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7일(일).

변산반도국립공원 : 전북 부안군.

 

산행코스 : 남여치-월명암-봉래곡삼거리-직소보전망대-직소폭포-관음봉삼거리-관음봉-내소사-내소사주차장.

산행시작 : 남여치  10시 23분.

산행종료 : 내소사주차장  15시 19분.

전체거리 : 약12.9km.

전체시간 : 04시간 58분.

운동시간 : 04시간 49분.

휴식시간 : 00시간 9분.

 

10 : 23  남여치.

11 : 14  월명암.

12 : 00  봉래곡삼거리.

12 : 03  직소보전망대.

12 : 10  선녀탕.

12 : 17  분옥담.

12 : 21  직소폭포.

12 : 50  재맥이고개.

13 : 18  관음봉삼거리.

13 : 38  관음봉.

13 : 44  세봉전망대.

14 : 05  관음봉전망대.

14 : 23  관음봉삼거리.

14 : 59  내소사.

15 : 19  내소사주차장.

 

 10시 21분 : 남여치(藍輿峙)에 있는 월명암 표지석에 도착.

남여(藍輿)는.. 지붕없는 가마를 뜻하며 여기에 고개치(峙)를 합성한 고개이름이다.

입에 올리기도 거북한 구한말 내각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이 전라북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여를 타고 낙조대에서 서해

낙조를 보고 쌍선봉에 올랐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유래를 알고 나니 기분이 씁쓰레하다..

 

아래 윗길.. 둘다 주차장으로 가는길인데.. 쌍선봉(월명암)들머리는 아래길로 간다.

 

월명암 1.9km이정표를 따라 길을 건너면..

 

삼나무숲 운동기구가 있는 곳이 들머리다.

 

쌍선봉(월명암)들머리..

 

 처음부터 고개를 치켜든 능선길이 급경사길은 아니지만..

 

지붕 없는 남여를 메고 올라야했던 가마꾼들에게는 생고생을 하기에 충분한 경사다.

 

 잠시 착한듯 하더니..

 

금새.. 거친 바위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고..

 

갓 떨어진 낙엽은 수액이 남아있어서 잘못 밟으면 미끄럽다.. 특히 하산길에 조심하여야 한다.

 

 쌍선봉은 출입금지다.. 조망이 아주 좋다는 쌍선봉이라길래 날씨만 좋았다면.. 금줄울 넘었을텐데.. 오늘은 구름이다.

 

 월명암 500m 남은 지점..

 

 여기서부터 월명암경내인가 보다..

 

 쌍선봉에서 내려오는 주능선이 보이고..

 

 쌍선봉 출입금지.. 특별단속이란다.. 변산반도국립공원에서 의상봉(508.6m) 다음으로 두번째 높이의 쌍선봉(460.7m)

인데.. 주등산로에서 제외되어 샛길 취급을 받는다.

 

직진하면 낙조대로 가는길인데.. 여기도 막아놓았다..

 

11시 14분 : 월명암(月明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 소속이다.

부안군 변산면 쌍선봉(雙仙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부설이 창건한 암자로 691년에 부설(浮雪)이 창건하고

조선 때 진목대사가 여기에 다시 암자를 세웠고 한말에 의병의 본거지가 되어 불에 타버린 후 백학명 선사가 재건하였는데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타버려 고쳐 지은 암자다.

 

안개낀 아침풍경이 아름다워 월명무애(月明霧靄)가 변산8경중 하나로 꼽히며.. 그저 거기에 앉아 있기만 해도 도를 얻게 

된다는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로 대둔산의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함께 호남의 3대 영지로 불리운다.

월명암에서는 변산의 최고봉 의상봉(510m)이 조망되고 월명암 뒤쪽에 변산 8경의 하나인 낙조대가 위치하고 있다.

 

부설거사(浮雪居士)에 매료된 묘화낭자가 자살을 기도하자 할 수 없이 생명구제 차원에서 부설스님이 결혼하여 낳은 자녀

이름이 아들 등운과 딸 월명이었다... 스님이 입적한 후 자녀의 이름을 따서 지은 암자가 등운암과 월명암이라고 한다.

 

월명암(月明庵)범종각.

쌍선봉은 법왕봉(法王峰)과 귀왕봉(鬼王峰) 두 봉우리로 되어있는데 후일 사람들이 이 두봉을 일러 쌍선봉이라 했다.

월명암은 바로 이 쌍선봉 동쪽 중턱에 있다.

 

 월명암(月明庵)에서 바라본 의상봉과 소뿔바위봉.

변산반도국립공원은 두 권역으로 나뉜다. 해변지구는 외변산, 내륙의 산악지구는 내변산이다. 여러 봉우리가 모여 독립된

산군을 이루고 있는 변산을, 조선 시대에는 ‘영주산’ 또는 ‘봉래산’이라고도 불렀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 속 세 개의

‘신산(神山)’은.. ‘신선이 깃든 산’으로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다.

 

변산의 풍경을 보면.. 먹으로 찍어 그린 수묵화 속 풍경 같은 기이한 산세를 보며 신선의 출현을 떠올렸을 것이다.

변산을 신산(神山)에 빗대 부른 게 도가(道家)라면, 불교에서는 변산을 ‘능가산(楞迦山)’이라고 했다.

내소사 일주문에 능가산의 이름이 걸려있다. ‘능가산 내소사’. 불교에서 능가산은 석가모니가 대혜보살에게 설법을 베풀

었다는 산이다. 도교에서도.. 불교에서도 변산은 특별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월명암(月明庵)과 부설전(浮雪傳)..

월명암(月明庵)에는 불교소설(佛敎小說) 부설전(浮雪傳)이 소장되어 있다. 작자와 연대 미상인 부설전은 월명암을 세운

부설거사 일가(一家)의 성도담(成道譚,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을 승전형식(僧傳形式 · 고승들의 행적기)으로 소설화 한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월명암 소장본이 그 한문필사본 일책(一冊) 유일본(唯一本)이 전하고 있다.

 

내용은, 능가산(楞迦山 · 지금의 변산) 법왕봉 아래에 묘적암을 짓고 수도에 힘쓰던 부설이 오대산으로 수도를 떠나게 된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묘화(妙花)라는 여인을 만나 머물러 살며 등운(登雲)과 월명(月明) 두 남매까지 두게된다.

 

그리고 묘화를 만난지 15년 후에 두 자녀를 부인에게 맡기고 부설은 다시 수도에 전념해 크게 깨달았고, 두 자녀들까지

수도에 증진해 열반하였는데, 후일 덕이 높은 스님들이 이들 두 자녀를 기리며 등운암과 월명암을 지으니 지금까지도 남아

이곳에 있다는 것이다.

 

면선각.. 월명암(月明庵)의 종무소다.

 

사색의 계절 가을에 참으로 여유로운 산사의 길... 직소보로 하산하는 길이다..

 

 11시 27분 : 379봉에 올라서니 바람이 분다.. 일기예보상으로는 10m/s다..

다행인것은 계속 부는게 아니라 파도처럼 한번 몰려 왔다가 잠시후 다시 불어온다..

 

 11시 34분 : 선인봉 갈림길..

 

처음으로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바라본 관음봉.. 그 아래 직소보..

 

 직소보를 눈앞으로 불러 온다.

 

 곰소항 건너 선운산도 가까이 불러 오고..

 

 관음봉삼거리에서 관음봉에 올랐다가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서 반대편의 내소사로 내려 갈 것이다.

 

 기분좋은 암릉길.. 오른쪽은 수십길 절벽이다.

 

 뒤돌아본 379봉..

 

 잘 달려 오던 능선길이 아래로 곤두박질 하듯이 떨어진다.

 

 조금전에 지나온 절벽의 아래 일것 같아서 들어가 보니..

 

 완전 수직절벽이다..

 

 그리고... 바람좋은 여름날 최고의 밥자리가 될 것이다.

 

 신선이 학을 타고 올라갔음직한 무협지속의 암릉이다.

 

 낙엽길.. 조심조심..

 

 혼자 걷는길은.. 안전이 우선이다.. 철난간을 잡고..

 

 너무 빠르게 떨어지는 급내림이라.. 조망처만 있어면 들어가서 사진 한컷을 핑계로 숨을 고른다.

 

 역시나 그림이다..

 

12시 00분 : 봉래곡삼거리..

 

 내변산탐방지원센터 가는길..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하산길이다.

 

 여기가 해발 40m정도 되는 곳이다..

 

거의 바닥에서 처음시작하는 마음으로 출발이다.

 

12시 03분 : 직소보 전망대..

부안군민의 비상식수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저수지였는데 1991년에 부안댐이 건설되면서 관광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조금전 지나 온 직소보전망대가 마주 보인다.

 

 12시 10분 : 선녀탕이 100m 앞에 있다고..

 

▲ 봉래구곡중에 제4곡에 해당하는 선녀탕..

위에는 큰선녀탕.. 작은선녀탕(仙女蕩)이 나란히 있고..

 

▲ 조금 아래에는 대중 선녀탕(仙女蕩)인가?...ㅎㅎ.

 

12시 17분 : 봉래구곡중에 제3곡에 해당하는 분옥담 이다..

 

▲ 봉래구곡중에 제3곡 분옥담(噴玉潭)은..

직소폭포 아래 화산폭발 후 생긴 분화구 모습의 깊은 못을 일컫는다.  담(潭)은 용이 살만한 깊은 못을 말한다.

 

▲ 봉래구곡중에 제2곡에 해당하는 직소폭포(直沼瀑布)..

 

▲ 직소폭포(直沼瀑布)..

높이 약 30m 정도로 폭포를 받히고 있는 둥근 못으로 곧바로 물줄기가 떨어진다고 하여 직소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봉래 계곡에서 가장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변산반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폭포이다. 변산의 경관중에서 으뜸으로 예부터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의 선경을 보지 않고서는 변산을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 그런데.. 직소폭포(直沼瀑布)의 물줄기가 약하다.. 남진의 쏘팔매토처방을 하던지...ㅎㅎ~.

 

▲ 가까이에서 본 분옥담...

 

▲ 내려다 본.. 직소폭포(直沼瀑布)..

 

▲ 30여년전에 걸었던 남여치~내소사 코스중에.. 기억속의 그림과 딱 일치 하는 곳은 여기 뿐이다...

 

▲ 재백이다리 상류의 직소천..

 

▲ 계곡을따라 올라오는 바람이 등짝을 밀어준다...

 

▲ 이제부터 관음봉오르기의 시작점이다..

 

12시 50분 : 해발 약160m의 재백이삼거리.. 관음봉이425m다.. 약265m를 거의 급경사로 올라야 한다.

 

▲ 잘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사진 한컷의 핑계를 만들자..

 

▲ 곰소만 건너 고창군의 선운산과 소요산..

 

▲ 기억속의 마당바위는 조망이 있는 널따란바위였고..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뚜렷한데.. 그 바위는 어디로 갔나?

 

▲ 암릉에 올라서서 바라본 곰소만..

 

▲ 암봉에서 바라본 관음봉.

 

▲ 관음봉 뒤에 의상봉을 조망하고..

 

▲ 다시 내려 가고.. 올라가기를 반복하며..

 

13시 18분 : 드디어 관음봉삼거리에 올랐다.. 하산시간이 3시간 남았다.. 관음봉 기다려라.. 널널하게 다녀오자..

 

▲ 관음봉 가는길이 처음에는 산허리를 타고 완만하게 돌아가다가..

 

▲ 조망좋은곳에서 지나온 쌍선봉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 당겨본 쌍선봉과 직소보.

쌍선봉(雙仙峰,459m)은 이성계가 청년시절에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 굴바위 옆 저수지 안쪽의 선계안(또는 성계골)에서

영험한 두 노인에게 각각 문(文)과 무(武)를 익혀 훌륭한 청년이 된 뒤 스승들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한다.

 

스승과 제자 모두 이를 서로 아쉬워하다가 선계안으로부터 북쪽으로 삼천보나 떨어진 이곳까지 왔고 이성계가 두 스승

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보니 두 스승은 사라지고 그 앞에 높은 봉우리 두 개만 우뚝 솟아 있었다고 한다.

 

▲ 관음봉 암릉..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경사다.

 

 

▲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친절한 이정표가 200m남았다고 한다.

 

13시 38분 : 관음봉(觀音峰) 도착..

능가산 또는 봉래산이라고 불리우고 지금도 내소사 일주문에도 능가산 내소사( 稜伽山 來蘇寺)란 현판이 걸려 있다.

 

▲ 하산시간이 여유로워서 세봉전망대까지 다녀 온다..

 

▲ 관음봉에서 세봉가는길도 만만찮다.. 급내림이다.

 

▲ 다시 올라가고..

 

▲ 되 돌아본 관음봉..

