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6월 23일(목요일)

북악산(342m) : 서울특별시 종로구.

 

트레킹코스 : 칠궁앞 - 백악정 - 만세동방 - 청운대 - 1.21소나무 - 북악산 - 창의문 - 무궁화동산.

트레킹시작 : 칠궁앞 11 48분.

트레킹종료 : 무궁화동산 13시 46분.

트레킹시간 : 1시간 58분.

 

11 : 48 칠궁앞 출발.

12 : 09 백악정.

12 : 22 만세동방.

12 : 51 청운대.

12 : 54 1.21소나무.

12 : 58 북악산정상.

13 : 22 창의문.

13 : 46 무궁화동산.

 

11시 48분 : 칠궁에서 도로를 건너 칠궁의 담장과 함께 올라 간다.

 

 담장 너머로 저경궁.. 대빈궁.. 경호궁 지붕이 보인다.

 

 인도의 블럭에 북악산 가는길의 안내를 잘하고 있다..

 

11시 54분 : 북악산 들머리 도착.

 

한양도성 안내소.. 실질적인 들머리인 셈이다.

 

등산로 표시가 붙은 철문으로.. 곳곳에 안내원이 친절하게 가이드를 하고 있다..

 

철책과 담장... 이중으로 되어 있다.

 

뉴스나.. 사진으로 보이던 북악산 방구돌이 내눈 앞에 있다..

 

인왕산이 지척이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삼청안내소를 통해 올라오는 길이다.

 

12시 09분 : 백악정.. 정자인줄 알았더니 쉼터다..

 

백악정에서 보이는.. 남산타워.. 아래 두분은 안내원들이다..

 

여기도 안내원이 상주하며.. 비소식이 있는데 우산준비가 되었냐고 묻는다.. 당연 준비다..

 

이 구간이 신규로 개방된 일방통행구간이다..

 

여기까지 신규개방구간이 끝나고.. 청와대 전망대는 좌측으로 가야 되고.. 일방통행이라 조금전의

안내소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왔던길로 올라와야 된다.

다른사람의 등산사진을 보니 청와대전망이 별로여서 통과 하고.. 만세동방으로 간다.

 

12시 22분 : 만세동방..

"만세동방 성수남극" 이라 각자 되어 있다..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의 글이라고 한다.

만세(萬世) : 만년의 세월(오랜 세월)

동방(東方) : 삼천 살을 살았다는 전설 속의 동방삭.

성수(聖壽) : 성스러운 수명(임금의 수명)

남극(南極) : 남극 하늘에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전설..

 

▲ 만세동방에서 "늦은 점찍기" 를 하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 다행히 바람없이 착하게 내리는 비여서 청운대쪽으로 고고다..

 

▲ 숙정문쪽 능선에 커다란 암반위에 소나무가 그림이다.. 비소식으로 카메라를 갖고오지 않아서 아쉽다..

 

▲ 숙정문코스 갈림길..

 

한양도성을따라 올라가는길이 짧지만 제법 가파르다..

 

비구름에 시야가 가려 조망은 없지만.. 고성에 내리는 비의 운치가 있다..

 

12시 51분 : 청운대(293m)..

 

12시 54분 : 1.21사태 소나무..

 

 

북악산 고스락을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지나온 길... 저 길로 계속가면 북한산 백운대로 갈수가 있다.

 

12시 58분 : 북악산 정상...

정상석에는 백악산이라 되어 있다...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 칭했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다고...

 

▲ 북악의 정수리 바위.. 올라서면 북한산도 보일것이고 사방이 막힘없는 조망이 압권일텐데 아쉽다..

 

창의문 하산길... 처음부터 급경사 내림이다.. 빗길에 조심조심..

 

한양도성은.. 조선 건국 초에 태조는 한양 천도를 위하여 일차적으로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다음,

1395년(태조 4) 9월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성터를 측정, 조사하게 하였다. 정도전은 백악(白岳)을 비롯하여 인왕(仁旺), 목멱(木覓), 낙산(駱山)에 올라

실측하여 사산(四山)을 연결하는 5만 9500척의 성터를 결정하였다.

 

 이듬해 1396년(태조 5) 정월부터 전국의 민간인 장정이 무려 11만 8,000명이나 동원되어

600척을 한 단위씩으로, 축성구역을 97구(區)로 나누어 정하였다.

구역마다 천자문의 자호(字號)를 표시하여 백악산 동쪽에서부터 천자(天字)로 시작하여

낙산, 남산, 인왕산을 거쳐 백악산 서쪽에 이르러 천자문의 97번째 글자인 조자(弔字)까지 구획하였다.

 

무늬가 있는 단풍담쟁이를 처음본다.

 

뒤 돌아보니 경사가 상당하고 성 밑에도 등산로가 보인다..

 

13시 22분 : 창의문...

 

자하문고개로 하산 하자 말자..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 퍼붇는다..

자하문로를 따라 경복궁까지 도보로 약30여분 걸어야 되는데 택시도 없고..

가자.. 걷자..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정종수 경사 순직비와 동상.. 1968년 1월 21일 종로경찰서에 근무중...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 31명과 교전중에 전사 하였다..

바로 옆에는 종로경찰서장이었던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도 있었는데... 신호등이 바뀌어 담지 못했다.

 

칠궁뒷길 삼거리의 북악산 들머리가 보인다.

 

칠궁뒷길 삼거리가.. 무장공비와 교전하다가 순직했던 장소다..

 

13시 46분 : 청와대 시화문 앞... 무궁화동산 정자에서 모질게 내리는 비를 피한다.

 

▲ 경복궁 안내도... 8년 만에 다시 와보는 경복궁이다..

 

13시 58분 : 신무문안에서 바라본 청와대 본관...

다행히 드세게 내리던 비가.. 비교적 착한비로 바뀐다..

 

여기는 70세가 아닌..  65세이상 무료다..~

 

광림문(廣臨門)...

광림(廣臨)은 "널리 내려다 본다" 라는 뜻이다.. 현재의 현판은 2005년 태원전 복원공사때 만들어 졌다.

 

▲ 향원정..

향원(香遠)의 뜻은 "향기(香)가 멀리(遠) 간다" 라는 뜻이며..

건립 시기를 1885년(고종 22년) 안팎으로 추정한다. 이후 과 왕실 가족들이 휴식처로 활용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도 무사하여 지금까지 남아있다.

 

▲ 열상진원샘.. 경복궁으로 흘러 드는 샘이다..

 

▲ 향원정 뒷편에 보이는 건물은.. 국립민속박물관이다.

 

고궁의 낙수..

 

▲ 만시문(萬始門).

만시(萬始) 란 만물자시(萬物資始) 에서 온 말로 “만물이 의뢰하여 비롯하다.” 란 뜻이다.

『주역』의 건괘를 설명하는 단전에서 유래한다.

“위대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의뢰하여 시작하니, 이에 하늘을 통괄한다.” 라고 하였다.

 

경회루에서 바라 본 인왕산...그리고,, 치마바위..

 

▲ 경회루(慶會樓) 국보 224호.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고쳐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때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는 왕비의 침전 뒤편에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 경회루와 북악산...

 

▲ 수정전(修政殿).. 보물 제1760호.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이던 건물로서,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재건되면서 명칭이 바뀌었다.

 

▲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는 복도 형식의 건물인 행각(行閣)이다.

 

▲ 행각에서 바라본 근정전 측면..

 

▲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경복궁은,,,1395년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조선의 도읍으로 정하고

처음 지은 궁궐로 330여 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정도전이 붙인 궁명 "경복(景福)" 은 <시경>에

"임금이여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소서(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라는 구절에서 나온

이름으로 ‘덕으로써 영원한 복을 누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867년 고종대에 중건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각의 90% 이상이 헐렸으나 1995년부터 꾸준한 복원사업을 벌여

고종 때 중건 모습의 30% 정도를 되찾았다.

 

▲ 물빠짐이 좋아서... 옛사람들의 지혜가 안보이는곳에 숨어 있다.

 

근정전에 이르는 길 좌우에는 정승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차례로 놓여 있으며,

햇빛을 가릴 때 사용하였던 고리가 앞마당에 남아 있다.

근정전은 조선 중기 이후 세련미를 잃어가던 수법을 가다듬어 완성시킨 왕궁의 위엄을 갖춘

웅장한 궁궐건축이다.

 

▲ 근정전(勤政殿) 국보223호.

만인지상의 임금님이 정사를 보시던 근정전이다.

 

근정전은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태조 3년(1394)에 지었으며, 정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하였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 다시 지었는데, 

처음 있던 건물에 비해 많이 변형하였다. 앞면 5칸·옆면 5칸 크기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여진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며

그 형태가 화려한 모습을 띠고 있다.  건물의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기둥에 훌륭한 솜씨로

12지신상을 비롯한 동물들을 조각해 놓았다.

 

임금이 다니는 길이다..

 

▲ 근정전 현판.. 철종때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이흥민"의 글씨다.

 

 용상(어좌)..

건물 안쪽은 아래·위가 트인 통층으로 뒷편 가운데에 임금의 자리인 어좌가 있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악도" 병풍을 놓았고, 위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몄다.

 

▲ 용상(어좌) 위의 천정...

