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01일(일).
속리산국립공원 도명산 : 충북 괴산군.
▣산행코스 : 화양동주차장-운영담-화양3교-첨성대-515봉-도명산-마애불-학소대-와룡암-능운대-만동묘-화양동주차장.
▣산행시작 : 화양동주차장 10시 59분.
▣산행종료 : 화양동주차장 15시 57분.
▣전체거리 : 약8.93km.
▣전체시간 : 04시간 57분.
▣운동시간 : 04시간 01분.
▣휴식시간 : 00시간 56분.
10 : 59 화양동주차장.
11 : 16 운영담.
11 : 25 화양3교.
11 : 28 첨성대.
12 : 24 515봉.
13 : 52 도명산.
14 : 10 마애불.
14 : 55 학소대.
15 : 02 와룡암.
15 : 12 능운대.
15 : 25 만동묘.
15 : 57 화양동주차장 종료.
▲ 10시 59분 :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동주차장... 2009년 10월에 왔어니 15년만에 이자리에 다시 왔다.
▲ 주차장휴게소도 15년전보다 깔끔하게 단장 되어 있다.
▲ 도명산탐방지원센터앞을 통과하여 화양구곡쪽으로..
▲ 기암이 약250m지점의 그자리에 옛모습 그대로 앉아 있다.
▲ 우리의 솔잎님들이 지나간 길가에.. 가을이가 한점.. 내려 왔다.
▲ 화양천을 건너는 화양2교에서 바라본 상류쪽의 운영담 방향.
화양구곡은 조선 영조가 "송자(宋子)"로 칭한 우암 송시열(1607~1689)이 1666년부터 1688년까지 머물면서 산수를
즐기며 제자에게 강학했던 곳이다.
▲ 11시 16분 : 화양구곡중에 제2곡인 운영담(雲影潭).
▲ 10배 줌으로 당겨온 운영담(雲影潭) 각자(刻字).
운영담(雲影潭)은...화양천 계곡에서 빠르게 흘러내려온 맑은 물이 잠시 고여 구름의 그림자를 맑게 비추며 숨을 가다듬은
후에 다시 흘러간다는.. 주자(朱子)의 시(詩)인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의 뜻을 따온 ‘운영담’이라는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 화양구곡중에 제3곡인 읍궁암(泣弓岩).
계곡을 향해 누운 펑퍼짐한 이 바위 위에서 우암 송시열이 효종임금이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41세 젊은 나이에 승하
하신것을 슬퍼 하며 한양을 향하여 활처럼 엎드려 통곡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효종 임금을 기리며 매일 새벽과 효종의 제삿날인 5월 4일에 엎드려 곡을 했다고 한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외로운 충정만 하늘에 닿았도다.
새벽이 되도록 통곡만 하다가..
또 다시 엎드려 무릎 끌어안고 탄식하노라~.
권상하(權尙夏)의 시(詩)...
읍궁암(泣弓岩)..
▲ 하마비.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젊었을때 이곳을 지나는 길에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하여 만동묘지기(혹은 지역 유생)에게 패대기를
당하고 얻어맞는 등의 고초를 당했다는 야사가 전해지고 있다.
▲ 화양동서원과 만동묘..
하마비 오른쪽에 있어며... 하산길에 들러볼 생각이다.
▲ 화양동서원 묘정비(廟庭碑).
묘정비는 서원에 세우는 비로.. 사원을 건립하게 된 동기와 모시는 인물을 찬양하는 내용을 기록해 두는 비석이다.
영조 23년(1747)에 세웠으며.. 이재가 글을 짓고.. 유척기가 글씨를 썼다. 묘정비는 서원철폐령이 내려진 후 일본인들이
고의로 글자를 지우고 땅에 묻어버렸다. 일본인들이 글자를 모두 쪼아 없애 버렸기에 해석은 불가능하다.
이후 만동묘와 함께 복원되었다.
▲ 화양천 건너편의 암서재(巖棲齊)와.. 화양구곡중의 제4곡인 금사담(金沙潭).
금사담(金沙潭)은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금싸라기 같이 보이는 게곡속의 못이라는 의미이다.. 암서재 아래 붉은 타원형
점선안에 "금사담"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 암서재 아래 화살표에..
▲ 금사담(金沙潭)이라는 각자(刻字)가 뚜렷하다.
▲ 금사담(金沙潭)오른쪽 석벽에는...
▲ 창오운단(蒼梧雲斷).. 명나라의 황제가 살던 시대의 구름이 끊기고..
무이산공(武夷山空)...주자(朱子)가 살던 무이산은 비어 있다는 뜻으로 주자학의 본산인 명이 사라지고 없음을 의미한다.
▲ 화양천 건너편의 암서재(巖棲齊)는..
금사담(金沙潭) 물가의 큰 반석위에 있는 서재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송시열(宋時烈)이 정계에서 은퇴한 후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 화양구곡(華陽九曲)에서..
