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3일(수).

해인사12암자 : 경남 합천군.

 

트레킹코스 : 해인사입구-성보박물관-보현암-금강굴-삼선암-금선암-원당암-

홍제암-용탑선원-해인사-성철스님사리탑-지족암-희랑대-백련암-국일암-약수암.

트레킹시작 : 해인사입구  09시 20분.

트레킹종료 : 해인사입구  14시 28분.

전체거리 : 약11km.

전체시간 : 05시간 08분.

운동시간 : 04시간 24분.

휴식시간 : 00시간 44분.

 

09 : 20  해인사입구.

09 : 31  성보박물관.

09 : 42  보현암.

09 : 46  금강굴.

09 : 57  삼선암.

10 : 01  금선암.

10 : 10  원당암.

10 : 28  홍제암.

10 : 42  용탑선원.

10 : 51  해인사.

11 : 34  성철스님사리탑.

12 : 35  지족암.

12 : 53  희랑대.

13 : 19  백련암.

13 : 55  국일암.

14 : 03  약수암.

14 : 28  해인사입구.

 

09시 20분 : 해인사입구 도착.

대구서부정류장을 08시 01분에 출발하여 약 1시간20분이 소요되었다. 요금은 8900원..

 

지난주인 11월 07일에 경북 성주군 법전리에서 가야산정상을 오르고 토신골을 경유하여 이곳으로 하산하였는데..

해인사에 들리지 못한 아쉬움에 6일만에 다시.. 해인사와 12암자를 탐방하기 위해 역순으로 올라간다.

 

불자가 아닌 내가 사찰을 찾는 이유는...

자연과 잘 어우러진 각종 문화재와 사찰건물의 아름다운 선과 예술적 감각을 느껴보고자 함이 더크다...

계절로는 가을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계절이기에 길을 나선 이유다.

 

해인사 상가를 지나..

 

09시 31분 : 해인사성보박물관..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법보종찰 해인사의 박물관으로, 보물 11건 및

9건의 지방유형문화재를 포함한 약 7천여 점에 달하는 불교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사찰 박물관이다.

 

허덕교..

성보박물관 좌측으로 올라오면 풍광이 멋진 계곡을 건너는 허덕교는.. 예전에 이 자리에 허덕사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아직은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조용한 가을길은... 이제는 단풍길이 아닌 낙엽길이 되어 간다.

 

 오늘은 해인사를 포함한 가까운 주변의 12암자를 찾아보기 위해.. 먼저 보현암과 금강굴을 찾아간다.

 

 향지교(向止橋)를 건너.. 좌측의 보현암과 금강굴을 다녀와서 오른쪽의 삼선암으로 갈것이다.

 

 보현암 가는길..

 

향노교에서 3분정도 올라오니 노랑물감이 한창인 은행나무 뒤쪽으로 보현암이 보인다..

 

09시 42분 : 해인사 보현암은...

1973년 혜춘(慧春)스님(1919~1998)이 비봉산 남쪽자락에 창건하여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구니 수행처인 보현암 법당과 연못..

보현암의 연못은 마음심(心) 모양으로 참선하는 것은 마음을 닦는 것으로 더욱더 수행 정진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함께 길을 나서준 짝지부터 챙겨준다...

 

보현암과 이웃한 금강굴(금강암).. 규모가 작은 사찰을 굴(窟)이라고 표현 한다.

 

금강굴은..

성철스님 세속의 따님인 불필(不必)스님이 보현암에서 수행하던중에.. 비구니 스님들의 수가 많아져서 성철스님이 계시는

백련암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1976년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금강굴의 삼층탑과 백송.. 백련암에도 백송이 있다.

 

금강굴의 법당인.. 금강보전에는 성철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금강굴 석조여래입상.

 

 금강굴에서 바라본 환선대 아래 백련암 방향...

 

비구니 사찰답게 정갈한 금강굴을 뒤로하고..

