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24일(일).

용지봉(633m) : 대구시 수성구.

 

산행코스 : 수성못입구-법이산-조망바위-용지봉-조망바위-용지역.

산행시작 : 수성못입구 09시 35분.

산행종료 : 용지역 16시 20분.

전체거리 : 약 6.2km..

전체시간 : 06시간 45분.

운동시간 : 04시간 51분.

휴식시간 : 01시간 54분.

 

09 : 35  수성못입구 출발.

11 : 17  조망바위.

12 : 25  용지정자.

14 : 19  용지봉.

14 : 29  조망바위.

16 : 20  용지역.

 

▲ 흐리고 간간히 비가 내리는... 용지봉 정상의 육각정 쉼터에서

김프로님의 홍어와 묵은지에 조고문님의 수육 한점을 올려 놓은 삼합 한쌈은 가히 환상적인 조합이었고..

막걸리와 양주가 목젖을 타고 흐르는 소리는 이태백이도 부러워 할 소리였다..

열량 높은 권이사님의 꼬부랑글씨가 그려진 쵸콜렛은 행복촉진제가 되었고..

따끈한 라면 국물과 달달한 커피 한잔과 야등팀의 열정앞에 썰렁한 날씨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보다 더 좋을수 없는 야등팀의 하루였기에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하산후 뒷풀이 장소로 가는 뒷모습 조차도 행복한 모습들이다.

2024년 03월 21일(목).

동석산(219m) : 전남 진도군 지산면.

 

산행코스 : 하심동마을-미륵좌상굴-칼능선전망대-동석산-석적막산-큰산-큰애기봉-세방낙조주차장.

산행시작 : 하심동마을쉼터 11시 11분.

산행종료 : 세방낙조주차장 14시 49분.

전체거리 : 약 6.07km. .

전체시간 : 03시간 38분.

운동시간 : 03시간 29분.

휴식시간 : 00시간 08분.

누  구  랑 : 산이좋아산악회 따라서...

 

11 : 11  하심동마을 출발.

11 : 44  미륵좌상굴.

11 : 59  칼능선전망대.

12 : 13  동석산.

13 : 09  석적막산.

13 : 48  큰산.

14 : 03  큰애기봉전망대.

14 : 49  세방낙조주차장.

 

10시 33분 : 진도대교를 건너서..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과 진도군 군내면을 연결하는 다리인 진도대교는..

길이 484m, 너비 11.7m, 왕복 2차로의 한국 최초의 쌍둥이 사장교(斜張橋)이다. 1980년 착공하여 1984년 완공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으로 유명한 울돌목 해협은 조류가 거세어 당시의 국내 기술력으로는 해상구조물 시공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이에 영국 RPT사의 설계 및 감리 아래 양쪽 해안에 교대와 교각 등 하부 구조물을 설치한 한 후 콘크리트

교각 위에 높이 69m의 강재주탑을 세우고 케이블로 교량 상판을 지지하는 사장교를 건설하였다.

 

 11시 09분 : 동석산이 올려다 보이는..

 

▲ 하심동 마을 쉼터에 도착하여..

 

▲ 11시 11분 : 산행채비를 하고 출발..

 

산행 들머리에 있는 종성교회는..

산행지 입구라는 입지적 조건으로.. 전국의 산꾼 들에게는 가장 많이 알려진 교회일 것이다..

 

▲ 종성교회 입구를 지나면 여기가 공식적인 동석산 산행들머리다.

 

▲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아니한 춘래불사춘이라 했던가...

이번주 들어서 기습적으로 몰아친 꽃샘추위로 봄의 전령사 진달래도 움츠리고 생기가 없다..

 

▲ 칼날같은 나아프릿지 암릉으로 구성된 틈새바위를 지나면..

 

▲ 본격적인  암벽구간이 시작 된다.

 

▲ 처음으로 나타나는 철계단에서 좌측의 조망 좋은 바위에 올라..

 

동석산이라는 이름은 "구리 동(銅), 주석 석(錫)"자로서.. 그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 천길 단애에 매달린 소나무애개.. 격려의 눈맞춤으로 안아 준다.

