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53분 : 사성암주차장.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대형산불로 번지면서 전국에 초비상의 "심각" 단계를 발령하면서 전국의 입산금지구역이 확산되어...

비교적 입산이 용이한 사찰쪽으로 집중 몰림 현상으로.. 이곳 사성암주차장도 전국에서 몰려든 대형버스와 승용차가 뒤엉켜 완전

포화상태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 천년고찰 사성암을 품은 오산(山)을 올려다 보고...

 

▲ 사성암을 왕복하는 셔틀버스(마을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사성암을 오르는 방법은 두가지다.. 셔틀버스를 타면 왕복 3400원이고.. 택시를 타면 왕복 14000원이다. 우리는 걸어서 올라 간다..

마을버스 뒤쪽의 철구조물은 섬진강 스카이바이크(공중자전거)를 타는 곳이다..

 

▲ 걸어 올라가면서 주차장을 내려다 보니 스카이바이크를 타고 간다. 섬진강위를 건너는 스릴감도 꽤나 재미가 있을것 같다.

 

사성암유리광전...

효. 의상. 도선. 진각 등 네 명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했다하여 "사성암(四聖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유리광전 암벽에 고려시대 초기 작품인 음각마애여래입상이 있어 창건 내력을 짐작한다.

 

108계단을 따라 사성암유리광전으로 올라간다...

드라마 <추노>를 촬영했다는 108계단길은.. SBS드라마<토지>에서 서희와 길상이가 불공을 드린 촬영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 유리광전 현판..

사성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의 말사이다.

 

▲ 법당안에는 효스님께서 득도후에 손톱으로 조성했다는 마애약사여래불이다.. 보호를 위해 유리로 막아 놓았다.

 

▲ 소원바위와 도선굴.. 오산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다시 내려가서 저 계단으로 오른다.

 

▲ 사성암 유리광전..

금강산의 보덕암과 흡사하다고 하는데 안가봐서 모르겠으나.. 바위 절벽에 지었다는 점에서 관악산 연주암이 생각 나며...

저렇게 아슬아슬한 곳에 매달려있는 법당을 어떻게 지었는지.. 감탄이 절로 난다..

 

 사성암 수사해당화(꽃사과)... 중국에서는 서부해당화라고 한다.

 

▲ 산왕전..

기(氣)가 빠져나갈래야 빠져나갈 데가 없다는 천하제일의 명당자리라고 한다..

 

▲ 도선굴에서..

 

▲ 배례석은...

사성암에 불상이 없었던 시절에 여기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이 배례석에서 화엄사의 부처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며 부처님께 예를 올

렸다고 하는 곳이다. 원효 대사가 이곳에서 어머니를 모시면서 수도하였다고 하며...어머니를 위하여 시끄러운 섬진강의 물소리

이곳 바위에 가두었다고 한다..

 

▲ 구례군청 소재지...

 

▲ 내려갈때는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에서 청봉산악회 본대와 만나서 하산식 장소로 이동한다...

 

▲ 성삼재 아래 산수유마을로 유명한 당골로...

 

▲ 성삼재휴게소가 올려다 보인다... 약 1시간 30분 거리의 등산로가 이어져 있다.

 

▲ "당ㄱ식당"...

 

▲ 붉은동백과 흰동백을 한나무에서 동시에 피워내는 희귀종이다..

 

▲ 자연산 촌닭에서만 가능한 닭똥집육회와 닭가슴살육회...

 

▲ 산수유의 고장 구례군의 당골을 떠나며...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전국이 강풍에 눈소식이다.

춘분을 지난지가 23일이 지났고 모심기를 준비한다는 곡우(穀雨)가 내일 모레다.

그럼에도 여전히.. 봄은 봄이되 봄 같지 아니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인간에 의해 발생한 산불재앙에 산신이 노하셨는지..

도선굴을 나와 오산(山) 정상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바람불고 눈발이 날려 발길을 돌렸다..

 

꽃샘추위로 널뛰기를 하는 스산한 날씨였지만..

하산식 장소인 "당ㄱ식당"의 산닭구이로

하산식 비용 전액을 보시한 권감사님의 덕분에

몸과 마음은 어느때 보다 든든하고 따뜻한 하루였다.

2025년 03월 29일(토요일).
주작산 : 전남 강진군.

 

산행코스 : 오소재약수터-427봉-작천소령갈림길-주작산-해맞이전망대-휴양림 5주차장.

산행시작 : 오소재약수터 10시 23분.

산행종료 : 휴양림주차장 15시 14분.

전체거리 : 약9.86km.

전체시간 : 04시간 51분.

운동시간 : 04시간 26분.

휴식시간 : 00시간 25분.

누구하고 : 드림마운틴.

 

10 : 23  오소재약수터.

12 : 36  427봉.

13 : 55  작천소령갈림길.

14 : 32  주작산.

14 : 40  해맞이전망대.

15 : 14  휴양림5주차장.

 

 10시 23분 : 오소재약수터.

 

전남 해남군에서 특별관리를 하고 있는 물맛이 좋은 곳으로.. 수도 꼭지 잠금 장치를 일부러 제거하여 365일 물을 뿜어내고

있으며 주말이면 목포.. 진도.. 완도. 강진.. 사람들 일부도 물을 받으러 온다고 한다. 정수기 업체에 의하면 전국에서 유일

하게 정수기를 팔수 없는 곳이 해남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오소재약수터 때문이라고 한다.

 

▲ 약수터에서 땅끝마을로 가는 827번 지방도를 따라 5분가량 올라오면.. 투구봉이 보이는 오소재..

 

오소재는 오래전에는 오시미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산적들의 행패가 하도 심해서 50명이상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넘어

야 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또다른 설은 주작산의 암릉들이 까마귀의 집처럼 생겼다고 해서 오소재(烏所峙)

로 부른다고 하는 유래가 있다.

 

▲ 본격적인 주작산 산행에 앞서.. 주작산의 지형도를 보면... "붉은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다도해로 날아가는 모습이다.

전설의 새인.. 봉황(鳳凰)이 도를 깨치면 "붉은 봉황"인 주작(朱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양날개의 산세를 말할때 남쪽의

주작산을 "주작 용아능선" 이라 하고.. 북쪽의 덕룡산은 "덕룡 공룡능선" 으로 불린다.

 

 10시 28분 : 주작산 들머리인 오소재(烏所峙)는.. 땅끝기맥 5구간으로 계라리고개에서~덕룡산~주작산~오소재 까지다..

 

▲ 초반부터 바위직벽의 앵커 사다리를 네발로 기어서 올라가야 하는 덕룡산에 비해.. 주작산의 오름은 완만하게 시작된다.

그래서.. 남쪽의 주작산을 "여성"에 비유 하고.. 북쪽의 덕룡산은 근육질의 "남성" 으로 비유하며... 난이도는 4:6으로 본다.

 

▲ 낮으막한 구릉같은 언덕을 넘어서면.. 머리위로 340m봉이 올려다 보인다.

 

▲ 오소재 들머리를 출발한지 10분만에 340m봉 오름데크가 시작되고 완전한 만개는 아니지만 진달래가 환영을 해준다.

 

▲ 물러가는가 했던 꽃샘추위가 다시 찾아와.. 최저 3~4도에 낮최고 11도에 풍속 4~5m/s의 다소 서늘함이 느껴진다.

 

▲ 하지만.. 남도의 바람에는 남녘의 온기도 섞여 있어서인지.. 340m봉의 거친 바위사이로 오르며 등줄기에는 땀이흐른다.

 

▲ 340m봉.

 

▲ 뒤돌아 본 340m봉.

바위 사이사이의 진달래가 만개하여 핑크색으로 온통 페인팅 되어야 하는데 아쉽다.. 다음주 부터가 피크일것 같다.

 

▲ 내륙으로 깊숙히 들어온 강진만 건너로 고금도와 수 많은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이어져 있다..

 

▲ 선바위.

 

▲ 꽃샘추위로 주작산의 많은 꽃들은 주춤거리며 움츠렸는데..

내가 조금 일찍 왔지만.. 먼길 찾아온 내가 섭섭해 할까봐..

추위의 시간을 이겨내고 활짝 피워 맞아 주는 네가 있어 반가웁구나~..

너를 만나니.. 꽃샘추위 속의 봄바람에 마음이 확~ 열린다.

 

▲ 362m봉 오름길의 전망바위에서 뒤를 돌아보니 투구봉에서 두륜봉을 넘어 노승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그림이다.

산너머.. 성도사 입구 쇄노재에서 너럭바위를 타고 올라 위봉을 지나서 투구봉에 서면.. 막힘없는 조망이 일품이다.

 

▲ 두륜산 주봉인 두륜봉은 가련봉과 노승봉에 가려서 보이지 않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던 오계봉에서 내려다 보는

양촌저수지의 한반도 모양이 회상 된다... 오심재 너머에는 해남군의 천년고찰 대흥사가 자리하고 있다.

 

▲ 남도 해남땅의 풍요한 들판과 다도해의 완도를 시원하게 조망하고..

 

10시 53분 : 362m봉에 올라선다..

 

▲ 강진만너머로 장흥군의 진산이며 가을 억새가 이쁜.. 천관산을 바라보고..

 

11시 04분 : 처음으로 만나는 이정표..

수양리재(작천소령)까지 3.0km면.. 일반적으로 약1시간 30분내지.. 2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 강진 만덕산아래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다산초당 오름길에서 만나는 "뿌리의 길"이 생각난다.

 

11시 09분 : 401.5m봉.

 

 401.5m봉의 다음 암봉은 기차바위다..

 

 기차바위..

디젤기관차 처럼 보인다.

 

 기차바위.. 지붕위에서..

 

기차바위 지붕위에서.. 당겨 본 고계봉..

 

기차바위 지붕위에서.. 당겨 본 가련봉과 노승봉..

 

 기차바위 지붕위에서 바라본.. 해남 들녘과 강진만..

 

 기차바위 지붕위에서.. 가아할 주작산 능선..

 

11시 28분 : 제1비상탈출로 이정표..

산에 다니면서 "비상탈출로"라는 이정표는 처음 본다.

 

주작산 등로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밧줄.. 주작산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굳이 밧줄이 필요 없을것 같은 곳에 왜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것이다.. 이지역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온다. 눈이 오거나 비가내리면 미끄러운 석영으로 오르기가 쉽지 않다.

 

수양리재(작천소령) 2.2km.. 지금부터 "주작산 용아능선"의 시작이다.

 

기암의 연속인 주작산이 서서히..  "주작산 용아능선"의 본모습을 보여줄 모양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북한땅을 지나고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지나지리산을 향해 남으로

남으로 달려가던 백두대간상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한다.

 

금남호남정맥은 장안산.. 팔공산.. 마이산을 지나 주화산에서 그 맥을 다하고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갈라진다.

내장산.. 강천산.. 무등산을 지나 남으로 내려오던 호남정맥의 바람봉(430m)에서 땅끝기맥이 분기한다..

 

땅끝기맥은...

국사봉(613m).. 월출산(809m).. 도갑산(401m).. 월각산(456m).. 주작산(428m).. 두륜산(703m).. 달마산(489m).. 도솔봉

(416m)을 지나 땅끝의 사자봉(109m) 까지 약 120km를 잇는 산줄기이다.

 

11시 49분 : 제2비상탈출로 이정표.

 

 남산 제비꽃..

꽃말은... 성실.. 교양.. 품위 있는 가인.. 나를 생각해 다오.. 소박함.. 순진무구한 사랑이다...

 

 절묘한 균형잡기다...

 

밧줄 설치상태를 보기위해 다섯번째 밧줄을 점검해 본다...

 

 주작산의 밧줄은..

나무나 바위에 묶어 놓은 것은 하나도 없다.. 바위에 앵커 볼트(anchor bolt)를 박고 단단히 시공하였다.

 

드디어 주작산의 분기점인 작천소령(수양리재)이 보이고 덕룡능선과 주작산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런데.. 작천소령 분기점까지 보이지 않는 암봉을 포함하여 10개 이상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것만 해도 5~6개는 되어 보인다.

 

주작산 암봉은 비켜서 돌아가는 길은 거의 없고 두 군데 정도 우회하는 길이 있을뿐.. 모든 암봉을 정면 승부로 밧줄을

타고 정면 돌파해야 한다.

 

여섯번째 밧줄에서 첫번째로 암봉을 우회 한다..

 

 주작산 용아능선을 다 지나도록 인증샷이 없어서 지나가는 산객에게 부탁하여.. 한컷..ㅎㅎ~

 

12시 11분 : 제3비상탈출로 이정표..

 

 아홉번째 밧줄..

여기는 발디딤이 매우 미끄러워서.. 특히 여성분들이 집에 계시는 "엄마"를 호출하는 곳일 것 같다~.ㅎㅎ..

 

12시 28분 : 삼각점이 있는 427m봉.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주작산 관악사 산신각..

 

 당겨 본 산신각..

 

 봉황의 머리에 해당하는 주작산.. 높이로는 428m로 낮지만 봉황의 머리격으로 상징성이 매우 크다.

 

 15번째 밧줄..

 

 뒤 돌아보니 주상절리에 걸쳐 있는 "고인돌" 바위인가 하고..

 

눈앞으로 당겨 보니.. 아니다..

 

 사자 같기도 하고..

 

석영암(石英巖)... 석영 성분으로 이루어진 화산암이다.

 

 기암 아래의 동백숲에서..

 

13시 11분 : 땅에서 다시 피어난 동백을 보며.. 늦은 민생고를 해결한다.

 

 통천문.. 앞과 뒤..

 

바위에 막혀 길이 끊어진듯 보이지만.. 바위사이로 길을 내어 준다...

 

바위.. 수석.. 주상절리.. 기암의 야외전시장이다.

 

주작산은 "여지도서(輿地圖書)" 강진현 편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다산 정약용의 외손 윤정기(尹廷琦 1814~1879)의

<동환록 : 1859>에 주작산이 덕룡산(德龍山)으로 나타난다. <동환록> 이후에 간행된 모든 지리서에 산 이름은 다시 주작산

으로 기록되었다. 주작산의 산 이름은 산의 모습이 전설 속의 새 주작(朱雀)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데서 유래하였다. 주작은

남방을 지키는 신령인데.. 주조(朱鳥)라고도 하며.. 예로부터 붉은 봉황을 형상화하여 무덤과 관 앞 쪽에 그렸던 새다.

 

 21번째 밧줄..

여기까지 오는 동안 20번의 업 다운(up down)을 하며 오르내렸던 밧줄에 손을 댄것은 한 두번이었는데 이곳은 다르다..

