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9일(목).

적벽산/백마산/월명산 : 경남 산청군.

 

산행코스 : 피암터널입구-적벽정-적벽산-백마사-망춘대-백마산-질매재-월명산-상사바위-산불초소-인곡서원-중촌리.

산행시작 : 피암터널입구  09시 29분.

산행종료 : 중촌리입구  13시 06분.

전체거리 : 약8.61km.

전체시간 : 03시간 36분.

운동시간 : 03시간 19분.

휴식시간 : 00시간 17분.

 

09 : 29  피암터널입구.

09 : 45  적벽정.

09 : 54  적벽산.

10 : 14  백마사.

10 : 24  망춘대.

10 : 40  백마산.

10 : 49  질매재.

11 : 12  월명산.

11 : 54  상사바위.

12 : 14  산불초소(작은월명산).

12 : 46  안곡서원.

13 : 06  중촌리입구.

 

 09시 29분 : 적벽산피암터널 입구.

 

▲ 산행준비 하는동안.. 잽싸게 등산입구부터 찰칵해 놓고...

 

▲ 산행들머리가 도로와 인접하여 단체인증샷 하기가 협소하지만.. 다들 산행 9단이신 분들이라 협조도 빠르다..

 

▲ 초반 2~3분 정도는 낙엽에 가파른 치오름이다..

 

▲ 금강(경호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산청군 신안면소재지이고.. 강 건너는 단성면소재지이다.

 

계단이 없어도 산행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곳에 설치된 철계단이다..

 

두번째 계단도 역시나다..

 

 남강(경호강)의 단성교에 교각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거울같이 물이 맑다”하여 이름 붙여진 경호강(남강)은 남덕유산 참샘에서 발원하여 진주시 진양호의 남강댐을 거쳐 창녕

남지읍에서 낙동강 오백리 물길과 합쳐서 부산 을숙도에서 바다와 만나게 되는데...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발원지에서 산청읍까지 구간을 "경호강"이라 부르고 산청읍에서부터 창녕 남지 합수지점까지는 "남강"이라고 부른다..

 

남다른 추억이 많은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이다..

 

09시 45분 : 적벽정..

적벽(赤壁)이라는 명칭은 삼국지(三國誌)에서 오나라 손권(孫權)과 촉나라 유비(劉備)가 연합하여 위나라의 조조(曹操)

대군을 대파한 장소로서.. 양쯔강기슭의 절벽을 이르는 단어다. 우리나라에도 ‘적벽’이라는 단어를 가진 지명이 있다.

변산반도의 적벽강과.. 충남 금산 적벽강은 명승지이고.. 김삿갓이 절경을 노래한 전남 화순의 적벽이 있다.

이곳.. 산청군 신안면의 적벽산도 오래전부터 이름만큼 절경이었다고 한다.

 

▲ 유유히 흐르는 남강 줄기와 백마산 월명산 봉우리가 모두 눈에 들어오고.. 강 건너 석대산 능선과 그 뒤 웅석봉까지

어우러지며 시원하기 그지없는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혹자는 이 광경을 보고 "눈이라도 깜박이면 이 장관이 사라질까

저어하니, 차마 눈조차 감을 수 없어 시리고 시리구나~"라고 노래했다고 한다.

또한 백마산 아래로 달려가는 3번 국도는 이순신 장군께서 나랏님의 부름을 받들고자 걸어 가시던 구국의 얼이 서려있는

<백의종군 길>이기도 하다..

 

▲ 전망이 너무 좋은 곳에..

지자요수(知者樂水)라.. 지혜로운자는 물을 즐겨 좋아하고..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어진자는 산을 즐겨 좋아하네..라는 빗돌이다.

그림 좋은 이곳에.. 산(적벽산)과.. 물(경호강)과.. 나(요산요수)..이렇게 삼위일체가 되었으니..

내가 곧.. 산이요. 내가 곧.. 물이로구나~..ㅎㅎ

 

▲ 적벽산 아래 남강이 수태극을 그리며 유유히 흐르고~..

