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06일(목요일).
매봉산 : 전남 여수시 금오도.

 

산행코스 : 금오도 여천항-함구미-매봉산-여천항갈림길-느진목-대유마을-여천항.

산행시작 : 금오도 여천항 10시 57분.

산행종료 : 금오도 여천항 15시 48분.

전체거리 : 약14.1km.

전체시간 : 04시간 51분.

운동시간 : 04시간 34분.

휴식시간 : 00시간 17분.

누구하고 : 화랑산악회.

 

10 : 57  금오도 여천항.

11 : 57  함구미.

13 : 35  매봉산.

14 : 18  여천항갈림길.

14 : 52  느진목.

15 : 09  대유마을.

15 : 48  금오도 여천항.

 

 10시 19분 : 여수시 돌산읍 신기항 금오도 터미널..

 

▲ 화랑의 산대장님과 총무님의 매표..

 

▲ 오늘의 금오도 섬산행 일정은...

돌산읍 신기항에서 오전10시 30분에 출발하여 금오도 여천항에서 오후 17시 30분 배로 돌아올 것이다.

 

▲ 신기항 내항 너머로 돌산도와 화태도를 잇는 화태대교가 보인다.

 

▲ 승선후 화태도와 두리도 뒤편으로 금오도가 길게 보인다.

금오도는 섬의 모양이 자라를 닮았다고 하여 큰 자라라는 뜻으로 ‘금오도(金鰲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화태대교.

 

▲ 신기항 전경.

 

10시 30분 : 정확하게 10시 30분 정각에 서서히 뱃머리를 돌리고..

 

힘찬 엔진의 굉음으로 물보라를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신기항을 저만치 밀어내고 금오도의 여천항으로 출발.. 도착은 약 25분이 소요된다.

오늘의 일기는 낮최고 5도.. 풍속 6~7m/s로 체감온도는 더 추울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파도도 잔잔하고 따뜻한 편이다.

 

갑판에 나와 있어도 별로 춥지 않기에 주변의 섬들을 돌아본다. 오른쪽에 보이는 섬은 "대두라도" 이다..

 

왼쪽은 "소두라도".

 

 어느새 여천항에 도착한다고 하선준비를 하라는 안내방송이다.

 

여천마을의 유래..

마을 뒷편에 대대산(大代山)의 줄기를 타고 대목산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산이 뻗어 내리면서 작은 봉우리 2개를 형성하고

그 모양새가 여자의 젖가슴처럼 생겼으며 그 산줄기를 따라 흐르는 계곡물이 맑고 깨끗해 여천(女泉)으로 불리우다가..

지금은 여천(汝泉)으로 고쳐 사용하고 있다.

 

 함구미방향의 도로도 보인다.

 

10시 54분 : 금오도 여천항 도착.. 약 23분정도 소요되었다.

 

 새해 첫 섬산행의 기대감으로 화이팅 소리는 좋았는데...

 

 헐!~~.. 가는날이 장날이라더니.. 금오도의 마을버스가 오늘은 휴무라고 한다..

금오도(金鰲島)는 면적 24km².. 해안선 길이 64.5Km로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약 2000여명이 살고있는 큰 섬이다.

 

▲ 주민들과 여행자들의 발을 묶어놓고는.. 환영한다면서.. 행복한 여행이 되라면서... 그런데 휴무라니...

관계기관에서 사전에 대민(주민.. 또는 여행객) 휴무공지를 하였는지.. 나는 알수가 없지만..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산행들머리까지 두 발을 대신해 줄 교통편이 없어니.. 일단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11시 02분 : 여천마을 삼거리에서..

비렁길팀.. 산행팀 들은 각자의 목적들머리까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갈길이 따로 있구나~~..

나는 산행팀을 따라 함구미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간다. 여기서부터 함구미까지는 자그만치 4.6km의 아스팔트 길이다.

 

▲ 향일암이 있는 여수시 돌산읍의 봉황산과 금오산이 보이고 남해의 설흘산.. 금산이 아련하다.

 

▲ 여천항 전경..

 

▲ 매봉산 옥녀봉 종주를 계획한 뫼들님과 정사장님은 얼마나 빠른지 따라잡을수가 없다..

 

11시 26분 : 송고마을 입구..

 

▲ 절묘한 곳에 집이 보여서..

 

▲ 당겨 보니... 빈집은 아닌것 같고..

 

▲ 함구미마을 꼬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 어느새..  뫼들님과 정사장님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 함구미마을과 선착장..

마을 서쪽에 대대산(大代山) 줄기 끝 부분이 용(龍)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용두(龍頭)라는 지명과 함께 해안변이 기암

절벽으로 이루어져 아홉 골짜기의 절경을 이뤄 이를 상징하여 함구미(含九味)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의 함구미는 "큰 포구" 라는 뜻이며... 함은 클 한에서 변형되었다고 한다..

 

▲ 금오도 비렁길 1구간은 함구미선착장 방향으로 가면 연결 된다.

 

▲ 매봉 등산로입구는 30m 전방이다.

 

11시 57분 : 매봉산 들머리.. 여천삼거리에서 딱 1시간 소요되었다.

 

▲ 섬들의 집들이 거의 그렇듯이 금오도에도 유달리 돌담이 많다.. 바람때문이다.

 

▲ 돌담이 ㄱ자로 굽어져 있다.. 바람이 정면으로 들어 오는 방향을 돌려놓는 섬사람들의 지혜다.

 

▲ 매봉산은 오른쪽으로.

 

▲ 또.. 헐!~ 이다.. 막아 놓았다..

막아 놓으신분.. 다 이유가 있어 막았겠소만.. 멀리서 차타고 배타고 물건너서 예까지 왔으니.. 우짜것쏘..

살째기 넘어 갈랑께.. 쪼~~까.. 봐 주쇼~ 잉..

 

▲ 그동안 통행이 뜸했는지 길바닥도 척박하고 을씨년 스럽다..

 

▲ 겨우 흔적만 있는 대숲길을 지나가니.. 담벼락 끝나는 지점에 제대로 된 등산로를 만난다.

 

12시 17분 : 금오도 비렁길1구간 마당재로 가는 갈림길..

 

▲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고 했던가.. 함구미에서 비렁길 1구간을 접속하여 미역널방과 송광사터를 지나면

마당재에서 매봉산으로 연결되어짐을 알고 있었는데.. 왜? 이제사 생각이 나는지.. 여천항 갈림길에서 하산하였더라면

꽤나 괜찮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칼이봉 느진목길은 전망도 없고 별 매력이 없는 길이었고 도로도 걷지 않았을 것이다.

 

▲ 이왕지사 때늦은 선택을 담아 둘 이유가 없다.. 매봉산으로..

 

▲ 탁 트인 너덜겅 계단에서..

 

▲ 우주선 발사대가 있는 나로도가 우주를 꿈꾸며 졸고 있다..

 

▲ 소사나무 군락지..

 

12시 48분 : 매봉산500m전 쉼터.. 여기서 쿠데타 1보 직전의 속을 달랜다.

 

▲ 매봉산 전망대.. 얼마전까지만 해도 6각정 정자가 있었는데 데크전망대로 바꾸어 놓았다.

 

▲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섬들.. 개도.. 월호도.. 두라도.. 낭도.. 화태도.. 자봉도 등등..

백리섬섬길은 여수 돌산도에서 고흥군 사이의 여수만과 여자만에 인접해 있는 섬들을 11개의 교량으로 연결하여,

풍부한 섬자원을 활용한 섬특화 관광을 목적으로 계획되었으며, 연결되는 섬들간의 전체길이가 약 백리에 달해

백리섬섬길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백리섬섬길 사업은 먼저 2005년 백야대교 완공을 시작으로, 2014년 돌산도와

화태도를 잇는 화태대교, 2020년에는 여수 화양면과 고흥 영남면사이의 여자만 섬들인 조발도 - 둔병도 - 낭도 - 적금도가

5개의 해상교량으로 각각 연결되었다. 앞으로는 2028년까지 백야도 - 제도 - 개도 - 월호도 - 화태도를 연결하는

4개의 교량이 완성되면, 백리섬섬길은 남해안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 금오도 비렁길 1구간의 송광사터.

 

▲ 백리섬섬길을 잇는 교각공사가 한창이다.

 

▲ 옥녀봉 유래.

옥녀봉에서 선녀들이 달밤에 베를 짜다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바닷가로 목욕하러 와서 날이 새는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목욕을 하고 놀다가 승천하지 못하고 그만 소나무로 변하였다고 한다... 옥녀봉 아래 마을이름을 직포라 한것도 이러한

전설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 지나온 매봉산..

 

▲ 금오도 비렁길 1구간이 끝나고 2구간 시작점인 두포항..

두포마을은 금오도에 처음 사람이 들어와서 살아서 첫개(初浦)라고 불리는 마을 초입에 불무골이 있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금오도에서 나무를 가져갔는데 나무를 베면서 필요한 연장을 만들던 풀무간 (대장간)이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봉산이었을 때 사슴 사냥을 위해 내려 오는 관청 소속 포수들이 처음 도착한

포구(浦)라 하여 "첫개"라 부르다가 옥녀봉과 관련된 전설에 의해 두포라고 했다.

즉, 옥녀봉에 살던 선녀인 옥녀가 뽕잎을 이용해 누에를 쳤는데, 누에고치가 많아 말(斗)로 되었다 하여 두포가 되었단다.

 

▲ 멀리 둔병대교가 보인다.

 

13시 35분 : 매봉산.

금오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며 예로부터 자연의 보고였다. 조선시대에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임금의 관을 짜거나 판옥선 등 전선(戰船)의 재료인 소나무를 기르고 가꾸던 황장봉산이었을 만큼 원시림이 잘

보존됐다. 고종은 금오도를 명성황후가 살고 있던 명례궁에 하사했으며, 명례궁에서는 이곳에 사슴 목장을 만들어 사람의

출입과 벌채를 금했다.

 

때문에 사람들에 의해 금오도가 본격 개척된 지는 120여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884년 태풍으로 금오도의 소나무

들이 쓰러지면서 금오도 출입제한이 풀렸고 이듬해부터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수백년간 사람의 발길을 허락지

않던 금오도는 이제 2000여명의 주민들이 '반농 반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 매봉산 삼각점... 우리나라(남한)에 14개밖에 없다는 1등급 삼각점중에 1번째 삼각점이다.

여수의 1등급 삼각점으로 1번째이며.. 1993년에 복구하였다는 표시다.

 

참고로..

11부터 19까지는 1등 삼각점.

21부터 29까지는 2등 삼각점.

301부터 399까지는 3등삼각점.

401부터 499까지는 4등 삼각점이다.

 

▲ 콩자개 덩굴.

 

▲ 독특한 모양의 충영의 일종.

 

▲ 문바위.

 

▲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섬들의 절경은 기본이다. 앞에도 첩첩이 섬이고 뒤를 보아도 첩첩이 섬이다. 섬과 섬사이

에 에메랄드 빛 바다가 있다. 섬 위에는 코발트 블루 바다를 닮은 하늘이 있다. 온통 블루다. 마음이 상쾌해진다.

 

14시 18분 : 여천항 갈림길..

 

▲ 여천항 도착시간이 17시까지 이기에.. 시간 배분을 위해 다음 탈출지점인 느진목으로...

 

▲ 조망은 1도 없는 칼이봉..

 

▲ 여천항 갈림길에서 느진목 가는길은 조망도 없고..

 

▲ 조금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길이다.

 

14시 52분 : 느진목...

옥녀봉의 조망이 좋다는데.. 1.8km를 남겨 놓고 오늘은 옥녀와의 만남은 인연이 아닌것 같아서 아쉽지만 돌아선다.

 

▲ 대유마을로 가는길..

 

▲ 케이블 매설구간이라.. 상당히 까칠한 내림이다.

 

▲ 하늘타리열매(하늘수박).. 해열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 객지에 나간 아들.. 딸.. 손주들.. 찾아오면 바리바리 손에 들려서 보낼 생각에..

잠시도 쉬지 않고 허리굽혀 일하시는 당신의 모습에서...이 땅의 어머님을 본다..

 

금오도에는 수많은 산야초가 청정한 자연과 함께 자라고 있지만... 그 중에 "방풍"과 "황금".. 그리고 시호는 금오도를 대표

하는 약용식물이다. 방풍은 이름에서 느끼는 대로 중풍을 예방하는 효능이 많다는 약초이다.

 

열을 내리는데 특효라는 "시호"는 산미나리 또는 멧미나리로도 불려진다. "황금"도 소염, 충열, 해열제 등으로 다양한 약리

작용으로 쓰임새가 많은 약초이다. 방풍나물 방풍은 풍을 예방하며, 남자들의 바람기를 잡아준다는 효능도 있다고 한다.

 

▲ 유자...

 

▲ 도로를 따라 여천항으로..

 

▲ 저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오늘은 완전 도로 행군이다.. 시간이 여유가 많으니 쉬엄쉬엄 가자..

 

▲ 드디어 여천항이 내려다 보인다.

 

15시 48분 : 금오도 여천항여객터미널 종료.

 

▲ 여수로 가는 정기 여객선.. 우리가 타고갈 신기항으로 가는 배도 들어 오고있다.

 

17시 23분 : 가는배와 오는배.. 상당히 먼거리처럼 보이는데..

 

17시 28분5분만에 접안이다.

 

승선하여 돌아본 여천항...

옥녀야.. 꽃피고 따뜻한 날에 꽃단장 하고 있을 너를.. 다시 찾아 오리라..

 

▲ 선실에서 잠깐 누웠는데.. 하선한다고 분주하다.

 

17시 52분 : 신기항..

 

▲ 화랑의 애마를 타고.. 20여분을 달려..

 

▲ 돌산읍 먹거리 단지에서..

 

▲ 뜨끈 뜨끈.. 쫀득하고 시원한 양푼이 동태국.. 돌산갓김치..

그리고.. 최고의 주류 바텐더의 손끝에서 절묘하게 배합된 한잔의 쏘맥칵테일은 환상의 목넘김이다..

 

산미덕풍(山味德風)..

산의 맛을 음미하는 사람은 스스로 덕의 바람을 풍긴다..

 

오늘..

