감로수.. 바위를 타고 내려온 계곡수라.. 물맛이 괜찮다.

 

▲ 옥량폭포 음각 글씨.

옥양 폭포는 상부, 중부, 하부로 나뉘며 그 상부에는 천작 돌다리라는 3m길이의 거대한 돌이 "ㄱ"자 모양으로 누워 있어서 마치.. 돌을 뚫고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신비로운 경관을 이룬다.

 

▲ 옥량폭포.

옥양골의 석문사 깊은 계곡에서 구름다리 사이로 흘러내린다. 위에 천연적으로 된 옥량(玉樑)이 있어서 아름답다. 옥량은 길이 약 20m, 넓이 2m 입석이 대들보와 같이, 또는 교량과 같이 폭포 위에 걸쳐져 있는 자연의 걸작품이다.

 

▲ 밑에서 올려다 본 옥양폭포.. 수량이 많다면 장관일텐데..

 

▲ 책바위.

 

▲ 13시 59분 : 입석리 옥양폭포 주차장.

 

▲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하는 백악산은 백개의 암봉이 솟아 있다고 해서 '백악'이라고 했다던가.. 악소리 나게.. 결코 쉽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자연이 빚어놓은 기암과 괴석의 전시관이었고.. 막힘없는 조망에.. 그 힘듦이 용서가 되고.. 뒷맛이 개운한 하루였다.

그리고.. K님의 운전 보시로.. 대구로 무사귀환..

2026년 08월 06일(목요일).
공덕산 : 경북 문경시 산북면.

 

산행코스 : 대승사주차장-반야봉-공덕산-묘봉-부부바위-안장바위-윤필암-대승사주차장.

산행시작 : 대승사주차장 07시 58분.

산행종료 : 대승사주차장 11시 52분.

전체거리 : 약 7.2km.

전체시간 : 03시간 53분.

운동시간 : 03시간 18분.

휴식시간 : 00시간 35분.

누구하고 : 둘리님. K님. 요산(필자).

 

07 : 58  대승사주차장.

08 : 48  반야봉.

09 : 10  공덕산.

09 : 55  대승봉.

10 : 27  묘봉.

10 : 44  부부바위.

10 : 59  안장바위.

11 : 21  윤필암.

11 : 52  대승사주차장.

 

▲ 07시 58분 : 대승사주차장.

오늘의 산행진로는 일주문쪽 들머리에서.. 공덕산~묘봉~윤필암~대승사로 돌아오는 시계역방향순으로 진행할 것이다.

 

▲ 공덕산 들머리.

대승사주차장에서 일주문방향으로 6~70m가량 내려오면 좌측으로 공덕산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 등로는 비교적 뚜렷하고 대승사소유 경계선인듯한 그물망을 따라 6~7분가량 올라가면...

 

▲ 시멘트포장 임도를 만난다.

 

▲ 좌측을 보면 대승사에서 올라오는 임도 위로 대승봉이 조금후에 만나자며 눈짓을 보낸다.

 

▲ 올라야 할 공덕산 길위에 스님인듯 아닌듯.. 탬플 스테이(temple stay)참가 수행자인듯 아닌듯.. 구도(求道)의 길을 걷는다..

 

▲ 임도에서 숲으로...

구도자의 뒤를 따르는 개는 대승사의 명물 안내견이다.. "공덕"이와 "사불".. 두마리의 견공(犬公)이 있는데 어느쪽인지 모르겠다.

 

▲ 임도에서 여기까지.. 바람끼라고는 1도 없더니..

 

▲ 주능선에 올라서니 산북면 대승사의 반대편쪽.. 문경시 동로면의 도둑골에서 시원한 바람이 올라온다. 그 옛날 도둑님들이 감춰두었던 바람인지.. 하여간 고마운 바람이다.

 

▲ 바람길 좋은 늘씬 빵빵한 솔그늘 아래에서 물도 마시고 쉼을 하는데..

 

▲ 언제 왔는지 명물 안내견도 자리를 잡는다.. 오늘은 오전 산행으로 도시락 준비를 안했기에 마땅하게 줄만한 먹거리가 없다.. 그런데.. 줄게 없음에 내가 왜?.. 미안해 지노..ㅎㅎ. 물이라도 한컵주니 다 마시길래... 혹시나 먹을까 하고 꼬부랑 미제 쵸코렛을 떼어주니 먹는다..

 

▲ 쉼터에서 반야봉까지는..

 

▲ 거의 오르내림이 없는 수평이동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 08시 48분 : 반야봉에 올라선다...

 

▲ 반야봉은 램블러도 인증이 없는 무명봉으로.. 다만 이정표에 반야봉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 반야봉에서 잠깐이지만.. 제법 가파른 오름짓을 하고..