 

 혜춘스님의 보현암창건 연혁과 시비..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는가.. 오고감이 하나일새.. 청풍은 만리로다.

 

보현암과 금강굴을 둘러보고 향지교로 돌아와서 향지교를 건너지 않고 삼선암 방향으로 향한다.

 

삼선암입구에 예쁘게 만들어 놓은 식수대.. 이쁘니까 물맛도 달다.

 

09시 57분 : 삼선암 입구 현판에는 반야선원(般若禪院)이라 되어 있다.

 

삼선암 약사전아래에서 스님들이 낙엽을 쓸고 있다.

 

해인사 삼선암(三仙庵)은..

1893년(고종 30) 자홍(慈紅)스님께서 창건한 뒤로 1904년에 보찬(普讚)스님과 지종(智宗)스님 두 분이 중건한 바 있으며, 1945년에 정성문(鄭性文)스님이 반야선원(般若禪院)을 개원하였으며 6·25한국전쟁 당시에도 많은 비구니 스님이 이 선방

에서 참선에 들었다고 한다... 삼선암(三仙庵)이라는 이름은 마당에 있는 3개의 바위에 3명의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삼선교를 건너와서 바로 이웃해 있는 금선암으로 간다..

 

 방금 다녀온 삼선암... 가을이 주는 참으로 멋진 그림이다.

 

 금선암은.. 1945년에 하담스님께서 창건한 비구니 수도처다.

 

10시 01분 : 금선암 법당.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지만 대웅전이라 칭하지 않고 법당이라고 쓰여진 이유는 해인사에 큰 법당(대적광전)이 있어서

다른 명칭을 쓸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선암을 지나서 올라오니 단풍이 한창 곱다.

 

카페.. 수다라.

수다라(修多羅)라는 부처님 말씀을 적은 경전으로.. 이 좋은 가을날에 이곳에서 차 한잔 하면서 수다를 떠는것도 좋을듯...

 

 원당암 달마선원으로...

 

불자가 아니어도 무생교를 건너면 속세의 허물이 벗겨질까나...

 

10시 10분 : 원당암 전경..

원당암이 지금은 암자이지만 해인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원래 하나의 절이었다고 한다.

신라 애장왕(哀莊王)은 공주의 난치병이 낫자 부처님의 가호(加護)라 여기고 해인사의 창건을 발원한 순응(順應) 대사를

몸소 크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왕은 서라벌을 떠나 가야산에 임시로 작은 집(원당)을 지어 절(해인사) 공사를 독려하고

정사(政事)를 보기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당암이라는 것이다.

 

창건당시에 이곳의 산 모양이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비봉산 자락에 있다 하여 봉서사라 하였으며 진성여왕때 부터

본격적인 신라왕실의 원당이 되어왔기에 원당암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원당암 미소굴과...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스님의 법문 말씀이다.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가 죽는것이 사는 길이다.. 옳은 마음으로 옳은 일 하면 안 죽어요."

 

▲ 미소굴..

혜암스님의 유품을 진열해둔 곳이다.

 

▲ 조금전에 지나왔던 전망대에 다시 올라가 본다.

 

▲ 고분처럼 생긴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운봉교라는 전망대다. 이곳에서 내려다 본 해인사 풍경이 장관이다.

 

▲ 내려다 본 원당암전경..

원당암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혜암(慧菴) 스님이 머무른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혜암 스님은 해인사의 정신적 지주

라고 할 수 있는 해인총림 방장(''93년~''96년)스님을 지내시고 1999년 4월에 조계종 제10대 종정 스님으로 추대되었다.

 

▲ 보광전 앞의 다층석탑(청석탑)과 석등은 신라시대 유물로 보물 제518호이다.

 

▲ 볼거리와.. 생각꺼리가 많았던 원당암 산문을 나선다.

 

▲ 홍제암으로..

 

10시 28분 : 홍제암(보물 제1300호)은...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수도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에서 따왔다.

