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3월 06일(목요일).
월령능선/화엄사 : 전남 구례군.

 

산행코스 : 운조루-월령봉-형제봉-밤재-구층암-의상암들매화-화엄사-화엄사주차장.

산행시작 : 운조루 09시 16분.

산행종료 : 화엄사주차장 15시 27분.

전체거리 : 약14.4km.

전체시간 : 06시간 10분.

운동시간 : 05시간 36분.

휴식시간 : 00시간 34분.

누구하고 : 화랑산악회.

 

09 : 16  운조루.

10 : 54  삼밭재.

11 : 39  월령봉.

12 : 03  863m봉.

12 : 32  형제봉.

13 : 01  밤재.

14 : 32  구층암.

14 : 37  의상암들매화.

14 : 44  화엄사.

15 : 27  화엄사주차장.

 

09시 19분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에서..

 

집 앞의 연당(蓮塘).. 물이 채워져 있지 않아 황량해 보인다.

남쪽의 산세가 불의 형세를 하고 있어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운조루는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와

함께 내수구(앞 도랑)와 외수구(섬진강)가 제대로 되어 있는 명당터에 자리잡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일대는 금귀몰니(金龜沒泥), 금환락지(金環落地), 오보교취(五寶交聚), 혹은 오봉귀소(五鳳歸巢)의

명당이 있는 곳이라고 하며, 이 집터에서 거북이의 형상을 한 돌이 출토 되었기에 금귀몰니의 명당으로서 남한의 3대 길지

로 알려져 있다...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세가지형의 길지(吉地)는...

첫째.. 금환락지형(金環落地形)으로 미녀(美女)가 무릎을 꿇고 앉아 금가락지를 풀어 놓은 형국(形局)이며..

둘째.. 금귀몰니형(金龜沒泥形)은 금거북이가 진흙 속에 묻혀 있는 형국(形局)이고..

셋째.. 오보교취형(五寶交聚形)은 금(錦)․은(銀)․진주(珍珠)․산호(珊瑚)․호박(琥珀) 등 다섯 가지 보물이 쌓여 있는 곳이다.

 

 운조루를 관람하려고.. 다가 가니..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운조루(雲鳥樓)는 이 집의 택호(宅號)이기도 하며..

운무심이출수(雲無心以出岫)..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조권비이지환(鳥倦飛而知還)..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라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내용중에서 머리글자를 따와서 운조루(雲鳥樓)라고 하였다고 한다.

 

 운조루 소슬대문..

운조루(雲鳥樓)를 지은 유이주(柳爾胄 영조1726∼정조1797)는 조선 후기 무신(武臣)이자 건축가(建築家)이며 풍수지리

(風水地理)에 밝은 사람이었다. 호는 귀만(歸晩),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경북 대구(大邱) 해안면(解顔面) 입석동(立石洞)

서 태어났다. 유이주(柳爾胄)의 건축기술은 궁궐공사와 수원화성, 남한산성, 상담산성, 낙원읍성의 축성(築城)에 참여한

기록이 있다.

 

1773년(영조 49) 낙안군수(樂安郡守)로 있을 때 궁궐에 올리는 세미선(稅米船)이 파손 침몰되어 그 죄로 유배를 당하였다.

유배에서 풀려나자 그는 가족을 거느리고 전라북도 구례군(求禮郡) 문척면(文尺面) 월평으로 이사 왔다가 다시 구례군

토지면(土旨面) 오미리(五美里)로 이주하였다. 풍수지리(風水地理)에 밝아 전국을 답사한 경력이 있어 유이주(柳爾胄)

스스로가 이곳 지리산밑을 길지(吉地)임을 알고 선택한 것이다.

 

“젊었을 때는 설악산이 좋고, 나이 먹어서는 지리산이 좋다”는 옛말도 있다.

류이주(柳爾胄)가 이곳을 길지(吉地)라고 확신한 까닭은 강 건너 오봉산이 아름답고, 사방의 산들이 다섯 가지 모양(五星)

을 갖추었으며, 물이 풍부하고, 풍토가 후덕하며, 대지(垈地)가 덕(德)을 베풀기에 좋다는 다섯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운조루의 쌀뒤주.

타인능해(他人能解)..​ 식구가 아닌 타인도 열게하여 주위에 굶주린 사람이 없게 하라~..라는 뜻이다.

운조루(雲鳥樓)는 99간의 대저택에 논이 약 2만평으로 1년지은 쌀 수확량이 약200가마 였는데 남에게 적선하기 위해

2가마 반이 들어가는 둥근 나무속을 파서 쌀뒤주를 만들어 1년에 36가마를 넣었다고 한다.

 

운조루(雲鳥樓)에는 10대 정신(精神)이 있다고 하였다.

1. 적선(積善)을 베푸는 정신.

2. 기록(記錄)정신.. 3대에 걸쳐 100여년 동안 생활일기와 농가일기를 기록하였다

3. 풍류(風流)정신.

4. 효도(孝道)정신.

5. 분수(分數)에 맞는 정신.

6. 여성존중(女性尊重) 정신.

7. 선정(善政)을 베푸는 정신.

8. 건축(建築)을 사랑한 정신.

9. 절개(節槪)를 지키는 선비 정신.

10. 이웃 사랑 겸애(兼愛) 정신.

 

 운조루앞의 사각 연못에 둥근섬이 있다.

과거 조선시대의 우주관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곧..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고 생각하였다..

직사각형은 땅을 의미하고.. 연못 가운데의 둥근섬은 하늘을 의미한다..

 

 운조루를 나와서 마을 앞을 바라보니..

 

 구례의 또다른 명문가인 <곡전재> 너머로 계족산의 산그리메가 아름답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오봉산과 어우러진 들녘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제 곧.. 봄기운에 취해 생명을 키운 들판에는 나물

캐는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판에 가득 할 것이고... 지난 세월 저 들판은 끊임없이 곡식을 내서 마을을 키워 왔을 것이다.

 

풍수가들이 이곳을 생리(生利)의 명당으로 꼽는 까닭이다. '생리'는 경제적인 이로움을 뜻한다. 사람들은 이 땅이 그들을

부유하게 할 것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 1690~1752)도 이곳을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살기 좋은 곳으로 꼽아 마을 사람들에게 믿음을 더해 주었다. 운조루(雲鳥樓)의 집터를 '금가락지가 떨어진 모양'으로

보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곡전재는...

1929년 박승림이 건립하였으며 1940년에 이교신(호-곡전)씨가 인수하여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처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한국 전통 목조 건축 양식의 주택으로서 풍수지리설의 금환락지(金環洛地 : 선녀가 금반지를 떨어뜨린 자리)에

해당한다고 보아 집터 자체를 반지 모양으로 둥글게 조성하였다고 한다.

 

 오미정...

오미리(五美里)라는 마을 이름도 운조루를 지은 류이주(柳爾胄)가 지은 것이라 하는데.. 오미리(五美里)는 글자 그대로

다섯가지 아름다움이 깃든 마을이라 한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땅이 기름지며, 인심이 좋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운조루유물전시관...

 

문이 열린것으로 보아 관람이 가능할것 같은데... 15km에 가까운 오늘의 산행거리에 마음이 바빠서 통과다..

유물 관람은 별도의 스케쥴을 잡아서 가까운 쌍산재.. 곡전재.. 운조루를 연계 하는 여행도 괜찮을 것 같다.

 

 산행들머리인 오미저수지로... 가는길에 오산의 사성암과 둥주리봉의 추억이 새롭다.

 

도로에서 오미저수지 둑길을 따른다...

 

 오미저수지구간은... 지리산둘레길 18구간이다.

 

 지리산둘레길 안내를 받으며 가다가...

 

 데크계단을 올라서면... 지리산 둘레길은 좌측으로 간다고 한다.. 이별이다.

 

09시 38분 : 월령봉 주능선상의 법등재에 올라 선다.

 

 여기서부터는... 지리산 월령봉능선의 시작이다.

월령봉능선은 노고단(1507m)에서 섬진강까지 도상거리 11.5km에 걸쳐 남쪽으로 내리뻗은 능선이다.

 

 운조루를 지은 "류이주"의 유택이다..

 

삼수공 류이주는.. 남한산성 보수와 수원 화성 축조에 관여한 건축에 능통했던 무관인데,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수원 화성 건설시, 성을 튼튼하게 쌓으면 되지 왜 이렇게 아름답게 쌓느냐고 신하들이 물으니, 정조임금은 “아름다움이

능히 적을 물리칠 수 있느니라!”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류이주(柳爾胄)는 정조(正祖)가 등극하면서 관직에 복귀했고 주로 대규모 건축공사 업무를 맡았다.

 

 섬진강이 보이고.. 구례읍소재지도 보인다.

 

▲ 당겨 본 섬진강..

진안에서 발원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들며, 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 그리고 낙남정맥이 둥글게 감싸안은 그 안쪽을

흐르며 젖줄의 역할을 한다. 고려 우왕 때, 왜구가 삼진강 하구로 침입해 왔을 때이다. 수많은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겁을

은 왜구는 광양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고서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 육산으로 이어지던 능선이..

 

▲ 방구돌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 고도를 높혀가니.. 꽉막혔던 조망도 터진다.

 

▲ 멀리.. 지리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문바위봉도 보이기 시작하고.. 왕시리봉은 구름에 싸여 있다.

 

▲ 다시 바위돌들이 지루했던 육산을 깨운다..

 

▲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문수저수지와 구례군 토지면소재지 방향...

"원수에게도 예를 베푼다~"... 구례의 넉넉한 인심을 빗댄 말이다. 이는 모름지기 어머니와도 같은 지리산과 섬진강이 낳고

기른 풍요로움에서 비롯된 말일 터이다. 조선 중기 이 중환이 쓴 <택리지>에는 구례를 가리켜 볍씨 한 말을 뿌려 백마흔

말을 거둘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이 나라에서 가장 기름진 땅의 하나로 꼽았다. 또한 지리산을 일러 두툼하고 기름진 땅이

많아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라 했으며, 산속에 대나무와 밤, 감이 많아 "가꾸는 사람이 없어도 저절로 열리고 저절로

떨어지고 높은 봉우리 위에 기장과 조를 뿌려도 무성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 지리산이 가져다 준 기름진 땅은 다시 섬진강이란 젖줄을 만나 한결 살지고 튼실해진다 하겠는데, 지리산이 낳은

풍요를 섬진강이 길러 주는 셈이다. 예부터 구례는 "세 가지가 크고, 세 가지가 아름다운 땅"이라 불려 왔다.

웅장한 지리산과 젖줄 구실을 하는 섬진강, 지리산과 섬진강에 얽혀 있는 너른 들판이 세 가지의 큰 것이고, 산과 강이

어우러져 빚어 낸 빼어난 경치와 기름진 들판에 넘치는 곡물과 푸성귀, 순박한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이 세 가지의 아름다움

이다. 이 가운데서도 국립 공원 제1호인 지리산은 빼놓을 수 없는 자랑으로, 구례에는 지리산자락을 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이름난 곳이 많다.

 

▲ 왕시리봉은...

"높음, 으뜸"을 나타내는 우리 옛말 " 살 " 에서 유래하고, 초기 삼국시대 관직에 백제의 달솔, 신라의 수마로, 고구려의 

욕살 등에서 나타나며, 정수리란 의미도 "살"로 삼아 발달한 단어라고, 살 - 술 - 술이 - 수리 - 시리 또는 시루 등으로 변천

한 것이 아닌가 한다.

 

10시 54분 : 삼밭재.

이곳까지가 구례에서 관리하는 구간이고 삼밭재 이후 부터는 지리산 국립공원에 해당되는 구간으로 비탐구간이다.

 

▲ 삼밭재를 지나서부터는 길도 거칠어진다.

