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11일(일).
주지봉. 문필봉 : 전남 영암군.
▣산행코스 : 죽정마을-양사재.문산재-양인석상.책굴-월대암-죽순봉-주지봉-문필봉-회춘능선-왕인박사유적지주차장.
▣산행시작 : 죽정마을 09시 16분.
▣산행종료 : 왕인박사유적지 15시 05분.
▣전체거리 : 약6.71km.
▣전체시간 : 05시간 51분.
▣운동시간 : 04시간 43분.
▣휴식시간 : 01시간 07분.
09 : 16 죽정마을.
09 : 29 지침바위.
09 : 30 양사재. 문산재.
09 : 34 왕인석상. 책굴.
09 : 43 월대암.
10 : 50 죽순봉.
11 : 19 주지봉.
12 : 34 문필봉.
13 : 41 똥바위.
14 : 02 미로바위.
15 : 05 왕인박사유적지주차장 종료.
▲ 04시 30분 :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오늘은 말레이시아 키나발루원정을 주관했던 이대장님이 산악회와는 별도의 기획신행으로 전남 영암군 월출산국립공원
자락의 주지봉.. 문필봉으로 가는 날이다... 승차시간이 반월당에서 05시 10분이다.. 지하철 시간도 아니고..
가까운 거리라서 택시를 타기도 그렇고... 걷기로 한다. 새벽에 달구벌 대종을 보며 걷는 길도 괜찮네~..
▲ 09시 16분 : 전남 영암군 죽정마을 도착.
▲ 구림천 목교를 건너가면...
▲ 이 길은 국립공원 월출산 둘레길인 "기찬묏길 2구간"과 주지봉등산로가 겹치는 구간이다.
▲ 09시 27분 : 왕인박사 유적지로 통하는 기찬묏길 2구간 갈림길.. 주지봉길은 임도를 따라 직진이다.
▲ 지침바위.
주변에 자생하던 닥나무를 채취하여 이 바위에다 놓고 찧어서 종이를 만들었다고 하여 지침바위(紙砧岩)라고 부르고 있다.
닥나무는 한방에서 열매를 양기부족.. 수종의 치료제로 쓴다. 어린 잎은 식용한다.
옛날에는 닥나무 껍질의 섬유로 저포(楮布)라는 베를 짰다.
닥나무를 종이 원료로 사용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인데 조선시대에 본격화되어 닥나무 재배를 장려하였다.
줄기를 1∼2m 길이로 잘라 밀폐된 솥에 넣고 증기로 두 시간 정도 찐 다음 꺼내어 껍질을 벗긴다.
이것을 그대로 말린 것을 흑피(黑皮)라 하고, 흑피를 물에 불려서 표피를 긁어 벗긴 것을 백피(白皮)라 한다.
흑피는 하급지의 원료로 쓰이고 백피는 창호지, 서류용지, 지폐 등의 원료로 쓰인다.
▲ 양사재. 문산재 입구인데.. 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 좌측은 양사재(養士齊)이고. 우측은 "학문이 산처럼 쌓인 곳" 이라는 뜻의 문산재(文山齊)인데 보수공사중이다.
문산재(文山齊)는 왕인(王仁)박사가 공부했던 서당 터로 이곳에서 큰 인물이 많이 나왔다고 조선시대에 문을 연 서당이다.
1688년 구림 대동계의 서당으로 건립되어 이용되다가 1966년에 철거되었다.
▲ 양사재(養士齊)는..
백제 때 왕인이 담소를 나누었던 장소로 전해지기도 하며, 조선 시대 구림 대동계의 서당으로도 이용되었다.
1966년에 문산재와 함께 철거되었으며, 왕인 박사 유적지로 지정되면서 1986년에 중수되었다.
▲ 양사재(養士齊)를 올라서면.. 왕인석상과 책굴로 가는길을 가르키는 표지목이 보인다.
▲ 09시 34분 : 왕인석상(王仁石像).
왕인박사의 후학들이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빙으로 상대포(上臺浦)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간 스승을 그리워
하며 세운 왕인석상은 박사가 배를 타고 떠났던 상대포구쪽을 바라보고 있다.
책굴옆의 왕인석상은 문수상, 문수암이란 별칭으로 마을에 구전되어 왔다. 법의를 입고 양손을 소매에 넣어 배 앞에 가지런
하게 새겨놓은 입상으로 직사각형 돌에 조각되었다... 표현으로 보아서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 된다는데 "왕인석상"
이라는 이름은 근래에 붙여졌다고 한다.
▲ 책굴(冊屈).. 왕인석상(王仁石像) 오른쪽에 있다..
▲ 책굴(冊屈)입구..