 

▲ 저 멀리 새만금방조제가 보이고..

 

▲ 당겨보니 신시도의 월영산과 대각산이 보인다.

 

▲ 눈을 살짝만 오른쪽으로 돌리면.. 의상봉과 쇠뿔바위봉이다.

 

▲ 내가 이름붙인 가칭.. 세봉전망대에서 바라본 세봉방향.. 직진하면.. 내변산의 가마소와 와룡소의 절경들이 펼쳐진다..

세봉삼거리에서 우측능선을 타면 내소사 경유가 어렵기에.. 여기서 관음봉으로 회귀한다.

 

14시 05분 : 다시 관음봉..

 

▲ 관음봉 전망대..

 

▲ 관음봉을 다시 올려다 보고...

 

14시 23분 : 관음봉삼거리에서 내소사로 하산..

 

▲ 내소사 내림길은 원만한 편이다.

 

▲ 세봉삼거리 아래로 청련암이 보인다.

 

14시 52분 : 재백이고개 탐방로에서 사실상의 산행은 마무리하고 내소사로...

 

▲ 내소사 범종각..

 

▲ 내소사 설선당은 인조 18년(1640)에 청영대사가 지은 것으로 전해 진다.

 

▲ 내소사 현판.

 

▲ 내소사 설선당 무쇠솥.. 안쪽에 있다는데 잠겨 있다.

 

▲ 내소사 대웅보전.

쇠못은 하나도 쓰지않고 모두 나무로만 깍아 끼워 맞추었다고 한다.

 

▲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며.

백제무왕 34년(633) 혜구두타스님이 창건했는데 처음에는 다시 태여나서 온다 는 뜻으로 소래사(蘇來寺)라 하였는데 조선

인조 11년(1633년)에 청민 선사가 중건한 뒤부터 이름이 내소사(來蘇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은 중국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한 뒤, 이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를 시주

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고 전하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 내소사 봉래루는.. 조선 태종 12년(임진년, 1414년)에 건립한, 전면 5칸(12.23m), 측면 3칸(6.20m), 2층 누각의 맞배

지붕의 건축물이다. 자연석을 초석(礎石)으로 사용하였는데 높낮이가 일정치 않아 2층 누각을 받치는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2층 누각의 수평을 취하게 하였다.

 

▲ 내소사에 봄꽃이 피었다.. 헐!~~..

 

▲ 대장금을 촬영했던 곳이라고 한다.

 

▲ 일주문 현판에는.. "능가산내소사"라 되어 있다. 과거에는 봉래산..또는 능가산이라 했다..

 

▲ 내소사 탐방지원센터 뒤쪽에 있는 대형버스 주차장으로..

 

▲ 내소사주차장에서 바라본 관음봉 능선..

 

15시 19분 : 내소사주차장..

 

▲ 30년도 넘은것 같은.. 남여치~관음봉~내소사코스는..

카메라도 못가졌던때라 기억속에는 남여치 고개와.. 월명암과.. 직소폭포와 계곡의 그림만 단편적으로 남아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기억속의 장소는 분명히 맞지만.. 그때의 상황과는 전혀 딴 세상이었다..

딱 한곳.. 직소폭포위에 계곡뿐이었다..

2024년 11월 13일(수).

해인사12암자 : 경남 합천군.

 

트레킹코스 : 해인사입구-성보박물관-보현암-금강굴-삼선암-금선암-원당암-

홍제암-용탑선원-해인사-성철스님사리탑-지족암-희랑대-백련암-국일암-약수암.

트레킹시작 : 해인사입구  09시 20분.

트레킹종료 : 해인사입구  14시 28분.

전체거리 : 약11km.

전체시간 : 05시간 08분.

운동시간 : 04시간 24분.

휴식시간 : 00시간 44분.

 

09 : 20  해인사입구.

09 : 31  성보박물관.

09 : 42  보현암.

09 : 46  금강굴.

09 : 57  삼선암.

10 : 01  금선암.

10 : 10  원당암.

10 : 28  홍제암.

10 : 42  용탑선원.

10 : 51  해인사.

11 : 34  성철스님사리탑.

12 : 35  지족암.

12 : 53  희랑대.

13 : 19  백련암.

13 : 55  국일암.

14 : 03  약수암.

14 : 28  해인사입구.

 

09시 20분 : 해인사입구 도착.

대구서부정류장을 08시 01분에 출발하여 약 1시간20분이 소요되었다. 요금은 8900원..

 

지난주인 11월 07일에 경북 성주군 법전리에서 가야산정상을 오르고 토신골을 경유하여 이곳으로 하산하였는데..

해인사에 들리지 못한 아쉬움에 6일만에 다시.. 해인사와 12암자를 탐방하기 위해 역순으로 올라간다.

 

불자가 아닌 내가 사찰을 찾는 이유는...

자연과 잘 어우러진 각종 문화재와 사찰건물의 아름다운 선과 예술적 감각을 느껴보고자 함이 더크다...

계절로는 가을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계절이기에 길을 나선 이유다.

 

해인사 상가를 지나..

 

09시 31분 : 해인사성보박물관..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법보종찰 해인사의 박물관으로, 보물 11건 및

9건의 지방유형문화재를 포함한 약 7천여 점에 달하는 불교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사찰 박물관이다.

 

허덕교..

성보박물관 좌측으로 올라오면 풍광이 멋진 계곡을 건너는 허덕교는.. 예전에 이 자리에 허덕사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아직은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조용한 가을길은... 이제는 단풍길이 아닌 낙엽길이 되어 간다.

 

 오늘은 해인사를 포함한 가까운 주변의 12암자를 찾아보기 위해.. 먼저 보현암과 금강굴을 찾아간다.

 

 향지교(向止橋)를 건너.. 좌측의 보현암과 금강굴을 다녀와서 오른쪽의 삼선암으로 갈것이다.

 

 보현암 가는길..

 

향노교에서 3분정도 올라오니 노랑물감이 한창인 은행나무 뒤쪽으로 보현암이 보인다..

 

09시 42분 : 해인사 보현암은...

1973년 혜춘(慧春)스님(1919~1998)이 비봉산 남쪽자락에 창건하여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구니 수행처인 보현암 법당과 연못..

보현암의 연못은 마음심(心) 모양으로 참선하는 것은 마음을 닦는 것으로 더욱더 수행 정진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함께 길을 나서준 짝지부터 챙겨준다...

 

보현암과 이웃한 금강굴(금강암).. 규모가 작은 사찰을 굴(窟)이라고 표현 한다.

 

금강굴은..

성철스님 세속의 따님인 불필(不必)스님이 보현암에서 수행하던중에.. 비구니 스님들의 수가 많아져서 성철스님이 계시는

백련암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1976년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금강굴의 삼층탑과 백송.. 백련암에도 백송이 있다.

 

금강굴의 법당인.. 금강보전에는 성철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금강굴 석조여래입상.

 

 금강굴에서 바라본 환선대 아래 백련암 방향...

 

비구니 사찰답게 정갈한 금강굴을 뒤로하고..

 

 혜춘스님의 보현암창건 연혁과 시비..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는가.. 오고감이 하나일새.. 청풍은 만리로다.

 

보현암과 금강굴을 둘러보고 향지교로 돌아와서 향지교를 건너지 않고 삼선암 방향으로 향한다.

 

삼선암입구에 예쁘게 만들어 놓은 식수대.. 이쁘니까 물맛도 달다.

 

09시 57분 : 삼선암 입구 현판에는 반야선원(般若禪院)이라 되어 있다.

 

삼선암 약사전아래에서 스님들이 낙엽을 쓸고 있다.

 

해인사 삼선암(三仙庵)은..

1893년(고종 30) 자홍(慈紅)스님께서 창건한 뒤로 1904년에 보찬(普讚)스님과 지종(智宗)스님 두 분이 중건한 바 있으며, 1945년에 정성문(鄭性文)스님이 반야선원(般若禪院)을 개원하였으며 6·25한국전쟁 당시에도 많은 비구니 스님이 이 선방

에서 참선에 들었다고 한다... 삼선암(三仙庵)이라는 이름은 마당에 있는 3개의 바위에 3명의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삼선교를 건너와서 바로 이웃해 있는 금선암으로 간다..

 

 방금 다녀온 삼선암... 가을이 주는 참으로 멋진 그림이다.

 

 금선암은.. 1945년에 하담스님께서 창건한 비구니 수도처다.

 

10시 01분 : 금선암 법당.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지만 대웅전이라 칭하지 않고 법당이라고 쓰여진 이유는 해인사에 큰 법당(대적광전)이 있어서

다른 명칭을 쓸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선암을 지나서 올라오니 단풍이 한창 곱다.

 

카페.. 수다라.

수다라(修多羅)라는 부처님 말씀을 적은 경전으로.. 이 좋은 가을날에 이곳에서 차 한잔 하면서 수다를 떠는것도 좋을듯...

 

 원당암 달마선원으로...

 

불자가 아니어도 무생교를 건너면 속세의 허물이 벗겨질까나...

 

10시 10분 : 원당암 전경..

원당암이 지금은 암자이지만 해인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원래 하나의 절이었다고 한다.

신라 애장왕(哀莊王)은 공주의 난치병이 낫자 부처님의 가호(加護)라 여기고 해인사의 창건을 발원한 순응(順應) 대사를

몸소 크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왕은 서라벌을 떠나 가야산에 임시로 작은 집(원당)을 지어 절(해인사) 공사를 독려하고

정사(政事)를 보기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당암이라는 것이다.

 

창건당시에 이곳의 산 모양이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비봉산 자락에 있다 하여 봉서사라 하였으며 진성여왕때 부터

본격적인 신라왕실의 원당이 되어왔기에 원당암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원당암 미소굴과...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스님의 법문 말씀이다.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가 죽는것이 사는 길이다.. 옳은 마음으로 옳은 일 하면 안 죽어요."

 

▲ 미소굴..

혜암스님의 유품을 진열해둔 곳이다.

 

▲ 조금전에 지나왔던 전망대에 다시 올라가 본다.

 

▲ 고분처럼 생긴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운봉교라는 전망대다. 이곳에서 내려다 본 해인사 풍경이 장관이다.

 

▲ 내려다 본 원당암전경..

원당암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혜암(慧菴) 스님이 머무른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혜암 스님은 해인사의 정신적 지주

라고 할 수 있는 해인총림 방장(''93년~''96년)스님을 지내시고 1999년 4월에 조계종 제10대 종정 스님으로 추대되었다.

 

▲ 보광전 앞의 다층석탑(청석탑)과 석등은 신라시대 유물로 보물 제518호이다.

 

▲ 볼거리와.. 생각꺼리가 많았던 원당암 산문을 나선다.

 

▲ 홍제암으로..

 

10시 28분 : 홍제암(보물 제1300호)은...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수도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에서 따왔다.

광해군 6년(1614)에 혜구대사가 사명대사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

 

▲ 홍제암 보승문.

 

▲ 홍제암 법당.

 

▲ 홍제암 서래당은...

도봉당(道峰堂) 종성(宗性) 대종사가 주석처인 홍제암 서래당에서 입적했다.

 

▲ 홍제암 자운대율사영각(慈雲大律師影閣).

 

▲ 홍제암 사명대사탑석정비.

 

사명대사 석장비와 함께 있는 승탑과 비석들.

 

▲ 사명대사 석장비(보물)..

비석은 1612년에 건립되었다가 1943년에 일본인이 깨트린 것을 1958년에 복원한 것이다.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으로 비문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지었다고 한다.

 

▲ 백용성 선사 승탑과 탑비..

 

▲ 해인사로 가는 외나무다리..

과거에는 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못된 관리들이 말을 타고 사찰경내에 들어오는 걸 저지하기

위하여 만든 다리라고 전해진다..

 

▲ 10시 28분 : 용탑선원.

3.1독립운동의 민족대표 용성스님의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암자라고 한다.

 

▲ 용탑선원 육화당.

육화는 불교의 진리를 깨치고자 수행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경하며 화합하여 깨달음을 성취해야 하는 여섯 가지 도리다.

 

▲ 용탑선원 미타굴 법당.. 납골당을 겸하고 있는 석조 미타굴  법당이 있다.

 

▲ 석조 미타굴 법당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 용탑선원 극락교 입구에..

3.1독립운동 민족대표..  백용성조사 유적도량이라는 글이 기둥에 나란히 새겨져 있다...

 

▲ 토신골탐방지원센터.. 지난주 11월 7일에 가야산정상에서 하산하였던 들머리다.

 

▲ 6일전에 들러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기위해 해인사로..

 

10시 51분 : 해인사.. 가까운 대구에 60여년을 살면서도 한번 와보지 못했던 곳이다.