 

▲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바위밑을 지나가려니 오금이 저린다.. 봄철 해빙기에는 조심해야 할 곳이다.

 

11시 39분 : 월령봉이라길래... 왠지 신비감과 함께 이유없이 정겹게 들리는 이름.. 월령(月嶺)..달재..달고개인데 

정상부에는 조망은 전혀 없고.. 처음으로 만나는 시그널이 반갑다.

 

▲ 발디딤이 쉽지 않은 월령봉 내림길을 내려 오다가 전망좋은 바위가 있어 올라가 본다..

 

노고단(老姑壇)의 노고할미가 시원하고 너런품으로 품어 준다.. 

신라의 화랑들이 탑(塔)과 단(壇)을 설치하고 수련을 하면서 천지신명과 노고 할머니께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물기가 많은 습설과 젖은 낙엽이 매우 미끄럽다.

 

▲ 숲이 우거진 녹음철에는 와서는 안될것 같은 곳 같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조심...

 

▲ 바위지대를 벗어 난다.

 

▲ 앞서간 두명의 선답자의 흔적을 따라 7~8분가량 올라가니..

 

12시 03분 : 863m봉에서 바라본 형제봉이다... 진행은 오른쪽으로 내려 갈것이다.

 

 오늘 최고의 전망좋은 곳이다. 탈출구인 밤재도 가늠된다.

 

▲ 조금전에 지나온 조망없는 월령봉 보다는.. 이곳을 월령봉이라 하면 격에 맞을것 같다.

 

 형제봉재..

 

12시 32분 : 형제봉..

 

 밤재로 내려가서 의상암들매화를 보고 화엄사로 갈것이다.

 

 형제봉에서 좌측능선을 따르면 화엄사주차장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형제봉을 내려와서 우측으로 노고단능선을 따른다.

 

불과 조금전에 지나간 짐승 발자국인데 멧돼지 족적은 아닌것 같다.

 

 밤재로 내려가면서 지나야 하는 산죽길인데..

 

 꽤나 길게 이어진다.. 바닥이 보이진 않지만.. 길은 뚜렷하다.

 

13시 01분 : 밤재 도착..

산죽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직진하면 노고단 가는길..

 

 고로쇠물을... 채취한다고 해야할지.. 착취한다고 해야 할지.. 조건없이 내어주는 자연이다.

 

 이런 첩첩산중에도 민초들이 남긴 삶의 흔적들.. 화전터다..

 

14시 09분 : 보적암 차도 갈림길..

 

 좌측으로 내려간다.. 오른쪽은 연기암으로 가는 차도다.

 

 용소갈림길에서 내원사 방향으로 가는 시멘트길을 버리고 계곡길을 따른다.

 

 용소갈림길에서 좌측이 화엄사길이고 오른쪽은 연기암 길이다.

 

 의상암 들매화를 보기위해 구층암방향으로..

 

 구층암..

 

 구층암의 모과나무기둥.

임진왜란 때 암자가 불타면서 화를 당한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승화시킨 것이며 얼추 400년이 넘는 세월이다보니 그 자태

가 신묘하기 그지없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심재가 갈변하지 않고 회백색 자태에 골과 주름이 도드라진다. 

일반적으로 모과나무는 주름이 많은데다가 골이 깊게 패여서 목재로서의 가치는 별로 없다고 한다.

 

 구층암을 지나서 들매화를 보러 간다.

 

들매화가 만개하고 연못에 만수가 되면 물에 비치는 반영도 아름다울것 같은데..

매화는 눈뜰 생각이 없고.. 연못에는 물이 없다.

 

들매화는 2007년 10월 7일에 천연기념물 제485호로 공식지정 되었다. 동물이나 사람들이 먹고 버린 씨앗이 싹이터서

자란 나무로 짐작되기에 "들매화" 불린다. 개량종 매화보다 꽃이 작고 듬성듬성 피지만 단아한 기품과 향기는 개량종 매화

가 따라오지 못한다. 토종매화 연구의 학술적 가치가 높다.

 

화엄사 대웅전..

대웅전 편액은 인조의 숙부인 의창군 광(珖)이 썼다.. 원래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모신 법당을 말하는데..

이 곳은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모시므로 "대적광전" 이나 "대광명전" 이라고 썼어야 되는데.. 대웅전이라고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고 한다.

 

 화엄사 대웅전의 목조 비로자나 삼신불 좌상(국보 제336호)...

중앙에 법신 비로자나불이 지권인을 하고 계시고, 우측에는 보신 노사나불이 우리나라에서 는 유일하게 보관을 쓰고 손을

펼친 설법인을 하고 계시며, 좌측에는 화신인 석가모니불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계신다. 위 삼신불은 1635년 청헌스님 등

18분의 스님이 조성하였으며, 위계에 맞추어 비로자나불은 3.8m, 노사나불은 3.7m, 석가모니불은 3.5m로 조성하였다.

후불탱화는 18세기 유명한 의겸스님이 참여해 조성하였다.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각황전은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으로 단청은 없지만,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며, 외부는 중층구조이나, 내부는 위 아래가 트인

통층 구조다. 법주사 대웅보전.. 마곡사 대웅보전.. 무량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불전중의 하나다. 각황전이 있기전

통일신라 때는 4.6m나되는 석가모니를 모시는 3층의 장육전이 있었고, 사방벽에 화엄석경을 둘러 깨달음의 세계가 장엄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숙종 때 계파대사가 4년에 걸쳐 중층건물로 재건하였다.

 

 화엄사 홍매화.

문화재청이 2024년 1월 24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홍매화다. 아직은 깨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홍매화는 조선 숙종 때 계파선사가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하고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다. 화엄매라고도

불리는 이 매화나무는 꽃과 열매가 다른 재래종보다 작지만 꽃향기는 그보다 더 강하다고 한다.

봄이면 아름다운 꽃과 향긋한 향기로 화엄사에서 인기있는 명물이다.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사자탑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조성한 것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감로수를 받들고 있고, 네모난 돌에는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다... 네 마리 사자의 얼굴에는 인간의 희, 노, 애, 락을 표현하고 있다. "4사자 감로탑" 으로도 불리운다.

 

적멸보궁 가는길.. 각황전 왼쪽으로 올라간다.

 

 적멸보궁 가는길의 108계단.

 

108계단을 오르다가 뒤돌아 본 각황전..

 

석등과 4사자상(국보 제35호).

 

 석등.

연기조사가 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탑을 이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차 공양을 하는 모습을 조각한 석등 조각상이다.

 

4사자상(국보 제35호)과 어머니상(가운데)..

 

 4사자상(국보 제35호)과 어머니상(가운데)..

4사자삼층석탑은 2층 기단에서 희노애락 표정의 4마리의 사자가 머리 위에 탑을 이고 있고, 탑안에는 합장을 하고있는

어머니상이 조각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연기조사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높이 5.5m의 불사리 공양탑이다.

 

견성전(적멸보궁).

 

적멸보궁.

부처님 사리탑을 볼 수 있는 통창이 있고.. 불상은 모셔져 있지 않다..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불단.중앙에 석가모니불과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다보불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적보살,관세음보살이 모셔저 있다.

 

 화엄사 각황전 내부 불전.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과 석등(국보 제12호).. 둘다 국보급이다.

각황전 앞 석등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의상대사가 조성하였으며, 높이가 6.36m로 우리나라 석등 중에서 가장 크다.

각황전과 조화를 위해 크게 조성했으며,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밝혀 지혜로 이끈 부처님의 다른 모습을 의미한다.  현재는

오염물제거, 파손부재 접합, 복원 등 작업을 위해 해체하여 보존처리 중으로 2025년 6월 이후에나 볼수 있다고 한다.

 

 화엄사 각황전과 서 오층석탑.

 

 화엄사 대웅전과 동 오층석탑.

 

 화엄사 보제루.

 

 화엄사 천왕문.

천왕문은 사천왕상을 모신곳이며 건물의 배치는 약간 비틀어져 조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찰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 사는 신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이

되었다. 구례 화엄사의 사천왕상은 극히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성되었다. 특히 머리장식이 화려하고, 목의 머플러는 거의

현대적 감각으로 꾸며져 있다.

 

 화엄사 금강문.

 

벽암국일도대선사비... 화엄사 중창의 주역인 벽암대사의 탑비다..

대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했었고..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도 지었다고 한다.

 

화엄사 불이문인데.. 양쪽으로 담장이 있는게 특이하지만.. 사연이 있다.

편액은 선조의 아들 의창군 광(珖)의 글씨로.. 지리산화엄사는.. "지혜가 뛰어난 산속에 화엄경을 모신 사찰" 이다.

임진왜란 때 주지 설홍스님 등 300여명의 스님이 구례의 길목 석주진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부 전사하였고.. 왜군이 화엄사

전각을 모두 불태웠다. 그래서 불이문에 대문과 담장을 만들어 중생에게는 문을 활짝 열고.. 관리들의 수탈과 왜적의 침략

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문을 굳게 닫았다.

 

화엄사 일주문에서 오른쪽의 대문도 성문처럼 굳게 만들어 놓았다..

 

방장교 측면에 방하착(放下着)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방하착(放下着)은... 내려놓다.. 라는 뜻으로.. 마음 속에 있는 집착이나 번뇌를 내려놓는 것을 의미 한다.

저 다리를 건너는 이 들중에 내려놓는이 얼마나 될까..

 

 주차장까지 2~30분 걸어 간다.

 

 

 

 일주문...

안쪽(좌측사진)에는 "해동선종대가람"이라 되어 있고.. 바깥쪽(우측사진)에는 "지리산대화엄사"라 되어 있다...

 

 뒷면은 심무가애(心無罣礙).. 마음에 가리낌이 없다... 앞면은 대화엄성지..

 

 집단 상가지역..

 

15시 27분 : 화엄사주차장 산행종료.

 

 남원 광한루 식당가에서...

 

 추어탕 한 뚝배기 게눈 감추듯.. 뚝딱.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운조루의 소슬대문 아래에 놓여진 통나무 뒤주에 새겨진

타인능해(他人能解)의 의미를 배웠고

 

월령봉능선에서는

습설(濕雪)로 고생하지 않을까.. 했던 우려는

노고단.. 노고할미의 보살핌으로 안전산행을 마쳤고

400년간 지붕을 떠받치고도 꼿꼿한 구층암의 모과나무기둥까지 만났다.

 

춘래불사춘이라.. 화엄사의 잠자는 홍매화와 들매화..

매화공주를 깨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시나... 다 가질수는 없었다..

 

화엄사 부처님 세상에서 사바세상을 나오며 만나는 심무가애(心無罣礙)...

속인의 마음에 어찌... 일체의 거리낌이나 장애가 없으랴..

오늘도 고마움을 담아 가자~..

2025년 03월 02일(일요일).
암남공원둘레길 : 부산시 서구.

 

트레킹코스 : 암남공원주차장-용궁구름다리입구-데크계단-두도전망대-해식탐방-암남공원주차장.

트레킹시작 : 암남공원주차장 10시 37분.

트레킹종료 : 암남공원주차장 13시 46분.

전체거리 : 약4.71km.

전체시간 : 03시간 10분.

운동시간 : 02시간 09분.

휴식시간 : 01시간 09분.

누구하고 : 솔잎산악회.

 

10 : 37  암남공원주차장.

10 : 46  용궁구름다리입구.

11 : 00  지그재그데크계단.

11 : 33  두도전망대.

13 : 13  해식탐방.

13 : 46  암남공원주차장.

 

 10시 37분 : 암남공원주차장.

오늘은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전국에서 곰탕을 끓이는 날이다.

 

이곳.. 부산의 곰탕은 구수한 냄새가 아닌.. 비릿한 생선 냄새를 따라 암남공원 들머리를 찾아 간다.

 

 암남공원 화장실 뒷편으로 들어가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암남공원 입구다.

