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8월 12일.중원산(800.4m) : 경기 양평군 용문면.

 

산행코스중원리공영주차장 - 하얀집민박 - 전망대소나무 - 중원산 정상 -

숯가마터 - 샘골갈림길 - 중원폭포 - 중원2리마을회관 하산완료.

산행시작 : 중원리공영주차장 10시 51분.

산행종료 : 중원2리 마을회관 15시 43분.

소요시간 : 약 7.5km / 4시간 52분 소요 / 휴식시간 포함.

 

10 : 51  중원리 공영주차장.

10 : 58  하얀집민박.

12 : 31  전망대소나무.

12 : 42  중원산 정상.

14 : 27  숯가마터.

14 : 51  샘골 갈림길.

15 : 17  중원폭포.

15 : 43  중원2리 마을회관 산행 완료.

16 : 05  용문산 관광지 이동 하산주.

17 : 08  용문산관광지 출발. 

 

11시 02분 : 중원리공용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중원계곡쪽으로 약300m정도 진행하다가

길가의 "하얀민박집" 입간판이 있는 곳에서

좌측의 임도로 진입하면

본격적인 산행 들머리를 알리는 시그널을 따른다.

 

 

 

▲ 이내,, 중원산 지능선에 올라 서고...

오늘도 수은주는..

여전히 35~6도를 오르내린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짙은 숲그늘을 만들어 주지만

숲속에 갇힌 열기와 육산의 흙냄새가

마치..옛날 고향집 마당의 가마솥 뚜껑을 갑자기 열었을때

확~ 하고 얼굴을 덮치던 그때의 뜨거운 열기처럼

얼굴에 화끈 거린다..

 

은근히...

계곡탐방조에 합류할껄..하는

미련도 있었지만

 

중원산을 올라야하는 이유가 있다.

짝궁댕이를 보고자 함이다.

 

  

 

▲ 모두가 비슷한 힘듦이지 싶다.

 

  

 

 

 

12시 31분 : 괴목소나무 전망대.

  

 

 

▲ 기이한 짝궁댕이 소나무다.

  

 

 

▲ 어제밤 열대야로 인해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해 힘든 산행이었지만..

 

짝궁댕이

너를 보고자 함이었다.

 

  

 

 

 

▲ 짝궁댕이라서

더욱 요염해 보이는 자태다.

 

  

 

 

 

 

 

12시 42분 : 중원산 정상.

 

 

 

 

▲ 중원산은 동전의 앞뒤와 같이 전혀 다른

두얼굴을 가진 산이다.

 

올라올때는 육산이더

중원폭포로 가는 내림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암릉과 너덜길이다.

 

 

 

▲ 서쪽으로는 용문산이 조망되고...

 

  

 

 

 

▲ 건너편의 도일봉.

중원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도일봉의 백백교(白白敎)이야기>. 

옛날엔 이 일대가 아주 깊은 오지여서

소위 백백교(白白敎)의 지도부가 은거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백백교(白白敎)는.

1900년대 초, 중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이비 종교를 일컫는 말이다. 

1900년대 초반은

일제에 의해 한일합방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그 당시의 사회적 혼란을 틈타서 사이비 종교들이 속출했는데,

그 중에서도 종말론을 앞세운 백백교가 대표적인 사이비 종교였다. 

 

백백교를 창시한 전용해(全龍海)는 깊은 사상이나

도덕적 근거도 없이 탐욕을 바탕으로 한 사이비 교주였다.

 

그리하여 전용해와 그를 추종하는 심복 일당들은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여신도를 속여서 간음하는 등

범죄행각을 일삼았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범죄행각이 탄로 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비밀을 누설할만한 위험이 있는 신도들을 골라 살해하였다.

 

결과 교주 전용해의 심복 이경득(李敬得) 등이

도일봉 부근에서 살해하여 암매장한 시체를 비롯하여

전체 피살된 신도 수가 3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하여 1937년 그 범죄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수사망이 좁혀오자 전용해는 용문산 부근에서 자살하고,

150여명의 간부들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런 범죄 행각이 이루어질 정도로

당시 이 일대는 으슥한 오지였다.

 

 

 

▲ 다시 용문산을 조망하고

좌측으로 보이는 삼각형의 뾰족한 산은

백운봉이다.

 

 

 

 

 

▲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 진다는 너덜겅이다..

 

 

 

▲ 첫번째 숯가마터.

 

  

 

▲ 두번째 숯가마터.

 

  

 

14시 51분 : 중원계곡.

 

  

 

 

▲ 가뭄과 폭염으로 수량은 적지만..

수질은 아주 좋다.

 

  

 

▲ 중원폭포 상류,

 

 

 

▲ 물반 고기반이 아니라..

물보다 사람이 더 많다..ㅎㅎㅎ~

  

 

 

▲ 헐!~~...

완전 구정물...

아니... 땟국물로 변했다.

 

  

 

▲ 완전..아수라장(阿修羅場)..

이라는 단어가..

 

아니온듯 다녀 가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작은 쓰레기 하나라도

본인들이 챙겨 가기를...

 

  

 

▲ 꽉 들어찬 소형주차장의..

차들 사이로 요리조리 겨우 헤집고 나와서

산악회버스를 찾아 간다..

 

주차할 곳이 없어서 중원리 마을회관앞에 대기중이라는

산악회버스를 찾아서..

 

헛둘헛둘~..

땡볕에 마라톤이다.

 

 

 

16시 06분 : 멀리 용문산이 보이고

용문사의 트레이드마크인 은행나무를 이미지화 한

 

  

 

▲ 용문산관광단지로 이동하여..

 

  

 

▲ 하산주...

 

좀처럼 물러가지 않는 염천에도

산행주선하고 뒤풀이행사까지 열정으주선하신

집행부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거듭되는 하산주 건배에..

취기는 적당히 오르고

기분은 알딸딸 하고..

 

중원산 짝궁댕이 소나무가 만들어가는

자연의 아름다운 곡선이

눈에 삼삼하다..

 

 

2018년 05월 06일

경기도 여주 <신륵사> 관광.

 

협력산악회인 대구 솔잎산악회의 창립산행으로

경기도 이천시 <도드람산 / 설봉산> 산행이 목적이었으나

우천으로 인해 이천에서 가까운 여주의 <신륵사>주변을 걷는가벼운 트레킹으로 변경. 

 

▲ 때 맞추어 여주에는

5월 5일부터 22일까지 도자기 축제가 열리고 있다.

 

  

 

여주군은 예로부터 <싸리산>언저리를 중심으로

도자기 원료인 질좋은 고령토와 백토등이 생산되어

1,100년 전인 고려 초부터 도자기가 만들어진 곳이다.

 

 

 

▲ 신륵사(神勒寺) 일주문. 

현판에는 봉미산신륵사(鳳尾山神勒寺)라 되어 있다.

봉미산은 봉황이 날아드는 형세라고 한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에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전한다.

 

 

 

▲ 불이문(不二門).

 

불이(不二)’란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의 다른 말이다.

 

즉 부처와 중생, 나와 남, 선과 악이 둘이 아니며,

나아가 생과 사도 둘이 아니라는 연기법(緣起法)의 진리를 말한다.

 

불이문을 다른 이름으로 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누구나 이 문을 왕래하는 이들이 진리를 깨닫고

잊었던 본성을 되찾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전각이다.

 

 

 

 

▲ 세심정(洗心亭).

정안수로 마음을 씻어 내고.

 

 

 

 

▲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

그 중에 하나..

 

고려 고종 때 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났는데,

이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워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 라는 것이다.

 

 

 

▲ 보호수 향나무.

수령,,600년..아니..636년..

 

지정일이 1982년이니 36년전이다,,

해서..636살이다.

ㅎㅎㅎ.

 

 

 

 

 

 

▲ 조사당(祖師堂)...보물 제180호.

 

 

 

▲ 가운데는 나옹선사.

좌우에는 지공대사와 무학대사를 모셨다.

 

  

 

 

 

 

▲ 신륵사 극락보전.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생각하고 생각해서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르면..

 

착득심두절막망(着得心頭切莫忘)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말라.. 

어렵고.. 어렵다.

 

 

 

 

▲ 가운데에..부처님 머리위에

문재인 대통령..

그 오른쪽으로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보이나요?..

 

 

 

 

▲ 다층석탑...보물225호.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다층전탑(多層塼塔)/(보물 제226호).

 

 

 

▲ 대장각기비각(大藏閣記碑閣)/보물 제230호.

 

 

 

▲ 봉미산 산책로,

 

 

 

▲ 수목장,..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보물 제228호).

 

 

 

 

 

 

 

 강월헌(江月軒).

 

남한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강월헌은

6각형의 정자로 주위 경치와도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건물이다.

 

강월헌이 세워진 곳은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다비장소(화장터)였으며,

 

나옹의 문도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나옹 생전의 당호(當號)인 강월헌이라 이름하였다.

 

 

 

 나옹선사의 다비를 기념하여

세웠다는 3층석탑.

 

 

 

▲ 3층석탑과 강월헌.

 

 

 

▲ 아름다운 남한강을 굽어보는

3층석탑.

 

 

 

▲ 남한강..

조포나룻터 나룻배.

 

여기에는 어린 생명들을 앗아간

안타까운 인재사고가 있었던 장소인데

 

아픔은 세월속에 무디어지고

강은 말이 없다.

 

<조포나루터 익사 사고>. 

1963년 10월 23일 조포나루터에서

나룻배가 침몰하여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익사한 사고이다.

 

경기도 여주시(당시 여주군) 신륵사소풍을 갔다가 돌아오던

안양 안양남초등학교(당시 흥안초등학교)

5, 6학년 학생들이 탄 나룻배가

 

남한강상류 조포나루터에서 침몰하여

남녀 어린이 37명,

교사와 학부모 12명 등이 익사하였다.

 

사고의 원인은 승선 정원 2배 초과,

나룻배를 밀어주던 모터보트의 과속 등이었다.

 

 

 

 

▲ 조포나루터.

 

 

 

 

 

 

 

 

▲ 비를 머금은 모습에도

고귀하고 아름답다.

 

 

 

 

 

 

 

▲ 제목... 노인(老人)

 

 

 

 

 

 

 

 

 

 

 

 

▲ 어제(5월 5일).

모처에 산행을 갔다가 더덕을 만났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 대박에 또 대박..

붉은색의 변이종 <홍더덕>을 만났다.

 

 

 

▲ 일반 더덕과의 비교...

확실히 다르다.

 

아끼다가 떵 될것 가타서,,

즉석 보신용으로 아작아작 하고.....

 

 

 

나머지..몇뿌리는 오늘..

솔잎의 창립기념으로 즉석 더덕 담금주를 만들어..