 

▲ 심동저수지 너머로 돈대산의 추억과 도리산 전망대의 일품 조망이 아름다운 상.하조도가 보이고 그 뒤쪽으로는

세번을 다녀 왔어도 그 풍광이 더욱 새록새록해 지는 관매도를 떠 올려본다.

 

▲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동석산의 모습은 서남쪽의 조도에서 보면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조망을 끝내고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니..

 

▲ 지나왔던 조망바위에는 동료들이 아직도 풍광을 즐기고 있다.

 

▲ 아찔히게 수직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거칠고 위험해 보이지만 발디딤이 좋아서 난간대를 잘 잡으면 쉽게 오를수 있다.

 

▲ 오른쪽 바위 상부에 미륵좌상굴이 보인다..

 

▲ 당겨본 미륵좌상굴.. 조금후에 다녀올 것이다.

 

▲ 예전에 비하면 안전시설이 보완되어 있어서 별다른 위험성은 없다.

 

▲ 첨탑을 오른다..

우리들은 산을 보고 산을 오른다.

그러나 산이 나를 불러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산을 오르고 싶은 욕구가 솟아 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는 힘의 욕구... 그것은.. 곧.. 내가 살아있는 생명력인 것이다.

 

▲ 지나온 암릉과.. 안전계단.. 안전시설이 전혀 없었던 초창기에는 오로지 밧줄 하나에 매달려 올라 왔었다.

 

▲ 그리고.. 올라가야 할 암릉..

 

▲ 그 암릉을 배경으로.. 나도 암릉의 일부가 된다.. 사진 담아 주신분 감사합니다.

 

▲ 아래쪽의 미륵좌상굴 가는길..

 

▲ 내려와서 보니 역시나 급경사 내림이다.. 그래도 다들 잘도 내려온다..

 

▲ 오른쪽 천종사쪽으로 약100m가량 내려간 지점의 바위에 미륵좌상굴이 있어 다녀온다.

 

▲ 11시 44분 : 미륵좌상굴(일명 : 중업바위)..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암굴에 수도승이 한명 살았다고 한다.

 

이 굴에서는 신기하게도 한사람이 먹을수 있을 만큼의 쌀이 매일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수도승은 먹을 식량걱정이 없으니 탁발도 다닐 필요도 없이 늘 태평한 얼굴로 항상 기름기가 자르르 흘렀다.

동네사람들은 보릿고개마다 먹을거리가 떨어져 모두가 피골이 상접한데도 이 수도승은 탁발도 안다니면서 얼굴은

늘 기름져 있어서 동네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딜가나 궁금증은 못참는 사람들이 꼭 한두명은 있는법이다. 이동네도 그런사람이 한사람 있어서 어느날 몰래

그 스님의 동태를 살피는데... 이윽고 밥지을 시간이 되자 이 스님은 중업바위의 굴속에서 쌀을 담아 오는것이 아닌가?...

 

이 동네사람은 혼자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몰래 들어가서 그 구멍엘 가보니 쌀이 한줌밖에 나와있질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 구멍속을 후벼 팠더니 더이상 쌀은 안나오고 대신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지 않은가?....

깜짝 놀란 이사람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가다가 그 바위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후로 그 수도승도 시름시름 앓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는데.. 지금도 한 종지의 물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 미륵좌상 암굴위 전망대.

 

▲ 미륵좌상 암굴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석산 정상쪽.

 

▲ 지나온 암릉...

 

▲ 아래쪽의 천종사(千鐘寺)...

천종사(千鐘寺)라는 이름은 "세찬 바람이 거대한 바위산 양쪽 골짜기로 불어와 바위에 부딪히면 마치 천개의 종소리가

나는 것처럼 들린다."라고 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초간단 미니발판..

 

▲ 억겁의 시간 저편에서 급격하게 식어버린 화산암..

 

▲ 시간의 무정함이여~~.. 잎은 없어도 무성한 잔가지들이 파란하늘 도화지에 그림을 만들어 주던 나무였는데..

이제는 해풍에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 언젠가는 너도 쓰러지겠지..

 

▲ 동석산정상이 670m남은 지점에서 등로를 살짝 벗어나서..