광해군 6년(1614)에 혜구대사가 사명대사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

 

▲ 홍제암 보승문.

 

▲ 홍제암 법당.

 

▲ 홍제암 서래당은...

도봉당(道峰堂) 종성(宗性) 대종사가 주석처인 홍제암 서래당에서 입적했다.

 

▲ 홍제암 자운대율사영각(慈雲大律師影閣).

 

▲ 홍제암 사명대사탑석정비.

 

사명대사 석장비와 함께 있는 승탑과 비석들.

 

▲ 사명대사 석장비(보물)..

비석은 1612년에 건립되었다가 1943년에 일본인이 깨트린 것을 1958년에 복원한 것이다.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으로 비문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지었다고 한다.

 

▲ 백용성 선사 승탑과 탑비..

 

▲ 해인사로 가는 외나무다리..

과거에는 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못된 관리들이 말을 타고 사찰경내에 들어오는 걸 저지하기

위하여 만든 다리라고 전해진다..

 

▲ 10시 28분 : 용탑선원.

3.1독립운동의 민족대표 용성스님의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암자라고 한다.

 

▲ 용탑선원 육화당.

육화는 불교의 진리를 깨치고자 수행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경하며 화합하여 깨달음을 성취해야 하는 여섯 가지 도리다.

 

▲ 용탑선원 미타굴 법당.. 납골당을 겸하고 있는 석조 미타굴  법당이 있다.

 

▲ 석조 미타굴 법당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 용탑선원 극락교 입구에..

3.1독립운동 민족대표..  백용성조사 유적도량이라는 글이 기둥에 나란히 새겨져 있다...

 

▲ 토신골탐방지원센터.. 지난주 11월 7일에 가야산정상에서 하산하였던 들머리다.

 

▲ 6일전에 들러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기위해 해인사로..

 

10시 51분 : 해인사.. 가까운 대구에 60여년을 살면서도 한번 와보지 못했던 곳이다.

 

▲ 타이밍이 좋았는지.. 법고행사를 하고 있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부처님의 말씀이 세간에 널리 전하는 것을 북소리가 울려퍼지듯 한다..라고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이 북소리를 듣고 중생이 모든 번뇌를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 해인범종.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 해인사 스님들의 법고 치는 솜씨는 예전부터 최고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큰 울림으로

전해져 오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 마당에는 만(卍)자 형식의 해인도(海印圖)를 크게 그려져 있고 경전을 외우며 이 구역을 한바퀴 따라 돌게 되어 있다.

 

▲ 해인사 구광루.

원래는 기능상 재식시(齋式時) 법요(法要)를 집행하던 곳이었으나.. 사찰의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하층의

경우 홍보를 위한 홍보시설과 서점 등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층은 설법과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 해인호국도량 대적광전으로 올라가는 문...

 

▲ 해인사 대적광전 마당의 석등.

 

▲ 해인사 대적광전 마당의 삼층석탑.

 

▲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木造毘盧舍那三尊佛)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해인사는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이정(利貞) 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10월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된 화엄도량이다.

 

1398년 고려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운되면서 법보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특히 해인사는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화재로 그때마다 다시 지어졌는데,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조선 말에 중건된 것이다.

 

합천 해인사는 양산의 통도사, 순천의 송광사와 더불어 국내 3보(三寶) 사찰 중 법보사찰로 팔만대장경 경판(국보)과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경판전(국보)등 15점의 보물과 2백여 점의 사보 등 수많은 국가유산과

고적이 있다.

 

▲ 해인사 대적광전과 왕이 주로 사용한 우물.. 어수정이다.

 

▲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판전으로 가는 문.

 

▲ 보안당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읽음으로써 두루 관찰하는 눈이 생긴다는 뜻이다.

 

▲ 수다라장은... 부처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다.

 

▲ 법보전.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판'이 소실되자 국난 극복을 염원하며 고려 고종(1237~1248) 때 새롭게 판각한 경판이다.