 

일배일배 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 라..

 

두사람이 마주 앉아

술한잔을 나누니 산에는 꽃이 피고

 

한잔 한잔 또 한잔에

그대 얼굴에도 붉은 꽃이 피는 구나.

 

 

 

 

 

  

 

 

 

 

 

 

 

 

 

 

 

 

 

 

 

살다보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거나 큰 일이 발생을 한다. 

 

오늘이 그렇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게 된곳...

신륵사.. 

 

그런데.. 한마디로 좋다..잘 왔다.

피할수 없다면 즐기자.

 

 

2018년 04월 29일 <해명산 324m / 낙가산 235m> :인천 강화군 석모도.

 

산행코스전득이고개 - 해명산 - 석가산 - 보문사 -눈썹바위 마애불 - 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전득이 고개  11시 06분.

산행종료 : 보문사주차장 15시 22분.

소요시간 : 약 6.7km / 4시간 16분 소요 / 휴식시간 포함.

 

11 : 04  전득이 고개.

11 : 53  해명산 정상.

13 : 54  낙가산 정상.

14 : 26  보문사 매표소.

14 : 45  눈썹바위 마애불.

15 : 22  보문사 주차장 산행 완료.

 

11시 06분 : 전득이 고개.

 

대구에서 06시 35분 출발.

석모도 산행들머리 전득이고개 11시 04분 도착때 까지

 

괴산휴게소에서 20분 가량 아침 먹은 시간을 빼면

정확히 4시간 29분을 꼼짝없이 차안에 갇혀(?)

달려온 석모도..

 

그나마도

강화와.. 석모를 잇는 석모교가 개통 되었으니 망정이지

배로 건넜다면 12시가 넘었을 것이다.

 

벼르고 온길이니

주어진 시간 안에 제대로 보고, 걷고, 즐기고 가자.

 

 


▲ 길건너의 널따란 주차장.

 

  

 

▲ 산행시작 10여분 만에 만나는 쉼터.

 

대개의 섬산행이 그러하듯이

들머리에서부터 가파르게 치고 오를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등로는 보통경사에 유순하다.

 

 

 

▲ 오늘 함께할 동행..

 

 

 

▲ 첫번째 조망처에서..

 

섬산행의 맛은 시원한 조망을 즐기는 것인데..

건너편의 <강화 마니산>이

봄철 황사의 심술로 아른거린다.

 

 

 

▲ 산행 출발지였던 전득이고개.

 

<전득이 고개>의 유래가 궁금해서

수소문 해보니..

 

오래전 이 곳은 "전씨댁" 소유의 땅을 지나는 고개 였단다.

해서...전씨댁네 고개~전댁네 고개~전댁이 고개로 불리우다가

지금의 전득이 고개가 되었다고..

믿거나 말거나.~.

 

 

  

▲ 해안 갯벌 들녁에는

무언가의 자연순환(自然循環)에 역행하는

대단위 토목공사가 있는듯 하여..

 

 

 

▲ 당겨 보니 큰공사 임에는 분명한데

어떤 용도의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자연 파괴의

분탕질인지 알수가 없다.

 

 

 

▲ 산중 간이매점의 쥔장..

여유로워 보여서 좋다.

 

 

 

▲ 하산길이라면 헌잔.. 쭈~~욱!..

유혹을 물리치고..

 

 

 

▲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

2017년 6월 28일 개통.

 

디자인이

별로 특징없는 다리다.



 

 

 

▲ 해명산 인듯..




▲ 넓적한 바위들이

강화의 마니산을 오르는 것 같다.

 

 

 

 

 

 

 

11시 53분 : 해명산 정상.

 

대동여지도에는 ‘석모로도(席毛老島)’로 표기되어 있다.

"석모로"라는 지명은 "물이 돌아 흐르는 모퉁이"

혹은 "돌이 많은 해안 모퉁이" 라는 뜻이다.

 

<돌모로>를 한자화하면서 석모로(石毛老)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석모도(席毛島)로 기록되어 있다. 

-- 다음백과 --

 

 

 

▲ 해명산 높이가 각각다르다.

다음백과에는 309m..일반지도에는 347m.. 정상에는 324m..

어느게 맞는 걸까?

 

해명산 높이에 대한 해명은 해명산한테 들어야 되는데

뱃속에서는 12시의 마음점을 찍으라고 성화부르스다.

 

해명을 듣지도 못하고 점찍을 장소로 이동.

해명산 정상은 그늘이 없는 암봉이다.

 

 

 

 

 

 

▲ 분꽃나무꽃.

 

 

 

▲ 꽃말은 수줍음..

 

 

 

 

 

 

 

 

▲ 지나온 해명산 능선.

 

 

 

 

▲ 방개고개로 뚝 떨어지는 오늘 산행중의

가장 급한 내림길이다.

 

 

 

▲ 제비꽃.

 

 


13시 04분 : 방개고개.

 

 

 

▲ 니는 우째서 혼자고?..

 

 

 

 

 

 

▲ 천생연분.

두~ 마음 하나로 꽁꽁 묶어서

세월을 저어갑니다.

 

 

 

▲ 천생연분. 

인생이라는 강물위에다

천생연분 배 띄워놓고

당신도 여보 나도 여보 같은 배를 탄 사람

행복도 시작 꿈도 시작 이별없는 사랑도 시작

두 몸을 하나로 꽁꽁 묶어서

세월을 저어갑니다~~..

 

 

 

▲ 앗!~.

 

KAL,, 부러진..

대한항공의 날개가..

 

갑질 논란으로 추락하는 J씨 일가의

부러진 날개 같다.

 

 

 

▲ 저기가 낙가산?..

 

 

 

▲ 낙가산의 존재는

이정표의 족보에도 없다.

 

 

 

 

 

 

 

▲ 참나무 충영(蟲廮).

 

 

 

▲ 큰구슬붕이.

꽃말은 기쁜소식...

 

 

 

▲ 병꽃나무.

"전설"이라는 꽃말이.

 

 

 

 

▲ 아랫돌이 빠지면?..

 

 

 

 

▲ 그냥...

 

 

 

▲ 각시붓꽃,,

꽃말..기별. 존경. 신비한 사랑..

 

 

 

▲ 애꾸눈 선장도 생각나고.

외눈박이,,,염소,, 상어... 물고기..

 

무언가 할말이 있는 듯한

측은함은 왜일까?.

 

 

 

▲ 보문사 주차장이 보이는걸 보니

낙가산이 지척일듯..

 

 

 

 

▲ 보문사가 발아래인걸 보니

낙가산에 다온것 같다..

 

 

 

▲ 낙가산 계단.

 

 

 

▲ 철망이 쳐진 눈썹바위 윗 부분.

 

나중에 안 것이지만..

마애불위로 흘러내리는 석간수의 물길을

돌리기위한 보가 설치되어 있다.

 

 

 

▲ 낙가산 정상.

정상석이 없다.

 

낙가산의 산명은 신라 선덕여왕 4년

금강산 보덕암에서 수도하던 회정스님이 이곳 봉황이 날아와

집을 짓는 형국의 명당에 자리잡고 절을 세울 때,

 

관세음보살이 계신다는 인도 남해의 보타 낙가산의 이름을 따라

뒷산을 낙가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해명산, 상봉산보다 낮으나 주변 경관이 좋다.

 

 

 

 

▲ 절고개에서 하산.

 

 

 

 

▲ 내려 오면서 확인되는 눈썹바위.

눈썹바위아래에 마애불이,,

 

지난 3월까지도

하산길에 눈썹바위로 바로 갈수 있었다는데..

그러나 사찰의 자산보호 목적으로

철조망으로 철벽(?)수비를 해 놓았다..

 

 

 

 

▲ 보문사 매표소.

철조망을 따라 내려오니 매표소 앞이다.

 

무조건 매표소를 통과 하도록 되었다.

보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직영사찰이란다..

 

 

 

▲ 보문사 일주문.

 

보문사의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전한다.

635년(선덕여왕 4) 4월,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 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로 던져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린 것은

돌덩이였으므로 다시 바다에 던졌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씩이나 던졌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날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노승이 일러준 대로 낙가산으로 이들을 옮겼는데,

현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으므로 “바로 이곳이 영장(靈場)이구나.” 하고는

굴 안에 단(壇)을 모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신라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고려 초기에 금강산 보덕굴(普德窟)에서 관음진신(觀音眞身)을 친견한

회정(懷正)이 이곳에 와서 불상을 살펴보니,

가운데 좌상은 석가모니불,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갈라보살이었고, 나머지는 18나한상과 송자관음이었다.

 

회정은 이 22존 중 삼존불과 18나한은 굴 속에 모시고

송자관음은 따로 관음전을 지어서 봉안한 다음

이 절을 낙가산 보문사라고 하였다. 

-- 다음백과 --

 

 

 

 

▲ 극락보전.

 

보문사의 역사는 사찰의 격에 비하여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 후기부터의 역사만이 전해지고 있다.

 

1812년(순조 12)에는 이 절의 승려들이

홍봉장(洪鳳章)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고,

 

1867년(고종 4)에는 경산(京山)이

석굴 안에 처마를 이어 나한전을 건조하였으며,

1893년(고종 30)에는 명성왕후의 전교로

요사채와 객실을 중건하였다.

 

 

 

▲ 눈썹바위 마애불로 가는길,

 

 

 

 

▲ 다 올라 온듯..

약 45도 경사에 축대를 쌓은 인간의 의지도 대단하다.

 

모르긴 몰라도 축대속에는 밀리지 않도록

바위에 앵커 볼트(anchor bolt)로 시공하였을 것이다.

 

 

 

 

▲ 가파른 계단을 올라

드디어 마애석불좌상..도착.

 

 

 

▲ 그런데..

불자는 아니지만..왠지모를 아쉬움에..

자세히 보니,,

 

석공의 한땀한땀

정으로 쪼아낸 투박함이 아니라..

기계로 다듬어진 매끄러움이다.

 

 

 

▲ 마애석불좌상.

 

마애석불좌상은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승려인 이화응(李華應)이

보문사 주지 배선주와 함께 조각한 것으로,

높이 9.2m, 폭 3.3m이다.

 

석불좌상의 상부에는 거대한 눈썹바위가 있고,

좌측에는 비명(碑銘)이 있으며,

불상 앞에는 소규모의 석등이 있다. 

-- 다음백과 --

 

 

 

▲ 내려다 보니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3대 관음도량임에 손색이 없다.

 

 

 

▲ 이 마애석불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며

바램이 이루어진다 혀여 찾는 이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니..

 

거업으로 치면

불황을 타지 않는 좋은 상품이요 아이탬이니..

조계종의 직영사찰로서

알짜배기 득템중에 한곳이다.