윗쪽의 바위가 얼음판처럼 미끄럽고 발디딤이 좋지 않아서 유일하게 밧줄의 덕을 완전히 보면서 올라간 구간이다.

 

 22번째 밧줄..

 

 좌측으로 우회길이 있다...

 

 자연이 쌓은 삼층석탑..

 

 24번째 밧줄..

 

 26번째 밧줄..

 

 27번째 밧줄..

 

 봉황의 좌우측 날개와 힘찬 날개죽지를 한눈에 볼수 있는 곳이다...

 

일명 UFO바위 또는 고인돌 바위.. 또는 시이소오바위..

 

 28번째 밧줄..

오늘의 마지막 밧줄이다.

 

 마지막 암봉이 보인다..

 

 봉황의 오른쪽 날개죽지에 해당하는 마지막 암봉이다.

 

 아래쪽이 작천소령(수양리재) 이다..

 

13시 55분 : 작천소령(수양리재)갈림길.. 여기서 직진하여 봉황의 머리격인 주작산을 향한다.

 

지금시간이 13시 58분.. 하산 종료시간은 15시 30분이기에... 혼자라도 다녀오려고 하는데.. 5~6명이 내려간다..

 

 주작산휴양림..

 

 삼나무 군락을 지나고..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길로 올라 선다...

 

주작산 오름길의 조망바위에 바라 본 지나온 주작산의 오른쪽 날개인 용아능선의 모습이다..

 

주작산은 주작이라는 멋진 이름을 걸고 아름다운 양 날개를 펴면서 한마리의 봉황이 되어 높이 비상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옛 사람들은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보고 전설속에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주작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주작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주작산 오름길의 조망바위에 바라 본 주작산의 왼쪽 날개인 덕룡 공룡능선 역시 봉황의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이다.

 

남쪽에 있는 주작산의 주봉이 봉황의 머리부분이고.. 우측 날개는 작천소령에서 오소재로 연결된 해남쪽 용아능선이고..

좌측 날개는 덕룡산에서 소석문으로 연결된 강진쪽 덕룡공룡의 암릉이고... 주작산에서 작천소령을 지나 첨봉으로 이르는

화원지맥 능선이 주작의 몸통이 된다. 또한 주작산의 꼬리 부분은 화원지맥 분기점인 첨봉(354m)이 이에 해당된다.

 

 주작(봉황)의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첨봉도 보인다.

 

좌측으로 보이는 만덕산은..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시절 기거하였던 다산초당이 있고 돌아가신 정조대왕과 흑산도

에서 유배중인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여 강진만을 바라보며 다산의 스산한 마음을 다스리던 곳이다.. 오른쪽은 가우도다.

 

 여계산과 가우도를 연계하는 트레킹을 다녀온지도 강산이 벌써 두번이나 변했다.

 

14시 32분 : 주작산(428m).. 뜻하지 않게 동행하게 된 일행이 인증샷을 해 준다.. 나도 보답으로 단체 인증샷을 보시..

 

 임도종점(해맞이전망대)이 520m 라는 이정표를 확인하고.

 

잘 정비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활공장과 가우도..

 

14시 40분 : 해맞이전망대광장.. 임도 종점이다.

 

14시 49분 : 좌측으로 말바위가 보이는 지점을 지날때..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한다.

오늘 일기예보에 오후3시쯤에 비나 눈 예보가 되어 있다... 안좋은 건 잘 들어 맞는 기상청이다~..ㅋㅋ

 

15시 09분 : 휴양림관리사무소를 만나는걸 보니 제대로 내려 온것 같다.

 

 좌측의 기름바위와 오른쪽의 말바위.. 저 사이 계곡으로 내려 왔다.

 

15시 14분 : 휴양림5주차장 산행종료..

 

주작 용아능선의 암릉길에서..

시간당 평균속도가 2.2km면..

상당히 앙호한 수준이다.

 

아직은...

쓸만한 내 몸이다~..

 

자만은 금물이고..

최상의 컨디션을 지속유지하여..

 

진달래가 덕룡을 화려하게 물들이는날에

덕룡 공룡에 도전해 보련다.

2012년 4월 8일.. 사성암~오산~둥주리봉~용서마을.. 산행때..

선바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찾아보려 했어나 선바위 입구를 찾지 못하고 바위전망대에서 선바위 꼭대기만 내려다 보고

왔기에.. 내내 아쉬워 하다가 며칠전에 코스정보를 알고 지인과 도전한다.

 

가는방법 : 서부정류장 07시 55분에 출발하는 구례행 시외버스 탑승(요금 : 15900원)... 구례버스터미널 10시 50분 도착.

택시를 타고 사성암하부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산행시작..

 

2025년 03월 14일(금요일).
오산/선바위 : 전남 구례군.

 

산행코스 : 사성암하부주차장-돌탑길-사성암-오산-선바위-마고마을-두꺼비다리-구례공영버스터미널.

산행시작 : 사성암하부주차장 11시 03분.

산행종료 : 구례공영버스터미널 16시 13분.

전체거리 : 약13.2km.

전체시간 : 05시간 10분.

운동시간 : 04시간 21분.

휴식시간 : 00시간 49분.

누구하고 : 지인(도)과 함께.

 

11 : 03  사성암하부주차장.

11 : 20  돌탑전망대.

11 : 58  사성암.

12 : 21  오산.

13 : 51  선바위.

15 : 06  마고실입구.

15 : 17  두꺼비다리.

16 : 13  구례공영버스터미널.

 

 11시 03분 : 사성암하부주차장.

 

 섬진강스카이바이크(공중자전거)..

섬진강 건너까지 365m의 거리라는데.. 현재 공사중인가 보다..

 

▲ 사성암 오름방법은 두가지다..

셔틀버스를 타면 왕복 3400원 이고.. 택시를 타면 왕복 14000원이다. 우리는 걸어서 올라 간다...

 

자라와 두꺼비..

오산(鰲山)은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자라 형국이라고 하고.. 두꺼비는 섬진강 유래와 관련이 있다.

 

 주차장에서 도로에 나와서 왼쪽으로 7~80m지점에 있는 복지센터앞으로 올라간다.

 

 제법 가파른 시멘트길을 쉬엄쉬엄 올라가면..

 

근무년한을 넘겼는지 아랫도리가 부실한 이정표가 비스듬히 누워서 길을 묻는 산객에게 알아서 가라고 한다.

 

기억으로는.. 13년전에는 없었던 데크가 머리를 치켜들고 위압감을 준다.

 

▲ 오름중에.. "힘드네~.." 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에 쉼터를 두었다.

 

▲ 이어지는 계단을 올려다 보니... 악소리가 나는 데크다.

 

▲ 힘들게 올라서니 눈에 익은 시그널.. 핵폭탄이 보인다..

 

11시 48분 : 셔틀버스주차장이라는데 공사중이다...

주차장에서 42분 소요되었다..아직까지는 두다리가 쓸만한 것 같은데.. 언젠가는 셔틀버스가 필요한 날이 오겠지..

 

일반차량 주차장...

전에 없었던 건물도 많이 생긴것 같다.

 

11시 58분 : 사성암 유리광전..

금강산의 보덕암과 흡사하다고 하는데 안가봐서 모르겠고.. 바위 절벽에 지었다는 점에서 관악산 연주암이 생각 나며...

저렇게 아슬아슬한 곳에 매달려있는 법당을 어떻게 지었는지.. 감탄이 절로 난다..

 

 사성암은...

효. 의상. 도선. 진각 등 네 명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했다하여 ‘사성암(四聖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유리광전 암벽에 고려시대 초기 작품인 음각마애여래입상이 있어 창건 내력을 짐작한다.

 

▲ 사성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의 말사이다.

또한.. SBS드라마<토지>에서 서희와 길상이가 불공을 드린 촬영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드라마 <추노>를 촬영했다는 108계단길에는.. 부처님 오신날을 준비하는지.. 연등걸이 공사를 하고 있다.

 

▲ 법당안에는 효스님께서 득도후에 손톱으로 조성했다는 마애약사여래불이다.. 보호를 위해 유리로 막아 놓았다.

 

▲ 소원바위와 도선굴.. 오산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다시 내려가서 저 계단으로 오른다.

 

▲ 섬진강이 띠를 두르듯 흐르고.. 멀리로는 순천 완주간 고속국도가 달려간다.. 참으로 그림같은 풍경이다...

 

▲ 담쟁이가 그린 그림...

 

▲ 부처님의 설법을 따라.. 험한 말은 입에 담지 않으며.. 시시비비의 소리에 현혹되지 말고.. 남의 잘못을 보려하지 말라..

 

▲ 지장전은.. 지장보살과 명부(저승)의 공간이다.

 

중창인 박병현, 화주 이용준, 불가기원 2965년(重創人 朴炳現, 化主 李容準, 佛家記元 二千九百六十五年) 이라고 음각

되어 있는 글씨로 보아 지금의 사성암 건물들은 무인년(戊寅年)인 1938년에 중창한 것으로 추측된다.

 

▲ 소원바위(일명 : 뜀바위)..

이곳은 오산 사성암의 가장 유서 깊은 장소라고 여겨지는 곳이라 한다.

과거에는 이 바위 위에서 건너편 바위로 뛰어 넘어면서 한가지 소원을 빌면 소원 성취가 된다는 유래가 있었는데..

 

▲ 소원 바위는..

높이 12m, 가로 8m, 폭 5m의 거대한 바위로.. 근래에는 위험하다 하여 못올라가게 하고 밑에서 소원을 빌도록 하였다.

 

소원바위에 얽힌 유래..

마한이나 백제 시대의 까마득한 옛날이었을 것이다. 지리산 기슭 구례에 사는 나무꾼이 있었다. 무성한 삼림에서 나무를 

벌목하여 뗏목을 지어서 섬진강에 띄워 하동에 운반하며 생활하였다. 그의 아내는 섬진강 물길이 하동으로 내려가는 풍경

이 보이는 오산 정상의 바위 아래에서 남편의 안전을 빌었다. 아내는 날마다 오산에 올라가 남편의 안전을 빌었다.

 

아내가 어느 날 바위 위에서 신발 한 쪽을 떨어트렸고.. 신발을 주우려다가 실족하여 세상을 떠났다. 그때 흘린 신발 한짝이

섬진강을 따라 흘러갔고, 남편이 그 신발을 보았다. 아내가 기다리는 오산 정상에 이르러 남편도 아내의 길을 따라갔다.

 

이후로 오산에서 신발을 잃으면 하동에서 찾는다는 지역 속담이 전해졌다. 이 소원바위의 전설이 천년 사랑의 원형으로서

백제의 "지리산 녀(女)" 설화와.. 남원 춘향전 근원인 설화의 하나로 보인다.

 

산왕전..

기(氣)가 빠져나갈래야 빠져나갈 데가 없다는 천하제일의 명당자리라고 한다..

 

 산왕전 앞은 배례석이다.

원효 대사가 이곳에서 어머니를 모시면서 수도하였다고 하며... 어머니를 위하여 시끄러운 섬진강의 물소리를 이곳 바위에

가두었다고 한다..

 

 도선굴은 도선국사가 수도를 하였다는 곳이다...

 

 도선굴을 나와서..

 

 오산 정상으로..

 

12시 22분 : 오(鰲山)은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자라 형국이라고 한다..

 

장쾌한 지리능선과 마주한다.

1주일 전인 3월 6일에 운조루에서 월령봉 능선을 타고 화엄사로 내려 갔었다.

 

오늘 산행은 자래봉에서 선바위를 집중탐구하고 마고마을로 내려갈 것이다.

 

13시 11분 : 매봉.

 

자래봉을 향해서...

 

13시 33분 : 선바위구름다리1..

모두가 생각하는 그런 구름다리가 아니고 바위 암릉을 지나가는 데크길을 말한다. 1전망대까지 다녀 온다.

 

13시 35분 : 선바위1 전망대.

 

뒷쪽으로 선바위1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어차피 진짜선바위는 볼수 없고 가짜선바위만 보인다..

 

여기서 보는 오산 사성암도 절경이다.

 

 당겨본 사성암..

 

 그리고.. 13년전에 선바위 꼭지만 보고 결국 찾지 못했던 선바위다. 오늘은 다시 올라가서 밑으로 내려 갈 것이다..

 

▲ 자래봉 내림길에서 솔봉이 지척으로 보이고..

 

13시 43분 : 마고실마을길이 선바위 가는길이다.

 

 선바위구름다리2.. 물론 구름다리는 없다.. 이해가 안가는 표시다.

 

 안전모를 착용하라는데.. 이용자는 없는 모양이다..

 

절벽을 따라 데크길을 내려가면서 보이는 깎아내린 단애(斷崖)가...

 

 아찔한 높이다..

 

 선바위.. 강렬한 인상의 포스(force)다.

 

 자연인이 한때 머물렀던 흔적이 보인다.

 

길게 이어지던 선바위 데크길은 여기까지고.. 올라가면  선바위2 전망대~ 1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이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임도와 만난다.

 

 생각지도 못한 전망대가 있어서.. 잠시 들른다.

 

13년만의 선바위 숙제를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임도를 따라 마고동으로 내려 간다.

 

꼬부랑길에서 지름길이 있나 살펴 보았으나 없다..

 

히어리.. 다른나라에는 없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전망대에서는 진짜 선바위는 보이지 않고 보조 선바위1만 보인다..

오른쪽 선바위구름다리2 데크로 내려오면 진짜선바위를 만날수 있다.

 

 당겨본 왼쪽의 전망대.

 

 마고실 마을의 두꺼비다리..

 

15시 06분 : 마고정..

마고(麻姑)는.. 한국 신화에 많이 등장하는 할머니 신의 이름이다.

 

 마고실에서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구례출발 시외버스시간이 17시 30분이다..

약2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두꺼비다리를 건너서 산책로를 따라 구례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 섬진강(蟾津江).

 

첫번째 유래<백과사전>..

본디 이 강의 이름은 모래내, 다사강(多沙江), 두치강(豆置江)이었던 것이 고려조부터 섬진강(蟾津江)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우왕 11년(1385년)에 왜구가 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광양땅 섬거(蟾居)에 살던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이곳으로

떼지어 몰려와 울부짖자 이에 놀란 왜구들이 피해갔다는 전설이다.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두번째 유래<전라남도지>... 

옛날에 한 처녀가 나루터에서 홍수에 떠내려가는 두꺼비를 구해 주었는데, 후에 그 처녀가 물에 빠져 곤경에 처하자 두꺼비

가 처녀를 구한 후 지쳐서 그 언덕 밑에서 숨졌다고 한다. 그 뒤 이 두꺼비의 아름다운 행실을 기리는 뜻에서 이곳을 섬진강

이라 하였다.

