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5월 04일 산막이길 등잔봉(450m) :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산행코스 : 주차장 - 출렁다리 - 등잔봉 - 제2전망대 - 제3전망대 - 천장봉 - 삼성봉삼거리- 삼성봉 -

산맥이마을 - 괴목정 - 호수전망대 - 앉은뱅이약수터 - 망세루 - 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주차장 10시 32분

하산완료 : 주차장 15시 23분(4시간 39분 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10 : 32  주차장 산행들머리 입구 도착.

10 : 46  출렁다리.

11 : 25  등잔봉 정상.

11 : 58  제2전망대(점심).

12 : 45  제3전망대.

13 : 02  삼성봉 갈림길.

13 : 13  삼성봉 정상.

13 : 56  산맥이마을.

14 : 19  호수 전망대.

14 : 26  앉은뱅이 약수터.

14 : 35  망세루.

15 : 23  주차장 하산완료.

 

 

  10시 32분 : 산막이길 주차장 도착.

 

2008년과 2010년에 이어 오늘 세번째로 오는데

그동안 많은 변화가 보인다. 없던 주차장도 새로 조성된것 같다.

 

 

 

산막이길 입구에는 충북의 포돌이가

마중을 나와 있다.

 

 

 

그 옛날 산막이길을 넘나들던 길손..

 

<산막이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이어지는 ‘산막이옛길’이며.

괴산군에서 13억을 들여서 2009년에 4km 길이의 산책길을 조성 하였다. 

 

산막이이라는 말은 ‘산의 마지막’, ‘산으로 가로막혔다’는 뜻”이며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갔던 피란민들이 산에 막혀 더이상 가지 못하고

머물렀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4년전에 없던 가판대 거리.

 

 

 

 

산막이 길 조성 안내석.

 

 

 

산막이 나루터.

 

 

 

쉼터의 남근석..

 

 

 

소원 울타리.

 

 

 

연리목.

 

 

 

남근석을 구경하는 방문객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농경사회에서의 다산(多産)을 상징하던 남근석을

마을 마다 세워 놓았다..

 

 

 

 

괴산 수력발전댐..

 

괴산댐 건설 공사 계획이 수립된 것은 1951년. 6·25 전쟁 과정에서

전력설비가 파괴돼

전력 사정이 최악이었다.이승만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발전소 건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먹고살기조차 힘든 시절, 당시로선 초대형 토목공사였던 댐 건설이 쉽지는 않았다.

설계를 마친 후 1952년 11월 공사가 시작됐지만 화폐 개혁, 예산 부족, 시멘트 부족,

물가 급등 등의 이유로 공사가 3번이나 중단됐다.

 

1957년 4월 댐 준공식은 이승만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와서

행사를 참관했을 정도로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지금 현재도 연간 1,083㎾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10시 46분 : 출렁다리 입구.

 

안전을위해 일방통행으로 되어있다.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통과.

 

 

 

출렁다리 출구,

 

 

 

본격적인 산행길로 접어드는 노루샘 위.

 

 

 

 

 

 

쥐오줌풀.

 

 

 

둥굴레.

 

 

 

11시 11분 : 힘든 길과 쉬운길의 첫 갈림길.

오늘 산행이 가벼워 힘든길을 선택한다.

 

 

 

주능선까지는 10여분의 거리지만..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코가 닿을듯한 급경사를 숨이 차도록 치고 오르면..

 

 

 

시원한 괴산댐이 그림처럼 눈아래 펼쳐진다.

 

 

 

11시 23분 : 등잔봉 주능선.

 

 

 

▲ 등잔봉의 유래는

옛날 한양으로 과거보러간 아들의 장원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렸다는데서 유래하였으며..

 

지금도 그 효험이 있다고 여겨서 알음알음 자식들을 위해

정성을 드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 제1전망대에서..

 

섬처럼 튀어나온 곳에는 괴산 제일의 맛을 자랑하는

사과 과수원이 있다.

 

괴산호 건너로는

군자산과 칠보산으로 이어 지는 능선이다.

 

 

 

 

 

붉은병꽃.

 

 

 

 

▲ 산불로 그을린 소나무.

 

 

 

11시 58분 : 제 2전망대.

최고의 한반도 전망대이다.

 

 

 

▲ 한반도를 닮았다.

 

 

 

 

 

 

 

 

 

12시 13분 : 금강산도 식후경.

 

 

 

▲ 고사리.

 

 

 

 

 

▲ 운지버섯.

 

 

 

 

▲ 제 3전망대에서..

 

 

 

 

 

 

12시 49분 : 천장봉..

 

 

 

▲ 산불로 메말라 버린 고사목.. 

수십년에서 수백년 키운 삼림인데 한순간에 푸름을 잃어 버리니

너무나 안타깝다..

 

 

 

 

13시 02분 : 삼성봉 갈림길.

 

 

 

연두색의 향연.

 

 

 

13시 13분 : 삼성봉 정상.

 

 

 

삼성봉 연리목.

 

 

 

 

 

 

 

 

 

지나온 등잔봉 능선.

 

 

 

 

13시 56분 : 산막이 마을. 

산막이 마을은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이 귀양을 하던 곳이다.

 

 

  

노수신 적소.

 

조선 중기의 유명한 신하인 노수신(1515∼1590)이 귀양살이를 하던 곳으로,

후에 건물명을 수월정(水月亭)이라 하였다.

 

노수신은 중종 38년(1543)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이황과 같이

 학문을 연구하다가 정권다툼으로 관직에서 물러나고

순천, 괴산 등지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선조 즉위 후

다시 관직에 올라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산막이 나루에 유람선이 들어오고 있다.

 

 

 

붓꽃.

 

 

 

 

 

 

 

 

다래덩굴 터널.

 

 

 

여름에 엄청 시원하다.

 

 

 

 

 

고공 전망대.

바닥은 강화유리로 되어 있다.

 

 

 

▲ 송화가루.

 

 

 

 

괴음정.

느티나무위에 설치하여 운치가 있다.

 

 

 

괴산바위.

뫼산(山)자를 닮았다.

 

 

 

호수전망대 쉼터.

 

 

 

 

앉은뱅이 약수터.

 

옹달샘이 있었는데 갈을 가던 앉은뱅이가 물을 마시고

효험을 얻고 걸어 갔다는 전설이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

 

 

 

미녀 엉덩이 참나무.

 

미녀가 옷을 벗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글쎄.. 한참을 기다려도 옷벗을 기미가 없다..ㅎㅎㅎ~

  

 

 

스핑크스라바위라고 하는데,,

이것도 글쎄다..

 

 

  

여우비 바위굴.

 

산막이 마을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여우비를 만나면 굴속에서 쉬어 갔다고 한다.

 

 

 

▲ 매바위.

금방이라도 날아 오를것 같은 매 형상바위다.

 

 

 

▲ 호랑이 굴.

 

바닥은 부더러운 흙이고, 천정은 자연암석으로 되어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1968년까지 실제로 호랑이(표범)가 드나들며 살았던 굴이라고 한다.

 

 

 

▲ 범을 타고..

 

 

 

▲ 망세루(忘世樓).

 

세상의 모든 시름이 잊혀지고 자연과 함께

평안함을 느끼는 곳이다.

 

 

 

▲ 세상시름 다 잊는곳이라니..

풍광이 정말 아름답다.

 

마침 유람선이 지나가는데,, 예년 같으면 풍악에

괴산호가 시끄러을 텐데 세월호 사고 때문인지 조용하다..

 

 

 

▲ 연화담..

 

과거에는 벼농사를 짓던 논이었는데..

연못을 만들어 연꽃을 피게 하였다.

 

 

 

▲ 요즘 보기드문 수동 물펌프..

 

 

 

 

▲ 노루샘.

 

노루, 토끼,  꿩등의

야생 동물들이 목을 축였던 곳이다.

 

 

 

매발톱.

 

 

 

 

▲ 다시 출렁다리..

 

 

 

매발톱.

 

 

 

 

▲ 흐미 조응거..

ㅎㅎㅎ~

 

집사람도 데불고 올껄..ㅋㅋㅋ~

옥동자를 낳는다는데...그런데,, 될라?..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사랑해 

오키

   

 

 

▲ 가족들과 나들이를 오신듯한 할머니 한분이..

ㅎㅎㅎ 그놈참..하시며,,

꼬추를 따 먹는 시늉을 한다..

하도 만져서인지 새까맣다.

ㅋㅋㅋ~~

 

 

 

 

 

 

▲ 솔바위에서 두릅 튀김에 괴산 막걸리 한잔하고..

 

 

 

 

 

15시 23분 : 주차장 하산완료.

 

 

 

▲ 돼지 안다리살 불고기..

포장 하나에 25,000원.. 푸짐하다.

 

 

 

 

 

2014년 02월 16일 : 월류봉(400.7m) : 충북 영동군 황간면.

 

산행코스월류봉 주차장 시산제후 음복 - 에넥스공장 입구 - 월류봉(1봉) - 2봉

3봉 - 3봉 - 4봉 - 5봉 - 소내마을 우천교 하산완료.

행시작 : 월류봉 주차장 : 09시 23분 도착후 시산제 행사 시작.

하산완료 : 소내마을 우천교 : 13시 33분 도착 하산완료. 

(4시간 10분소요 : 시산제 및 점심, 휴식시간포함)

(순수 산행시간 : 2시간 31분 소요)

 



07 : 50  성서IC 출발.

09 : 23  월류봉 주차장 도착(시산제).

10 : 58  월류교.

11 : 05  에넥스공장 뒤편 삼거리.

11 : 36  월류봉(1봉).

11 : 43  2봉.

11 : 57  3봉.

12 : 04  4봉(점심 및 휴식).

12 : 55  5봉.

13 : 33  소내마을 우천교 하산완료.

14 : 10  뒤풀이 장소 금강휴게소로 출발.

14 : 43  뒤풀이 장소 금강휴게소 (경상 식당) 도착.

16 : 35  출발.

20 : 36  대구도착(법원 기준).

 

 

▲  09시 23분 : 월류봉 주차장 도착.

월류봉 표지석.

이 아름다운 포토존에 소화전 설치물이 조금 거슬린다.

 

표지석설치(2001년 12월)를 먼저 했는지

소화전 설치를 먼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소화전과 같이 설치해야만 되었는지 알수가 없다.

 

 

  

▲ 초강천 건너 기암위에 세워진 <월류정>.

한폭의 그림이다..

 

 

  

 

 

 

 

 

▲ 달이 머문다는 곳에,,

음기가 강한 이곳에 태양의 양기도 살짜기 비껴가며

월류정의 아침을 깨운다..

 

 

  

 

▲ 한천정사에서 바라본 월류정.