왕인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공부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천연 석굴에서 들어가 학업에 전념했는데,
왕인이 책을 읽던 굴이라해서 후세 사람들이 책굴이(冊窟)이라 불렀다. 폭2.5m, 길이7m, 높이5m 정도의 직사각형 굴이다.
이곳에서 학업에 정진한 왕인은 18세에 오경박사(五經博士)에 등용되었다.
오경박사(五經博士)란... 백제에는 여러 전문분야에 박사들이 있었는데 주역(周易)..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등 경서(經書)에 능통한 사람을 말하며 귀히 여겼다.
▲ 책굴(冊屈)을 올라서면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있다.
책굴은 상부가 뚫려있고 석상도 비바람에 노출되어 외부의 암벽에 누각형태로 책굴이 보호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도.. 책굴과 석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 책굴 암벽 위에서 바라본 구림마을과 왕인석상이 바라보고 있다는 상대포도 보인다.
▲ 책굴을 덮고 있는 바위군을 내려다보고..
▲ 암벽을 따라 월대암으로 향한다.
▲ 이름짓기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이름 붙여 놓은 콧구멍 바위다.
▲ 월대암(月臺岩)암석은..
토르(Tor)지형으로 월출산 천황봉과 함께 백악기 말인 약 9000만년 전에 화강암으로 이루어져있다.
▲ 월대암(月臺岩)에서 바라본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은 아직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
▲ 월대암에서 내려다 본 죽정(竹亭) 마을.
대나무 숲이 우거져 죽정마을이라고 하는데 양쪽으로 우거진 죽림(竹林)이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구림천에 의해 음죽정
(陰竹亭)과 양죽정(陽竹亭)으로 나뉘어 진다.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옛 담장은 전라남도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 월대암(月臺岩)에서...
▲ 일명... 쩍벌소나무.
▲ 주지봉능선의 매력인 암릉지대의 시작이다...
▲ 얼굴을 쑤~욱 밀어 올린 월출산의 천황봉의 장엄함이 빛난다.. 아래로는 천년고찰 도갑사가 보인다..
도갑사는 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옛부터 '호남의 소금강' 이라 불리는 월출산의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는 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다.
▲ 30배 줌으로 당겨 본 도갑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말사로.. 신라 말기에 영암 구림마을 출신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 가야 할 주지봉능선의 죽순봉...
▲ 절벽에 매달려 힘들게 자라지만.. 거기에서 꿋꿋한 모습이 아름답다..
▲ 기차를 타면 창 밖의 아름다운 풍경과 순간의 반짝임도 일순간 지나가면 다시오지 않듯이..
▲ 지나간 세월 또한 다시 오지 않음이라.. 순간을 놓치지 말자..
▲ 문필봉의 기묘한 암릉위로 흰구름이 흐르고..
▲ 당겨본 문필봉과 그 아래 스핑크스바위..
▲ 당겨본 문필봉의 불곰머리바위.. 반대편에서 보면 영락없는 불곰이다.
▲ 어느날 솔씨 하나 날아들어 보금자리 되었구나..
소나무야..
키 커려고 하지 말고 몸집 키우려 하지 마라..
키 크고 몸집 커지면 바위가 너를 싫어 할 것이다..
그러니 너의 주어진 환경에서 욕심 내지 말고 지금의 그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살아 주기 바란다.
내가 다시 이 길을 지나는 인연이 온다면.. 다시 만나자꾸나..
▲ 10시 50분 : 죽순봉 통천문..
▲ 아따!~..그눔참 인물이로구나..ㅎ~
▲ 11시 19분 : 주지봉 정상의 삼형제 바위.
주지봉의 주(朱)는 붉을 "주" 이고.. 지(芝)는 영지버섯의 "지" 자다. "지초(芝草)"라고도 한다. 지초가 많은 산인가 보다..
▲ 헐!~.. 주지봉 정상에 잔치국수가..
식객 허영만씨가 이 맛을 보았다면 뭐라고 평을 했을까..
▲ 주지봉 내림길에서 바라본 문필봉.. 안부까지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한다.
구림마을에서 보면 붓을 거꾸로 세워 놓은 모습이라더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위용을 뽐낸다.
▲ 주지봉과 문필봉 사이의 안부..여기서 계속 직진하면 문필봉이고 표지판 앞쪽 계곡이 주지골이다.
오늘 산행은 문필봉에 올랐다가 다시 주지봉으로 되돌아가서 회춘바위능선으로 하산할 것이다.
▲ 문필봉 입구의 초병격인 암봉..
▲ 문필봉을 가늠해 보고 여기에 베낭을 내려놓고 올라간다.
▲ 문필봉 오름길 1차 관문.. 로프가 조금 짧다.
