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18일(일).

주왕산국립공원 절골계곡 : 경북 청송군.

 

산행코스 : 주산지입구-절골탐방지원센터-신술골입구-반환점-운수암절터-주산지입구.

산행시작 : 주산지입구  11시 28분.

산행종료 : 주산지입구  14시 36분.

전체거리 : 약7.14km.

전체시간 : 03시간 08분.

운동시간 : 02시간 08분.

휴식시간 : 00시간 42분.

 

11 : 28  주산지입구.

11 : 38  절골탐방지원센터.

12 : 22  신술골입구.

12 : 28  반환점.

13 : 13  운수암터.

14 : 19  탐방지원센터.

14 : 36  주산지입구 종료.

 

절골탐방지원센터 주차장의 협소로 대형버스진입금지라서 주산지입구에서부터 탐방지원센터까지 걸어서 간다.

 

연일 한 여름의 폭군인 염제(炎帝)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이곳 청송의 날씨도 34도다.

 

 11시 38분 : 주왕산국립공원 절골탐방지원센터.

이곳은 2009년 9월 13일에 처음으로 찾은 곳이니... 15년만에 다시 섰다.

 

절골입구의 대문현판에 운수(雲水) 길이라고 되어 있다.

"절골"이라는 유래는... 옛날 계곡속에 "운수암"이라는 절이 있어 절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절골계곡은 2017년도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선정한 국립공원 힐링로드 10선에 선정되었던 곳이다.

절골계곡의 맑은 계류를 기대했었는데.. 가뭄으로 물길이 끊기고 메말랐다.

 

 그럼에도 올해의 가을 단풍은 그 어느해보다 고울것 같다.

 

12시 28분 : 대문다리 가기전의 바람길이 좋은 곳에서..

 

권이사님이 준비한 잭 다니엘을 즐기며 쉬었다가 원점회귀하기로 한다.

 

▲ 운수암터 안내문..

운수암은 조선시대 인조 때 창건 되었다고 한다.

운수암이라는 이름은 200년 전 청송 출신의 선비 서원모의 책 "주왕산지"에 등장한다. “계곡십리 길이 끝나는 곳에 평탄한

언덕이 하나 있으니 바로 암자가 위치한 곳이다.”라고 되어 있고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돌아가는길에..

 

▲ 지금의 솔잎산악회를 너무나 잘 운영하고 있는 회장님팀을 만나 젊은 에너지와 함께 한다..

 

▲ 버들치.

우리나라 전국의 강이나 계곡수에서 흔히 볼수 있다.

전북 지역에서는 버들치를 조선 중기의 고승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와 연결짓는 전설이 전한다.

전설에 따르면, 진묵이 물가를 지나가는데 청년 유생들이 물가에서 버들치를 잡아 솥에 끓이는 참이었다. 청년들은 지나

가던 진묵을 불러놓고는 억지로 물고기를 먹으라 강요하였다. 마지못해 진묵이 먹으니 이번에는 "중놈이 고기를 먹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놀리는데, 진묵은 "승려인 내가 어찌 살생을 하리오? 도로 산 채로 내놓으리다." 하더니 허리춤을

내리고 큰 일을 보았는데, 놀랍게도 버들치들이 산 채로 나와서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때문에 버들치를 전라도 지역에서는 '중고기' 또는 '중태기'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진묵대사의 신통력을 강조하면서도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시대상을 함께 보여주는 전설이다.

 

▲ 가을이 머지 않은것 같다..

 

 

 14시 36분 : 주산지 입구 산행종료..

 

 

▲ 마평교 쉼터.

청송군 주왕산면 지리 마평교 쉼터에서 하산식.

 

▲ 윤회장님의 건배..

 

▲ 이어서 산대장님의 건배.

 

▲ 청송이 고향인 선임자문님의 건배를 끝으로..능이 찹쌀유황닭백숙으로 여름 보신...

 

▲ 아니온듯 깨끗히 정리하는... 솔잎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2024년 08월 15일(목).

삼성산. 용봉. 마성산 : 충북 옥천군.

 

산행코스 : 삼양리철도교-삼성산-용봉-마성산-사목재-4코스-자연휴양림-방문자안내소.

산행시작 : 삼양리철교  09시 53분.

산행종료 : 휴양림방문자안내소  15시 26분.

전체거리 : 약10.8km.

전체시간 : 05시간 34분.

운동시간 : 05시간 08분.

휴식시간 : 00시간 25분.

 

09 : 53  삼양리철도교.

10 : 21  삼성산.

11 : 22  용봉.

13 : 25  마성산.

14 : 04  사목재.

14 : 26  4코스 탈출.

15 : 09  자연휴양림.

15 : 26  방문자안내소 종료.

 

09시 53분 : 삼양리 철도교.

 

주민들이 많이들 이용하는 동네산답게 안내판과 신발먼지털이도 잘 설치되어 있다..

 

급하지 않은 완만한 경사를 4~5분 가량 오르면..

 

삼성산 안부에 올라서고 등로는 주능선으로 이어 진다..

 

성터 흔적.

성터 안내문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돌무더기다.

 

백제와 신라간의 전투 중 가장 치열하였다는 관산성전투의 위치가 고리산이라는 설과 삼성산이라는 설이 있어

옥천향토사쪽에서는 어디가 관산성이라고 정하지 않아 이 곳을 삼성산성이라 부르고 있다.

 

충북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 남성골에서 고구려산성이 발견이 되고.. 대전의 월평산성 발굴에서는 백제성터 밑부분에서

고구려 토기가 발견이 되었는데.. 예산상의 문제로 발굴을 중지했다고 한다.

또한 대전 복용동 당산마을 유적 발굴과정에서  마을이 한꺼번에 화재로 인하여 파괴된 흔적이 발견이 되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고구려 남하정책과 더불어 전쟁으로 인하여 마을이 불 타버렸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관산성은 바로 코앞까지 내려온 고구려의 남진을 방어하기 위해 약 486년을 전후로 나제동맹을 근거로 백제 땅에 신라가

만든 산성일 것이라고 추측을 한다.

 

 10시 21분 : 삼성산.

동국여지승람에 이 산에 3개의 성이 있다고 하여 삼성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바위도 세 조각으로 되어 있다.

 

▲ 삼국사기에 의하면 관산성전투는 백제와 신라 간의 전투 중 가장 유명하며 또 기록상으로 삼국시대 전투 중 가장 자세

하게 기록된 전투다. 흔히 백제 성왕의 죽음으로 잘 알려졌다.  4세기 후반 때처럼 백제, 가야, 왜국 대 신라의 적대 구도가

다시 부활하였고, 6세기 중반에서 7세기 중후반 신라의 삼국통일까지 이어지는 후기 삼국 시대의 판도에 큰 영향을 끼친

매우 중요한 전투다.  554년 7월, 관산성에서 신라와 백제 사이에 건곤일척의 결전이 벌어진다. 고구려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아 국가 중흥을 이루려는 백제와 한강 유역 일대를 장악하여 한반도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신라가 국운을

걸고 맞붙은 싸움이었다. 이 전쟁으로 "백제는 좌평 네 사람과 장병 29,600명이 참살되었고 말 한필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라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해진다.

전투는 신라의 승리로 끝났고, 이 전투에서 백제 26대 성왕은 적군에게 목숨을 잃었고 약 3만 명의 백제군도 전사하였으며,

120년간 유지되던 나제 동맹이 깨어지게 되었다. 백제는 관산성 전투 패배의 후유증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반면 백제를 패퇴시킨 신라는 사방으로 영토를 넓히며 삼국 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

 

▲ 신라에 붙잡힌 백제 성왕의 목을 하급병사에게 베라고 한것도 부족하여 신라는 성왕의 목을 신라 왕궁 북청의 계단 밑에

묻고 신라 귀족들이 모두 밟고 지나가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고, 나머지 몸은 백제로 반환되었다.

 

이에 분노한 백제측에서 기병을 이끌고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지만.. 성왕이 죽은 구진벼루 위쪽 관산성 아래에서 대패를

당하게 된다. 이후 의자왕때 백제군이 대야성 전투에서 승리한후 김춘추가 가장 사랑했다던 막내딸과 사위의 목을베어

백제의 수도 사비성으로 보내 성왕의 복수를 하게 된다. 결국 김춘추는 그 일로 한을 품고 굴욕을 참아가며 당나라의 협력

을 얻어와 백제를 멸하게 된다.

 

▲ 관산성전투 참고도.

백제 성왕을 붙잡아 죽인 전공을 세운 장군 김무력은 이후 초고속 승진을 한 기록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

551년 단양 신라 적성비나 553년 7월 《삼국사기》의 신주 군주로 김무력을 임명할 때 김무력은 신라 17관등 가운데 여섯째

등급인 아찬이었는데, 555년 세워진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나 561년 창녕 척경비에서는 3번째 등급인 잡찬으로 관등이

3등급 승진했다. 거의 약 2년 만에 3관등 승진인데 신라의 다른 기록을 봐도 이렇게 짧은 기간에 3단계 승진은 거의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속 승진이다. 관산성 전투에서 활약한 전공을 인정받은 듯하다.

 

▲ 용봉을 넘어 마성산으로 가는 능선길.

이 능선이 관산성 전투가 벌어지던 백제 성왕시절의 신라군 최전방 라인 이다.

 

▲ 국사봉..

삼국시대라면 백제땅이다.

 

▲ 식장산..

건너편 능선은 백제의 최전방 라인인.. 식장산이 코 앞에 있고 그 너머가 바로 대전이고 보면 대전 옆의 백제의 구도인

공주(웅진)과 새로운 도읍인 부여(사비)에서 멀지 않은곳 이니 만큼 백제로써는 한치도 더 이상 물러나서는 안되는 절대

사수의 지역인 셈이다..

 

▲ 용봉 오름길에 바라본 옥천읍 전경..

옥천의 신라시대 지명은 고시산군 이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는 상주의 관성군으로 바뀌었다가 고려시대에 옥주(沃州)를

거쳐 조선시대에 옥천으로 변했다고 한다. 옥천(沃川) 이라는 이름은 강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기름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옥주가 옥천으로 변한것은 조선 태종때의 일인데, 계수관 제도로 인하여 각 지역의 주요 거점 도시만 주(州)를

사용하도록 하고 기타 고을 주(州) 자가 들어가는 다른 도시는 모두 산(山) 이나 (川) 으로 변경 하도록 했다고 한다.

당시 경상도에 속하던 옥주는 태종의 명으로 보은, 황간, 영동, 청산과 함께 충청도로 소속 변경을 하게 되었는데 이미

충청도에는 주요 거점도시로 충주, 청주, 홍주, 공주가 있어 그 이름을 유지했고, 옥주는 옥천이 되었다고 한다.