 

세번째 유래<광양군지>...

고려말 혹은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쳐들어오는데 우리 군사들이 쫓겨서 섬진나루에 이르러 보니 건너야 할 배가 없어

곤경에 처하였다. 그 때 두꺼비 수백만 마리가 강에서 떠올라 다리를 놓아 주고 우리 군사들이다 건너고 나니 왜병들이

몰려왔다. 그때 두꺼비들이 그들을 등에다 태운 채 모두 강물속에 들어가 버려 왜병들이 빠져 죽었다고 하며, 이로 인하여

두치강(豆恥江)이라 불렀던 것을 두꺼비강이라 해서 섬진강이라 불렀다.

 

옛부터..

주요 통행로인 섬진나루에 1705년 수군진(水軍鎭)이 설치되어 1895년 진(鎭)이 폐쇄되기까지 수백명의 병사와 여러 척의

병선이 주둔하였다. 지금까지 이곳에 당시 수급 장교였던 별장의 기념비 좌대로 사용했던 돌 두꺼비 4기가 남아있다.

 

*섬진강 유래비 위치 :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청매실농원 앞 강변)..

 

 섬진강 건너 오산과 사성암이 보여서..

 

 당겨보니 산세가 자라(오鰲)같기도 하다..

 

 노고단...

 

 산수유... 내일 3월 15일(토)부터 구례 산수유축제가 열린다.

 

 섬진강 대숲길...

머지않아서 울산의 태화강십리대숲길이 여기 구례에도 생길것 같다.

 

 섬진강스카이바이크..

 

 공중자전거를 타고 섬진강을 날으는 재미도 쏠쏠할듯 하다.

 

 구례 로터리..

 

16시 13분 : 구례공영버스터미널 트레킹 종료..

17시 30분발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서부 정류장에 19시 50분에 도착후.. 해산..

 

.

2025년 03월 06일(목요일).
월령능선/화엄사 : 전남 구례군.

 

산행코스 : 운조루-월령봉-형제봉-밤재-구층암-의상암들매화-화엄사-화엄사주차장.

산행시작 : 운조루 09시 16분.

산행종료 : 화엄사주차장 15시 27분.

전체거리 : 약14.4km.

전체시간 : 06시간 10분.

운동시간 : 05시간 36분.

휴식시간 : 00시간 34분.

누구하고 : 화랑산악회.

 

09 : 16  운조루.

10 : 54  삼밭재.

11 : 39  월령봉.

12 : 03  863m봉.

12 : 32  형제봉.

13 : 01  밤재.

14 : 32  구층암.

14 : 37  의상암들매화.

14 : 44  화엄사.

15 : 27  화엄사주차장.

 

09시 19분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에서..

 

집 앞의 연당(蓮塘).. 물이 채워져 있지 않아 황량해 보인다.

남쪽의 산세가 불의 형세를 하고 있어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운조루는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와

함께 내수구(앞 도랑)와 외수구(섬진강)가 제대로 되어 있는 명당터에 자리잡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일대는 금귀몰니(金龜沒泥), 금환락지(金環落地), 오보교취(五寶交聚), 혹은 오봉귀소(五鳳歸巢)의

명당이 있는 곳이라고 하며, 이 집터에서 거북이의 형상을 한 돌이 출토 되었기에 금귀몰니의 명당으로서 남한의 3대 길지

로 알려져 있다...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세가지형의 길지(吉地)는...

첫째.. 금환락지형(金環落地形)으로 미녀(美女)가 무릎을 꿇고 앉아 금가락지를 풀어 놓은 형국(形局)이며..

둘째.. 금귀몰니형(金龜沒泥形)은 금거북이가 진흙 속에 묻혀 있는 형국(形局)이고..

셋째.. 오보교취형(五寶交聚形)은 금(錦)․은(銀)․진주(珍珠)․산호(珊瑚)․호박(琥珀) 등 다섯 가지 보물이 쌓여 있는 곳이다.

 

 운조루를 관람하려고.. 다가 가니..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운조루(雲鳥樓)는 이 집의 택호(宅號)이기도 하며..

운무심이출수(雲無心以出岫)..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조권비이지환(鳥倦飛而知還)..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라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내용중에서 머리글자를 따와서 운조루(雲鳥樓)라고 하였다고 한다.

 

 운조루 소슬대문..

운조루(雲鳥樓)를 지은 유이주(柳爾胄 영조1726∼정조1797)는 조선 후기 무신(武臣)이자 건축가(建築家)이며 풍수지리

(風水地理)에 밝은 사람이었다. 호는 귀만(歸晩),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경북 대구(大邱) 해안면(解顔面) 입석동(立石洞)

서 태어났다. 유이주(柳爾胄)의 건축기술은 궁궐공사와 수원화성, 남한산성, 상담산성, 낙원읍성의 축성(築城)에 참여한

기록이 있다.

 

1773년(영조 49) 낙안군수(樂安郡守)로 있을 때 궁궐에 올리는 세미선(稅米船)이 파손 침몰되어 그 죄로 유배를 당하였다.

유배에서 풀려나자 그는 가족을 거느리고 전라북도 구례군(求禮郡) 문척면(文尺面) 월평으로 이사 왔다가 다시 구례군

토지면(土旨面) 오미리(五美里)로 이주하였다. 풍수지리(風水地理)에 밝아 전국을 답사한 경력이 있어 유이주(柳爾胄)

스스로가 이곳 지리산밑을 길지(吉地)임을 알고 선택한 것이다.

 

“젊었을 때는 설악산이 좋고, 나이 먹어서는 지리산이 좋다”는 옛말도 있다.

류이주(柳爾胄)가 이곳을 길지(吉地)라고 확신한 까닭은 강 건너 오봉산이 아름답고, 사방의 산들이 다섯 가지 모양(五星)

을 갖추었으며, 물이 풍부하고, 풍토가 후덕하며, 대지(垈地)가 덕(德)을 베풀기에 좋다는 다섯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운조루의 쌀뒤주.

타인능해(他人能解)..​ 식구가 아닌 타인도 열게하여 주위에 굶주린 사람이 없게 하라~..라는 뜻이다.

운조루(雲鳥樓)는 99간의 대저택에 논이 약 2만평으로 1년지은 쌀 수확량이 약200가마 였는데 남에게 적선하기 위해

2가마 반이 들어가는 둥근 나무속을 파서 쌀뒤주를 만들어 1년에 36가마를 넣었다고 한다.

 

운조루(雲鳥樓)에는 10대 정신(精神)이 있다고 하였다.

1. 적선(積善)을 베푸는 정신.

2. 기록(記錄)정신.. 3대에 걸쳐 100여년 동안 생활일기와 농가일기를 기록하였다

3. 풍류(風流)정신.

4. 효도(孝道)정신.

5. 분수(分數)에 맞는 정신.

6. 여성존중(女性尊重) 정신.

7. 선정(善政)을 베푸는 정신.

8. 건축(建築)을 사랑한 정신.

9. 절개(節槪)를 지키는 선비 정신.

10. 이웃 사랑 겸애(兼愛) 정신.

 

 운조루앞의 사각 연못에 둥근섬이 있다.

과거 조선시대의 우주관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곧..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고 생각하였다..

직사각형은 땅을 의미하고.. 연못 가운데의 둥근섬은 하늘을 의미한다..

 

 운조루를 나와서 마을 앞을 바라보니..

 

 구례의 또다른 명문가인 <곡전재> 너머로 계족산의 산그리메가 아름답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오봉산과 어우러진 들녘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제 곧.. 봄기운에 취해 생명을 키운 들판에는 나물

캐는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판에 가득 할 것이고... 지난 세월 저 들판은 끊임없이 곡식을 내서 마을을 키워 왔을 것이다.

 

풍수가들이 이곳을 생리(生利)의 명당으로 꼽는 까닭이다. '생리'는 경제적인 이로움을 뜻한다. 사람들은 이 땅이 그들을

부유하게 할 것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 1690~1752)도 이곳을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살기 좋은 곳으로 꼽아 마을 사람들에게 믿음을 더해 주었다. 운조루(雲鳥樓)의 집터를 '금가락지가 떨어진 모양'으로

보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곡전재는...

1929년 박승림이 건립하였으며 1940년에 이교신(호-곡전)씨가 인수하여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처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한국 전통 목조 건축 양식의 주택으로서 풍수지리설의 금환락지(金環洛地 : 선녀가 금반지를 떨어뜨린 자리)에

해당한다고 보아 집터 자체를 반지 모양으로 둥글게 조성하였다고 한다.

 

 오미정...

오미리(五美里)라는 마을 이름도 운조루를 지은 류이주(柳爾胄)가 지은 것이라 하는데.. 오미리(五美里)는 글자 그대로

다섯가지 아름다움이 깃든 마을이라 한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땅이 기름지며, 인심이 좋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운조루유물전시관...

 

문이 열린것으로 보아 관람이 가능할것 같은데... 15km에 가까운 오늘의 산행거리에 마음이 바빠서 통과다..

유물 관람은 별도의 스케쥴을 잡아서 가까운 쌍산재.. 곡전재.. 운조루를 연계 하는 여행도 괜찮을 것 같다.

 

 산행들머리인 오미저수지로... 가는길에 오산의 사성암과 둥주리봉의 추억이 새롭다.

 

도로에서 오미저수지 둑길을 따른다...

 

 오미저수지구간은... 지리산둘레길 18구간이다.

 

 지리산둘레길 안내를 받으며 가다가...

 

 데크계단을 올라서면... 지리산 둘레길은 좌측으로 간다고 한다.. 이별이다.

 

09시 38분 : 월령봉 주능선상의 법등재에 올라 선다.

 

 여기서부터는... 지리산 월령봉능선의 시작이다.

월령봉능선은 노고단(1507m)에서 섬진강까지 도상거리 11.5km에 걸쳐 남쪽으로 내리뻗은 능선이다.

 

 운조루를 지은 "류이주"의 유택이다..

 

삼수공 류이주는.. 남한산성 보수와 수원 화성 축조에 관여한 건축에 능통했던 무관인데,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수원 화성 건설시, 성을 튼튼하게 쌓으면 되지 왜 이렇게 아름답게 쌓느냐고 신하들이 물으니, 정조임금은 “아름다움이

능히 적을 물리칠 수 있느니라!”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류이주(柳爾胄)는 정조(正祖)가 등극하면서 관직에 복귀했고 주로 대규모 건축공사 업무를 맡았다.

 

 섬진강이 보이고.. 구례읍소재지도 보인다.

 

▲ 당겨 본 섬진강..

진안에서 발원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들며, 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 그리고 낙남정맥이 둥글게 감싸안은 그 안쪽을

흐르며 젖줄의 역할을 한다. 고려 우왕 때, 왜구가 삼진강 하구로 침입해 왔을 때이다. 수많은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겁을

은 왜구는 광양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고서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 육산으로 이어지던 능선이..

 

▲ 방구돌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 고도를 높혀가니.. 꽉막혔던 조망도 터진다.

 

▲ 멀리.. 지리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문바위봉도 보이기 시작하고.. 왕시리봉은 구름에 싸여 있다.

 

▲ 다시 바위돌들이 지루했던 육산을 깨운다..

 

▲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문수저수지와 구례군 토지면소재지 방향...

"원수에게도 예를 베푼다~"... 구례의 넉넉한 인심을 빗댄 말이다. 이는 모름지기 어머니와도 같은 지리산과 섬진강이 낳고

기른 풍요로움에서 비롯된 말일 터이다. 조선 중기 이 중환이 쓴 <택리지>에는 구례를 가리켜 볍씨 한 말을 뿌려 백마흔

말을 거둘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이 나라에서 가장 기름진 땅의 하나로 꼽았다. 또한 지리산을 일러 두툼하고 기름진 땅이

많아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라 했으며, 산속에 대나무와 밤, 감이 많아 "가꾸는 사람이 없어도 저절로 열리고 저절로

떨어지고 높은 봉우리 위에 기장과 조를 뿌려도 무성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 지리산이 가져다 준 기름진 땅은 다시 섬진강이란 젖줄을 만나 한결 살지고 튼실해진다 하겠는데, 지리산이 낳은

풍요를 섬진강이 길러 주는 셈이다. 예부터 구례는 "세 가지가 크고, 세 가지가 아름다운 땅"이라 불려 왔다.

웅장한 지리산과 젖줄 구실을 하는 섬진강, 지리산과 섬진강에 얽혀 있는 너른 들판이 세 가지의 큰 것이고, 산과 강이

어우러져 빚어 낸 빼어난 경치와 기름진 들판에 넘치는 곡물과 푸성귀, 순박한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이 세 가지의 아름다움

이다. 이 가운데서도 국립 공원 제1호인 지리산은 빼놓을 수 없는 자랑으로, 구례에는 지리산자락을 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이름난 곳이 많다.

 

▲ 왕시리봉은...

"높음, 으뜸"을 나타내는 우리 옛말 " 살 " 에서 유래하고, 초기 삼국시대 관직에 백제의 달솔, 신라의 수마로, 고구려의 

욕살 등에서 나타나며, 정수리란 의미도 "살"로 삼아 발달한 단어라고, 살 - 술 - 술이 - 수리 - 시리 또는 시루 등으로 변천

한 것이 아닌가 한다.

 

10시 54분 : 삼밭재.

이곳까지가 구례에서 관리하는 구간이고 삼밭재 이후 부터는 지리산 국립공원에 해당되는 구간으로 비탐구간이다.

 

▲ 삼밭재를 지나서부터는 길도 거칠어진다.

 

▲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바위밑을 지나가려니 오금이 저린다.. 봄철 해빙기에는 조심해야 할 곳이다.

 

11시 39분 : 월령봉이라길래... 왠지 신비감과 함께 이유없이 정겹게 들리는 이름.. 월령(月嶺)..달재..달고개인데 

정상부에는 조망은 전혀 없고.. 처음으로 만나는 시그널이 반갑다.

 

▲ 발디딤이 쉽지 않은 월령봉 내림길을 내려 오다가 전망좋은 바위가 있어 올라가 본다..

 

노고단(老姑壇)의 노고할미가 시원하고 너런품으로 품어 준다.. 

신라의 화랑들이 탑(塔)과 단(壇)을 설치하고 수련을 하면서 천지신명과 노고 할머니께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물기가 많은 습설과 젖은 낙엽이 매우 미끄럽다.

 

▲ 숲이 우거진 녹음철에는 와서는 안될것 같은 곳 같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조심...

 

▲ 바위지대를 벗어 난다.

 

▲ 앞서간 두명의 선답자의 흔적을 따라 7~8분가량 올라가니..

 

12시 03분 : 863m봉에서 바라본 형제봉이다... 진행은 오른쪽으로 내려 갈것이다.

