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목).

인왕산 : 서울시 종로구.

 

산행코스 : 세검정삼거리-석파정별당-홍지문-기차바위-인왕산-범바위-해골바위-선바위-국사당-서대문형무소-독립문.

산행시작 : 세검정삼거리  12시 06분.

산행종료 : 독립문  15시 10분.

전체거리 : 약5.74km.

전체시간 : 03시간 03분.

운동시간 : 02시간 29분.

휴식시간 : 00시간 34분.

 

12 : 06  세검정삼거리.

12 : 08  석파정별당.

12 : 15  홍지문.

13 : 06  기차바위.

13 : 52  인왕산.

14 : 13  범바위.

14 : 31  해골바위.

14 : 36  선바위.

14 : 38  국사당.

14 : 56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5 : 10  독립문.

 

 12시 06분 : 세검정삼거리..

백호트레킹의 오늘 일정은.. 북촌한옥마을~경복궁~인사동문화거리다..

얼마전에 둘러본 곳이기에 생략하고..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인왕산을 오랜만에 올라보고자 하여 일행과 둘이서

택시를 타고 세검정삼거리에 내려서.. 인왕산 들머리로 바로 갈려다가 가까운곳에 있는 석파정 별당을 찾아간다.

 

 12시 08분 : 석파정별당(관람객들이 있는집).. 아래쪽 석파랑 한식당(옛이름은 문서루다).

석파정별당은.. 여기서 도보로 약1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더 알려진 "석파정"에 딸린 사랑채였다.

 

1958년 서예가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손재형(孫在馨)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예가이며... 일본에 건너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찾아온 인물이다.

석파랑은 소전의 집념이 지어낸 건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집을 짓기 위해 30년동안 전국 곳곳을 수소문해 목재와 기와

등을 모았다. 운현궁.. 선희궁.. 칠궁.. 이완용의 별장 등의 자재들이다. 덕수궁 돌담이 철거될 때는 트럭 30대 분을 옮겨

오기도 했다. 그 자취들을 모아 1963년부터 6년에 걸쳐 건축했다.

 

아래쪽 석파랑 한식당(옛이름은 문서루다).

문서루(석파랑) 또한 예사 한옥이 아니다. 순정효황후 윤 씨의 옥인동 생가를 옮겨왔다. 당시 중국에서 들여온 호벽(胡壁)

재현했고 입구에는 신라와 백제의 와당을 붙여 품위를 더했다. 덕분에 옛 한옥의 기품이 그대로 살았다.

 

1981년에 손재형이 세상을 뜨고 석파랑은 1993년 새로운 주인을 만나 한정식집으로 문을 열었다. 내부는 음식점으로 쓰기

위해 최소한만 바꿨다. 주로 궁중요리와 전통 한정식을 낸다. 우리나라의 전통주도 맛볼 수 있다. 원래 문서루와 석파정

별당 그리고 맞은편 한옥의 세 채로 이루어졌다. 현재는 음식점으로 쓰이는 석파랑(문서루)과 석파정 별당 두채만 석파랑

의 소유다... 맞은편 한옥은 소유주가 다르다.

 

▲ 부암동 부침바위.

종로구 부암동 134번지 길 가에 있던 높이 2m의 큰 바위로서, 이 바위에 돌을 붙이면 옥동자를 얻는다는 전설로 수많은

여인들이 정성껏 돌을 붙여놓고 절을 하였다고 전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부암동의 유래가 되었으나, 도로 확장으로 바위는 없어졌다.

 

▲ 인왕산 들머리로 가는 길 건너에 홍지문이 보인다..

 

▲ 홍지문.

홍지문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한 탕춘대성의 출입문으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하며 홍지문에 연결된 탕춘대성은

서쪽에 있어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원래 탕춘대성이 있는 세검정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군사상 중요한지역이었다.

 

홍지문(弘智門)이라는 편액은 숙종의 친필로 문루에 달았는데.. 1921년에 주저앉아 방치되었던 것을 1977년 7월에 서울

특별시 도성복원위원회에서 홍지문과 오간대수문, 그리고 주변 성곽 280m를 포함하여 복원하였으며..

이때 홍지문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로 새겨졌다.

 

12시 15분 : 인왕산 들머리.

 

▲ 탕춘대성.

홍지문들머리에서 약 1분가량 올라온곳에서 탕춘대성벽과 만난다..

 

탕춘대성은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 이후 수도 방위를 위하여 1719년에 완성한 성곽으로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

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1715년(숙종 41)에 서울의 도성과 북한산성의 방어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홍지문(弘智門),

오간수문(五間水門), 탕춘대성(蕩春臺城)을 건립하였다. 홍지문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한 탕춘대성의 출입문으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하며 홍지문에 연결된 탕춘대성은 서쪽에 있어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이 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으로 약 100 여m가 되는 산봉우리에 연산군의 놀이터였던

탕춘대가 있었으므로 그 이름을 딴 것이다.

 

▲ 향로봉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비봉능선.

 

▲ 오래전 산매화가 고울때 올랐던 족두리봉에서의 봄날을 되돌아 본다.

 

▲ 시원하게 달려가는 내부순환로 아래에 옥천암 보도각 지붕이 보인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7호인 마애보살좌상(磨崖菩薩坐像)으로...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이 존상

앞에서 기원했으며 흥선대원군의 부인도 아들 고종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말이 전해 오는 서울의 이름난 불교 존상이다.

 

▲ 다시 걷고싶어지는 비봉능선이다.

올가을이 가기전에 수유동 빨래골에서 칼바위능선을 경유하여 비봉에서 이북5도청으로 내려올 계획을 세워본다..

 

▲ 시대의 산물.. 일개소대는 들어갈만한 벙커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 홍지문쪽 등산로는 상대적으로 등산객이 적어서 그런지 설치한지 꽤나 오래된 계단의 난간기둥이 5개중에 하나는

흔들거리고 잘못 짚어면 낙상일것 같아서 난간대를 잡지 않고 조심조심 올라간다.

 

▲ 청와대 개방으로 연계하여 한번 더 올랐던 북악산..

 

▲ 인왕산 산불..

2023년 4월 2일 11시 53분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이어서 12시 10분..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북악산에서도 연쇄적으로 화재가 발생했었다.

 

▲ 불에탄 나무들 사이로 기차바위가 보인다. 기차바위는 일명 백련봉이라고도 불리운다.

 

▲ 산불의 흔적은 여기까지..

 

▲ 기차바위 입구..

 

13시 06분 : 기차바위.

 

▲ 기차바위에서...

인왕산은 서울의 중심에 솟아있으며 높지는 않지만 산세는 웅장하다.

북쪽자락에 있는 부암동은 무계동이라 불리던 곳으로 중국의 무릉도원에 버금갈정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던 곳이다.

1968년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인왕산 옆 산길로 질러왔다. 그 사건 뒤로 인왕산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3년 2월 24일부터오를 수 있게 됐다.

 

13시 09분 : 기차바위 정수리..

 

▲ 기차바위 내림길에 만난 해골바위..

 

13시 14분 : 기차바위 아래에서.. 백호트레킹에서 마련해주신 찰밥도시락으로 늦은 점찍기..

 

▲ 낙월봉 오름..

 

▲ 낙월봉에서 바라본 기차바위와 그 너머로 비봉능선..

 

13시 45분 : 낙월봉..

낙월봉은..현 지도에는 표기되지 않고 고지도에만 표기되어 있다.

 

▲ 인왕산 치마바위의 전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 이후의 일이다. 반정을 일으킨 공신들은 신씨왕비를 몰아내고 인왕산계곡으로 내쫓았다.

폐비의 친정아버지인 신수근이 정적이라는 이유로 그 딸 역시 국모로 모실 수 없다는 뜻에서다. 당시 신씨의 나이는 겨우

스무살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열세살 어린 나이에 진성대군의 아내가 되어 7년 만에 폐비가 되었으니 그 여린 마음에

상처가 얼마나 깊었겠는가.

 

▲ 중종과 폐비 신씨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중종을 왕위에 앉힌 자들은 자신들이 살해한 신수근의 딸 단경왕후의 보복이 두려워서 중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경

왕후를 폐위시켰다. 왕후는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옛 거처로 쫓겨났다. 단경왕후는 궁을 나오면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인왕산 바위에 붉은 치마를 걸어두겠다는 약속을 중종에게 남겼고, 이를 죽을 때까지 지켰다.

 

아침이면 인왕산 바위에 치마를 널어놓고 저녁이면 걷는 일을 51년 동안이나 계속하였다. 중종 또한 부인을 잊지 못해

경회루에 올라 부인이 있는 인왕산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인왕산 치마바위에 전해지는 슬프고도 애잔한 전설은 단순히

큰 바위로만 보일 수 있는 치마바위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 인왕산 정상으로..

 

13시 52분 : 인왕산 정상 표지목.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 인왕산 삼각점이 있는 실질적인 정상 바위.

"인왕산을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 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조선 시대에는 호랑이로 매우 유명한 산이었다.

지리산이나 금강산이 훨씬 더 웅장해서 호랑이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야산 격인 이 인왕산의 호랑이가 더 유명하다.

 

정조 대왕 때만 해도 호랑이가 서울에 흔했고, 이들 호랑이가 민가는 물론 궁궐까지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인 듯...

1868년, 북악산 등에서 잡은 호랑이 다섯 마리를 마지막으로 도성 내 호랑이는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인왕산(仁王山)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있는 해발고도 338.2 m의 바위산이다.

한양도성의 산으로는 북악산(백악산)보다 3.8 m 낮은 2위이며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에서 "우백호"를 담당하는

산이다. 이는 경복궁 정전에서 남쪽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인왕산이 있기에 붙여진 것이다.

 

▲ 인왕산(仁王山) 경계점.

 

▲ 내려다 본 치마바위..

 

▲ 남산타워..

 

▲ 하산은 독립문공원방향으로..

 

▲ 옥개석.

성곽의 최상단에 놓이며 유사시에 적병이 올라오면 떨어뜨려서 적군을 막는 역할도 하였다.

 

▲ 인왕산의 형제산격인 안산..

 

▲ 인왕산 범바위와 곡장 전경.. 곡장은 둥글게 구부러진 성곽을 일컽는 말로 곡성이라고도 한다.

 

 

▲ 범바위 가는길에 뒤돌아 본 인왕산..

 

14시 12분 : 인왕산 범바위.

 

▲ 범바위에서 바라본 곡장.. 지금은 군인들이 철수를 하여 시설물만 흉물스헙게 그냥 남아 있다.

 

▲ 인왕산 치마바위..

 

▲ 국사당과 선바위 가는길.. 성벽을 넘는다. 성벽을따라 바로 내려가면 사직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 모자바위..

 

▲ 얼굴바위.

 

▲ 당겨 본 얼굴바위.

 

▲ 국사당 가는길은 무속행위가 일반화 되어 있다..

 

▲ 해골바위(장군바위).

 

▲ 해골바위로 올라가 본다..

 

▲ 모자바위와 달팽이바위.

 

▲ 여기서보니 얼굴바위가 아니다.

 

▲ 이정표가 가르키는 선바위 쪽으로...

 

▲ 선 바위 뒤쪽.

 

▲ 선 바위.

선바위의 모습이 마치 스님이 장삼(長衫)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 참선한다는 "선(禪)" 자를 따서 선바위라고 불렀다.

 

▲ 선 바위에 관한 전설..

옛 문헌에는 조선 태조 때 한양 천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한양 도성을 쌓을 때 선바위를 무학대사는 도성 안에 포함하자고 하고, 정도전은 성 밖에 두자고 하였다.

이때 정도전이 말하기를 "선바위를 도성 안에 들이면 불교가 성하고 밖에 두면 유교가 흥할 것이라" 하니 태조가 정도전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였다.. 라는 것이다.

이에 무학대사가 탄식하며 "이제부터 승도들은 선비들의 책 보따리나 지고 따라다닐 것이다." 라고 탄식 하였다고 한다.

 

▲ 14시 38분 : 국사당은...서울의 신을 모시는 신당이다.

인왕사와 인접해 있어서 불당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으나, 국사당의 분류는 불교가 아닌 민간신앙으로 등록되어 있다.

1973년 중요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정식 명칭은 인왕산 국사당(仁王山國師堂)이다.

 

한국 무속신앙에서 신을 모셔놓고 굿을 하는 데 편하도록 민가와 좀 떨어진 곳에 짓는 굿당 중 하나로, 중요민속문화재

제28호(1973년 7월 16일 지정)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국사당(國師堂)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인왕산 국사당(仁王山 國師堂)은 원래 남산(南山)의 산신(山神)인 목멱대왕(木覓大王)을 모시는 산신당(山神堂)인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신사(神士)를 지으면서 국사당을 인왕산 현재 장소로 옮겨왔다.

 

본래 국사당은 서울 남산 꼭대기(지금은 팔각정이 위치)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러나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국사당이 자기들의 신사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면서

결국 지금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이전 장소를 인왕산 기슭으로 택한 것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그곳에서 기도하던

자리라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얘기에는 이성계가 젊었을때 비가 내려 노모와 딸이 사는 한 허름한 집에 잠시 신세

를 졌다. 잠을 자는데 대들보 세개가 등에 얹히는(무학대사가 해몽해준 꿈) 그 꿈을 꾸었다. 집주인 할머니가 그 꿈을 듣고

왕이 될 것이라는 해몽을 해주었다. 그때 마침 옆에 자고 있던 딸이 그것을 듣고 깨 이 손님이 왕이 되냐고 떠들었다.

당황한 이성계에게 노파가 딸의 뺨을 때리라 시켰고 이성계는 엉겁결에 따귀를 쳤는데 딸은 죽고 말았다.

 

그리고 노모가 하는 말이 액땜했으니 오늘 일은 발설하지 말라며 내보냈다. 훗날 이성계가 그 집을 찾아보니 흔적도 없고,

노모와 딸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운게 지금의 국사당이라고 한다.

 

국사당 주차장을 지나서..

 

▲ 인왕사 일주문..

인왕사는 조선 개국과 함께 1393년에 무학대사가 세운 사찰이며.. 봉은사에서 갈라져 나온 말사로 규정하고 있다.

절의 체계도 복잡한데 지주가 4명이며 해마다 번갈아가면서 맡고 있다. 1910년대 이래로 여러 암자가 통합되지 않고..

제각기 독자적으로 활동하는것으로 보고 있다.

 

▲ 독립문역 쪽으로..

 

▲ 계단을 내려가서 골목길을 빠져 나가서 대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 지하철 독립문역이 보이는 지점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간다.

 

▲ 뉴스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붉은 담장이다.

 

1908년 조선통감부가 의병 등 반일세력을 탄압. 수용할 목적으로 만든 감옥이다. 건물은 본래 아연판을 붙인 판자로

두른 허술한 형태였다. 건립비용은 약 5만원이었고, 규모는 청사 및 부속건물 80평, 감방 및 부속건물 480평이었다.

원래 수용인원은 500여 명이었는데, 이후 증. 개축을 반복하여 1938년의 수용인원은 2,763명이었다.

1988년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 아직도 찾고있는 끝나지 않은 아픈 역사의 발굴현장이다.

 

▲ 3.1독립선언기념탑.

 

▲ 독립문(사적 제32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다. 높이 14.28m, 너비 11.48m. 모화관 정문인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운 것이다.

1896년(건양 1) 독립협회 발의로 3,825원을 모금해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을 거행하고 이듬해 11월 20일 완공했다.


45×30㎝크기의 화강암 1,850개를 쌓아 만든 이 문은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내부 왼쪽에 옥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으며, 꼭대기에는 난간을 둘렀다. 이맛돌 위에 앞뒤로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 쓰고 그 좌우에 태극기를

조각한 현판석을 달아놓았다.

 

독일 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했으며, 당시 서양건축의 조영경험이 있던 목수 심의석이 공사감독을 맡아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만들었다.

 

▲ 인왕산 산행을 마치고.. 경복궁주차장으로..

 

▲ 광화문쪽으로..

 

서울의 랜드마크중의 하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어면서 가장 많이 오욕의 역사로 점철된 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광화문으로 들어가서..

 

▲ 홍례문(사적 제117호)과 북악산..

 

▲ 홍례문은..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1912년 철거되었다가, 문민 정부에서 옛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복원 공사를 시작

하여 2001년 10월 26일에 완공했다.

 

▲ 용성문과 인왕산..

 

▲ 협생문을 나서면.. 바로 경복궁주차장이다.

 

15시 52분 : 경복궁주차장.

 

18시 01분 : 천안시 목천IC에서 멀지 않은 무지개식당.

 

▲ 된장찌개정식.. 제육볶음..

음식은 본인 입맛에 맞으면 딱이다.. 내입에 완전맞춤이다.

백호 회장님.. 총무님 끝내줍니다.

2024년 07월 04일(목).

칼봉산 : 경기도 가평군.

 

산행코스 : 칼봉산자연휴양림입구-경반분교캠핑장-경반사-회목고개-칼봉산-890봉-내곡분교터-용추계곡-용추종점.

산행시작 : 칼봉산자연휴양림입구 11시 13분.

산행종료 : 용추버스종점정류장 17시 40분.

전체거리 : 약13.56km.

전체시간 : 06시간 26분.

운동시간 : 05시간 47분.

휴식시간 : 00시간 39분.

 

11 : 13  칼봉산자연휴양림입구.

11 : 57 경반분교(폐교).

12 : 19  경반사.

13 : 21  회목고개.

14 : 22  칼봉산.

15 : 01  890봉.

16 : 09  내곡분교터.

17 : 40  용추버스종점정류장.

 

▲ 09시 52분 : 경기도 양평 남한강휴게소의 용문산 이미지분수대.

대구화랑산악회에서 오늘의 산행지로 찜해 놓은 경기도 가평의 칼봉산으로 가기위해 대구반월당을 06시 25분에 출발하여

숨가쁘게 달려온 화랑의 애마는 잠시 남한강휴게소에 들러 숨고르기를 한다.. 이곳의 하늘도 잔뜩 낮게 내려 와 있다.

