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14일(일).
계룡산국립공원 : 충남 공주시.
▣산행코스 : 갑사주차장-갑사-연천봉-등운암-관음봉-자연성릉-삼불봉-남매탑-동학사-동학사주차장.
▣산행시작 : 갑사주차장 09시 59분.
▣산행종료 : 동학사주차장 15시 17분.
▣전체거리 : 약 11.36km..
▣전체시간 : 05시간 18분.
▣운동시간 : 05시간 05분.
▣휴식시간 : 00시간 13분.
09 : 59 갑사주차장 출발.
10 : 13 갑사.
11 : 38 연천봉.
11 : 46 등운암.
12 : 11 관음봉.
12 : 42 자연성릉.
13 : 32 삼불봉.
13 : 48 남매탑.
14 : 34 세진정.
14 : 37 동학사.
15 : 17 동학사주차장.
▲ 09시 59분 : 갑사주차장.
▲ 주차장에서 갑사를 가르키는 목교를 건너면...
▲ 갑사 괴목대신( (槐木大神).
수령이 1600년 된 회화나무 또는 홰나무라 불리는 이 나무는 1990년대 초반에 태풍으로 부러져 밑동만 남아 있는 상태다.
임진왜란때에는 영규대사와 많은 승병들이 모여.. 이 나무밑에서 금산벌 전투를 위한 작전을 세우기도 하였다는 호국불교
의 신수(神樹)로.. 예로부터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이자 대표적인 당산나무다..
▲ 갑사 황매화 축제가 2024년 4월 19일부터 4월 21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 계룡산 갑사 일주문.
▲ 일주문을 지나 용추교에서 바라본 갑사계곡의 하대천... 계룡산의 서쪽을 흐르는 하천이다.
계룡산의 동쪽에는 용산9곡, 서쪽에는 갑사9곡이 있는데, 용산9곡은 취음 권중면선생이 국권회복을 바라며 만든 구곡이며
갑사9곡은 친일민족반역자 윤덕영(尹德榮)이 갑사계곡의 절경에 취해서 개인적으로 만든 9곡이다.
▲ 갑사 1곡... 용이 노닌다는.. "용유소" 도 보이고... "삼갑동문" 이라는 글자도 있다.
▲ "간성장"이라는 각자가 보인다.
간성장에 대해서는 조금후에 언급할 것이다.
▲ 갑사 황매화는.. 축제가 열리는 다음주쯤이면 만개할것 같다.
▲ 사천왕문을 지나면..
▲ 갑사 입구가 보이고..
▲ 계룡갑사.. 갑사의 강당인 지장전이다.
현판의 글씨는 조선 고종 24년(1887) 충청 절도사 "홍재희"가 쓴 것이다.
그런데... 조금전 일주문에서 보았던 계룡(鷄龍)과.. 지장전의 계룡(雞龍)이 계자가 다르다.
일주문의 계(鷄)는 새 조(鳥)를 품었고.. 지장전 강당의 계(雞)는 새 추(隹)를 품었다. 두글자 다 같은 새라는 의미 이지만..
조(鳥)는 꼬리 긴 새를 말하고.. 추(隹)는 꼬리짧은 새의 의미라고 한다.. 두 현판의 글씨가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 갑사 입구 왼쪽에는 범종각이고.
▲ 오른쪽에는 갑사 동종(보물 제478호).
▲ 갑사 동종(보물 제478호)은...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구름을 조각한 종거(鐘鐻)에 매달려 있다.
원래 이 동종은 1584년 이전부터 있었는데.. 1583년 북방 오랑캐가 난을 일으키자,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 있는 사찰의
모든 종을 공납하여 무기로 만든 탓에 없어졌고, 이듬해 갑사에서 철 8천 근을 들여 다시 만들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태평양 전쟁 때문에 공출되었다가 다행히 광복 후 갑사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 갑사 공우탑... 소의 공적을 기린 특별한 탑이다.
정유재란으로 파괴된 갑사는 국왕의 성수를 비는 사찰이라 하여 전쟁이 끝나자 즉시 중건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주지 스님
의 꿈에 소가 나타나 절을 지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날 이후 소 한 마리가 매일 재목을 등에 싣고 공사 현장에 날랐다.
