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02일(일요일).
연화산도립공원 : 경남 고성군.

 

산행코스 : 옥천사주차장-연화1봉(매봉)-느재고개-편백숲쉼터-월곡재-연화산-남산-황새고개-옥천사-옥천사주차장.

산행시작 : 옥천사주차장 10시 09분.

산행종료 : 옥천사주차장 14시 28분.

전체거리 : 약7.4km.

전체시간 : 04시간 18분.

운동시간 : 03시간 39분.

휴식시간 : 00시간 38분.

누구하고 : 솔잎산악회.

 

10 : 09  옥천사주차장.

11 : 19  연화1봉(매봉).

11 : 42  느재고개.

11 : 45  편백숲쉼터.

12 : 41  월곡재.

13 : 02  연화산.

13 : 32  남산.

13 : 46  황새고개.

13 : 55  청련암.

14 : 08  옥천사.

14 : 28  옥천사주차장.

 

 10시 09분 : 옥천사주차장..

 

▲ 공룡의 고장답게 공룡의 조형물이 보이고..

 

▲ 등산로 입구 계곡 암반에 공룡발자국이 있다.

 

▲ 연화1봉(매봉) 들머리..

 

▲ 올해 을사년에도 건강관리 잘하시어 산하를 마음껏 누비시기 바랍니다.

 

▲ 어제 밤사이에 비가 내렸는지 촉촉한 낙엽길과 산속의 공기가 너무나 상쾌하다.

 

▲ 촉촉히 젖은 낙엽은.. 밟아도 밟아도 사박거리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약간은  미끄러운 오름길에 바람끼 하나 없고..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조차 없는 고요한 산길을 다들 잘도 올라 온다...

 

10시 39분 : 주차장에서 출발 30분만에 356봉에서 흘러내린 지능선에 도착하여 숨을 고른다..

 

10시 48분 : 356봉..

 

 오늘은 영상12도로 겨울속의 완전 봄날씨 같아서...다들.. 두꺼운 패딩 겉옷은 벗어 버린다..

 

 356봉에서 연화1봉으로 가는길은 착하게 이어지다가..

 

 

 여기서부터 살금살금 고개를 들기 시작하여..

 

 연화1봉까지 지그재그의 된오름이다.

 

11시 18분 : 쉼터가 있는 연화1봉에 도착.

 

 하산은 느재고개 방향으로..

 

▲ 연화1봉이 급격하게 고개를 숙이며 내려가지만 앙지쪽이라 미끄럽지는 않다.

 

▲ 내림길에 외계인이 그렸는지 뜻을 알수 없는 그림이 있어 잠시 섰다가 내려 간다.

 

 11시 42분 : 느재고개..

 

▲ 여기서 연화산 1.35km 방향으로.. 약 100미터만 가면 편백숲 쉼터이다.

 

▲ 편백숲 쉼터 입구.

 

▲ 햇살이 너무 좋다.

나무들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도 청량하고 맑은 공기에 머리속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 목장승들이 옹기종기... 일소일소일노일로(一笑一少一怒一老)라는 글귀가 보인다.

화내지 않고 웃으면서 살아도 짧은 세상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신의 분수에 맞게 만족하며 살자..

 

 12시 41분 : 월곡재(일명 싸리재)..

 

 12시 57분 : 돌탑 전망대..

연화산 그룹에 속한 산에서는 조망이 거의 없고.. 이곳이 유일한 조망처이다.

 

▲ 옥천사 계곡과 가야할 남산 방향으로.. 연화산이라 이름을 짓게된 선유봉. 옥녀봉. 탄금봉이 줄지어 서 있다.

신선이 거문고를 타고 옥녀가 비파를 뜯는 모양이라 원래는 비슬산(琵瑟山)이라 불렀다. 조선 인조 때 학명대사가

연꽃 봉우리를 반쯤 벌린 "반개연화(半開蓮花)"의 아홉 봉우리가 옥천사를 감싼다고 하여 연화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 조금전 올랐던 연화1봉과.. 옥천사주차장에서 올라온 능선..

 

▲ 당겨 본.. 옥천사..

 

▲ 좌선바위..

 

 13시 02분 : 연화산..

연화산 그룹의 총수격인 산이다. 여기도 조망이 없다. 전설에 의하면 연화산은 "물무덤이산"라고도 부른다.

연화산 아래에 있는 샘은 숫샘이고, 옥천사 대웅전 뒤 옥천(玉泉)은 암샘이라고 전해 진다..

 

1983년 고성군 4개 면(개천면, 영오면, 영현면, 대가면)에 걸친 면적 28.72㎢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신라 때 창건된 고찰 옥천사(玉泉寺)가 있어 이름 값을 더하고 있는 셈이다.

 

▲ 오늘의 산행중에.. 가장 조심해야 할 내림 구간이다. 응달에 물기가 있는 부식토라서 미끄럽다.

 

 13시 20분 : 운암고개.

산대장이 정한 하산시간이 15시까지다.. 시간 여유가 많아서 남산을 오르기로 한다.

 

▲ 남산 오름길의 너덜겅..

 

 13시 31분 : 남산..

 

13시 36분 : 갓바위 갈림길에서.

오늘은 15시에 시산제 행사가 있다.. 200m의 갓바위와 용바위는 다음으로 미루고 옥천사로 내려 간다..

 

▲ 황새고개..

 

▲ 여기서 청련암쪽으로 하산...

 

▲ 청련암.

 

▲ 한글 현판의 청련암... 한층 친근한 느낌의 사찰이다.

청련암은 옥천사의 산내암자이다. 창건년대는 1678년(조선, 숙종4년)으로 기록 되어 있으며..

창건주는 묘욱선사(妙旭禪師)라고 하나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묘욱선사는 1677년 대규모 중창불사를 하여 가람을

새롭게 일신한 대 공덕주였는데.. 이 무렵 청련암도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청련암을 뒤로 하고..

 

▲ 옥천사로..

 

▲ 청련암 산문..

좌측 기둥에.. 자비무적(慈悲無敵)이라 적혀 있다.. 자비로우면 적이 없다…라는 뜻으로.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서 베푸는 아량.. 관대함.. 너그러움을 새기며 살라는 불가의 가르침이다..

 

▲ 계곡 건너의 옥천사...

 

▲ 아주 오래된 비각과 하마비.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뜻의 하마비(下馬碑)는 옥천사에 임금의 수복을 비는 축성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비석에 증 호조참판안공선경비(贈戶曹參判安公善敬碑)라 되어 있다..

그 당시 호조참판이 옥천사에 시주를 많이 하여 절에서 세운 ‘선경비(1922)’다..

 

▲ 옥천사 천왕문.

 

▲ 옥천사 편액이 걸린 자방루(玉泉寺 滋芳樓 : 경남 유형문화재 제 53호)는..

기둥 사이를 모두 두터운 문으로 막고 오직 앞마당과 면하는 전면만을 개방하여 큰 성채를 방불케 한다.

 

▲ 옥천사 가람배치는 여느 사찰과는 조금 다르다.. 대웅전으로 가는길은 자방루 옆의 해탈문으로 들어 간다.

 

▲ 옥천사 대웅전(유형문화재 제132호)..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이다.

신라의 성인 원효대사와 함께 쌍벽을 이룬 의상조사는 당나라 유학시 그곳 종남산에서 지엄선사로부터 화엄의 오묘한 뜻

을 깨닫고 귀국하여 화엄대의를 선양하면서 국내의 영지를 가려 불찰을 많이 세웠는데 그것을 화엄십찰이라고 일컬었고,

옥천사는 그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창건되었다.

 

경내에 달고 맛있는 물이 끊이지 않고 솟는 샘이 있어 절 이름을 옥천사라 불렀다.

본 사찰은 창건 이후 수차례 중창하였으나 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완전 소실되었다가 인조 17년(1639년)

학명대사가 대둔리 촌락에서 유숙하다가 신인(神人)이 지시하는 곳에 대가람의 도국이 나타나는 영몽(靈夢)을 꾸고

다음날 이곳을 찾아 명당의 절터임을 알고 의오대사와 힘을 합하여 7번째의 중창을 시작하였다.

 

▲ 대웅전 뒷쪽의 옥천각. 옥천사의 유래가 된 곳이다.

 

▲ 옥천수.. 물맛은 철분기가 있어서 인지 약간 쌉쓰럼 하다.

 

▲ 연화산 옥천사 일주문...

편액은.. 서예가 "청남오제봉(菁南吳濟峯 : 1908-1991)" 선생의 작품으로 경상북도 금릉(金陵)출생으로 1923년 15세에

일찍이 인생무상을 느끼고.. 출가하여 진주 의곡사(義谷寺) 등지에서 37년간 승려생활을 하며 글씨를 익혔다.

 

▲ 옥천소류지..

 

▲ 남천..

주로 관상수로 많이 심는다.

 

14시 28분 : 옥천사주차장.

 

▲ 옥천사주차장 바로옆 손두부집 마당에서..

 

▲ 솔잎산악회에서 1년의 무사고와 번영을 바라며 정성을 대례로 산신님께 시산제를 올린다.

 

▲ 솔잎 회장님의 건배..

을사년에도 회원님 한분한분의 무사무탈과 솔잎산악회의 무한한 번영을 기원합니다.

2025년 01월 31일(금요일).
대관령/선자령 : 강원특자도 평창군.

 

산행코스 : 대관령마을휴게소-양떼목장-목장길사거리-선자령-동해전망대-국사성황당-대관령마을휴게소.

산행시작 : 대관령마을휴게소 11시 10분.

산행종료 : 대관령마을휴게소 15시 19분.

전체거리 : 약12.9km.

전체시간 : 04시간 08분.

운동시간 : 03시간 47분.

휴식시간 : 00시간 21분.

누구하고 : kj산악회.

 

11 : 10  대관령마을휴게소.

11 : 31  양떼목장.

12 : 44  목장길사거리.

13 : 02  선자령.

14 : 21  동해전망대.

14 : 44  국사성황당.

15 : 19  대관령마을휴게소.

 

 11시 10분 : 대관령마을휴게소..

1975년 10월 14일, "영동고속도로" 가 새말 ~ 강릉 구간 개통과 함께 '대관령휴게소'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왕복 2차로에 구불구불하고 급경사와 급커브가 매우 심했으며 무엇보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통행이 불가능에 가까운

난코스였기에.. 1991년부터 횡계~강릉 간 21.9km 구간을  왕복 4차로로 확장하고 직선화 하는 선형개량 공사가 2001년

11월에 마무리 되면서 기존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은 456번 지방도로 강등되었다.