 

 11시 13분 : 경기도 가평군 칼봉산자연휴양림 입구 도착.

 

▲ 관리실입구에서 정면으로는 휴양림으로 가는 길이고..

 

▲ 경반계곡들머리는 입구 좌측의 계곡으로 내려 간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1차.

휴양림에서 경반사까지 예닐곱번의 계류를 건너야 되기에 "수륙양용형 전천후 신발" 이 필요하다..

모두들 나름의 방법으로 건너 가고.. 나는.. 준비해간 나이키 샌들로 갈아 신기로 한다.

 

▲ 경반천을 건너가면 좌측으로... 백학동 한석봉 마을이리는 표시석과 백학서당이라는 비석이 보인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가인 한석봉이 초대 가평군수로 부임한 인연으로 가평의 여러곳에 그의 업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 마을표시석을 지나면 왼쪽으로 펜션과 민박, 식당이 들어서 있는 "백학동 한석봉마을"이 있다.

NGO는...정부와는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조직된 비영리단체다.

재활사업장으로... 코로나 이전에는 활성화 되었던 경반계곡에서 매점 운영을 하였던 모양이다.

 

▲ 어릴때 배웠던 명필가 한석봉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나는 떡을 썰테니 너는 글씨를 쓰거라~"의 주인공인 한석봉(韓石峯)선생은 조선의 서예가이다. 

본명은 한호(韓濩)지만 호인 석봉이 더 유명한 탓에 현대에는 한석봉이라고 불린다.

본관은 청주, 자는 경홍(景洪). 호는 석봉(石峯).. 청사(淸沙)이다. 조선 서예계에서 추사 김정희와 함께 유명한 서예가다.

 

▲ 한석봉어머니의 떡집도 보이고...

 

차가 다니는지.. 제법 넓은 흙길을 산책하듯 따라가다 보면..

 

▲ 좌측으로는 경반천이 시원한 굉음을 울리며 흐르고..

 

▲ 뜬금없이 김삿갓선생이.. 세상편한 얼굴로 한마디 하신다..

"이 보시게.. 무에그리 바쁘신가.. 무더위에 쉬엄쉬엄 가시게나"~ 하신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2차.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물이.. 워낙 맑아 잠시 발을 담그고 쉬어가면 좋으련만.. 갈길이 바쁘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3차.

 

▲ 경반계곡(境盤溪谷)은

매봉과 깃대봉 칼봉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수락폭포를 만들고 경반리를 지나.. 보납산 부근에서 가평천과 합류 한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4차.

 

▲ 길위에까지도 넘치는 물을 밟으며...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5차에서.

수륙양용형 샌들을 신고... 보무도 당당히 조여사님을 추월 한다..ㅎㅎ~~..

 

11시 57분 : 경반분교(폐교)는...

캠핑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전기와 수도시설이 없는 "오지 캠핑장"으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곳이다.

 

▲ 경반분교터의 텅빈 운동장..

경반분교에 80여 명의 학생이 다닐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사람이 떠나갔다. 사람이 떠난 자리엔 잣나무가

심어졌다. 마을은 점점 작아졌고 아이들도 사라져 1982년에는 학생이 3명뿐이었다. 그렇게 경반분교는 폐교되었다.

 

카페로 변한 경반분교..

경반분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캠핑붐"과 TV프로그램 덕택이다.

경반분교에서 하룻밤을 지낸 캠퍼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나고

2009년 경반분교에서 촬영한 "1박2일"이 방영된 뒤 명소가 되었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6차.

 

▲ 경반마을..

이곳은 원래 화전민 마을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학교 인근에 100여 가구가 살았다.

1980년대 초 지금의 주인 박모씨가 폐교된 경반분교를 매입했다고 한다.

 

▲ 코로나 이전에 한때나마 호황을 누렸을 기자재들이 보인다...

 

▲ 각 지역의 산악회 시그널 걸이대도 보이고..

 

▲ 첩첩산중 오지의 마을분위기가 "수호지의 양산박"으로 들어가는 분위기다...

 

▲ 오미자..

 

12시 03분 : 경반마을 쉼터에서..

경반천 건너기는 끝났으리라는 생각으로.. 샌들을 벗고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등산화로 갈아 신는다.

 

▲ 경반마을을 지나고.. 바리케이드가 쳐진 산불대비용 임도갈림길을 지난다.

 

▲ 깊고 깊은 경반 계곡..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는 말이 있다.

가평은 예부터 "경기도 속의 강원도"라 불렸을 정도로 높고 깊은 산이 많다. 여름철에 더위를 식히기 좋은 계곡도 무척

많은데, 그중 하나가 칼봉산(899m)과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경반계곡이라고 할수 있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7차.

 

▲ 경반폭포.. 또는 용궁폭포.

 

▲ "경반(鏡磐)"이란..

‘맑은 물이 너른 반석 위로 거울처럼 비추며 흐른다..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거울처럼 맑은 계곡물에 얼굴을

비추며 몸치장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계곡의 작은 마을은 "경반리"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2시 17분 : 경반사.

 

▲ 여기서 잠깐 생각을 정리한다.. 회목고개 4.2km는 임도로 가는 길이다.

첫째 생각... 수락폭포를 보고 여기까지 돌아 와서 회목고개로 직진하느냐?...

둘째 생각... 수락폭포를 경유하지 않고 4.2km의 임도를 따라서 회목고개로 가느냐?..

셋째 생각... 수락폭포를 포기하고 여기서 회목고개로 직진하느냐?..

 

결론은 셋째 안으로 결정하고 여기서 회목고개로 직진한다.

 

▲ 경반사 대웅전 앞을 지나서...

 

▲ 산신각이라는 명패가 보이는... 조립식 판넬건물 뒤로 올라간다.

 

▲ 오름길 처음에는 험상궂은 바윗길 같지만... 바위들이 서로서로 발디딤이 좋은 길을 양보하며 내어 준다.

 

▲ 오름길은 가파르지도 않고 쉬엄쉬엄 오른만큼 고도가 높아지는 착한길이다...

 

▲ 회목고개 800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뼈대는 멀쩡한데 아랫도리는 부실했던지 힘에 부친듯 누워 있다..

 

▲ 회목고개 400m 전.. 약 2.4km를 앞질러온 셈이다.

 

▲ 임도를 가로지르면 회목고개로 가는 길의 흔적이 뚜렷하다.

 

▲ 편안한 숲길에서.. "나 회목고개 등산로요" 라고 하며.. 이름표를 들이댄다.

 

▲ 북한에서 보내온 풍선의 물건은 분명 아닌것 같고.. 소형 궤도차가 잠자고 있다.

 

▲ 멧돼지 차단용 철문... 아프리카 돼지열병 방지를 위해 설치한 멧돼지출몰 차단용이다.

등산객들이 자유롭게 여닫을수 있으며... 마지막 사람이 잘 닫아두어야 한다.

 

▲ 회목고개 20m 전...

 

▲ 바닥에 자동차바퀴자국이 있는걸 보니.. 가까운 시간에 차량이 지난간듯 하다.

 

13시 21분 : 회목고개..

 

▲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시간에 속을 달래줄 장소를 찾는데.. 차량 한대가 내려온다..

 

▲ 매봉에서 연인산으로 갈수 있는 능선길이다.

 

▲ 칼봉산으로 가는 철문..

역시나 돼지열병방지 철문을 열고 간다.

 

▲ "덕다리버섯" 같기도 하고..

 

14시 22분 : 칼봉산.. 조망이 전혀 없다.

칼봉산은.. 가평읍 승안리와 경반리의 경계에 솟은 연인산 줄기로 주능선은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암릉으로 이루어져

칼봉은 본래 "칼봉산"으로 불렸으나 1999년 3월 가평군 지명위원회에서 가평군을 찾는 등산인 및 관광객 등에게 좀 더

정확한 관광 안내도 제공 및 관내 명산을 알리는 취지로 이름을 변경했다. 우목봉을 "연인산". 전패봉을 "우정봉".

전패고개를 "우정고개". 구나무산을 '‘노적봉" 등으로 하고... 칼봉산도 "산" 자를 뺀 '칼봉'’으로 했다.

그러나... 정상석도 카카오맵이나.. 네이버 지도에는 바뀐곳이 한곳도 없다.

 

▲ 언제나처럼 짝지부터 담아주고 나서..

 

▲ 회목고개에서부터 함께 하게 된 화랑의 꽃님들도 담아본다. 언제나 산 열정이 대단하신 분들이다.

 

▲ 오늘 공석중인 산대장님의 빈자리를 최선으로 채워주시는 원더풀님..

 

▲ 늘~~... 맛깔스런 댓글로 응원해 주시는 육구당님..

 

▲ 기어히 같이 찍자는 회원님.. 감사합니다...

 

▲ 나도 인증샷하나 남기고..

 

▲ 오늘 칼봉정상에서 화랑의 인연님들속에 나도 인연이 된다..

 

▲ 정상석 뒤에 숨어 있는.. 옛 정상석.. 정상석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우리나라 산의.. 정상석은 크고 삐까뻔쩍이어야 된다.. 왜?.. 그럴까..

 

▲ 하산은.. 용추버스종점 방향으로..

 

▲ 15시 01분 : 890봉.. 용추계곡의 내곡분교로 내려 가는 분기점이다.

 

▲ 여기서.. 내곡분교(폐교)내림길은 이름도 알수없는 킬봉이 2.3km를 가르키고 있다.

 

▲ 890봉에서.. 내곡분교(폐교)내림길은 산객의 흔적이 비교적 적은 곳이다.

 

▲ 내곡분교(폐교)내려가는 능선길은 선두팀이 달아 놓은 시그널을 따라서  가는데 별다른 위험 구간은 없고..

가파른 낙엽구간에서는 엉덩이 도장을 조심하며 천천히 내려 가면 안전하게.. 내려갈수 있는 길이다..

 

계곡의 물흐름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걸보니.. 용추계곡에 근접하였는가 보다..

숲속에 용도를 알수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보인다. 귀곡산장은 아닐터이고..

 

16시 08분 : 용추계곡 연인산 가는길과 접속.. 890봉 분기점에서 1시간 7분이 소요 되었다.

 

▲ 내곡분교(폐교) 운동장..

 

 

▲ 연리목.. 뿌리가 다른 나무의 줄기가 이어져 한나무로 자라는 현상이라고 설명은 잘해 놓았는데..

억지춘향의 연리목이다... 이것은 두 나무가 가까이에서 자라다보니 몸집이 커지면서 서로 닿아 있을 뿐이다.

 

16시 11분 : 용추계곡 징검다리. 이제부터가 문제다..

용추버스종점정류장까지 4.7km다.. 주어진 하산시간은 오후5시까지다. 50분만에 주파할수 있을지.. 땀도 씻어야 하는데..

 

▲ 징검다리를 건너와서 뒤돌아보니.. 용추계곡에는 11개의 징검다리가 있는모양이다.. 그 중에 다섯번째라고..

 

▲ 위도.. 옆도 돌아볼 시간도 없다.. 내몸을 정류장까지 옮겨 놓으려면.. 오로지 걷는길 밖에 없다..

 

▲ 두번째 만나는 징검다리...

 

▲ 용추계곡(龍墜溪谷)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승안리 칼봉산(900m)에서 발원하여 옥녀봉을 감싸듯이 흐르는 계곡이다.

24㎞에 걸쳐 와룡추..무송암..고실탄..일사대..추월담..권유연..농완계 등 9개의 절경지가 있어 옥계9곡 또는 용추9곡이라고

도 한다. 용추구곡은 제1곡인 와룡추(용추폭포)부터, 작은 수영장 같은 제2곡인 무송암, 여울과 같은 물결이 소리내어

흐르는 제3곡 탁영뢰와 제4곡 고슬탄, 깊이감과 서늘함을 주는 제5곡 일사대, 잠잠한 웅덩이에 비치는 달빛을 감상하는

제6곡 추월담, 푸르고 붉은 빛을 내는 단풍나무 계곡인 제7곡 청풍협을 지나 깊은 연못에 엎드린 거북이의 형상을 하는

제8곡 귀유연, 마지막 제9곡인 한적한 농원계에서 마무리된다.

 

▲ 가을이면.. 용추계곡(龍墜溪谷)암벽의 돌단풍이 노랗게 물들면 너무나 아름다울것 같다.

 

15시 15분 : 출렁다리..

 

▲ 용추계곡 제9곡 농원계..

희롱할 농.. 물흐를 원.. 계곡의 흐르는 물이 마치 기암괴석을 희롱하는것 같다..라는 표현이다.

 

용추계곡 제8곡 귀유연..

그대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다..

 

▲ 들어가는 순간... 내가 거북이가 되어 차갑게 굳어 버릴것 만 같다.

 

 

▲ 용추계곡 제7곡.. 청풍협의 포토존(photo zone)..

 

 

▲ 용추계곡 세번째 징검다리..

 

▲ 용추버스종점까지 2.9km.. 이정표를 보니 마음은 더 바빠 진다.

 

 

▲ 용추계곡 자연이 그린 그림..

 

 

▲ 고슬탄을 지나서.. 큰 바위가 막아주는.. 나만의 멋진 자리를 만났다.. 높은 습도에 흠뻑 젖은 땀을 씻어 낸다.

 

▲ 용추계곡 제3곡.. 탁영뢰 .. 중국의 형이.. 동생의 조선을 귀경 왔다는 이바구다..

여기에도 사대주의 냄새가 난다.. 그래도 조선의 단군부인 용녀에게 혼쭐이 났다니 쬐매 낫네~. ㅎㅎ~.

 

▲ 용추계곡의 재난대비 마이크를 보니 혀 짧은 동네 이장님의 "동민 여러분!~" 이라는 개그가 생각난다.. ㅎㅎ~..

 

17시 35분용추버스종점까지 0.3km.. 8분거리다.. 용추계곡 길이.. 경기 둘레길과도 연계가 되는 모양이다.

 

▲ 이제..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종점 정류장이다.

 

▲ 기가막힌 타이밍이다.. 용추버스종점 정류장에 들어서니 화랑의 애마가.. 막 올라오고 있다.

 

▲ 17시 40분 : 용추버스종점.. 산행종료.

 

▲ 전체거리 13.56km를.. 시간당 2.3km/h의 양호한 걸음이다.

 

▲ 18시 02분삽다리 수자네로..

 

▲ 양푼이생고기 김치찌개..

 

▲ 밋깔스런 개그도 섞어가며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는 덕장회장님의 건배로 하루의 피로가 가신다..

 

▲ 19시 36분 : 남한강 양평대교위에서..

 

칼봉산 능선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흐르는 경반계곡과 용추계곡은

몽유도원(夢遊桃源)의 길이었고 선계(仙界)같은 풍광은 선택받은 선물이였다.

 

장마도 잠시 틈새를 내어준 덕분에 먼길에도 복받은 산행길이 되었고

돌아갈때에는 잘 다녀 가라며 남한강 저편으로 내려 앉는 노을이 너무나 아름답다.

2024년 06월 20일(목).

북한산국립공원 : 서울특별시.

 

산행코스 : 우이령길입구-용덕사-영봉-백운산장-백운대-숨은벽능선-밤골계곡-숨은벽폭포-북한산워터파크주차장.

산행시작 : 우이령길입구 10시 37분.

산행종료 : 워터파크주차장 17시 17분.

전체거리 : 약10.18km.

전체시간 : 06시간 40분.

운동시간 : 05시간 56분.

휴식시간 : 00시간 44분.

 

10 : 37  우이령길입구.

11 : 04  용덕사.

11 : 34  육모정고개.

12 : 26  영봉.

13 : 39  백운산장.

14 : 13  백운대.

15 : 18  숨은벽능선.

15 : 47  밤골계곡갈림길.

16 : 52  숨은벽폭포.

17 : 17  워터파크주차장.

 

▲ 10시 37분 : 우이령길입구 출발.

 

▲ 우이동 시내버스 회차로터리에서 인도를 따라가다가 산악문화허브 건물이 보이는 화살표길로 진행한다.

 

▲ 우이령길 유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와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을 잇는 우이령을 통하는 길이다.

소의 귀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에서 소귀고개(쇠귀고개), 즉 우이령(牛耳嶺) 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오봉과 상장봉 사이에 있는 이 소귀고개를 아래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두 봉우리가 마치 소의 귀처럼 보이는 데서 유래

되었다.. 우이령길은 양주와 서울을 연결하는 소로 였으나, 6·25 전쟁 당시 미군 공병대가 작전 도로로 만들면서 차량

통행이 가능해 졌다.. 6·25 전쟁 때 양주와 파주 지역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서 피난을 왔으며.. 고갯마루에는 탱크

저지용 장애물이 놓여 있다.  1968년 1·21 사태가 발생한 이후 우이령길은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다.

2009년 7월 10일 탐방객 수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우이령길이 다시 개방되었다... 총 길이는 4.46㎞이다.

 

 "산악문화 HUB" 는 우이령길 입구에 있으며... 산악인 "엄홍길" 님의 전시관이다. 입장료는 무료다..

다양한 산악체험과 산악문화, 커뮤니티가 결합된 산악문화 복합경관으로 세계최초 히말라야 16좌 등반을 성공한 엄홍길 

대장의 업적을 기리는 전시관을 운영중이며 엄홍길 대장의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산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산에 대한

정보와 문화, 다양한 체험을 남여 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용덕사 가는길의 오른쪽은 우이동유원지(먹거리 마을)다..

과거 2000년대초 까지만 해도 도봉산에서 우이동으로 내려오면 식당에서 물가에 설치한 평상과 호객용으로 틀어 놓은

확성기유행가를 한껏 틀어놓아서 골짜기가 떠들석 했었는데 이제는 조용하다.. 격세지감이다.

 

북한산 우이령길은 사전예약제로 인터넷으로 신청이 가능하다.

 

10시 54분 : 용덕사 입구에 산대장님이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6월의 산행을 끝으로 산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 마지막 행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지다.

 

오늘의 날씨는 전국이 맑음..

대구 36도.. 서울은 33도에.. 바람 2~3m/s.