 

▲ 타이밍이 좋았는지.. 법고행사를 하고 있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부처님의 말씀이 세간에 널리 전하는 것을 북소리가 울려퍼지듯 한다..라고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이 북소리를 듣고 중생이 모든 번뇌를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 해인범종.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 해인사 스님들의 법고 치는 솜씨는 예전부터 최고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큰 울림으로

전해져 오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 마당에는 만(卍)자 형식의 해인도(海印圖)를 크게 그려져 있고 경전을 외우며 이 구역을 한바퀴 따라 돌게 되어 있다.

 

▲ 해인사 구광루.

원래는 기능상 재식시(齋式時) 법요(法要)를 집행하던 곳이었으나.. 사찰의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하층의

경우 홍보를 위한 홍보시설과 서점 등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층은 설법과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 해인호국도량 대적광전으로 올라가는 문...

 

▲ 해인사 대적광전 마당의 석등.

 

▲ 해인사 대적광전 마당의 삼층석탑.

 

▲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木造毘盧舍那三尊佛)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해인사는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이정(利貞) 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10월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된 화엄도량이다.

 

1398년 고려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운되면서 법보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특히 해인사는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화재로 그때마다 다시 지어졌는데,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조선 말에 중건된 것이다.

 

합천 해인사는 양산의 통도사, 순천의 송광사와 더불어 국내 3보(三寶) 사찰 중 법보사찰로 팔만대장경 경판(국보)과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경판전(국보)등 15점의 보물과 2백여 점의 사보 등 수많은 국가유산과

고적이 있다.

 

▲ 해인사 대적광전과 왕이 주로 사용한 우물.. 어수정이다.

 

▲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판전으로 가는 문.

 

▲ 보안당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읽음으로써 두루 관찰하는 눈이 생긴다는 뜻이다.

 

▲ 수다라장은... 부처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다.

 

▲ 법보전.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판'이 소실되자 국난 극복을 염원하며 고려 고종(1237~1248) 때 새롭게 판각한 경판이다.

조성된 경판이 8만여 개에 달하고,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이 수록됐다고 해서 팔만대장경으로 불린다. 제작된 지 80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 국보로 지정됐다.

 

유네스코는 1995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2007

년에는 팔만대장경을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했다.

 

▲ 해인사는 신라때 지어졌고 팔만대장경은 고려때에.. 그리고 대장경을 보관하는 이곳 장경판전은 조선시대 만들어 졌다. 

 

▲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가이드 라인을 따라 마당에서 한바퀴 돌아나간다.

 

▲ 뒤돌아 본  팔만대장경판전 전경.

해인사 천년고찰과 함께 해온 고려팔만대장경은 우리의 희망의 역사다..뿌듯한 자긍심을 안고 돌아선다..

 

▲ 가야산 감로수도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 바로옆 해인사 홍보판에 대장경 실내사진이 있다.. 실물크기 그대로 찰칵..

 

▲ 해인사 독성각앞을 돌아가니..

 

▲ 해인사 학사대(學士臺) 고운 최치원상.

신라의 학자 고운 최치원이 해인사에 머물며 집필하면서 말년을 보낸 장소로 평소 짚고 다니던 전나무 지팡이를 꽂아두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는데..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 큰 나무로 자랐다고 하는 나무였는데.. 그러나 2019년 태풍 "링링" 의

피해로 인해 쓰러진 나무의 밑둥치로 좌대를 만들고 그위에 최치원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 해인사 학사대(學士臺)에서 바라본 남산제일봉 아래가 최치원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홍류동계곡으로 농산정이 있다.

 

▲ 해인사 구광루에서..

 

▲ 해동원종대가람 해탈문을 나선다..

 

▲ 해인사 국사단과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원나무..

국사단은 산을 관리하는 산신과 가람을 수호하는 국사대신을 모신 단으로 보통 사찰의 산신각에 해당하는 전각이다.

 

▲ 해인총림 봉황문.. 안에서부터 구광루.. 해탈문.. 봉황문이 차례로 보인다.

 

▲ 해인사 애장왕 고사목.

신라 40대 애장왕 8년(서기 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애장왕이 이 은덕에 보답

코자 법당과 승료 등 많은 가람을 헌공하여 해인사를 창건하고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진다.

 

이 느티나무는 1200 여년의 긴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해 오다가 1934년 수명을 다해 고사하고 지금은 밑둥치만

남아 해인사의 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해인사 일주문.. 산문 안쪽은 "해동제일도량"이고..

 

▲ 산문을 나가서 사바세계에서 보면 "가야산해인사" 다..

 

▲ 일주문 축대에 불기2975년이라 음각되어 있다. 아마도... 서기 1948년에 일주문을 개축하였던게 아닐까..

 

▲ 일주문앞의 구조물.. 무슨 용도였을까..

 

▲ 일주문 밖 당간지주..

 

▲ 영지..

일주일 전만해도 화려했던 단풍이 다 떨어져 앙상하다.

 

▲ 원경왕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碑)로,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해인사 경내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거북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색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숙종 9년(1104)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 길상탑.

최치원이 지은 탑지(塔誌)에 따르면, 신라 진성왕대에 오랜 내란으로 해인사 주변에서 전몰한 승려와 백성을 위해

문수보살의 가피를 빌고자 해인사 승훈 스님이 895년에 세운 위령탑이라고한다.

 

▲ 해인사 비림(碑林)... 사적비를 비롯 20기의 공적비가 안치되어 있다.

 

11시 34분 : 1993년에 입적하신 성철스님 사리탑..

기존의 사리탑과는 사뭇 다르게 현대적 미적감각으로 조성되었다. 구(球)는 완전한 깨달음과 참된 진리를 상징하고 등을

맞대고 있는 반구(半球)는 활짝핀 연꽃을 표현하고.. 크기가 다른 정사각형 3단은 3학과 수행과정을 의미 한다고..

성철스님의 '자기 공덕은 자기가 쌓아야하고..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해야한다'라는 말씀을 새기며 지족암을 찾아 간다.

 

▲ 지족암으로 가기위해 대장경연구원쪽으로..

 

▲ 도로를 따라 대장경연구원을 지나 올라가면..

 

▲ 해인사 경내인 구내식당쪽이 보이는 곳도 스치듯 지나가고...

 

▲ 오른쪽으로 희랑대로가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 오른쪽 아래로는 극락전 건물 뒤쪽이 보인다.

 

▲ 처음에는 아마도.. 스님들이 암자를 왕래하기위해 걸었던 길이었을 것이다.

 

▲ 전남 강진의 만덕산 자락의 다산초당으로 가기 위해 다산 정약용이 걸었던 "뿌리의 길"이 생각나는 길이다.

 

11시 51분 : 자그마한 봉우리에서 마음에 점을 찍고..

 

▲ 솔향기와 만추의 가을이 내려앉은 낙엽길을 걷다보면..

 

▲ 차도와 만나게 되고...

 

▲ 지족암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와서 희랑대로 갈 것이다..

 

▲ 지족암 가는길...

 

12시 35분 : 지족암 일주문.

 

지족암은 신라말 고려초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로서 원래 이름은 도솔암이었다고 하는데.. 옛모습은 하나도 없다..

 

▲ 지족암 법당인 대몽각전.. 큰꿈에서 깨어난 자 즉.. 부처님 계신 곳이라는 얘기다.

 

▲ 마당을 지나가면..

 

▲ 돌아서 내려오게 된다.

 

▲ 동곡교에서 좌측 계단으로 오르면 희랑대다.

 

▲ 문이 닫혀 있어서.. 약간은 난감했는데 안내문을 보니 멧돼지 때문이니 열고.. 그리고 잘 닫고 들어오란다..

 

▲ 쌓아올린 축대를 보니 상당한 불사였겠다..라는 생각이다..

 

▲ 축대를 이용하여 공간 텃밭도 만들어 꽃도 심어 놓았다..

 

▲ 해남 달마산 도솔암과.. 경기 관악산 연주대처럼 자연 암릉 사이를 쌓아올려 희랑대를 지었다.

 

▲ 희랑대는... 희랑대사가 머물렀다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이자..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준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12시 54분 : 독성각.

신라 말에 희랑(希朗)이 창건하여 수도하였던 곳으로서,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으나 나한 기도처로서 유명하다.

 

해인사 희랑대는.. 청도 사리암, 서울 삼성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나반존자(독성) 기도도량이다.

 

▲ 희랑대 너머로 지족암이 보인다.

기묘한 지형과 빼어난 풍치가 경관을 이루고 있어 흔히 금강산 보덕굴(普德窟)과 비교된다.

천연의 절벽을 뒤로 하고 바위와 바위 사이로 돌을 쌓아 평평한 터를 만들어 그 곳에 삼성전(三聖殿)을 세웠는데, 이 삼성전

에 모셔진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는 그 영험이 불가사의하다고 하여 수많은 기도객이 찾고 있다.

 

▲ 계단을 올라 능선길을 따라가면 백련암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 그 자체다..

 

산이 구름을 탓하지 않고..

물이 굴곡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은.. 자연을 닮은 삶.. 그것이 곧 긍정이라 했다..

 

▲ 길은 뚜렷하고 전선줄을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 산죽길을 올라서면.. 지능선에 닿게되고..

 

▲ 희랑대를 출발하여 13~4분이면...

 

▲ 백련암이 내려다 보이는 암릉이 나온다.

 

▲ 한눈에 들어오는 백련암이 바로 아래다..

 

▲ 잠시 바위를 즐기고 내려가면..

 

▲ 백련암 적광전..

 

▲ 백련암 천태전..

 

13시 19분 : 백련암 고심원..

행사가 있는지 엄청많은 남여 신도들이 북적댄다.

 

▲ 백련암 고심원 앞의 연꽃바위라는데... 우매한 나의 눈에는 두꺼비처럼 보인다.

 

▲ 백련암 고심원은 성철 스님깨서 입적하신 후에 지었으며.. 스님의 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 백련암 고심원에 모셔져 있는 성철스님 좌상..

성철스님은 1980년대 조계종 종정일때 조계종 분규를 비탄하며 백련사에 오신후 열반전까지 이곳 백련사에 머물었다.

1936년 출가해서 해인사에서만 57년 동안 칩거해 온 스님은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가부좌한 채 입적하셨다.

 

▲ 백련암의 백송..

 

▲ 백련암의 자연석으로 부처님을 닮은 불면암(佛面岩)이라는데..

 

▲ 동서남북 아무리 둘러 보아도.. 불자의 눈이 아니어서 그런지.. 내사마 도통 모리거따..

 

▲ 내눈에는 오히려 해학적인.. 안동 하회탈처럼 보인다.

 

▲ 원통전.. 백련암 가람중에 가장 고색창연 하다..

 

▲ 일주문이라는 안내표시가 있어서 정념당 아래로 내려간다.

 

▲ 무슨 행사인지 전국에서 모여든 차량들로 주차장이 초 만원이다.

 

▲ 잎이 붙어있는걸 보니 고사목은 아니고.. 그냥 고목이다...

 

▲ 백련암을 내려서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성철스님의 화두의 의미를... 알듯.. 모를듯..

 

13시 55분 : 국일암 법당.

국일암 법당은 1637년 벽암(碧巖)스님께서 중건하였으며, 조선 인조가 벽암스님에게 국일암대선사의 호를 내렸다고

하여 국일암이라 부르게되었다고 한다. 국일암은 비구스님들의 선원이다..

 

▲ 국일암 와송..

 

▲ 매우 오래 된듯한 해우소..

 

14시 04분 : 약수암..

1904년 흥선대원군의 수양딸인 성주스님이 궁의 지원을 받아 창건하였으며 1927년 도삼스님이 중건하였다.

이곳은 비구니 도량으로 약물이 나온다고하여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 약수정..

 

▲ 처음보는 약수터 모습이다..

 

약수물이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어 한센병 환자들이 이 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 죽림선원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죽림선원은 약수암 창건시 양철로 지붕을 덮은 선원이 개원되었다. 그 후, 허물어진 선원을 일으키기 위해 비구니 스님들이

탁발을 도모하여 개축하였으며, 1972년 법공스님이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선원을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 약수암을 끝으로 12암자 탐방을 마치고..

 

▲ 주차장으로 가는길이 가을스럽게 아름답다.

 

깃대종(flagship species)이란...

유엔환경계획이 만든 개념으로서,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주요 동·식물을 뜻한다.

'깃대'라는 단어는 해당 지역 생태계 회복의 개척자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상징적 표현이다.

가야산의 깃대종에는 "가야산은분취" 와.. "삵" 이 있다.

 

14시 12분 : 치인주차장까지 1.1km..이정표

14시 40분에 대구로 가는 차가 있다.. 약15분이면 갈수있는 거리다..