 

▲ 09시 10분 : 오늘의 주봉인 공덕산이다.

 

▲ 공덕산(功德山)이라는 이름은 '공로 공(功), 덕 덕(德)'자를 써서 '공과 덕이 많은 산'이라는 뜻인데, 또 다른 이름으로는 사불산(四佛山)으로도 불리우고.. 공덕산 정상을 연화봉이라고도 한다.. 사불암전설과 관련이 있는듯 하다.

 

▲ 천주봉 삼거리에서 대승재 방향으로..

 

▲ 오늘 산행중에 유일한 데크계단인데.. 오래되어 거의 붕괴직전이다.

 

▲ 대승재.. 일명 옛고개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바로 대승사다..

 

▲ 09시 55분 : 대승봉.. 이 봉우리도 공식 인증이 없는 무명봉수준이다.

 

▲ 사불면암(윤필암) 갈림길을 지나..

 

▲ 묘봉 가기전의 전망바위에서.. 지나온 공덕산과..

 

▲ 대승사에서 올라온 반야봉능선..

 

▲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윤필암..

 

▲ 10시 27분 : 묘봉..

 

▲ 묘봉에서의 내림길은 육산길이 아닌 바위길이 묘적암까지 이어진다..

 

▲ 부부바위..

 

▲ 부부가 서로 마주 보는듯한 모습이다.

 

▲ 안장 바위.

 

▲ 내려온 묘봉 능선..

 

▲ 대승사 산내 암자인 묘적암은..

나옹화상이 기거했다는 천년고찰이다.. 나옹혜근은 1347년(충목왕 3)에 중국 원(元)의 연경에서 지공(指空)선사의 법을 계승하였다. 공민왕 때 고려로 귀국해 회암사의 주지가 되고 왕사(王師)로 봉해졌으며 보제존자라(普濟尊者)라는 법호를 하사받았다.

 

나옹혜근은 1340년(충혜왕 1)에 대승사 묘적암의 요연(了然)스님에게 출가하였고 이런 인연으로 묘적암에는 나옹화상진영이 봉안되었다.

 

또한.. 묘적암에는 나옹화상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나옹화상께서 상추를 씻다가 보니 멀리 해인사쪽에서 불이나서 나옹선사가 상추씻던 물을 쏟자 해인사 하늘에서 상추비가 내려 불을 껏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 재미를 더한다.

 

 옛날 중국을 다녀온 나옹선사가 기념으로 심었다는 전나무숲이다.

 

▲ 대승사 마애여래 좌상.

높이 6.7m, 폭 3.7m 마애석불여래좌상으로 머리 위에 연꽃무늬를 한 뿔처럼 생긴 것이 2개 솟아 있는게 특이하고 눈길을 끈다.

 

▲ 11시 21분 : 윤필암..

윤필암이란 이름은 신라 의상대사의 이복동생인 윤필거사가 기도하던 암자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또한.. 윤필암은 청담스님의 따님이신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장으로 있는 묘엄스님의 출가지로 유명하다. 1945년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이 대승사에 계실때 속가의 아버지를 면회 온 청담스님의 딸을 성철스님이 몇날 며칠을 두고설득시켜 그해.. 단오날 이 암자에서 성철스님이 손수 가위를 들고 삭발시켰다"... 라고 한다.

 

▲ 윤필암 사불전.

 

▲ 찾았다.. 유무유 바위..

 

 유무유(有無有).

있음도 없음이요 없음도 있음이라.. "존재한다는 것은 허무한 것일 뿐"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 대승사 경내 진입.

 

▲ 대승사 청련당(靑蓮堂).

스님 또는 손님이 거처하는 공간이다.

 

▲ 대승사는...

신라 진평왕 9년(587)에 창건된 1,500년 전통사찰로..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죽령 동쪽 100리에 높은 산이 있는데.. 사면에 여래불상을 새긴 큰 돌이 붉은 비단에 싸여 하늘에서 떨어졌다. 왕이 와서 돌을 보고 근처에 절을 세워 대승사라고 하였다. 이 산을 역덕산(亦德山) 또는 사불산이라 한다’라는 내용이 전해진다.

 

▲ 대승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김천직지사의 말사다.

 

▲ 국보로 지정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다.

 

▲ 대승선원(大乘禪院)..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다.

 

▲ 대승사 불이문..

 

▲ 11시 52분 : 대승사 주차장.

 

대승사의 또다른 이야기 한토막..

