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 17일(금요일).
주산(310m) : 경북 고령군.

 

산행코스 : 고령공영주차장-향교-주산성-주산-약수터-대가야고분군-대가야박믈관-테마관광지-주차장 산행종료.

산행시작 : 고령공영주차장 10시 00분.

산행종료 : 고령공영주차장 15시 29분.

전체거리 : 약10.7km.

전체시간 : 05시간 29분.

운동시간 : 04시간 28분.

휴식시간 : 01시간 01분.

 

10 : 00  고령공영주차장 출발.

10 : 06  고령향교.

10 : 40  주산성.

11 : 03  주산 정상.

11 : 42  약수터.

12 : 18  대가야고분군.

13 : 52  대가야박물관.

15 : 00  테마관광지.

15 : 21  고령군청.

15 : 29  고령공영주차장 산행종료.

 

10시 00분 : 고령공영주차장 출발.

 

▲ 가야문화특별시...

약1500여년전 사라진 대가야의 흔적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지역민들의 문화적인 자긍심이 대단하다..

 

10시 06분 : 고령향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9호).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 18현은 설총과.. 최치원을 비롯한 18분이다..

 

▲ 명륜당.

"명륜(明倫)" 이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유학을 가르치는 강학당이다.

 

▲ 대성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06호).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과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토지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다.

 

▲ 대가야국 성지(大伽倻國 城址).. 여기가 대가야국의 성터였다.. 라는 얘기다..

1939년 일제강점기 조선 7대 총독 미나 미지로(南次朗) 1936~1941 가 고대 일본이 대가야국을 열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여 임나 대가야국성지(任那大伽倻國城址)라는 비석을 세워 놓았는데 광복 후에 1947년

고령군민들은 비석에서 임나와 총독 이름을 지우고 대가야국 성지라는 글씨만 남겨 놓았는데

현재 이 비석은 1986년 12월 5일 날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옮겨가 전시관 3~4관 사이 야외에 전시하여 놓았다.

현재의 대가야국 성지 비는 1990년 12월 고령군민의 뜻을 담아 자연석에 비석을 다시 세웠다.

 

▲ 독립투사 수석 남형우 순국기념비.

고령출신으로 1909년에 비밀 독립 운동 단체인 대동 청년단에 가입활동하였으며, 1915년 대구의 안일암에서

조선국권회복단 중앙 총부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1919년 경남창원 등지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적극 주도 하였다.

 

▲ 향교에서 돌아 나와서 사거리에서 주산체육관앞 도로를 따라 올라 간다.

 

▲ 길가에 세워진 대가야 왕도 고령 안내판.. 그런데.. 안내문 내용을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병기하였다..

눈에 심히 거슬린다. 그 것도 "대가야 교육원" 바로 코밑에 세워 놓았다. 

일제가 1939년 4월 당시의 조선 총독이었던 남차랑(南次郞)으로 하여금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고 고대 일본이

대가야국을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뒷받침함과 아울러 한국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임나 대가야국성지비를 세우게 했던 곳이다.

 

▲ 고령출신으로 나라를 지켜주신분들이다.. 이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창비는 업적을 밝게 나타내는 비석"라는 뜻이다.. 묵념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고 간다.

 

▲ 영주 김상덕선생순국기념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 충혼탑..

 

10시 31분 : 주산 산림욕장입구.. 좌우 어디로 올라가도 정상에 가겠지만.. 주산성을 보기위해 왼쪽길을 택한다.

 

▲ 300여미터의 산중턱에 음용수로 가능한 샘물이 흐른다..

 

10시 41분 : 주산성.. 외성과 내성으로 나뉘어져 축성되었다.

 

 

▲ 남명 조식 선생의 월담정 시..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서 고령에 살던 매부 월담 정사현의 집에서 지은 시라고 한다.

 

▲ 주산성의 목곽고(木槨庫).. 6세기 중반 식자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대형 지하 저장시설이라고 한다.

 

11시 03분 : 주산 정상..

 

▲ 미숭산...

원래 상원산이었던 이 산이 미숭산으로 바꿔 부르게 된 사연은...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자

정몽주 문하의 "이미숭" 장군이 고려의 재건을 위해 최후 항전을 하다가 순절하였다 하여 후인들이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해

"미숭산" 으로 바꾸어 불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고 한다.

 

▲ 주산 정상에서 고분군으로 하산길..

미숭산길이 너무 멀어서 다음을 기약하고 고분군쪽으로 하산이다..

 

▲ 주산 정상에서 50여미터 내려 오니 바로 발아래 고분군이 있다.. 산행이 너무 짧은것 같다..