 

▲ 허덕교에서 바라본 해인사 단풍인데.. 6일만에 이렇게 변했다..

 

▲ 14시 28분 : 해인사입구 정류장..

 

▲ 트랭글을 정리해보니 1사 12암자를 걸어온 거리가 만만찮다.. 운동거리 11km에 평균속도 2.5km/h다.

 

▲ 해인사입구 정류장 지킴이 들냥이..

 

▲ 버스를 기다리는동안 10배줌으로 당겨온 가야산 정상부..

 

비록 불자는 아니지만..

언젠가 걷고 싶었던 명산 대찰인 해인사와 12암자 도보탐방을..

 

보현암 혜춘스님 말씀처럼..

불현듯..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다녀간다..

 

가을의 끝자락..

자연이 내어준 아름다운 길위에서 마무리 할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다..

2024년 11월 10일(일).

월류봉둘레길 : 충북 영동군.

 

트레킹코스 : 월류봉광장-원촌교-회도석-완정교-목교-반야교-관음상-반야사-문수전-반야사주차장.

트레킹시작 : 월류봉광장  10시 22분.

트레킹종료 : 반야사주차장  14시 09분.

전체거리 : 약11.2km.

전체시간 : 03시간 46분.

운동시간 : 02시간 54분.

휴식시간 : 00시간 52분.

 

10 : 22  월류봉광장.

10 : 34  원촌교.

10 : 37  회도석.

11 : 14  완정교.

11 : 42  목교.

13 : 07  반야교.

13 : 19  관음상.

13 : 28  반야사.

13 : 38  문수전.

14 : 09  반야사주차장.

 

 10시 19분 :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 월류봉광장 도착..

달이 머문다는 월류봉이다.. 달의 음기가 강한 이곳에 오늘은 가을을 즐기려는 행락객들로 가득하다..

 

▲ 초강천 건너 용연대위에 세워진 "월류정"이 한폭의 그림이다..

한천 팔경중에 1경이 월류봉이고.. 4경인 용연대는 월류봉 앞에 있는 절벽으로 산줄기가 평지에 우뚝 솟아 나와 초강천을

휘감아 도는 깊고 푸른물인 용연에 이르러 형성된 돌머리 모양의 대이다.

 

▲ 월류정을 병풍처럼 둘러선.. 월류1봉에서 4봉이 나란히 키재기를 하고 5봉은 오른쪽으로 조금떨어져 있다.

 

10시 22분 : 월류봉둘레길 1구간인 "여울소리길" 들머리 출발.. 월류봉광장에서 동쪽으로 진행한다..

 

충북 영동의 명물인 호두 가판대 아저씨 옆에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반야사까지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너무나 그림이 좋은 월류정 용연대와 작별의 눈인사를 하고..

 

월류봉 둘레길은 2016년부터 준비하여 2018년 6월에 여울소리길을 개통하였고.. 2021년에 나머지 구간도 개통이 되어

가을에 가장 걷기좋은 길로 입소문이 나면서 해마다 가을이면 장사진을 이루는 가장 핫(hot)한 코스로 자리매김 되었다.

 

▲ 한천정사(寒泉精舍)<문화지자료 28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 1607∼1689) 은 선조(宣祖) 40년(1607)에 옥천군(沃川郡) 이원면(伊院面) 구룡촌(九龍村)에서

출생한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대(大) 유학자(儒學者)로 그의 유학사상은 이율곡(李栗谷)의 학통(學統)을 계승하여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朝鮮) 인조(仁祖)대부터 숙종(肅宗)대에 이르는 4대(四代)에 걸쳐 노론(老論)의 대표로서 정계(政界)에서 크게 활약

하였으며 뛰어난 학식으로 많은 학자를 길러내었다.

 

▲ 한천정사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학문을 연구하며 지내던 곳이다.

우암의 제사를 모시는 한천서원을 세웠었는데.. 고종 5년(1868)에 서원을 철거하였고 후에 후학들이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 끝에

온돌방을 두었다.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앞면에 문을 두었는데 앞면 양측에 은행나무가 있었다.

 

▲ 우암 송시열 유허비(충북 기념물 46호)..

 

▲ 우암 송시열 유허비를 나오며 마주하는 용연대와 월류정.

 

▲ 월류1봉.

 

10시 28분 : 월류봉둘레길에서.. 초강천을 건너가는 월류봉등산로 갈림길.

월류봉은 400m대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한반도형상과 주변의 멋진풍경으로 꾸준히 사랑받는 산이다.

 

▲ 초강천 징검다리를 건너가서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월류봉이다.

 

▲ 사군봉은 황간면 뒤편 북쪽에 있는 명산으로 저곳에서 몸과 마음을 연마하면 나라의 사신(使臣)이 된다는 곳이다..

 

▲ 논둑을 따라 걷는 정감있는 데크길이다.

 

▲ 초강천과 석천의 합수점.

초강천은 영동 민주지산에서 발원하여 황간을 거쳐 영동 심천에서 금강에 합류되는 강을 말하며. 석천은 보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상주 모동면.. 반야사 앞을 경유하여 황간면 원촌리에서 초강천에 흡수된다.

 

▲ 석천을 가로지르는 원촌교를 건너자 말자 좌측으로 둘레길이 이어진다.

 

▲ 좌측은 월류봉 둘레길이고... 나는 도로건너 산책로를 따라 약200여m 떨어진 "회도석"을 만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 주행속도 30km라는 안내판에서 초강천 제방으로 간다.

 

▲ 초강천과 배바위...

배바위는 풍수지리적으로 "들어오는 배가 아니고 떠나가는 배"의 형국이라고 한다.

 

10시 37분 : 초강천변의 회도석(回櫂石) 과 월류봉.

영동군지 750쪽과 영동향교지 699쪽에 의하면.. 회도석은 220여년전 황간 현감 이운영(李運永)이 이름지었고

박시화(朴時華)의 글씨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운영(李運永) 현감은 지금부터 250여년 전에 황간 현감으로 근무하면서 무술년(戊戌年,1778)에 회도석을 세워서 현민

(燃民)들의 애향심을 북돋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선정(善政)을 베풀고 당시 지역 산업 발전에 힘쓰는등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으로 1781년까지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 오고 있다.

 

회도석(回櫂石)의 회도를 풀이하면 '뱃머리를 돌려라' 라는 뜻이 된다.

회(回)'자는 '돌아오다'의 뜻이고.. '도(權)'자는 선진목(船進木).. 즉 배를 젓는 '노'를 뜻한다. '석'(石)은 돌이다.

그 옛날 초강천에 배 모양의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황간의 지형이 즉, 풍수지리학적으로 황간이 커다란 호수형인데 거기에

배가 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배가 돌아오는 배가 아니라 떠나가는 배라는 것이다.

이 배바위가 황간의 재물을 싣고 내려가는 형국이므로 이를 막고자 하여 회도석을 세웠다고 한다.

 

어느 지관(地官)의 설(說)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리도 신통스럽게 보았는지 실로 감탄할 만하다

그래서 떠나가는 배를 다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한 인위적(人爲的)인 지형지물을 만들었음이 쉽게 짐작이 간다.

 

결국 월류봉(月留峰) 근처 강 한가운데 배바우가 지금도 있는데 그 배바우와 연관지어 호수 대신 연못을 파고,

거기에 회도석을 굳건히 세워 놓음으로써 우선 마음의 회도석을 세우고, 풍수적인 회도석을 세우고, 나아가 지역 발전의

내실(內實)있는 다목적 회도석이 되게 하였던 선조들의 지혜와 선견지명에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없다.

 

이렇듯 이 고장 수호석(守護石)이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귀한 회도석이.. 그 후 2백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잘 보존되어 있다.

 

▲ 다시 원촌교로 돌아와서 둘레길을 따라간다.

 

▲ 월류봉 광장에서 완정교 까지의 여울소리길은 심심하지 않은 오르내림이 있다.

 

▲ 여울소리길은.. 월류봉 광장에서 원촌교를 건너 완정교까지 약 2.7km구간이다. 석천과 초강천 합류지점의 여울소리가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여서 "여울소리길"이라 이름지었다. 석천을 왼쪽에 두고 걷는 길이다.

 

▲ 오늘의 둘레길구간중에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 좋을때다.. 우리..

아름다운 계절에 자연소리 여울소리 들어며 걸을수 있다는 것...

 

▲ 그래요.. 두발로 걸을수 있을때 까지.. 우리 함께 꽃길만 걸어 가자구요..

 

▲ 그리고.. 웃자구요..

 

▲ 청봉 회장님.. 1년내내 웃는 모습에 덩달아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 청봉의 직전회장님.. 빨리 가도 나의 레이다망은 못 벗어 납니다..ㅎㅎ~

 

▲ 같이... 함께 걸읍시다..

 

▲ 길 위에서 잠시 쉬어감도 함께...

 

▲ 바위돌과 부딪치는 하얀포말의 잔잔한 소리.. "여울소리길" 아름다운 이름이다.

 

11시 14분 : 완정교..

완정교를 건너가면 여울소리길은 끝이다.

 

▲ 내 카메라의 주인공이 되어 영광이라는 구조대장님.. 아는 사람은 앱니다..ㅎㅎ~..

 

▲ 월류봉둘레길 2구간.. 우매리까지의 3.2km "산새소리길" 의 시작점이다..

 

▲ 석천은.. 하천 바닥에 황색으로된 암석이 많아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 지나가는 젊은과객에게 부탁하여.. 나도 길위의 식구가 된다.

 

▲ 가을하늘이 들어가 있는 잔잔한 석천에 떠있는 작은 바위섬들이 정겹다.

 

▲ 나도.. 찍어주기만 하다가 무리속에 들어가니 찍히는 재미가 좋다..ㅎ..

 

▲ 지나가시던 가을추녀님.. 멋지게 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1시 42분 : 완정리 목교.

 

▲ 월류봉둘레길을 찾아온 팀들이 너무 많아서 밥자리 찾기도 쉽지않았는데.. 용케도 최상의 자리를 찾았다.

 

▲ "홍어"가 월류봉둘레길을 찾아 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햇살아래 야외에서 맛보는 홍어삼합... 카!~..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잭다니엘이 꿀맛이다...

 

▲ 여기서부터 반야교까지의 3.1km가 마을로 연결되는 시멘트길이라 숲과 그늘이 거의 없는 구간이다.

 

12시 54분 : 월류봉둘레길 3구간 반야사까지 2.5km의 "풍경소리길" 시작점이다.

 

▲ 석천속의 섬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건너고..

 

▲ 두번째 징검다리...

 

13시 00분 : 반야사 1.6km남았다.. 하산시간 14시까지는 충분하다..

 

▲ 석천 제방을 따라가는 시멘트길이다.

 

▲ 반야사 문수전까지 0.9km 남은 지점..

 

▲ 버스가 보이는 도로를 따라가도 반야사로 갈수있지만.. 관음상을 보기위해 반야교를 건너간다.

 

▲ 관음상 삼거리.. 20여m의 관음상을 보고온다.

 

13시 19분 : 관음상.

 

▲ 백화산둘레길 갈림길...

직진하면 경북 상주시 모동면 옥동서원으로 가는 백화산 호국의길 둘레길이다.. 저길도 언젠가는 가볼것이다.

 

▲ 반야샤로 가는 잠수교..

 

▲ 여기서도 반야사를 지켜준다는 백화산호랑이 형상의 너덜이 보인다.

 

▲ 중화당 좌측으로 문수전을 다녀오고자 한다.

중화당은 템플스테이 사무실과 종무소로 사용되는 최근의 건물이다.

 

▲ 문수전 가는길..

 

▲ 문수전에서도 백화산 호랑이 돌너럭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 문수전에서 내려갈때는 반대로...

 

▲ 세종대왕이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목욕을 하였던 곳이라고...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인 영동 반야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문성왕 8년(846년)에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신라 성덕왕 19년

(720년)에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하나인 상원조사가 창건하였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영동 반야사의 명물 세 가지는 백화산 호랑이와 삼층석탑 그리고 배롱나무다.

백화산 아래에 돌들이 자연적으로 흘러내려 생긴 길이가 300m나 되는 돌너덜의 모양이 꼬리를 치켜 세운 호랑이의 형상을

하고 있고, 500년이 넘은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진분홍색 꽃을 피우고 있으며, 그 앞에 삼층석탑이 다소곳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 영동 반야사의 백화산 호랑이 돌너덜...

 

▲ 14시 09분 : 트레킹 종료..

 

 

14시 52분 : 영동읍 감골 생고기...

 

▲ 청봉 회장님의 건배에 앞서 1년의 짐을 내려놓으려니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지난날의 감회가 밀려오는지..

못내.. 마음한켠이 울컥해 지는모양이다.. ㅎㅎ~..

 

▲ 건배!~...