 

 

  

▲ 한천정사(寒泉精舍)<문화지자료 28호>

 

우암(尤庵)은 선조(宣祖) 40년(1607)

옥천군(沃川郡) 이원면(伊院面) 구룡촌(九龍村)에서 출생한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대(大) 유학자(儒學者)로

그의 유학사상은 이율곡(李栗谷)의 학통(學統)을 계승하여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朝鮮) 인조(仁祖)대부터 숙종(肅宗)대에 이르는 4대(四代)에 걸쳐

노론(老論)의 대표로서 정계(政界)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며

뛰어난 학식으로 많은 학자를 길러내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학문을 연구하며 지내던 곳이다.

후에 우암의 제사를 모시는 한천서원을 세웠었는데,

고종 5년(1868)에 서원을 철거하였고 후에 후학들이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 끝에 온돌방을 두었다.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앞면에 문을 두었는데

앞면 양측에 은행나무가 있었다.

 

 

  

▲ 가운데는 한천정사 현판이 걸려있고,,

좌우측으로 한천팔경(寒泉八景)이 적혀있다.

 

 

  

▲ 좌측에는..

안쪽부터,,냉천정(냉泉亭), 용연대(龍淵臺),

청학굴(靑鶴窟), 사군봉(使君峯)이라 젹혀 있고.

 

 

  

▲ 우측에는..

산양벽(山羊壁),  화헌악(花軒嶽),

법존암(法尊庵), 월류봉(月留峰)이라 적혀 있다.

 

 

  

▲ 한천정사에서 바라본 월류정.

어디에서 바라보나 그림이 된다..

 

 

  

▲ 우암 송시열 유허비(충북 기념물 46호)

한천정사 앞쪽에 있다.

 

유허비란 한 인물의 행적을 기리고,

그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송시열 선생을 기리고 있다.

 

 

  

▲ 유허비각.

 

 

  

▲ 우암송선생유허비(尤庵宋先生遺墟碑)

 

 

  

 

 

 

 

 

 

▲ 월류정을 향해 정갈하게 진설하고..

 

 

  

  

▲ 시산제 행사는 마치게 된다.

 

  

 

 

    

 10시 58분 : 초강천변의 회도석(回櫂石) 과 월류봉,

영동군지 750쪽과 영동향교지 699쪽에 의하면,,

회도석은,, 217년전 황간 현감 이운영(李運永)이 이름지었고

박시화(朴時華)의 글씨.'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운영(李運永) 현감은 지금부터 217년 전에 황간 현감으로 근무하면서

무술년(戊戌年,1778)에 가학루(驚鶴樓)를 중수(重修)하였고,

이 무렵 회도석을 세워서 현민(燃民)들의 애향심을 북돋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선정(善政)을 베풀고 당시 지역 산업 발전에 힘쓰는등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으로 1781년까지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 오고 있다.

 

회도석의 '()'자는 로 음각되어 있고,'돌아오다'의 뜻이 있다.

'()'자는 도()와같은 뜻을 가진 글자로 선진목(船進木)

즉 배를 젓는 ''를 뜻한다. ''()은 돌이다.

 

'물위에 배를 띄워 노를 저어 나가다가 (뜻한바 있어) 다시 되돌아오다. 라는 뜻으로

풀이되며,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가지 말고 되돌아 오라',

'가긴 어딜 가십니까? 빨리 되돌아 오시오.' 라고 하면 되겠다.

 

이곳 황간골의 지형, 즉 풍수설에 의하면 커다란 호수(湖水)형인데

거기에 배가 떠 있는형국이며 그 배가

'들어오는 배가 아니고 떠나가는 배'의 형국이라고 한다

 

어느 지관(地官)의 설()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리도 신통스럽게 보았는지 실로 감탄할 만하다

그래서 떠나가는 배를 다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한 인위적(人爲的)

지형지물을 만들었음이 쉽게 짐작이 간다.

 

결국 월류봉(月留蝶) 근처 강 한가운데 배바우가 지금도 있는데

그 배바우와 연관지어 호수 대신 연못을 파고,

거기에 회도석을 굳건히 세워 놓음으로써 우선 마음의 회도석을 세우고,

풍수적인 회도석을 세우고, 나아가 지역 발전의 내실(內實)있는

다목적 회도석이 되게 하였던 선조(先祖)들의 지혜와

선견지명(先見之明)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없다.

 

이렇듯 이 고장 수호석(守護石)이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귀한 회도석이,

그 후 2백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잘 보존되어 있다.


 

  

▲ 에넥스 공장 뒷길로 들어서니..

교회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 11시 05분 : 에넥스공장 뒤 갈림길..

 

 

  

▲ 에넥스공장 정문에서 오는길..

 

 

  

▲ 본격적인 월류봉 들머리.

 

 

  

▲ 내려다 본 에넥스공장..

왼쪽으로 황간면 신흥리의 바위산과 왕산이 보인다.

 

 

  

▲ 11시 36분 : 월류 1봉에서 바라본 한반도 지형..

 

 

  

▲ 한반도지형을 배경으로 인증샷,,

 

 

  

▲ 우리나라에 한반도를 닮은 지형은 몇군데 있다..

자연은 보면 볼수록 참으로 신묘하다..

 

 

  

 ▲ 당겨본 월류정과 초강천.

 

한천 팔경중에 1경이 월류정이고,,

월류정 앞의 초강천 깊고 푸른물이 2경인 용연대이다.

 

 

  

▲ 에넥스공장과 황간면 소재지 전경.

 

 

  

 

▲ 가야할 2봉, 3봉, 4봉, 5봉..

 

 

  

 

▲ 절벽 끝에 매달린 멋진 소나무..

 

 

  

 

▲ 3봉 가는길..

고만고만하게,,오르내림이 재미가 있다.

 

 

  

▲ 1봉의 깍아지른 졀벽너머 왕산..

오르고 싶어지는 산이다.

 

 

  

 11시 57분 : 월류 3봉.

 

 

 

 영월 동강의 어라연 계곡을 내려다 보는것 같다.

 

 

 

 봄철이면 깍아지른 절벽에 붉은 진달래가 피어나는

아름다운 모습이 월류 8경중에 하나인 화헌악(花軒嶽)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차장에서 성지순례의 하나로

방생법회를 열고 있다.

 

 

 

 

 

 

   

 4봉에서 한번더 내려다 보고..

 

 

 

 

 12시 55분 : 월류 5봉.

 

 

 

 

 뒤돌아 본 월류봉 능선..

 

 

 

 13시 03분 : 우천리 갈림길..

 

 

 

 소내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고사리밭을 지나서..

 

 

 

 소내마을 전경.

 

 

 

 영효재.

충주박씨 재실인듯..

 

 

 

 포도 농장.

포도 주산지 답게 포도밭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우천교 산행들머리..

 

 

 

 충주박씨 세거지.

세거지(世居地)란 조상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말한다.

 

 

 

 13시 33분 : 우천교 하산완료.

 

 

 

 우천리 마을 빨래터,

 

 

 

 14시 18분 : 노근리 쌍굴철교.

무수한 총탄 자국이 보인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老斤里良民虐殺事件)은 한국 전쟁 중,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국 1 기병 사단 7 기병 연대예하 부대가

1950년 7월 25일 ~ 7월 29일 사이에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서 폭격과 기관총 발사를 시작하여,

민간인들을 학살한 전쟁 범죄이다.

 

노근리 학살사건을 실제 경험했던 생존피해자와 유족들인

정은용, 정구도, 양해찬, 정구호, 서정구씨 등으로 1994년에 구성된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 사건 대책위원회(위원장 : 정은용)에서는

사망자 135명,부상자 47명 모두 182명의 희생자를 확인했으며,

400여명의 희생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20여명이다.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 대책위원회 <정구도> 대변인이 중심이 되어

노근리사건 홍보를 4년간 끈질기게 펼친 결과

문화방송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미국 CNN방송 등에서 보도되고 사건이 점점 알려졌다.

 

 

 

 그 결과 노근리사건에 관심을 갖게된 AP취재팀이

1998년 4월에 취재에 착수했고,

 

AP통신의 최상훈 기자, 멘도자 기자 등이

 "노근리 학살사건은 진상규명이 되지 않으면

진실이 알려질 수 없는 사건이므로 반드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현장취재, 가해자들과의 인터뷰등의

탐사보도를 시행하여 1999년 9월, 미 제1기병사단이

"미군의 방어선을 넘어서는 자들은 적이므로 사살하라.

 

여성과 어린이는 재량에 맡긴다." 라는 지시에 의해

노근리 피난민들을 살상한

전쟁범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이 일어났던 경부선 노근리 쌍굴다리는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으며,

충청북도에서도 노근리 학살 사건 희생자들을 위해

2008년 역사공원 건립을 시작하였다.

 

역사공원은 2010년 6월에 191억원을 들여

쌍굴다리 앞 옛 노송초등학교 터를 포함한 13만2240㎡에 조성되어

미군 총격으로 숨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

사건 관련 기록·문서·사진·증언 등을

담은 역사 평화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평화공원은

사진을 찍은 방향의 길 반대편에 있다.

 

 

 

 14시 43분 : 금강휴게소 경상식당.

 

 

 

▲ 매운탕과 도리뱅뱅이.

 

오늘 하루,,

산수를 통해 월류봉에서 충전한 즐거움이

일주일의 활력이 되기위해..

다시 각자의 생활 속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산수 홍보이사의 앉았던 자리에 작은 책자가 있어

열어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내 생에서 가장 귀중한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우리의 삶은..과거 세월의 바탕 위에서

존재하지만,,현재의 성실도에 따라

존재하고 있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미래의 비전(vision)까지

지금 이곳에 존재하니

삼세(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만든 작품이

바로 지금입니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길을 가다가 옷깃만 스쳐도
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인연이라는데,
한 하늘을 이고 사는 많은 친지,가족들의
인연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인연이리니..

 

한세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엄청난 기연속에
살고 있는건 아닌지요..

 

오늘 하루 함께한 산수의 인연은

억만겁의 삼세인연이 만든,,

오늘이라는 작품이 아니겠는가...

 

 ▲ 12월 첫날의 아침해를 보며...

 

고요함 속에

아침해가 밝았다.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을 뿜어내며

 

빠알간 해가 

나의 아침을 깨운다.

 

 

 

 

 

 

 

 

 

 

 

 

▲ 암 걸린 참나무..

 

유난히도 수많은 암세포의 멍에를

안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 넝마 집게..

갑하산을 사랑(?) 하시던 그 누군가가

쓰레기를 치우시다가 깜박 두고 가신것 같다..

 

옛날(1960~70년대)에

 

지금이야
쓰레기가 골칫거리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휴짓조각 하나도 귀해서
그걸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에 집게로 집어넣던
<넝마주이>라고 불리던 직업이 있었다..

 

 

 

 

 

 ▲ 노루궁뎅이 버섯.

 

 노루궁뎅이를 닮았다하여 <노루궁뎅이>버섯이다.

항암, 항균, 항염효과가 뛰어나다.