조선시대 대승사는 오늘날의 코로나와 같은 일을 겪었다. 울산부사를 지낸 청대 권상일(淸臺 權相一) 선생의 <淸臺日記청대일기>에 1755년 12월 24일, 감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던 날의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거지는 물론 양반과 상놈까지 창궐하는 감염병을 피해 모조리 대승사로 모여들었고, 절에서는 이들을 각박하게 내칠 수 없어 승려들이 죽을 끓여서 먹였다고 한다. 불교를 억압하고 스님을 천하게 여겼던 조선시대라 이 기록은 고작 두어 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감동은 현 시대에 더욱 절절하게 전해진다.

 

▲ 씻고 환복하고..

 

▲ 대구에 가서 점심을 먹자고 만장일치로 합의.. 대승사 일주문을 지나 대구로 고고씽!!!~...

2026년 07월 30일(목요일).
도장산 : 경북 문경시 농암면.

 

산행코스 : 용추교주차장-심원사갈림길-651봉-도장산-명품소나무자리-742봉-심원사-쌍룡폭포-용추교주차장.

산행시작 : 용추교주차장 07시 46분.

산행종료 : 용추교주차장 13시 29분.

전체거리 : 약 9.4km.

전체시간 : 05시간 43분.

운동시간 : 04시간 41분.

휴식시간 : 01시간 01분.

누구하고 : 둘리님. K님. 요산(필자).

 

07 : 46  용추교주차장.

08 : 07  심원사갈림길.

08 : 19  능선안부.

08 : 41  651봉.

10 : 28  도장산.

11 : 20  명품소나무자리.

11 : 32  742봉(헬기장).

12 : 24  심원사.

13 : 19  쌍룡폭포.

13 : 29  용추교주차장.

 

▲ 07시 45분 : 용추교.. 경북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산86.

 

▲ 쌍룡계곡 상류쪽.. 경북상주시 화북면 방향..

경북 문경의 쌍룡계곡은 속리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이 도장산 옆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쌍룡계곡이 시작되며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계곡이다. 

 

▲ 쌍룡계곡 하류쪽의.. 문경시 농암면 방향..

오늘의 도장산 날씨는 오전에는 구름이고 오후부터 햇볕.. 낮최고 33도.. 풍속 3~4m/s다. 대구는 낮최고 37도다.

 

▲ 용추교 간이주차장에서 산행채비를 하고..

 

▲ 용추계곡 입구를 수문장인양 버티고 서있는 용바위를 지나서.. 2분가량 진행하면..

 

▲ 쌍룡폭포 이정표다.. 하산길에 들리기로 하고 심원사 방향으로..

 

▲ 씻겨 내려간 시멘트길을 보니 이지역에 폭우가 지나간 모양이다.

 

▲ 08시 07분 : 심원사 갈림길에서..

 

▲ 도장산 2.4km의 이정표를 따른다.. 오른쪽 도장산 3.2km는 심원사를 경유하는 길인데 정상까지 거의 오름길이라 쉽지않은 코스다.

 

▲ 이정표가 없는 두번째 심원사 갈림길에서도 도장산으로 직진이다.

 

▲ 두번째 삼거리에서 도장산 주능선 안부까지 바람끼 하나없이 10분정도 치고 오르는 급경사구간인데 등줄기로 비오듯 흐른다.

 

▲ 08시 19분 : 도장산 주능선 안부에 올라서니 3~4m의 바람이 에어컨 수준이다.. 땀흘린시간을 일순간에 보상 받았다.

 

▲ 오름길 내내 소나무가지 끝이 휘어질 정도로 불어주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다.. 춤추는 가지사이로 백두대간 청화산에서 흘러내린 시루봉이 반갑다. 시루봉은 25~6년전에 지나가다가 우연히 자연산 더덕 군락을 발견하여 대박을 터트렸던 추억이 있는 산이다.

 

▲ 같은 공간에서 산자와 죽은자의 멋진 앙상블(ensemble)이다.

 

▲ 칼날같은 층암절벽의 도장산 암릉은 거친듯 보이지만 우회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산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 오른쪽은 백두대간 청화산이 구름에 가리웠고 가운데는 조항산과 둔덕산이다.

 

▲ 09시 03분 : 651봉.

 

▲ 지나온 651봉..

 

▲ 동쪽은 상주시 은척면 방향이고 저기 어진가에 작약산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 경북 문경시 농암면의 다락골 일대..

 

▲ 경북 상주시 화북면의 서재골 방향..

 

▲ 789봉의 둘리님..

 

▲ 789봉에서 바라본 도장산..

 

▲ 10시 28분 : 도장산.

 

 도장산은..

행정구역상 경북 상주시 화북면과 문경시 농암면이 경계를 이루며.. 속리산 동쪽에 보물처럼 감춰진 숨어 있는 명산이다. 