 

 떠오르는 서구의 태양을 상징 한다는 조각 <부산 서구의 원>이다... 조각가 김형민님의 작품이다.

 

▲ <평화의 메세지>..

전쟁이라는 무모한 행동으로 인류는 공포에 떨고 있다.

우리는.. 죽고 죽이는 슬픈 현실을 언제까지 머리속에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가?... 조각가 <안치홍>님의 작품이다.

 

전에 없었던 시설물.. 송도용궁구름다리 입구다.

 

외국에서는.. 달나라 관광을 한다더니..

우리나라는 용왕님이 사신다는 용궁까지 갈때 500원.. 올때 오배근이면 오고 간단다.. 참으로 신기한 세상이다..

 

토끼 간을 용궁에 바친 유공자는 꽁짜다..ㅎㅎ~..

 

 용궁이 궁금해서 담너머로 훔쳐보니..

멋진 구름다리가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 입장은 돌아올때 결정하기로 하고 일단은 통과다.

 

 주차장에서 풍겨오던 비릿한 생선냄새는 가시고.. 뽀오얀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서 아래쪽은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다.

 

오리무중 해무에 용궁이 신비감을 자아내며 공중부양을 하고 있다.

 

▲ 용궁에서 심봉사의 눈을 뜨게한 심청이의 잔치음식을 가져 왔는지... 솔잎주막의 인심도 후하다..

 

 출렁다리를 지나서 진로를 능선길로 바꾼다.

 

<잃어 버린 시간>.. 현재의 문명.. 문화.. 시간들에 대한 생각을 말(馬)에 비유하였다는 조각가 이영춘님의 작품이다.

 

위정자들은 권력다툼에 국가의 방향을 잃고.. 사업가는 관세에 옭죄이고.. 동유럽(북유럽)은 땅따먹기 전쟁에 여념이 없다..

지구촌시대를 사는..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 가고 있는가..

 

 암남공원에서 가장 높은 해발 132.2m의 정상이다.

 

 <천국의 열쇠> 세상에 대한 진실의 소리를 표현하였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의 작가 <알그리다스 보사스>님의 작품이다.

 

 암남공원은...

부산시 서구 암남동에 자리한 바다와 접해있는 해상공원이며, 암남공원의 새 명물이된 송도해상케이블카와 송도해수욕장.

그리고 암남공원 둘레길에 두도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과거엔 많이 찾지 않는 동네 공원으로 여기다가 전국의 트레킹붐이

일어나면서 사계절 내내 여행객들과 트레커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두도전망대.

 

 

 감천항 방파제. 남태평양에서 올라오는 태풍의 위력을 분산 시키기 위해 보조 방파제를 설치 하였다.

 

 

 포구나무 쉼터.

이곳은.. 예전부터 나무꾼이나 나물캐는 사람, 해안가 초병들이 유일하게 식수를 구할 수 있었던 곳이라고 하며... 한편으로

는 바다를 터전으로 사는 가족들이 포구나무 아래까지 찾아와 먼바다로 떠난 남편과 아버지를 그리워 하며 무사히 돌아오

기만을 기원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암남공원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간이다.

 

암남공원 해식절벽...

8000만년 전 송도지역에서는 지각이 벌어지고 갈라지면서 그릇모양의 다대포 분지가 만들어졌고, 다대포층이라는 최적층

이 쌓이게 됐다... 처음에는 흐르던 강이 자주 범람하면서 하부다대포층이 이 분지에 퇴적되고 그 후 분지가 깊어지면서

호수로 변해 상부다대포층이 쌓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암남공원 해안절벽엔 하부다대포층이 연속적으로 잘 드러나

있고, 붉은색의 사암, 실트암, 회색의 역암이 교대로 나타나고 있어며... 화산성물질의 함량이 상부다대포층에 비해 적은

특징이 있다..

 

 송도 용궁구름다리.. 입장은 생략..

2002년 태풍 셀마로 인해 철거된 송도해수욕장의 동쪽 송림공원에서 거북섬을 연결했었던 송도구름다리를 18년만에 다시

재건축한 것인데... 암남공원에서 바다 건너 작은 무인도인 동섬 상부를 연결하는 길이 127m, 폭 2m의 구름다리이다.

 

송도해상케이블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 간에 설치된 해상케이블카로 2017년에 부산에어크루즈라는

브랜드로 운행을 시작한 곳이다... 최고 86m 높이에서 1.62km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코스가 정말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

하는 곳이며.. .송도해상케이블카에서 송도해수욕장은 물론 부산 영도, 남항대교, 송도 해안둘레길 등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암남공원 주차장에서 송도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해안데크 볼레길은 파손되어 수리중인 것 같다.

 

 

 송도해수욕장 인근의 11층짜리 빌딩.. 그중에서도 6층에 자리한 00해물탕에서..

 

 재치만점인 총무님의 사회로 건배..

 

 회장님의 건배제창에 이어..

 

 최이사님의 건배와..

 

 손이사님의 건배로 끝맺음을 하고..

 

 좌중을 둘러보다가... 센스 넘치는 젓가락 비녀로 쪽진머리가 보인다..

 

젊은 시절에 한창 잘나갔던 대만 출신의 홍콩 여배우 "왕조현"이 생각나서 한컷 해본다.

"왕조현"은 영화 "천녀유혼'에서 섭소천 역으로 아시아권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누렸던 배우다..

 

젓가락으로 쪽진 모습이 보기 좋아서 본인 허락 없이 올렸네요..

본인이 이 사진을 보고.. 댓글로 내려 달라고 하면 바로 삭제합니다.

 

윤회장님이 아침멘트에서 지난달 연화산 시산제에서..

정성을 잘 올려서 비는 오지 않을거라고 한 말처럼 되었다.

 

짙은 운무로 조망은 아쉬었지만 신비감을 주는 볼거리도 좋았구요.

회장단 및 산행부 모두 수고많았습니다.

2025년 02월 27일(목요일).
양지암등대길 : 경남 거제시.

 

트레킹코스 : 조각공원입구-조각공원-체육공원-양지암등대-전망대-팔각정-능포항주차장.

트레킹시작 : 조각공원 13시 22분.

트레킹종료 : 능포항주차장 15시 07분.

전체거리 : 약5.26km.

전체시간 : 01시간 45분.

운동시간 : 01시간 30분.

휴식시간 : 00시간 15분.

누구하고 : 드림산악회.

 

13 : 22  조각공원입구.

13 : 25  조각공원.

13 : 38  체육공원.

13 : 48  정자.

14 : 11  양지암등대.

14 : 34  팔각정.

15 : 07  능포항주차장.

 

13시 22분 : 양지암조각공원입구.

 

 능포항 전경.

 

 양지암조각공원.

 

 해맞이공원.

 

 멀리 정박해 있는 배를..

 

 30배줌으로 당겨보니 LNG선이다.

 

 여기서 능선을따라 갈것이다.. 왼쪽길은 능포항에서 오는 임도와 만나서 양지암등대로 가는 길이다.

 

거제섬길 6코스인 양지암등대길은 장승포동과 능포동을 잇는 15.5km구간에 남파랑길 거제 20코스와 중복되는 길이다.

 

조각공원에서 양지암등대까지 구간중에 가장 높은 곳은 정자가 있는 곳으로 해발113m다.

 

13시 48분 : 정자가 있는 113m봉..

 

 113m의 낮은 봉우리지만.. 내려가고 올라가고 산으로서 갖출건 다 갖추었다..

 

 포토존 가는길이..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데크계단도 있고..

 

 바위길도 있고.. 전망대에 올라서면..

 

 오전에 다녀온 지심도가 마주한다.

 

 아직은 이런 방구돌도 좋고..

 

 선바위도 좋다.

 

 해송과 방구들의 조화가 심심치 않아서 좋다... 아기자기한게 재미있는 코스다.

 

능포항에서 오는 임도와 만남..

 

이정표가 양지암등대까지 130m라고 가리키는.. 여기서부터..

 

 누군가가 산책로를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어 놓았다.. 아씨를 사랑한 머슴 삼돌이가 쓸어 놓았을까.. 기분 좋은 길이다.

 

▲ 상사바위는 어디쯤일까..

 

14시 11분 : 양지암등대.

양지암 등대는 1985년부터 불을 밝히고 있는 무인등대로 40년이나 되었다.

 

▲ 바로 이곳이 상사바위다..

조선중기 상서벼슬을 했던 이씨 성을 가진 이상서가 외동딸 국화와 머슴 삼돌이랑 한양에서 이 곳 거제도까지 내려와 살게

되었는데 국화가 성장하면서 미모와 재능이 뛰어나 혼사자리 이야기가 나올 무렵 국화아씨를 짝사랑한 머슴 삼돌이는

신분차이로 상사병에 걸려서 이 바위에 떨어저 죽고말았다.

 

삼돌이가 죽고 난 후 국화아씨 꿈에 삼돌이가 뱀으로 나타나 국화아씨 몸을 칭칭감아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여 이상서는 외동딸 국화에게서 뱀을 떼어 내기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결국 국화아씨도 이 바위에서 떨어저 죽었다고 한다.

 

그녀의 몸에 감겼던 뱀은 사라지고, 하늘에는 무지개가 떠올랐다고 전한다. 이후부터 거제사람들은 국화가 떨어진 바위를

‘상사바위’라 불렀으며 처녀 총각들의 사랑이나 혼사가 잘 이뤄지지 않을 때 이 바위에 와서 소원을 빌면 잘 이뤄진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 건너편으로 장목면의 대금산이 보이고.. 그 아래 장목면 외포리는 고 김영삼대통령의 생가 마을이다.

 

▲ 여기서 보는 풍경들은 강원도 양양의 하조대에 와 있는 분위기다.

 

▲ 북쪽으로 장목면 유호리와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희미하지만 육안식별이 되는데 사진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 30배줌으로 당겨보니 거가대교 교각이 보인다..

 

▲ 임도와 만났던 곳에서 임도를 따라 능포로 간다.

 

▲ 길가의 편백나무에 말벌집이 보여서 당겨보니 다행히 빈집이다.

 

14시 30분 : 팔각정에서.. 늦은 민생고를 해결한다.

 

▲ 팔각정에서 바라본 대금산..

 

▲ 발풀고사리 군락.

 

▲ 능포항 방파제에 주중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 무인으로 운영되는 유료낚시터..입장료 5000원.. 기업수준이다.

 

15시 07분 : 능포항주차장..

 

▲ 장대가 꽂혀 있는것은.. 고기잡이 배가 항구로 돌아올때 깃발을 달아서 만선을 알리는 깃대다..

 

보리새우의 고장 능포항이라고 한걸 보니.. 보리새우가 많이 잡히는 곳으로 유명한가 보다..

15시 52분에 능포항 출발..

2025년 02월 27일(목요일).
자심도(동백섬) : 경남 거제시.

 

산행코스 : 지심도선착장-동백하우스-마끝전망대-지심분교-포진지-탄약고-활주로-샛끝전망대-지심도선착장.

산행시작 : 지심도선착장 10시 48분.

산행종료 : 지심도선착장 12시 22분.

전체거리 : 약5.56km.

전체시간 : 01시간 34분.

운동시간 : 01시간 34분.

휴식시간 : 00시간 00분.

누구하고 : 드림산악회.

 

10 : 48  지심도선착장.

10 : 49  동백하우스.

10 : 55  마끝전망대.

11 : 05  지심분교.

11 : 10  포진지.

11 : 11  탄약고.

11 : 32  활주로.

11 : 32  그대발길 돌리는곳.

12 : 22  지심도선착장.

 

 09시 53분 : 장승포항 지심도터미널.

 

출발 10시 30분... 소요시간 10분 ~ 15분... 요금(왕복) 20000원.

