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07일(목).

가야산국립공원 : 경남 합천군/경북 성주군.

 

산행코스 : 법전리2주차장-마수폭포-법전리개방코스-칠불봉-상왕봉-토신골-성보박물관-해인사주차장.

산행시작 : 법전리2주차장  09시 36분.

산행종료 : 치인리주차장  15시 45분.

전체거리 : 약12.6km.

전체시간 : 06시간 09분.

운동시간 : 05시간 02분.

휴식시간 : 01시간 07분.

 

09 : 36  법전리2공영주차장.

09 : 41  법전리1공영주차장.

09 : 45  법전탐방지원센터.

09 : 49  마수폭포.

10 : 28  법전리개방코스입구.

12 : 53  칠불봉.

13 : 10  상왕봉.

13 : 46  토신골석조마애불.

15 : 34  성보박물관.

15 : 45  치인리주차장.

 

09시 32분 : 경북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2공영주차장 도착..

 

아박산이 올려다 보이는 법전리 마수골 일대는 조선시대의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서 언급한 십승지지(十勝之地)중의

한 곳인 '가야산 만수동'을 가리키는 마을이다. 실제로.. 마수리(법전동) 뒷산에 만수동이란 글씨가 쓰여진 표지석이 있다.

 

가야산을 배경으로 화랑님들의 단체샷..

오늘은 겨울의 문턱인 입동날이다.. 풍수지리 사상에 기반해 전란이나 흉년, 질병을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다는 십승지지

(十勝之地)의 명당마을인 법전리에서 역전의 용사들 답게 화랑님들의 홧팅!~ 소리도 우렁차다..

 

올라야 할 가야산 마루금을 가늠해보고..

 

 09시 36분 : 간결하면서도 실속있는 안내도를 보며 가야산을 향해 출발!~..

그런데.. 내용중에 이해가 안가는 옥의 티가 보인다.. 칠불능선과는 거리가 먼 "칠불능선 탐방로입구"라고 되어 있다.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 안내도.

선비산수길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총 11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독용산성에서 성주호 제방까지를 1코스로

‘성주호 둘레길(26.2㎞)’을 만들고.. 2코스는 마수폭포에서 청휘당까지 ‘가야산 에움길(11.3㎞)’을 조성하었다.

 

오늘의 등반코스인 법전리~가야산 개방구간은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인 에움길을 따라가다가 법전리 탐방로입구에서

가야산까지 새로 조성한 개방구간으로 올라갈 것이다..

 

 올가을에 본 단풍중에 제일 고운것 같다..

 

가야산 상왕봉과 칠불봉.

가야산의 최고봉은 칠불봉으로 해발 1433m이지만 가야산 주봉으로서의 지위는 1430m인 상왕봉에게 뺏겼다.

칠불봉은 경북의 성주군에 속하고 상왕봉은 경남 합천에 속한다.. 주봉의 지위 뿐만 아니라 산의 이름까지도 성주 가야산이

아닌 합천 가야산으로 빼앗겼는데.. 가야산에는 가야산보다 더 유명하고 우리나라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해인사가 있고

그 해인사가 합천군에 있으니 가야산은 합천 가야산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가야산은 몰라도 해인사는 다 안다..

가야산 자락에 해인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해인사가 가야산을 품고 있는 것이다.

 

09시 36분 : 법전리1 공영주차장(승용차 전용).

 

 09시 45분 : 법전탐방 지원센터.

 

봉양법전탐방로입구.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 에움길의 시작점이다.

에움길은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가야산 법전탐방지원센터에서 성주군 수륜면 신파리 청휘당까지 11.3km다.

 

마수폭포에 다녀오기로 한다..

 

 09시 49분 : 마수폭포(일명 죽전폭포).

 

다시 봉양법전탐방로입구로 돌아와서...

 

입동날 아침에 매우 추울거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걸음수가 더해짐에 따라 몸이 기분좋게 더워지고.. 산과 숲과 햇살이 보듬어주는 분위기 좋은 가을길이다.

 

지난해 환경부가 국립공원 가야산 내 신규탐방로로 지정.고시한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칠불봉 간 2.8km 구간을 성주군

에서 국립공원 가야산을 종주할 수 있는 길이 52년 만에 열려 명실공히 ‘성주 가야산 시대'가 열렸다.

 

화랑의 히어로(hero)인 산대장님이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산대장은 산악회의 얼굴이요.. 거울이다.. 늘~ 웃음띤 얼굴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09시 49분 : 법전리탐방로 입구..

아래는 또.. 칠불능선탐방로라고 되어있다.. 차라리 "칠불봉탐방로" 라고 하던지.. 성주군은 가야산국립공원의 신규탐방로

인 ‘가야산 법전리~칠불봉’ 간 2.8km의 구간을 2024년 6월 24일부터 개방햐였다.

 

써~억.. 고운 단풍색깔은 아니지만... 지난 여름날의 모진 폭염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그래도 이 만큼의 단풍색을 보여주려고 몸부림을 쳤을 나무들에게 수고했노라고 격려해주고 내년울 기대 한다.

 

단풍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광합성과 관련이 있다. 나무는 봄과 여름 동안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잎 속의 엽록소를 사용한다. 엽록소는 녹색을 띠며.. 이 성분이 햇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잎이 녹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더 이상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엽록소가 분해되기 시작하면서.. 나뭇잎의 초록색이 점차 사라진다.

엽록소가 사라진 후에는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이라는 다른 색소가 나타나게 되고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등의

아름다운 단풍이 만들어 진다.

 

탐방로 안내도를 보니 법전리개방구간을 3분의 1정도 올라 왔고.. 지금부터 난이도가 가팔라진단다.

 

 개방된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날것 그대로의 원시림이다..

 

아직도 아물어지지 않은 상처..

 

 11시 21분 : 처음으로 조망이 터지는 바위전망대..

 

 칠불봉에서 동성봉으로 이어지는 동장대능선..

 

 경북 성주군 방향...

 

 전망바위를 지나서부터는 오름길이 더욱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조여사님의 배낭꼬리도 잡고.. 핵폭탄님의 포도로 당보충을 한다.. 잘먹었습니다..

 

 첫 계단..

 

 두번째계단은..

 

 제법 길게 이어진다..

 

 세번째 계단..

 

 네번째 계단에서는 뒤를 돌아보는 핑계로 숨을 고른다.

 

노각나무.. 지대가 높고 척박한 곳인데도 이렇게 굵게 자랐다.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학명에 ‘koreana’라는 지역 이름이 들어간 순수 토종나무인 노각나무 이름의 유래로는 사슴뿔처럼

보드랍고 황금빛을 가진 아름다운 수피라는 뜻에서 녹각(鹿角)나무라고 하다가 발음이 쉬운 "노각나무"로 되었다.

 

고도가 높아지니 고드름이 꽁꽁이다..

끝날것 같던 계단은 올라서면 또 나타나고... 그렇게 지겹게 나타나던 계단을 서너개 지나고 나서..

 

 여덟번째 철계단을... 마지막으로 올라서니...

 

 경북 김천방면으로 시야가 터진다..

 

 서릿발..

 

 12시 40분 : 주능선에 다 올라 온것 같아서..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민생고 해결..

 

길가에 풍혈이 보여서 안쪽을 들여다 보니 대략6~7m의 깊이다.

 

 12시 46분 : 드디어 능선에 도착..

칠불봉100m...상왕봉 200m.. 먼저 칠불봉에 다녀 온다.

법전리 개방코스는 한마디로 두번 다시 오르고 싶은 생각은... 1도없는 코스다.. ㅠㅠ~.

 

경북과 경남의 경계지점에서 바라 본.. 상왕봉...

 

 대구방향..

 

가야산의 이름은 가야산(伽倻山) 외에도 우두산(牛頭山). 설산(雪山). 상왕산(象王山). 중향산(衆香山). 기달산(怾怛山)등

여섯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監)"권30 택리지에 가야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높고 수려함과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영험함을 말하여. 명산으로 불렸다 한다.

 

 12시 53분 : 칠불봉 도착..

칠불봉(七佛峯)은 가야국(伽倻國)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아들 거등(居登)은 왕위를 계승하여. 김씨(金氏)의 시조(始祖가 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의 성씨(姓氏)를 따라서

허씨(許氏)의 시조가 되었고. 나머지 7명의 왕자는 허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후 도를 깨달아 생불(生佛)이 되었다. 하며 그 밑에 칠불암(七佛庵) 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되어 이름 지어졌다.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열반에 들기 위해 칠불봉에서 수행을 했는데 오르기가 너무 험해서.. 어머니 허황후가 왔다가

되돌아갔다는 안타까운 옛이야기가 전해지는 봉우리다.

 

 동성봉의 동장대 능선..

 

서장대(상아덤)와 만물상 능선..

가야산은 여신인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하가 처음 만난 곳이다.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르는 신이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여신의 바위란 뜻의 상아덤에 내려앉았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기록은 최치원의 석순웅전'과 '동국여지승람'에 전해 오고 있다.

 

가야국 수로왕에게는 아들이 열 명 있었는데 1인은 태자가 되고  2인은 허씨를 내리고 일곱 사람은 인간 세상을 끊는 데

뜻을 두어, 보옥선인을 따라 가락산으로부터 운상원에 들어가 도를 배워 부처가 되었는데 그들을 일곱명의 부처 칠불

이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가야산에 존재하는 명칭인 상아덤 그리고 칠불봉이 생겨난 것이란다.

 

▲ 경북 성주군의 칠불봉에서.. 경남 합천군의 상왕봉으로..

 

▲ 난공불락의 철옹성처럼 우뚝 솟아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상왕봉..

 

▲ 상왕봉 오름계단.. 작년에는 고무발판이었는데 새로 바뀌었다..

 

13시 11분 : 상왕봉 정상석에는 가야산 우두봉이라 되어 있다.

가야산국립공원은 1972년 10월 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됐으며 전체면적은 7만 6256㎢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가 서로

잇대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산의 우뚝 솟은 상왕봉은 해발 1430m의 늠름한 위용을 자랑하며 가야산 전체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가야산은 오래전부터 해동(海東)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난 곳으로, 현재 우리나라

10대 명산으로 꼽혀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옛 선현들은 "산형은 천하에 절승(絶勝)하고 지덕(地德)은 해동에서 제일"이라고

가야산을 극찬했다. 범상치 않은 기상과 수려한 풍광은 예나 지금이나 훌륭하다. 가야산에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

으로 '팔만대장경'를 봉안한 해인사가 있으며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 도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경 가운데 가히

으뜸이라 불린다.

 

▲ 봉천대 가는길.

 

상왕봉에서 바라 본 칠불봉.

 

▲ 우두봉의 우비정... 소의 콧구멍에 해당된다고 한다.

자연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다.. 바위뿐인 이곳에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이다.

 

▲ 해인사 하산길..

 

▲ 뒤돌아 본 상왕봉.

 

▲ 가야산 제18경인 봉천대(奉天臺)... 가야산 중턱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 봉천대의 깍아지른 바위절벽이.. 마치.. 인디언 추장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이다.

