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2월 16일 : 월류봉(400.7m) : 충북 영동군 황간면.

 

산행코스월류봉 주차장 시산제후 음복 - 에넥스공장 입구 - 월류봉(1봉) - 2봉

3봉 - 3봉 - 4봉 - 5봉 - 소내마을 우천교 하산완료.

행시작 : 월류봉 주차장 : 09시 23분 도착후 시산제 행사 시작.

하산완료 : 소내마을 우천교 : 13시 33분 도착 하산완료. 

(4시간 10분소요 : 시산제 및 점심, 휴식시간포함)

(순수 산행시간 : 2시간 31분 소요)

 



07 : 50  성서IC 출발.

09 : 23  월류봉 주차장 도착(시산제).

10 : 58  월류교.

11 : 05  에넥스공장 뒤편 삼거리.

11 : 36  월류봉(1봉).

11 : 43  2봉.

11 : 57  3봉.

12 : 04  4봉(점심 및 휴식).

12 : 55  5봉.

13 : 33  소내마을 우천교 하산완료.

14 : 10  뒤풀이 장소 금강휴게소로 출발.

14 : 43  뒤풀이 장소 금강휴게소 (경상 식당) 도착.

16 : 35  출발.

20 : 36  대구도착(법원 기준).

 

 

▲  09시 23분 : 월류봉 주차장 도착.

월류봉 표지석.

이 아름다운 포토존에 소화전 설치물이 조금 거슬린다.

 

표지석설치(2001년 12월)를 먼저 했는지

소화전 설치를 먼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소화전과 같이 설치해야만 되었는지 알수가 없다.

 

 

  

▲ 초강천 건너 기암위에 세워진 <월류정>.

한폭의 그림이다..

 

 

  

 

 

 

 

 

▲ 달이 머문다는 곳에,,

음기가 강한 이곳에 태양의 양기도 살짜기 비껴가며

월류정의 아침을 깨운다..

 

 

  

 

▲ 한천정사에서 바라본 월류정.

 

 

  

▲ 한천정사(寒泉精舍)<문화지자료 28호>

 

우암(尤庵)은 선조(宣祖) 40년(1607)

옥천군(沃川郡) 이원면(伊院面) 구룡촌(九龍村)에서 출생한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대(大) 유학자(儒學者)로

그의 유학사상은 이율곡(李栗谷)의 학통(學統)을 계승하여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朝鮮) 인조(仁祖)대부터 숙종(肅宗)대에 이르는 4대(四代)에 걸쳐

노론(老論)의 대표로서 정계(政界)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며

뛰어난 학식으로 많은 학자를 길러내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학문을 연구하며 지내던 곳이다.

후에 우암의 제사를 모시는 한천서원을 세웠었는데,

고종 5년(1868)에 서원을 철거하였고 후에 후학들이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 끝에 온돌방을 두었다.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앞면에 문을 두었는데

앞면 양측에 은행나무가 있었다.

 

 

  

▲ 가운데는 한천정사 현판이 걸려있고,,

좌우측으로 한천팔경(寒泉八景)이 적혀있다.

 

 

  

▲ 좌측에는..

안쪽부터,,냉천정(냉泉亭), 용연대(龍淵臺),

청학굴(靑鶴窟), 사군봉(使君峯)이라 젹혀 있고.

 

 

  

▲ 우측에는..

산양벽(山羊壁),  화헌악(花軒嶽),

법존암(法尊庵), 월류봉(月留峰)이라 적혀 있다.

 

 

  

▲ 한천정사에서 바라본 월류정.

어디에서 바라보나 그림이 된다..

 

 

  

▲ 우암 송시열 유허비(충북 기념물 46호)

한천정사 앞쪽에 있다.

 

유허비란 한 인물의 행적을 기리고,

그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송시열 선생을 기리고 있다.

 

 

  

▲ 유허비각.

 

 

  

▲ 우암송선생유허비(尤庵宋先生遺墟碑)

 

 

  

 

 

 

 

 

 

▲ 월류정을 향해 정갈하게 진설하고..

 

 

  

  

▲ 시산제 행사는 마치게 된다.