가을이 되면 적벽에 단풍이 물들고 보름달이 그 위로 솟아오르면 시원한 강바람과 밝은 달이 운치를 더하면 강심에 배를 

띄우고 밤을 새워 놀이가 이어지곤 했는데, 어느 날 절벽에서 강으로 떨어져 내려온 바위에 성주가 탄 놀잇배가 부서져 

그만 강물에 빠져 관인을 잃어버렸다는 고사가 전해온다.

 

중국의 지명을 쫓아 이름을 붙인 것은 이곳 경치가 뛰어난데서 유래한 것으로 소동파의 적벽놀이를 모방하여 이 지방에는

기방계라고 하는 모임이 있어 추칠월 기망인 16일이 되면 이곳에 모여서 시주와 뱃놀이를 즐긴다.

신안진 옛 나루가 가까이 있었으므로 왕래하는 길손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곳 풍광을 읊은 시가 수 없이 많은 것도 경치가

시심을 돋우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적벽에는 옛 현감들의 선정을 기리는 마애비 여럿이 여러 편의 시와 함께 새겨

져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도로를 개설하면서 모두 파손되었다고 한다.

 

▲ 적벽정에서 적벽산 정상으로 가는길이 신작로 수준이다.

 

▲ 조여사님의 배낭에 걸친 겉옷이 불안하여 다시 매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ㅎㅎ

 

▲ 적벽산에서의 내림은 급내림이다.. 낙엽길에 조심조심..

 

▲ 3번 국도변의 임도와 만난다..

 

▲ 산성교차로에서..

 

▲ 왼쪽으로 가든지.. 오른쪽으로 가나.. 어느쪽이던.. 백마사입구에서 만나게 된다..

 

▲ 나는 오른쪽의 다육카페 앞을 경유 한다..

 

10시 14분 : 백마사를 잠시 둘러보고..

 

▲ 이정표가 망춘대로 가라 한다..

 

10시 24분 : 망춘대..

단성 들녁에 봄(春)이 오는 모습을 바라기(望) 하라는 전망대 인듯 하다..

 

단성들녁..

저곳에는 문익점님께서 처음으로 목화를 심으신 목화 시배지가 있으며.. 멀지 않은 곳에 성철대종사님의 생가도 있다..

 

▲ 백마산 성루터..

임진왜란때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의 망루의 기둥을 세웠던 자리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진주에서 밀려든 왜적을 막기 위해서 창의병들이 이 산성을 지키고 있었다. 

한번은 폭염의 7월인데 왜적이 성을 포위한 채 며칠이고 기다리는 지구전을 펼치는 가운데 성안에는 물이 떨어져서 사람

과 말의 기갈이 막심하였다. 이때 한 지혜로운 장수가 말을 바위 끝에 세워두고 쌀을 말 등에 퍼서 던졌더니 산밑에서 성을

포위하고 있던 왜병에게는 그것이 마치 성안에 물이 많아서 말을 멱감기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그들은 더 오래 포위를 해도 승산이 없을 것으로 알고 퇴각하였는데 이때 성안에 있던 병사와 말이 일시에 내달아

강물을 마셨더니 신안강 물이 세 치나 줄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 일로 인하여 산 이름도 동산성에서 백마산성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곳은 정유재란 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합천 초계의 권율 장군영에서 출발하여 남해의 전세를

살피기 위하여 지나가는 길에 이 산에 올라보고 단성현에서 하룻밤을 유숙한 행로이기도 하다.

 

▲ 백마산 전망대.

 

▲ 남강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보는듯.. 내려다 보니.. 세상이 온통 내것 같음이건만..

6.25한국전쟁때 지나온 적벽산 아래의 신안면의 신안지서(현:지구대)소속의 전투경찰과 이곳 백마산에 주둔한 인민군과의

밀고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밤이면 마치 불꽃놀이를 방불케 할 정도로 백마산과 적벽산의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동족상잔의 뼈아픈 사연이 이곳에도 흐르고 있음을.. 도도히 흐르는 저 남강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 없구나~..

 

기분 좋은 소나무길을 걷다보면.

 

그 옛날 백마성 군사들의 식수원으로 사용하였다는 연못인데.. 12년전에는 그득했던 물이 지금은 말랐다..

작은산의 정상에... 이렇게 물길이 있었음은 자연적인 요새로서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10시 41분 : 백마산.