 

 

 

▲ 눈썹바위 사이로 흐르는 석간수.

 

 

 

 

 

 

 

 

 

▲ 보문사 석굴.

 

 

 

 

▲ 와불전.

 

 

 

 

 

 

 

 

▲ 오백나한.

 

 

 

▲ 악랄한 일제강점기때의 수탈의 아픔이

아직도 치유 되지 않은채 서 있다..

 

접근이 쉽지 않았을 석모도에서도 송진 채취를

하였던가 보다..

 

숱한 참배객들이 오고가는 길 안에 있음에도

관심은 언제나 길 밖이고...

 

아직도

일본을 알지 못한다.

 

눈으로 위로해 주고..

보문사 산문을 나선다..

 

나쁘노무

시모노씨끼들..

 

<참고자료> 

2017년 2월에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일본이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1년 ~ 1945년에

전쟁물자인 송탄유(松炭油)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전역의 소나무에서

송진 채취 흔적이 남아 있는 소나무 서식지를 조사하여

<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을 추진하고,

 

송진 채취 피해목의 역사적 가치를 기록문화로 남기기 위한

“송진 채취 피해 소나무 전국 분포도”를 제작한다고 밝혔다.

 

경북 문경, 충북 제천, 충남 보령, 충남 태안 및 서산,

경남 함양, 전북 남원, 경남 합천, 인천 강화 석모도 등의

8개지역, 총 121그루의 송진 채취 피해목을 표본조사한 결과,

 

소나무들의 건강상태는 대체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진 채취 피해 소나무 전국 분포도

석모도에서도..

 

 

 

15시 22분보문사 관음송(觀音松).

산행을 종료한다.

 

인천시 강화군 석모도,,

해명산 / 석가산 / 보문사..

먼길 달려온 보람은 충분히 있는 곳이었다.

 

하산 약속시간 보다 1시간 8분 일찍 내려와

강화 명품 인삼막걸리 한잔 마시고

 

오후 4시 25분에 출발한

리무진버스의 편안한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관음보살 그 고운 눈썹을 그리고 또 그리는데

흔들어 깨운다..

 

귀가길 4시간 30분이 어느새 후딱 가고

깨고보니 대구란다..

 

 

2016년 04월 17일 대부도(해솔길)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산행코스 : 구봉주차장 - 구봉약수터 - 낙조전망대 - 할배 할매바위 - 

종현어촌체험마을 - 구봉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구봉주차장 12시 06분

하산완료 : 구봉저수지 14시 34분

(2시간 28분 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1206  구봉 주차장 도착.

12 : 26  구봉 약수터.

13 : 44  낙조 전망대.

14 : 21  할배 할매 바위.

14 : 25  종현어촌체험마을.

14 : 34  구봉 주차장 하산완료.

 

12시 06분 : 경기도 안산 대부도 구봉 주차장 도착.

 



해솔길 들머리 입구.

 

 

 

들머리에서 대구솔뫼산악회 단체 인증샷.

 

 

 

구봉약수터를 경유하는 길을 잡는다.

 

 

 

가족의 화목을 의미하는 듯한 해솔길 조형물.

 

 

 

대구에는 산과 들이 제법 신록이 우거져

숲의 속살이 보이지 않는데 여기는 이제 새잎이 돋아 난다.

대구와는 1주일정도의 차이가 나는것 같다.

 

 

 

▲ 엥?... 고슴도치?..

 

 

 

▲ 멀리 풍력발전소가 보인다.

 

 

 

▲ 구봉약수터 내려가는길..

등산로에서 30m 아래에 있어 다녀오기로 한다.

 

 

 

1226분 : 구봉 약수터(일명 : 천령물 약수터).

 

바로 옆이 바다인데 샘이 솟는게 신기하고.

물맛은 담백하다.

 

 

 

▲ 약수터가 있고. 넓은 공터가 있어많은 사람들이

갯가 체험도 하며 쉬어가기 좋은곳이다.

 

 

 

 

▲ 저멀리 보이는 변도(便島)

모양이 변 무더기 같다하여 똥섬이라고 한다.

 

 

 

 

▲ 다시 등산로로 올라와..

 

 

 

12시 50분 : 마음에 점을 찍고..

 

대구에서 먼거리를 달려 오다보니

도착 시간이 늦어 다소 늦은 점심으로 시장기를 달랜다.

 

 

 

 

 

▲ 사용하지 않는 해안경비 초소..

 

해솔길을 검색하다보면 초소가 보기 흉하다, 철거해라..

라는 글들이.. 더러 보인다.

 

시민들에게 쉴 공간을 마련해 놓고는..

굳이,,,흉하게 방치하는것은 미관상에도 좀 그렇긴 하지만..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깨끗하게 보수하여 보여주는 안보교육의 장으로

활용 하는게 더 좋을 것이다.

 

 

 

 

 

▲ 개미허리 아치교.

다리아래는 밀물때는 물에 잠기는데

지금은 썰물때인지 바닥이 드러나 있다.

 



▲ 4월 16일 토요일 저녁때부터 전국적으로

불기 시작한 강풍의 영향으로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걷기가 어렵다.

 

 

 

 

 

 

▲ 바람을 카메라에 담기는 어렵다..

그러나,, 춤을 추는 나무가지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을 담는다.

 

 

 

 

 

 

▲ 낙조전망대 가는 길.

 

 

 

▲ 낙조전망대가 보인다.

 

 

 

 

 

 

▲ 전망대 조형물,,

 

석양을 형상화 하였다고 하며 가운데로

떨어지는 석양이 멋지다고 한다.

 

 

 

▲ 멀리 보이는 똥섬.

그 너머로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가 있다.

 

 

 

 

 

 

 

▲ 이리 보고..

 

 

 

▲ 조리 보고..

 

 

 

▲ 아우님도 보고..

 

 

 

▲ 저 길로 되돌아 가기전에.

 

 

 

▲ 한번 더 뒤돌아 보고...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를 담아보고 싶지만..

거리가 멀어 아쉽다.

 

 

 

 

 

 

▲ 해안 산책로.

 

 

 

▲ 파도에 밀려온 보더라운 조개껍질들..

 

 

 

 

 

▲ 영흥도로 가는 영흥대교가 멀리 보인다.

 

 

 

 

 

 

 

▲ 지금 물때가 밀물이라서 1~2시간 후면 물에 잔길 것이다..

 

 

 

▲ 파헤쳐진 해안도로..

 

 

 

 

▲ 오늘 처음 뵙는분도 있고

먼길을 함께 버스를 타고온 횐님들이라서,,

"사장님들 돌아 보세요~" 했더니

폼들을 잡아 주신다..

 

 

 

▲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지나왔던 개미허리 아치교를 돌아보니 그림이다.

 

 

 

▲ 종현마을 어촌체험 열차.

 

 

 

▲ 이쪽에서 보니

큰 곰 같기도 하고... 독수리 같기도 한.

할배할매바위.

 

  

 

▲ 할배할매 바위.

 

옛날 옛적에 구봉도에 금슬이 좋은 노부부가 살았는데

어느날 할아버지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는데 돌아올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아서 바닷가에 나가 할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할머니는

기다림에 지쳐서 망부석이 되었다.

 

수년이 흐른뒤 구사일생으로 마을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망부석이된 할머니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구슬피 울다가

그대로 돌로 굳어졌다고 하는데 지금도 할아배 바위를 보면

커다란 독수리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큰곰으로 보이기도 하는 바위가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는 듯한 모습이 엿보인다.

 

 

 

 

 

 

 

▲ 할매 바위..

 

 

 

▲ 뱃살 검사대.

 

몸매에 특히나 관심이 많은 젊은 청춘들이

통과해보고 즐거워 하고 있다.

 

 

 

 

 

 

 

▲ 종현어촌체험마을.

 

 

 

▲ 상가 밀집지역.

 

 

 

 

 

 

▲ 구봉 주차장에 원점회귀,,

트레킹을 마치고 주변을 둘어본다..

 

 


▲ 낚시터인데...하도 넓어서,,

 

 

 

▲ 이쪽 저쪽 담아 본다.

 

 

 

▲ 낚시 삼매경에 빠진 강태공들..

 

 

 

▲ 바닷가로 나갔더니.

 

 

 

▲ 산악용 사륜바이크장도 있다.

 

 

 

▲ 와우~~

남다른 분위기의 포스를 보이는 총무님...

워낙 조용한 이미지라서,, 천상 여자인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터프한 면도 있었는줄 몰랐습니다..

Goooooooood~ 입니다.

 

 

 

▲ 대구솔뫼산악회 회장님..

 

결코,, 꾸밈이 없는,,, 당신의 진솔함이

사람의 마음을 당깁니다.

 

 

 

▲ 대구솔뫼산악회 멋짱.. 사무국장님.

 

배려하고 살펴주는 따뜻함이 있어

솔뫼를 찾게 됩니다.

 

 

 

▲ 부회장님..

 

미남형에,, 위트와 재치가 넘칩니다.

아마도, 학창시절에는 인기도 많았을듯 합니다.

 

 

 

▲ 스스럼 없는 당당함이 있어

보기 좋습니다..

 

 

 

▲ 산대장님...

 

무한반전의 매력이 있어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 산악회에서..

 

회장님과.. 사무국장. 산대장은 따로 떼어 낼수 없는

불가분의 관게입니다.

 

 

 

▲ 여성 수석부회장님.

 

노래면 노래..

악기 하면 색소폰.

완전 마이크 체질 인것 같습니다..

 

 

 

▲ 위하고 위하고 위하여!~... 건배!~..

 

 

 

▲ 하산주 사진을 담다보니..

분위기가 재미 있어서 <패러디> 해 봅니다..

 

진짜가 아닌 장난이란걸 다 아시지요?..

 

혹시라도 오해는 마시고

웃어 주세요~..

 

 

 

▲ 산악회에 이런 회장님은 흔치 않다.

 

머무른곳에... 아니 머무른듯...

내집마당을 쓸듯,, 손수 빗자루를 들고

뒤를 깨끗하게 쓸어낸다.

 

 

 

▲ 사무국장님 민망 했던지..

 

사무국장 : "회장님 빗자루 주이소,, 내가 쓸께요~~~"

회장님 : "괜찮아요~ 내가 쓸께요~"

 

 

 

▲ 아싸!~

 

울 회장님 멋져요..

싸랑해요..

 

민망함에,,,

손가락 하트를 마구 남발하는 사무국장님.

ㅋㅋㅋ~

 

 

 

▲ 솔뫼열차는 사랑은 싣고,,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기 머하는 기고...ㅋㅋㅋㅋㅋ

형님.. 사랑합니데이~...

