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08(목).
가은산 : 충북 제천시.

 

산행코스 : 옥순봉쉼터-새바위-꼭지바위-벼락맞은바위-병풍바위-둥지봉-석문-가은산-둥지고개-옥순봉쉼터 산행종료.

산행시작 : 옥순봉쉼터 10시 28분.

산행종료 : 옥순봉쉼터 16시 30분.

전체거리 :  8.86km.

전체시간 : 06시간 02분.

운동시간 : 05시간 32분.

휴식시간 : 00시간 30분.

 

10 : 28  옥순봉쉼터 출발.

11 : 34  새바위.

11 : 49  꼭지바위.

12 : 15  벼락맞은바위.

12 : 39  병풍바위.

13 : 53  둥지봉.

14 : 25  석문.

14 : 44  가은산.

15 : 28  둥지고개.

16 : 30  옥순봉쉼터 산행종료.

 

10시 21분 : 옥순대교..

얼마만에 건너보는 곳인지.. 2008년도에 금수산 망덕봉 산행때 와본 이후로는 기억에 없다.

 

▲ 옥순봉쉼터 도착.

 

10시 28분 : 옥순봉쉼터에서 산행출발.. 들머리는 옥순대교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 가은산 들머리..

 

▲ 충주호 건너편의 옥순봉이 가장 먼저 반긴다..

 

▲ 충주호의 수원은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의 삼수령에서 발원하여 영월 동강을 거쳐 남한강과 합류하여 단양의 충주호에서

여러갈래의 물길이 만났다가 한강으로 흘러 간다..

 

▲ 6월의 꽃.. 꼬리진달래..

 

▲ 옥순봉쉼터를 들머리로 출발하는 가은산 길은 둥지고개까지는 큰오름이 없이 비교적 편안하게 이어진다.

 

▲ 가은산 2.7km이정표... 출입금지 현수막이 무색하게 가늠산에서 내려오는 길이 고속도로처럼 다져져 있다..

 

▲ 가은산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지만 골짜기를 따라 가는 길이라 조망이 없다.

 

▲ 가은산 2.2km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 가파른 마사토길을 따라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면..

 

▲ 무심코 가다보면... 자칫 지나칠수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 새바위길을 따른다.

 

▲ 우람한 방구돌과 노송의 멋진 그림위로.. 가은산에서 상천휴게소로 이어지는 가늠산 능선이 지나간다.

 

▲ 멋들어진 노송에는.. 수많은 인증샷으로 소나무 껍질이 반들거린다.

 

▲ 다수의 산객들이 알바로 다녀오는 건너편의 무명봉이다.

 

▲ 무명봉의 바위들이 좋아서 알바를 하더라도 그렇게 후회하지는 않을것 같다..

 

▲ 충주호 본댐쪽의 청풍명월 관광지와 남근석이 유명한 동산.. 작성산.. 미인봉이 있다..

 

▲ 능선 아래로 새바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 새바위가 그림같은 충주호를 내려다 보고 있고.. 옥순봉.. 옥순대교.. 그 너머로는 월악산이 지키고 있다.

 

▲ 조금 당겨본 새바위와 옥순봉..

 

▲ 그림 좋은곳에서 나도 인증샷.. 참.. 좋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유있고 모든 근심 걱정을 날려 버리는 힐링의 시간이다.

 

▲ 당겨 본 "새바위"..

 

▲ 통천문과 새바위..

 

▲ 통천문을 돌아가면.. 누군가가 새바위를 보고 모이를 뿌려 놓았다.. 어느분인지 다소 해학적이고 재미있으신 분 같다.

 

▲ 주중임에도 음악을 울리며.. 유람선이 지나 간다.

 

▲ 가야할 둥지봉.. 오름 중간에 보이는 넓은 대슬랩(병풍바위)을 지나갈 것이다.

 

▲ 펭귄이 누워서 파닥거리는 모습처럼 보인다.

 

▲ 새바위로 올라가는길.. 우회로가 있지만.. 직등이다.

 

11시 34분 : 새바위..

 

▲ 새바위 집중탐구..

 

엄마새와 아기새가 다정하게 앉아있다.. 참으로 위대한 자연의 작품이다.

 

▲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 여러각도에서 집중탐구를 하고..

 

▲ 올라야 할 둥지봉과 대슬랩을 확인하고..

 

▲ 아래쪽에 "벼락맞은바위"가 보여서..

 

▲ 당겨본 "벼락맞은바위"..

 

▲ 새바위에서 약200m정도 내려가면 만나는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면 꼭지바위를 볼수 있다.

 

11시 49분 : 꼭지바위..

 

▲ 옥순봉..

옥순봉은 희고 푸른 아름다운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 하여 옥순이라 불리우며 조선 명종 초 단양군수

로 부임한 퇴계 선생이 암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각명하여 소금강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 꼭지바위 아래쪽이 궁금하여 내려갔더니.. 마치 전북 완주 장군봉 해골바위처럼 파였다..

 

▲ 꼭지바위 아래로도 내려간 흔적이 보이지만.. 다시올라와 삼거리에서 안전하게 내려간다.

 

▲ 사진에는 실감이 안나지만.. 발디딤이 상그러운데.. 밧줄이 걸려있다..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꼭지바위를 받치고 있는 암릉이 예사롭지 않게 어마어마 하다..

 

▲ 내려와서 누군가의 고마움에 감사한 마음 내려 놓고 간다..

 

▲ 마사토여서 조심해야할 구간이다.

 

▲ 이 소나무가 살아가는 모습..

 

▲ 한참을 내림질을 하고 나서야..

 

▲ 잠시 편안한 길을 지나면 다시 곤두박질로 내려가서..

 

▲ 충주호 수면까지 내려간다.

 

▲ 충주호의 저수량도 엄청줄었다.. 2m 정도는 줄어든것 같다..

 

▲ 올려다 보기에도 버거운 엄청난 바위 아래를 지나 바위 중간쯤에 다다르면..

 

▲ 일도양단(一刀兩斷).. 단칼에 내려친듯 반듯하게 갈라진 바위.. "벼락맞은바위"다..

 

▲ 바위가 너무 크고 높아서 카메라앵글에 다 들어오지 않아서 아래 위 나누어 담아 보았다.

 

▲ 바위 안에서 위를 본 모습..

 

▲ 안에서 본 반대편 모습..

 

▲ 벼락맞은바위를 떠나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담아 본다.

 

▲ 둥지봉 대슬랩으로 가는길.. 수많은 산객들의 흔적이 워낙 뚜렷하여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 선답자들의 흔적만 따라가면 큰 문제는 없다.

 

▲ 재미있는 시그널이다.. ㅎㅎ~ 내가 숨차네..

 

▲ 헐~~ 로프가 두방향이다..

 

족적은 왼쪽이 더 많은듯 보이지만.. 밧줄이 오른쪽에 비해 약해 보여서 새밧줄인 오른쪽 길을 선택한다..

 

▲ 암릉중간에 올라서서 충주호가 그려내는 그림을 감상한다.

 

▲ 두번째 오름이 조금 까다롭지만.. 잘 살펴보면.. 바위틈새로 자라는 나무뿌리와 나무가 로프역활을 하여 준다.

 

▲ 대슬랩에 올라서 바라본 둥지봉 암릉지대..

 

▲ 구담봉..

마치 커다란 거북이 한마리가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는 듯 한 형상으로 물 속의 바위 거북무늬가 있다고 하여 구담(龜潭)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은 구담봉의 풍광은 중국의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 없다며 극찬하였다.

 

▲ 둥지봉 최고의 경치다.

 

▲ 눈 높이로 올라온 건너편의 새바위와도 눈인사를 하고..

 

▲ 용이 승천한 흔적일까?..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녔으면.. 바위가 반질거린다..

 

▲ 꽃사슴소나무가 죽었다... 인증샷등쌀에 꽃사슴이 죽었다.. 머리와.. 뿔이 사슴을 닮았다..

 

▲ 끝부분까지 가라고 밧줄도 있다..

 

▲ 죽은 고사목과 함께...

 

▲ 세상 편한 자세로.. 나~~ 누워서 산다우~~..

 

13시 53분 : 둥지봉..