 

▲ 멀리 도덕봉이 보인다.

예전에는 도둑들이 극성을 부려 도둑봉 이라 불리다가 도덕봉 으로 고쳤다고 한다.

대전 수통골에 있는 도덕봉과 이름의 유래가 똑 같은걸 보면 전국의 도덕봉이란 그 고상한 이름과 달리

대부분 도둑들의 소굴이 이쁜 이름으로 포장 되었을 듯 싶다...

 

11시 22분 : 용봉.

 

▲ 용봉까지는 선명하던 길이었는데... 마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흔적이 희미하다.

 

11시 45분 : 동평성터.

 

▲ 11시 22분 : 성재.

옥천읍 마암리로 내려가는 탈출로다.

 

조여사님의 작품...

밑에서 찍어 드렸다고 한컷 해주시네요.. Give and Take...기브 앤 테이크.. 조여사님 감사합니다.ㅎㅎ~

 

바위지대를 넘어서면 오른쪽으로 옥천군 군서면 평야지대가 보이는데.. 바로 그 평야지대 끝에 현재 지도상에 "말동산"

이라고 되어 있는 성티산성이 있다. 당시 백제의 기마병이 주둔을 했던곳으로 백제의 성왕이 고위 관료들과 함께 그곳에서

전장을 지휘했던 곳이다. 이곳의 백제 기병을 상대하려고 삼년산성에서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 장군의 기병이 내려와

구진벼루(충북 옥천군 군서면 월천리)에 숨어있던것인데, 그걸 알리없는 성왕은 늘 다니던대로 고리산에서 백제의 주력을

이끌고 있는 태자 "부여창"을 만나러 가다가 잡혀서 황당한 참살을 당하게 된다.

 

 마성산성 흔적..

 

마성산 정상.

컨디션 난조로 마성산 정상을 패쓰 했는데.. 김더덕님이 보내주셨다.

 

 마성산 정상의 돌탑... 김더덕님의 작품..

 

마성산성 안내문... 김더덕님의 작품이다..

 

마성산 하산길에 바라본 장령산..

장령산(壯靈山 : 656m)은 장룡산(壯龍山)이라고도 부른다.

충청북도 옥천군의 군서면, 이원면, 옥천읍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한국지명총람』에 '장룡산(壯龍山)'이 기록되어 있으며, 산에 '용바우'라는 바위와 '용암사(龍岩寺)'라는 사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지명의 유래가 소개되어 있다. 현재는 장령산 자연 휴양림 지역으로 유명하다.

 

▲ 어느새 식장산도 멀어져 간다.

 

14시 04분 : 사목재.

사목재는 옛날 군서 사람들과 금산 사람들이 옥천읍을 오가는 주요 이동로 였다.

사목재란 이름의 유래는 옛날 이곳에 도둑이 많아 이 고개를 넘으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넘어라.. 라는 의미와..

용암사 스님들이 세상의 이치를 생각하며 넘었던 고개 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목재 장령산 들머리.

오늘따라 컨디션 난조로.. 더 이상 장령산으로 진행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또한.. 장령산은... 천태산. 대성산. 장령산.  마성산을 잇는 일명 "천.성.장.마"라 하여 약25.6km를 이어가는 종주능선이다..

이중에 천태산. 대성산은 올랐는데 삼성산.. 용봉.. 마성산이 미답산으로 남았었는데.. 오늘 그 마무리가 되었으니..

여기서 임도를 따라 하산 하기로 결정 한다..

 

이길은 장령산 등산로중에 "4코스"에 해당하는 길로.. 오늘로써 세번째 내려 가는 길이다..

 

3코스 접속지점..

 

장령산 자연휴양림을 지나서 주차장에 왔는데 산이좋아의 애마가 보이지 않는다.

회장님께 전화로 문의 하였더니 휴양림측에서 대형버스 진입금지로 한곳에 모여 있다가 차를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15시 26분 : 휴양림 방문자 안내소에서 산행 종료.

 

버스가 올때까지 대기하는 동안 트랭글을 정리..

 

산이좋아산악회 회장님의 건배.

 

 이어서 김고문님의 건배.

 

화랑산악회 회장님까지 건배의 잔을 들고~.. 일배일배부일배~..

 

옥천표,, "장군녹두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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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탈출하는 바람에 빼먹은 장령산 코스를 과거의 사진을 부록으로 이어 간다.

 용암사 가는길..

 

▲ 용암사 대웅전.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이다.

용암사는 서기 552년 신라 진흥왕 13년에 의신조사가 속리산에 법주사를 창건하기 저에 이곳의 산세를 보고 감탄을하여

절을 세웠다고 한다. 사찰의 규모가 원래는 상당하였는데, 임진왜란때 불타고 간신히 명맥만 유지 해오다가 근래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중건 되었다고 한다. 용암사라는 이름은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

이 파괴 하였다고 하며 신라 마의태자가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려는 아버지를 떠나 금강산으로 가다가 용암사에 들려

한동안 머물면서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며 통곡하곤 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대웅전에는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고, 그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1880년 복장을 열었을 때 '순치 8년 신묘년'에 만들어진 다라니경이 발견됨으로써 이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조선 효종 2년(1651)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 보물 제 1338호 용암사 쌍석탑.

 

▲ 마애불은 바위의 중간, 마치 공중에 뜬 것같은 형태로 연화대좌 위에 서 있다.

언제 칠했는지 모르지만, 마애불에는 붉은 채색을 칠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 운무전망대..

운무대는 구름이 춤추는곳이고.. 운해가 아름다운곳이다.

특히..운해와 어우러진 일출이 아름답다고 소문난곳이며..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50곳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곳은 낮과 밤 기온차가 큰.. 봄철과 가을철이면 운무가 짙게 내려앉아 아름다운 운무해돋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 일명 "틈새바위".

 

▲ 정면에서 바라본 거북바위.

 

▲ 잘생긴 거북바위.

 

 

▲ 왕관바위 틈새를 빠져나와..

 

▲ 마주선 왕관바위..

 

▲ 장령산 정상.

장령산은 장용산으로 불리다가 옥천군에서는 옛날부터 주민들이 부르던 장령산으로 바꾸어 달라는 군민의 희망에 따라

국립지리원 중앙지명위원회에 개명을 신청하여 1995년 5월 1일에 장령산으로 변경되었다.

 

▲ 5코스 데크길의  2전망대.

 

▲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산의 진산 "서대산".

 

▲ 중간의 사목재에서 탈출하는 바람에 못갔던 장령산 길을 과거의 사진으로 이어 보았다.

2024년 08월 11일(일).

주지봉. 문필봉 : 전남 영암군.

 

산행코스 : 죽정마을-양사재.문산재-양인석상.책굴-월대암-죽순봉-주지봉-문필봉-회춘능선-왕인박사유적지주차장.

산행시작 : 죽정마을  09시 16분.

산행종료 : 왕인박사유적지  15시 05분.

전체거리 : 약6.71km.

전체시간 : 05시간 51분.

운동시간 : 04시간 43분.

휴식시간 : 01시간 07분.

 

09 : 16  죽정마을.

09 : 29  지침바위.

09 : 30  양사재. 문산재.

09 : 34  왕인석상. 책굴.

09 : 43  월대암.

10 : 50  죽순봉.

11 : 19  주지봉.

12 : 34  문필봉.

13 : 41  똥바위.

14 : 02  미로바위.

15 : 05  왕인박사유적지주차장 종료.

 

 04시 30분 :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오늘은 말레이시아 키나발루원정을 주관했던 이대장님이 산악회와는 별도의 기획신행으로 전남 영암군 월출산국립공원

자락의 주지봉.. 문필봉으로 가는 날이다... 승차시간이 반월당에서 05시 10분이다.. 지하철 시간도 아니고..

가까운 거리라서 택시를 타기도 그렇고... 걷기로 한다.  새벽에 달구벌 대종을 보며 걷는 길도 괜찮네~..

 

 09시 16분 : 전남 영암군 죽정마을 도착.

 

구림천 목교를 건너가면...

 

이 길은 국립공원 월출산 둘레길인 "기찬묏길 2구간"과 주지봉등산로가 겹치는 구간이다.

 

09시 27분 : 왕인박사 유적지로 통하는 기찬묏길 2구간 갈림길.. 주지봉길은 임도를 따라 직진이다.

 

지침바위.

주변에 자생하던 닥나무를 채취하여 이 바위에다 놓고 찧어서 종이를 만들었다고 하여 지침바위(紙砧岩)라고 부르고 있다.

 

닥나무는 한방에서 열매를 양기부족.. 수종의 치료제로 쓴다. 어린 잎은 식용한다.

옛날에는 닥나무 껍질의 섬유로 저포(楮布)라는 베를 짰다.

닥나무를 종이 원료로 사용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인데 조선시대에 본격화되어 닥나무 재배를 장려하였다.

줄기를 1∼2m 길이로 잘라 밀폐된 솥에 넣고 증기로 두 시간 정도 찐 다음 꺼내어 껍질을 벗긴다.

이것을 그대로 말린 것을 흑피(黑皮)라 하고, 흑피를 물에 불려서 표피를 긁어 벗긴 것을 백피(白皮)라 한다.

흑피는 하급지의 원료로 쓰이고 백피는 창호지, 서류용지, 지폐 등의 원료로 쓰인다.

 

 양사재. 문산재 입구인데.. 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좌측은 양사재(養士齊)이고. 우측은 "​학문이 산처럼 쌓인 곳" 이라는 뜻의 문산재(文山齊)인데 보수공사중이다.

문산재(文山齊)는 왕인(王仁)박사가 공부했던 서당 터로 이곳에서 큰 인물이 많이 나왔다고 조선시대에 문을 연 서당이다.

1688년 구림 대동계의 서당으로 건립되어 이용되다가 1966년에 철거되었다.

 

양사재(養士齊)는..

백제 때 왕인이 담소를 나누었던 장소로 전해지기도 하며, 조선 시대 구림 대동계의 서당으로도 이용되었다.

1966년에 문산재와 함께 철거되었으며, 왕인 박사 유적지로 지정되면서 1986년에 중수되었다.

 

 양사재(養士齊)를 올라서면.. 왕인석상과 책굴로 가는길을 가르키는 표지목이 보인다.

 

09시 34분 : 왕인석상(王仁石像).

왕인박사의 후학들이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빙으로 상대포(上臺浦)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간 스승을 그리워

하며 세운 왕인석상은 박사가 배를 타고 떠났던 상대포구쪽을 바라보고 있다.

책굴옆의 왕인석상은 문수상, 문수암이란 별칭으로 마을에 구전되어 왔다. 법의를 입고 양손을 소매에 넣어 배 앞에 가지런

하게 새겨놓은 입상으로 직사각형 돌에 조각되었다... 표현으로 보아서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 된다는데 "왕인석상"

이라는 이름은 근래에 붙여졌다고 한다.