 

 정원 98명의.. 지심도여객선..

 

거제애광원.. 한국전쟁이 낳은 비극과 사랑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앞쪽의 거대한 건물은 거제문화예술회관 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 발발.. 그리고 그해 12월 23일에 흥남 부두를 떠난 '메르디스 빅토리' 호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녁, 1만 4천 여명을 거제 장승포항에 내려놓았고 거제는 피난민들과 고아들로 가득 찼다.

1952년 27세의 김임순은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100세의 연세에 지금도 애광원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거제시 장승포항 상징 조형물.. 작품명은.. "태양의 어머니"다.

195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녁 '메르디스 빅토리' 호가 내려놓은 오갈데 없는 피난민들을 어머니 마음으로 품에 안은

거제인들의 넓고 깊은 정을 상징하고 있다.

 

 출발 5분만에 지심도가 보인다.

 

▲ 옥녀봉 정상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설치된 대삼각점으로1910년 6월 <일본 대마도의 유명산>과 <부산의 영도 봉래산>과

<거제의 옥녀봉>을 관측계산하여 대삼각본점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두 삼각점을 기준으로하여 전국에 대삼각본점 400점을 설치하여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하려는 의도에서 토지조사

를 실시하였던 매우 씁쓸한 기분의 삼각점이 저곳에 있다.

 

▲ 더욱 가까워 진 지심도..

지심도(只心島)의 지명유래는 문헌상으로 지사도(知士島, 1469년 경상도속찬지리지)로 알려졌다가, 1760년 여지도서

(輿地圖書)에는 지삼도(只森島)로 적고 있다. 다른 문헌에는 지삼도(知森島), 지심도(只心島)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지삼도나 지심도는 한자마다 읽는 과정에서 바뀌었다고 보기엔 힘들고 섬의 자연적 변화에 따라 불렀다고 하겠다.

이전부터 지심도에는 각종 나무들이 울창하게 심어져 있었다고 해서 지삼도라 불렀고, 이후 섬이 마음 심(心)처럼 생겼다

고 하여 지심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위키백과 발췌>--

 

▲ 지심도에 있다는 몽돌해수욕장이 생각나서..

 

▲ 당겨 보니.. 규모는 작지만 몽돌이 자리하고 있다.

 

▲ 지심도 선착장에 접안하자 말자 재빠르게 두번째로 하선하여..

 

▲ 인어공주를 선착순으로 만나는 영광을 누리고..

 

▲ 돌아보니.. 아직도 하선중이다.. 98명이 정원인 배에 주중임에도 7~80명은 탄것 같다.

지심도 식당에서 손님유치를 위해 운영하는 서비스용 4륜차 툭툭이가 손님을 태우는 모습도 보인다.

 

▲ 때로는 홀로여행이 좋은점은..

 

▲ 조금만 부지런히 서두르면..

 

▲ 적어도 이시간 만큼의 지심도길은.. 온전히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 여기에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마끝전망대로 갈수가 있지만..

 

10시 49분 : 동백하우스를 경유 한다.

 

▲ 성모마리아님이 내려다 보시는 곳에서 우틀하여..

 

▲ 첫번째 상가를 지나고..

 

▲ 두번째 상가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마끝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 트레킹순서는.. 마끝전망대를 보고 포진지를 경유하여 샛끝전망대에서 선착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 지심도 발전소..라는데 출입금지다.

 

10시 55분 : 마끝전망대..

 

▲ 마끝전망대와 마주보이는곳은 거제시 일운면의 "망산"으로 섬산행을 더러 오는 곳이고 망산 뒤편에는 수선화로 유명한

"공곶이" 농장이 있다..

 

▲ 뒤돌아 본 마끝전망대..

 

마끝전망대에서 돌아 나오다가 발전소라 하기에.. 어떻게 전기생산을 하는지 궁금하다.. 태양열이 아닐까..

 

 해돋이 민박집을 지나가는데..

 

 사륜차 툭툭이가 지나간다.. 서비스 운행중이다.. 젊은 사람이 부모의 일을 도우는 듯하여 보기가 좋다.

 

11시 05분 : 지심도분교 삼거리..

 

 일운초등학교 지심분교.. 지금은 마을회관..

 

지금은 지심도주민마을회관..

 

지심분교 운동장...

1982년까지만 해도 17가구 69명에 달했으며 당시 일운초등학교 지심분교에는 재학생이 35명에 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1994년에 폐교 됐다. 운동장을 관통하면.. 산 위쪽의 활주로와 연결 된다.

 

 국방과학연구소 앞...

1945년 광복 이후 지심도는 미군이 점령하게 되고 일본군으로부터 포진지와 각종 무기 등을 접수한다. 

이후 소유권이 국방부로 넘어왔지만 한동안 관리되지 않다가 1995년 섬 중앙에 국방과학연구소 해상시험소가 건설된다.

 

이러한 지심도에 인근 어민들이 어업활동을 하기 위한 교두보로 임시거주를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 강제 

이주를 떠났던 주민들이 되돌아 오면서 다시 민간인이 사는 섬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거제시는 국방부로부터 지심도 소유권을 반환받기 위해 2005년 '지심도 이관팀'을 구성하고 4만 8743명이 동참한 범시민 

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국회 청원 등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2008년 8월 제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청원서가 폐기되면서

지심도 반환사업은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거제시는 2011년 6월 13일 국방부에 이관 건의를 시작하며 다시 불을 붙였다.

 

국방부, 환경부 등 12개 기관과의 끈질긴 협상을 벌인 끝에 지심도에 있던 국방부 해상시험소를 섬 밖으로 이전 완료하고,

2017년 지심도 소유권을 넘겨받는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섬 주민을 내쫓고 군사기지화 한 이후 81년 만에 이로써 지심도는 거제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였던곳이 궁금하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다.

 

 포진지로 이동.

 

 처음 만나는 포진지..

일제는 1935년 지심도 일대의 토지를 국방용으로 매입하면서 주민들을 지세포와 대동마을로 강제 이주시키고 포진지

구축은 1936년 7월 10일 시작되어 1938년 1월 27일 완성된다.

 

 두번째 만나는 포진지..

지심도 포대는 일본의 중국침락을 2년 앞두고 계획되었으며, 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 양지암 기지와 함께 진해해연방비

부대에 소속되어 미연합국과 일전을 준비하였던 곳이다. 지심도 포대설치는 1935년 11월 30일 구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포대건설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시작됐다. 일본군은 지심도 내에 4곳의 포대를 설치하는데.. 45식 15밀리 캐논포 4문..

38식 기관총.. 96식 측원기등을 각각 배치 했다.

 

 탄약고.. 터널속을 관통하게 되어 있다.

1935년 11월 30일 ~1936년 1월 25일 사이 지심도 포대를 건설할 때 함께 건설되었다. 내부는 전등을 설치하였고.. 탄약

이나 포탄을 저장하던 곳이라 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며 지하 벙커식으로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탄약고 안에는 45식 15밀리 캐논포 탄환 38식 기관총 탄환 등 각종 화역을 보관하고 있었다. 1936년 5월 7일 현재 38식

기관총 고사포구 38개.. 캐논포 탄환 10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탄약고의 외부 좌우에 환기구 역활을 하는 구멍이 2곳이

있으며,내부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항아리 모양의 수로를 설치했다. 이러한 방식은 4곳의 탄약고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당초 탄약고는 포대와 가까운 거리에 설치되어 포탄이나 탄약을 운반하는데 편리하도록 건설되었고.. 4곳 모두 정문은

부산쪽 방향이며.. 후문은 쓰시마 방향이다. 또한 모든 탄약고는 비탈진 곳에 은폐되어 있어 눈에 쉽게 발견할 수는 없다.

 

탄약고를 나오면.. 세번째 만나는 포진지에서 뒤쪽으로 내려간 흔적이 있어서 따라가 본다...

 

 여기가 끝이다.

 

 오른쪽을 보니 조금전에 다녀갔던 마끝전망대가 보인다.

 

 왼쪽 해안선..

 

 다시 올라 와서...샛끝전망대로 가다가..

 

 많이 다닌 흔적이 보여서..

 

 멀리 대한해협의 수평선이 고요하다..

 

 가시덤불과 도깨비풀이 많아서 하절기에는 다니지 않는게 좋을 듯 하다...

 

 낭도의 신선대에 온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멋진 뷰(view)가 기다리고 있기에.. 약간의 발품을 파는 것이다.

 

 다시 국방연구소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지심도의 화장실은 두개다.. 이곳 산 위에 있고 선착장에 있다. 이곳은 재래식이다.

 

밀수가 성행하던 시절.. 지심도에 세관 감시초소가 있었음은 처음 알았다.. 그것도 자그마치 20년이다..

 

11시 32분 : 지심도 활주로..

 

 활주로를 나와서 샛끝전망대 쪽으로...

 

 지심도 곰솔할배..

 

방향지시석은 망루나 발전소와 가까이 있는 곳으로 지심도의 주변 지역을 표시한 것이며, 서치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설치되었다. 총 6개의 지시석이 있었으나, 현재 제일 왼쪽으로 장승포 방향(長承浦方向), 가덕도등대(加德島燈臺),

절영도(絶影島, 현 영도), 쓰시마 남단(對馬島) 등 총 5개만 남아 있다.

 

▲ 곰솔할매.. 해송을 바닷가에서는 곰솔이라고 한다..

 

 곰솔할매..

 

 찬 물고랑쪽의 바위들..

 

국기 게양대(國旗 揭揚臺)..

광복 70주년을 맞아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지심도 역사의 아픈 흔적을 지워버리고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섬을 만드는

시금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욱일기 게양대를 세웠던 곳에 지심도 주민들이 뜻을 모아 태극기

게양대를 세우다.

 

우리가 사랑하는 거제도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지심도를 위하여...

2015년 08월 15일 지심도 주민일동

 

11시 47분 : 샛끝전망대.. 일명.. 그대 발길을 돌리는 곳..

 

 올때는 샛끝전망대.. 갈때는 선착장 바라기..

 

 방향지시석에서 우틀하여..

 

 육지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통큰 대나무다..

 

서치라이트 보관소.

조명이 도달하는 거리가 7km ~ 9km나 될 만큼 커다란 서치라이트를 방향지시석으로 끌고 가서 사용했다고 한다.

 

지심도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只心島 舊 日本軍 電燈所 所長 舍宅).

이 전등소 소장의 사택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지심도 전등소는 지심도 포대의 완공과 함께

1938년 1월 27일 준공 되었다.

 

11시 57분 : 몽돌해수욕장 입구.

선착장 도착이 12시 40분까지 이니.. 다녀와도 될듯하다.

 

동백은 세 번 핀다고 했다.. 가지에서 한 번.. 땅에서 한 번..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다시 붉게 피어난다..

오늘의 지심도 동백이 내마음에 피어나는 순간이다..

 

 몽돌해수욕장.. 규모는 작지만... 가족들과 조용히 하루밤 파도소리를 듣는 것도 좋을것 같다.

 

 수종이 다른 두나무가 사랑에 빠졌다.

 

 후박나무...

 

 12시 22분 : 지심도 선착장 트레킹종료.

 

 시간이 남아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가..쥔장 없는 낚시대 대여소에서 쥔장 행세를 하며.. 휴식모드로..

 

12시 38분 : 서서히 줄을 서야 하는 시간.. 오늘은 경남 창녕에서 대형버스 한차가 왔다.

 

 새우깡을 낚아채는 순간 포착을 하려 했는데..

 

 얼마나 빠른지..

 

 타이밍 실패다..

 

 13시 14분 : 장승포항 도착..

버스에 탑승하여 다음 행선지인 양지암등대길을 걷기 위해 10분 거리에 있는 능포의 조각공원 입구로 이동.

2025년 02월 23일(일요일).
청산 : 대구시 달성군.