 

14시 05분 : 둥지고개..

 

▲ 여기서부터 가은산 정상까지가 오늘의 산행중에 가장 힘든 구간이다.

 

14시 25분 : 석문..

 

▲ 석문위의 바위..

 

▲ 우틀하면 가은산까지 200m이고.. 좌틀하면 상천주차장으로 가는 가늠산능선..

 

14시 44분 : 가은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되었다. 반지를 찾은 마고할미는 “이 산에 골짜기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한양이 들어설 골짜기인데,

내가 이곳에 눌러 앉아 살려고 해도 한양이 될 땅이 못 되니 떠나가겠다”...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한다.

이로 인해 "가는산" 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것이다.

 

▲ 다시 옥순대교로 내려 가면서 올라올때 보지 못했던 풍겸들을 담는다.

 

▲ 천안함 잠수함이 내게로 달려 오는것 같다..

 

▲ 뒤쪽으로 내려가 보니.. 480만년전에 있었다는... 거대한 맘모스(mammoth)를 보는듯 하다.

 

▲ 올라 왔던.. 둥지봉 아래 둥지고개에서 옥순대교로 내려 간다.

 

▲ 2009년 9월에 올랐던 말목산의 추억이 새롭다.

 

15시 28분 : 둥지고개..

 

▲ 옥순봉 전망대에 올라서 또한번의 충주호 감흥을 담아가려고 했건만...

 

▲ 조망이 막혀 전망대로서는 완전 노잼에.. 노굿으로 실망만 안고 내려간다..

 

▲ 옥순봉 쉼터 산행 종료..

 

▲ 둥지봉.. 가은산은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 전체가 암릉과 노송 그리고 발 아래로 탁 트이게

조망되는 충주호를 바라 보고 그 너머로는 옥순봉.. 구담봉.. 제비봉을 바라보며 산행 내내 가슴을 뛰게하고 감동을 주는

멋진 힐링의 산행지였고.. 또한.. 산이란.. 낮은 산은 있어도 힘들지 않은 산은 없다.. 라는 말을 실감한 하루였다. 

 

2022년 10월 22일(토요일).

월악산 영봉(1097m) : 충북 제천시.

 

산행코스 : 송계2교-보덕암-하봉-중봉-영봉-신륵사갈림길-마애봉-덕주사-덕주휴게소.

산행시작 : 송계2교 출발 10시 08분.

산행종료 : 덕주휴게소 도착 16시 18분.

전체시간 : 06시간 09분.

운동시간 : 05시간 39분.

휴식시간 : 00시간 30분.

누  구  랑 : 대구드림산악회.

 

10 : 08  송계2교 출발.

10 : 48  보덕암.

11 : 58  하봉전망대.

12 : 59  중봉전망대.

13 : 41  월악산영봉정상.

14 : 01  신륵사갈림길.

15 : 20  마애불.

16 : 18  덕주휴게소 산행종료.

 

10시 08분 : 송계2교 출발.

 

▲ 송계2교에서 보덕암길은 비공식길인데.. 오늘따라 부산에서 온 "부산토요산악회"와 강원도 철원에서 온

"철원산악회".. 그리고 대구의 "드림산악회" 가 부려놓은 130여명이 동시에 출발하니..  완전 북새통이다.

 

▲ 송계교에서 보덕암길은 처음 와본 곳이지만.. 등로는 외길이라 그냥 무리의 뒤만 따라가면 된다.

 

▲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라 칡넝쿨이 우거졌지만... 후미로 따라가니 세상 편하다...ㅎㅎ~

 

▲ 월악산의 암석은 마치 굴껍질 같은 "석회규산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는 고생대의 석회암이었는데... 중생대 백악기의 화강암이 석회암층을 뚫고 들어와 열과 압력에 의해

변성을 받아서 "석회규산연암"으로 변하여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 보덕굴 입구..

 

▲ 송계2교에서의 오름길은 비공식등로이기에 철책을 넘어야 한다..

보덕굴은 겨울에 역고드름이 유명한데 지금은 볼게 별로이기에... 생락하고 보덕암으로 직행한다.

 

10시 48분 : 보덕암(寶德庵)..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수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선학원 소속이다.

 

보덕암의 연원은 신라 시대 왕리조사(王利祖師)가 수행한 보덕굴에서 비롯한다.  왕리조사가 수행한 곳에

1918년 보덕암을 축조하였다고 전하며, 지금의 사찰은 1979년 무허가 사찰이 헐린 후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보덕암은 관음도량이며, 왕리조사가 수행하였던 곳에서 연유하였다고 하여 왕리사(王利寺)라고도 한다.

 

보덕암은 옛날에 부유한 사람이 고질병으로 병환이 위독하자 가마를 타고 지금의 경내에 와서

약수를 마시고 완쾌한 곳으로 전한다. 이처럼 중생의 병환을 쾌유시키는 암자로 정평이 나면서

약수터 위에 약사여래불입상을 안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 주지스님의 전용 가마일까?...

 

▲ 보덕암 마당에서 수산리방향으로 살짝 내려섰다가 오른쪽으로 하봉오름이 시작 된다.

 

▲ 야간산행 통제를 위한 입산시간 안내문..

 

▲ 보덕암에서 여기까지 10여분간은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이더니..

 

▲ 월악의 화려한 단풍을 보려는 기대감으로 왔는데.. 별로여서 고개를 바짝 치켜든 첫계단부터 힘이 든다...

 

▲ 영봉까지 3.5km의 급오름이 힘들것 같이 느껴지지만..

 

▲ 그래도 간간히 보이는 고운 단풍에 힘이 생긴다.

 

▲ 하봉전망대 오름길..

 

11시 58분 : 하봉전망대 도착.

 

▲ 그림 같아야 할 충주호 위에 짙은 스모그(smog)가 대 실망감을 준다.

 

▲ 내려다본 하봉전망대..

 

▲ 하봉과 중봉사이의 구름다리.. 하봉에서 영봉까지의 구간이 매우 위험한 구간이다...

 

▲ 짙은 개스로 단풍도 곱지않고.. 산하가 온통 부옇게 보인다..

 

▲ 시그널 게시대.. 바람직한 아이디어다.

 

▲ 다시 내려가고..

 

▲ 다시 올라가는..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12시 13분 : 등로옆에 비박굴 비슷한곳에서..

 

▲ 굴속에서 밖을 내다보는것 같다.. 여기서 마음점을 찍는다.

 

▲ 너는 전생에 무슨 업(業)을 지었길래.. 뭇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며 사는고?... 밟지않고 넘어간다.

 

▲ 협곡에 끼인돌.. 균열이 생긴걸 보니. 언젠가는 부서져 내릴것 같다..

 

12시 58분 : 중봉전망대..

 

12시 59분 : 중봉전망대에서 올라온 길을 되돌아 본다.

 

▲ 이정표에 휴대폰충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 영봉오름의 웅장한 자태..

 

▲ 하산하게 될 마애봉능선 너머로 만수봉.. 포암산.. 주흘산.. 등의 기라성같은 산군이 버티고 있다.

 

▲ 드디어 영봉이 머리위에 있다.

 

▲ 영봉 오름길에 뒤돌아본 중봉능선.

 

▲ 영봉에 다다르니 정상인증을 하려는 사람들로 줄서기를 하고 있다.

나는 인증샷 안한다 하고.. 추월선으로 정상을 항한다.

 

13시 41분 : 영봉정상...

거의 30여년만에 만나는 영봉이다.. 찰라의 교대 순간을 이용하여 정상석만 담고 간다.

 

한국의 5대 악산(嶽山) 가운데 하나인 "월악산" 은...

1984년 12월 31일 월악산과 주변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정상 바로옆의 바위봉..

 

▲ 내려온 영봉 정상...

 

▲ 딱히 정상석이 아니면 어떠리오... 내가 이곳 영봉에 있음인 것을..

 

▲ 정상의 나무들은 영양가 비축을 위해 나뭇잎은 다 떨궈내고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있다.

 

▲ 30여년전 만난 인연이 있을터.. 너도 그때는 영봉에서 날린 나무였겠지...

 

▲ 안전쉼터라는 곳이 있다.. 그런데... 굳게 잠겨 있다..