백마산성은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고.. 임진왜란 때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북진하는 왜군을 맞아 한 달 이상을 버티면서

물리친 유적지다. 당시 왜군은 깎아지른 절벽의 백마산성을 도저히 함락시킬 수 없자 물과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옥쇄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또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여름 백의종군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으로 가던 도중

이 산성에 올라 천혜의 난공불락 요새인 점을 확인하고 안심하였다는 이야기가 난중일기(1597년 7월 19일)에 기록돼 있다.

 

 백마산 내림도 급경사 수준이다..

 

 수억년전 여기도 바다속이 였으리라.. 갯가 몽돌이 세상귀경을 나왔구나..

 

 바람길 좋은 여름날.. 저 바위에 걸터 앉아 이태백의 시라도 한수 읊는다면.. 그게 신선놀음일것 같다.

 

10시 49분 : 질매재.. 백마산과 월명산 사이의 고개마루다.

신작로가 뚫리기 오래전 중촌리 일대 주민들이 산청 장터를 오갔던 중요한 길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고개는 마치 도끼로

찍어 놓은 듯이 움푹 파인 지형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어 흥미를 끈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의

백의종군길에 따라 나섰던 옥포 만호 이담 장군의 12대손이라고 밝힌 중촌리 주민 이주상씨의 전언을 소개한다.

 

"옛날에 일본인들이 조선 지도를 펼쳐놓고 조선의 기를 끊기 위해 붓으로 먹점을 찍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 질매재라고

한다. 그로 인해 질매재는 도끼자국처럼 파였다고 선조들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일본인들이 점을 찍은 이유는 큰 인물이 많이 나올 지형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지나온 백마산..

 

 월명산 오름길에 재미있는 구간이다.

 

험상궂은 바윗길 같지만... 길을 양보하며 내어 주어서 고맙고.. 이런 길을 찾아내는 개척자도 대단하다.

 

 웅석봉 달뜨기능선따라 이방산도 저기 어디쯤일텐데.. 그리고 마근담봉과 수리봉 사이에 백운계곡이 숨어 있다..

 

백마산과 남강..

적벽산과 백마산 일대는 옛날부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한양(서울)에서 880리를 걸어 온 길손이 경치에 취해 가던

길을 멈추고 하염없이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특공대님.. 산꾼의 포스(force)가 완전 뿜뿜입니다...

 

 풍혈..

월명산이 바위산이라.. 산속 어딘가에 공동이 형성되어 있는 모양이다.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11시 13분 : 월명산..

정상석에 해발 320m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해발은 334m이다..

 

"얼굴머리 바위" 라고 이름지어 본다... 코가 참 잘생겼다..

 

 소나무와 바위의 소리없는 싸움에 바위조각이 떨어졌다.. 뿌리가 들어올린 바위 틈새가 눈에 띄게 벌어 졌다.

 

 조망바위..

 

조망바위에서 둔철산능선을 바라보니 와석총에 다시 가보고싶다... 언제 또 가보려는지.. 상사바위가 바로 아래다.

 

 조망바위에서 둔철산을 조망하는데.. 발밑에 나의 분신이 보인다..

 

나의 분신..그림자..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서 빛의 존재만 있는게 아니라..

그속에서.. 또 다른 나를 보았다. 1년간 걸어 온 길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림자는 그사람의 모습이다..

그림자에서 "그"를 빼면 <임자>가 된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언제나 한결같은 믿음의 자태로

늘~ 나와 함께 있다.

 

나는..

어떤 그림자를 가지고 있어며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산불초소가 있는 월명산이다..

국토지리원에 등재된 공식산이다. 그러나 지역민들한테는 인정 받지 못하는 소외된 산이다.

 

 조망바위를 에돌아 내려 가면서 올려다 보니.. 영락없는 침팬지 얼굴이다..

 

 모든 이정표는 지나왔던 월명산을 향하고.. 산불초소봉은 그냥 무명봉일뿐이다.

 

 상사바위다.

 

 상사바위 전설...