 

산행코스 : 우록종점-하백록교-당산나무-목미니정자-청련암-740봉-청산-선유재-백록마을회관-우록종점.

산행시작 : 우록종점 09시 43분.

산행종료 : 우록종점 14시 52분.

전체거리 : 약11.3km.

전체시간 : 05시간 09분.

운동시간 : 04시간 03분.

휴식시간 : 01시간 06분.

누구하고 : 향기나 팀.

 

09 : 43  우록종점.

09 : 56  하백록교.

09 : 59  당산나무.

10 : 27  목미니정자.

10 : 41  청련암.

12 : 23  740봉.

13 : 12  청산.

13 : 36  선유재.

14 : 14  백록마을회관.

14 : 52  우록종점.

 

 09시 41분 : 가창2번 우록종점에 도착하여.

 

추위대피소에서 산행채비를 하고..

 

 09시 43분 : 우록경로당앞 마을도로를 따라간다.

 

우록마을 유래..

원래 이 마을은 우미산(牛尾山)아래에 소굴레모양을 하고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우륵(牛勒, 소에게 씌우는 굴레)이란

이름이었는데 임진왜란당시 일본에서 귀화한 김충선(1571~1642)장군이 터를 잡으며 "엣날 신선들이 내려와 사슴과 벗삼

아 놀았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사슴(鹿)과 벗(友)삼아 살아가리라" 하여 마을 이름을 우록(友鹿)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 대구둘레길 13코스중에 우록상원길 구간이라는 안내판을 확인하고..

 

남지장사 방향으로..

 

▲ 우록마을에서 남지장사까지 구불구불하던 도로를 쭉~펴서 새로 정비하여 놓았다.

 

 청송집 신축공사로 불참하니 산행을 챙기라는 산대장님의 특명을 받은 향기나팀의 우정은.. 수그러지지 않는 반짝추위

에도 아랑곳 없이 보무도 당당한 걸음으로 남지장사로 향해 가다가..

 

등밑마을이라는 자연부락이 보이는 곳에서..

 

09시 56분 : 하백록교.

오른쪽으로 하백록교를 건너서 등밑마을로 들어가면..

 

한글이름이 정겨운 기원정사의 우리법당 옆을 지나.. 마을 깊숙히 올라서니.

 

 갑자기 나타나는 돌담길과...

 

 블록벽에 스레트지붕을 만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5~60년대로 되 돌아간듯한 분위기의 마을이다...

 

09시 58분 : 등밑마을 당산목..

마을모퉁이를 돌아가면 거대한 당산나무와 만나는데...

 

 언덕위로 올라가보니 당산목의 포스(force)가 보통이 아닌것 같다...

 

 당산목 안내문..

수령300년 정도 되는 마을 당산목(참나무)은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마을 사람들이 조상신과 수호신에게 연중 무병과 평온

무사.. 그리고 풍년을 기원하며 당산제를 지내던 곳이었다...라는 내용이다.

 

외진곳임에도 요소요소에 불평 한마디 없이 근무를 잘 서고 있는 이정표가 있어서 진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우미산(牛尾山)..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며.. 산세가 소의 꼬리를 닮았다고 하며.. 우록이라는 마을 이름을 낳게한 산이다.

 

사람이 그리웠는지 개들이 꼬리를 마구 흔들며 짖어대는.. 무인 농장을 지나서..

 

 바람에 스치는 사그락 소리가 정겨운.. 대나무숲이 시작되는 곳에서...

 

 향기나의 멋짱 얼짱님들이..

 

 향기나는 미소를.. 나누고..

 

 호젓한 솔숲으로..

 

 그 옛날 누군가가 살았던 삶의 흔적이 배여있지만.. 지금은 너무나 을씨년스런 폐가를 지난다.

 

 오래전 민초들이 일구었던 화전밭도 보이고..

 

 갈림길마다에는 이정표가 착한 안내를 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날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지나 다닐것 같은 고개마루에 정자가 있다..

 

 사용자가 많은지.. 꽤나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10시 27분 : 목니미 정자나무..

지금의 마을진입로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여기가 남지장사 입구였다는 얘기다.

 

10시 41분 : 청련암.  잠겨 있어서 통과..

 

▲ 남지장사도 통과하고.. 최정산 방향으로..

 

 부러진 나무와 누운나무.. 꺽어진 모습이 서울대 정문 같아서..

 

서울대 놀이를 한다..ㅎㅎ~.

 

11시 00분 : 주능선 도착..

 

 능선에 올라서도 의외로 따뜻하다.. 따스한 햇살에 향기나의 즉흥 사교춤 특강이다..ㅎㅎ~..

 

11시 24분 : 산중뷔페.. 발렌타인에 기가막힌 먹거리다..

오늘은 간단 산행후 미나리집으로 가기로 하여.. 조금 이른시간에 산중식당을 오픈한다.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잔설이 보인다.

 

12시 51분 : 주리 갈림길..

 

최정산 생태탐방로..

오래전 현위치에서 백련암으로 내려간 기억이 있어서 올라왔는데.. 탐방로안내도에는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내려가는 길이 없어 졌다.. 이왕 온것 계속 가자는 중론에 따라 청산으로 향한다.

 

13시 03분 : 육각정 쉼터.

 

13시 09분 : 통점령.

가창 정대리로 가는 갈림길이다.

 

13시 12분 : 청산 정상..

 

비슬지맥(琵瑟枝脈)은 낙동정맥상의 경북 영천시 북안면 사룡산(四龍山 683m) 북쪽 400m지점의 656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해서 금호강의 남쪽 울타리와 밀양강의 서쪽 울타리 역할을 하면서 밀양시 상남면 외산리 오우진나루터에서 밀양강과

낙동강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46.5km인 산줄기 인데.. 최고봉인 비슬산(琵瑟山 1083.6m)의 이름을 따서

비슬지맥 이라 칭한다.

 

 하산길은 백록마을회관쪽으로..

예전에는 이정표 뒤쪽으로 백련암 하산길이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 보아도 없다.

 

13시 36분 : 선유재..

전선 철탑안에 이정표가 있다..

 

 백록마을회관.. 20분거리 라고 적혀있다.

 

 백록마을 전경.

오래전 심산유곡의 모습은 간 곳 없고 지금은 외지인들의 별장들이 마을을 차지하고 있다.

 

 백록마을 남지장사 갈림길..

백록동의 옛 이름인 선유동을 딴.. 선유정 앞에.. 래인거맥(來人去脈)빗돌.. 사람이 오니 산맥이 물러나네~...

자연에 순응하며 순리에 따르라는 뜻이다.

 

14시 15분 : 우록2리 백록마을회관..

흰사슴이 노니는 마을.. 백록동(白鹿洞)이다.

 

백록동의 본래 이름은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유동(仙遊洞)이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470년전 단양우씨 백록동 입향

조 우성범(禹成范) 선생이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으면서 선유동이 백록동이 되었다.

 

1554년경 단양우씨 판서공 우홍명의 5세손인 우성범이 선대의 피난처인 청도 풍각의 송천을 떠나 최정산 아래 선유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가 거처를 옮기던 날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흰사슴 한 마리가 상처를 입고 그의 집으로 들어 왔다.

그는 사슴을 구해준 뒤 자신의 집 이름을 흰사슴이 찾아온 집이라는 뜻에서 백록당이라 지었고. 마을이름도 선유동에서

백록동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백록마을 쉼터의 노거수.. 2022년초까지만 해도 싱싱했었는데.. 두그루가 죽었다.

 

 우록1리로 가는길.

 

 14시 51분 : 우록 종점 하산완료.

 

 15시 16분에 출발하는 가창2번을 기다리며 트랭글을 정리하고.. 길이 좋아서 평균속도 2.8km의 아주 앙호한 속도다..

 

 15시 29분 : "ㄱㄱ" 미나리..

 

산상뷔페에서는 발렌타인이었고... 여기서는 크라운 로얄이라는데.. 캬라멜향이 나는 양주다..

 

산행거리가 조금 길었지만..

너무나 편안했던 사슴길을 열심히 걸었고..

 

미나리에 삼겹.. 그리고..

캬라멜향기나는 양주에.. 역시나 항기나는 멋진 하루였다.

2025년 02월 20일(목요일).
대미산/악어봉 : 충북 충주시.

 

산행코스 : 내사2리 몽선암입구-몽선암-대미산-월악수리봉-큰악어봉-악어봉-게으른악어휴게소.

산행시작 : 내사2리 몽선암입구 09시 13분.

산행종료 : 게으른악어휴게소  15시 19분.

전체거리 : 약10.0km.

전체시간 : 06시간 08분.

운동시간 : 05시간 26분.

휴식시간 : 00시간 41분.

누구하고 : 산이좋아산악회.

 

09 : 13  내사2리몽선암입구.

09 : 41  몽선암.

10 : 49  대미산.

11 : 58  월악수리봉.

13 : 10  큰악어봉.

14 : 36  악어봉.

15 : 19  게으른악어휴게소.

 

 09시 10분 : 충북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 몽선암 입구.

 

▲ 동장군의 심술로 다시 찾아온 반짝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언제나 열정 넘치는 산이좋아님들의 에너지를 조용한 시골

마을에 내려 놓고..

 

▲ 대미산 들머리인 몽선암을 찾아가는 길가에 과거 6~70년대에 전국에 붐이 일었던 정겨운 간판 "우리슈퍼"가 보인다..

 

▲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라서.. 마침 열려있는 문으로 안쪽을 살짝 엿보니 생필품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 삼거리에서 오른쪽 몽선암 방향으로 따라가면..

 

▲ 추위속에서도 과수원의 나무들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위한 물오름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 충주에도 사과 과수원이 많이 보인다.

1907년에 최초로 재배된 충주사과는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빛깔, 당도, 향기에서 으뜸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지역 대표적인 특산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 마을 끝자락에 자리한 민박 펜션을 마지막으로 민가를 벗어나서...

 

▲ 호젓한 길가에 현대식(?) 벽돌집인 서낭당을 지나면서 부터는...

 

▲ 시멘트길은 산속을 찾아가고 몽선암까지 가파르게 올라가는 된비알의 연속이다..

 

09시 41분 : 몽선암.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절터를 일러주었다는 몽선암(夢仙庵)은 대한 불교 천태종 소속의 아담한 절집이다.

 

▲ 대미산 들머리는 몽선암 마당의 입구 좌측으로 연결된다.

 

▲ 몽선암에서 올라가는 길은 응달이라서 녹지 않은 눈이 발목까지 덮는다.

 

▲ 대미산 눈은 가루눈이다..

가루눈은.. 얼음의 미세한 결정으로 되어 있는데 전혀 뭉쳐지지 않는 건조한 가루모양의 적설을 의미하며 대체로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한 날씨에서 나타난다. 뭉쳐지지 않아서 밟으면 함박눈보다 더 미끄럽고 눈가루가 신발안으로 들어온다.

 

▲ 안부에서 대미산은 왼쪽으로 본격적인 계명지맥을 따라가는 숨가쁜 겨울산행이 시작 된다.

 

▲ 오늘의 대미산길이 만만치 않다는걸 예고라도 하듯이 바위가 날카롭다.. 낙엽에 자칫 잘못 자빠지면 엉치뼈를 다치기

십상이다.. 오늘의 산행 컨셉은 느림이다.. 서두르지 말고 잘 살펴서 가자..

 

▲ 계명지맥임을 알리는 준.희님의 표지기가 붙어 있다.

계명지맥이란 백두대간의 마패봉옆의 745m봉에서 분기하여 지릅재-북바위산-석문봉-망대봉-대미산-남산-계명산-대문산

(탄금대공원)의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탄금대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6.7km의 산맥을 말한다.

 

▲ 나무가지 사이로 충주호가 보인다.