신경세포의 합성을 촉진하는 촉매제가 있어서

치매, 알츠하이머 증상을 예방도 해주고

치료해주는 효과가 있다.

 

 

 

 

 

 

 ▲ 사철나무 열매.

 

 

속씨식물 화살표 쌍떡잎식물강 화살표 무환자나무목 화살표 노박덩굴과 화살표 사철나무속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이다.

 

추위에 강하고, 공해에 강해서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변이나

공장주변에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는다.

 

 

 

 

 

 

 

 

▲ 산수유..

 

 

 

 

▲ 계룡산 장군봉의 위용.

 

2013년 11월 17일 : 가야산(678m)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산행코스상가주차장 - 남연군묘 - 능선 - 석문봉 - 옥양폭포 - 남연군묘 - 상가주차장하산완료.

행시작 : 상가주차장 : 11시 10분 도착(비가와서 기다림).11시 34분 산행시작.

하산완료 : 상가주차장 : 14시 44분 도착(3시간 10분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07 : 45  성서홈플러스 출발.

11 : 10  상가주차장 산행들머리 도착(우천으로 대기).

11 : 34  산행시작,

11 : 42  남연군묘.

12 : 52  능선.

13 : 14  석문봉(점심식사).   

13 : 59  옥양폭포. 

14 : 28  남연군묘.

14 : 44  상가주차장 하산완료.

20 : 45  대구도착(법원 기준). 

 

 11시 10분 : 상가리주차장 도착.. 

도착 하니 비가와서 산행을 할것인가 말것인가를...

집행부 긴급회의..

 

 

  

▲ 가야산쪽의 비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비도 그친다.

하늘이 파랗게 열리기 시작 하고.

산행을 하자는 쪽으로 의논이 모아지고.

 

 

  

▲ 홧팅소리 요란 했는데,,,

정상을 밟은사람은 몇명일까요?,,

 

 

  

 

  

 

 

 

▲ 좌측의 남연군묘길을 따른다.

 

 

   

 

▲ 밑에서보면 커다란 봉분처럼 보이게

언덕을 만들어 그위에 묘가 있다.

 

 

  

 

 11시 42분 : 남연군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1822)의 묘이다.

대원군 이하응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말을 듣고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을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 이장했으며, 이장한지 7년 후에 차남 명복이 태어났는데

그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그 후 1866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으며, 이 일로 대원군이

서양에 대한 배척을 강화하는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묘는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무덤 주변에서

조선시대의 기와가 많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장명등.

분묘 앞에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돌로 만들어 세운 네모진 등을 말하며.

일명 석등룡(石燈龍) 혹은 석등(石燈)이라고도 한다.

 

장명등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묘역이나 건물의 외부공간을 밝히는 데 있으나,

분묘의 장명등은 이외에도 피장자의 조선시대의 신분을 표상하기도 한다

 

 

  

 혼유석 

혼유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상석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 아래 있는 4개 받침돌의 조각이 아주 정교하다.

돌에 새김 된 모양을 보니 도깨비 문양(鬼面)이다.

  

 

  

▲ 양석,,

<혼유석>의 양쪽에는 <양석>

각각 한 마리씩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양석의 얼굴과 뿔 그리고 발굽 등이 아주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고

배의 옆부분에는 난초를 조각해 넣었다.

 

 

  

 망주석..

양석 바깥으로 각각 한 기씩 서 있다.

 

 

  

 봉분 왼쪽 비석에는 충정공 완산이씨 이구와

그의 부인 여흥민씨의 묘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흥선대원군의 글씨로 1865년 3월에 세웠다.

 

 

 

 

 비는 그쳤지만,,

가야산 정상은 여전히 구름에 싸여있다.

 

 

 

 남은들 상여막.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李球)의

시신을 장지까지 운반하던 상여를 보관하는 곳이다.

 

 

 

 남은들 상여.

이 상여는 그 자체의 가치보다도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상여라는 점에서 유물로서 가치가 있다.

 

본래 사용했던 상여는 2006년에

서울의 국립 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고

현재 보관중인 상여는 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기능보유자인 전흥수씨가

남은들 상여를 모방해 만든 복제품이다.

  

 

 

 길지사..

 

절집모양이 좀 요상스럽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마도 혼백을 모시는 곳인듯하다.

 

 

 

 

 

 

 

  

 

 

 

 

 

 오랜만에 보는 좌표식 이정표다.

 

 

 

 12시 52분 : 가야봉과 석문봉 중간 능선.

주차장에서 1시간 20여분 소요.

 

  

 

 석문봉 오름길..

 

 

  

 능선에 올라서니,,연암산, 일석산이 마루금을 그리고

잔뜩 흐린 날씨에 바람이 엄청 쎄다.. 그리고 춥다..

 

 

  

 서쪽으로는 해미읍성 너머로 서해쪽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석문봉에 석문(石門)의 유래가 궁금하다..

이곳이 석문인가?..

 

 

 

 뒤쪽으로는 가야산정상의 통신탑이 보이고,,

 

  

 

▲ 서해 칼바람에 나목이 되어버린 소나무가 애처롭다.

 

 

 

▲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칼바람 맞으며,,

 

 

 

▲ 구름다리도 있고..

 

   

 

▲ 여기에도 팥배나무 열매가 지천이다..

 

  

 

▲ 드디어 석문봉 정상이 보인다.

 

 

  

 

 

 

 

 

 

 

 

 

 

▲ 13시 14분 : 석문봉 정상.

 

 

  

 

 

▲ 칼바람에 너무 추워 얼어 붙은 망부석이 되었다.

 

 

  

 

 

 

 

  

▲ 운지..

 

 

 

▲ 고요한 골짜기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조차 정겹게 들린다.

 

 

 

 

▲ 곳곳에 벤치를 만들어 놓아..

낙엽진 늦가을에 운치를 더한다.

 

 

  

 

 

 

        

14시 44분 : 상가주차장 하산완료.

 

 

  

 

▲ 옥계저수지..

 

 

 

▲ 공주휴게소 조형물(당진 ~ 대전간 고속도로 준공기념)..

 제목 : 동서남북.

조각가 : 권치규 작.

 

 

  

▲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곳으로자꾸 내려 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요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안도현님의 가을엽서 ---

 

2013년 11월 10일 :

용봉산(381m) / 수암산(259m) : 충남 홍성군 / 예산군.

 

산행코스용봉초등학교 - 미륵암 - 용봉산 - 노적봉 - 악귀봉 - 절고개 - 마애석불 - 용봉사 -

병풍바위 - 수암산 - 세심천 하산완료 - 하산주후 - 간월암관광.

행시작 : 용봉초등학교 : 10시 36분 출발.

하산완료 : 세심천주차장 : 14시 51분 도착. 

(4시간 15분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07 : 25  성서홈플러스 출발.

10 : 36  용봉초등학교 산행들머리 도.

10 : 47  용도사.

11 : 18  용봉산 정상.

11 : 40  노적봉.

11 : 58  악귀봉.

12 : 20  절고개(점심식사).

12 : 44  마애석불.

12 : 48  용봉사.

13 : 01  병풍바위.

14 : 24  수암산 정상.

14 : 51  세심천 하산완료.

15 : 32  하산주후 간월암으로 출발.

16 : 34  간월암 주차장 도착.

17 : 40  관광후 출발.

21 : 35  대구도착(대곡역 기준).

 

10시 36분 : 용봉초등학교.

 

 

 

▲ 10시 47분 : 용도사.

 

 

 

▲ 미륵불(유형문화제 87호)

고려중기 작품이라고 하는데 특이하게도

<아랍인>의 모자를 쓰고있다.

 

 

 

▲ 미륵불은 먼 훗날 이 땅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미래의 부처다.

 

 

  

 

 

▲ 기온이 갑자기 뚝떨어져서 전국이 낮최고 11도..

바람은 차지만 깨끗하게 조망되고 전설에 의하면 용봉산과 백월산이

서로 돌을 던져 싸웠다는 백월산이 손에 잡힐듯 다가온다..

 

 

 

▲ 용봉산 전위봉인 투석봉의 돌무더기.

 

 

 

 

 11시 18분 : 용봉산 정상인데,,

인증샷을 하려는 수많은 산객들로 붐벼서 그냥 통과.

 

 

 

 <최영>장군이 활쏘기를 하였다는 정자.

 

최영 장군이 소년 시절에 애마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내기를 했다고 한다.

화살을 쏘아서 말이 빨리 가면 큰 상을 내리고,

화살이 빠르면 말 너의 목을 치겠다는 내기였다.

말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소년 최영은 말을 타고 건너편 남동쪽 5 킬로미터 지점의

홍성읍에 있는 은행정 방향으로 화살을 쏘았다.

동시에 말과 함께 바람처럼 달렸다.

 

최영이 말과 함께 단숨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화살은 보이지 않았다.

최영은 약속대로 사랑하는 애마의 목을 칼로 내리치는 순간

화살이 피융하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최영은 자신의 경거망동을 크게 후회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고자 약속했던 애마를 그 자리에 묻어주었다.

지금도 홍성읍 국도변 은행정 옆에 금마총이라 부르는 말 무덤이 있다.

 

 

 

▲ 노적봉과 악귀봉에 수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 당겨본 악귀봉.

 

 

 

▲ 용봉산의 유래.

산 전체를 뒤덮고있는 기암괴석이 금강산과비슷하다 하여..

소금강이라고도 하는 용봉산은  지금에 용봉산은 고려시대에는 북산이라 하였고

조선시대에는 팔봉산 이라 불렀다.

 

용봉산은 골짜기마다 문화재와 보물이 산재해 있으며

다양한 전설이 곳곳에 전해진다.

 

예로부터 땅에서 사는 온갖짐승과 새의 무리는 봉황이 지배하였고

산아래로는 물고기를 비롯한 물속의 모든것들은 용 의 지배를 받으며

평화로운 시절을 보냈다고한다.

 

그 후로 하늘의 부름을받아 승천하면서  산의 형성이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용봉산이라 불리워지고있다.

 

 

 

 

▲ 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모자가 날아갈듯 춤을 춘다.

 

 

 

 

 

▲ 노적봉..추억의 아이스께끼...너무 추워서 아무도 찾지 않는다..

 

 

 

▲ 용봉산 노적봉의 명품 소나무.

 

 

 

 

▲ 덕산도립공원인 덕숭산아래 자리한

수덕사가 보인다.

 

 

  

 

▲ 절벽위에서 허리를 굽혀혔다 하면서

부채를 펴고 해를 받아들이는 동작을 하고 있다.

본인은 기공체조를 하는지 모르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 노적봉 내림길.

 

 

 

 

▲ 행운바위..

바위 위에 돌을 던져서 올려지면 행운이 온다는

안내판이 있다.

 

 

 

 

 

▲ 공기돌바위.