 

▲ 낡은 밧줄과 링이 있는 암벽을 타고 올랐다가 다시 내려 와야 한다..

 

▲ 링을 붙잡고 기어이 올라가는 이유는... 바로.

 

▲ 동석산 하일라이트.. "칼날능선"을 보기 위함아다.. 병풍같은 바위 두께가 1m도 안되기에 지나갈수는 없다.

저기를 건너 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사람일것이다..ㅎㅎ

이곳 진도군의 119구급대에는 이런 애기도 있다고 한다. 경남 사량도의 <옥녀봉>도 험하지만.. 떨어지면 살아날 확율도

있어서 구급차가 쏜살같이 달려 가지만.. 동석산에서 떨어졌다고 하면 100% 사망이라.. 구급차가 천천히 간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동석산이 위험 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 다시.. 링이 없는쪽의 릿지를 타고 내려온다... 보기 보다 미끄럽지는 않다.

 

▲ 동석산 정상 방향으로..

 

▲ 동석산 칼날능선으로는 갈수가 없기에 왼쪽으로 우회한다.

 

▲ 동석산 칼날능선의 위용..

 

▲ 칼날능선을 병풍삼아..

 

▲ 바로가면 동석산 정상가는 길이 편안하고.. 오른쪽은 다소 품이 들어가는 전망이 좋은 길이다.. 당근 오른쪽으로..

 

▲ 칼날능선.. 조금전에 올랐던 방구돌에서 반대편으로 왔다.

 

▲ 동석산 정상이 지척이다..

 

12시 13분 : 동석산 정상인데... 이럴수가..

 

헐!~~.. 이럴수가.. 불과 3년만에 동석산 지킴이 소낭긔가 말라 버렸다.

 

▲ 2020년 8월 1일의 그날과는 너무나 다르다.. 저렇게 푸르고 싱싱했었는데..

 

▲ 가야할 석적막산과 애기봉 능선..

 

▲ 머리위에 드론이..

 

▲ 12시 21분 : 동석산 바로 아래에서.. 서해를 바라보며.. 마음점을 찍는다.

 

▲ 능선을 따라서 잘가고 있는데 조자룡같은 초병이 수하를 하며 길을 막고 가학마을 쪽으로 돌아서 가라고 한다.

 

▲ 오른쪽으로 우회 하여..

 

▲ 잠시 착한길을 따라 가다가 능선에 올라서니..

 

▲ 이번에는 장비같이 험상궂게 생긴 초병이.. 왼쪽으로 우회하라고 한다.

 

▲ 칼날능선의 위용에 버금가는 우람한 암릉이다..

 

▲ 올려다 보니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

 

▲ 암릉이 바람을 막아주어 따뜻한 우회로에 무언가 기다릴것만 같은 예감이다...

 

▲ 예감은 적중이다.. 봄처녀 "제비꽃"이 수줍은듯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둘러보아도 다른 야생화가 안보인다..

제비꽃의 꽃말은... "순진한 사랑"... "나를 생각해주오" 이다..

 

▲ 척박한 바위 꼭대기에도 생명을 이어가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 척박한 바위에서의 나무는 물한방울 이라도.. 지나가는 구름 한조각 이라도.. 모두 생명을 이어가는 중요한 것들이다.

 

▲ 바위에 코가 닿을 정도로 가파르다..

 

▲ 우회한 암릉의 뒷모습이다..

 

▲ 저 바위봉이 삼각점봉이다.. 초창기에는 저기가 동석산 정상인걸로 알았었다.

 

▲ 전에는 직등으로 암릉을타고 올라갔었는데... 일주일전에만 왔어도 올라갔을텐데..ㅎㅎ..

 

▲ 길을 걷다가 보니 혼자다...

노자(老子) 왈.. 지지불욕(知足不辱)이면.. 지지불태(知止不殆)라 했다..

"만족을 알면 모욕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라는 말이다.. 아서라 말어라 안전한 길로 가자..

 

▲ 아마도.. 동석산 전구간을 통털어서.. 발디딤이 제일 난해한 곳으로.. 여기가 제일 난코스였던 곳인데

지금은 안전발판이 설치 되어 있다...