 

▲ 생각나는 반가운 노송이다..

 

14시 02분 : 신륵사 갈림길.. 덕주사 방향으로 하산이다.

 

▲ 영봉의 우람한 바위..

 

▲ 동창교로 내려가는 송계삼거리..

 

14시 21분 : 헬기장에서 뒤돌아본 영봉..

 

▲ 줌으로 당겨보니 인증샷을 하려는 사람들의 줄서기가 많이 길어졌다.

 

14시 35분 : 마애봉...

만수봉으로 이어지는 만수릿지는 비법정 암릉길이다.. 못들어가게 철망으로 막아놓았다.

 

▲ 마애봉을 내려가며 뒤돌아보는 영봉 능선..

 

▲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하는 영봉의 아름다움이다.

 

▲ 같은 좌석에 배정되어 함께한 동행이다..

 

▲ 아름다운 영봉의 자태에 한번더 담아본다..

 

▲ 마애봉에서 만수봉으로 이어지는 만수릿지능선이다..

 

▲ 마애봉에서부터 지리하게 내려오던 데크계단도 드디어 마지막 단계다.

 

15시 20분 : 상덕주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法住寺)의 말사로 서기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창건자 및 창건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신라의 마지막 공주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마애불이 있는 이곳에 머물러 절을 세우고, 금강산으로 떠난 마의태자를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원래의 덕주사는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마애불(德周寺磨崖佛) 앞에 있었는데, 1951년 군의 작전상 이유로

소각하였다. 창건 당시의 절을 상덕주사, 지금의 절을 하덕주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덕주사는 지금의 덕주사에서 1.7㎞ 지점에 있다..

 

▲ 덕주사 마애불은..사찰 내 거대한 암벽에 조각되어 있다.

높이는 무려 13m나 되는데 얼굴부분은 도드라지게 튀어나온데 비해 신체는 선으로만 새겼다.

과장된 얼굴의 표현은 고려시대의 거대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선으로 조각한 몸부분은 인체의 조형적 특징을 살리지 않고 왜곡한 표현법이 보인다.

고려 초기의 거대한 불상 조성 추세에 힘입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살찐 얼굴과 하체로 내려갈수록 간략해진 조형수법과 평면적인 신체는 당시 불상의 주된 특징이다.

 

▲ 은행나무에 매달린 연등이... 마치 연꽃이 은행나무에 핀것 같다..

 

▲ 덕주산성 내성..

 

▲ 하덕주사..

 

15시 55분 : 덕주사 주차장.. 대형버스 진입이 안되어 덕주휴게소까지 약1km를 더 내려 가야 된다.

 

▲ 덕주산성... 외성..

월악산 남쪽 자락 일대는 남과 북을 잇는 도로의 길목으로 예로부터 전략적, 군사적 요충지였다.

신라 경순왕의 제 1공주 덕주공주가 이곳 월악산에 머물면서 지세를 이용하여 이 산에 성을 쌓고 훗날을

기약하였다고하고, 그 후 이 성을 덕주공주가 쌓은 성이라 하여 덕주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덕주골로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성벽이 외성이고 하덕주사에서 마애불을 향해 올라가다가 도중에 보이는

성벽이 내성이다. 이 산성은 고려 때 몽고의 침입과 조선조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인해 수차례 파괴되어

현재는 홍문관만 남아있다.

 

▲ 덕주루를 지나..

 

▲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 덕주사입구 상가..

 

▲ 상가지역에서 바라본 덕주봉과도 인사를 나누고...

 

▲월악 영봉도 고개를 내밀고 잘가라 한다.

 

▲ 좀더 가까이 당겨서 월악산 영봉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16시 18분 : 덕주휴게소 산행완료.

 

▲ 처음으로 사용해본 "산길샘".. 사용하기가 쉽고 심플해서 좋은것 같다.

2022년 09월 04일(일요일)

사랑산 : 충북 괴산군.

 

산행코스 : 사기막주차장 - 코끼리바위 - 사랑바위 - 사랑산 - 용추폭포 - 사기막주차장.

산행시 : 사기막주차장 10 01분.

산행종료 : 사기막주차장 14시 59분.

산행거리 : 약 6.94km.

전체시간 : 4시간 58분.

운동시간 : 3시간 56분.

 

10 : 01 사기막주차장 출발.

11 : 08 코끼리바위.

11 : 19 사랑바위.

12 : 01 사랑산.

14 : 14 용추폭포.

14 : 59 사기막주차장.

 

10시 01분 : 사기막주차장.

 

▲ 풀협죽도.. 꽃말은 "주의".. "방심은 금물",

 

▲ 사랑산 들머리..

 

▲ 충북 괴산의 기라성 같은 산군들..

 

▲ 부회장님의 샌드위치.. 솔잎이 아니면 어느산악회에서 먹어 보랴..

 

11시 08분 : 코끼리바위.

 

▲ 천년바위와 함께 용트림을 하는 소나무,,

 

▲ 11호 태풍 힌남노가 몰고온 바람의 위력에 그냥 서 있기에도 힘든데 아찔한 절벽위에 선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쳐다 보는 내가 아찔하다..

 

▲ 코뿔소바위..

 

▲ 사랑바위.

 

▲ 사랑바위..

사람의 옆 얼굴을 닮았다는 이바위에 입맞춤을 하면.. 사랑이 꼭 이루어 진다고 한다..

 

▲ 사랑산 정상으로 가는길에 바람이 강하다.

 

▲ 가령산.. 도명산.. 낙영산의 산그리메가 아름다운 사랑산 최고의 식당자리인데...

타 산악회에서 선점을 하였다.. 

 

▲ 독수리바위.

 

▲ 신라의 화랑 김유신이 여기도 다녀 갔는가 보다.. 일도 양단의 갈라진 바위.

 

▲ 사랑산은 2005년과 2011년에 다녀간 산으로.. 11년만에 다시찾은 사랑산에 감회가 새롭다..

 

12시 10분 : 선두팀들이 차려놓은 식당에 합석한다.

 

▲ 산해진미가 여기에 다 모였다..

 

▲ 사랑산에서의 정 나눔시간도 마무리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 태풍 힌남노를 대비하여 여성분들과 누님들을 위해 준비했다는 비닐을 바람막이로 사용하였다..

후배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 삼거리봉에서..

 

▲ 용추폭포방향으로...

 

▲ 급한 경사를 다들.. 잘도 내려온다..

 

▲ 쉼터바위.. 여러 사람이 모이면 특별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11년전 이자리에서 전문강사님의 거시기한

특강(?)시리즈에.. 모두가.. 자지러 지게 웃었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 은꿩의다리... 꽃말은..."순간의 행복"이다.

 

▲ 11년전 가장 난코스로 기억되던 곳이다..

 

▲ 사랑산 연리목.

사랑산의 원래의 산이름이 제당산 이었던 것이 이 연리목이 발견되면서 사랑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1997. 10. 16 중부지방 산림관리청 (제1997-5호)에서 천연보호수로 지정 했으며,

나무의 특징은 소나무 2그루가 약 40㎝ 간격에서 각기 자라다가 지상 3.5m 상부의

중간에서 융합되어 한 그루로 자랐으며, 좌측 나무둘레 105㎝, 우측나무둘레 115㎝,

높이 약15m이고, 수령은 약 80여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 연리목이란

이을연(連) 다스릴리(理) 나무 목(木),또는 사랑할연(戀) 다스릴리(理) 나무목(木)이 합쳐진 단어이며

말 그대로 나무와 나무가 맞닿아 한 나무가 되는 현상. 즉, 뿌리가 서로 다른 두 그루의 나무줄기가 사이좋게

합쳐진 것으로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고 마을의 화합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길조로 알려져 있다.

연리목은 어떤 나무라도 만들 수 있으나 나무에 관련된 전설과 상징성 등으로 볼 때.. 자귀나무, 엄나무 등이

가장 적합하다고 한다. 자귀나무는 낮에는 작은 잎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가 밤이 되면 서로 붙어서

밤을 지새는 부부 금실을 상징하는 나무이며 엄나무는 가시가 듬성듬성한 가지를 문설주 위에 걸쳐놓으면

악귀를 몰아낸다는 속설이 있다.