 

▲ 시절이 하수상 하니... 꽃들도 정신을 못차린다.

 

13시 35분 : 일명.. 만세바위.

 

▲ "만세바위"라고 어느분이 지었는지.. 두손을 번쩍들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다.

 

▲ 봉천대 암릉이 어마무시하다..

 

▲ 가야산 생태계 감시카메라..

 

13시 44분 : 가야산 석조여래입상 가는길. 50m다..

 

▲ 13시 46분 : 가야산 석조여래입상..

 

▲ 마당바위..

 

▲ 유(柔:부더러움)함이 강(强:단단한것)함을 시간으로 이기는 방법이다..

 

▲ 용탑선원 칠불보궁..

용탑선원은 3.1독립운동 민족대표 백용성 조사(1864~1940)의 유덕과 유훈을 기리는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해

1945년 경성선사를 비롯 문도들이 세운 절이다.

 

용성조사의 용(龍)자와 사리탑의 탑(塔)자를 취해서 용탑선원이라 하고 참선정진하는 도량으로 창건하였다.

용성선사 용탑과 비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보물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72권을 소장하고 있다.

칠불보궁전에는 용성스님과  12제자의 초상이 보전되고 있으며  석굴암인 미타굴이 있다.

 

15시 14분 : 토신골탐방로 입구..

 

▲ 하산시간 15시 30분까지 주차장 도착은 무리일것 같아서 해인사 탐방은 통과.

 

▲ 해인사 일주문..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곧.. 있는 그대로의 세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세계이니

바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해인삼매는 또한 오염됨이 없는 청정무구한 우리의 본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우리의 마음이 명경지수의 경지에

이르러 맑고 투명해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한없이 깊고 넓으며 아무런 걸림 없는 바다에 비유되어 거친 파도, 곧 우리들 마음의 번뇌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해인삼매라 하였다.

 

▲ 영지..

가락국 허황후가 가야산 칠불봉으로 출가한 일곱 왕자들을 그리워하여 그림자라도 보게 해달라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했다는 곳이다... 가야산 정상이 이 연못에 비쳤다고 한다.

 

15시 34분 : 해인사성보박물관..

 

15시 45분 : 치인리주차장 산행종료..

 

▲ 트랭글을 정리해 보니..

전체거리 12.6km중에 개방구간 2.8km의 난이도가 높은 철계단구간을 포함해도 평균속도 2.5km/h의 아주 양호한편이다.

 

▲ 거창 오도산 너머로 하루해가 숨어든다...

 

중용(中庸)에..

등고자비(登高自卑).. 행원자이(行遠自邇)라 했다..

높은 곳을 오를 때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먼 곳을 갈 때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가야산은.. 한국의 명산으로..

첫째.. 산신을 상징하는 정견 모주라는 여신의 산이고...

둘째.. 호국불교의 성지로서 상징되는 산이고...

셋째.. 최치원(崔致遠)의 은둔 이후 역대 문인들의 유람과 풍류의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산이다.

 

가야산..

그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가장 낮은 자세인 민초들의 삶이 녹아있는 법전리에서 출발 하였고

그 멀고도 먼 이상과 진리의 세계를 엿보기 위한 천리길을 한걸음부터 시작하였다.

 

시간에 쫏겨 해인사에 들리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지만..

무사무탈에 감사한 하루다.

2024년 11월 03일(일).

암마이봉 : 전북 진안군.

 

산행코스 : 마이산북부주차장-천황문-암마이봉-탑사-은수사-천황문-가위박물관-북부주차장.

산행시작 : 마이산북부주차장  12시 03분.

산행종료 : 마이산북부주차장  16시 12분.

전체거리 : 약7.54km.

전체시간 : 04시간 09분.

운동시간 : 03시간 16분.

휴식시간 : 00시간 52분.

 

12 : 03  마이산북부주차장.

12 : 12  사양제.

12 : 41  천황문.

13 : 13  암마이봉.

15 : 11  탑사.

15 : 27  은수사.

15 : 37  천황문.

16 : 12  마이산북부주차장.

 

 12시 03분 : 마이산북부주차장 산행출발..

 

북부주차장에서 바라본 마이산..

1979년에 전라북도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3년에 명승 제12호로 지정되어 꾸준히 사랑받는 산답게 오늘도 전국에서 모여든 산악회버스들이 주차되어 있다.

 

북부주차장에서 마이산 등로는 서남진 방향이어서 햇빛을 안고 가는 코스다..

 

 마이열차 연인의길..

마이산 옛길을 2002년에 '연인의길'로 개칭한 후 일반 차량을 통제해 걷거나 마이열차로 오갈 수 있게 만든 산책길이며.

경로는 북부주차장~연인의길~천왕문까지 셔틀을 운행한다. 왕복 5천원..편도 3천원이다.

 

사양제(사양저수지)..

 

 사양제(사양저수지)는..

햇빛이 비켜간다는 뜻으로 예로부터 용왕제를 지냈다고 알려진 곳이며 제방에 오방기를 세워 호롱불을 켜고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정오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원래의 조룡대는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 침공시 백제의 호국룡을 낚았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섬으로 ​부여군 백마강에

있는 수중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데 여기에 있는 조룡대는 아마도 과거에 용신제를 지낸곳이라는 의미로 세운듯 한다.

 

버스 회차장.. 여기까지 와서 내려주고 가도 될것 같다..

 

명인명품관과.. 가위박물관은 하산할때 들리기로 하고 기존의 등산로를 따라간다.

 

때마침 천안에서 왔다는 산악회회원님께 한컷 부탁한다고 하니 흔쾌히 콜이다... 넉살좋고 재미있는 분인것 같았다..

 

마이사..

 

마이산 508계단.

 

마이열차(연인의길) 합류지점.

 

12시 41분 : 마이산 천황문.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을 연결하는 고개마루다.

이성계가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이산에 들러 왕조창업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돌탑을

쌓았는데, 그날 밤 꿈속에서 금척을 받은 뒤 이곳으로 올라와 천황문으로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금강의 시작이라고 했지만.. 금강의 발원지는 아니고.. 하늘에서 내린 한방울의 물흐름이 동서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조선 영조 때에 서산군수를 지낸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여암 신경준(1712~81년)선생의 역작 지리서인 산경표에

의하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에 의거하여 산이나 산줄기는 물이나 냇물을 건너가지 아니하고.. 물 이나 냇물은 산이나 산줄기를 넘어가지 못하는 자연현상으로.. 왼쪽에 내린 빗방울은 은수사와 탑사를 거쳐 지류인 은천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오른쪽에 내린 빗방울은 지류인 진안천에서 남강으로 흘러간다..

 

암마이봉 입구.

자연휴식년제로 암마이봉이 2004년에 통제 되었다가 10년 만인 2014년 10월 10일에 다시 개방되어 오늘에 이른다.

 

▲ 암마이봉 오름입구의 초소..

 

▲ 암마이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서 봉두봉 방향으로 갈것이다..

 

▲ 숫마이봉.

잘 만들어진 급경사의 데크를 따라 올라가는 길은 오름 왼쪽으로 마이봉과 끝까지 함께한다.

 

▲ 13시 13분 : 암마이봉 정상 인증샷 줄서기...

정상석을 지나가면 최고의 풍경 맛집인 전망대가 있다.. 그곳을 둘러 보고 오면 줄서기는 끝날것 같다.

 

▲ 돌탑을 지나..

 

▲ 암마이봉 최고의 풍경맛집에서..

 

▲ 합미산성에서 이어지는 마이산종주능선을 한눈에 담는다.

 

▲ 비룡대도 당겨오고..

 

▲ 고금당도 당겨 오고..

동학 혁명의 주체인 녹두장군 전봉준의 딸이 10년간 피난했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고금당 바로 아래에는고려말 고승 나옹선사의 수도처였다고 하는 나옹암(懶翁庵) 자연석굴이 있다.

 

▲ 탑영제도...

 

▲ 함께 즐길줄 안다는것은... 오랜 산행을 통해 만들어진 믿음이 바탕이 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 웃고 즐기고 정상석으로 다시 오니.. 예상대로 역시나다..

 

▲ 마이산이 내어주는 기막힌 가을 풍경을 눈으로 먹고 가슴으로 먹고 인증샷까지 마쳤으니..

 

13시 24분 : 이제는 먹방의 즐거움을 맛볼 시간이다. 산상 레스토랑을 신장개업한다.

 

▲ 처음 맛보는 가지버섯의 식감이 아주 좋다..

 

▲ 하산 하기전에 출발지였던 북부주차장을 가늠해 보고..

 

13시 57분 : 수마이봉정수리를 내려다 보며 하산 시작..

 

▲ 제2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마이봉..

 

▲ 수마이봉 화엄굴을 당겨보니 철망으로 입구를 막아 놓았다.. 오래전에 화엄굴에서 받아 마셨던 화엄약수가 생각난다.

마이산의 중턱 천왕문에서 수마이봉 쪽으로 100m쯤 올라가면 수마이봉 암벽에 화엄굴이 나온다. 화엄굴 내에는 사시사철

약수가 흘러나오며 24절기 중 춘분과 추분에만 약수까지 햇빛이 비치는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고 이 약수를 마시고 지성

을 드리면 숫마이산의 정기를 받아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오늘날에도 치성을 드리려는 많은 여성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낙석 때문에 위험하다고 하여 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 네팔 청년들이 찍어주었다.. 오늘따라 외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 초소앞에 내려와서.. 하산길은 봉두암쪽으로..

 

▲ 조금 내려오니 회장님팀을 만난다.

 

▲ 혼자걸어도 좋을것 같은 가을길이다..

 

▲ 암마이봉.. 그 엄청난 크기의 암봉을 에돌아 가는 길이라..

 

▲ 한동안 내려가다가 드디어 바닥을 치고는..

 

▲ 올라간 만큼 내려가고.. 내려간 만큼 올라야 되는게 산이다..

 

▲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니 제법 내려갔던 모양이다..

 

▲ 능선 마루에 올라서서.. 암마이봉 정상에서 못다푼 먹거리와 마실것으로 가판대를 친다.

 

▲ 잭 다니엘과 꼬부랑 안주들..

 

▲ 깜짝벙개 먹거리타임으로 기분이 달달하고 나이스다..

 

▲ 달달한 기분으로.. 햇살이 적당하게 파고드는 운치있는 소나무길을 따라가면..

 

▲ 암마이봉 정상 전망대 아래쪽이다.

 

▲ 대인의 마음으로 한치의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 박수보냅니다..

 

암마이봉에는 움푹 파여있는 크고 작은 많은 굴들이 보이는데 이를 타포니 지형이라고 한다.

타포니 지형은 바위 내부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바위 표면을 밀어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 마이산 탑사 입구..

입장료 : 성인 ₩3,000, 중고생 ₩2,000, 초등학생 ₩1,000 (70세 이상 경로우대..국가유공자.. 장애자는 무료 입장)..