 

한편.. 새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기존 도로에 있던 대관령휴게소는 2001년 11월에 폐쇄되었는데 그 다음 해인 2002년 12월,

강원도가 관광개발을 목적으로 42억원을 들여 대관령휴게소를 매입하여 소유권이 도로공사에서 강원도로 이전되었다.

 

▲ 휴게소 바로 옆으로는 양떼목장 입구다..

 

▲ 대관령마을휴게소 주차장..

설날 징검다리 연휴를 맞아 주차공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2001년에 폐쇄된 전후로, 대관령휴게소 뒤편에 있는 대관령양떼목장과 백두대간 선자령 트레킹코스가 인기를 끌면서 이

휴게소가 주차장으로서는 최적의 장소가 되어 휴게소 폐쇄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이 휴게소를 찾는

곳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고지대이다 보니 피서지로 각광받아 많은 사람들이 여름에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기상이 나빠지면 지금도 차들이 너도 나도 들어와 붐비곤 한다.

 

▲ 선자령 들머리는 대관령마을휴게소 주차장에서 북쪽으로..

 

▲ 약120m가량 진행하여 왼쪽을 보면...

 

▲ 대관령국사성황사를 가르키는 안내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 풍력발전기를 보며 약200m가량진행하면..

 

▲ 실질적인 대관령 선자령트레킹 들머리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참고로 안내판에는 이곳이 날머리로 되어 있다).

오늘의 트레킹 계획은 왼쪽의 강릉바우길로 선자령에 올랐다가.. 하산은 선자령 풍차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 올것이다.

 

▲ 넓은 공터를 가로질러서 가면...

 

▲ 선자령 5.7km를 알려주는 이정표.. 출발지인 주차장에서 보면 선자령까지 약6km가 되는 셈이다.

 

▲ 이 코스는 휴게소주차장에서.. 양떼목장 담장을 따라가다가 계곡으로 이어지는 "강릉바우길 1구간" 2코스 길이다.

 

▲ 선자령 바우길은 대체로 완만한 오름이다..

 

▲ 낮으막한 구릉을 올라가면..

 

▲ 선자령 이정표와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 양떼목장인듯한 철책이 보이고..

 

▲ 선자령길은 담장을 따라가고..

 

11시 31분 : 앙떼목장 풍경..

 

▲ 가시머리 갈림길인데.. 아무도 가지않았는지 눈만 소복하게 길을 덮고 있다..

 

▲ 바우길에는 한편의 시를 새긴 안내판이 곳곳에 보인다.

담요 한장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6남매가 담요한장을 서로 잡아 당기던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어려웠던 그 시절이 왜.. 그리워 지는지..

 

11시 45분 : 재궁골 갈림길..

 

 11시 48분 : 국사성황당 갈림길..

 

 11시 53분 : 재궁골 삼거리.. 선자령 3.8km..

 

재궁골을 따라 올라가는길이다..

 

 재궁골 눈속에서도.. 봄은 소리없이 올것이다..

 

"혼불"의 최명희가 3일을 고민하여 표현 하였다는 봄이 오는 소리..소살소살~~거리며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재궁골의 샘터..

 

 샘터까지 50m라는 이정표만 있고.. 아무도 가지 않아 찾을수가 없다..

 

백두허리 선자령의 설국나라에 은백의 함박눈이 산죽 댓잎 위에 선녀가 하산하듯 소복히 내려 앉았다.

 

은비늘 반짝이는 고운 모습을 보며.. 설화 안개 쉬어 넘는다는 선자령 오름길이 힘들지가 않다..

 

 길게 이어지던 재궁골이..

 

 오른쪽으로 꺽이며.. 약간의 오름길이 시작된다.

 

은백의 아기 사슴뿔처럼...

여린 잎새에 내려 앉은 무게에도.. 하얀 뼈 마디 마디 몸을 키우는 겨울의 어린나무여.. 그렇게 자라야 큰 나무가 되느니라..

 

 이 길을 처음 지나간 사람은 매우 힘이 들었을 것이다.

 

눈의 깊이가 궁금해서 115cm인 나의 스틱을 꽂아보니.. 오른쪽은 스틱보다 더 깊이 들어간다..

 

 그렇게 올라온 약 6km의 바우길도 선자령까지 1.7km로 줄어 든다.

 

12시 44분 : 목장길 사거리..

 

 두루뭉실한 선자령을 빙~ 둘러서 에돌아 올라간다.

 

 바람이 만든 눈주름..

 

 선자령의 풍력발전기는...

2004년과 2005년 2년간 1588억원을 들여 대관령에서 선자령 일대에 들어선 2㎿짜리 풍력발전기 49기(9만8000㎾)는 연간

전력 생산량은 22만200㎿로 237억원어치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선자령에서 북쪽으로 달려가는 백두대간상의 곤신봉과 풍력발전기 행렬..

곤신봉(坤申峰)의 곤신(坤申)은 서남쪽을 가르키는 풍수지리 용어로… 강릉시 성산면의 보광리, 사천면 사기막리,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에 위치하는데, 예전 강릉부사가 집무하는 동헌에서 바라볼때 서쪽에 있다하여 생긴이름이라고 한다.

 

12시 53분 : 선자령 갈림길.. 올라왔던 "바우길"이 여기서는 "순환등산로"가 된다..

 

 선자령 오름길에 뒤돌아본 삼양목장..

 

 당겨 본 삼양목장..

대관령 목장은 1972년 한 기업인의 꿈이 시작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호미와 삽 같은 인력 장비로 개간을 시작했다가

소황병산 남쪽 자락 전체를 아우르는 동양최대 규모의 삼양 대관령목장으로 만들어 냈다고 한다… 이후 주변에 양떼목장..

하늘목장등이 생겨 났다.. 주로..낙농업 목장들이다.

세간에는 삼양목장, 하늘목장, 양떼목장을 이른바 대관령 3대 목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백두대간 선자령 표시석 앞과 뒤..

 

선자령(仙子嶺) 유래.

선자령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평창면, 도암면 횡계리 삼정평 사이에 있는 고개길이며, 옛날 대관령에 길이 나기

전 영동지역으로 가기 위해 나그네들이 선자령으로 넘나들었다.

 

선자령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간 데서 선자령이라는 명칭이 유래

되었으며, 선자령은 백두대간을 이루는 영동과 영서의 분수계 중 한 곳으로 동쪽으로는 급경사, 서쪽으로는 완경사를

이루는 경계지점이다.

 

강릉시와 평창군은 양 시군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강릉-평창 관광케이블카 조성사업으로 평창 선자령 쪽에서 강릉 어흘리

까지 5㎞구간에 670억원을 들여 2028년초에 착공하여 2030년에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날씨가 흐려서 조망이 없기에 인증만 하고 바로 하산이다. 내려갈때는 대관령 5.0km길을 따른다.

 

 대관령마을휴게소 방향..

대관령(大關嶺)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와 평창군을 잇는 높이 832 m의 고개로, 태백산맥의 주요 고개이다.

영서와 영동을 나누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대관령(大關嶺) 유래..

예로부터 고개가 험해서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대관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영동지방으로 오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대관령이 유래했다고 한다.

 

산경표(山經表)〉에는 '대관산(大關山)'이라 하고. 〈동국여지지도(東國輿地之圖)〉 와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는 

그 아래 보현사의 이름에 따라 '보현산(普賢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선자령에서 150m정도 내려가니 대단지 목초지와 풍력발전기..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를 보니.. 돈키호테가 생각난다..

정의를 실현 하겠노라며.. 창을 들고 자신의 애마인 로시난테를 몰고 질풍같이 풍차한테 달려 들지만 바람결에 무섭게

돌아가는 풍차 날개를 창으로 찌르는 순간... 돈키호테와 로시난테는 하늘로 번쩍 들려 올라갔다가 들판에 대굴대굴 구르는

수모를 당했다..라는 세르반테스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혼자 미소를 지어 본다..

 

▲ 강릉시가 보인다는데.. 마음으로 짐작만 한다.

 

 하늘공원 전망대를...

 

 30배줌으로 당겨 본다..

 

 대관령 하산 능선길..

대관령이라는 이름은 삼국사기에 명주의 김순식이 왕건한테 저항하다가 928년 왕건이 대관령을 넘어 김순식을 직접 찾아

보고 귀부를 설득했다는 내용으로 처음 한국사에 등장한다.. 이후 김순식은 대관령을 넘어서 왕건한테 투항하고 왕건의

호족 우대정책인 사성정책에 따라 "왕순식"이 되었다. 왕순식은 이후 지방의 맹주 자격을 이용해 지방 호족 출신으로는

당시 고려의 지방직 최고 벼슬인 대광 벼슬에 오르는 등 왕건의 측근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바람에 휘어진 나목도 그림이 된다.. 그래도 머지않아 봄을 피워 낼것이다.

 

 대관령 하산길의 거쳐야 할 새봉과 전망대를 가늠해 본다..

 

 뒤 돌아본 선자령..

 

하산길이 점점 가까워 지는것이 아쉬워서..

하얀 눈을 천상의 시처럼 이고 선 겨울나무들을 바라보니.. 선자령 설화가 나에게 한마디 한다.

 

그 누구를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될 때...

그 마음을 묻으려고 산에 올라 보라고.. 산은... 침묵의 행복으로 우리를 포근히 안아 준다고...

 

 동해전망대 가는길은.. 많이 가지 않았는지 길이 다져지지 않아서 거의 개척수준이다..

 

14시 21분 : 동해전망대..

 

 제왕봉 능선은 가까이 보이고..

 

날씨 좋은날이면.. 강릉시 경포호와 동해가 조망되는 곳이다.

강릉으로 가는 산자락 어디에는 대관령 옛길이 있고... 특히 신사임당이 오랜 친정살이를 끝내고 마침내 시가(媤家)로 갈 때

대관령 고개에서 멀리 보이는 강릉을 보며 쓴 한시가 널리 알려져 있다.

 

 전망대 내림길은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갔는지 길이 뚜렷하다.. 아마도 이길로 올라 왔다가 돌아간듯..

 

 바위가 귀한 선자령 능선에서.. 방구돌이 보여서 올라가 보니..

 

바로 앞에는 우주선 같은 강릉무선표시소가 있고... 바로 아래에는 KT중계탑이고.. 그 뒤에는 능경봉이다.