금오도를 함께하신 분들이야 말로

산의 맛을 알고 스스로 긍정의 덕을 풍기시는 분들이다..

2025년 01월 16일(목요일).
무등산국립공원 : 광주광역시.

 

산행코스 : 원효사주차장-무등산옛길입구-목교쉼터-서석대-인왕봉-입석대-장불재-석불암-규봉암-원효사주차장.

산행시작 : 원효사주차장 09시 47분.

산행종료 : 원효사주차장 15시 31분.

전체거리 : 약14.7km.

전체시간 : 05시간 44분.

운동시간 : 05시간 29분.

휴식시간 : 00시간 15분.

누구하고 : 산이좋아산악회.

 

09 : 47  원효사주차장 출발.

09 : 53  무등산옛길입구.

11 : 07  목교쉼터.

11 : 25  서석대.

11 : 42  인왕봉.

12 : 10  입석대.

12 : 20  장불재.

13 : 12  석불암.

13 : 27  규봉암.

14 : 40  꼬막재.

15 : 31  원효사주차장.

 

09시 43분 : 광주광역시 무등산 원효사주차장.

 

 산이좋아산악회 2025년 1월 첫산행 출발에 앞서... 무등산 눈꽃세상을 기대하며 단체샷.

 

▲ 많이 추울거라는 일기에보와는 달리.. 여기 현장의 기상정보는 0풍속에 -1.6도로 출발한다.

 

▲ 무등산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오늘의 산행코스는 무등산 옛길을따라 인왕봉에 올랐다가 무등산을 한바퀴 돌아오는 환종주로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다.

 

09시 53분 : 무등산옛길 입구.

 

무등산 옛길은 광주 도심에서 원효사를 거쳐 서석대까지 옛사람들이 오르던 길을 복원한 길이다.

 

무등산 옛길 코스는.. 목교쉼터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오름으로 이어진다.

 

10시 03분 : 풍암제 갈림길.

이정표를 보지않고 길바닥만 보고 가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금곡동제철유적(金谷洞製鐵遺蹟)은..

이곳은 임진왜란 때 김덕령(金德齡) 장군이 무기를 만들었던 장소로 전해져 주검동(鑄劍洞)이라고도 부른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1567~1596)의 의병 활동과 관련한 무기 제조창으로 알려졌다. 1992년 발굴조사결과 제철에

필요한 시설과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설, 가공하는 시설이 확인되었다. 또한 쇠로 만든 화살축, 추 모양 철기, 못,

찌꺼기 등이 발견되었다. 무등산에서 철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1994년 2월 18일 광주광역시의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었다.

 

큰 바위에 "만력계사 의병대장 김충장공 주검동(萬曆癸巳 義兵大將 金忠壯公 鑄劍洞)"이라 새긴 글귀가 있다.

만력 계사년은 김덕령이 의병을 일으킨 1593년도다. 만력은 1573년 부터 1620년까지 사용하던 연호이고, 계사는 선조

26년 1593년으로 의병으로 활약한 시기를 뜻한다. 충장이란 시호를 쓴 것으로 보아 1788년 이후 김덕령 장군의 활약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새긴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시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김덕룡장군(1567~1596)은 무등산 자락인 충효마을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동하며 여러차례 왜군을 무찔렀다. 이몽학(李夢鶴)이 반란을 일으키자 도원수 권율의

명을 받아 진주에서 운봉(雲峯)까지 진군했지만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모함으로 체포되었다. 이에 정탁..김응남(金應南) 등

이 그의 무고를 힘써 변명하였으나 20일 동안에 여섯 차례의 혹독한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그의 나이 불과 29세때 였다.

 

10시 20분 : 물통거리.

옛날부터 나뭇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길이었어나 1960년대에 군부대가 보금품을 나르던 나르던길로써 1980년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길이다.

 

 10시 33분 : 치마바위.

김덕령장군이 백마를 타고 서석대에서 의상봉으로 뛰어 달리는 훈련을 할때 이곳으로 떨어지는 순간 김덕령장군의 누나가

치마로 백마와 김덕령 장군을 받았다는 치마바위이다. 무등산 2봉인 지왕봉에는 김덕령장군이 수련하면서 뛰어 넘었다는

뜀바위가 있어며.. 의상봉정상 바위에도 말발굽 흔적이 있다.

 

 11시 07분 : 목교쉼터 임도 갈림길.

 

목교안전쉼터.

 

서석대능선의 상고대.

 

 전망대에서..

 

 중봉너머로 광주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오늘은 곰탕이다.

 

 살짝 보이는 장불재 통신탑..

 

11시 25분 : 서석대 전망대..

 

 서석대는...

무등산 주상절리대의 일부로, 한 면이 1m 미만인 돌기둥이 약 50m에 걸쳐 동서로 빼곡하게 늘어서 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서석대에 저녁노을이 비치면 수정 병풍처럼 반짝인다 하여 ‘수정 병풍’이라고도 하였어며, 입석대와

더불어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서석(瑞石)은 선돌의 한자식 표현으로 고대 선돌숭배 신앙의 중요한 표상이다.

서석대를 구성하는 암석은 무등산응회암이라고 명명된, 중생대 백악기 후기에 분출된 화성쇄설물이 지면으로 퇴적된 직후

뜨거운 상태에서 입자들이 서로 달라붙어 형성된 용결응회암이다.

 

 서석대는..

조선전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고경명은 유서석록(遊瑞石錄)에 서석대에 관한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가까이 보면 겹겹

이 막힌 요새와 철옹성에 무장한 병사 일만명을 나열한 듯 하다.. 세속을 초월한 선비가 군중을 떠나 홀로 가는 듯하구나~.”

 

11시 31분 : 서석대 표지석.

여기서 인왕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 올것이다.

 

 인왕봉 가는길..

 

올라온자에게만 주어지는 설국의 세계.. 무등산이 나에게만 주는 선물같은 그림이다.

선두그룹에서 조금 일찍 서둘러 올라왔더니.. 길위에 아무도 없는.. 오롯이 나만의 무등산이 된다. 그리고 칼바람..

 

바람에 실려 가는 백운이 백마능선에서 말갈퀴가 된다.

 

 인왕봉정상석 입구..

그런데 분위기가 바뀌었다.. 2024년 4월 28일에는 정상표시가 화살표시에 있었다.

 

2024년 4월 28일의 인왕봉정상표시는 이러했었다.

 

 11시 42분 : 새로 세워진 인왕봉 인증.

무등산(無等山)은 광주와 담양군, 화순군과 경계에 있는 산으로 마한 백제시대에는 무돌, 무당, 무덤산이라 불렀고

통일신라 이후 무악(武岳), 무진악(武珍岳), 고려시대에는 서석산(瑞石山), 입석산(立石山)이라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무등산이라 하였다 한다. 무등산은 산세가 유순하고 산형이 순하고 덕있게 생겼으므로 덕이 높아 차등이

없다하여 무등산(無等山)이라 하며.. 1972. 5. 22.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2. 12. 27.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무등산 정상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 인왕봉만 57년 만에 2023년 09월 23일

상시 개방되었고 지왕봉 천왕봉에는 군부대가 주둔하여 통제 되고 있다.

 

 인왕봉의 암석.

무등산 정상에 있는 세 봉우리를 삼봉, 삼왕봉, 삼황봉 등으로 부르는데... 가장 높은 곳이 천왕봉(天王峯)이고 가운데가

지왕봉(地王峯)이며, 지왕봉에서 서쪽 서석대 방향으로 내려오는 곳에 있는 봉우리가 인왕봉이다. 고경명(高敬命)의

『유서석록』에서는 지왕봉을 비로봉(毗盧峯), 인왕봉을 반야봉(般若峯)이라고 하였다. 고경명의 묘사로는 천왕봉과 지왕봉

사이의 거리는 백여 척[약 30m]이고, 지왕봉과 인왕봉의 거리는 무명베 한 필 정도로 가깝다고 적고 있다. 인왕봉은 천왕봉

의 동쪽에 있는 지왕봉의 서쪽으로 인접하여 있는 봉우리이며, 인왕봉 정상에는 주상절리가 집중되어 있다. 서남쪽으로

서석대, 입석대가 있다.

 

 인왕봉의 칼바람에 쫏기듯.. 빠르게 내려 간다.

 

 무등산의 칼바람도 소백산 비로봉 칼바람 못지 않게 대단하다..

 

 바람은 카메라에 담을수가 없지만.. 억새의 굽은 허리에서 바람의 흔적을 알수가 있다.

 

▲ 다시 서석대 표시석에서..

인왕봉이 개방되기전까지는 무등산 정상자리를 대신 하고 있었다.

 

▲ 장불재 하산길이 몽환적으로.. 천상의 세계가 따로 없다. 이런 풍광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 하늘이 서서히 열리며.. 장불재가 뚜렷하고..

 

▲ 햇살속에 빛고을 광주시가 보인다.

 

▲ 안양산의 철쭉.. 낙타봉넘어 백마의 말갈퀴 같은 억새.. 만연산의 작지만 옹골찼던 암릉길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 뒤돌아 본 서석대 길..

 

▲ 하산길 내내 눈을 현혹시키는 백마능선..

 

▲ 그리고.. 한없이 내어주던 엄니의 젖무덤같은 안양산의 부더러움.. 그 위로..한줄기 백운은 눈을 홀리기에 충분하다..

 

▲ 승천암(昇天巖).

옛날 이 부근의 암자에 무엇엔가 쫓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준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해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았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어야겠다고 했다.

얼마 후 난데 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렸고 이무기는 곧장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이다.

 

▲ 풍력발전기가 있는전남 화순의 별산 너머로 모후산도 보이고 그 뒤쪽으로는 순천 조계산도 희미히게 다가온다.

 

▲ 어마어마하게 큰..주상절리 파편들..

 

▲ 누운놈과 선놈들의 주상절리다.

 

입석대(立石臺)는...

임진왜란 때 6,0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광주출신의 고경명(高敬命 : 1533~1592)선생은

전라도의 유일한 문과 장원급제자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까지 무등산을 사랑하면서 선조 7년(서기1574년 ) 광주목사

임훈등과 함께 500년 전 무등산에 올라 그 유명한 무등산 산행기 유서석록(遊瑞石錄)을 남겼다.

 

고경명이 1574년 4월 21일에 입석대와 입석암을 바라보고 유서석록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네 모퉁이를 반듯하게 깎고 갈아 층층이 쌓아 올린 품이 마치 석수장이가 먹줄을 튕겨 다듬어서 포개놓은 듯한 모양이다.

(중략) 돌의 형세를 보니 뾰족뾰쪽 하여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는데 그 가운데 헤아려 볼 수 있는 분명한 것은 16개의

봉우리다. 그 속에 새가 날개를 펴듯, 사람이 활개를 치듯 서 있는 건물이 암자이다. 입석암(立石庵)은 입석대의 한가운데

자리 잡아 우러러 보며 위태롭게 솟아서 곧 떨어져 눌러 버리지 않을까 두려워서 머물러 있기가 불안하기 그지없다.

바위 밑에 샘이 두 곳 있는데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지금은 주상절리의 생성과정이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만.. 그 옛날에는 신비스러웠을 것이다.

 

 입석대(立石臺) 아래는 암자가 있었다.

 

제주 바닷가나..동해안의 주상절리대와는 달리 해발 750~1187m 산악지대에 분포된 점이 특징이다.

 

12시 19분 : 장불재.. 대피소에서 마음에 점을찍고 간다.

 

장불재는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되는 해발 900m의 고갯길이다.

장불재의 유래는 문헌비고에는 장불치, 동국여지승람에는 장불동이라 적혀 있으며

"옛날 이 고개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 장불이 있었다"하여 이 고개를 장불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장불재의 손가락 바위.

 

 장불재의 고 노무현 전대통령.. 아!~~ 참 좋다.

 

 장불재쉼터에서 바라본 서석대 방향.

 

 그리고 서석대를 당겨본다..

 

 당겨본 입석대.

 

 12시 44분 : 규봉암방향으로..

갈길이 머니.. 서둘러 낙타봉이 보이는 쪽으로 길을 서두른다.

 

 도원마을 갈림길.. 규봉암은 직진이다.

 

피안교..

아주 작은 목교에 이름이 있다..

 

13시 02분 : 석불암 갈림길에서..

아미티불을 알현하기위해 석불암으로 향한다.. 두 길은 규봉암 직전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석불암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후산도 그림이다.

모후산은.. 고려 공민왕 10년에 홍건적이 자비령을 넘어 쳐들어오자 왕과 왕비는 태후를 모시고 안동, 순천을 거쳐 이곳

산기슭까지 피난왔다고 하는데.. 수려한 산세에 반한 왕이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해를 넘겨 1년여 남짓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산의 이름을 어머니의 품속같은 산이라 하여 모후산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 지공너덜..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깨어져 산능선을 타고 모인 산물로, 특이한 지형경관을 이루며, 인도 승려인 지공

대사가 이곳에서 석실을 만들고 좌선 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유래가 전해온다.

 

▲ 석불암 축대..

 

▲ 석불암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서 요사채 뒤로 돌아가면 석불사 아미타불을 모셨다..

 

▲ 석불암 아미티여래불은.. 1933년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아미타여래이며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것을 최근 다시 지은 것으로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작은 민가형 건물이다.

 

▲ 석불암 순둥이 견스님...

 

▲ 안쓰럽게도 다리를 하나 잃었다.. 아마도 불법 올가미에 걸렸던건 아닌지..

 

▲ 석불암 요사채.. 카메라를 막 들이대는 순간.. 바깥쪽 창문이 열리며 스님이.. "차 한잔 하고 가세요~~" 하신다.

들어가면 금방 나오기가 쉽지 않을것도 같고.. 해서.. "스님 대구에서 왔는데 갈길이 너무 멀어서 죄송합니다~" 라고 하니..

그러냐고.. 대구 팔공산 모 암자에서도 7년간 수도하였다면서.. 조심해서 하산하라고 하신다.. 감사합니다..

 

▲ 지공대사 수도처..

 

▲ 내부모습..

 

▲ 석불암에서 규봉암 가는길의 우람한 바위들이 부처님 세상에 있어서 그런지 바위사이로 순하게 길을 내어 준다...

 

▲ 규봉암 직진길과 다시 만난다.