 

▲ 책굴(冊屈).. 왕인석상(王仁石像) 오른쪽에 있다..

 

▲ 책굴(冊屈)입구..

왕인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공부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천연 석굴에서 들어가 학업에 전념했는데,

왕인이 책을 읽던 굴이라해서 후세 사람들이 책굴이(冊窟)이라 불렀다. 폭2.5m, 길이7m, 높이5m 정도의 직사각형 굴이다.

이곳에서 학업에 정진한 왕인은 18세에 오경박사(五經博士)에 등용되었다.

오경박사(五經博士)란... 백제에는 여러 전문분야에 박사들이 있었는데 주역(周易)..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등  경서(經書)에 능통한 사람을 말하며 귀히 여겼다.

 

▲ 책굴(冊屈)을 올라서면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있다.

책굴은 상부가 뚫려있고 석상도 비바람에 노출되어 외부의 암벽에 누각형태로 책굴이 보호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도.. 책굴과 석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 책굴 암벽 위에서 바라본 구림마을과 왕인석상이 바라보고 있다는 상대포도 보인다.

 

▲ 책굴을 덮고 있는 바위군을 내려다보고..

 

▲ 암벽을 따라 월대암으로 향한다.

 

▲ 이름짓기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이름 붙여 놓은 콧구멍 바위다.

 

▲ 월대암(月臺岩)암석은..

토르(Tor)지형으로 월출산 천황봉과 함께 백악기 말인 약 9000만년 전에 화강암으로 이루어져있다.

 

▲ 월대암(月臺岩)에서 바라본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은 아직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

 

▲ 월대암에서 내려다 본 죽정(竹亭) 마을.

대나무 숲이 우거져 죽정마을이라고 하는데 양쪽으로 우거진 죽림(竹林)이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구림천에 의해 음죽정

(陰竹亭)과 양죽정(陽竹亭)으로 나뉘어 진다.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옛 담장은 전라남도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 월대암(月臺岩)에서...

 

▲ 일명... 쩍벌소나무.

 

▲ 주지봉능선의 매력인 암릉지대의 시작이다...

 

▲ 얼굴을 쑤~욱 밀어 올린 월출산의 천황봉의 장엄함이 빛난다.. 아래로는 천년고찰 도갑사가 보인다..

도갑사는 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옛부터 '호남의 소금강' 이라 불리는 월출산의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는 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다.

 

▲ 30배 줌으로 당겨 본 도갑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말사로.. 신라 말기에 영암 구림마을 출신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 가야 할 주지봉능선의 죽순봉...

 

▲ 절벽에 매달려 힘들게 자라지만.. 거기에서 꿋꿋한 모습이 아름답다..

 

▲ 기차를 타면 창 밖의 아름다운 풍경과 순간의 반짝임도 일순간 지나가면 다시오지 않듯이..

 

▲ 지나간 세월 또한 다시 오지 않음이라.. 순간을 놓치지 말자..

 

▲ 문필봉의 기묘한 암릉위로 흰구름이 흐르고..

 

▲ 당겨본 문필봉과 그 아래 스핑크스바위..

 

▲ 당겨본 문필봉의 불곰머리바위.. 반대편에서 보면 영락없는 불곰이다.

 

▲ 어느날 솔씨 하나 날아들어 보금자리 되었구나..

소나무야..

키 커려고 하지 말고 몸집 키우려 하지 마라.. 

키 크고 몸집 커지면 바위가 너를 싫어 할 것이다.. 

그러니 너의 주어진 환경에서 욕심 내지 말고 지금의 그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살아 주기 바란다. 

내가 다시 이 길을 지나는 인연이 온다면.. 다시 만나자꾸나..

 

10시 50분 : 죽순봉 통천문..

 

▲ 아따!~..그눔참 인물이로구나..ㅎ~

 

 11시 19분 : 주지봉 정상의 삼형제 바위.

주지봉의 주(朱)는 붉을 "주" 이고.. 지(芝)는 영지버섯의 "지" 자다. "지초(芝草)"라고도 한다. 지초가 많은 산인가 보다..

 

▲ 헐!~.. 주지봉 정상에 잔치국수가..

식객 허영만씨가 이 맛을 보았다면 뭐라고 평을 했을까..

 

주지봉 내림길에서 바라본 문필봉..  안부까지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한다.

구림마을에서 보면 붓을 거꾸로 세워 놓은 모습이라더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위용을 뽐낸다.

 

 주지봉과 문필봉 사이의 안부..여기서 계속 직진하면 문필봉이고 표지판 앞쪽 계곡이 주지골이다.

오늘 산행은 문필봉에 올랐다가 다시 주지봉으로 되돌아가서 회춘바위능선으로 하산할 것이다.

 

 문필봉 입구의 초병격인 암봉..

 

 문필봉을 가늠해 보고 여기에 베낭을 내려놓고 올라간다.

 

 문필봉 오름길 1차 관문.. 로프가 조금 짧다.

어쩌다 선두에 서다 보니 로프의 안전 점검은 필수다.. 눈으로 보고 당겨보고 매달려 보고 돌려보니 괜찮다..

 

 1차 관문을 통과하면.. 2차 관문은 홈통바위로 오른다.. 밧줄이 없어도 충분히 오를수있는 난이도다.

 

▲ 3차 관문.. 밧줄이 달랑 한줄이다.. 후미를 위해 충분한 점검 결과 믿어도 되는 줄이다.

 

문필봉 정상아래의 나마(gnamma)의 흔적..

나마(gnamma)는 화학적 풍화작용에 의해 기반암의 표면에 형성된 접시 모양의 풍화혈로 화강암의 기반암 표면에 가장

잘 형성된다. 대표적인 나마는 속리산의 문장대.. 월출산의 구정봉 등이다.

 

▲ 3차관문을 통과하면 정상 바로 아래에 제법 널따란 암반이 누워 있다.

 

▲ 일명.. 문필봉 다이빙 바위다.

 

▲ 문필봉 정상바위 아래..

 

▲ 문필봉에서 벋어내려간 스핑크스바위 군..

 

▲ 문필봉 정상바위.. 충분히 오를수 있는 경사각인데.. 내림이 문제다..

이대장님이 1주일전에만 오자고 했다면 올라갔을텐데...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

 

▲ 문필봉 정상의 나마(gnamma) 흔적만 보고 내려 간다.

 

▲ 지나온 주지봉.. 다시 올라간다.

 

▲ 다녀 간지가 30년이 흘렀어도 산하의 그림은 그대로다... 땅끝기맥이 지나가는 월각산 능선의 산그리메..

땅끝기맥은.. 전남 장흥군 유치면에서 화순군 이양면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상의 839번 지방도로의 곰재(웅치)에서 올라

서면, 국사봉(499.1m), 깃대봉(448m)을 지나고 삼계봉(5.3.9m)에 이르기 전 바람봉 헬기장(430m)에 올라선다.

바람봉에서 북으로 따로 분기하여 각수바위.. 계천산(400m).. 국사봉(614m).. 월출산(808.7m).. 월각산(456m)으로

이어지면서 영산강의 남쪽벽을 이루다가 별뫼산(464m).. 서기산(511m).. 첨봉(354m)을 거쳐 우리나라 육지 최남단인

땅끝 마을에서 바다로 빠지는 도상거리 약 122.7km의 산줄기다.

 

▲ 주지봉으로 다시 돌아가는길..

 

13시 13분 : 다시 올라선 주지봉..

 

▲ 회춘바위능선의 "똥바위"..

회춘바위를 탄다고 해서 이팔청춘이 될까마는.. 그래도 나이 먹는 속도가 세월 빠르게 흘러가는거 같아서 시간의 흐름이

조금은 더디게 흘러 갔어면 하는 바램이다ㅎㅎ.. 마음은 늘~ 청춘으로 살아가 보련다.

 

▲ "똥바위"에서 바라본 문필봉..

 

▲ "회춘바위 능선"에서 내려다 본 구림마을과 왕인박사유적지...

주지봉 아래에 있는 동네가 바로 구림(鳩林) 마을이다. 옛날부터 호남의 명촌을 꼽을때 가장 먼저 회자되는 곳이 구림이다.

역사가 무려 2200년에 이르는 마을이다. 그만큼 옛날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조건을 지녔던 것이다.

거기에다 명촌으로 소문나려면 뚜렷한 인물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도선국사.. 왕인박사.. 최지몽 태사가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배출됐다고 한다.. 국사(國師).. 박사(博師).. 태사(太師).. 즉 사(師) 자 돌림인 3명의 연고지이다.

 

▲ 타임머신을 타고 3~4세기의 백제로 들어가 보니.. 구림 마을앞까지 바닷물(노란색 부분)이 들어오는 항구였다..

상대포구는 왕인박사가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청으로 일본(왜국)으로 떠난 곳이기도 하고..

통일신라 말 당대 최고의 학자들인 최치원(산라 학자이며 문인), 최승우(신라 문인), 김가기(도교인이며 문장가) 등이

중국 유학을 떠났던 곳이기도 하다.

 

▲ 미로바위..

 

▲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회춘바위라고 하며 정작.. 회춘바위는 못찾았다고 한다.

 

▲ 회춘바위가 궁금해서 찾아보았지만.. 나역시 못찾겠다 꾀꼬리다..

 

▲ 회춘바위는 이정표에서 20m다.. 가까이 있었는데.. 너무 먼곳에서 찾았던가 보다..

 

▲ 수신정을 지나고..

 

▲ 유적지방향으로..

 

▲ 성천(聖泉).

왕인이 마셨다는 샘물로 성천이라 부르는데, 왕인박사가 이곳에서 자라면서 큰 학문을 이뤘으므로 뒷날 사람들이 이곳을

성인의 터 자리라는 뜻으로 "성기동(聖基洞)"이라 하고 시내 곁 우물을 성천이라 불렀다. 그런데.. 덮어 놓았다.

 

▲ 왕인박사 생가터.

 

▲ 왕인사당...

346년에 즉위한 백제의 13대왕 근초고왕과 이 시절 왜국으로 간 아직기, 그리고 왕인과 같이 건너간 "백제 도래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오늘날 큐슈의 "사가현" 그리고 일본 아스카 문화의 효시가 된 이야기등을 볼수 있다.

 

▲ 왕인의 일대기를 그린 석화..

 

▲ 왕인박사상..

왕인박사는 백제 근초고왕 때 일본으로 건너가 백제의 선진문화를 전파하여 일본 비조문화(飛鳥文化)의 시조로 숭상받는

인물이다.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가기전에 먼저 왕인과 동문 수학하였다는 아직기(阿直岐)에 대해 알아보고 가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700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멸망한 "백제"의 역사 또한 축소되거나 왜곡된 면이 많다.