 

 내림길에는 밀려온 눈이 쌓여서 사람키만큼이나 높다..

 

 강릉무선표지소 입구..

 

 KT중계탑.. 바로가도 하산길이지만... 국사성황당을 보기위해 오른쪽으로 내려 간다. 왼쪽은 대관령엣길이다.

 

 대관령 옛길.. 이 길로도 많이 다니는 모양이다..

 

 국사성황당 내림길..

 

 대관령 국사 성황당.

대관령 국사서낭(강원도 기념물)은 대관령 산신과 함께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모셔지는데, 구전설화에 의하면 서낭신은

신라의 국사 범일(梵日)이 죽어서 되었다고 한다.

 

범일국사는 강릉 출신으로 그의 어머니가 샘물에 뜬 해를 마시고 그를 잉태하였다고 하는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다.

또한, 불법(佛法)을 전파시키고, 난리가 났을 때 대관령에서 술법을 써서 적을 격퇴시키는 등 신이(神異)한 행적을 남긴

고승이라는 점에서 이 고장의 수호신으로 받들게 된 듯하다.

 

강릉단오제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 지역에서 단옷날인 매년 음력 5월 5일을 기점으로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되어 있으며, 강릉단오제보존회에 의해 관리 및 전수되고 있다. 기능..예능 보유자로는 김종군(관노가면극)·조규돈(제관)·

빈순애(무녀)가 있다.

2005년 11월에는 강릉단오제의 문화적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도로를 따라 가다가..

 

삼거리에서 오른쪽의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 싫어서 왼쪽으로 올라가서 능선길로 내려 갈 것이다.

 

 능선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왼쪽길은 KT중계탑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사실상의 선자령트레킹 종료 지점이다... 화살표는 능선으로 내려온 길이고.. 왼쪽길은 성황당에서 오는 길이다.

 

 대관령국사성황당 표시석..

마침.. 60대 중년 남자의 한마디다.. "소나 개나 다 국사네~~.." 하면서 지나간다.

 

대관령 성황당의 국사는 소나 개가 아니다. 국사의 탄생이 신화이던.. 실화이던.. 강릉출신으로 경주의 이차돈처럼 불교를

전파한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릉단오제의 주인공이다.. 강릉단오제는 그때 당시.. 이지역의 주민

들을 아우러는 이벤트속의 인물이다.. 그런데 토속신앙과 섞이면서 무속적이긴 하지만.. 우리 선조들.. 민초속에 녹아있는

인류문화유산이기에 유네스코에 등재 된 것이다.. 그냥 민속문화의 하나로 보아주자..

 

 선자령 들머리였던 곳..

 

 양떼목장의 관광인원이 꽤나 많은듯 하다.. 주로 젊은이들이다..

 

15시 19분 : 대관령마을휴게소 주차장 입구..

 

 트랭글을 정리하고..

 

넓은 주차장.. 수많은 차들속에서 버스를 찾아보니 저기다..

 

눈발이 날리는 대관령마을휴게소 주차장을 뒤로하고 출발..

2025년 01월 26일(일요일).
팔공산국립공원 : 대구시 동구.

 

산행코스 : 도학동정류장-인봉(도장바위)-인봉능선-노적봉-도장능선-갓바위주차장.

산행시작 : 도학동정류장 08시 59분.

산행종료 : 갓바위주차장 15시 17분.

전체거리 : 약7.11km.

전체시간 : 06시간 18분.

운동시간 : 04시간 35분.

휴식시간 : 01시간 43분.

누구하고 : 향기나팀.

 

08 : 59  도학동정류장.

10 : 10  인봉(도장바위).

13 : 25  노적봉.

13 : 39  선본재.

13 : 54  도장능선.

15 : 17  갓바위주차장.

 

 08시 59분 : 대구시 동구 도학동 학부마을입구.

학부(鶴浮)마을은 옛부터 큰 학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학부마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아침 이른시간임에도 멀리 현풍에서 이곳까지 달려와 준 해님 아우.. 고마우이~..

 

도학동버스정류장에서 인봉(도장바위)으로 가는길은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코스는... 마을길을 따라가다가 여래사를 경유하여 인봉으로 직등하는 방법이 있고..

둘째 코스는... 도학동버스정류장에서 약 50m정도 진행하면 좌측의 계단을 올라 능선을 경유하여 인봉으로 가는 방법이다.

 

▲ 오늘은 둘째코스를 선택하여 좌측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 낮고 부더럽고..

 

▲ 솔그늘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솔향에 너무나 기분이 좋아지는 착한능선이다.

 

▲ 쉬어가라며 평평한 의자바위도 내어주다가..

 

▲ 심심치 않게 약간의 오름도 내어주고..

 

▲ 촘촘한 솔숲에 가려서 조망이 없어 약간은 답답하다며...

 

▲ 툭트인 쉼터를 내어주는 곳에서 올라야 할 인봉(도장바위)를 시원하게 보여 준다.

 

▲ 다시 숲길에 서니.. 아!~ 참 좋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 또 다시.. 방구돌 오름에서..

 

▲ 언제나.. 맛난 양념 같은 아우가 있어 향기나팀은 더욱 맛난 산행이 되고...

 

▲ 향기나의 대화도 서로의 건강을 챙기는 내용이다.

 

▲ 진행방향의 시루봉이 눈높이로 다가올쯤에..

 

▲ 어느새 오늘의 첫봉우리인 인봉의 우람한 바위와 마주선다.

 

▲ 누군가 오른 흔적을 따라.. 올라가서..

 

▲ 인봉을 올려다 보니..

 

▲ 쉽게 접근할수 없는 수직암벽이 요새처럼 버티고 있다.

 

▲ 틈새 흔적을 보니.. 누군가가 바위 사이를 헤집고 올라 간듯 하다..

 

▲ 인봉을 알리는 표지판이 소나무허리에 걸려 있다. 내용인즉..

국립지리원에서 이곳 인봉을 "노족봉" 이라하고 노적봉을 "인봉"이라 잘못 표기하여 이를 바로잡고자 "일사산악회"에서

표지판을 부착하였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10여년 전까지만해도 여러 지도에는 인봉을 노족봉이라 표기되어 있다..

 

▲ 참고로...

옛날의 팔공산등산지도를 보면(화살표를 참조) 지금의 인봉이.."노족봉"으로.. 노적봉은 "인봉" 이라 표기되어 있다.

 

▲ 인봉으로 오르는 홈통에.. 밧줄이 걸려 있다..

 

10시 10분 : 설날을 앞두고 올라 온 인봉에서..

팔공산 주봉을 바라보며 건강과.. 가내 평안과.. 향기나팀의 안전을 기원하는 모습들이야말로..진정.. 향기나는 마음들이다.

▲ 인봉(도장바위)의 진정한 주인공은..

선인들이 팔공산에서 가장 강한 기운을 느낀다는 소년대(少年臺) 바위 위에 늙지않는 소나무로 유명한 금송이다..

 

▲ 인봉의 다음주인공은...

"일사산악회" 에서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2015년 2월 22일에 세운 도장모양의 정상석이다..

인봉은..노적봉에서 흘러내린 인봉능선상에 있어며.. 바위의 생김이 인장(印章)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의 바위봉우리다.

 

▲ 인봉의 정상석에 대해서 조금더 언급하자면.. 화살표 자리가 처음 정상석이 있었던 자리다.

 

팔공산 국립공원에 소재한 인봉은 그동안 정상석이 없었기에 등산객들에게 정상의 위치가 헷갈려 어려움이 있었으나

2015년 02월 07일에 대구 소재 일사산악회에서 인봉의 이름을 정확히 찾아 주고자 화살표자리에 정상석을 설치하였으나

원인모를 훼손으로 인해 2015년 02월 22일 다시 위치를 조정하여 현재의 자리에 정상석을 세우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날개를 닮은 바위에서 전남 무안공항에서 사고난 제주항공의 꼬리날개가 생각난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 인봉뒷쪽 절벽아래의 누운바위는..

 

▲ 2020년 5월 10일.. 향기나팀들이 "세월베고 길게누운 한조각 구름처럼" 퍼포먼스를 했던 추억의 바위다.

그런데... 2023년 12월 31일에 우리나라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지금은 저곳으로 갈수가 없다..막아 놓았다.

 

▲ 인봉(도장바위)에서 바라본.. 팔공산의 주봉인 비로봉.. 서봉.. 동봉.. 염불봉의 훤걸찬 주능선을..

 

▲ 조금 당겨 본다..

팔공산은 백두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낙동정맥에서 내륙으로 흘러내려 대구경북을 향해 마지막 힘을 모아 솟은 산이다.

그 만큼 기운이 강해선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김유신이 이 산에서 기도해서 삼국을 통일했다고 기록해 놓았고..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이 산을 불의 산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팔공산에서 가장 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

일까..  옛 사람들은 소년대를 즐겨 손꼽았고 그 중에서도 소년대 바위 위에 용틀임하고 있는 늙지 않는 소나무로 여겼다..

 

▲ 염불봉 암릉도 당겨보고..

 

▲ 동화사 통일대불도 당겨오고..

 

▲ 팔공산 케이블카도 눈앞으로..

 

▲ 팔공산청소년수련원의 청림교육관도 당겨보고 나서..

 

▲ 30배줌으로 당겨본 염불암.

 

▲ 동남쪽의 환성산...

 

▲ 오랜 옛날 첩첩산중이었을 환성산 아래 진인동의 다락밭데기가 그림이다..

 

▲ 남서쪽은.. 대구방향의 요령봉 능선이 문암산까지 달려 가고..

 

▲ 서쪽으로는...

올망졸망한 제주의 오름처럼... 엠보싱 같아서 꾹꾹 눌러 보고 싶은 봉우리들이다.

 

▲ 서북쪽은... 가산에서부터 한티재를 넘어 달려온 팔공의 주능선..

 

▲ 북동쪽은.. 가야할 노적봉 능선이다.

 

▲ 그리고.. 동쪽의 무학산까지.. 이렇게 "인봉"은 팔공산을 360도 파노라마로 이어볼수 있는 곳이다.

 

▲ 북지장사를 끝으로 조망보기는 막을 내린다.

 

▲ 다시.. 인봉의 주인장 금송을 주인공으로 모신다..

 

공산기적석대류(公山奇蹟石臺留) : 공산의 기이한 자취 석대가 남아..

겁우남풍열기추(劫雨藍風閱幾秋) : 비바람을 겪으면서 몇 년이나 지났던가~..