 

  

 

 

    

 10시 58분 : 초강천변의 회도석(回櫂石) 과 월류봉,

영동군지 750쪽과 영동향교지 699쪽에 의하면,,

회도석은,, 217년전 황간 현감 이운영(李運永)이 이름지었고

박시화(朴時華)의 글씨.'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운영(李運永) 현감은 지금부터 217년 전에 황간 현감으로 근무하면서

무술년(戊戌年,1778)에 가학루(驚鶴樓)를 중수(重修)하였고,

이 무렵 회도석을 세워서 현민(燃民)들의 애향심을 북돋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선정(善政)을 베풀고 당시 지역 산업 발전에 힘쓰는등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으로 1781년까지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 오고 있다.

 

회도석의 '()'자는 로 음각되어 있고,'돌아오다'의 뜻이 있다.

'()'자는 도()와같은 뜻을 가진 글자로 선진목(船進木)

즉 배를 젓는 ''를 뜻한다. ''()은 돌이다.

 

'물위에 배를 띄워 노를 저어 나가다가 (뜻한바 있어) 다시 되돌아오다. 라는 뜻으로

풀이되며,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가지 말고 되돌아 오라',

'가긴 어딜 가십니까? 빨리 되돌아 오시오.' 라고 하면 되겠다.

 

이곳 황간골의 지형, 즉 풍수설에 의하면 커다란 호수(湖水)형인데

거기에 배가 떠 있는형국이며 그 배가

'들어오는 배가 아니고 떠나가는 배'의 형국이라고 한다

 

어느 지관(地官)의 설()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리도 신통스럽게 보았는지 실로 감탄할 만하다

그래서 떠나가는 배를 다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한 인위적(人爲的)

지형지물을 만들었음이 쉽게 짐작이 간다.

 

결국 월류봉(月留蝶) 근처 강 한가운데 배바우가 지금도 있는데

그 배바우와 연관지어 호수 대신 연못을 파고,

거기에 회도석을 굳건히 세워 놓음으로써 우선 마음의 회도석을 세우고,

풍수적인 회도석을 세우고, 나아가 지역 발전의 내실(內實)있는

다목적 회도석이 되게 하였던 선조(先祖)들의 지혜와

선견지명(先見之明)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없다.

 

이렇듯 이 고장 수호석(守護石)이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귀한 회도석이,

그 후 2백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잘 보존되어 있다.


 

  

▲ 에넥스 공장 뒷길로 들어서니..

교회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 11시 05분 : 에넥스공장 뒤 갈림길..

 

 

  

▲ 에넥스공장 정문에서 오는길..

 

 

  

▲ 본격적인 월류봉 들머리.

 

 

  

▲ 내려다 본 에넥스공장..

왼쪽으로 황간면 신흥리의 바위산과 왕산이 보인다.

 

 

  

▲ 11시 36분 : 월류 1봉에서 바라본 한반도 지형..

 

 

  

▲ 한반도지형을 배경으로 인증샷,,

 

 

  

▲ 우리나라에 한반도를 닮은 지형은 몇군데 있다..

자연은 보면 볼수록 참으로 신묘하다..

 

 

  

 ▲ 당겨본 월류정과 초강천.

 

한천 팔경중에 1경이 월류정이고,,

월류정 앞의 초강천 깊고 푸른물이 2경인 용연대이다.

 

 

  

▲ 에넥스공장과 황간면 소재지 전경.

 

 

  

 

▲ 가야할 2봉, 3봉, 4봉, 5봉..

 

 

  

 

▲ 절벽 끝에 매달린 멋진 소나무..

 

 

  

 

▲ 3봉 가는길..

고만고만하게,,오르내림이 재미가 있다.

 

 

  

▲ 1봉의 깍아지른 졀벽너머 왕산..

오르고 싶어지는 산이다.

 

 

  

 11시 57분 : 월류 3봉.

 

 

 

 영월 동강의 어라연 계곡을 내려다 보는것 같다.