 

 

 

 

 

▲ 제일 왼쪽에는 두꺼비 한마리가 하늘향해 솟아 오르고..

 

 

 

▲ 일월산과 용봉산의 투석 전쟁에 얽힌 전설.

 

용봉산과 일월산에는 크고 작은 기암들이 많고,

특히 용봉산은 온통 돌들도 뒤덮이다시피 한데 여기에는

정상인 최고봉 옆에 있는 투석봉의 이름과 함께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이 두 산 사이에 소향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는데,

옛날에 저 용봉산과 백월산에 장수가 각각 살고 있었다는데.

용봉산과 백월산 사이에 소향이라고 하는

아주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장수는 모두

소향 아가씨를 짝사랑하다 보니 서로가 눈에 가시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상대편만 없으면 소향 아가씨를

차지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큰 싸움이 시작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어 자기 쪽 산에 있는 돌을 집어서 상대편

산쪽으로 던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장수는 상대편 장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쉬지 않고 돌을 던졌는데,

일월산에 있는 장수의 힘이 더 쎄었던지 점점 두 산에서 던지는 돌이

용봉산 쪽에 많이 쌓이기 시작하고 마침내 치열하던

싸움이 백월산(일월산) 장수가 이기며 끝이 났다고 한다.

 

그 덕분에 백월산에는 그 많던 돌들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고,

용봉산에는 백월산 장수가 던진 돌들이 많이 쌓여서

기암괴석이 많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소향 아가씨는 일월산 장수가 차지하게 되고

지금의 소향리도 일월산과 같은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게 되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요즘은 용봉산으로 그 돌들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많아지는 통에 용봉산 장수가 싸움에서 지기는 했지만

지금은 거꾸로 그 덕을 보고 있다고 한다.

 

 

 

 

 

 

 

 

▲ 물개바위.

 

 

 

 

  

 

 

 

▲ 돌고래바위.

 

 

 

 

 

 

 

 

 

 

 

 

 

 

▲ 병풍바위.

 

 

 

 

▲ 마애여래입상(보물355호)

고려초기 작품으로 돌출된 자연 암석의 앞면을 파서

조각하였다.

 

 

 

▲ 정면..

 

 

 

▲ 12시 48분 : 용봉사.

 

 

 

▲ 용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이다.

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전하는 유물로 보아 백제 말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까지는 수덕사에 버금가는 큰 절이었으나

1906년 풍양조씨 가문에서 절을 부수고

공조참판을 지낸 조희순의 묘를 썼다.

 

이 때 마을 주민들이 현재의 위치로 절을  옮겼다.

1980년에 법당을 중수하고, 1982년 대웅전을 새로 지었으며

1998년에 산신각과 극락전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영산회불탱화(제1262호)

 

 

 

 

 거대한 암반으로 이뤄진 병풍바위.

 

 

 

 

 

 의자바위.

 

 

 

 

 

 

 

 

 

 시원하게 조망되는 홍성들판에.

내포신도시 건설이 한장이다.

왼쪽 건물은 충남도청이다.

 

 

 

 

▲ 여의주바위.

용봉산 룡이 승천할때 여의주를 놓고 갔다는 여의주 바위다.

 

 

 

 

▲ 오형제바위.

 

 

 

 

  

 

 

 

 

 

 

 

 

▲ 삽교 석조 보살입상(보물305호)

 

 

 

 

 

 

 14시 51분 : 세심천온천장 주차장 하산완료.

 

 

 

 16시 34분 : 간월암 주차장 도착.

 

 

 

▲ 간월도의 위치가 궁금하신분들을 위하여..

 

<천수만>은

우리나라 최대의 철새도래지이다.

 

 

 

▲ 간월도 간월암.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으며

썰물 때는 길이 열리고 밀물 때는 섬이 되는

신비한 섬이다.

 

간월암은 삼국시대에는 피안도(彼岸島) 피안사로 창건되어

당시에 원효대사가 수행하셨던곳이었다고 한다.

 

물이가득 찼을때는 마치 한송이의 연꽃이 또 한척의 배가 떠 있는 듯 하다 하여

따로이 연화대(連花臺)및 원통대(圓通臺)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고려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를 하다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치시고 난후 암자 이름을 간월암 이라 하고섬이름 을 간월도 라 하였다.

 

이후,  무학대사는 이성계(조선시대, 태조)의 스승으로서

한양도읍지를 잡는등 조선의 건국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조정에서는  간월도, 황도 등 을 사페지(賜弊地)로 정하

대사께 드렸으니 많은 수도인이

이곳 간월암에서 득력을 하였던 것이다,

 

그후 조선왕조의 억불정책으로 암자가 폐사된것을

1941년 만공선사께서 선승들의 안목을 기리시며

제자인 마벽초 선사에게 중창(重創)을 명하신 후

친히 조국해방 천일기도를 올렸는데 회향 삼일만에 광복을 맞이 하였으니

조선의 건국과 함께 해방의 초석이된의미 있는 기도 도량이라 아니할수 없다.
그리고 무지개 처럼 아를다운 섬들 사이로 드러나는 일출과 일몰은

빼어난 장관을 이루고 또한 달이 둥실 떠 올랐을 때의 그 교교한 자태란

가히 선경(仙境) 이라 아니 할 수 없으며 하루 두번씩

밀물과 썰물 때는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세계에서도 보기드문

 

천혜의 자연 경관 으로서 이곳 처럼 지리와 명기가 뛰어난 곳도 드물 것이니

과연 생사바다에서솟아 오른 한송이 연화대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 천수만...

 

저 너머로 안면도가 길게 누워있고

기대했던 철새가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

 

 

 

 간월암의 주법당인 대웅전.

 

 

 

▲ 간월암 대웅전 편액.

좌측에 불기2968년이라고 되어 있다.

 

지금은 서기2013년 불기 2557년으로 알고 있는데

2968년이면 411년이 차이가 난다..

 

여기서 불기(佛紀)에 대해 알아보자. 

불기란 불멸기원(佛滅紀元)을 줄인 말로

부처님이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다.

 

지금의 불기는 1956년에 부처님 입멸 2500년을 기념해

네팔의 수도 카트만드에서 제4차 세계불교도우의회가 열렸다.

 

이때 나라마다 달리 써오던 불기 연대를 통일하자는 안건이 상정되어

부처님 탄생년도를 기원전 624년으로 통일,

부처님 입멸년도를 기원전 544년을 불기 1년으로 결정하여

북방불기보다 483년이 늦은 남방불기가 현재 사용하는 불기로 채택되었다.

 

북방불기는 탄생년도를 기준으로 하였고,

남방불기는 입멸년도를 기준으로 하여 사용하여 왔는데,

1956년 이전. 각 나라들은 부처님 입멸기준을 달리 두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네팔에서 채택된 불기도 당시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던 불기와

무려 483년(1년 앞서가는 불기를 정정시는 484년의 차이)의 차이가 남으로 인해서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다 60년대 중반 이후,

 

동남아 불교국가들과 교류가 활발해지자 통일된 불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면서, 우리나라도 결국

1967년 1월 1일부터 새로운 불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 경내에 있는 사철나무..

 

 

 

 

▲ 팽나무..

 

 

 

▲ 벽화에 그려진 간월암 전경

 

  

 

▲ 산신각. 

본래 산신은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

민간에 널리 신앙되었던 토속신이다.

산신각은 우리나라의 토속신인 산신과 호랑이를 봉안한 곳이다

 

 

 

▲ 산신각 내부.


불교가 전래되면서 사찰을 수호하는 외호신이 되여

주로 사찰의 제일 위쪽에 위치한다. 그리고 산신각 안에는

호랑이와 산신상을 봉안하거나 산신탱화를 모시기도 한다.

 

산신 옆에는 호랑이도 함께 하는데, 보통 호랑이와 산신을 같다고 본다.

즉 호랑이가 의인화된 것이 바로 산신이라는 것이다.

소나무는 하늘과 땅의 뜻을 교통(交通)하는 통로라고 한다.

또 동자가 천도봉숭아를 들고 있기도 한다.

 

즉 불교 바깥의 중생들을 불교속으로 끌어 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건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찰에 산신각이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조선 중기부터이며,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리산 하악단,

계룡산 중악단, 태백산 상악단의 3곳에서 산신제를 지냈는데

지금은 계룡산 신원사 내 중악단만 남아있다.

 

 

 

  

 

▲ 건물 양식은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며,

<만공>스님이 쓰신 간월암(看月庵)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송만공(宋滿空, 1871∼1946) 스님은 전북 정읍시 태인면 사람이다.

13세 때 부친이 돌아가시자 어머니가 여승이 됨에 따라 중이 되었다.

소년시절부터 참선에 정진한 만공은 30세에 정혜사 선원조실이 되어

수많은 납자(衲子)를 배출했다.

만공스님이 속세에 살았다면 대단한 기인이었을 것이다.

만공은 젊은 여자의 벗은 허벅지를 베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곱 여자의 허벅다리를 베고 잤다고 해서

‘칠선녀와선(七仙女臥禪)‘이라는 말이 생겼다.

 

어느날 험한 산길을 한 스님과 가는데,

이 동행승이 힘들어서 더는 못가겠다고 했다.

때 마침 밭에서 화전을 일구는 부부가 있었는데

만공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냅다 달려가 여자를 덥석 안고 입맞춤을 했다.

놀란 남편은 쇠스랑을 들고 저 중놈들 죽여버리겠며 쫓아왔다.

엉겁결에 동행승도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났다.

 

고갯마루에 올라 이제 화전 부부가 보이지 않게 되자

행승은 만공 스님에게 그게 무슨 짓이냐고 꾸짖었다.

러자 만공 스님은 "이 사람아, 그게 자네 탓이라고.

그 바람에 고갯마루까지 한숨에 왔지 않나. 이젠 괜챦은가?" 하였다.

 

스님의 이런 파격적인 행위는

그의 은사 스님인 경허 스님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었다.

만공스님은 흔연히 법도를 넘어섰다는 호기 때문에 존경을 받았다.

 

1946년 어느날 76세의 노스님 만공은 저녁공양을 맛있게 들고는

거울을 앞에 두고 독백하기를

"이 사람 만공! 자네와 나는 70여 년 동안 동고동락해왔지만

오늘이 마지막일세. 그동안 수고했네."

하고는 요를 펴고 누워 열반에 들었다.

만공 스님다운 최후다.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내용 중에서--

 

 

 

 

 

▲ 안면도가 조는듯...

 

 

  

 

▲ 용왕단.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하셨던. 성철 스님도

갓 30대에 접어든 나이로 간월암을 찾았다

 

자신을 더욱 큰 고독 속에 가두는 참선,

성철스님은 이곳에서 2년 동안 참선했다 

낮에는 경전을 보고 밤에는 달빛을 보고...

성철 스님의 달에 관한 법어는 어쩌면 간월도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바다에 가면 옷을 벗을 수 있다고.