선자식송송기로(仙子植松松己老) : 신선이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미 늙었고..

가명유속소년유(佳名惟屬少年遊) : 아름다운 이름만 소년의 노님에 붙였네~..

 

"소년대(少年臺)"라는 제목으로 쓰인 이 시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이자 대구 출신인 열암(悅庵) 하시찬(夏時贊 1750~1828)

선생이 경관이 특히 빼어난 팔공산의 여덟 곳을 읊은 "공산팔영" 중 하나로.. <열암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문집에서 "공산팔영"은 소년대(少年臺).. 방은교(訪隱橋).. 동화사(桐華寺).. 염불암(念佛庵).. 일인석(一人石)..

삼성암(三省庵).. 선인대(仙人臺).. 용문동(龍門洞)으로 이중에서 소년대(少年臺)를 제일 먼저 소개하고 있다.

 

이 시의 내용을 보면 소년대라는 명칭의 석대 위에는 신선이 심은 소나무가 자라는데 이미 늙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과거 소년대로 불리기도 한 이 석대는 지금은 팔공산 인봉으로 불려지고 있다.

 

▲ 소년대(인봉 : 도장바위)위 척벅한 암릉사이에서 자라는 이 소나무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선인들의 기록 가운데 270여 년 전..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1~1781) 선생은 1748년

(영조 24년)에 팔공산을 유람하고 남긴 남유록(南遊錄)에서 이곳을 감명깊게 묘사했다.

 

“몇리를 들어가니 소년대(少年臺)라는 곳이 있었다. 큰 바위에 올라서니 시내가 굽어보이고.. 그 위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고색창연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라고 했다..

 

입수리득소위소년대.. 자거석임계이.. 유송생기상고기.. 일반창고가애 로다..

《入數里得所謂少年臺 者巨石臨溪而 有松生其上枯其一半蒼古可愛》...

 

▲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1~1781) 선생이 270여년 전에 이미 이 나무를 고색창연하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보여지며... 기록과 같은 나무라면.. 500살이 넘었다는 이야기다..

 

▲ 인봉 정상을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 어허!~~.이럴수가.. 막아놓았다..

 

▲ 시루봉으로 올라가는 가풀막 오름길이다.

 

10시 41분 : 시루봉전망대에서 돌아본 인봉(도장바위)..

 

▲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보인다.

 

▲ 팔공산CC..

 

▲ 향기나의 으뜸 밥자리.. 병풍바위가 바람을 막아주는 최상의 자리다.

 

11시 54분 : 산속에 닭도 올라왔고.. 돼지도.. 바다의 굴도 올라왔다..

 

▲ 음식냄새를 맡고 몰려든 까마귀.. 몸색깔이 검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만 푸대접을 받고 있다.

 

▲ 야대장님의 커피 일잔.. 이맛이여!~~..

 

▲ 최고의 식당자리는.. 후답자를위해 깨끗하게..

 

▲ 노적봉.. 올라 볼것이다.. 하면서도 아직도 오르지 못했다.. 이제는 국립공원이 되면서 더더욱 오르지 못할 곳이 되었다.

 

13시 27분 : 노적봉 갈림길에서.. 갓바위 방향으로..

 

▲ 뒤 돌아본 노적봉과 방아덤..

 

▲ 영천 은해사로 내려가는 능선길에는 천년송과 중앙암의 극락굴이 있다.

 

▲ 올라온 인봉능선의 인봉(도장바위)가 까마득하다..

 

▲ 농바위..

 

13시 39분 : 선본재.. 우리는 화살표쪽의 도장능선으로 하산이다.

 

▲ 약사암 우회로는 국립공원이 되면서 통행불가다..

 

▲ 도장능선에서 보고 가야할 전망대쪽으로..

 

▲ 최고의 조망대이자 쉼터인데..

 

▲ 갓바위 아래로.

 

▲ 비구름이 몰려 온다..

 

▲ 국립공원이 되면서 구조용 헬기장을 잘 다듬어 놓았다.

 

▲ 짝 궁댕이바위.

 

15시 17분 : 갓바위주차장 산행종료..

 

▲ 처음 걷는길은 언제나 설레임이다..

 

학부마을에서 인봉까지의 소나무 명품 숲길은 잔잔한 감동이었고..

인봉의 늙지 않는다는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고 싱싱하게 제자리를 지켜서 좋았고.. 설날을 앞두고 향기나님들과 함께 바라 본 팔공의 주능선 조망은 환희였다.

2025년 01월 19일(일요일).
태기산 : 강원도 횡성군.

 

산행코스 : 양구두미재-태기분교터-태기산 정상석-태기산조망점-태기분교-양구두미재.

산행시작 : 양구두미재 11시 14분.

산행종료 : 양구두미재 14시 27분.

전체거리 : 약10.1km.

전체시간 : 03시간 15분.

운동시간 : 03시간 05분.

휴식시간 : 00시간 10분.

누구하고 : 횃불산악회.

 

11 : 14  양구두미재.

12 : 04  태기분교터.

12 : 31  태기산정상석.

12 : 39  조망점.

13 : 38  태기분교.

14 : 27  양구두미재.

 

 11시 10분 :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의 양구두미재.

양구두미재는 해발 980m로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와 평창군 봉평면 무이리로 넘어다니던 국도6번상의 고개였는데..

2018년 동계올림픽때에 양구두미재 밑으로 태기산 터널이 뚫려.. 이제는 차량 통행이 그리 많지 않은 고개가 되었다.

 

▲ 이곳 태기산 일대는 홍천의 계방산과 함께 겨울철에는 풍부한 적설량이 빚어내는 설경이 유난히 아름다워 겨울의 정취

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오늘도 전국에서 수많은 차량들이 모여들었다.

 

▲ 태기산 국가생태탐방로 및 고원힐링탐방로를 가리키는 방향으로..

 

11시 14분 : 차량통행을 금지하는 차단기 안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은 시작된다.

 

11시 16분 : 태기산 국가생태탐방로 안내판.

태기산 산행은 평탄한 임도를 따라 정상석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약 3~4시간이 소요되는 트레킹수준이다.

2023년 10월 19일 강원특별자치도는 횡성군의 청태산과 태기산을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하였다.

 

▲ 태기산 풍력발전기 1호.

적설량이 풍부해서 설경이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풍력발전기들이 하얀 눈꽃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만드는 모습을

보기위해.. 찬바람이 쌩쌩불고 눈내리는 한겨울이면 태기산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는데.. 오늘은 눈꽃이 없다.

 

태기산 풍력발전기 1호.

2008년 11월에 운전개시한 태기산풍력발전은 태기산 바람의 힘으로 풍차를 돌리고.. 그 힘으로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만드는데 높이 80m.. 날개 직경 80m나 되며.. 태기산풍력발전단지 2MW급을 20기를 설치하여 40MW 규모의 풍력발전를

조성하고..바람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바람부는 방향으로 자동 회전하여.. 24시간 365일 운전하여 횡성과 평창 지역

약 25,000여 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의 전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 기대했던 눈꽃과 상고대가 없어니.. 태기산 풍력발전기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11시 48분 : 바람개비 동산.. 이 바람개비 동산은 "태기산 2봉" 이라고도 한다.

 

▲ 청정체험길.. 신대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 7호발전기와 태기산정상의 통신탑.

 

 12시 04분 : 태기분교터 삼거리.

 

▲ 태기분교터는 하산길에 들러보기로 하고 태기산으로 고고다..

 

▲ 태기산풍력발전기 관리 사무소..

태기산풍력발전단지 시설용량은 40MW로.. 지난 2006년에 준공된 국내 최대의 대관령풍력단지 98MW의 절반규모이다.

발전량은 연간 약 9만8,300MWh이며..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연간 6만톤 줄이는 3000ha규모의 산림대체 효과가 있다.

 

▲ 태기산의 러브스토리.. 영화 한편 찍고~...ㅎㅎ..

 

▲ 낙수대계곡 갈림길... 신대계곡길은 여름날에 한번쯤 걸어 보고 싶은 곳이다..

 

▲ 횡성의 대표 브랜드 한우가 태기산을 지키고 있다.

 

12시 31분 : 태기산 정상석이 있는 전망대.

정상석 인증샷을 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임도 끝자락의 군부대 앞까지 올라가 보기로 한다.

 

12시 39분 : 태기산 부대앞... 트레킹 종점이다.

 

▲ 올라 왔던길을...

 

▲ 당겨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개미처럼 줄지어 가는 모습이다..

 

▲ 태기산(泰岐山)은 횡성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원래 이름은 덕고산(德高山)이었으나 진한의 마지막 태기왕이 산성을

쌓고 신라의 박혁거세에게 대항하던 곳이라 하여 태기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하산길의 풍력발전기 오른쪽 끝 20호.

 

▲ 다시 내려와도 여전히 정상석 인증 대기줄이 길다.

 

▲ 교대하는 찰라의 순간에.. 찰칵..

 

▲ 틈새시간 공략도 성공이다...

 

▲ 밥자리를 찾아 양치식물길로...

 

▲ 마침.. 전망데크에 횃불산악회팀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동석한다..

 

▲ 오늘도 태기산의 환상적인 설경을 보려고 기대하며 올라왔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욱 위에 또 발자욱..

 

▲ 한우는 횡성군의 유명 브랜드이지만.. 앵무새는 무슨 관계인지???~~.

 

13시 38분 : 태기분교터..

해발 1200m에 세워진 '하늘 아래 첫 학교'인 태기분교는 1968년 6월에 개교했는데, 처음엔 횡성군 갑천면 봉덕국민학교

태기분실로 문을 열었다가 1973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둔내면 덕성국민학교 태기분교로 변경되었고 3년 뒤인 1976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 태기분교의 처녀선생 "이명순"의 이야기..

1965년 9월. 화전민 정착사업에 따라 횡성 군내에 흩어져 있던 74가구(399명, 1968년 7월 통계)가 태기산으로 올라와 화전

민 부락을 이루었다. 3년간 정부 지원의 약속을 믿고 태기산 일대로 들어온 사람들은 원시림을 벌목하고..산을 깎아 계단식

밭을 만들며 움막에서 생활했는데.. 화전민에게 정부가 제공한 것은 밀가루가 전부였다..

 

10월 초부터 서리가 내리는 고원지대 기후가 작물 생육에 적합하지 않아서, 밭을 일구고 곡식을 심어도 제대로 수확하기

힘들었다. 해방과 분단.. 6.25 전쟁으로 이어진 상황에서 생계가 막연했던 사람들에게.. 어린아이라도 일하면 밀가루를

받을 수 있다는 태기산 화전민촌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횡성뿐만 아니라 평창, 홍천 등

120여 가구가 이주했었다고 한다.