 

▲ 사정전(思政殿).,, 보물 1759호

이 전(殿)은 모든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라는 뜻의 편전(便殿)으로

왕이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고 종친 대신들과 주연을 함께 하기도 하고

왕이 친림(親臨)하여 문· 무 과거를 보이기도 한 곳이다.

 

 

▲ 천추전..

경복궁의 편전인 사정전의 보조 전각으로 사정전 서쪽에 있다.

왕과 신하들이 주로 가을과 겨울에 편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편전은 평상시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의논하고 경연을 하던 곳이다.

천추(千秋)' 뜻은 직역하면 '천 년(千)의 가을(秋)'이며 '길고 오랜 세월'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오랫동안 바른 정치를 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 강령전.

조선전기 왕이 거처하며 침전으로 사용한 궁궐건물이다.

 

▲ 연생전..

강녕전의 보조 침소로 강녕전 동남쪽에 있다.

 

▲ 연길당.

의 식사를 데워 수라상에 올려 들이던 중간 부엌이다.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과 강녕전 간 거리가 꽤 있어 상을 가지고 오는 동안 음식이 식을 수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음식을 한 번 더 데울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 교태전.

왕비의 정식 침전, 즉 중궁전이다.

 

▲ 함원전..

교태전의 부속 건물이다. 이름은 "원기(元)를 간직(含)한다"라는 뜻이다.

 

▲ 우물..

 

▲ 교태전 후원의 아미산(峨嵋山)과 보물 811호인 굴뚝...

궁궐로 들어온 여인들, 한번 들어오면 살아서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궁중여인들이다.

평생을 구중궁궐에 살아야만 하는 중전을 위해 경회루 연못을 만들때 나온 흙으로 만든 화초의 꽃마당이다.

아미산은 중궁전의 가장 깊은 후원이다.

중국 산동성 박사현 이라는 곳에 있는 명산인 아미산을 만들어 중전의 시름을 덜어 주었다.

굴뚝은 교태전(交泰殿)의 구들과 연결되어 있고 십장생이 새겨져 보물 811호다.

 

▲ 다시 근정전앞으로 나와서..

 

▲ 근정문을 나간다..

 

▲ 근정문 뒤로 북악산이 보이고... 비님 오시는 고궁에 한복 아가씨들의 웃음이 발랄하다..

 

근정문(보물 812호)은..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의 정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정말 근정문 바로 앞까지 들어섰다.

근정문 앞에 있던 흥례문은 헐려 사라지고, 금천은 메워졌다.

그럼에도 근정문은 무사했고 6.25 전쟁의 화마도 무사히 비껴가 오늘날까지 옛 모습대로 남아있다.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1985년에 보물 제812호로 지정받았다.

 

▲ 흥례문도 나가고..

 

▲ 뒤 돌아 본 흥례문(사적 117호)..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1912년 철거되었다가, 문민 정부에서

옛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 10월 26일에 완공했다.

 

▲ 국립고궁박물관.

 

▲ 어좌.. 박물관에 보관중이니 이 어좌가 진품인가 보다..

 

▲ 태조 이성계의 초상.

함경도 영흥의 준원전에 보관되어 있던 이성계의 초상을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하였다.

 

 

▲ 이런 제기~... 조금더 둘러 보면 좋으련만...

승차시간이 아직 1시간 가까이 남았는데.. 비가 와서 다니지 못한 사람들이 일찍와서는

빨리 가자고 한다... 라는 메시지가 가이드로 부터 연신 날라온다.. 이래서 노털들이다..ㅠㅠ~~

 

▲ 박물관에서 바라본 경복궁...

 

▲ 안쪽에서 바라본 광화문.. 서울이 랜드마크중의 하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어면서 가장 많이 오욕의 역사로 점철된 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협생문.

광화문으로 나가지 않아도 협생문으로 해서 주차장으로 갈수가 있다..

 

▲ 다시 돌아 본 경복궁..

짧은 시간.. 많은 걸 보고 걷느라고 매우 바쁜 하루였다..

무더위에 맑은 날씨였다면 지쳤을 것이고.. 조망은 없었지만 오히려 시원해서 좋았다..

 

15시 36분 : 경복궁 주차장..

 

16시 05분 : 출발..

 

 

2022년 06월 23일(목요일)

청와대~북악산(342m)~경복궁 : 서울특별시 종로구.

 

트레킹코스 : 청와대 ~ 칠궁 ~ 북악산 ~ 경복궁.

트레킹시작 : 청와대 정문 10 28분.

트레킹종료 : 경복궁주차장 15시 26분.

트레킹거리 : 약 10.7km.

전체시간 : 4시간 57분.

운동시간 : 4시간 33분.

 

2022년 06월 23일(목요일)

청와대에서 칠궁까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광코스 : 청와대 정문 - 녹지원 - 침류각 - 관저 - 오운정 - 미남불 - 본관 - 영빈관 - 칠궁.

관광시작 : 청와대정문 10 28분.

관광종료 : 칠궁입구 11시 48분.

관광시간 : 1시간 20분.

 

10 : 28 청와대 정문 출발.

10 : 35 녹지원.

10 : 40 침류각.

10 : 45 관저.

10 : 53 오운정.

10 : 56 미남불.

11 : 10 본관.

11 : 20 영빈관.

11 : 34 칠궁입구.

11 : 48 칠궁관광완료.

 

10시 28분 : 청와대 정문 맞은편 길건너의.. 경복궁 후문인 "신무문".

청와대 관람후 칠궁을 거쳐 북악산에 올랐다가.. 저 문을 통해서 경복궁으로 들어갈 것이다.

 

▲ 청와대 정문.. 전국에서 몰린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중국 북경의 장안문에서의 생각이 난다.

 

▲ 뉴스에서나 보던 봉황문을 들어선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10일 개방된 청와대는 그 역사만큼이나 관람해야 할 장소가 많다고 한다.

 

▲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넓은 잔디밭의 "녹지원"이다.  보이는 반송의 나이는 올해로 177세다.

 

177세의 반송이 아직도 기품을 잃지 않고 있다.

 

 침류각(枕流閣)...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3호.

침류(枕流)는...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는다" 라는 뜻인데, 억지 고집을 이르는 말이다.

 

대통령 관저로 가는 대문..

 

관저 입구 "인수문"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건물을 한바퀴 돌게 되어 있다.

 

 관저는 1990년 완공했다. 본채· 별채· 사랑채· 대문채· 회랑으로 이뤄졌으며.

대통령 가족이 생활하던 곳인 만큼 그동안 가장 공개가 안 된 공간이다.

전속 사진사 정도만 내부를 찍을 수 있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세 번 공개한 것이 유명한 일화다.

 

한바퀴 돌아 와도 내부를 볼수 없으니 일상 생활의 환경이나 흔적을 자세히는 알지 못하겠다..

 

개방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연못에 동전이...

 

오운정으로 가는길...

 

오운정의 현판은 "이승만 전대통령" 의 작품이다.

 

다시 산책로를 따라 "미남불"을 찾아 간다.

 

관저의 지붕이 보이고 남산타워가 희미하다..

 

▲ 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 보물제1977호).

9세기에 조성된 신라 불상으로 추정되며 본래 경주 사찰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으나 일제강점기

서울 남산에 위치한 총독 관사로 옮겨지고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새로 지으면서 현 위치인 북악산 기슭에

정착했다. 여러 차례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불상을 받치는 대좌 등이 파손됐다.

 

▲ 출입을 금지한다는 금줄이 막고 있다...

 

▲ 안내도상의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 한때... 삼엄한 경비를 하였던 철문과 철조망..

 

▲ 그리고 초소들이 약간의 거부감은 있으나.. 굳이 철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본관으로 가는길..

 

▲ 불로문...

 

▲ 본관 관람 가이드라인에 꽉찬 관람객들에 길이 막힌다... 안전요원들이 교행을 시켜준다..

 

▲ 본관 관람은 엄청난 인파로 인해 대기시간이 1시간은 족히 걸릴것 같아서.. 포기다..

 

▲ 청와대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역대 대통령 12명이 거쳐갔다.

 

▲ 장사진을 이루는 엄청난 관람객...

 

▲ 본관 광장..

 

청와대는 지난 194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경무대(景武臺)"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청와대 건물을

집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한 지 74년 만에 일반 국민에게 전면 공개 되었다.

경무대는 흥선대원군이 이 이름의 후원을 만든 곳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 관저로 썼다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관저 이름을 경무대로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이후 윤보선 전 대통령이 이름을 바꿨다. 미국 백악관(White House) 의미를 염두해 푸른색 기와 지붕이란

의미에서 "청와대(靑瓦臺)"로 결정했다.

 

계속해서 몰려드는 관람객들로 쉽게 줄어 들지 않는다..

 

 

영빈관 입장은 바닥재 보호를 위해 덧신을 착용해야 한다..

 

1시간 30여분 가량의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칠궁을 보고 북악산을 가기위해 영빈문을 나선다..

청와대는 한번 나가면 바코드가 없기에 다시 들어 올수가 없다.

 

길건너는 효자동 삼거리 분수대인데 날씨가 흐려서인지 물을 뿜지 않는다..

 

칠궁이정표를 따라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칠궁입구로 연결 된다.

 

칠궁 입구..