수고해주신 덕분에 1년이 즐거웠구요.. 감사했습니다.

 

▲ 6순그룹에 갓 들어오신 재무님을 축하합니다...

 

▲ 병아리 6순 재무님.. 늘~ 넘치는 에너지 잃지 마시고 활력소가 되어 주시길...

 

▲ 청봉님들 덕분에...

매월 두번째 일요일이 행복했고 1년이 즐거웠습니다..

내년에도 기대하겠습니다.

2024년 11월 07일(목).

가야산국립공원 : 경남 합천군/경북 성주군.

 

산행코스 : 법전리2주차장-마수폭포-법전리개방코스-칠불봉-상왕봉-토신골-성보박물관-해인사주차장.

산행시작 : 법전리2주차장  09시 36분.

산행종료 : 치인리주차장  15시 45분.

전체거리 : 약12.6km.

전체시간 : 06시간 09분.

운동시간 : 05시간 02분.

휴식시간 : 01시간 07분.

 

09 : 36  법전리2공영주차장.

09 : 41  법전리1공영주차장.

09 : 45  법전탐방지원센터.

09 : 49  마수폭포.

10 : 28  법전리개방코스입구.

12 : 53  칠불봉.

13 : 10  상왕봉.

13 : 46  토신골석조마애불.

15 : 34  성보박물관.

15 : 45  치인리주차장.

 

09시 32분 : 경북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2공영주차장 도착..

 

아박산이 올려다 보이는 법전리 마수골 일대는 조선시대의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서 언급한 십승지지(十勝之地)중의

한 곳인 '가야산 만수동'을 가리키는 마을이다. 실제로.. 마수리(법전동) 뒷산에 만수동이란 글씨가 쓰여진 표지석이 있다.

 

가야산을 배경으로 화랑님들의 단체샷..

오늘은 겨울의 문턱인 입동날이다.. 풍수지리 사상에 기반해 전란이나 흉년, 질병을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다는 십승지지

(十勝之地)의 명당마을인 법전리에서 역전의 용사들 답게 화랑님들의 홧팅!~ 소리도 우렁차다..

 

올라야 할 가야산 마루금을 가늠해보고..

 

 09시 36분 : 간결하면서도 실속있는 안내도를 보며 가야산을 향해 출발!~..

그런데.. 내용중에 이해가 안가는 옥의 티가 보인다.. 칠불능선과는 거리가 먼 "칠불능선 탐방로입구"라고 되어 있다.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 안내도.

선비산수길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총 11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독용산성에서 성주호 제방까지를 1코스로

‘성주호 둘레길(26.2㎞)’을 만들고.. 2코스는 마수폭포에서 청휘당까지 ‘가야산 에움길(11.3㎞)’을 조성하었다.

 

오늘의 등반코스인 법전리~가야산 개방구간은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인 에움길을 따라가다가 법전리 탐방로입구에서

가야산까지 새로 조성한 개방구간으로 올라갈 것이다..

 

 올가을에 본 단풍중에 제일 고운것 같다..

 

가야산 상왕봉과 칠불봉.

가야산의 최고봉은 칠불봉으로 해발 1433m이지만 가야산 주봉으로서의 지위는 1430m인 상왕봉에게 뺏겼다.

칠불봉은 경북의 성주군에 속하고 상왕봉은 경남 합천에 속한다.. 주봉의 지위 뿐만 아니라 산의 이름까지도 성주 가야산이

아닌 합천 가야산으로 빼앗겼는데.. 가야산에는 가야산보다 더 유명하고 우리나라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해인사가 있고

그 해인사가 합천군에 있으니 가야산은 합천 가야산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가야산은 몰라도 해인사는 다 안다..

가야산 자락에 해인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해인사가 가야산을 품고 있는 것이다.

 

09시 36분 : 법전리1 공영주차장(승용차 전용).

 

 09시 45분 : 법전탐방 지원센터.

 

봉양법전탐방로입구.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 에움길의 시작점이다.

에움길은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가야산 법전탐방지원센터에서 성주군 수륜면 신파리 청휘당까지 11.3km다.

 

마수폭포에 다녀오기로 한다..

 

 09시 49분 : 마수폭포(일명 죽전폭포).

 

다시 봉양법전탐방로입구로 돌아와서...

 

입동날 아침에 매우 추울거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걸음수가 더해짐에 따라 몸이 기분좋게 더워지고.. 산과 숲과 햇살이 보듬어주는 분위기 좋은 가을길이다.

 

지난해 환경부가 국립공원 가야산 내 신규탐방로로 지정.고시한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칠불봉 간 2.8km 구간을 성주군

에서 국립공원 가야산을 종주할 수 있는 길이 52년 만에 열려 명실공히 ‘성주 가야산 시대'가 열렸다.

 

화랑의 히어로(hero)인 산대장님이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산대장은 산악회의 얼굴이요.. 거울이다.. 늘~ 웃음띤 얼굴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09시 49분 : 법전리탐방로 입구..

아래는 또.. 칠불능선탐방로라고 되어있다.. 차라리 "칠불봉탐방로" 라고 하던지.. 성주군은 가야산국립공원의 신규탐방로

인 ‘가야산 법전리~칠불봉’ 간 2.8km의 구간을 2024년 6월 24일부터 개방햐였다.

 

써~억.. 고운 단풍색깔은 아니지만... 지난 여름날의 모진 폭염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그래도 이 만큼의 단풍색을 보여주려고 몸부림을 쳤을 나무들에게 수고했노라고 격려해주고 내년울 기대 한다.

 

단풍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광합성과 관련이 있다. 나무는 봄과 여름 동안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잎 속의 엽록소를 사용한다. 엽록소는 녹색을 띠며.. 이 성분이 햇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잎이 녹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더 이상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엽록소가 분해되기 시작하면서.. 나뭇잎의 초록색이 점차 사라진다.

엽록소가 사라진 후에는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이라는 다른 색소가 나타나게 되고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등의

아름다운 단풍이 만들어 진다.

 

탐방로 안내도를 보니 법전리개방구간을 3분의 1정도 올라 왔고.. 지금부터 난이도가 가팔라진단다.

 

 개방된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날것 그대로의 원시림이다..

 

아직도 아물어지지 않은 상처..

 

 11시 21분 : 처음으로 조망이 터지는 바위전망대..

 

 칠불봉에서 동성봉으로 이어지는 동장대능선..

 

 경북 성주군 방향...

 

 전망바위를 지나서부터는 오름길이 더욱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조여사님의 배낭꼬리도 잡고.. 핵폭탄님의 포도로 당보충을 한다.. 잘먹었습니다..

 

 첫 계단..

 

 두번째계단은..

 

 제법 길게 이어진다..

 

 세번째 계단..

 

 네번째 계단에서는 뒤를 돌아보는 핑계로 숨을 고른다.

 

노각나무.. 지대가 높고 척박한 곳인데도 이렇게 굵게 자랐다.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학명에 ‘koreana’라는 지역 이름이 들어간 순수 토종나무인 노각나무 이름의 유래로는 사슴뿔처럼

보드랍고 황금빛을 가진 아름다운 수피라는 뜻에서 녹각(鹿角)나무라고 하다가 발음이 쉬운 "노각나무"로 되었다.

 

고도가 높아지니 고드름이 꽁꽁이다..

끝날것 같던 계단은 올라서면 또 나타나고... 그렇게 지겹게 나타나던 계단을 서너개 지나고 나서..

 

 여덟번째 철계단을... 마지막으로 올라서니...

 

 경북 김천방면으로 시야가 터진다..

 

 서릿발..

 

 12시 40분 : 주능선에 다 올라 온것 같아서..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민생고 해결..

 

길가에 풍혈이 보여서 안쪽을 들여다 보니 대략6~7m의 깊이다.

 

 12시 46분 : 드디어 능선에 도착..

칠불봉100m...상왕봉 200m.. 먼저 칠불봉에 다녀 온다.

법전리 개방코스는 한마디로 두번 다시 오르고 싶은 생각은... 1도없는 코스다.. ㅠㅠ~.

 

경북과 경남의 경계지점에서 바라 본.. 상왕봉...

 

 대구방향..

 

가야산의 이름은 가야산(伽倻山) 외에도 우두산(牛頭山). 설산(雪山). 상왕산(象王山). 중향산(衆香山). 기달산(怾怛山)등

여섯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監)"권30 택리지에 가야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높고 수려함과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영험함을 말하여. 명산으로 불렸다 한다.

 

 12시 53분 : 칠불봉 도착..

칠불봉(七佛峯)은 가야국(伽倻國)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아들 거등(居登)은 왕위를 계승하여. 김씨(金氏)의 시조(始祖가 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의 성씨(姓氏)를 따라서

허씨(許氏)의 시조가 되었고. 나머지 7명의 왕자는 허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후 도를 깨달아 생불(生佛)이 되었다. 하며 그 밑에 칠불암(七佛庵) 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되어 이름 지어졌다.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열반에 들기 위해 칠불봉에서 수행을 했는데 오르기가 너무 험해서.. 어머니 허황후가 왔다가

되돌아갔다는 안타까운 옛이야기가 전해지는 봉우리다.

 

 동성봉의 동장대 능선..

 

서장대(상아덤)와 만물상 능선..

가야산은 여신인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하가 처음 만난 곳이다.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르는 신이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여신의 바위란 뜻의 상아덤에 내려앉았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기록은 최치원의 석순웅전'과 '동국여지승람'에 전해 오고 있다.

 

가야국 수로왕에게는 아들이 열 명 있었는데 1인은 태자가 되고  2인은 허씨를 내리고 일곱 사람은 인간 세상을 끊는 데

뜻을 두어, 보옥선인을 따라 가락산으로부터 운상원에 들어가 도를 배워 부처가 되었는데 그들을 일곱명의 부처 칠불

이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가야산에 존재하는 명칭인 상아덤 그리고 칠불봉이 생겨난 것이란다.

 

▲ 경북 성주군의 칠불봉에서.. 경남 합천군의 상왕봉으로..

 

▲ 난공불락의 철옹성처럼 우뚝 솟아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상왕봉..

 

▲ 상왕봉 오름계단.. 작년에는 고무발판이었는데 새로 바뀌었다..

 

13시 11분 : 상왕봉 정상석에는 가야산 우두봉이라 되어 있다.

가야산국립공원은 1972년 10월 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됐으며 전체면적은 7만 6256㎢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가 서로

잇대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산의 우뚝 솟은 상왕봉은 해발 1430m의 늠름한 위용을 자랑하며 가야산 전체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가야산은 오래전부터 해동(海東)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난 곳으로, 현재 우리나라

10대 명산으로 꼽혀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옛 선현들은 "산형은 천하에 절승(絶勝)하고 지덕(地德)은 해동에서 제일"이라고

가야산을 극찬했다. 범상치 않은 기상과 수려한 풍광은 예나 지금이나 훌륭하다. 가야산에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

으로 '팔만대장경'를 봉안한 해인사가 있으며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 도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경 가운데 가히

으뜸이라 불린다.

 

▲ 봉천대 가는길.

 

상왕봉에서 바라 본 칠불봉.

 

▲ 우두봉의 우비정... 소의 콧구멍에 해당된다고 한다.

자연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다.. 바위뿐인 이곳에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이다.

 

▲ 해인사 하산길..

 

▲ 뒤돌아 본 상왕봉.

 

▲ 가야산 제18경인 봉천대(奉天臺)... 가야산 중턱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 봉천대의 깍아지른 바위절벽이.. 마치.. 인디언 추장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이다.

 

▲ 시절이 하수상 하니... 꽃들도 정신을 못차린다.

 

13시 35분 : 일명.. 만세바위.

 

▲ "만세바위"라고 어느분이 지었는지.. 두손을 번쩍들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다.

 

▲ 봉천대 암릉이 어마무시하다..

 

▲ 가야산 생태계 감시카메라..

 

13시 44분 : 가야산 석조여래입상 가는길. 50m다..

 

▲ 13시 46분 : 가야산 석조여래입상..

 

▲ 마당바위..

 

▲ 유(柔:부더러움)함이 강(强:단단한것)함을 시간으로 이기는 방법이다..

 

▲ 용탑선원 칠불보궁..

용탑선원은 3.1독립운동 민족대표 백용성 조사(1864~1940)의 유덕과 유훈을 기리는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해

1945년 경성선사를 비롯 문도들이 세운 절이다.

 

용성조사의 용(龍)자와 사리탑의 탑(塔)자를 취해서 용탑선원이라 하고 참선정진하는 도량으로 창건하였다.

용성선사 용탑과 비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보물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72권을 소장하고 있다.

칠불보궁전에는 용성스님과  12제자의 초상이 보전되고 있으며  석굴암인 미타굴이 있다.

