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6월 28일 ~ 29일 : <안면도 여행> 충남 태안군 안면읍.

 

여행코스안면도꽃지해수욕장 - 할미할아비바위 - 방포항 - 영목항 - 지포저수지 - 안면도수목원 - 

안면암 - 여우섬 - 백사장수산시장 - 간월암 - 대구 도착 여헹완료.

<첫째날>

14 : 25  성북교 출발.

18 : 05  꽃지해수욕장인근 꽃지추억만들기펜션 도.

18 : 30  꽃지해수욕장.

20 : 10  방포항 회센타.

10 : 30  펜션 1박.

 

<둘째날>

 

07 : 05  펜션 출발.

07 : 40  영목항.

08 : 01  지포저수지.

08 : 47  안면도수목원 도착.

10 : 10  수목원 관람 마침.

10 : 34  안면암 도착.

11 : 25  안면암 관람 마침.

11 : 41  백사장 수산시장.

13 : 43  간월암.

14 : 02  출발.

18 : 15  대구 도착(성북교 기준)..

 

 

18시 05분 : <꽃지추억만들기펜션>도착.안면도 꽃지해수욕장 인근의

2층 발코니가 있는 마주보이는 방.

 

 

 

▲ 18시 30분 : 꽃지해수욕장.

 

서해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할미할아비 바위가 나란히 보인다.

 

 

 

▲ 내가 비교적 여행운(날씨)이 좋다고 몇번 말한적 있지만..

이렇게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지다니..

지금 물이 빠지기 시작한다.

 

안면도에 오자마자

할미 할아비바위를 알현(?)하는 영광을,,, 

 

 

 

▲ 꽃지해수욕장.

 

 

  

▲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파라솔을 보며 5분여 지나자...,.

 

 

 

▲ 바다길이 열리면서 많은 여행객들이 건너가고 있다.

 

 

 

▲ 꽃지<할미할아비바위> 전설.

 

신라 제42대 흥덕왕(826~836년)때 해상왕 장보고는

청해(완도)에 진을 설치한 뒤 서해안의 중심지인 안면도(건승포)에는

전략적 전진기지를 두었는데, 이 기지의 책임자로 ‘승언’이라는 장군이 파견됐다.


그는 부하들을 친형제처럼 여기고 어질게 다스리니 부대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 ‘승언’장군에게는 ‘미도’라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는데

부부간의 금슬이 너무 좋았고, 그들의 사랑은 날로 더 깊어만 갔다.


어느 날 ‘승언’장군에게 해상왕 장보고로부터

급히 군선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전장으로 떠나는 ‘승언’장군은 사랑하는 아내와 기약없는

작별인사를 나눈 뒤 군선을 이끌고 출정한다.


하지만 여러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자

초조해진 ‘미도’ 부인은 바닷가 높은 바위에 올라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일편단심으로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장군은 돌아올 줄 몰랐지만 ‘미도’ 부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밤낮으로 수 십 년을 기다리다 마침내 이 바위위에서 죽고 말았다.


그 뒤 사람들은 이 바위를 ‘할미바위’라고 불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천둥소리가 하늘을 깨는 듯 하더니

‘할미바위’ 앞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할아비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모셔온 --

 

 

 

▲ 할배비위..

 

 

 

 

 

 

 

  

 

 

 

 

   

▲ 해와 달을 동시에 보는 신기함의 행운속에,,

 

 

 

▲ 할미할아비바위도

석양에 물들어가는 모습이 전설만큼이나 신비롭다.

 

 

 

▲ 고향이 부산이라며,,

충청도 말과 부산의 억센 억양이 묘하게 믹서되어

손님을 부르고 있다.

 

 

 

  

▲ 멍게, 낙지. 소라. 해삼... 

이슬이 한잔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

 

 

 

▲ 석양의 위치가,,, 이른봄 3월경에는 할미할아비바위 사이로

석양이 진다는데.. 지금은 위쪽으로 많이 치우쳐

방파제 넘어로 내려앉고 있다..