칠궁(七宮)은 대한민국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청와대 내)에 위치한, 조선의 왕들을 낳은 친모이지만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인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영조가, 후궁 출신인 모친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 육상궁을 건립한 이후, 역대 왕 또는 왕으로 추존되는 이의 생모인 후궁의 묘를, 옮겨와 합사하게

된 것으로 원래는 1724년(영조 원년)에 지은 육상궁만 있던 터였으나 1908년(순종 2년) 연호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이 옮겨왔고 1929년 덕안궁이 들어오면서 7명의 신위를 모시게 되어 칠궁이 되었다.

 

 

송죽재..

 

풍월헌.

 

 

 

모셔진 위패..

 

 

 

 

좌측부터 저경궁.. 대빈궁.. 경호궁이 나란히 있다..

 

 

 

모셔진 위패..

 

하마비..

칠궁 관람을 마치고.. 북악산으로~..

2022년 01월 01일(토요일/신정).

천마산(812m) :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산행코스 : 천마산군립공원관리사무소주차장-깔딱고개-뾰죽봉-천마산-배랭이고개-가곡리버스종점.

산행시작 : 천마산군립공원관리사무소주차장 출발 10시 03분.

산행종료 : 가곡리버스종점주차장 도착 14시 18분.

소요시간 : 약 6.7km / 4시간 15분 소요(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10 : 03 천마산관리사무소 출발.

10 : 48 깔딱고개.

11 : 18 뾰죽봉.

12 : 31 천마산 정상.

12 : 46 멸도봉.

13 : 08 배랭이고개.

14 : 18 가곡리버스종점주차 산행종료.

 

07시 26분 : 중부내륙고속도로 상행선에서..

2022년 1월 1일의 첫산행은 안내산악회따라서 경기도 남양주의 천마산으로 간다.

성서홈플러스에서 06시 30분에 출발하여 상주를 지날즈음에 임인년 첫날의 여명이 밝아 온다.

달리는 차안이라 제대로 된 일출은 볼수가 없지만... 금년에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회복되기를 빌어본다.

 

07시 32분 : 문경휴게소... 일출시간인데... 휴게소 주변이 막혀 첫해를 볼수가 없다..

 

10시 01분 : 천마산군립공원사무소 도착.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주봉을 중심으로 북동쪽은 경사가 급하고 서쪽은 완만하다.

 

10시 12분 : 구름다리... 천마산들머리에서 10여분 소요...

 

▲ 쉼터... 눈산행을 기대하고 철저히 방한을 하고 왔는데.. 너무 따뜻해서 방한복을 벗어도 춥지가 않다.

 

▲ 깔딱고개의 시작이다..

 

▲ 깔딱고개에 깔딱샘이 있다... 물은 맑아보이고 바가지까지 있지만 손이 선듯 가지가 않아 그냥 통과다.

 

10시 48분 : 깔딱고개 도착..

 

▲ 깔딱고개에서 초반에는 편안한 오름으로 시작 하다가 뾰족봉이 고개를 치켜들면서 가팔라 진다.

 

▲ 여기가 안내도상의 비석바위인가?..

 

▲ 이게 비석바위인가 보다..

 

▲ 여기가 뾰죽봉인가 보다...

 

▲ 뾰죽봉에서 남쪽을 보니 오래전에 다녀간 하남시의 검단산과 운길산이 보인다.

 

▲ 서쪽으로는.. 수도 서울의 명산.. 불. 수. 사. 도. 북과 마주 한다.

 

▲ 천마산 정상을 향해서..

천마산은 해발 812m 높이로 산세가 험하고 복잡하다 하여 예로부터 소박맞은 산이라고도 불러왔다.

 

▲ 뾰죽봉에서 가파른 암릉을 내려 서면...

 

▲ 명품소나무가 겨울의 삭막함에 그림이 되어 준다..

 

▲ 천마산 정상 약 120m 전방에 양지바른 곳의 명품송...

 

12시 31분 : 천마산 정상... 사통팔달의 막힘없는 정상에 서니 바람이 매우 차다.

천마산(天摩山)은.. 고려말 이성계가 이곳에 사냥을 왔다가 산세를 살펴보니 산이 높아 손이 석자만

더 길었으면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수장삼척가마천 : 手長三尺可摩天) 이라고 한데서

즉.. "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 이라는 의미의 천마산(天摩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천마산(天摩山)의 마는 만질 마(摩)짜다..

 

▲ 이성계는 마을 아래에서 말을타고 천마산을 보고 갔지만..

나는 천마산에 직접 올라 2022년 1월 1일 임인년 첫날의 하늘을 잡아본다.

 

▲ 멸도봉쪽으로 하산이다..

 

▲ 경기도의 내로라 하는 명산들이 멸도봉을 호위하듯 둘러서 있다.

 

▲ 하산길의 고사목... 2019년까지 푸르렀다고 하는데... 코로나의 영향인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 기대했던 눈산행이었는데 아쉽게도 3일전에 내렸다는 잔설만 밟고 간다..

 

▲ 멸도봉(搣道峯:795m)은 백제의 고승이었던 검단 선사가 전국 각지에 불법(佛法)을 전하려고 사방으로

돌아다닐 때 천마산에 올랐다가 이 봉우리에서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멸도봉으로 가는 길의 산세는...

 

▲ 조선조 명종 때 임꺽정이 천마산에 본거지로 하고 주무대로 활동했다고 전해질만큼..

 

▲ 오르내림이 가파르다..

 

▲ 이정표 뒤쪽의 화살표가 멸도봉 오름길인데.. 통과다..

 

▲ 뒤 돌아본 천마산...

 

▲ 이정표에는 돌핀샘바위라고 되어 있다.. 바위아래쪽에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솟아나는 샘물이 있다고..

돌핀샘은 북한의 신덕샘물과 지리산의 장터목샘물에 이어 감로(甘露)성분이 가장 많은 샘물이라고 한다.

 

▲ 여기도 보구니바위라고 하는데 보구니의 유래는 알수가 없다..

 

13시 08분 : 배랭이고개(O)... 과라리고개(X)...

 

▲ 하산 방향의 배랭이고개를 과라리고개라고 잘못 표기된 이정표..

이곳 산악인들의 말에 의하면 과라리고개라는 표기는 잘못된 것이고... 과라리고개는 여기서 철마산방향

으로 능선을 따라 직진하여 약3.5km지점에서 왼쪽으로 과라리 마을로 내려가는 고개가 진짜라고 한다..

세종 298일에 "상왕(태종)이 풍양 북촌 괘라리(掛羅里)의 산골에서 놀이하고 작은 잔치를 베풀었다"

라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보인다. 그 괘라리를 사람들은 "과라리"라고 부른다.

 

▲ 계곡을따라 20여분 내려 가다가..

 

▲ 임도를 만나면.. 무슨말인지 알수도 없는 이정표 아래로 임도를 가로 질러 내려간다..

 

▲ 상수원 보호지역..

임도에서 약30여분간 계곡을 따라 내려 오는길이 낙엽과 너덜길로 매우 조심스런 구간이다.

 

▲ 보광사 석탑..

 

▲ 수령 200여년의 보광사 보호수..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와 비슷하다.

 

▲ 200여년의 용트림...

 

▲ 보광사(寶光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다.

보광사는 고려시대 광종 혜거 국사(899~974)에 의해 창건이 되었다는 천년고찰이지만... 많은 전란으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어 절터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 학상당 영순스님에 의해 새로 건축되었다...

 

▲ 보광사 경내를 나와 마을길이 나오면 캠핑장을 지나고..

 

14시 18분 : 가곡리버스종점 산행 완료.

 

남양주시 수동면 가곡리(옛 이름은 가오실)는 조선말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1814~1888)의 고향으로,

이유원의 여섯 아들이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한 명문가다. 명산(名山)의 정기를 따라 걸출한 인물들이

천마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온 전통의 마을이다.

 

 

 

 

2019년 05월 12일<백령도> :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둘째날일정하늬해변일출 - 담수호 - 중화동교회 - 용트림바위 -

콩돌해변 - 등대해변 - 용기포항 - 인천연안여객터미널.

둘째날시작 : 하늬해변 일출 05시 15분.

둘째날종료 : 인천연안여객터미널 17시 35분.

 

05 : 15  하늬해변 일출.

07 : 46  담수호(서해최북단비석).

08 : 13  중화동교회.

08 : 41  용트림바위.

09 : 11  콩돌해변.

10 : 18  등대해변.

10 : 58  백령도특산물시장쇼핑.

12 : 15  사곶일번지칼국수.

12 : 52  용기포항.

17 : 33  인천연안여객터미널.

22 : 58  대구법원 도착(법원기준).

 

05시 18분 : 하늬해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내 생애 다시는 못올 오늘..

 

백령도에서의 일출이 보고 싶어서 룸메이트를 깨운다.

분명히 갈줄알고 깨운 것이다.

 

숙소에서

약 17~8분 소요..

 

철책의 묘한 분위기에서

초병에게 일출을 보러 왔다고 하니

끝섬전망대까지는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 멀고

적당한 곳에서 보고 가란다.

 

 

 

05시 26분 : 인터넷검색으로는

일출시간이 05시 27분인데.

 



05시 37분 : 드디어 철책너머로 일출..

 

 

 

05시 38분 : 경이롭다.

 

 

 

▲ 북녘땅에서의 일출인가 했더니

바다에서 솟아 오른다.

 

 

 

▲ 경계병들이 철책의 이상유무를 확인..

 

 

 

▲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의 아픔이...