 

트랭글이 알려주는 우이령 들머리의 고도는 186m다..

아직은 마을과 가까운 지역이라 바람도 없으니.. 계단을 오를때마다 움직인 만큼 이마에 땀이 맺힌다.

 

전국의 국립공원마다.. 방치되어 있는 탐방객 계수대는 얼마나 될까...

 

여기가 실질적인 우이령 백운대 코스 들머리다.

우이동계곡에서 도봉산쪽은 올라도 보고.. 내려오기도 해보았는데.. 우이동에서의 북한산길은 처음이다.

오늘 코스의 진행방향과 날머리를 숙지한다.

 

계수대에서 사유지 경계 철망을 따라 3~4분 정도 진행하면..

 

신검사(神劍寺).. 사찰이름에서부터 어딘가 무속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도 천년사찰이라 하기에 혹시나 문화재적인 작품이리도 있을까 하고 살짝 돌아가 보니 꽤나 먼것 같아서 통과다..

 

 용덕사 입구..

함께 걷던 일행들은 갔다가 다시 돌아 나외야 될것 같다며.. 그냥 지나 간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중에 보시히는 분들이 있다.. 그런분들을 위해 사찰을 통과하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고 보고 들어 간다..

 

 우람한 바위에 약사여래불이 양각 되어 있고.. 예상대로 등산로 표지도 있다.

 

 마애약사여래불..

 

 아직.. 범종각의 불사를 하지 못했는지.. 동종이 벤치에서 녹슬고 있다.

 

 마애약사여래불이 새겨진 엄청난 크기의 바위 뒷쪽 상단부의 묘한곳에..

 

▲ 홈통에 말벌집이 자리하고 있다.

 

 용덕사를 지나고 부터는... 계곡으로 이어지는 착한 초록길에..

 

 한줄기 바람이 지나간다.. 산대장님이 더위에 서둘지 말고 안전하게 진행하라며 노심초사다..

 

 오래전.. 불암산 오름길에 만났던 "코바위"를 연상케하는 바위다.

 

코바위에 올라선 조여사님.. 초암님이 안오시니 오늘은 날개를 달은듯 하십니다..ㅎ~

 

11시 34분 : 육모정 쉼터.

 

 11시 34분 : 육모정고개 쉼터.

"육모정 고개" 라는 지명은 "영봉"과 "인수봉"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합쳐지며 너른 반석을 흘러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

육모정은 반석의 서쪽 끝으로 정방형의 바위 위에 놓인 작은 육각형의 정자 였다고 하며.. 이 지역은 능성 구씨 집안의 선영

인데..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출입금지 지역이 되었으며... 이 정자가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가야할 영봉 너머로 인수봉이 잘생긴 얼굴을 자랑질 한다.

 

뒤를 돌아보면.. 상장봉과 도봉산의 오봉이 따라오고 있다..

 

도봉산 오봉을 배경으로..

산이좋아산악회 회장님도 이번달이 임기 만료라고 한다...

 

불암산 수락산을 배경으로..

2023년 3월에 구미 금오산 금오동천에서 처음으로..  산이좋아산악회와 인연을 맺고.. 현재까지 올인(all-in)하고 있다.

 

도봉산을 배경으로..

7월의 정기총회를 통해 연임하시어.. 매월 세번째 목요일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고도를 높여갈수록 백운대와 마주하는 만경대도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돌양지꽃.

꽃말은.. "순결".. "깨끗한 사랑"이다.

 

바람길이 너무 좋아.. 멍 때리고 싶은 곳이다.

 

여기가.. 한국의.. 수도인. 서울특별시민들이 사는 곳이다.. 공기의 질이 깨끗하지가 않다.

 

당겨 본 도선사 일주문..

 

12시 26분 : 영봉.. 여기서 민생고 해결..

 

영봉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뷰(view)는 가히 절경이다. 백운대가 인수봉 뒤로 살짝 숨었다.

북한산이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신라 때는 아기를 업은 모습이라 하여 부아악(負兒岳)이라 불렀고.. 고려 때는 개성에서 한양으로 오다가 멀리서 보이는

세 봉우리를 보고 삼각산(三角山)이라 불렀으며 조선 시대에는 한산(漢山)이라고도 불리다가 조선 숙종 때 삼각산을 중심

으로 산성을 쌓아 북한산성으로 명명하며 자연스럽게 삼각산의 이름이 북한산(北漢山)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인수봉(仁壽峰)은..

백제 시조인 온조(溫祚)왕이 형 비류(沸流)와 함께 올라 도읍을 정했다고 한다.

산의 형상이 어린아이를 업은 형상이라 하여 부아산(負兒山)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서울의 강북 5산은 돌산으로 되어 있다.

돌의 성분, 형성과정, 색깔도 똑같다. 옛날 같은 시대에 지상으로 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돌산도 많지만, 이곳 북한산의

돌처럼 암봉, 바위, 암릉이 웅장하고 아름답게 발달한 곳은 드물다.  백운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능선 위에 만물의

형상을 한 돌들이 무더기로 올라앉은 모습은 하나같이 기암괴석이고 주옥같이 북한산을 더욱 빛나게 한다.

무학(無學)이 아니고 누구라도 백운대에 올랐다면 조선의 수도는 한양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당겨 본..백운대와 인수봉.

 

영봉 내림길..

 

드러난 뿌리를 작은 돌들로 서낭당처럼 덮어 주었다...라는 안내판이 작은 감동을 준다..

2010년도 쯤인가.. 족두리봉에서 사모바위로 가는데.. 북한산국립공원에서 드러난 나무뿌리 덮어주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배낭에 흙 한줌씩 담아오기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때가 생각난다..

 

13시 03분 : 하루재.

하루에 오를 수 있는 고갯마루라 하여 하루재라고 불리다가 고유의 이름으로 정착된 것이라고 한다.

 

좌틀하면 백운대탐방지원센터를 경유하여 우이동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하루재 쉼터...

 

백운대로 올라가는 길...

 

인수봉에 묘한 바위가 보여서..

 

당겨 본.. 기암...

 

 13시 10분 : 북한산 산악구조대..

여기를 지나갈때만 해도 몰랐다.. 구조대분들을 힘들게 할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인수암..

오른쪽 기둥에 상중무불 불중무상(相中無佛 佛中無相)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부처의 모습을 갖춰도 형상일 뿐이요..

부처는 상이 없다. 형상에서 부처를 구할 수 없으니 형상이 아닌 것에서 찾으란 말이다. 진리가 어디 외형에 있겠는가...

 

 인수암에서 흘러내린 암반...

 

 깔딱계단을 올라서.. 뒤를 돌아보니.. 멀리 수락산이 반갑다.

 

 마지막 저 데크계단만 오르면 백운산장 쉼터인데... 발이 쉬 떨어지지 않는다.

 

 백운산장 "백운의 혼"...

이 탑은 6.25전쟁중 미아리전투에서 퇴각한 국군장교와 연락병이 서울 함락을 애통해 하면서 자결한 장교와 병사를 추모

하며 1959년에 세운 추모비인데 지속적으로 (사)한국산악회에서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13시 39분 : 백운산장... 뒤쪽으로 백운대 암장이 올려다 보인다.

백운산장은 1924년 1대 이해문씨가 터를 잡은 뒤 지난 100년 가까이 수많은 등산 애호가들과 함께하며 북한산을 지켜온

산 증인이다. 1933년에 2대 이남수씨가 석조 산장을 신축했고, 1942년 우물을 팠으며 1960년 단층 석조 건물로 확장

재건축했다... 그렇게 사랑을 받던 산장이 2019년 12월 2일 폐쇄 되었다.  폐쇄된 이유는 1992년 지붕이 불탔을 때 1998년

3대 이영구와 산악인들이 힘을 모아 2층을 통나무로 증축하면서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신축 허가를 받으면서 2017년이

되면 국가에 산장을 내놓는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북한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측은 산장 폐쇄 후 구조 보강과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새롭게 문을 열게 된 시설에는 1층은 북한산 역사관.. 문화관.. 2층은 특수 산악구조대 대기 장소로 운용하고 있다.

 

 

백운산장을 뒤로하고...

 

백운대까지 500m를 향하여...

 

 13시 48분 : 한창 뜨거운 시간이지만... 다들 잘도 올라간다..

아마도.. 백운대를 향한 열정과 등뒤로 밀어주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의 덕분일 것이다.

 

 은꿩의다리.

꽃말은... "순간의 행복"이다.

 

 13시 55분 : 백운봉암문.

원래의 산행계획은 백운대에 올랐다가 백운봉암문을 통과하여 원효봉을 경유하는 코스였으나..

 

지난.. 4월 29일에 발생한 낙석으로 북한산탐방지원센터 방향과 용암문 방향으로 출입통제다.

백운대에 올랐다가.. 숨은벽 방향으로 하산할 것이다.

 

▲ 성벽을 따라서 백운대를 향한다.

 

▲ 백운봉암문에서 약200m를 올라온 지점에서 밤골방향의 이정표가 있다.. 여기로 하산 한다.

 

▲ 백운대 오름길에 뒤돌아보면 만경대와 노적봉이 눈높이로 마주한다..

 

▲ 만경대.

만경대(萬景臺)는 백운대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는데.. 고려 우왕 원년(1375) 6월에 큰 비가 와서 이 봉우리가 무너지고

선조 30년에 이 산이 우레와 같이 소리를 내어 울었다고 한다..  그후 이곳에서 기우제와 기설제를 가끔 지냈다고 한다.

이곳에 오르면 삼라만상의 온갖 경치를 구경할 수 있으므로.. 만경대(萬景臺) 라고 하였다. 조선 초에 무학대사가 태조의

명을 받고 이 봉에 올라서서 나라를 다스릴 도읍터를 바라다 보았으므로..국망봉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 노적봉 너머로...

화룡봉. 잠룡봉. 문수봉. 나한봉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능선을 따라가면 사모바위.. 비봉.. 족두리봉으로 이어진다.

 

▲ 백운대 오름길을 올려다 보니... 우람한 바위가 "스핑크스"처럼 보인다.

 

북한산성.

북한산성은 북한산 봉우리를 연결해 돌로 쌓은 성으로 길이 11.6km이고 내부 면적은 5.3km2이다.

숙종 37년(1711년) 6개월에 완공했다. 계곡처럼 지형은 낮은 곳은 높이 쌓고 지형이 높은 곳은 낮게 쌓았다.

봉우리 정상에는 돌을 쌓지 않았다. 출입 시설로 대문 6곳, 보조 출입시설 암문 8곳, 수문 2곳을 갖추고 있다.

성곽 곳곳에 초소인 성랑 143곳을 배치했다. 성 내부에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 주둔 부대가 있었던 유영 3곳,

군사 지휘소 장대 3곳, 승병이 주둔한 승영 사찰 13곳이 있었다. 산성 축성후에 한번도 전쟁을 치루지 않았다고 한다.

 

▲ 중국 만리장성을 올라 갈때가 생각난다.

 

 백운대 암장과 인수봉..

 

14시 13분 : 북한산 백운대.

 

북한산은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총면적(도봉산 포함)은 80.669㎢다.

북한산은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 만경대(799.5m)로 조선시대에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는 최고봉 백운대(白雲臺)와 그 동쪽의 인수봉(仁壽峰), 남쪽의 만경대(萬景臺, 일명 국망봉)의 세 봉우리가 삼각형의

모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백운대에서 이어지는 원효봉 능선.. 사자봉.. 장군봉은.. 출입금지구역이다.

 

 인수봉과.. 그 너머로 도봉산.. 수락산.. 한폭의 그림이다.

 

 멀리 사모바위.. 비봉.. 족두리봉.. 저 길을 다시 걷고 싶다.

 

세계에 산은 많고.. 북한산보다 더욱 멋진 산은 셀수 없이 많다...

하지만 북한산만큼 아름다운 산이 도심 가까이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도시는 그렇게 많지 않다.

미국의 뉴욕.. 워싱턴..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러시아 모스크바.. 카나다 시드니.. 태국의 방콕 등등 수많은

세계적인 도시들은 산과는 저 멀리 물러간 허허벌판에 서 있다. 서울과 북한산이 어우러진 풍경은 세계 속의 도시 서울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로 자랑 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 북한산 백운대 836m..

14시 16분의 이시간은.. 천만의 서울특별시민들 머리위에 내가 서 있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1인이다..ㅎ~.

 

북한산 인증샷..

평일이라 너무 좋다. 공휴일이면 꿈도 못꿀 일이다... 백운대가 모처럼.. 온전히 나만의 백운대가 되었다.

 

 북한산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에 절묘하게 자리 잡은 국녕사.. 북한산 9대사찰가운데 하나다.

 

▲ 백운대에 아니온듯.. 북한산에 돌려주고.. 하산길이다.

 

▲ 백운대를 내려오며.. 숨은벽능선을 내려다 보니.. 이런이런.. 해골바위를 만나지도 않고 밤골로 내려가 버렸다..ㅠㅠ~.

 

▲ 김더덕님이 최신폰으로 담아준 사진 한컷 추가.. 감사합니다.

 

▲ 백운대 내림길에 만경대를 배경으로..

 

산을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라고 했다.

 

갈 길은 멀지만.. 풍경맛집에서 그냥 갈수가 없다..

저만치서 산이 나를 바라 보고 있지만 내마음이 그윽하고 한가 한척을 하며..

내가 산을 바라본다.

 

▲ 백운대 정상의 조여사님그룹도 담아보고..

 

▲ 오랜 산친구.. 짝지도 담아 준다..

 

▲ 백운대 오리바위.

암릉길에 마치 살아있는 오리 한 마리가 앉아있는 듯한 속칭 "오리바위"다.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난 절벽쪽에서 쉬면서 바라 보면... 몸길이 2~3m가 되는 거대한 오리 한마리가 날개를 접고 절벽

위에 앉아 쉬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특히 머리와 부리 등은 석공이 돌을 깎아 모양을 낸 듯 너무도 생생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자연의 걸작품이다.

 

▲ 오리바위가 내려다 보고 있는 계곡은 대동사를 경유하여 북한산산성지원센터로 가는 길이다.. 지금은 낙석으로 통제다.

 

▲ 백운대를 내려오다가.. 백운봉암분 200m 내려 가기전에 왼쪽으로 접어든다..

 

▲ 왼쪽의 백운대암장과...

 

▲ 오른쪽에 우뚝선 인수봉 사이로 올라가면...

 

▲ 밤골공원지킴터가 3.6km라고 알려주는 방향으로 올라간다..

 

▲ 백운대와 인수봉이 만드는 협곡으로 북한산의 숨은벽능선에 있는 바위로 일명.. "구멍바위" 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 방면의 밤골계곡에서 숨은벽능선을 지나 백운대로 가는 도중에 있다.

하나의 바위가 아니라 잇닿은 듯한 바위와 바위 틈으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사잇길을 가리킨다.

숨은벽의 암릉을 타지 않고 구멍바위를 통과하면 계곡으로 통한다.

 

▲ 협곡을 빠져 나가면... 왼쪽에 칼로 자른듯한 거대한 암괴가 위압감을 준다.

 

▲ 인수봉 암장...

 

▲ 숨은벽의 악어새바위...

 

▲ 백운대 장군봉에서 흘러내린 암릉... 곳곳에 빠져서 굴러 내려올것 같이 균열된 바위들을 보니 오싹해진다.

 

▲ 내려온 숨은벽골짜기의 내림길은 거친 바위길로.. 갱상도 말로 꽤나 상그럽다(불편하다)..

 

▲ 숨은벽능선 오름길..

 

15시 18분 : 숨은벽능선에서 바라 본.. 도봉산..

 

▲ 건너편의 숨은벽능선..

 

▲ 숨은벽의 웅장한 포스(force)에 자꾸 보아도 싫지가 않다.

 

▲ 얼마나 많은 발길에 흙이 파여.. 앙상한 뿌리만 남았을까..

 

▲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에 숨어있는 "숨은벽능선"..

명칭은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에 가려져 숨어 있는 듯 잘 보이지 않는 데서 유래하였다.

이 암릉은 경기도 고양시 효자동 방면이나 사기막골 방면에서만 제대로 보인다.

초급자도 등반할 수 있는 암릉이지만 양옆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어 주의 하여야 한다.

 

▲ 밤골로 내려가는 숨은벽 능선..

 

▲ 해골바위 직전에서.. 계곡으로 내려 가는 바람에 못 만났다.

 

 바나나 바위 또는.. 돌고래 바위에서..

 

15시 47분 : 밤골갈림길..

사기막길은 3.0km.. 밤골계곡길은 2.2km다. 누가 보아도 빠른길을 선택할 것이다.

화살표를 보면.. 범골계곡길은 "개고생하는 지옥길"이라고 낙서를 해 놓았다.. 2.2.km에는 따따블 xxx~.

순간의 선택이 숨은벽 능선을 한눈에 조망할수 있는.. 최고의 맛집인 마당바위 해골바위와도 이별이다..

 

이정표 뒷면을 보면...

가지미라.. 그냥 가지 마라..라고 한다.. 밤골계곡길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낙서를 하였을꼬..

 

 해서... 카카오앱으로 거리를 재어보니 밤골계곡길이 오히려 200m가 더 멀다.

대한민국 수도에 있는 국립공원인데.. 잘못 표기된 이정표를 빨리 수정하기를 바란다.

 

 능선길로 갔어야 되는데..

일행들 모두가 밤골로 내려가니.. 개인행동을 하기에도 그렇고 해서.. 따라 내려가니..

 

내림길은 급경사 마사토길이 미끄럽고.. 돌방구들이 제가락으로 놀고 있다..

 

16시 52분 : 숨은벽 폭포.. 가뭄에 건폭이다.

계곡으로 내려온 덕(?)에 땀을 닦고 옷도 갈아 입었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는 손을 놓아야 하는게 세상 이치다..

 

▲ 북한산둘레길과 교차되는 곳인가 보다..

 

▲ 국사당.. 근처에 점집이 있는 모양이다..