그리고 갑사가 완공되던 날 소가 죽었다. 이에 스님은 갑사 중건에 도움을 준 소의 공을 기리고자 공우탑을 세웠다고 한다.
공우탑이 원래 있었던 자리는 대적전 가는길의 계곡옆에 화살표 지점에 있었는데.. 지금의 이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전의 "간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화살표쪽 계곡으로 간다.
▲ 갑사 공우탑의 원래의 자리를 찾기 위해 대적전 방향으로 약 30m정도 내려 간다.
▲ 갑사 9곡중에 5곡인.. 금계암과 마주보는 자리에 공우탑이 있었다.
아마도 계룡산이 풍수학에서 말하는 '금계포란'과 '회룡고조'의 명당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가 보다.
▲ 여기서 위쪽을 보면.. 저 건물이 "간성장"이다.
윤덕영은 갑사 옆을 흐르는 계곡을 '구곡'이라 이름 붙이고 나서 간성장이란 별장을 짓고서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한때.. 갑사 전통찻집이었다가 지금은 갑사 요사채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 친일반역자 윤덕영은 황실의 외척으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으며, 1910년 경술국치 때는 치마속에 옥쇄를 감추고
내놓지 않았던 순정효황후를 위협해서 옥쇄를 강탈한 후 순종에게 한일합방늑약에 옥쇄를 찍도록 강권하여 조인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윤덕영은 노년에 갑사앞 계곡 가에 지은 간성장(艮成莊) 이라는 별장에 머물며 갑사 옆을
흐르는 계곡 2㎞ 정도에 걸쳐 갑사9곡을 설정하였다... 간성장은 당시 공주 갑부 홍원표가 갑사로 부터 30년 임대계약으로
계곡옆 대지위에 지어 윤덕영에게 바친 한옥식 별장이다... 간성장은 윤덕영이 애용하다가 해방후에는 공주 출신의 국회
의원을 지낸 박충식(1903~66)의 별장으로 사용했으며, 그 후 한동안 전통찻집으로 활용되다가 지금은 외부 손님이 묵는
갑사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 다시.. 공우탑으로 돌아 와서..
위의 단에는 공(功) 아래의 단에는 우탑(牛塔)이라 쓰여 있고...
1층 탑신에는 4언 4구의 명문이 아래의 사진과 같이 새겨져 있다.
▲ 오른쪽 부터 세로로..
와탑기립(臥塔起立)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니..
인도우학(人道偶合) 사람의 갈 길과 우연히 합치 되었다.
삼회을을(三會乙乙) 모든 공이 이루어 지려면 3세판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세번을 수고하고 수고했으니..
궐공거갑(厥功居甲) 그 공이 여기 갑사에서 펴 나간다.
친일반역자 윤덕영이 쓰러져 있던 탑을 일으켜 세운 자신의 노력이..
"사람의 도리에 합치" 된 것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고증이 없다고 한다.
▲ 5월 15일의 석탄일을 맞아 대웅전 마당의 연등이 화려 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세상에 들어와 있다.
▲ 으뜸을 의미하는 갑(甲)을 사찰이름으로 쓰는 갑사(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산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420년(백제 구이신왕 1)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다는 설,
556년(백제 위덕왕 3) 혜명대사가 창건했다는 설,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혜명대사가 중창했다는 설이 있다.
▲ 679년(문무왕 19)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건물 1,000여 칸을 더 짓고 절 이름을 계룡갑사에서 갑사로 바꾸어 화엄대학
지소로 삼았으며, 이때부터 화엄십찰의 하나가 되었다. 1579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모두 불타버리고, 1654년
(효종 5) 사정.. 신휘 등이 관청의 도움을 받아 중수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강당.. 대적전.. 천불전.. 응향각..
진해당.. 적묵당.. 팔상전.. 표충원.. 삼성각.. 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 갑사에는.. 월인석보 판목이 이곳에 보관돼 있다...
이 판목은 ‘월인석보’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던 판각으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판목이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석보상절’을 설명으로 하여 세조 5년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연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석보상절’은 조선 세종 28년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
대군이 불경을 참조하여 지은 것이고, ‘월인천강지곡’은 세종 29년에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은 것이다... 이 판목은 논산 쌍계사에 보관하였다가 현재 갑사에 소장되어있다 한다.
▲ 여기에서 연천봉으로..