월명산 아랫동네인 현재의 안봉 마을 부근에는 큰 못이 하나 있었다. 그 못은 얼마나 깊은지 명주 실타래 하나를 풀어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못 인근 마을 부잣집에 아주 용모가 수려한 머슴이 있었는데 뛰어난 용모와 겉으로

풍기는 힘참에 그 부잣집 별당아씨의 마음을 본인도 몰래 훔쳐 버린 것이다. 신분을 뛰어 넘는 사랑이 금지된 아주 오랜

옛날이기에 머슴은 그런 아씨의 맘을 알고 나선 좌불안석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아씨를 피해 인근 월명산 자락 미륵이 있는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절로 도망을 쳤다. 그런데 머슴에 대한 속앓이를 

하던 아씨가 수소문 끝에 이곳 미륵이 있는 절까지 쫒아 온것이다... 아씨의 열렬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머슴이 아니었

지만 그 마음을 받아 들이는 순간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는 일 인지라 머슴은 그 절에서 다시 아씨를 피해 월명산 정상부근

현재의 상사바위로 다시 도망을 하게 된다..

 

머슴에 대한 사랑에 몸앓이를 하고 있던 아씨는 미륵이 있는 절을 떠난 머슴을 찾아 다시 주변을 헤매기를 수개월...

그러던 어느날 머슴이 월명산 정상 근처 현재의 상사바위에 있음을 알고 상사바위로 찾아간다. 그리고 요염한 자태와 계급

적 직권으로 머슴을 달래보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다.. 라는 머슴의 사랑거절에 낙심하여 그만 산아래 벼랑으로 몸을 던지고

만다.. 그리고 뒤늦게 아씨의 생사를 초월한 사랑을 알게 된 머슴 또한 이곳에서 생사의 길을 달리하게 된다.

 

 뒤돌아 본 상사바위..

 

 이루지 못한 아씨의 사랑을 감춰주기라도 하듯.. 쉽게 찾을수 없도록 좁은 문을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듯 바위산은 육산으로 바뀐다.

 

 하산길 이정표에서..

 

 이정표가 가르키는 방향을 보니.. 오래동안 왕래가 없었던지.. 묵은길이다..

 

 2분정도 더 진행하니 태양광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는 초소길과 하산길이 갈라진다.

 

철조망따라가는 하산길.. 초소에서 바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면 여기로는 안올 것이다.

 

 산불초소(작은 월명산) 올라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지나온 월명산과 상사바위능선.

 

 철탑 밑으로 시그널이 걸려 있다.. 다시 내려와서 이리로 하산할 예정이다.

 

12시 14분 : 산불초소.. 국토지리원에서 표기한 월명산이다.

 

 산은 낮지만 사통팔달.. 동서남북이 막힘없는 최고의 직장이다..

 

 여기서도 이정표는 지나온 월명산이 주산임을 가르킨다..

 

하촌마을로 내려가는 희미한 족적이 보인다.. 조금전의 철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것 같다..

 

 생각외로 길은 반듯하다..

 

 발풀고사리군락..

 

 오래된 화전민들의 경작지 흔적..

 

 안곡서원.

 

왼쪽의 경덕사(景德祠)와 안곡영당(安谷影堂)..

경덕사(景德祠)는.. 농서군공(隴西郡公) 장경(長庚).. 문열공(文烈公) 조년(兆年).. 경원공(敬元公) 포 (褒).. 모은공(慕隱公)

인립(仁立).. 경무공(景武公)등.. 5현(五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를 올리는 사당이다.

 

5현(五賢)중에 이조년(李兆年:1269~1343)은 고려 때의 정치가이자 문학가로.. 자는 원로(元老).. 호는 매운당(梅雲堂)..

시호는 문열(文烈).. 본관은 성주이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냥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

 

경모문(景慕門)...

경모는 마음을 기울여 존경하고 사모한다는 뜻이다.

 

안곡서원(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42호)은..

단성의 성주이씨 문중사람들이 고을의 유림과 협의하여 1913년 2월에 지었고.. 1916년에는 영당(影堂)을 지었다.

 

경지당(敬止堂).

 

유정문(由正門).

 

 경모문(景慕門)... 소슬대문을 나와서..

 

 주차장으로 나오니... 빛의 굴절이 마술을 부리며.. 무사무탈의 완주를 축하해 준다.

 

 보기만 해도 구수한 시락국맛이 난다...