도장산은 한자로 길 도(道)에 감출 장(藏)을 쓴다. ‘도가 감춰진 산’이라 그런지 산자락의 화북면 일대는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이상향 우복동(牛腹洞)이 있다.

 

▲ 얼마나 시원하게 부는지 한기를 느낄 정도의 바람을 맞으며 가방속의 간식으로 깔딱요기를 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 상주시 화북면 서재방향 이정표.. 무심코 가다보면 알바하기 십상인 갈림길이다.. 여기서 오른쪽 화북병천으로 길을 잡는다.

 

▲ 좀 헷갈리는 이정표다.. 헬기장 우복동천방향으로..

 

▲ 하산길의 심원사로 가는 능선을 눈으로 확인하고...

 

▲ 오른쪽 아래 너북동골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심원사..

 

▲ 지나온 도장산 능선..

능선의 모양새가 공자의 제자인 안자와 증자가 스승을 모시고 서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 과거의 도장산 명품소나무를 닮은.. 명품송.. 여기서 과거 속으로 사라진 도장산 명품소나무가 자리하였던 흔적을 찾아보고자 한다.

 

▲ 속리산 천왕봉이 마주 보이는 이곳에 과거.. 도장산을 대표하는 명품 소나무가 있었던 곳이다.

 

▲ 과거 속으로 사라진 도장산의 명품소나무다.. 사진은.. 2008년 3월16일 전병순씨가 촬영했다는 자료다.

수령 3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동양화 속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소나무와 가까운 형태라는 평가를 받아온 도장산 최고의 명품소나무(당시 싯가 1억원 상당)가 있던 자리인데.. 2008년 3월말에서 4월초 사이에 불법 도채로 명품 소나무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다음은 도장산 소나무 도채를 취재했던 내용이다. 

높이 2m 폭 3m의 이 소나무는 속리산의 정이품송처럼 도장산의 상징으로 많은 산악인과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나무를 캐내어 간사람들은 이모 씨 등 5명으로 이들은 2007년 6월부터 현장을 미리 답사하고 올봄에 옮겨 심으면 자생할 수 있도록 미리 큰 뿌리를 잘라내고 잔뿌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난 3월21일 D데이로 잡고 밤11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나무가 상하지 않도록 플라스틱 통으로 감싸고 비닐 끈으로 묶어서 3일에 걸쳐 산 아래로 운반한 후 주위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하여 이사짐센타  차량을 이용하여 충북 청원군 남이면 이씨 소재 농장으로 옮겨 놓은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구나 요지경인 것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경북지역 환경신문 기자 김 모 씨등 2명이 이씨를 협박하여 현금과 다른 소나무등 900여만원을 갈취한 협의를 받고 있다.(언론사 기사내용).

 

▲ 명품소나무가 있었던 자리에 도채꾼들이 심었다는 소나무 두그루다.. 그런데,, 범인도 잡았는데.. 명품 소나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도장산 명품소나무는 이모씨가  추적수사가 두려워 증거 인멸 방책으로  불태웠다고 주장 하였으나 충북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국내 재벌들의 정원 또는 국외(일본 등)로 밀반출했을 가는성을 두고 계속 수사를 하였으나 결국은 명품소나무의 행방을 찾지는 못하고 수사가 종결되었으며.. 도둑놈 이모씨는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고 한다. 집행유예 이유가 걸작이다. 판결의 이유인즉.. 소나무가격상당을 변상했으며.. 반성을 하고 있고.. 원래 명품소나무가 있던 자리에 그 도둑놈들이 다른 소나무를 심었다는 이유다. 이게 도대체 집행유예 이유가 되는가 말이다..

 

▲ 화북중학교 갈림길..

 

▲ 상주시 화북면

조선시대 초의 정감록에는 난리와 역병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로서 사람이 살만한 10곳의 지역을 십승지(十勝地)라 하였는데 상주시 화북면도 그러한 곳이었다.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은 1751년 지리책 택리지의 편찬을 마치면서 이 지역을 소의 뱃속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곳이라 하여 ‘우복동천’(牛腹洞天)으로 칭하였다고 한다...

 

▲ 11시 33분 : 724봉 헬기장.

 

▲ 내림길의 날카로운 바위길이 까칠하지만 구름과 바람이 더위를 잊게하기에 거친길도 용서가 되는 하산길이다..

 

▲ 우복동(우복마을).

하산길 왼편으로 화북면 용유리 일대... 예로부터 이 지역의 형태가 소의 내장 같이 생겼다 하여 우복마을이라 했다 한다.

 

▲ 12시 24분 : 심원사.