 

▲ 대동강 물도 풀린디는 우수를 지났건만.. 봄처녀가 오시는 봄의 길목을 내어주지 않으려는듯 눈길이 차갑다.

 

▲ 하지만.. 세월은 가고 오는것이기에.. 동장군이 시간을 거부한다고 봄처녀가 오지 않을까..

 

10시 49분 : 대미산.. 정상 표지판은 김문암님의 작품이다.

 

▲ 계명지맥은 대미산에서 오른쪽 방향이고.. 악어봉길은 직진인데..

 

▲ 엉덩썰매 길이다..ㅎㅎ~

대미산 내림길이 눈과 낙엽으로 상당히 가파르다.. 모래처럼 뭉쳐지지 않고 가루처럼 날려서 그냥 서 있어도 몸이 아래로

밀려 간다.. 눈과 낙엽속 바닥에 날카로운 돌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 엉덩썰매를 타는 어른이들이~ㅎㅎ.. 요령이 생겼는지 잘도 내려 간다.

 

▲ 엉덩썰매도 못타고 엉거주춤하는 사이 두 어른이들은 저 밑 안부까지 내려 갔다..

 

▲ 동물생태 감지카메라를 지나고.

 

▲ 이 봉우리가 두루뭉실 두루봉 같은데.. 표지기는 없다.

 

▲ 두루봉의 정상부는 두루뭉실인데..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다.

 

▲ 수리봉 오름길에는 날카로운 바위들이 초병처럼 서 있다.

 

▲ 오름도 만만치 않다.

 

11시 58분 : 목책이 있는 수리봉... 여기서부터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하는 산이다.

산 이름은 태초에 천지개벽이 일어나 홍수가 났을 때 산봉우리에 수리 한 마리 앉을 정도만 남고 모두 잠겼다고 해서 붙여

것이라고 한다.

 

▲ 전혀 두루뭉실하지 않은 곳에 두루봉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 역시나 수리봉 내림이 거칠고 미끄럽고 눈에 빠지고.. 힘든다..

 

▲ 급기야.. 우람한 바위가 막아선다.. 오른쪽은 수십길 낭떠러지고.. 길은 좌측으로 열려 있다.

 

▲ 방구돌 사이를 파고든 소나무의 경이로운 생명력이다.

 

12시 20분 : 커다란 방구돌이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마음점을 찍고..

 

▲ 공포의 밧줄구간..

진행방향으로는 수직 절벽이고.. 좌측으로 밧줄이 보인다..

 

▲ 내려다 보니 사진으로는 식별이 잘 안되지만.. 실제로는 "악~"소리가 날 정도로 거의 수직이다..

산에서는 평탄한길도 있지만.. 어느순간 장애물 경기장이 되는 것은 산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 올려다 보니 눈만 없다면 별것 아닐것 같은데.. 밧줄도 바닥도 미끄럽고.. 발디딤도 그렇고 힘들게 내려 왔다..

 

▲ 그렇게 내려 왔는데.. 이번에는 무당이 작두를 타는 것처럼 칼능선이다.. 노송도 이길이 험한 길임을 말해주는것 같다..

 

▲ 오늘 오름길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이다.. 하지만.. 어쩌라... 어차피 오르고 가야 할 길인 것을...

 

▲ 방구돌 사이로 내어주는 길이 있어 차근차근 살피면서 올라가면 못 오를것도 없는 길이다.

 

▲ 거칠고 힘든길을 보상이라도 하듯.. 오른쪽 멀리 월악산 영봉이 보이고..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 온다.

 

▲ 월악의 장엄함을 눈앞으로 당겨온다. 대단함의 극치를 본다.. 자연은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13시 56분 : 큰악어봉..

 

▲ 큰 악어봉이라길래 대형악어들이 사는곳인줄 알았더니.. 조망은 1도 없다..

 

▲ 처음으로 만나는 지름길.. 서서히 지쳐 가는지 지름길이 좋다..ㅎㅎ~

 

▲ 악어봉으로 가는길.. 오른쪽으로 보이는 충주호..

 

▲ 무심코 직진하면 알바하는길.. 좌측으로 완전 돌아 간다.

 

▲ 오늘 산행중 첫 조망이다..

 

▲ 악어봉이 가까워지니 충주호가 만드는 바람이 거세게 분다.

 

▲ 악어봉 오름길..

 

▲ 뒤 돌아본 오른쪽의 큰악어봉.

 

▲ 드디어 만나는 악어들..

 

▲ 인공의 충주호와 자연이 만든 걸작품이다... 악어라고 이름을 잘도 지었다..

 

▲ 충주호는..

1985년에 충주댐 건설로 생긴 충주호는 ‘내륙의 바다’라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크다. 댐 건설로 충주, 단양, 제천 등 3개

지자체에 걸쳐 66.48㎢가 수몰됐고, 약 5만명의 수몰 이주민이 생겨 고향을 잃은 이들에겐 가슴 아픈기억의 장소지만,

지금은 수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충주, 단양, 제천 3개 지자체에 걸쳐 있는 호수이기에 주변으로 월악산국립

공원, 송계계곡, 청풍 문화재단지, 단양 8경, 고수동굴, 구인사, 수안보온천, 노동동굴 등 수많은 관광자원이 있다.

 

▲ 2021년 3월 26일에 다녀갔던 사진이다.. 전망대가 없어니 그림은 더 좋다.

 

▲ 오늘 "B"팀들이 다녀온 심항산도 당겨 보고..

 

▲ 얼음위에 흙을 뿌려 놓았어도 미끄럽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15시 19분 : 산행 종료..

악어산 지역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란 명목으로 월악산국립공원에 묶여 버린 곳이기에 그동안 이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하여 찾은 사람들은 범법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정작이 법정보호종은 단 한 종도 서식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

되어 수많은 민원 끝에 2020년12월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해제되고, 2024년 9월 11일 월악로에서 악어봉까지 0.9km의

탐방로가 마침내 개설되었다.

 

 

16시 19분 : 수안보로 옮겨서..

 

▲ 두부버섯전골.. 6만원 / 4인기준(1인당 15000원)..

 

▲ 산대장님의 건배..

 

이 세상의 모든것이

고맙고 감사하지 않은것이 없다고 했다.

 

산행이란.. 마음수련을 위해 오르는 행위도 포함 된다.

마음에 안드는 상황이라고 화를 낸다면 산을 오를 이유가 없다.

 

충주호에 우글거리는 악어들의 풍광이 있어 감사하고..

생명의 젖줄인 물이 있어 우리가 생명을 유지할수 있어 감사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풍경을 만들어 낸 대자연에 감사하다.

 

그리고 무엇 보다 빨래판 같이 오르내림이 심했던 길을..

무사무탈로 안전하게 종주를 마친 내 몸에 감사하다..

▲ 예부터 영산으로 이름난 회문산은 많은 아픔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회문산(回文山)이란..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부터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홍성문설과 조평설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조선 중기 때 전설적 풍수가인 홍성문 대사가 지은 "회문산가(回文山歌)" 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보는 것이다.

 

조평(1569~1647)설은 고향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에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지원하고 많은 덕을 베풀었던 조선 중기 문신인

조평이 살았던 마을 이름을 따서 회문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설이다.

 

홍문대사(홍성문)가 입산 도통하여 ‘회문산가 24혈’의 명당 책자를 만들면서 영산이라 이름나기 시작하였다.

회문산 정상에 24명당과 다섯 신선이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국인 오선위기(五仙圍基) 자리가 있는데, 이곳에 관을 보토

하여 묘를 쓰고 나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대까지 갈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처형을 당할 때 3족을 멸하는 화를 면하기 위해서 동생 란식과 조카 현채가 기거

하였고 두 분의 묘소가 현존하고 있다. 조선시대 말기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 동학군은 이 산을 거점으로 투쟁을 하였으며

한말에 국운이 기울어 일제 침략의 마수가 뻗치던 무렵에는 회문산을 근거지로 하여 정읍의 최익현, 임실의 임병찬 의병장

이 회문산을 거점으로 항일구국운동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1950년 6·25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북진으로 고립된 인민군과 공산당들이 회문산으로 옮겨와

자리 잡고 험한 산을 의지하여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자 국군은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토벌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2025년 02월 17일(일요일).
회문산 : 전북 순창군.

 

산행코스 : 회문산휴양림매표소-노령문-위령탑-역사관-서어나무갈림길-회문산-임도-야영장-화이트벨리펜션주차장.

산행시작 : 회문산휴양림매표소 09시 45분.

산행종료 : 화이트벨리주차장  13시 03분.

전체거리 : 약7.0km.

전체시간 : 03시간 17분.

운동시간 : 02시간 45분.

휴식시간 : 00시간 32분.

누구하고 : 마나슬루산악회.

 

09 : 45  회문산휴양림매표소.

09 : 51  노령문.

09 : 57  무학대사바위.

10 : 04  위령탑.

10 : 09  역사관.

10 : 56  서어나무갈림길.

11 : 19  회문산.

11 : 32  천근월굴.

11 : 38  작은지붕.

11 : 51  임도.

12 : 33  야영장.

13 : 03  화이트밸리.

 

 09시 40분 :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매표소.

 

▲ 휴양림 이용요금표.

동절기(12월~3월)는 입장료 무료...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통과세다..

 

▲ 구. 매표소 앞을 지나서..

 

▲ 휴양림 빗돌을 지나면..

 

▲ 정면으로 회문산과 작은 지붕이 올려다 보인다.

 

▲ 본 산악회의 코스는 오른쪽으로 삼연봉에 올라서 회문산 돌곳봉을 경유하여 시계역방향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회문산이 안고 있는 역사적인 속살을 둘러 보고자 "회문산역사관"을 경유하여 정상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 겨울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봄의 왈츠처럼 경쾌하다..

오늘 예보는 종일 흐림에 -3도~11도.. 풍속 2~3m/s였는데.. 종일 맑음에 가끔 구름이고 바람은 1m/s내외로 완전 봄날씨다.

 

▲ 회문산에서 문바위.. 돌곳봉을 경유하여 내려오는 길이다.

 

▲ 그런데.. 누군가의 걸음 흔적이 전혀 없다.. 하산길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휴양림으로 향한다...

 

09시 51분 : 휴양림 입구를 산성처럼 축조하였다는 노령문..

 

 

▲ 노령문을 통과하여..

 

▲ 얼음빙벽 맞은편에..

 

▲ 삼연봉으로 이어주는 출렁다리..

 

▲ 구름다리에서 내려다본 계곡하류..

 

▲ 용추폭포..

 

▲ 휴양림 숲속의집..

국립이라 시설좋고 산좋고 물이 좋아 성수기때는 입주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 무학대사바위..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마주 앉아 회문산의 산세를 논했다는 바위다.

 

참고로.. 회문산휴양림 입구 자락에는

고려 말기에 무학(無學)대사가 이성계(李成桂)의 등극을 위하여 1만일 동안 기도하였다는 만일사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이성계와 얽힌 순창고추장 이야기 한토막..

고려 시대 말에 이성계는 스승인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기거하고 있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의 만일사(萬日寺)를

찾아가는 도중 배가 너무 고파서 어느 농가에 들러 고추장에 점심을 맛있게 얻어먹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농사꾼의 밥상

이었지만 고추장 맛은 기가 막혔다. “이렇게 맛있는 고추장이 있다니?.. 이 고추장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겠어.”

 

이성계는 훗날 조선을 세우고 왕이 된 후에도 순창에서 먹었던 고추장 맛을 잊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명령을 내렸다.

“순창 현감은 순창의 고추장을 궁궐로 올려 보내도록 하라!” 이렇게 해서 순창 고추장은 조선 시대 말까지 궁궐에서 쓰는

고추장이 되었다.

 

▲ 5번 이정표에서 야영장쪽으로 약70m정도 올라가면..