백제의 최고 전성기를 이룬 왕이 백제의 13대 임금인 근초고왕(346-375)이다. 그는 고구려 "고국원왕"도 전사케 하고,

중국의 요서, 산둥반도까지, 그리고 남해안까지 영토를 넓히며 일본에까지 영향력을 끼친 왕이다.

그러나 375년 13대왕 근초고왕의 시대는 가고 17대 아신왕때에 백제의 국력은 쇠퇴하고 고구려의 광개토왕(391~413)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신라는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맺으며 백제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백제의 아신왕은 일본의 힘을 빌려 그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은 사신을 백제에 보냈고

백제에서도 크게 환대했고… 사신이 오고가는 과정에서 백제에서 왜국(倭國)으로 많은 문물이 건너갔는데 402년에 경서에

능통한 아직기(阿直岐)를 밀사로 파견하고 옷 깁는 기술자인 공녀(工女)와 명마 두필과 칼과 거울을 함께 보냈다.

일본의 응신천황(應神天皇)은 아직기(阿直岐)가 경서(經書)에 밝은 것을 알고 황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어느날.. 왜국 천황이 아직기의 뛰어난 학식을 보고 물었다.

“백제에 그대보다 나은 박사가 또 있는가?”

“왕인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무척 빼어납니다.”

이렇게 해서 응신천황이 백제에 사자를 보내 왕인(王仁)을 초빙했던 것이다.

 

백제의 아신왕은 곧바로 왕인을 일본으로 보냈다.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빙으로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

으로 건너가 그 해박한 경서(經書)의 지식으로 응신천황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의 문화를 깨우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그의 후손은 대대로 학문에 관한 일을 맡고 일본 조정에 봉사하여

일본 문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 영월관(전시실)에 잠시 들린다.

 

▲ 일본서기..

일본을 생각하면 언제나 두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의 치욕.. 그래도..

1,600년전.. 일본에 문명의 씨앗을 뿌린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대단한 긍지임에 틀림 없는 사실이다.

 

▲ 백제목조관음상(모조품)..

1400년전에 나무로 만들어진 목조상이 썩지도 않고 보존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일제때 도굴이나 수집가에 의해 일본으로 유출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기록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 백제 성왕의 얼굴을 닮은 구세관음상.

 

▲ 천인천자문.

2008년 영암 왕인문화 축제 때 국내외 1000명이 쓴 천자문이 새겨져 있다.

 

▲ 영월관 뒤로 죽순봉.. 주지봉.. 문필봉이 병풍처럼 둘러 섰다.

문필봉은 "천호봉필(千戶奉筆)"의 형국이라고 한다. 천가구가 문필봉을 받들고 있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유명한 죽순봉.. 주지봉.. 문필봉의 암릉을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즐긴 조망은 너무나도 멋진 시간이었다.

 

15시 05분 : 왕인박사유적지 산행종료.

 

15시 51분 : 왕인박사유적지에서 20여분을 달려 찾아온 돌쇠의 정..

 

▲ 연잎떡갈비정식 상차림..

 

▲ 연잎떡갈비... 맛있다.

 

▲ 이대장님의 건배로 마무리...

 

꽃은 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기에 이쁘게 피워 내는 것이다.

사람은 끝이 두려워 시작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지는 것이 두려워 피우지 않는 꽃은 상상 할 수 없다.

 

오늘..

월출산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주지봉.. 문필봉을 타고 회춘능선으로 하산..

더 할 나위 없이 머~찐 꽃을 피워낸 기획산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안내도.

오늘 8월 4일은 솔잎산악회의 정기산행일인데.. 하계수련 및 야유회행사로 셋째(8월 18일)로 변경되었다.

마침.. 동료의 제안으로 kj에서 금강소나무숲길 4구간 대왕소나무길로 가니까 같이 가자고 한다.. OK!~..

헐!~.. 하루전 토요일에 kj로부터 문자가 온다.. 대왕소나무길은 긴급방재로 3-1구간 화전민옛길로 변경이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연락을 받으니.. 마땅히 갈곳이 없다.. 에라이~~ 우짜건노.. 이왕 신청한것 가보자.. 콜~~.

 

2024년 08월 04일(일).

금강소나무숲길3-1구간 : 경북 울진군.

 

산행코스 : 소광국민학교(폐교)-저진터재-너삼밭재-옛화전민마을-부채소나무-병정소나무-화전민터-소광국민학교.

산행시작 : 소광국민학교  09시 27분.

산행종료 : 소광국민학교  12시 42분.

전체거리 : 약8.84km.

전체시간 : 03시간 15분.

운동시간 : 02시간 54분.

휴식시간 : 00시간 20분.

 

09 : 27  소광국민학교(폐교).

09 : 46  저진터재.

10 : 17  너삼밭재.

10 : 26  4코스 갈림길.

10 : 43  옛화전민마을터.

10 : 56  부채소나무.

11 : 20  병정소나무.

12 : 01  화전민터.

12 : 42  소광국민학교(폐교).

 

09시 13분 : 소광국민학교(폐교) 도착.

 

 운동장 오른쪽은 식당(십이령 주막).. 정면쪽의 초가집은 펜션...

 

 출발전에 잠시 주변을 둘러 본다.

 

 

 오늘의 화전민옛길구간을 안내해 주실 숲해설가님.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금강소나무숲길은 산림청이 국비로 만든 첫 숲길로 탐방객의 안전과 생태계 보존을

위해 숲길 안내인을 동반한 예약탐방가이드제로 운영되며, 7개 구간별 탐방인원을 하루 80명으로 제한한다.
참가자들은 산림·역사·문화자산에 대한 수준 높은 해설을 들으며 숲길을 탐방할 수 있다.
울진군 북면과 금강송면 일대 총 7개 구간 79.4㎞에 조성된 금강소나무숲길은 
우리나라 최대 금강소나무숲을 비롯한

대왕소나무 등 3그루의 보호수를 비롯해 보부상유적, 화전민터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중에 우리기

걸어야 할 길은 3-1구간으로 화전민옛길이라는 설명이다.

 

이어서 안전수칙도 설명하시는데.. 그 증에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은.. 숲해설사님을 추월하지 말라는 말이다..ㅎㅎ~

 

09시 27분 : 트레킹 출발..

운동장을 나오면 마을버스정류장이다.. 여기가 종점이기도 하다..

 

 소광2리마을회관 앞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마을길을 따라 들어 간다.

 

 오른쪽 시멘트길로 오른다.. 왼쪽은 하산길이다.

 

 시멘트길이 끝나면 숲으로 가는데.. 잡초가 무성한걸 보면..

금강소나무숲길 전체 7구간중에 3-1구간길의 선호도가 가장 낮은듯 하다..

 

급하지는 않은 낮으막한 고개길을 올라가면..

 

09시 46분 : 저진터재.

땅에 물기가 많아서 "저진터재" 부른다고 한다.

▲ 디딜방아 쉼터..

 

 화전민집터.

 

12시 42분 : 산행을 종료하고..

 

1만량 뷔페.

 

식사를 마치고 소광초등학교(폐교) 운동장을 바라보니..

가로등아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보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텅빈 운동장을 지키며 무얼 생각할까..

14시 00분에 대구로 출발..

2024년 08월 01일(목).

백운산 : 경남 함양군.

 

산행코스 : 원통재(빼빼재)-화과원갈림길-서래봉-백운산-백운암갈림길-용소폭포-백운암-신촌마을정류장.

산행시작 : 원통재(빼빼재)  09시 40분.

산행종료 : 신촌마을정류장 15시 40분.

전체거리 : 약11.26km.

전체시간 : 06시간 00분.

운동시간 : 05시간 40분.

휴식시간 : 00시간 20분.

 

09 : 40  원통재(빼뺴재).

10 : 21  화과원갈림길.

11 : 22  서래봉.

12 : 06  백운산.

13 : 08  백운암갈림길.

13 : 52  계곡만남.

14 : 33  용소폭포.

14 : 55  백운암.

15 : 40  신촌마을정류장.

 

 09시 40분 : 원통재(빼뺴재)는..

오랜 옛날 산아래 지소마을에 못된 지주에게 집과 토지를 강제로 빼앗기고 눈물로 고향을 등지며 넘었다는고개다.

해발 800m로 경남 함양의 백전면과 서하면의 경계이며 오른쪽의 화살표방향은 대봉산(계관봉)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백운산 들머리 이다.

 

7월장마가 끝나고.. 연이은 폭염경보와 여름휴가시즌이 겹치면서 산행 참가자가 다소 줄었지만..

화랑의 열혈 매니어분들의 산행열정에 하늘도 화답하듯이 백운이 몰려와 거대한 구름그늘을 만들어 주신다.

 

후해령 표지석..

이곳 원통재는.. 빼빼재라고도 하고.. 후해령(뒷바다재)이라고도 한다..

들머리 앞에 세워진 2005년 6월 백전면 청년회에서 설치한 후해령(後海嶺)표지석이 서있다.

그러나.. 일부 극히 산님들이.. 뒤 후(後)깊을 준(浚)으로 잘못 읽어 준해령으로 읽기도 한다.

 

지역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오래전부터 이곳을 "뒷바다재"라 불렀다는 것으로 보아 後(뒤)海(바다)嶺(재)이 맞는것 같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옛날 천지가 물바다였을 때 이곳에 배를 매고 넘었다 하여 뒷바다재라 불렀다.. 라고 한다.

 

그리고... 후해령(後海嶺)의 후(後)는

삼수(水)변의 한자부수인 "氵"가 아닌.. 두인(人)변의 한자 부수인 "彳"를 "해서체"로  쓴글자다.

 

 들머리 초입부터 가파른 계단이다...

 

 원통재에서 백운산으로 가는 능선길은.. 의외로 착하다. 오름이 지겨울정도로 길지도 않아서 적당히 올라서면..

 

능선은 어깨를 낮추어서 산꾼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준다..

 

숲이 깊어 조망은 없지만.. 간간히 요상한 버섯들이 눈요기를 제공한다..

 

이 바위가 안내도상의 선바위인가 보다... 전형적인 육산이라 방구돌 하나도 새롭다.

 

 09시 54분 : 백운산 5.5km라는 이정표가 있는 무명봉에 올라섰다가..

 

길은 다시 편안한 초록길로 이어진다.

 

 각시원추리..

"아양".. "선고".. "근심을 없애준다"라는 꽃말처럼 다소곳한 각시의 자태가 이쁘다.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며.. 해발 약 800m정도에서 자란다.

 

▲ 동물생태 감지카메라..

지리산권역이라 반달곰의 활동범위를 관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유추해 본다..