 

 

 

▲ 당겨 보고..

 

 

 

▲ 밀어보고..

 

 

 

▲ 가까이 당겨보고..

 

 

 

▲ 철책으로 마주한 아픔과 상처가 범벅이 되어 있어도

자연은 아름답기만 하다...

 

 

 

05시 43분 : 5분간의 일출을 마치고..

 

 

 

 

▲ 걷고 싶어지는 트레킹 코스 심청마을길이다.

 

 

 

 

▲ 겹벚꽃...

 

 

 

▲ 골담초.

 

 

 

06시 03분 : 숙소로 다시 돌아와

준비된 아침을 먹고..

 

 

 

07시 46분 : 담수호,

 

담수호 제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오고

갯벌이 있었는데 그물로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논 40만 평이 들어앉아 쌀농사를 짓고 있다.

1970년대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간척 사업을 벌여서

지금은 해병대들까지 먹고도 남아 육지로 실어낸다.

담수호 옆에는 백령도 유일한 염전이 있다.

 

 

 

 

 

▲ 제방둑 뒤에는 사곶해변이다..

 

 

 

 

▲ 백령도 화동염전.

 

화동염전은 선조 26년(1593)부터 설치되어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항복" 은

"백령도 염장이 황해도에서 제일 간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백령도가 바다 한 가운데 있어 순수한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기에 육지보다 품질이 좋고

양도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민들이 친환경 방식으로

바닷물과 바람과 햇빛이 인내의 시간을 견디어 만들어내는

백령도 화동염전의 소금은 맛이 좋아

까나리액젓과 김치를 담그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08 13분 : 중화동교회.

 

 

 

 

▲ 용트림 향나무.

 

 

 

 

▲ 추억의 주물종..

 

어릴때 동네교회에서

종소리 울리면 "덩어리우유" 받으려고

뛰어가던 생각..

 

 

 

 

 

08시 43분 : 용트림바위.

 

 

 

 

 

 

▲ 가마우지..

 

 

 

 

 

 

 

 

 

09시 11분 : 콩돌해변(천연기념물 제392호).

 

 

 

▲ 콩을 뿌려 놓은듯한..콩돌 해안.

 

 

 

오금포 남쪽 1km 정도 달하는 콩돌해안에는

갈색, 회색, 백색, 적갈색, 청회색 등 여러 가지 형형색색의콩만 한 돌들이 있다.

형형색색의 자갈돌들은 파도가 밀려올 때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낸다.

예전에는 콩돌이 인근 마을까지 천지였는데

이 돌을 외부로 대량 판매하면서 현재는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예전에는 건축자재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보호차원에서

무단반출 적발시에는 과태료가 부과 된다.

 

 

 

 

 

▲ 대청도 어청도..

 

 

 

▲ 고동의 꿈..

 



 

10시 10분 : 등대해변..

전쟁의 도피처로 가는길..

 

 

 

 

 

 

 

 

▲ 밀물로 물이 들어와 전쟁의 도피처로는 갈수가 없다.

 



▲ 나이테가 있는걸 보니

나무화석이다..

 

 

 

▲ 콩배나무.

 

 

 

 

 

 

▲ 분꽃나무.

 

 

 

12시 15 : 사곶일번지칼국수.

 

 

 

 

▲ 용기포항.

 

 

 

▲ 나갈때도 개찰은 쉽게..

검표는 확실하다..

 

 

 

 

 

▲ 북녘땅...

 

 

 

▲ 연평도가 아스라히...

 

 

 

 

 

 

 

 

17시 35분 : 인천연안여객터미널 무사안착.

 

신(神)이 서해에 남기고 갔다는

보석같은 섬..백령도

한번은 다녀감직한 곳이었다.

 

백령도 두무진의 기암.

 

인천시 옹진군의 백령도는...

누구나 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아무때나 갈 수도 없는 곳이다..

 

복받은 날씨에 복받은 사람들의

서해 최북단 "백령도 여행 첫째날" 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2019년 05월 11일<백령도> :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첫째날일정인천월미도공원 -인천연안여객터미널 - 백령도용기포항 -

숙소(아일랜드캐슬) - 심청각 - 천안함46용사위령탑 -

두무진(유람선) - 사곶천연비행장 - 숙소(아일랜드캐슬).

 

첫째날시작 : 인천 월미도공원 05시 43분.

첫째날종료 : 백령도 아일랜드캐슬(숙소) 20시 01분.

 

05 : 43  인천 월미도공원 도착.

08 : 51  인천연안여객터미널.

14 : 25  백령도 용기포항.

14 : 38  숙소(아일랜드캐슬).

15 : 38  심청각 전망대.

16 : 35  천안함46용사위령탑

17 : 13  두무진항(유람선).

19 : 32  사곶천연비행장.

20 : 10  숙소(아일랜드캐슬).

 

집행부의 말에 따르면..

백령도에 아침안개가 극심하여 08시 30분에

출항예정이던 배시간이 오전 10시 30분으로 변경되어..

 

부득이 약 2시간의 공백을 메꾸기위해

월미도공원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05시 43분 : 인천 월미도공원.

 

몽금포작전승전비.

"몽금포" 는 북한 땅 황해도 서쪽 끝에서

황해로 길게 돌출한 작은 어항이다.

 

1949년 8월 이곳에 주한 미 군사고문단장 전용보트가 납북돼,

이를 찾아오기 위한 작전으로 함명수 소령이

직접 기획하고 전투에 참가했던 몽금포 기습작전의 전과를

올림으로써 해군의 기상을 보여준 일전이었다. 

- 다음백과 -

 

 

 

 

월미문화관.

 

 

 

해양 경찰 경비함 206호.

배가 산으로 올라 왔다.

 

중국인들의 불법조업을 단속하다가 순직한

"이청호 경사" 와 "오진석 경감" 의 흉상 조각이 있다.

 

 

 

 

 

▲  월미도 전망대.

이른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다.

 



 

▲ 해발 108m인 월미산 정상.

 

 

 

▲ 젊은 연인들의 프로포즈 장소.

 

 

 

▲ 인천항.

 

맥아더장군의 지휘아래

1950년 9월 16일 새벽에 진행되었던 인천상륙작전지였던

이곳에.. 지금은 글로벌 인천으로 거듭나고 있다.

 

오른쪽에 인천국제공항으로 연결되는

인천대교가 희미하게 보인다.

 



▲ 파란 하늘과.. 걸림없는 구름조각들..

눈부시게 하얀 철쭉..

아름답다.

 

 

 

▲ 사랑의 나무라고..해서

의미를... 아무리 찾아봐도 내사마 모리겄따.

 

 

 

▲ 남들은 신기하다고 웃는데..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ㅋㅋ~

 

 

 

▲ 월미도공원의 야생화.

 

1번) : 윤판나물.  2번) : 호랑가시.  3번) : 병아리꽃.

4번) : 만첩황매화 / 흰철쭉.

 

 

 

▲ 마가목.

 

 

 

08시 51분 : 인천연안여객터미널.

 



 

 

10시 05분 : 개찰하여.

 

 

 

▲ 검표후 승선.. 

개찰때는 승선권만 보더니..

검표는 일일히 바코드로 체크 한다.

 

 

 

▲ 중국 페리호.

 

 

 

▲ 인천대교.

 

 

 

공사기간 : 2005년 7월 착공~2009년 10월 준공.

교량길이 : 18.38km, 사장교 주 교각 사이 거리 800m,

중앙 주탑의 높이 230.5m.

교량형태 : 6차선 사장교, 접속교, 고가교 복합형식의 특수교량.

 

 

 

▲ 하늘인지..

 

 

 

▲ 바다인지..

장장 4시간을 달려야 백령도다..

따사로운 햇살에 눈은 절로 감기고..

 

대구에서 밤새 달려온

나도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ㅎㅎㅎ~

 

 

 

▲ 얼마를 잤을까...

소청도 대청도가 가까이 다가온다.

 

 

 

▲ 소청도에도.

 

 


▲ 삶의 이야기하나 내려 놓고..

 

 

 

▲ 조금 규모가 큰.. 대청도.

 

 

 

▲ 대청도 트레킹코스가 있는지

해안데크길이 보이는 모서리를 돌아서면..

 

 

 

▲ 근거리의 백령도 용기포항이 보인다.

 

백령도는 북위 37도 52분에 인천에서 228km 떨어지고

면적은 46.35㎢이며 해안선 길이는 52.4km이다.

 

 

 

▲ 용기포항 왼쪽의 용기포등대가 보이고

아래의 해안절벽은 내일 들리게 될 천연동굴과

일명..전쟁의 도피처,,라고 하는 대피굴이 있는 곳이다.

 

 


▲ 오른쪽은 용기원산의 "끝섬전망대"가 보인다.

 

 

 

14시 25분 : 백령도 용기포항 도착.

 

4시간 배를 타면서

이렇게 편한배를 타본게 처음이다.

 



 

▲ 아마도 심청이와

백령도에 서식 한다는 물범인 듯...

 

 

 

▲ 1박2일의 인연..그리고 1356번과 기사님..

백령도 최고의 베스트 드라이버다.

 

 

 

14시 39분 : 숙소인 아일랜드 캐슬.

 

여기 자체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방 배정을 한다.

 

 

 

15시 39분 : 심청각.