 

▲ 규봉암 가는길..

 

▲ 규봉암 높은 축대.. 마치 산채를 연상하게 하는 규모다.

 

▲ 규봉암 일주문을 새로 조성했는가 보다..

 

▲ 규봉암 문바위..

 

▲ 규봉암 들어가는길이 원으로 되어 있다.. 음양이 없는 무극의 세상이라는 의미기 있지 않을까..

 

▲ 규봉암은..

1300년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절로 주위에는 삼존석. 십대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암자는 마치 범종이 매달려

있는 형국이라 한다. 규봉암은 무등산에 있는 조계종 사찰로 창건연대가 확실하게 전하는 문헌은 없고 신라시대 의상대사

가 창건하고 순응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한다.  또, 고려 초 도선국사,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한다.아후 6.25전쟁때

사찰이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가 1957년 관음전과 요사채를 지어 복구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규봉암은...

무등산 광석대는 서석대.. 입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주상절리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우며.. 유네스코 세계지질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광석대 돌기둥 아래에는 규봉암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예로부터 "규봉암을 보지 않고 무등산에 올랐다 말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난 절경 중 한 곳이다.

 

▲ 규봉암 관음전의 풍경소리가... 청아하고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 규봉암 원통문을 나서며 바라 본 문바위...

 

▲ 여기서도 자칫하면 도원마을로 빠질수 있는 삼거리다..

 

▲ 규봉암을 지나서 부터는 너무나 착하게 거의 수평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이다...

 

▲ 그런데...하산길이 너~~~무... 엄청~~~ 멀다.

 

▲ 멧돼지 일가족이 눈밭에 먹을게 없었던지... 뒤집어 놓았다.

 

▲ 광일목장 갈림길...

 

14시 19분 : 북봉의 신선대 갈림길..

 

▲ 북봉 신선대 가는길... 아무도 가지 않았다.

 

▲ 당겨본 북봉의 신선대바위.

가지못하면.. 내앞으로 호출하면 된다... 별로 매리트(merit)가 없는것 같다.

 

▲ 다시.. 무념무상으로 걷고 또 걷고..

 

▲ 또 걷는다.

 

14시 40분 : 드디어 꼬막재 도착... 하산시간 16시까지는 충분히 도착할수 있을것 같다.

 

▲ 꼬막재 유래..

옛 선조들이 나들이 할 때 이용했던 중요한 길로서, 그리 높지 않고 나즈막한 재이어서 꼬막재라 불리워졌다고 한다.

 

▲ 꼬막재의 쭉쭉빵빵 소나무..

 

▲ 꼬막재에서의 내림길도 비교적 완만한 경사다..

 

▲ 폐업한 무등산 호텔건물이 보이고..

 

15시 19분 : 자연애 문을 나선다.

 

15시 31분 : 무등산 환종주 산행종료..

 

▲ 평균속도 2.7km인걸 보니.. 길은 전체적으로 순했던모양이다..

 

▲ 남은 시간 29분을 활용하여.. 원효사로..

 

▲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의 지증왕이나 법흥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뒤 삼국통일을 전후한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이곳에 머물면서 암자를 개축한 뒤부터 원효사 · 원효당 · 원효암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 감로정..

 

▲ 물에 동전을 던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중금속 오염은 어쩌라고... 잘못된 불심이다.

 

▲ 원효사 무등선원..

 

▲ 원효루를 나서며.. 정면으로 보이는 무등산..

 

▲ 원효사를 떠나서..

 

▲ 전남 담양의 메타쉐콰이어길이 이쁜 곳에..

 

16시 34분 : "ㅊㅍ"전통 안두부..

 

▲ 두부버섯전골..

 

▲ 산이좋아 회장님의 건배..

 

2025년의 첫산행을 마무리하는 산이좋아 회장님을 보며

문득.. 불광불급(不狂不及) 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에 깊이 열정을 다하지 않으면 큰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여기서 "미치다"는 평범함을 넘어선 몰입과 열정이 탁월한 결과를 가져옴을 의미한다.

 

오늘의 무등산 환종주 산행을 무탈하게 마칠수 있음도

회장님과 산대장님의 열정과 회원님들의 노련함이 만든 결과이다..

 

덕분에..

무등산 설국의 눈꽃세상은..

큰 선물이었습니다.

 

2025년 01월 05일(일요일).
무직산(578m) : 전라북도 순창군.

 

산행코스 : 금평교-옥새바위-한반도전망대-무직산-전망대-스핑크스바위-암릉-호정소-금평교 산행종료.

산행시작 : 금평교 10시 41분.

산행종료 : 금평교 14시 42분.

전체거리 : 약7.6km.

전체시간 : 04시간 02분.

운동시간 : 03시간 33분.

휴식시간 : 00시간 29분.

누구하고 : 솔잎산악회따라서.

 

10 : 41  금평교 출발.

11 : 18  옥새바위.

11 : 26  413봉(옥새봉).

11 : 42  한반도 전망대.

12 : 16  무직산.

12 : 25  데크전망대.

12 : 28  스핑크스바위.

12 : 32  모자견바위.

13 : 12  암릉.

14 : 19  호정소.

14 : 42  금평교 산행종료.

 

 10시 38분 : 전북 순창군 금평마을앞 금평교 도착.

함박눈이 아닌 싸락눈이 내리는금(錦坪)마을은 평평한 비단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10시 41분 : 산행 들머리인 금평교입구에서 호정소 등산로 이정표를 따른다..

 

하얀 캔버스(canvas)에 그려질 오늘의 무직산 산행을 기대하며 아무도 밟지 않은 길위에 조심스레 첫발을 내딛는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오른쪽 봉우리를 경유하여 무직산 정상을 찍고 반원을 그리며 왼쪽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치천 뚝방길을 따라가다가..

 

 산으로 접어드는 곡각지점에서..

 

 이정표를 확인하고..

 

 임도수준의 넓은길을 따라 3~4분가량 진행하면..

 

새로 세워진 이정표에 <무직산 정상 2.5km>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옥의 티가 보인다.. "옥새"를 "옥쇄"로 표기하였다..

 

 목교를 건너면 본격적인 무직산 등산의 시작이다.

 

옥새봉을 향해 급오름을 치고 오르면서 몸은 서서히 데워지기 시작한다.

 

 전망바위를 오른쪽으로 에돌아 올라가면..

 

 탐스런 함박눈이 아니라서 조금은 아쉽지만.. 솔방울 하나 마다에 싸락눈이 내려 앉아 방울방울 눈꽃이 핀 모습이다.

 

 옥새바위 뒤통수..

 

11시 18분 : 옥새바위..

"옥새(玉璽)" 란.. 국권의 상징으로 국가적 문서에만 사용하던 임금의 도장을 말하며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의 도장이다..

"옥새(玉璽)"를 간혹 "옥쇄(玉碎)"로 잘못 혼동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옥쇄’란 ‘옥처럼 부서진다‘란 뜻으로

즉, 명예나 충절을 위해 깨끗이 죽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다시.. 돌아다 본 옥새바위인데... 임금님이 썼던 익선관과도 비슷하게 보인다.

 

 11시 26분 : 옥새봉(413m)..

 

옥새봉(413m)에서는 낙엽에 급경사 내림이지만 싸락눈이라 미끄럽지는 않다.. 그러나 안전이 우선이다...

 

 옥새봉(413m)을 지나서 부터는 바람을 막아주는 소나무들의 사열을 받으며 기분좋게 진행하다가..

 

 첫번째 데크계단을 지나고..

 

 두번째 데크계단을 오르면 무직산 비경이 펼쳐지는 전망대가 나오지만.. 오늘의 조망은 꽝이다.

 

 전망대가 가까워 질수록.. 몽환적인 분위기에 무협지속의 학이 신선을 태우고 날아오를것 같다.

 

 전망대 입구..

 

11시 42분 : 한반도 전망대.

여기서 바라보는 한반도지형과 건너편의 회문산.. 발아래 호정소의 조망이 압권인 곳인데.. 오늘은 무직산일대에 큰 잔치가

있는날인가 보다.. 엄청나게 큰 가마솥을 걸고.. 곰탕을 끓이는지.. 온산에 하얀 김이 서리고... 곰탕이 잘 고아졌는지 진하게

우려낸 국물속 처럼 조망은 1도 없는 뽀오얀 안개속이다.

 

순창의 랜드마크(land mark)인.. 한반도 지형..

한반도를 닮은 지형으로 무직산 최고의 포인트로.. 최근.. 순창의 숨은 비경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곳이다.

태극 모양으로 물길이 휘돌아 감기는 모습은 다른 한반도를 닮은 지형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곳 마을주민들은 한반도 지형이라 하면 모른다.. 발기한 남근이라고 하는데. 지형의 끝부분에 있는 움푹 패인

호정소(湖瀞沼)를 음(陰)으로 보고 서로 마주보고 있기에 음양(陰陽)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당겨 본 독립가옥..

아쉬움에 1년 6개월전에 찍은 사진을 올려 본다.

 

한반도 지형(남근)에 얽힌 이야기..

물돌이 지형을 순창군에서는 한반도 지형이라 하고. 마을 사람들은 음양(陰陽)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한반도 지형의 물돌이 윗쪽은 도로가 없을때에는 노루목재로 넘어 다녔는데.. 도로가 생기면서 원인도 모르게 건강하던

장정이 갑자기 죽어나가는 사단이 나자.. 마을의 원로들은 원인이 도로개설로 끊어진 남근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뒤

도로가 지나가는 노루목재에 생태터널을 놓아 능선을 연결하면서 부터는 더이상의 불상사가 일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반도 전망대 안내문에는 "옥새바위"라고 제대로 맞게 적어 놓았다.

옥새바위 유래가 적혀 있다.. 무학대사가 만일사에서 보고 옥새바위라고 하였다는 얘기다..

 

 한반도 전망대 안내문 뒤에 있는 옥새바위가 희미하게 보여서.. 수묵화를 보는것 같다..

 

다시 옛사진을 호출해 본다.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옥새바위는 아기코끼리 모습처럼 보인다.

 

 

눈발과 절경을 이루며.. 가장 어울리는 나무가 소나무인데... 100년안에 우리나라에서 소멸된다고 한다.. 안따깝다.

 

12시 10분 : 율리 통안마을 갈림길..

 

 12시 16분 : 무직산 정상.

 

▲ 무직산의 무(珷)자는 "옥돌" 을 말하며, 직(織)자는 "짜다" 는 뜻의 "옥돌로 짜여진 산" 이라는 이름답고 예쁜 산이다..

 

 배배꼬인 목생(木生)...

 

 실제로는 이 방구돌이 무직산에서 제일 높다..

 

 크레바스바위.. 저 구멍으로 빠지면.. 여차저차 되는 지름길이다.

 

과 6년전에만 해도 저 방구돌이 무직산 정상이라는 표지가 고목에 걸려 있었다..

우쨋기나 방구돌은 협소해서 위험하다.. 정상석은 안전한 현재의 위치가 맞다.

 

12시 25분 : 데크전망대..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꼭꼭 숨겨놓아도 주머니 속의 송곳은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내려다 보면.. 자~알..생긴(?) 남근에 자연의 궁합이 절묘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물도리를 볼수 있음은 오른자

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고.. 눈의 호사인데 안개속이라 볼수 없어서 이 사진도 호출한다.

 

호정소와 절묘한 물도리다..

 

부처바위..

스핑크스바위.. 삼신할머니바위.. 불(佛)바위로도 불리는데 스핑크스는 산꾼들 사이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삼신할머니

바위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분이 올라와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해서 마을에서 이렇게 부른다...불바위는 만일사에서

부르는 이름이며 ‘부처바위’를 뜻한다.

 

 스핑크스와 비슷하다..

 

12시 32분 : 모자견(母子犬)바위..

 

모자견(母子犬)바위가 위에 내려다 보고 있다..

 

▲ 헐!~... 1년 6개월 사이에 암릉지대에 데크를 설치해 놓았다.

.

▲ 이러한 암릉지대 였는데~...

 

▲ 눈발이 잦아지면서... 호정소의 물도리가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 소나무아래 전망바위가 만일사를 조망할수 있는 최상의 자리다..그러나~...보이지 않는다..

만일사는.. 고려 말기에 무학(無學)대사가 이성계(李成桂)의 등극을 위하여 중건하고 1만일 동안 기도하였던 사찰이다.

 

▲ 부채바위..

 

▲ 노루목재 생태터널,

남근의 맥을 잘라버렸던 노루목재에 터널로 맥을 이어 놓았다...

 

▲ 밀양박씨 세장산.

 

치천보... 중앙에 가면 공룡발자국이 수없이 많이 보인다.

 

▲ 호정소(湖淨沼)...

호정소에는 용이 되지 못한 못된 이무기가 살았다. 비린내를 좋아해 주민이 비린 생선을 먹고 지나가면 물고 행패를 부려서

무직장군이 산 동쪽 호정소와 이어진 큰 동굴로 들어가 이무기를 쫓아냈다는 무직장군의 전설이 있다.

 

치천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흘러서 치천(淄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겨본 옥새바위..

 

도로가 생기기전에.. 수변산책로가 개설되기전에는..

조금전 공룡발자국이 있는 치천보(湺)에서 저 징검다리를 건너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완전 폐쇄다.

 

 금평마을과 치천..

비단마을이란 뜻을 가진 아름다운 금천리 금평(錦坪)마을 이건만... 마을 앞을 흐르는 "치천"에 아픈 역사가 있으니..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고 8월 16일에 남원성을 함락한일본군의 주력 부대는 순창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순창군수 배경남(裵慶男)은 가족과 함께 산속으로 도망하였고,일본군 500여명이 무인지경으로 순창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읍민들과 주변 마을 사람들은 피난 짐을 꾸릴 시간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하였다. 일본군들은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재산을 약탈하였으며.. 백성들을 무차별학살하였다. 이때 일부 사람들이 북쪽인 구림면 금천리로 도망하였는데..

이곳 "치천"의 물가에서 모두 학살당하였다...  -- 디지털순창문화대전.. 발췌 --

 

 금평교 교각이 스마일~ 하고 있다.

 

 솔잎산악회 안전수송부 사장님의 작품 1.

 

 솔잎산악회 안전수송부 사장님의 작품 2.