조성된 경판이 8만여 개에 달하고,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이 수록됐다고 해서 팔만대장경으로 불린다. 제작된 지 80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 국보로 지정됐다.

 

유네스코는 1995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2007

년에는 팔만대장경을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했다.

 

▲ 해인사는 신라때 지어졌고 팔만대장경은 고려때에.. 그리고 대장경을 보관하는 이곳 장경판전은 조선시대 만들어 졌다. 

 

▲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가이드 라인을 따라 마당에서 한바퀴 돌아나간다.

 

▲ 뒤돌아 본  팔만대장경판전 전경.

해인사 천년고찰과 함께 해온 고려팔만대장경은 우리의 희망의 역사다..뿌듯한 자긍심을 안고 돌아선다..

 

▲ 가야산 감로수도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 바로옆 해인사 홍보판에 대장경 실내사진이 있다.. 실물크기 그대로 찰칵..

 

▲ 해인사 독성각앞을 돌아가니..

 

▲ 해인사 학사대(學士臺) 고운 최치원상.

신라의 학자 고운 최치원이 해인사에 머물며 집필하면서 말년을 보낸 장소로 평소 짚고 다니던 전나무 지팡이를 꽂아두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는데..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 큰 나무로 자랐다고 하는 나무였는데.. 그러나 2019년 태풍 "링링" 의

피해로 인해 쓰러진 나무의 밑둥치로 좌대를 만들고 그위에 최치원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 해인사 학사대(學士臺)에서 바라본 남산제일봉 아래가 최치원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홍류동계곡으로 농산정이 있다.

 

▲ 해인사 구광루에서..

 

▲ 해동원종대가람 해탈문을 나선다..

 

▲ 해인사 국사단과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원나무..

국사단은 산을 관리하는 산신과 가람을 수호하는 국사대신을 모신 단으로 보통 사찰의 산신각에 해당하는 전각이다.

 

▲ 해인총림 봉황문.. 안에서부터 구광루.. 해탈문.. 봉황문이 차례로 보인다.

 

▲ 해인사 애장왕 고사목.

신라 40대 애장왕 8년(서기 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애장왕이 이 은덕에 보답

코자 법당과 승료 등 많은 가람을 헌공하여 해인사를 창건하고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진다.

 

이 느티나무는 1200 여년의 긴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해 오다가 1934년 수명을 다해 고사하고 지금은 밑둥치만

남아 해인사의 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해인사 일주문.. 산문 안쪽은 "해동제일도량"이고..

 

▲ 산문을 나가서 사바세계에서 보면 "가야산해인사" 다..

 

▲ 일주문 축대에 불기2975년이라 음각되어 있다. 아마도... 서기 1948년에 일주문을 개축하였던게 아닐까..

 

▲ 일주문앞의 구조물.. 무슨 용도였을까..

 

▲ 일주문 밖 당간지주..

 

▲ 영지..

일주일 전만해도 화려했던 단풍이 다 떨어져 앙상하다.

 

▲ 원경왕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碑)로,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해인사 경내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거북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색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숙종 9년(1104)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 길상탑.

최치원이 지은 탑지(塔誌)에 따르면, 신라 진성왕대에 오랜 내란으로 해인사 주변에서 전몰한 승려와 백성을 위해

문수보살의 가피를 빌고자 해인사 승훈 스님이 895년에 세운 위령탑이라고한다.

 

▲ 해인사 비림(碑林)... 사적비를 비롯 20기의 공적비가 안치되어 있다.

 

11시 34분 : 1993년에 입적하신 성철스님 사리탑..

기존의 사리탑과는 사뭇 다르게 현대적 미적감각으로 조성되었다. 구(球)는 완전한 깨달음과 참된 진리를 상징하고 등을

맞대고 있는 반구(半球)는 활짝핀 연꽃을 표현하고.. 크기가 다른 정사각형 3단은 3학과 수행과정을 의미 한다고..