우스개 소리로.. 그 언젠가 인간이 달나라에 가서 살아도.. 그곳에 길흉화복을 비는 "점집"은 있을 것이다.

 

▲ 참나무에 핀 버섯...

 

▲ 차량이 다니는 도로에서 우측으로...

 

▲ 17시 17분 : 북한산워터파크 입구에서 산행을 종료..

 

▲ 후미팀이 내려올때까지 트랭글을 정리하고..

 

출발에 앞서 탑승자 인원을 체크하는데.. 한분이 낙오되었다고 한다..

이대장님이 발빠르게 119에 구조요청을 하여.. 고양시 소속 119.. 우이동쪽 119..  북한산 구조팀..

세팀이 위치를 파악하며 산으로 접근중이라고 한다.

산대장님의 용단으로 일단.. 구조완료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하산식 장소로 이동하고..

 

18시 02분 : 경기도 양주시 양평해장국..

여기에 회원들을 내려주고.. 산대장님과 애마는 하산지점으로 돌아간다.

 

19시 31분 : 1시간 30분이 지난후에야.. 산대장님과 애마가 돌아 온다.

구조팀이 낙오자를 찾아서 산행 출발지인 우이동쪽으로 무사히 내려 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모두 승차하라고 한다.

 

▲ 땅거미가 내려오는 도봉산 원경을 담아보고...우이동으로..

 

20시 05분 : 우이동 도착.

20시 59분 : 낙오자 무사히 탑승.

21시 04분 : 우이동 출발.

 

낙오의 원인은 길을 잘못 든 탓이었다. 

백운대에서 숨은벽 능선길을 찾지 못하였고 해질녁이니 주변에 등산객도 없었고무엇보다 중요한 휴대폰의 위치기능 사용도 할줄 몰랐다고 한다. 물과 음식도 없었던 모양이다.더 이상의 나쁜 상황은 없이.. 무사히 돌아온것에 안심이다.

 

끝까지 흐트러짐도 없이 침착하게 대응하는 산대장님에게 다시한번.. 무한 매력을 느낍니다.60개월 내내 어깨를 짓누르던 중압감을 내려 놓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겠다는 산대장님 말씀처럼..그동안 정성과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산대장님만의 날개 달린 미래를 위해 티없이 좋은 시간을 만들어 주려고..오늘의 북한산 산행은 산대장님의 마지막 액땜이었다... 라고 좋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수고하였습니다.

2024년 03월 07일(목).

운길산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산행코스 : 팔당2리마을회관-예봉산-철문봉-활공장-적갑산-운길산-절상봉-수종사-조안면보건지소.

산행시작 : 팔당2리마을회관 10시 12분.

산행종료 : 조안면보건지소 15시 40분.

전체거리 : 약 13.5km.

전체시간 : 05시간 25분.

운동시간 : 05시간 17분.

휴식시간 : 00시간 08분.

 

10 : 12  팔당2리마을회관 출발.

11 : 38  예봉산.

11 : 54  철문봉.

12 : 00  패러글라이당활공장.

12 : 17  적갑산.

12 : 53  새재고개갈림길.

13 : 42  새우젓고개.

14 : 15  운길산.

14 : 34  절상봉.

14 : 48  수종사.

15 : 40  조안면보건지소.

 

▲ 10시 12분 : 남양주시 팔당2리마을회관앞 산행출발.

 

오늘은 장거리 산행이라 대구 성서홈플에서 1시간 당겨진 06시 40분에 출발하여 문경휴게소에 도착하여서는 진눈깨비가

흩날리더니.. 경기도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소강상태를 보이며 구름사이로 간간히 햇살도 파고드는 요상한 날씨를 뚫고

숨가쁘게 달려온 화랑의 애마는 예봉산 들머리인 팔당2리마을회관에서 가쁜숨을 고르며 회원님들을 내려놓는다.

 

▲ 팔당2리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예봉산 하늘은 여전히 못된 시어미처럼 찌프리고 있지만... 비는 오지 않을것 같다.

이곳 남양주의 일기는 종일 흐리고 비 약간(-0.1mm/Hr)... 풍속 2~3m/s.. 0도~8도의 일기에보다.

 

▲ 우람한 예봉산 문패가 마을 동구밖에 덩그라니 앉아 있다..

 

▲ 10시 21분 : 예봉산(2km) 들머리... 계곡으로 직진하면 율리봉길이다.

 

▲ 들머리입구에서 7~80m.. 올라온 첫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 본격적으로 산속으로 스며들게 되고.

 

▲ 4~5분정도 더 진행하면 제멋대로 생긴 너덜길을 잠시 지나게 된다.

 

▲ 잠시 깔딱계단을 치고 오르면...

 

▲ 10시 35분 : 예봉산 지능선에 올라선다..

 

▲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되고... 추울거라는 예보에 보온에 신경써서 두꺼운 겨울옷을 입은 탓도 있지만.. 이곳지역은 물이

많은지역이라 습도가 높아서 벌써부터 등줄기에 땀이 주루룩이다.

 

▲ 잠시 땀을 훔칠 장소를 찾다보니.. 바위조망처가 보인다.

 

▲ 한강 너머로 하남시의 검단산이 눈높이로 다가온다. 검단산은 예봉산 산군을 조망하기에는 가히 환상적인 곳이다.

 

▲ 케언(cairn : 돌무더기)...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의 "케언"은 주로 방향 표시를 하기 위함인데...

한국의 케언은 초자연적인 존재인 자연신(성황당)께 가정의 무사무탈과 복을 비는 기복의 샤머니즘적인 표현이 더 크다..

 

▲ 배경이 파란 하늘색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조금은 아쉽다..

 

▲ 예봉산 명품송..

 

▲ 사진 담아주신 조여사님.. 감사합니다..

 

▲ 한강너머 하남시 뒤쪽으로 63빌딩이 희미하다..

 

▲ 예봉산 들머리인 팔당2리마을회관.

팔당(八堂)이라는 지명은 옛날 이 지역의 아래 위 마을에 8개의 사당이 있었다 하여 유래되었다.

 

▲ 축구공을 머리에 이고 있는 예봉산 기상관측소와 모노레일..

 

▲ 직녀봉과 견우봉은 두봉우리를 합쳐서 예빈산이라 하며. 산너머에는 천주교 묘지가 있고 그아래에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가 있다..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형제가 본가인 여유당에서 예빈산을 넘어 다니던 능선이다.

 

▲ 현재 우리나라의 강우레이더관측소는..

이곳 예봉산 외에도.. 소백산.. 비슬산.. 모후산.. 서대산.. 가리산.. 임진강등.. 총 7개의 관측소가 있다.

 

▲ 개방 되어 있어서 전망대로 가본다.

 

▲ 예봉산에서 내려다 보는 양수리 두물머리 풍경도 멋지다.

 

▲ 당겨본 양수리 두물머리와 남한강..

남한강은.. 강원도 태백시 금대산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북동부와 경기도 남동부를 흘러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든다.

 

▲ 북한강은..

북한의 강원도에 있는 금강군 신읍리 단발령에서 발원하여 강원특별자치도와 경기도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든다.

 

▲ 예봉산 매점.. 겨울이라 휴업중인가 보다.

 

▲ 예봉산 옛 정상석..

 

11시 38분 : 예봉산 인증.

예봉산(禮峰山)은 경기도 남양주시의 와부읍 팔당리와 조안리..진중리에 걸쳐 위치한 산이며, 한북정맥 운악산에서 천마산

을 거쳐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에 위치하는 산이다. "산을 위해 제사 지낸다" 하여 예봉산으로 이름 붙여

졌다. 마을 사람들은 "사랑산"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신령을 모시는 산이라 해서 "영산"이라고도 불린다.

 

▲ 서울시로 흘러가는 한강..

한강은 한반도를 흐르는 강들중에 가장 넓은 유역을 가지고 있고 고어로는 "아리수"라고도 한다..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합쳐진 한강은 팔당호를 지나 서울시를 거쳐 파주시에 이르러서 임진강과 합류한뒤 김포반도를 돌아 강화만에서 황해로

흘러 들어간다.

 

▲ 예봉산에서 철문봉가는 능선길이 얼음과 눈의 빙판길이다. 예봉산에서 아이젠을 장착한다.

 

▲ 철문봉 아래 억새밭..

 

11시 54분 : 철문봉..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형제가 본가인 여유당에서 집뒤 능선을 따라 여기까지 와서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하여

철문봉이라 하였다.. 라는 글이 적혀있다.

 

12시 00분 :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보니 12년전 전남 구례 오산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사성암 직전의 활공장이정표를 보고 7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왈....

어따매... 암만 공장을 지을데가 없다캐도 산꼭대기에 활 공장을 짓는다요~~.. 하신다.. ㅋㅋㅋ~..

 

▲ 같이간 회원님들이 공중부양의 자세를 취하길래...

 

▲ 양탄자도.. 빗자루도 아닌.. 스틱을 타고 마법사 여행을... ㅎㅎ~.. 멋집니다.. 일주일전에는 나도 날았었는데..ㅠㅠ..ㅋ~

 

▲ 예봉산 기상 관측소...

 

▲ 적갑산 가는길은 간간히 구름사이로 한줌 햇살과 너무나 착한.. 기분 좋은 능선길이다...

 

▲ 능선을 기준으로 좌측의 응달에는 겨울잠을 자고 있고...

햇살 받은 양달에는 봄꽃을  피우기 위한 물오름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 적갑산 직전 오름..

 

▲ 화랑의 3월 산대장님.. 멋집니다.

 

12시 18분 : 적갑산에 눈발이 날린다...

적갑산은 예봉산과 운길산 종주코스의 중간에 위치하여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옛날에는 절터가 있다고 해서 절골산..

또는 적골산으로 불렸는데 일제 강점기 부터 유래를 무시한 채 적갑산이라 기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적갑산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고.. 새재고개로 향한다.

 

▲ 심심풀이 땅콩처럼 눈발이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적갑산을 내려서먼..

 

▲ 거의 수평이동이나 다름없는 착한길이 이어지다가..

 

12시 50분 : 3.0km의 운길산 갈림길이 나온다..

앞서가는 일행들이 이길로 가지만.. 질러가는길 같아서.. 앱을 확인해보니 지름길이 맞다.

새재고개를 향해서 그냥 직진이다.

 

12시 53분 : 100여미터... 3분가량 진행하니 새재갈림길 능선이다...

 

▲ 여기서도 운길산 3.0km다.. 100m 정도 더 돌아온 셈이다.

 

▲ 사거리 갈림길..

 

천마지맥은 이 한북정맥의 운악산(934.5m)을 지나 수원산(711m)에 오르기 전 56번 국도와 22번 군도가 만나는 명덕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주금산(813.6m), 철마산(709.5m), 천마산(810.2m), 백봉(587m), 갑산(547m),

적갑산(561m), 예봉산(683.2m)을 거쳐 팔당호에 이른다. 천마지맥은 북한강 북쪽의 마지막 물막이 역할을 하며 제일 높은

천마산(810.2m)의 이름을 따 천마지맥이라 부르며 도상거리로 49.4km쯤 된다.

 

▲ 조망이 없는 봉우리는 굳이 올라갈 이유가 없다..

 

▲ 지도상 454m봉으로 짐작되는 지점에 재미있는 표지판이 있다...

봉우리 찍고 갈래? 그냥 갈래?..하고 묻길래.. 올려다 보니 조망이 없는것 같다.. 그냥 갈란다.

 

▲ 이번에는 488m봉인듯한 곳에서 또 묻는다.. 안올라 갈란다.. 하고 지름길로 직행...

 

▲ 암에 걸린 참나무가 안쓰럽다.. 열심히 운동하고 조심하고.. 다치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자..

작금의 대한민국에는 "히포크라테스 정신의 선서"는 사라진지 오래다.. 밥그릇이 먼저인 나라에 살려면 건강이 제일이다.

 

▲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운길산..

 

▲ 고목 두그루가 "나도 한땐 운길산에서 날린 나무야~"라며 춤을 추고 있다.

 

나무

▲ 한동안 착하게만 이어지던 능선이 501m봉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13시 35분 : 501m봉.

 

▲ 헐!~~.. 501봉에서 운길산을 보니.. 끝간데 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 내려간 만큼 올라가야 되는게 산이다.. 많이 내려 가지 않기를 바라며 아래로..

 

13시 42분 : 안부 도착... 생각보다 많이 내려가진 않았다..

 

▲ 이제부터 운길산 오름의 시작이다.

 

▲ 오름길에 지나온 예봉산이 아득하다... 흐려서 가시거리가 더 멀어 보인다.

 

▲ 운길산이 드디어 130m대로 가까워 졌다.

 

▲ 이런 협곡도 지나가고..

 

▲ 해남의 두륜산 가련봉 암벽길처럼.. 쇠고리발판을 조심조심..

 

▲ 운길산 전망데크..

 

▲ 운길산 전망데크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산과 골짜기를 가로질러 흐르던 두 강이 만나는 장관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광이 아니다..

 

14시 16분 : 운길산..

운길산(610m)은 서울에서 동쪽으로 40km,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양수리에서 서북쪽으로 4km 거리에 솟아 있는

산이다. 1890년(고종 27)에 지은 《수종사중수기》에는 운길로 나오고, 그보다 오래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곡산이라고

적혀 있다.

 

▲ 지나온 예봉산 능선..

 

▲ 수종사 방향으로 가다가 능선을 직진하여 절상봉에 올랐다가 수종사로 갈것이다..

 

▲ 절상봉 오름길에 뒤 돌아본 운길산...

 

 14시 34분 : 절상봉..

 

▲ 수종사 하산길에 선답자가 매달아 놓은 시그널..

 

▲ 드디어 수종사 지붕이 보이는 곳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간다..

 

▲ 수종사 가는길에 고목의 용트림이 걸작이다..

 

▲ 14시 46분 : 수종사 입구의 은행나무..

세조가 금강산구경을 마치고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길이었다.

양수리까지 오니 밤이 이슥해 쉬어 가는데 운길산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신하가 알아보니, 천년고찰 터 암굴 속에

십팔 나한상이 앉아 있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이라 했다.

세조는 이곳에 절을 복원해 수종사라 부르고 이 은행나무(500년)를 하사했다고 한다.

 

수종사와 서거정(徐居正,1420~1488)..

서거정은 수종사에 올라 “동방 사찰 가운데 제일의 경치”라 격찬 하였다. 수종사를 중창한 세조가 매우 아끼던 신하였던

당대 최고의 문장가요 시인이다. 그는 45년간의 공직생활 가운데 대제학을 23년간 지냈다. <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

<동문선>,<경국대전>등 조선을 대표하는 저술들의 편찬을 주도했고, <동인시화>,<역대연표> 등의 개인 저술과 시문집

<사가집>을 남겼다. 그가 쓴 시문(詩文)은 무려 1만여 편에 이른다는데 전하는 것이 6,000여 편이다.

 

▲ 수종사 경학원..

 

▲ 14시 48분 : 수종사 대웅보전..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439년(세종 21) 세워진 정혜옹주(貞惠翁主)의 부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459년(세조 5)에는 왕명으로 크게 중창되었다.

세조가 금강산을 구경하고 수로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던 길에 왕은 이수두(현재의 양수리)에서 1박을 하였는데, 한밤중에

종소리가 들려오므로 날이 밝자 산으로 올라갔다. 한 암혈(巖穴) 속에서 16나한(羅漢)을 발견한 왕은 굴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을 울려 마치 종소리처럼 들려온 것임을 알고, 여기에 절을 짓게 하고 수종사라 하였다. 이 때 5층의 돌계단을

쌓아 터를 닦고 절을 지어 16나한을 봉안하는 한편, 5층 석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그 뒤 퇴락한 절을 1890년(고종 27)에 혜일(慧一)이 고종에게 8,000냥을 하사받아 중창하였다.

다음해 다시 4,000냥과 금백홍사(金帛紅絲: 황금과 비단 및 홍실 등의 재물)를 시주받아 사존불(四尊佛)을 개금(改金)

하였는데, 이 때 방광(放光)이 있었다고 한다. 1939년에 태욱(泰旭)이 중수하고, 6·25전쟁 때 불타버린 뒤 1974년 주지

장혜광(張慧光)이 대웅보전(大雄寶殿) 등을 복원하였다. 1981년에 대응이 산신각. 종각 등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왼쪽부터 수종사 사리탑(보물 제2013호), 남양주 수종사 삼층석탑(보물 미지정)..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 1808호).. 가운데 삼층석탑은 연원이 불분명하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 1808호)..

팔각오층석탑에서는 금동석가좌상 등 불상 13개구가 발견됐다.. 수종사는 조선 세조5년 (1459)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석탑은 원래 사찰의 동쪽 능선에 있었으나 후대에 대웅전 옆으로 옮겼다. 1957년 해체 수리 중에 1층 탑신과 옥개석

등에서 19구의 불상과 1970년 이전 도중에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각각 발견되었는데 함께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 성종 23년(1493)에 건립되었고 인조 6년(1628)에 중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으로 건립연대가 확실하고 비교적 작은 규모임에도 안정적인 비율과 지대석에서

상륜부까지 섬세한 조각으로 인해 역사적, 학술적 가치는 물론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수종사 삼층석탑(보물 미지정)..

 

수종사 사리탑(보물 제2013호)..

수종사 사리탑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딸 정혜옹주를 추모하고자 제작한 승탑이다.

사리탑은 부처나 고승의 사리를 모셔 두는 조형물로 승탑 또는 부도라고도 한다. 금성대군 부부의 시주(施主)로 세워졌다.

건립시기가 분명하고 탑의 각 부분에 새겨진 문양이 우수하여 조선 전기의 사리탑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승탑을 만들어 옹주를 추모한 것은 당시 조선 왕실의 불교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그 가치가 높다.

 

조선후기 문인 가운데 수종사와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수종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조안면 능내리에는 정약용의 묘와 생가 여유당이 있다. 이곳에서 수종사까지는 약7.6km거리다.