▲ 갑사 석조여래입상..
▲ 갑사 석조여래입상..
갑사 중사자암에 있던 것을 현재 위치로 이안했다고 한다.
▲ 갑사 석조여래입상의.. 바로 옆 계곡은 민족 반역자 운덕영이 만든 갑사9곡중 6곡인 명월담이다.
▲ 6곡인 명월담 아래에.. "순화임원"이라는 바위가 누워 있다.
순화는 무궁화꽃을 말하는 것인데.. 이곳에 무궁화 동산이 있었던 모양이다.
▲ 10시 23분 : 이제부터 연천봉 코스의 시작이다.
▲ 신록이 시작하는 기분좋은 숲의 향기를 맡으며 작은 능선 하나를 넘고..
▲ 우리나라 4계절중에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연두나라의 연두길로..
▲ 잠시.. 대자암길을 만나서 나란히 걷다가..
▲ 연천봉 등로로 바꾸어 걷는다.
▲ 이 부근에 원효가 수련하던 곳이 있다고 하는데.. 위치는 알수가 없다.
▲ 원효대를 지나면서 부터는 본격적인 연천봉 오름길이다.
▲ 오를수록 경사는 더욱 가팔라진다... 나만의 계단 오르는 방법이 있다...
발끝만 보고 한계단 한계단 오른다.. 위는 올려다 보지 않는다.. 쳐다보면 여전히 까마득 하니까..
숨은 길게 들이 마시고.. 천천히 내뱉는다.. 산속의 공기를 길게 마시면.. 머리가 맑아진다.. 맑아지면 피로감도 덜하다.
▲ 발끝만 쳐다 보아도 이쁜 꽃들과 나누는 무언의 대화가 있다..
▲ 그렇게 오르다가.. 허리 한번 펴고 보면 어느새 돌계단 끝단위에 서게 되고.. 머리위로 하늘이 열린다.
▲ 11시 29분 : 연천봉 고개..
▲ 200m의 연천봉에 다녀 온다.
▲ 등운암 갈림길.. 내려올때는 등운암으로 올것이다.
▲ 헬기장을 지나고.
▲ 이 소나무가 사는법.. 나.. 이렇게 산다우~~.
▲ 11시 38분 : 연천봉 정상.. 정상석이 없다.
▲ 연천봉의 바위에 새겨진 석각.
방백마각(方百馬角)에... 구혹화생(口或禾生)..
▲ 조선왕조는 건국한 지 472년 만에 종말을 맞는다는 메시지다.
방백은 네모진(方) 백(百)이라는 뜻이고... 400이라는 숫자가 도출된다.
마(馬)는 자축인묘진사오미로 세어가면 오(午)에 해당하는 말[馬]이다. 오(午)는 십이지 가운데서 일곱째에 해당한다.
각(角)은 뿔이다. 뿔은 대개 2개다. 마각(馬角)은 72다. 따라서 방백마각은 472년이 된다.
구혹(口或) 을 결합하면 나라 국(國)자가 된다. 화생(禾生)을 결합하면 옮길 ‘移(이)’ 자로 통용된다.
구혹화생을 해석하면 ‘나라를 옮긴다’가 된다. 조선이 472년 만에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생긴다는 의미다.
▲ 영빨이 세다는 연천봉에서 계룡산을 배경으로..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은 쌀개봉으로 기운을 전하고.. 쌀개봉은 북으로 꿈틀대며 올라가 관음봉(816m)을 만들고 거기서
용맥은 서쪽으로 내달아 문필봉(756m)을 거쳐.. 마침내 연천봉에서 마지막 기맥을 일으키곤 비로소 멈춘다.
즉.. 연천봉이 천황봉을 바라보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의 용맥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 작년 10월의 어느날.. 머리봉.. 문다래미.. 쌀개봉이 주마등처럼 지나 간다..
계룡산은 우리나라 제 2호 국립공원으로 충남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이다. 옛부터 정도령 설화의 본무대인 신도안이 있는
곳으로 지금은 3군 통합 사령부인 계룡대가 위치해 있어 공원의 절반이 탐방 금지 구역으로 묶여 있다.
▲ 공주시 계룡면의 계룡저수지..
▲ 문필.. 관음.. 삼불봉의 산그리메...
▲ 11시 46분 : 등운암..