 

▲ 심원사 대웅전.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태종무열왕 7년 (66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도장암이라 했는데 도반인 의상조사. 윤필대사가 함께 수행하며 용왕의 아들을 가르쳤다는 전설이 있다. 1958년 대화재로 전소했으나 1964년 이후 후진스님들이 법당. 요사채. 산신각을 중창했으며 2016년 대웅전을 중창했다. 심원사에는 옛날 윤필과 의상 두 대사가 청화산 기슭 용추 속의 용왕 아들인 동자승에 글을 가르친 후 동자승의 간청으로 용추 속 용궁으로 안내되어 용왕으로부터 극진한 예우와 함께  병증, 월겸, 월부, 요령 등의 선물을 받고 돌아왔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 심원사 일주문..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천년고찰 답지 않은 수수한 일주문이다.

 

▲ 심원사 아래 계곡길을 따라 3~4분 가량 내려가면..

 

▲ 심원폭포..

 

▲ 쌍룡폭포를 다녀온다.

 

▲ 쌍룡폭포와 선녀탕.

 

▲ 당겨 본 쌍룡폭포.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양쪽으로 용을 닮은 두 개의 기암이 하류 쪽으로 엎드린 듯 자리하고 있는데 좌측에 자리한 바위가 암룡이고.. 오른쪽에 자리한 바위가 숫룡이라고 한다.

 

▲ 다시 용바위를 지나서 5~6분 거리의 용추교 주차장에서 산행을 완료한다.

 

▲ 36~7도를 오르 내리는 대구의 무더위를 피해 도착한 문경의 도장산에는 구름우산이 햇살을 가려주었고 산행 내내 불어주는 바람덕분에 피서산행이 되었다..

2026년 07월 16일(목요일).
빈계산/금수봉/도덕봉 : 대전광역시 유성구.

 

산행코스 : 수통골공영주차장-빈계산-금수봉-자티고개-도덕봉-수통골공영주차장.

산행시작 : 수통골공영주차장 10시 09분.

산행종료 : 수통골공영주차장 15시 17분.

전체거리 : 약 9.5km.

전체시간 : 05시간 08분.

운동시간 : 04시간 01분.

휴식시간 : 01시간 06분.

누구하고 : 산이좋아산악회.

 

10 : 09  수통골공영주차장.

11 : 11  빈계산.

12 : 03  금수봉.

12 : 58  자티고개.

13 : 44  가리울삼거리.

14 : 01  도덕봉.

15 : 17  수통골공영주차장.

 

▲ 10시 08분 : 수통골 화산천..

대전광역시 유성구 계산동.. 수통골공영주차장 입구.

수통골 지명 유래는..도덕봉과 금수봉과 빈계산 사이로 흘러내리는 골짜기로 도덕봉 아래에서 의상대사가 수도한 수통굴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는 설과... 길고 크게 물이 통하는 골짜기라고 해서 수통골 이라 부른다고 하는 두가지 설이 있다.

 

▲ 화산천변에서 단체 샷.

수통골을 찾아온 대구의 산이좋아산악회 회원님들은 계룡의 정기 많이 받으시고 온몸의 기(氣)들이 물이 흐르듯 소통되어 스트레스는 골짜기에 흘리시고 몸은 강건하게 복된 하루들 되시기 바랍니다.

 

▲ 공영주차장 상부에서 좌측으로는 빈계산 들머리이고 직진하면 도덕봉 들머리로 이어진다..

 

▲ 10시 16분 : 빈계산 들머리.

우리는 시계방향으로 빈계산을 선답하고 금수봉 찍고 도덕봉으로 하산하는 환종주 산행을 그려보면서 첫계단을 밟는다.

 

▲ 빈계산 지킴터를 지나자 말자.

 

▲ 자비심이라고는 1도 없이 급한 오름이 시작된다. 다행인것은 똑같이 규격화된 높이의 계단이 아니고 자연석의 높낮이에 따라 놓여 있어서 내 보폭에 맞는 오름짓을 할수 있어서 좋다.

 

▲ 들머리 출발 10여분만에 주능선에 올라서고.. 여기서부터 빈계산까지는 크고 작은 세개의 봉우리를 오르게 된다.

 

▲ 계룡산 일대의 암석은 주로 화강암 계열의 수직절리로 솟아있어서 걷기에 매우 불편하다.

 

▲ 이곳 대전시 유성구의 오늘 날씨는 종일 구름에 낮최고 30도.. 습도 85%.. 바람은 2~3m/s.. 땀이 많이 흐른다.

 

▲ 첫번째 능선봉우리를 지나..

 

▲ 안부지점에서 수통골에서 올라오는 골바람이 시원하다.

 

▲ 다시 바람길이 좋은 두번째 봉우리를 지나고..