아우님,, 나도 사랑해~ 

보이소... 여성 수석부회장님요..

잘 봤지요?

수석부회장님만 입술이 뽀개지도록 할줄 하능교?

 

남자들끼리도 사랑연출은 얼매든지

할 수 있심데~이..

 

 

 

▲ 시화방조제 제 1 배수갑문..

 

 

 

▲ 시화방조제(始華防潮堤)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호 간척 지대와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 대부도를 잇는 방조제이다.

 

1987년 4월 착공하여 1994년 1월 24일에 최종 물막이를 완료했다.

또한, 이와 함께 2차선 도로지방도 제30호으로 개설되어

시화 지구와 대부도를 잇는 도로 기능도 가지고 있다. 

-- 위키백과 발췌 --

 

 

 

1985년 대한민국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시화지구 간척사업계획'에 따라 계획되었다.

시흥군군자면과 화성군 대부면의 12.6km를 연결하여,

1억8000만톤의 담수호를 만든다는 것.

 

1단계로 방조제와 배수갑문, 830만평의 공단부지를 만드는 것,

2단계로 5300만평의 농지를 만들어 90년대 말까지 마무리 한다는 것이다.

 

간척공사는 산업기지개발공사가,

방조제 공사는 농업진흥공사가 나눠 맡는다는 것이었다.

 

이에따라 1987년 4월 30일 착공하였다.

방조제 축조에는 11개의 건설회사가 참여해

불도저 28대 등 400여대의 각종 장비를 투입하였다.

 

오이도에서 채취한 토석으로 폐염전과 갯펄을 매립하여 나갔다.

이는 조차가 최고 8.8m인 곳에 바닥폭 2~300m, 상부폭 30m, 높이 27m의

당대 최장 길이 둑을 세우는 것으로 토목계에서는 모험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더불어 물을 빼내기 위한 배수갑문 공사도

 가물막이와 구조물 공사가 진행되었다. 

-- 위키백과 발췌 --

 

 

 

방조제 공사는 대부도 인근의 어업에 타격을 주었다.

1986년 영흥도 주변 양식장으로 오수와 바닷진흙이에 흘러들었고,

인근의 어폐류 수확이 줄어들고 있는데다, 완공된 뒤에는 어장을 잃게된 것.

 

이에 어민들이 보상을 요구하였고,

한국수자원공사군산수산전문대학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29개 어장에서 256억4800만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예산부족을 들어 생계보조금만을 준 뒤 2년간 보상을 미루자

경기도가 일부를 지급해주기에 이른다. 

-- 위키백과 발췌 --

 

  

 

광대나물.

"그리운 봄" 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 조팝나무..

대구로 오는 길에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

 

<조팝나무 전설>


옛날 어느 마을에 수선이라는

성이 지극한 소녀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런던 어느날 마을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어서,

소녀의 아버지는 병사로 징집되어 나가게 되었다.

 

그후 아버지는 오랫동안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적국의 포로가 되었다는 소문이 전해지게 되었다.
기다리다 못한 수선은 직접 적국으로 찾아가

결국엔 감옥을 지키는 옥리가 된다.

아버지의 생사를 수소문하여보니

아버지는 그만 얼마전에 감옥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전해듣게 되었다.
슬픔에 북받친 수선이 그자리에서 주저앉아 목놓아 울게되고

그 모습을 본 적국에서는 수선이 적국의 사람이라는게 발각되나

수선의 지극한 효성으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후 수선은 아버지를 모셔오지 못한 슬픔에

적국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옆에있는 작은 나무 한그루를 캐와서

아버지를 모시듯 정성스레 키웠다고 한다.

이듬해 봄

그 나무는 하얗고 아름다운 꽃송이를 피우게 되는데 ..

그녀의 이름을 따서 수선국이라고 하기도 하고

꽃모양이 좁쌀을 튀겨놓은듯하다고 해서 조팝나무라고 불리기도하며..
눈처럼 새하얀 꽃이 소보록하니 핀다고해서

눈싸리꽃이라고하기도 한다...

하얀 눈꽃이 핀 것처럼

봄을 수놓고 있는 꽃은 조팝나무 이다.

 

오늘

<대구 솔뫼산악회>와 함께한

대부도 해솔길에서..

 

큰 앨범에 해솔길 추억 차곡히 담고

 

사랑 한바구니와.

행복 한바가지를.

가득 실은 <솔뫼 열차>는,,

대구의 보금자리로 향한다.

 

 

2014년 06월 22일 불국산(470m)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산행코스주시청주차장- 보루성 - 이동매점 - 불국산(상봉) - 상투봉 - 생쥐바위 - 임꺽정봉 -

420봉 - 공기돌바위 - 악어바위 - 복주머니바위 - 대교아파트 산완료.

 

행시작 : 양주시청주차장 : 10시 20분 산행시작.

하산완료 : 대교아파트 : 14시 30분. 

(4시간 10분 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07 : 05  성서홈플러스 출발.

10 : 20  양주시청주차장 도.

11 : 05  보루성.

11 : 35  이동매점.

11 : 48  불국산 정상.

12 : 35  상투봉 정상.

12 : 46  생쥐바위.

13 : 14  임꺽정봉.

13 : 28  공기돌바위.

13 : 39  악어바위.

13 : 49  복주머니바위.

14 : 30  대교아파트 하산완료.

14 : 20  하산주.

15 : 20  출발.

20 : 15  대구 도착(반월당 기준)..  

 

▲ 10시 20분 : 경기도 양주시청 주차장 도착.

 

거리가 먼관계로 아침식사는 김밥과 떡으로 대체하여 차안에서 해결하고

중부내륙고속도로 경유 문경휴게소와 여주휴게소 두군데 10분씩만 들리고 논스톱으로

대구에서 약3시간 10여분 만에 주파..

 

오늘부터 <솔향기>와 함께 할 경성관광기사님

앞으로도 솔향기의 발이 되어 안전운행 부탁 합니다.

 



▲ 양주시청 정문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면..

 

 

 

▲ 주차 차단기가 보이고 왼쪽으로..

 

 

 

▲ 불곡산 등산로입구.

 

양주시민들이 아끼는 산이라 <숲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등산로 정비를

잘해 놓았다.

 

 

 

 

 ▲ 불곡산 <보루성> 흔적.

 

불곡산 능선에는 남쪽으로 의정부 일대와

동쪽으로 3번국도 일대를 한 눈에 내려다 보면서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보루성' 흔적이 여러곳에 남아 있다.

 

이런 지형적 여건 때문에

고구려는 불곡산 능선을 따라서 9곳에 보루성을 쌓았다.

 

보루성은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곳에 돌로 쌓은 작은 산성으로

불국산에는 9보루까지 안내표지가 있는데

주봉인 상봉(470.7m)이 6보루, 상투봉이 7보루,

임꺽정봉(449.5m)이 8보루이다.

 

 

 

 

 

 

▲ 노송이 아름다운 360봉 오름길.

 

 

 

▲ 360봉에서 바라본 불곡산 정상.

 

 

 

▲ 11시 35분 : 불국산아래 매점.

캔맥주 한개 3,000원.

 

 

 

 

▲ 펭귄바위.

 

 

 

 

 

 

▲ 산은 낮지만.. 암릉미를 고루 갖추고 있다.

 

 

 

 

 11시 51분 : 불곡산 정상.

 

수도권에 가까운 곳이라 엄청많은 산객으로

정상석 쟁탈전이 치열하다..

 

 

 

▲ 불곡산정상 인증샷.

불곡산(일명 불국산)은 대동여지도에서'양주의 진산'이라 불릴 정도로 양주의 주산이다.

'해동지도'(1760)나 '대동여지도' (1861) 에는불곡산(佛谷山)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양주목지도'(1872)에는 불국산(佛國山)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예전에 회양목이 많아 겨울철이면빨갛게 물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국립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는 나라 국(國)자를 사용해

불국산(佛國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 건너다 보이는 임꺽정봉.

 

 

 

▲ 발아래 <상투봉>이 내려다 보인다.

 

 

 

 

 

 

 

 

 

 

 

 

 

 

 

 

 12시 35분 : 상투봉,

 

 

 

 

 

 

 

▲ 불곡산이 있는 양주시 유양동 일대는 임꺽정의 태생지로

많은 전설과 일화가 전해 지고 있다.

 

 주위의 골짜기는 소나무가 많다 하여 청송(靑松)골,

소나무가 웃는다 하여 청소(靑笑)골.

자연이 아름답다 하여 천연(天然)골,등등...

여러가지 이름이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 상투봉의 거대한 암릉은 어디에 내어 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

 

 

 

 

 

▲ 바위틈에 핀 돌양지꽃,

 

 

 

 

 

 

▲ 12시 46분 : 생쥐바위.. 정말 귀엽게 생겼다. 
징그런 쥐가 아니라 귀여운 생쥐,,, 맞다

.

 

 

▲ 엄마가슴바위.

 

 

 

▲ 그럼,, 요건 뭘까요..

 

 

 

▲ 악어바위 능선을 당겨 본다.

 

 

 

▲ 420봉 오름길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낮은 산이라고 얕보다가는 큰코 다친다..ㅎㅎㅎ

 

 

 

 

▲ 돌양지꽃..

목을 길게 내밀고 누구를 기다리나..

 

 

 

 

 

▲ 물개바위..

눈까지 보여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 물개 눈처럼 홈을 파고 동전을 붙여 놓았다..

 

 

 

 

▲ 임꺽정봉 오름길.

 

안부로 내려 섰다가 올라 간다.

하산길인 악어바위 능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420봉으로 다시 돌아 와야 된다.

 

 

 

▲ 임꺽정봉의 추억의 아이스께끼..

개당 원가 / 80원.

판매가 1,000원.. 최소 하루 200개만 팔아도,, 괜찮네..ㅋㅋㅋ

 

 

 

 

 

▲ 임꺽정봉.

 

양주시 유양리에서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난 임꺽정은

조선시대에 홍길동, 장길산과 더불어 3대 도적으로 조선왕조 명종때

약3년간에 걸쳐서 황해도를 중심으로 함경도, 평안도, 강원도,

충청도 지방까지 활동하였던 도적의 우두머리이다.

 

조선실록에 등장하는 실존인물인 그는 우리에게는 소설속의 인물,

괴력을 지닌 전설적인 인물로 더욱 익숙해져 있으며,

천대받던 백정의 신분으로 당시 집권 세력의 탄압 등 사회적 모순속에

살아남기 위해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를 우리는 한낱 도적의 괴수로서가 아니라

영국의 로빈홋과 같이 민중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준 의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임꺽정은 일반 도적무리와는 달리 조직적인 집단을 형성하여 엄청난 세력을 갖추었으며,

조정에서는 체제유지의 불안을 느껴 그를 체포하기 위해 온갖 노력

신출귀몰한 그의 행적과 그를 옹호하는 민중의 도움 속에서

조정에서 파견한 토포사 남치근에 의해 체포되기까지무려 3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 군부대가 있는 369봉..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다.