북한과 가장 인접한 곳이다.

 

 

 

▲ 효녀 심청상.

 

심청전의 배경 무대로 이 섬과 황해도 본토 사이의 바다 일대를

"인당수" 라고 불렀다고 하며 심청각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

몸을 바친 인당수와 심청이가 환생하였다는 연봉바위가 바라다보이는 곳에 있다.

 



▲ 북한땅이 손에 잡힐듯..

 

 

 

 

▲ 북한땅을 보고 섰는데..긴장감이 전혀 없다.

 

관광기사분의 말처럼

정작 이곳 주민들은 조금도 북한을 의식 하지 않고

흔들림없이 생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에서..

이곳에 온 나도 긴장감이 풀어졌나 보다.

 

 

 

 

▲ 심청각 내부.

 

 

 

 

 

▲ 십장생 용좌에..

 

 

 

 

 

▲ 백령도 곳곳에 화기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포문은 하나같이 북한을 향해 있다.

 

 

 

▲ 해당화 너머로..튀어 나온 끝 지점이

옹진반도의 장산곶인듯..

 

<몽금포타령>.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일도 상봉에 임만나 보겠네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 임만나 보겠네!~..

 

남과 북의 님들은 언제쯤 만나게 될런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철수때 거제도로 내려오신

부모님 덕분에 내고향은 "거제도" 다..

 

약주 한잔 드시면..

이북 고향으로 가신다고 하시던 아버님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황해도 반대 쪽

함경남도 흥남시의 아버님 고향을 그려본다.

 

 

 

▲ 심청각을 뒤로 하고..

 

 


16시 29분 : 천암함46용사위령탑.

 



▲ 46용사와 피격개요..

 

 

 

▲ 이곳에 잠든 46용사는..유가족은..

자식잃은 통한을 가슴에 묻고 말이 없는데...

 

매정한게 시간이라..

세월가면 무디어지는게 인지상정인것을..

세월타령은..언제까지 이어 질지..

 

세상의 어느부모가 자식 앞세운 아픔의 크기가

다를수 있겠는가...

 

 

 

 

 

▲ 천안함침몰사건.

 

천안함 침몰 사건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772천안함이 침몰되어

해군병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된 사건이다.

 

2010년 3월 26일 밤 11시 모두가 잠들 무렵,

부모님께 문안 편지를 쓰는 병사도 있었고,

애인을 그리며 잠자리를 뒤척이던 병사도 있었다.

 

그러나 확인할 겨를도 없이 그들은 혼백으로 변했다.

그들은 이제 백령도를 지키는 수호신이 됐다.

 

 

 

▲ 꺼지지 않는 불꽃..

 

 

 

▲ 46용사들이여..편히 잠드시라~..

 

 

 

▲ 위령탑을 나와서..

 

 

 

▲ 전차가 전시되어 있는 앞쪽의 해안통로를 통해서..

 

 

 

▲ 해변을 둘러보고..

 

 

 

17시 12분 : 두무진항.

 

 

 

▲ 유람선을 타고 두무진해안절벽을 보러간다.

 

여기서는 줄 잘서는것 필요없다.

개찰원(50대아줌마)이 호명 하는 순서로 승선한다.

 

 

 

 

 

보석같은 윤슬..

석양의 햇살에 반짝이는 잔물결..

 

 

 

 

▲ 하얀 서리같은 갈매기 배설물..

 

 

 

▲ 두무진을 이루고 있는 암석들은

원생대(8억 5천만 년 전)에 속하는 암회색의

사암 또는 규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무진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서 생긴 모양이 머리털과 같다하여

두모진(頭毛鎭)이라 부르다 후에 장군머리 같은 형상이라 하여

두무진(頭武津)이라 개칭하게 되었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선대암.

 

임진왜란때 의병장이었다가 경남 함양군수였던

이대기(李大期 : 1551~1628)가 백령도로 귀양와서

 

백령도지(白翎島誌)를 지으면서 두무진의 선대바위를 보고

“늙은 신의 손끝에서 나온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다고 전해 진다.

 

 

 

▲ 백령도(白翎島)는..

 

1895년 황해도 장연군에 속하였으나 광복 후 옹진군에 편입되었으며,

섬의 본래 이름은 ‘곡도(鵠島)’인데,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겼다하여

‘백령도(白翎島)’라 붙여 졌다.

 

 

 

▲ 절벽속에 포대.

 

전에는 포문이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얼마전부터 안으로 들여 놓았다고..

 

 

 

▲ 두무진은..

금강산의 만물상과 비견되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운다.

 

 

 

▲ 코끼리바위.

 

 

 

▲ 가마우지와 갈매기.

 

 

 

백령도(白翎島) ‘두무진(頭武津)’은

1997년 12월 30일 명승 제8호로 지정된 곳이다.

 

 

 

▲ 순간포착 1.

 

 

 

 

 

 

 

 

 

 

 

▲ 잠수함바위.

 

 

 

▲ 멀리 낯익은 분위기가 보여서..

 

 

 

▲ 당겨보니..

조금전 다녀왔던 천안함46용사위령탑이다.

 

 

 

▲ 여기 어디쯤에서 천안함이 피격되었으리라..

고요한 바다에 비치는 윤슬이

차갑게 느껴진다.

 

 

 

▲ 순간포착 2.

 

가마우지가..

엄청 빠른 속도로 유람선을 추월한다.

 

 

 

 

 

▲ 하선하여 올라가게될 전망대다.

 

 

 

 

▲ 비경을 뒤로 하고

두무진항에 내려서 육로로 해안 트레킹을 간다.

 

 

 

 

 

 

▲ 통일로 가는길..

 

 

 

▲ 잘 깔아놓은 우레탄 길.

 

 

 

▲ 예비군을 생각나게 하는 참호.

 

 

 

 

 

 

 

▲ 역광의 실루엣에 나도 그림이 된다...

 



 

 

 

 

 

▲ 멱쇠채(미역쇠채).

 

미역 줄기 같은 잎을 가지고 있으며..

소가 잘 뜯어 먹는 다고 한다..

 

 

 

 

 

 

▲ 통일기원비..

 

 

 

▲ 두무진항.

 

 

 

 

▲ 두무진항.

 

1832년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더가

두무진을 통해 상륙하였고 1865년에는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가 두무진을 통해서 상륙했다고..

 

바다건너 보이는곳은 황해도 옹진군의

옹진반도의 장산곶이다.

 

 

 

19시 33분 : 사곶해변(천연기념물391호).

 

 

 

 

▲ 전남 신안군 비금도와 비슷한 체험이다.

 

약 3km 길이에 너비 300~400m의 모래 사장은 규조토로 이루어졌다.

물기를 머금어도 콘크리트처럼 단단하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 수송기가 보급을 위해 직접 착륙했던 곳이다.

이 해안은 이탈리아의 나폴리 해안과 더불어

세계에서 단 두 곳 밖에 없는 천연 비행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담수화로 인해 모래지반이

약해져 간다고 한다.

 

 

 

19시 32분 : 사곶해변의 일몰..

 

 

 

20시 01분 : 백령도 순두부집..<콩깍지>.

 

대구신천동이 고향이라는 안주인..

인천서 연애하고 신랑따라 백령도에 들어와서

강산이 두세번 바뀌었다고..

 

백령도 사람 다되었다..

고향 사람이라며 찾아 주어서 고맙다고 하는 인사말에

오히려 경상도 사투리가 더 어색하다.

 

대구에서

잠 안자고 새벽 2시에 출발

차에서 자는 쪽잠에 피곤 했던지 식당에서 4~5분 거리의

숙소로 돌아와 샤워후 그대로 꿈나라다..

 

수락산 향로봉의 소리바위(일명 : 사과바위).

 

수락산(水落山)은 산 전체가 화강암과 모래로 이루어진 골산이다.

여름과 가을은 물론 사계절 잘 어울리는 산이다...

 

“수락”이라는 이름도

“물이 굴러 떨어진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2019년 05월 05일수락산(637m) :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산행코스수락산교차로 - 염불사입구 - 물개바위 - 새광장 - 깔딱고개 -

배낭바위 - 수락산정상 - 기도바위 - 기차바위갈림길 - 칠성대 -

향로봉소리바위 - 사기막재 - 마당바위 - 수락산유원지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수락산 교차로 10시 47분.

산행종료 : 수락산 유원지주차장 14시 56분.

소요시간 : 약 7.5km / 4시간 9분 소요 / 휴식시간 포함)

 

10 : 47  수락산 교차로.

10 : 59  염불사 입구.

11 : 17  물개바위.

11 : 27  새광장.

11 : 52  깔딱고개.

12 : 23  독수리바위.

12 : 31  배낭바위.

13 : 12  수락산 정상.

13 : 21  기도바위.

13 : 37  칠성바위.

14 : 03  향로봉 소리바위.

14 : 41  사기막재.

14 : 46  마당바위.

14 : 56  수락산유원지공영주차장.

 

10시 47분 : 수락산 교차로.

 

멋진 물방울 모형 조형물이 반긴다

수락산정상은 오늘로써 네번째 오름이지만..

벽운계곡코스는 처음이다.

 

 

 

▲ 벽운마을.

 

교차로 입구에서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

벽운마을 수락산 표지석.

  

 

 

▲ 벽운계곡의 걷기좋은 등산로 데크와 차도를 따라서..