 

▲ 어려운 역경 속에서 못 배운 한을 대물림하게 하지 않으려는 화전민들은 자녀 교육에 대한 갈망이 무척 컸을 것이다..'

그렇지만 학교에 가려면 산길을 30㎞이상 내려가야 해서 가르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국가에서도 어쩌지 못한 학교 건립

은 당시 20대 중반이던 이명순교사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태기산 화전민촌 아이들을 모아 한글과 산수를 가르치던 이명순 선생님이 횡성 교육장을 만나고 강원도지사를 만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해서 국제 구호단체의 지원을 받아 학교 건물을 세울 수 있었다. 76명의 학생을 전교생으로 첫 입학식을 한

태기분교는 한 때 150여명이나 되었지만, 정부의 화전지 개발사업 실패로 화전민을 다시 강제로 내몰면서 태기분교는

개교 8년만인 1976년 문을 닫았다. 화전민들이 모여살던 태기리는 1973년 7월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갑천면에서 둔내면

에 편입되었다가, 1976년 4월 행정공부(行政公簿)에서 사라진 마을이 되었다.

 

▲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을 당시의 생활상과 함께 꾸며 놓았다.. 광목 이불.. 호롱불등잔..

 

▲ 양구두미재로 복귀..

양구두미 전설.. 옛날 어느 가난한 선비가 묘를 잘쓰면 부자가 된다는.. 용하다는 지관의 말을 듣고 아버지의 묘를 쓴곳이

바로 이 고개마루이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재산이 늘지 않자 선비는 묘를 이장하기 위하여 관을 들어 냈다. 이때 땅속

에서 두마리의 황금비들기가 나와서 고개넘어로  날아갔다. 그 후에 이고개를  양구두미라고했다고 전해 온다.

 

14시 27분 : 양구두미재 바로옆에 있는 경찰전적비에서 트레킹 종료..

태기산 일대에서 무장공비와 전투 중에 순직한 경찰관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1948년 11월 15일 횡성경찰서 조동하 경위 지휘하에 1개 소대는 태기산 일대에서 출몰한 무장공비와 치열한 전투를 벌여

10여명을 사살하고 다수의 무기를 노획하였으나 경감 곽윤춘과 경위 양면석이 장렬히 전사하였다.

 

또한 1949년 7월 24일 무장공비가 강림지서를 기습하자 경위 김우기의 지휘로 경찰 5명이 즉시 응사하여 2명을 사살하고

모두 격퇴하였으나 경위 김한석이 전사하였다.

 

 

 15시 17분 : 태기산 아침의 새소리 식당..

 

오래전에 인연이 있었던 횃불산악회에서 과거에 함께 산행했던 반가운 사람들도 만나고..

오래된 기억의 책장에서 젊은날의 추억 한페이지를 꺼내어 읽어본 하루였다.

2025년 01월 16일(목요일).
무등산국립공원 : 광주광역시.

 

산행코스 : 원효사주차장-무등산옛길입구-목교쉼터-서석대-인왕봉-입석대-장불재-석불암-규봉암-원효사주차장.

산행시작 : 원효사주차장 09시 47분.

산행종료 : 원효사주차장 15시 31분.

전체거리 : 약14.7km.

전체시간 : 05시간 44분.

운동시간 : 05시간 29분.

휴식시간 : 00시간 15분.

누구하고 : 산이좋아산악회.

 

09 : 47  원효사주차장 출발.

09 : 53  무등산옛길입구.

11 : 07  목교쉼터.

11 : 25  서석대.

11 : 42  인왕봉.

12 : 10  입석대.

12 : 20  장불재.

13 : 12  석불암.

13 : 27  규봉암.

14 : 40  꼬막재.

15 : 31  원효사주차장.

 

09시 43분 : 광주광역시 무등산 원효사주차장.

 

 산이좋아산악회 2025년 1월 첫산행 출발에 앞서... 무등산 눈꽃세상을 기대하며 단체샷.

 

▲ 많이 추울거라는 일기에보와는 달리.. 여기 현장의 기상정보는 0풍속에 -1.6도로 출발한다.

 

▲ 무등산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오늘의 산행코스는 무등산 옛길을따라 인왕봉에 올랐다가 무등산을 한바퀴 돌아오는 환종주로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다.

 

09시 53분 : 무등산옛길 입구.

 

무등산 옛길은 광주 도심에서 원효사를 거쳐 서석대까지 옛사람들이 오르던 길을 복원한 길이다.

 

무등산 옛길 코스는.. 목교쉼터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오름으로 이어진다.

 

10시 03분 : 풍암제 갈림길.

이정표를 보지않고 길바닥만 보고 가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금곡동제철유적(金谷洞製鐵遺蹟)은..

이곳은 임진왜란 때 김덕령(金德齡) 장군이 무기를 만들었던 장소로 전해져 주검동(鑄劍洞)이라고도 부른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1567~1596)의 의병 활동과 관련한 무기 제조창으로 알려졌다. 1992년 발굴조사결과 제철에

필요한 시설과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설, 가공하는 시설이 확인되었다. 또한 쇠로 만든 화살축, 추 모양 철기, 못,

찌꺼기 등이 발견되었다. 무등산에서 철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1994년 2월 18일 광주광역시의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었다.

 

큰 바위에 "만력계사 의병대장 김충장공 주검동(萬曆癸巳 義兵大將 金忠壯公 鑄劍洞)"이라 새긴 글귀가 있다.

만력 계사년은 김덕령이 의병을 일으킨 1593년도다. 만력은 1573년 부터 1620년까지 사용하던 연호이고, 계사는 선조

26년 1593년으로 의병으로 활약한 시기를 뜻한다. 충장이란 시호를 쓴 것으로 보아 1788년 이후 김덕령 장군의 활약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새긴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시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김덕룡장군(1567~1596)은 무등산 자락인 충효마을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동하며 여러차례 왜군을 무찔렀다. 이몽학(李夢鶴)이 반란을 일으키자 도원수 권율의

명을 받아 진주에서 운봉(雲峯)까지 진군했지만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모함으로 체포되었다. 이에 정탁..김응남(金應南) 등

이 그의 무고를 힘써 변명하였으나 20일 동안에 여섯 차례의 혹독한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그의 나이 불과 29세때 였다.

 

10시 20분 : 물통거리.

옛날부터 나뭇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길이었어나 1960년대에 군부대가 보금품을 나르던 나르던길로써 1980년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길이다.

 

 10시 33분 : 치마바위.

김덕령장군이 백마를 타고 서석대에서 의상봉으로 뛰어 달리는 훈련을 할때 이곳으로 떨어지는 순간 김덕령장군의 누나가

치마로 백마와 김덕령 장군을 받았다는 치마바위이다. 무등산 2봉인 지왕봉에는 김덕령장군이 수련하면서 뛰어 넘었다는

뜀바위가 있어며.. 의상봉정상 바위에도 말발굽 흔적이 있다.

 

 11시 07분 : 목교쉼터 임도 갈림길.

 

목교안전쉼터.

 

서석대능선의 상고대.

 

 전망대에서..

 

 중봉너머로 광주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오늘은 곰탕이다.

 

 살짝 보이는 장불재 통신탑..

 

11시 25분 : 서석대 전망대..

 

 서석대는...

무등산 주상절리대의 일부로, 한 면이 1m 미만인 돌기둥이 약 50m에 걸쳐 동서로 빼곡하게 늘어서 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서석대에 저녁노을이 비치면 수정 병풍처럼 반짝인다 하여 ‘수정 병풍’이라고도 하였어며, 입석대와

더불어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서석(瑞石)은 선돌의 한자식 표현으로 고대 선돌숭배 신앙의 중요한 표상이다.

서석대를 구성하는 암석은 무등산응회암이라고 명명된, 중생대 백악기 후기에 분출된 화성쇄설물이 지면으로 퇴적된 직후

뜨거운 상태에서 입자들이 서로 달라붙어 형성된 용결응회암이다.

 

 서석대는..

조선전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고경명은 유서석록(遊瑞石錄)에 서석대에 관한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가까이 보면 겹겹

이 막힌 요새와 철옹성에 무장한 병사 일만명을 나열한 듯 하다.. 세속을 초월한 선비가 군중을 떠나 홀로 가는 듯하구나~.”

 

11시 31분 : 서석대 표지석.

여기서 인왕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 올것이다.

 

 인왕봉 가는길..

 

올라온자에게만 주어지는 설국의 세계.. 무등산이 나에게만 주는 선물같은 그림이다.

선두그룹에서 조금 일찍 서둘러 올라왔더니.. 길위에 아무도 없는.. 오롯이 나만의 무등산이 된다. 그리고 칼바람..

 

바람에 실려 가는 백운이 백마능선에서 말갈퀴가 된다.

 

 인왕봉정상석 입구..

그런데 분위기가 바뀌었다.. 2024년 4월 28일에는 정상표시가 화살표시에 있었다.

 

2024년 4월 28일의 인왕봉정상표시는 이러했었다.

 

 11시 42분 : 새로 세워진 인왕봉 인증.

무등산(無等山)은 광주와 담양군, 화순군과 경계에 있는 산으로 마한 백제시대에는 무돌, 무당, 무덤산이라 불렀고

통일신라 이후 무악(武岳), 무진악(武珍岳), 고려시대에는 서석산(瑞石山), 입석산(立石山)이라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무등산이라 하였다 한다. 무등산은 산세가 유순하고 산형이 순하고 덕있게 생겼으므로 덕이 높아 차등이

없다하여 무등산(無等山)이라 하며.. 1972. 5. 22.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2. 12. 27.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무등산 정상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 인왕봉만 57년 만에 2023년 09월 23일

상시 개방되었고 지왕봉 천왕봉에는 군부대가 주둔하여 통제 되고 있다.

 

 인왕봉의 암석.