 

▲ 세번째 봉우리를 올라서니..

 

▲ 막아놓았던 커텐을 펼치듯 금수봉이 조망되는 전망대다..

 

▲ 마지막으로 오르게 될 도덕봉과 눈인사를 나누고...

▲ 수통골의 유래가 되었으며 의상대사가 수련하였다는 도덕봉 아래의 "수통굴"의 위치를 가늠해 본다. 수통굴은 굴속에 또다른 굴이 있고 그 속에서 샘물이 나와서 수련을 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이라는 수통굴이다.. 한번 꼭 가보고 싶어지는 굴이다..

 

▲ 11시 11분 : 빈계산(牝鷄山).

산의 모양이 암탉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여지도서.. 호서읍지.. 조선지지자료 등의 옛 기록에는 분계산(分鷄山)으로 대동지지에는 분계산(分界山)이라 적혀있다. 일명.. 빙게산이라고도 불리우는 빈계산은 옛적 마한 54국의 하나인 신흔국(臣釁國, 신첩국: 臣疊國)이 있었던 곳으로 전한다.

 

▲ 4인 벙개팀의 인연에서 산이좋아산악회까지 참석해 주신 K님이다.

 

▲ 빈계산 정상에서..

 

▲ K님의 얼음수박을 나누어 먹는데.. 수박향기의 달콤함에 유혹되었는지 처음보는 메뚜기가 있어 담아 본다.

 

▲ 빈계산에서의 하산길이 매우 급하다.. 데크 계단이 없다면 힘들것 같다.

 

▲ 11시 29분 : 성북동갈림길 안부..

 

▲ 갑하산에서 금병산으로 이어지는 관암지맥.

 

▲금수봉 오름길의 전망대.

 

▲ 전망대에서 뒤돌아 본 빈계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빈계산과 이곳 전망대를 연결하는 구름다리를 놓는다면 대박일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 빈계산아래 서대전 너머로 서대산이 가물 거린다.. 육안으로는 보였는데 사진으로는 희미하다.

 

▲ 12시 03분 : 금수봉(錦繡峰).

산 위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온 산이 비단을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며, 1872년지방지도에 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 오늘 환종주길에 최고의 명품길이 약 2km정도 이어진다.

 

▲ 12시 44분 : 금수봉 삼거리.

 

▲ 12시 58분 : 자티고개. 백운봉으로 갈수 있는 갈림길이다..

 

▲ 명품길에서 만난 기형 소나무..

 

▲ 기분좋게 이어지던 명품길 2km이 여기까지다.

 

▲ 아직도 도덕봉은 멀기만 한데.. 안부까지는 얼마나 더 내려갈까..

 

▲ 내림길에 멋진 쉼터가 있어 물도 마실겸.. 잠깐 주인장 행세를 한다..

 

▲ 건너편으로 도덕봉으로 올라가는 데크계단이 보이고..

 

▲ 그 길위에 둘리님과 산대장님이 보인다..

 

▲ 내려온 안부.. 생각보다 많이 내려가지는 않았다.

 

▲ 지나온 금수봉능선 그 중간에 백운봉.. 

 

▲ 여기서 빈계산 금수봉을 보니.. 조금전 출렁다리 생각이 다시 난다..

 

▲ 해서... 이렇게 그려 보았다.. 대전의 새로운 명소가 될텐데...

 

▲ 드디어 서쪽방향이 트이면서 계룡산 주봉능선이 보인다.

 

▲ 병사골에서 시작하여 남매탑까지 이어지는 장군봉 능선의 추억이 새롭다.

 

▲ 무협지속의 백학이 날아 오를것 같은 분위기다.

 

▲ 금방일줄 알았던 도덕봉은.. 아직도 두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야 만나게 된다.

 

▲ 13시 44분 : 가리울삼거리..

 

▲ 14시 01분 : 도덕봉.

옛날에 이 골짜기에 도둑이 많이 살았다 하여 '도둑골'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의상대사가 도를 닦았던 곳이라서 불리게 된 것이라고도 전하며, 마을사람들은 흑룡산으로 부른다.

 

▲ 일행들은 내려 가고 나혼자 후미를 기다리니.. 4~5분 만에 후미팀 3명이 올라온다.

 

▲ K님의 쵸코렛과.. 빈계산에서 남겨 놓았던 수박으로 4인이 잔치를 하고..

 

▲ 도덕봉 명품송 1..

 

▲ 도덕봉 명품송 2..

 

▲ 도덕봉 명품송 3..

 

▲ 도덕봉 데크전망대..

 

▲ 도덕봉에서 주차장으로 쏟아지는 능선..