 

12시 56분 : 삼각점봉.. 정상석은 없고 텅빈 자리를 삼각점이 외로히 지키고 있다..

동석산은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으로 새벽 동이 틀 무렵이면.. 도포를 입고 지팡이를 쥔 노승이 불공을

드리다가 사라진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동석산의 암릉이 마무리 되어가는 아쉬움인가?... 지나온 암릉길을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 가야할 석적막산과 큰애기봉을 다시 가늠해 본다..

 

▲ 언젠가 저 산봉들을 타볼려고 하다가 무산된 일이 있다..

 

▲ 동석산 삼각점봉을 지나서부터는 등산로 환경이 육산으로 바뀐다..

 

▲ 석적막산 오름길의 전망바위에서 마지막으로 동석의 암릉을 뒤돌아 본다..

 

▲ 13시 09분 : 석적막산..

 

▲ 석적막산과 동석산 암릉..

 

▲ 석적막산을 지나면서부터는 소사나무 육산길로 편안하게 이어 진다.

 

▲ "현호색".. 신비의 색깔이 아름답다..

꽃말은... "빛나는 마음".. "보물주머니".. "비밀".. "희소식" 이다.

 

▲ 동석산에서도 귀한 인연을 만났다.. "노루귀" 다..

노루귀의 꽃색은... 흰색.. 분홍색.. 보라색.. 파란색 등으로 다양하며.. 꽃색에따라 꽃말도 다르다.

흰색 노루귀의 꽃말은... " 순결" 과.. "순수함" 이다..

 

▲ 분홍색 노루귀의 꽃말은..

"애정".. "다정함".. "보살피는 사랑" 이다.

 

▲ 정말 그렇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이제막 피우기 시작하는 "산자고".. 너도 그렇다..

 

13시 30분 : 가학마을 갈림길..

 

▲ 큰산(일명.. 작은 애기봉) 오름이 장난아니게 가파르다...

 

▲ 큰산에서 바라본 큰애기봉...

 

▲ 때로는 역광의 진달래 꽃잎이 이쁘다...

 

▲ 콩자개덩굴...

 

▲ "흰색노루귀" 군락을 만난다..

 

"산자고"의 꽃말은... 가녀린 미소다..

산자고에서 자고(慈姑)는 자비로운 시어머니라는 말이다. 

이 식물이 산자고라 불리게 된 데에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홀로 삼남매를 키운 여인이 있었는데, 딸 두 명을 시집보내고 막내아들만 남았지만 하도 가난해 아무도 시집을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봄날 한 처녀가 보따리를 들고 나타났다. 물어보니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다가 아버지가 죽자

유언에 따라 그곳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 처녀를 며느리로 삼았다... 그들은 아주 행복했지만 사람들이

부러워했기 때문일까? 그만 며느리가 등창이 나고 말았다... 날로 고름이 심해졌으나 돈도 별로 없고 마땅히 의원을 찾아

갈 수도 없이 보내다가 어머니가 우연히 산에서 이 꽃을 발견해 며느리의 등창이 난 곳에 발랐더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로 이 작은 꽃을 산자고라 부르게 되었다.

 

▲ 현호색..

혼자 걷지만 혼자가 아니다.. 야생화가 덤으로 주는 선물에.. 쪼그리고 앉아서 꽃잎 가까이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이맛에

나는 어느새 자연과 하나가 되어 간다.. 꽃잎 하나마다 품고있는 작은 세상의 색깔이 너무 황홀하다.

 

▲ 13시 57분 : 전망대 갈림길..

 

▲ 14시 03분 : 큰애기봉 전망대..

