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 02일.
운제산(482m) : 경북 포항시.

 

산행코스 : 대각동 입산신고소-신여봉-시루봉갈림길-운제산-대왕암-자장암-원효교-원효암-오어사주차장 산행완료.

산행시작 : 대각동 입산신고소 09시 22분.

산행종료 : 오어사 주차장 13시 47분.

전체거리 : 약 9.92km.

전체시간 : 05시간 15분.

운동시간 : 04시간 24분.

휴식시간 : 00시간 36분.

누  구  랑 : 화랑산악회따라서.

 

09 : 22  대닥동 입산신고소출발.

10 : 08  신여봉.

10 : 31  시루봉갈림길.

10 : 44  운제산.

11 : 05  대왕암.

12 : 37  자장암.

12 : 58  원효교.

13 : 16  원효암.

13 : 47  오어사주차장 산행종료.

 

09시 22분 : 대각동 입산신고소 출발.

 

▲ 2010년 12월 12일에 지나갔으니.. 12년만에 다시 찾아온 제정골 들머리다.

대각동 제정골 들머리는 운토종주길(운제산~토함산~추령)을 걷는 사람들의 출발지로도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 대각동에서 산여봉까지의 오름길은.. 별 특징이 없는 단순한 코스지만.. 길은 비교적 순탄하게 이어진다.

 

10시 00분 : 처음 만나는 휴식처에서...

 

▲ 동해를 바라보니 글로벌한 경제불황속에서도 영일만의 기적을 불러온 포항제철에서 역동적인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을 보니 믿음직스러운 희망이 있다..

 

10시 08분 : 산여봉(362m).. 헬기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은지 오래다.

 

▲ 산여봉에서부터는 능선을 따라 편안하게 이어지고..

 

▲ 편안한 등로는 두갈래로 나눠 지지만 금새 합쳐진다.

 

▲ 착하게만 이어가던 등로가 갑자기 드러내는 돌이빨계단길을 10여분간 쉬엄쉬엄 차근차근 밟아주면..

 

10시 31분 : 시루봉 갈림길에 올라선다..

시루봉길은.. 10년도 넘은 추억의 저편속에는 조망별로에.. 단조롭고 지루한길이었다는 것만 기억나는 길이기에 통과다.

 

▲ 운제산 마지막 오름을.. 영차영차~. 두발.. 두팔에 전력을 다해서 내몸뚱이를 정상으로 밀어 올린다.

 

10시 44분 : 운제산 정상석과는 다섯번째의 상견례다.

운제산은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의 토함산 북녘 줄기가 추령을 넘어 구불구불 능선을 달려.. 황룡사지가

자리한 664봉과 시루봉(503.4m)을 지나 운제산을 솟구치고그 여맥을 형산강과 영일만에 잠기며... 동녘 자락에는

신라의 고승 혜공스님과.. 원효대사.. 자장율사가 수도한 1400년고찰 오어사를 품고있는 유서깊은 산이다.

 

▲ 운제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원효와 혜공이 머물던 암자 사이에 기암절벽이 있어 구름(雲)으로 사다리(梯)를 놓고

서로 오고 갔다고 해서 운제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 전망대 위로 올라가 사통팔달 일망무제의 거침없는 조망을 한다.

서북쪽의 산불초소 뒷쪽으로 옥녀봉 풍력발전기가 살짝 보인다.

 

▲ 동북쪽의 포항시 전경..

 

▲ 서남쪽으로는 시루봉능선이 경주시와 경계를 이루며 시원하게 내달린다.

 

▲ 시루봉능선 너머로 경주 무장산이 깨금발로 살짝 쳐다보고 있다.

 

▲ 토함산인 듯.. 함월산인 듯한 산그리메가 켜켜히 이어진다..

저 산주름 속에는 천년신라의 시간이 흐르고.. 거대한 산줄기에서 솟아나는 물은 대지를 적시고 모든 생명체를 살리며.

흘러내린 계곡의 물은 작은 시내를 이루고 시냇물들은 다시 큰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들고. 그 은혜로움으로 우리들은

그 속에서 삶의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고 있다... 산은,,, 그래서 늘 신비하고 은혜롭게 다가 온다...