 

▲ 용추폭포에 다녀오기로 한다.

 

▲ 직진하면 용세골을 경유하여 용추교로 가는 길이다..11년전에는 용추교아래에서 하산주를 하였다.

 

14시 14분 : 용추폭포..

 

▲ 오늘은 원점 산행이기에 출발점인 사기막 마을로 귀환이다.

 

▲ 펜션마을..

 

▲ 기둥위의 부츠바위.

 

▲ 사랑산능선을 올려다 보고..

 

▲ 다슬기가 새카맣게 기어 나왔다..

 

14시 59분 : 사기막주차장 산행종료..

 

 

이제부터는 황자문위원님 작품으로 넘어 간다.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

 

▲ 황자문님 작품을 끝으로..

 

▲ 하산주 장소인 송면가든에서... 얼큰한 해물짬뽕으로..

 

▲ 회장님의 힘찬 건배사로.. 하루를 내린다..

11호 태풍 힌남노가 북상한다는 예보에도 아랑곳 않고 솔잎사랑을 찾아 사랑산에 입산하여 더욱 공고해진

우정에 또 한번의 솔잎의 저력을 보았다..

2022년 02월 27일(일).

수정봉(569m)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산행코스 : 사내리소형주차장-산신각-569봉-수정봉-거북바위-법주사-사내리소형주차장.

산행시작 : 법주사소형주차장 10 25분.

산행종료 : 법주사소형주차장 15시 22분.

산행거리 : 약 6.2km.

소요시간 : 4시간 57분(중식 및 휴식시간 포함).

 

10: 25 법주사주차장 출발.

10 : 29 산신각.

11 : 49 569봉.

11 : 54 수정봉 정상.

12 : 16 거북바위.

14 : 29 법주사.

15 : 22 법주사소형주차장 행완료.

 

10시 25분 : 법주사 소형주차장 출발.

 

▲ 보은군 사내리 산제당.

 

▲ 산제당 왼쪽으로 오르면 비교적 뚜렷한 길이 열려 있다.

 

▲ 산길로 접어들자말자 커다란 바위밑으로 돌아나가면...

 

▲ 산신당에서 5분정도 치고 오르면 능선에 올라선다.

 

▲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취수탱크를 만나면 좌측으로 돌아간다...

 

▲ 커다란 전망 바위가 내눈에는 마치... 알을 품고 있는듯한 새의 모습처럼 보인다.

 

▲ 애벌레(번데기) 바위.

 

▲ 건너편의 주먹바위..

 

▲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천왕봉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의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가야할 수정봉도 가늠해 보고..

 

▲ 조이사님.. 오늘은 완전히 계돈 탄날 같습니다..ㅎㅎ~~

 

▲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며 천년을 이어가는 강한 생명력의 물오름소리가 들린다..

 

▲ 애기업은바위와 묘봉..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저 애기업은바위가 진짜 묘봉으로, 현재의 묘봉은 보은군에서 1999년 충북알프스를

개설할 때 지금의 위치에 표지석을 세우면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11시 49분 : 수정봉 정상(569m)..

육각형의 주춧돌만 남아있고 무슨연유인지 뜯어낸 자재들만 쌓여 있다. 바로가면 만판동으로 가는길이고

거북바위는 오른쪽 봉우리에 있다..

 

▲ 거북바위 가는길...

 

▲ 제2 수정봉에 올라서니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각자가 보인다..

 

▲ 오른쪽에는 령중추부사 이유원이라 되어 있고.. 왼쪽에는 관찰사 이석규라 되어 있다.

인명사전을 찾아보니..

1) 이유원(李裕元, 1814. 8. 12 ~ 1888. 9. 5)은 조선왕조 말기의 문신이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본관은 경주이며,  오성 이항복의 후손이다.

2) 이석규(李錫奎)는 이항복(李恒福)의 7대손이며 1821년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충청도관찰사로

재임중 단양군의 전세(田稅)· 대동미(大同米)· 군포(軍布) 등을 돈으로 대납할 것을 청하여 허락받았다.

 

▲ 바로 아래쪽 바위에 새겨진 수정봉 각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수정봉이라 하는 이유는 법주사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남산(南山)이 있는데 남쪽은 화기(火氣)가 있는

곳으로 법주사는 모든 건물이 목조로 되어 있어 남산의 화기 때문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 이를 우려하여

법주사 뒷산을 수성(水性)을 가진 수정으로 산 이름을 지어 남산의 화기를 눌러 법주사에 화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수정봉이라 하였다고 한다.

 

▲ 우측으로 약5m거리에 세로로 새겨진 수정봉.. 그 옆으로는 희미해서 알아볼수도 없는 글자들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바위에 이름깨나 새길 정도면 그시대에 방귀깨나 뀌었던 지방 인사들일게다..

 

12시 12분 : 거북바위... 당 태종은 이 거북이 동국(조선)에서 중국을 향해 노리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재물과 인물이 모이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에 태종은 사람을 시켜 그 거북을 찾아 없애도록 명했다.

속리산 수정봉에서 그 거북을 발견한 당 태종의 신하는 거북의 목을 잘라 골짜기에 버렸으며 거북의 남은

기운을 누르기 위해 거북이 등에 10층 석탑까지 세웠다.

또 다른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거북바위의 목을 베어 버렸다고 한다.

효종때 이 사실을 알게 된 옥천군수 이두양은 각성이라는 스님을 시켜 거북의 머리를 찾아 붙이도록 했다.

이에 거북의 머리가 제자리를 찾긴 했으나 목을 이은 흔적은 지울 수가 없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뒤 이 사실을 안 충청병사 민진익이 충청관찰사 임의백과 상의하여 거북 등에 나아 있던 석탑을 허물어

버렸다.  지금도 수정봉의 거북바위 아래에는 허물어 버린 석탑의 돌덩이가 두 개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1666년 조선 현종 때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써서 건립한 속리산사실비(각)에

새겨져 전해오고 있다.

 

 거북바위를 눌렀던 탑의 일부인 사각모양의 돌덩이 두개와 옛 유래대로 잘려나간 머리를 다시붙인

거북바위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게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건너편으로 천왕봉과 마주하고.. 문장대로 오르는 세조길계곡과 법주사..

세조길은... 세조의 꿈에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가 나타나 점지해 준 곳에서 목욕을 했더니 그날로

피부병이 낳았다는 목욕소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길이다.

 

▲ 과거의 흔적은 말이 없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민생고가 시급하다..

 

▲ 다시 거북바위를 지나.. 밥자리를 찾아 간다..

 

▲ 거북이 엉덩이(?)의 곡선이 이뻐서 담아보고...ㅎㅎ

 

▲ 시멘트로 땜질한 자리에 페인트로 칠해 놓았다.. 허~~참.. 차라리 회색으로 칠하던지...

 

▲ 샅바싸움만 하고 있는 소나무와 방구돌의 한판 씨름은 언제 끝나누?..

 

▲ 오늘의 홧팅 선창자는 명화토끼님이다...

 

▲ 이제는 하산이다...

 

▲ 하산길에 오른쪽의 탈출로가 있다.. 아마도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쪽으로 연결되는 길일 것이다...

 

▲ 문장대능선이 그려내는 속리(俗離)의 의미와 전망을 감상하는 멋진 곳에서.....

 

▲ 속리(俗離)..

도불원인(道不遠人)... 도(道)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인원도(人遠道)... 사람은 도를 멀리 하고

산비이속(山非離俗)...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리산(俗離山)...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

신라 헌강왕 때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속리산에 와서 남긴 유명한 시다.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친구는 가까이서 보고... 산은 멀리서 보라 했는데.. 역시.. 산은 멀리서 보아야 한다..

천왕봉에서 문장대로로 이어지는 기묘한 산세가 멋지다..

 

▲ 당겨본 문장대... 많은 산객들이 보인다..

 

▲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바위틈에서 힘겹게 살아가지만...

 

▲ 일제강점기시대의 산물.. 송진채취의 흔적은 8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픔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 신구선생의 "늬들이 게맛을 아러!~~?"의 광고 패러디... "늬들이 산에서 마시는 커피맛을 알어?~...

 

▲ 법주사 경내가 보인다..