무등산 정상에 있는 세 봉우리를 삼봉, 삼왕봉, 삼황봉 등으로 부르는데... 가장 높은 곳이 천왕봉(天王峯)이고 가운데가

지왕봉(地王峯)이며, 지왕봉에서 서쪽 서석대 방향으로 내려오는 곳에 있는 봉우리가 인왕봉이다. 고경명(高敬命)의

『유서석록』에서는 지왕봉을 비로봉(毗盧峯), 인왕봉을 반야봉(般若峯)이라고 하였다. 고경명의 묘사로는 천왕봉과 지왕봉

사이의 거리는 백여 척[약 30m]이고, 지왕봉과 인왕봉의 거리는 무명베 한 필 정도로 가깝다고 적고 있다. 인왕봉은 천왕봉

의 동쪽에 있는 지왕봉의 서쪽으로 인접하여 있는 봉우리이며, 인왕봉 정상에는 주상절리가 집중되어 있다. 서남쪽으로

서석대, 입석대가 있다.

 

 인왕봉의 칼바람에 쫏기듯.. 빠르게 내려 간다.

 

 무등산의 칼바람도 소백산 비로봉 칼바람 못지 않게 대단하다..

 

 바람은 카메라에 담을수가 없지만.. 억새의 굽은 허리에서 바람의 흔적을 알수가 있다.

 

▲ 다시 서석대 표시석에서..

인왕봉이 개방되기전까지는 무등산 정상자리를 대신 하고 있었다.

 

▲ 장불재 하산길이 몽환적으로.. 천상의 세계가 따로 없다. 이런 풍광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 하늘이 서서히 열리며.. 장불재가 뚜렷하고..

 

▲ 햇살속에 빛고을 광주시가 보인다.

 

▲ 안양산의 철쭉.. 낙타봉넘어 백마의 말갈퀴 같은 억새.. 만연산의 작지만 옹골찼던 암릉길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 뒤돌아 본 서석대 길..

 

▲ 하산길 내내 눈을 현혹시키는 백마능선..

 

▲ 그리고.. 한없이 내어주던 엄니의 젖무덤같은 안양산의 부더러움.. 그 위로..한줄기 백운은 눈을 홀리기에 충분하다..

 

▲ 승천암(昇天巖).

옛날 이 부근의 암자에 무엇엔가 쫓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준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해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놓았다며 만약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어야겠다고 했다.

얼마 후 난데 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렸고 이무기는 곧장 스님을 풀어주고 승천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이다.

 

▲ 풍력발전기가 있는전남 화순의 별산 너머로 모후산도 보이고 그 뒤쪽으로는 순천 조계산도 희미히게 다가온다.

 

▲ 어마어마하게 큰..주상절리 파편들..

 

▲ 누운놈과 선놈들의 주상절리다.

 

입석대(立石臺)는...

임진왜란 때 6,0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광주출신의 고경명(高敬命 : 1533~1592)선생은

전라도의 유일한 문과 장원급제자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까지 무등산을 사랑하면서 선조 7년(서기1574년 ) 광주목사

임훈등과 함께 500년 전 무등산에 올라 그 유명한 무등산 산행기 유서석록(遊瑞石錄)을 남겼다.

 

고경명이 1574년 4월 21일에 입석대와 입석암을 바라보고 유서석록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네 모퉁이를 반듯하게 깎고 갈아 층층이 쌓아 올린 품이 마치 석수장이가 먹줄을 튕겨 다듬어서 포개놓은 듯한 모양이다.

(중략) 돌의 형세를 보니 뾰족뾰쪽 하여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는데 그 가운데 헤아려 볼 수 있는 분명한 것은 16개의

봉우리다. 그 속에 새가 날개를 펴듯, 사람이 활개를 치듯 서 있는 건물이 암자이다. 입석암(立石庵)은 입석대의 한가운데

자리 잡아 우러러 보며 위태롭게 솟아서 곧 떨어져 눌러 버리지 않을까 두려워서 머물러 있기가 불안하기 그지없다.

바위 밑에 샘이 두 곳 있는데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지금은 주상절리의 생성과정이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만.. 그 옛날에는 신비스러웠을 것이다.

 

 입석대(立石臺) 아래는 암자가 있었다.

 

제주 바닷가나..동해안의 주상절리대와는 달리 해발 750~1187m 산악지대에 분포된 점이 특징이다.

 

12시 19분 : 장불재.. 대피소에서 마음에 점을찍고 간다.

 

장불재는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되는 해발 900m의 고갯길이다.

장불재의 유래는 문헌비고에는 장불치, 동국여지승람에는 장불동이라 적혀 있으며

"옛날 이 고개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 장불이 있었다"하여 이 고개를 장불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장불재의 손가락 바위.

 

 장불재의 고 노무현 전대통령.. 아!~~ 참 좋다.

 

 장불재쉼터에서 바라본 서석대 방향.

 

 그리고 서석대를 당겨본다..

 

 당겨본 입석대.

 

 12시 44분 : 규봉암방향으로..

갈길이 머니.. 서둘러 낙타봉이 보이는 쪽으로 길을 서두른다.

 

 도원마을 갈림길.. 규봉암은 직진이다.

 

피안교..

아주 작은 목교에 이름이 있다..

 

13시 02분 : 석불암 갈림길에서..

아미티불을 알현하기위해 석불암으로 향한다.. 두 길은 규봉암 직전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석불암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후산도 그림이다.

모후산은.. 고려 공민왕 10년에 홍건적이 자비령을 넘어 쳐들어오자 왕과 왕비는 태후를 모시고 안동, 순천을 거쳐 이곳

산기슭까지 피난왔다고 하는데.. 수려한 산세에 반한 왕이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해를 넘겨 1년여 남짓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산의 이름을 어머니의 품속같은 산이라 하여 모후산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 지공너덜..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깨어져 산능선을 타고 모인 산물로, 특이한 지형경관을 이루며, 인도 승려인 지공

대사가 이곳에서 석실을 만들고 좌선 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유래가 전해온다.

 

▲ 석불암 축대..

 

▲ 석불암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서 요사채 뒤로 돌아가면 석불사 아미타불을 모셨다..

 

▲ 석불암 아미티여래불은.. 1933년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아미타여래이며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것을 최근 다시 지은 것으로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작은 민가형 건물이다.

 

▲ 석불암 순둥이 견스님...

 

▲ 안쓰럽게도 다리를 하나 잃었다.. 아마도 불법 올가미에 걸렸던건 아닌지..

 

▲ 석불암 요사채.. 카메라를 막 들이대는 순간.. 바깥쪽 창문이 열리며 스님이.. "차 한잔 하고 가세요~~" 하신다.

들어가면 금방 나오기가 쉽지 않을것도 같고.. 해서.. "스님 대구에서 왔는데 갈길이 너무 멀어서 죄송합니다~" 라고 하니..

그러냐고.. 대구 팔공산 모 암자에서도 7년간 수도하였다면서.. 조심해서 하산하라고 하신다.. 감사합니다..

 

▲ 지공대사 수도처..

 

▲ 내부모습..

 

▲ 석불암에서 규봉암 가는길의 우람한 바위들이 부처님 세상에 있어서 그런지 바위사이로 순하게 길을 내어 준다...

 

▲ 규봉암 직진길과 다시 만난다.

 

▲ 규봉암 가는길..

 

▲ 규봉암 높은 축대.. 마치 산채를 연상하게 하는 규모다.

 

▲ 규봉암 일주문을 새로 조성했는가 보다..

 

▲ 규봉암 문바위..

 

▲ 규봉암 들어가는길이 원으로 되어 있다.. 음양이 없는 무극의 세상이라는 의미기 있지 않을까..

 

▲ 규봉암은..

1300년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절로 주위에는 삼존석. 십대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암자는 마치 범종이 매달려

있는 형국이라 한다. 규봉암은 무등산에 있는 조계종 사찰로 창건연대가 확실하게 전하는 문헌은 없고 신라시대 의상대사

가 창건하고 순응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한다.  또, 고려 초 도선국사,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한다.아후 6.25전쟁때

사찰이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가 1957년 관음전과 요사채를 지어 복구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규봉암은...

무등산 광석대는 서석대.. 입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주상절리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우며.. 유네스코 세계지질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광석대 돌기둥 아래에는 규봉암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예로부터 "규봉암을 보지 않고 무등산에 올랐다 말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난 절경 중 한 곳이다.

 

▲ 규봉암 관음전의 풍경소리가... 청아하고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 규봉암 원통문을 나서며 바라 본 문바위...

 

▲ 여기서도 자칫하면 도원마을로 빠질수 있는 삼거리다..

 

▲ 규봉암을 지나서 부터는 너무나 착하게 거의 수평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이다...

 

▲ 그런데...하산길이 너~~~무... 엄청~~~ 멀다.

 

▲ 멧돼지 일가족이 눈밭에 먹을게 없었던지... 뒤집어 놓았다.

 

▲ 광일목장 갈림길...

 

14시 19분 : 북봉의 신선대 갈림길..

 

▲ 북봉 신선대 가는길... 아무도 가지 않았다.

 

▲ 당겨본 북봉의 신선대바위.

가지못하면.. 내앞으로 호출하면 된다... 별로 매리트(merit)가 없는것 같다.

 

▲ 다시.. 무념무상으로 걷고 또 걷고..

 

▲ 또 걷는다.

 

14시 40분 : 드디어 꼬막재 도착... 하산시간 16시까지는 충분히 도착할수 있을것 같다.

 

▲ 꼬막재 유래..

옛 선조들이 나들이 할 때 이용했던 중요한 길로서, 그리 높지 않고 나즈막한 재이어서 꼬막재라 불리워졌다고 한다.

 

▲ 꼬막재의 쭉쭉빵빵 소나무..

 

▲ 꼬막재에서의 내림길도 비교적 완만한 경사다..

 

▲ 폐업한 무등산 호텔건물이 보이고..

 

15시 19분 : 자연애 문을 나선다.

 

15시 31분 : 무등산 환종주 산행종료..

 

▲ 평균속도 2.7km인걸 보니.. 길은 전체적으로 순했던모양이다..

 

▲ 남은 시간 29분을 활용하여.. 원효사로..

 

▲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의 지증왕이나 법흥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뒤 삼국통일을 전후한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이곳에 머물면서 암자를 개축한 뒤부터 원효사 · 원효당 · 원효암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 감로정..

 

▲ 물에 동전을 던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중금속 오염은 어쩌라고... 잘못된 불심이다.

 

▲ 원효사 무등선원..

 

▲ 원효루를 나서며.. 정면으로 보이는 무등산..

 

▲ 원효사를 떠나서..

 

▲ 전남 담양의 메타쉐콰이어길이 이쁜 곳에..

 

16시 34분 : "ㅊㅍ"전통 안두부..

 

▲ 두부버섯전골..

 

▲ 산이좋아 회장님의 건배..