우리의 인생도 <산>처럼 변함없는 믿음을 줄 수는 없을까...

있다면,,,,, 인생은 결코 고독하지 않을 것이다.

 

▲ 전망대를 뒤로하고..

 

▲ 정상에서 3~40m 내려 오면.. 돌탑위에 해학적인 장승이 지나가는 산객들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있다.

 

▲ 운제산에는 귀신이 없다.. 무적해병이 다 잡아버리니까...ㅎㅎ~

 

▲ 대왕암 가는길.. 대왕암을 보고 다시 돌아올것이다.

 

▲ 정상에서 약 5분거리의 봉우리에 또하나의 정상석이 있다...

2008년도에 대송면의 대송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이며.. 뒷면에는 대왕암 유래가 적혀있다.

 

▲ 대왕암 뒷편.. 전에는 왼쪽으로 갔었는데 오른쪽으로 돌아가라 한다...

 

11시 05분 : 대왕암... 

옛날 왜국의 한 역사(力士)가 왜국의 모든 장사를 굴복시킨 후 한반도로 건너와 힘센 자가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달려가

모두 물리쳤다. 그러다가 운제산 대왕암에서 창해역사(滄海力士)를 만나 운제산이 뿌리째 흔들릴 정도의 격투가 벌어졌다.

바람과 먼지는 천지를 뒤덮었다. 하늘을 날고 땅을치며 싸우다가 결국 왜국의 역사가 뒤로 넘어지면서 손을 짚었는데,

그곳이 움푹 꺼지면서 바닷물이 밀려와 영일만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역사는 창해역사앞에 무릎을 꿇고 군신의 예를 취해 창해역사는 임금이 되고 일본역사는 신하가 됐다고 한다.

가뭄이 들면 운제산 인근 주민들이 대왕암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 1985년 제2해병훈련단이 진해에서 포항으로 이전하면서 천자봉의 혼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운제산의 대왕암을

제2의 천자봉이라 명명하여 부르고 있다.

 

▲ 비취색 하늘빛이 참 곱다.. 천년전의 하늘도 저러 했으리라..

 

▲ 깊디깊은 산여계곡.. 그 너머로는 시루봉 마루금이다.

 

▲ 금방 깨트리고 나온.. 공룡알처럼 보인다.

 

▲ 헬기장에서 바라본 오어지.. 헐!~~ 그런데 물빛이 황토빛이다.. 왜 그럴까??~

 

▲ 호미곳으로 달려 가는 해안선...

 

▲ 여기에도 정상표지가 있다.. 세군데가 똑 같은 482m다..

대왕암의 운제산정상표지까지 합치면 하나의 산에 정상표지가 네개가 되는 셈이다.

 

▲ 다시 돌아온 자장암 갈림길.. 오른쪽으로 하산이다.

 

▲ 조금전 알에서 깨어난 애기공룡이 여기서 돌이 되었다.. ㅎ~

 

▲ 오어사 내림길은.. 분위기가 있고..

 

▲ 사색의 길이고...

 

▲ 쉼(힐링)이 있는 길이고...

 

▲ 그리고... 기다림의 테마가 있는 길이다.

 

▲ 왼쪽은.. 대각동의 운제산산림욕장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하산은 오른쪽이다.

 

▲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쉽게 포기할 산이라면 나는 결코 산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산을 타는 이유다.

 

11시 54분 : 산여계곡 임도 만남..

 

▲ 우측으로 가면 후동산방(後童山房)에서의 감홍시 추억이 있는 산여계곡으로 가는길이다.

 

▲ 좌측으로 가면 대각동으로 가는 길이다.

 

▲ 직진하여 화살표따라 지름길인 산길로 올라가면 자장암으로 가게된다.

 

▲ 자장암 지름길 야산에 올라서니... 밥먹을 시간이 지났는데 왜 안주냐고 아우성치는 속을 달래어 주고..

처음보는 길이 있어 따라가 보니.. 천길아래 산여계곡이 보이는 곳에 멋진 소나무가 그림을 만들어 준다.

 

▲ 산여계곡 상류쪽 위에 대왕암이 우뚝하다..