 

 

 

 

10시 59분 : 염불사입구의 화장실.

 

 


▲ 염불사 입구.

 

등로는

좌측 벽운계곡을 따른다.

 



▲ 깔딱고개를 경유하는 코스로

수락산 정상까지가 2.5km라고 보면 될것 같다.

 

 

 

▲ 병꽃나무꽃이 만개한..

 

 

 

▲ 벽운계곡... 

도심의 가까이에 심산유곡을 방불케하는 계곡이

있다는 것 만으로 복 받은 도시다.

 

 

 

▲ 벽운계곡을 건너는 "수락교",,"장락교".."벽운교"

3개의 다리를 건너면..

 



▲ 이지역 생활체육을 위한 배드민턴장이 나오고..

 



▲ 마지막 다리인 "신선교" 를 건너면..

 



11시 17분 : 잘생긴 "물개바위"가 반긴다.

조형물도 아닌데.. 눈까지 완벽하다.

 



11시 27분 : 새광장(깔딱고개갈림길).

 



▲ 처음에는 완만한것 같더니..

 



▲ 급경사 돌계단이 깔딱고개 이름값을 하느라고

길을 하늘로 들어 올린다.

 

똑같이 규격화된 높이의 계단이 아니고

자연석의 높낮이에 따라 놓여 있어서 내 보폭에 맞는

오름짓을 할수 있어서 좋다.

 



▲ 사브작사브작 골라 딛는데에 정신을 팔다보니

어느새 능선의 허리가 보인다.

 



11시 52분 : 깔딱고개.

 

올라서서 좌측은 465고지가 있는

매월정 능선이고.

 



▲ 오른쪽이

독수리바위를 경유하는 수락산 등로다.

 



▲ 거대한 암괴가 버티고 있지만

난간 설치가 잘되어 있어서 별 무리없이 오를수 있다.

 



▲ 465봉 하산 능선길.

 

나름의 산행 경험에 의하면...

자연은 똑같은 시련을 계속해서 주지는 않는다.

한바탕 치고 오르면 숨고를 기회를 준다.

 

465봉 너머로 도봉산이 우람하고..

왼쪽으로는 북한산 인수봉이 고개를 내민다.

 

 

 

▲ 두번째 암릉도

발디딤이 잘되어 있고 경사도 완만한 편이고

중간에 쉴수 있는 공간이 있다.

 



▲ 다시 뒤돌아 보는 그림같은 465봉에

"매월정" 첨탑이 뾰죽히 보인다.

 

조선 초기의 문인이며,, 학자이고..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년 ~ 1493년)이

 

수양대군이 자행한 단종에 대한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문을 닫고 번민한 끝에 통곡을 하고

책을 불살랐다고 알려져 있다.

 

머리를 깎고 21세에 방랑의 길에 들어서서

전국을 떠돌던 김시습은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1471년(성종2년) 37세에

서울로 올라와 이듬해 수락산 동봉(東峰)에 폭천정사를 짓고

10여년을 생활하였다 하나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다.

 

매월당 김시습의 주요 저서로는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

매월당집(梅月堂集),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등이 있다.

 

 

 

▲ 정수리에 배낭바위가 보이고

왼쪽에 수락산 정상 보인다.

 



 

 

 

 

▲ 당겨본 수락산 정상..

 



 

▲ 밟히고 짓이겨도 푸르름 잃지 않은

끈질긴 생명력에 응원의 마음 하나 보내준다..

 

 

 

12시 23분 : 독수리바위.

 

모든 바위들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여서

"엄지바위" 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 도솔봉 가는길의 하강바위.

 

등산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던 과거에

저기 보이는 계단이 없을때에는 최대의 난코스 였다.

 

"하강바위" 아래에

"종바위"가 숨어 있는 곳이다.

 



▲ 마지막으로 뒤돌아서서

북한산과 도봉산을 조망해 본다.

 



▲ 육중한 모습의 배낭바위.

 

사람이 배낭을 짊어진듯

비스듬히 얹힌 배낭바위가 위태로워 보인다.

 



▲ 배낭바위 아래..

금방이라도..

 



▲ 마지막 목계단.

 



13시 05분 : 철모바위.

 



▲ 수락산 정상 가는길.

 



▲ 오늘 역시도 많은 산객들로

인증샷은 어려울것 같아서 올라가면서

수락산 랜드마크인 태극기를...

 



▲ 처음엔 무언가 했더니

막걸리를 잔술로 파는 곳인듯...

 

  

 

13시 12분 : 수락산 정상. 

내원암으로 하산할려니 세번이나 내려 갔던 코스라

식상한 생각이 들어서...

 

 

 

▲ 향로봉 능선을 보니..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소리바위>가 생각난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래..저기야..

 

같이 올라온 일행들에게.

내원암 하산길은 조망도 엄꼬,,해서..

이 멋진날에 조망이 좋은 저 능선으로 내려가자고 꼬드긴다..

모두 오케이다...작전 성공...ㅎㅎㅎ~

  

 

 

▲ 수락산 명품송.

 

 

 

▲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꿈의 종주코스의 방향키 역할을 하는 "도정봉"이 지척이다.

 



 

13시 21분 : 기도하는 바위.

 



13시 23분 : 헬기장.

 



▲ 도정봉 방향을 무시하고 직진.

 



▲ 과거의 군사용인듯..

 



▲ 하산할 향로봉 능선.

 



▲ 하산길은 헷갈림 없이 제대로 찾은듯 하다..

사기막고개 방향으로...

 



▲ 상어지느러미 같이 생긴 바위 위가

유명한 수락산기차바위(홈통바위)이다.

 



▲ 가야할 칠성대를 위에서 미리 당겨 본다.

 



13시 37분 : 칠성대. 

젖꼭지바위와 멀리 불암산이

멋진 앙상블이다.

 

 

 

 

▲ 가야할 영락대.

 

 

 

▲ 향로봉 암괴..

 

 

 

▲ 당겨본 소리바위..

거대한 백곰이 어슬렁 거린다.

 



 

 

 

13시 44분 : 샘터. 

여기까지 온 당신은

참 행복할 거라고... 정말 행복만끽이다.

 

흔적은

아니 온듯...'

 

 

 

 

▲ 지나온 수락산 정상부..

 



 

▲ 소리바위 내려 가는길..

 



14시 02분 : 소리바위(사과바위).

 

뒤돌아 선

백곰 같아 보이기도...

 



▲ 소리바위(사과바위).

 

먹다 남은 사과모습으로 보여 사과바위라고 부르는데,

바람부는 날에는 바위에 송송 뚤린 구멍을 통해서

소리가 난다고 소리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 억겁의 시간이 만든 바위 물도랑.

 



▲ 아래 바위도 하트 모양과 비슷하다.

 



▲ 소리바위에서 바라본 내원암과 금류동천..

일행들은 저기로 하산이다.

 

내원암은《봉선사본말사지》에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나와 있지만,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창건자는 미상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찬탈을 계기로

이곳에서 10여년간 머물렀다고 전해 진다.

 

 

 

▲ 폭포 상단에 금류동천(金流洞天)이라는

커다란 해서체의 암각문이 새겨져 있다.

글자 1자의 크기가 가로130cm 세로 140cm라고...

 

수락산의 선경 중에 정허거사(靜虛居士)가 즐겨 불렀다는

‘수락팔경(水落八景)’의 일부.

 

 양주라 수락산을 예듣고 이제 오니...

아름답게 솟은 봉이 구름 속에 장관일세

 

청학동(靑鶴洞) 찾아들어 옥류폭에 다다르니...

거울 같은 맑은 물이 수정 같이 흘러가네

 

푸른 송림 바위길을 더듬어서 발 옮기니...

백운동(白雲洞)에 은류폭(銀流暴)이 그림 같이 내려 쏟고

 

자하동(紫霞洞)에 돌아들어 금류폭(金流暴)을 바라보니...

선녀 내려 목욕할 듯 오색 서기 영롱하구나.

 

미륵봉(彌勒峯)의 흰 구름은 하늘가에 실려 있고...

향로봉(香爐峯)의 맑은 바람 시원하기 짝이 없네 ..

 

칠성대(七星臺) 기암괴석 금강산이 무색하고...

울긋불긋 고운 단풍 그림인 듯 선경인 듯

 

내원암(內院庵) 풍경(風磬)소리 저녁연기 물소리네...

불로정(不老亭) 맑은 약수 감로수가 이 아닌가.

 

선인봉(仙人峯) 영락대(永樂臺)에 신선 선녀 놀고 가니..

청학(靑鶴) 백학(白鶴) 간 곳 없고 구름만이 오고 가네.

 

 

 

 

▲ 정상석이 없는 향로봉으로 다시 올라 가면서..

 



▲ 칠성대도 당겨 보고..

 



▲ 소리바위도 다시 당겨 본다.

 



▲ 향로봉 하산 데크길..

 



 

 

14시 41분 : 사기막고개에서 마당바위로..

 



▲ 수락산유원지 가는길..

 



14시 46분 : 꽃에 둘러 싸인 마당바위.

 

 

 

▲ 마당바위에 올라가 보니.

100여명이 앉아도 될 만큼 매우 넓다.

 

여기서 약 10분 거리의

수락산유원지 공영주차장에서 산행 마무리.

 

북한산 백운대.