 

2025년의 첫산행을 마무리하는 산이좋아 회장님을 보며

문득.. 불광불급(不狂不及) 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에 깊이 열정을 다하지 않으면 큰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여기서 "미치다"는 평범함을 넘어선 몰입과 열정이 탁월한 결과를 가져옴을 의미한다.

 

오늘의 무등산 환종주 산행을 무탈하게 마칠수 있음도

회장님과 산대장님의 열정과 회원님들의 노련함이 만든 결과이다..

 

덕분에..

무등산 설국의 눈꽃세상은..

큰 선물이었습니다.

 

충북 단양군 소백산 천동계곡의 다리안국민관광지 주차장.

 

비로봉 7km... 오늘은 비로봉 정상이 목적이 아니다..

다리안 폭포를 경유하여 천동계곡을 따라 가다가 산악회에서 주어진 4시간 안에 원점으로 돌아오는 트레킹이다.

 

 고산자 김정호님의 추모비..

역사책에 단 두 줄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남겨놓은 업적은 어마어마한..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鎬)님의 출생과 사망

연도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1804년경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1866년경에 옥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분도 명확하지 않고 언제 서울로 상경했는지 알 수 없으나..살던 곳은 당시 남대문밖(현재 중림동 약현성당 부근)이었

으며.. 가족으로는 아내와 외동딸이 있었다...라고 전해지며.. 고산자의 대동여지도는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

주고자 했던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작품이다.

 

지금도 대동여지도 판목 1매가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 있고.. 11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그리고 "대동여지도" 인쇄본

은 이십여종 이상이 여러 곳에 있다고 한다.

 

 산악인 허영호 기념비.

 

 내려다 본 다리안폭포.

폭포탐방은 돌아올때 내려가 볼것이다.

 

바위 정상에 특이한 사각굴이 보여서..

 

 당겨보니 동굴이 맞다.. 어떻게 생긴 굴인지 올라가서 들여다 보고싶어 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소백산국립공원 북부사무소였었는데... 재정비 공사중이다.

 

 그 옆에 임시건물인 지원센터를 보니.. 북부사무소 건믈을 천동탐방지원센터로 리모델링 하는모양이다.

 

▲ 천동탐방로 입구.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군과 경계를 이루며 맞닿아 있는 소백산의 7개 등산코스증에 가장 난이도가 낮은 쉬운 탐방로다.

 

 올라갈때 들리지 못한 다리안폭포로 내려 간다.

 

 다리안폭포..

폭포가 자리한 곳으로 들어오려면 구름다리를 건너야만 했다고 하여 다리안(橋內/다리 교.. 안 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국의 산악회 차량들.. 저 속에 대구에서 온 산악회는 3팀이다.

 

 경북 영주시 먹골집의 성공지문으로 들어선다..

 

누룽지 닭백숙.. 4인기준 50000원에 넉넉한 량이다..

보조반찬의 맛이 괜찮다.. 감자전.. 고추가루로 버무린 시금치.. 된장맛도 일품이다.

2025년 01월 09일(목요일).
해양드라마셋트장 : 경남 창원시.

 

트레킹코스 : 주차장-해양드라마셋트장-파도소리길일주-주차장 트레킹종료.

트레킹시작 : 주차장 09시 35분.

트레킹종료 : 주차장 10시 40분.

전체거리 : 약3.05km.

전체시간 : 01시간 04분.

운동시간 : 01시간 04분.

휴식시간 : 00시간 00분.

누구하고 : 백호트레킹.

 

09시 35분 : 해양드라마셋트장 주차장..

 

해양드라마세트장은 MBC드라마 ‘김수로’의 촬영장으로 처음 사용된 이후.. SBS '무사백동수‘.. KBS '공주의 남자’..

MBC '기황후‘.. tvN ’삼총사‘.. 영화 ’조선미녀삼총사‘ 등..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 되었다.

 

 해양드라마세트장으로 가는 명주마을 해변 너머로.. 고향땅 거제도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해양드라마세트장 입구..

첫 건물은 비밀연구동으로... 철광석 제련등.. 우수한 철기를 만들기 위한 비밀을 연구하던 곳이라고..

 

드라마 "김수로"를 촬영할때 객사로 사용하던 건물..

 

 오른쪽은 말을 매어두던 마방..

 

 좌측으로 올라가면 파도소리길로 가는 길이다..

 

 가야관... "김수로" 촬영시 객사로 사용하던 곳 정문.

 

 김해관..

드라마 "김수로" 촬영 장소.. 김수로와..허황옥의 침실과.. 회의 장소와 각종소품들이 있다.

 

드라마 "김수로" 촬영 장소..

 

 선착장... 해상무역을 위해 배를 대던 곳으로..

허황옥 황후가 배를 타고 도착하던 장면과.. 드라마 "백동수"에서 배우 전광렬과 최민수가 싸우던 장면을 촬영 하였다.

 

 해반촌 구역..

신발가게.. 대장간... 토기가게등..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

 

 

 저잣 거리..

가야시대 장터.. 주막.. 농기구 가게.. 포목전.. 짐승가죽..등등.

 

 야철장..

채집한 철광석을 제련하던곳.. 해상무역을 위한 철기를 만들던 곳이다. 삿갓모양의 너와집이 인상적이다.

 

 파도소리길의 시작.. 어느쪽으로 가던... 여기서 다시 만난다. 우리는 왼쪽으로가서 우측으로 돌아올 것이다.

 

무슨 사연이 그리많아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그리움으로 지새고..

 

바알갛게 멍들었다는 동백꽃이 곱다...

 

 접이식 쉼터가 이색적이다.

 

 오후에 오르게 될.. 저도의 용두산이 지척으로 마주 한다.

 

빤히 건너다 보이는 거제의 고향을 바라보며.. 노산 이은상님의 "내고향 남쪽바다"를 흥얼거리며 잠시.. 향수를 달랜다..

 

 정자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여서 따라 내려 가니..

 

 해안 데크길이다..

 

 경남 고성의 구절산도 보이고..

 

 해안데크길이 너무 짧아서 아쉬움으로 끝나 버린다.

 

 더 갈수 없는 섬의 끝자락..

 

 빤히 보이는 곳에 해양드라마셋트장과 마주 한다.

 

 멀리 마산의 진산이며 진달래가 고운.. 광려산과 이어지는 대산이 보인다.

 

▲ 다시 셋트장으로 돌아와서..

 

 야철장을 뒤로하고..

 

▲ 명주마을 주차장에서 트레킹을 마무리 한다..

 

▲ 1시간 정도의 해양드라마셋트장과 파도소리길의 트랭글을 정리하고.. 저도의 용두산으로 향한다.

 

11시 31분 : 콰이강의 다리 주차장..

 

▲ 쇼나갤러리..

쇼나(Shona)라는 이름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있는 부족 이름이며... 쇼나 조각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대대로 내려온 역동

적인 토착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조각을 일컫는다... 관람은 무료다.

 

▲ 아프리카 미인의 여심(女心)이 왠지 슬퍼보인다~... 차거운 검은돌에도 생명이 숨쉰다.

 

▲ 갤러리 내부..

 

▲ 아프리카 동물의 왕국..

 

▲ "변함없는 사랑"...

갤러리 내에서 최고가.. 2500만원이다.. 모정은 세계공통의 언어다.

 

▲ 콰이강의 다리로..

 

▲ 콰이강의 다리..

붉은색 철제교량 보행자 전용다리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잡혔던 영국군 포로들이 건설한 <콰이강의 다리> 와 흡사하여 마산의 <콰이강의 다리라>고 불리고 있다.

 

1987년 8월에 길이 170m, 폭 3m의 철제구조로 처음 가설 되었으며. 태국을 배경으로 한 <콰이강의 다리>는 2001년에는

박신양과 이미연이 출연했던 영화, <인디안 썸머>를 촬영한 곳 이기도 하다.

 

▲ 저도 연륙교..

창원시 구복리와 저도를 잇는 아치형의 저도연륙교(猪島連陸橋).  2004년 12월 16일에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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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다리 탐방을 마치고..

여기서.. 백호에서 지급하는 찰밥 도시락을 지급받아서

저도비치 데크 탐방팀과 용두산 산행팀으로 나뉘어 출발 한다..

 

2025년 01월 09일(목요일).
용두산(202.7m) : 경남 창원시.

 

산행코스 : 연육교-169봉-사거리-용두산-저도비치로드-하포주차장.

산행시작 : 연육교 11시 58분.

산행종료 : 하포주차장 14시 09분.

전체거리 : 약5.36km.

전체시간 : 02시간 10분.

운동시간 : 01시간 54분.

휴식시간 : 00시간 16분.

누구하고 : 백호트레킹.

 

조망 좋은 곳에서 마음점을 찍고..

 

12시 59분 : 13년만에 서보는 저도 용두산이다... 정상석은 옛날 그대로다.

(멧)돼지 저(猪)자에 섬 도(島)’로 쓰며.. 돼지섬이란 뜻으로. 섬의 형상이 돼지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3년전에는 능선을 따라서 바닷가에 내려갔다가 해변을 따라 왼쪽으로 갔었는데.. 지금은 군부대 사격장으로 변했다.

 

 마지막으로 나도 13년전의 그자리에서 흔적을 남긴다.

 

 14시 09분 : 하포주차장.

 

 

 

 ㅁㅎ장어구이.. 굴구이.. 조개구이..

 

 굴.. 가리비..

 

 백호회장님의 생신.. 축하드립니다..

 

 4인기준의 푸짐한 량이다..

가리비도 달고.. 석화도 달고.. 분위기도 달달하다.. 자칫~.. 식탐을 부르는 맛에..

유행가 가사처럼 오늘은 술이 너무 달다~..ㅎ.. 그러나 과음은 금물..

 

 적당히 먹고 마시고.. 밖으로 나오니.. 날씨도 좋고.. 열심히들 살아가는 어민들이 삶이 았는 어촌의 풍경이 아름답다..

 

백호트레킹과 함께한  2025년의 첫 트레킹은..

덕분에.. 오늘도 오감만족의 기분좋은 출발이었습니다.

2025년 01월 05일(일요일).
무직산(578m) : 전라북도 순창군.

 

산행코스 : 금평교-옥새바위-한반도전망대-무직산-전망대-스핑크스바위-암릉-호정소-금평교 산행종료.

산행시작 : 금평교 10시 41분.

산행종료 : 금평교 14시 42분.

전체거리 : 약7.6km.