1300여년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사찰로, 등운암은 민족의 영산 계룡산의 관음봉, 쌀개봉, 국사봉, 천황봉 등 병풍처럼 펼쳐
있는 봉우리중에서 가장 영험하다는 연천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신원사의 말사이다. 유래는 신라 진덕여왕 때 경주에 사는 영특한 아이 “진광세”가 있었다. 불국사에 출가하여 부설
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등운대사(騰雲大師)가 신라 문무왕 8년(668)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대사는 이 곳에서 암자를 짓고
수도 하였으며, 그는 부설거사(浮雪居士)의 아들이다.
부설거사는 한때 스님이었으며, 기이한 인연으로 묘화(妙花)라는 여인과 결혼해 환속하여 속가에 살면서 아들 등운(騰雲)
과 딸 월명(月明)을 낳았다. 부설거사는 대각(大覺)을 이룬뒤 열반에 들고, 아들은 등운암에서, 어머니 묘화부인과 딸 월명
은 변산반도로 들어가서 움막(훗날 월명암)을 짓고 수도하여 득도를 하였다. 이 후 묘화부인은 장흥 보림사로 들어가서
살았는데, 그들은 신족통(神足通)을 얻어 밤이면 등운암에 자주 모여 함께 수도 하였다고 한다.
▲ 11시 49분 : 연천봉고개에서 관음고개로...
▲ 12시 06분 : 관음봉고개...
여기서 직진하면 은선폭포를 경유하여 동학사로 내려 간다.. 좌측.. 관음봉으로 올라간다.
▲ 천황봉.. 쌀개봉.. 머리봉 능선이 생각나지만... 갈수 없는 곳이다.
▲ 12시 10분 : 관음봉..
인증샷 대기자들이 줄을 섰다.
▲ 인증샷을 교대하는 팀에게 정상석만 찍고 가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 자연성릉을 가기위해.. 정자쪽에서..
▲ 더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
▲ 삼불봉.. 남매탑 쪽으로...
▲ 관음봉에서 바라본... 자연성릉.. 기억으로는 20년도 넘은것 같다.
▲ 동학사계곡..
▲ 멀리 갑사 주차장이 보인다..
▲ 관음봉에서 자연성릉 내림길은 양방이 구분되어 있다...
▲ 용의 등줄기 같은 자연성릉의 암릉...
▲ 내림길 보다 오름길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사량도 가마봉 내림길과 비슷한것 같다.
▲ 당겨 본 동학사..
▲ 까마득한 삼불봉을 가까이 당겨 본다...
▲ 자연성릉 명품송 1...
▲ 12시 35분 : 오늘 최고의 밥자리..
동학사계곡의 시원한 통바람이 올라오는 곳이다.
▲ 최고의 밥자리에 앉아서 발아래 은선폭포도 내려다 보고...
▲ 자연성릉 명품송 2...
▲ 자연성릉 명품송 3...
▲ 자연성릉 명품송 4...
▲ 자연성릉 명품송 5...
▲ 자연성릉의 고목이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다...
▲ 신흥암의 천진보탑이 혹여나 보일까...
▲ 당겨보니 보탑은 보이지 않고 돌탑 2기만 확인된다...
▲ 삼불봉이 아닌 삼불봉 같은 봉우리...
▲ 자연성릉 명품송 6...
오름길에 지쳤는지.. 포커스(focus)가 조금 흔들렸다.
▲ 진짜 아닌 가짜 삼불봉 전망대...
▲ 계룡의 에너지를 가슴에 품는다...
▲ 가짜 삼불봉에서 바라본 진짜 삼불봉.....
▲ 어머무시한 바우를 돌아서...
▲ 올라가 보아도... 삼불봉은 아직도 저만치 서있다.
▲ 13시 20분 : 금잔디고개 갈림길..
▲ 진짜배기 삼불봉 오름계단.....
▲ 13시 32분 : 삼불봉...
천황봉이 계룡산의 정점이라면.. 삼불봉은 불교의 깨달음의 정점이고, 관음봉은 그 중간에 위치한다.
삼불봉은 멀리서 보면 세 분 부처가 앉아서 참선하는 것 같다 하여 유래한다.
▲ 삼불봉의 뷰(view) 맛집이다...
▲ 삼불봉의 내림도 양방향 따로다.
