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4월 29일 <해명산 324m / 낙가산 235m> :인천 강화군 석모도.

 

산행코스전득이고개 - 해명산 - 석가산 - 보문사 -눈썹바위 마애불 - 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전득이 고개  11시 06분.

산행종료 : 보문사주차장 15시 22분.

소요시간 : 약 6.7km / 4시간 16분 소요 / 휴식시간 포함.

 

11 : 04  전득이 고개.

11 : 53  해명산 정상.

13 : 54  낙가산 정상.

14 : 26  보문사 매표소.

14 : 45  눈썹바위 마애불.

15 : 22  보문사 주차장 산행 완료.

 

11시 06분 : 전득이 고개.

 

대구에서 06시 35분 출발.

석모도 산행들머리 전득이고개 11시 04분 도착때 까지

 

괴산휴게소에서 20분 가량 아침 먹은 시간을 빼면

정확히 4시간 29분을 꼼짝없이 차안에 갇혀(?)

달려온 석모도..

 

그나마도

강화와.. 석모를 잇는 석모교가 개통 되었으니 망정이지

배로 건넜다면 12시가 넘었을 것이다.

 

벼르고 온길이니

주어진 시간 안에 제대로 보고, 걷고, 즐기고 가자.

 

 


▲ 길건너의 널따란 주차장.

 

  

 

▲ 산행시작 10여분 만에 만나는 쉼터.

 

대개의 섬산행이 그러하듯이

들머리에서부터 가파르게 치고 오를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등로는 보통경사에 유순하다.

 

 

 

▲ 오늘 함께할 동행..

 

 

 

▲ 첫번째 조망처에서..

 

섬산행의 맛은 시원한 조망을 즐기는 것인데..

건너편의 <강화 마니산>이

봄철 황사의 심술로 아른거린다.

 

 

 

▲ 산행 출발지였던 전득이고개.

 

<전득이 고개>의 유래가 궁금해서

수소문 해보니..

 

오래전 이 곳은 "전씨댁" 소유의 땅을 지나는 고개 였단다.

해서...전씨댁네 고개~전댁네 고개~전댁이 고개로 불리우다가

지금의 전득이 고개가 되었다고..

믿거나 말거나.~.

 

 

  

▲ 해안 갯벌 들녁에는

무언가의 자연순환(自然循環)에 역행하는

대단위 토목공사가 있는듯 하여..

 

 

 

▲ 당겨 보니 큰공사 임에는 분명한데

어떤 용도의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자연 파괴의

분탕질인지 알수가 없다.

 

 

 

▲ 산중 간이매점의 쥔장..

여유로워 보여서 좋다.

 

 

 

▲ 하산길이라면 헌잔.. 쭈~~욱!..

유혹을 물리치고..

 

 

 

▲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

2017년 6월 28일 개통.

 

디자인이

별로 특징없는 다리다.



 

 

 

▲ 해명산 인듯..




▲ 넓적한 바위들이

강화의 마니산을 오르는 것 같다.

 

 

 

 

 

 

 

11시 53분 : 해명산 정상.

 

대동여지도에는 ‘석모로도(席毛老島)’로 표기되어 있다.

"석모로"라는 지명은 "물이 돌아 흐르는 모퉁이"

혹은 "돌이 많은 해안 모퉁이" 라는 뜻이다.

 

<돌모로>를 한자화하면서 석모로(石毛老)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석모도(席毛島)로 기록되어 있다. 

-- 다음백과 --

 

 

 

▲ 해명산 높이가 각각다르다.

다음백과에는 309m..일반지도에는 347m.. 정상에는 324m..

어느게 맞는 걸까?

 

해명산 높이에 대한 해명은 해명산한테 들어야 되는데

뱃속에서는 12시의 마음점을 찍으라고 성화부르스다.

 

해명을 듣지도 못하고 점찍을 장소로 이동.

해명산 정상은 그늘이 없는 암봉이다.

 

 

 

 

 

 

▲ 분꽃나무꽃.

 

 

 

▲ 꽃말은 수줍음..

 

 

 

 

 

 

 

 

▲ 지나온 해명산 능선.