큰애기봉 바로 아랫마을의 가치리(加峙里)는 한때 200여호의 큰 동리였기에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고 그 동쪽 외진 곳에

개들샘이란 유일한 공동우물이 있고 마을 앞 지척에는 원뚝이라는 포구(浦口)가 있었다.
지금은 간척지가 된 당시의 그 원뚝 포구는 진섬, 가사도, 사자도, 손가락섬, 발가락섬, 굼섬 조도 등지에서 모여든 어선

들로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어 비릿한 생선냄새와 술 익어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큰애기봉의 전설>

그런 세월의 어느 날 가치리 부잣집 정씨네 집에서 담살이(가정부)를 하던 순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우물길에 나선지 벌써 몇 번 째
 집안의 물항아리는 이미 차고 넘쳤건만, 귀신에 흘린 듯.. 총각 선원 하나가 빨래를 하는 그

우물을 들락거리는데 열 일곱 순이는 총각의 복쟁이 마술에 걸렸던 것이다 

그런 순이 맘을 벌써 간파한 총각이 불쑥 말을 건넸다.

 

"총각"ㅡ 거시기말여.. 큰애기는 참말로 이쁜디.. 이름이 머여?'
"순이"...ㅡ 근디 남자가 먼 빨래를 요로콤 많이도 헌다요?'
"총각" ..'응 나는 아부지와 단 둘이 사는디 섬에는 물이 귀하잔여ㅡ'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총각의 입에서  '순이 우리 언제 어디서 한 번 만나자 우리 아부지는 순이 같이 착하고 이쁜 며느리

를 바란당께ㅡ'... 순이는 터지기 직전의 가슴을 움추리며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때 저ㅡ만큼서 수다쟁이 각제네가 오고 있었다  '순이 어서 대답해ㅡ 누가 오고 있응께 말여'
'응 쩌ㅡ그.. 저 봉우리'.. 너무 다급한 나머지 순이는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지금의 큰애기봉을 가르켰던 것이다..

 

그 다음 날부터 순이는 나무하러 간다는 핑개로 약속 장소인 그 봉우리를 오르내리기 시작 했다
그러나 그 총각 선원은 죽었는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본래도 호리호리하던 순이의 몸매는 그리움에 날로
가을 날 억새

풀이 말라가듯 매말라 갔다.. 동네엔 들불처럼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불쌍한 순이가 귀신에 흘려 미처간다는 소문에..

파도가 허옇게 이랑지기 시작하는 늦 여름에 주인은 쓸모 없는 순이를 내어 쫓았다, 

날로 순이의 모습은 가치리에서 사라지고 그해 섣달. 이웃 마을 사냥꾼이 봉우리에 올랐다가 칠흑 같은 댕기머리에

소복을 입은 처녀가 하염 없이 섬들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왠 큰애기여ㅡ' 하며 처녀의 어깨를 흔들자 그녀는 그만 눈사람처럼 폭삭 무너지고 말더라는 것이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봉을 큰애기봉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변덕을 떠는 바다처럼 바람 같은 뱃사람

말을 철석 같이 믿었던 순이야말로...큰애기봉의 정령이요, 혼백이요, 메아리임이 분명 하다며...
수많은 등산객이 찾아와 큰애기봉의 전설을 담고 간다..

 

▲ 세방낙조 인근의 섬들에는 재미난 전설이 전해 온다..

낙조가 잘 보이는 지력산 동백사에 한 스님이 있었다고 한다...

석양 무렵, 노을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학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스님도 학들을 따라 지력산으로 날아올랐다.

그런데 수행이 부족해 학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만 바다에 추락하고 말았다. 이때 스님의 장삼(長衫) 위에 걸치는 가사가

떨어진 곳은 가사도(加沙島), 장삼이 떨어진 곳은 장삼도, 바지가 떨어진 곳은 하의도, 상의가 떨어진 곳은 상의도,

발가락이 떨어진 곳은 양덕도, 손가락이 떨어진 곳은 주지도, 심장이 떨어진 곳은 불도(佛島)가 되었다는 것이다.

 

▲ 올망졸망 고만고만한 섬들이 그림이 되어준다...

 

전망대에서 동남쪽의 여귀산..

 

▲ 하산지점인 낙조전망대를 확인하고 나서..

나 또한 시원하게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소리에서... 큰애기 순이의 흔적을 찾아 보았다 마는.. 허공에 흩어지는 애잔한

마음을 전망대에 남겨 두고 나그네는 발길을 돌린다.

 

 14시 13분 : 세방낙조전망대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서..

 

▲ 개별꽃...

꽃말은..."귀여움"이다.