 

 성냥팔이 소녀 아닌.. 아짐씨..ㅎㅎ~.

 

14시 42분 : 다녀온 무직산 능선을 바라보고 산행을 종료한다..

 

 

15시 14분 : 순창군 구림면의 ㅈㄷ식당... 두번째 오는 식당이다.

 

 닭볶음탕...

 

 솔잎산악회 회장님의 건배..

2025년 새해 첫산행을 안전하게 마무리 하고.. 을사년 올 한해도 무사무탈로 산하를 누벼 봅시다..

 

 날이 차가워서 발그레 상기되었나요?... 아니면.. 한잔으로?.. ㅎㅎ~ 향기나 보기 좋아요..

 

 그리고.. 대구 성서 모처에서 마늘소스 족발...

2024년 11월 17일(일).

변산반도국립공원 : 전북 부안군.

 

산행코스 : 남여치-월명암-봉래곡삼거리-직소보전망대-직소폭포-관음봉삼거리-관음봉-내소사-내소사주차장.

산행시작 : 남여치  10시 23분.

산행종료 : 내소사주차장  15시 19분.

전체거리 : 약12.9km.

전체시간 : 04시간 58분.

운동시간 : 04시간 49분.

휴식시간 : 00시간 9분.

 

10 : 23  남여치.

11 : 14  월명암.

12 : 00  봉래곡삼거리.

12 : 03  직소보전망대.

12 : 10  선녀탕.

12 : 17  분옥담.

12 : 21  직소폭포.

12 : 50  재맥이고개.

13 : 18  관음봉삼거리.

13 : 38  관음봉.

13 : 44  세봉전망대.

14 : 05  관음봉전망대.

14 : 23  관음봉삼거리.

14 : 59  내소사.

15 : 19  내소사주차장.

 

 10시 21분 : 남여치(藍輿峙)에 있는 월명암 표지석에 도착.

남여(藍輿)는.. 지붕없는 가마를 뜻하며 여기에 고개치(峙)를 합성한 고개이름이다.

입에 올리기도 거북한 구한말 내각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이 전라북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여를 타고 낙조대에서 서해

낙조를 보고 쌍선봉에 올랐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유래를 알고 나니 기분이 씁쓰레하다..

 

아래 윗길.. 둘다 주차장으로 가는길인데.. 쌍선봉(월명암)들머리는 아래길로 간다.

 

월명암 1.9km이정표를 따라 길을 건너면..

 

삼나무숲 운동기구가 있는 곳이 들머리다.

 

쌍선봉(월명암)들머리..

 

 처음부터 고개를 치켜든 능선길이 급경사길은 아니지만..

 

지붕 없는 남여를 메고 올라야했던 가마꾼들에게는 생고생을 하기에 충분한 경사다.

 

 잠시 착한듯 하더니..

 

금새.. 거친 바위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고..

 

갓 떨어진 낙엽은 수액이 남아있어서 잘못 밟으면 미끄럽다.. 특히 하산길에 조심하여야 한다.

 

 쌍선봉은 출입금지다.. 조망이 아주 좋다는 쌍선봉이라길래 날씨만 좋았다면.. 금줄울 넘었을텐데.. 오늘은 구름이다.

 

 월명암 500m 남은 지점..

 

 여기서부터 월명암경내인가 보다..

 

 쌍선봉에서 내려오는 주능선이 보이고..

 

 쌍선봉 출입금지.. 특별단속이란다.. 변산반도국립공원에서 의상봉(508.6m) 다음으로 두번째 높이의 쌍선봉(460.7m)

인데.. 주등산로에서 제외되어 샛길 취급을 받는다.

 

직진하면 낙조대로 가는길인데.. 여기도 막아놓았다..

 

11시 14분 : 월명암(月明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 소속이다.

부안군 변산면 쌍선봉(雙仙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부설이 창건한 암자로 691년에 부설(浮雪)이 창건하고

조선 때 진목대사가 여기에 다시 암자를 세웠고 한말에 의병의 본거지가 되어 불에 타버린 후 백학명 선사가 재건하였는데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타버려 고쳐 지은 암자다.

 

안개낀 아침풍경이 아름다워 월명무애(月明霧靄)가 변산8경중 하나로 꼽히며.. 그저 거기에 앉아 있기만 해도 도를 얻게 

된다는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로 대둔산의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함께 호남의 3대 영지로 불리운다.

월명암에서는 변산의 최고봉 의상봉(510m)이 조망되고 월명암 뒤쪽에 변산 8경의 하나인 낙조대가 위치하고 있다.

 

부설거사(浮雪居士)에 매료된 묘화낭자가 자살을 기도하자 할 수 없이 생명구제 차원에서 부설스님이 결혼하여 낳은 자녀

이름이 아들 등운과 딸 월명이었다... 스님이 입적한 후 자녀의 이름을 따서 지은 암자가 등운암과 월명암이라고 한다.

 

월명암(月明庵)범종각.

쌍선봉은 법왕봉(法王峰)과 귀왕봉(鬼王峰) 두 봉우리로 되어있는데 후일 사람들이 이 두봉을 일러 쌍선봉이라 했다.

월명암은 바로 이 쌍선봉 동쪽 중턱에 있다.

 

 월명암(月明庵)에서 바라본 의상봉과 소뿔바위봉.

변산반도국립공원은 두 권역으로 나뉜다. 해변지구는 외변산, 내륙의 산악지구는 내변산이다. 여러 봉우리가 모여 독립된

산군을 이루고 있는 변산을, 조선 시대에는 ‘영주산’ 또는 ‘봉래산’이라고도 불렀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 속 세 개의

‘신산(神山)’은.. ‘신선이 깃든 산’으로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다.

 

변산의 풍경을 보면.. 먹으로 찍어 그린 수묵화 속 풍경 같은 기이한 산세를 보며 신선의 출현을 떠올렸을 것이다.

변산을 신산(神山)에 빗대 부른 게 도가(道家)라면, 불교에서는 변산을 ‘능가산(楞迦山)’이라고 했다.

내소사 일주문에 능가산의 이름이 걸려있다. ‘능가산 내소사’. 불교에서 능가산은 석가모니가 대혜보살에게 설법을 베풀

었다는 산이다. 도교에서도.. 불교에서도 변산은 특별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월명암(月明庵)과 부설전(浮雪傳)..

월명암(月明庵)에는 불교소설(佛敎小說) 부설전(浮雪傳)이 소장되어 있다. 작자와 연대 미상인 부설전은 월명암을 세운

부설거사 일가(一家)의 성도담(成道譚,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을 승전형식(僧傳形式 · 고승들의 행적기)으로 소설화 한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월명암 소장본이 그 한문필사본 일책(一冊) 유일본(唯一本)이 전하고 있다.

 

내용은, 능가산(楞迦山 · 지금의 변산) 법왕봉 아래에 묘적암을 짓고 수도에 힘쓰던 부설이 오대산으로 수도를 떠나게 된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묘화(妙花)라는 여인을 만나 머물러 살며 등운(登雲)과 월명(月明) 두 남매까지 두게된다.

 

그리고 묘화를 만난지 15년 후에 두 자녀를 부인에게 맡기고 부설은 다시 수도에 전념해 크게 깨달았고, 두 자녀들까지

수도에 증진해 열반하였는데, 후일 덕이 높은 스님들이 이들 두 자녀를 기리며 등운암과 월명암을 지으니 지금까지도 남아

이곳에 있다는 것이다.

 

면선각.. 월명암(月明庵)의 종무소다.

 

사색의 계절 가을에 참으로 여유로운 산사의 길... 직소보로 하산하는 길이다..

 

 11시 27분 : 379봉에 올라서니 바람이 분다.. 일기예보상으로는 10m/s다..

다행인것은 계속 부는게 아니라 파도처럼 한번 몰려 왔다가 잠시후 다시 불어온다..

 

 11시 34분 : 선인봉 갈림길..

 

처음으로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바라본 관음봉.. 그 아래 직소보..

 

 직소보를 눈앞으로 불러 온다.

 

 곰소항 건너 선운산도 가까이 불러 오고..

 

 관음봉삼거리에서 관음봉에 올랐다가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서 반대편의 내소사로 내려 갈 것이다.

 

 기분좋은 암릉길.. 오른쪽은 수십길 절벽이다.

 

 뒤돌아본 379봉..

 

 잘 달려 오던 능선길이 아래로 곤두박질 하듯이 떨어진다.

 

 조금전에 지나온 절벽의 아래 일것 같아서 들어가 보니..

 

 완전 수직절벽이다..

 

 그리고... 바람좋은 여름날 최고의 밥자리가 될 것이다.

 

 신선이 학을 타고 올라갔음직한 무협지속의 암릉이다.

 

 낙엽길.. 조심조심..

 

 혼자 걷는길은.. 안전이 우선이다.. 철난간을 잡고..

 

 너무 빠르게 떨어지는 급내림이라.. 조망처만 있어면 들어가서 사진 한컷을 핑계로 숨을 고른다.

 

 역시나 그림이다..

 

12시 00분 : 봉래곡삼거리..

 

 내변산탐방지원센터 가는길..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하산길이다.

 

 여기가 해발 40m정도 되는 곳이다..

 

거의 바닥에서 처음시작하는 마음으로 출발이다.

 

12시 03분 : 직소보 전망대..

부안군민의 비상식수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저수지였는데 1991년에 부안댐이 건설되면서 관광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조금전 지나 온 직소보전망대가 마주 보인다.

 

 12시 10분 : 선녀탕이 100m 앞에 있다고..

 

▲ 봉래구곡중에 제4곡에 해당하는 선녀탕..

위에는 큰선녀탕.. 작은선녀탕(仙女蕩)이 나란히 있고..

 

▲ 조금 아래에는 대중 선녀탕(仙女蕩)인가?...ㅎㅎ.

 

12시 17분 : 봉래구곡중에 제3곡에 해당하는 분옥담 이다..

 

▲ 봉래구곡중에 제3곡 분옥담(噴玉潭)은..

직소폭포 아래 화산폭발 후 생긴 분화구 모습의 깊은 못을 일컫는다.  담(潭)은 용이 살만한 깊은 못을 말한다.

 

▲ 봉래구곡중에 제2곡에 해당하는 직소폭포(直沼瀑布)..

 

▲ 직소폭포(直沼瀑布)..

높이 약 30m 정도로 폭포를 받히고 있는 둥근 못으로 곧바로 물줄기가 떨어진다고 하여 직소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봉래 계곡에서 가장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변산반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폭포이다. 변산의 경관중에서 으뜸으로 예부터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의 선경을 보지 않고서는 변산을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 그런데.. 직소폭포(直沼瀑布)의 물줄기가 약하다.. 남진의 쏘팔매토처방을 하던지...ㅎㅎ~.

 

▲ 가까이에서 본 분옥담...

 

▲ 내려다 본.. 직소폭포(直沼瀑布)..

 

▲ 30여년전에 걸었던 남여치~내소사 코스중에.. 기억속의 그림과 딱 일치 하는 곳은 여기 뿐이다...

 

▲ 재백이다리 상류의 직소천..

 

▲ 계곡을따라 올라오는 바람이 등짝을 밀어준다...

 

▲ 이제부터 관음봉오르기의 시작점이다..

 

12시 50분 : 해발 약160m의 재백이삼거리.. 관음봉이425m다.. 약265m를 거의 급경사로 올라야 한다.

 

▲ 잘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사진 한컷의 핑계를 만들자..

 

▲ 곰소만 건너 고창군의 선운산과 소요산..

 

▲ 기억속의 마당바위는 조망이 있는 널따란바위였고..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뚜렷한데.. 그 바위는 어디로 갔나?

 

▲ 암릉에 올라서서 바라본 곰소만..

 

▲ 암봉에서 바라본 관음봉.

 

▲ 관음봉 뒤에 의상봉을 조망하고..

 

▲ 다시 내려 가고.. 올라가기를 반복하며..

 

13시 18분 : 드디어 관음봉삼거리에 올랐다.. 하산시간이 3시간 남았다.. 관음봉 기다려라.. 널널하게 다녀오자..

 

▲ 관음봉 가는길이 처음에는 산허리를 타고 완만하게 돌아가다가..

 

▲ 조망좋은곳에서 지나온 쌍선봉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 당겨본 쌍선봉과 직소보.

쌍선봉(雙仙峰,459m)은 이성계가 청년시절에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 굴바위 옆 저수지 안쪽의 선계안(또는 성계골)에서

영험한 두 노인에게 각각 문(文)과 무(武)를 익혀 훌륭한 청년이 된 뒤 스승들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한다.

 

스승과 제자 모두 이를 서로 아쉬워하다가 선계안으로부터 북쪽으로 삼천보나 떨어진 이곳까지 왔고 이성계가 두 스승

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보니 두 스승은 사라지고 그 앞에 높은 봉우리 두 개만 우뚝 솟아 있었다고 한다.

 

▲ 관음봉 암릉..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경사다.

 

 

▲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친절한 이정표가 200m남았다고 한다.

 

13시 38분 : 관음봉(觀音峰) 도착..

능가산 또는 봉래산이라고 불리우고 지금도 내소사 일주문에도 능가산 내소사( 稜伽山 來蘇寺)란 현판이 걸려 있다.

 

▲ 하산시간이 여유로워서 세봉전망대까지 다녀 온다..

 

▲ 관음봉에서 세봉가는길도 만만찮다.. 급내림이다.

 

▲ 다시 올라가고..

 

▲ 되 돌아본 관음봉..

 

▲ 저 멀리 새만금방조제가 보이고..

 

▲ 당겨보니 신시도의 월영산과 대각산이 보인다.

 

▲ 눈을 살짝만 오른쪽으로 돌리면.. 의상봉과 쇠뿔바위봉이다.

 

▲ 내가 이름붙인 가칭.. 세봉전망대에서 바라본 세봉방향.. 직진하면.. 내변산의 가마소와 와룡소의 절경들이 펼쳐진다..

세봉삼거리에서 우측능선을 타면 내소사 경유가 어렵기에.. 여기서 관음봉으로 회귀한다.

 

14시 05분 : 다시 관음봉..

 

▲ 관음봉 전망대..

 

▲ 관음봉을 다시 올려다 보고...