 

▲ 마이산 탑사는 1885년 이갑용처사가 마이산에 들어와 1900년부터 탑을 쌓기 시작하여 1935년에 인법당(대웅전)

산신각을 지어 부처님을 모셨다. 평생 동안 108기의 탑을 완성시켰으며 현재 80여 기의 탑이 남아 있다.

당시에는 절 이름이 없었으나.. 언제부턴가 탑사로 불리기 시작하였고.. 이갑용처사의 손자가 사찰등록을 하면서 정식으로

탑사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다.

 

▲ 마이산 탑사의 미스터리

접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시멘트를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100여년 동안 태풍과 회오리 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다.  탑들이 위치한 곳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의 계곡인데 이곳은 유난히 세찬 바람이 부는 곳이다.

 

지형적으로 앞쪽이 넓고 뒤쪽이 좁은 계곡이어서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쳐 오는 것이다.

특히 여름철 태풍이 불어오면 언덕의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웬만한 나무는 뿌리채 뽑히지만 이 곳의 돌탑은 조금씩 흔들

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 오른쪽 뒤쪽에 보이는 젊은 새댁들의 친구가 찍어준 것이다..

 

▲ 이 사진은 꼭대기까지 담기위해 회장님이 누워서 찍은 사진이다. 굿~..

 

▲ 마이산 은수사 가는길..

 

▲ 수마이산과 은수사..

은수사(銀水寺)는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머물때 물이 너무 맑아서 은수사라 지었다고 한다.

 

▲ 이 사진도 윤회장님이 몸을 던져 뒤로 누운자세로 찍은 사진이다..ㅎㅎ~

 

▲ 나와 교대하여 찰칵..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

조선 태조 이성계가 건국의 기원을 다지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손수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운 나무라고 한다.

청실배나무는..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춘향이 집을 찾아가 첫날밤을 치르기 전.. 월매가 내온 주안상에 여러 과일이

올라와 있는데.. 이 중 ‘청슬이’ ‘청술레’라고 한 과일이 바로 청실배(靑實梨)라고 한다.

 

▲ 은수사 무량광전..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上院寺)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절 터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正明奄)이라 했다. 해석에 따르면"正"은 5획으로 오행, "明"은 일월이므로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현재는 태극전이라 불리는 전각으로 되었지만 ‘정명암’이란 이름을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으로 보면 태극은 그 상징

이 되어 있다.

 

▲ 여기서 보는 수마이봉 모습은 투구처럼 보인다. 

 

▲ 천황문 올라가는 길...

 

15시 48분 : 가위박물관.

고려시대의 가위와 동서양을 망라한 고대의 가위에서부터 현대의 가위 1500여점의 희귀한 모습그대로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색적인 박물관이다.

 

 15시 53분 : 진안마이산 명인명품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결합하여 공예작품을 전시, 시연, 홍보와 더불어 마이산의 신비한 역사와 전통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공간이다... 부채동, 자수동, 한지동 3개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채, 유기, 도자, 자수, 닥종이, 한지패션 등

5,0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황금돼지.

이지역은 애저찜(새끼돼지 찜)으로 유명한곳이다.

 

<애저찜 이야기>

3개월마다 한번씩, 보통 여덟 마리에서 열다섯 마리나 새끼를 낳는 돼지 아무 거나 잘 먹는데다가 새끼를 많이 치는 돼지는

옛날부터 농가에 돈을 벌어다주는 중요한 가축이었다. 그런데 돼지가 하도 새끼를 많이 낳다 보니, 가끔은 불상사가 생기기

도 했다. 뱃속에서 죽은 채로 태어나는 경우도 많았고, 잠든 어미 품에서 젖을 빨다가 깔려 죽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돼지를 키우면서도 내다 팔 생각만 했지, 돼지고기 맛 한 번 보기 힘들었던 가난한 농가의 사람들은 막 죽은 새끼돼지라도

버리지 않고 요리를 했는데, 고기를 먹으면서도 마음은 슬프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이 요리를 ‘새끼돼지(兒猪)’를 먹는 것이 슬프다(哀) 하여 ‘애저(哀猪)’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자연이 만든 최고의 무대에서

솔잎.. 최고의 저력을 재확인 하였던 하루였습니다.

 

회장님..

수고 많았습니다..

2024년 10월 27일(일).

용지봉 : 대구시 수성구.

 

산행코스 : 용지역-대덕지-용지봉-애기봉-체육시설-조망바위-법니산-지산동대포항횟집.

산행시작 : 용지역  08시 58분.

산행종료 : 대포항횟집  16시 14분.

전체거리 : 약8.59km.

전체시간 : 07시간 16분(의미없음).

운동시간 : 04시간 18분.

휴식시간 : 02시간 57분.

 

08 : 58  용지역.

09 : 11  대덕지.

13 : 29  용지봉.

14 : 00  애기봉.

14 : 36  체육시설.

15 : 00  조망바위.

15 : 34  법니산.

16 : 14  지산동대포항횟집.

 

 08시 58분 : 3호선 용지역에서 산행출발..

집에서 나올때 까지만 해도 오늘의 대구날씨는 흐리지만 비소식은 없다는 예보였다..

그런데 흐리기는커녕 의외로 용지역의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빛이다..

 

수성구의 복명초등학교 높은 담장위로 한줌의 아침햇살이 머물고 있는 용지봉을 향해서...

 

 09시 07분 : 814시내버스 종점이면서 공영주차장을 가로질러서..

 

대덕지 제방에 가득한 국화향에 취하고..

 

향기나의 미소도 피우고...

 

진밭골입구의 대덕지.. 그런데 수성구청에서는 "가라지"라고 부른다...

 

대덕지 상류를 지나자 말자 급경사로 치오름을 하는 입구에서부터 하늘빛이 이상해 진다..

방구돌을 돌아가는 급경사구간을 마지막으로 치고 오르면..

 

용지봉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지능선 마루금에 올라선다..

 

▲ 잣나무숲길에서는 완전히 습도가 높아지고..

 

 가지버섯..

포자식물이 좋아하는 조건이 되었는지 길가에 온통 가지버섯 군락지를 만난다..

 

 가지버섯 대박에..

 

기분좋은 항기나팀은 현풍아우가 가져온 음양곽주로 즉흥파티가 벌어진다..

음양곽(삼지구엽초)은 염소가 이풀을 먹고 하루에 백번을 교미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풀이다.. 좌우지간 좋다..ㅎㅎ~

 

 그렇게 시작된 한잔이... 음양곽 1병을 비워버리고.. 조고문님의 특제양주까지 나오고.

 

 이렇게 판이 커져 버렸다.. 바쁠것 없는 근교산행이라 느긋하다..

 

다시 길을 이어가는데 가지버섯이 또다시 유혹한다...

용지봉이 내어주는 것을 우리는 향기나원칙에 따라서 합동생산을 하고 공동분배를 한다.

 

12시 20분 : 이번에는 꼬부랑술과..

 

 꼬부랑과자 잔치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느맛과도 비교불가한 산상 커피다.

 

하늘님은 무슨 배알이 그렇게나 틀렸는지.. 잔뜩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방울 두방울 듯기 시작한다..

 

진밭골에서 올라오는 주등로와 만난다.

 

용지봉으로 가는 가을길... 분위기 좋고 조코!~..

 

비는 다행히 는개비수준이라서... 산행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대덕산에 드리운 구름띠..

 

헐티재를 넘어 비슬산으로 이어지는 가창방면의 병풍산 능선..

 

언제나 그렇듯이 용지봉 돌탑이 여전히 반겨준다.

 

13시 29분 : 용지봉(龍池峰).

과거 큰 홍수가 나서 한 마리의 용이 앉을 공간만 남기고 모두 침수되었다. 그때 침수되지 않고 남은 부분이 마치 용의

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철탑이 있는 올라왔던 능선 그 뒤쪽은 대덕산이고... 오른쪽 골짜기끝에는 진밭골이다.

 

수성구 최고의 조망터인 용지정.

 

 당겨 본 청룡산.

 

 향기나의 살림꾼 안방마님들..

 

용지봉은 구름에 잠기고..

 

 꽃향유 군락지..

 

14시 36분 : 체육시설..

 

 청음정(淸音亭).. 맑고 청아한 자연의 소리를 듣는 곳이다.

 

15시 00분 : 조망바위.

 

15시 34분 : 법니산..

 

지산배수지 방면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불교한방병원이 보이는 지점으로.. 산행종료

 

 

하산식의 향기나님들..

 

오늘의 용지봉 산행은..

맑았다가 흐리고 급기야 비까지 내렸지만..

 

다행히 큰비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내어준 선물에 감사하고

하산하여서는 현풍에서 먼길에도 한달음에 달려와준 아우님들 고마우이~

2024년 10월 25일(금).

가야산국립공원 : 경남 합천군.

 

산행코스 : 길상암주차장-보궁-노구승천암-입술바위-오봉산-남산제일봉-돼지골갈림길-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산행시작 : 길상암주차장  09시 24분.

산행종료 : 해인사터미널  15시 15분.

전체거리 : 약6.91km.

전체시간 : 05시간 51분.

운동시간 : 04시간 02분.

휴식시간 : 01시간 48분.

 

09 : 24  길상암주차장.

09 : 35  마야불모전.

09 : 59  보궁.

11 : 13  돌고래바위.

11 : 17  노구승천암.

11 : 50  입술바위.

13 : 15  오봉산.

13 : 56  남산제일봉.

14 : 20  돼지골.

15 : 15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07시 30분 : 서부정류장에서 함께할 동료를 만나고..

 

▲ 해인사로 갈때는 08시 00분에 출발... 올때는 오후 16시 00분차로...

 

▲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까지의 요금은 8900원.. 예매..

 

▲ 서부정류장 2번승차장에서 해인사행 리무진버스탑승.

 

09시 21분 : 해인사 길상암주차장..

한글 길상암은.. 국산표기법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자는 중국식표기법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이다...

"불타미아무나".. 헷갈린다.. 부처님도 한국에서는 한국법을 따르라고 하실텐데..ㅎㅎ.. 나무 아미타불!~~..

 

▲ 오늘의 산행코스는 길상암을 병풍처럼 둘러선 암릉.. 길상암에서는 묘길상봉이라 부르는.. 저곳으로 오를것이다.

 

▲ 길상암 불광보탑.

미얀마 불교협의회의장 종정 우쇼비타 대종사가 모시고 있던 사리를 불기 2538년(서기1994년) 1월 15일 미얀마를 방문한

명진 스님께 9과와 가사발우 일체를 전하고 2539년(1995년) 11월 3일 25과의 사리를 합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

34과를 모신 탑이다.

 

▲ 길상암 입구.

창건 일화를 보면 자운스님이 1969년에 스리랑카 사타티싸 스님으로부터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사리 2과를 모셔왔고 영암

스님과 함께 봉안할 장소를 찾다가 1972년에 이곳에 창건하였고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보궁이 있다.

 

▲ 길상암 오름계단에서 좌측으로 열려있는 길을 따라서 한국에서는 여기 한곳 뿐이라는 불모전에 들린다..