바다는 허무를 가르쳐 준다고,

혼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육지의 깨달음도 파도에 씻겨봐야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고.

그래서 자신을 가둘 곳으로 섬을 선택한 것이었고

간월암은 그렇게 진리를 찾게 해주는 섬이었다고,,,

 

 

 

▲ 무학대사에 얽힌 이야기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에서 태어난 무학대사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나라에서 진 빚을 갚지 못해 쫓겨 다니고 있었다.

 

포졸들이 대신 어머니를 붙잡아서 고개를 넘어가는데 갑자기 산기가 있었다.

그때 온 산천이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둘러보니 한 곳만 눈이 없어

그곳에서 해산을 하고 아기를 옷가지로 덮어놓은 뒤 태안현청으로 끌려갔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현감이 어머니를 풀어주어 다시 그곳으로 가보니

큰 학이 두 날개를 펴고서 아기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크게 감격한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무학(舞鶴)’이라고 지었으며,

그 고개를 ‘학이 돌본 고개’라 하여 ‘학돌재’라고 하게 되었다.

 

그 후 출가를 한 무학이 이곳 간월도에 암자를 짓고 수행을 하던 중

어느 날 문득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이 암자 이름을 간월암이라고 지었다.

 

간월도에 절이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안면 면장 박동래와 만공스님이 암자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다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만공선사는 이곳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고

바로 그 후에 광복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에...

이곳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의 평안을 얻어가지 않을까하는

정겨운 소리다......

 

 

 

▲ 용봉산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로 같이 사진하나 못 남기고

간월도에서 인증샷..

 

불가에서 이르기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오늘 처음 이곳 용화세계인 간월암에서 나란히 선다는 것도..

소중한 인연이리라..

 

 

  

▲ 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질때

이곳 사철나무 그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쉬어가고 싶은 곳이다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그랬으면 좋겠다. 

--- 사철나무 그늘아래 쉴때는...  장정일님의 시 ---

 

 

 

 

▲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만큼이나..

많은 돌탑들이 쌓은 사람의 소원담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 간월암을 뒤로 하고...

 

 

 

 

 

 

▲ 간월도 해산물 센타...

과거 무질서한 난장 장사에서 탈피하여 깨끗하게조성된 회센타..

 

 

 

▲ 지저분 하던 쓰레기도 깔끔하게 분리수거를 하고,,

 

 

 

▲ 그 중에도 제일로 이뻐보이는 충청도아줌마가 있는 곳에서

5명이,,, 쭈꾸미사브사브 1kg 3만원 / 전어구이 10마리 / 소주 두병..51,000원... 푸짐하다.

 

 

   

▲ 서해 일몰,

 

 

 

 

▲ 석양에 하루마감의 날개짓이 바쁜 저 갈매기처럼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다..

 

산의 형상이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용봉산이라 불리웠다는 용봉산에서,,

각종기암들의 각본없는 하모니에 눈이 즐거웠고

 

무학,, 만공,, 성철스님으로 이어지는

간월도 간월암,,

 

소설가 한승원은,,,

"간월도는 ‘섬이 절이고, 절이 섬인 곳’이다.

‘진리’를 찾는, 작지만 존귀한 섬”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간월도는 인간이 절대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섬이다.

세상살이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방문하면 좋다.

절대 고독을 느낄 때 오히려 일이 잘 풀릴 수 있다” 라고 ...

 

오늘,, 간월도를 돌아보니,,, 비록,,

세상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찾아온 간월도는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는 그 황홀함의 크기 만큼

마음의 평안을 느끼고 가는

하루 였다.

 

 

 

2013년 11월 03일 : 구룡산 삿갓봉(373m) : 충북 청원군 문의면.

         

산행코스대청댐 전망대 - 현암사 - 오층탑 - 돌탑봉 - 구룡산 삿갓봉 - 장승제단 - 진장골 -

가리 윗주차장 산완료 - 청남대 - 역사문화관 - 본관 - 전두환대통령길 - 양어장 - 골프장 -

대통령광장 - 어울림미당 - 청남대주차장 - 문의면이동 - 하산주.

행시작 : 대청댐 전망대 : 11시 02분 출발.

하산완료 : 오가리 윗주차장 : 13시 21분 도착. 

(2시간 19분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08 : 07  성북교 출발.

10 : 59  대청댐 전망대 산행들머리 도.

11 : 02  등산 시작.

11 : 11  현암사.

11 : 18  오층탑.

11 : 26  돌탑봉. 

11 : 41  구룡산 삿갓봉 정상.

12 : 09  장승제단.

12 : 51  진장골.

13 : 21  오가리 윗 주차장 하산완료.

14 : 23  청남대 주차장 도착, 1시간 20분 관람후.

15 : 44  청남대 출발.

16 : 07  문의면 하산주 장소 도착.

17 : 25  하산주후 출발.

 

20 : 35  대구도착 (성북교 기준).

 

▲ 성북교,,, 귀금당

소나무산악회 연락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 구병산 휴게소.

 

 

 

▲ 중부내륙고속도로 기념비.

 

 

  

▲ 10시 59분 : 대청댐 전망대 도착.

 

 

 

▲ 대청호.

 

 

 

▲ 대청댐.

건너편의 점선안이 <청남대>다.

안개가 자욱하여 깨끗하지 못한 조망이 아쉽다.  

원효대사가 현암사를 창건하고 이곳이 장차 물이 넘어 올 곳 이라하여

<무너미>라 하였고 무너미라는 말은 나중에 <문의>로 바뀌어

현재의 문의면이 되었다.

 

 

 

▲ 대청댐 하류.

 

 

 

▲ 대청댐 홍보관.

 

 

   

▲ 급경사 계단의 현암사로 가는 산행들머리.

 

 

   

 

▲ 현암사 가는길.

 

 

 

▲ 현암사에 필요 물품을 나르는 <모노레일>과..

 

 

 

▲ 별도의 <삭도>가 설치되어 있다.

 

 

 

▲ 현암사 요사채.

 

 

 

▲ 사찰 공양을 준비하시는 보살님들.

 

 

 

▲ 현암사 마당에서 바라보는 대청호.

날씨만 좋으면 건너편의 청남대가 조망된다.

 

 

 

▲ 대웅보전.

 

현암사는 신라 때 세워진 자그마한 암자.

서기 406년 고구려의 선경대사가 세우고 원효와 혜통국사가

중창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져 온다.

 

현암(懸岩)이란 이름 그대로 가파른 구룡산 자락에 붙어 있다는 뜻.

고목나무에 제비가 집을 지은 형국이라고 해서

풍수지리상 연소형(燕巢型) 지세인데

고목나무에 매달린 다람쥐 같다고 해서 ‘다람절’이라고도 불렸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찰에서 들리는 은은한 독경소리와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보며 선비들이

시를 읊던 곳’이라고 적혀 있다.

 현암사 앞이 호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은 바로 원효대사였다.

인도로 유학을 가던 중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크게 깨달은 뒤

현암사에서 2년 동안 수도를 했다.

대사는 이곳에 2층 누각을 짓고 삼호루란 편액을 걸고 도를 닦았다.

 

원효대사는 1,000년 뒤 절 앞에

커다란 3개의 호수(三湖)가 생길 것이라고 예언했다.

원효대사는 또 이 일대가 임금이 머무는

나라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 수능 -4일전..대통령의 기운이 서린 사찰이라서 그런지,,

여기에도 수능을 잘치르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비는 학부모님들로

법당안에는 발 디딜틈도 없다.

 

 

 

▲ 도공스님은 청남대가 있는

황호, 보조댐이 있는 미호, 대전상수원취수장이 있는 용호가

원효대사가 예언한 3호(湖)라고 설명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명나라 원군으로 온 이여송 장군이 현암사가

청룡의 등에 얹혀있는 형국이라 큰 인물이 날 것으로 보고

맥을 끊으려다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우 때문에

실패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 삼성각에도 정성으로 가득하다,

 

 

 

▲ 오층탑으로 가는길의 울창한 소나무 숲.

 

 

 

▲ 오층탑.

 

 

  

▲ 오층탑에서

입시의 정성을 방해 하지 않으려고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파이팅..

 

 

  

 

 

 

▲ 돌탑봉.

 

 

 

▲ 다행히 비가오지 않아서 촉촉하게 젖은

기분좋은 능선길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 구룡산 정상.

 

 

 

▲ 산아래 마을 진장골에 2004년 3월 5일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

마을과 집과 비닐하우스, 축사. 나무, 과수원이 폭삭 내려앉아

많은 피해를 입고 망연자실하였으나,,

 

민들은 다시일어나

주변의 여러기관의 도움을 받고 쓰러진 나무들을 주워 모아서

500여개의 장승을 만들어 세웠고.

정상에는 주민들의 의지를 모아 용을 만들어 놓았다.

 

 

 

 

 

 

 

 

 

 

    

 

 

  

 

 

 

 

 

 

 

▲ 이 마을은 여혈(女血) 강하여 그 혈기를 안정시키는 뜻으로

갖가지 모양의 남근석을 깍아 세웠다.

 

 

 

▲ 구룡산 장승 제단.

 

 

 

 

 

 

 

▲ 나무는 죽을때 슬픈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곳
그쪽으로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서야
꽉 움켜 잡았던 흙을 놓는다

새들도 마지막엔 땅으로 내려온다
죽을 줄 아는 새들은 땅으로 내려온다
새처럼 죽기 위하여 내려온다
허공에 떳던 삶을 다 데리고 내려온다

종종거리다가
입술을 대고 싶은 슬픈 땅을 찾는다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있다
아름다운 듯 서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정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

 
-- 최문자의 <닿고 싶은 곳> 중에서,, --

 

 

 

▲ 믿은, 소망, 사랑..

언제나,, 오늘 같은 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 진장골,,

대 여섯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꼭대기 하늘동네다.

 

 

 

 

 

 

 

 

 

 

 

  

 

 

 

  

 오가리로 내려가는 아름다운 길..

 

 

 

 오가리 윗 주차장 하산완료.

 

 

 

   

▲ 청남대 주차장.

가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엄청 몰려 왔다..

 

 

 

 

 

 

 

▲ 국화 축제장..

2013년 10월 26일부터 11월 17일까지다.

 

 

 

 

 

 

 

 

  

 

 

  

  

▲ 본관..

관람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작년 2012년 12월1일에 와 본 곳이기에,,,

 

 

 

 

▲ 본관 뒤뜰 포토존으로 간다.

 

 

 

 

 

 

 

 

 

▲ 양어장.

 

 

 

 

 

 

▲ 메타세콰이어 길,,

 

 

 

  

 

 

 

  

▲ 어울림 광장을 지나서..

 

 

 

▲ 여기서 부터는 좌측으로 골프장이 이어 진다.