 

▲ 2~30미터 더 내려 가다가 동네주민 인듯한.. 50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올라온다..

등산로는 너무 좋은데 산행이 짧다고 하니 미숭산 청금정길을 가르쳐 주시며 길이 넘 좋으니 다녀 오라고 한다..

 

▲ 아주머니 말을 듣기로 하고 주산으로 다시 올라와서..

 

▲ 미숭산으로 간다.. 초반에는 급내림이어서 돌아올때 또 올라와야 되나? 하면서 조금만 내려가니..

 

▲ 편안하고 착한 솔숲길이 이어진다..

 

▲ 주산 정상에 다시 오르지 않고도 주산의 허리춤을 감아도는 대가야박물관길이 있다..

 

▲ 미숭산 5.75km.. 왕복하기에는 너무 멀다.. 일단 적당한 거리까지 가보기로 한다..

 

▲ 등산로 개설을 참 잘해 놓았다.. 오르내림은 거의 없이 솔숲속으로 수평이동이다...

 

▲ 봉우리마다 능선을 타지 않고 수평으로만 이동하도록 조성되어 있다..

이래서 여자말을 잘 들어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ㅋㅋ

 

▲ 조금전에 내려 왔던 주산 정상..

 

11시 45분 : 약수 쉼터.. 아저씨가 무언가를 붙이고 있다..

 

▲ 고령군 산림과 소속으로 쉼터 관리차 오셨다고 한다.

 

▲ 싱크대에 수도꼭지까지 달려 있다.. 수원이 어디냐고 물으니 청금정쪽에 지하 270m 를 파서 올린 암반수로..

배관을 통해 여기까지 공급한다고 한다.. 동절기 동파로 물공급을 중단했다가 오늘 부터 개시 한단다..

안내판을 붙이던 중이었다..

 

▲ 작업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인증샷 부탁.. 감사합니다.

 

▲ 쉼터에서 10여분 노닥거리다가...

 

▲ 다시 돌아와서 주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오른쪽 옆구리길을 따른다..

 

12시 18분 : 대가야고분군 시작점에 다다른다..

 

▲ 제일 먼저 만나는 엄청 큰 고분..

 

▲ 제1호 고분이다..

 

▲ 고분에서 내려다 본 고령군 대가야읍..

 

▲ 내려다 보니 전국에서 제일 많은것 같다..

 

▲ 21세기에 타임머신을 타고 2천년전의 시간속에 서서..

 

2천년전에 만들어진 망자들의 아파트의 곡선이 이렇게도 아름답다(?)... ㅎㅎㅎ~..

 

 

 

▲ 그림 좋은 소나무아래 앉았으니 세상 참 느리게 가는듯.. 마음조차 느긋하다.

 

▲ 가야가 멸망한 이후에도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도 추가로 무덤이 만들어져 다양한 형태의 고분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704기의 고분이 있다고 한다.

 

▲ 대가야 왕릉전시관..

 

13시 26분 : 전시관 앞에서.. 입장료 안내를 보고 돌아설뻔 했다..ㅎㅎ~ 무료인데...ㅋ~ 당당(?)하게 신분증을 들이대니

친절한 금자씨가 아닌 안내아가씨가 .. 대가야박물관과 우륵박물관을 관람할수 있는 무료티켓을 준다..

 

▲ 문화해설사에게 도굴된 상태를 물으니 97%의 고분이 도굴되었고 단 하나의 고분만 완전체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 금동관..

 

▲ 왕릉전시관을 나와서..

 

▲ 바로 이웃하고 있는 대가야박물관으로..

 

▲ 선사시대에서 청동기시대를 건너..

 

▲ 신라에 건국설화가 있듯이.. 대가야에도 건국신화가 있다..

 

▲ 서기 42년에 대가야국이 건국된다..

 

▲ 철의 왕국 대가야는 500여년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다.. 악성 우륵도 대가야인이다..

 

▲ 신라 백제 틈바구니에서도 가야의 세력이 만만치 않다.. 2022년 3월 26일에 획인했던 상주의 "고녕가야"도 보인다.

6가야 외에 "창녕땅"에 "비화가야" 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 500년대 초반, 고구려,백제,신라의 영토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신라와 백제의 땅은 넓어지고, 대가야의 땅은 날로

좁혀졌다. 가야제국은 구심점을 잃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대가야는 가야제국을 아우를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편승해 때로는 신라, 때로는 백제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대가야는 생존을 위해 522년

신라 왕실과 정략결혼을 맺었고 결혼동맹에 의해 비운의 월광태자가 태어난다. 그러나 529년 신라가 대가야에 쳐들어와

3성을 빼앗음으로써 그 동맹은 깨진다. 냉엄한 국제관계에서 예나 지금이나 '영원한 동맹'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대가야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신라는 월광을 폐위시키고, 월광은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된다.