 

▲ 마야불모전.

 

▲ 마야부인상.

아기 석가모니가... 왼손은 땅을.. 오른손가락은 하늘을 가르키며.."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라!~~ 하고.. 이 연사 힘주어 외칩니다!~.. 하는 모습이다..

 

▲ 다시 길상암으로...

 

▲ 길상암과 마주보이는 835봉.. 서장대에서 흘러내린 능선상의 봉우리로 기운이 좋은 곳이라고 한다.

 

▲ 길상암 나한전에서 보궁으로 가는길로 올라서면...

 

▲ 관음전 터.

1999년 8월 2일에 발생한 화재로 복원중이라고 한다.

 

▲ 대각천이라는 샘이 있다... 깨달음을 얻는 샘이라는 뜻인듯 하다..

 

▲ 계단을 올라서면 제일먼저 동종이 반긴다..

 

09시 59분 : 길상암 보궁에는 진신사리와 세분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다.

 

▲ 길상암 보궁 오른쪽계곡에 출입금지라는 표지앞을 지나서..

 

▲ 노구승천암으로 가는 들머리는 길상암 보궁앞을 지나면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 며칠전에 내린 비로 낙엽과 마사토가 쓸려 내려와 길을 덮었지만.. 흔적은 보인다.

 

▲ 안부에 올라서면 엄청난 바위가 길을 막고 섰지만..

 

▲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충분히 오를수 있는 홈통을 오른다.

 

▲ 삼지창바위가 거친모습으로 서있고 천천히 살펴보면 바위틈 사이시이로 내어주는 길을따라 올라선다.

 

▲ 삼지창바위에 올라서면 밑에서 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암봉이다.

 

▲ 암봉을 넘어서..

 

▲ 두번째 암봉 중간 지점에 올라서니 선답자님이 저 슬링밧줄을타고 올라가지 말라고 했던 간이밧줄이 보인다.

저기로 올라가면 그위에 더 높은 절벽길이 있어 올라가지 못하고 결국은 돌아서 내려 와야 한다고 한다.

 

▲ 오른쪽 절벽에서 내려다 보니 암릉 밑으로 돌아가는 안전한 길이 보인다.. 다시 내려 간다..

 

▲ 암봉밑을 돌아서 선답자가 올라가라고 했던 지점을 만난다.

 

▲ 아래로는 암릉위의 멋진 소나무가 있고...

 

▲ 바로 위에는 돌고래를 만난다.

 

▲ 여기.. 돌고래바위가 풍경맛집이다..

서북쪽으로 치인리 집단상가 마을이 보이고 김천의 단지봉도 보인다.

 

▲ 북쪽으로는 해인사가 눈에 들어오고...

가야산에서 거창의 우두산과.. 김천의 단지봉으로 이어지는 두루봉 능선이 마루금을 그리며 달려 간다.

 

가야산은 백운에 싸여 있다.

 

▲ 당겨 본 해인사 성보박물관.

 

▲ 가야할 암릉을 올라서니..

 

11시 17분 : 노구승천암..

 

▲ 꼭 만나고 싶어서 힘들게 올라온 노구승천암이기에 자꾸만 눈이 간다.

하늘로 오르려는 거북이의 형상이라는 늙은거북이다.. 그래서 노구승천암(老龜昇天巖)이라 부른다고 한다.

 

▲ 넌 뭐냐?...

 

▲ 입술바위 오름길..

온통 바위뿐인것 같아도... 이렇게 길을 내어 준다.

 

▲ 입술바위 오른쪽으로 그 누구의 오름도 허락하지 않을것 같은 별개의 암봉이 있다.. 그래도 누군가는 오를것이다..

 

▲ 근래에 만나지 못한 노거송을 여기서.. 만난다.. 굵기가.. 성인남자 5~6명을 합친 정도다..

 

13시 15분 : 오봉산..

 

 13시 45분 : 돼지골갈림길 쉼터..

 

남산제일봉까지 0.7km.. 왕복 1.4km.. 다녀와서 치인리 주차장으로 하산할 것이다.

 

▲ 돼지골쉼터에서 올라가는 마지막 마의계단이다.

 

▲ 남산제일봉은...

멀리서 보면 정상의 형상이 이글거리는 불꽃과 같아서 화기(火氣)의 기운이 강한 산이라고 한다.

 

▲ 남산제일봉의 오엽송이 여전히 늠름하다..

 

13시 55분 : 남산제일봉에 전에 없던(?) 죠스바위가 있다...

 

▲ 남산제일봉에 묻혀 있는 소금단지 전설.

해마다 단옷날이 되면 해인사 스님들이 산꼭대기에 다섯 개의 소금 단지를 동서남북의 네 방향과 중앙에 묻으며 한 해 동안

불이 나지 않기를 기원하는데.. 소금을 묻는 행사는 불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남산제일봉의 기운이 해인사 대적광전의 기운과

맞부딪쳐 큰불이 일어난다 하여 남산제일봉이 품고 있는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해마다 계속되어 왔다고 한다.

 

▲ 청량사방향 하산능선...

만물상에 버금가는 멋진능선인데.. 버스시간을 못마출것 같아서 아쉽지만 돼지골로 하산한다.

 

▲ 불꽃바위..

 

▲ 절묘하게 받치고 있는 바위조각..

 

▲ 척박한 바위사이에 홀로선 오엽송에게 응원을 보내준다..

2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푸르름 잃지 않고 그모습 그대로 서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움이 든다.

 

▲ 앞뒤의 바위가 겹친 모습이 새처럼 보인다...

 

▲ 길가에 노송의 고목이...나는... 속을 다 비워버리고 수많은 시간을 견디며 이자리를 이렇게 지켜 왔노라며... 인간의 얕아

빠진 마음보를 나무라는 것 같다..

 

▲ 돼지골의 가을은 시작도 하기전에 말라 비틀어 떨어지는 잎이 더 많은것 같다.

 

▲ 작년 2023년 4월에만 해도 영업중이었던것 같았는데... 일부는 허물어지고 있다.

 

15시 07분 : 돼지골탐방지원센터.

 

▲ 치인리 집단상가지역..

 

15시 15분 : 치인리..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 어느날 인터넷 서핑중에 눈에 확~ 들어온 노구승천암... 그곳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듬뿍 받은 탓인지 몸도 가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16시 정각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치인리를 떠난다.

2024년 10월 17일(목).

대둔산도립공원 : 전북 완주군.

 

산행코스 : 괴목동천주차장-촛대바위-금오봉-서각봉-삼형제바위-마천대-낙조대-생애대-태고사광장-행정리주차장.

산행시작 : 괴목동천주차장  10시 09분.

산행종료 : 행정리주차장  15시 41분.

전체거리 : 약9.74km.

전체시간 : 05시간 32분.

운동시간 : 05시간 01분.

휴식시간 : 00시간 31분.

 

10 : 09  괴목동천주차장.

10 : 36  촛대바위.

10 : 56  간첩바위.

11 : 04  옥계봉.

11 : 40  금오봉.

12 : 42  서각봉.

13 : 12  형제바위.

13 : 27  마천대.

14 : 00  낙조대.

14 : 26  생애대.

14 : 59  태고사광장.

15 : 41  행정리주차장.

 

 10시 09분 : 괴목동천 주차장 도착..

대둔산 남릉의 들머리는 천등산하늘벽과 마주한 17번국도변의 구도로에서 출발 한다.

 

 17번국도 건너편의 절개지 펜스에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면.. 대둔산 전체 등로중에서도 가장 소외되어 상대적으로 등반객이 적어서 다듬어 지지않은 날것 그대로의

너덜길은 좌측 골짜기쪽으로 돌아가다가..

 

자비심은 1도없는 급오름의 돌계단이 직등으로 올라가라 한다.. 그래도 올라야 하는 이유가 있다.

대둔산 남릉은 15년전인 2009년에 오른적이 있다.. 그때도 몹시나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오늘은 전문 사진작가들만이

한장의 일출 사진을 담기위해 알게 모르게 찾아 간다는 삼형제바위를 만나기 위함이 "A"코스를 선택한 이유다.

 

밧줄이 매여있는 대슬랩은...

 

암릉을 타고 오르면 440봉 아래 전망바위에 있는 돌탑군과 만난다...

1주일만 젊었으면 도전해 보겠지만.. 더구나 오늘은 짝지가 "B"코스로 가는 바람에 동행도 없는 홀로다.. 아서라 말어라~..

 

▲ 안전하게 440봉에서 돌탑을 다녀오기로 하고.. 거친계단을 달래며 차근차근 올라간다.

 

 10시 36분 : 촛대바위 전망대..

 

촛대바위와 천등산 하늘벽..

 

촛대 라기보다는 망부석 같다... 어디서 이런 절묘한 생김새의 바위를 찾아 내었을까..

 

 10시 38분 : 신선바위..

 

10시 49분 : 440봉에서..

 

조금 아래쪽의 돌탑에 다녀 온다...

누군가가 어떤사연의 간절한 마음으로 쌓은 돌탑일까.. 모두가 넉넉함으로 충만하기를 바래 본다.

 

 10시 56분 : 간첩바위..

바위밑에 간첩이 머물었다는 비트가 있다.. 지금은 작은 돌들로 막아 놓았다.

 

간첩바위 뒤통수 꼭대기에 묘하게 생긴 바위가 하늘기운을 받고 있다..

 

11시 04분 :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 본 옥계봉..

 

지난여름의 폭염탓인지 올해의 단풍은 곱지가 않다..

 

암릉을 만나면..

 

안전한 우회로인 산죽길을 올라서면...

 

전망바위가 있어 올라가 본다...

 

지나온 옥계봉 너머로 보이는 천등산.. 그 너머엔 운장산이 가물거리고..

 

북쪽으로는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인 법계사를 품은 월성봉이 보이고..

짜개봉은 6.25전쟁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안내판에는 쌍칼바위로 되어 있는데.. 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 어디서 보아야 쌍칼일까?...

 

처음으로 이정표 다운 이정표를 만난다.

 

 가야할 서각봉 절벽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바위가 보여서..

 

당겨보니.. 날아가던 메뚜기가 붙어 있는 모습이다.

 

12시 42분 : 서각봉(허둥봉) 삼거리..

이정표가 낡아서 땅에 뒹굴고 있어서 방향을 잘 보지 않으면 허둥지둥할 판이다.

 

 곱지는 않아서 아쉽지만.. 그래도 대둔산이 내어주는 단풍이라 담아 본다.

 

저 능선만 올라서면.. 삼형제바위를 만날수 있을것 같다.

 

찾았다.. 삼형제바위를... 그런데 마침.. 점선안에 홀로산객이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삼형제바위 측면..

 

13시 08분 : 삼형제바위로 내려가는 숨은 들머리를 찾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입구에서 내려다 보니.. 사진으로는 실감이 안나지만 실제로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아찔한 급내림경사다..

형제바위까지는.. 내림길 입구에서 약 2~3분의 짧은 거리지만 난이도는 상급이다..