 

북한산은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총면적(도봉산 포함)은 80.669㎢다.

 

북한산의 정상은

백운대(836.5m)·인수봉(810.5m)·만경대(799.5m)로

조선시대에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는 최고봉 백운대(白雲臺)와 그 동쪽의 인수봉(仁壽峰),

남쪽의 만경대(萬景臺, 일명 국망봉)의 세 봉우리가

삼각형의 모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다음백과 -

 

 

 

2019년 04월 21일북한산 백운대(836m) : 경기 고양시.

 

산행코스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대서문 - 무량사 - 보리사 - 대동사 -

백운봉암문 - 백운대 - 백운봉암문 - 북한산성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11시 01분.

산행종료 : 북한산성 제1주차장 16시 03분.

소요시간 : 약 8.6km / 5시간 3분 소요 / 휴식시간 포함)

 

11 : 01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11 : 16  대서문.

11 : 22  무량사.

11 : 29  보리사.

11 : 51  대동사.

12 : 49  백운봉암문.

13 : 07  북한산 백운대.

14 : 01  백운봉암문.

16 : 03  북한산성주차장.

 

11시 01분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평소 알고 지내던 모 산악회에서 북한산 백운대로 간다며

찬조산행을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나 또한 북한산 백운대는 16~7년만의 해후이기에

오랜만에 한양 나들이에 동참하기로 한다..

 

헐!~~~

한데.. 어찌 이런일이..

 

원래의 산행들머리는

우이동쪽의 백운대탐방지원센터인데

내리고 보니 정반대 방향인 산성지원센타로 와 버렸다.

 

산행대장과

기사분의 싸인이 맞지 않은듯..

이제..우이동쪽으로 돌아가기에는 무리다..

 

산꾼이 산과 산의 들머리를 가리랴..

나로서는 처음 오는 코스이니

 오히려 잘된 셈이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여직원의 나긋나긋.. 사근사근한 서울 표준어로

등산안내를 받으니 머리에도 쏙~ 들어오고

발걸음도 사뿐사뿐하다.

백운대를 향해.. 고!~

 

 

 

보리사 쉼터까지 포장도로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이미 져버린 벚꽃이

여기서는 절정이다.

 



용암사 입구.

안내석에 조계종 전통사찰이라 되어 있다.

오래된 고찰인가 보다.

 

 


다 져버린 벚꽃을 서울에서 다시 본다.

 



오늘 북한산 날씨는

오전내내 흐림이다가 12시 갬. 비소식은 없다.

초미세먼지 보통수준.

 



11시 16분 : 대서문(大西門).

 



황매화.

서울과 대구의..개화시기가 20일이상 차이 나는것 같다.

 



16~7년 만에 다시 찾아가는 백운대 나들이 길이

흐림속의 꽃길이라 조금은 아쉽기는 하지만

벚꽃따라 올라온 산행길이다.

 



 

11시 22분 : 무량사.

 



오름내내 따라다니는 원효봉 정수리에

안개구름과 흐더러지게 핀.. 벚꽃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아카시아 속의 산괴불주머니.

 



몽환의 순간이다.

 

2012년 8월 중국 황산의 운곡케이블카를 타고

내려 왔을때의 분위기와 거의 흡사하다.

 

 


보리사 입구.

 



 

11시 29분 : 보리사 대웅전.

 



보리사 대웅전 앞을 지나면 계곡쪽으로

등산로가 연결 된다.

 



원효봉이 구름모자를 벗었다.

 



안내도상의 구연폭포.

 

수도 서울이라 그런지

폭포의 물떨어지는 소리도 다르다..

 

셔울셔울,셜셜셜~~

내귀에.. 그렇게 들린다..

 

 

 

원효봉 삼거리의 안내판.

 

국립공원 안내판에도 작은 오류가..

대동사의 위치가 백운대 진행방향으로 왼쪽에 있었는데..

오른쪽으로 대동사가 표기되어 있다.

 

  

 

11시 51분 : 대동사 일주문(?).

 

북한산 영취봉(靈鷲峯) 대동사라 되어 있고.

원효대사(元曉:617∼686)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영취봉은 염초봉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백운대 1.6km 이정표.

 

무지무지

길게 느껴지는 1.6km다.

 



개별초.

 

 

 

대동사를 지나면서부터 너덜길이다.

 



염초봉(영취봉)이 아닐까..

머리 굴리며 지루함을 달랜다.

 



 

저봉우리는 아마도 노적봉일터...

 

 

 

고도를 높일수록 노적봉 아래가

진달래로 울긋불긋하다.

 



 

노적봉 정수리와 거의 눈높이로 마주한걸 보니

백운봉암문에 거의 다다른듯 하다.

 



 

12시 46분 : 노적봉 갈림길. 

 

데크쪽으로 가면 노적봉을 지나 용암문에서

좌틀하면 도선사로 이어진다.

백운대는 직진이다.

 

 

 

백운대에서 흘러 내린 암릉.

 



 

백운봉암문을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12시 49분 : 백운봉암문 도착.

 

백운봉암문을 통과 하자말자 좌측의 백운대를 향한다.

직진하면 백운산장과 하루재 방향이다..

 



성벽을 따라서 백운대를 향한다.

 

 



보수 복원하였다는 성벽이다.
에라이~이게 복원 공사라꼬?
갱상도 말로 문디라 캐라.....조상의 빛난 슬기를 오늘에 되살리지는 못할망정

참말로 엉성하기 짝이 없는 공사다..고증은 쌈싸먹었나 보다.

 

 



 

 

 

올라가고 내려오고..

중국 만리장성 올라갈때가 생각난다.

 



드디어 인수봉이 보인다.

 



암벽타는 사람들..

 



내려다 보니..

머잖아 국가에 귀속된다는 백운산장이 보인다.

 



개미같이 붙어 있다.

 



 

드디어 백운대와의 만남..

  

 

 

인증샷이 별건가..

 

정상바위의 백운대 글자가 없어면 어떠리

백운대 정상석과는 구면인것을...

 

17년만에 정상에 다시 서니..

감회가 새롭다.

 

줄지어선 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여불데기에서

한방 콱~~..하고 민생고 해결하러 간다.

 



17년전의 너..

오늘 또 새로운 추억하나 가져 간다.

 

 

 

백운대 아래 뒷쪽으로..

 



좌측이 염초봉??.

바위군은 말바위? 오른쪽으로 살짝 보이는 암봉은

장군봉? 인가 보다..

 



염초봉. 원효봉 능선?..

 



가운데가 숨은벽 능선?

오른쪽은 인수봉 뒷덜미..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 암릉이 숨은벽이고.

멀리 도봉산이 희미하다.

 

  

 

다시 돌아 올라와서 정상과 눈맞춤하고.

 

 

 

정상 바로 밑의 넓은 반석위에서

산객들속의 하나가 되어 민생고를 해결한다.

 

 

 

 

정상에 웬 고선생이 와이리 많노?..

 



 

아예 먹거리까지 대령이다.

 



 

 

▲ 하산 에너지도 충전하였어니,,

 



▲ 천천히 하산..

 



 

▲ 만경대가 그림이다.

위태롭기에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아닐까?

 

 

 

▲ 오리바위도 만나고.

 



 

 

 

 

▲ 만경대에 사람이 보여서..

 



▲ 당겨보니 기암위에 아찔하다.

 



▲ 백운봉암문 근처에서

인수봉을 담고.

 



 

14시 01분 : 백운봉암문.

 

원점 회귀를 위해

북한산성지원센터 3.8km로 하산.

 

원래의 산행계획은 하루재로 올라 백운대 찍고

용암문에서 ~ 도선사 ~ 백운대지원센타로 하산이었다.

 

 

 

 

▲ 활짝개인 원효봉.

 



15시 07분 : 보리사.

 



▲ 보리사 마당에 포스가 남다른

오래된 고목이 있어서 살펴보니 꽃이 피었다.

높아서 식별이 어려워..

 

 

 

▲ 당겨보니 이런 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튜울립나무" 라고 한다.

 

 

 

▲ 좌로부터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 풀명자.

 

 

 

 

▲ 염초봉은 원효봉 뒤로 숨고...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15시 55분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제1주차장으로..

 

 

 

 

16시 03분 : 산성 1주차장,,하산완료.

 



▲ 오른쪽의 의상봉. 용출봉.

 

설봉산.

 

경기도 이천(利川)은 삼국시대 때

삼국이 서로 한강유역을 차지하려 경합하는 와중에

한때 고구려의 남천현(南川縣)이 되었다가,

 

신라의 지방군사조직 십정(十停) 중 하나인 남천정(南川停)이

자리 했던 지역으로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은 물론,

삼국통일을 위한 요충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남천정은 이후 황무현으로 개칭 되었다가

고려시대에 이르러 왕건에 의해서

이천(利川)이란 지명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은 역사를 갖고 있는

이천의 진산이 바로 설봉산이다.


 

2019년 02월 17일
<설봉산 : 394m> 경기 이천시 관고동.

 

산행코스설봉산산불초소 - 호암약수입구 - 설봉산성 - 성화봉 - 연자봉 -

서희봉 - 설봉산정상 - 영월암 - 부학봉 - 청운봉 - 백운봉 - 화두재 -

이섭봉 - 석목원 - 설봉호수 - 월전미술관주차장 산행완료.

 

산행시작 : 설봉산 산불초소 10시 06분.