성철스님의 '자기 공덕은 자기가 쌓아야하고..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해야한다'라는 말씀을 새기며 지족암을 찾아 간다.

 

▲ 지족암으로 가기위해 대장경연구원쪽으로..

 

▲ 도로를 따라 대장경연구원을 지나 올라가면..

 

▲ 해인사 경내인 구내식당쪽이 보이는 곳도 스치듯 지나가고...

 

▲ 오른쪽으로 희랑대로가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 오른쪽 아래로는 극락전 건물 뒤쪽이 보인다.

 

▲ 처음에는 아마도.. 스님들이 암자를 왕래하기위해 걸었던 길이었을 것이다.

 

▲ 전남 강진의 만덕산 자락의 다산초당으로 가기 위해 다산 정약용이 걸었던 "뿌리의 길"이 생각나는 길이다.

 

11시 51분 : 자그마한 봉우리에서 마음에 점을 찍고..

 

▲ 솔향기와 만추의 가을이 내려앉은 낙엽길을 걷다보면..

 

▲ 차도와 만나게 되고...

 

▲ 지족암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와서 희랑대로 갈 것이다..

 

▲ 지족암 가는길...

 

12시 35분 : 지족암 일주문.

 

지족암은 신라말 고려초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로서 원래 이름은 도솔암이었다고 하는데.. 옛모습은 하나도 없다..

 

▲ 지족암 법당인 대몽각전.. 큰꿈에서 깨어난 자 즉.. 부처님 계신 곳이라는 얘기다.

 

▲ 마당을 지나가면..

 

▲ 돌아서 내려오게 된다.

 

▲ 동곡교에서 좌측 계단으로 오르면 희랑대다.

 

▲ 문이 닫혀 있어서.. 약간은 난감했는데 안내문을 보니 멧돼지 때문이니 열고.. 그리고 잘 닫고 들어오란다..

 

▲ 쌓아올린 축대를 보니 상당한 불사였겠다..라는 생각이다..

 

▲ 축대를 이용하여 공간 텃밭도 만들어 꽃도 심어 놓았다..

 

▲ 해남 달마산 도솔암과.. 경기 관악산 연주대처럼 자연 암릉 사이를 쌓아올려 희랑대를 지었다.

 

▲ 희랑대는... 희랑대사가 머물렀다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이자..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준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12시 54분 : 독성각.

신라 말에 희랑(希朗)이 창건하여 수도하였던 곳으로서,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으나 나한 기도처로서 유명하다.

 

해인사 희랑대는.. 청도 사리암, 서울 삼성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나반존자(독성) 기도도량이다.

 

▲ 희랑대 너머로 지족암이 보인다.

기묘한 지형과 빼어난 풍치가 경관을 이루고 있어 흔히 금강산 보덕굴(普德窟)과 비교된다.

천연의 절벽을 뒤로 하고 바위와 바위 사이로 돌을 쌓아 평평한 터를 만들어 그 곳에 삼성전(三聖殿)을 세웠는데, 이 삼성전

에 모셔진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는 그 영험이 불가사의하다고 하여 수많은 기도객이 찾고 있다.

 

▲ 계단을 올라 능선길을 따라가면 백련암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 그 자체다..

 

산이 구름을 탓하지 않고..

물이 굴곡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은.. 자연을 닮은 삶.. 그것이 곧 긍정이라 했다..

 

▲ 길은 뚜렷하고 전선줄을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 산죽길을 올라서면.. 지능선에 닿게되고..

 

▲ 희랑대를 출발하여 13~4분이면...

 

▲ 백련암이 내려다 보이는 암릉이 나온다.

 

▲ 한눈에 들어오는 백련암이 바로 아래다..

 

▲ 잠시 바위를 즐기고 내려가면..

 

▲ 백련암 적광전..

 

▲ 백련암 천태전..

 

13시 19분 : 백련암 고심원..

행사가 있는지 엄청많은 남여 신도들이 북적댄다.