 

앞의 전망대 바위는 사람얼굴처럼 보이는데

<수류탄 바위>라고 한다.

군사지역이 많다보니 명칭도 이렇게

짓는가 보다.

 

 

 

▲ 이건 무슨 바위일까?

임꺽정이 먹다가 남은 돼지머리일까..ㅎㅎ

 

 

 

▲ 보이는 능선이 악어바위 능선이다.

 



▲ 하산지점을 가늠해보니..

산 내림이 끝나는 지점에 대교 아파트가 보인다.

 

 

 

▲ 13시 28분 : 공기돌 바위.지금부터 불곡산의 온갖 유명한 볼꺼리들이 나타난다.

 

 

 

 

▲ 뒤애서 보면 이런 모습인데..

 

 

 

▲ 코끼리바위.

 

 

 

 

 

▲ 신선대(神仙臺). 

대(臺) 봉(峰)차이는,,

바위들이 뾰족뾰족 서 있는 곳을 대라 부르고

비교적 능선이 부드러운 봉우리를 봉이라 부른다.


 

 

▲ 올려다 본 임꺽정봉.

 

 

 

▲ 13시 39분 : 불곡산 최고의 명물 <악어바위>.

 



▲ 영락없는 악어 임에는 틀림없는데,,, 이런..

악어 꼬리를 누군가가 잘라가 버렸다.

 



 인증샷.

 


 

▲ 거북바위.

 

  

 

 

 

▲ 3단바위..

 

 

 

▲ 올려다 본 신선대..

 

 

 

▲ 복주머니 바위..

저 안에 복이 가득 들어있다고 한다.
제 사진 보아주신는 분들 기운 많이 받으시고 소원 이루시길..

 

 

 

▲ 좌측의 임꺽정봉과 복주머니바위.

 

 

 

 

▲ 친구야..

우짜던지 건강해서 오래오래 함께 손잡고 산에 가자..

 

  

 

 

▲ 남근석 바위.

 

 

 

▲ 쿠션바위.

 

 

 

 

 

 

▲ 하산목적지인 대교 아파트가 보인다.

 

 

 

▲ 채석장 터.

 



▲ 예비군 교육장이었던듯한..

 

 

 

▲ 유격 훈련장을 지나면..

 

 

 

▲ 한채의 토속음식농가가 나오고..

 

 

 

▲ 창고에 햇감자가 맛있어 보인다.

 

 

 

▲ 역시 산은 멀리서 보라고 했던가..

자연이 빚은 양주의 진산 불곡산 암릉길과

농부의 농심이 만든 양파와 멋진 그림을 만든다.

 

 

 

▲ 대교아파트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서.

 

 

 

14시 30분 : 하산완료..

 

 

 

▲ 우째 이런 일이..

 

동부전선 22사단 GOP 총기난사 사건 발생했다는 뉴스 속보다,

제대를 8개월 앞둔 임 병장(22살)은 지난 21일 저녁 8시15분께

GOP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중 동료 장병들에게 수류탄 1발을 투척하고

K-2 소총을 난사해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23일 오전 임 병장 생포를 위해 대치하던 중 오인 사격으로

군인한 명이 관통상을 입어 총 5명의 사망자와 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에다 선주 유병언 회장의 도주극에

문창극씨 총리후보 지명 소동으로 민심이 갈팡질팡 하는 판에

이건 또 무슨 날벼락 같은 개떡같은 일이란 말인가...

경복궁 안내지도.

 

 

 

▲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경복궁은,,,1395년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조선의 도읍으로 정하고

처음 지은 궁궐로 330여 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정도전이 붙인 궁명 ‘경복(景福)’은

<시경>에 ‘임금이여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소서(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

구절에서 나온 이름으로 ‘덕으로써 영원한 복을 누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867년 고종대에 중건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각의 90% 이상이 헐렸으나

1995년부터 꾸준한 복원사업을 벌여 고종 때 중건 모습의 30% 정도를 되찾았다.
 

 


 

▲ 흥례문(興禮門).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 있는 중문.1395년(태조 4년)에 완공하였고.

예를 편다는 의미의 홍례문(弘禮門)이라 했는데. 임진왜란때 불타,

1889년(고종 4년)에 중건하면서 고종의 아버지 <이하응>이

청나라 건릉제의 이름인 홍력(弘歷)에서 홍자를 피하기 위해

흥례문(興禮門)이라 고쳤다고 한다..

 

 

 

▲ 근정문.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의 정문이다.

근정문은 모두 3개인데 동쪽의 일화문으로는 문관신료들이 출입하고

서쪽의 월화문을 통해서는 무관신료들이,,,

가운데는 좀더 높게 만들어서 어도(御道)라고 해서임금님만 다닐수 있다.

근정문 안으로 근정전이 보인다.

 

 

 

▲ 근정전(勤政殿) 국보223호.

근정문을 지나면 만인지상의

임금님이 정사를 보시던 근정전이다.

 

근정전은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태조 3년(1394)에 지었으며, 정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하였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 다시 지었는데,

처음 있던 건물에 비해 많이 변형하였다.

앞면 5칸·옆면 5칸 크기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여진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며 그 형태가 화려한 모습을 띠고 있다.

 건물의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기둥에 훌륭한 솜씨로

12지신상을 비롯한 동물들을 조각해 놓았다.

 

건물 안쪽은 아래·위가 트인 통층으로 뒷편 가운데에 임금의 자리인 어좌가 있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악도’병풍을 놓았고, 위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몄다.

근정전에서 근정문에 이르는 길 좌우에는 정승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차례로 놓여 있으며, 햇빛을 가릴 때 사용하였던 고리가 앞마당에 남아 있다.

근정문 좌우로는 복도 건물인 행각(行閣)이 연결되어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다.

근정전은 조선 중기 이후 세련미를 잃어가던 수법을 가다듬어

완성시킨 왕궁의 위엄을 갖춘 웅장한 궁궐건축이다.

 

 

 

▲ 경복궁 근정전 용상.임금님만 앉으셨던 저 자리,,용상,,지금은 주인을 잃었다..

 

 

 

▲ 용상(어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고,, 그렇지만,, 그래도..감히,, 저 자리에 앉을수야 없겠지만.

이 사진을 보시는 분들..뒤편의 일월오악도의 십장생 그림을 보시고 좋은꿈 꾸시고..

로또 대박이 나시기 바랍니다..

 

 

 

▲ 추녀와 용마루는 시멘트로 되어 있어 많이 아쉬웠지만..

경복궁 수난사를 보면 이나라가 겪어야 했던

아래 그림의 아픔이었기에 이해가 간다.

 

 

 

▲ 1930년대의 일제강점기에 항공촬영 하였다는

피가 거꾸로 솟듯 화가 치미는 폐허가 된,, 경복궁 사진이다.

 

이 나라 최고의 통치자인 임금이 계셨던 근정전을

조선총독부 건물이 흉물스럽게 가로막고 있다.

 

 

 

▲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는

복도 형식의 건물인 행각(行閣)이다.

 

 

 

▲ 경복궁 경회루 (景福宮 慶會樓) 국보 224호.

그림으로만 보아오던 경회루다.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고쳐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때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는 왕비의 침전 뒤편에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태종 때에는 48개의 기둥에 꿈틀거리는 용을 조각하였으나,

다시 지으면서 지금과 같이 간결하게 바깥쪽에는 네모난 기둥을,

안쪽에는 둥근기둥을 세웠다.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2층 바닥은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 높이를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경회루 바로 옆에 있으며.

뒷쪽 수림이 있는 곳이 인공으로 만든 <아미산>이다.

 

인공 <아미산>은 경회루 연못을 파면서 나온

흙으로 만들었다.

 

 

 

▲ 경회루 연못 뒤로 북악산이 보인다.

 

 

 

▲ 경회루와 인공섬.

 

 

 

▲ 만시문(萬始門).

만시(萬始) 란 만물자시(萬物資始) 에서 온 말로 “만물이 의뢰하여 비롯하다.” 란 뜻이다.

 

『주역』의 건괘를 설명하는 단전에서 유래한다.

“위대하다, 건원(乾元)이여!~만물이 의뢰하여 시작하니, 이에 하늘을 통괄한다.” 라고 하였다.

 

『본의』에서는 이에 대해 원(元)은 큼이요 시작이다.

원(乾元)은 천덕(天德)의 큰 시작이므로 만물의 생성이 모두 이것에 의뢰하여 시작하며,

또 사덕(四德)의 머리가 되어 천덕의 처음과 끝을 꿰뚫으므로 하늘을 통괄한다고 말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 국립민속 박물관.

 

 

 

▲ 외발 인력거.

 

 

 

▲ 자경전(慈慶殿)... 보물 809호.

교태전 동쪽에 위치한 자경전은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고종의 양어머니 신정왕후(조대비)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경복궁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고종 25년(1888)에 다시 지었다.

신정왕후(조대비)는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세자빈이었다.

효명세자가 즉위하지 못한 채 승하하고 아들 헌종이 즉위하면서 왕대비가 되었다.

 

헌종과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신정왕후는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효명세자의 양아들로 입적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그가 바로 <고종>이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고종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왕대비 처소를 짓고 자경전이라 이름하였다.

 

‘자경(慈慶)’은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 등

왕실의 안어른께 경사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 사극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낯익은 곳,,

 

 

 

▲ 자경전 십장생 굴뚝. (보물 810호)

 

자경전 뒤뜰 담장에 조성된 십장생 굴뚝은 독특한 형태와 문양과 함께 빼어난 조형미를 보여준다.

십장생 굴뚝의 몸체는 복을 상징하는 박쥐와 쇠를 먹어버린다는
불가사리 등으로 장식하고

가운데는 해, 산, 구름, 학, 거북, 불로초 등 불로장생을 의미하는

십장생 문양을 한 화면으로 구성하였다.

 

마치 한 폭의 십장생도를 보는 듯한 이 장식은

굴뚝의 실용성과 함께 빼어난 조형미를 보여준다.

 

몸체 위로는 한옥처럼 소로, 도리, 서까래 등을 벽돌로 짜맞추고

기와를 덮어 조형미를 더했다.

 

 굴뚝은 자경전 뒷담의 한 면을 돌출시켜 만든 것이다.

굴뚝은 네모 형태로, 가운데는 동식물 무늬인 십장생을 새겨 넣었다. 