 

▲ 총지선원(總持禪院).. 총지(總持)는 다라니를 번역한 말이다.

출가수행자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한 곳에 모여 외출을 삼가하고 정진하는 곳이다.

 

▲ 햇살이 좋은 절집의 목련이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 요사채위로 보이는 수정봉..

 

▲ 거북바위가 있는 곳을 당겨본다.

 

▲ 법주사 경내.. 팔상전과 대웅전..

 

▲ 팔상전(국보 제55호)을 지나서..

 

▲ 법주사 대웅보전(조계종 제5교구본사).

법주사(法住寺)라는 이름은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義信) 조사가 천축으로부터 귀국할 때 나귀에 경전

을 싣고 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비롯됐다.

이후 금산사 창건주인 진표(眞表) 율사가 제자 영심(永深) 등에게 속리산에 들어가 길상초(吉祥草)가 난

곳을 택해 절을 짓고 교법을 펴라고 지시했다. 진표율사의 제자들이 사찰을 중창한 것은 신라 혜공왕

12년. 이때 대표적인 미륵도량이었던 금산사를 따라 법주사도 미륵불을 모시는 도량이 되었다.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 청동미륵대불..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인도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승려 <의신>이 처음 지은 절이다.

 

▲ 팔상전(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 수리한 것이다. 벽 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1층과 2층은 앞·옆면 5칸, 3·4층은 앞· 옆면 3칸, 5층은 앞·옆면 2칸씩으로

되어 있고, 4면에는 돌계단이 있는데 낮은 기단 위에 서 있어 크기에 비해 안정감을 준다.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장식이 달려 있다.

 

▲ 자정국존비

법주사라는 절이름은 고려 후기에 비로소 사용되는데, 이 비문에서 처음 확인되었단다.

 

▲ 석연지(石蓮池)와 석조(물통)..

 

▲ 마애불(보물재216호).. 석면에 법주사 창건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추래암..

 

신선의 노여움을 받아 수정봉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전설을 지닌 바위다.

 

▲ 수정암.

 

▲ 법주사 일주문....  호서 제일가람이라 되어 있다.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법주사 매표소... 5천원이다..

 

▲ 속리산국립공원이 법주사 토지안에 속해 있다... 땅부자다..

 

15시 22분 : 법주사소형주차장 하산완료..

 

▲ 귀가하는 길에 말티재전망대를 들리기로 한다..

 

▲ 이곳 말티고개는 충북 보은군 장안면 속리산의 언덕으로...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을 구경오면서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엷은 박석 돌을 깐 것이 시초가 되었고...

 

조선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 타고 왔던 가마를 말로 갈아타고 이 고갯길을 넘었다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된 곳이다.

 

▲ 말티고개 전망대..

 

현재 말티고개길은 1924년에 정비된 것으로 고개의 높이는 해발 430m에 이른다.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말티고개 꼬부랑길이 끝나는 지점의 쉼터에서.. 야등팀의 우정 나눔으로 하루를 마무리..

2021년 03월 25일

수주팔봉(493m) : 충북 충주시 살미면.

 

산행코스 수주팔봉주차장 - 출렁다리 - 전망대 - 수주팔봉 정상 - 수주팔봉주차장 산행완료.

산행시작 : 수주팔봉주차장 출발 09시 32분.

산행종료 : 수주팔봉주차장 도착 12시 05분.

소요시간 : 왕복 약 3.5km / 2시간 25분 소요.

 

09시 30분 : 수주팔봉주차장 도착.

나의 산행기(블로그)를 애독하시는 서울에 계시는 약사님께서 지난 일요일에 다녀 갔는데 너무 좋은곳이었고

멋진추억이었다고 산행기 댓글로 한번 다녀가라고 바람을 잔뜩 넣는다.

네비아가씨한테 길을 물으니 수주팔봉주차장까지 1시간40분 정도면 갈수있다고 한다.

 

▲ 팔봉폭포(안내도 명칭)... 오른쪽 절개지 바위가 영락없는 고릴라를 닮았다.

여덟개의 바위봉우리가 치닫는 중간이 뚝 잘렸다.

이 고장출신의 <이철규>씨가 막대한 사비를 털어 1963년에 본래의 물길이 흐르던 수주팔봉 일부인 칼바위를 절단하여

지류의 방향을 돌려 농경지를 개간하기 위해 팔봉의 산허리를 끊었기 때문이다.

이 공사로 농경지 30,000여평을 개간하였고 홍수피해 6~70%를 줄였다.

잘린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는 작은 폭포가 생겼고 구름다리도 놓였다.

 

▲ 팔봉폭포의 오른쪽... 전망대를 경유하여 수주팔봉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 팔봉폭포 좌측..

 

▲ 관리사무소앞의 수주팔봉 들머리.

 

▲ 출렁다리를 건너기전에 화살표를 따라 모원정을 먼저 들리려 한다.

 

▲ 은사 이명수옹 선행기(隱士 李明洙翁 善行記) 비석. 충주시 지현동에 거주하던 이명수씨가 자비를 들여 관광객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기위해 1981년에 모원정(慕源亭)을 건립하여 이 공로를 기리기위해 1996년 3월에 기념비를 세웠다.

 

▲ 모원정(慕源亭).

 

▲ 왼쪽은 달천강... 오른쪽은 석문동천이 인공적으로 합수되는 곳이다.

 

▲ 문주리... 주중인데도 야영지에 차들이 많이 보인다.

 

▲ 전망대.

 

▲ 충주시 살미면 문주리.. 물돌이 마을이다.

 

▲ 뒤돌아본 팔봉폭포.

이곳에는 옛 이야기 한 토막을 하면 이렇다. 조선 철종 때, 철종이 꿈을 꾸었다.

강가에 앉아 발을 물에 담그고 있는데 산봉우리 여덟 개가 물속에 비치는 꿈이었다.

왕은 팔도에 그와 같은 장소가 있는지 알아보고 그림을 그려 보내라 했다.

얼마 후 수주팔봉이라는곳의 그림이 올라왔다. 왕이 보고 꿈에서 본 형태와 비슷해 행차를 했다.

유주막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팔봉으로 들어가는데 그 경치가 신비로워 감탄했다.

칼바위 밑에 이르러 주위를 살피더니 바로 이곳이다 하며 크게 기뻐했다. 꿈에 본 곳과 똑같은 위치를 찾아 발을 담갔다.

그 후부터 왕이 발을 담그고 쉬던 곳을 '어림포'라 부르고, 왕이 걸어서 지난 곳을 '왕답'이라고 전하고 있으며,

마을의 이름도 '왕다라기'라 부르게 되었다.

 

▲ 당겨 본... 팔봉서원.

 

▲ 올라야 할 수주팔봉을 가늠해 보고...

 

▲ 이정표는 최근에 만든듯 한데.. 표기가 이정표마다 제각각이다.. <칼바위폭포 = 팔봉폭포> 두룽산이냐 수주팔봉이냐.... 헷갈린다.

 

▲ 산은 낮지만 암석이 단단하고 칼날 같다.

 

▲ 등산로 정비를 하면서 기존에 매달린 시그널을 철거하고 그대로 버려 놓았다. 버릴걸 왜 철거 했는지...

 

▲ 먼지가 폴폴나는 급경사를 쉬엄쉬엄 올라가다가.. 허리를 펴는데.. 앗!~ 빛바랜 99클럽의 시그널이다.

주중이라 산객도 뜸한 산길에서 시그널 하나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김고문님을 만난듯 반갑다.

 

정상가기전에 멋진 뷰(view)다.

 

▲ 무선 리모컨으로 셀프로 찰칵~.. 안그래도 칭얼대지도 않고 혼자서도 잘 노는데.. 참 좋은 세상이다.

1900원짜리 리모컨하나가 이리도 편리하게 해주니 더 잘논다...ㅎㅎㅎ~

 

▲ 오석의 정상석에는 수주팔봉으로... 뒤쪽의 안내도에는 두룽산으로...

 

▲ 잘놀고 있는데... 60대 초반의 부부가 올라 오기에 바톤터치하고...하산이다.

 

달천강.

 

나무에 패인 구멍으로... 알록달록 작고 예쁜새가 들락날락해서 담아 보려 했더니...호로록 날아가버린다.