 

조심조심 내려가니 조금전에 본 산객이.. "길이 없습니다"..하면서 올라온다.. "삼형제바위를 보았나요?" 하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설명을 해주고는 나를 따라오라고 하니 따라온다.

 

 13시 12분 : 삼형제바위.

 

삼형제바위 일출은 마니아(mania)들이 찾는곳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진.. 핫 플레이스(Hot place)다.

 

 삼형제바위와 나.. 이 그림 하나를 위해 거친 남릉길을 헐떡이며 올라 온 것이다.

 

우연히 만난 산객분 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삼형제바위에 생명터를 잡은 기묘한 노송과의 조화는 가히 경탄할만 하다.

 

삼형제바위에서 올라온 능선도 바라보고..

 

대둔산 최고의 핵심구간인.. 구름다리와 삼선계단..

 

 올라가는길.. 심약하거나 산행경험이 짧은 분들은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대둔산의 유래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 중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둔산고산현북 45리 ”라고 쓰여져 있고 300년전(1658년 )에 썼다는 안심사적비에는 크게

“대둔산 안심사비 ”라고 쓰여져 있다. 그 아래 비문 첫줄에 “조선국 전라도 고산현 대둔산 안심사 사적비명”이라고 쓰여

있다. 모두 싹 나올 둔 (芚 )자를 써서 대둔산 이라고 썼다고 한다. 대둔산의 바른 이름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듬산 ’이다.

 

이것이 한자화 되어 듬의 뜻이 들어 있지 않고 듬과 유사한음의 둔으로 되어 대둔산이 되었다 한다.. 벌곡 , 가야곡 등 일부 논산 사람들은 그곳에서 보는 한듬산의 모습이 계룡산과 비슷하지만 산태극, 수태극의 대 명당 자리를 계룡산에 빼앗겨

한이 되어.. "한이 든 산" 이라는 뜻으로 "한듬산" 이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한듬산의 한을 크다는 뜻의 대(大)자

로 하고.. 듬의 그 소리만을 비슷하게 둔(芚), 또는둔(屯)으로 하여 "대둔산 (大屯山 )"이 되었다고 한다.

 

13시 27분 : 대둔산 마천대..

대둔산 최고봉인 마천대는 문지를 마(摩), 하늘 천(天)을 써서 "하늘에 닿는다"는 뜻으로 원효대사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거나.. 내려 가는 길..

 

 낙조대로 가면서 뒤돌아본 마천대...

 

 낙조대와 그아래 낙조산장...

 

▲ 당겨 본 낙조산장... 바로 뒤에는 논산수락리 마애불이 있다.

낙조산장은 논산시에서 1억 여원의 경비를 들여 대대적으로 수선한 대피 및 휴식 공간이었으나... 충청남도가 대둔산도립

공원 내 탐방객 대피 휴식 시설을 무허가 시설물이란 이유로 낙조산장을 폐쇄하고 시설 관리업무를 담당했던 상주 관리인

을 철수시킨후 대책 마련 없이 방치하고 있어 비판 여론이 거세다.

 

▲ 칠성봉..

 

 13시 55분 : 낙조대 갈림길에서 산이좋아 회장님을 만난다.

 

▲ 14시 01분 : 낙조대.

 

대둔산 어디에나 올라 서면 감동의 파도가 여기저기에서 소리치며 몰려 온다. 그래서.. 대둔산은 정말 명산이다.

 

▲ 대둔산 북릉의 돗대봉.. 다시 걷고 싶은 길이다.

 

▲ 다시 낙조대 갈림길에 내려와서..

 

▲ 낙조대에서 동쪽의 생애대로 내려가는길에는 어느새 응달이되어 서늘함이 느껴진다.

 

▲ 태고사광장 이정표에서 배티재 방면으로 약 100m정도 진행하면..

 

▲ 생애대로 쉽게 오를수 있는 능선길이 있다.

 

▲ 누군가의 정성이 있는 돌계단을 지나고..

 

▲ 우람한 바위 틈새로 올라가면 왼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여기까지 왔다가도 길이 없다고 돌아서는 사람들도 있다.

 

▲ 명품송이 있는 저기가 생애대 너럭바위(일명 상여바위)다.. 뒤쪽은 수십길 낭떠러지다.

 

▲ 대둔산 북릉길이다.

 

용머리에 해당하는 생애대에는 전설이 하나 내려온다.

어느 한 스님이 백일기도 끝에 용머리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득도할 수 있다는 현몽을 받았지만 생에 대한 애착으로 용머리

에서 주저하는 사이 평생 살생을 하며 살아온 사냥꾼이 속죄하고자 뛰어내렸고 그 사냥꾼이 스님 대신 득도를 했다고 한다.

도의 실천이 참으로 어려움을 깨우치는 대목이다.

 

▲ 생애대를 내려와서 태고사광장으로..

 

14시 59분 : 태고사 광장..태고사는 패쓰하고 행정리주차장으로..

 

▲ 태고사샘물.. 한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 오늘의 하산길 동행님들..

 

▲ 장군샘으로 가는길 입구..

 

15시 41분 : 행정리주차장.. 대둔산도립공원사무실.. 산행종료.

 

▲ 트랭글을 정리하고..

 

▲ 행정저수지(청림저수지)둑밑에 있다는 하산식 장소를 찾아서 둘레길을 따라서 걷기로 한다.

지명하나도 통일이 안된다.. 다음지도에서는 행정저수지로... 네이버지도에서는 청림저수지로 표기 되어있다.

 

▲ 행정저수지 아래 청림골차마실..

 

▲ 이색적인 실내인테리어다.

 

▲ 노랑딱정벌레가 왜? 거기서 나와~~..

 

▲ 능이버섯전골... 4인분 5만량.. 토속적이어서 그런지 입맛에 딱이다.

 

▲ 산이좋아회장님의 건배...

 

▲ 다 같이.. 소리질러!~~.. 건배!~..

 

17시 12분 : 대둔산북릉의 돗대봉..

먹고 마시고 건배한번 크게 소리지르고.. 밖으로 나오니 산촌마을에 땅거미가 내려 앉는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연이라고 했다.

거친 남릉의 오름길에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대둔산 여신의 치마폭에 빠져서

자리를 뜰줄 모르다가도 다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오히려 몸은 가볍다.

 

심신이 피곤하면 휴식자리부터 찾기 쉽고

인생이 고단하면 안식자리부터 찾기 쉽다고 했다..

 

그 힘들고 고단함을 삼형제바위 그 황홀한 비경으로 풀어내고

땀으로 이겨낸.. 나 자신에게 박수 보내는 하루였다..

2024년 10월 13일(일).

장태산휴양림 : 충남 대전시.

 

산행코스 : 휴양림제1주차장-출렁다리-스카이타워-떡갈봉갈림길-형제산-형제바위-휴양림제1주차장.

산행시작 : 휴양림제1주차장  11시 14분.

산행종료 : 휴양림제1주차장  13시 53분.

전체거리 : 약4.03km.

전체시간 : 02시간 39분.

운동시간 : 01시간 43분.

휴식시간 : 00시간 55분.

 

11 : 14  휴양림제1주차장.

11 : 30  출렁다리.

11 : 41  스카이타워.

13 : 03  떡갈봉갈림길.

13 : 17  전망대.

13 : 24  장태루.

13 : 13  형제바위.

13 : 53  휴양림제1주차장.

 

 11시 14분 : 장태산휴양림 도착..

대전 장태산(大田 長泰山) 휴양림은 국내 유일의 메타세콰이어 숲이 울창하게 형성된 이국적인 경관과 더불어 가족단위의

이용객이 산림욕을 즐기는 휴양림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트레킹코스로도 유명세를 타면서 봄. 가을 시즌에는 주차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전국에서 많은 차량들이 몰려드는 곳중에 하나다. 오늘도 수많은 차량들과 사람들로 완전 북새통이다.

 

거의 포화상태인 제2주차장을 지나서 새로설치하였다는 출렁다리를 찾아 간다..

 

 형제산에서 흘러내린 우람한 암릉이 장태산휴양림 입구에서 멈추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있다.

 

장태산휴양림을 조성한 선각자에 대한 예의일 같아서.. 입구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독림가 고 "송파 임창봉" 선생의

동상을 보고 다시 입구로 나와서 오른쪽 제3주차장 위쪽에 있는 출렁다리로 간다..

 

▲ 보기만해도 시원한 "살아있는 화석식물" 인 메티쉐콰이어가 사열받는 병사처럼 부동자세다.

 

▲ 장태산 휴양림 창립자 "송파 임창봉" 선생의 동상.

장태산자연휴양림 조성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72년부터 개인이 200억원을 투자하여 대전시 서구 장안동 산48. 해발 400m

의 장태산 기숡에 나무를 심고 가꾸어 평생의 노력을 쏟아온 결과 숲이 울창하고 경관이 좋아 자연 발생적으로 많은 사람들

로 부터 알려지기 시작 하였다.

 

‘91년 5월 산림청으로부터 24만3천평의 면적에 전국 최초로 민간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받아 ’94년까지 71억원을 들여 조성

운영하여 왔으나안타깝게도 금융권의 부채로 경매처분하게 되었다.

2002년 대전시에서 인수하여 관리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 출렁다리 가는길..

한사람의 노력으로 이런 아름다운 휴양림이 조성되고 멋진 시설까지 합쳐지니 대전시민뿐만 아니라 전국민의 복이라 할

것이다.

 

▲ 제3주차장을 지나고..

 

▲ 급하게 올라가는 데크계단을 오르면..

 

▲ 두번째계단에서 오른쪽은 전망대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출렁다리길이다.

 

▲ 11시 30분 : 출렁다리..

 

▲ 출렁다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전망대가 보인다.

 

11시 35분 : 어더벤쳐(adventure) 숲길..

출렁다리를 건너와서 스카이타워로 가는 새로운 경험의 길 입구다..

 

▲ 지나온 출렁다리..

 

▲ 하루중 피톤치드가 왕성하게 배출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마음은 벌써 평안함으로 채워진다.

 

▲ 스카이타워 입구.

마치 주차타워를 올라가듯.. 나선형으로 올라 간다.

 

▲ 가운데는 각종 자연의 모습을 한 모빌이 이색적이다.

빙글빙글 돌아올라 가고 약간의 흔들림이 있다보니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어지럽다고 한다.

 

11시 41분 : 스카이타워 옥상 도착...

그 뜨거웠던 폭염도 시간앞에서는 꽁지빠지게 도망가고 산행하기 딱 좋은 가을 하늘이다.

 

▲ 건너편의 형제바위를 당겨 본다.

 

▲ 메타세콰이어는 1940년대까지도 화석으로만 존재하던 나무였다고 한다.

 

▲ 그런데..

1945년 중국 사천성 양자강 유역의 마도계(磨刀溪)라는 계곡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나무가 발견됐다.

중국의 한 임업공무원이 이 나무 표본을 북경대학에 보내 조사케 했는데.. 놀랍게도 메타세콰이어로 밝혀졌고 다음 해 중국

지질학회지에 살아 있는 메타세콰이어로 실리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 살아있는 화석식물 목록에 은행나무.. 소철 등과 함께메타세콰이어가 추가된 것이다. 