 

 

 

 

 

 

▲ 그늘집에서 바라본 대청호,,

 

 

 

 

 

 

 

▲ 최대 저수용량이 14억 9000톤의 대청호,

 

 

 

▲ 대통령광장..

역대대통령들의 동상이 서 있다..

 

 

 

▲ 박정희 전대통령과 인증샷,,

 

 

 

 

 

 

 

 

▲ 낙우송.

낙엽이 새의 깃털이 떨어지는 모습과 같다하여

낙우송이라 한다.

 

 

 

▲ 화살나무,,

 

 

 

  

 

 

 

▲ 골프장 포토존.

 

 

 

 

 

▲ 다시 그룹사운드 은하수가 연주하는 어울림마당을 지나고,,

 

 

 

▲ 잘 가꾸어진..

 

 

 

▲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 청남대 주차장을 출발하여..

 

 

 

▲ 문의면 하산주 장소로 이동..

 

 

 

▲ 하산주 준비하는 동안 주변 한바퀴~~

 

 

 

 

 

 

 

 

 

 

▲ 아싸 좋고,,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 땅거미 내려앉는 둘레길을 다시한번,,

 

 

  

▲ 농약을 치시는 모자의 농심,,

가까이가서 무슨약을 치느냐고 물어 보니

잡초제거제라고 한다..

마을 밭인데.. 지금 쳐 놓으면 내년 봄에

잡초가 올라 오지 않는다고 한다.

 

 

 

 

▲ 노모를 모시고 돌아간다..

 

 

 

▲ 의성마늘도 유명하지만.. 청원 마늘도 유명하다시며

마늘자랑이 대단하시던 노마님..

언제까지나 건강 하십시요..

 

 

     

▲ 오늘 하루 남자들만의 가을 이야기.. 

함께 한다는 것은 외로움이 아니어서 좋다.
함께 한다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 곁에 있는 것이어서 좋다.

함께 한다는 것은멀어도 멀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어서 좋다.
함께 한다는 것은 기쁨을 함께 나누고슬픔을 또 함께 나누는 것이어서 좋다.

 

함께 한다는 것,

참 행복한 일이다.

 

 

 2013년 08월 11일 보련산(764m) : 충북 충주시 노은면.

 

산행코스하남고개 - 자연동굴 - 보련산 - 국사봉 - 보련골 - 주차장 - 연하2리주차장 산완료.

행시작 : 하남고개 : 10시 29분 출발.

하산완료 : 연하2리 주차장 : 14시 23분.

(3시간 54분 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06 : 50  칠성동 삼성홈플러스 출발.

10 : 29  충북 충주시 노은면 하남고개 산행들머리 도.

11 : 24  자연동굴.

12 : 03  보련산 정상(점심).   

13 : 23  국사봉.

14 : 23  연하2리 주차장.

17 : 25  하산주 후 출발.

20 : 13  대구도착 (칠성동 삼성홈플러스).

 

10시 29분 : 하남고개 도착.

 

 

 

 

 

 

 

눈이 온듯,,하얀 <사위질빵>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 덩굴식물로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며

양지바른 산과 들에서 흔히 자라며,,.

한의학에서는 여자를 시들게 하는 풀이라하여~~

여위(女萎)라고도 부른다

 

<사위질빵>,,,이름도 어찌 이리도 서민적이고 아름다운지,,

야생화를 배울수록 점점 더,, 그 매력에 빠져 들게 한다.

이 식물에는 장모님의 사랑이 듬뿍담겨있는 전설이 있으니...

 

 옛날, 추수철이면 사위가 처가에 가을걷이를

도와주러 가는 일이 상례였다고 한다.

확을 하면 농작물을 집으로 날라야 하는데

칡이나 다른 식물의 줄기 혹은 껍질을 이용하여

등짐을 만들거나 지게로 져서 나른다.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사위를 몹시 사랑하는 한 장모가

사위를 아끼는 마음에, 자신의 짐은 보다 더 질긴

할미질빵 덩굴로 끈을만들어 짐을 많어 지었고

 

사위한테는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으려고

쉽게 뚝뚝 잘 끊어지는 이 식물의 줄기를

질빵 끈으로 만들어 짐을 적게 지게 하였다는

옛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사위질빵>의 또 다른 이름 <위령선>

 

옛날 중국의 하남성 복우산에 금실이 좋은 부부가 살았다.

어느날 남편이 늦도록 일을 하고 나서 술을마시고 돌아 오다가

집 앞의 돌계단에 누워 잠이 들었다,

 

아내가 늦게 마중을 나오다가 남편을 발견하고 깨웠더니,

이미 남편은 중풍을 맞아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아내는 의원을 불러 치료를 받게하고 10년동안 정성스럽게 간호했지만,

남편의 병은 더 심해져서 혼자서는 돌아 눕지도 못하는 형편이 되였다,

아내는 남편의 병을 고칠수 있는 방범을 찾던 끝에

남편이 누운 침대를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길가에 내놓고

옆에 앉아서 큰소리로 외쳤다.


누구던지 이사람의 병을 고쳐 주십시요
지나가던 사람이 모두 쳐다보고 혀끝을 끌끌찼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을때 지팡이를 짚고 보따리를 둘러맨

한 노인이 지나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이사람의 병은 풍습(風濕)으로 인한 중풍인데 내가 고칠수 있소 하였다.
그날부터 노인은 산으로 가서 어떤 덩굴의 뿌리를캐서

술에 담갔다가 끓여 환자한테 먹이고

또 가루를 내여 식초와 반죽하여 관절에 싸메주웠다,

 

며칠 안되여서 환자는 팔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

몇달뒤에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닐수 있게 되였다,

 

남편의 병을 고치고 나서 노인이 떠나려 할때 아내가 말했다,

어르신네 남편의 병을 고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신기한 약초좀 가르쳐 주십시요..., 하였더니

그 노인이 이약초는 본래 이름이 없으니 <위령선> 이라고 부르도록 하십시요

위는 강하다는것이고 영선은 효력이 신선과 같이

영험하다는 뜻이지요 하고는... 떠났다고 한다.

 

 

 

하남고개에서 7 ~ 8분 가량 임도를 따라 오르면

본격적인 보련산 들머리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전형적인 육산이지만,,

초입부터 된비알의 연속이다..

 

 

 

11시 24분 : 개념도상의 자연동굴.

커다란 바위 두개가 서로 마주 하면서 생긴 자연 굴이다.

 

 

 

보련산 정상 700미터 전방의 쉼터 이정표,,

 

 

 

▲ 재미있는 표어다..

 

 

 

▲ 8월의 야생버섯.

 

 

 

12시 03분 : 보련산 정상,,

 

삼국시대 때 이곳 보련산 서쪽 가마골 마을에

<장미>라는 사람과 <보련>이라는 누이가 살았는데

명산의 정기를 받은 이들은 둘 다 장수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옛부터 한 집안에 두 장수가 태어나면

그 중 하나는 희생되어야 하기에 두 사람은 성쌓기 겨루기를 하기로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가슴을 저미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어머니가 보기에 <보련>이의 성 쌓는 솜씨가

아들인 <장미>보다 뛰어나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결심을 한 어머니는 손수 떡을 해서 <보련>이에게 떡을 보이고

다시 성을 쌓게 했는데 보련이가 마지막 돌을 하나 올리려는 순간

<장미>쪽에서 성을 다 쌓았음을 알리자,,,

 

<보련>이는 어머니가 아들을 살리려 했음을 알고 집을 떠났다고 한다.

<보련>이가 떠난 다음 날 보련이의 집에 큰 별이 하나 떨어졌다고 하며

그후 그 지역 산과 산성을 보련산-보련산성,

장미산-장미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오늘은 오래전부터 한번 가야 겠다,, 라고 하고는

여지껏 가보지 못하다가 오늘 엄사장이 활동하는 대아산악회에 동참하여,,

마음든든한 아우님들과 정상 인증샷..

 

 

 

▲ 보련산의 악동들,,ㅎㅎㅎ~~

이 우정,, 천금으로도 살수 있으랴..

 

 

 

▲ 우정,,

나무는 한곳에 붙박이로 서서
몇 백 년 말없이 살아가고

꽃은 철 따라 피고 지면서도
그 모습과 빛깔 한결같다

오늘의 태양은
내일도 어김없이 떠오르고

지금 내 눈에 와 닿는 별빛은
아득히 먼 우주를 한결같이 달려왔으리.

세상의 모든 보이는 것들
세월 따라 달라지고 사라져도

영원 무궁토록 변치 않는
보이지 않는 것들 있어

우리의 삶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아름답고 기쁘니,

까마득한 옛날에 만나
슬쩍 인연의 옷깃 스쳤을 뿐인데도

조금도 낯설지 않은
나의 오랜 벗이여

우리의 첫 마음, 우리의 우정도
한평생 변함이 없으리.
 

-- 정연복님의 오랜 벗 --

 

 

 

▲ <보련>과 <장미>의 전설을 안고 있는 가마골이

내려다 보인다..

 

 

 

▲ 실로 오랜만의 인연을,, 오늘에 만끽하며,,

마음껏 지어보는 미소에,,

 

그 옛날..

 이 곳에서 성을 쌓다가 동생을 살리려고 훌쩍 떠났다는..

<보련>아씨의 미소도 함께 한다,,

 

 

 

▲ 정상에서의 하산길은 풀이 우거져 길이 전혀 보이지를 않고

등산객의 발길이 거의 없다..

 

 

 

12시 15분 : 먹자 자주 먹자,,

먹은 만큼 간다,, 라는 오름길의 표어처럼 먹자..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알바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ㅎㅎㅎ~

 

한참이나 지나서야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았지만...

여지껏 왔던길이 아까워 그대로 진행한다.

 

 

 

13시 23분 : 국사봉.,,

코팅해서 붙여 놓으신 선답자 <박건석>님의 표시를

보고서야 여기가 국사봉임을 알게 된다.

 

보련산에서 국사봉 까지는 그런데로 뚜렷한 길을 왔으나

여기서부터 간벌 작업으로 길도 없는 능선길을 조심조심 내려간다..

약 30여분 가량의 알바끝에 계곡 등산로를 확인하고..

하산지점으로 직행.

 

 

 

▲ 안내도를 보니 정확하게 내려 온것 같다..

5번길에서 좌측으로 간 것이다.

 

 

 

주인 떠난 연하리.. 빈집만이 덩그렇다..

이 집에도 한때는 애기 울음소리,, 삶의 소리,,,,,

한시대를 스쳐간 사람들의 소리들이 분명 있었을터,,

 

폐가는 오늘도 말없이 여기서 살다간 주인을 생각하며,, 스러져 가는데..

그 누군가의 후손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을까.

 

 

 

▲ 주차장 가는길에 보련산을 올려다 보니..

알바를 한 구간이 한눈에 보인다..

 

붉은 선을 따라 좀더 아래로 내려 왔어야 되는데..