 

▲ 전망대에서 다시 빈계산과 금수봉을 보며.. 출렁다리 그림을 그려 본다..ㅎㅎ~..

 

▲ 도덕봉 명품송 4..

 

▲ 삐죽삐죽 도덕봉의 거친 바위길이 걸음을 더디게 한다...

 

▲ 15시 05분 : 드디어 도덕봉 하산이다..

 

 수통골 계곡수에 씻고 싶은데... 약속한 하산이 바쁘다..

 

▲ 국립공원 박물관.

 

▲ 계룡산 구역을 벗어나..

 

▲ 15시 17분 : 수통골공영주차장 산행종료.

 

▲ 수통골 환종주.. 아주 바람직한 속도였다.

 

▲ 어제가 초복이었던 삼복더위..

지구가 뜨거워지는 시작점에서 찾은 수통골..

 

세상에 늘~ 봄날 같은 날은 없다.

세상이 내가 그려오던 모습과는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오늘 역시도.. 내게 주어진 수통골의 시간은 값진 선물이었다.

2026년 07월 12일(일).

촛대바위/해신당공원 : 강원도 삼척시.

 

트레킹코스 : 해신당주차장-해신당-어촌민속전시장-덕배의집-바다품기전망대-애랑이집-해신당주차장.

트레킹시작 : 해신당주차장 14시 24분.

트레킹종료 : 해신당주차장 15시 30분.

누 구 하 고 : 대구청봉산악회.

 

▲ 14시 24분 : 해신당공원.

이곳은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남근숭배사상(男根崇拜思想)이 있는 곳으로 어촌민속전시관과 성 민속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곳이다..

 

▲ 공원 입구에 있는 수령 500여년의 향나무를 지나서..

 

▲ 오른쪽으로 먼저 간다.. 해신당공원에 왔으니 애랑이의 영정을 모신 곳이기에 먼저 만나보기 위해서다.

 

▲ 해신당..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녹아 있는 <애랑>이라는 처녀를 모신 사당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 심한 봄 가뭄으로 산천은 헐벗고 백성들이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시절에 , 어촌 마을인 신남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당장 봄철을 넘기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어느날 마을에 사는 처녀가 장래를 약속한 이웃 총각에게 바닷나물을 뜯으러 돌섬(마을 북동쪽 약 1㎞ 지점의 바다 가운데 있는 작은섬)에 가겠으니 배를 태원 달라고 부탁했다.

 

총각은 돌섬에 처녀를 내려 주면서 한낮이 되면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한후 뭍으로 나와 밭일에 열중하였고 처녀는 바닷나물을 열심히 뜯다 보니 어느덧 해가 중천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에 높은 파도가 일기 시작해 저녁이 지나가고 밤이 와도 바다를 뒤집을 듯한 심한 풍랑 때문에 총각은 약속대로 배를 띄울 수없어 안타까운 심정으로 밤을 지새웠고 다음날 새벽녘 겨우 파도가 잦았으나 돌섬에서 처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처녀가 죽은 뒤부터 신남리 마을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바다에 나간 마을 어부들이 풍랑을 만나 집으로 돌아 오지 못하는 사고가 자주 생겼다. 온 마을에 애쓰다 죽은 처녀의 원혼 때문이라는 뒤숭숭한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있던 어느 날 , 총각은 꿈에 산발을 하고 나타나 원혼을 달래어 달라는 처녀의 하소연을 듣고 다음날 당장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신수(神樹)에 매달아 놓고 처녀의 혼을 위로해 제사를 올렸는데 그 후 부터 신기하게 총각에게는 고기가 많이 잡혔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은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이 죽은 처녀의 원혼 때문이라 믿고 나무로 남근을 깎아 해신당 신수(神樹) 에 매달고 마을공동으로 치성을 올리게 되었으며 돌섬의 이름을 높은 파도에 휩쓸리면서 살려고 애를 쓰다 죽었다 하여 "애 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매년 2차례(음력 정월 보름날과 음력 10월 첫 午日) 해신당에 제사를 올리는데 이 행사는 마을의 전통적인 민속행사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 해신당 애랑 영정.. 그런데..사진을 자세히 보니 애랑의 치마속에 사진을 찍고 있는 내가 들어가 있다...ㅎㅎ~..

 

▲ 이크~~!!.. 이게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 ㅎㅎ~.. 고문님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아는갑따.... 그래도 내사마 모리거따..ㅋㅋㅋ~..

 

▲ 삼척어촌민속전시관으로 들어가기전에..

 

▲ 전시관 아래에 있는 덕배와 애랑이바위를 먼저 조망한다. 애랑이가 해초를 뜯어러 갔다가 풍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애바위(애랑바위)를 바라보며 애절하게 절규하는 덕배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 어촌 민속 전시관으로...