곰은 아니지만... 이쁘게 찍어달라고 렌즈앞에서 포즈한번 잡아본다.. ㅎㅎ~

 

▲ 전망바위가 있어 올라가 본다.

 

▲ 동쪽으로는 황석산과 오도산.

 

▲ 진행방향으로는 올라야할 서래봉이 우뚝하고... 그 너머로는 백운산이 흰구름에 몸을 가리고 있다.

 

10시 21분 : 화과원 갈림길...

오늘 산행코스에서 빠져 있지만.. 화과원은 백룡성 선사(1864∼1940)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

운동가이고 불교에서는 반농반선(半農半禪)의 선농불교를 주창·실천하였다. 백룡성 선사는 이곳 백운산의 8부능선에 위치

하여 외부에서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에 산림과 황무지를 개간하여 과수를 심고 화과원(華果院)이라는 농장을 설립하였다.

백룡성 선사는 이곳을 거점으로 일제의 억압을 피해 뒷산으로 넘어 다니며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전하는 곳이다.

 

▲ 화과원 갈림길에서 충분히 쉬었지만.. 돌탑봉 오름길이 만만치가 않다.. 앞서가는 회원님들의 걸음도 무거워 보인다.

 

화과원갈림길에서 쉬엄쉬엄 이정표가 있는 무명봉에 올라서면...

 

▲ 가야할 서래봉과 써레바위가 눈앞에 다가온다..

지역 주민에 의하면 서래봉은 논의 바닥을 고르는 농기계 써레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원래는 써레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 서래봉 오름길이 다소 거칠다..

 

▲ 가는장구채.

꽃말은... "동자의 웃음" 이다.

 

11시 15분 : 서래봉 정상.

 

▲ 서래봉 내림길에 바라본 백운산..

하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다고 하여 백운산(白雲山)이라고 하였다는데.. 산 이름과 제대로 부합되는 풍경이다.

저 속에서.. 세상의 시비(是非)에서 벗어나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흰구름(白雲)같이 청결하고 자유롭게 살고픈 마음이다..

그래서... 산이 그리움을 부른다... 라고 하는 것이다.

 

▲ 바위채송화 군락..

꽃말은... "가련함".. "청순함" 이다..

 

11시 25분 : 백운암 하산길 이정표..

용소를 경유하여 백운암으로 내려가려면 정상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된다.

 

 은꿩의다리.

꽃말은... "순간의 행복"이다.

 

서래봉을 지나서부터 백운산까지는.. 큰 오르내림이 없이 진행한다.

 

 골등골나물.

꽃말은... "주저".. "망설임"이다.

 

 산꼬리풀.

꽃말은... "충실".. "달성"이다.

 

나무사이로 보이는 백운산이 지척이고.. 흰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소리 없는 삶의 몸부림.. 그리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짚신나물.

꽃말은... "감사함"이다.

 

 미역취.

꽃말은... "경계".. "섬색씨".. "예방" 이다.

 

 나리꽃.

꽃말은... "희망"이다.

 

강한 바람에 부러진 나무가 길을 막고 있다...

 

12시 06분 : 백운산.

 

 12시 06분 : 백운산 옛 정상석.

 

날씨가 좋았다면.. 정상에서 조망 또한 좋아서  지리산 전체를  바라볼수있으며..

북쪽 으로 넉넉한 덕유산과 그 너머에 황석산.. 거망산.. 월봉산. 금원산 기백산도 가까이 보이고 동북 으로는가야산,

황매산도 가물거리며 건너 가까이  동쪽에 갓걸이산(계관봉)과 서쪽에 장안산을  좌우에 두고있다.

 

선두로 올라온 화랑의 준족님들이.. 메뉴도 다양한 간이식당에서 에너지를 보충하고 있다..

 

 경남 함양군 백운산(白雲山1,279m)은...

지리산 고리봉(1305m)에서 뻗어온 백두대간이 1000미터대 이하로 고도를 낮추어 수정봉, 여원재를 거치고.. 고남산,

봉화산, 월경산을 지나 함양군과 장수군 사이에서 다시 1000미터대를 넘어서는 최초의 봉우리이다.

 

 금강초롱.

꽃말은..."가련한 마음".. "각시와 신랑".. "청사초롱" 이다.

 

12시 10분 : 백두대간 북진방향인.. 영취산길 입구에서 에너지를 보충한다..

 

 마타리..

꽃말은... "미인".. "애틋한 사랑".. "무한한 사랑" 이다.

 

 애초의 하산 계획은 화살표 방향으로 중봉 하봉 상연대로 내려갈 생각이었으나.. 짝지가.. 계곡으로 가보자고 한다..

 

 올라왔던 길을 되내려 가며 바라본 황석산 방향..

 

 하산길에 숲으로 파고드는 기분좋은 햇살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언제 그랬냐는듯 활짝 열려 있다.

더운날 에어컨 밑에서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고 시원한 산들바람 맞으며 등산하는 뿌듯한 성취감에..

아직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13시 08분 : 다시 돌아온 백운암 하산길..

 

 선답자가 달아놓은 시그널을 따라가는데..

 

이 길은 주등산로와 달리 많은 산객들이 잘 다니지는 않는듯... 숲으로 덮어버려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 6월 27일의 전남 남원의 천마산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느낌이다.

 

 너덜길에서는 더더욱 길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오랜 노련함으로 차근히 보면.. 길은 보인다.

 

 습지에서 형사 콜롬보의 눈으로 선행자들의 발자욱을 찾았다..

 

계곡으로 내려가지 않고 사선으로만 길게 이어지던 하산길도 능선을 만나면서 길의 윤곽은 뚜렷해 진다.

 

 경남 소방의 현위치표시목도 만나고..

 

 하염없이 이어지던 길도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서 내려가는 급경사구간의 시작이다.

 

길게 이어지는 밧줄구간을 내려다 보면.. 경사각이 평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난 아니게 가파르다.

 

 두번째 밧줄구간도 지나고...

 

 가장 난해했던 세번째 밧줄구간을 내려 서면..

 

13시 52분 : 백운산 큰골에서 내려오는 계곡과 만난다.

 

길이라고 할수 없는 너덜겅에 빛바랜 시그널하나가 사람이 지나 갔음을 알려 준다.

 

하산길은 매우 까탈스럽지만 선답자가  걸어 놓은 화랑의 시그널 덕분에 진행은 순조롭다.

 

많은 수량이 아닌데도.. 워낙 고요한 지역이어서 그런지.. 물흐름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 시그널을... 가장 필요한 곳에 걸어 놓은 솜씨가.. 산행고수의 실력이 돋보인다...

 

 무명폭포..

 

풍덩 뛰어들고 싶다...

 

 용소폭포가 가까워지는지... 물길도 순해지고.. 길다운 길이 보인다.

 

오래되어 망가진 이정표...

전시행정의 표본이다.. 설치할때만 행정실적 사진 남긴다고 떠들썩 하고는 나 몰라다.

 

14시 32분 : 화과원 가는길..

 

14시 33분 : 용소폭포.. 3단 폭포다. 내려가는 길이 없다.

 

 상단폭포..

 

 2단폭포..

 

 3단폭포..

 

 용소폭포에서 백운암까지는 고속도로다.

 

 백운암.

 

 영은사지 부도탑.

 

백운암 입구에 영은사의 옛터가 있고 석장승이 있다.

석장승은 사찰을 수호하고 풍수지리적으로 국가의 번영과 임금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복합적인 기능과 더불이 민간신앙

의 기원대상물이었던 유물의 일종이다. 이 석장승들은 그곳에서 옛 절터를 지키고 있다.

 

우호대장군(右護大將軍)은 높이 280cm, 좌호대장군(左護大將軍)은 높이 270cm이다. 좌호대장군 오른쪽 아랫 부분에

건륭삼십년을유윤이월 일(乾隆三十年乙酉閏二月日)이라는 명문이 있어 영조 41년(1765)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또 돌을 좌호대장군 머리에 던져 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해서 인근 아낙들이 찾아와 돌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경남 민속자료 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좌호대장군(左護大將軍)..

 

칡꽃..

꽃말은..."사랑의 한숨" 이다.

 

백운산에서 하봉쪽으로 내려와 상연대를 보고 하산 했어야 되는데.. 못 내려온 아쉬움에 다음을 기약한다.

 

상연대 가는길..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 소속 사찰이다.

통일신라 시대 말기인 924년(경애왕 1)에 고운 최치원의 어머니가 경치 좋은 곳에서 노인성(老人星)을 보고 싶다는 어머님

소원을 이뤄드리기 위해 기도처로 건립한 곳으로 전한다...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던 중에 홀연히 관음보살이 나타나

상연(上蓮)이라 불러서 이곳을 "상연대(上蓮臺)"라 이름짓게 되었다고 한다.

창건 이래로 통일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선문(實相禪門)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발전하였다.

역대로 수많은 고승 대덕이 찾아와 머물면서 수도정진, 수도도량으로 이름을 높여 왔다.

절이름이 사(寺)나 암(庵)이 아니고 대(臺)라고 하는 이유는 절벽에 절이 서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백운교 삼거리.. 무슨공사인지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대방마을이고.. 화랑의 애마는 좌측의 신촌마을에 있다.

 

 백운교건너 멀리에 화랑의 애마가 보인다...

 

백운교위에서 바라본 백운계곡..

 

15시 40분 : 신촌마을정류장 산행종료.

 

사위질빵..

꽃말은..  "비웃음" 이다.

 

예전에는 가을 수확철이 되면 사위가 처갓집으로 가서 가을걷이를 도와주는 풍습이 있었다.

사위를 아끼던 장인 장모가 오랜만에 처갓집에 온 사위가 고생하는 것을 안타까워 볏짐을 조금씩 지게 하였는데 이를 본

다른 농부들이 질빵풀 덩굴로 질빵끈을 만들어도 끊어지지 않겠다고 놀렸다...(질빵 덩굴은 쉽게 끊어지는 성질이 있다.)

놀림이 창피했던 사위는 꾀를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질빵풀이 사위질빵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진다.

 

16시 43분 : 순두부집.. 언젠가 와본곳 같다.

 

 원더풀 산대장님의 건배...

오늘도 산행대장 재능기부 하신다고 수고 많았습니다.

 

 이어서...

산행을 거듭할수록 숨은 매력을 발산하는 덕장회장님의 건배..

 

8월의 흰구름산 좋았구요.

9월의 지리산.. 거림에서 세석평전~의신마을까지..

음양샘에서 보약생수 마시러 갑니다.

2024년 07월 14일(일).

대원사계곡길 : 경남 산청군.

 

산행코스 : 대원사주차장-대원교-대원사-대원사주차장.

산행시작 : 대원사주차장 11시 02분.

산행종료 : 대원사주차장 12시 20분.

전체거리 : 약 2.4km.

전체시간 : 의미없음.