 

15시 14분 : 토신골탐방로 입구..

 

▲ 하산시간 15시 30분까지 주차장 도착은 무리일것 같아서 해인사 탐방은 통과.

 

▲ 해인사 일주문..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곧.. 있는 그대로의 세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세계이니

바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해인삼매는 또한 오염됨이 없는 청정무구한 우리의 본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우리의 마음이 명경지수의 경지에

이르러 맑고 투명해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한없이 깊고 넓으며 아무런 걸림 없는 바다에 비유되어 거친 파도, 곧 우리들 마음의 번뇌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해인삼매라 하였다.

 

▲ 영지..

가락국 허황후가 가야산 칠불봉으로 출가한 일곱 왕자들을 그리워하여 그림자라도 보게 해달라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했다는 곳이다... 가야산 정상이 이 연못에 비쳤다고 한다.

 

15시 34분 : 해인사성보박물관..

 

15시 45분 : 치인리주차장 산행종료..

 

▲ 트랭글을 정리해 보니..

전체거리 12.6km중에 개방구간 2.8km의 난이도가 높은 철계단구간을 포함해도 평균속도 2.5km/h의 아주 양호한편이다.

 

▲ 거창 오도산 너머로 하루해가 숨어든다...

 

중용(中庸)에..

등고자비(登高自卑).. 행원자이(行遠自邇)라 했다..

높은 곳을 오를 때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먼 곳을 갈 때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가야산은.. 한국의 명산으로..

첫째.. 산신을 상징하는 정견 모주라는 여신의 산이고...

둘째.. 호국불교의 성지로서 상징되는 산이고...

셋째.. 최치원(崔致遠)의 은둔 이후 역대 문인들의 유람과 풍류의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산이다.

 

가야산..

그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가장 낮은 자세인 민초들의 삶이 녹아있는 법전리에서 출발 하였고

그 멀고도 먼 이상과 진리의 세계를 엿보기 위한 천리길을 한걸음부터 시작하였다.

 

시간에 쫏겨 해인사에 들리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지만..

무사무탈에 감사한 하루다.

2024년 11월 03일(일).

암마이봉 : 전북 진안군.

 

산행코스 : 마이산북부주차장-천황문-암마이봉-탑사-은수사-천황문-가위박물관-북부주차장.

산행시작 : 마이산북부주차장  12시 03분.

산행종료 : 마이산북부주차장  16시 12분.

전체거리 : 약7.54km.

전체시간 : 04시간 09분.

운동시간 : 03시간 16분.

휴식시간 : 00시간 52분.

 

12 : 03  마이산북부주차장.

12 : 12  사양제.

12 : 41  천황문.

13 : 13  암마이봉.

15 : 11  탑사.

15 : 27  은수사.

15 : 37  천황문.

16 : 12  마이산북부주차장.

 

 12시 03분 : 마이산북부주차장 산행출발..

 

북부주차장에서 바라본 마이산..

1979년에 전라북도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3년에 명승 제12호로 지정되어 꾸준히 사랑받는 산답게 오늘도 전국에서 모여든 산악회버스들이 주차되어 있다.

 

북부주차장에서 마이산 등로는 서남진 방향이어서 햇빛을 안고 가는 코스다..

 

 마이열차 연인의길..

마이산 옛길을 2002년에 '연인의길'로 개칭한 후 일반 차량을 통제해 걷거나 마이열차로 오갈 수 있게 만든 산책길이며.

경로는 북부주차장~연인의길~천왕문까지 셔틀을 운행한다. 왕복 5천원..편도 3천원이다.

 

사양제(사양저수지)..

 

 사양제(사양저수지)는..

햇빛이 비켜간다는 뜻으로 예로부터 용왕제를 지냈다고 알려진 곳이며 제방에 오방기를 세워 호롱불을 켜고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정오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원래의 조룡대는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 침공시 백제의 호국룡을 낚았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섬으로 ​부여군 백마강에

있는 수중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데 여기에 있는 조룡대는 아마도 과거에 용신제를 지낸곳이라는 의미로 세운듯 한다.

 

버스 회차장.. 여기까지 와서 내려주고 가도 될것 같다..

 

명인명품관과.. 가위박물관은 하산할때 들리기로 하고 기존의 등산로를 따라간다.

 

때마침 천안에서 왔다는 산악회회원님께 한컷 부탁한다고 하니 흔쾌히 콜이다... 넉살좋고 재미있는 분인것 같았다..

 

마이사..

 

마이산 508계단.

 

마이열차(연인의길) 합류지점.

 

12시 41분 : 마이산 천황문.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을 연결하는 고개마루다.

이성계가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이산에 들러 왕조창업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돌탑을

쌓았는데, 그날 밤 꿈속에서 금척을 받은 뒤 이곳으로 올라와 천황문으로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금강의 시작이라고 했지만.. 금강의 발원지는 아니고.. 하늘에서 내린 한방울의 물흐름이 동서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조선 영조 때에 서산군수를 지낸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여암 신경준(1712~81년)선생의 역작 지리서인 산경표에

의하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에 의거하여 산이나 산줄기는 물이나 냇물을 건너가지 아니하고.. 물 이나 냇물은 산이나 산줄기를 넘어가지 못하는 자연현상으로.. 왼쪽에 내린 빗방울은 은수사와 탑사를 거쳐 지류인 은천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오른쪽에 내린 빗방울은 지류인 진안천에서 남강으로 흘러간다..

 

암마이봉 입구.

자연휴식년제로 암마이봉이 2004년에 통제 되었다가 10년 만인 2014년 10월 10일에 다시 개방되어 오늘에 이른다.

 

▲ 암마이봉 오름입구의 초소..

 

▲ 암마이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서 봉두봉 방향으로 갈것이다..

 

▲ 숫마이봉.

잘 만들어진 급경사의 데크를 따라 올라가는 길은 오름 왼쪽으로 마이봉과 끝까지 함께한다.

 

▲ 13시 13분 : 암마이봉 정상 인증샷 줄서기...

정상석을 지나가면 최고의 풍경 맛집인 전망대가 있다.. 그곳을 둘러 보고 오면 줄서기는 끝날것 같다.

 

▲ 돌탑을 지나..

 

▲ 암마이봉 최고의 풍경맛집에서..

 

▲ 합미산성에서 이어지는 마이산종주능선을 한눈에 담는다.

 

▲ 비룡대도 당겨오고..

 

▲ 고금당도 당겨 오고..

동학 혁명의 주체인 녹두장군 전봉준의 딸이 10년간 피난했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고금당 바로 아래에는고려말 고승 나옹선사의 수도처였다고 하는 나옹암(懶翁庵) 자연석굴이 있다.

 

▲ 탑영제도...

 

▲ 함께 즐길줄 안다는것은... 오랜 산행을 통해 만들어진 믿음이 바탕이 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 웃고 즐기고 정상석으로 다시 오니.. 예상대로 역시나다..

 

▲ 마이산이 내어주는 기막힌 가을 풍경을 눈으로 먹고 가슴으로 먹고 인증샷까지 마쳤으니..

 

13시 24분 : 이제는 먹방의 즐거움을 맛볼 시간이다. 산상 레스토랑을 신장개업한다.

 

▲ 처음 맛보는 가지버섯의 식감이 아주 좋다..

 

▲ 하산 하기전에 출발지였던 북부주차장을 가늠해 보고..

 

13시 57분 : 수마이봉정수리를 내려다 보며 하산 시작..

 

▲ 제2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마이봉..

 

▲ 수마이봉 화엄굴을 당겨보니 철망으로 입구를 막아 놓았다.. 오래전에 화엄굴에서 받아 마셨던 화엄약수가 생각난다.

마이산의 중턱 천왕문에서 수마이봉 쪽으로 100m쯤 올라가면 수마이봉 암벽에 화엄굴이 나온다. 화엄굴 내에는 사시사철

약수가 흘러나오며 24절기 중 춘분과 추분에만 약수까지 햇빛이 비치는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고 이 약수를 마시고 지성

을 드리면 숫마이산의 정기를 받아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오늘날에도 치성을 드리려는 많은 여성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낙석 때문에 위험하다고 하여 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 네팔 청년들이 찍어주었다.. 오늘따라 외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 초소앞에 내려와서.. 하산길은 봉두암쪽으로..

 

▲ 조금 내려오니 회장님팀을 만난다.

 

▲ 혼자걸어도 좋을것 같은 가을길이다..

 

▲ 암마이봉.. 그 엄청난 크기의 암봉을 에돌아 가는 길이라..

 

▲ 한동안 내려가다가 드디어 바닥을 치고는..

 

▲ 올라간 만큼 내려가고.. 내려간 만큼 올라야 되는게 산이다..

 

▲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니 제법 내려갔던 모양이다..

 

▲ 능선 마루에 올라서서.. 암마이봉 정상에서 못다푼 먹거리와 마실것으로 가판대를 친다.

 

▲ 잭 다니엘과 꼬부랑 안주들..

 

▲ 깜짝벙개 먹거리타임으로 기분이 달달하고 나이스다..

 

▲ 달달한 기분으로.. 햇살이 적당하게 파고드는 운치있는 소나무길을 따라가면..

 

▲ 암마이봉 정상 전망대 아래쪽이다.

 

▲ 대인의 마음으로 한치의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 박수보냅니다..

 

암마이봉에는 움푹 파여있는 크고 작은 많은 굴들이 보이는데 이를 타포니 지형이라고 한다.

타포니 지형은 바위 내부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바위 표면을 밀어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 마이산 탑사 입구..

입장료 : 성인 ₩3,000, 중고생 ₩2,000, 초등학생 ₩1,000 (70세 이상 경로우대..국가유공자.. 장애자는 무료 입장)..

 

▲ 마이산 탑사는 1885년 이갑용처사가 마이산에 들어와 1900년부터 탑을 쌓기 시작하여 1935년에 인법당(대웅전)

산신각을 지어 부처님을 모셨다. 평생 동안 108기의 탑을 완성시켰으며 현재 80여 기의 탑이 남아 있다.

당시에는 절 이름이 없었으나.. 언제부턴가 탑사로 불리기 시작하였고.. 이갑용처사의 손자가 사찰등록을 하면서 정식으로

탑사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다.

 

▲ 마이산 탑사의 미스터리

접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시멘트를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100여년 동안 태풍과 회오리 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다.  탑들이 위치한 곳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의 계곡인데 이곳은 유난히 세찬 바람이 부는 곳이다.

 

지형적으로 앞쪽이 넓고 뒤쪽이 좁은 계곡이어서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쳐 오는 것이다.

특히 여름철 태풍이 불어오면 언덕의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웬만한 나무는 뿌리채 뽑히지만 이 곳의 돌탑은 조금씩 흔들

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 오른쪽 뒤쪽에 보이는 젊은 새댁들의 친구가 찍어준 것이다..

 

▲ 이 사진은 꼭대기까지 담기위해 회장님이 누워서 찍은 사진이다. 굿~..

 

▲ 마이산 은수사 가는길..

 

▲ 수마이산과 은수사..

은수사(銀水寺)는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머물때 물이 너무 맑아서 은수사라 지었다고 한다.

 

▲ 이 사진도 윤회장님이 몸을 던져 뒤로 누운자세로 찍은 사진이다..ㅎㅎ~

 

▲ 나와 교대하여 찰칵..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

조선 태조 이성계가 건국의 기원을 다지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손수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운 나무라고 한다.

청실배나무는..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춘향이 집을 찾아가 첫날밤을 치르기 전.. 월매가 내온 주안상에 여러 과일이

올라와 있는데.. 이 중 ‘청슬이’ ‘청술레’라고 한 과일이 바로 청실배(靑實梨)라고 한다.

 

▲ 은수사 무량광전..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上院寺)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절 터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正明奄)이라 했다. 해석에 따르면"正"은 5획으로 오행, "明"은 일월이므로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현재는 태극전이라 불리는 전각으로 되었지만 ‘정명암’이란 이름을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으로 보면 태극은 그 상징

이 되어 있다.

 

▲ 여기서 보는 수마이봉 모습은 투구처럼 보인다. 

 

▲ 천황문 올라가는 길...

 

15시 48분 : 가위박물관.

고려시대의 가위와 동서양을 망라한 고대의 가위에서부터 현대의 가위 1500여점의 희귀한 모습그대로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색적인 박물관이다.

 

 15시 53분 : 진안마이산 명인명품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결합하여 공예작품을 전시, 시연, 홍보와 더불어 마이산의 신비한 역사와 전통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공간이다... 부채동, 자수동, 한지동 3개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채, 유기, 도자, 자수, 닥종이, 한지패션 등

5,0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황금돼지.

이지역은 애저찜(새끼돼지 찜)으로 유명한곳이다.