 

▲ 동백숲 군락지인데 급경사 내림길이다.

 

바알갛게 멍들었다는 동백꽃은..

무슨 사연이 그리 많아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그리움으로 지새웠을꼬~.

 

▲ "분홍색 노루귀"..

 

▲ 봄까치(일명 개불알꽃).. 꽃말은..."기쁜 소식"이다..

 

▲ 임도를 가로질러.. 세방 낙조 전망대로 간다.

 

▲ 3년전 까지도 있었던 8각정이 무슨 연유로 사라졌다.

 

▲ 큰애기봉을 올려다 보니 전망대에 사람이 보인다.

 

▲ 당겨본 발가락바위..

 

▲ 손가락바위..

 

14시 49분 : 세방낙조 주차장이 나오고 오늘의 산행은 마무리 한다.

 

▲ 트랭글을 정리해 보니.. 암릉길은 암릉길인가 보다.. 평균속도가 1.7km다..

약속된 하산시간이 16시까지 인데 1시간10분 가량 일찍 내려왔어니.. 그만하면 양호한 편이다.

 

▲ 주차장 아래쪽의 세방낙조 전망대를 둘러 본다.

진도 해안도로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세방낙조 전망대" 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의 경관은 압권이다. 

이곳에서 보는 낙조는 환상적이다... 해질 무렵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일몰의 장관은 주위의 파란 하늘을 단풍보다

더 붉은빛으로 물들인다...라고 한다

 

▲ 조류의 흐름이 빠르다.. 저런곳에 빠지면 어른 장정도 속수무첵으로 빨려 간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악마의 조류라고 하는 맹골도가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곳이다..

 

▲ 윤슬이 아름다운 각흘도 저 너머에 맹골도와 세월호의 아픔이 있는 방향이다.

 

▲ 진도타워..

 

▲ 진도대교 밑의 명량해협 울돌목..

좁은 해협의 물살이 빨라서 마치 물이 우는듯 하다 해서.. <울돌목>이라 불리우며... 또한.. 울돌목은 이 충무공의 3대 해전

중의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1597년 정유재란떄 <이순신 장군>이 빠른 물살을 이용해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무찌른 역사의 현장이다..

 

16시 39분 : 진도대교 인근의 "임ㅇㅇ한정식 뷔페식당" 에서..

 

▲ 원거리 산행에서 오는 기분 좋은 피로감을 내입에 맞는 음식물로만 듬뿍 담아서 먹고 마시고 속을 풀고 달랜다.

 

▲ 산이좋아 회장님의 건배.. 산이 좋아라.. 사람이 좋아라~~..

 

작지만 암팡지고 옹골찬 동석산의 암벽을 넘어면서 스쳐간 풍광들은

용아장성의 비주얼에 버금가는 암릉 능선이었고 다도해의 일품 조망은시원한 안구정화 였기에.

세번째 오른 동석산이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다시오고 싶어지는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무엇보다.. 동석이가 내어준 야생화와의 만남은 덤으로 받은 희열이었다.

 

2024년 03월 17일(일).

앞산 해골바위에서 용두골까지 : 대구시.

 

산행코스 : 안지랑골쉼터-해골바위-코끼리바위-앞산-산성산-용두골-파동IC.

산행시작 : 안지랑골쉼터 09시 15분.

산행종료 : 파동IC굴다리 15시 23분.

전체거리 : 약 8.2km..

전체시간 : 06시간 08분.

운동시간 : 05시간 21분.

휴식시간 : 00시간 47분.

 

09 : 15  안지랑골쉼터 출발.

09 : 57  해골바위.

11 : 03  코끼리바위.

11 : 32  앞산.

13 : 46  산성산.

15 : 03  용두골 독가촌.

15 : 09  용두배드민턴장.

15 : 23  파동IC굴다리.

 

▲ 10시 09분 : 안일사 뒤쪽의 해골바위 위쪽의 명품송.

 

▲ 명품송에서부터 본격적인 암릉타기...

직벽처럼 보이지만.. 발디딤이 있고 잡을수 있는 홀더가 있어서 약간의 산행경험이 있다면 쉼게 오를수 있다.