다산은 14세에 수종사를 유람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의 여러 이름난 사찰을 방문하였다. 동림사..봉은사..천정암..천진암

등에서 다산은 청정한 삶을 견지하였고, 세속의 명리와 부귀공명을 멀리 하였으며, 고단한 심신을 위로 받았다.

정약용은 유난히 수종사를 좋아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아스라이 보이는 저 수종사에는

뜬 아지랑이에 기와 고랑이 분간되네

호남에는 사백 군데의 사찰이 있지만

끝내 이 높은 누각보다는 못하리!~"라는 시에는 수종사에 대한 그의 애정이 담겨있다.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수종사와 전라도 사찰을 비교했는데, 호남의 4백 곳 사찰이 수종사의

높은 누각만 못하다고 평하고 있는 것이다.

 

수종사에서 바라본 양수리 두물머리.

 

한음 이덕형(1561~1613) 선생은 산수가 빼어난 운길산을 사랑하시어 바쁜 중앙정치의 와중에도 여가를 내어 사제촌에서

수종사로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자주 걸으셨다. 수종사의 주지가 되어 사제촌(莎提村)의 한음 선생을 인사차 찾아온

덕인(德人) 스님에게 준 시에서 선생과 스님과 사제촌을 둘러싼 겨울 풍광이 그대로 드러난다.

 

운길산 스님이 사립문을 두드리네..

앞개울 얼어붙고 온 산은 백설인데

만 첩 청산에 쌍련대(雙練帶) 매었네

늘그막의 한가로움 누려봄 즉 하련만~~..

 

선생은 7년여의 임진왜란을 수습하는데 큰 공훈을 세웠으나 극심한 정쟁에서 오는 국정의 혼미에 몹시 상심하셨다.

봄날이 가는 어느 초여름 선생은 이곳 수종사를 찾아 주지 스님에게 우국충정에서 오는 자신의 괴로운 심경을 드러내는

시를 지어 주셨다.

 

 수종사 선불장.

직역하면.. 부처를 뽑는 장소란 뜻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수양하고 도를 득하면 당연히 부처가 된다는 말일 것이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 주지이며.. 다선(茶仙)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서울에 올라오면 수정사에 머물면서 마음의 스승인

정약용과 친구인 추사 김정희와 함께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신 장소로서, 차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으며,

수종사에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도 이름이 높다.

또한.. 초의선사는 다산의 아들인 유산 정학연과도 교우하며 강가에 조각배를 띄우고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예봉산에서 운길산 절상봉을 돌아서 찾아온 수종사에서.. 선현들의 흔적을 둘러보고 산문을 나선다.

 

 수종사 해탈문.

 

수종사 해탈의 문을 나와서 사바세계로...

 

수종사에서 운길산으로 직등하는 길이다..

 

 수종사 불이문(不二門)..

불이(不二)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세속과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며, 선악(善惡), 유무(有無), 깨끗함과 더러움..

등등 상대적 개념에 대한 모든 대상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다. 즉 여기부터는 불가의 세상이 아닌 사바세계다..

 

 수종사 미륵불..

 

수종사 일주문...

현판의 표기를 중국식의 우측에서 좌로 쓴 글씨가 아니고 한국식으로 좌에서 우로 표기하였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수종사 일주문을 나서니... 구름사이로 파란하늘이 보인다..

 

내려갈수록 날씨는 깨어나는데... 시멘트길은 고행의 길이다.. 무릎보호차원에서 우측의 계곡길로 탈츨한다.

 

계곡길로 들어서면... 아랫마을 진중리 주민들의 산제사를 지내는 상석이 있다.

 

조안리에서 운길산으로 오르는 계곡에 빛바랜 안내도가 있고...

 

계곡 안쪽의 독립가옥을 지나서 마을길을 따라 내려 간다.

 

또 다른 수종사길 탈출로 데크.

 

운길산역 앞길에서 체육공원쪽으로...

 

조안면 체육공원도 지나고.

 

 조안면 복지회관도 지나서 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준비한 우산을 쓰고..

 

15시 40분 : 조안면 보건지소근처에서 하산완료.

 

 13.5km... 근래에 가장 많이 걸었다. 평균속도 2.6km.. 아주 양호한 성적이다.

 

16시 45분 : 20여분간.. 후두둑 제법 내리던 비도 그치고... 두물머리에 왔다.

 

▲ 13년만에 다시 만나는 두물머리 보호수다..

7~80년대 까지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에 화장후 유골을 뿌리는 곳으로 가장 많이 나오던 수령 약450년의 느티나무다.

 

▲ 그때는 볼거리도 많았는데.. 지금은 상가로 많이 변했다.

 

화랑맨들의 단체 인증샷..

일기 고르지 못한 날씨에 "A" "B" "C"코스로 분산 되었음에도 무두가 무사 안착한 화랑맨들의 파이팅이 넘친다..

 

▲ 산행을 함께 하지 못한 짝지에게 촬영권을 선착순으로 배정하여 찰칵.. ㅎㅎ~~.

 

▲ 사진 담아 주신분 감사합니다.

 

▲ 남한강 물줄기..

강원도 태백시 검룡소의 작은샘에서 태어난 어린물이 몸집을 키워서 거대한 대하드라마를 만들었다.

 

▲ 두물머리 투어를 마치고...

 

▲ 가까운 양수리의 고강식당에서..

 

▲ 뜨끈뜨끈한 순대국밥으로 충전100%가 된다.

2023년 10월 19일(목).

사패산/도봉산/오봉/여성봉 : 서울시/양주시...

 

산행코스 : 원각사입구-사패산-도봉산-오봉-여성봉-송추2주차장산행종료.

산행시작 : 원각사 입구  10시 47분.

산행종료 : 송추2주차장  17시 01분.

전체거리 : 약 12.06km.

전체시간 : 06시간 14분.

운동시간 : 05시간 40분.

휴식시간 : 00시간 34분.

 

10 : 47  원각사입구 출발.

11 : 04  원각사.

11 : 48  사패산.

13 : 10  포대산불초소.

13 : 58  "Y" 계곡.

14 : 24  도봉산 신선대.

15 : 39  오봉.

16 : 11  여성봉.

17 : 01  송추2주차장 산행종료.

 

 10시 47분 : 북한산 국립공원 원각사 입구.

경기도 이천을 지나 하남시와 구리시를 지나 올때만 해도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사패산 들머리에 도착하니

비는 그치고.. 잔뜩 내려앉은 회색구름이 송추 하늘을 뒤덮었다..

 

▲ 간이주차장이어서 대형버스가 회차하기에는 어려운 곳인데도...

 

▲ 불편함을 감수하시고 이곳까지 태워주신 산이좋아 전용기사님께 감사드리며 사패산을 향한다.

 

▲ 북한산둘레길 13구간의 송추마을길을 따라 가다가...

 

▲ 북한산 둘레길중에서 가장 힘들다는 14구간이 시작되는 산너미길 입구를 만나는데... 우리는 사패산을 오르기 위해..

 

포장길을 따라 원각사로 올라가는 계곡에는 물이 없다.

 

11시 04분 : 원각사 대웅전.. 불사중이다.

1988년 11월 30일에 설립된.. 한국불교법륜종(韓國佛敎法輪宗) 소속이다.

고려 말의 승려인 태고(太古)보우(普愚)를 종조(宗祖)로 하고 있으며.. 경전은 <금강경(金剛經)>과 <화엄경(華嚴經)>이다.

 

▲ 원각사 배경이 되는 저 바위로 올라 사패산으로 가는길이 있다는데.. 들머리를 알수가 없다.

 

 사패산 등로는 좌불 뒤쪽의 계곡옆으로 열려있다.

 

있으나 마나한 계수대와 입산시간지정제.. 표시목을 통과하면.. 바로 위에..

 

 오른쪽으로 원각폭포인데.. 수량이 너무나 빈약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국이 그렇게도 쾌청한 하늘이었는데... 오늘은 도봉산일대에 큰 잔치가 있는 날인가 보다...

 

 엄청나게 큰 가마솥을 걸고.. 곰탕을 끓이는지.. 온산에 하얀 김이 서리기 시작한다.

 

 능선마루에 올라서니.. 곰탕이 잘 고아졌는지 더욱 진하게 우려낸 국물처럼 뽀오얀 안개구름속이다.

 

헌데.. 이일을 우짜노... 이대장님이 세번에 걸쳐 강조한 사진 15컷을 다 사용하였다...ㅎㅎ~

그러면 카메라 셔터를 닫아야 하나?... 아니다.. 더이상 사진을 안찍어면 도봉산 신령님이.. 이렇게 말씀 하실것 같다..

"도봉산이 겨우 15컷으로 커버가 되는 그런 하찮은 스케일의 볼품이 없는 산이냐"..라고 화를 내실것 같다.ㅋㅋ~...

고로... 이대장님이 도봉산 신령님으로부터 미움을 사게 할수는 없다..

 

먼거리를 달려와.. 만만찮은 산행길에 일촌광음이라도 시간을 아끼려는 산대장님의 마음을 어찌 모를까...

날씨도 꿀꿀하니 웃자고 하는 소리입니다..

 

좌측으로 사패산 250m를 다녀 온다.

 

 사패산 오름길의 슬랩구간이 습기로 매우 미끄럽다.. 비오고 흐린날은 난간을 꼭 잡고 올라 가시길..

 

 조금 이따가 만나게 될.."Y" 계곡 등정에 대비하여 사전 연습용으로 여기고.. 우회길을 버리고 일부러 올라간다.

 

11시 48분 : 사패산 정상..

뽀오얀 곰탕국물에 사패산 건더기 하나 건졌다..

여기가 멀리 도봉산 능선을 바라보는 조망이 뛰어난 곳이지만.. 심안(心眼)으로 보는 그림도 괜찮다..

사패(賜牌)란 고려 조선시대에 왕이 공을 세운 왕족이나 신하에게 땅이나 노비를 하사할때 그 소유권을 인정하는 문서다.

 

사패산(賜牌山)은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지구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산으로..백두대간 추가령지구대에서 뻗은

한북정맥이다.  내륙으로 내려오면서 백암산, 적근산, 대성산,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운악산을 이루고 도봉산에 이르기

전 사패산으로 솟아 올랐다. 사패산은 동쪽으로 수락산, 서남쪽으로 도봉산을 끼고 안골계곡과 고찰 회룡사를 안고도는

회룡계곡등수려한 자연휴식 공간들이 숲과 어우러진 산이다.

 

 바로 건너에 있는 "갓바위"도 보이지 않지만..

 

억척스레 살아 내는 사패산 명품송의 위안을 받으며...

 

▲ 맑은날 보다 더 그림이 되어주는.. 사패산과 눈맞춤하고 돌아 선다..

사패산(賜牌山)은.. 조선시대 선조의 여섯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갈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 하여

사패산으로 불리었다는 것과... 산아래에 마패를 제작하는 곳이 있어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두가지 이야기가 있다.

 

 분위기 좋고~~ 좋아.. 이정도 안개구름이라면.. 도봉산이 보여주는 운무속의 그림이 기대가 된다.

 

11시 57분 : 다시 원각사 갈림길에서 자운봉으로..

 

 사패산능선의 길좋은 곳에서는.. 5단기어로 변속하고 악셀레이터를 힘껏 밟는다.

 

12시 16분 : 일행들은 여기서 마음점찍기를 하고.. 나는 동료와 같이 최대한 고도를 높여서 밥자리를 찾는다.

 

 여기는 이미 가을이 너무익어.. 운무 속에 가을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이 따라 속도가 판이하게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시간인가 보다. 

 2023년 새해를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닷새만 지나면(24일)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 어릴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어른이 되어보니 할 일은 태산이라 늘 아쉬운 시간들이었고,

나이든 지금은 일주일이 하루같이 빨라도 너무나 빨라진 세월을 실감하며, 앞으로 자신의 마음대로 활동할수 있는 나에게

남은시간은 과연 얼마일까?... 이토록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버리니 금쪽같은 시간을 보다 더 소중하게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낙엽을 밟으며 올라 간다.

 

바위가 있어 올라가 본다..

 

연꽃의 씨방을 닮은 바위도 있고..

 

왼쪽은 달팽이를 닮은것 같고.. 오른쪽에는 사자를 닮은 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달팽이바위.

 

 짝궁댕이 바위..

 

갈라진틈새로 발자국이 보이지만..오늘같은 날은 자중함이 최고다.

성불사 갈림길을 지나오면서 회룡바위를 못보고 지나온 아쉬움을 여기서 다 날려 버리고 내려간다.

 

 사패능선 오름길에 오른쪽은 송추계곡이다... 만산홍엽이라고 부르기에는 채색이 조금부족하고..

 

 사패능선 오름길에 왼쪽의 원도봉계곡에는 낮은 백운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곳에서..

 

뒤를 돌아보니.. 조금전 올랐던 기암봉이 내려다 보이는 조망좋은 곳에서..

 

 13시 02분 : "Y" 계곡을 건널수 있게 에너지를 충전한다.

 

 포대산불감시초소...

포대능선(砲隊稜線)은 실제 대공포대가 자리하고 있던 곳이라 붙여진 암릉이다.

 

 포대능선... 예상했던대로 주능선 높은곳에 오르니 봉우리들마다 자기만의 얼굴을 내민다.

 

 망월사 갈림길.. 2009년의 여름날.. 망월사 샘믈이 그렇게 달고 시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여기서 보면 매미(?).. 같기도 한것이..

 

 이쪽에서 보면 새처럼 보이는 하트다.

 

 하트바위에서 원맨쇼를 하고..

 

지나온 포대산불초소..

 

 바위에 자연이 만든 바람구멍이 보여서.. 장난기 발동이다.

 

 동료를 모델로.. 오늘의 포토제닉상 감이다.. ㅎㅎ~..

 

 2009년 여름에 만났던 그자리의 명품송.. 날 기억 할런지.. 반갑다.

 

 올해의 단풍은 대체적으로 곱지가 않다.. 그나마 제일로 나은것 같아서..

 

지나 온 포대능선..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서로 질서를 지키며 교행하라는 것 같다.

 

 포대능선을 돌아보니.. 좌측은 경기도 양주시 송추쪽이고.. 오른쪽은 서울 도심과 가까운 의정부시다..

역시나 사람 많은곳에 곰탕도 많이 끓이는 모양이다.. 도심의 하얀김이 쉴새없이 밀려 올라온다..

 

 포대능선 끝지점의 전망대가 구름에 싸이기전에 찰칵...

 

13시 47분 : 민초샘 갈림길.. 민초샘 아래에 덕재샘이 있고. 산악인 엄홍길이 살던 집도 있다.

여기서 동료는 "Y"계곡은 위험하니 비교적 안전한 우회로로 가라 하고.. 나는 "Y"계곡으로 진행한다...

 

 주름바위.

 

 에덴동산인가?.. 그 너머로 우이능선이 지나간다.

 

 포대능선 전망대로 올라가는데..신기한 모양의 낙엽하나가 한줄기 바람을타고 나의 발앞에 살포시 내려 앉는다.

 

13시 58분 :  드디어.. "Y"계곡 입구.. Y계곡은 이른바 죽음의 계곡이라고도 하며 주말에는 안전을 위해 일방통행이다. 

 

 2009년 8월에 이어 두번째 도전이다.

 

 내려갔다가..

 

 빙~ 둘러서 올라 간다.

 

 발의 힘보다는 손아귀의 힘으로 올라간다.

 

 화랑의 총무님.. 왕짱!~~ 입니다.

 

 매우 위험하다.. 금년에도 여성 두사람이 실족사 했다고 한다.

 

 중국 황산의 몽필생화가 부러우랴..

 

 최대의 난코스 구간이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아예 없다..ㅎㅎㅎ~ 그러나.. 자만은 절대금물..

 

사람들이 이 바위를 보고 도봉산 "못난이 바위" 라고 부르더라.. 왜 그럴까?..

 

운해속의 암릉... 황홀하다... 오늘.. 도봉산 신령님께서.. 대구에서 산이좋아 팀이 온다고 멋진 그림을 보여 주실려고

곰탕을 끓였음을 아둔한 중생이 미처 알지를 못했다.. 여기 올라서서야.. 그 깊은뜻을 알았다.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니..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은하철도999를 타고 저 끝을 알수 없는 하늘속으로..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빛과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운해의 마술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한없이 바라보고 싶다.

 

왼쪽은.. 도봉산 최고봉인 자운봉.. 두번째는 신선대이다.

 

 다시 도봉산 신령님이 사시는 자운봉이 운해속에 잠기려 한다.

 

 신선대 오름길.

 

"Y"계곡을 넘고 넘어..

 

최고봉인 자운봉을 대신하여 이웃한 높이 726미터 신선대가 정상을 대신하고 있다.

 

14시 24분 : 신선대에 서니.. 감회가 새롭고.. 지금 이순간이 내생애 가장 젊은날이다.

 

도봉산 최고봉인 자운봉(紫雲峰 :740.2m) .

도봉산(道峰山)은 경기도 의정부, 양주, 그리고 서울 도봉구 경계에 자리하고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한다. 

북한산과 더불어 대표적인 바위산으로 우리나라.. 아니 세계적으로 찾는 방문객수로는 탑에 속하는 산이다. 

 

도봉산에 이런 암릉이 조성된 건 약 1억 8천만 년 전 쥐라기 즉, 공룡이 지구의 주인이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 오랜 시간을 바람과 물이 다듬고 다듬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의 신비로움에 우리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게 한다.

 

잠깐 사이에 도봉산 자운봉이 구름속으로 숨으려고 한다..

도봉산(道峯山)은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시 장흥면에 걸쳐 있고.. 북한산과는 독립적이지만 가깝기

때문에 1983년 북한산 국립공원의 일부로 지정되었다.  의외로 난이도가 높은 산이다. 서울에 붙었거니와 높이도 북한산

보다 100m쯤 낮으나, 지형의 고저 차이가 심하기에 등산하기는 북한산보다 어렵다고들 말한다.

 

 도봉탐방지원센터 갈림길.. 우이암방향으로 간다.

 

척박한 바위틈에서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데.. 인증샷이라는 미명으로 얼마나 짓밟혔더냐.. 상채기가 크다..