 

 

 

  

▲ 아쉬운데로 할미바위와 오른쪽 등대사이로

석양이 진다면 좋으련만,,

 

 

 

▲ 석양이 바다로 숨어드는 모습을 보려고..

 

 

 

▲ 왼쪽으로 이동했더니..

할미할아비바위가 하나로 겹쳐버린다.

 

 

 

 

 

 

 

 

 

 

 

 

 

  

 

 

 

 

 

 

일명 "꽃다리"를 건너 방포항 회센타로 이동..

 

 

 

▲ 방포항..꽃지해수욕장에서 도보로 5~7분정도의 거리다.

 

 

 

▲ "꽃다리" 위에서...

 

 

 

▲ 할미바위 품에서 한잔했던 이슬이 탓인지..

발그레 상기된 얼굴과 모자를 벗어버려 머리 모습이 이상하다마는

그래도 좋다.. 여행이란 이래서 좋다.

 

 

 

  

▲ 방포항 회센타.

 

 

 

▲ 우럭.. 1.2kg / 22,000원.

 

 

 

▲ 돔 1.1kg / 24,000원.

 

 

 

▲ 회만 전문으로 떠 주는곳..

분업화가 아주 잘 되어 있다..

 

 

 

▲ 회 먹는곳..

양념.. 초장,, 매운탕..

 

 

 

 

▲ 우럭은 회센타에서 먹고,, 도미는 펜션에 돌아와서 한잔..

기분 좋은 밤은 깊어가고..

 

 

 

▲ 05시 38분 : 둘째날.. 안면도의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했다..

먼곳까지 와서 조금이라도 서둘러야 많은걸 볼수 있다.

 

안면도가 전국에서 펜션이 가장 

많다고 한다.

 

 

 

 

안면도에서 가장 남쪽 끝자락인 영목항으로

가는길에 처음보는 난종류..

 

 

 

 

07시 42분 : 영목항.

 안면도 제일 남쪽끝머리에 위치한 자그만 항..

  

 

 

▲ 안면도와 원산도 충남 보령의 대천항을 잇는 다리공사가

2018년 개통을 목적으로 교각공사가 한창이다.

 

 

 

▲ 08시 01분 : 연꽃이 만개한 지포저수지.

 

 

 

▲ 블루베리 농장.

 

 

 

 

▲ 08시 47분 : 안면도 수목원.

 

 

 

▲ 안면송.

안면송이라 불리우는 안면도 소나무는 고려시대 부터

특별히 관리해 오던 소나무로,, 임진왜란때는

이곳의 소나무를 이용하여 거북선등, 주요 함선을 만들었다고 한다.

 

 

 

 

 

 

 

 

 

 

 

 

  

 

  

 

 

▲ 대왕소나무.

 

 

 

▲ 대왕송 인증샷.

 

 

 

▲ 안면송.

 

 

 

 

 10시 34분 : 안면암 맞은편의.. 꽃피는 절..

사찰 이름이 재미있다..

  

 

 

▲ 안면암은 여우섬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들리기로 하고,,

칠층탑 앞을 지나서..

 

 

 

▲ 여우섬과 부교..

만조시에는 부교가 떠올라서 여우섬에 갈수가 없다.

 

 

 

▲ 독도지킴이 1호라고 젹혀 있는 거북선,,

 

 

 

 ▲ 왼쪽은 여우섬..

오른쪽이 조그널 섬이라고 한다.

 

 

 

안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로,

"석지명" 스님을 따르던 신도들이 1998년 안면도 해안가에 지은 절이다.

 

"석지명" 스님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대학교에서 종교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주사 주지와 조계종 중앙총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무로 바라보기"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 안면암 부상탑(浮上塔).

안면암 칠층탑의 축소판이다.

 

 

 

 

  

 

 

 

 

 

 

 

 

 

  

 

 

 

▲ 안면암 7층탑.