화양(華陽)이란 '중국 문화의 햇빛'이라는 뜻이다. 송시열은 이 골짜기에 작은 중화(中華:중국의 문화)를 이루려고 했다.
송시열은 이곳에 들어온 후 일상생활도 되도록 중국의 생활방식을 따르기 위해 옷도 명나라 옷과 평정건(平頂巾)을 썼다.
▲ 11시 25분 : 화양3교... 도명산 들머리.
▲ 11시 28분 :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화양구곡 중에 제 5곡인 첨성대(瞻星臺)를 둘러본다.
만절필동(萬折必東)은..황하가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을 향해 흘러간다(충신의 절개는 꺾을수 없다)는 뜻이다.
▲ 첨성대.
▲ 가운데 글씨는...비례부동(非禮不動)으로...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 대명천지(大明天地)는.. 조선의 하늘과 땅은 명나라 것이고..
숭정일월(崇禎日月)은.. 조선의 해와 달도 숭정 황제의 것이라는 의미로...극치의 사대주의를 보여주는 씁쓸한 글들이고.
송시열의 숭명(崇明)사상이 고스란히 새겨진 글씨다
참고로.. 숭정(崇禎)은 북경의 경산공원에서 1644년에 자살한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 지리산 상내봉의 안락문 같은 분위기다.. 반쯤 들어가다가 일행들과 너무 떨어진것 같아서 부지런히 올라간다.
▲ 드디어.. 계단위에 솔잎의 꼬랑자가 보인다..
▲ 간식거리로 정나눔을 하는 팀들과도 만나고..
▲ 오늘의 괴산 날씨도 32도를 오르내린다.
도명산 2.2km남은 지점까지 올라와도 바람끼가 없다... 에어컨이 꺼진걸 보니 괴산의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가 보다..ㅎ~
▲ 무리하지 말자.. 다시 너럭바위에서..
▲ 재충전을 하고..
▲ 발 딛기가 까탈스런 너덜겅을 만나는데.. 다행히 직등이 아니고 사면으로 수평이동이다.
▲ 약간의 오름을 치고올라.. 도명산에서 오른쪽의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올라선다.
▲ 515봉 된비알 오름의 시작이다.
▲ 발아래 화양계곡따라 멀리 우리가 출발하였던 화양동 주차장이 보여서...
▲ 줌으로 한껏 당겨 보니 산악회 차들이 제법 보인다. 화양계곡은 여름산으로 많이들 찾는 곳이다.
▲ 도명산 정상이 눈높이로 다가오고..
▲ 12시 34분 : 515봉 도착..
▲ 13시 00분 : 간간히 불어주는 그늘에서.. 점찍기가 늦었다고 아우성치는 속 달래기... 먹고 마시고..
▲ 도명산 정상이 지척이다.
▲ 도명산 통천문..
▲ 영암 월출산 천황봉의 통천문 보다는 길이가 짧지만.. 들어서니 시원한 통바람이다.
▲ 최고의 연리목이 있는 사랑산과 남군자산.. 그너머로는 군자산이 버티고 섰다...
▲ 솔잎의 히어로.. 윤회장님..점점 일취월장에.. 플러스 알파로 잘하고 있습니다.
▲ 카페 서핑으로 솔잎을 찾아 왔다는데.. 산꾼의 포스(force)가 묻어난다.. 매달 함께 산행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함께 산행을 해보시면.. 참~ 좋은 언니들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겁니다.
▲ 도명산은 국립공원 속리산에 속하여 있으며 그 중에 예로부터, 천하 절승지로 이름난 화양동계곡 남쪽을 가로 막고
서있는 명산으로 화강암의 바위봉과 기암석벽이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 도명산에서 마애불로 가는 내림길이 장난 아니게 가파르다..
▲ 14시 09분 : 도명산 낙영산 갈림길..
▲ 14시 11분 : 마애 삼존불.
▲ 왼쪽 동떨어진 암벽에 새겨진 또하나의 불상은 5.4m로 다른 불상과 달리 돋을새김 기법으로 곡선미를 잘 보여준다.
.
▲석벽엔 마치 밑그림 처럼 불상이 선각(線刻)되어 있다.
삼존불 중 오른쪽 불상은 9.1m 높이에 안면 길이만 2m에 이른다. 가운데 불상은 더욱 커 높이가 14m나 된다.
▲ 마애불 앞의 거대한 통바위..
이 바위로 팔공산 갓바위처럼 입체형 불상을 조각하였다면.. 완전 도명산의 유명한 불상이 되었을 것이다.
▲ 상류에 낙영폭포가 있는 사지목골에는 매미소리도 더위에 지친듯 고요하다...
▲ 14시 52분 : 학소대교.
▲ 화양천 상류..
▲ 화양천 하류쪽.
화양구곡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에 있는 경승지로... 1974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4년 속리산국립
공원에 포함되었다. 조선 중기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은거하며 이곳의 경치가 중국의 무이구곡에 버금간다고 보고 아홉
개의 구비마다 이름을 붙이면서 화양구곡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2014년 대한민국 명승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 화양구곡 중에 제8곡인 학소대(鶴巢臺).