 

▲ 하류쪽의 오어사..

 

▲ 당겨 본 오어사..

 

▲ 다시 자장암 임도와 만나고..

 

▲ 초 간단 이정표가 가리키는 자장암쪽으로...

 

12시 37분 : 자장암.. 관음전과 부처님 진신사리 탑을 보려면 계단으로 올라 가야 된다.

 

▲ 설법전앞을 지나..

 

▲ 자장암 관음전..

자장암(慈藏庵)은 오어사(吾魚寺)의 산내 암자로, 신라 진평왕 때인 서기 578년경 자장율사(慈藏律師)와

의상조사(義相祖師)가 수도할 때 오어사와 함께 창건된 암자다. 이 운제산에는 신라사성(新羅四聖)이라 불리는

자장율사(慈藏律師), 의상대사(義相大師),원효대사(元曉大師), 혜공대사(惠空大師)가 수도하였다고 한다.

 

▲ 정감이 가는 동종과 주련에는 코끼리가 그려져 있다.

여연화불착수(如蓮花不着水)... 더러움에 물듦 없는 연꽃처럼 하시었고~..

심청청초어피(心淸淨超於彼)... 마음이 청정하여 피안으로 건너가셨네~~..

 

▲ 관음전을 지나서..

 

▲ 관음전에서 내려다 본.. 오어사..

 

▲ 나한전...

 

▲ 산신각을 돌아서서 절벽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 절승의 조망을 할수 있는 바위가 있는데.. 막아놓았다..

 

▲ 산신각 뒷쪽의 세존진보탑..

 

▲ 다시 산신각을 돌아서..

 

▲ 마주하는 계곡에 원효대사 창건하였다는 원효암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자장암 맞은편의 원효암에 거처하면서, 운제산 구름을 타고 자장암(慈藏庵)을 건너다니며

혜공(惠空)과 교유했다고 전해지는 구름사다리 운제(雲梯)의 전설이 만들어 진곳이 여기가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 관음전 기둥의 주련 아래쪽에 다른 사찰에서는 잘 보기 힘든 흰코끼리 그림이 그려져 있다.

<흰코끼리의 의미>

코끼리는 몸이 육중한 만큼 성질도 대범해서 길을 갈 때도 함부로 옆을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잘 걸어간다..

그래서 불교 수행자들에게는 코끼리처럼 앞만 보고 전진하며, 모든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수행하는 데에만

전념하라는 상징적인 뜻을 갖고 있다. 석가모니도 6개의 이빨이 있는 흰 코끼리를 타고 도솔천에서 내려와

마야 부인의 태로 들어갔다고 한다.

 

▲ 설법전 아래는 공양간이다.

 

▲ 포대화상..

 

하산길에 올려다본 자장암.

 

▲ 자장암 아래의 기암..

 

▲ 오어사 사리탑..

 

▲ 오어사는 원효암을 먼저 들렀다가 내려올때 들리기로 한다.

 

▲ 누렇게 황토물로 변한 오어지..

2022년 여름에도 태풍힌남노의 피해로 황토물이었다.. 이번에도 비가 많이 왔었나 보다.

 

▲ 오어사의 정문인 가학루를 지나서.

 

▲ 전에 있던 간이다리는 새로 놓으려는지 철거 되어있고 보막이가 되어 있다.

 

▲ 원효암 가는길..

 

▲ 원효암계곡에 들어서니 산사태가 장난이 아니다..

흘러내린 토사의 흔적으로 보아서 최근에 이지역에 많은 비가 내렸던 모양이다.

 

13시 16분 : 원효암.. 조촐하고 정갈한 분위기다.

 

▲ 원효암은 신라시대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고 기거했다는 암자다. 가지런한 신발..

 

▲ 원효암 주변에는 감나무가 많다.. 원효는 불당앞의 감을 보며 무슨 화두(話頭)를 가슴에 담았을까..

 

▲ 2012년 12월 9일.. 원효암에서 담은 사진이다..

 

▲ 되돌아 내려 가면서 산사태 현장을 다시 지나간다.

 

▲ 토사가 흘러들어간 흔적...

 

▲ 오어사와 자장암 절묘한 매칭이다.