 

▲ 비목공원이 나오고..

 

10시 04분 : 6.25양민희생자 위령탑..

6.25전쟁을 겪으면서 회문산에 빨치산유격대 전북도당 사령부가 위치해 있었고 좌익활동자들과 빨치산, 인민군 패잔병들

이 많이 숨어 있었다. 낮에는 국군토벌대가 진입하여 대한민국 치하가 되어, 빨치산에 협조한 주민들을 처형하였고, 밤에는

빨치산들이 내려가 인민공화국치하가 되었으며, 낮사이 국군에게 협조한 주민들을 처형하여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해가

2.3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양민들을 위로하는 위령탑이다.

 

▲ 위령탑의 위령시는.. 시인 권진희님이 짓고.. 서예과 교수 여태명님이 쓰고... 조각과 교수 전진환님이 조각하였다는데..

위령탑에 새겨진 조각속의 인물들은 토속한국인들이 아니다.. 분명... 이땅에서 일어난 우리 민초들의 동족상잔의 아픔이

분명한데.. 내눈에는.. 양쪽에 아이를 안고있는 남녀도 한국인의 얼굴이 아니고.. 벽화속의 인물들은 마치.. 고대아랍인들의

벽화를 보는것 같다.. 위령탑으로서의 이해가 하나도 안 가고 애달픈 아픔도 전혀 안 느껴진다.. 왠지모를 무거운 걸음이다.

 

▲ 위령탑 아래에 내려 앉은 백설이 곱다. 희생자 영령들이시여~.. 고운세상에서 영면하시길 합장하고 빕니다.

회문산에서 활동했던 빨치산과 토벌 과정에서 수 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아픈 역사가 다시는 이땅에서 반복 되지 않기를...

 

▲ 휴양림 산림문화 휴양관..

 

10시 09분 : 회문산역사관.

6.25전쟁을 앞뒤로 빨치산근거지로 1만여 회의 빨치산토벌전투에서 수많은 군인, 경찰관, 양민들이 숨진 비극의 현장이다.

2011년 7월 11일에 회문산자연휴양림 내 빨치산사령부전시실을 헐고 2억 5000여만원을 들여 104㎡ 규모의 회문산역사관

을 새로 개관하였다.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 보자.

 

▲ 빨치산 사령부.. 헐리기 전의 모습이다.

봉우리와 골짜기가 많아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는데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빨치산 전북도당 유격대 사령부가 이곳에 자리잡고 700여명의 빨치산들이 오랫동안 저항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빨치산의 훈련장이었던 곳에 체력단련장이 들어서 옛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 역사관 관람..

<회문산가> 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홍성문과 관련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조선 중종 때인 혹은 영조 때 인물로 전해진다. 

임실군 운암면 금기리 텃골에서 홍진사와 마을 주막집의 주모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난 그는 홍진사가 죽은 후 어린 나이에

회문산 만일사로 들어갔다. 회문산 자락 사자암 등에서 27년간 도를 닦아 풍수의 이치를 깨닫는다.

 

그는 팔도를 답산한 후 회문산에 많은 명당이 있음을 알고 세상에 전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명당에 욕심만 있지 그것을

감당할 덕을 갖춘 사람이 없음을 개탄했다. 그는 양반들의 횡포에 분노하여 명당 장사로 양반을 희롱했다고도 한다.

<회문산가> 를 통해 회문산에 오선위기혈의 큰 명당이 있다고 해 지금도 많은 풍수가들이 이를 좇고 있다.

 

그는 '돌산에 장사 지낼 수 없다 석산불가장(石山不可葬)"이라는 풍수 금기를 뒤집고 '돌산에도 흙을 메워 쓸 수 있다 라는

"석산보토장(石山補土葬)"이라는 '혁명'을 일으켜 한반도 풍수사에 획을 그었다. 흉지가 명당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다. 또한.. 소설 "남부군"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동학혁명과 한말 의병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 역사관을 나오면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방댐이 있고.. 회문산으로 가는 목교가 있다.

 

▲ 회문산을 가장 빠르게 접근할수 있는 코스가 역사관을 지나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서어나무길이다...

 

▲ 가장 많이 다니는 서어나무길을 버리고 목교를 건넌다..

 

▲ 단 두사람이 지나간듯한 그 누군가의 발자욱을 따라.. 7~8분가량 올라가면..

 

▲ 역사관 갈림길인 능선이 보인다..

 

▲ 임도에 올라서니.. 아무도 없는 나만의 백색의 세상이다..

 

서산대사의 시한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길 걸어갈 때..

부수호란행(不須胡亂行)... 함부로 흐트러지게 걷지 말아라~.

금일야행적(今日我行跡)...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 삼연봉에서 내려오는길.. 마나슬루팀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 회문산길은 절개지로 올라간다.

 

▲ 좌측으로 보이는 회문산.. 큰지붕이다.

 

▲ 처음으로 나타나는 방구돌이 있는 봉우리를 지날 즈음에.. 마나슬루팀들이 올라온다..

 

▲ 바람에 날려온 눈발이 능선에 내려 앉아 두께가 두꺼워 지더니.

 

▲ 점점 점입가경으로 쌓여 있어 걸음을 더디게 한다..

 

▲ 급기야는 산죽의 키높이로 쌓였다.. 잘못 밟으면 무릎까지 빠진다.. 그러나 선답자가 밟은 곳만 디디면 어렵지는 않다.

 

10시 56분 : 서어나무갈림길..

 

▲ 역사관에서 올라오는 회문산 단거리 코스다.

 

▲ 서어나무길 단거리코스를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길이 잘 다져져 있다..

 

▲ 눈을 뒤짚어 쓴 거북바위..

 

▲ 오늘의 회문산길에서.. 가장 많은 눈이 쌓여있는 회문설벽 구간이다.. 거의 키 높이로 보인다..

 

▲ 115cm의 스틱이 손잡이만 남았다.

 

11시 08분 : 장군봉 갈림길.

 

▲ 아무도 가지 않은 장군봉길..

 

▲ 어느산이나 정수리를 쉽게 내어주지는 않는다.. 오늘의 회문산도 크레바스 같은 눈길로 발목을 잡는다..

 

11시 20분 : 회문산..

조선 최고의 풍수가로 알려진 홍성문대사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며, 다만 설화에 의하면 홍성문대사

는 전라북도 임실군 하운암면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회문산은 홍성문대사가 입산 도통하여 "회문산가 24혈"의

명당 책자를 만들면서 영산이라 이름나기 시작하였고..

 

오선위기(五仙圍碁)혈이란 다섯 신선이 둘러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국을 말하며, 풍수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됐다

고 한다. 한국의 5대 명당으로 불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20여 년 전만 해도 회문산 정상과 주변 능선마다 무덤 수십

수백 개가 밀집하였다. 그러나 최근 급격히 그 수가 줄어든다. 이장을 하거나 파묘하기 때문이다. 임병찬 무덤도 후손들이

고향으로 이장해 갈 계획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한다.

 

▲ 덕치면에서 출발하는 회문산 종주코스상에 있는 깃대봉.. 천마봉.. 삼연봉이 1자로 보인다.

 

▲ 하산코스에 있는 작은지붕.. 문바위.. 돌곳봉 능선.. 그 뒤쪽으로는.. 작지만 야무진 인상의 무직산이다.

 

▲ 여분산(如粉山)은.. 같을 여(如), 가루 분(粉)을 쓰는 여분산(如粉山)으로 꽃가루와 같은 산이라는 의미이다.

산 남쪽에는 벌통산이 있는데, 벌은 꽃가루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여분산은 풍수지리상 동남쪽을 뻗어 나온

용이 구림천에 이르러 온순해지면서 전답에 나타난 현룡재전(顯龍在田)의 명당이라고 한다...

 

이러한 명당의 여분산에 또 다른 아픔이 있다.

여분산은 빨치산을 그린 영화 남부군의 원작자 이태(이우태)가조선통신원 전주지부장으로 근무하다가 UN군의 참전으로

퇴로가 막히자 빨치산으로 들어간 산이 <여분산>이다. 소설 <남부군>의 저자 이태는 한국전쟁 당시 실제로 빨치산으로

활동하였던 사람으로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바로 남부군이다.

 

소설 <남부군>의 작가 이태의 본명은 "이우태"로 1922년 충북 제천시에서 태어나 1948년조선신문학원’을 졸업하고 서울

신문기자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한뒤 8개월간 서울신문에서 일하다가 당시 최대의통신사였던 합동통신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인민군이 서울에 들어온 이후 합동통신이 북한의 관영 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사

에 흡수되면서 조선중앙통신 기자가 되었다. 이태는 동료들과 대전으로 파견되었다가 본사의 지시에 따라 일행과 헤어져

전주에서 중앙통신 전북지사 창설 요원이 되었다.

 

하지만 인민군이 북으로 밀려간후 빨치산으로 활동하였고 1952년 토벌대에 체포되었다. 이태는 생포된후 사상 전향

하였고, 이후 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1980년대 민추협과 YS의 민주산악회 간부를 지냈으며, 회문산을 몇 차례 다녀

간 것으로 전해진다.

 

▲ 큰봉 뒤쪽 아래에는 붕어섬으로 유명한 옥정호가 있다.

 

▲ 2019년 10월 20일.. 거문도 불탄봉 산행에서 만났던 임병찬 의병장을 회문산에서 다시 만난다.

 

▲ 2019년 10월 20일.. 거문도의 임병찬 의사 순지비다.

 

▲ 아무도 가지 않았다..

오늘의 이땅이 있도록 지켜주신 분들이기에 조심조심 중간지점까지 가서... 고개숙여 읍이라도 하고 오자..

 

▲ 당겨온.. 의병장 임병찬 묘.

고종의 밀명을 받아 비밀독립운동단체인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계획했다가 실패했던 한말 의병장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6년 최익현과 더불어 의거계획을 수립했다. 그해 4월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대규모 의병

을 일으켜 관곡을 취해 군량으로 삼고 진용을 정비해갔으나 6월 격전 중에 최익현과 함께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된 후 쓰시마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최익현은 단식투쟁 끝에 그곳에서 풍토병으로 사망했고, 임병찬은 1907년

1월에 풀려나 귀국 했다.

 

1912년 고종의 밀명을 받고 전라도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대한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항일 의병운동을 계획했다.

그러나 동지 김창식이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끝에 독립의군부 조직을 자백함으로써 항일 의병운동은 실패했다.

 

1914년 6월 13일 거문도에 유배되어 단식한 끝에 1916년 5월 23일 순국했다. 저서인 <돈헌문집>에 일제에 체포되어 취조

받을 때의 기록을 비롯하여 이 시기 항일의병전쟁과 관련된 자료들이 실려 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 천근월굴(天根月窟)..

중국(中國) 송(宋)나라 때 시인인 소강절(邵康節)선생의 우주론적인 시 가운데 주역(周易)의 복희팔괘(伏羲八卦)를 읊은

싯귀 중에 나오는 글로써 음양의 변화와 조화를 말하고 있다.

 

천근월굴 한왕래(天根月窟 閑往來)... 천근과 월굴을 한가로이 왕래하니..

삼십육궁 도시춘(三十六宮 都是春)... 삼십육궁이 모두 봄이라네~...

 

천근(天根)은 양(陽)으로 남자의 성을 말하고.. 월굴(月窟)은 음(陰)으로 여자의 성을 나타내어 음양(陰陽)이 한가로이 왕래

하니 소우주(小宇宙)인 육체가 모두 봄이 되어 완전하게 한다는 뜻이며...

36궁이란 여자의 성으로 생명이 자라는 성소로서 우주창조의 근본섭리가 깃들어 있으며, 양의 뿌리가 음의 굴에 들어가

음양조화로 생명이 자라서 탄생하는 곳이기에 소강절은 이를 천근월굴(天根月窟)이라고 했다.