청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학소대(鶴巢臺).
▲ 상류에는 퇴계 이황이 거닐었다는 선유구곡이 있다..
▲ 화양구곡 중에 제 7곡인 와룡암 (臥龍岩).
비스듬히 계곡을 질러 뻗은 바위가 용이 꿈틀거리는 듯하여 와룡암이다.
▲ 와룡암 (臥龍岩).
▲ 화양구곡중에 제 6곡인 능운대(凌雲臺).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능운대라 한다.
▲ 첨성대..
▲ 아침에 지나쳤던 화양서원으로..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은... 조선 후기의 정통 성리학자로 본관은 은진으로.. 주자(朱子) 의 학설을 전적으로 신봉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평생의 업을 삼았으며, 17세기 중엽 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했다. 보수적인 서인, 특히 노론의 입장을 대변했으며, 명나라를 존중하고 청나라를 경계하는 것이 국가정책
의 기조가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1689년 숙의장씨가 낳은 아들(뒤의 경종)의 세자책봉이 시기상조라 하여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미움을 사서
모든 관작을 삭탈당하고 제주로 유배되었다. 그해 6월 서울로 압송되던 길에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 만동묘로 들어가는 양추문..
▲ 송시열은 숙종15년(1689)에 사약을 받고 죽게될 지경에 처하자 제자 권상하(1641-1721)에게 명나라가 멸망한지 50년
이 지났건만, 명나라의 신종 만력제와 의종 숭정제의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라고 유언을 내리자 제자 권상하가 숙종
30년(1704) 인근 유생들의 협력을 얻어 화양서원내에 만동묘를 창건하고 스승의 유언대로 만력제와 숭정제의 신위를 봉안
하여 제사를 올렸다. 이후 조선 임금들도 만동묘를 융숭하게 대우하였다. 영조 2년(1726) 나라에서 만동묘에 제전과 노비
를 내려주었고 그 후에도 예조에서 90명이 돌아가며 묘우를 지키게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지원을 했다. 정조는 직접 사필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만동묘는 이후 서원 폐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받았다.
지역의 백성들에게 노역을 빼주겠다고 강요하여 돈을 받아내고 서원의 제사 비용을 부담케 하고.. 할당된 비용을 내지 못한
백성들을 함부로 붙잡아서 폭행하거나 고문하는 등 만행이 심했다. 심지어 거슬리는 백성을 멋대로 사형시켜도 처벌받지
않을 지경이었다. 당시 이 일대에 "원님 위에 감사.. 감사 위에 참판.. 참판 위에 판서.. 판서 위에 삼상(삼정승).. 삼상 위에
승지.. 승지 위에 임금.. 임금 위에 만동묘지기"라는 노래가 퍼졌을 정도였으니 횡포가 대단했었던 모양이다.
결국 고종 2년(1865)에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를 할때 동시에 만동묘를 철폐하고 만동묘에 소속된 재산을 국가와 지방
관청에 귀속시켰다.
▲ 만동묘 계단..
만동묘의 계단은 발디딤의 폭이 매우 좁고 단이 높은데, 명나라 황제가 계신 곳을 무엄하게 그냥 걷지 말고 기어서 올라
가라는 의미가 있다...실제로 올라가 보니 단은 높고 폭은 좁아서 바짝 긴장하고 조심해서 올라야 된다. 내려올때 위험하다.
▲ 만동묘..
만동묘라는 이름의 유래는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조종암(朝宗巖)에 새긴 선조의 어필 만절필동(萬折必東)을 모본하여
화양리 첨성대 바위에 새겼는데, 그 첫 글자와 끝 글자를 따서 "만동묘"라고 하였다..
▲ 만동묘 시당..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화양계곡 내에 위치한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신종(만력제)과 명나라
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숭정제)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만동묘는 사적 제417호, 만동묘정비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 화양서원(화양동서원) 내부에 있던 시설로 화양서원은 서원 철폐 이후 터만 남았다가 1999년 사적
으로 지정 후 2001년부터 04년까지 만동묘와 승삼문, 송자사등 일부 건물을 복원하였다.
▲ 화양서원.
1695년(숙종 21)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하기 위해 권상하(權尙夏).. 정호(鄭澔) 등 노론이 건립을 주도했으며, 1696년 창건
하고 사액을 받았다. 1716년(숙종 42)에는 어필로 편액을 받았다. 서원의 명칭인 '화양'의 뜻은 중화의 정신을 널리 알린다.
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 주차장으로 가는길에 부회장님의 삼인방..
▲ 15시 57분 : 화양동주차장 산행종료.
▲ 16시 50분 : 산막이옛길의 맛집.. 지난 7월에 하산식을 했던 집이다.
▲ 순두부전골...
▲ 회장님의 건배에 이어...
▲ 직전회장님의 건배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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