십장생 무늬는 가장 한국적인 무늬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조대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굴뚝은 벽돌을 쌓아 만들었고 그 위에 기와지붕을 얹었으며

지붕 위에는 연기를 빠지게 하는 시설을 해 놓았다.

 

굴뚝이면서 장식적인 기능을 충실히 하고 그 조형미 역시 세련되어

조선시대 궁궐에 있는 굴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 교태전 후원의 아미산(峨嵋山).,,,,  보물 811호.

궁궐로 들어온 여인들,

한번 들어오면 살아서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궁중여인들이다.

평생을 구중궁궐에 살아야만 하는 중전을 위해

경회루 연못을 만들때 나온 흙으로 만든 화초의 계단 꽃마당이다.

 

아미산은 중궁전의 가장 깊은 후원이다.

중국 산동성 박사현 이라는 곳에 있는 명산인 아미산을 만들어

중전의 시름을 덜어 주었다.

굴뚝 앞의 석조물의 동쪽은 낙하담(落霞潭)이다.

 '노을이 떨어지는 깊은 웅덩이'

해와 양(陽)을 뜻하고 있다.

 

서쪽에 있는 석보물은 함월지(含月沚)이다.

 '달을 머금은 연못'이다.

달과 음(陰)을 상징하는 것으로.

결국 이곳은 음과 양이 어우러져 있는 선경(仙景)이라는 얘기다.

 

아미산의 굴뚝은 

보물 811호로 지정이 되어 있고, 

8각형으로 된 몸체위에 기와로 된 지붕을 올리고, 

기와 위에는 네모난 작은 집에 구멍이 뚫려있어 

쪽으로 연기가 빠져나가게 만들어져 있다

 

 

 

▲ 교태전 가는길에..

 

 

 

▲ 서울에 사는 친구에게 얼굴 한번 보자고 전화 했더니만사 제치고 달려왔다..  고마워~~

오키

 

 

 

▲ 사정전(思政殿).,, 보물 1759호

이 전(殿)은 모든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라는 뜻의 편전(便殿)으로

왕이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고 종친 대신들과 주연을 함께 하기도 하고

왕이 친림(親臨)하여 문·무 과거를 보이기도 한 곳이다.

 

 

 

▲ 근정전 뒤쪽.

 

 

 

▲ 흥례문 광장.때마침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을 한다..

 

 

 

▲ 신구의 조화..

과거의 시간이 머물고 있는 경복궁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재현 하는데..

바깥에는 첨단의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고왼쪽으로 쌍둥이 빌딩이 보인다.

 

 

 

▲ 흥례문 광장.

수문장 교대식을 지켜보는 관람객..

여기저기 중국인 관광객들의 말소리가 많이도 들린다.

일본인 관광은 아예 없는것 같다.

 

우측의 큰북을 고수가 북을 세번 치는 것을 신호로

교대병이 들어 온다..

북소리가 천둥이 울리듯 굉장히 크고 장엄하다.

 

 

 

▲ 북소리를 신호로 나팔을 불며 협생문으로 들어온다..

 

 

 

▲ 군대의 위병 교대식 보다도 더 엄격 한것 같다.

 

 

 

▲ 대오를 맞추어 좌우로 정렬..

 

 

 

▲ 이어서,, 교대 수문장들이 깃발을 세우고 보무도 당당히 들어 온다.

 

 

 

 

▲ 수문장 깃발 창끝으로 <인왕산>이 보인다.

인왕산에는 <중종>과 폐비 <신씨>와의 애닯은 사랑이야기,,

 

인왕산 정상 바로 밑에 넓은 바위가 있고 그 밑에 주름잡힌 치마가 연상되
치마바위가 있으니 이 치마바위에는 애닯은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 제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의 폭정으로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박원종, 성희안 등이 주축이 된 반정이 성공하여 진성대군이
조선 제11대 임금으로 즉위하였으니 이 분이 중종이다.

중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된 분이 단경왕후이니
이 분은 바로 연산군의 추종자였던 신수근의 딸이었다.
신수근은 중종반정의 반대세력으로 반정과정에서 역적으로 참살되었으니
왕후는 역적의 딸인셈이다.

반정공신들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왕비를 그대로 존속시킨다면 자신들의 처지가 위태롭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사사로이는 왕비의 친정아버지를 죽인 장본인들이 아닌가.
아무래도 후환이 두렵고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역적의 딸을 왕비로 삼을 수 없다는 공신들의 끈질긴 요구가
날마다 계속되었다. 결국 중종도 어쩔 수 없이 왕후 신씨를 폐위시켜
인왕산 밑에 있는 사가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왕후로 책봉된 지 불과 7일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중종과 폐비 신씨는
10여년을 두터운 정으로 함께 살아온 부부가 아니던가.
그들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부부였기에 신하들의 강요에 못 이겨
헤어졌지만 그 정을 쉽게 지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중종은 종종 경회루에 올라 폐비 신씨가 살고 있는
인왕산 쪽을 바라보곤 하였다는 것이다.

이 소문을 들은 폐비 신씨는 인왕산에 올라
병풍바위 밑에 있는 바위에 궁중에서 입던 치마를 걸쳐놓아
왕이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에 치마를 펼쳐 놓았다가 저녁이 되면 거둬들이면서
서로간의 사랑의 정을 주고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애달픈 사랑이야기인가.

이 때부터 이 바위에 치마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한 나라의 주인이었던 왕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인왕산 치마바위 이야기다.
치마바위 쪽에서 경복궁을 바라보면
경복궁의 경내와 경회루가 확실하게 보인다.

 

 

 

▲ 마주보고 군례로써 교대 절차를 하고..

 

 

 

 

 

▲ 근무지로 이동하며 수문장 교대식을 마치게 된다..

 

 

 

▲ 서울 친구가 기어이 한턱 쏜다며 찾아간,,,

경복궁에서 약 10여분 거리의 안국동 전통거리..

 

 

 

▲ 한정식 골목.. 

 

 

 

▲ 왼쪽에 보이는 <여자만> 한정식집에서..

인사동의 <여자만> 한정식집은

"수렁에서 건진 내딸"과.. "영심이"의 영화감독 <이미례>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여자만>은 전남 고흥에 있는 바다개펄 이름이다.

꼬막조개와 찹쌀밥..고등어구이..남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곳이다..

 

요렇게... 늦은 점심을 서울 친구 덕분에 먹고 나오니,, 바로 앞집이..

 

 

 

▲ 찻집.. 귀천이다. 

<귀천> 은 시인 천상병의 시 제목중 하나로 천상병의 아내 목순옥이
찻집을 열면서 옥호로 쓴것이다.

천상병의 오랜친구인 시인 강태열이 3백만원을 선뜻 내 놓아서
이루어진 이 작은 찻집이 천상병과 그의 아내 <목순옥>의
생활 터전이다.

시인 천상병..

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조의금이 몇백 걷혔다. 생전에 그렇게 「큰돈」을 만져본 적 없는 시인의 장모는 가슴이 뛰었다.

이 큰 돈을 어디다 숨길까.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

 

거기라면 도둑이 든 다해도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돈을 신문지에 잘 싸서 아궁이 깊숙이 숨기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시인 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 거라는 생각에 그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이상했다. 땔나무 불빛 사 이로 배추이파리 같은것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조의금은 그렇게 불타버렸다.
다행히 타다남은 돈을 은행에서 새돈으 로 바꾸어주어,

그 돈을 먼저 떠난 시인이 「엄마야」라며 따르던 팔순의 장모님 장례비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늘 「엄마」의 장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인 천상병가의 이야기이다.

평생 돈의 셈법이 어둡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시인이었다.

지상에 소풍왔던 천사처럼 순진무구하게 살다간 시인의 혼은 가고

남은 자리마저 그런 식으로 자유로와 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2013년 06월 09일 마니산(469m) : 경기도 강화군 화도면.

 

산행코스 : 강화 화도초등학교 - 314봉(점심) - 참성단 - 마니산 정상 - 469봉 - 

정수사 - 진개마을 - 분오리 간이차장산완료.

 

행시작 : 화도초등학교 : 11시 45분 출발.

하산완료 : 분오리 간이주차장 : 16시 05분.

(4시간 20분 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07 : 15  성서홈플러스 출발.

11 : 45  강화 화도초등학교 도.

12 : 15  주능선 갈림길.

12 : 36  314봉 지나서(점심).

14 : 15  마니산 참성단.

14 : 24  마니산 정상.

14 : 35  칠선녀 다리.

15 : 16  469봉.

16 : 05  분오리 간이주차장 하산완료.

16 : 45  동막 해수욕장.

17 : 00  하산주.

18 : 08  출발.

22 : 45  대구 도착(성서홈플러스 기준)..

 

11시 45분 : 화도초등학교 앞 도착.

 

 

 

▲ 화도초등학교,,

 

 

 

▲ 달맞이꽃.

꽃말은 자유로운 마음, 말없는 사랑, 소원 등

 

그리스 신화에는 달맞이꽃에 얽힌 전설 하나가 있다.

옛날에 별을 사랑하는 님프(nymph)들 틈에

유독 홀로 달을 사랑하는 님프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님프는 별이 뜨면 달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심코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별이 모두 없어졌으면... 그럼 매일 매일 달을 볼 수 있을텐데..."

곁에 있던 다른 님프들은 제우스에게 곧바로 달려가 이 사실을 고했다.

화가난 제우스는 그만 달 없는 곳으로 그 님프를 쫓아 버리고야 말았다.

달의 신은 자기를 좋아했던 그 님프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곳곳에서 방해를 하는 제우스로 인해 둘은 끝내 만날 수 없었다.

결국 달을 사랑했던 님프는 너무나 지친 나머지 병들어 죽게 되었다.

님프가 죽은 후에야 찾아 올 수 있었던 달의 신은 매우 슬퍼하며

님프를 땅에 묻어 주었다.

 

미안한 마음이 든 제우스는 님프의 영혼을 달맞이꽃으로 만들어 주었고,

오늘날에도 달맞이꽃은 달을 따라 꽃을 피우고 있다.

 

달이 뜨지 않는 어두운 밤에도 달을 기다리며 꽃을 피우는

달맞이꽃의 슬픈 전설이다...

 

 

 

 

▲ 한얼교 머리궁성 입구 안내판.

 

 신정일이 1967년 창시한 한얼교는 개교 역사를 단군 성조에 두고

<바름>의 정(正) 사상을 근본으로하는 종교다.

 

한얼교는 대구에 종단 본부에 해당되는 본궁(本宮)이 있으나

1980년대 말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일대 9만 9000㎡에

기도원 성격인 '머리궁'을 세웠다.

 

명칭이 마니산의 옛 이름(마리산 = 머리산)과

상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화도면 성당 앞을 지나,,

산행들머리로 가는 마을길에는..