산행종료 : 월봉미술관주차장 13시 50분.

소요시간 : 7.5km / 3시간 44분 소요.(휴식 및 점심시간 포함)

 

10 : 06  설봉산산불초소 도착.

09 : 53  호암약수입구.

10 : 40  설봉산성.

10 : 43  성화봉.

10 : 57  연자봉.

11 : 02  서희봉.

11 : 06  설봉산 정상(점심).

11 : 57  영월암.

12 : 22  부학봉.

12 : 40  화두재.

12 : 55  이섭봉.

13 : 18  석목원.

13 : 27  설봉호수.

13 : 50  월전미술관주차장 하산완료.

 

10시 06분 : 경기도 이천시 설봉공원 입구 도착.

 

 

 

▲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 산불초소 앞쪽으로 훼손된 하마비와 새로운 하마비가

나란히 서 있는 곳으로 등로가 열려 있다.

 

 

 

▲ 들머리에서 완만한 경사를 따라

4 ~ 5분 가량 올라서면..

 

 

 

▲ 설봉호수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묘지군이 나오고...

 

 

 

▲ 산친구들과 함께...

 

대구에서 출발 할때만 해도 영하 4~5도에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뚝 떨어 졌지만 이천에 도착하여서는

바람도 잦아 들고 미세먼지는 보통수준으로

하늘은 더 없이 깨끗하다.

 

 

 

 

▲ 어제 내린 잔설이 간간히 보이고

알싸한 산공기를 폐속 깊이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며

난이도 하(下)수준의 기분좋은 등로다.

 

 

 

10시 26분 : 호암약수 입구.

 

설봉산에는 약수가 많다고 한다.

청암약수, 호암약수, 구암약수. 등등..

 

 

 

▲ 약수까지100m...

 

마침 지나 가시던 이천 시민께서

음료로 부적합 함으로 굳이 가지 말란다.

해서 통과...

 



 

10시 39분 : 설봉산성.

축성연대(築城年代)는

대략 고구려가 백제를 쳐서 한수 이남을 점유하고

이곳에 처음으로 남천현(南川)을 설치한 장수왕(長壽王) 63년(475)에서

신라 백제세력이 이곳을 다시 수복하던 진흥왕 12년(551)사이에

고구려 군이 쌓은 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 설봉산성 안내문.

 

스텐재질로 깔끔하게 만든..

전국 제일의 고급진 안내판이다.

 

 

 

 

 

 

 

▲ 칼바위.

 

1400여 년 동안

설봉산의 명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던 칼바위가

어느날 풍수지리설이 나돌면서

시민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고 한다.

 

 

 

▲ 이유인 즉슨..

 

어느날,,풍수학자들이 설봉산을 다녀가면서

산의 "허리에 칼이 꼽혀 큰 인물 안 나온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 봉화대.

 

 

 

 

 

 

 

 

 

 

 

 

▲ 남장대지를 지나고부터는

7~8분 가량 큰 오름이 없는 수평이동으로 이어지다가

 

 

 

▲ 계단을 따라 작은 봉을 오르면..

봉우리마다 이름표를 붙여 놓았는데..

 



▲ 그 어디에도 연자방아와 닮은 꼴은 안보인다.

 

 

 

▲ 영월암 가는길인데..

 

설봉산의 주봉인 희망봉을 지나 좌측으로

영월암을 찾아 보려고 한다.

 

 

 

▲ 제법 가파른 목책계단..

 

 

 

11시 02분 : 서희봉.

 

하산을 하여서 알게 되었지만

서희봉이라는 이름은 이고장 출신으로

고려초에 문신이자 외교가인 서희(徐熙 : 942~998)의

이름을 붙인 듯 하다.

 



 

11시 06분 : 설봉산의 희망봉.

 



 

▲ 저기 아래 막걸리 포장마차가 보인다.

 

 

 

 

 

▲ 소나무와 멋진 조화를 이루는 데크 하산길.

 

 

 

 

11시 53분 : 영월암 갈림길..

300m다..

 

보물 822호로 지정된 마애여래입상을 만나러,,

후다닥 휘리릭~ 바람같이 내달린다~..

 

 

 

▲ 영월암 전경.

 

조선시대까지 북악사로 불리던 절은

18세기에 들어와 영월(暎月) 랑규(郎奎)대사가 중창하면서

스님의 법호를 따서 영월암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현재의 모습은 근래에 와서 이룩되기 시작하였다. 

- 다음백과 -

  

 

 

▲ 영월암 대웅전.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인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북악사(北岳寺)로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실제적인 창건은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절 안에는 마애여래입상(보물 제822호)을 비롯하여

석조광배·연화좌대(이천시 향토유적 제3호)와

은행나무(관리번호 5-14)가 있어 절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마애여래입상과 석조광배 및 연화좌대는

모두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절이 상당히 번성하였음을 보여준다. 

- 다음백과 -

  

 

 

▲ 은행나무.

 

고려말 나옹선사가 심었다고

전해 진다.

 

 

 

 

▲ 보물 822호 마애여래입상.

 



 

 

 

 

 

 

12시 13분 : 삼형제바위..

 

영월암 입구에서 100여m의 거리다

앞쪽을 담아와야 되는데..

 

급경사 내림이라

그냥 통과 해서 아쉽다.

 

 

 

▲ 다시 영월암을 지나가며...

 

 

 

 

 

12시 29분 : 부학루.

 

 

 

▲ 부학루에서 바라본 이천시가지 전경.

 

 

 

 

 

 

▲ 오백년송..

 

 

 

▲ 오백년송이라하여 속을 들여다 보니

엄청 젊다...이 젊음이라면 삼천년.. 오천년도 가리라..

 



 

 

 

 

12시 40분 : 화두재.

이섭봉으로..직진.

 



12시 55분 : 이섭봉..

 

이천시(利川市)의 지명 유래.

고려 이전에는 남천(南川), 남매(南買), 황무(黃武) 등으로

불리어 오다가 고려 왕건이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하여

복하천(福河川)에 이르렀을 때 홍수로 인하여

내를 건널 수 없는 상황에서 서목(徐穆)이라는 사람이

인도하여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후에 왕건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가상히 여겨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글귀에서

첫글자『利』와 끝글자『川』을 따와『利川』이라는 명칭을

하사한 이래 오늘날까지 불리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 누정편) 

- 다음백과 -

 

 

 

▲ 이섭봉에서의 이천시 전경.

 

또한 일설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남정(南征)길에 올라 이천에 주둔하고

점을 쳐보았더니,『이섭대천(利涉大川)』점사(占辭)를 얻어

역시『利川』이라는 명칭을 내렸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고적편) 

- 다음백과 -

 

  

 

 

▲ 참나무시들음병 방재.

 

이 방제방법은

"참나무 시들음병"의 친환경 방법으로, 효율적인 방제를 위한

<끈끈이롤트랩> 방제사업'이다.

 

 

양면에 접착력을 갖는 점성 소재로 만들어진 테이프를 나무의 줄기에

감아놓으면 내부에서 탈출하여 나오는 매개충(광릉긴나무좀)과

외부에서 새로 침입하는 매개충을 동시에 포집할 수 있는 방제법이다.

참나무 시들음병은 '광릉긴나무좀' 이라는 4.5㎜ 내외의

아주 작은 벌레가 옮기는 병원성 곰팡이로 인해

참나무류가 말라죽는 병이다.

지난 2004년 경기도 성남에서 처음 발견 된 후

전국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13시 18분 : 석목원.

특이한 볼거리다.

 

 

 

▲ 나무들의 시체놀이?...

 

 

 

13시 27분 : 설봉호수.

 

 

 

 

 

 

 

 

 

 

 

 

▲ 설봉공원에서 도자기 축제도 한다고..

인공암벽장이 있는 곳으로..

 

 

 

▲ 인공암벽장.

 

 

 

▲ 장위공 서희.

 

서희(徐熙)는

한민족 역사 최고의 협상가라 할 만하다.

그는 거란의 수십만 대군을 책상 앞에 앉아

대담한 논리로 물리친 지장(智將)이었다.

 

서희는 942년(태조 25) 서필(徐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이천, 자는 염윤(廉允)이다.

서희의 할아버지 서신일(徐神逸)은 이천 지방의 토착 호족이었으나,

아버지 서필(徐弼)이 광종 대에 내의령을 지내면서

그의 집안도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하게 되었다.

 

《고려사》는

서희가 어릴 때부터 성질이 엄정하고 성실했다고 전한다.

그의 이러한 성품은 아버지 서필과 닮았는데,

서필은 평소 검소하고 꼿꼿해 사치를 일삼는 광종에게

바른 말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서희는 학업에 정진해 960년(광종 11) 18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고 광평원외랑을 거쳐 내의시랑에 이르렀다.

전장에서 큰 공을 세워 장군이라 불리지만

본래는 문관 출신이었던 것이다. 

- 다음백과 -

 

 

 

▲ 월전미술관앞 주차장에..

 

 

 

▲ 정갈하게 차려진

대구 솔잎산악회의 시산제 차림.

 

천지신명이시여~..

2019년 기해년에도 무사무탈하게

산행을 할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정성을 대례로 술한잔 올리나이다.

흠향하소서~..

 

 

 

▲ 귀가길의 선산휴게소에

솔잎산악회 정성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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