 

<애저찜 이야기>

3개월마다 한번씩, 보통 여덟 마리에서 열다섯 마리나 새끼를 낳는 돼지 아무 거나 잘 먹는데다가 새끼를 많이 치는 돼지는

옛날부터 농가에 돈을 벌어다주는 중요한 가축이었다. 그런데 돼지가 하도 새끼를 많이 낳다 보니, 가끔은 불상사가 생기기

도 했다. 뱃속에서 죽은 채로 태어나는 경우도 많았고, 잠든 어미 품에서 젖을 빨다가 깔려 죽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돼지를 키우면서도 내다 팔 생각만 했지, 돼지고기 맛 한 번 보기 힘들었던 가난한 농가의 사람들은 막 죽은 새끼돼지라도

버리지 않고 요리를 했는데, 고기를 먹으면서도 마음은 슬프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이 요리를 ‘새끼돼지(兒猪)’를 먹는 것이 슬프다(哀) 하여 ‘애저(哀猪)’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자연이 만든 최고의 무대에서

솔잎.. 최고의 저력을 재확인 하였던 하루였습니다.

 

회장님..

수고 많았습니다..

2024년 10월 27일(일).

용지봉 : 대구시 수성구.

 

산행코스 : 용지역-대덕지-용지봉-애기봉-체육시설-조망바위-법니산-지산동대포항횟집.

산행시작 : 용지역  08시 58분.

산행종료 : 대포항횟집  16시 14분.

전체거리 : 약8.59km.

전체시간 : 07시간 16분(의미없음).

운동시간 : 04시간 18분.

휴식시간 : 02시간 57분.

 

08 : 58  용지역.

09 : 11  대덕지.

13 : 29  용지봉.

14 : 00  애기봉.

14 : 36  체육시설.

15 : 00  조망바위.

15 : 34  법니산.

16 : 14  지산동대포항횟집.

 

 08시 58분 : 3호선 용지역에서 산행출발..

집에서 나올때 까지만 해도 오늘의 대구날씨는 흐리지만 비소식은 없다는 예보였다..

그런데 흐리기는커녕 의외로 용지역의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빛이다..

 

수성구의 복명초등학교 높은 담장위로 한줌의 아침햇살이 머물고 있는 용지봉을 향해서...

 

 09시 07분 : 814시내버스 종점이면서 공영주차장을 가로질러서..

 

대덕지 제방에 가득한 국화향에 취하고..

 

향기나의 미소도 피우고...

 

진밭골입구의 대덕지.. 그런데 수성구청에서는 "가라지"라고 부른다...

 

대덕지 상류를 지나자 말자 급경사로 치오름을 하는 입구에서부터 하늘빛이 이상해 진다..

방구돌을 돌아가는 급경사구간을 마지막으로 치고 오르면..

 

용지봉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지능선 마루금에 올라선다..

 

▲ 잣나무숲길에서는 완전히 습도가 높아지고..

 

 가지버섯..

포자식물이 좋아하는 조건이 되었는지 길가에 온통 가지버섯 군락지를 만난다..

 

 가지버섯 대박에..

 

기분좋은 항기나팀은 현풍아우가 가져온 음양곽주로 즉흥파티가 벌어진다..

음양곽(삼지구엽초)은 염소가 이풀을 먹고 하루에 백번을 교미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풀이다.. 좌우지간 좋다..ㅎㅎ~

 

 그렇게 시작된 한잔이... 음양곽 1병을 비워버리고.. 조고문님의 특제양주까지 나오고.

 

 이렇게 판이 커져 버렸다.. 바쁠것 없는 근교산행이라 느긋하다..

 

다시 길을 이어가는데 가지버섯이 또다시 유혹한다...

용지봉이 내어주는 것을 우리는 향기나원칙에 따라서 합동생산을 하고 공동분배를 한다.

 

12시 20분 : 이번에는 꼬부랑술과..

 

 꼬부랑과자 잔치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느맛과도 비교불가한 산상 커피다.

 

하늘님은 무슨 배알이 그렇게나 틀렸는지.. 잔뜩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방울 두방울 듯기 시작한다..

 

진밭골에서 올라오는 주등로와 만난다.

 

용지봉으로 가는 가을길... 분위기 좋고 조코!~..

 

비는 다행히 는개비수준이라서... 산행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대덕산에 드리운 구름띠..

 

헐티재를 넘어 비슬산으로 이어지는 가창방면의 병풍산 능선..

 

언제나 그렇듯이 용지봉 돌탑이 여전히 반겨준다.

 

13시 29분 : 용지봉(龍池峰).

과거 큰 홍수가 나서 한 마리의 용이 앉을 공간만 남기고 모두 침수되었다. 그때 침수되지 않고 남은 부분이 마치 용의

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철탑이 있는 올라왔던 능선 그 뒤쪽은 대덕산이고... 오른쪽 골짜기끝에는 진밭골이다.

 

수성구 최고의 조망터인 용지정.

 

 당겨 본 청룡산.

 

 향기나의 살림꾼 안방마님들..

 

용지봉은 구름에 잠기고..

 

 꽃향유 군락지..

 

14시 36분 : 체육시설..

 

 청음정(淸音亭).. 맑고 청아한 자연의 소리를 듣는 곳이다.

 

15시 00분 : 조망바위.

 

15시 34분 : 법니산..

 

지산배수지 방면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불교한방병원이 보이는 지점으로.. 산행종료

 

 

하산식의 향기나님들..

 

오늘의 용지봉 산행은..

맑았다가 흐리고 급기야 비까지 내렸지만..

 

다행히 큰비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내어준 선물에 감사하고

하산하여서는 현풍에서 먼길에도 한달음에 달려와준 아우님들 고마우이~

2024년 10월 25일(금).

가야산국립공원 : 경남 합천군.

 

산행코스 : 길상암주차장-보궁-노구승천암-입술바위-오봉산-남산제일봉-돼지골갈림길-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산행시작 : 길상암주차장  09시 24분.

산행종료 : 해인사터미널  15시 15분.

전체거리 : 약6.91km.

전체시간 : 05시간 51분.

운동시간 : 04시간 02분.

휴식시간 : 01시간 48분.

 

09 : 24  길상암주차장.

09 : 35  마야불모전.

09 : 59  보궁.

11 : 13  돌고래바위.

11 : 17  노구승천암.

11 : 50  입술바위.

13 : 15  오봉산.

13 : 56  남산제일봉.

14 : 20  돼지골.

15 : 15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07시 30분 : 서부정류장에서 함께할 동료를 만나고..

 

▲ 해인사로 갈때는 08시 00분에 출발... 올때는 오후 16시 00분차로...

 

▲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까지의 요금은 8900원.. 예매..

 

▲ 서부정류장 2번승차장에서 해인사행 리무진버스탑승.

 

09시 21분 : 해인사 길상암주차장..

한글 길상암은.. 국산표기법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자는 중국식표기법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이다...

"불타미아무나".. 헷갈린다.. 부처님도 한국에서는 한국법을 따르라고 하실텐데..ㅎㅎ.. 나무 아미타불!~~..

 

▲ 오늘의 산행코스는 길상암을 병풍처럼 둘러선 암릉.. 길상암에서는 묘길상봉이라 부르는.. 저곳으로 오를것이다.

 

▲ 길상암 불광보탑.

미얀마 불교협의회의장 종정 우쇼비타 대종사가 모시고 있던 사리를 불기 2538년(서기1994년) 1월 15일 미얀마를 방문한

명진 스님께 9과와 가사발우 일체를 전하고 2539년(1995년) 11월 3일 25과의 사리를 합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

34과를 모신 탑이다.

 

▲ 길상암 입구.

창건 일화를 보면 자운스님이 1969년에 스리랑카 사타티싸 스님으로부터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사리 2과를 모셔왔고 영암

스님과 함께 봉안할 장소를 찾다가 1972년에 이곳에 창건하였고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보궁이 있다.

 

▲ 길상암 오름계단에서 좌측으로 열려있는 길을 따라서 한국에서는 여기 한곳 뿐이라는 불모전에 들린다..

 

▲ 마야불모전.

 

▲ 마야부인상.

아기 석가모니가... 왼손은 땅을.. 오른손가락은 하늘을 가르키며.."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라!~~ 하고.. 이 연사 힘주어 외칩니다!~.. 하는 모습이다..

 

▲ 다시 길상암으로...

 

▲ 길상암과 마주보이는 835봉.. 서장대에서 흘러내린 능선상의 봉우리로 기운이 좋은 곳이라고 한다.

 

▲ 길상암 나한전에서 보궁으로 가는길로 올라서면...

 

▲ 관음전 터.

1999년 8월 2일에 발생한 화재로 복원중이라고 한다.

 

▲ 대각천이라는 샘이 있다... 깨달음을 얻는 샘이라는 뜻인듯 하다..

 

▲ 계단을 올라서면 제일먼저 동종이 반긴다..

 

09시 59분 : 길상암 보궁에는 진신사리와 세분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다.

 

▲ 길상암 보궁 오른쪽계곡에 출입금지라는 표지앞을 지나서..

 

▲ 노구승천암으로 가는 들머리는 길상암 보궁앞을 지나면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 며칠전에 내린 비로 낙엽과 마사토가 쓸려 내려와 길을 덮었지만.. 흔적은 보인다.

 

▲ 안부에 올라서면 엄청난 바위가 길을 막고 섰지만..

 

▲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충분히 오를수 있는 홈통을 오른다.

 

▲ 삼지창바위가 거친모습으로 서있고 천천히 살펴보면 바위틈 사이시이로 내어주는 길을따라 올라선다.

 

▲ 삼지창바위에 올라서면 밑에서 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암봉이다.

 

▲ 암봉을 넘어서..

 

▲ 두번째 암봉 중간 지점에 올라서니 선답자님이 저 슬링밧줄을타고 올라가지 말라고 했던 간이밧줄이 보인다.

저기로 올라가면 그위에 더 높은 절벽길이 있어 올라가지 못하고 결국은 돌아서 내려 와야 한다고 한다.

 

▲ 오른쪽 절벽에서 내려다 보니 암릉 밑으로 돌아가는 안전한 길이 보인다.. 다시 내려 간다..

 

▲ 암봉밑을 돌아서 선답자가 올라가라고 했던 지점을 만난다.

 

▲ 아래로는 암릉위의 멋진 소나무가 있고...

 

▲ 바로 위에는 돌고래를 만난다.

 

▲ 여기.. 돌고래바위가 풍경맛집이다..

서북쪽으로 치인리 집단상가 마을이 보이고 김천의 단지봉도 보인다.

 

▲ 북쪽으로는 해인사가 눈에 들어오고...

가야산에서 거창의 우두산과.. 김천의 단지봉으로 이어지는 두루봉 능선이 마루금을 그리며 달려 간다.

 

가야산은 백운에 싸여 있다.

 

▲ 당겨 본 해인사 성보박물관.

 

▲ 가야할 암릉을 올라서니..

 

11시 17분 : 노구승천암..

 

▲ 꼭 만나고 싶어서 힘들게 올라온 노구승천암이기에 자꾸만 눈이 간다.

하늘로 오르려는 거북이의 형상이라는 늙은거북이다.. 그래서 노구승천암(老龜昇天巖)이라 부른다고 한다.

 

▲ 넌 뭐냐?...

 

▲ 입술바위 오름길..

온통 바위뿐인것 같아도... 이렇게 길을 내어 준다.

 

▲ 입술바위 오른쪽으로 그 누구의 오름도 허락하지 않을것 같은 별개의 암봉이 있다.. 그래도 누군가는 오를것이다..

 

▲ 근래에 만나지 못한 노거송을 여기서.. 만난다.. 굵기가.. 성인남자 5~6명을 합친 정도다..

 

13시 15분 : 오봉산..

 

 13시 45분 : 돼지골갈림길 쉼터..

 

남산제일봉까지 0.7km.. 왕복 1.4km.. 다녀와서 치인리 주차장으로 하산할 것이다.

 

▲ 돼지골쉼터에서 올라가는 마지막 마의계단이다.

 

▲ 남산제일봉은...

멀리서 보면 정상의 형상이 이글거리는 불꽃과 같아서 화기(火氣)의 기운이 강한 산이라고 한다.

 

▲ 남산제일봉의 오엽송이 여전히 늠름하다..

 

13시 55분 : 남산제일봉에 전에 없던(?) 죠스바위가 있다...

 

▲ 남산제일봉에 묻혀 있는 소금단지 전설.

해마다 단옷날이 되면 해인사 스님들이 산꼭대기에 다섯 개의 소금 단지를 동서남북의 네 방향과 중앙에 묻으며 한 해 동안

불이 나지 않기를 기원하는데.. 소금을 묻는 행사는 불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남산제일봉의 기운이 해인사 대적광전의 기운과

맞부딪쳐 큰불이 일어난다 하여 남산제일봉이 품고 있는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해마다 계속되어 왔다고 한다.