 

 

 

▲ 산딸나무 꽃..

 

전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 께서 산딸나무에 못박히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딸나무를 측은히 여기시고

더 이상 못박는 형주로 사용되지 않도록

그 나무가 작아지게 하셨고,

 

꽃받침에는 예수의 손에 못이 박힌 자국이

나타나게 하셨다는 것이다.

 

 

 

 

▲ 관상용 양귀비..

 

'관상용양귀비꽃'은 사람에게도 해가 없다.

아편을 만드는 독소를 완전히 제거한 개량종이다.

 

양귀비꽃 하면 펄벅의 대지라는 소설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세상은 변해서 사람의 인체에 치명적인 해악이었던 양귀비꽃을

아름다운 관상용꽃으로 재탄생 시켰다

 

한때..

아편과 마약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 탐스런 양귀비꽃,

이른 봄 도로변을 장식하는 새로운 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2시 10분 : 마니산 종주 능선길.

 

   

 

▲ 오름길을 치고 오르니 ,,

 

한분이 공사를 하고 있다.. 무슨공사냐고 물어 보니..

화도성당에서 하는 사유지 철책 공사라고 한다.

 

 

 

12시 36분 : 첫 전망대..

 

 

 

▲ 정상으로 가야할 능선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13시 39분 : 단군로 갈림길..

처음 계획하였던 들머리 길이다..

 

나중에 하산 하고서야... 알았지만,,

처음부터 이길로 올라 올 걸,,,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 여차리 방향..

맑은 날임에도 시계(視界)가 좋지 않다.

 

 

 

13시 50분 : 두번째 기도원 갈림길.

 

 

 

  

▲ 14시 00분 : 372계단..

 

 

 

 

 

▲ 참성단이 머리위에 있다..

 

 

 

 

 

▲ 참성단 입구..

참배를 하고 다시 돌아 와야 된다.

 

 

 

▲ 참성단 오름길..

 

아마존의 사라진 왕국,,,

잉카제국을 찾아가는 기분으로 <단군 성지>로 올라간다..

 

 

 

14시 15분 : 참성단.

1964년 7월 11일에  사적 136호로 지정 되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전한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했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과 숙종 26년(1700)에도 고쳐 쌓았다.

여러 번 고쳐서 쌓았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 제단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단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경주의 첨성대와 비슷하다.

 

고려와 조선왕조는 때때로 이곳에서 도교식 제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을

단군시대의 종교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일제시대에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생기고 난 이후에는

민족의 성지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 제천행사가 거행되며,

전국체전의 성화는 이곳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붙이고 있다.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단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강화도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있고,

단군과 연관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상고시대에 무시못할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마니산 소사나무,,

수령 150년 이상의 천년기념물 502호..

 

 

 

 

▲ 바로 이웃해 있는 마니산 정상과

멀리로는 469봉이 버티고 섰다,,

 

 

 

 

 

▲ 채화 향로,,


강화의 옛 이름은 ‘갑비고차(甲比古次)’였다.

‘갑비’는 고유어 ‘갑’을, 고차는 ‘곶, 곶이’를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명칭은 현재 강화읍 소속의 갑곶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면 갑곶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갑은 돌 위에 돌을 올려놓은 것을 ‘갑석(甲石)’, 두 배를 ‘갑절’,

겹창을 ‘갑창(甲窓)‘이라 하는 것처럼 둘(2)의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한강 하류의 조강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이

강화의 동북단에서 둘로 갈라져 강화의 북단과 강화·김포 사이의 염하로

나뉘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이해된다.

 

 

 

  

 

 

▲ 14시 24분 : 마니산 헬기장,,

 

 

 

▲ 마니산 정상목,

 

원래의 이름은 두악(頭嶽)으로 마리산·머리산이라고도 부르며,

군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특히 마리란 머리를 뜻하는 고어로, 강화도뿐 아니라

전 민족의 머리로 상징되어 민족의 영산으로 숭앙되어왔다.

 

본래는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으로 강화도 본 섬과는 떨어진 곳이었으나

가릉포(嘉陵浦)와 선두포(船頭浦)에 둑을 쌓은 후부터 육지화되었다.

일대의 산지들은 오랫동안 침식을 받아 형성된 낮은 구릉성 산지이다.

북쪽 사면을 제외한 전 사면이 거의 급경사를 이루며,

기반암은 화강암·결정편암이다.

 

북쪽 기슭에는 화강암반이 비교적 넓게 분포하며,

풍화된 사질토와 암괴가 양파 껍질처럼 분해되는

박리현상(剝離現象)이 나타나고

거대한 널빤지 모양의 암편이 나타난다.

 

 

 

 

 

 

 

 

▲ 참성단 중수비.

오랜세월에 마모되어 읽기가 쉽지않다.

 

 

 

 

 

▲ 화강암의 바위들이,,

박리현상으로 양파 겁질이 벗겨지듯이

마치,, 도미노를 보는것 같다.

 

 

 

▲ 바닥의 자연석들도,, 네모 반듯하게

타일처럼 놓여있다.

 

 

 

▲ 여기서부터 암릉구간이다..

 

 

 

▲ 칠선녀 다리.

 

 

 

 

 

▲ 올망졸망 고만고만한 암괴가

성을 쌓은듯 하다.

 

 

 

 

 

 

 

▲ 지나온 참성단과 마니산 정상이 아스라히 멀어져 간다.

 

 

 

 

 

 

▲ 보호 받고 있는 소나무..

 

 

 

 

 

▲ 가야할 능선,,

 

 

 

 

▲ 15시 16분 : 469봉..

 

모든 마니산 등산지도에는 469봉이 마니산 정상으로

표기 되어 있다.

 

 

 

▲ 주봉우리이기는 하나..

암봉이 위험하여 주봉으로서의 정상대접 을

받지 못하는것 같다.

 

 

 

 

▲ 해병상륙공작대 기념비..

정수사 가는길에 세워져 있다..

 

북한 8군단 소속 (김신조)가 청와대를 습격한 1968년 부터

1974년 남북 공동성명이 있기까지

7년간 북파공작임무를 띠고

지금의 정수사 부근에

 

MIU부대(일명 까치부대)가 주둔 하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때의 부대 막사흔적을

찾아 볼수 있다고 한다.

 

 

 

16시 00분 : 진개마을.

 

 

 

16시 05분 : 분오리 간이 주차장 하산완료.

 

 

 

16시 44분 : 동막 해수욕장 도착,

 

 

 

▲ 해수욕장은 벌써 여름의 시작이다..

 

뒷편에 바다로 튀어 나온곳이 <분오리 돈대>인데..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

다음으로 기약해 본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한번 분오리 돈대를 담아보고..

 

 

 

18시 08분 : 하산주 마치고 대구로 출발..

 

강화도 갈매기들의

멋진 배웅을 받으며..

 

 

2012년 10월 28일 불암산(508m) / 수락산(637m)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산행코스 : 불암사주차장 - 불암사 - 불암폭포 - 불암산 - 다람쥐광장(점심) - 덕릉고개 - 도솔봉 -

철모바위 - 수락산 - 대피소 - 내원암- 청학동 금수강산식당주차장 하산완료 

행시작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불암사 주차장 10시 47분.

하산완료 : 경기도 남양주시 청학리 금수강산(식당)주차장 16시 11분

(5시간 24분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10 : 47  불암사주차장 산행들머리 도착.

10 : 56  불암사.

11 : 06  불암폭포.

11 : 58  불암산 정상.

12 : 12  다람쥐 광장(점심).

13 : 02  덕릉고개.

14 : 20  도솔봉.

15 : 03  철모바위.

15 : 08  수락산 정상.

15 : 14  내원암 갈림길.

15 : 20  대피소.

15 : 37  내원암.

16 : 11  청학동 금수산장 주차장 하산완료.

16 : 30  하산주.

17 : 15  출발.

21 : 48  대구도착(법원 기준).

 

 

10시 47분 : 경기도 별내면 불암사 주차장 도착.

 

 

 

 

 

10시 51분 : 불암사 일주문. 

현판에는 <불암산>이 아닌 천보산(天寶山)이라 되어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기둥 양쪽의 글귀에 숙연해 진다..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요~

천겁(千劫)을 거슬러 올라가도 옛날이 아니고

 

긍만세이장금(亘萬歲而長今)이라,,,

 만세(萬歲)를 뻗쳐서 내려가도 언제나 오늘뿐,,,

이라는 말이니..

 

천겁의 세월과 만세의 시간이 흐른다 해도

최고의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말이니..

 

그렇다..

바로 "오늘"이,,

최고의 하루였다고

추억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산문을 들어 선다..

 

 

 

▲ 이렇게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가장 <멋진 하루>가 될 것이다..

 

 

 

▲ 사리공(舍利孔).

불심이 강한 신도님이나.. 도력이 높으신 스님이

열반하시면 나오는 사리를 바위에 구멍을 뚫고..

모셔놓은 곳이다..

 

  

 

▲ 불암사 전경..

 

824년 신라 헌덕왕 16년에 <지증>스님이 창건한

신라 천년의 사찰이며,,

 

보물 591호인 석씨원류(釋氏原流) 목판4권을 보관하다가

현재는 동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 하고 있다.

 

1~2권은 석가의 행적등,,일대기를,,,

3~4권은 부처님의 말씀을 이어받은

전법제자들의 행적이 실려있다.

 

 

 

 

11시 06분 : 불암폭포,,

  

 

 

▲ 부더럽고 넉넉함을 가진 산처럼,,

산을 닮은 모습으로.. 항상 솔향기 도와 주심에 감사합니다..

 

 

 

 

 

▲ 세상의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참으로 우리에 민초둘은 해학이 넘쳐난다..

전국의 산들을 다니다 보면

거대한 바위를 나뭇가지 하나로,, 받쳐 놓는 재치를 많이 보는데....,

자연과 사람의 공생관계를 상징하는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바람직한 이정표..

 

시 한편을 달아 놓아 읽어보는 동안이나마,,

휴식을 하라는 의미도 있으리라..

 

  

 

▲ 11시 19분 : 깔딱고개..

 

   

 

 

 

▲ 422봉 능선,,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태릉 선수촌이 있다..

 

 

 

▲ 오름길에 당겨 본 불암산,,

 

 

 

 

 

 

 

 

 

 

▲ 불암산 도사님의 수도처일까?..

 

   

 

 

▲ 퇴계원 방향인듯 한데..

수도권의 영향인가.. 뿌우연 개스로 시야가 좋지않다..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환궁(還宮)할 때

매 사냥꾼을 따라 무의식중에 이곳 퇴계원까지 와서보니

삼각산이 보여 아차 내가 남재의 꾐에 속았구나 하고

길을 돌이켜 내각리로 물러가 궁궐을 짓고 살았다.