 

 오늘 최고의 전망좋은 곳이다. 탈출구인 밤재도 가늠된다.

 

▲ 조금전에 지나온 조망없는 월령봉 보다는.. 이곳을 월령봉이라 하면 격에 맞을것 같다.

 

 형제봉재..

 

12시 32분 : 형제봉..

 

 밤재로 내려가서 의상암들매화를 보고 화엄사로 갈것이다.

 

 형제봉에서 좌측능선을 따르면 화엄사주차장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형제봉을 내려와서 우측으로 노고단능선을 따른다.

 

불과 조금전에 지나간 짐승 발자국인데 멧돼지 족적은 아닌것 같다.

 

 밤재로 내려가면서 지나야 하는 산죽길인데..

 

 꽤나 길게 이어진다.. 바닥이 보이진 않지만.. 길은 뚜렷하다.

 

13시 01분 : 밤재 도착..

산죽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직진하면 노고단 가는길..

 

 고로쇠물을... 채취한다고 해야할지.. 착취한다고 해야 할지.. 조건없이 내어주는 자연이다.

 

 이런 첩첩산중에도 민초들이 남긴 삶의 흔적들.. 화전터다..

 

14시 09분 : 보적암 차도 갈림길..

 

 좌측으로 내려간다.. 오른쪽은 연기암으로 가는 차도다.

 

 용소갈림길에서 내원사 방향으로 가는 시멘트길을 버리고 계곡길을 따른다.

 

 용소갈림길에서 좌측이 화엄사길이고 오른쪽은 연기암 길이다.

 

 의상암 들매화를 보기위해 구층암방향으로..

 

 구층암..

 

 구층암의 모과나무기둥.

임진왜란 때 암자가 불타면서 화를 당한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승화시킨 것이며 얼추 400년이 넘는 세월이다보니 그 자태

가 신묘하기 그지없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심재가 갈변하지 않고 회백색 자태에 골과 주름이 도드라진다. 

일반적으로 모과나무는 주름이 많은데다가 골이 깊게 패여서 목재로서의 가치는 별로 없다고 한다.

 

 구층암을 지나서 들매화를 보러 간다.

 

들매화가 만개하고 연못에 만수가 되면 물에 비치는 반영도 아름다울것 같은데..

매화는 눈뜰 생각이 없고.. 연못에는 물이 없다.

 

들매화는 2007년 10월 7일에 천연기념물 제485호로 공식지정 되었다. 동물이나 사람들이 먹고 버린 씨앗이 싹이터서

자란 나무로 짐작되기에 "들매화" 불린다. 개량종 매화보다 꽃이 작고 듬성듬성 피지만 단아한 기품과 향기는 개량종 매화

가 따라오지 못한다. 토종매화 연구의 학술적 가치가 높다.

 

화엄사 대웅전..

대웅전 편액은 인조의 숙부인 의창군 광(珖)이 썼다.. 원래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모신 법당을 말하는데..

이 곳은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모시므로 "대적광전" 이나 "대광명전" 이라고 썼어야 되는데.. 대웅전이라고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고 한다.

 

 화엄사 대웅전의 목조 비로자나 삼신불 좌상(국보 제336호)...

중앙에 법신 비로자나불이 지권인을 하고 계시고, 우측에는 보신 노사나불이 우리나라에서 는 유일하게 보관을 쓰고 손을

펼친 설법인을 하고 계시며, 좌측에는 화신인 석가모니불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계신다. 위 삼신불은 1635년 청헌스님 등

18분의 스님이 조성하였으며, 위계에 맞추어 비로자나불은 3.8m, 노사나불은 3.7m, 석가모니불은 3.5m로 조성하였다.

후불탱화는 18세기 유명한 의겸스님이 참여해 조성하였다.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각황전은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으로 단청은 없지만,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며, 외부는 중층구조이나, 내부는 위 아래가 트인

통층 구조다. 법주사 대웅보전.. 마곡사 대웅보전.. 무량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불전중의 하나다. 각황전이 있기전

통일신라 때는 4.6m나되는 석가모니를 모시는 3층의 장육전이 있었고, 사방벽에 화엄석경을 둘러 깨달음의 세계가 장엄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숙종 때 계파대사가 4년에 걸쳐 중층건물로 재건하였다.

 

 화엄사 홍매화.

문화재청이 2024년 1월 24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홍매화다. 아직은 깨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홍매화는 조선 숙종 때 계파선사가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하고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다. 화엄매라고도

불리는 이 매화나무는 꽃과 열매가 다른 재래종보다 작지만 꽃향기는 그보다 더 강하다고 한다.

봄이면 아름다운 꽃과 향긋한 향기로 화엄사에서 인기있는 명물이다.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사자탑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조성한 것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감로수를 받들고 있고, 네모난 돌에는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다... 네 마리 사자의 얼굴에는 인간의 희, 노, 애, 락을 표현하고 있다. "4사자 감로탑" 으로도 불리운다.

 

적멸보궁 가는길.. 각황전 왼쪽으로 올라간다.

 

 적멸보궁 가는길의 108계단.

 

108계단을 오르다가 뒤돌아 본 각황전..

 

석등과 4사자상(국보 제35호).

 

 석등.

연기조사가 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탑을 이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차 공양을 하는 모습을 조각한 석등 조각상이다.

 

4사자상(국보 제35호)과 어머니상(가운데)..

 

 4사자상(국보 제35호)과 어머니상(가운데)..

4사자삼층석탑은 2층 기단에서 희노애락 표정의 4마리의 사자가 머리 위에 탑을 이고 있고, 탑안에는 합장을 하고있는

어머니상이 조각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연기조사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높이 5.5m의 불사리 공양탑이다.

 

견성전(적멸보궁).

 

적멸보궁.

부처님 사리탑을 볼 수 있는 통창이 있고.. 불상은 모셔져 있지 않다..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불단.중앙에 석가모니불과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다보불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적보살,관세음보살이 모셔저 있다.

 

 화엄사 각황전 내부 불전.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과 석등(국보 제12호).. 둘다 국보급이다.

각황전 앞 석등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의상대사가 조성하였으며, 높이가 6.36m로 우리나라 석등 중에서 가장 크다.

각황전과 조화를 위해 크게 조성했으며,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밝혀 지혜로 이끈 부처님의 다른 모습을 의미한다.  현재는

오염물제거, 파손부재 접합, 복원 등 작업을 위해 해체하여 보존처리 중으로 2025년 6월 이후에나 볼수 있다고 한다.

 

 화엄사 각황전과 서 오층석탑.

 

 화엄사 대웅전과 동 오층석탑.

 

 화엄사 보제루.

 

 화엄사 천왕문.

천왕문은 사천왕상을 모신곳이며 건물의 배치는 약간 비틀어져 조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찰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 사는 신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이

되었다. 구례 화엄사의 사천왕상은 극히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성되었다. 특히 머리장식이 화려하고, 목의 머플러는 거의

현대적 감각으로 꾸며져 있다.

 

 화엄사 금강문.

 

벽암국일도대선사비... 화엄사 중창의 주역인 벽암대사의 탑비다..

대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했었고..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도 지었다고 한다.

 

화엄사 불이문인데.. 양쪽으로 담장이 있는게 특이하지만.. 사연이 있다.

편액은 선조의 아들 의창군 광(珖)의 글씨로.. 지리산화엄사는.. "지혜가 뛰어난 산속에 화엄경을 모신 사찰" 이다.

임진왜란 때 주지 설홍스님 등 300여명의 스님이 구례의 길목 석주진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부 전사하였고.. 왜군이 화엄사

전각을 모두 불태웠다. 그래서 불이문에 대문과 담장을 만들어 중생에게는 문을 활짝 열고.. 관리들의 수탈과 왜적의 침략

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문을 굳게 닫았다.

 

화엄사 일주문에서 오른쪽의 대문도 성문처럼 굳게 만들어 놓았다..

 

방장교 측면에 방하착(放下着)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방하착(放下着)은... 내려놓다.. 라는 뜻으로.. 마음 속에 있는 집착이나 번뇌를 내려놓는 것을 의미 한다.

저 다리를 건너는 이 들중에 내려놓는이 얼마나 될까..

 

 주차장까지 2~30분 걸어 간다.

 

 

 

 일주문...

안쪽(좌측사진)에는 "해동선종대가람"이라 되어 있고.. 바깥쪽(우측사진)에는 "지리산대화엄사"라 되어 있다...

 

 뒷면은 심무가애(心無罣礙).. 마음에 가리낌이 없다... 앞면은 대화엄성지..

 

 집단 상가지역..

 

15시 27분 : 화엄사주차장 산행종료.

 

 남원 광한루 식당가에서...

 

 추어탕 한 뚝배기 게눈 감추듯.. 뚝딱.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운조루의 소슬대문 아래에 놓여진 통나무 뒤주에 새겨진

타인능해(他人能解)의 의미를 배웠고

 

월령봉능선에서는

습설(濕雪)로 고생하지 않을까.. 했던 우려는

노고단.. 노고할미의 보살핌으로 안전산행을 마쳤고

400년간 지붕을 떠받치고도 꼿꼿한 구층암의 모과나무기둥까지 만났다.

 

춘래불사춘이라.. 화엄사의 잠자는 홍매화와 들매화..

매화공주를 깨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시나... 다 가질수는 없었다..

 

화엄사 부처님 세상에서 사바세상을 나오며 만나는 심무가애(心無罣礙)...

속인의 마음에 어찌... 일체의 거리낌이나 장애가 없으랴..

오늘도 고마움을 담아 가자~..

▲ 예부터 영산으로 이름난 회문산은 많은 아픔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회문산(回文山)이란..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부터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홍성문설과 조평설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조선 중기 때 전설적 풍수가인 홍성문 대사가 지은 "회문산가(回文山歌)" 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보는 것이다.

 

조평(1569~1647)설은 고향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에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지원하고 많은 덕을 베풀었던 조선 중기 문신인

조평이 살았던 마을 이름을 따서 회문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설이다.

 

홍문대사(홍성문)가 입산 도통하여 ‘회문산가 24혈’의 명당 책자를 만들면서 영산이라 이름나기 시작하였다.

회문산 정상에 24명당과 다섯 신선이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국인 오선위기(五仙圍基) 자리가 있는데, 이곳에 관을 보토

하여 묘를 쓰고 나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대까지 갈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처형을 당할 때 3족을 멸하는 화를 면하기 위해서 동생 란식과 조카 현채가 기거

하였고 두 분의 묘소가 현존하고 있다. 조선시대 말기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 동학군은 이 산을 거점으로 투쟁을 하였으며

한말에 국운이 기울어 일제 침략의 마수가 뻗치던 무렵에는 회문산을 근거지로 하여 정읍의 최익현, 임실의 임병찬 의병장

이 회문산을 거점으로 항일구국운동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1950년 6·25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북진으로 고립된 인민군과 공산당들이 회문산으로 옮겨와

자리 잡고 험한 산을 의지하여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자 국군은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토벌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2025년 02월 17일(일요일).
회문산 : 전북 순창군.

 

산행코스 : 회문산휴양림매표소-노령문-위령탑-역사관-서어나무갈림길-회문산-임도-야영장-화이트벨리펜션주차장.

산행시작 : 회문산휴양림매표소 09시 45분.

산행종료 : 화이트벨리주차장  13시 03분.

전체거리 : 약7.0km.

전체시간 : 03시간 17분.

운동시간 : 02시간 45분.

휴식시간 : 00시간 32분.

누구하고 : 마나슬루산악회.

 

09 : 45  회문산휴양림매표소.

09 : 51  노령문.

09 : 57  무학대사바위.

10 : 04  위령탑.

10 : 09  역사관.

10 : 56  서어나무갈림길.

11 : 19  회문산.

11 : 32  천근월굴.

11 : 38  작은지붕.

11 : 51  임도.

12 : 33  야영장.

13 : 03  화이트밸리.

 

 09시 40분 :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매표소.

 

▲ 휴양림 이용요금표.

동절기(12월~3월)는 입장료 무료...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통과세다..

 

▲ 구. 매표소 앞을 지나서..

 

▲ 휴양림 빗돌을 지나면..

 

▲ 정면으로 회문산과 작은 지붕이 올려다 보인다.

 

▲ 본 산악회의 코스는 오른쪽으로 삼연봉에 올라서 회문산 돌곳봉을 경유하여 시계역방향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회문산이 안고 있는 역사적인 속살을 둘러 보고자 "회문산역사관"을 경유하여 정상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 겨울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봄의 왈츠처럼 경쾌하다..

오늘 예보는 종일 흐림에 -3도~11도.. 풍속 2~3m/s였는데.. 종일 맑음에 가끔 구름이고 바람은 1m/s내외로 완전 봄날씨다.

 

▲ 회문산에서 문바위.. 돌곳봉을 경유하여 내려오는 길이다.

 

▲ 그런데.. 누군가의 걸음 흔적이 전혀 없다.. 하산길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휴양림으로 향한다...

 

09시 51분 : 휴양림 입구를 산성처럼 축조하였다는 노령문..

 

 

▲ 노령문을 통과하여..

 

▲ 얼음빙벽 맞은편에..

 

▲ 삼연봉으로 이어주는 출렁다리..

 

▲ 구름다리에서 내려다본 계곡하류..

 

▲ 용추폭포..

 

▲ 휴양림 숲속의집..

국립이라 시설좋고 산좋고 물이 좋아 성수기때는 입주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 무학대사바위..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마주 앉아 회문산의 산세를 논했다는 바위다.

 

참고로.. 회문산휴양림 입구 자락에는

고려 말기에 무학(無學)대사가 이성계(李成桂)의 등극을 위하여 1만일 동안 기도하였다는 만일사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이성계와 얽힌 순창고추장 이야기 한토막..

고려 시대 말에 이성계는 스승인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기거하고 있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의 만일사(萬日寺)를

찾아가는 도중 배가 너무 고파서 어느 농가에 들러 고추장에 점심을 맛있게 얻어먹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농사꾼의 밥상

이었지만 고추장 맛은 기가 막혔다. “이렇게 맛있는 고추장이 있다니?.. 이 고추장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겠어.”

 

이성계는 훗날 조선을 세우고 왕이 된 후에도 순창에서 먹었던 고추장 맛을 잊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명령을 내렸다.

“순창 현감은 순창의 고추장을 궁궐로 올려 보내도록 하라!” 이렇게 해서 순창 고추장은 조선 시대 말까지 궁궐에서 쓰는

고추장이 되었다.

 

▲ 5번 이정표에서 야영장쪽으로 약70m정도 올라가면..

 

▲ 비목공원이 나오고..