 

▲ 바다에서 삶을 이어가는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여러가지 금기사항이 많다.

 

▲ 동해 별신굿.

 

▲ 전시관에서 살짝 보이는 애랑바위를 바라보고..

 

▲ 덕배의 집으로 간다.

 

▲ 덕배의 집은.. 미성년자 관람불가다..

 

▲ 덕배의 집은.. 19금구역이라 해서.. 실눈을 뜨고 보기는 분명히 무언가를 본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안난다..ㅎㅎ~.

 

▲ 덕배의 집을 나와서 남근십이지신상으로..

 

▲ 남근 십이지신상(男根 十二支神像).

 

▲ 자기 띠 찾기 놀이(범)..

 

▲ 자기 띠 찾기 놀이(양)..

 

▲ 송진주의라는 표지판을 보고 송진이 있는지 없는지 자세히도 찾는 중이다..ㅎㅎ~..

 

▲ 바다품기전망대에서..

 

▲ 드넓은 동해를 품고.

 

▲ 해학의 웃음도 품고... 여기서 되돌아 간다.

 

▲ 남근 십이지신상(男根 十二支神像).

 

▲ 전국에 다니다 보면 남근(男根) 숭배에 얽힌 조형물을 볼수가 있다. 이는 농경사회에서 부터 남자일꾼(?)을 얻기위한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이를 숭배하는 민속문화로 발전하여 전래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나 삼척 해신당 공원의 남근조각들은 처음 보면 민망하면서도 솔직한 웃음부터 나온다.. 단순히 자극적인 게 아니라 민속 신앙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에 생각보다 우리들의 삶속에 녹아있는 깊이가 있는 공간이다. 공원측에서 만든 의자쉼터 하나에도 그냥 웃음으로 넘기자.

 

▲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는 어부들.

옛날 신남마을에 결혼을 약속한 처녀(애랑), 총각(덕배)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해초작업을 위해 총각은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에 처녀를 태워주고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돌아간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파도와 심한 강풍이 불어 처녀는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이후 이 마을에는 처녀의 원혼 때문에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어느 날 한 어부가 고기가 잡히지 않자 바다를 향해 오줌을 쌌더니 풍어를 이루어 돌아온다. 이후 이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이 되면 나무로 실물모양의 남근을 깎아 처녀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 애랑이네 집.

 

▲ 작품명.. <황혼>..

화가.. 조각가.. 건축가.. 시인 이었던 이탈리아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 공원을 나가기 전에 애랑바위를 다시 바라보고..

 

▲ 애랑이를 10배 줌으로 당겨보고..

 

▲ 애랑이를 30배 줌으로 당겨보았다..

 

▲ 해신당공원을 나서며...

한(恨)이란 것은 마음의 결박이라고 했다.. 소우주인 마음을 열면 전 우주를 담을 수 있지만 닫아 버리면 바늘 하나 꽂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렇게 꽁꽁 얼어 붙어 있는 마음이 바로 한(恨)인 것이다. 그 얼어 붙은 마음을 녹이는 것은 온기다. 그 온기란 바로 사랑이요.. 자비심이다..

 

덕배와 애랑이의 사랑을 통해서..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망자 영혼의 한(恨)을 풀어주고.. 저승으로 편안히 떠나라는 의미에서 행해지는 “굿”을 하고 사당을 짓고.. 매년 제례를 통해 숭배하는 것도 결국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을 위한 삶의 가르침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빨간 등대가 이쁜 신남항 바로 옆에...

 

▲ 하산주 장소.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것이다... 이보다 더 좋을수 없는 최고의 하산주 뒷풀이 장소다.

 

▲ 포장되어 있는 이지역 어부들의 어구는 건더리지 말고 사용후 바닥은 깨끗하게 치워주면 될것이다...

 

▲ 통큰 사람들의 하산주 뒤풀이.. 쇠고기.. 넉넉하고 푸집하다..

 

▲ 푸짐함에는 일품이 많이 든다.. 몸을 사리지 않는 집행부 보시의 손길로 담아주는 국수한그릇..

 

▲ 국수 한젓가락에 쇠고기 한점 얹어 놓으니 기분좋게 목젖을 타고 넘어 간다. 잘 먹고 마셨습니다.

 

▲ 뒷정리도 아니온듯..

 

▲ 신남항 해신당공원을 나와서 대구로..

 

▲ 포항휴게소.. 처음 이용해 본다.

 

▲ 동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고난속에서도 해학(諧謔)으로 풀어내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초곡촛대바위길과..

해신당공원의 덕배와 애랑이의 사랑이야기에서 시사하는바가 컸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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