 

▲ 오어사의 연리목 배롱나무..

 

▲ 가학루..

 

▲ 오어사 대웅전..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오어사의 원래 명칭은 항사사(恒沙寺)인데, 불경에 나오는 항하사(恒河沙)의 준말이다.

항하(恒河)는 인도 갠지스강을 가리킨다. 즉 항하사는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무수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절에서 많은 수행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 신라의 제26대 진평왕 당시 창건한 사찰로 항사사(恒沙寺)에서 오어사(吾魚寺)로 바뀐 유래가 재미있다.

어느날 원효와 혜공이 시냇가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물 위에 대변을 보았는데, 한마리는 살지 못하고

한마리만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는 것을 보고 혜공 스님은 헤엄치는 고기를 가리키며  "내 고기야(吾魚也)" 라고 했다 하여

그 후 절이름을 오어사(吾魚寺)라고 바꾸었다는 재미난 전설이 전하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후일 신라의 열분 성인으로 숭상되는 혜공스님이 살았다.

혜공은 천진공(天眞公)이라는 귀족의 집에서  품을 파는 노파의 아들로, 어렸을 때의 이름은 우조(憂助)였으며,

천진공의 매를 맡아 기르는 일을 했다. 7살때에 천진공의 병을 낫게하고 면천(免賤)해 출가했는데 날마다 만취해

삼태기를 지고 거리에서 춤을 추었으므로 ‘부궤(負櫃:삼태기)화상’이라 불렸다.

그(혜공)는 늘그막에 항사사로 옮겨 살았다. 이때 원효는 여러 불경의 경서를 지으면서 항상 혜공을 찾아가

의심나는 것을 물었는데, 가끔씩 서로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가벼운 농담에 깊은 가르침, 곧 화두가 담겨 있는 것이다.

 

▲ 국화와 모란의 문살무늬가 아름답다..

 

▲ 범종각..

 

▲ 혜공 스님은 고기를 가리키며  "내 고기야(吾魚也)" 라고 말한 가벼운 농담속에 깊은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것이다.

독사가 풀을 먹으면 독이 되지만 젖소가 풀을 먹으면 우유가 된다.

같은 물고기를 먹고도 도가 낮은 사람은 구린내 나는 똥만 배설하고, 도가 높은 이는 다시 살아 있는 고기를 낳을 수 있다.

이 말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혜공은 희롱조의 말 속에 깊은 의미를 담아 젊은 원효를 일깨워 주고 있었던 것이다.

두 스님이 함께 고기를 잡아먹고도 한 사람은 냄새나는 똥이나 싸지만, 한 사람은 다시 그 고기를 살렸다는 이야기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하루 세 끼 밥을 먹고도 어떤 사람은 냄새를 풍기며 살고 어떤 사람은 진정한 살림꾼으로 산다.

 

▲ 유물전시관.

 

▲ 원효대사의 삿갓과 숟가락.

원효대사가 사용하던 삿갓이라면 7세기경이니 1400여년 전의 물건이라는 얘기인데..

그게 과연 지금까지 남아 있을런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우쨋기나.. 원효대사의 삿갓으로 되어 있다.

 

▲ 보물1280로 지정된 오어사 범종이다. 고려 고종 3년(1216)에 주조된 것으로 무게 189kg, 높이 92cm의 규모다.

 

▲ 원효대사와 혜공대선사..

 

▲ 불교대중화에 공이 크신 스님들..

혜공은 신통력만으로도 국가에 일조하는 고승이 될 수 있었으나 조그만 절에 머물면서 언제나 미치광이처럼 술에 취하여

삼태기를 지고 골목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최고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여건을 버리고 시골 촌락, 작은 절,

시골 장터 등에서 머물렀다. 그곳의 주민은 물론이고 가는 곳마다 서민들에게 접근하여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에게

불법을 알게 하였다. 이와 같은 불교대중화는 혜숙과 혜공을 이어 대안(大安)과 원효로 이어졌다.

대안은 중국으로 가던 사신이 용궁에서 받아온 《금강삼매경》을 맞추어주고 원효에게 강설을 부탁하도록 한 스님이었다.

그로 인해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이 세상이 나올 수 있었다.