 

10시 04분 : 6.25양민희생자 위령탑..

6.25전쟁을 겪으면서 회문산에 빨치산유격대 전북도당 사령부가 위치해 있었고 좌익활동자들과 빨치산, 인민군 패잔병들

이 많이 숨어 있었다. 낮에는 국군토벌대가 진입하여 대한민국 치하가 되어, 빨치산에 협조한 주민들을 처형하였고, 밤에는

빨치산들이 내려가 인민공화국치하가 되었으며, 낮사이 국군에게 협조한 주민들을 처형하여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해가

2.3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양민들을 위로하는 위령탑이다.

 

▲ 위령탑의 위령시는.. 시인 권진희님이 짓고.. 서예과 교수 여태명님이 쓰고... 조각과 교수 전진환님이 조각하였다는데..

위령탑에 새겨진 조각속의 인물들은 토속한국인들이 아니다.. 분명... 이땅에서 일어난 우리 민초들의 동족상잔의 아픔이

분명한데.. 내눈에는.. 양쪽에 아이를 안고있는 남녀도 한국인의 얼굴이 아니고.. 벽화속의 인물들은 마치.. 고대아랍인들의

벽화를 보는것 같다.. 위령탑으로서의 이해가 하나도 안 가고 애달픈 아픔도 전혀 안 느껴진다.. 왠지모를 무거운 걸음이다.

 

▲ 위령탑 아래에 내려 앉은 백설이 곱다. 희생자 영령들이시여~.. 고운세상에서 영면하시길 합장하고 빕니다.

회문산에서 활동했던 빨치산과 토벌 과정에서 수 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아픈 역사가 다시는 이땅에서 반복 되지 않기를...

 

▲ 휴양림 산림문화 휴양관..

 

10시 09분 : 회문산역사관.

6.25전쟁을 앞뒤로 빨치산근거지로 1만여 회의 빨치산토벌전투에서 수많은 군인, 경찰관, 양민들이 숨진 비극의 현장이다.

2011년 7월 11일에 회문산자연휴양림 내 빨치산사령부전시실을 헐고 2억 5000여만원을 들여 104㎡ 규모의 회문산역사관

을 새로 개관하였다.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 보자.

 

▲ 빨치산 사령부.. 헐리기 전의 모습이다.

봉우리와 골짜기가 많아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는데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빨치산 전북도당 유격대 사령부가 이곳에 자리잡고 700여명의 빨치산들이 오랫동안 저항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빨치산의 훈련장이었던 곳에 체력단련장이 들어서 옛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 역사관 관람..

<회문산가> 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홍성문과 관련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조선 중종 때인 혹은 영조 때 인물로 전해진다. 

임실군 운암면 금기리 텃골에서 홍진사와 마을 주막집의 주모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난 그는 홍진사가 죽은 후 어린 나이에

회문산 만일사로 들어갔다. 회문산 자락 사자암 등에서 27년간 도를 닦아 풍수의 이치를 깨닫는다.

 

그는 팔도를 답산한 후 회문산에 많은 명당이 있음을 알고 세상에 전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명당에 욕심만 있지 그것을

감당할 덕을 갖춘 사람이 없음을 개탄했다. 그는 양반들의 횡포에 분노하여 명당 장사로 양반을 희롱했다고도 한다.

<회문산가> 를 통해 회문산에 오선위기혈의 큰 명당이 있다고 해 지금도 많은 풍수가들이 이를 좇고 있다.

 

그는 '돌산에 장사 지낼 수 없다 석산불가장(石山不可葬)"이라는 풍수 금기를 뒤집고 '돌산에도 흙을 메워 쓸 수 있다 라는

"석산보토장(石山補土葬)"이라는 '혁명'을 일으켜 한반도 풍수사에 획을 그었다. 흉지가 명당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다. 또한.. 소설 "남부군"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동학혁명과 한말 의병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 역사관을 나오면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방댐이 있고.. 회문산으로 가는 목교가 있다.

 

▲ 회문산을 가장 빠르게 접근할수 있는 코스가 역사관을 지나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서어나무길이다...

 

▲ 가장 많이 다니는 서어나무길을 버리고 목교를 건넌다..

 

▲ 단 두사람이 지나간듯한 그 누군가의 발자욱을 따라.. 7~8분가량 올라가면..

 

▲ 역사관 갈림길인 능선이 보인다..

 

▲ 임도에 올라서니.. 아무도 없는 나만의 백색의 세상이다..

 

서산대사의 시한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길 걸어갈 때..

부수호란행(不須胡亂行)... 함부로 흐트러지게 걷지 말아라~.

금일야행적(今日我行跡)...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 삼연봉에서 내려오는길.. 마나슬루팀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 회문산길은 절개지로 올라간다.

 

▲ 좌측으로 보이는 회문산.. 큰지붕이다.

 

▲ 처음으로 나타나는 방구돌이 있는 봉우리를 지날 즈음에.. 마나슬루팀들이 올라온다..

 

▲ 바람에 날려온 눈발이 능선에 내려 앉아 두께가 두꺼워 지더니.

 

▲ 점점 점입가경으로 쌓여 있어 걸음을 더디게 한다..

 

▲ 급기야는 산죽의 키높이로 쌓였다.. 잘못 밟으면 무릎까지 빠진다.. 그러나 선답자가 밟은 곳만 디디면 어렵지는 않다.

 

10시 56분 : 서어나무갈림길..

 

▲ 역사관에서 올라오는 회문산 단거리 코스다.

 

▲ 서어나무길 단거리코스를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길이 잘 다져져 있다..

 

▲ 눈을 뒤짚어 쓴 거북바위..

 

▲ 오늘의 회문산길에서.. 가장 많은 눈이 쌓여있는 회문설벽 구간이다.. 거의 키 높이로 보인다..

 

▲ 115cm의 스틱이 손잡이만 남았다.

 

11시 08분 : 장군봉 갈림길.

 

▲ 아무도 가지 않은 장군봉길..

 

▲ 어느산이나 정수리를 쉽게 내어주지는 않는다.. 오늘의 회문산도 크레바스 같은 눈길로 발목을 잡는다..

 

11시 20분 : 회문산..

조선 최고의 풍수가로 알려진 홍성문대사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며, 다만 설화에 의하면 홍성문대사

는 전라북도 임실군 하운암면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회문산은 홍성문대사가 입산 도통하여 "회문산가 24혈"의

명당 책자를 만들면서 영산이라 이름나기 시작하였고..

 

오선위기(五仙圍碁)혈이란 다섯 신선이 둘러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국을 말하며, 풍수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됐다

고 한다. 한국의 5대 명당으로 불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20여 년 전만 해도 회문산 정상과 주변 능선마다 무덤 수십

수백 개가 밀집하였다. 그러나 최근 급격히 그 수가 줄어든다. 이장을 하거나 파묘하기 때문이다. 임병찬 무덤도 후손들이

고향으로 이장해 갈 계획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한다.

 

▲ 덕치면에서 출발하는 회문산 종주코스상에 있는 깃대봉.. 천마봉.. 삼연봉이 1자로 보인다.

 

▲ 하산코스에 있는 작은지붕.. 문바위.. 돌곳봉 능선.. 그 뒤쪽으로는.. 작지만 야무진 인상의 무직산이다.

 

▲ 여분산(如粉山)은.. 같을 여(如), 가루 분(粉)을 쓰는 여분산(如粉山)으로 꽃가루와 같은 산이라는 의미이다.

산 남쪽에는 벌통산이 있는데, 벌은 꽃가루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여분산은 풍수지리상 동남쪽을 뻗어 나온

용이 구림천에 이르러 온순해지면서 전답에 나타난 현룡재전(顯龍在田)의 명당이라고 한다...

 

이러한 명당의 여분산에 또 다른 아픔이 있다.

여분산은 빨치산을 그린 영화 남부군의 원작자 이태(이우태)가조선통신원 전주지부장으로 근무하다가 UN군의 참전으로

퇴로가 막히자 빨치산으로 들어간 산이 <여분산>이다. 소설 <남부군>의 저자 이태는 한국전쟁 당시 실제로 빨치산으로

활동하였던 사람으로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바로 남부군이다.

 

소설 <남부군>의 작가 이태의 본명은 "이우태"로 1922년 충북 제천시에서 태어나 1948년조선신문학원’을 졸업하고 서울

신문기자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한뒤 8개월간 서울신문에서 일하다가 당시 최대의통신사였던 합동통신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인민군이 서울에 들어온 이후 합동통신이 북한의 관영 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사

에 흡수되면서 조선중앙통신 기자가 되었다. 이태는 동료들과 대전으로 파견되었다가 본사의 지시에 따라 일행과 헤어져

전주에서 중앙통신 전북지사 창설 요원이 되었다.

 

하지만 인민군이 북으로 밀려간후 빨치산으로 활동하였고 1952년 토벌대에 체포되었다. 이태는 생포된후 사상 전향

하였고, 이후 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1980년대 민추협과 YS의 민주산악회 간부를 지냈으며, 회문산을 몇 차례 다녀

간 것으로 전해진다.

 

▲ 큰봉 뒤쪽 아래에는 붕어섬으로 유명한 옥정호가 있다.

 

▲ 2019년 10월 20일.. 거문도 불탄봉 산행에서 만났던 임병찬 의병장을 회문산에서 다시 만난다.

 

▲ 2019년 10월 20일.. 거문도의 임병찬 의사 순지비다.

 

▲ 아무도 가지 않았다..

오늘의 이땅이 있도록 지켜주신 분들이기에 조심조심 중간지점까지 가서... 고개숙여 읍이라도 하고 오자..

 

▲ 당겨온.. 의병장 임병찬 묘.

고종의 밀명을 받아 비밀독립운동단체인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계획했다가 실패했던 한말 의병장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6년 최익현과 더불어 의거계획을 수립했다. 그해 4월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대규모 의병

을 일으켜 관곡을 취해 군량으로 삼고 진용을 정비해갔으나 6월 격전 중에 최익현과 함께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된 후 쓰시마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최익현은 단식투쟁 끝에 그곳에서 풍토병으로 사망했고, 임병찬은 1907년

1월에 풀려나 귀국 했다.

 

1912년 고종의 밀명을 받고 전라도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대한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항일 의병운동을 계획했다.

그러나 동지 김창식이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끝에 독립의군부 조직을 자백함으로써 항일 의병운동은 실패했다.

 

1914년 6월 13일 거문도에 유배되어 단식한 끝에 1916년 5월 23일 순국했다. 저서인 <돈헌문집>에 일제에 체포되어 취조

받을 때의 기록을 비롯하여 이 시기 항일의병전쟁과 관련된 자료들이 실려 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 천근월굴(天根月窟)..

중국(中國) 송(宋)나라 때 시인인 소강절(邵康節)선생의 우주론적인 시 가운데 주역(周易)의 복희팔괘(伏羲八卦)를 읊은

싯귀 중에 나오는 글로써 음양의 변화와 조화를 말하고 있다.

 

천근월굴 한왕래(天根月窟 閑往來)... 천근과 월굴을 한가로이 왕래하니..

삼십육궁 도시춘(三十六宮 都是春)... 삼십육궁이 모두 봄이라네~...

 

천근(天根)은 양(陽)으로 남자의 성을 말하고.. 월굴(月窟)은 음(陰)으로 여자의 성을 나타내어 음양(陰陽)이 한가로이 왕래

하니 소우주(小宇宙)인 육체가 모두 봄이 되어 완전하게 한다는 뜻이며...

36궁이란 여자의 성으로 생명이 자라는 성소로서 우주창조의 근본섭리가 깃들어 있으며, 양의 뿌리가 음의 굴에 들어가

음양조화로 생명이 자라서 탄생하는 곳이기에 소강절은 이를 천근월굴(天根月窟)이라고 했다.

 

▲ 왼쪽은.. 천근월굴.  오른쪽은 회문(回文)의 초서체가 아닐까.. 어렵다.

천근월굴(天根月窟)의 글쓴이.. 김석곤(金晳坤 1874~1948)은.. 정읍군 태인면 출신으로 일제강점기때의 서화가이다.

 

▲ 작은지붕으로 가는길..

6·25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조선 노동당 전북도당 유격대 사령부가 회문산에 들어섰다.

1950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국군과 경찰은 빨치산을 초토화하는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을 펼쳤는데 그때 산불로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회문산에는 소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회문산은 강천산의 유명세에 가려 있다가 이태의 소설

‘남부군’의 실제 무대로 세상에 알려졌다.

 

11시 38분 : 작은지붕..

 

▲ 작은지붕에서 바라본 회문산 큰지붕...

 

▲ 작은지붕에서 바라본 장군봉..

 

▲ 작은지붕 바로 아래에 있는 여근목(女根木).

전북 김제의 모악산은 어머니 산이고, 순창의 회문산은 아버지 산으로 음기(陰氣)가 곳곳에 서려 있어 천근월굴바위와

더불어 이곳 여근목에 잘 나타내고 있다. 6.25전란을 전후하여 빨치산 토벌을 위해 온산이 불바다가 되었어도 인근의 반송

과 같이 살아남은 영험한 나무이다..

 

▲ 바위에 내린 눈이 고향의 초가지붕을 연상케 한다..

 

▲ 여근목을 내려 서자말자.. 생존을 위한 멧돼지들의 들쑤심이 묘까지 뒤집었다.. 몇시간 전인 오늘 아침의 일이다.

 

11시 51분 : 임도 만남..

 

▲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임도.. 역시나 아무도 가지 않았다..

 

▲ 시루바위.. 문바위.. 돌곳봉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인데...

 

아무도 가지 않았다.

 

 헬기장에도 흔적이 없다..

 

 돌곳봉 하산길..

러셀(russel)을 하기에는 눈의 두께가 두텁고 돌곳봉 내림에서 길찾기가 모호하다.. 아서라 말어라. 야영장으로 하산이다.

참고로.. 러셀(russel)이란.. 제설차를 만든 미국 제조회사의 이름을 딴 등산 용어로 눈길 뚫기.. 눈 헤쳐나가기.. 제설작업..

등으로 표현 하는 말이다.

 

 돌곳봉길은 포기하고.. 차단기가 있는 임도를 따라 야영장으로 내려간다.

 

 야영장 갈림길.

 

 다시 임도로 내려서고..

 

12시 33분 : 야영장..

 

 아침에 지나갔던 휴양관..

 

 대형버스주차장이 없는 휴양림이다..

 

 휴양림 매표소에서 약300m가량 내려가면..

 

 사유지 주차장에서 산행 마무리..

 

 눈길이었음에도 평균속도 2.6km.. 산행궤적을 정리하고 하산식 장소인 순창읍으로 이동한다.