운동시간 : 의미없음.

휴식시간 : 의미없음.

 

 11시 02분 : 대원사계곡주차장..

해마다 여름철 장마때가 되면.. 각 산악회마다 안전한 산행지를 선정 하기가 쉽지 않다..

강수량이 적고 비가 오락가락 소강상태로 우산을 쓰고라도 걸을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금상첨화다.

오늘의 일기 예보와 이곳 경남 산청군 지리산 대원사계곡 길이 이러한 조건에 부합되는 곳이다.

그래서 인지.. 지난주의 충북 괴산 산막이 옛길처럼 많은 차량들이 몰려와 주차장이 만차 직전이다.

 

주차장 안쪽에 지리산 곰돌이가 안내하는 곳에서..

 

자연과 시간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대문을 지나가면..

 

소막골야영장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소막골야영장 출렁다리는 야영장 예약자 외에는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버티고 섰다.

 

 소막골은..

가야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신라군에게 쫓겨 대원사 계곡까지 왔다가 말과 소에게 먹이를 주며 피난하였던 곳이다.

 

 대원사계곡길은..

2018년에 개통되었으며 삼장면 평촌리 주차장에서 대원사를 거쳐 유평마을 ‘가랑잎 초등학교’(폐교)까지 이어진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최고의 비경 중 하나인 대원사계곡을 비롯해 자연과 생태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조성한 생태탐방로다.

 

한 여름 더위를 식혀줄 청량한 여행지를 찾는다면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가 좋은 대원사 계곡길이 으뜸이다.

 

흐르는 계곡물에 마음을 씻는다는 기분의 시간 속으로 한 발 걸어 들어가면 점점.. 계곡의 품 안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대원사계곡도 1998년 7월 31일 시간당 80㎜의 폭우가 쏟아져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야영객 22명이

휩쓸려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였다. 지금처럼 안전한 데크라던가 아스팔트포장도로가 아닌 계곡옆 흙길로 차량한대가 겨우

지나가는 길에 공터가 있으면 캠핑을 하는 그런 시기였다.

 

 계곡에서 벗어나 도로와 만나고..

 

운해가 흐르는 지리의 깊은 계곡이 신비로움을 자아 낸다.

 

대원사 계곡은 덕천강이라는 이름을 가진 계곡이다.

지리산 국립공원 동부의 관문으로 천왕봉에서 발원한 천왕샘과 산희샘 물줄기는 덕천강물이 되어 진양호 합류한다.

 

맹세이골 입구..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옛날에 호랑이와 무서운 맹수들이 살았다고해서 맹세이골이라고 하는데.. 자연관찰로가 조성되어 있다.

 

대원교를 건너고..

 

대원사 일주문.. 현판에는 방장산 대원사라 되어 있다.

방장산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중에 하나다. 한국에서도 삼신산을 모방하여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불렀다. 방장산은 산이 넓고 커서 백성을 감싸준다.. 라는 뜻이다.

 

 대원사 계곡이 지금은 사시사철 특히 휴가철인 여름과 오색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에 전국에서 많은 탐방객이 찾는 명소

로 탈바꿈되어 있지만... 대원사 인근은 오래전부터 세상이 혼란해지면 찾는 은신처로 유명하다. 깊은 골짜기에 위치해 

사람들의 왕래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에 실패한 교도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며 들어와 대원사 인근

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일제강점기에도 수많은 애국지사가 숨어들었다. 6·25전쟁 때는 낮에는 국군이, 밤이 되면

빨치산이 준동하는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다. 지리산의 마지막 빨치산인 정순덕이 잡힌 곳도 이곳 인근이다.

 

대원사 봉상루.

 

대원사 대웅전..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말사인 대원사는

548년(진흥왕9)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평원사(平原寺)라 하였다. 1685년(숙종11) 페사된 옛 터에 운권스님이 절을 짓고

대원암(大源庵)이라고 하였으며, 1890년(고종27) 구봉스님이 낡은 건물을 중건하고 현재 대원사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여순사건(1948년) 당시 빨치산의 웅거를 우려한 진압군에 의해 다층석탑(보물 제1112호)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

되고, 1955년부터 만허당 법일스님이 35년간 중창하여 대표 비구니 선원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원사탬플스테이 건물 뒤편 능선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성철스님의 참선대를 만나는데 못가보아서 아쉽다.

 

 대원사 월정문을 올라가면..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1112호).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높이 5.5M의 탑이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다가 조선 정조 8년(1784년)에 다시 세웠다. 1989년에 해체하여 복원하는 과정에서 58과의 사리를

넣은 보관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탑은 돌이 철분을 많이 함유한 탓으로 붉은 물이 스며 나와 붉은색으로 보인다.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1112호).

하단 4면에는 사천왕(동서남북 사방을 보호하고 불교와 부처님  말씀을 수호하는 네 명의 신)상이 새겨져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탑에서 서광이 비치고 향기가 경내에 가득했다고 한다.

마음이 맑은 사람은 근처 연못에 비친 탑 그림자로 탑 안의 사리를 볼 수 있었다고도 전한다.

 

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천왕봉의 힘찬 기운이 제대로 전해진다.

 

12시 20분 : 대원사계곡 간단 트레킹을 마치고..

 

13시 05분 : 경남 산청군 시천면. 뒤풀이 장소 도착.. 작년에도 왔던 곳이다.

 

정갈한 텃밭에는 앙징스런 사과수박이 매달려 있다.

 

상추밭을 지나면..

 

작년 8월에 물놀이를 햐였던 곳이다.

 

2023년 8월 13일의 그날을 소환해 본다.

 

뒷풀이행사용 숯불 화덕의 불꽃도 달아 올랐고..

 

회장님은 두분의 베테랑급 일손 도우미들과 양념용 양파와 마늘 까기..

 

▲ 직전 회장님은 상추씻기로 솔선수범하고..

 

▲ 총무님은.. 한석봉 어머니의 떡썰기에 버금가는 고기썰기의 달인이다.

 

▲ 직전 회장님의 일가 동생분의 고기굽기는 보통실력이 아니다..

 

▲ 고기를 다루는 솜씨가.. 마치 선계의 백학이 한점고기를 희롱하듯.. 현란한 손놀림이다.

 

▲ 술과 안주로 무르익은 분위기는 풍악으로 바뀐다. 슬그머니 동네한바퀴 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경남 하동의 비룡산에서 떨어지는 무명폭포다..

 

 설렁설렁 걷다보니.. 마을이 보이는곳까지 왔다.. 여기서 돌아간다.

 

 지리산둘레길 9코스에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팀들이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올라온다, 파이팅~~

 

다시 돌아오니 풍악은 멈추고.. 막창타임이다.

 

 운거운래 산부쟁..

조선초 학자인 매월당 김시습이 쓴 사청사우(乍晴乍雨 : 개이다 비오다 하다)라는 시의 한구절이다.

 

화개하사춘하관(花門花謝春何管)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다스릴꼬..


운거운래산부쟁(雲去雲來山不爭)
구름이 가고 구름이 오되.. 산은 다투지 않음이라..


기어세인수기인(寄語世人須記認)
세상 사람들에게 말 하노니.. 반드시 기억해 알아 두라..


취환무처득평생(取歡無處得平生)
기쁨을 취하려 한들.. 어디에서 평생 즐거움을 얻을 것인가..

 

뒷풀이를 파하고 나서려는데..

마당에.. 신기하게도.. 때 늦은 목련이 자목련 꽃송이를 피워 내고 있다.

 

회원 한분이 건배사를 하며 이런 말을 했다..

푸를 청(靑).. 봉우리 봉(峰).. 청봉산악회의 기상이 너무 좋아 보인다..라고..

 

청봉산악회 큰 봉우리에 많은 회원님들이.. 오고.. 또 가도 시시비비가 없고..

오로지.. 기쁨과 즐거움을 찾을 뿐이다.

 

오늘도..

대접.. 잘~ 받고 갑니다.

2024년 07월 07일(일).

산막이옛길 : 충북 괴산군.

 

산행코스 : 산막이옛길주차장-출렁다리-호랑이굴-쉼터전망대-앉은뱅이약수-선착장-산막이옛길주차장.

산행시작 : 산막이옛길주차장 11시 21분.

산행종료 : 산막이옛길주차장 13시 45분.

전체거리 : 약 5km.

전체시간 : 의미없음.

운동시간 : 의미없음.

휴식시간 : 의미없음 .

 

▲ 11시 13분 : 충북 괴산군 칠성면 수전교위에서 바라본 괴산댐.

괴산군 칠보산으로 가려던 계획이었으나.. 잠시 교착상태를 보이던 장마전선이 북상을 하면서 중부지방은 완전 장대비가

쏟아진다.. 우중산행은 무리라는 판단하에.. 회장단에서 발빠른 대응으로 산막이옛길로 변경하여.. 가는길에 괴산댐에서

흘러나온 달천이 범람할 정도로 물이 불어나 있다.

 

▲ 11시 21분 : 충북 괴산군 산막이 주차장.

헐!~~.. 이럴수가.. 서울..경기.. 강원.. 전북.. 전남.. 광주.. 경남.. 부산.. 경북.. 대구.. 전국의 산악회들이 다 모였다..

아래위 주차장을 얼핏 살펴보아도 약 40여대는 넘는다... 줄잡아 40대 X 40명 = 1600명.. 일반차량들까지 합치면 대충 2000명이 산막이옛길에 모인 셈이다..

 

▲ 집행부에서 하산식 장소로 오후 2시에 사전예약을 하였다는 식당앞을 지나가는데.. 다행히 빗줄기는 소강상태를 보이며

잦아든다.. 우산을 쓰고.. 산막이길을 걸어도 될것 같아서 갈데까지 가보자며 길을 나선다.

 

▲ 수많은 인파로 카메라를 들이댈수 없을 정도이지만.. 사람들의 무리와 무리사이의 틈새에서 한컷씩 담아 본다.

 

▲ 산막이옛길은..

2014년 5월 4일에 다녀 갔으니... 딱 10년만에 다시 온 것이다..

 

▲ 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이어지는 ‘산막이옛길’이며.. 괴산군에서 13억을

들여서 2009년에 4km 길이의 산책길을 조성 하였다. "산막이" 라는 말은 "산의 마지막"으로 "산으로 가로막혔다" 라는 뜻

이며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 갔던 피란민들이 산에 막혀 더이상 가지 못하고 머물렀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 가판대 거리... 10년전의 그모습 그대로다.

 

▲ 10년전에는 없었던 시설물도 있고..

 

▲ 산막이옛길 안내도를 보며... 하산식 식당도착이 14시까지이니 주어진 시간은 약 3시간이다.. 가는데 까지 가보자..

 

▲ 등잔봉과.. 천장봉이 안보고 갈거냐며 물어 본다.