 

신비로운 도봉산 신령님이 공중부양을 하고 계신다.. 아아!~~ 대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이여~.

 

▲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중첩된 능선의 아름다움을 어느시인은 "산그리메"라고 표현하였다.. 산아래에서는 산너머를 내다

볼수 없으므로 산이 뿜어내는 공력을 느끼지 못한다.  저 산그리메의 사이사이에서 속세의 삶에 익숙해질 뿐이다.

 

▲ 멀리 오봉산 뒤로 오봉이 살짝 보이고.. 가까운 칼바위는 우회하여 돌아간다.

 

▲ 칼바위 우회길에 암릉의 단풍이 곱다.

 

▲ 우이암 방향으로..

 

15시 03분 : 우이암 갈림길.. 오봉쪽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 간다.

 

2009년에 내려갔던 우이암능선길이다...

 

 가야할 오봉능선이 조금더 가까워 졌다.. 붉은 점선안에 심상치 않은 방구돌이 보여서 당겨 본다.

 

 30배줌으로 당겨 보니... 신라시대의 곡옥(曲玉)처럼 보인다.

 

▲ 뒤 돌아본 칼바위봉.. 좌측 아래로 돌아서 올라 왔다.

 

 도봉탐방지원센터갈림길... 이제 송추주차장은 4.5km 남았다.

 

▲ 오봉산 오름은 피하고 편안한 우회길로 간다.

 

▲ 서울근교의 산에는 고양이들이.. 많아도 너~~무.. 아주 많다..

 

▲ 오봉헬기장..

 

15시 39분 : 오봉 도착..

 

이곳에서 보는 5봉이 키재기를 하듯이 나란히 서있다... 그런데..

모두 갓을 쓰고 있는데.. 넷째만 갓을 쓰지 못한 채 엉거주춤 앉아 있는 모습이 못내 안쓰러워 보인다.

 

당겨본 오봉능선.. 참으로 멋지게 생긴 방구돌들이다.

다섯 형제와 고을 원님의 외동딸에 얽힌 사연이다. 옛날 도봉산 아래 부잣집에 힘이 장사인 다섯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새로 부임한 원님의 외동딸에게 반해 서로 장가들고 싶어 했다. 난처한 원님은 산꼭대기에 가장 커다란 바위를 올려놓는

사람에게 자기 딸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다섯 형제는 커다란 바위를 하나씩 산꼭대기에 올려놓았으나 넷째는 힘에 부쳐

바위를 꼭대기에 올려놓지 못했다. 네 사람이 바위를 봉우리에 올려놓았으니 원님은 사윗감을 고르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그만 딸의 혼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다가 외동딸은 혼례도 올리지 못하고 시름시름 않다가 죽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옥황상제가 외동딸을 여성봉으로 환생시켜 주었고, 다섯 형제도 오봉으로 환생하여 서로 애타게

바라보며 사모하고 있다고 한다.  오봉 끝자락에는 부처를 닮은 관음암이 있는데, 계곡 건너편 여성봉을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돌아 앉아 돌부처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봉을 내려가기전에 지나온 도봉산 능선을 바라보니 사패산과 도봉산종주.. 꿈의 코스다..

 

15시 46분 : 오봉능선 1전망대에서.. 가운데의 셋째가 더 잘생기고 멋져 보인다.

 

조금더 아래에 있는 오봉능선 2전망대에서.. 여기서도 긴 망토를 걸치고 폼을 내는 셋째가 돋보인다.

 

기암인데.. 내눈에는 로마시대 거리의 수도승처럼 보인다..

 

 돛대바위..

 

16시 11분 : 여성봉...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여성바위 위로 갈수가 있다...

 

 여성봉과 마주보는 오봉능선을 함께 바라보니 전설하나쯤은 생길만도 한 분위기다..

여기서 보니 넷째가 고개를 숙인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오른쪽 관음봉은 여성봉을 보기가 민망스러워 고개를 돌린

모습이라고 한다.

 

시야만 깨끗하다면.. 멀리 파주 감악산이 보일테지만.. 한줄기 노을빛이 구름새로 빠져 나오며 하루를 내리려 한다.

 

 북한산으로 가는 상장봉능선 아래로 우이령 가는계곡이 보인다..

 

멀리.. 사패능선이 눈높이로 보이는곳까지 내려왔다..

 

 내림길에서 화살표 지점의 주차장쪽을 확인해 본다...

 

당겨보니.. 송추마을과 도시순환고속도로 밑이 주차장이다...

송추는 소나무[松]와 가래나무[楸]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송추주차장 1km지점...

 

 16시 53분 : 오봉탐방지원센터.

 

17시 01분 : 송추 2주차장..하산종료... 하산 약속시간에서 1분 초과다..

 

▲ 청명한 가을의 풍경은 아니었지만…

도봉산의 신령님이 펼치신 운해의 매직쇼를 마음껏 감상하고 즐겼던 감사한 하루다..

좋은 하루 만들어주신 산이좋아산악회 임원진에게 감사드립니다.

2023년 09월 07일(목).

감악산 : 경기도 파주시...

 

산행코스 : 출렁다리주차장-팔각정-출렁다리-감악산능선길-보리암돌탑-악귀봉-통천문-형소봉-장군봉-임꺽정봉-

감악산정상-운계능선길-까치봉-손마중길-운계전망대-운계폭포-출렁다리-주차장(파주두부집) 산행종료.

산행시작 : 출렁다리주차장  11시 13분.

산행종료 : 출렁다리주차장  15시 17분.

전체거리 :  7.53km.

전체시간 : 04시간 04분.

운동시간 : 03시간 28분.

휴식시간 : 00시간 36분.

 

11 : 13  출렁다리 주차장 출발.

11 : 28  출렁다리.

12 : 25  보리암 돌탑.

13 : 07  악귀봉.

13 : 23  형소봉.

13 : 34  장군봉.

13 : 42  임꺽정봉.

13 : 58  감악산.

14 : 21  까치봉.

15 : 05  운계폭포.

15 : 17  출렁다리주차장 산행종료.

 

 11시 13분 : 경기도 파주시 감악산출렁다리 입구 출발.

 

들머리 입구에 6.25전쟁 전투현장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6.25 전쟁 중 벌어진 설마리 전투(글로스터 고지 전투 혹은 임진강 전투로도 불린다)의 무대이기도 한 설마계곡

입구에는 이를 기리는 영국군 참전 기념비가 있다. 휴전선과 가깝기 때문에 감악산은 현재에도 파평산과 더불어 감제고지

라는 군사적 요충지라 주변에 군부대도 주둔한다. 1951년 4월 22일 ~ 25일까지 나흘간 벌어진 설마리 전투에서 국군1사단

영연방 29여단 병력이 전사하였다. 유해 발굴 현황이 상세히 적혀 있다. 선배님들의 희생에 잠시 고개를 숙인다.

 

동행... 힘들면 함께 손잡고 걸어요... 오늘의 동행은 화랑산악회와 함께 한다..

 

들머리에서 6~7분 정도 소요되는 짧은 데크길이지만.. 늦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며 지치게 만든다.

 

이곳 파주의 날씨도 낮최고 31도를 가르킨다.. 먼길 달려온 화랑의 하루가 작은 불상사 하나없는 꽃길이 되기를...

 

11시 24분 : 감악산출렁다리 전망대.

 

야간개장을 위한 달 모형..

 

감악산과 출렁다리...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1사단장 백선엽 대령(전후 우리나라 최초의 4성장군)의 1사단이 고랑포 전투에서

패퇴했다. 그리고 1951년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가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대대장 칸(Carne)을 포함한 살아남은

이들 모두가 휴전을 한 1953년까지 포로생활의 고초를 겪었는데, 그들의 전투가 바로 감악산 등산의 출발지인 감악산

출렁다리 및 범륜사 등산로가 있는 설마리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이 두 전투는 패배했지만 우리 군이나 유엔군에게

시간을 벌어주어 전략적인 승리랄 수 있었다. 감악산 주변엔 아직도 많은 군부대들이 있어서 등산을 하다보면 가끔 부근

부대의 사격장에서 행하는 실탄 사격이나 포 사격 소리를 듣게 된다. 또한 전방 지역의 산이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감악산엔 현재까지 많아도 너무나 많은 진지나 참호가 산중턱에서 거의 정상 부위까지 널려있다..

 

감악산을 배경으로...

감악산은 전국적으로 3개소가 있는데 원주~제천의 감악산과 거창의 감악산.. 파주~양주의 감악산이 있다.

또한.. 감악산은... 가평의 화악산, 개성의 송악산, 안양의 관악산, 포천의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정상에서는

임진강과 개성의 송악산 등이 조망되며, 반대편 봉우리인 임꺽정봉의 산세 또한 수려하다. 산세가 험하고, 폭포, 계곡,

암벽 등이 발달한 파주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예로부터 바위사이로 검은 빛과 푸른 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하여

감악산(紺岳山), 즉 감색 바위산이라 불렀다...

 

 감악산출렁다리는 데크를 따라 조금더 이동 하여야 한다.

 

 감악산이정표에는 NFC스마트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어서 위급상황시에 휴대폰의 NFC읽기/쓰기 기능을 이용하면..

나의 위치를 자동문자로 신고해주는 기능이다.

 

 감악산출렁다리 입구.

 

▲ 감악산 출렁다리.

파주시에서 사업비 28억원을 들여서 2013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16년 9월 완공한 출렁다리는 길이 150m

높이 45m로 한꺼번에 900명이 뛰어도 안전하다고 한다..

출렁다리의 이름은 다리 부근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벌인 영국군 글로스터셔 부대원들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글로스터셔 영웅의 다리"로 명명했는데.. 일반적으로 "감악산 출렁다리"로 불린다.

 

올려다 보이는 감악산과 오른쪽의 임꺽정봉.. 중간의 운계폭포 위쪽으로 범륜사가 앉아 있다.

대한민국에서 흔히 영산이라 불리는 산에는 으례히 사찰들이 많기 마련인데, 감악산은 감악산신 신앙이 너무나 강해서

들어섰던 사찰마저 폐찰이 되고 말았다. 원래 감악사, 운계사, 범륜사, 운림사 등의 4개 사찰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1970년

옛 운계사 터에 재창건한 범륜사(梵輪寺)만 남아 있다. 감악산에서는 감악산신을 모시는 민간신앙의 위세에 불교가 눌리는

모양새이다..

 

약간의 출렁임이 있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도 무리없이 건널 정도는 될 것 같다..

참고로 전국의 내로라 하는 출렁다리를 살펴 보면..

[산악 출렁다리] 로는..

감악산 출렁다리 150m.

소금산 출렁다리 200m..

채계산 출렁다리 270m..

소금산 울렁다리 404m가 대표적이고...

 

 [호수 출렁다리] 로는...

마장호 출렁다리 220m.

옥순봉 출렁다리 222m.

대왕암공원 출렁다리 303m.

예당호 출렁다리 402m.

탑정호 출렁다리 600m 가 있다..

 

내려다 보는 45m의 높이지만.. 고소공포증이 없는 나로서는.. 고도감은 완전 "O" 다..

 

조금전 지나 온 팔각정 전망대.

 

출렁다리를 자나오면.. 출렁다리 기념비...

 

좌측으로 직진하면 운계폭포로 가는 길이고... 화랑의 오늘 코스는 오른쪽의 청산 계곡길이다..

 

오늘의 코스는 청산계곡길로 가다가 감악능선길과 합류하여 보리암돌탑을 경유하여 정상으로 갈 것이다.

 

거북바위 휴게소에서 올라오는 도로를 만나서.. 좌측의 범륜사 방향으로 올라간다.

 

도로를 따라 약150m정도 진행하면...

 

 청산계곡으로 가는 데크길 들머리다.

 

 들머리에서 2~3분 가량 진행하면... 직진은 청산계곡길이고.. 왼쪽 오름은 감악산 능선길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다.

등산 앱을 검색해보니... 계곡길 보다는 능선길이 좋을 것 같다..

 

감악산 등로중에 가장 착한길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비교적 완만한게 이어진다.

 

 추정컨데 범륜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인듯 하다.

 

유독 두 그루만.. 심하게 암을 앓고 있다... 아마도 "참씨" 집안의 병력이 있는가 보다..

 

12시 16분 : 청산계곡길과 만나는 지점.. 여기서 화랑의 산대장님을 만난다.

 

12시 23분 : 보리암 돌탑길 입구의 샘..

 

 문패에 "보리암 용궁당" 이라 되어 있고.. 전번까지 적혀 있다... 그런데 문 입구를 형사 콜롬보의 눈으로 예리하게

살펴보니 드나든 흔적은 거의 없는듯 하다..

 

 산신각...

 

▲ 처사님이 거처 하는 곳인듯.. 커피와.. 오미자도 있고.. 운세 상담도 가능 이란다... 전번과 함께..

 

 보리암 돌탑... 전북 진안의 마이산 탑사의 돌탑을 많이 닮았다.

감악산 자락의 보리암 돌탑은 시나브로 알려진 가운데 신성한 감악산에 매료된 강성욱(57)씨가 이승의 한을 삭이듯 돌탑

쌓기에 한창이다. ​ 4반세기 남짓 어릴적 어머니를 그리워하며,질곡속에 핀 방초인양 100개 거탑을 쌓아가는 50대가 장안

의 화제다. 특별히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는 강 씨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힘겹고 외로운 거탑 축성에 36도의 불볕더위에

도 지칠줄 모른다. ​ 탑쌓기의 효시는 지난 2000년부터로 거슬러 오르지만 밖의 세상은 밀레니엄으로 축제 무드를 이어가는

때이다. 어느 날 영적 계시를 받았다는 그는 올들어 23년째로 완성된 탑만도 무려 16개에 이른다. ​ SBS-TV ‘순간포착-세상

에 이런 일이’ 918회에 방영된데 이어 MBN의 인기프로 ‘나는 자연인이다’ 243편에 출연,방영된바 있기도 하고... 일반 성인

의 키 3배 가량에 이른 탑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않고 혼자 일궈낸 결과물이란 귀띔이다. ​ 신중히 고른 돌을 쌓아 올린 정성

가득한 돌탑은 워낙 단단하게 쌓은 덕에 세찬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이다. 산에 오르기 전까지 평범한 생활을 누렸다는

강성욱 씨는 방황 끝에 아무도 없는 산속으로 숨어들어 지금에 이른다. 돌탑을 쌓으면서 마음을 다스렸고 생전의 어머니를

그리며 평안을 찾게 됐다는 후일담이다. ​ 42살 때 처음 이곳에 와서 힘든 마음을 달래려고 만든 두눈시린 어머니 형상의

돌탑부터 이 산을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서 만든 뫼 산(山)자 돌탑이다. 해와 달을 관측하던 첨성대를 닮은 돌탑 등

세심한 손재주와 위트있는 아이디어가 보통이 아니다. .

 

 보리암 돌탑중에 중앙에 자리 잡은 돌탑은 "합장하는 모습" 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소원돌은.. 영천 돌할매와... 경남 밀양의 만어사 소원돌인데.. 이곳 감악산에도 돌할배가 있다..

소원을 빈후에 돌할배가 들어 올려지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인간의 가장 나약함으로 표출되는 민간신앙이다... 가까운 장래에 과학의 극치로 인간이 달나라에서 살게 된다 해도

달나라에 민간신앙은 생겨날 것이다..

 

 보리암 돌탑을 지나서 부터는... 정상이 가까워 옴인지.. 거친 바위와 함께 힘든 오름이 이어 진다.

 

군인들의 폐 벙커가 보인다. 그래서 실감하게 되는... 여기는 최전방이다.

 

 파주 감악산으로 알고 왔는데.. 이정표의 관할은 양주시다..

여기서 부터 능선길의 좌측발은 파주시를 걷고 있고.. 오른발은 양주시를 걷게 된다.

 

 12시 50분 : 악귀봉 100m 전방에서 늦은 마음점을 찍는다.

 

 13시 07분 : 악귀봉.. 정상석은 양주시와 파주시 합작품이다.

충남 홍성의 팔봉산에도 악귀봉이 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병풍바위로 불리우던 봉우리인데.. 왜? 귀신을 불러 왔을까?.

 

 저 멀리 임진강이 보이는 걸 보니.. 산그리메 그 너머로는 북녁땅일 것이다.

감악산과 파주, 연천 지역은 임진강을 낀 남북 교통의 요충지이자 한반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군사전략적 요충지 중

하나이다. 그래서 삼국시대부터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감악산이 있는 적성면의 적성(積城)

이란 이름 자체가 성을 쌓는다는 의미로 이곳엔 고대 성곽 칠중성(七重城)이 있어서 고구려와 신라간의 칠중성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 가까운 고랑포의 여울목이 예로부터 배가 없이도 건널 수 있는 곳이라 (북한 124군부대

의 김신조도 거길 건너왔지만) 삼국시대의 고구려나 한국전쟁시의 북한과 중공군이 그곳으로 건너왔다. 그래서 한국전쟁

시에는 유명한 설마리 전투(Gloster Valley Battle)와 임진강 고랑포 전투의 주 전장(戰場)이 감악산이었다...

 

▲ 남쪽으로는 신암저수지 너머로 "불곡산".. "도봉산".. "북한산" 이 희미하게 다가온다.. 불곡산에도 임꺽정봉이 있다.

 

감악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통천문을 보고.. 형소봉.. 장군봉.. 임꺽정봉을 넘어야 한다.

 

▲ 구름한점 없는 하늘색... 세룰리안 블루(cerulean blue)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13시 15분 : 통천문...

 

▲ 통천문을 통하여 보이는 북한산...

 

▲ 통천문 바깥쪽은 천길 단애다.. 신암저수지에서 계곡을 타고 올라오는 한줄기 바람이 폐속 깊이 시원하다.

 

지나온 "악귀봉".. 그너머로 북녁땅과 근접한 "파평산"... 그 어딘가에는 "도라산전망대" 도 있을 것이다.

 

"장군봉"에 가기전에 임꺽정봉 하늘길의 최고의 조망처인 "형소봉"을 다녀오고자 한다.