 

 순창성당..

 

 1882년부터 시작하여 140여년의 오래된 성당이다..

 

 성당에서 가까운 "ㅁㄱ" 식당에서..

 

800m급의 산이지만.. 큰산 못지 않은 산세를 품었기에

풍수.. 지리.. 종교.. 구국운동의 중심지였고.. 그리고 동족상잔의 현장으로

한국 현대사의 뼈아픈 역사가 깃든 산이기도 하였다..

 

이제는..

화합과 용서와 상생의 길이 되기를...

2025년 02월 06일(목요일).
매봉산 : 전남 여수시 금오도.

 

산행코스 : 금오도 여천항-함구미-매봉산-여천항갈림길-느진목-대유마을-여천항.

산행시작 : 금오도 여천항 10시 57분.

산행종료 : 금오도 여천항 15시 48분.

전체거리 : 약14.1km.

전체시간 : 04시간 51분.

운동시간 : 04시간 34분.

휴식시간 : 00시간 17분.

누구하고 : 화랑산악회.

 

10 : 57  금오도 여천항.

11 : 57  함구미.

13 : 35  매봉산.

14 : 18  여천항갈림길.

14 : 52  느진목.

15 : 09  대유마을.

15 : 48  금오도 여천항.

 

 10시 19분 : 여수시 돌산읍 신기항 금오도 터미널..

 

▲ 화랑의 산대장님과 총무님의 매표..

 

▲ 오늘의 금오도 섬산행 일정은...

돌산읍 신기항에서 오전10시 30분에 출발하여 금오도 여천항에서 오후 17시 30분 배로 돌아올 것이다.

 

▲ 신기항 내항 너머로 돌산도와 화태도를 잇는 화태대교가 보인다.

 

▲ 승선후 화태도와 두리도 뒤편으로 금오도가 길게 보인다.

금오도는 섬의 모양이 자라를 닮았다고 하여 큰 자라라는 뜻으로 ‘금오도(金鰲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화태대교.

 

▲ 신기항 전경.

 

10시 30분 : 정확하게 10시 30분 정각에 서서히 뱃머리를 돌리고..

 

힘찬 엔진의 굉음으로 물보라를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신기항을 저만치 밀어내고 금오도의 여천항으로 출발.. 도착은 약 25분이 소요된다.

오늘의 일기는 낮최고 5도.. 풍속 6~7m/s로 체감온도는 더 추울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파도도 잔잔하고 따뜻한 편이다.

 

갑판에 나와 있어도 별로 춥지 않기에 주변의 섬들을 돌아본다. 오른쪽에 보이는 섬은 "대두라도" 이다..

 

왼쪽은 "소두라도".

 

 어느새 여천항에 도착한다고 하선준비를 하라는 안내방송이다.

 

여천마을의 유래..

마을 뒷편에 대대산(大代山)의 줄기를 타고 대목산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산이 뻗어 내리면서 작은 봉우리 2개를 형성하고

그 모양새가 여자의 젖가슴처럼 생겼으며 그 산줄기를 따라 흐르는 계곡물이 맑고 깨끗해 여천(女泉)으로 불리우다가..

지금은 여천(汝泉)으로 고쳐 사용하고 있다.

 

 함구미방향의 도로도 보인다.

 

10시 54분 : 금오도 여천항 도착.. 약 23분정도 소요되었다.

 

 새해 첫 섬산행의 기대감으로 화이팅 소리는 좋았는데...

 

 헐!~~.. 가는날이 장날이라더니.. 금오도의 마을버스가 오늘은 휴무라고 한다..

금오도(金鰲島)는 면적 24km².. 해안선 길이 64.5Km로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약 2000여명이 살고있는 큰 섬이다.

 

▲ 주민들과 여행자들의 발을 묶어놓고는.. 환영한다면서.. 행복한 여행이 되라면서... 그런데 휴무라니...

관계기관에서 사전에 대민(주민.. 또는 여행객) 휴무공지를 하였는지.. 나는 알수가 없지만..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산행들머리까지 두 발을 대신해 줄 교통편이 없어니.. 일단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11시 02분 : 여천마을 삼거리에서..

비렁길팀.. 산행팀 들은 각자의 목적들머리까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갈길이 따로 있구나~~..

나는 산행팀을 따라 함구미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간다. 여기서부터 함구미까지는 자그만치 4.6km의 아스팔트 길이다.

 

▲ 향일암이 있는 여수시 돌산읍의 봉황산과 금오산이 보이고 남해의 설흘산.. 금산이 아련하다.

 

▲ 여천항 전경..

 

▲ 매봉산 옥녀봉 종주를 계획한 뫼들님과 정사장님은 얼마나 빠른지 따라잡을수가 없다..

 

11시 26분 : 송고마을 입구..

 

▲ 절묘한 곳에 집이 보여서..

 

▲ 당겨 보니... 빈집은 아닌것 같고..

 

▲ 함구미마을 꼬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 어느새..  뫼들님과 정사장님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 함구미마을과 선착장..

마을 서쪽에 대대산(大代山) 줄기 끝 부분이 용(龍)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용두(龍頭)라는 지명과 함께 해안변이 기암

절벽으로 이루어져 아홉 골짜기의 절경을 이뤄 이를 상징하여 함구미(含九味)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의 함구미는 "큰 포구" 라는 뜻이며... 함은 클 한에서 변형되었다고 한다..

 

▲ 금오도 비렁길 1구간은 함구미선착장 방향으로 가면 연결 된다.

 

▲ 매봉 등산로입구는 30m 전방이다.

 

11시 57분 : 매봉산 들머리.. 여천삼거리에서 딱 1시간 소요되었다.

 

▲ 섬들의 집들이 거의 그렇듯이 금오도에도 유달리 돌담이 많다.. 바람때문이다.

 

▲ 돌담이 ㄱ자로 굽어져 있다.. 바람이 정면으로 들어 오는 방향을 돌려놓는 섬사람들의 지혜다.

 

▲ 매봉산은 오른쪽으로.

 

▲ 또.. 헐!~ 이다.. 막아 놓았다..

막아 놓으신분.. 다 이유가 있어 막았겠소만.. 멀리서 차타고 배타고 물건너서 예까지 왔으니.. 우짜것쏘..

살째기 넘어 갈랑께.. 쪼~~까.. 봐 주쇼~ 잉..

 

▲ 그동안 통행이 뜸했는지 길바닥도 척박하고 을씨년 스럽다..

 

▲ 겨우 흔적만 있는 대숲길을 지나가니.. 담벼락 끝나는 지점에 제대로 된 등산로를 만난다.

 

12시 17분 : 금오도 비렁길1구간 마당재로 가는 갈림길..

 

▲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고 했던가.. 함구미에서 비렁길 1구간을 접속하여 미역널방과 송광사터를 지나면

마당재에서 매봉산으로 연결되어짐을 알고 있었는데.. 왜? 이제사 생각이 나는지.. 여천항 갈림길에서 하산하였더라면

꽤나 괜찮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칼이봉 느진목길은 전망도 없고 별 매력이 없는 길이었고 도로도 걷지 않았을 것이다.

 

▲ 이왕지사 때늦은 선택을 담아 둘 이유가 없다.. 매봉산으로..

 

▲ 탁 트인 너덜겅 계단에서..

 

▲ 우주선 발사대가 있는 나로도가 우주를 꿈꾸며 졸고 있다..

 

▲ 소사나무 군락지..

 

12시 48분 : 매봉산500m전 쉼터.. 여기서 쿠데타 1보 직전의 속을 달랜다.

 

▲ 매봉산 전망대.. 얼마전까지만 해도 6각정 정자가 있었는데 데크전망대로 바꾸어 놓았다.

 

▲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섬들.. 개도.. 월호도.. 두라도.. 낭도.. 화태도.. 자봉도 등등..

백리섬섬길은 여수 돌산도에서 고흥군 사이의 여수만과 여자만에 인접해 있는 섬들을 11개의 교량으로 연결하여,

풍부한 섬자원을 활용한 섬특화 관광을 목적으로 계획되었으며, 연결되는 섬들간의 전체길이가 약 백리에 달해

백리섬섬길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백리섬섬길 사업은 먼저 2005년 백야대교 완공을 시작으로, 2014년 돌산도와

화태도를 잇는 화태대교, 2020년에는 여수 화양면과 고흥 영남면사이의 여자만 섬들인 조발도 - 둔병도 - 낭도 - 적금도가

5개의 해상교량으로 각각 연결되었다. 앞으로는 2028년까지 백야도 - 제도 - 개도 - 월호도 - 화태도를 연결하는

4개의 교량이 완성되면, 백리섬섬길은 남해안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 금오도 비렁길 1구간의 송광사터.

 

▲ 백리섬섬길을 잇는 교각공사가 한창이다.

 

▲ 옥녀봉 유래.

옥녀봉에서 선녀들이 달밤에 베를 짜다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바닷가로 목욕하러 와서 날이 새는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목욕을 하고 놀다가 승천하지 못하고 그만 소나무로 변하였다고 한다... 옥녀봉 아래 마을이름을 직포라 한것도 이러한

전설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 지나온 매봉산..

 

▲ 금오도 비렁길 1구간이 끝나고 2구간 시작점인 두포항..

두포마을은 금오도에 처음 사람이 들어와서 살아서 첫개(初浦)라고 불리는 마을 초입에 불무골이 있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금오도에서 나무를 가져갔는데 나무를 베면서 필요한 연장을 만들던 풀무간 (대장간)이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봉산이었을 때 사슴 사냥을 위해 내려 오는 관청 소속 포수들이 처음 도착한

포구(浦)라 하여 "첫개"라 부르다가 옥녀봉과 관련된 전설에 의해 두포라고 했다.

즉, 옥녀봉에 살던 선녀인 옥녀가 뽕잎을 이용해 누에를 쳤는데, 누에고치가 많아 말(斗)로 되었다 하여 두포가 되었단다.

 

▲ 멀리 둔병대교가 보인다.

 

13시 35분 : 매봉산.

금오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며 예로부터 자연의 보고였다. 조선시대에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임금의 관을 짜거나 판옥선 등 전선(戰船)의 재료인 소나무를 기르고 가꾸던 황장봉산이었을 만큼 원시림이 잘

보존됐다. 고종은 금오도를 명성황후가 살고 있던 명례궁에 하사했으며, 명례궁에서는 이곳에 사슴 목장을 만들어 사람의

출입과 벌채를 금했다.

 

때문에 사람들에 의해 금오도가 본격 개척된 지는 120여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884년 태풍으로 금오도의 소나무

들이 쓰러지면서 금오도 출입제한이 풀렸고 이듬해부터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수백년간 사람의 발길을 허락지

않던 금오도는 이제 2000여명의 주민들이 '반농 반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 매봉산 삼각점... 우리나라(남한)에 14개밖에 없다는 1등급 삼각점중에 1번째 삼각점이다.

여수의 1등급 삼각점으로 1번째이며.. 1993년에 복구하였다는 표시다.

 

참고로..

11부터 19까지는 1등 삼각점.

21부터 29까지는 2등 삼각점.

301부터 399까지는 3등삼각점.

401부터 499까지는 4등 삼각점이다.

 

▲ 콩자개 덩굴.

 

▲ 독특한 모양의 충영의 일종.

 

▲ 문바위.

 

▲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섬들의 절경은 기본이다. 앞에도 첩첩이 섬이고 뒤를 보아도 첩첩이 섬이다. 섬과 섬사이

에 에메랄드 빛 바다가 있다. 섬 위에는 코발트 블루 바다를 닮은 하늘이 있다. 온통 블루다. 마음이 상쾌해진다.

 

14시 18분 : 여천항 갈림길..

 

▲ 여천항 도착시간이 17시까지 이기에.. 시간 배분을 위해 다음 탈출지점인 느진목으로...

 

▲ 조망은 1도 없는 칼이봉..

 

▲ 여천항 갈림길에서 느진목 가는길은 조망도 없고..

 

▲ 조금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길이다.

 

14시 52분 : 느진목...

옥녀봉의 조망이 좋다는데.. 1.8km를 남겨 놓고 오늘은 옥녀와의 만남은 인연이 아닌것 같아서 아쉽지만 돌아선다.

 

▲ 대유마을로 가는길..

 

▲ 케이블 매설구간이라.. 상당히 까칠한 내림이다.

 

▲ 하늘타리열매(하늘수박).. 해열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 객지에 나간 아들.. 딸.. 손주들.. 찾아오면 바리바리 손에 들려서 보낼 생각에..

잠시도 쉬지 않고 허리굽혀 일하시는 당신의 모습에서...이 땅의 어머님을 본다..

 

금오도에는 수많은 산야초가 청정한 자연과 함께 자라고 있지만... 그 중에 "방풍"과 "황금".. 그리고 시호는 금오도를 대표

하는 약용식물이다. 방풍은 이름에서 느끼는 대로 중풍을 예방하는 효능이 많다는 약초이다.

 

열을 내리는데 특효라는 "시호"는 산미나리 또는 멧미나리로도 불려진다. "황금"도 소염, 충열, 해열제 등으로 다양한 약리

작용으로 쓰임새가 많은 약초이다. 방풍나물 방풍은 풍을 예방하며, 남자들의 바람기를 잡아준다는 효능도 있다고 한다.

 

▲ 유자...

 

▲ 도로를 따라 여천항으로..

 

▲ 저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오늘은 완전 도로 행군이다.. 시간이 여유가 많으니 쉬엄쉬엄 가자..

 

▲ 드디어 여천항이 내려다 보인다.

 

15시 48분 : 금오도 여천항여객터미널 종료.

 

▲ 여수로 가는 정기 여객선.. 우리가 타고갈 신기항으로 가는 배도 들어 오고있다.

 

17시 23분 : 가는배와 오는배.. 상당히 먼거리처럼 보이는데..

 

17시 28분5분만에 접안이다.

 

승선하여 돌아본 여천항...

옥녀야.. 꽃피고 따뜻한 날에 꽃단장 하고 있을 너를.. 다시 찾아 오리라..

 

▲ 선실에서 잠깐 누웠는데.. 하선한다고 분주하다.

 

17시 52분 : 신기항..

 

▲ 화랑의 애마를 타고.. 20여분을 달려..

 

▲ 돌산읍 먹거리 단지에서..

 

▲ 뜨끈 뜨끈.. 쫀득하고 시원한 양푼이 동태국.. 돌산갓김치..

그리고.. 최고의 주류 바텐더의 손끝에서 절묘하게 배합된 한잔의 쏘맥칵테일은 환상의 목넘김이다..

 

산미덕풍(山味德風)..

산의 맛을 음미하는 사람은 스스로 덕의 바람을 풍긴다..