 

등잔봉의 유래는

옛날 한양으로 과거보러간 아들의 장원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렸다는데서 유래하였으며.. 

지금도 그 효험이 있다고 여겨서 알음알음 자식들을 위해 정성을 드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천장봉은..

하늘아래 펼쳐진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하늘도 감탄하여 숨겨놓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 고인돌쉼터의 남근석..

남근석은 농경사회에서의 일손을 얻기위한 남아선호로 다산(多産)을 상징하던 남근석을 마을 마다 세워 놓았다..

 

▲ 괴산댐.

간밤에 비가 많이도 내린 모양이다.. 온통 누런 황토물이다. 현재 수위조절로 물이 빠진 상태다.

괴산댐은 유역면적에 비해 저수용량이 턱없이 부족해 집중호우에 아주 취약하다. 장마철만 되면 침수 피해가 발생하기

일쑤다. 2023년 지난해 7월 집중호우 때는 물이 댐 위로 넘치는 월류가 발생, 주민 수천 명이 긴급 대피하고 수백억의 재산

피해를 내기도 했다. 댐 수위 저하로 괴산호 유람선 운행이 제한되면.. 산막이옛길 상권 주민들이 생계에 타격을 입게 되고.

그러면서 침수 피해를 겪은 아래마을 주민들은 수위 저하를 반기는 편이다.. 이래저래 주민들은 불만을 갖고 있으며

괴산댐 수위 문제는 “동전의 양면같은 상황”이라고 한다.

 

▲ 한폭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다.

괴산댐 건너 비학산 능선 자락에 백운이 걸렸다..

 

백운은 산을 마다하지 않고

산꾼이 어찌.. 비를 마다 하랴~~

 

▲ 등잔봉 들머리..

 

▲ 호랑이 굴.

바닥은 부더러운 흙이고, 천정은 자연암석으로 되어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1968년까지 실제로

호랑이(표범)가 드나들며 살았던 굴이라고 한다.

 

▲ 매바위.

금방이라도 날아 오를것 같은 매의 형상바위다.

 

▲ 여우비 바위굴.

산막이 마을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여우비를 만나면 굴속에서 쉬어 갔다고 한다.

 

▲ "스핑크스" 바위라고 하는데.. 암만 봐도 글쎄올씨다~..이다.

 

▲ 앉은뱅이 약수터.

옹달샘이 있었는데 길을 가던 앉은뱅이가 물을 마시고 효험을 얻고 걸어 갔다는 전설이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 가는데 까지 가보자...

 

▲ 괴산호 수력발전댐..

괴산댐 건설 공사 계획이 수립된 것은 1951년. 6·25 전쟁 과정에서 전력설비가 파괴돼 전력 사정이 최악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발전소 건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먹고살기조차 힘든 시절, 당시로선 초대형 토목공사였던 댐 건설이 쉽지는 않았다. 설계를 마친 후 1952년 11월

공사가 시작됐지만 화폐 개혁, 예산 부족, 시멘트 부족, 물가 급등 등의 이유로 공사가 3번이나 중단됐다.

 

1957년 4월 댐 준공식은 이승만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와서 행사를 참관했을 정도로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지금 현재도 연간 1,083㎾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 오늘의 트레킹은 여기까지다...

 

▲ 역광이어도 좋다..

 

▲ 비록 그림은 어둡지만..

운치 가득한 괴산호에서 함께하는 마음은 너무나 밝고 멋지다.

 

▲ 오늘도 한번 써먹어야 겠다..

식객 허영만님.. 이런 기똥찬 맛은 못드셔 보았을 겁니다.. ㅎㅎ~

 

▲ 오늘 최고의 포토상입니다.

 

▲ 이런 모습이 솔잎속의 멤버쉽입니다.

 

▲ 망세루 가는길의 부엉이..

 

▲ 망세루(忘世樓)에서 바라본 괴산호수력발전댐.

세상의 모든 시름이 잊혀지고 자연과 함께 평안함을 느끼는 곳이다.

 

▲ 망세루(忘世樓)에서 바라본 군자산 방향.

세상시름 다 잊는곳이라니.. 풍광 역시 정말 아름답다.

 

▲ 망세루(忘世樓)를 나오며 부엉이 엉덩이도 쳐다 보고..

 

▲ 연화담..

과거에는 벼농사를 짓던 논이었는데.. 연못을 만들어 연꽃을 피게 하였다.

 

▲ 다시 돌아온 등잔봉 입구.. 한바퀴 돌아오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 기묘한 소나무... 나.. 이렇게 산다우..

 

▲ 회장님의 건배..

집행부의 발빠른 대응으로 솔잎의 하루는 또다른 행복으로 기억 되어 질 것이다.

 

▲ 귀가길에.. 문경휴게소에서..

 

▲ 쐬주 한잔에 문어한점.. 쩌~업..

술을 금하라는 의사의 절대적인 엄명을 기억하며.. 슬며시 자리를 뜬다.~

 

▲ 문경휴게소에서 바라 본 오정산..

 

회원님들은 쐬주 한잔으로 기분내고..

나는 오정산의 토끼비리암릉길과 태극길의 추억속에서 기분을 낸다..

2024년 07월 04일(목).

칼봉산 : 경기도 가평군.

 

산행코스 : 칼봉산자연휴양림입구-경반분교캠핑장-경반사-회목고개-칼봉산-890봉-내곡분교터-용추계곡-용추종점.

산행시작 : 칼봉산자연휴양림입구 11시 13분.

산행종료 : 용추버스종점정류장 17시 40분.

전체거리 : 약13.56km.

전체시간 : 06시간 26분.

운동시간 : 05시간 47분.

휴식시간 : 00시간 39분.

 

11 : 13  칼봉산자연휴양림입구.

11 : 57 경반분교(폐교).

12 : 19  경반사.

13 : 21  회목고개.

14 : 22  칼봉산.

15 : 01  890봉.

16 : 09  내곡분교터.

17 : 40  용추버스종점정류장.

 

▲ 09시 52분 : 경기도 양평 남한강휴게소의 용문산 이미지분수대.

대구화랑산악회에서 오늘의 산행지로 찜해 놓은 경기도 가평의 칼봉산으로 가기위해 대구반월당을 06시 25분에 출발하여

숨가쁘게 달려온 화랑의 애마는 잠시 남한강휴게소에 들러 숨고르기를 한다.. 이곳의 하늘도 잔뜩 낮게 내려 와 있다.

 

 11시 13분 : 경기도 가평군 칼봉산자연휴양림 입구 도착.

 

▲ 관리실입구에서 정면으로는 휴양림으로 가는 길이고..

 

▲ 경반계곡들머리는 입구 좌측의 계곡으로 내려 간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1차.

휴양림에서 경반사까지 예닐곱번의 계류를 건너야 되기에 "수륙양용형 전천후 신발" 이 필요하다..

모두들 나름의 방법으로 건너 가고.. 나는.. 준비해간 나이키 샌들로 갈아 신기로 한다.

 

▲ 경반천을 건너가면 좌측으로... 백학동 한석봉 마을이리는 표시석과 백학서당이라는 비석이 보인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가인 한석봉이 초대 가평군수로 부임한 인연으로 가평의 여러곳에 그의 업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 마을표시석을 지나면 왼쪽으로 펜션과 민박, 식당이 들어서 있는 "백학동 한석봉마을"이 있다.

NGO는...정부와는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조직된 비영리단체다.

재활사업장으로... 코로나 이전에는 활성화 되었던 경반계곡에서 매점 운영을 하였던 모양이다.

 

▲ 어릴때 배웠던 명필가 한석봉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나는 떡을 썰테니 너는 글씨를 쓰거라~"의 주인공인 한석봉(韓石峯)선생은 조선의 서예가이다. 

본명은 한호(韓濩)지만 호인 석봉이 더 유명한 탓에 현대에는 한석봉이라고 불린다.

본관은 청주, 자는 경홍(景洪). 호는 석봉(石峯).. 청사(淸沙)이다. 조선 서예계에서 추사 김정희와 함께 유명한 서예가다.

 

▲ 한석봉어머니의 떡집도 보이고...

 

차가 다니는지.. 제법 넓은 흙길을 산책하듯 따라가다 보면..

 

▲ 좌측으로는 경반천이 시원한 굉음을 울리며 흐르고..

 

▲ 뜬금없이 김삿갓선생이.. 세상편한 얼굴로 한마디 하신다..

"이 보시게.. 무에그리 바쁘신가.. 무더위에 쉬엄쉬엄 가시게나"~ 하신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2차.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물이.. 워낙 맑아 잠시 발을 담그고 쉬어가면 좋으련만.. 갈길이 바쁘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3차.

 

▲ 경반계곡(境盤溪谷)은

매봉과 깃대봉 칼봉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수락폭포를 만들고 경반리를 지나.. 보납산 부근에서 가평천과 합류 한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4차.

 

▲ 길위에까지도 넘치는 물을 밟으며...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5차에서.

수륙양용형 샌들을 신고... 보무도 당당히 조여사님을 추월 한다..ㅎㅎ~~..

 

11시 57분 : 경반분교(폐교)는...

캠핑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전기와 수도시설이 없는 "오지 캠핑장"으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곳이다.

 

▲ 경반분교터의 텅빈 운동장..

경반분교에 80여 명의 학생이 다닐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사람이 떠나갔다. 사람이 떠난 자리엔 잣나무가

심어졌다. 마을은 점점 작아졌고 아이들도 사라져 1982년에는 학생이 3명뿐이었다. 그렇게 경반분교는 폐교되었다.

 

카페로 변한 경반분교..

경반분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캠핑붐"과 TV프로그램 덕택이다.

경반분교에서 하룻밤을 지낸 캠퍼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나고

2009년 경반분교에서 촬영한 "1박2일"이 방영된 뒤 명소가 되었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6차.

 

▲ 경반마을..

이곳은 원래 화전민 마을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학교 인근에 100여 가구가 살았다.

1980년대 초 지금의 주인 박모씨가 폐교된 경반분교를 매입했다고 한다.

 

▲ 코로나 이전에 한때나마 호황을 누렸을 기자재들이 보인다...

 

▲ 각 지역의 산악회 시그널 걸이대도 보이고..

 

▲ 첩첩산중 오지의 마을분위기가 "수호지의 양산박"으로 들어가는 분위기다...

 

▲ 오미자..

 

12시 03분 : 경반마을 쉼터에서..

경반천 건너기는 끝났으리라는 생각으로.. 샌들을 벗고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등산화로 갈아 신는다.

 

▲ 경반마을을 지나고.. 바리케이드가 쳐진 산불대비용 임도갈림길을 지난다.

 

▲ 깊고 깊은 경반 계곡..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는 말이 있다.