 

13시 21분 : 형소봉 갈림길... 50m다..

 

13시 23분 : 형소봉은.. 파주시를 벗어난 양주시 관할이다... 순간이동 축지법으로 순식간에 양주시로 이동하였다...

 

▲ 형소봉에서 바라보는 임꺽정봉의 하늘길 데크... 하늘길은 2024년 8월 31일까지 출입통제다.

 

▲ 가야 할.. 장군봉이다.

 

▲ 장군봉 오름데크..

 

▲ 노송사이로 바라본 장군봉 암릉과 임꺽정봉 하늘데크.. 가히 신선이 노닐만한 선경이다.

 

▲ 장군봉 명품송...

 

▲ 장군봉 오름발판을 잘 만들어 놓았다.

 

13시 34분 : 장군봉...

 

▲ 장군봉의 배낭걸이대가 이색적이다.

 

13시 42분 : 감악산 임꺽정봉..

조선시대 백정 출신의 대표적인 도적 임꺽정이 관군을 피해 숨었던 곳으로 임꺽정봉 아래 임꺽정의 도피처였던 임꺽정

굴이 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께서는 조선의 3대 도적을 홍길동, 장백산, 임꺽정이라고 했다.

실존 인물이었던 임꺽정은 명종 14년(1559년) 임금의 명으로 임꺽정에 대해서 대책을 논의했고 명종 17년(1562)에 되어서

야 임꺽정의 무리를 소탕할 수 있었다. 아마도 3년 동안 중 어느 날인가 파주 감악산의 임꺽정 굴에서 머무르지 않았나

추정해 본다. 조선시대의 임꺽정이 현재까지 모든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계기는 1928년부터 10년 동안 조선일보에 연재

되었던 홍명희 작가의 대하소설 <임꺽정> 덕분이었다.

 

▲ 또 다른 임꺽정봉이 있는 양주시청 뒷쪽에 있는 불곡산을 배경으로 인증샷..

 

▲ 당겨 본 임진강.. 그 너머로 손에 잡힐듯한 북녘땅의 극락봉..

 

임꺽정봉의 "칼바위"..

 

양주시에서 설치한 등산 안내도여서 그런지... 파주쪽의 지역명은 없다..

 

임꺽정굴로 가는길이 아닐까?.. 조금더 가볼껄... 아쉽다.

 

▲ 양주 감악정...

 

양주 감악정에서 바라 본 동북방향... 저 너머너머 어딘가에 금강산이 있을 것이다..

 

양주 감악정에서 바라 본 동두천과 불곡산 방향..

 

13시 58분 : 감악산 정상의 기상관측소..

 

감악산비...

감악산 정상석과 글자가 하나도 없는 몰자비(沒字碑)=감악산비(紺岳山碑).

감악산비는 진흥왕 순수비와 비슷하게 생겼고, 그 기단은 거의 북한산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와 쌍동이처럼 같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얘기가 있는 것인데, 그게 비석에 문자가 하나도 없어서 진흥왕 순수비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감악산에 비가 있으나 거기 새겨진 글이 없다고 했다. 그것을 확인한 것은 조선후기의 서예 대가요..

정계의 거물인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다. 그가 감악산에 올랐을 때도 이미 비석엔 단 한 글자도 없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문자가 없다는 의미의 몰자비(沒字碑)였는지도 모른다.

 

감악산 비가 세워진 전설..

 

▲ 연천군에서 세운 고롱이와 미롱이.. 양주, 파주, 연천 경계의 감악산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연천군의 상징 캐릭터인 미롱이와 고롱이.  "고롱이"는 고대 구석기. 고인돌을 의미하며..

"미롱이"는 미래 지향적 희망과 미래발전 등을 상징하는 "미"자를 의미한다..

 

연천군 전곡읍의 한 강변에서 미국의 사병 그렉 보웬(Greg L. Bowen)에 의해 발견된 아슐리안형 양면 가공 돌도끼는

아시아에 구석기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럽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그로써 세계사 책의 내용이 변경되게 되

었다... 매년 전곡읍에서는 구석기축제를 연다. 그렉 보웬은 1950년생으로 아직 생존해 있고, 부인은 한국인(이상미)이다.

1977년 강변에서 돌도끼를 주어올린 보웬이 흥분하며 그녀에게 자신의 놀라운 발견에 대해 말했다. 전문가가 아니면 그게

인공적인 돌도끼임을 몰랐겠으나 보웬은 다행히 고고학 전공자였기에 그걸 알아본 것이다. 보웬은 그가 돌도끼를 발견한

1977년 이후 27년 만인 2005년에 한국을 방문하고, 자신의 발견으로 비롯한 구석기축제에 부인과 함께 참가하며 감격에

젖었다. .

 

▲ 성모마리아상... 가까이 가볼려고 했어나 숲이 우거져 포기하고 마리아 성모님을 당겨서 모신다..

1998년에 인근 25사단 성당 교우들이 북녘땅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건립하였다고 한다...

 

감악산에서의 하산길은 운계능선을 따라 가며.. 고개만 들면 북녘땅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 온다.

 

 저 북녘땅은.. 내 아버님.. 어머님의 소중한 꿈을 잃어버린.. 아니.. 빼앗겨 버린 곳이다...

 

아버님은..

고향 생각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어머님은..

남은 인생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그렇게 사시다가 두분 다.. 살아 생전 고향땅을 못밟으시고 돌아가셨다..

지금쯤은.. 고향땅 북녘에서 훨훨 날아 다니실 것이다..

 

전망대...

 

전망대 그림따라 담아 보았다..

 

조금 더 당겨 본다.. 오늘밤.. 꿈에서나마 송악산 등산을 해보자..

 

까치봉으로 가는 길목에 바람길이 너무 좋은 감악 정자..

 

임진강 너머 북녁의 산들은 알수가 없으니 이름을 불러 줄수가 없다.

 

바람길이 너무 시원하고 좋아서 인지.. 화랑님들이 일어설 생각이 없다..

 

걷다 보니 운계능선길에 혼자다.. 폐 벙커가 자주 보인다.

 

까치봉이 지척인 곳에서.. 마지막으로 조망되는 이름모를 북녘땅의 산그리메 풍경들과..

그리고 구비쳐 흘러가는 임진강 너머로 개성의 송악산은 오래토록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14시 21분 : 까치봉...

 

까치봉에 올라 감악산을 돌아보니.. 화랑님들이 데크를 따라 내려 오는 모습이 보인다..

 

차례로.. 임꺽정봉.. 장군봉.. 형소봉.. 악귀봉이 뒤돌아 보고 있는 모습인데..

반대편의 양주쪽은 거친 수직절벽의 암릉인데 반해.. 이쪽 파주쪽에서 보면 부더러운 육산이다..

 

▲ 데크 쉼터에서.. 올랐던 능선길도 되 짚어 보고..

 

▲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편하고 착한 길위에서..

 

▲ 고바우를 닮은 영감에게 시비도 걸어 보고..

 

▲ 성황당 같은 곳에 발뿌리에 차이는 돌맹이 하나도 던져 주고..

 

▲ 내림길만 있을줄 알았던 운계능선에 약간의 오름이 있고..

 

14시 37분 : 범륜사 갈림길..

 

▲ 비교적 튼튼한 콘크리트 벙커다.. 유사시에는 사용해도 될듯..

 

▲ 두번째 갈림길... 여기서 선고개로 가면 안될것 같아서... 범륜사로 내려 간다..

 

14시 50분 : 운계전망대...

 

▲ 내려다 본... 감악산출렁다리..

 

▲ 운계폭포도 내려다 보고...

 

▲ 운계폭포.. 범륜사는 패쓰하고 내려 왔는데... 수량이 별로여서 아쉽다...

운계폭포는 실마천을 끼고 있는 20m의 아기자기한 계곡에 있다. 일명 비룡폭포라고도 불린다.

물이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겨울에는 빙벽 훈련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 운계폭포 지킴이 백호... 잘 생겼다.. 무심코 지나오면 못보고 지나칠수 있다..

 

▲ 다시 출렁다리를 건너서..

 

▲ 출발 했던 지점으로 오니..  버스가 안보여서 땀을 씻기위해 하류쪽으로 가다보니...

 

▲ 출렁다리 입구까지 내려 왔다...

 

15시 17분 : 트랭글을 종료하고..

 

▲ 계류가 너무 좋은 곳에서... 독탕으로 땀을 씻어내고..

 

▲ 다시 도로로 올라 오니.. 감악산로 고가다리가 머리위로 지나간다.

산뜻해진 몸과 마음으로 하산주 장소인 <파주 두부 만드는집>에서 두부전골로 밥 한공기 뚝딱하고...

쏘맥한잔에 얼큰한 취기로 차창에 기대니 스르르 잠이 절로 온다.. 화장실 다녀 오라는 산대장님의 멘트에 깨어나니

선산휴게소다... 다시 어렴풋이 잠이 든것 같은데.. 어느새 대구 란다..  

17시 06분에 출발... 파주에서 대구 성서까지 거의 4시간대에 주파 하였다..

다시 한번... 베스트 드라이버로 안전하게 제자리로 오게 해주신 사장님께 감사의 박수 보냅니다.

 

그리고.. 경기도 파주는.. 대구에서 먼거리다.. 이렇게라도 오지 않으면 벼르기만 하다가 못오는 곳이다

추진하신 화랑의 집행부와.. 산대장님 감사합니다.

2023년 05월 18(목).
관악산 관양능선 : 경기도 과천시.

 

산행코스 : 관양고등학교-육봉국기봉-횃불바위-말바위-관악산-연주암-마애명문-과천향교 산행종료.

산행시작 : 관양고등학교 10시 44분.

산행종료 : 과천향교 15시 38분.

전체거리 :  8.9km.

전체시간 : 04시간 53분.

운동시간 : 04시간 13분.

휴식시간 : 00시간 40분.

 

10 : 36  관양고등학교 출발.

11 : 12  팔각정.

12 : 10  육봉국기봉.

12 : 55  횃불바위.

13 : 56  말바위.

14 : 00  연주대 전망대.

14 : 07  관악산.

14 : 17  연주암.

15 : 31  마애명문.

15 : 38  과천향교 산행종료.

 

10시 36분 : 관양고등학교 출발.

 

▲ 관양능선 들머리는 관양고등학교정문에서 서쪽으로 안양시 도시개발 공사장을 약300m정도 지난 지점에 있다.

 

▲ 관양능선 들머리..

 

▲ 산행출발에 앞서 10여년전 대구에서 함께 산행을 하였던 "벼이삭"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중국교포와 기념촬영을 한다.

중국에 갔다가 10년만에 서울의 아들네집에 왔다가.. 내게 안부 전화가 와서.. 마침 내가 관악산을 간다고 하니 함께 산행을

하고 싶다고 하여.. 관양고등학교앞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 산행 초반에는 여느산과 다름없이 편안하고 소박한 출발이다.

 

▲ 육봉국기봉까지 2.46km..

 

▲ 첫 샘터인 "청심 약수터".. 안양쪽에서의 관악산오름의 주변에는 유달리 약수터가 많다.

설천약수터.. 매천약수터.. 간촌약수터..등등.. 수질검사도 적합 판정이다..

 

▲ 하얗게 떨어진 때죽나무꽃이 꽃방석이 되어 주고 진한 향기는 머리를 맑게 해주는 느낌이다.

 

▲ 10년전의 시간들이 마치 어제처럼.. 어색함도 없이 살갑게 느껴진다.

 

▲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며..

 

▲ 전방의 팔각정 전망대까지 165m의 거리가 제법 가파르다.

 

▲ 누가 보아도 팔각정 쉼터이고 전망이 있을것 같은데... 친절한 돌방구가 전망대라고 강조한다..

 

▲ 오늘의 날씨는 전국적으로 흐림이고 약간의 비소식이라는 예보로 곰탕속처럼 온통 안개속이다.

안양시 저편으로 지금쯤.. "산여울"선배님께서 홀로 답사의 길을 걷고 계실 모락산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 올려다 보이는 운동장능선..

 

▲ 등나무 덩굴터널...

 

11시 25분 : 좌측 불성사와.. 우측 국기봉의 갈림길.. 여기서 부터가 사실상 "관양능선"의 시작이다.

 

▲ 바위산인 관악산 답게.. 암릉을 올라서서 허리한번 펴고 뒤돌아 보면...

 

▲ 안양시는 여전히 곰탕을 끓이고 있다.. 

 

▲ 국기봉으로 가는 관양능선에서..

 

▲ 건너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어가는.. 일명 "운동장능선"의 암릉도 볼만하다..

 

▲ 탁 트여서 조망이 좋고.. 쉼이 있는 너른 암반에서 산이좋아 회장님을 만났네요.. 올때 마다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바위사이로 숨바꼭질 하듯이.. 길이 숨은듯 하다가도 다시 이어지는 재미있는 암릉길이다.

 

▲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진경산수 한국화 한폭을 보는것 같다.

 

▲ 관양능선 전망대..

 

▲ 정부 과천청사와 서울대공원이 있는 과천시가지 뒤쪽으로 보이는 청계산이 반갑다..

 

▲ 거북바위?..

 

▲ 아직까지는 방구돌만 보면 오르고 싶어지고 오르면 뿌듯하고 꽉찬 느낌이다..

 

▲ 오른만큼 내어주는게 또한 산이다. 독특한 형상의 바위다.

가물치바위라기도 하고.. 투구바위.. 큰코바위.. 남근석이라 하기도 한다.

하여튼 바위에도 생명력이 있는듯이.. 꼬물거리는것 처럼도 보인다.

 

▲ 저 바위봉을 넘어서야 국기봉이다.

 

▲ 이리도 기웃거려 보고..

 

▲ 창문틀 너머로 액자속 그림을 보듯이 운동장능선도 다시 기웃 거린다..

 

▲ 나목이 되어 버린 소나무도 그림이 되어 있다.

 

▲ 바위에 올라 서니.. 이제사 국기봉이 어서오라며 손짓이다.

 

▲ 국기봉 암릉을 오르는 산이좋아 회원님들..

 

▲ 두갈래 계단.. 오른쪽은 전망대를 경유하고.. 왼쪽은 국기봉정상으로 바로 오른다.. 나는 당근. 오른쪽으로..

 

▲ 기암과 노송..

 

▲ 외계인 ET.. 같기도하고.. 소머리 같기도 하고.. 바위 이름에는 정답이 없다.. 보는 사람의 느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12시 10분 : 육봉국기봉.

 

▲ 굳이 선을 긋자면 공식적인 관양능선은 사실상 여기까지다. 

 

▲ 이제부터는 관악산으로 가는 관악 주능선의 시작이다.

 

▲ 참으로 묘한 표정의 바위다..

도저히 흉내낼 수 없고 세상시름 다 안은듯한 고뇌의 바위가 신비감과 즐거움을 더해 준다.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도 멋스럽고 온갖 생명체들이 숨어 있는것만 같다.

 

▲ 뒤 돌아본 육봉국기봉.

 

▲ 암반위에 홀로선 소나무야.. 때깔좋고 뽄때나는 인증샷 한장 담을려고 너를 얼마나 짓밟고 귀찮게 했을꼬...

지치지 말고 힘내라는 응원의 마음 두고 간다..

 

▲ 관양능선을 지나.. 관악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의 수하를 받고 지나가니..

 

▲ 새로운 관악의 별장과도 같은 삼성산으로 이어지는 팔봉능선과 그아래 불성사가 자리하고 있다.

 

▲ 팔봉능선 여덟봉우리중의 하나인 일곱번째 봉우리다. 산객들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12시 29분 : 마음점 찍기..

지나온 육봉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람길 좋은 곳에서.. 왜 먹을걸 안주냐고 농성을 하는 속을 달랜다.

 

▲ 여기서는 네명의 서울아지매팀을 만나 연주암 길을 묻고 따른다..

 

12시 55분 : 횃불바위..

 

▲ 서울아지매에게 인증샷을 부탁하였더니.. 네명중에 한분이 고향이 대구라며 얼른 카메라를 받는다.. 감사합니다.

 

▲ 스스로 잘 찍었다며 자랑까지 한다.. 대구 신천동이 고향이라는 아지매요.. 우쨋기나 고맙심다..ㅎㅎ~

 

▲ 내친김에 나도 부탁하였더니.

 

▲ 횃불바위가 가리운다며 자세를 살짝 돌리라고 연출까지 시킨다.ㅋㅋ~~

 

▲ 관악 명물인 횃불바위(불꽃바위)... 마치 성화 봉송이라도 할듯 활활 타오르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관음바위나 촛불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횃불바위(관음바위) 뒤로 장군봉의 장군바위도 보인다.

 

▲ 횃불바위 측면..

 

▲ 코가 5cm만 더 컸어도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고꾸라 졌을 것이다..ㅎㅎ~

 

▲ 아주 오래된 이정표..

 

▲ KBS송신탑과 헬기장.

 

▲ 오른쪽 발아래의 연주암.. 계곡은 하산길이다.

 

▲ 헬기장 내림길에서 바라본 관악산..

오늘 나의 하산 계획은 관악산 정상찍고 솔봉을 경유하여 559봉에서 오른쪽 화살표의 용마능선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연주암계곡으로 내려가는 거리나 용마능선으로 내려가나 거리차이는 별로 없다..

과거에는 관악산과 솔봉쪽이 밧줄구간으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데크계단이 잘되어 있다.

 

▲ 내림길에 당겨본 관악산과 연주대..

관악산은 예로부터 불의 산(火山)이라 하여 조선 태조가 궁터를 지금의 경복궁 자리로 옮길 때 무학대사가 이곳은 관악산

과 마주 보이는 자리로 관악산의 화기가 궁을 눌러서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정도전의 남쪽에

한강이 가로질러 있어서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 들여 지금의 경복궁을 창건하였다 한다.

그후 태종때 왕자의 난, 세조의 왕위 찬탈,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경복궁에 발생한 수차례의 화재가 발생한 것을

풍수지리설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대원군은 경복궁을 재건할 때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

바다의 신으로 상상의 동물인 해태 조각상을 만들어 세웠다.