어쩌다 선두에 서다 보니 로프의 안전 점검은 필수다.. 눈으로 보고 당겨보고 매달려 보고 돌려보니 괜찮다..
▲ 1차 관문을 통과하면.. 2차 관문은 홈통바위로 오른다.. 밧줄이 없어도 충분히 오를수있는 난이도다.
▲ 3차 관문.. 밧줄이 달랑 한줄이다.. 후미를 위해 충분한 점검 결과 믿어도 되는 줄이다.
▲ 문필봉 정상아래의 나마(gnamma)의 흔적..
나마(gnamma)는 화학적 풍화작용에 의해 기반암의 표면에 형성된 접시 모양의 풍화혈로 화강암의 기반암 표면에 가장
잘 형성된다. 대표적인 나마는 속리산의 문장대.. 월출산의 구정봉 등이다.
▲ 3차관문을 통과하면 정상 바로 아래에 제법 널따란 암반이 누워 있다.
▲ 일명.. 문필봉 다이빙 바위다.
▲ 문필봉 정상바위 아래..
▲ 문필봉에서 벋어내려간 스핑크스바위 군..
▲ 문필봉 정상바위.. 충분히 오를수 있는 경사각인데.. 내림이 문제다..
이대장님이 1주일전에만 오자고 했다면 올라갔을텐데...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
▲ 문필봉 정상의 나마(gnamma) 흔적만 보고 내려 간다.
▲ 지나온 주지봉.. 다시 올라간다.
▲ 다녀 간지가 30년이 흘렀어도 산하의 그림은 그대로다... 땅끝기맥이 지나가는 월각산 능선의 산그리메..
땅끝기맥은.. 전남 장흥군 유치면에서 화순군 이양면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상의 839번 지방도로의 곰재(웅치)에서 올라
서면, 국사봉(499.1m), 깃대봉(448m)을 지나고 삼계봉(5.3.9m)에 이르기 전 바람봉 헬기장(430m)에 올라선다.
바람봉에서 북으로 따로 분기하여 각수바위.. 계천산(400m).. 국사봉(614m).. 월출산(808.7m).. 월각산(456m)으로
이어지면서 영산강의 남쪽벽을 이루다가 별뫼산(464m).. 서기산(511m).. 첨봉(354m)을 거쳐 우리나라 육지 최남단인
땅끝 마을에서 바다로 빠지는 도상거리 약 122.7km의 산줄기다.
▲ 주지봉으로 다시 돌아가는길..
▲ 13시 13분 : 다시 올라선 주지봉..
▲ 회춘바위능선의 "똥바위"..
회춘바위를 탄다고 해서 이팔청춘이 될까마는.. 그래도 나이 먹는 속도가 세월 빠르게 흘러가는거 같아서 시간의 흐름이
조금은 더디게 흘러 갔어면 하는 바램이다ㅎㅎ.. 마음은 늘~ 청춘으로 살아가 보련다.
▲ "똥바위"에서 바라본 문필봉..
▲ "회춘바위 능선"에서 내려다 본 구림마을과 왕인박사유적지...
주지봉 아래에 있는 동네가 바로 구림(鳩林) 마을이다. 옛날부터 호남의 명촌을 꼽을때 가장 먼저 회자되는 곳이 구림이다.
역사가 무려 2200년에 이르는 마을이다. 그만큼 옛날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조건을 지녔던 것이다.
거기에다 명촌으로 소문나려면 뚜렷한 인물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도선국사.. 왕인박사.. 최지몽 태사가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배출됐다고 한다.. 국사(國師).. 박사(博師).. 태사(太師).. 즉 사(師) 자 돌림인 3명의 연고지이다.
▲ 타임머신을 타고 3~4세기의 백제로 들어가 보니.. 구림 마을앞까지 바닷물(노란색 부분)이 들어오는 항구였다..
상대포구는 왕인박사가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청으로 일본(왜국)으로 떠난 곳이기도 하고..
통일신라 말 당대 최고의 학자들인 최치원(산라 학자이며 문인), 최승우(신라 문인), 김가기(도교인이며 문장가) 등이
중국 유학을 떠났던 곳이기도 하다.
▲ 미로바위..
▲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회춘바위라고 하며 정작.. 회춘바위는 못찾았다고 한다.
▲ 회춘바위가 궁금해서 찾아보았지만.. 나역시 못찾겠다 꾀꼬리다..
▲ 회춘바위는 이정표에서 20m다.. 가까이 있었는데.. 너무 먼곳에서 찾았던가 보다..
▲ 수신정을 지나고..
▲ 유적지방향으로..
▲ 성천(聖泉).