이 때부터 이 나무 묘목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됐고 우리 나라에도 1960년대쯤 공원수나 가로수 등으로 식재 되었다.


1972년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 당시 내무부의 시범지역으로 지정되면서 3~4년생 메타세콰이어 묘목을 심었는데 매년

1m씩 자라나 지금은 하늘을 덮는 울창한 가로수가 되었다고 하는데.. 처음 이 나무가 담양의 가로수로 채택될 무렵만 해도

무척 귀한 나무여서인지 삽목을 하기 위해 밤중이면 이 나무가지를 베어 가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 스카이타워를 내려와 본격적인 등산로 들머리는 가파른 데크로 이어진다.

 

▲ 대전의 오늘 한낮기온이 25도.

 

배낭의 무게는 인생의 무게라는 말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를 이겨내며 한발한발 정상으로 향하는 줄기에는

기분좋은 육수가 살짝 배여 나온다.

 

▲ 데크계단이 끝나면.. 바람길이 좋은 주능선에 올라서게 되고..

 

12시 11분 : 그늘좋고 평평한 곳에서..

 

▲ 오늘도..

권회장님의 잭다니엘과 조고문님의 양주.. 그리고 솜씨좋은 님들의 맛깔나는 먹거리로 느긋하게 호사를 누린다.

 

13시 03분 : 떡갈봉 갈림길.

 

떡갈나무 유래.. 예전 사람들은 더운 여름철에 딱딱한 바닥에 떡갈나무 잎을 깔아 에어매트처럼 이용하거나.. 떡을 찔 때

사이사이에 넣어두어 달라붙는 것을 막고 잎 향기가 떡에 스며들게 했다고 하며 떡갈나무란 떡을 찔 때 넣는 참나무, 즉..

"떡갈이나무" 란 뜻이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 13시 17분 : 석탑.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장안저수지와 팔마정.

<팔마정 유래>

이곳 장안저수지 일대가 과거 물이 잠기기 전 팔마(八馬)마을이라고 불려졌던 곳으로 팔마(八馬)는 여덟마리의 말이 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에서 유래되었다.

 

▲ 장태루..

 

▲ 아래 골짜기는 물통골이고 건너편 산은 안평산 끝자락이다.

안평산은 “산 속에 만인이 피난을 와도 살 곳이 있다”고 해서 안평산(安平山)이라 부르게 됐다는 설이 있다.

 

13시 30분 : 형제바위..

장태산휴양림에서 또 하나의 멋진 조망처인 핫 플레이스(Hot place)다..

여기서 내려다 보면  장태산자연휴양림의 출렁다리와 스카이타워가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조망맛집이다.

 

▲ 하산길에 바라본 어더벤쳐 숲길..

메타세쿼이아 숲이 붉게 물들었더라면 한층더  풍경이 좋았을텐데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하산길이다.

 

13시 53분 : 휴양림제1주차장 산행종료.

 

▲ 트랭글 정리.

 

15시 11분 : 충남 금산군 진산면 막현리 느티나무식당.

 

▲ 200년이 넘은 마을수호목 느티나무 두그루..

 

▲ 느티나무 아래에서 호박잎과 콩잎을 다듬고 있기에.. 콩잎은 경상도에서만 먹는데 여기 충청도에서도 콩잎을 드시냐고

물으니.. 경상도에서 시집온 이후 콩잎장아찌를 담아 먹는다고 한다.

 

▲ 회장님의 건배제창... 소리질러!~~~..ㅎㅎ

 

▲ 느티나무식당을 뒤로 하고..

 

17시 02분 : 금산세계인삼축제장으로.. 오늘이 축제 마지막날인가 보다..

 

▲ 핑크뮬리..

 

▲ 금산인삼도 이제는 글로벌 시대다.. 국내축제에서 세계인의 축제가 되었다..

 

▲ 18시 00분 : 금산인삼축제장 주차장으로..

 

지난 여름의 유례 없는 폭염으로 단풍적기가 1주일 늦어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서서히 가을이가 익어가기 시작하는 날에..

좋은 님들과 함께 나누었던..최상의 하루였다.

2024년 10월 10일(목).

인왕산 : 서울시 종로구.

 

산행코스 : 세검정삼거리-석파정별당-홍지문-기차바위-인왕산-범바위-해골바위-선바위-국사당-서대문형무소-독립문.

산행시작 : 세검정삼거리  12시 06분.

산행종료 : 독립문  15시 10분.

전체거리 : 약5.74km.

전체시간 : 03시간 03분.

운동시간 : 02시간 29분.

휴식시간 : 00시간 34분.

 

12 : 06  세검정삼거리.

12 : 08  석파정별당.

12 : 15  홍지문.

13 : 06  기차바위.

13 : 52  인왕산.

14 : 13  범바위.

14 : 31  해골바위.

14 : 36  선바위.

14 : 38  국사당.

14 : 56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5 : 10  독립문.

 

 12시 06분 : 세검정삼거리..

백호트레킹의 오늘 일정은.. 북촌한옥마을~경복궁~인사동문화거리다..

얼마전에 둘러본 곳이기에 생략하고..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인왕산을 오랜만에 올라보고자 하여 일행과 둘이서

택시를 타고 세검정삼거리에 내려서.. 인왕산 들머리로 바로 갈려다가 가까운곳에 있는 석파정 별당을 찾아간다.

 

 12시 08분 : 석파정별당(관람객들이 있는집).. 아래쪽 석파랑 한식당(옛이름은 문서루다).

석파정별당은.. 여기서 도보로 약1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더 알려진 "석파정"에 딸린 사랑채였다.

 

1958년 서예가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손재형(孫在馨)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예가이며... 일본에 건너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찾아온 인물이다.

석파랑은 소전의 집념이 지어낸 건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집을 짓기 위해 30년동안 전국 곳곳을 수소문해 목재와 기와

등을 모았다. 운현궁.. 선희궁.. 칠궁.. 이완용의 별장 등의 자재들이다. 덕수궁 돌담이 철거될 때는 트럭 30대 분을 옮겨

오기도 했다. 그 자취들을 모아 1963년부터 6년에 걸쳐 건축했다.

 

아래쪽 석파랑 한식당(옛이름은 문서루다).

문서루(석파랑) 또한 예사 한옥이 아니다. 순정효황후 윤 씨의 옥인동 생가를 옮겨왔다. 당시 중국에서 들여온 호벽(胡壁)

재현했고 입구에는 신라와 백제의 와당을 붙여 품위를 더했다. 덕분에 옛 한옥의 기품이 그대로 살았다.

 

1981년에 손재형이 세상을 뜨고 석파랑은 1993년 새로운 주인을 만나 한정식집으로 문을 열었다. 내부는 음식점으로 쓰기

위해 최소한만 바꿨다. 주로 궁중요리와 전통 한정식을 낸다. 우리나라의 전통주도 맛볼 수 있다. 원래 문서루와 석파정

별당 그리고 맞은편 한옥의 세 채로 이루어졌다. 현재는 음식점으로 쓰이는 석파랑(문서루)과 석파정 별당 두채만 석파랑

의 소유다... 맞은편 한옥은 소유주가 다르다.

 

▲ 부암동 부침바위.

종로구 부암동 134번지 길 가에 있던 높이 2m의 큰 바위로서, 이 바위에 돌을 붙이면 옥동자를 얻는다는 전설로 수많은

여인들이 정성껏 돌을 붙여놓고 절을 하였다고 전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부암동의 유래가 되었으나, 도로 확장으로 바위는 없어졌다.

 

▲ 인왕산 들머리로 가는 길 건너에 홍지문이 보인다..

 

▲ 홍지문.

홍지문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한 탕춘대성의 출입문으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하며 홍지문에 연결된 탕춘대성은

서쪽에 있어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원래 탕춘대성이 있는 세검정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군사상 중요한지역이었다.

 

홍지문(弘智門)이라는 편액은 숙종의 친필로 문루에 달았는데.. 1921년에 주저앉아 방치되었던 것을 1977년 7월에 서울

특별시 도성복원위원회에서 홍지문과 오간대수문, 그리고 주변 성곽 280m를 포함하여 복원하였으며..

이때 홍지문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로 새겨졌다.

 

12시 15분 : 인왕산 들머리.

 

▲ 탕춘대성.

홍지문들머리에서 약 1분가량 올라온곳에서 탕춘대성벽과 만난다..

 

탕춘대성은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 이후 수도 방위를 위하여 1719년에 완성한 성곽으로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

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1715년(숙종 41)에 서울의 도성과 북한산성의 방어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홍지문(弘智門),

오간수문(五間水門), 탕춘대성(蕩春臺城)을 건립하였다. 홍지문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한 탕춘대성의 출입문으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하며 홍지문에 연결된 탕춘대성은 서쪽에 있어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이 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으로 약 100 여m가 되는 산봉우리에 연산군의 놀이터였던

탕춘대가 있었으므로 그 이름을 딴 것이다.

 

▲ 향로봉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비봉능선.

 

▲ 오래전 산매화가 고울때 올랐던 족두리봉에서의 봄날을 되돌아 본다.

 

▲ 시원하게 달려가는 내부순환로 아래에 옥천암 보도각 지붕이 보인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7호인 마애보살좌상(磨崖菩薩坐像)으로...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이 존상

앞에서 기원했으며 흥선대원군의 부인도 아들 고종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말이 전해 오는 서울의 이름난 불교 존상이다.

 

▲ 다시 걷고싶어지는 비봉능선이다.

올가을이 가기전에 수유동 빨래골에서 칼바위능선을 경유하여 비봉에서 이북5도청으로 내려올 계획을 세워본다..

 

▲ 시대의 산물.. 일개소대는 들어갈만한 벙커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 홍지문쪽 등산로는 상대적으로 등산객이 적어서 그런지 설치한지 꽤나 오래된 계단의 난간기둥이 5개중에 하나는

흔들거리고 잘못 짚어면 낙상일것 같아서 난간대를 잡지 않고 조심조심 올라간다.

 

▲ 청와대 개방으로 연계하여 한번 더 올랐던 북악산..

 

▲ 인왕산 산불..

2023년 4월 2일 11시 53분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이어서 12시 10분..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북악산에서도 연쇄적으로 화재가 발생했었다.

 

▲ 불에탄 나무들 사이로 기차바위가 보인다. 기차바위는 일명 백련봉이라고도 불리운다.

 

▲ 산불의 흔적은 여기까지..

 

▲ 기차바위 입구..

 

13시 06분 : 기차바위.

 

▲ 기차바위에서...

인왕산은 서울의 중심에 솟아있으며 높지는 않지만 산세는 웅장하다.

북쪽자락에 있는 부암동은 무계동이라 불리던 곳으로 중국의 무릉도원에 버금갈정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던 곳이다.

1968년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인왕산 옆 산길로 질러왔다. 그 사건 뒤로 인왕산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3년 2월 24일부터오를 수 있게 됐다.