 

 

 

 봄철이면 깍아지른 절벽에 붉은 진달래가 피어나는

아름다운 모습이 월류 8경중에 하나인 화헌악(花軒嶽)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차장에서 성지순례의 하나로

방생법회를 열고 있다.

 

 

 

 

 

 

   

 4봉에서 한번더 내려다 보고..

 

 

 

 

 12시 55분 : 월류 5봉.

 

 

 

 

 뒤돌아 본 월류봉 능선..

 

 

 

 13시 03분 : 우천리 갈림길..

 

 

 

 소내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고사리밭을 지나서..

 

 

 

 소내마을 전경.

 

 

 

 영효재.

충주박씨 재실인듯..

 

 

 

 포도 농장.

포도 주산지 답게 포도밭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우천교 산행들머리..

 

 

 

 충주박씨 세거지.

세거지(世居地)란 조상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말한다.

 

 

 

 13시 33분 : 우천교 하산완료.

 

 

 

 우천리 마을 빨래터,

 

 

 

 14시 18분 : 노근리 쌍굴철교.

무수한 총탄 자국이 보인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老斤里良民虐殺事件)은 한국 전쟁 중,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국 1 기병 사단 7 기병 연대예하 부대가

1950년 7월 25일 ~ 7월 29일 사이에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서 폭격과 기관총 발사를 시작하여,

민간인들을 학살한 전쟁 범죄이다.

 

노근리 학살사건을 실제 경험했던 생존피해자와 유족들인

정은용, 정구도, 양해찬, 정구호, 서정구씨 등으로 1994년에 구성된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 사건 대책위원회(위원장 : 정은용)에서는

사망자 135명,부상자 47명 모두 182명의 희생자를 확인했으며,

400여명의 희생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20여명이다.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 대책위원회 <정구도> 대변인이 중심이 되어

노근리사건 홍보를 4년간 끈질기게 펼친 결과

문화방송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미국 CNN방송 등에서 보도되고 사건이 점점 알려졌다.

 

 

 

 그 결과 노근리사건에 관심을 갖게된 AP취재팀이

1998년 4월에 취재에 착수했고,

 

AP통신의 최상훈 기자, 멘도자 기자 등이

 "노근리 학살사건은 진상규명이 되지 않으면

진실이 알려질 수 없는 사건이므로 반드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현장취재, 가해자들과의 인터뷰등의

탐사보도를 시행하여 1999년 9월, 미 제1기병사단이

"미군의 방어선을 넘어서는 자들은 적이므로 사살하라.

 

여성과 어린이는 재량에 맡긴다." 라는 지시에 의해

노근리 피난민들을 살상한

전쟁범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이 일어났던 경부선 노근리 쌍굴다리는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으며,

충청북도에서도 노근리 학살 사건 희생자들을 위해

2008년 역사공원 건립을 시작하였다.

 

역사공원은 2010년 6월에 191억원을 들여

쌍굴다리 앞 옛 노송초등학교 터를 포함한 13만2240㎡에 조성되어

미군 총격으로 숨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

사건 관련 기록·문서·사진·증언 등을

담은 역사 평화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평화공원은

사진을 찍은 방향의 길 반대편에 있다.

 

 

 

 14시 43분 : 금강휴게소 경상식당.

 

 

 

▲ 매운탕과 도리뱅뱅이.

 

오늘 하루,,

산수를 통해 월류봉에서 충전한 즐거움이

일주일의 활력이 되기위해..

다시 각자의 생활 속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산수 홍보이사의 앉았던 자리에 작은 책자가 있어

열어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내 생에서 가장 귀중한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우리의 삶은..과거 세월의 바탕 위에서

존재하지만,,현재의 성실도에 따라

존재하고 있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미래의 비전(vision)까지

지금 이곳에 존재하니

삼세(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만든 작품이

바로 지금입니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길을 가다가 옷깃만 스쳐도
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인연이라는데,
한 하늘을 이고 사는 많은 친지,가족들의
인연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인연이리니..

 

한세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엄청난 기연속에
살고 있는건 아닌지요..

 

오늘 하루 함께한 산수의 인연은

억만겁의 삼세인연이 만든,,

오늘이라는 작품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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