 

14시 23분 : 관음봉삼거리에서 내소사로 하산..

 

▲ 내소사 내림길은 원만한 편이다.

 

▲ 세봉삼거리 아래로 청련암이 보인다.

 

14시 52분 : 재백이고개 탐방로에서 사실상의 산행은 마무리하고 내소사로...

 

▲ 내소사 범종각..

 

▲ 내소사 설선당은 인조 18년(1640)에 청영대사가 지은 것으로 전해 진다.

 

▲ 내소사 현판.

 

▲ 내소사 설선당 무쇠솥.. 안쪽에 있다는데 잠겨 있다.

 

▲ 내소사 대웅보전.

쇠못은 하나도 쓰지않고 모두 나무로만 깍아 끼워 맞추었다고 한다.

 

▲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며.

백제무왕 34년(633) 혜구두타스님이 창건했는데 처음에는 다시 태여나서 온다 는 뜻으로 소래사(蘇來寺)라 하였는데 조선

인조 11년(1633년)에 청민 선사가 중건한 뒤부터 이름이 내소사(來蘇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은 중국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한 뒤, 이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를 시주

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고 전하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 내소사 봉래루는.. 조선 태종 12년(임진년, 1414년)에 건립한, 전면 5칸(12.23m), 측면 3칸(6.20m), 2층 누각의 맞배

지붕의 건축물이다. 자연석을 초석(礎石)으로 사용하였는데 높낮이가 일정치 않아 2층 누각을 받치는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2층 누각의 수평을 취하게 하였다.

 

▲ 내소사에 봄꽃이 피었다.. 헐!~~..

 

▲ 대장금을 촬영했던 곳이라고 한다.

 

▲ 일주문 현판에는.. "능가산내소사"라 되어 있다. 과거에는 봉래산..또는 능가산이라 했다..

 

▲ 내소사 탐방지원센터 뒤쪽에 있는 대형버스 주차장으로..

 

▲ 내소사주차장에서 바라본 관음봉 능선..

 

15시 19분 : 내소사주차장..

 

▲ 30년도 넘은것 같은.. 남여치~관음봉~내소사코스는..

카메라도 못가졌던때라 기억속에는 남여치 고개와.. 월명암과.. 직소폭포와 계곡의 그림만 단편적으로 남아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기억속의 장소는 분명히 맞지만.. 그때의 상황과는 전혀 딴 세상이었다..

딱 한곳.. 직소폭포위에 계곡뿐이었다..

2024년 11월 03일(일).

암마이봉 : 전북 진안군.

 

산행코스 : 마이산북부주차장-천황문-암마이봉-탑사-은수사-천황문-가위박물관-북부주차장.

산행시작 : 마이산북부주차장  12시 03분.

산행종료 : 마이산북부주차장  16시 12분.

전체거리 : 약7.54km.

전체시간 : 04시간 09분.

운동시간 : 03시간 16분.

휴식시간 : 00시간 52분.

 

12 : 03  마이산북부주차장.

12 : 12  사양제.

12 : 41  천황문.

13 : 13  암마이봉.

15 : 11  탑사.

15 : 27  은수사.

15 : 37  천황문.

16 : 12  마이산북부주차장.

 

 12시 03분 : 마이산북부주차장 산행출발..

 

북부주차장에서 바라본 마이산..

1979년에 전라북도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3년에 명승 제12호로 지정되어 꾸준히 사랑받는 산답게 오늘도 전국에서 모여든 산악회버스들이 주차되어 있다.

 

북부주차장에서 마이산 등로는 서남진 방향이어서 햇빛을 안고 가는 코스다..

 

 마이열차 연인의길..

마이산 옛길을 2002년에 '연인의길'로 개칭한 후 일반 차량을 통제해 걷거나 마이열차로 오갈 수 있게 만든 산책길이며.

경로는 북부주차장~연인의길~천왕문까지 셔틀을 운행한다. 왕복 5천원..편도 3천원이다.

 

사양제(사양저수지)..

 

 사양제(사양저수지)는..

햇빛이 비켜간다는 뜻으로 예로부터 용왕제를 지냈다고 알려진 곳이며 제방에 오방기를 세워 호롱불을 켜고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정오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원래의 조룡대는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 침공시 백제의 호국룡을 낚았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섬으로 ​부여군 백마강에

있는 수중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데 여기에 있는 조룡대는 아마도 과거에 용신제를 지낸곳이라는 의미로 세운듯 한다.

 

버스 회차장.. 여기까지 와서 내려주고 가도 될것 같다..

 

명인명품관과.. 가위박물관은 하산할때 들리기로 하고 기존의 등산로를 따라간다.

 

때마침 천안에서 왔다는 산악회회원님께 한컷 부탁한다고 하니 흔쾌히 콜이다... 넉살좋고 재미있는 분인것 같았다..

 

마이사..

 

마이산 508계단.

 

마이열차(연인의길) 합류지점.

 

12시 41분 : 마이산 천황문.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을 연결하는 고개마루다.

이성계가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이산에 들러 왕조창업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돌탑을

쌓았는데, 그날 밤 꿈속에서 금척을 받은 뒤 이곳으로 올라와 천황문으로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금강의 시작이라고 했지만.. 금강의 발원지는 아니고.. 하늘에서 내린 한방울의 물흐름이 동서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조선 영조 때에 서산군수를 지낸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여암 신경준(1712~81년)선생의 역작 지리서인 산경표에

의하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에 의거하여 산이나 산줄기는 물이나 냇물을 건너가지 아니하고.. 물 이나 냇물은 산이나 산줄기를 넘어가지 못하는 자연현상으로.. 왼쪽에 내린 빗방울은 은수사와 탑사를 거쳐 지류인 은천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오른쪽에 내린 빗방울은 지류인 진안천에서 남강으로 흘러간다..

 

암마이봉 입구.

자연휴식년제로 암마이봉이 2004년에 통제 되었다가 10년 만인 2014년 10월 10일에 다시 개방되어 오늘에 이른다.

 

▲ 암마이봉 오름입구의 초소..

 

▲ 암마이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서 봉두봉 방향으로 갈것이다..

 

▲ 숫마이봉.

잘 만들어진 급경사의 데크를 따라 올라가는 길은 오름 왼쪽으로 마이봉과 끝까지 함께한다.

 

▲ 13시 13분 : 암마이봉 정상 인증샷 줄서기...

정상석을 지나가면 최고의 풍경 맛집인 전망대가 있다.. 그곳을 둘러 보고 오면 줄서기는 끝날것 같다.

 

▲ 돌탑을 지나..

 

▲ 암마이봉 최고의 풍경맛집에서..

 

▲ 합미산성에서 이어지는 마이산종주능선을 한눈에 담는다.

 

▲ 비룡대도 당겨오고..

 

▲ 고금당도 당겨 오고..

동학 혁명의 주체인 녹두장군 전봉준의 딸이 10년간 피난했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고금당 바로 아래에는고려말 고승 나옹선사의 수도처였다고 하는 나옹암(懶翁庵) 자연석굴이 있다.

 

▲ 탑영제도...

 

▲ 함께 즐길줄 안다는것은... 오랜 산행을 통해 만들어진 믿음이 바탕이 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 웃고 즐기고 정상석으로 다시 오니.. 예상대로 역시나다..

 

▲ 마이산이 내어주는 기막힌 가을 풍경을 눈으로 먹고 가슴으로 먹고 인증샷까지 마쳤으니..

 

13시 24분 : 이제는 먹방의 즐거움을 맛볼 시간이다. 산상 레스토랑을 신장개업한다.

 

▲ 처음 맛보는 가지버섯의 식감이 아주 좋다..

 

▲ 하산 하기전에 출발지였던 북부주차장을 가늠해 보고..

 

13시 57분 : 수마이봉정수리를 내려다 보며 하산 시작..

 

▲ 제2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마이봉..

 

▲ 수마이봉 화엄굴을 당겨보니 철망으로 입구를 막아 놓았다.. 오래전에 화엄굴에서 받아 마셨던 화엄약수가 생각난다.

마이산의 중턱 천왕문에서 수마이봉 쪽으로 100m쯤 올라가면 수마이봉 암벽에 화엄굴이 나온다. 화엄굴 내에는 사시사철

약수가 흘러나오며 24절기 중 춘분과 추분에만 약수까지 햇빛이 비치는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고 이 약수를 마시고 지성

을 드리면 숫마이산의 정기를 받아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오늘날에도 치성을 드리려는 많은 여성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낙석 때문에 위험하다고 하여 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 네팔 청년들이 찍어주었다.. 오늘따라 외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 초소앞에 내려와서.. 하산길은 봉두암쪽으로..

 

▲ 조금 내려오니 회장님팀을 만난다.

 

▲ 혼자걸어도 좋을것 같은 가을길이다..

 

▲ 암마이봉.. 그 엄청난 크기의 암봉을 에돌아 가는 길이라..

 

▲ 한동안 내려가다가 드디어 바닥을 치고는..

 

▲ 올라간 만큼 내려가고.. 내려간 만큼 올라야 되는게 산이다..

 

▲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니 제법 내려갔던 모양이다..

 

▲ 능선 마루에 올라서서.. 암마이봉 정상에서 못다푼 먹거리와 마실것으로 가판대를 친다.

 

▲ 잭 다니엘과 꼬부랑 안주들..

 

▲ 깜짝벙개 먹거리타임으로 기분이 달달하고 나이스다..

 

▲ 달달한 기분으로.. 햇살이 적당하게 파고드는 운치있는 소나무길을 따라가면..

 

▲ 암마이봉 정상 전망대 아래쪽이다.

 

▲ 대인의 마음으로 한치의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 박수보냅니다..

 

암마이봉에는 움푹 파여있는 크고 작은 많은 굴들이 보이는데 이를 타포니 지형이라고 한다.

타포니 지형은 바위 내부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바위 표면을 밀어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 마이산 탑사 입구..

입장료 : 성인 ₩3,000, 중고생 ₩2,000, 초등학생 ₩1,000 (70세 이상 경로우대..국가유공자.. 장애자는 무료 입장)..

 

▲ 마이산 탑사는 1885년 이갑용처사가 마이산에 들어와 1900년부터 탑을 쌓기 시작하여 1935년에 인법당(대웅전)

산신각을 지어 부처님을 모셨다. 평생 동안 108기의 탑을 완성시켰으며 현재 80여 기의 탑이 남아 있다.

당시에는 절 이름이 없었으나.. 언제부턴가 탑사로 불리기 시작하였고.. 이갑용처사의 손자가 사찰등록을 하면서 정식으로

탑사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다.

 

▲ 마이산 탑사의 미스터리

접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시멘트를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100여년 동안 태풍과 회오리 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다.  탑들이 위치한 곳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의 계곡인데 이곳은 유난히 세찬 바람이 부는 곳이다.

 

지형적으로 앞쪽이 넓고 뒤쪽이 좁은 계곡이어서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쳐 오는 것이다.

특히 여름철 태풍이 불어오면 언덕의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웬만한 나무는 뿌리채 뽑히지만 이 곳의 돌탑은 조금씩 흔들

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 오른쪽 뒤쪽에 보이는 젊은 새댁들의 친구가 찍어준 것이다..

 

▲ 이 사진은 꼭대기까지 담기위해 회장님이 누워서 찍은 사진이다. 굿~..

 

▲ 마이산 은수사 가는길..

 

▲ 수마이산과 은수사..

은수사(銀水寺)는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머물때 물이 너무 맑아서 은수사라 지었다고 한다.

 

▲ 이 사진도 윤회장님이 몸을 던져 뒤로 누운자세로 찍은 사진이다..ㅎㅎ~

 

▲ 나와 교대하여 찰칵..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

조선 태조 이성계가 건국의 기원을 다지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손수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운 나무라고 한다.

청실배나무는..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춘향이 집을 찾아가 첫날밤을 치르기 전.. 월매가 내온 주안상에 여러 과일이

올라와 있는데.. 이 중 ‘청슬이’ ‘청술레’라고 한 과일이 바로 청실배(靑實梨)라고 한다.

 

▲ 은수사 무량광전..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上院寺)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절 터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正明奄)이라 했다. 해석에 따르면"正"은 5획으로 오행, "明"은 일월이므로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현재는 태극전이라 불리는 전각으로 되었지만 ‘정명암’이란 이름을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으로 보면 태극은 그 상징

이 되어 있다.

 

▲ 여기서 보는 수마이봉 모습은 투구처럼 보인다. 

 

▲ 천황문 올라가는 길...

 

15시 48분 : 가위박물관.

고려시대의 가위와 동서양을 망라한 고대의 가위에서부터 현대의 가위 1500여점의 희귀한 모습그대로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색적인 박물관이다.

 

 15시 53분 : 진안마이산 명인명품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결합하여 공예작품을 전시, 시연, 홍보와 더불어 마이산의 신비한 역사와 전통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공간이다... 부채동, 자수동, 한지동 3개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채, 유기, 도자, 자수, 닥종이, 한지패션 등

5,0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황금돼지.

이지역은 애저찜(새끼돼지 찜)으로 유명한곳이다.

 

<애저찜 이야기>

3개월마다 한번씩, 보통 여덟 마리에서 열다섯 마리나 새끼를 낳는 돼지 아무 거나 잘 먹는데다가 새끼를 많이 치는 돼지는

옛날부터 농가에 돈을 벌어다주는 중요한 가축이었다. 그런데 돼지가 하도 새끼를 많이 낳다 보니, 가끔은 불상사가 생기기

도 했다. 뱃속에서 죽은 채로 태어나는 경우도 많았고, 잠든 어미 품에서 젖을 빨다가 깔려 죽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돼지를 키우면서도 내다 팔 생각만 했지, 돼지고기 맛 한 번 보기 힘들었던 가난한 농가의 사람들은 막 죽은 새끼돼지라도

버리지 않고 요리를 했는데, 고기를 먹으면서도 마음은 슬프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이 요리를 ‘새끼돼지(兒猪)’를 먹는 것이 슬프다(哀) 하여 ‘애저(哀猪)’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자연이 만든 최고의 무대에서

솔잎.. 최고의 저력을 재확인 하였던 하루였습니다.

 

회장님..

수고 많았습니다..

2024년 10월 17일(목).