 

▲ 청량사방향 하산능선...

만물상에 버금가는 멋진능선인데.. 버스시간을 못마출것 같아서 아쉽지만 돼지골로 하산한다.

 

▲ 불꽃바위..

 

▲ 절묘하게 받치고 있는 바위조각..

 

▲ 척박한 바위사이에 홀로선 오엽송에게 응원을 보내준다..

2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푸르름 잃지 않고 그모습 그대로 서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움이 든다.

 

▲ 앞뒤의 바위가 겹친 모습이 새처럼 보인다...

 

▲ 길가에 노송의 고목이...나는... 속을 다 비워버리고 수많은 시간을 견디며 이자리를 이렇게 지켜 왔노라며... 인간의 얕아

빠진 마음보를 나무라는 것 같다..

 

▲ 돼지골의 가을은 시작도 하기전에 말라 비틀어 떨어지는 잎이 더 많은것 같다.

 

▲ 작년 2023년 4월에만 해도 영업중이었던것 같았는데... 일부는 허물어지고 있다.

 

15시 07분 : 돼지골탐방지원센터.

 

▲ 치인리 집단상가지역..

 

15시 15분 : 치인리..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 어느날 인터넷 서핑중에 눈에 확~ 들어온 노구승천암... 그곳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듬뿍 받은 탓인지 몸도 가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16시 정각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치인리를 떠난다.

2024년 10월 17일(목).

대둔산도립공원 : 전북 완주군.

 

산행코스 : 괴목동천주차장-촛대바위-금오봉-서각봉-삼형제바위-마천대-낙조대-생애대-태고사광장-행정리주차장.

산행시작 : 괴목동천주차장  10시 09분.

산행종료 : 행정리주차장  15시 41분.

전체거리 : 약9.74km.

전체시간 : 05시간 32분.

운동시간 : 05시간 01분.

휴식시간 : 00시간 31분.

 

10 : 09  괴목동천주차장.

10 : 36  촛대바위.

10 : 56  간첩바위.

11 : 04  옥계봉.

11 : 40  금오봉.

12 : 42  서각봉.

13 : 12  형제바위.

13 : 27  마천대.

14 : 00  낙조대.

14 : 26  생애대.

14 : 59  태고사광장.

15 : 41  행정리주차장.

 

 10시 09분 : 괴목동천 주차장 도착..

대둔산 남릉의 들머리는 천등산하늘벽과 마주한 17번국도변의 구도로에서 출발 한다.

 

 17번국도 건너편의 절개지 펜스에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면.. 대둔산 전체 등로중에서도 가장 소외되어 상대적으로 등반객이 적어서 다듬어 지지않은 날것 그대로의

너덜길은 좌측 골짜기쪽으로 돌아가다가..

 

자비심은 1도없는 급오름의 돌계단이 직등으로 올라가라 한다.. 그래도 올라야 하는 이유가 있다.

대둔산 남릉은 15년전인 2009년에 오른적이 있다.. 그때도 몹시나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오늘은 전문 사진작가들만이

한장의 일출 사진을 담기위해 알게 모르게 찾아 간다는 삼형제바위를 만나기 위함이 "A"코스를 선택한 이유다.

 

밧줄이 매여있는 대슬랩은...

 

암릉을 타고 오르면 440봉 아래 전망바위에 있는 돌탑군과 만난다...

1주일만 젊었으면 도전해 보겠지만.. 더구나 오늘은 짝지가 "B"코스로 가는 바람에 동행도 없는 홀로다.. 아서라 말어라~..

 

▲ 안전하게 440봉에서 돌탑을 다녀오기로 하고.. 거친계단을 달래며 차근차근 올라간다.

 

 10시 36분 : 촛대바위 전망대..

 

촛대바위와 천등산 하늘벽..

 

촛대 라기보다는 망부석 같다... 어디서 이런 절묘한 생김새의 바위를 찾아 내었을까..

 

 10시 38분 : 신선바위..

 

10시 49분 : 440봉에서..

 

조금 아래쪽의 돌탑에 다녀 온다...

누군가가 어떤사연의 간절한 마음으로 쌓은 돌탑일까.. 모두가 넉넉함으로 충만하기를 바래 본다.

 

 10시 56분 : 간첩바위..

바위밑에 간첩이 머물었다는 비트가 있다.. 지금은 작은 돌들로 막아 놓았다.

 

간첩바위 뒤통수 꼭대기에 묘하게 생긴 바위가 하늘기운을 받고 있다..

 

11시 04분 :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 본 옥계봉..

 

지난여름의 폭염탓인지 올해의 단풍은 곱지가 않다..

 

암릉을 만나면..

 

안전한 우회로인 산죽길을 올라서면...

 

전망바위가 있어 올라가 본다...

 

지나온 옥계봉 너머로 보이는 천등산.. 그 너머엔 운장산이 가물거리고..

 

북쪽으로는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인 법계사를 품은 월성봉이 보이고..

짜개봉은 6.25전쟁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안내판에는 쌍칼바위로 되어 있는데.. 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 어디서 보아야 쌍칼일까?...

 

처음으로 이정표 다운 이정표를 만난다.

 

 가야할 서각봉 절벽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바위가 보여서..

 

당겨보니.. 날아가던 메뚜기가 붙어 있는 모습이다.

 

12시 42분 : 서각봉(허둥봉) 삼거리..

이정표가 낡아서 땅에 뒹굴고 있어서 방향을 잘 보지 않으면 허둥지둥할 판이다.

 

 곱지는 않아서 아쉽지만.. 그래도 대둔산이 내어주는 단풍이라 담아 본다.

 

저 능선만 올라서면.. 삼형제바위를 만날수 있을것 같다.

 

찾았다.. 삼형제바위를... 그런데 마침.. 점선안에 홀로산객이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삼형제바위 측면..

 

13시 08분 : 삼형제바위로 내려가는 숨은 들머리를 찾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입구에서 내려다 보니.. 사진으로는 실감이 안나지만 실제로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아찔한 급내림경사다..

형제바위까지는.. 내림길 입구에서 약 2~3분의 짧은 거리지만 난이도는 상급이다..

 

조심조심 내려가니 조금전에 본 산객이.. "길이 없습니다"..하면서 올라온다.. "삼형제바위를 보았나요?" 하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설명을 해주고는 나를 따라오라고 하니 따라온다.

 

 13시 12분 : 삼형제바위.

 

삼형제바위 일출은 마니아(mania)들이 찾는곳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진.. 핫 플레이스(Hot place)다.

 

 삼형제바위와 나.. 이 그림 하나를 위해 거친 남릉길을 헐떡이며 올라 온 것이다.

 

우연히 만난 산객분 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삼형제바위에 생명터를 잡은 기묘한 노송과의 조화는 가히 경탄할만 하다.

 

삼형제바위에서 올라온 능선도 바라보고..

 

대둔산 최고의 핵심구간인.. 구름다리와 삼선계단..

 

 올라가는길.. 심약하거나 산행경험이 짧은 분들은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대둔산의 유래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 중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둔산고산현북 45리 ”라고 쓰여져 있고 300년전(1658년 )에 썼다는 안심사적비에는 크게

“대둔산 안심사비 ”라고 쓰여져 있다. 그 아래 비문 첫줄에 “조선국 전라도 고산현 대둔산 안심사 사적비명”이라고 쓰여

있다. 모두 싹 나올 둔 (芚 )자를 써서 대둔산 이라고 썼다고 한다. 대둔산의 바른 이름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듬산 ’이다.

 

이것이 한자화 되어 듬의 뜻이 들어 있지 않고 듬과 유사한음의 둔으로 되어 대둔산이 되었다 한다.. 벌곡 , 가야곡 등 일부 논산 사람들은 그곳에서 보는 한듬산의 모습이 계룡산과 비슷하지만 산태극, 수태극의 대 명당 자리를 계룡산에 빼앗겨

한이 되어.. "한이 든 산" 이라는 뜻으로 "한듬산" 이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한듬산의 한을 크다는 뜻의 대(大)자

로 하고.. 듬의 그 소리만을 비슷하게 둔(芚), 또는둔(屯)으로 하여 "대둔산 (大屯山 )"이 되었다고 한다.

 

13시 27분 : 대둔산 마천대..

대둔산 최고봉인 마천대는 문지를 마(摩), 하늘 천(天)을 써서 "하늘에 닿는다"는 뜻으로 원효대사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거나.. 내려 가는 길..

 

 낙조대로 가면서 뒤돌아본 마천대...

 

 낙조대와 그아래 낙조산장...

 

▲ 당겨 본 낙조산장... 바로 뒤에는 논산수락리 마애불이 있다.

낙조산장은 논산시에서 1억 여원의 경비를 들여 대대적으로 수선한 대피 및 휴식 공간이었으나... 충청남도가 대둔산도립

공원 내 탐방객 대피 휴식 시설을 무허가 시설물이란 이유로 낙조산장을 폐쇄하고 시설 관리업무를 담당했던 상주 관리인

을 철수시킨후 대책 마련 없이 방치하고 있어 비판 여론이 거세다.

 

▲ 칠성봉..

 

 13시 55분 : 낙조대 갈림길에서 산이좋아 회장님을 만난다.

 

▲ 14시 01분 : 낙조대.

 

대둔산 어디에나 올라 서면 감동의 파도가 여기저기에서 소리치며 몰려 온다. 그래서.. 대둔산은 정말 명산이다.

 

▲ 대둔산 북릉의 돗대봉.. 다시 걷고 싶은 길이다.

 

▲ 다시 낙조대 갈림길에 내려와서..

 

▲ 낙조대에서 동쪽의 생애대로 내려가는길에는 어느새 응달이되어 서늘함이 느껴진다.

 

▲ 태고사광장 이정표에서 배티재 방면으로 약 100m정도 진행하면..

 

▲ 생애대로 쉽게 오를수 있는 능선길이 있다.

 

▲ 누군가의 정성이 있는 돌계단을 지나고..

 

▲ 우람한 바위 틈새로 올라가면 왼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여기까지 왔다가도 길이 없다고 돌아서는 사람들도 있다.

 

▲ 명품송이 있는 저기가 생애대 너럭바위(일명 상여바위)다.. 뒤쪽은 수십길 낭떠러지다.

 

▲ 대둔산 북릉길이다.

 

용머리에 해당하는 생애대에는 전설이 하나 내려온다.

어느 한 스님이 백일기도 끝에 용머리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득도할 수 있다는 현몽을 받았지만 생에 대한 애착으로 용머리

에서 주저하는 사이 평생 살생을 하며 살아온 사냥꾼이 속죄하고자 뛰어내렸고 그 사냥꾼이 스님 대신 득도를 했다고 한다.

도의 실천이 참으로 어려움을 깨우치는 대목이다.

 

▲ 생애대를 내려와서 태고사광장으로..

 

14시 59분 : 태고사 광장..태고사는 패쓰하고 행정리주차장으로..

 

▲ 태고사샘물.. 한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 오늘의 하산길 동행님들..

 

▲ 장군샘으로 가는길 입구..

 

15시 41분 : 행정리주차장.. 대둔산도립공원사무실.. 산행종료.

 

▲ 트랭글을 정리하고..

 

▲ 행정저수지(청림저수지)둑밑에 있다는 하산식 장소를 찾아서 둘레길을 따라서 걷기로 한다.

지명하나도 통일이 안된다.. 다음지도에서는 행정저수지로... 네이버지도에서는 청림저수지로 표기 되어있다.

 

▲ 행정저수지 아래 청림골차마실..

 

▲ 이색적인 실내인테리어다.

 

▲ 노랑딱정벌레가 왜? 거기서 나와~~..

 

▲ 능이버섯전골... 4인분 5만량.. 토속적이어서 그런지 입맛에 딱이다.

 

▲ 산이좋아회장님의 건배...

 

▲ 다 같이.. 소리질러!~~.. 건배!~..

 

17시 12분 : 대둔산북릉의 돗대봉..

먹고 마시고 건배한번 크게 소리지르고.. 밖으로 나오니 산촌마을에 땅거미가 내려 앉는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연이라고 했다.

거친 남릉의 오름길에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대둔산 여신의 치마폭에 빠져서

자리를 뜰줄 모르다가도 다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오히려 몸은 가볍다.

 

심신이 피곤하면 휴식자리부터 찾기 쉽고

인생이 고단하면 안식자리부터 찾기 쉽다고 했다..

 

그 힘들고 고단함을 삼형제바위 그 황홀한 비경으로 풀어내고

땀으로 이겨낸.. 나 자신에게 박수 보내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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