 

 

 

 

▲ 안면암을 뒤로하고..

 

 

 

 11시 41분 : 백사장항..

 

 

 

 

▲ 꽃게장, 대하새우장,

 

 

 

▲ 게국지팅..

꽃게와 묵은지,,, 문어..

 

 

 

13시 43분 : 간월암.

 

작년 2013년 11월 10일에 왔었고,,

약 7개월 만에 오늘 다시 찾는다,

 

 

 

 

 

▲ 불과 7개월 만에 동판기와불사가 한창이다.

 

 

 

▲ 간월암 대웅전,

 

간월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암자이며.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건물 양식은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며, 

<만공>스님이 쓰신 간월암(看月庵)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 무학대사에 얽힌 이야기.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에서 태어난 무학대사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나라에서 진 빚을 갚지 못해 쫓겨 다니고 있었다.

 

포졸들이 대신 어머니를 붙잡아서 고개를 넘어가는데 갑자기 산기가 있었다.

그때 온 산천이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둘러보니 한 곳만 눈이 없어

그곳에서 해산을 하고 아기를 옷가지로 덮어놓은 뒤 태안현청으로 끌려갔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현감이 어머니를 풀어주어 다시 그곳으로 가보니

큰 학이 두 날개를 펴고서 아기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크게 감격한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무학(舞鶴)’이라고 지었으며,

그 고개를 ‘학이 돌본 고개’라 하여 ‘학돌재’라고 하게 되었다.

 

그 후 출가를 한 무학이 이곳 간월도에 암자를 짓고 수행을 하던 중

어느 날 문득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이 암자 이름을 간월암이라고 지었다.

 

간월도에 절이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안면 면장 박동래와 만공스님이 암자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다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만공선사는 이곳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고

바로 그 후에 광복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간월암 사철나무.

 

 

 

▲ 용왕단.

 

 

 

▲ 산신각내부.

 

 

 

▲ 간월암 법당. 

간월암을 중창한 송만공(宋滿空, 1871∼1946) 스님은

전북 정읍시 태인면 사람이다. 

13세 때 부친이 돌아가시자 어머니가 여승이 됨에 따라 중이 되었다.

소년시절부터 참선에 정진한 만공은 30세에 정혜사 선원조실이 되어

수많은 납자(衲子)를 배출했다.

 

만공스님이 속세에 살았다면 대단한 기인이었을 것이다.

만공은 젊은 여자의 벗은 허벅지를 베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곱 여자의 허벅다리를 베고 잤다고 해서

‘칠선녀와선(七仙女臥禪)‘이라는 말이 생겼다.

 

어느날 험한 산길을 한 스님과 가는데,

이 동행승이 힘들어서 더는 못가겠다고 했다.

 

때 마침 밭에서 화전을 일구는 부부가 있었는데

만공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냅다 달려가 여자를 덥석 안고 입맞춤을 했다.

놀란 남편은 쇠스랑을 들고 저 중놈들 죽여버리겠며 쫓아왔다.

엉겁결에 동행승도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났다.

 

고갯마루에 올라 이제 화전 부부가 보이지 않게 되자

행승은 만공 스님에게 그게 무슨 짓이냐고 꾸짖었다.

러자 만공 스님은 "이 사람아, 그게 자네 탓이라고.

그 바람에 고갯마루까지 한숨에 왔지 않나. 이젠 괜챦은가?" 하였다.

 

스님의 이런 파격적인 행위는

그의 은사 스님인 경허 스님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었다.

만공스님은 흔연히 법도를 넘어섰다는 호기 때문에 존경을 받았다.

 

1946년 어느날 76세의 노스님 만공은 저녁공양을 맛있게 들고는

거울을 앞에 두고 독백하기를

"이 사람 만공! 자네와 나는 70여 년 동안 동고동락해왔지만

오늘이 마지막일세. 그동안 수고했네."

하고는 요를 펴고 누워 열반에 들었다.

만공 스님다운 최후다.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내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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