전체시간 : 04시간 02분.

운동시간 : 03시간 33분.

휴식시간 : 00시간 29분.

누구하고 : 솔잎산악회따라서.

 

10 : 41  금평교 출발.

11 : 18  옥새바위.

11 : 26  413봉(옥새봉).

11 : 42  한반도 전망대.

12 : 16  무직산.

12 : 25  데크전망대.

12 : 28  스핑크스바위.

12 : 32  모자견바위.

13 : 12  암릉.

14 : 19  호정소.

14 : 42  금평교 산행종료.

 

 10시 38분 : 전북 순창군 금평마을앞 금평교 도착.

함박눈이 아닌 싸락눈이 내리는금(錦坪)마을은 평평한 비단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10시 41분 : 산행 들머리인 금평교입구에서 호정소 등산로 이정표를 따른다..

 

하얀 캔버스(canvas)에 그려질 오늘의 무직산 산행을 기대하며 아무도 밟지 않은 길위에 조심스레 첫발을 내딛는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오른쪽 봉우리를 경유하여 무직산 정상을 찍고 반원을 그리며 왼쪽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치천 뚝방길을 따라가다가..

 

 산으로 접어드는 곡각지점에서..

 

 이정표를 확인하고..

 

 임도수준의 넓은길을 따라 3~4분가량 진행하면..

 

새로 세워진 이정표에 <무직산 정상 2.5km>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옥의 티가 보인다.. "옥새"를 "옥쇄"로 표기하였다..

 

 목교를 건너면 본격적인 무직산 등산의 시작이다.

 

옥새봉을 향해 급오름을 치고 오르면서 몸은 서서히 데워지기 시작한다.

 

 전망바위를 오른쪽으로 에돌아 올라가면..

 

 탐스런 함박눈이 아니라서 조금은 아쉽지만.. 솔방울 하나 마다에 싸락눈이 내려 앉아 방울방울 눈꽃이 핀 모습이다.

 

 옥새바위 뒤통수..

 

11시 18분 : 옥새바위..

"옥새(玉璽)" 란.. 국권의 상징으로 국가적 문서에만 사용하던 임금의 도장을 말하며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의 도장이다..

"옥새(玉璽)"를 간혹 "옥쇄(玉碎)"로 잘못 혼동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옥쇄’란 ‘옥처럼 부서진다‘란 뜻으로

즉, 명예나 충절을 위해 깨끗이 죽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다시.. 돌아다 본 옥새바위인데... 임금님이 썼던 익선관과도 비슷하게 보인다.

 

 11시 26분 : 옥새봉(413m)..

 

옥새봉(413m)에서는 낙엽에 급경사 내림이지만 싸락눈이라 미끄럽지는 않다.. 그러나 안전이 우선이다...

 

 옥새봉(413m)을 지나서 부터는 바람을 막아주는 소나무들의 사열을 받으며 기분좋게 진행하다가..

 

 첫번째 데크계단을 지나고..

 

 두번째 데크계단을 오르면 무직산 비경이 펼쳐지는 전망대가 나오지만.. 오늘의 조망은 꽝이다.

 

 전망대가 가까워 질수록.. 몽환적인 분위기에 무협지속의 학이 신선을 태우고 날아오를것 같다.

 

 전망대 입구..

 

11시 42분 : 한반도 전망대.

여기서 바라보는 한반도지형과 건너편의 회문산.. 발아래 호정소의 조망이 압권인 곳인데.. 오늘은 무직산일대에 큰 잔치가

있는날인가 보다.. 엄청나게 큰 가마솥을 걸고.. 곰탕을 끓이는지.. 온산에 하얀 김이 서리고... 곰탕이 잘 고아졌는지 진하게

우려낸 국물속 처럼 조망은 1도 없는 뽀오얀 안개속이다.

 

순창의 랜드마크(land mark)인.. 한반도 지형..

한반도를 닮은 지형으로 무직산 최고의 포인트로.. 최근.. 순창의 숨은 비경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곳이다.

태극 모양으로 물길이 휘돌아 감기는 모습은 다른 한반도를 닮은 지형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곳 마을주민들은 한반도 지형이라 하면 모른다.. 발기한 남근이라고 하는데. 지형의 끝부분에 있는 움푹 패인

호정소(湖瀞沼)를 음(陰)으로 보고 서로 마주보고 있기에 음양(陰陽)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당겨 본 독립가옥..

아쉬움에 1년 6개월전에 찍은 사진을 올려 본다.

 

한반도 지형(남근)에 얽힌 이야기..

물돌이 지형을 순창군에서는 한반도 지형이라 하고. 마을 사람들은 음양(陰陽)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한반도 지형의 물돌이 윗쪽은 도로가 없을때에는 노루목재로 넘어 다녔는데.. 도로가 생기면서 원인도 모르게 건강하던

장정이 갑자기 죽어나가는 사단이 나자.. 마을의 원로들은 원인이 도로개설로 끊어진 남근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뒤

도로가 지나가는 노루목재에 생태터널을 놓아 능선을 연결하면서 부터는 더이상의 불상사가 일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반도 전망대 안내문에는 "옥새바위"라고 제대로 맞게 적어 놓았다.

옥새바위 유래가 적혀 있다.. 무학대사가 만일사에서 보고 옥새바위라고 하였다는 얘기다..

 

 한반도 전망대 안내문 뒤에 있는 옥새바위가 희미하게 보여서.. 수묵화를 보는것 같다..

 

다시 옛사진을 호출해 본다.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옥새바위는 아기코끼리 모습처럼 보인다.

 

 

눈발과 절경을 이루며.. 가장 어울리는 나무가 소나무인데... 100년안에 우리나라에서 소멸된다고 한다.. 안따깝다.

 

12시 10분 : 율리 통안마을 갈림길..

 

 12시 16분 : 무직산 정상.

 

▲ 무직산의 무(珷)자는 "옥돌" 을 말하며, 직(織)자는 "짜다" 는 뜻의 "옥돌로 짜여진 산" 이라는 이름답고 예쁜 산이다..

 

 배배꼬인 목생(木生)...

 

 실제로는 이 방구돌이 무직산에서 제일 높다..

 

 크레바스바위.. 저 구멍으로 빠지면.. 여차저차 되는 지름길이다.

 

과 6년전에만 해도 저 방구돌이 무직산 정상이라는 표지가 고목에 걸려 있었다..

우쨋기나 방구돌은 협소해서 위험하다.. 정상석은 안전한 현재의 위치가 맞다.

 

12시 25분 : 데크전망대..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꼭꼭 숨겨놓아도 주머니 속의 송곳은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내려다 보면.. 자~알..생긴(?) 남근에 자연의 궁합이 절묘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물도리를 볼수 있음은 오른자

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고.. 눈의 호사인데 안개속이라 볼수 없어서 이 사진도 호출한다.

 

호정소와 절묘한 물도리다..

 

부처바위..

스핑크스바위.. 삼신할머니바위.. 불(佛)바위로도 불리는데 스핑크스는 산꾼들 사이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삼신할머니

바위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분이 올라와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해서 마을에서 이렇게 부른다...불바위는 만일사에서

부르는 이름이며 ‘부처바위’를 뜻한다.

 

 스핑크스와 비슷하다..

 

12시 32분 : 모자견(母子犬)바위..

 

모자견(母子犬)바위가 위에 내려다 보고 있다..

 

▲ 헐!~... 1년 6개월 사이에 암릉지대에 데크를 설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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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암릉지대 였는데~...

 

▲ 눈발이 잦아지면서... 호정소의 물도리가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 소나무아래 전망바위가 만일사를 조망할수 있는 최상의 자리다..그러나~...보이지 않는다..

만일사는.. 고려 말기에 무학(無學)대사가 이성계(李成桂)의 등극을 위하여 중건하고 1만일 동안 기도하였던 사찰이다.

 

▲ 부채바위..

 

▲ 노루목재 생태터널,

남근의 맥을 잘라버렸던 노루목재에 터널로 맥을 이어 놓았다...

 

▲ 밀양박씨 세장산.

 

치천보... 중앙에 가면 공룡발자국이 수없이 많이 보인다.

 

▲ 호정소(湖淨沼)...

호정소에는 용이 되지 못한 못된 이무기가 살았다. 비린내를 좋아해 주민이 비린 생선을 먹고 지나가면 물고 행패를 부려서

무직장군이 산 동쪽 호정소와 이어진 큰 동굴로 들어가 이무기를 쫓아냈다는 무직장군의 전설이 있다.

 

치천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흘러서 치천(淄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겨본 옥새바위..

 

도로가 생기기전에.. 수변산책로가 개설되기전에는..

조금전 공룡발자국이 있는 치천보(湺)에서 저 징검다리를 건너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완전 폐쇄다.

 

 금평마을과 치천..

비단마을이란 뜻을 가진 아름다운 금천리 금평(錦坪)마을 이건만... 마을 앞을 흐르는 "치천"에 아픈 역사가 있으니..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고 8월 16일에 남원성을 함락한일본군의 주력 부대는 순창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순창군수 배경남(裵慶男)은 가족과 함께 산속으로 도망하였고,일본군 500여명이 무인지경으로 순창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읍민들과 주변 마을 사람들은 피난 짐을 꾸릴 시간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하였다. 일본군들은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재산을 약탈하였으며.. 백성들을 무차별학살하였다. 이때 일부 사람들이 북쪽인 구림면 금천리로 도망하였는데..

이곳 "치천"의 물가에서 모두 학살당하였다...  -- 디지털순창문화대전.. 발췌 --

 

 금평교 교각이 스마일~ 하고 있다.

 

 솔잎산악회 안전수송부 사장님의 작품 1.

 

 솔잎산악회 안전수송부 사장님의 작품 2.

 

 성냥팔이 소녀 아닌.. 아짐씨..ㅎㅎ~.

 

14시 42분 : 다녀온 무직산 능선을 바라보고 산행을 종료한다..

 

 

15시 14분 : 순창군 구림면의 ㅈㄷ식당... 두번째 오는 식당이다.

 

 닭볶음탕...

 

 솔잎산악회 회장님의 건배..

2025년 새해 첫산행을 안전하게 마무리 하고.. 을사년 올 한해도 무사무탈로 산하를 누벼 봅시다..

 

 날이 차가워서 발그레 상기되었나요?... 아니면.. 한잔으로?.. ㅎㅎ~ 향기나 보기 좋아요..

 

 그리고.. 대구 성서 모처에서 마늘소스 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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