 

 

 

 

▲ 방개고개로 뚝 떨어지는 오늘 산행중의

가장 급한 내림길이다.

 

 

 

▲ 제비꽃.

 

 


13시 04분 : 방개고개.

 

 

 

▲ 니는 우째서 혼자고?..

 

 

 

 

 

 

▲ 천생연분.

두~ 마음 하나로 꽁꽁 묶어서

세월을 저어갑니다.

 

 

 

▲ 천생연분. 

인생이라는 강물위에다

천생연분 배 띄워놓고

당신도 여보 나도 여보 같은 배를 탄 사람

행복도 시작 꿈도 시작 이별없는 사랑도 시작

두 몸을 하나로 꽁꽁 묶어서

세월을 저어갑니다~~..

 

 

 

▲ 앗!~.

 

KAL,, 부러진..

대한항공의 날개가..

 

갑질 논란으로 추락하는 J씨 일가의

부러진 날개 같다.

 

 

 

▲ 저기가 낙가산?..

 

 

 

▲ 낙가산의 존재는

이정표의 족보에도 없다.

 

 

 

 

 

 

 

▲ 참나무 충영(蟲廮).

 

 

 

▲ 큰구슬붕이.

꽃말은 기쁜소식...

 

 

 

▲ 병꽃나무.

"전설"이라는 꽃말이.

 

 

 

 

▲ 아랫돌이 빠지면?..

 

 

 

 

▲ 그냥...

 

 

 

▲ 각시붓꽃,,

꽃말..기별. 존경. 신비한 사랑..

 

 

 

▲ 애꾸눈 선장도 생각나고.

외눈박이,,,염소,, 상어... 물고기..

 

무언가 할말이 있는 듯한

측은함은 왜일까?.

 

 

 

▲ 보문사 주차장이 보이는걸 보니

낙가산이 지척일듯..

 

 

 

 

▲ 보문사가 발아래인걸 보니

낙가산에 다온것 같다..

 

 

 

▲ 낙가산 계단.

 

 

 

▲ 철망이 쳐진 눈썹바위 윗 부분.

 

나중에 안 것이지만..

마애불위로 흘러내리는 석간수의 물길을

돌리기위한 보가 설치되어 있다.

 

 

 

▲ 낙가산 정상.

정상석이 없다.

 

낙가산의 산명은 신라 선덕여왕 4년

금강산 보덕암에서 수도하던 회정스님이 이곳 봉황이 날아와

집을 짓는 형국의 명당에 자리잡고 절을 세울 때,

 

관세음보살이 계신다는 인도 남해의 보타 낙가산의 이름을 따라

뒷산을 낙가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해명산, 상봉산보다 낮으나 주변 경관이 좋다.

 

 

 

 

▲ 절고개에서 하산.

 

 

 

 

▲ 내려 오면서 확인되는 눈썹바위.

눈썹바위아래에 마애불이,,

 

지난 3월까지도

하산길에 눈썹바위로 바로 갈수 있었다는데..

그러나 사찰의 자산보호 목적으로

철조망으로 철벽(?)수비를 해 놓았다..

 

 

 

 

▲ 보문사 매표소.

철조망을 따라 내려오니 매표소 앞이다.

 

무조건 매표소를 통과 하도록 되었다.

보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직영사찰이란다..

 

 

 

▲ 보문사 일주문.

 

보문사의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전한다.

635년(선덕여왕 4) 4월,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 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로 던져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린 것은

돌덩이였으므로 다시 바다에 던졌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씩이나 던졌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날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노승이 일러준 대로 낙가산으로 이들을 옮겼는데,

현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으므로 “바로 이곳이 영장(靈場)이구나.” 하고는

굴 안에 단(壇)을 모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신라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고려 초기에 금강산 보덕굴(普德窟)에서 관음진신(觀音眞身)을 친견한

회정(懷正)이 이곳에 와서 불상을 살펴보니,

가운데 좌상은 석가모니불,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갈라보살이었고, 나머지는 18나한상과 송자관음이었다.

 

회정은 이 22존 중 삼존불과 18나한은 굴 속에 모시고

송자관음은 따로 관음전을 지어서 봉안한 다음

이 절을 낙가산 보문사라고 하였다. 