 

오늘..

금오도를 함께하신 분들이야 말로

산의 맛을 알고 스스로 긍정의 덕을 풍기시는 분들이다..

2025년 01월 16일(목요일).
무등산국립공원 : 광주광역시.

 

산행코스 : 원효사주차장-무등산옛길입구-목교쉼터-서석대-인왕봉-입석대-장불재-석불암-규봉암-원효사주차장.

산행시작 : 원효사주차장 09시 47분.

산행종료 : 원효사주차장 15시 31분.

전체거리 : 약14.7km.

전체시간 : 05시간 44분.

운동시간 : 05시간 29분.

휴식시간 : 00시간 15분.

누구하고 : 산이좋아산악회.

 

09 : 47  원효사주차장 출발.

09 : 53  무등산옛길입구.

11 : 07  목교쉼터.

11 : 25  서석대.

11 : 42  인왕봉.

12 : 10  입석대.

12 : 20  장불재.

13 : 12  석불암.

13 : 27  규봉암.

14 : 40  꼬막재.

15 : 31  원효사주차장.

 

09시 43분 : 광주광역시 무등산 원효사주차장.

 

 산이좋아산악회 2025년 1월 첫산행 출발에 앞서... 무등산 눈꽃세상을 기대하며 단체샷.

 

▲ 많이 추울거라는 일기에보와는 달리.. 여기 현장의 기상정보는 0풍속에 -1.6도로 출발한다.

 

▲ 무등산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오늘의 산행코스는 무등산 옛길을따라 인왕봉에 올랐다가 무등산을 한바퀴 돌아오는 환종주로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다.

 

09시 53분 : 무등산옛길 입구.

 

무등산 옛길은 광주 도심에서 원효사를 거쳐 서석대까지 옛사람들이 오르던 길을 복원한 길이다.

 

무등산 옛길 코스는.. 목교쉼터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오름으로 이어진다.

 

10시 03분 : 풍암제 갈림길.

이정표를 보지않고 길바닥만 보고 가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금곡동제철유적(金谷洞製鐵遺蹟)은..

이곳은 임진왜란 때 김덕령(金德齡) 장군이 무기를 만들었던 장소로 전해져 주검동(鑄劍洞)이라고도 부른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1567~1596)의 의병 활동과 관련한 무기 제조창으로 알려졌다. 1992년 발굴조사결과 제철에

필요한 시설과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설, 가공하는 시설이 확인되었다. 또한 쇠로 만든 화살축, 추 모양 철기, 못,

찌꺼기 등이 발견되었다. 무등산에서 철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1994년 2월 18일 광주광역시의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었다.

 

큰 바위에 "만력계사 의병대장 김충장공 주검동(萬曆癸巳 義兵大將 金忠壯公 鑄劍洞)"이라 새긴 글귀가 있다.

만력 계사년은 김덕령이 의병을 일으킨 1593년도다. 만력은 1573년 부터 1620년까지 사용하던 연호이고, 계사는 선조

26년 1593년으로 의병으로 활약한 시기를 뜻한다. 충장이란 시호를 쓴 것으로 보아 1788년 이후 김덕령 장군의 활약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새긴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시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김덕룡장군(1567~1596)은 무등산 자락인 충효마을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동하며 여러차례 왜군을 무찔렀다. 이몽학(李夢鶴)이 반란을 일으키자 도원수 권율의

명을 받아 진주에서 운봉(雲峯)까지 진군했지만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모함으로 체포되었다. 이에 정탁..김응남(金應南) 등

이 그의 무고를 힘써 변명하였으나 20일 동안에 여섯 차례의 혹독한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그의 나이 불과 29세때 였다.

 

10시 20분 : 물통거리.

옛날부터 나뭇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길이었어나 1960년대에 군부대가 보금품을 나르던 나르던길로써 1980년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길이다.

 

 10시 33분 : 치마바위.

김덕령장군이 백마를 타고 서석대에서 의상봉으로 뛰어 달리는 훈련을 할때 이곳으로 떨어지는 순간 김덕령장군의 누나가

치마로 백마와 김덕령 장군을 받았다는 치마바위이다. 무등산 2봉인 지왕봉에는 김덕령장군이 수련하면서 뛰어 넘었다는

뜀바위가 있어며.. 의상봉정상 바위에도 말발굽 흔적이 있다.

 

 11시 07분 : 목교쉼터 임도 갈림길.

 

목교안전쉼터.

 

서석대능선의 상고대.

 

 전망대에서..

 

 중봉너머로 광주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오늘은 곰탕이다.

 

 살짝 보이는 장불재 통신탑..

 

11시 25분 : 서석대 전망대..

 

 서석대는...

무등산 주상절리대의 일부로, 한 면이 1m 미만인 돌기둥이 약 50m에 걸쳐 동서로 빼곡하게 늘어서 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서석대에 저녁노을이 비치면 수정 병풍처럼 반짝인다 하여 ‘수정 병풍’이라고도 하였어며, 입석대와

더불어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서석(瑞石)은 선돌의 한자식 표현으로 고대 선돌숭배 신앙의 중요한 표상이다.

서석대를 구성하는 암석은 무등산응회암이라고 명명된, 중생대 백악기 후기에 분출된 화성쇄설물이 지면으로 퇴적된 직후

뜨거운 상태에서 입자들이 서로 달라붙어 형성된 용결응회암이다.

 

 서석대는..

조선전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고경명은 유서석록(遊瑞石錄)에 서석대에 관한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가까이 보면 겹겹

이 막힌 요새와 철옹성에 무장한 병사 일만명을 나열한 듯 하다.. 세속을 초월한 선비가 군중을 떠나 홀로 가는 듯하구나~.”

 

11시 31분 : 서석대 표지석.

여기서 인왕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 올것이다.

 

 인왕봉 가는길..

 

올라온자에게만 주어지는 설국의 세계.. 무등산이 나에게만 주는 선물같은 그림이다.

선두그룹에서 조금 일찍 서둘러 올라왔더니.. 길위에 아무도 없는.. 오롯이 나만의 무등산이 된다. 그리고 칼바람..

 

바람에 실려 가는 백운이 백마능선에서 말갈퀴가 된다.

 

 인왕봉정상석 입구..

그런데 분위기가 바뀌었다.. 2024년 4월 28일에는 정상표시가 화살표시에 있었다.

 

2024년 4월 28일의 인왕봉정상표시는 이러했었다.

 

 11시 42분 : 새로 세워진 인왕봉 인증.

무등산(無等山)은 광주와 담양군, 화순군과 경계에 있는 산으로 마한 백제시대에는 무돌, 무당, 무덤산이라 불렀고

통일신라 이후 무악(武岳), 무진악(武珍岳), 고려시대에는 서석산(瑞石山), 입석산(立石山)이라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무등산이라 하였다 한다. 무등산은 산세가 유순하고 산형이 순하고 덕있게 생겼으므로 덕이 높아 차등이

없다하여 무등산(無等山)이라 하며.. 1972. 5. 22.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2. 12. 27.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무등산 정상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 인왕봉만 57년 만에 2023년 09월 23일

상시 개방되었고 지왕봉 천왕봉에는 군부대가 주둔하여 통제 되고 있다.

 

 인왕봉의 암석.

무등산 정상에 있는 세 봉우리를 삼봉, 삼왕봉, 삼황봉 등으로 부르는데... 가장 높은 곳이 천왕봉(天王峯)이고 가운데가

지왕봉(地王峯)이며, 지왕봉에서 서쪽 서석대 방향으로 내려오는 곳에 있는 봉우리가 인왕봉이다. 고경명(高敬命)의

『유서석록』에서는 지왕봉을 비로봉(毗盧峯), 인왕봉을 반야봉(般若峯)이라고 하였다. 고경명의 묘사로는 천왕봉과 지왕봉

사이의 거리는 백여 척[약 30m]이고, 지왕봉과 인왕봉의 거리는 무명베 한 필 정도로 가깝다고 적고 있다. 인왕봉은 천왕봉

의 동쪽에 있는 지왕봉의 서쪽으로 인접하여 있는 봉우리이며, 인왕봉 정상에는 주상절리가 집중되어 있다. 서남쪽으로

서석대, 입석대가 있다.

 

 인왕봉의 칼바람에 쫏기듯.. 빠르게 내려 간다.

 

 무등산의 칼바람도 소백산 비로봉 칼바람 못지 않게 대단하다..

 

 바람은 카메라에 담을수가 없지만.. 억새의 굽은 허리에서 바람의 흔적을 알수가 있다.

 

▲ 다시 서석대 표시석에서..

인왕봉이 개방되기전까지는 무등산 정상자리를 대신 하고 있었다.

 

▲ 장불재 하산길이 몽환적으로.. 천상의 세계가 따로 없다. 이런 풍광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 하늘이 서서히 열리며.. 장불재가 뚜렷하고..

 

▲ 햇살속에 빛고을 광주시가 보인다.

 

▲ 안양산의 철쭉.. 낙타봉넘어 백마의 말갈퀴 같은 억새.. 만연산의 작지만 옹골찼던 암릉길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 뒤돌아 본 서석대 길..

 

▲ 하산길 내내 눈을 현혹시키는 백마능선..

 

▲ 그리고.. 한없이 내어주던 엄니의 젖무덤같은 안양산의 부더러움.. 그 위로..한줄기 백운은 눈을 홀리기에 충분하다..

 

▲ 승천암(昇天巖).

옛날 이 부근의 암자에 무엇엔가 쫓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준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해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았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어야겠다고 했다.

얼마 후 난데 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렸고 이무기는 곧장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이다.

 

▲ 풍력발전기가 있는전남 화순의 별산 너머로 모후산도 보이고 그 뒤쪽으로는 순천 조계산도 희미히게 다가온다.

 

▲ 어마어마하게 큰..주상절리 파편들..

 

▲ 누운놈과 선놈들의 주상절리다.

 

입석대(立石臺)는...

임진왜란 때 6,0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광주출신의 고경명(高敬命 : 1533~1592)선생은

전라도의 유일한 문과 장원급제자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까지 무등산을 사랑하면서 선조 7년(서기1574년 ) 광주목사

임훈등과 함께 500년 전 무등산에 올라 그 유명한 무등산 산행기 유서석록(遊瑞石錄)을 남겼다.

 

고경명이 1574년 4월 21일에 입석대와 입석암을 바라보고 유서석록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네 모퉁이를 반듯하게 깎고 갈아 층층이 쌓아 올린 품이 마치 석수장이가 먹줄을 튕겨 다듬어서 포개놓은 듯한 모양이다.

(중략) 돌의 형세를 보니 뾰족뾰쪽 하여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는데 그 가운데 헤아려 볼 수 있는 분명한 것은 16개의

봉우리다. 그 속에 새가 날개를 펴듯, 사람이 활개를 치듯 서 있는 건물이 암자이다. 입석암(立石庵)은 입석대의 한가운데

자리 잡아 우러러 보며 위태롭게 솟아서 곧 떨어져 눌러 버리지 않을까 두려워서 머물러 있기가 불안하기 그지없다.

바위 밑에 샘이 두 곳 있는데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지금은 주상절리의 생성과정이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만.. 그 옛날에는 신비스러웠을 것이다.

 

 입석대(立石臺) 아래는 암자가 있었다.

 

제주 바닷가나..동해안의 주상절리대와는 달리 해발 750~1187m 산악지대에 분포된 점이 특징이다.

 

12시 19분 : 장불재.. 대피소에서 마음에 점을찍고 간다.

 

장불재는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되는 해발 900m의 고갯길이다.

장불재의 유래는 문헌비고에는 장불치, 동국여지승람에는 장불동이라 적혀 있으며

"옛날 이 고개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 장불이 있었다"하여 이 고개를 장불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장불재의 손가락 바위.

 

 장불재의 고 노무현 전대통령.. 아!~~ 참 좋다.

 

 장불재쉼터에서 바라본 서석대 방향.

 

 그리고 서석대를 당겨본다..

 

 당겨본 입석대.

 

 12시 44분 : 규봉암방향으로..

갈길이 머니.. 서둘러 낙타봉이 보이는 쪽으로 길을 서두른다.

 

 도원마을 갈림길.. 규봉암은 직진이다.

 

피안교..

아주 작은 목교에 이름이 있다..

 

13시 02분 : 석불암 갈림길에서..

아미티불을 알현하기위해 석불암으로 향한다.. 두 길은 규봉암 직전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석불암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후산도 그림이다.

모후산은.. 고려 공민왕 10년에 홍건적이 자비령을 넘어 쳐들어오자 왕과 왕비는 태후를 모시고 안동, 순천을 거쳐 이곳

산기슭까지 피난왔다고 하는데.. 수려한 산세에 반한 왕이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해를 넘겨 1년여 남짓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산의 이름을 어머니의 품속같은 산이라 하여 모후산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 지공너덜..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깨어져 산능선을 타고 모인 산물로, 특이한 지형경관을 이루며, 인도 승려인 지공

대사가 이곳에서 석실을 만들고 좌선 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유래가 전해온다.

 

▲ 석불암 축대..

 

▲ 석불암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서 요사채 뒤로 돌아가면 석불사 아미타불을 모셨다..

 

▲ 석불암 아미티여래불은.. 1933년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아미타여래이며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것을 최근 다시 지은 것으로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작은 민가형 건물이다.

 

▲ 석불암 순둥이 견스님...

 

▲ 안쓰럽게도 다리를 하나 잃었다.. 아마도 불법 올가미에 걸렸던건 아닌지..

 

▲ 석불암 요사채.. 카메라를 막 들이대는 순간.. 바깥쪽 창문이 열리며 스님이.. "차 한잔 하고 가세요~~" 하신다.

들어가면 금방 나오기가 쉽지 않을것도 같고.. 해서.. "스님 대구에서 왔는데 갈길이 너무 멀어서 죄송합니다~" 라고 하니..

그러냐고.. 대구 팔공산 모 암자에서도 7년간 수도하였다면서.. 조심해서 하산하라고 하신다.. 감사합니다..

 

▲ 지공대사 수도처..

 

▲ 내부모습..

 

▲ 석불암에서 규봉암 가는길의 우람한 바위들이 부처님 세상에 있어서 그런지 바위사이로 순하게 길을 내어 준다...

 

▲ 규봉암 직진길과 다시 만난다.

 

▲ 규봉암 가는길..

 

▲ 규봉암 높은 축대.. 마치 산채를 연상하게 하는 규모다.

 

▲ 규봉암 일주문을 새로 조성했는가 보다..

 

▲ 규봉암 문바위..

 

▲ 규봉암 들어가는길이 원으로 되어 있다.. 음양이 없는 무극의 세상이라는 의미기 있지 않을까..