▲ 삼불봉 내림길에서 드디어 보인다.. 장군봉에서 신선봉.. 그리고 상신리 하산.. 다시 한번 더 가고 싶은 코스다.
▲ 13시 40분 : 삼불봉 고개..
▲ 남매탑 내림길.. 이제는 더 이상의 오름길은 없다.. 하지만.. 돌계단이 쉽지 않다.
▲ 13시 48분 : 남매탑(제1284호와 1285호)..
남매탑은 동학사 창건의 기원이 되는 상원조사의 전설이 있는 두 개의 탑이다.
상원조사가 토굴을 만들어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입 속에 큰 가시가 있어 뽑아 주었더니,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 와 내려놓고
갔다... 처녀는 경북 상주 사람으로 혼인을 치른 첫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 남매탑(제1284호와 1285호)..
겨울이라 눈이 쌓여 돌려보낼 수 없어 계절이 바뀐 뒤 처녀를 돌려보냈다. 처녀의 부모는 다른 곳으로 시집보낼 수도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스님에게 부부의 예를 갖추어 주길 바랐다. 이에 스님은 고심 끝에 처녀와 의남매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
로서 수행하다가 한날한시에 입적했다고 한다.
두 분을 기리기 위해 제자인 회의화상이 사리를 담은 탑을 세웠는데, 남매탑 또는 오누이탑이라 불리게 되었다.
▲ 1.7km의 돌계단이 지루하다..
▲ 14시 30분 : 목교..
▲ 14시 30분 : 세진정..
계룡산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맑은 물로 세속의 먼지들을 씻어 내는 정자다..
맑게 흐르는 물속에 풍덩하고 싶지만... 국립공원이다.. 대신.. 계곡을 타고 오르는 상쾌한 바람으로 크게 호흡한다.
▲ 공주 동학사는 한때 서원이 될 뻔한 사찰이다.
작은 암자였던 동학사는 신라가 망하고 류차달이라는 이가 이곳에 신라의 충신 박제상을 제사하기 위해 동학사(東鶴祠)
라는 사당을 지으면서 일신했다. 사당이 번창하자 절 이름도 아예 동학사(東鶴寺)로 고쳐 지었다.
현재 박제상을 모신 사당 이름은 동계사(東鷄祠)이다.
▲ 14시 37분 : 동학사 3층석탑과 대웅전..
신라중엽 때 사원선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때 회의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마곡사의 말사이자 비구니들의 전문 강원이나 고려조에 와서 도선국사가 중수했으며 태조의 원찰로 삼아
국태민안을 빌었고, 그 뒤 순조대와 고종원년(1864년)에 크게 중건하고 개수 되었다.
▲ 동학사 길건너 산책로를 따라 가는데.. 동학사 지척에 미타암과..
▲ 관음암이 담장 하나 사이로 붙어 있다.
▲ 동학사 부도군..
▲ 14시 37분 :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
여기에도 현판이 꼬리 짧은 새 추(隹)를 품은 계(雞)룡산이라 되어 있다.
공주 동학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23년(724년) 상원조사의 제자인 회의화상이
절을 짓고, 반야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이라고 해서 이름을 청량사(淸凉寺)라 하였다가, 고려 도선국사가
920년에 중창을 하고, 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다 하여 동학사라 개칭하였다. 조선시대(1457년)에 매월당 김시습이
단종과 안평대군, 김종서, 사육신의 제사를 이 곳에서 지냈고, 간화선을 떨친 경허스님이 이 곳에서 교학 강의를 했다.
한국전쟁으로 거의 파괴된 것을 1975년에 새로 지었다.
▲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 앞에 홍살문이 있다..
사찰에 홍살문이 있는 이유는 왕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기 때문이다. 세조에 의해 폐위된 단종과 사육신 등의 위패가 이곳에
있어 왕릉 입구에 있는 홍살문이 있는 것이다.
▲ 계룡산 동학사 탐방지원센터..
▲ 계룡산 동학사 상가지역도 지나고..
▲ 계룡산 호텔 아래에...
▲ 대형버스주차장이 있다.
▲ 15시 17분 : 계룡산 자연성릉길 종료..
▲ 20여년만의 계룡산 자연성릉길..
화창한 날씨 만큼이나 찬란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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