 

두시간 반정도의 수주팔봉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다음산행지인 악어봉으로 간다.

 

수주팔봉주차장에서 18분 정도 달려서 충주호변에 게으른악어 카페에 도착..

 

주차장에 파킹후.. 비법정로인 악어봉 들머리를 찾기 위해 가자미눈을 하고 찾아본다.

 

게으른악어 출구간판의 길건너로 보이는 악어봉 들머리... 전봇대옆에 작은 현수막이 보인다.

평소에는 저정도 거리의 현수막글씨는 잘보였는데 오늘은 왠지 잘 안보이고 주변에 사람이 안보인다...ㅎㅎ..

 

총알같은 뜀박질로 도로를 건너 가니... 두글자가 또 안보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녔는지 길이 반들거린다..

 

능선에 올라서니 길이 완전 아스팔트다...

 

짧은 악어봉길이라 매우 가파르다.

 

드디어 지킴이 소나무가 있는 악어봉이다.. 청년 2명과 아가씨 1명이 일행인듯... 인증샷을 하고 있다.

 

그림같은 충주호 풍경이다... 만수가 아니어서 조금은 아쉽지만 흰선으로 테두리를 그은듯 나름 멋이 있다..

 

인증샷 부탁했더니 아가씨가 카메라를 날름 받는다.... 악어 한번 낚아 볼라나...

 

이 악어를 잡을까나...

 

저 악어를 잡을까나...

 

인공의 충주호와 자연이 만든 걸작품이다... 악어라고 이름을 잘도 지었다..

 

하산길에 월악의 현호색군락지에서...

주중인데도 올라오는 세팀을 만난다... 나 처럼 글씨가 안보이는 사람들일 것이다...ㅎㅎㅎ

 

오후 2시에 출발... 집에 오니 15시 52분.. 기분 좋은 하루다.

2020년 09월 10일

옥계폭포 : 충북 영동군 심전면.

 

북대구IC -> 영동IC -> 노근리 평화공원 -> 영동군 -> 옥계계곡 주차장

거리 : 약115km.....소요시간 : 약 1시간 20분.

 

▲ 옥계폭포 주차장.

바로 옆에는 고당사라는 예스러움이 없는 사찰인데... 일반사찰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옥계폭포를 다녀와서 둘러 보기로 한다.

 

▲ 진입로 입구에 도로가 협소하여 교행이 어려우며.. 노약자나..또는. 장애인이 탑승한 차량만 진입이 허용 된다는

안내문에 따라 도보로 걸어간다.

 

▲ 주차장에서 3~4분가량 도로를 따라 가면 가든과 카페가 보인다.

 

▲ 옥계저수지.

 

▲ 주차장에서 12~3분 가량 걸어오니 옥계폭포가 보인다.

 

▲ 3대 악성(樂聖)중의 한분이신..

난계(蘭溪), 난계(蘭溪), 박연(朴堧)의 상징탑.

박연(朴堧, 1378년 ~ 1458년)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도학자, 경세가, 문장가, 천문학자, 음악가이다.

초명은 연(然), 자는 탄보(坦父), 아호는 난계(蘭溪), 당호는 송설당(松雪堂)이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며, 밀양 박씨 좌복야공파후 난계파조이다.

 

▲ 폭포로 가는길 입구에 소독제가 비치되어 있다.

 

▲ 정자에서 바라보는 옥계폭포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에 본다면 가히 선경일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된 조선시대의 악성(樂聖) 박연선생이 이곳을 자주 찾아와 피리를 불었다고 하며..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도 읊고..그림도 그렸을 것이다.

 

▲ 가까이 다가 갈수록...상상 이상의 높은 물줄기에 수량(水量)도 많고 떨어지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 폭포를 둘러싼 암벽도 한폭의 동양화다.

 

▲ 옥계폭포(玉溪瀑布)에서 전설따라 삼천리.. 옥계폭포의 옥(玉)은 여자를 뜻하는 말이다.
폭포를 바라보면 여자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높이가 20여미터 되는 폭포는 
비단자락을 드리운 듯 곱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주위 풍광도 뛰어난데다 울창한 숲이 있어 한여름에도 서늘하고 오색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리꽂히는 물줄기는 속세가 아닌 선계를 방불케 한다.

어느 날 옥계폭포를 찾은 난계 박연 선생님은 오색영롱한 폭포수 밑에서 피리를 연주할 때
바위틈에 피어난 난초에 매료됐다 하여 난초의 난(蘭)에 흐르는 시내 계(溪)를 써서 
호를 난계(蘭溪)라고 하였다.

이 폭포는 박연 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묵객들의 혼을 빼앗기도 했다.
옥계폭포는 음폭(陰瀑)이다. 그런데 언제 생겨났는지 폭포가 내리꽂히는 웅덩이 안에

우뚯 솟은 양바위가 생겨났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물 한가운데 우뚝 솟은 양바위가 폭포의 경관을 해친다 하여
멀리 옮겨 버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마을에는 희귀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젊은사람이나 늙은사람 가릴 것 없이 남자들은 객사를 하거나 사고로 죽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몇몇 사람들이모여 양바위를 옮겨 벌어진 일이라고 입을 모았고

다시 양바위를 제자리로 옮겨 놓았다.
이렇게 하여 음폭과 양바위의 陰·陽은 조화를 이루게 되었고...
그러자 거짓말 같이 마을은 예전처럼 평온해졌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영동군청>에서 발췌..

 

▲ 역사상 3대 악성으로 불리우는 우륵, 왕산악과 더불어 이곳이 고향인 난계 박연(朴堧) 선생이 말년에 이 폭포에 자주 와서 피리를 불었다고 하여 박연폭포라고도 전해 진다.

 

▲ 아들을 점지해준다는 속설에 따라.. 돌 하나마다의 소원들이 담겨져 있다.

 

▲ 폭포상부..

 

▲ 우렁찬 굉음이 시원하게 힐링이다.

 

▲ 누군가가 전설속의 남근탑을 만들어 놓았다..

 

▲ 폭포의 상부가 궁금하여...폭포를 나오며 되돌아 보니... 앞쪽의 두루뭉실한 바위가 양바위라고 하는데.. 내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고 폭포 아랫쪽에 세찬 물 세례를 맞고 있는 시커먼 돌이 보인다.. 혹시?.. 저 돌이 양(陽)바위가 아닐까?...라는 생각...

 

▲ 달이산 들머리..

 

▲ 웬 파이프 관이?..위에 온천이라도?...

 

▲ 위에서 내려다 본 폭포 전망대..

 

▲ 언덕위의 파이프관을 넘어...

 

▲ 길은 다시 계곡으로 떨어지고..

 

▲ 이끼낀 시멘트다리에서...

 

▲ 상류쪽으로 가면 마을이 나오고 삼단폭포가 있다는데...오늘의 목표는 옥계폭포의 상부를 보고자 했기에..

 

▲ 하류쪽(폭포 상단)으로...10여미터 내려가면..

 

▲ 옥계폭포상단부에 또 다른 소(沼 : 웅덩이)가 있다.. 올라올때 보았던 파이프 관이 보인다.

관의 용도는 아래쪽의 저수지 물을 뿜어 올려서 폭포수 위로 순환시켜주는 용도라고 한다.

아마도.. 해발 551m의 작은 산이다 보니 평소에는 수량이 적어 건폭이 될것이다..

 

▲ 옛날 용이 살았다는 전설속의 웅덩이다.

 

▲ 좀더 높은곳에서 내려다 보니 폭포아래도 보인다.

 

▲ 좀더 폭포와 가까운 곳에서 폭포속의 양(陽)바위(?)를 배경으로..

 

▲ 다시 옥계저수지...

올라갈때는 몰랐던 저 건물의 용도가 확연해 진다...

모르긴 몰라도...폭포위로 물을 올려주는 펌프가 있는 발전시설일 것이다..

 

▲ 다시 고당사로..

 

▲ 돌아오는 길에 <노근리 사건>의 현장으로..

 

▲ 곳곳에 기총소사의 자국이 선명하다.

 

<노근리 학살사건>...