왕인이 마셨다는 샘물로 성천이라 부르는데, 왕인박사가 이곳에서 자라면서 큰 학문을 이뤘으므로 뒷날 사람들이 이곳을
성인의 터 자리라는 뜻으로 "성기동(聖基洞)"이라 하고 시내 곁 우물을 성천이라 불렀다. 그런데.. 덮어 놓았다.
▲ 왕인박사 생가터.
▲ 왕인사당...
346년에 즉위한 백제의 13대왕 근초고왕과 이 시절 왜국으로 간 아직기, 그리고 왕인과 같이 건너간 "백제 도래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오늘날 큐슈의 "사가현" 그리고 일본 아스카 문화의 효시가 된 이야기등을 볼수 있다.
▲ 왕인의 일대기를 그린 석화..
▲ 왕인박사상..
왕인박사는 백제 근초고왕 때 일본으로 건너가 백제의 선진문화를 전파하여 일본 비조문화(飛鳥文化)의 시조로 숭상받는
인물이다.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가기전에 먼저 왕인과 동문 수학하였다는 아직기(阿直岐)에 대해 알아보고 가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700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멸망한 "백제"의 역사 또한 축소되거나 왜곡된 면이 많다.
백제의 최고 전성기를 이룬 왕이 백제의 13대 임금인 근초고왕(346-375)이다. 그는 고구려 "고국원왕"도 전사케 하고,
중국의 요서, 산둥반도까지, 그리고 남해안까지 영토를 넓히며 일본에까지 영향력을 끼친 왕이다.
그러나 375년 13대왕 근초고왕의 시대는 가고 17대 아신왕때에 백제의 국력은 쇠퇴하고 고구려의 광개토왕(391~413)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신라는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맺으며 백제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백제의 아신왕은 일본의 힘을 빌려 그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은 사신을 백제에 보냈고
백제에서도 크게 환대했고… 사신이 오고가는 과정에서 백제에서 왜국(倭國)으로 많은 문물이 건너갔는데 402년에 경서에
능통한 아직기(阿直岐)를 밀사로 파견하고 옷 깁는 기술자인 공녀(工女)와 명마 두필과 칼과 거울을 함께 보냈다.
일본의 응신천황(應神天皇)은 아직기(阿直岐)가 경서(經書)에 밝은 것을 알고 황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어느날.. 왜국 천황이 아직기의 뛰어난 학식을 보고 물었다.
“백제에 그대보다 나은 박사가 또 있는가?”
“왕인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무척 빼어납니다.”
이렇게 해서 응신천황이 백제에 사자를 보내 왕인(王仁)을 초빙했던 것이다.
백제의 아신왕은 곧바로 왕인을 일본으로 보냈다.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빙으로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
으로 건너가 그 해박한 경서(經書)의 지식으로 응신천황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의 문화를 깨우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그의 후손은 대대로 학문에 관한 일을 맡고 일본 조정에 봉사하여
일본 문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 영월관(전시실)에 잠시 들린다.
▲ 일본서기..
일본을 생각하면 언제나 두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의 치욕.. 그래도..
1,600년전.. 일본에 문명의 씨앗을 뿌린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대단한 긍지임에 틀림 없는 사실이다.
▲ 백제목조관음상(모조품)..
1400년전에 나무로 만들어진 목조상이 썩지도 않고 보존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일제때 도굴이나 수집가에 의해 일본으로 유출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기록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 백제 성왕의 얼굴을 닮은 구세관음상.
▲ 천인천자문.
2008년 영암 왕인문화 축제 때 국내외 1000명이 쓴 천자문이 새겨져 있다.
▲ 영월관 뒤로 죽순봉.. 주지봉.. 문필봉이 병풍처럼 둘러 섰다.
문필봉은 "천호봉필(千戶奉筆)"의 형국이라고 한다. 천가구가 문필봉을 받들고 있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유명한 죽순봉.. 주지봉.. 문필봉의 암릉을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즐긴 조망은 너무나도 멋진 시간이었다.
▲ 15시 05분 : 왕인박사유적지 산행종료.
▲ 15시 51분 : 왕인박사유적지에서 20여분을 달려 찾아온 돌쇠의 정..
▲ 연잎떡갈비정식 상차림..
▲ 연잎떡갈비... 맛있다.
▲ 이대장님의 건배로 마무리...
꽃은 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기에 이쁘게 피워 내는 것이다.
사람은 끝이 두려워 시작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지는 것이 두려워 피우지 않는 꽃은 상상 할 수 없다.
오늘..
월출산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주지봉.. 문필봉을 타고 회춘능선으로 하산..
더 할 나위 없이 머~찐 꽃을 피워낸 기획산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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