 

▲ 규봉암은..

1300년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절로 주위에는 삼존석. 십대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암자는 마치 범종이 매달려

있는 형국이라 한다. 규봉암은 무등산에 있는 조계종 사찰로 창건연대가 확실하게 전하는 문헌은 없고 신라시대 의상대사

가 창건하고 순응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한다.  또, 고려 초 도선국사,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한다.아후 6.25전쟁때

사찰이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가 1957년 관음전과 요사채를 지어 복구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규봉암은...

무등산 광석대는 서석대.. 입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주상절리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우며.. 유네스코 세계지질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광석대 돌기둥 아래에는 규봉암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예로부터 "규봉암을 보지 않고 무등산에 올랐다 말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난 절경 중 한 곳이다.

 

▲ 규봉암 관음전의 풍경소리가... 청아하고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 규봉암 원통문을 나서며 바라 본 문바위...

 

▲ 여기서도 자칫하면 도원마을로 빠질수 있는 삼거리다..

 

▲ 규봉암을 지나서 부터는 너무나 착하게 거의 수평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이다...

 

▲ 그런데...하산길이 너~~~무... 엄청~~~ 멀다.

 

▲ 멧돼지 일가족이 눈밭에 먹을게 없었던지... 뒤집어 놓았다.

 

▲ 광일목장 갈림길...

 

14시 19분 : 북봉의 신선대 갈림길..

 

▲ 북봉 신선대 가는길... 아무도 가지 않았다.

 

▲ 당겨본 북봉의 신선대바위.

가지못하면.. 내앞으로 호출하면 된다... 별로 매리트(merit)가 없는것 같다.

 

▲ 다시.. 무념무상으로 걷고 또 걷고..

 

▲ 또 걷는다.

 

14시 40분 : 드디어 꼬막재 도착... 하산시간 16시까지는 충분히 도착할수 있을것 같다.

 

▲ 꼬막재 유래..

옛 선조들이 나들이 할 때 이용했던 중요한 길로서, 그리 높지 않고 나즈막한 재이어서 꼬막재라 불리워졌다고 한다.

 

▲ 꼬막재의 쭉쭉빵빵 소나무..

 

▲ 꼬막재에서의 내림길도 비교적 완만한 경사다..

 

▲ 폐업한 무등산 호텔건물이 보이고..

 

15시 19분 : 자연애 문을 나선다.

 

15시 31분 : 무등산 환종주 산행종료..

 

▲ 평균속도 2.7km인걸 보니.. 길은 전체적으로 순했던모양이다..

 

▲ 남은 시간 29분을 활용하여.. 원효사로..

 

▲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의 지증왕이나 법흥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뒤 삼국통일을 전후한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이곳에 머물면서 암자를 개축한 뒤부터 원효사 · 원효당 · 원효암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 감로정..

 

▲ 물에 동전을 던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중금속 오염은 어쩌라고... 잘못된 불심이다.

 

▲ 원효사 무등선원..

 

▲ 원효루를 나서며.. 정면으로 보이는 무등산..

 

▲ 원효사를 떠나서..

 

▲ 전남 담양의 메타쉐콰이어길이 이쁜 곳에..

 

16시 34분 : "ㅊㅍ"전통 안두부..

 

▲ 두부버섯전골..

 

▲ 산이좋아 회장님의 건배..

 

2025년의 첫산행을 마무리하는 산이좋아 회장님을 보며

문득.. 불광불급(不狂不及) 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에 깊이 열정을 다하지 않으면 큰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여기서 "미치다"는 평범함을 넘어선 몰입과 열정이 탁월한 결과를 가져옴을 의미한다.

 

오늘의 무등산 환종주 산행을 무탈하게 마칠수 있음도

회장님과 산대장님의 열정과 회원님들의 노련함이 만든 결과이다..

 

덕분에..

무등산 설국의 눈꽃세상은..

큰 선물이었습니다.

 

2025년 01월 05일(일요일).
무직산(578m) : 전라북도 순창군.

 

산행코스 : 금평교-옥새바위-한반도전망대-무직산-전망대-스핑크스바위-암릉-호정소-금평교 산행종료.

산행시작 : 금평교 10시 41분.

산행종료 : 금평교 14시 42분.

전체거리 : 약7.6km.

전체시간 : 04시간 02분.

운동시간 : 03시간 33분.

휴식시간 : 00시간 29분.

누구하고 : 솔잎산악회따라서.

 

10 : 41  금평교 출발.

11 : 18  옥새바위.

11 : 26  413봉(옥새봉).

11 : 42  한반도 전망대.

12 : 16  무직산.

12 : 25  데크전망대.

12 : 28  스핑크스바위.

12 : 32  모자견바위.

13 : 12  암릉.

14 : 19  호정소.

14 : 42  금평교 산행종료.

 

 10시 38분 : 전북 순창군 금평마을앞 금평교 도착.

함박눈이 아닌 싸락눈이 내리는금(錦坪)마을은 평평한 비단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10시 41분 : 산행 들머리인 금평교입구에서 호정소 등산로 이정표를 따른다..

 

하얀 캔버스(canvas)에 그려질 오늘의 무직산 산행을 기대하며 아무도 밟지 않은 길위에 조심스레 첫발을 내딛는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오른쪽 봉우리를 경유하여 무직산 정상을 찍고 반원을 그리며 왼쪽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치천 뚝방길을 따라가다가..

 

 산으로 접어드는 곡각지점에서..

 

 이정표를 확인하고..

 

 임도수준의 넓은길을 따라 3~4분가량 진행하면..

 

새로 세워진 이정표에 <무직산 정상 2.5km>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옥의 티가 보인다.. "옥새"를 "옥쇄"로 표기하였다..

 

 목교를 건너면 본격적인 무직산 등산의 시작이다.

 

옥새봉을 향해 급오름을 치고 오르면서 몸은 서서히 데워지기 시작한다.

 

 전망바위를 오른쪽으로 에돌아 올라가면..

 

 탐스런 함박눈이 아니라서 조금은 아쉽지만.. 솔방울 하나 마다에 싸락눈이 내려 앉아 방울방울 눈꽃이 핀 모습이다.

 

 옥새바위 뒤통수..

 

11시 18분 : 옥새바위..

"옥새(玉璽)" 란.. 국권의 상징으로 국가적 문서에만 사용하던 임금의 도장을 말하며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의 도장이다..

"옥새(玉璽)"를 간혹 "옥쇄(玉碎)"로 잘못 혼동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옥쇄’란 ‘옥처럼 부서진다‘란 뜻으로

즉, 명예나 충절을 위해 깨끗이 죽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다시.. 돌아다 본 옥새바위인데... 임금님이 썼던 익선관과도 비슷하게 보인다.

 

 11시 26분 : 옥새봉(413m)..

 

옥새봉(413m)에서는 낙엽에 급경사 내림이지만 싸락눈이라 미끄럽지는 않다.. 그러나 안전이 우선이다...

 

 옥새봉(413m)을 지나서 부터는 바람을 막아주는 소나무들의 사열을 받으며 기분좋게 진행하다가..

 

 첫번째 데크계단을 지나고..

 

 두번째 데크계단을 오르면 무직산 비경이 펼쳐지는 전망대가 나오지만.. 오늘의 조망은 꽝이다.

 

 전망대가 가까워 질수록.. 몽환적인 분위기에 무협지속의 학이 신선을 태우고 날아오를것 같다.

 

 전망대 입구..

 

11시 42분 : 한반도 전망대.

여기서 바라보는 한반도지형과 건너편의 회문산.. 발아래 호정소의 조망이 압권인 곳인데.. 오늘은 무직산일대에 큰 잔치가

있는날인가 보다.. 엄청나게 큰 가마솥을 걸고.. 곰탕을 끓이는지.. 온산에 하얀 김이 서리고... 곰탕이 잘 고아졌는지 진하게

우려낸 국물속 처럼 조망은 1도 없는 뽀오얀 안개속이다.

 

순창의 랜드마크(land mark)인.. 한반도 지형..

한반도를 닮은 지형으로 무직산 최고의 포인트로.. 최근.. 순창의 숨은 비경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곳이다.

태극 모양으로 물길이 휘돌아 감기는 모습은 다른 한반도를 닮은 지형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곳 마을주민들은 한반도 지형이라 하면 모른다.. 발기한 남근이라고 하는데. 지형의 끝부분에 있는 움푹 패인

호정소(湖瀞沼)를 음(陰)으로 보고 서로 마주보고 있기에 음양(陰陽)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당겨 본 독립가옥..

아쉬움에 1년 6개월전에 찍은 사진을 올려 본다.

 

한반도 지형(남근)에 얽힌 이야기..

물돌이 지형을 순창군에서는 한반도 지형이라 하고. 마을 사람들은 음양(陰陽)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한반도 지형의 물돌이 윗쪽은 도로가 없을때에는 노루목재로 넘어 다녔는데.. 도로가 생기면서 원인도 모르게 건강하던

장정이 갑자기 죽어나가는 사단이 나자.. 마을의 원로들은 원인이 도로개설로 끊어진 남근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뒤

도로가 지나가는 노루목재에 생태터널을 놓아 능선을 연결하면서 부터는 더이상의 불상사가 일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반도 전망대 안내문에는 "옥새바위"라고 제대로 맞게 적어 놓았다.

옥새바위 유래가 적혀 있다.. 무학대사가 만일사에서 보고 옥새바위라고 하였다는 얘기다..

 

 한반도 전망대 안내문 뒤에 있는 옥새바위가 희미하게 보여서.. 수묵화를 보는것 같다..

 

다시 옛사진을 호출해 본다.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옥새바위는 아기코끼리 모습처럼 보인다.

 

 

눈발과 절경을 이루며.. 가장 어울리는 나무가 소나무인데... 100년안에 우리나라에서 소멸된다고 한다.. 안따깝다.

 

12시 10분 : 율리 통안마을 갈림길..

 

 12시 16분 : 무직산 정상.

 

▲ 무직산의 무(珷)자는 "옥돌" 을 말하며, 직(織)자는 "짜다" 는 뜻의 "옥돌로 짜여진 산" 이라는 이름답고 예쁜 산이다..

 

 배배꼬인 목생(木生)...

 

 실제로는 이 방구돌이 무직산에서 제일 높다..

 

 크레바스바위.. 저 구멍으로 빠지면.. 여차저차 되는 지름길이다.

 

과 6년전에만 해도 저 방구돌이 무직산 정상이라는 표지가 고목에 걸려 있었다..

우쨋기나 방구돌은 협소해서 위험하다.. 정상석은 안전한 현재의 위치가 맞다.

 

12시 25분 : 데크전망대..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꼭꼭 숨겨놓아도 주머니 속의 송곳은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내려다 보면.. 자~알..생긴(?) 남근에 자연의 궁합이 절묘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물도리를 볼수 있음은 오른자

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고.. 눈의 호사인데 안개속이라 볼수 없어서 이 사진도 호출한다.

 

호정소와 절묘한 물도리다..

 

부처바위..

스핑크스바위.. 삼신할머니바위.. 불(佛)바위로도 불리는데 스핑크스는 산꾼들 사이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삼신할머니

바위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분이 올라와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해서 마을에서 이렇게 부른다...불바위는 만일사에서

부르는 이름이며 ‘부처바위’를 뜻한다.

 

 스핑크스와 비슷하다..

 

12시 32분 : 모자견(母子犬)바위..

 

모자견(母子犬)바위가 위에 내려다 보고 있다..

 

▲ 헐!~... 1년 6개월 사이에 암릉지대에 데크를 설치해 놓았다.

.

▲ 이러한 암릉지대 였는데~...

 

▲ 눈발이 잦아지면서... 호정소의 물도리가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 소나무아래 전망바위가 만일사를 조망할수 있는 최상의 자리다..그러나~...보이지 않는다..

만일사는.. 고려 말기에 무학(無學)대사가 이성계(李成桂)의 등극을 위하여 중건하고 1만일 동안 기도하였던 사찰이다.

 

▲ 부채바위..

 

▲ 노루목재 생태터널,

남근의 맥을 잘라버렸던 노루목재에 터널로 맥을 이어 놓았다...

 

▲ 밀양박씨 세장산.

 

치천보... 중앙에 가면 공룡발자국이 수없이 많이 보인다.

 

▲ 호정소(湖淨沼)...

호정소에는 용이 되지 못한 못된 이무기가 살았다. 비린내를 좋아해 주민이 비린 생선을 먹고 지나가면 물고 행패를 부려서

무직장군이 산 동쪽 호정소와 이어진 큰 동굴로 들어가 이무기를 쫓아냈다는 무직장군의 전설이 있다.

 

치천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흘러서 치천(淄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겨본 옥새바위..

 

도로가 생기기전에.. 수변산책로가 개설되기전에는..

조금전 공룡발자국이 있는 치천보(湺)에서 저 징검다리를 건너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완전 폐쇄다.

 

 금평마을과 치천..

비단마을이란 뜻을 가진 아름다운 금천리 금평(錦坪)마을 이건만... 마을 앞을 흐르는 "치천"에 아픈 역사가 있으니..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고 8월 16일에 남원성을 함락한일본군의 주력 부대는 순창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순창군수 배경남(裵慶男)은 가족과 함께 산속으로 도망하였고,일본군 500여명이 무인지경으로 순창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읍민들과 주변 마을 사람들은 피난 짐을 꾸릴 시간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하였다. 일본군들은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재산을 약탈하였으며.. 백성들을 무차별학살하였다. 이때 일부 사람들이 북쪽인 구림면 금천리로 도망하였는데..

이곳 "치천"의 물가에서 모두 학살당하였다...  -- 디지털순창문화대전.. 발췌 --

 

 금평교 교각이 스마일~ 하고 있다.

 

 솔잎산악회 안전수송부 사장님의 작품 1.

 

 솔잎산악회 안전수송부 사장님의 작품 2.

 

 성냥팔이 소녀 아닌.. 아짐씨..ㅎㅎ~.

 

14시 42분 : 다녀온 무직산 능선을 바라보고 산행을 종료한다..

 

 

15시 14분 : 순창군 구림면의 ㅈㄷ식당... 두번째 오는 식당이다.

 

 닭볶음탕...

 

 솔잎산악회 회장님의 건배..

2025년 새해 첫산행을 안전하게 마무리 하고.. 을사년 올 한해도 무사무탈로 산하를 누벼 봅시다..

 

 날이 차가워서 발그레 상기되었나요?... 아니면.. 한잔으로?.. ㅎㅎ~ 향기나 보기 좋아요..

 

 그리고.. 대구 성서 모처에서 마늘소스 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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