노란선으로 일찍 접어든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해피엔딩..

 

우리보다 뒤쳐졌던 후미조들은 붉은선따라 내려 오긴 했지만

길이 없어져 키를 넘는 산죽을 헤치고 오느라

완전 파김치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조가 하산 하고서도 후미조는 ,,

약 1시간 이상을 기다린 후에야 하산한다..

이게 바로 전화위복이다,,

 

 

 

14시 23분 : 연하2리 주차장 도착 하산완료.

 

 

 

▲ 13년 관록의 대아산악회..

닭백숙.. 돼지고기.. 푸짐하다.

 

하산주를 준비하는 동안 풍덩하러 간다..

무슨 풍덩인지는 묻지 마시길..

ㅋㅋㅋ~

 

 

 

▲ 산신각으로 가는 보련골..

어찌나 청정지역인지 1급수에만 사는 가재가 수도없이 많다.

물이 너무 차가워서 5분을 못있을 정도다.

 

 

 

▲ 처음보는 메뚜기다..

아시는 분 댓글 부탁 합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흐르는 물가에서

물벌레를 잽싸게 잡아 먹는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도망 갈 생각은 않고 멋지게 포즈를 취하길래..

살짝 건드려 보니 완전 총알이다,

순식간에 풀숲으로 사라진다.

 

 

 

▲ 다시 돌아오니,,

이 무더운날에 많은걸 준비 하였다..

 

 

 

▲ 요놈을 한개 못 먹은게 못내 아쉽다,,

쩝쩝~~

 

 

 

▲ 우리 조들도 물위에 하산주 차림,,

 

 

 

▲ 삶은 돼지고기,, 입에 살살 녹는다..

 

먹을 만큼 먹었으니,,

오늘도 동네 한바퀴,,

 

 

 

아우님들도 따라오며.. 연출된 사진은 싫다며..

 리얼하게 찍어 달랜다..ㅎㅎㅎ

 

 

 

▲ 태고종 소속의 <보련사>.

노 스님 한분이 지키고 계신다.

 

 

 

▲ 스님이 기거 하시는 요사채 인 듯...

 

 

 

▲ 비록,,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길의 흙냄새가

시멘트블록에 갇혀 버렸지만,,

 

 

 

▲ 더구나, 여기계신 농촌의 연로하신 분들께서

비만 오면.. 흙탕물로 부터 자유로울수 있으시니,,

좋지 아니한가..

 

 

 

 

 

 

▲ 파 씨앗(?)이라고 한다..

농사를 모르니.. 그런가 보다..

 

 

 

▲ 잔대..

 딱주,사삼(沙蔘),제니라고도 하며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를 식용하며, 한방에선 뿌리를 사삼이라고 부르며

진해,거담,해열,강장,배농제로 쓴다.

 

 

 

▲ 스님 말씀이 나팔꽃 종류라고 한다..

 

 

 

 

 

▲ 도심에서는 덥다고들 하지만,,

시골의 코스모스는 벌써 가을을 노래한다..

 

 

 

▲ 부지런한 꿀벌도 겨울을 준비하고,,

 

 

 

▲ 호박에도 가을이 앉아 있고..

 

 

 

 

▲ 대추도 추석 차례상에 올려지기 위해..

영글어 가고 있다.

 

 

 

 

▲ 설악초..

북아메리카가 원산으로 하루종일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서 잘 자란다.

 

식물의 즙액은 독성이 있으며

달이 있는 밤에 보면 야광처럼 빛이 난다.

 

 

 

▲ 나무에서 수액이 흐르길래..

 

 

 

▲ 자세히 보니..

점선 있는 곳에서 나무가 물오름짓을 할때마다

거품이 나면서 수액이 밖으로 나온다..

 

심장이 뛰어 혈관을 돌게 하듯이

나무 역시도,, 잠시도 쉬지않고 

스스로 생명의 펌프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연하 마을의 안녕을 비는 재실..

 

 

 

▲ 예로부터 동양의 선약(仙藥)으로 전해지는 과일,,,,.

중국 곤륜산의 신선 <서왕모>가 가꾸었다는

장수(長壽)의 열매 복숭아가 익어가는 마을...

 

보련산 자락의 보련골에서 흐르는 깨끗한 1급수가

마을의 생육(生育)을 키워내는 마을..

 

그 속에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곳,,,

가히,, 무릉도원 같은

아름다운 <연하>마을이다..

 

 

2013년 07월 28일 천태산(714.7m) : 충북 영동군 양산면.

 

산행코스신안사 주차장 - 신안고개 - 감투봉 - 전망바위 - 공기돌바위 - 암벽 - 천태산 -

           암릉 - 영국사 - 주차장 산완료.

행시작 : 신안사 주차장 : 10시 35분 출발.

하산완료 : 천태산 주차장 : 15시 23분.

(4시간 48분 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07 : 12  성서 홈플러스 출발.

09 : 43  충남 금산군 제원면 신안사 주차장 도.

10 : 08  신안고개.

10 : 43  감투봉.   

11 : 23  전망대바위.

11 : 37  공기돌바위.

12 : 19  천태산 정상(점심).

 

13 : 26  암벽능선.

14 : 03  영국사.

15 : 23  천태산 주차장 하산완료(하산주).

16 : 45  출발.

19 : 48  대구 도착(법원 기준).. 

 

▲ 06시 13분 : 오늘은 영동 천태산으로 가는날.. 

칠성교를 건너는데.. 부지런한 백로(왜가리) 한마리가

가랑비 내리는 신천을 거닐고 있다.

 

 

 

▲ 09시 43분 : 신안사 주차장 도착.

 

여기까지 오는동안 세차게 내리던 비도

소강상태를 보이며 가랑비로 바뀐다.

 

 

 

▲ 충남 금산군 제원면 신원리에 위치한 <신안사>는. 

651년(진덕여왕 5) 자장(慈藏)이 창건하였고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충북 영동군에 있는 영국사(寧國寺)에서 수학할 때

이 절에도 가끔 들러 머물렀는데 주변 경관과 어울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여 신안사(身安寺)라고 했단다.

 

전성기에는 대웅전과 극락전, 진향각(眞香閣), 요묵당(寥默堂) 등

호화롭고 장엄한 건물이 즐비했고, 불상 또한 10여 위가 있었으며

3,000여 명의 승려들이 수행하는 거찰(巨札)이었다.

 

 

 

▲ 대광전,

 

 

 

▲ 극락전과 7층 석탑.

 

 

 

▲ 사방댐 인데..

시멘트 덩어리로 흉물스럽게 만든것 보다는

기왓장무늬를 넣어 놓으니 보기도 좋다.

 

 

 

▲ 임도를 따라서 신안고개로,,

 

 

 

 마타리,,

 

봄에 나오는 어린순은 나물로 먹기도 하며 원예식물로 뜰에 심기도 한다.

이밖에 말린 뿌리를 패장(敗醬)이라고 하는데,

소염(消炎)·어혈(瘀血)이나 고름을 빼는 약으로 쓰인다.

 

<뚝갈>과 비슷한데,, 뚝갈은 하얀꽃을 피우고

<마타리>는 노란꽃이다.

 

 

 

▲ 옥잠화(옥비녀 꽃).

백합과의 다년생초이며, 중국에서 들어 왔다.

밀원식물로 잎과 꽃이 아름다워 원예용으로 재배되며,

잎은 식용으로 한다.

 

옥잠화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중국에 피리 부는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살았다.

어느 달 밝은 밤에 몰아지경의 상태로 피리 한 곡조를 읊고 있는데,

홀연히 하늘에서 선녀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옥황상제의 따님이 방금 곡을 다시 듣고 싶어 하시니 한 번 더 불어 달라고 말했다.

피리의 명수는 선녀의 부탁대로 하늘의 공주님을 위해서 아름다운 연주를 해 주었고

선녀는 고맙다고 하며 하늘로 올라가면서 자신이 꽂고 있던 옥비녀를 그에게 던져주었는데,

옥비녀는 피리의 명수 손을 스치며 땅에 떨어져서 그만 깨져 버리고 말았다.

 

후에 그 자리에서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봉오리의 모습이 선녀가 던져주었던

옥비녀와 비슷하여 사람들이 이 꽃을 옥잠화, 즉 '옥비녀 꽃'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10시 05분 : 신안고개.

 

 

 

▲ 분명히 쌍분인데.,,,,

특이하게도 하트모양으로 조성한 무덤이 있어 담아 본다.

망자의 유언에 의해서일까?... 아니면

금슬 좋으셨던 부모님을 기리는

후손들의 생각일까?..

 

 

 

▲ 등산객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인듯..

우거진 칡넝쿨이 등산로를 뒤덮었다.

 

 

 

▲ 빗물 고인 독버섯...

잘 알지도 못하는 버섯을 함부로 먹다가는

독배의 잔이 된다..

 

 

 

▲ 10시 43분 : 감투봉...능선 갈림길..

진행 방향으로 왼쪽은 대성산쪽이고..

우리는 오른쪽 2.9km의 천태산을 따른다..

 

 

 

 

▲ 원추리(넘나물)관상용으로 흔히 심으며,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꽃은 중국요리에 사용하며 뿌리를 이뇨,지혈,소염제로 사용한다.

 

 

 

 

▲ 꽃며느리 밥풀.

햇볕이 잘 드는 숲 가장자리나 길가에서자라는 한해살이풀로 높이 30~50cm 정도 자란다. 

옛날에 며느리가 밥이 되었는지 살피려고 밥알 몇 개를 먹는 중

심술궂은 시어머니가 이 광경을 보고 어른보다 먼저 먹는다고

밥주걱으로 때려 며느리가 죽었다고 한다. 

그 후 며느리의 무덤가에 꽃이 피었는데

붉은 꽃잎 안쪽에 하얀 밥풀같은 무늬가 두 개 있어

"꽃며느리밥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정말 꽃잎속에 하얀 밥알 두개가 있는것 같다..

 <꽃며느리밥풀> 이름이 예쁘다..

 

 

 

▲ 산행하기 좋은 날씨에 감사하며

나도 빙그레 웃고,,,,

 

 

 

 

▲ 이제 간간히 기암도 보이고,,

 

 

 

▲ 이무기인지 거북이인지..

 

 

 

▲ 감투봉에서 천태산으로 가는 능선의 암반들은 하나같이

수평으로 놓여있고,, 전망이 좋은곳에 있다..

 

아마도 충청도분들의 올 곧은 양반 심성을

산세도 바르게 닮았는가 보다..

 

 

 

▲ 11시 23분 : 신안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

 

 

 

▲ 야생의 도라지꽃..

꽃말은 행운, 사랑

 

 

 

▲ 희미한 안개속의 공기돌 바위.

이쪽에서 보니,,

중국 삼청산의 사춘여신상(동방여신)을 닮은 것 같다.