수년간의 산행경험이 풍부한 아등팀은 여유롭게 올라간다.

 

▲ 바로아래 안일사 지붕이 내려다 보이는 방구돌위에서.

 

▲ 이어서.. 나타나는 우람한 바위가 위압감을 준다...

 

▲ 그러나.. 요리조리 살펴보면...

 

▲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보이고..

 

▲ 지나갈수 있는 틈새를 내어주는 바위도 신기하지만...

 

▲ 이런길을 찾아내는 산꾼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 앞산전망대를 당겨보고.

 

▲ 또 한차례의 직벽구간...

 

▲ 앞산 등산로중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안자랑골 둥산로가 선명하게 보인다..

 

▲ 오랜만에 코끼리바위에 올라가 본다...

 

▲ 코끼리바위 머리부분으로 올라가는 길이 곱지는 않다..

 

▲ 드디어 코끼리바위 정수리에 올라선다.

 

▲ 지난번에 찾아갔다가 쉴수있는 공간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돌아섰던 무명바위를 다시한번 당겨 본다.

 

▲ 11시 32분 : 앞산 정상.

월백산으로 가는길에 야대장님의 처남을 조우하여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

 

▲ 13시 46분 : 산성산.

 

▲ 산성산 항공무선표지소를 지나서..

 

▲ 용두골로 내려 가는데... 며칠전 다녀온 충남 홍성의 죽도의 대숲에 버금가는 용두골 대숲을 만난다.

 

▲ 용두골을 깨우는 봄의 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 뜻하지 않게 용두골에서 귀한 인연 "노루귀"를 만난다.

노루귀의 꽃색은... 흰색.. 분홍색.. 보라색.. 파란색 등으로 다양하며.. 꽃색에따라 꽃말도 다르다.

 

▲ 분홍색 노루귀의 꽃말은..

"애정".. "다정함".. "보살피는 사랑" 이다.

 

흰색 노루귀의 꽃말은... " 순결" 과.. "순수함" 이다..

 

▲ 실제로 농사를 짓는 독가촌이다..

 

▲ 용두골 실내배드민턴장..

 

15시 23분 : 용두골IC 굴다리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 신천을 따르고..

 

▲ 파동 IC 고가교 아래를 지나서.. 가창의 장어집으로..고고..

 

▲ 가창 장어집에서..

 

▲ 오늘도 오분순케.. 야등팀의 재미있는 이바구 하나 남긴다.

▲ 3월의 둘째 목요일... 오늘은 백호트레킹을 따라서 충남 홍성군 서부면 죽도리(섬)트레킹을 가는 날이다.

홍성 죽도는 요즘.. 인터넷상에서 "천수만의 보물섬" 이라 해서 세인의 관심을 많이 받는 섬이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홍성군과 안면도 사이의 천수만 중앙에 위치해 있고 남당항에서 배로 약15분이면 갈수 있는 곳이다.

 

▲ 10시 18분 : 홍성군 남당항 도착.

충남 홍성군의 날씨는 맑음.. 기온 3도~13도.. 풍속은 2~3m/s.. 초미세먼지 오전 한때 나쁨이고.. 황사 오존은 보통이다.

 

▲ 버스에서 내려서 현재 위치를 보니 바다 한가운데에 조성된 엄청 넓은 방파제 위에 와 있다.

주변을 살펴보니 이해가 간다..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서 날물일때는 배가 접안을 못한다..

그래서 방파제를 바다쪽으로 길게 축조하여 도서지역의 주민들이 조수와 관계없이 연안 여객선을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 지도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 10시 21분 : 죽도행 매표소.

 

▲ 11시 00분에 출항이라 30분 이상을 대기 하여야 한다.

 

▲ 백호트레킹 총무님의 매표를 보고나서... 주변을 둘러 본다..

 

▲ 제일 먼저 죽도행 승선장 위치부터 확인하고...

 

▲ 우리가 타고갈 배는 대기하고 있고...

초미세먼지.. 오전 한때 나쁨단계라서 그런지.. 저 너머로 죽도가 보이지만 깨끗하지는 않다.

 

▲ 살짝 가까이 당겨보니... 죽도항등대가 보이고 심각 수준은 아닌것 같다.