1950년 7월 26일 미국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예하 부대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 위에 피난민들을 모아놓고 기관총을 발사한 데 이어, 이들이 철로 밑 굴다리로 숨어들자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이때 생존자들은 당시 최소한 양민 200여 명이 숨졌다고 증언했다.

 

▲ 미국 측은 미군이 노근리에서 저지른 만행을 계속 부인해왔으나,

1999년 9월 미국연합통신(AP)은 6·25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6일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일어난 미군의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을 뒷받침하는 미군 공식문서와 참전미군들의 증언을 전세계에 타전했다.

AP가 발굴한 미군 상급부대의 '예하 부대에 보내는 명령서'에 따르면 미군 상급부대는 한국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 피난민 500여 명을 '적'으로 취급할 것을 명령했다.

이 보도를 계기로 한국에서 반미 분위기가 고조되자,그해 10월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협의에 착수했고,

노근리양민학살사건 정부대책단 및 진상조사반이 구성되었다.

2001년 1월 12일 한·미양국조사단은 노근리 사건이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노근리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2004년 2월에는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7월부터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사업이 추진되었다.

 

▲ 때 맞추어 아픔의 역사...굴다리 위로 열차가 지나간다.

 

▲ 홍보 전시관의 굳게 닫힌문. 코로나가..역사의 아픔조차 문을 걸어 잠그게 한다.

 

▲ 위령탑.

노근리 현장에 평화공원을 만들어 아픔을 평화의 길로 승화시키고 있다.

2010년 4월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을 고발한 영화 "작은 연못 : 감독 이상우" 이 제작되어 사건의 진실과 실체를 널리 알렸다. 또한,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의 전모를 파헤쳐 전세계에 알린 3명의 AP기자는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희방폭포.

 

높이 28m로 소백산의 으뜸가는 절경이며

소백산 연봉중에 하나인 연화봉에서 발원하여

구비구비 돌아서 이곳에서 한바탕 천지를 진동시키는 장관이

넋을 잃게하여.. 조선시대의 석학 <서거정>선생이

 

천혜몽유처(天惠夢遊處)..

"하늘이 내려주신 꿈속에서 노니는 곳"이라

읊으며 감탄하였다고 한다.

 

 

 

2020년 01월 19일소백산 비로봉(1440m) : 충북 단양군 가곡면.

 

산행코스삼가지원센터주차장 - 야영장 - 비로사 - 달밭골 -

비로봉 정상 - 천동삼거리 - 제1연화봉 - 연화봉 -

희방깔딱재 - 희방사 - 희방폭포 - 쉼터(정자) 하산완료.

산행시작 : 삼가지원센터주차장 09 43분.

산행종료 희방쉼터(정자) 16시 23분.

요시간 : 약 14.5km / 6간 40분소요(휴식시간 포함).

 

09 : 43  삼가지원센터 주차장.

09 : 51  삼가야영장.

10 : 14  비로사 입구.

10 : 22  달밭골 마을.

12 : 16  비로봉 정상.

12 : 31  천동삼거리.

13 : 16  제1연화봉.

14 : 18  연화봉 정상.

15 : 03  희방깔딱재.

15 : 41  희방폭포

16 : 23  희방쉼터 산행완료.

 

09시 43분 : 삼가지원센터 주차장 도착.

 

기억속의 삼가주차장은 엊그제 같은데

다녀간지가 벌써 15년이 넘었다.

 

 

 

▲ 처음 참가한 산악회다.

 

 

 

▲ 소백산 비로봉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 절기상 내일이 대한(大寒) 인 한겨울에

해동하는 봄의 소리가 우렁차다.

 

 

 

 

▲ 벌집처럼 매달린 역고드름..

 

 

 

10시 14분 : 비로사 입구.

 

 

 

 

▲ 명품마을 달밭골 입구에서 부부장승이

마을방문을 환영한단다..

 

 

 

10시 22분 : 달밭골 마을의 주막집.

 

초가 주막이 아닌 신식주막에는

꼬부랑할머니 주모 대신 젊은 내외가 손님 맞이를 한다.

 

 

 

▲ 달밭골은..

과거 화전민들이 살던 깊은 골짜기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빛을 볼수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소백산 달밭골은 조선명종때"격암유록"을 저술한

남사고(1509~1571)는 소백산을 지나 가다가

"사람을 살리는산이다"라고 하며 갑짜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영조 27년 이중환(1690~1752)이

저술한 인문지리서 택리지에는 "병란을 피하는데는

태백산과 소백산이 제일좋은지역이다"라고 했다

 

 

 

 

▲ 초암사로 이어지는 소백산 자락길..

 

 

 

 

▲ 소백산 공식 탐방로 입구.

 

 

 

▲ 잣나무군락.

 

 

 

▲ 과거 화전민들이 사용했던 도구..

 

 

 

▲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는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 난데 없는 양반바위가 나타난다.

 

 

 

▲ 풍채 좋은 양반의 행색과 어슷비슷한 외양을

갖춘 바위여서 양반바위일까..

 

 

 

무속의 비로봉 가는길.

 

 

 

▲ 올겨울 그렇게 목말라하던 눈산행인데..

눈꽃이 피기 시작한다.

 

 

 

▲ 무언지 맞춰 보실분 계신가요?..ㅎㅎ

 

정상에서 하산하시는 남자분의 머리에 붙은 눈꽃이

보기 좋아서 사진 한컷 찍고 싶다고 했더니

바로 머리를 렌즈앞으로 들이민다..

감사합니다...ㅎㅎ.

 

 

 

▲ 산으로 가는 길.

- 박인혜 -

 

산들이 구름 속에 있다.

나도 오라고 한다.

 

창문 열고 걸어가면

문명이 속이 아닌

태초부터 있었던 꿈들이 있다.

 

꿈을 잃고 해맬 때

산으로 간다.

 

그곳에 가면

잊혀진 고향이 있다.

잊혀진 내가 있다.

 

똑바로 가는 길 

구름이 만나는

산들이 있다.

 

 

 

▲ 상고대..

상고대는 서리가 나무나 풀 따위 물체에 들러붙어 얼어붙은 것이다.

수빙(樹氷)이나...무빙(霧氷)이라고도 한다.

 

 

 

 

 

 

 

 

 

▲ 고 조광래 조난추모비.

 

경북 풍기 출신으로

1985년 겨울 경북 청송의 주왕산 3폭포에서

빙벽등반을 하다가 추락사 하였다.

 

 

 

▲ 추모하는 마음으로..

 

 

 

 

▲ 비로봉이 지척이다...

 

 

 

12시 16분 : 소백산 비로봉 정상.

 

비로봉의 칼바람을 맞아보지 않고 겨울 바람을 논하지 말라..

오늘도 역시나 비로봉의 칼바람은 에누리가 없다.

 

소백산의 '백산(白山)'은

‘희다’, ‘높다’, ‘거룩하다’ 등을 뜻하는 ‘’에서 유래한 것인데,

소백산은 여러 백산 가운데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다.

 

"작은 백두산" 이라는 의미도 품고 있는 소백산은

겨울이면 항상 머리에 서리꽃을 이고 있어 소백산(小白山)이라 불린다.

 

예로부터 신성시 되어온 산으로 삼국시대에는

신라 / 백제 / 고구려 3국의 국경을 이루어

수많은 역사적 애환과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정상에서의 인증샷의 의미는 무엇일까..

칼바람에도 인내의 줄서기 행렬..

 

오늘로써

여섯번째인 비로봉이기에.. 통과다.

 

 

 

희방사 6.7km 방향으로 하산...

 

 

 

 

 

 

 

상고대 눈꽃..

겨울을 참고 이긴 작은가지에 눈꽃이 피었다.

 

우리의 인생도

추운 겨울을 견뎌내는 눈꽃처럼 인내와 불굴의 의지로

이쁜 꽃을 피운다는 것을 배운다.

 

 

 

주목 군락지.

 

 

 

눈산행에 목마른 산꾼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12시 31분 : 천동리삼거리.

7.4km의 희방1주차장으로..

 

 


 

비로봉에서 연화봉 능선은 1000m급의 고산 준봉이

비교적 큰 오르내림이 없이 무난하게 이어진다.

 

 

 

 

 

 

천년주목..