가야산 서쪽 5리 '거덕사'에 몸을 두다 훗날 야로현 북쪽 5리에 터를 마련하고 '월광사'를 건립했다.

가야산은 대가야의 성지였고 월광은 이곳에서 망국의 한을 달래며 말년을 보낸다.합천 야로의 철산지도 장인들의 발길이

끊어 졌다. '철의 왕국' 대가야의 철은 그렇게 녹슬어 갔다. 변한 반로국에서 출발해 짧게는 300년간, 길게는 500년 간

신라, 백제와 어깨를 겨루며 광대한 대륙을 누볐던 대가야는 그렇게 허망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 반룡사 다층석탑..

 

▲ 대가야박물관앞 도로를 건너..

 

▲ 다시 대가야 역사속으로..

 

▲ 수많은 과거의 망자들의 시간사이로 현재를 걷는 생명있는자들의 길이 헤집고 다닌다.

 

▲ 주산 너머로 멀리 가야산 만물상의 상아(嫦娥)덤이 보인다..

상아덤은 가야산 여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와 하늘신 '이비하'(夷毗訶)가 노닐던 곳이란 전설을 가지고 있다.

가야산처럼 성스런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러 믿는 신이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 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상아덤에 내려 앉았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고 형은 아버지인 천신을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불그레했고, 아우는 어머니 여신을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그래서 형은 뇌질주일(惱窒朱日)이라 하고, 아우는 뇌질청예(惱窒靑裔)라 했다.

형은 대가야의 첫 임금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동생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되었다고 한다.

 

▲ 반환지점이 보인다.. 정자에서 역사테마관광지로 갈것이다..

 

 

▲ 592호 고분을 끝으로..

 

▲ 화살표지점으로 탈출할 것이다..

 

14시 38분 : 임종 체험관.. 관속에 들어가 죽움울 체험해 보려 했더니..ㅎㅎ~. 문이 잠겨 있다..

 

▲ 고분군전망대..

 

▲ 고분군을 마지막으로 조망해 보고..

 

▲ 테마관광지로..

 

▲ 대가야펜션..

 

▲ 물놀이장..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 할것 같다..

 

▲ 대가야 장터..

 

▲ 오른쪽 집으로 들어가 본다.

 

▲ 가야인들이 먹거리..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재료는 똑 같다.

 

 

▲ 가야의 시작..

 

 

▲ 정견모주..

 

▲ 정견모주..

 

▲ 대가야시네마.. 소극장에.. 커피.. 스낵..

 

▲ 테마관광지 나가는곳...

 

▲ 테마관광지 입구... 3월 31일~ 4월 2일까지 대가야 축제다..

 

▲ 대단지주차장..

 

▲ 우륵지.. 봄단장 준비로 물빼기공사를 하고 있다.

 

▲ 시내를 가로질러 주차장 가는길..

 

▲ 대가야 종묘.. 천성문..

 

▲ 숭령전... 대가야 시조왕인 "이진아시 왕"을 비롯하여 역대 국왕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5시 21분 : 고령군청..

 

▲ 고령 역대 수령들의 송덕비..

 

▲ 금송...

 

15시 29분 : 고령공영주차장 산행 종료.

 

▲ 사라진고대왕국 대가야 투어를 느긋하게 마치고.. 귀가길에..

 

▲ 병암서원..

동료의 안내에 따라 성주도씨의 병암서원으로 갔어나 관리인 출타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병암서원(屛岩書院)은 1625년(인조3) 도경유가 낙음정사(洛陰精舍1)를 지어 수학· 강도(講道)하였다.

1675년(숙종1) 병암서당을 창건하여 후손들의 종회당 겸 후학을 양성하는 장소로 삼았다.

이를 1785년(정조10)에는 도응유(都應喩)와 도경유(都慶喩)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병암서원으로 숭호하고 위패를 모셨다.

그 후 1868년(고종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것을 1924년 지역유림과 후손들의 열의로 복원하였다.

2000년 대구광역시의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서원일대가 완전 재개발을 위한 구획정리가 됨에 따라 옛 서원을 헐고

2001년 8월 23일 재건축 기공식을 갖고 조감도와 같이 공사하여 2003년 5월에 사당, 강당, 동서재 등 목조건물 10여동을

새로 중건하였다. 집목판 100여 점이 보존되어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29일에 제사를 지낸다.

 

소원문.. 비조정..

병암서원은 대구 달서구의 가볼만한 곳 베스트10에도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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