 

13시 09분 : 기차바위 정수리..

 

▲ 기차바위 내림길에 만난 해골바위..

 

13시 14분 : 기차바위 아래에서.. 백호트레킹에서 마련해주신 찰밥도시락으로 늦은 점찍기..

 

▲ 낙월봉 오름..

 

▲ 낙월봉에서 바라본 기차바위와 그 너머로 비봉능선..

 

13시 45분 : 낙월봉..

낙월봉은..현 지도에는 표기되지 않고 고지도에만 표기되어 있다.

 

▲ 인왕산 치마바위의 전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 이후의 일이다. 반정을 일으킨 공신들은 신씨왕비를 몰아내고 인왕산계곡으로 내쫓았다.

폐비의 친정아버지인 신수근이 정적이라는 이유로 그 딸 역시 국모로 모실 수 없다는 뜻에서다. 당시 신씨의 나이는 겨우

스무살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열세살 어린 나이에 진성대군의 아내가 되어 7년 만에 폐비가 되었으니 그 여린 마음에

상처가 얼마나 깊었겠는가.

 

▲ 중종과 폐비 신씨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중종을 왕위에 앉힌 자들은 자신들이 살해한 신수근의 딸 단경왕후의 보복이 두려워서 중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경

왕후를 폐위시켰다. 왕후는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옛 거처로 쫓겨났다. 단경왕후는 궁을 나오면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인왕산 바위에 붉은 치마를 걸어두겠다는 약속을 중종에게 남겼고, 이를 죽을 때까지 지켰다.

 

아침이면 인왕산 바위에 치마를 널어놓고 저녁이면 걷는 일을 51년 동안이나 계속하였다. 중종 또한 부인을 잊지 못해

경회루에 올라 부인이 있는 인왕산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인왕산 치마바위에 전해지는 슬프고도 애잔한 전설은 단순히

큰 바위로만 보일 수 있는 치마바위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 인왕산 정상으로..

 

13시 52분 : 인왕산 정상 표지목.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 인왕산 삼각점이 있는 실질적인 정상 바위.

"인왕산을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 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조선 시대에는 호랑이로 매우 유명한 산이었다.

지리산이나 금강산이 훨씬 더 웅장해서 호랑이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야산 격인 이 인왕산의 호랑이가 더 유명하다.

 

정조 대왕 때만 해도 호랑이가 서울에 흔했고, 이들 호랑이가 민가는 물론 궁궐까지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인 듯...

1868년, 북악산 등에서 잡은 호랑이 다섯 마리를 마지막으로 도성 내 호랑이는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인왕산(仁王山)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있는 해발고도 338.2 m의 바위산이다.

한양도성의 산으로는 북악산(백악산)보다 3.8 m 낮은 2위이며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에서 "우백호"를 담당하는

산이다. 이는 경복궁 정전에서 남쪽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인왕산이 있기에 붙여진 것이다.

 

▲ 인왕산(仁王山) 경계점.

 

▲ 내려다 본 치마바위..

 

▲ 남산타워..

 

▲ 하산은 독립문공원방향으로..

 

▲ 옥개석.

성곽의 최상단에 놓이며 유사시에 적병이 올라오면 떨어뜨려서 적군을 막는 역할도 하였다.

 

▲ 인왕산의 형제산격인 안산..

 

▲ 인왕산 범바위와 곡장 전경.. 곡장은 둥글게 구부러진 성곽을 일컽는 말로 곡성이라고도 한다.

 

 

▲ 범바위 가는길에 뒤돌아 본 인왕산..

 

14시 12분 : 인왕산 범바위.

 

▲ 범바위에서 바라본 곡장.. 지금은 군인들이 철수를 하여 시설물만 흉물스헙게 그냥 남아 있다.

 

▲ 인왕산 치마바위..

 

▲ 국사당과 선바위 가는길.. 성벽을 넘는다. 성벽을따라 바로 내려가면 사직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 모자바위..

 

▲ 얼굴바위.

 

▲ 당겨 본 얼굴바위.

 

▲ 국사당 가는길은 무속행위가 일반화 되어 있다..

 

▲ 해골바위(장군바위).

 

▲ 해골바위로 올라가 본다..

 

▲ 모자바위와 달팽이바위.

 

▲ 여기서보니 얼굴바위가 아니다.

 

▲ 이정표가 가르키는 선바위 쪽으로...

 

▲ 선 바위 뒤쪽.

 

▲ 선 바위.

선바위의 모습이 마치 스님이 장삼(長衫)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 참선한다는 "선(禪)" 자를 따서 선바위라고 불렀다.

 

▲ 선 바위에 관한 전설..

옛 문헌에는 조선 태조 때 한양 천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한양 도성을 쌓을 때 선바위를 무학대사는 도성 안에 포함하자고 하고, 정도전은 성 밖에 두자고 하였다.

이때 정도전이 말하기를 "선바위를 도성 안에 들이면 불교가 성하고 밖에 두면 유교가 흥할 것이라" 하니 태조가 정도전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였다.. 라는 것이다.

이에 무학대사가 탄식하며 "이제부터 승도들은 선비들의 책 보따리나 지고 따라다닐 것이다." 라고 탄식 하였다고 한다.

 

▲ 14시 38분 : 국사당은...서울의 신을 모시는 신당이다.

인왕사와 인접해 있어서 불당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으나, 국사당의 분류는 불교가 아닌 민간신앙으로 등록되어 있다.

1973년 중요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정식 명칭은 인왕산 국사당(仁王山國師堂)이다.

 

한국 무속신앙에서 신을 모셔놓고 굿을 하는 데 편하도록 민가와 좀 떨어진 곳에 짓는 굿당 중 하나로, 중요민속문화재

제28호(1973년 7월 16일 지정)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국사당(國師堂)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인왕산 국사당(仁王山 國師堂)은 원래 남산(南山)의 산신(山神)인 목멱대왕(木覓大王)을 모시는 산신당(山神堂)인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신사(神士)를 지으면서 국사당을 인왕산 현재 장소로 옮겨왔다.

 

본래 국사당은 서울 남산 꼭대기(지금은 팔각정이 위치)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러나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국사당이 자기들의 신사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면서

결국 지금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이전 장소를 인왕산 기슭으로 택한 것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그곳에서 기도하던

자리라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얘기에는 이성계가 젊었을때 비가 내려 노모와 딸이 사는 한 허름한 집에 잠시 신세

를 졌다. 잠을 자는데 대들보 세개가 등에 얹히는(무학대사가 해몽해준 꿈) 그 꿈을 꾸었다. 집주인 할머니가 그 꿈을 듣고

왕이 될 것이라는 해몽을 해주었다. 그때 마침 옆에 자고 있던 딸이 그것을 듣고 깨 이 손님이 왕이 되냐고 떠들었다.

당황한 이성계에게 노파가 딸의 뺨을 때리라 시켰고 이성계는 엉겁결에 따귀를 쳤는데 딸은 죽고 말았다.

 

그리고 노모가 하는 말이 액땜했으니 오늘 일은 발설하지 말라며 내보냈다. 훗날 이성계가 그 집을 찾아보니 흔적도 없고,

노모와 딸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운게 지금의 국사당이라고 한다.

 

국사당 주차장을 지나서..

 

▲ 인왕사 일주문..

인왕사는 조선 개국과 함께 1393년에 무학대사가 세운 사찰이며.. 봉은사에서 갈라져 나온 말사로 규정하고 있다.

절의 체계도 복잡한데 지주가 4명이며 해마다 번갈아가면서 맡고 있다. 1910년대 이래로 여러 암자가 통합되지 않고..

제각기 독자적으로 활동하는것으로 보고 있다.

 

▲ 독립문역 쪽으로..

 

▲ 계단을 내려가서 골목길을 빠져 나가서 대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 지하철 독립문역이 보이는 지점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간다.

 

▲ 뉴스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붉은 담장이다.

 

1908년 조선통감부가 의병 등 반일세력을 탄압. 수용할 목적으로 만든 감옥이다. 건물은 본래 아연판을 붙인 판자로

두른 허술한 형태였다. 건립비용은 약 5만원이었고, 규모는 청사 및 부속건물 80평, 감방 및 부속건물 480평이었다.

원래 수용인원은 500여 명이었는데, 이후 증. 개축을 반복하여 1938년의 수용인원은 2,763명이었다.

1988년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 아직도 찾고있는 끝나지 않은 아픈 역사의 발굴현장이다.

 

▲ 3.1독립선언기념탑.

 

▲ 독립문(사적 제32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다. 높이 14.28m, 너비 11.48m. 모화관 정문인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운 것이다.

1896년(건양 1) 독립협회 발의로 3,825원을 모금해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을 거행하고 이듬해 11월 20일 완공했다.


45×30㎝크기의 화강암 1,850개를 쌓아 만든 이 문은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내부 왼쪽에 옥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으며, 꼭대기에는 난간을 둘렀다. 이맛돌 위에 앞뒤로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 쓰고 그 좌우에 태극기를

조각한 현판석을 달아놓았다.

 

독일 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했으며, 당시 서양건축의 조영경험이 있던 목수 심의석이 공사감독을 맡아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만들었다.

 

▲ 인왕산 산행을 마치고.. 경복궁주차장으로..

 

▲ 광화문쪽으로..

 

서울의 랜드마크중의 하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어면서 가장 많이 오욕의 역사로 점철된 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광화문으로 들어가서..

 

▲ 홍례문(사적 제117호)과 북악산..

 

▲ 홍례문은..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1912년 철거되었다가, 문민 정부에서 옛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복원 공사를 시작

하여 2001년 10월 26일에 완공했다.

 

▲ 용성문과 인왕산..

 

▲ 협생문을 나서면.. 바로 경복궁주차장이다.

 

15시 52분 : 경복궁주차장.

 

18시 01분 : 천안시 목천IC에서 멀지 않은 무지개식당.

 

▲ 된장찌개정식.. 제육볶음..

음식은 본인 입맛에 맞으면 딱이다.. 내입에 완전맞춤이다.

백호 회장님.. 총무님 끝내줍니다.

2024년 10월 06일(일).

고하도해상데크길 : 전남 목포시.

 

산행코스 : 고하도주차장-고하도전망대-해안동굴전망대-용머리-고하도승강장-유달산승강장-북항승강장-고하도주차장.

산행시작 : 고하도주차장  11시 52분.

산행종료 : 고하도주차장  15시 23분.

전체거리 : 약13.2km.

전체시간 : 03시간 33분.

운동시간 : 02시간 42분.

휴식시간 : 00시간 51분.

 

11 : 52  고하도주차장.

11 : 56  고하도승강장.

12 : 08  고하도전망대.

12 : 12  해상데크.

12 : 24  해안동굴전망대.

12 : 36  토끼와 소녀.

12 : 43  이순신장군동상쉼터.

12 : 57  용머리쉼터.

14 : 00  고하도승강장.

14 : 30  유달산승강장.

14 : 55  북항승강장.

15 : 23  고하도주차장.

 

 목포대교...