 

 

 

 

바람을 담을수 있는 카메라가 있다면...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칼바람도 즐김이 된다.

 

 

 

자욱한 운무속에 마치..사람이 되기 위해

백일 동안 마늘만을 먹고 지냈다는 단군신화 속의

커다란 곰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다.

 

 

 

 

 

13시 26분 : 제 1연화봉.

 

 

 

하산길의 아름다움을 다 담을수는 없다..

 

내가...이런 풍경을 볼수 있음이 아직은

푸름이 있는 팔팔한 청춘임에 희열을 느끼며

자연에 감사한 마음이다.

 

 

 

7~8명의 젊은이들이 칼바람을 피하기 위해 만든 비닐천막이

설원의 이글루가 연상 된다..

 

 

 

이제껏 보았던 자작나무중에 가장 큰

자작나무다.

 

 

 

14시 12분 : 연화봉과 제3연화봉 갈림길.

 

오늘 같은날에 길을 잘못 든다면 해안에 하산키는 어려울 것이다.

이정표를 단디 보고 연화봉으로..ㅎㅎ

 

 

 

 

 

14시 18분 : 연화봉.

 

날씨 맑은날에는 사방이 막힘없는 일망무제한

조망이 압권이며.. 봄에는 철쭉이 흐드러 지는 곳이다.

 

 

 

 

여름날 희방사계곡에서 올라 오는 골바람이

너무나 시원한 전망대다.

 

 

 

15시 03분 : 희방깔딱재.

 

여기서부터 희방사까지의 급경사가

완전 장난이 아니다.

 

 

 

희방사 입구.

 

 

 

 

 

 

박쥐 같이 매달린 고드름..

 

 

 

고공에 설치된 희방폭포다리.

 

 

 

내려다 보이는 희방폭포.

 

 

 

 

높이 28m 위용의 희방폭포.

영남제일의 폭포다.

 

 

 

 

 

 

 

 

 

 

사실상의 산행이 끝나는 지점이다..

 

 

 

희방사 1주차장을 지나고..

 

 

 

사진상으로는 식별이 안되지만

싸락눈이 점점 더 많이 내린다.

 

 

 

16시 23분 : 희방쉼터.

 

5번국도상의 희방쉼터에서

6시간 40분의 산행은 마무리 된다.

 

눈산행의 목마른 갈증을 완전 해갈한

소백산 비로봉 눈꽃산행..

 

칼바람도 즐김으로

오른자만이 보고 느낄수 있는 희열의 하루였다.

 

 

2019년 12월 01일광덕산(699m) : 충남 천안시.

 

산행코스광덕리주차장 - 광덕사 - 광덕산 정상 - 장군바위 -

광덕사 - 광덕리주차장 산행완료.

산행시작 : 광덕리 주차장 10시 32분.

산행종료 광덕리 주차장 13시 35분.

소요시간 : 약 6.2km / 3시간 03분 소요(휴식시간 포함).

 

10 : 32  광덕리 주차장.

10 : 44  광덕사.

12 : 01  광덕산 정상.

12 : 36  장군바위.

13 : 21  광덕사.

13 : 35  광덕리 주차장 산행완료.


10시 32분 : 광덕리 주차장 도착.

 

 

 

광덕산 산행들머리.

 

 

 

광덕사 호도나무 전설에 관련된 비석.

 

좌측은 고려승상영밀공류청신공덕비(高麗丞相榮密公柳淸臣功德碑)

우측은 호도전래사적비(胡桃傳來史跡碑).

 

호두과자가 천안의 명물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광덕사가 호두나무 시배지임은 처음 알았다.

 

 

 

▲ 광덕사 일주문.

 

현판에는

"태화산광덕사" 라 되어 있다.

 

광덕사가 가까운 <태화산마곡사>의 말사이니

그 맥을 따라 "태화산광덕사" 라 한듯...

 

 

 

▲ 광덕사와 마주하는 안양암.

 

 

 

10시 44분 : 광덕사..

하산길에 들러 보기로 하고 통과.

 

 

 

▲ 첫 갈림길.

오른쪽은 장군바위로 가는길.

왼쪽은 광덕산정상으로 직등하는길.

우리는 정상길을 선택한다.

 

 

 

▲ 568계단.

 

 

 

▲ 568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 주능선길의 정자 쉼터가 쉬어가라 하고.

 

 

 

▲ 노산 이은상선생의

"산악인의 선서"에 마음을 다진다.

 

 

 

 

▲ 능선길은 한동안

부더러운 육산으로 이어 지다가...

 

 

 

▲ 정상이 가까워짐에 따라

흑운모의 화강암과 편마암이 뒤섞인 바위군들이 나타난다.

 

 

 

▲ 곰?..사자?

 

 

 

 

12시 01분 : 광덕산 정상.

 

아산시 송악면과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의 경계에 있는

천안에서 가장높은 산이다.

 

예로부터 산이 크고 풍후(豊厚)하여 덕이 있는 산이라 하였다.

명산으로서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거나 불길한 일이 있으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광덕산 부근에서 생산한 호두는 껍질이 얇고 알이 꽉 차서

천안시의 대표적인 명산물이다.

 

 

 

▲ 정상 바닥에 무슨 용도인지 알수 없는

동서남북 방향표시판에는 "우주의 원리"라고 적혀 있다.

 

광덕(廣德)은 부처의 덕을 널리 베푼다는 불교적인 명칭이니

우주의 원리 또한 불교적 의미라고 보면 될듯하다.

 

 

 

 

▲ 소강상태를 보이던 비가 제법 굵어지기 시작 한다.

 

 

 

▲ 광덕산 바로 아래에 있는 산악구조대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 장군바위쪽으로 하산키로 한다.

 

 

 

▲ 안개비에 시야가 가려 있다.

 

 

 

▲ 앙상한 나무가 분위기 때문인지 왠지 더 쓸쓸해 보이고

산다는 것이 이런 모습일 것이다.

 

 

 

 

▲ 간간히 바위길이 나오긴 하지만

비교적 착한 등산로는 운치를 더해 주고

비가 내리기에 마음이 빨라지니.. 발걸음도 빨라져서

1.2km의 거리를 20여분만에 주파하여...

 

 

 

12시 36분 : 장군바위에 도착.

 

 

 

 

 

 

 

 

▲ 박씨샘..이라는데

유래가 있음직도 한데..안내가 없다.

 

다행히

비는 다시 소강상태다.

 

 

 

▲ 계곡코스라기에 급경사 내리막이 아닐까...했는데..

한낱 기우 였다.,,데크 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다.

 

 

 

▲ 안산 마을..

빈마을로 방치되어 있다.

 

 

 

▲ 광덕사로 가는 통나무 다리.

계곡물이 불어나면 다소 위험할수도 있겠다. 

 

옆에는 빛바랜 안내판에...위험..건너지 마세요..라는

퇴색된 글귀만 혼자 걱정하고 서 있다...

 

 

 

 

 

 

▲ 광덕사 보호수,,(수령 525년)..

보호수지정일 1996년 3월 1일 이니..

지금의 수령은 548년이다..

 

 

 

▲ 광덕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652년(진덕여왕 6)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치(佛齒) 1과와

사리 10과, 금은자(金銀字) 《화엄경》 《법화경》 《은중경(恩重經)》

각 2부등을 승려 진산(珍山)에게 주어 새 도량(道場)을 연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 다음백과 -

 

 

 

 

▲ 광덕사 호도나무(천연기념물 제398호).

 

수령은 약 400살 정도 추정되며,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의 나무가 그때 심은 것인지의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이곳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도가 전래된 시초가 되었다 하여

이곳을 호두나무 시배지라 부르고 있다.

 

 

 

 

 

 

 

 

 

 

 

▲ 비 예보로 3시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산행을 마치고

호서제일선원이라 적혀 있는 광덕사 일주문을 나선다.

 

천안 광덕산이 큰산은 아니었지만

모든걸 넉넉히 담을수 있는 포근한 산이었다는 느낌이다.

 

산은 정상을 탐하기 위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을 품는 것이기에...

광덕(廣德)의 넉넉한 산에 그리움도 접어두고 아픔도 지웠던

 

2019년의 모든 일상을 정리한...

12월의 첫번째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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