대둔산도립공원 : 전북 완주군.

 

산행코스 : 괴목동천주차장-촛대바위-금오봉-서각봉-삼형제바위-마천대-낙조대-생애대-태고사광장-행정리주차장.

산행시작 : 괴목동천주차장  10시 09분.

산행종료 : 행정리주차장  15시 41분.

전체거리 : 약9.74km.

전체시간 : 05시간 32분.

운동시간 : 05시간 01분.

휴식시간 : 00시간 31분.

 

10 : 09  괴목동천주차장.

10 : 36  촛대바위.

10 : 56  간첩바위.

11 : 04  옥계봉.

11 : 40  금오봉.

12 : 42  서각봉.

13 : 12  형제바위.

13 : 27  마천대.

14 : 00  낙조대.

14 : 26  생애대.

14 : 59  태고사광장.

15 : 41  행정리주차장.

 

 10시 09분 : 괴목동천 주차장 도착..

대둔산 남릉의 들머리는 천등산하늘벽과 마주한 17번국도변의 구도로에서 출발 한다.

 

 17번국도 건너편의 절개지 펜스에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면.. 대둔산 전체 등로중에서도 가장 소외되어 상대적으로 등반객이 적어서 다듬어 지지않은 날것 그대로의

너덜길은 좌측 골짜기쪽으로 돌아가다가..

 

자비심은 1도없는 급오름의 돌계단이 직등으로 올라가라 한다.. 그래도 올라야 하는 이유가 있다.

대둔산 남릉은 15년전인 2009년에 오른적이 있다.. 그때도 몹시나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오늘은 전문 사진작가들만이

한장의 일출 사진을 담기위해 알게 모르게 찾아 간다는 삼형제바위를 만나기 위함이 "A"코스를 선택한 이유다.

 

밧줄이 매여있는 대슬랩은...

 

암릉을 타고 오르면 440봉 아래 전망바위에 있는 돌탑군과 만난다...

1주일만 젊었으면 도전해 보겠지만.. 더구나 오늘은 짝지가 "B"코스로 가는 바람에 동행도 없는 홀로다.. 아서라 말어라~..

 

▲ 안전하게 440봉에서 돌탑을 다녀오기로 하고.. 거친계단을 달래며 차근차근 올라간다.

 

 10시 36분 : 촛대바위 전망대..

 

촛대바위와 천등산 하늘벽..

 

촛대 라기보다는 망부석 같다... 어디서 이런 절묘한 생김새의 바위를 찾아 내었을까..

 

 10시 38분 : 신선바위..

 

10시 49분 : 440봉에서..

 

조금 아래쪽의 돌탑에 다녀 온다...

누군가가 어떤사연의 간절한 마음으로 쌓은 돌탑일까.. 모두가 넉넉함으로 충만하기를 바래 본다.

 

 10시 56분 : 간첩바위..

바위밑에 간첩이 머물었다는 비트가 있다.. 지금은 작은 돌들로 막아 놓았다.

 

간첩바위 뒤통수 꼭대기에 묘하게 생긴 바위가 하늘기운을 받고 있다..

 

11시 04분 :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 본 옥계봉..

 

지난여름의 폭염탓인지 올해의 단풍은 곱지가 않다..

 

암릉을 만나면..

 

안전한 우회로인 산죽길을 올라서면...

 

전망바위가 있어 올라가 본다...

 

지나온 옥계봉 너머로 보이는 천등산.. 그 너머엔 운장산이 가물거리고..

 

북쪽으로는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인 법계사를 품은 월성봉이 보이고..

짜개봉은 6.25전쟁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안내판에는 쌍칼바위로 되어 있는데.. 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 어디서 보아야 쌍칼일까?...

 

처음으로 이정표 다운 이정표를 만난다.

 

 가야할 서각봉 절벽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바위가 보여서..

 

당겨보니.. 날아가던 메뚜기가 붙어 있는 모습이다.

 

12시 42분 : 서각봉(허둥봉) 삼거리..

이정표가 낡아서 땅에 뒹굴고 있어서 방향을 잘 보지 않으면 허둥지둥할 판이다.

 

 곱지는 않아서 아쉽지만.. 그래도 대둔산이 내어주는 단풍이라 담아 본다.

 

저 능선만 올라서면.. 삼형제바위를 만날수 있을것 같다.

 

찾았다.. 삼형제바위를... 그런데 마침.. 점선안에 홀로산객이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삼형제바위 측면..

 

13시 08분 : 삼형제바위로 내려가는 숨은 들머리를 찾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입구에서 내려다 보니.. 사진으로는 실감이 안나지만 실제로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아찔한 급내림경사다..

형제바위까지는.. 내림길 입구에서 약 2~3분의 짧은 거리지만 난이도는 상급이다..

 

조심조심 내려가니 조금전에 본 산객이.. "길이 없습니다"..하면서 올라온다.. "삼형제바위를 보았나요?" 하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설명을 해주고는 나를 따라오라고 하니 따라온다.

 

 13시 12분 : 삼형제바위.

 

삼형제바위 일출은 마니아(mania)들이 찾는곳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진.. 핫 플레이스(Hot place)다.

 

 삼형제바위와 나.. 이 그림 하나를 위해 거친 남릉길을 헐떡이며 올라 온 것이다.

 

우연히 만난 산객분 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삼형제바위에 생명터를 잡은 기묘한 노송과의 조화는 가히 경탄할만 하다.

 

삼형제바위에서 올라온 능선도 바라보고..

 

대둔산 최고의 핵심구간인.. 구름다리와 삼선계단..

 

 올라가는길.. 심약하거나 산행경험이 짧은 분들은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대둔산의 유래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 중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둔산고산현북 45리 ”라고 쓰여져 있고 300년전(1658년 )에 썼다는 안심사적비에는 크게

“대둔산 안심사비 ”라고 쓰여져 있다. 그 아래 비문 첫줄에 “조선국 전라도 고산현 대둔산 안심사 사적비명”이라고 쓰여

있다. 모두 싹 나올 둔 (芚 )자를 써서 대둔산 이라고 썼다고 한다. 대둔산의 바른 이름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듬산 ’이다.

 

이것이 한자화 되어 듬의 뜻이 들어 있지 않고 듬과 유사한음의 둔으로 되어 대둔산이 되었다 한다.. 벌곡 , 가야곡 등 일부 논산 사람들은 그곳에서 보는 한듬산의 모습이 계룡산과 비슷하지만 산태극, 수태극의 대 명당 자리를 계룡산에 빼앗겨

한이 되어.. "한이 든 산" 이라는 뜻으로 "한듬산" 이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한듬산의 한을 크다는 뜻의 대(大)자

로 하고.. 듬의 그 소리만을 비슷하게 둔(芚), 또는둔(屯)으로 하여 "대둔산 (大屯山 )"이 되었다고 한다.

 

13시 27분 : 대둔산 마천대..

대둔산 최고봉인 마천대는 문지를 마(摩), 하늘 천(天)을 써서 "하늘에 닿는다"는 뜻으로 원효대사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거나.. 내려 가는 길..

 

 낙조대로 가면서 뒤돌아본 마천대...

 

 낙조대와 그아래 낙조산장...

 

▲ 당겨 본 낙조산장... 바로 뒤에는 논산수락리 마애불이 있다.

낙조산장은 논산시에서 1억 여원의 경비를 들여 대대적으로 수선한 대피 및 휴식 공간이었으나... 충청남도가 대둔산도립

공원 내 탐방객 대피 휴식 시설을 무허가 시설물이란 이유로 낙조산장을 폐쇄하고 시설 관리업무를 담당했던 상주 관리인

을 철수시킨후 대책 마련 없이 방치하고 있어 비판 여론이 거세다.

 

▲ 칠성봉..

 

 13시 55분 : 낙조대 갈림길에서 산이좋아 회장님을 만난다.

 

▲ 14시 01분 : 낙조대.

 

대둔산 어디에나 올라 서면 감동의 파도가 여기저기에서 소리치며 몰려 온다. 그래서.. 대둔산은 정말 명산이다.

 

▲ 대둔산 북릉의 돗대봉.. 다시 걷고 싶은 길이다.

 

▲ 다시 낙조대 갈림길에 내려와서..

 

▲ 낙조대에서 동쪽의 생애대로 내려가는길에는 어느새 응달이되어 서늘함이 느껴진다.

 

▲ 태고사광장 이정표에서 배티재 방면으로 약 100m정도 진행하면..

 

▲ 생애대로 쉽게 오를수 있는 능선길이 있다.

 

▲ 누군가의 정성이 있는 돌계단을 지나고..

 

▲ 우람한 바위 틈새로 올라가면 왼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여기까지 왔다가도 길이 없다고 돌아서는 사람들도 있다.

 

▲ 명품송이 있는 저기가 생애대 너럭바위(일명 상여바위)다.. 뒤쪽은 수십길 낭떠러지다.

 

▲ 대둔산 북릉길이다.

 

용머리에 해당하는 생애대에는 전설이 하나 내려온다.

어느 한 스님이 백일기도 끝에 용머리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득도할 수 있다는 현몽을 받았지만 생에 대한 애착으로 용머리

에서 주저하는 사이 평생 살생을 하며 살아온 사냥꾼이 속죄하고자 뛰어내렸고 그 사냥꾼이 스님 대신 득도를 했다고 한다.

도의 실천이 참으로 어려움을 깨우치는 대목이다.

 

▲ 생애대를 내려와서 태고사광장으로..

 

14시 59분 : 태고사 광장..태고사는 패쓰하고 행정리주차장으로..

 

▲ 태고사샘물.. 한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 오늘의 하산길 동행님들..

 

▲ 장군샘으로 가는길 입구..

 

15시 41분 : 행정리주차장.. 대둔산도립공원사무실.. 산행종료.

 

▲ 트랭글을 정리하고..

 

▲ 행정저수지(청림저수지)둑밑에 있다는 하산식 장소를 찾아서 둘레길을 따라서 걷기로 한다.

지명하나도 통일이 안된다.. 다음지도에서는 행정저수지로... 네이버지도에서는 청림저수지로 표기 되어있다.

 

▲ 행정저수지 아래 청림골차마실..

 

▲ 이색적인 실내인테리어다.

 

▲ 노랑딱정벌레가 왜? 거기서 나와~~..

 

▲ 능이버섯전골... 4인분 5만량.. 토속적이어서 그런지 입맛에 딱이다.

 

▲ 산이좋아회장님의 건배...

 

▲ 다 같이.. 소리질러!~~.. 건배!~..

 

17시 12분 : 대둔산북릉의 돗대봉..

먹고 마시고 건배한번 크게 소리지르고.. 밖으로 나오니 산촌마을에 땅거미가 내려 앉는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연이라고 했다.

거친 남릉의 오름길에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대둔산 여신의 치마폭에 빠져서

자리를 뜰줄 모르다가도 다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오히려 몸은 가볍다.

 

심신이 피곤하면 휴식자리부터 찾기 쉽고

인생이 고단하면 안식자리부터 찾기 쉽다고 했다..

 

그 힘들고 고단함을 삼형제바위 그 황홀한 비경으로 풀어내고

땀으로 이겨낸.. 나 자신에게 박수 보내는 하루였다..

2024년 10월 06일(일).

고하도해상데크길 : 전남 목포시.

 

산행코스 : 고하도주차장-고하도전망대-해안동굴전망대-용머리-고하도승강장-유달산승강장-북항승강장-고하도주차장.

산행시작 : 고하도주차장  11시 52분.

산행종료 : 고하도주차장  15시 23분.

전체거리 : 약13.2km.

전체시간 : 03시간 33분.

운동시간 : 02시간 42분.

휴식시간 : 00시간 51분.

 

11 : 52  고하도주차장.

11 : 56  고하도승강장.

12 : 08  고하도전망대.

12 : 12  해상데크.

12 : 24  해안동굴전망대.

12 : 36  토끼와 소녀.

12 : 43  이순신장군동상쉼터.

12 : 57  용머리쉼터.

14 : 00  고하도승강장.

14 : 30  유달산승강장.

14 : 55  북항승강장.

15 : 23  고하도주차장.

 

 목포대교...

전라남도 목포시에 있는 자동차 전용도로다. 2012년 6월 29일에 개통되었다.

총 연장 4.129㎞로 목포 북항과 고하도를 잇는 해상교량이다. 도로명은 고하대로이다.

 

목포대교는 기본적으로 사장교 형식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된 3웨이 케이블공법이라는 고난도 공법을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사장교는 상판 좌우측에 각각 케이블 2쌍으로 지탱하지만, 3웨이 케이블공법은 좌우측의 케이블을 1쌍으로 줄이

고 이를 상판의 중앙에 옮겨 상판을 고정하는 방식이기에 설계나 시공 등에서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케이블을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사장교 좌우측의 경관을 살릴 수 있음이 장점이다.. 또한 목포는 태풍이나 강풍이 잦은 지역

이기 때문에 다리의 상판은 초속 67.4m, 주탑은 초속 74.9m 강풍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 왕복 4차로로 공사비는 3346억 원을 투입하였고, 길이 167.5 m짜리 주탑 2개, 교각 36개, 상판 슬라브 36경간이 시공됐다. 경간장 최대 길이는 500m이다... 최대 5만 톤급 선박이 통행할 수 있도록 목포대교 교량에서 바다 수면까지 높이를 53m로 설계되었다.

 

 11시 50분 : 고하도주차장..

고하도(高下島)는.. 목포 앞바다에서 약 2㎞ 지점에 있고... 목포항의 중요한 방파제 역할을 한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며.. 높은 산인 유달산 아래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 영사인 와카마쓰 도사부로가 고하도에서 최초로 시험 재배에 성공하면서 육지면 재배 10주년 때 기념으로 세운

"조선육지면발상지비(朝鮮陸地綿發祥之碑)" 비에 1904년 고하도에서 최초로 육지면이 재배되었다고 적혀있다.

목포항은 고하도에서 육지면 재배를 성공하면서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국 3대항 6대 도시로 발전했다.

육지면은 고려 말 문익점이 중국에서 들여온 아시아면(재래종)과는 다른 품종이다. 미국에서 들여온 육지면은 아시아면에

비해 솜털이 종자에서 잘 떨어지며 백색으로 섬유가 길고 잘 꼬여져 방직원료로 뛰어났다. 