전라남도 목포시에 있는 자동차 전용도로다. 2012년 6월 29일에 개통되었다.

총 연장 4.129㎞로 목포 북항과 고하도를 잇는 해상교량이다. 도로명은 고하대로이다.

 

목포대교는 기본적으로 사장교 형식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된 3웨이 케이블공법이라는 고난도 공법을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사장교는 상판 좌우측에 각각 케이블 2쌍으로 지탱하지만, 3웨이 케이블공법은 좌우측의 케이블을 1쌍으로 줄이

고 이를 상판의 중앙에 옮겨 상판을 고정하는 방식이기에 설계나 시공 등에서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케이블을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사장교 좌우측의 경관을 살릴 수 있음이 장점이다.. 또한 목포는 태풍이나 강풍이 잦은 지역

이기 때문에 다리의 상판은 초속 67.4m, 주탑은 초속 74.9m 강풍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 왕복 4차로로 공사비는 3346억 원을 투입하였고, 길이 167.5 m짜리 주탑 2개, 교각 36개, 상판 슬라브 36경간이 시공됐다. 경간장 최대 길이는 500m이다... 최대 5만 톤급 선박이 통행할 수 있도록 목포대교 교량에서 바다 수면까지 높이를 53m로 설계되었다.

 

 11시 50분 : 고하도주차장..

고하도(高下島)는.. 목포 앞바다에서 약 2㎞ 지점에 있고... 목포항의 중요한 방파제 역할을 한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며.. 높은 산인 유달산 아래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 영사인 와카마쓰 도사부로가 고하도에서 최초로 시험 재배에 성공하면서 육지면 재배 10주년 때 기념으로 세운

"조선육지면발상지비(朝鮮陸地綿發祥之碑)" 비에 1904년 고하도에서 최초로 육지면이 재배되었다고 적혀있다.

목포항은 고하도에서 육지면 재배를 성공하면서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국 3대항 6대 도시로 발전했다.

육지면은 고려 말 문익점이 중국에서 들여온 아시아면(재래종)과는 다른 품종이다. 미국에서 들여온 육지면은 아시아면에

비해 솜털이 종자에서 잘 떨어지며 백색으로 섬유가 길고 잘 꼬여져 방직원료로 뛰어났다. 

 

주차장을 나와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약300m쯤 올라가면...

 

목포해상케이블카 고하도승강장을 만나고..

 

해상데크로 가는 들머리가 보인다...

 

해상데크길을 걷고 난후에 유달산으로가는 케이블카의 예약관계로... 14시 50분까지 고하도승강장으로 돌아와야 된다.

 

 본격적인 트레킹을 하기전에 안내도를 살펴본다.

고하도전망대에서 해상데크로 내려가서 해안석굴쪽으로 먼저 갔다가 용머리를 돌아서 올것이다.

이 안내도를 보고 갔더라면 제대로 진행을 하였을텐데 일부회원님들이 해안석굴쪽은 안가고 거의가 용머리쪽으로 갔다.

 

 해상데크 들머리..

 

계단마다 나이가 적혀있는... 150세힐링건강 계단길이다..

 

150세 목표를 향해 계단을 오르며..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건강한 삶의 가치를 설계하라는 의미의 계단길이다.

 

용의 허리에 올라서면 해상케이블카 고하도 주탑이 서있다..

 

고하도는..

용이 하늘로 오르기 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용오름’이라고도 부르며 이순신 장군이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명량해전 이후 이 섬에 머물며 수군재건을 이뤄내 왜란을 끝낼 수 있었던 매우 의미 있는 장소로.. 크고 강하고 곧은 기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12시 09분 : 고하도전망대..

독특한 건물 디자인은.. 13척의 판옥선 모형을 격자형으로 쌓아 올린 모습을 하고 있다... 고하도는 이순신장군이 13척의

판옥선으로 명량대첩 승리 후에 머물렀던 동안 전열을 가다듬었던 곳으로 충무공의 얼을 담았다고 한다.

 

고하도전망대에서 해상데크로 내려가는계단..

 

12시 11분 : 해상데크 갈림길에서.. 오른쪽의 해안동굴전망대로 먼저 다녀 오기로 한다.

 

▲ 솔잎님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더니.. 처음으로 만난 이고문님..

 

 해안동굴전망대로 가는길은 계속 이어지는 길이 없고 데크 끝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야 된다..

 

해상데크 쉼터.. 무슨 글자 같기도 해서.. 다시 자세히 보니 "항구"를 눞혀 놓았다.. 그래서 목포는 하~앙구~다..

 

다시 돌아와서 가야할 용머리쪽을 뒤 돌아본다..

 

고하도(高下島)에서 바라보는 유달산..

목포 앞바다에서 약 2㎞ 지점에 있고... 목포항의 중요한 방파제 역할을 한다.

 

일등바위와 이등바위는 옛날부터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심판을 받은 뒤 이등바위로 옮겨져 대기하다

극락세계로 가게 되면 3마리의 학이나 고하도 용머리의 용에 실러 떠나게 되고.. 용궁으로 가게 되면 거북섬으로 가 거북이

등에 실려 떠난다는 전설이 있다.

 

 경사형 엘리베이트가 있다.

장애인.. 보행 약자 전용시설이며.. 이용료는 무료다.

이 엘리베이트는 1대가 내려갔다 올라오는데 10분 소요되고.. 1시간에 3번 왕복하므로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12시 23분 : 해안동굴끝지점 전망대.

일제강점기 말기에 특공정을 감추기 위한 위장 벙커용으로 뚫은 인공 해안동굴 2개가 등장한다. 일제가 태평양전쟁 때

연합군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고하도에는 이런 동굴이 14개나 있다.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하도를 후대가 지키지 못하고 이런 흔적을 남겼다니 안타깝다.

 

"낭만" 이다.. 재미있는 쉼터에서 반가웠습니다.

 

 용머리방향으로 돌아가는길..

 

▲ 줄을 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전부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간 모양이다.

 

▲ 사랑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토끼와 소녀..

 

▲ 바위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포말이 얼굴에까지 튀어 오른다... 역시나 파도는 역동적이어서 좋다..

 

 

▲ 해상데크와 목포대교.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조형물도..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릴때는.. 그림이 된다.

 

▲ 헐!~.. 이럴수가.. 백주 대낮에... 그것도 첨단의 21세기에.. 길을 막은 해적님들이.. 통행세를 내라고한다..ㅎㅎ

 

12시 43분 : 이순신장군동상 쉼터.

이순신장군은 1597년 12월 7일부터 이듬해인 2월 16일 진을 옮길 때까지 107일을 이곳 고하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 명량해전에서 13척으로 일본 함대 133척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은 고하도에 통제영을 설치하고 107일 동안 머물며 전열

을 가다듬었다.. 군선 40척을 건조해 모두 53척으로 늘렸고 1000명에 불과하던 병사도 8000명으로 늘려서 수군재건의

토대를 마련하여 왜란을 끝내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순신장군은 난중일기에서 고하도는 서북풍을 막음직하고 전선을 감추기에 아주 적합하다. 섬 안을

둘러보니 지형이 대단히 좋으므로 머물 것을 작정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용의 비상..

풍수지리적으로 지형이 용을 닮아서 '용섬"이라 불리기도 하는 고하도 목포의 희망을 담아 하늘에 오르다.

 

그런데 이런이런~..

목포대교 교각꼭대기를 자르지말고 다 나오게 해달라 했더니.. 또 잘라버렸다.. 우짜건노.. 그래도 한장은 건졌다.ㅎㅎ~.

  

▲ 용머리 올라가는길..

 

13시 06분 : 용의 머리에 올라섰다.

 

13시 22분 : 다시 고하도전망대에서..

 

▲ 고하도전망대를 뒤로하고..

 

▲ 고하도승강장으로..

 

빈센트 반 고흐가 왜? 여기서 나와~.. 좌측 아래글자가 재미있다.. 고흐도스테이션.. 반 고흐=고흐도..ㅎㅎ..

 

14시 02분 : 유달산을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탑승 대기..

 

▲ 솔잎회장님이 설명하는 케이블카이용 및 유달산산행후 시간내 원점회귀 요령을 경청 숙지하고..

 

▲ 유달산으로..

 

▲ 이기머꼬.. 유달산을 향해 가는데.. 진행방향으로 비가 내린다.

 

▲ 밖에는 못된 비가 내려도 케이블카 안은 미소가 넘친다.

 

▲ 멀어지는 고하도..

 

14시 22분 : 유달산승강장에 내릴건데.. 빗방울은 더욱굵어졌다..

 

▲ 유달산승강장을 나와서 정상을 항해 출발 하려는데.. 회장님으로부터 불순한 일기로 하산하라는 특명이 내려 왔단다..

유달산은 일주등산을 하였기에 미련은 없다마는 유리창으로 유달산 일등바위를 올려다보고 돌아선다.

 

유달산은..목포 9경 중에 1경으로 손꼽히는 유달산은 높이 228.3m로 높은 편에 속하진 않지만 노령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끝자락인 산이다.

또한..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잠시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으로도 불린다.

 

▲ 목포의 가수.. 이난영님의 애잔한 노래가사속의 삼학도를 내려다 보니... "사공의 뱃노래" 는 영산강에 묻혀버렸고...

삼학도의 3개의 섬들은 하나가 되어 삼학도공원이 되어 있다.

 

▲ 산행도 못하고 유달산승강장에서 고하도승강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바로 돌아갈수는 없고 반대쪽의 북항승강장까지

갔다가 고하도로 가라고 한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안가는 운영방식이다.

 

▲ 유달산의 일등바위가 빗속에 흔들리고 있다.

 

▲ 북항승강장에서 내리고 다시 타고..

 

▲ 고하도로 돌아가는길의 유달산삼등바위를 넘어간다.

 

▲ 중간 기착지인 유달산승강장도 지나가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심청이가 몸을 던진 인당수보다 더 검푸른 빛이다.

 

 15시 19분 : 우여곡절끝에 고하도로 다시 무사히 돌아왔다.

 

▲ 북항승강장에서 엘리베이트를 타는데 아가씨들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난또..홍보용이라도 찍는건가 했더니..

고하도승강장을 나오는데 사진을 들이민다.. ㅎㅎ~ 장당 5천원.. 액자에 넣어면 2만원이란다.. 교영님이 오처넌 투자..

원본 사진은 잘 나왔는데.. 사진을 사진찍었더니.. 별로다.. 원본 파일(file)을 전송해달라고 할껄.. 깜빡했다..ㅠㅠ.

 

▲ 고하도주차장 트레킹종료..

 

▲ 트랭글 정리..

 

16시 04분 : 남도정식..

와서보니 주변의 거리가 눈에 익다.. 바로 옆에 노적봉공원이 있고 국도1. 2호선의 시작기점이 되는 거리다.

 

▲ 남도음식의 상차림..

수육과 한두가지 반찬 외에는 별로 특이할만한 것도 없는 음식 가지수다..

 

먼길 원정 트레킹..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회장님 이하 임원진님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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