-- 다음백과 --

 

 

 

 

▲ 극락보전.

 

보문사의 역사는 사찰의 격에 비하여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 후기부터의 역사만이 전해지고 있다.

 

1812년(순조 12)에는 이 절의 승려들이

홍봉장(洪鳳章)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고,

 

1867년(고종 4)에는 경산(京山)이

석굴 안에 처마를 이어 나한전을 건조하였으며,

1893년(고종 30)에는 명성왕후의 전교로

요사채와 객실을 중건하였다.

 

 

 

▲ 눈썹바위 마애불로 가는길,

 

 

 

 

▲ 다 올라 온듯..

약 45도 경사에 축대를 쌓은 인간의 의지도 대단하다.

 

모르긴 몰라도 축대속에는 밀리지 않도록

바위에 앵커 볼트(anchor bolt)로 시공하였을 것이다.

 

 

 

 

▲ 가파른 계단을 올라

드디어 마애석불좌상..도착.

 

 

 

▲ 그런데..

불자는 아니지만..왠지모를 아쉬움에..

자세히 보니,,

 

석공의 한땀한땀

정으로 쪼아낸 투박함이 아니라..

기계로 다듬어진 매끄러움이다.

 

 

 

▲ 마애석불좌상.

 

마애석불좌상은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승려인 이화응(李華應)이

보문사 주지 배선주와 함께 조각한 것으로,

높이 9.2m, 폭 3.3m이다.

 

석불좌상의 상부에는 거대한 눈썹바위가 있고,

좌측에는 비명(碑銘)이 있으며,

불상 앞에는 소규모의 석등이 있다. 

-- 다음백과 --

 

 

 

▲ 내려다 보니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3대 관음도량임에 손색이 없다.

 

 

 

▲ 이 마애석불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며

바램이 이루어진다 혀여 찾는 이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니..

 

거업으로 치면

불황을 타지 않는 좋은 상품이요 아이탬이니..

조계종의 직영사찰로서

알짜배기 득템중에 한곳이다.

 

 

 

▲ 눈썹바위 사이로 흐르는 석간수.

 

 

 

 

 

 

 

 

 

▲ 보문사 석굴.

 

 

 

 

▲ 와불전.

 

 

 

 

 

 

 

 

▲ 오백나한.

 

 

 

▲ 악랄한 일제강점기때의 수탈의 아픔이

아직도 치유 되지 않은채 서 있다..

 

접근이 쉽지 않았을 석모도에서도 송진 채취를

하였던가 보다..

 

숱한 참배객들이 오고가는 길 안에 있음에도

관심은 언제나 길 밖이고...

 

아직도

일본을 알지 못한다.

 

눈으로 위로해 주고..

보문사 산문을 나선다..

 

나쁘노무

시모노씨끼들..

 

<참고자료> 

2017년 2월에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일본이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1년 ~ 1945년에

전쟁물자인 송탄유(松炭油)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전역의 소나무에서

송진 채취 흔적이 남아 있는 소나무 서식지를 조사하여

<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을 추진하고,

 

송진 채취 피해목의 역사적 가치를 기록문화로 남기기 위한

“송진 채취 피해 소나무 전국 분포도”를 제작한다고 밝혔다.

 

경북 문경, 충북 제천, 충남 보령, 충남 태안 및 서산,

경남 함양, 전북 남원, 경남 합천, 인천 강화 석모도 등의

8개지역, 총 121그루의 송진 채취 피해목을 표본조사한 결과,

 

소나무들의 건강상태는 대체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진 채취 피해 소나무 전국 분포도

석모도에서도..

 

 

 

15시 22분보문사 관음송(觀音松).

산행을 종료한다.

 

인천시 강화군 석모도,,

해명산 / 석가산 / 보문사..

먼길 달려온 보람은 충분히 있는 곳이었다.

 

하산 약속시간 보다 1시간 8분 일찍 내려와

강화 명품 인삼막걸리 한잔 마시고

 

오후 4시 25분에 출발한

리무진버스의 편안한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관음보살 그 고운 눈썹을 그리고 또 그리는데

흔들어 깨운다..

 

귀가길 4시간 30분이 어느새 후딱 가고

깨고보니 대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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