그래서 조정이 물러갔다 하여

퇴조원(退朝院)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태조가 도성 바깥 풍양궁에 머무니 조정의 신하들이 아침마다

태상왕에게 조례(朝禮)를 올리고 정사를 문의하려 했지만 얼씬도 못하게 해서

 

신하들은 서남쪽으로 몇십리 떨어진 퇴계원 밖에서 풍양궁 쪽을 향해

절만 하고 물러갔다하여 퇴조원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후 내곡리에 연안 이씨 이정구의 후손에 조온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의 아들은 상민들이 『퇴조원, 퇴조원』하고 부르니

 

꼭 자기 아비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퇴계원으로 고쳐부르게 했다고 한다.

 

 

 

 

 

▲ 슬랩과 소나무..

우째 노오랗게 솔잎이 변색 되어 가는것 같아서 안쓰럽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버티어 내며 살아 왔을 터인데..

 

 

 

▲ 요즘 아짐씨들,,

밧줄도 잘 타고,,

 

 

 

▲ 도대체가 겁이 없네여~~..ㅎㅎㅎ

 

 

 

▲ 총무 언냐~~ 조심하이소..

 

 

 

▲ ㅎㅎ 걱정 말거래이,, 밧줄하고 바위라 카모,,

솔잎에 홍총무 아이가..

 

 

 

▲ 이이고ㅡㅡ무서버라,,

내사마 네발로 긴다 카이..

 

 

 

▲ 밧줄은 요렇게 타는거라예..

짱~~

 

 

 

▲ 친구, 조심하시게나..

 

 

 

 

 

 

 

▲ 서울 노원구쪽,, 오른쪽으로 당고개 지하철역이 보인다..

 

 

 

 

 

 

 

 

 

▲ 경기도 남양주 별내면 쪽..

 

 

 

 

 

 

 

 

▲ 11시 58분 : 불암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으로 정할 때 금강산에 있던

어떤 산(山)이 서울의 남산이 되고 싶었다. 

 

부지런히 내려 왔지만 산이 서울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이미 남산이 생긴 것을 보고 한발 늦음을 한탄하면서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 산이 바로 서울 노원구와 남양주시 별내면을 경계에 위치한 불암산(佛巖山)이다.

높이 509m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오는 건

금강산 자락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또 다른 유래로는

산의 형상이 마치 송낙(소나무 겨우 살이로 만든 여승이 쓰는 모자)을 쓴

부처의 모습과 같다 하여 불암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불암산의 남면은 치마를 두른듯하다 하여 치마바위라고도 하는데

그밖에 하늘에서 내린 보배라 하여 천보산 이라고도 불리었다.

 

  

 

 

▲ 멀리 가야할 <수락산>이 보인다,,

바로 앞의 봉우리는 불암산 <다람쥐 광장>이 있다,,

 

 

 

 

▲ 만산 홍엽..

어제 비가 왔음에도 서울의 시가지는 온통 매연에 싸여 있다..

 

 

 

▲ 쥐바위..

 

 

 

▲ 이 모습이 쥐의 모양이라서 <쥐바위>인 모양이다..

 

 

 

▲ 날이 맑은데도 건너편의 북한산 도봉산이

짙은개스로 보이지를 않는다..

 

 

 

 

 

 

▲ 뒤 돌아본 불암산,,

 

 

 

▲ 12시 12분 : 다람쥐광장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고..

 

 

  

 

▲ 덕릉고개 터널,,

좌측으로 <도봉산>이 살짝 보인다..

 

 

 

 

▲ 12시 43분 : 성고개..

 

 

 

▲ 13시 02분 : 덕릉고개..

오른쪽 계단 오름길이 덕릉고개 들머리이다..

 

 

 

▲ 덕릉고개 동물 이동다리,,

 

서울 노원구 북동쪽 시계인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사이에 두고 수락산과 불암산이 연접해 있다.

노원구 북동쪽 시계인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덕릉 고개이다.

 

수락산과 불암산이 좌우로 연접한 이 고개를

한자로는 덕릉현(德陵峴)이라 부른다.
이 명칭은 조선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소인 덕릉이

고개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데서 유래한다.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산 5의 13에 위치한 묘역은

경기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다.

 

덕릉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중종의 아홉째 아들 덕흥군은

아들인 선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으로 추존된다.

이때부터 대원군 제도가 시작되었다.

선조는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를 능으로 승격시키고 싶어

어전회의에서 신하들의 의견을 물었다.

“아버님 되시는 중종께서 왕위에 계셨고

또 임금인 아들을 두셨는데, 설사 왕위를 잇지 못하셨다 하더라도

묘소를 능으로 격상한들 예에 어긋나는 일이겠는가.”
그러나 신하들은 한결같이 불가 하다며 반대했다.

조선시대 능원(陵園)제도는 제왕과 후비의 무덤을 능,

왕세자·왕세자비 및 왕의 사친(私親)의 무덤을 원이라 일컫도록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선조는 정식으로 능으로 승격시키는 것을 단념하고

한 가지 방법을 꾀하였다. 어느 날,,,

동대문 밖 시탄상(柴炭商, 장작과 숯을 파는 장사꾼)

한 사람을 불러 일렀다.

“너는 지금부터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나무꾼과 숯장수를 불러 어디를 지나 이곳으로 왔느냐고 물어 보라.

그 장사꾼이 덕흥대원군의 묘를 지나 왔다고 하면

그대로 보내고, 만일 덕흥대원군의 능을 지나 왔다고 하면 가게 안으로 들여

밥과 술을 후히 대접하고 나무와 숯을 고가로 사들여라.”

이 명을 받은 시탄상은

하루도 빠짐없이 그대로 행하였다.

소문이 한 사람 두 사람 건너 두루 퍼지니 도성 동쪽은 물론

오강(五江, 한강·용산·마포·현호·서강 등 주요 나루가 있던 강마을)의

시탄상들까지 일부러 동대문 쪽으로 찾아와 덕릉을 지나 왔노라 했다.

 

시탄상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자 이 일은 중단되었지만,

덕흥대원군의 묘소는 저절로 덕릉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13시 26분 : 덕능고개에서 부터 여기까지 오른쪽으로

예비군 교육장 군부대의 철책담을 30여분 따라오면 철책문이 있고

우측으로는 흥국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 13시 52분 : 전망대..

 

 

  

▲ 당겨본 하강바위..

 

 

 

 

▲ 도솔봉에서 바라본  수락산 오름길,,

여기서 보니.. 베낭바위.. 코끼리바위.. 하강바위.. 치마바위가

손에 잡힐듯 하다,,

 

 

 

 

▲ 수락산에서 청학리로 이어지는 대슬랩 지대..

 

 

  

  

▲ 즐기자..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 자연이 만들어 내는 자연의 색깔은 인간의 손으로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 경기도 남양주쪽은 그나마도 서울쪽 보다는

조망이 멀리까지 보인다..

 

 

 

▲ 슬랩을 오르면,,

 

 

 

▲ 여인네의 체취가 풍겨오는 치마를

펼쳐 놓은듯한 <치마바위>를 만난다.

 

 

  

 

 

▲ 하강바위를 가기 위해서는...

 

 

 

 

▲ 바위 밑을 에돌아 나간다..

 

 

 

 

 

▲ 코끼리바위..

 

 

 

▲ 하강바위 위의 솔잎님들,,

 

 

 

 

 

▲ 베낭바위..

 

 

 

 

▲ 종바위..

 

 

 

 

▲ 절묘하게 놓여있는 하강바위..

 

 

 

▲ 아슬아슬 올려진 바위를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 바위를 이고 있는 모습이 거친 파도를 헤쳐가는

배의 밑 바닥같이 보인다..

 

 

  

 

 

▲ 15시 03분 : 철모바위..

 

 

 

 

▲ 이제 수락산 정상이 바로 코앞이다..

 

 

 

▲ 15시 08분 : 수락산 정상,,

 

 

 

 

 

▲ 수락산 정상 인증샷.

 

 

 

 

▲ 내원암을 거쳐 청학동으로 하산하기 위해서는

정상에서 다시 내려온다..

 

 

 

▲ 15시 14분 : 내원암 내림길,,

 

 

 

 

 

 

 

 

▲ 15시 20분 : 대피소,,

 

 

 

 

 

▲ 내원암 대슬랩..

청학동에서 수락산 정상으로 물품을 나르는 삭도탑이 보인다.

 

 

 

 

 

 15시 37분 : 내원암..

 

 

 

▲ 15시 39분 : 금류동천(金流洞天)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곳은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이 세조가 어린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한 것을 계기로 방황하던중 10년을 머물렀다고 하는 곳이다.

 

 

 

▲ 금류동천 하류,,

 

 

 

▲ 내원암 돌계단..

 

 

 

 

 

▲ 금류동천 폭포,

 

 

 

 

 

 

 

 

▲ 16시 02분 : 청학동 만남의 광장,,

과거 복싱계를 주름잡았던 세계챔피언<박종팔>선수가 운영한다고 한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많은 챔피언 중에서도 그는

세계 중량급(슈퍼미들급·76.2㎏ 이하)을 지배했던 '전설'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돈팔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부동산 갑부였던 그는

주위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재산을 다 날리고 죽기 위해 수락산을 찾았다가.

이제 그는 그 수락산에서 식당을 하며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재물은 모으기도 어렵지만,,

지키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가 보다..많이 가져보지도,, 날려(?) 보지도 못했으니,,,

돈의 철학을 우찌 알겠노,,,에궁~~


 

 

▲ 16시 04분 : 옥류폭포,,

 

 

  

 

▲ 16시 11분 : <금수산장>식당 주차장 하산완료.

하산주 장소 제공해 주신 금수산장 사장님 감사합니다..

 

 

 

▲ 하산주,,

 

오늘 불암산,, 수락산 산행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아름다운 하루를

고운님들과 함께 더 없이,, 마음껏 즐겨 본 하루였다.

 <비움>과 <버림>이 없이는 결코<채움>과 <나눔>도 없다고 했는데.. 

무지와 탐욕으로 비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나,, 이건만.. 

오히려..<채움>과 <나눔>으로내곁으로 다가와 주시는 님들이 있어나는,,행복 합니다..

 

긍만세이장금(亘萬歲而長今)이라,,,

 만세(萬歲)를 뻗쳐서 내려가도 언제나 오늘뿐,,,

<지금>이라는 말이니..

 

항상 <지금>에 충실하렵니다..

함께해주신 회원님들 수고 하셨구요 감사합니다.

 

바로 "오늘"이,,

<최고의 날>중에 하루 였다고 말할 수 있기에..

 

정말

행복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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