 

▲ 왼쪽은.. 천근월굴.  오른쪽은 회문(回文)의 초서체가 아닐까.. 어렵다.

천근월굴(天根月窟)의 글쓴이.. 김석곤(金晳坤 1874~1948)은.. 정읍군 태인면 출신으로 일제강점기때의 서화가이다.

 

▲ 작은지붕으로 가는길..

6·25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조선 노동당 전북도당 유격대 사령부가 회문산에 들어섰다.

1950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국군과 경찰은 빨치산을 초토화하는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을 펼쳤는데 그때 산불로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회문산에는 소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회문산은 강천산의 유명세에 가려 있다가 이태의 소설

‘남부군’의 실제 무대로 세상에 알려졌다.

 

11시 38분 : 작은지붕..

 

▲ 작은지붕에서 바라본 회문산 큰지붕...

 

▲ 작은지붕에서 바라본 장군봉..

 

▲ 작은지붕 바로 아래에 있는 여근목(女根木).

전북 김제의 모악산은 어머니 산이고, 순창의 회문산은 아버지 산으로 음기(陰氣)가 곳곳에 서려 있어 천근월굴바위와

더불어 이곳 여근목에 잘 나타내고 있다. 6.25전란을 전후하여 빨치산 토벌을 위해 온산이 불바다가 되었어도 인근의 반송

과 같이 살아남은 영험한 나무이다..

 

▲ 바위에 내린 눈이 고향의 초가지붕을 연상케 한다..

 

▲ 여근목을 내려 서자말자.. 생존을 위한 멧돼지들의 들쑤심이 묘까지 뒤집었다.. 몇시간 전인 오늘 아침의 일이다.

 

11시 51분 : 임도 만남..

 

▲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임도.. 역시나 아무도 가지 않았다..

 

▲ 시루바위.. 문바위.. 돌곳봉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인데...

 

아무도 가지 않았다.

 

 헬기장에도 흔적이 없다..

 

 돌곳봉 하산길..

러셀(russel)을 하기에는 눈의 두께가 두텁고 돌곳봉 내림에서 길찾기가 모호하다.. 아서라 말어라. 야영장으로 하산이다.

참고로.. 러셀(russel)이란.. 제설차를 만든 미국 제조회사의 이름을 딴 등산 용어로 눈길 뚫기.. 눈 헤쳐나가기.. 제설작업..

등으로 표현 하는 말이다.

 

 돌곳봉길은 포기하고.. 차단기가 있는 임도를 따라 야영장으로 내려간다.

 

 야영장 갈림길.

 

 다시 임도로 내려서고..

 

12시 33분 : 야영장..

 

 아침에 지나갔던 휴양관..

 

 대형버스주차장이 없는 휴양림이다..

 

 휴양림 매표소에서 약300m가량 내려가면..

 

 사유지 주차장에서 산행 마무리..

 

 눈길이었음에도 평균속도 2.6km.. 산행궤적을 정리하고 하산식 장소인 순창읍으로 이동한다.

 

 순창성당..

 

 1882년부터 시작하여 140여년의 오래된 성당이다..

 

 성당에서 가까운 "ㅁㄱ" 식당에서..

 

800m급의 산이지만.. 큰산 못지 않은 산세를 품었기에

풍수.. 지리.. 종교.. 구국운동의 중심지였고.. 그리고 동족상잔의 현장으로

한국 현대사의 뼈아픈 역사가 깃든 산이기도 하였다..

 

이제는..

화합과 용서와 상생의 길이 되기를...

2025년 02월 09일(일요일).
계룡산 : 경남 거제시.

 

산행코스 : 계룡사주차장-약수터-계룡산-561봉-육교-거제공고-거제종합운동장-거제고현시장.

산행시작 : 계룡사주차장 11시 40분.

산행종료 : 거제고현시장 15시 36분.

전체거리 : 약5.68km.

전체시간 : 03시간 56분.

운동시간 : 02시간 52분.

휴식시간 : 01시간 04분.

누구하고 : 청봉산악회.

 

11 : 40  계룡사주차장.

12 : 09  임도쉼터.

12 : 41  약수터.

12 : 57  계룡산.

13 : 49  561봉.

14 : 32  임도건넘.

15 : 08  육교.

15 : 19  거제공고.

15 : 36  거제고현시장.

 

 11시 40분 : 계룡사주차장.

 

▲ 잠시.. 계룡사를 둘러 본다.

 

 계룡사 대웅전을 복원공사중이다.

2023년 1월 3일, 사찰 내 공양실에서 음주를 제지당한 것에 앙심을 품은 방화범에 의해 대웅전이 전소되었다고 한다.

 

 계룡사를 나와서 주차장에서 계룡산 등산로를 따라간다.

 

11시 47분 : 계룡사 주차장에서 5분만에 14번 국도다리 밑에 도착이다.

 

12시 09분 : 임도 쉼터.

 

올려다 보이는 계룡산 정상부.

 

계룡산의 너덜겅도 제법 넓게 분포되어 있다.

 

 너덜과 잡목들의 숲에.. 소나무 한그루가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잘빠진 각선미를 자랑하고 있다.

 

 너덜길이 끝나가는 지점에..

 

 고자산치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계룡산정상쪽으로 약80m정도 따라가면 악수터가 있다..

 

12시 41분 : 약수터.

 

 정상부의 암반에서 솟는 물이라 맑고 깨끗하다.

 

고자산치 갈림길로 돌아가야 하는데.. 약수터 뒤쪽의 대숲으로 오르는 길이 보여서 따라 가본다.

 

 대숲길을 지나가 보니..

 

 대숲길은.. 계룡산 암릉길을 우회하여 정상으로 가는길이다.

 

 능선에 올라서서 계룡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올라서면 바로 계룡산정상이다..

 

12시 09분 : 계룡산 정상.

계룡산은 거제도의 중앙에 우뚝 솟은 거제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산 정상의 모양이 닭벼슬과 같이 생겼고, 산이 용트림을

하여 구천계곡을 이루고 있다 하여 계룡산이라 한다. 계룡산 정상부에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절을 지었다고 하는 의상대와

불이문바위, 장군바위, 거북바위, 장기판바위 등이 있고, 한국전쟁 시 통신대의 잔해가 남아 있다.

특히 계룡산 정상에서는 거제도의 전체를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조망이 아주 좋다.

 

 대숲길로 질러오는 바람에 이 암릉을 돌아 왔다... 선자산(507m).. 노자산은 멀리 망산까지 연결 된다.

 

선자산은.. 산의 형태가 부채같이 생겼다고 하여 선자산(扇子山)이라 불리운다. 계룡산에서 동남쪽으로 능선을 형성하여

끝부분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용의 형상으로 그 머리부분이 계룡산이며 중간인 용산마을에서 용트림하여 용소(沼)를 만들

었는데 이를 용이 살았다 하여 용덤벙이라 하며, 그 끝등이 해발 507m의 선자산이다.

 

 거제면 소재지와 수정봉의 옥산성지.

일본의 전신인 왜국과 가까워 왜적의 노략질을 가장 많이 받았던 지역이다.

조선 고종 10년(1873) 거제부사 송희승이 조정에 지방의 행정. 경제. 군사 중심지에 읍성을 쌓자고 건의하였다.  이에 왕은

거제의 읍터를 3번이나 옮겨서 백성의 부담이 너무 크다하여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자 송희승은 대신 수정봉에다 백성을

강제로 동원하여, 8개월만에 성을 완성시켜 군기와 군량을 비축하고 해변방어의 거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동·서·남·북 4개의 문이 있고, 성 안에는 우물이 있으며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다.

 

거제시 둔덕면의 산방산(395m)은.. 청마 유치환의 고향을 품고 있는 산이며..

고려 18대 의종때 무신들의 차별을 견디다 못한 정중부가 무신들의 기반을 잡은 곳이기도 하다.

 

 거제시 연초면의 대금산(706m)은... 봄이면 연분홍빛 진달래 물결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거제시 아주동의 국사봉(464m)과 옥녀봉(554.7m)..

국사봉은...

2개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국토와 같이 생겼고 장가들기 위한 상관의 관례를 하고 사모를 쓴 신랑이

서울의 국왕에게 국궁을 하고 절을 하려는 형상이며, 나라의 선비들이 즐겨 찾았다 하여 국사봉(國士峰)이다..

국사봉의 정상에는 평평한 반석이 있는데 이를 가리켜 장군의 망대였다 하여 장관대라 부르며 임진왜란때 망대 역할을

하였고, 옛날 삼신할머니가 일본을 건너가기 위해 계룡산에서 축지법으로 장관대까지 한발자욱 뛴 곳에 왼쪽 발자국의

흔적이 있다.

 

옥녀봉은..

옛날 옥황상제 딸인 옥녀가 죄를 지어 인간으로 환생하여 옥녀봉에 내려왔는데, 어느날 현세의 아버지가 딸 옥녀에게 나쁜

마음을 품고 딸에게 달려들자 딸인 옥녀가 그의 아버지를 보고 옥림에서 소 울음소리를 내며 올라오면 말을 듣겠다고 하니

옥녀의 아버지는 옥림에서 옷을 벗고 움매움매하며 소 울음소리를 내며 엉금엉금 기어 올라왔다.

이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그 아버지는 죽고 옥녀는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거제시 동부면의 노자산(557m)은...

가을 단풍이 절경이며.. 여러 종류의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 세계적으로 희귀조인 팔색조가 서식하고 있어

신비의 산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처럼 불로초와 절경지에 살기 때문에 늙지 아니하고 오래 사는 신선이 된다고 하여

노자산(老子山)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하며..  또 거제의 산 중에 제일 어른이라 하여 노자산(老子山)이라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계룡사주차장으로 돌아가는 원점회귀 산행으로 계획하였어나.. 하산식 장소가 있는 거제고현시장쪽으로..

 

561m봉..

 

 삼성중공업과 거제시 연초면의 앵산(507.4m)..

산의 모양이 꾀꼬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앵산(鶯山)이라고 한다.

 

건너편 화살표 쪽에 풀장 같은게 보여서..

 

 30배줌으로 당겨보니.. 롤러경기장이다.

 

▲ '거제(巨濟)'란 신라 경덕왕때 부터 부른 이름으로서 '클 거(巨)' 자는 거제도가 '큰섬'임을 뜻한다.

'거제'의 '제(濟)'를 '건질 제'로 풀이하여 크게(많은 사람을) 구(救)하는 섬이라 하는데,  옛부터 '거제 계룡산하 구백만

(巨濟 鷄龍山下 救百萬)'이라는 말이 전해져 왔다고 한다.

 

그 예로서 첫째는 6·25 이후 거제에 수용된 10만명의 포로가 이 섬으로 와서 구제된 것이며, 둘째는 1·4 후퇴때 20만명의

피난민이 거제도로 들어와 구제되었고, 세번째는 산업화에 따라 대우조선소와 삼성중공업조선소가 거제도에 세워져 수많

은 사람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암괴석이 연속으로 이어지며... 바다를 내려다 보며 바위 능선을 걷는 즐거움 역시 등산의 백미다...

 

 공설운동장 방향으로...

 

여기서도 공설운동장 방향으로...

 

15시 08분 : 육교..

 

남쪽으로 달려가는 14번국도.. 거제시 남쪽 끝단부인 다대항이 종점이다.

 

 북쪽으로 달려가는 14번국도.

경남 거제시 다대포에서 경북 포항시 포항제철까지 잇는 총 길이가 318.2km의 대한민국의 일반국도이다.

 

 거제시 종합운동장을 지나서..

 

15시 34분 : 거제고현시장..

 

 거제고현시장 안에 있는 "연ㅎ횟집"에서 하산식.

 

 거제대교를 건너 대구로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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