 

 오늘도 역시나 열정의 혼산을 하신 산여울선배님...

 

 홍시.. 나무밑에서 아~ 하고 입 벌리고 서 있어면.. 금방이라도 입으로 떨어질것 같다..

 

 중촌리 입구에 산이좋아산악회의 애마가 보인다..

 

13시 06분 : 산행 종료.. 대단한 준족님이다.. 벌써 하산하고 기다린다..

 

 

 후미팀까지 완전 하산후... 하산주식당에서 시간이 이르다 하여.. 가까운 성철대종사님의 생가로 간다.

 

13시 54분 : 지리산 겁외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스님의 생가터에 세워진 사찰이며.. 지리산 겁외사(劫外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겁(劫)이 의미하는 것은 긴 시간을 벗어난 시공(時空)을 초월 한다는 의미다. 성철스님이 지었다

겁외사는 스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01년에 건립된 사찰이다.

 

 성철스님 입상..

성철스님은 1912년 산청군 묵실마을에서 태어났고.. 25세인 1936년 해인사에서 승려의 계를 받은 이후 한국 불교를 대표

하는 상징이 되었다. 조계종 종정으로 한국불교와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던 개혁가였고 사상가였으며 해방이후 혼란스러운

한국사회의 등대와도 같은 분이었다.

 

염주 속으로 본 성철스님 입상..

 

백송(白松)..

보기드문 백송은 해인사 백련암에도 한그루 있고.. 성철스님 세속의 따님인 불필스님이 창건한 해인사 금강굴에도 있다..

 

성철스님 생가로 들어가는 혜근문(惠根門).

 

▲ 안채인 율은고거(栗隱故居).. 성철스님 선친의 호를 따라 지었다.. 앞에는 스님의 기념비와 출가송비가 조성되어 있다.

 

▲ 성철대종사출가송(性徹大宗師出家頌)..

 

미천대업홍로설(彌天大業紅爐雪)..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 화롯불에 한 점 눈송이요..

과해웅기혁일로(跨海雄基赫日露).. 바다를 뒤덮는 큰 과업도 햇볕 아래 이슬일세..

수인감사편시몽(誰人甘死片時夢).. 그 누가 잠깐의 꿈같은 삶을 살다가 죽어가랴..

초연독보만고진(超然獨步萬古眞)..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홀로 걸어가노라~

 

▲ 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齋).

 

▲ 포영당(泡影堂).

 

대웅전(大雄殿)은..

비로자니부처를 모셨으며 성철 스님의 진영이 있고 외벽에는 스님의 출가 수행 설법 다비식 등을 묘사하였다.

 

벽해루(碧海褸)는...

평소에 즐겨 얘기하던 홍하천벽해(紅霞穿壁海)..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뜻이다.

 

 퇴옹전(退翁殿).. 성철스님 기념관이다.

 

 성철스님의 법력을 제대로 받으신 듯... 훨훨훨!~... 늘~~청춘이시고.. 성불 하소서~..ㅎㅎ..

 

적벽산과 피암터널...

경호강이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갑자기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형성된 산이 적벽산이다. 산의 서쪽면은 칼로 자른 듯한

벼랑이 만들어졌고, 그 아래의 경호강변에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봄철의 해빙기나 여름철의 집중

호우가 있을 때면 산에서 바위가 이 도로로 떨어져서 사고를 일으키기도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적벽산피암터널’이다.

2018년에 시작하여 2021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하산주는 장어탕으로..

 

 산이좋아산악회 회장님의 건배.. 청. 바. 지!!!~..청춘은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 바로 청춘이다 건배!!~..

1년간 수고많으셨구요.. 덕분에 매월 셋째 목요일이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이 행복이 쭉~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농사꾼도 뱃심이요.. 산꾼도 뱃심이다.. 뱃심 빵빵하게 잘 먹었습니다.

 

지난 1년간 걸어 왔던 수많은 길들..

그 길을 내가 가지 않으면 내 길이 아니듯이..

누군가의 길에 온전한 내 길을 만들기위해 부지런히도 걸어 왔던 것이다.

 

올해도 그랬듯이... 내년에도 나의 길을 걸을 것이고..

그것이 내 인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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