 

▲ 백련암 고심원 앞의 연꽃바위라는데... 우매한 나의 눈에는 두꺼비처럼 보인다.

 

▲ 백련암 고심원은 성철 스님깨서 입적하신 후에 지었으며.. 스님의 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 백련암 고심원에 모셔져 있는 성철스님 좌상..

성철스님은 1980년대 조계종 종정일때 조계종 분규를 비탄하며 백련사에 오신후 열반전까지 이곳 백련사에 머물었다.

1936년 출가해서 해인사에서만 57년 동안 칩거해 온 스님은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가부좌한 채 입적하셨다.

 

▲ 백련암의 백송..

 

▲ 백련암의 자연석으로 부처님을 닮은 불면암(佛面岩)이라는데..

 

▲ 동서남북 아무리 둘러 보아도.. 불자의 눈이 아니어서 그런지.. 내사마 도통 모리거따..

 

▲ 내눈에는 오히려 해학적인.. 안동 하회탈처럼 보인다.

 

▲ 원통전.. 백련암 가람중에 가장 고색창연 하다..

 

▲ 일주문이라는 안내표시가 있어서 정념당 아래로 내려간다.

 

▲ 무슨 행사인지 전국에서 모여든 차량들로 주차장이 초 만원이다.

 

▲ 잎이 붙어있는걸 보니 고사목은 아니고.. 그냥 고목이다...

 

▲ 백련암을 내려서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성철스님의 화두의 의미를... 알듯.. 모를듯..

 

13시 55분 : 국일암 법당.

국일암 법당은 1637년 벽암(碧巖)스님께서 중건하였으며, 조선 인조가 벽암스님에게 국일암대선사의 호를 내렸다고

하여 국일암이라 부르게되었다고 한다. 국일암은 비구스님들의 선원이다..

 

▲ 국일암 와송..

 

▲ 매우 오래 된듯한 해우소..

 

14시 04분 : 약수암..

1904년 흥선대원군의 수양딸인 성주스님이 궁의 지원을 받아 창건하였으며 1927년 도삼스님이 중건하였다.

이곳은 비구니 도량으로 약물이 나온다고하여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 약수정..

 

▲ 처음보는 약수터 모습이다..

 

약수물이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어 한센병 환자들이 이 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 죽림선원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죽림선원은 약수암 창건시 양철로 지붕을 덮은 선원이 개원되었다. 그 후, 허물어진 선원을 일으키기 위해 비구니 스님들이

탁발을 도모하여 개축하였으며, 1972년 법공스님이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선원을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 약수암을 끝으로 12암자 탐방을 마치고..

 

▲ 주차장으로 가는길이 가을스럽게 아름답다.

 

깃대종(flagship species)이란...

유엔환경계획이 만든 개념으로서,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주요 동·식물을 뜻한다.

'깃대'라는 단어는 해당 지역 생태계 회복의 개척자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상징적 표현이다.

가야산의 깃대종에는 "가야산은분취" 와.. "삵" 이 있다.

 

14시 12분 : 치인주차장까지 1.1km..이정표

14시 40분에 대구로 가는 차가 있다.. 약15분이면 갈수있는 거리다..

 

▲ 허덕교에서 바라본 해인사 단풍인데.. 6일만에 이렇게 변했다..

 

▲ 14시 28분 : 해인사입구 정류장..

 

▲ 트랭글을 정리해보니 1사 12암자를 걸어온 거리가 만만찮다.. 운동거리 11km에 평균속도 2.5km/h다.

 

▲ 해인사입구 정류장 지킴이 들냥이..

 

▲ 버스를 기다리는동안 10배줌으로 당겨온 가야산 정상부..

 

비록 불자는 아니지만..

언젠가 걷고 싶었던 명산 대찰인 해인사와 12암자 도보탐방을..

 

보현암 혜춘스님 말씀처럼..

불현듯..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다녀간다..

 

가을의 끝자락..

자연이 내어준 아름다운 길위에서 마무리 할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