 

▲ 연주암 모노레일을 따라 가다가 깔딱고개에서 장군바위쪽으로 간다..

 

▲ 옛사람들의 바위 자르기 흔적.. 나무를 박고 물에 불리면 나무가 부풀려 지면서 바위가 갈라지는 방식이다.

 

▲ 학바위?.. 장군바위??..

 

▲ 뒤돌아 본..  KBS송신탑..

 

▲ 장군봉을 내려 가며...

 

▲ 와우!~~... 감탄이 절로 나오는 뷰(view)다..

 

▲ 강감찬과 관악산에 얽힌 전설..

관악산은 그 북쪽 기슭 낙성대에서 출생한 고려의 강감찬과 관련한 전설도 많이 지니고 있다.

그가 하늘의 벼락방망이를 없애려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벼락방망이 대신 이 산의 칡을 모두 뿌리째 뽑아

없앴다는 전설도 있고, 작은 체구인 강감찬이지만 몸무게가 몹시 무거워 바위를 오르는 곳마다 발자국이 깊게 패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 전설들을 뒷받침해 주듯 관악산에서는 칡덩굴은 별로 볼 수 없고, 곳곳의 바위에 아기 발자국같은

타원형 발자국들이 보인다.

 

▲ 정상의 기상레이더관측소와 연주대가 관악산의 상징처럼 서 있다.

저 말바위능선을 따라 가다가 우회해서 연주대 전망대에 들렀다가 정상으로 갈 것이다.

 

 서울대로 내려가는 자운암능선길도 뚜렷이 보인다.

 

13시 43분 : 깔딱고개..

여기서 우리는 이정표에는 나오지 않는 화살표방향의 말바위로 올라 간다.

 

 말바위 능선..

 

▲ 매바위.

 

말바위 능선..

 

 말바위 능선을 올라 가는데.. 이런 이런.. 빗방울이 듯기 시작한다.. 다행히 많은 비는 아니다..

 

 말바위 능선 끝지점.. 기상레이더관측소 아래에서.. 우측의 연주대 전망대로 간다.

 

14시 00분 : 연주대(戀主臺) 전망대.

연주대(戀主臺)는 관악산 정상에 있는 큰 벼랑바위이다.

바위 위에 있는 암자인 연주대(戀主臺)는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골짜기 아래쪽에 있던 관악사와 함께

창건한 암자인데, 원래 이름은 의상대(義湘臺)였으나, 고려가 망하자 그 충신 몇 사람이 이 곳에 올라와 숨어 살면서

그 서울이었던 송도(松都)를 바라보며 통곡을 했다고 해서 연주대(戀主臺)라 부른다고 한다.

그 후 이성계가 관악사를 중창하였고, 효령대군이 관악사를 지금 연주암이 있는 자리로 위치를 옮겼다.

또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몇 년 전에 강화에서 화의(和議)를 주선한 후금(後金:뒤에 淸나라)의 사신 강홍립의 아내 소봉저가

갇혀 살면서 남편을 사모(戀主)하다가 남편의 자결 소식을 듣고 한많은 일생을 마친 곳이라고도 한다.

 

 연주대는 수 십 길 칼날같은 벼랑 위에 축대를 쌓아 만든 암자로, 마치 구름 위에 뜬 누각을 연상케 한다.

연주대는 영험 있는 기도처로도 이름났다. 의상대사가 여기서 수도했고, 효령대군과 세조도 이 곳에서 조선 왕조의 사직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지금도 연주대에 있는 약사여래상이 영험이 많다고 하여 아낙네들이 줄을 이어 찾아든다.

 

14시 07분 : 관악산 인증샷...

관악산(冠岳山) 높이 632m.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갓 모습의 산" 뜻의 갓뫼(간뫼)..

관악(冠岳) 이라고 했다. 개성 송악산(松岳山), 가평 (화악산(華岳山), 파주(감악산(紺岳山), 포천 운악산(雲岳山)과 함께

경기도 오악(五岳)의 산이다. 금강산(金剛山)에 비교되어 소금강(小金剛), 또는 서금강(西金剛)이라고도 불린다.

 

 사진으로는 식별이 어렵지만.. 이슬비가 계속 내린다.. 여기서 아쉽지만.. 용마능선으로 하산 하려던 마음을 접는다.

 

비가 내려서 조망은 없지만.. 관악산 정상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연주암쪽으로 내려간다.

 

영산전(靈山殿).

 

▲ 연주암.

 

▲ 연주암 대웅전...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며...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관악사(冠岳寺)라 하였다.

 

▲ 지루하게 이어지는 연주암 계곡길이다...

 

▲ 연주암에서 20여분을 지리하게 내려 오다가 활짝 개방된 데크길을 만났다가...

 

▲ 길은 다시 끝을 모르고 10여분을 내려 가다가...

 

▲ 숲의 소리가 들리는 쉼터라고 해서 올려다 보니 케이블카 능선이다...

 

▲ 쉼터 아래는 물소리가 힐링시켜주는곳이다... 그러면.. 물 흐름이 없는 건기에는 힐링이 안되는건가?..ㅎㅎ~

 

▲ 관문천...

 

▲ 연주암 출발 50여분만에 만나는 우리 할배 할매가 여전히 잘 계신다...

 

▲ 맑디 맑은 명경지수에... 속된 몸이 관악산에서 흘린 땀을 닦아 내고..

 

▲ 15시 27분 : 용마능선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관악산정상에서 1시간 20분이 소요 되었다..

 

▲ 관악산 정상의 KBS송신탑 직원들의 출.퇴근용 케이블카다...

 

▲ 국조단군 동상..

신라시대 화가 "솔거"가 그렸다는 단군 한배검님의 영정을 토대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 단군동산을 조금지나서 오른쪽의 관문천을 건너..

 

▲ "마애명문"을 찾기위해 관문천 상류를 보니 데크길이 망가졌다. 이곳 상인에게 물어보니 작년 여름에 망가졌단다.

 

▲ 마애명문코스를 따라서...

 

▲ 파손되었다고 입장 금지다.. 점선쪽에 마애명문이 있는데 왼쪽 산길로 가는 길이 있다.. 무조건 고고해 보자.

 

▲ 엄청큰 바위단면에 글씨가 보인다..

이곳 자하동 계곡의 서쪽 암벽에는 계곡의 아름다움이 시흥을 저절로 불러일으킨 다는 의미가 담긴 4기의 바위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 새겨진 단하시경(丹霞詩境), 자하동문(紫霞洞門), 백운산인 자하동천(白雲山人 紫霞洞天),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등은 조선시대 시.. 서.. 화의 3절로 유명한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1847)선생과

추사체로 널리 알려진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선생과 관련된 바위글씨로 알려져 있다.

 

▲ 과천 남자하동  추사의 글씨로 알려진 단하시경(丹霞詩境) 네글자다.
"시흥을 불러일으키는 자하동의 빼어난 경치" 를 뜻한다.. 단하(丹霞) 또는 자하(紫霞)란.. 붉은 노을이라는 같은 뜻이다.
조선말기 자하 신위(紫霞 申緯)선생과..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대가께서 이곳 남자하동을 자주  찾았던 모양이다.

 

▲ 4곳의 바위글씨는 다 찾을수가 없겠고.. 가까운 곳의 "자하동문"은 찾을수 있을것 같아서 갈데까지 가보자..

 

▲ 자하동문(紫霞洞門) 찾았다..

과천에서 관악산을 오르는 계곡을 "남자하동"이라 하였는데 자하동문은 관악산에서 가장 넓은 계곡인 남자하동에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이다. 19세기 중후반에 새겨졌으며 자하 신위(紫霞 申緯)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자하(紫霞)란...신선이 사는 곳에 서리는 노을이라는 뜻으로 신선이 사는 궁전을 이르는 말이다..

 

▲ 다시.. 얼른 자하동 관문천을 건너 간다.. 바로 지척의 화살표쪽이 하산주 장소다.

 

▲ 15시 38분 : 산이좋아팀의 하산주장소를 확인하고.. 바로 옆가게에서 서울친구와 막걸리 한잔..

 

 

▲ 나를 만나 보기위해 서울 노원구쪽에서 막걸리 두병을 사들고 왔다.. 하루종일 메고 다녔다..ㅎㅎ~

그런데.. 주인장이 고맙게도 더워진 막걸리를 냉장고에 있던 가게 막걸리와 바꾸어 준다..

 

▲ 나는 녹두전하나 시켜서 10년전의 회포를 푼다..

 

▲ 16시 17분 : 과천 향교앞에서..

짧지만 긴여운의 회포를 풀고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는 과천 향교 안으로..

 

▲ 과천향교는 조선 태조7년(1398) 관악산 기슭에 세워졌으나 자주 불이 나고 과거에 오르는 학생도 없는 등의 일이

생기자 터가 좋지 않다고 여겨 숙종16년(1690)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975년에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으로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했다.

향교는 교육뿐만 아니라 중국과 조선의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 명륜당..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학당이다.

 

▲ 대성전.

공자와 선현을 모시는 곳이다.

 

▲ 16시 24분 : 땅이네로 복귀...

빠른 걸음으로 향교를 휘리릭~ 둘러보고 하산주 장소로 돌아오니.. 먹을복이 있었는지.. 절묘한 타이밍으로 마침.. 자전거

라이딩을 가셨던 네분의 원로님들이 오셔서 총무님이 능이닭백숙 한솥을 프로판개스불에 올린다...

저도 한그릇만 먹겠습니다.. 라고 하니 원로님들께서 흔쾌히 "OK"~~ 해 주신다.. 총무님 끝까지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산 잘타고.. 개인적으로는 10년만에 친구를 만났고.. 능이닭백숙 빵빵하게 먹었고..

 

▲ 17시 18분 : 관악산이 올려다 보이는 과천경찰서 앞에서.. 산이좋아의 애마에 올라 귀구길에 오른다.

 

<오늘>이라는 행복한 선물..

오늘이라는 말속에는,,,,, <오~>는 감탄사요,, <늘~>은 언제나 한결 같다.. 라는 의미가 있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최고의 순간이다.. 비록 화창한 조망은 아니었지만 짙어진 초록의 잎새 소리에는 생명의 활력이 있었고

기암의 암릉에 걸린 소나무는 절경을 만들고 관양능선 바위길은 산꾼의 마음을 충분히 설레게 한 하루였다.

 

아마도 이달 5월말경에 집행부가 다시 구성 되는 모양이다.

새로 구성이 되든 연임을 하든.. 창립28주년의 지혜들이 모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것이고..

나는 매월 셋째 목요일만 기다리면 되고 산행에 동참하면 될 것이다.

다음의 6월 산행은 어디로 갈까 벌써부터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 오산 종합운동장.

2022전국 생활체육 대축전 등산대회(경기도 산악연맹회장배) 본부석..

 

18시 29분 : 경기도 안성시 "에덴의 동쪽"

 

대구시산악연맹에 적을두고 있는 <돈키호테>님의 소개로 야등번개팀과 함께 경기도 오산시의 필봉산에서

개최되는 "2022전국 생활체육 대축전" 등산대회 대구시 선수단 일원이 되어 대구시산악연맹 사무실앞을

대회 하루전인 11월 12일(토) 15시 30분에 출발하여 안성시의 찜전문점인 "에덴의 동쪽"에 도착..

 

▲ 오후 6시경부터 시원하게 내리던 비도 소강상태를 보이고...

 

▲ 대구시 연맹 집행부에서 미리 예약하여 셋팅되어있는 식탁에 바로 착석이다..

 

▲ 소림사에서 배운 신공(神功)으로 메밀전 자르기로 몸풀기를 하고..

 

▲ 바로 이어서 나오는 해물찜..

 

▲ 현란한 가위신공으로 먹기좋은 크기가 된다.

 

▲ 여성부도 막내국민여동생의 가위 필살기로 먹음직스런 해물찜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

 

▲ 해물찜의 완성은 볶음에 있다.. 배가 불러도 숟가락은 입으로 들락날락이다.

 

▲ 에덴의동쪽에서 20여분 거리의 안성저수지 언덕에 자리잡은 "레이크타운펜션"에 도착..

 

▲ 대구시산악연맹의 차진철 회장님의 인사말..

 

▲ 다음은 전무님의 스케쥴 브리핑과.. 체육복 지급.

 

▲ 이어서 삼겹살파티.. 파티를 하는 동안 판넬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삼겹살익어가는 소리의 궁합이 완전 환상적인 하모니다.

 

▲ 파티장에서의 하일라이트는 건배다.. 회장님의 건배..

 

▲ 임원님의 건배..

 

▲ 앗!~~... 어딘가 눈에 익은 모습의 뒤통수다.. ㅎ~

 

▲ 느닷없이.. 행사를 진행하는 전무님이 대구 야등팀의 대표로.. 건배를 하란다..

 

▲ 못할것도 없다.. 대한산악연맹 대구시연맹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이렇게 첫날의 화기애애한 안면트기의 밤은 깊어 간다..

 

06시 34분 : 다음날 아침.. 도보로 7~8분 거리의 "콩나라"에서 순두부로 속을 다스린다.

 

▲ 숙소앞에서 단체인증사진을 남기고.. 행사장으로 출발.

 

▲ 오산종합운동장 입구... 교통정리를 위한 경찰과 연맹의 관계자들이 교통지도를 하고 있다.

 

▲ 오늘 처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보자..

 

▲ 대회 본부석..

 

▲ 본부석 맞은편으로 17개 시도팀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다..

 

▲ 개인등산장비 점검도 하고.. 등록 배번도 지급받는데..

 

▲ 대구시연맹 혼성팀 3조가 천으로 된 배번을 지급받지 못했단다.. 집행부의 작은 실수인듯..

 

▲ A4용지에 매직으로 만든 임시 배번... 오후에 있을 전화위복의 결과를 어느누가 알았을까..

 

▲ 야대장님의 작품..

 

▲ 본부석에서 개인장비 점검이 있다는 멘트가 있고.. 심판관들이 출동한다..

 

▲ 드디어 대구시연맹에 점검반이 도착하여.. 간단한 등산상식에 관한 문제지도 풀고..

 

▲ 장비 점검도 마치고.. 배낭에 다시 담는다.

 

▲ 모든팀들이 본부석앞으로 모여 개회식을 하고 필봉산으로 출발한다.

 

▲ 필봉산을 한바퀴 돌고 메인스타디움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 배번과 이름을 대조 확인후 통과다..

 

▲ 오산천을 건너는 은계대교 밑으로.. 갈림길 요소요소에 운영위원과 경찰이 안내를 한다.

 

▲ 필봉산 들머리까지 약 1.5km의 거리를 질서유지를 위해 한줄로 걷기..

 

▲ 이태원 사고이후..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이는 곳은 안전이 우선이다..

필봉산 들머리까지 가는동안 경찰과 안내요원들의 가이드를 받으며..

 

10시 25분 : 필봉산 들머리 도착..

 

▲ 어제밤까지 내리던 비가 미세먼지를 씻어주어 산공기가 청량하고 먼지도 나지 않는다...

 

▲ 오후에 세사람에게 장난같은 행운의 시간이 있을줄을 지금은 전혀 알지 못한다..

 

▲ 전국에서 모인 6~700명의 인원이 한줄로.. 보기 좋다..

 

10시 41분 : 1포스트 도착.. 등산복장 점검과 스탬프..

 

▲ 대구시연맹 제1조.. 나의 배번은 632-2 이다..

 

11시 10분 : 두번째 포스트.. 여기서는 배번 확인(인원점검)이다..

 

▲ 배번확인후 출발 하려는데... 심판관의 호각소리가 날카롭다.. "선두 제자리!~'' 다..

 

▲ 3조 혼성팀의 A4에 매직으로 적은 배번 621번이 오류가 있는 모양이다..

 

▲ 심판관이 본부석에 전화를 하고 배번 확인후에 651번으로 수정하고서야 겨우 출발이다.

책임감이 강한 심판관이다..

 

▲ 필봉산 오름데크..

우리 대구시연맹팀을 이끄는 선두가이드다.. 연맹에서 환경보호관련 일을 맡고 있다고 한다.

 

11시 39분 : 필봉산 정상.. 세번째 스탬프를 찍는다.

 

▲ 필봉은.. 정조대왕이 지어준 산이름이라고...

 

▲ 이름도 예쁘고 정감이 가는 참새방앗간이다...

 

▲ 수많은 인파... 중국황산에서 수많은 인파에 밀렸던 생각이 난다..

 

▲ 필봉산 데크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다..ㅎㅎㅎ 한정된 공간이다. 내려 가자..

필봉산을 정조대왕이 명명한 이래 최고로 많은 인파가 올라온것 같다..ㅎㅎ~

 

▲ 선두가이드의 안내로 하산.. 안전한 교행을 위해 돌아서 내려간다..

 

▲ 어묵.. 도토리묵.. 막걸리...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려니 그렇다..

 

▲ 공작 단풍나무(세열단풍/수양단풍).

 

▲ 필봉터널 위의 능선을 지나 갔었다..

 

▲ 다시 스타디움으로..

 

▲ 야등팀.. 수고했습니다..

 

▲ 연맹 관계자분들의 박수도 받고..

 

▲ 대구시연맹 회장님의 환영도 받고..

 

▲ 트로피.. 상패... 쌀가마니... 많이도 준비했다.. 내것도 있으려나..ㅎㅎ~~

 

▲ 각시도팀 부스로 가서 식권을 받고..

 

▲ 뷔페식 밥차에서..

 

13시 15분 : 마음점 찍기..

 

▲ 폐회식..

 

▲ 대구시연맹 3조 혼성팀. 동메달 획득..

 

▲ 3등 시상... 상장.. 상패.. 메달 수여..

 

▲ 3등에게도 박수를...

 

▲ 폐회식...

 

▲ 1박 2일간의 교통.. 숙박.. 식사비 올 무료.. 거기에 플러스로 체육복 1벌까지 선물로 받고

기분좋은 경험을 만들어 준.. 대구시연맹 회장님과 임원님들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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