 

 

 

▲ 11시 37분 : 공기돌 바위,,

가까이에서 보니 묘하게 올려져 있다..

 

 

 

▲ 아~ 적어도 이순간만은,,

안개비에 쫏기듯 내려 와야만 했던 중국의 황산이 조금도 부럽지 않다,,

 

자욱하던 운해가..점차 엷어지며..

서서히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 공기돌 밑바닥을 보니 흔들바위 같다..

 

 

 

▲ 자욱한 안개속에,, 아차 하면 천길낭떠러지다..

조심조심 바위길을 넘어오면,,

 

 

 

▲ 바위를 내려 와야 되는데 높이가 만만치 않다..

특히나 여성회원님 들에게는..

 

그런데,, 여기에도 누군가에 의한 고마움의 흔적이 있다..

바위를 쪼아 발판을 만들어 놓았다.. 

그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씀 올립니다..

덕분에 안전하게 내려 올수 있었습니다..

 

 

 

▲ 조금전 넘어 왔던 바윗길..

 

 

 

▲ 쥬라기 공원에 온듯..

앞에는 매뚜기를 닮은 공룡이.. 뒤에는 덩치큰 공룡 같다..

 

 

 

 

 11시 46분 : 수직 절벽,,

 

 

 

 둘러 보아도 밧줄이 아니면 올라갈 수가 없다..

 

 

 

 

▲ 올라온 절벽..

 

 

 

▲ 나도 폼 잡고,, 한장 건졌다..

홍사장님 감사요..

 

 

 

▲ 밑에서 볼때는 메뚜기를 닮은 공룡 같더니

뒤에서 보니 두꺼비 같다...

 

 

 

 

▲ 솔잎 총무님요,, 워매~~.무서버...,.

올려다 보는 내가 다 오금이 저리요,,ㅎㅎㅎ

조심하이소~~

 

 

 

천년바위의 모습에서,,,

나의 몸은 늘 생명의 기운이 약동한다.

 

산줄기에서 솟아나는 물은 대지를 적시고 모든 생명체를 살리며.

흘러내린 계곡의 물은 작은 시내를 이루고 

시냇물들은 다시 큰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들고. 

그 은혜로움으로 우리들은 그 속에서 삶의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고 있다.

 

산은,,, 그래서 늘 신비하고 은혜롭게 다가 온다.....

우리의 인생도 <산>처럼 변함없는 믿음을 줄 수는 없울까 ...

있다면,,,,, 인생은 결코 고독하지 않을 것이다.

 

  

 

▲ 두꺼비 같기도 하고,,, 황소개구리 같기도 하다..

 

 

 

▲ 왼쪽은 충남 금산군,,

우측은 충북 영동군으로 도경계를 이루고 있다..

 

 

 

▲ 기암,,

 

 

 

 

▲ 산을 20여년을 타고 나서야..

서럽거나,, 외롭거나,, 즐겁거나,,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산으로만 들어가 헤메는 까닭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산을 타는 동안에는

슬픔이나 외로움,,

그런 것 들은 이미 저만큼 사라지고산과 내몸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 감투봉과 천태산 사이의 하일라이트 구간이다..

운무가 사라 지는가 하면..

 

 

 

밧줄과 한바탕 씨름하며 올라서니

바람이 세차다..

 어느새 새로운 운무가 덮어버린다..

 

 

 

▲ 하루라는  시간이  더해지고,

또  더해지는  만큼

흩어지는 안개처럼,, 변하여야만 하는 것들속에서

무엇을 기억하며 또, 버려야 할까?

 

잊고자 한다고 까맣게 잊혀지고

떨쳐 버린다고 버려질까?

그 모두가 욕심일뿐,

 

오늘 여기 자연앞에 서서,,

지난 시간에 누군가의 가슴을 아프게 하진 않았는지,,

조심스레 성찰해 본다..

 

 

 

▲ 멀리 대성산이 구름에 가려 있다..

 

 

 

12시 02분 : 충남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화원동)로 하산하는 갈림길..

이정표는 잘 되어 있어나..

대성산과 천태산을 종주하는 사람만

간간히 다니는 구간이다..

 

 

 

12시 19분 : 천태산 정상,, 점을 찍고..

 

 

 

 

 

▲ 벼이삭님과 함께,, 정상 인증샷...

세번째로 같이 하는 산행이다.. 

젊은이 못지않는 체력과 건전한 정신력의 소유자이다.....

 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 하산길에 내려다 보니 천년고찰 <영국사>가 보인다..

 

<망탑>과 <고래바위>에 안가보신 분을 위해서,,,

매표소에서 기장 많이 가시는 붉은 선을 따라 가지마시고

노란선을 따라 가시면 망탑이 나온다..

 

 

 

▲ 님이 서신 그 자리의 족적은 없어 지고,,

언젠가 중국의 고향으로 가시더라도

마음속에 찍힌 천태산 족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입니다.

 

 

 

▲ 암릉구간이라 밧줄의 연속이다.

 

 

 

▲ 저 멀리 영동의 <마니산>이

언제 찾아 줄거냐고 묻는다..

 

 

 

▲ 둥굴둥글 기분 좋은 바위에서..

함께 미소 지어 본다,,

 

 

 

▲ 13시 26분 : 대슬랩 밧줄구간이다.

 

 

 

 

 

▲ 점선안이 2005년 5월경에 산불이 났던 옥새봉 쪽이다..

그당시 화마가 천년고찰 영국사와 은행나무를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만들뻔 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울창했던 소나무를 다 태우고,,8년이 지난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다..

 

옥새봉에는..

홍건적의 난을 피해 영국사에 피난 왔던 공민왕이

새(玉璽)를 숨겨 두었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 마지막 밧줄구간..

 

 

 

▲ 14시 03분 : 영국사 만세루,, 

영국사에는 고려의 공민왕의 발자취가 서리어 있다.

서기 1361년(공민왕 10년) 11월 원(元)나라의 한산동(漢山童)을 두목으로 하여

일어났던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기 위해
공민왕은 노국(魯國)의 공주와 대신들을 데리고 피난의 길을 떠났다.

남으로 길을 재촉하던 공민왕은 영동 양산면 지금의 누교리(縷矯里)에 머물게 되었다

 

영국사의 그 당시 이름은 국청사(國淸寺)이기 때문에

왕이 부처님 앞에 나가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평안을 빌려고 했다.

런데 며칠 전부터 내린 폭우로 도무지 내를 건너 갈 수가 없었다.

 

 

 

▲ 그런데.. 때마침 개울 건너 천태산(天台山) 쪽에서 종소리가 울려 왔다.

공민왕은 깜짝놀라 좌우를 돌아 보았다.

 

이 부근에 절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종소리가 아름다운 절인줄은 몰랐구나.

왕비와 왕자 그리고 대신들은 하나같이 공민왕의 눈치만을 살폈다.

 

대신 한 사람이 설명 하기를 「저 절은 일찍이 신라 때 원각국사(圓覺國師)께서

세운 절로써 처음에는 만월사(滿月寺)라 하였다가 문종대왕(文宗大王)당시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주지로 온 뒤로 국청사(國淸寺)라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옵니다」 하고 아뢰었다.

 

 

 

▲ 이 말을 들은 공민왕은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문종(文宗)의 아들로

천태종(天台宗)을 일으킨 분이며.

의천(義天)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저 국청사에 올라

국태민안(나라와 백성이 평안함)을 빌어보고 싶었다.

 

그러한 공민왕의 마음을 안 대신들과 백성들이 칡넝쿨로 다리를 놓아

계곡을 건너게 하였고.. 공민왕은

왕비와 왕자 그리고 대신을 데리고 국청사에 올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 

그래서 국청사는 공민왕이 다녀간 뒤 왕이 나라안 백성들의 편안함을 빌었다하여

편안할 영(寧)자 나라 국(國)자를 써서 (寧國寺)로 고쳐 부르기 시작 하였으며

공민왕이 칡넝쿨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간 마을을

누교리(樓橋里)라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영국사 은행나무,,

천년기념물 223호.. 수령은 1000년 이상,,

국가에 중대 재난이 있으면 스스로 운다고 한다..

 

 

 

▲ 오른쪽으로 가지 하나가 땅으로 들어가 다시 자라서

올라온 모습이 보인다.

 

 

 

▲ 천태산 은행나무..

날 맹키로 날 맹키로가슴앓이 몰랐던가 보다

밑동이 11미터, 높이가 32미터

풍상을  천년이나 깔고 앉은채 

구장집 마누라 맹키로

방뎅이는 깔고 앉아서

키가 더 커야제  키가 더 커야제... 

-- 김영수 --

 

 

 

▲ 1000년 이상의 세월에도 수많은 은행이 달려있다.

 

 

 

▲ 매표소에서 <망탑>을 보기위해 오른쪽으로,,

 

 

 

▲ 천태산, 영국사, 

은행나무를 뒤 돌아보고..

 

 

 

▲ 삼단폭포 상류..

 

 

 

▲ 망탑의 기암..흔들바위(고래바위)

고래가 망망대해에서 헤엄을 치며 바다위로

오르는 형상이리고 한다..

 

 

 

▲ 흔들바위라고 하는데 올라가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 니는 뻔데기가 머꼬?,,,ㅋㅋㅋ

 

 

 

▲ 보물 535호 망탑..

지연석을 다듬어 기단을 만들고 그위에 삼층 석탑을 쌓았다..

 

 

 

 

 

 

▲ 총무 언니야..

와 이제 왔능교,, 우리캉 놀지이잉~~

 

 

  

▲ 내가 이맛에 동생들캉 산에 간다카이~~,,ㅎㅎㅎ~ 

흐뭇해 하시는 홍총무님이 동생들의 애교에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옵니다..

 

 

 

 

 

 

▲ 바위가 미끄럽다.. 조심조심...

 

 

  

▲ 계곡물이 차다..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ㅎㅎ

얼굴에 물만 쬐끔 묻혔다.. 


그런데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다 춥다.. ㅋㅋㅋ

헉

 

 

 

▲ 진주폭포,,

수량이 많으면 장관일듯 하다.

계곡물이 많지 않은걸 보니..

충청도 지역에도 많은비는 오지 않은것 같다..

 

 

 

▲ 매표소길과 만나는 곳..

 

 

 

 

 

 

  

 

15시 22분 : 천태산 주차장 하산 완료.

 

 

 

 

 

 

▲ 오랜만에 담아보는 추풍령 휴게소..

 

 

 

▲ 건너편, 상행선쪽 휴게소에 있는

고속도로 개통 기념탑..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가,,개통 되어

6.25한국전쟁이후 세계에서도 전무후무한

고속성장의 발판 역활을 하였다..

 

 

  

▲ 언제나 그자리에 있는 산처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춥거나 덥거나,,

 매월 넷째주에는 어김없이 솔향기 버스의 그 좌석 그 자리에

있어 주는 마음 든든한 회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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