가평은 예부터 "경기도 속의 강원도"라 불렸을 정도로 높고 깊은 산이 많다. 여름철에 더위를 식히기 좋은 계곡도 무척

많은데, 그중 하나가 칼봉산(899m)과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경반계곡이라고 할수 있다.

 

▲ 경반계곡(境盤溪谷) 건너기 7차.

 

▲ 경반폭포.. 또는 용궁폭포.

 

▲ "경반(鏡磐)"이란..

‘맑은 물이 너른 반석 위로 거울처럼 비추며 흐른다..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거울처럼 맑은 계곡물에 얼굴을

비추며 몸치장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계곡의 작은 마을은 "경반리"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2시 17분 : 경반사.

 

▲ 여기서 잠깐 생각을 정리한다.. 회목고개 4.2km는 임도로 가는 길이다.

첫째 생각... 수락폭포를 보고 여기까지 돌아 와서 회목고개로 직진하느냐?...

둘째 생각... 수락폭포를 경유하지 않고 4.2km의 임도를 따라서 회목고개로 가느냐?..

셋째 생각... 수락폭포를 포기하고 여기서 회목고개로 직진하느냐?..

 

결론은 셋째 안으로 결정하고 여기서 회목고개로 직진한다.

 

▲ 경반사 대웅전 앞을 지나서...

 

▲ 산신각이라는 명패가 보이는... 조립식 판넬건물 뒤로 올라간다.

 

▲ 오름길 처음에는 험상궂은 바윗길 같지만... 바위들이 서로서로 발디딤이 좋은 길을 양보하며 내어 준다.

 

▲ 오름길은 가파르지도 않고 쉬엄쉬엄 오른만큼 고도가 높아지는 착한길이다...

 

▲ 회목고개 800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뼈대는 멀쩡한데 아랫도리는 부실했던지 힘에 부친듯 누워 있다..

 

▲ 회목고개 400m 전.. 약 2.4km를 앞질러온 셈이다.

 

▲ 임도를 가로지르면 회목고개로 가는 길의 흔적이 뚜렷하다.

 

▲ 편안한 숲길에서.. "나 회목고개 등산로요" 라고 하며.. 이름표를 들이댄다.

 

▲ 북한에서 보내온 풍선의 물건은 분명 아닌것 같고.. 소형 궤도차가 잠자고 있다.

 

▲ 멧돼지 차단용 철문... 아프리카 돼지열병 방지를 위해 설치한 멧돼지출몰 차단용이다.

등산객들이 자유롭게 여닫을수 있으며... 마지막 사람이 잘 닫아두어야 한다.

 

▲ 회목고개 20m 전...

 

▲ 바닥에 자동차바퀴자국이 있는걸 보니.. 가까운 시간에 차량이 지난간듯 하다.

 

13시 21분 : 회목고개..

 

▲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시간에 속을 달래줄 장소를 찾는데.. 차량 한대가 내려온다..

 

▲ 매봉에서 연인산으로 갈수 있는 능선길이다.

 

▲ 칼봉산으로 가는 철문..

역시나 돼지열병방지 철문을 열고 간다.

 

▲ "덕다리버섯" 같기도 하고..

 

14시 22분 : 칼봉산.. 조망이 전혀 없다.

칼봉산은.. 가평읍 승안리와 경반리의 경계에 솟은 연인산 줄기로 주능선은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암릉으로 이루어져

칼봉은 본래 "칼봉산"으로 불렸으나 1999년 3월 가평군 지명위원회에서 가평군을 찾는 등산인 및 관광객 등에게 좀 더

정확한 관광 안내도 제공 및 관내 명산을 알리는 취지로 이름을 변경했다. 우목봉을 "연인산". 전패봉을 "우정봉".

전패고개를 "우정고개". 구나무산을 '‘노적봉" 등으로 하고... 칼봉산도 "산" 자를 뺀 '칼봉'’으로 했다.

그러나... 정상석도 카카오맵이나.. 네이버 지도에는 바뀐곳이 한곳도 없다.

 

▲ 언제나처럼 짝지부터 담아주고 나서..

 

▲ 회목고개에서부터 함께 하게 된 화랑의 꽃님들도 담아본다. 언제나 산 열정이 대단하신 분들이다.

 

▲ 오늘 공석중인 산대장님의 빈자리를 최선으로 채워주시는 원더풀님..

 

▲ 늘~~... 맛깔스런 댓글로 응원해 주시는 육구당님..

 

▲ 기어히 같이 찍자는 회원님.. 감사합니다...

 

▲ 나도 인증샷하나 남기고..

 

▲ 오늘 칼봉정상에서 화랑의 인연님들속에 나도 인연이 된다..

 

▲ 정상석 뒤에 숨어 있는.. 옛 정상석.. 정상석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우리나라 산의.. 정상석은 크고 삐까뻔쩍이어야 된다.. 왜?.. 그럴까..

 

▲ 하산은.. 용추버스종점 방향으로..

 

▲ 15시 01분 : 890봉.. 용추계곡의 내곡분교로 내려 가는 분기점이다.

 

▲ 여기서.. 내곡분교(폐교)내림길은 이름도 알수없는 킬봉이 2.3km를 가르키고 있다.

 

▲ 890봉에서.. 내곡분교(폐교)내림길은 산객의 흔적이 비교적 적은 곳이다.

 

▲ 내곡분교(폐교)내려가는 능선길은 선두팀이 달아 놓은 시그널을 따라서  가는데 별다른 위험 구간은 없고..

가파른 낙엽구간에서는 엉덩이 도장을 조심하며 천천히 내려 가면 안전하게.. 내려갈수 있는 길이다..

 

계곡의 물흐름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걸보니.. 용추계곡에 근접하였는가 보다..

숲속에 용도를 알수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보인다. 귀곡산장은 아닐터이고..

 

16시 08분 : 용추계곡 연인산 가는길과 접속.. 890봉 분기점에서 1시간 7분이 소요 되었다.

 

▲ 내곡분교(폐교) 운동장..

 

 

▲ 연리목.. 뿌리가 다른 나무의 줄기가 이어져 한나무로 자라는 현상이라고 설명은 잘해 놓았는데..

억지춘향의 연리목이다... 이것은 두 나무가 가까이에서 자라다보니 몸집이 커지면서 서로 닿아 있을 뿐이다.

 

16시 11분 : 용추계곡 징검다리. 이제부터가 문제다..

용추버스종점정류장까지 4.7km다.. 주어진 하산시간은 오후5시까지다. 50분만에 주파할수 있을지.. 땀도 씻어야 하는데..

 

▲ 징검다리를 건너와서 뒤돌아보니.. 용추계곡에는 11개의 징검다리가 있는모양이다.. 그 중에 다섯번째라고..

 

▲ 위도.. 옆도 돌아볼 시간도 없다.. 내몸을 정류장까지 옮겨 놓으려면.. 오로지 걷는길 밖에 없다..

 

▲ 두번째 만나는 징검다리...

 

▲ 용추계곡(龍墜溪谷)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승안리 칼봉산(900m)에서 발원하여 옥녀봉을 감싸듯이 흐르는 계곡이다.

24㎞에 걸쳐 와룡추..무송암..고실탄..일사대..추월담..권유연..농완계 등 9개의 절경지가 있어 옥계9곡 또는 용추9곡이라고

도 한다. 용추구곡은 제1곡인 와룡추(용추폭포)부터, 작은 수영장 같은 제2곡인 무송암, 여울과 같은 물결이 소리내어

흐르는 제3곡 탁영뢰와 제4곡 고슬탄, 깊이감과 서늘함을 주는 제5곡 일사대, 잠잠한 웅덩이에 비치는 달빛을 감상하는

제6곡 추월담, 푸르고 붉은 빛을 내는 단풍나무 계곡인 제7곡 청풍협을 지나 깊은 연못에 엎드린 거북이의 형상을 하는

제8곡 귀유연, 마지막 제9곡인 한적한 농원계에서 마무리된다.

 

▲ 가을이면.. 용추계곡(龍墜溪谷)암벽의 돌단풍이 노랗게 물들면 너무나 아름다울것 같다.

 

15시 15분 : 출렁다리..

 

▲ 용추계곡 제9곡 농원계..

희롱할 농.. 물흐를 원.. 계곡의 흐르는 물이 마치 기암괴석을 희롱하는것 같다..라는 표현이다.

 

용추계곡 제8곡 귀유연..

그대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다..

 

▲ 들어가는 순간... 내가 거북이가 되어 차갑게 굳어 버릴것 만 같다.

 

 

▲ 용추계곡 제7곡.. 청풍협의 포토존(photo zone)..

 

 

▲ 용추계곡 세번째 징검다리..

 

▲ 용추버스종점까지 2.9km.. 이정표를 보니 마음은 더 바빠 진다.

 

 

▲ 용추계곡 자연이 그린 그림..

 

 

▲ 고슬탄을 지나서.. 큰 바위가 막아주는.. 나만의 멋진 자리를 만났다.. 높은 습도에 흠뻑 젖은 땀을 씻어 낸다.

 

▲ 용추계곡 제3곡.. 탁영뢰 .. 중국의 형이.. 동생의 조선을 귀경 왔다는 이바구다..

여기에도 사대주의 냄새가 난다.. 그래도 조선의 단군부인 용녀에게 혼쭐이 났다니 쬐매 낫네~. ㅎㅎ~.

 

▲ 용추계곡의 재난대비 마이크를 보니 혀 짧은 동네 이장님의 "동민 여러분!~" 이라는 개그가 생각난다.. ㅎㅎ~..

 

17시 35분용추버스종점까지 0.3km.. 8분거리다.. 용추계곡 길이.. 경기 둘레길과도 연계가 되는 모양이다.

 

▲ 이제..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종점 정류장이다.

 

▲ 기가막힌 타이밍이다.. 용추버스종점 정류장에 들어서니 화랑의 애마가.. 막 올라오고 있다.

 

▲ 17시 40분 : 용추버스종점.. 산행종료.

 

▲ 전체거리 13.56km를.. 시간당 2.3km/h의 양호한 걸음이다.

 

▲ 18시 02분삽다리 수자네로..

 

▲ 양푼이생고기 김치찌개..

 

▲ 밋깔스런 개그도 섞어가며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는 덕장회장님의 건배로 하루의 피로가 가신다..

 

▲ 19시 36분 : 남한강 양평대교위에서..

 

칼봉산 능선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흐르는 경반계곡과 용추계곡은

몽유도원(夢遊桃源)의 길이었고 선계(仙界)같은 풍광은 선택받은 선물이였다.

 

장마도 잠시 틈새를 내어준 덕분에 먼길에도 복받은 산행길이 되었고

돌아갈때에는 잘 다녀 가라며 남한강 저편으로 내려 앉는 노을이 너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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