이것은 대안스님이 불교 교학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높은 학식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저잣거리에서

구리로 만든 바라를 치며 ‘대안(크게 편안하시오), 대안(크게 편안하시오)’하고 소리치며 노래하면서 대중을 교화하였다.

이런 고승의 대중교화 활동으로 신라는 왕실, 귀족, 서민의 차별 없이 온 국민이 불법을 신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통일된 정신력은 국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삼국통일의 저력이 되었다. 삼국시대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국력과 문화가 뒤떨어졌다. 그런 신라였지만 상하 모두가 단결할 수 있는 사상적 일치감이 있었기 때문에

최후의 승자로 남을 수 있었다. 신라인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으면 모두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신라가 부처님과 인연이 있는 불국토였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일된 정신력을 지닌 국가가

최후의 승자가 된 역사를 볼 때 신라시대 불교대중화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수 있다.

 

13시 47분 : 오어사를 나서며... 사실상의 산행은 종료하고..

 

▲ 오어지의 물이 워낙 흙탕물인지라..

제아무리 도력이 높으시다 해도 오늘같은 날은.. 떵인지 된장인지 알수가 없을것 같다..ㅎㅎ~.

 

▲ 항사리 공영주차장을 찾아서..

 

▲ 물이 맑았다면... 물밖에 드리워진 소나무와 물속의 또 다른소나무의 반영이 멋지게 어울릴텐데.. 아쉽다.

 

▲ 오어사 일주문...

 

▲ 낮최고 영상 7도.. 풍속 1~2m/s.. 봄날이다.

 

▲ 만수인걸 보니... 비가 꽤나 내렸던 모양이다.

 

14시 04분 : 공영주차장에 15시 30분이 하산도착시간이라 시간이 널널해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간다..

 

▲ 항사리에서 올라오는 골바람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 제방둑 밑에서 배수로공사를 하는걸 보니.. 이지역에 무슨 날씨 사단이 있었던 모양이다.

 

▲ 2012년 송년산행 하산주를 했던 오OO 식당도 쳐다 보고... 과거에는 비닐로 막았던 곳이 유리창으로 바뀌었다..

모 산악회 회장단의 이 취임식 행사가 있는가 보다.

 

▲ 죽곡수원김공익노유공비(竹谷水原金公益魯有功碑전서체로 쓰여져 있다..

광복후 오어저수지 조성에 기여한 이 지방 출신의 제헌국회 3선의원이었던 김익로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다.

비문 아래쪽에 작은 글씨를 보면 포항 장기 출신의 서예가인 운봉 금인석(雲峰 琴仁錫) 선생의 글씨라고 되어 있다.

국고 보조금 7천 3백만원과 민간자본 5천 7백만원, 도합 1억 3천만원으로 1955년 10월에 착공하여 1964년 12월에

오어지가 준공되었으며 수심이 25m라는 내용이 비문 뒷편에 적혀 있다..

여기서 내려다 보니.. 멀리 화랑의 애마가 보인다.

 

 

17시 36분 : 경부고속도로위 검단동즈음에서...

달리는 차안이라 사진이 곱지는 않지만.. 그래도.. 모처럼 고운 석양을 본다.

동지를 지나면 하루해가 여우 꼬리만큼 길어진다더니.. 많이 길어 졌다.

 

내 고기야!~~라는.. 도력 테스트 방법이 좀 황당하긴 하지만 도력 높으신 스님들의 엄청난 역사와 설화를 가진 천년 고찰

오어사와 부처님 진신사리의 자장암에서 이 세상의 어느 것이 내 것이고... 내가 가진 이것이 정말 내 것이 맞는지,
아니면 저 것이 내 것은 아닌지.. 내 것.. 이란게 있기나 하는 건지

집착(執着)을 버리라고 했는데.. 나는 오늘 부처님 세계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리고 가는가.. 

아둔한 중생이 또 한해의 나이테만 시작 되는건 아닌지..

10여년만에 다시 찾아온 운제산이다..

 

좋은곳 추천해주신 화랑의 히어로 산대장님 감사하구요

편하게 대해 주시는 여러 회원님들과 함께하는 산행이 행복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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