 

주차장을 나와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약300m쯤 올라가면...

 

목포해상케이블카 고하도승강장을 만나고..

 

해상데크로 가는 들머리가 보인다...

 

해상데크길을 걷고 난후에 유달산으로가는 케이블카의 예약관계로... 14시 50분까지 고하도승강장으로 돌아와야 된다.

 

 본격적인 트레킹을 하기전에 안내도를 살펴본다.

고하도전망대에서 해상데크로 내려가서 해안석굴쪽으로 먼저 갔다가 용머리를 돌아서 올것이다.

이 안내도를 보고 갔더라면 제대로 진행을 하였을텐데 일부회원님들이 해안석굴쪽은 안가고 거의가 용머리쪽으로 갔다.

 

 해상데크 들머리..

 

계단마다 나이가 적혀있는... 150세힐링건강 계단길이다..

 

150세 목표를 향해 계단을 오르며..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건강한 삶의 가치를 설계하라는 의미의 계단길이다.

 

용의 허리에 올라서면 해상케이블카 고하도 주탑이 서있다..

 

고하도는..

용이 하늘로 오르기 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용오름’이라고도 부르며 이순신 장군이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명량해전 이후 이 섬에 머물며 수군재건을 이뤄내 왜란을 끝낼 수 있었던 매우 의미 있는 장소로.. 크고 강하고 곧은 기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12시 09분 : 고하도전망대..

독특한 건물 디자인은.. 13척의 판옥선 모형을 격자형으로 쌓아 올린 모습을 하고 있다... 고하도는 이순신장군이 13척의

판옥선으로 명량대첩 승리 후에 머물렀던 동안 전열을 가다듬었던 곳으로 충무공의 얼을 담았다고 한다.

 

고하도전망대에서 해상데크로 내려가는계단..

 

12시 11분 : 해상데크 갈림길에서.. 오른쪽의 해안동굴전망대로 먼저 다녀 오기로 한다.

 

▲ 솔잎님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더니.. 처음으로 만난 이고문님..

 

 해안동굴전망대로 가는길은 계속 이어지는 길이 없고 데크 끝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야 된다..

 

해상데크 쉼터.. 무슨 글자 같기도 해서.. 다시 자세히 보니 "항구"를 눞혀 놓았다.. 그래서 목포는 하~앙구~다..

 

다시 돌아와서 가야할 용머리쪽을 뒤 돌아본다..

 

고하도(高下島)에서 바라보는 유달산..

목포 앞바다에서 약 2㎞ 지점에 있고... 목포항의 중요한 방파제 역할을 한다.

 

일등바위와 이등바위는 옛날부터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심판을 받은 뒤 이등바위로 옮겨져 대기하다

극락세계로 가게 되면 3마리의 학이나 고하도 용머리의 용에 실러 떠나게 되고.. 용궁으로 가게 되면 거북섬으로 가 거북이

등에 실려 떠난다는 전설이 있다.

 

 경사형 엘리베이트가 있다.

장애인.. 보행 약자 전용시설이며.. 이용료는 무료다.

이 엘리베이트는 1대가 내려갔다 올라오는데 10분 소요되고.. 1시간에 3번 왕복하므로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12시 23분 : 해안동굴끝지점 전망대.

일제강점기 말기에 특공정을 감추기 위한 위장 벙커용으로 뚫은 인공 해안동굴 2개가 등장한다. 일제가 태평양전쟁 때

연합군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고하도에는 이런 동굴이 14개나 있다.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하도를 후대가 지키지 못하고 이런 흔적을 남겼다니 안타깝다.

 

"낭만" 이다.. 재미있는 쉼터에서 반가웠습니다.

 

 용머리방향으로 돌아가는길..

 

▲ 줄을 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전부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간 모양이다.

 

▲ 사랑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토끼와 소녀..

 

▲ 바위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포말이 얼굴에까지 튀어 오른다... 역시나 파도는 역동적이어서 좋다..

 

 

▲ 해상데크와 목포대교.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조형물도..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릴때는.. 그림이 된다.

 

▲ 헐!~.. 이럴수가.. 백주 대낮에... 그것도 첨단의 21세기에.. 길을 막은 해적님들이.. 통행세를 내라고한다..ㅎㅎ

 

12시 43분 : 이순신장군동상 쉼터.

이순신장군은 1597년 12월 7일부터 이듬해인 2월 16일 진을 옮길 때까지 107일을 이곳 고하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 명량해전에서 13척으로 일본 함대 133척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은 고하도에 통제영을 설치하고 107일 동안 머물며 전열

을 가다듬었다.. 군선 40척을 건조해 모두 53척으로 늘렸고 1000명에 불과하던 병사도 8000명으로 늘려서 수군재건의

토대를 마련하여 왜란을 끝내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순신장군은 난중일기에서 고하도는 서북풍을 막음직하고 전선을 감추기에 아주 적합하다. 섬 안을

둘러보니 지형이 대단히 좋으므로 머물 것을 작정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용의 비상..

풍수지리적으로 지형이 용을 닮아서 '용섬"이라 불리기도 하는 고하도 목포의 희망을 담아 하늘에 오르다.

 

그런데 이런이런~..

목포대교 교각꼭대기를 자르지말고 다 나오게 해달라 했더니.. 또 잘라버렸다.. 우짜건노.. 그래도 한장은 건졌다.ㅎㅎ~.

  

▲ 용머리 올라가는길..

 

13시 06분 : 용의 머리에 올라섰다.

 

13시 22분 : 다시 고하도전망대에서..

 

▲ 고하도전망대를 뒤로하고..

 

▲ 고하도승강장으로..

 

빈센트 반 고흐가 왜? 여기서 나와~.. 좌측 아래글자가 재미있다.. 고흐도스테이션.. 반 고흐=고흐도..ㅎㅎ..

 

14시 02분 : 유달산을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탑승 대기..

 

▲ 솔잎회장님이 설명하는 케이블카이용 및 유달산산행후 시간내 원점회귀 요령을 경청 숙지하고..

 

▲ 유달산으로..

 

▲ 이기머꼬.. 유달산을 향해 가는데.. 진행방향으로 비가 내린다.

 

▲ 밖에는 못된 비가 내려도 케이블카 안은 미소가 넘친다.

 

▲ 멀어지는 고하도..

 

14시 22분 : 유달산승강장에 내릴건데.. 빗방울은 더욱굵어졌다..

 

▲ 유달산승강장을 나와서 정상을 항해 출발 하려는데.. 회장님으로부터 불순한 일기로 하산하라는 특명이 내려 왔단다..

유달산은 일주등산을 하였기에 미련은 없다마는 유리창으로 유달산 일등바위를 올려다보고 돌아선다.

 

유달산은..목포 9경 중에 1경으로 손꼽히는 유달산은 높이 228.3m로 높은 편에 속하진 않지만 노령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끝자락인 산이다.

또한..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잠시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으로도 불린다.

 

▲ 목포의 가수.. 이난영님의 애잔한 노래가사속의 삼학도를 내려다 보니... "사공의 뱃노래" 는 영산강에 묻혀버렸고...

삼학도의 3개의 섬들은 하나가 되어 삼학도공원이 되어 있다.

 

▲ 산행도 못하고 유달산승강장에서 고하도승강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바로 돌아갈수는 없고 반대쪽의 북항승강장까지

갔다가 고하도로 가라고 한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안가는 운영방식이다.

 

▲ 유달산의 일등바위가 빗속에 흔들리고 있다.

 

▲ 북항승강장에서 내리고 다시 타고..

 

▲ 고하도로 돌아가는길의 유달산삼등바위를 넘어간다.

 

▲ 중간 기착지인 유달산승강장도 지나가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심청이가 몸을 던진 인당수보다 더 검푸른 빛이다.

 

 15시 19분 : 우여곡절끝에 고하도로 다시 무사히 돌아왔다.

 

▲ 북항승강장에서 엘리베이트를 타는데 아가씨들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난또..홍보용이라도 찍는건가 했더니..

고하도승강장을 나오는데 사진을 들이민다.. ㅎㅎ~ 장당 5천원.. 액자에 넣어면 2만원이란다.. 교영님이 오처넌 투자..

원본 사진은 잘 나왔는데.. 사진을 사진찍었더니.. 별로다.. 원본 파일(file)을 전송해달라고 할껄.. 깜빡했다..ㅠㅠ.

 

▲ 고하도주차장 트레킹종료..

 

▲ 트랭글 정리..

 

16시 04분 : 남도정식..

와서보니 주변의 거리가 눈에 익다.. 바로 옆에 노적봉공원이 있고 국도1. 2호선의 시작기점이 되는 거리다.

 

▲ 남도음식의 상차림..

수육과 한두가지 반찬 외에는 별로 특이할만한 것도 없는 음식 가지수다..

 

먼길 원정 트레킹..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회장님 이하 임원진님들 수고했습니다.

2024년 10월 03일(목).

고군산군도 구불8길 : 전북 군산시.

 

산행코스 : 물양장공영주차장-해변데크-선유봉-장자도-대장봉-오룡묘-대봉전망대-물양장공영주차장.

산행시작 : 물양장공영주차장  10시 19분.

산행종료 : 물양장공영주차장  14시 45분.

전체거리 : 약13km.

전체시간 : 04시간 27분.

운동시간 : 04시간 06분.

휴식시간 : 00시간 21분.

 

10 : 19  물양장공영주차장.

10 : 30  해변데크.

11 : 03  선유봉.

11 : 25  장자도.

11 : 58  대장봉.

12 : 27  인도교.

12 : 40  선유해수욕장(점심).

13 : 15  오룡묘.

13 : 49  대봉전망대.

14 : 48  선유도선착장.

14 : 45  물양장공영주차장.

 

고군산도(古群山島)란 이름의 유래는..

군산시 남서쪽 약 50km에 위치한 군도(群島)로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신시도 등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 등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군산도라 불리었던 선유도(仙遊島)에 조선 태조가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만호영(수군부대)

을 설치하였었는데.. 세종 때에 이를 진포(현 군산)로 옮기면서 새 군산진(群山鎭)이 되자.. 군산도는 옛 군산이란 뜻으로

고군산(古群山)이 된데서 유래한다.

 

10시 20분 : 물양장주차장에서 홧팅!~...

 

고군산 군도에는 "선유8경"이 있다..

1경 명사십리(明沙十里).. 2경 평사낙안(平沙落雁).. 3경 망주폭포(望主瀑布).. 4경 무산십이봉(舞山十二峰)..

5경 삼도귀범(三島歸帆).. 5경 선유낙조(仙遊落照).. 7경 장자어화 (壯子漁火).. 8경 월영단풍(月影丹楓) 등이다.

 

개천날에 신선들의 놀이터를 찾아..

대구에서 열심히 달려온 화랑맨들의  단체인증샷을 마치고...하나하나 찾아보고 즐겨보자..

 

 선유대교.

 

지금은 썰물로 물이 낮아지고 있다.

이곳 바닷가는 외지인들이 밤중에 바다에 들어와  "해루질"로 이것저것 마구 잡아들이고 바다를 어질러 놓는 바람에 동네

주민들의 생계를 위한 벌이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네 주민들이 밤새 지키고 있다고 한다.

 

 물량장주차장 화장실건물 뒤쪽에 선유항으로 가는 데크길 입구가 있다...

 

▲ 물량장주차장에서 선유봉까지는 고군산 구불8길 "B"코스에 해당하며... 선유봉에서부터는 구불8길 "A"코스 시작이다.

 

선유8경중에 5경인 삼도귀범(三島歸帆).

 

선유항과 무녀도 사이에 나란히 떠있는 섬들의 모습이 마치.. 세척의 돛배가 귀항하는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중에 주삼섬은 이순신장군께서 명량해전 승리후 12일 간 쉬면서 선조에게 장계를 올린 곳이라는 "장계터"다.

장계터에는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이 명랑해전 이후 12일간 머믈었다는 표식이 있다.

장계터에 대해서는 조금후 선유봉 정상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 선유봉과 선유항 전경..

 

▲ 선유도 연리목..

천년약속의 사랑나무라고 하는 연리목인데 안타깝게도 한쪽이 죽어 있다..

아마도 도로를 개설하면서 관리소홀로 생태환경이 문제였던것 같다.

 

▲ 선유항에서 옥돌해변으로 이어지는 데크길 입구.

 

▲ 옥돌해변 가는길에..

 

▲ 선유도 주민인듯한 아낙이 갯벌에서 무언가를 캐고 있는데.. 그릇이 비어있는걸 보니 아마도 조금전에 나온듯..

 

▲ 선유봉을 바라기하며 옥돌해변을 지나 펜션까지 가서..

 

▲ 옥돌슈퍼와 어부민박 건물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 가야 선유봉 오름길과 이어진다.. 자칫 지나치면 알바다.

 

▲ 시그널을 따라 언덕 끝까지 오르면...

 

▲ 절개지가 나오고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다.

 

▲ 선유터널 위로 선유봉 오름길이다.

 

▲ 선유봉 오름길 역시 전형적인 섬산답게.. 급오름이지만 거리는 짧다.

 

▲ 선유봉 진행방향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면.. 선유도의 대표격인 망주봉과 그 아래 명사십리 해수욕장이다.

 

▲ 뒤돌아 서서.. 출발지인 선유대교를 보며 가파른 오름길을 잠시 멈추었다가...

 

▲ 다시 선유봉으로..

 

▲ 2019년에 다녀 갔던 선유봉 달팽이 바위가 생각나서 찾아가 본다..

 

▲ 다시 만난 선유봉 달팽이바위..

 

11시 03분 : 선유봉..

 

▲ 장계터와 이순신 장군의 일화.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5일 후인 1597년 9월 21일부터 10월 3일까지 고군산 군도 선유도에 상륙했다.

 

명량해전 직전 당시 극심했던 당파 간 다툼으로 희생돼 파직된 후 감옥에 갇혀 있다가 한 달여 만에 특사로 폴려나 도원수

밑에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통제사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됐다. 하지만 이순신은 남아있던 전함 12척에

한척을 추가해 겨우 13척을 이끌고 9월 16일 명량해전 울돌목(해남과 진도를 있는 진도대교 아래) 전투에 나선다.

 

전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 왜장 마다시가 이끄는 133척의 대규모 왜선과 맞선 이순신 장군은 지형을 이용한 전투를 벌여

승리를 이룬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그 유명한 울돌목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한후 서해안

으로 들어와 북으로 전진하던 이순신 장군은 부안 위도를 거쳐 전투 5일 후 선유도에서 닻을 내린다.

 

그러나 아산 본가가 왜적들로부터 분탕질 당해 잿더미가 됐고, 아들 면이 왜적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비통해 했으며, 아들 회를 올려 보낸 후 잘 도착했는지를 걱정했다는 내용이다.

장군의 고뇌가 짙푸른 바다 색과 같이 다가 온다.

 

▲ 역시나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스케일만 큰 외국산들에 비해 작지만 아기자기한 맛에 외국인들도 한국의 산하를 보고 원더풀을 연발 하는 것이다.

 

▲ 장자도는 선유7경 "장자어화(壯子漁火)"다.

고군산도민의 자랑이었다. 바로 황금어장을 뜻하는 것으로 조기잡이 어선이 밤바다에 수를 놓았던 과거를 말한다.

 

▲ 선유봉에서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가면 장자대교 인도와 만나고 구불8길 "A"코스 시작이다.

 

▲ 장자대교 인도에 올라서자말자 태풍끝자락의 영향인지 가랑비가 내린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 라는 말이 있다. 하늘을 쳐다보면 흐렸으나 비가 내릴 구름은 아닌듯 한데도 내린다...

 

▲ 내려온 선유봉..

 

▲ 장자도를 경유하여 대장봉으로..

 

11시 25분 : 장자도 회차장..

여기서 왼쪽도로를 따라 가면 장자도 둘레길이고.. 대장봉은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 관리도와 부교... 5년전에는 부교를 건너 바위섬까지 들어 갔었는데.. 리모델링을 하는 모양이다.

 

▲ 대장봉 가는길의 천년나무 조형물..

장자할매 바위가 되어버린 할머니가 천년나무 아래서 과거를 보러간 남편을 위해 기도를 한 곳이라고 한다.

 

대장도는..

어느 도사가 나타나 섬을 한 바퀴 돌아보고 이 섬은 훗날에 크고 긴 다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 후 사라져버리자..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대장도라 불렀으며 현재는 장자도와 대장도를 잇는 33m의 대장교가 있고.. 현재 공사중이다.

 

▲ 대장봉 가는길..

 

▲ 좌측바위봉은 가는길이 없고 오른쪽 바위봉은 올라가본적이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더니.. 길을 막아놓았다..

 

▲ 산에갈련다님이 보내주신 작품.. 감사합니다.

 

▲ 산에갈련다님이 보내주신 작품.. 감사합니다.

 

11시 58분 : 대장봉..

 

▲ 내려다 본 선유봉과 장자도...장자도(壯子島)는 힘이 센 장자가 나왔다 하여 장자섬이라 불리워진다.

 

▲ 관리도...

 

▲ 30배 줌으로 당겨본 선유봉 인어등대.. "흰몸 인어 전설"..

옛날, 깊은 바다에 용왕님의 사랑스런 딸 흰 몸 인어가 있었다. 흰색 몸을 한 인어는 눈에 잘 띄어 수면 위로 외출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어느 날 흰 몸 인어는 사람들 눈을 피해 신선이 노닌다는 선유도 바다를 유영 중이었는데 그때 어디선가 슬픈

곡조의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흰 몸 인어는 피리 소리를 따라갔고 그곳에서 덕배총각에게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눈부시게 하얀 인어공주에게 덕배는 반해버렸고 이들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그 바위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어느 날 고기잡이 나간 덕배가 풍랑을 만나 헤매다 다음 날에야 돌아왔다. 덕배를 기다리던 흰 몸 인어는 새벽이 지나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덕배의 극진한 간호에도 흰 몸 인어는 살아나지 못했다.

 

덕배는 인어공주를 묻어주고 그 자리에 등대를 설치, 매년 정월 대보름에 흰 몸 인어공주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

인어공주 전설이 내 나라에도 있었다니 새로운 발견이다. 선유도 무녀도 등 고군산도는 섬 이름들에서 무속의 냄새가

물씬 난다. 그래서일까.. 인어공주 등대 전설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 멀리 신시도의 대각산과 월영산과 고군산대교..

월영산(月影山)은 고군산 군도의 주봉으로 신령한 하늘 가운데 자리에 월영봉이 솟아 최치원 선생이 단을 쌓고 공부하던

곳으로 글을 읽고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고 하니. 선생의 고매한 정신이 진동하였음을 은유한다.

 

▲ 당겨 본 고군산대교(古群山大橋).. 돗단배 형상의 모습이다.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고군산군도에 있는 길이 400m의 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긴 외팔 현수교이다.

무녀도의 동쪽 부속섬인 남끝섬과 신시도의 서쪽 부속섬인 단등도를 연결하고 있다.

 

▲ 장자할매바위.

 

그 옛날 장자 할머니는 장자 할아버지가 글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에 전력을 다했다.

그래도 장자 할머니가 고생한 보람이 있었는지 할아버지는 과거에 급제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늘 그렇듯 혹여 배고플까

하여 밥상을 차려 들고 마중을 나가던 할머니는 할아버지 뒤에 소첩을 보고 그만 기가막혀 몸을 돌려버렸고 서운한 마음에

그대로 굳어져 바위가 되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할아버지와 함께 따라온 무리들도 굳어져 바위가 돼버렸다.

사실 할머니가 본 소첩은 여인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서울서 데려온 역졸들이였던 것이다.

 

그 후 바위가 된 할매는 섬의 수호신이자 사랑을 약속하는  메신저가 되었다.

그 바위를 보면서 사랑을 약속하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배반하면 돌이 된다고 하는 전설따라 삼천리다.

 

▲ 어화대(漁火臺)는.. 부자의 꿈을 빌었던 장소로, 조업하기 전 어부들은 어화대에 올라 물 위로 튀어 오르는 조기무리를

살피며 만선의 꿈을 품고 바다로 나갔다고 한다.

 

▲ 누리장나무..

꽃말은.. 치유.. 운명.. 친애.. 깨끗한 사랑이다.

 

▲ 장자도 식당가를 지나고...

 

▲ 박대...

 

▲ 선유리 고군산탐방지원센터에서 망주봉쪽으로..

 

▲ 선유도의 지킴이 대표 신선님이시다..

 

▲ 오늘의 계획은 일기관계로 망주봉 오름이 여의치 않으면 망주봉오름을 대신해줄 대봉전망대까지 다녀올 예정이다.

 

 12시 40분 : 선유도 특설무대에서 마음점찍기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 선유도스카이썬라인 솔섬..

 

▲ 망주봉(望主峰)쪽으로...

 

높이는 152m로, 선유도의 북쪽 끝에 우뚝 솟은 산으로, 2개의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망부석과 같은 형식의 설화가

전한다. 선유도에 유배된 한 선비가 이곳 바위산인 망주봉에 올라가서 한양 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하여 망주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비가 많이오면 망주봉을 타고 흐르는 폭포가 장관이라고 하여.. 선유3경 망주폭포라고 한다.

 

▲ 망주봉(望主峰)들머리 앞에서 잠시 망서리다가 한번 올라가본 곳이기에 미련없이 포기다.

습기머금은 날의 바위산은 오름이 문제가 아니라 내림이 문제가 될수있다.. 한발만 삐끗해도 중상아니면..꼴까닥이다.

 

▲ 큰 망주봉(望主峰)과 작은망주봉 사이의 숭산행궁터.

 

고군산군도는 고려시대에는 고려와 송나라간의 무역로의 기항지였고.. 옛날 중국 송나라 사신들이 고려를 방문할 때 이곳

을 거쳐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고려도경(高麗圖經)은 인종 1년인 1123년에 송나라의 사신단 200여

명이 몇 척의 배에 나눠 타고 고려를 방문했는데 고려 왕실 환영단이 마중 나온 곳이 이곳 선유도 망주봉이다.

당시 환영단의 대표로 선유도까지 왔던 사람이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서긍의 고려도경이 한국 역사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 보면 한민족 역사를 구성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두 사람이 만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서긍이 돌아갈때쯤에 풍랑을 만나 이곳에서만 20여일을 묵었다.

 

▲ 오룡묘 가는길..

 

13시 15분 : 오룡묘..

 

작은 망주봉(望主峰) 기슭에 있다.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소개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이후 영험한 기도처로 알려진 곳으로 여겨진다.

선유도 연안을 항해하던 뱃사람들이 해로의 안전을 기원하고 어로생활을 하던 도서민들은 풍어를 빌었던 곳이다.

 

고려시대에 강진에서 청기와를 싣고 개경으로 가던 배가 선유도 근해에서 심한 풍랑을 만나 오룡묘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을 때, 오룡묘의 용신이 꿈에 나타나 청기와 다섯 장을 오룡묘 지붕 위에 올려놓으면 풍랑이 가라앉을 것이라 하므로,

그대로 하자 풍랑이 멎어 항해를 계속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이 청기와는 8ㆍ15광복 이후에 도난당하여 지금은 없다.

과거에는 매년 당산제(堂山祭)와 3년마다 별신제(別神祭)를 지냈으나, 지금은 모두 중단되었다.

 

▲ 오룡묘 금줄너머로 작은망주봉을 올라가보았기에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니 지금도 다닌흔적이 있다.

 

▲ 16시까지의 하산시간이 여유가 있어 대봉전망대를 다녀오기로 한다.

 

군산 구불길의 시작은...

군산시청의 어느 말단 공무원의 깨달음에서 비롯하였다. 2008년 10월 "산티아고 가는 길" 을 걸은 한 여행작가의 강연이

있었다. 그 강연을 듣고 감동한 청중 중에 군산시청 관광진흥과 임현(39)씨도 있었다. 그는 군산 관광 진흥의 희망을 도보

여행에서 발견했다. 화려한 해수욕장도 없고, 유서 깊은 온천도 없고, 웅장한 산세의 국립공원도 없는 군산에서 관광객을

불러모을 수 있는 방법은 도보여행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마침 제주올레가 개장한 직후였다.

 

13시 48분 : 대봉 정상..

 

▲ 오늘 산대장님이 제시한 코스에 남악산도 들어 있다.. 하지만 남악산은 포기다.. 별로 메리트(merit)가 없는 코스다..

남악산 뒤로 말도.. 보농도.. 명도.. 방축도.. 소횡경도.. 황경도가 길게 누워있다.. 말도에서 방축도까지 섬을 연결하는

트레킹 일주코스가 내년(2025년 6월경)에 개통된다고 한다.. 그때는 방축도 독립문 바위를 가볼 것이다..

 

13시 49분 : 대봉전망대.

 

▲ 망주봉정상에 못 올라간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조금은 약하지만 그래도 꿩대신 닭의 역할로는 충분하다.

 

▲ 망주봉에서 내려다보는 선유2경 평사낙안은 가히 환상적이다.

 

▲ 신시도의 대각산과 월영산..

선유8경 "월영단풍(月影丹楓)"은 신시도의 월영봉 단풍을 가리킨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이곳의 월영단풍에 반해 바다를 건너와 잠시 머물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 선유8경 위치도.

여기서 잠시 고군산군도의 선유8경의 위치를 알아보자. 망주봉에 오르면 1경 명사십리.. 2경 평사낙안.. 3경 망주폭포..

6경 선유낙조를 즐길수가 있다.. 그중에 낙조와 낙안 풍경은 압권이다.

 

▲ 고군산군도에도 거창의 미녀산과 자매인 미인봉이 있다..

천계의 선녀가 계율을 어기고 머스마를 만나.. 임신을 하여 천계에서 쫏겨나 이곳에 누워 선녀봉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신선이 노닐다 갔다고해서 선유도(仙遊島)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 대봉전망대를 내려가기전에 망주봉에 올랐던 인증과..

 

▲ 망주봉에서 내려다 보았던 선유 2경 평사낙안이다.. 잠시 회상해 보고 대봉전망대를 내려간다.

 

▲ 선유도에 1박 하면서 담았던 선유1경 선유낙조다.

 

▲ 선유도 광장에서 좌측으로..

 

14시 38분 : 선유도유람선선착장.

 

▲ 선유대교입구에서..

 

▲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14시 45분 : 물량장공영주차장.

 

▲ 트랭글 정리..

운동거리 13km.. 평균속도 3.2km.. 소요시간 4시간 27분... 아주 양호한 성적이다.

 

▲ 군산시로 가는길에.. 개천날의 하늘이 열렸다..

 

<새만금>이라는 명칭은 오래전부터 옥토로 유명한 만경평야와 김제평야와 같은 옥토를 새로히 일구어 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난 1991년 11월 착공되어 19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10년 4월 27일에 준공한 새만금방조제는 모두

2조 9, 000 억원이 투입된 국내 최대의 토목공사로, 연간 237 만명의 인력과 91 만대의 건설장비가 동원됐고, 방조제 건설

에는 모두 1억2,300만㎥의 토사가 투입됐다. 이는 경부고속도로 4 차선을 13m높이로 쌓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량이다.

 

▲ 군산시 대식가한식뷔페..

 

▲ 화랑의 산대장님..

이유가 없이.. 그냥 좋은사람이 있다.. 산대장님이 그런 사람입니다.

 

▲ 화랑의 회장님..

본인은 겸손하게.. 항상 작다고 말 하지만..

당신은 산보다 더 큰사람입니다..

 

환인.. 환웅.. 단군.. 이화세계(理化世界)의 의미는 접어두고..

그 천년의 시공을 넘어온 2024년 10월 3일의 오늘은.. 하늘이 열린다는 개천(開天)의 날인데..

호랑이가 장가라도 가는지.. 해도나고 비오고 바람불고 변덕이 죽끓는 날이다.

그럼에도 한사람의 낙오도 없고 불상사도 없고 불평도 없다..

 

논어(論語)의 옹야편(雍也篇)에.. 

지지자(知之者)는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요..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호지자(好之者)는 불여락지자(不如樂之者)니라..하였다.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말이다.

 

오로지.. 즐기며..

갈길을 가는 사람들.. 화랑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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