 

▲ 남당항 방파제 끝머리 등대.

 

▲ 당겨 본 건너편 남당항의 홍성군 서부면 소재지...

 

▲ 10시 36분 : 다시 죽도행 선착장으로 가보니..

 

▲ 출항 준비를 위해 접안시설의 반대편으로 배를 이동한다..

 

▲ 안전하게 접안후에... 승선 시작.. 우리 백호 트레킹팀이 먼저 승선하고..

 

▲ 이어서 경기도 파주 어디에선가 버스 3대로 왔다는 아주머니들의 대군단이 승선한다.

이배의 승선 정원이 승무원 3명 포함하며 176명이다. 줄잡아 버스 한대당 40명 X 3대 = 120명.. 정원을 넘지는 않겠다..

 

▲ 11시 05분 : 대군단 개중에는 일부 연세드신 여성분들이 타다보니 출항시간이 5분 초과 되었다..

 

▲ 뱃머리를 죽도항쪽으로 돌리고...

 

▲ 선박엔진이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남당항을 저만치 밀쳐내어 버린다.

 

▲ 죽도항으로 가는 짧은 막간을 이용하여 안전요원이 간단한 안전수칙을 전달한다..

 

▲ 남당항 출발 8분만에 죽도항이 코앞이다...

 

▲ 죽도항의 분위기가 마라도로 가는 제주도 서귀포 대정읍의 선착장 모습과 거의 비슷한것 같다..

 

▲ 죽도는 어떤 섬인가...

충남 홍성군 서부면 서쪽에 있는 홍성군 유일의 유인도로 섬주위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죽도라 불리운다.

죽도는 천수만 내에 위치하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으로 낭만과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천혜의 섬이라고 한다.

 

▲ 죽도등대가.. 따뜻한 동행.. 행복한 홍성.. 여기는 홍성군 죽도입니다...라고 반긴다.

 

▲ 안전하게 접안하고...

 

▲ 11시 15분 : 죽도항 도착... 제일 먼저 1등으로 내려서..

 

▲ 화랑산악회 회장님도 담아주고...

 

▲ 죽도항 방파제로 올라간다..

 

▲ 죽도항 내항.. 지금의 물때가 날물인지... 배들이 모두 갯벌에 엉덩이를 깔아 뭉개고 있다.

 

2024년 03월 14일(목).

죽도트레킹 : 충남 홍성군.

 

트레킹코스 : 죽도항선착장-제2전망대-태양광발전소-야영장-제3전망대-제1전망대-죽도항선착장.

트레킹시작 : 죽도항선착장 11시 23분.

트레킹종료 : 죽도한선착장 13시 08분.

전체거리 : 약 3.72km. .

전체시간 : 01시간 45분.

운동시간 : 01시간 31분.

휴식시간 : 00시간 14분.

누  구  랑 : 백호트레킹 따라서...

 

11 : 23  죽도항선착장 출발.

11 : 27  제2전망대.

11 : 36  태양광발전소.

11 : 38  야영장.

11 : 44  제3전망대.

11 : 59  담깨미조망대.

12 : 45  제1전망대.

13 : 08  죽도항선착장.

 

▲ 11시 19분 : 제2전망대 입구.

 

▲ 데크에서 내려다 본 죽도항 선착장.

 

▲ 데크에 올라서자 말자.. 이섬의 트레이드 마크인 대숲이 나타난다.

 

▲ 죽도 트레킹에는 이런 종류의 쉼터 같은 조망대가 많이 만들어져 있다.

 

▲ 죽도 앞장벌이라는 갯벌과.. 끝자락에 태양광발전소가 보인다.

 

▲ 기분 좋을 정도로 관리가 잘되어 있다.

 

▲ 제2전망대를 받치고 있는 대나무 기둥(속에는 H빔이겠지만)...

 

▲ 11시 27분 : 제2전망대(동바지조망대).

이곳에는 홍성8경으로 보이는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일종의 전망대 갤러리인 셈이다.

 

▲ 11시 27분 : 제2전망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했던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던... 고려말 충신이며.. 명장인 최영장군의 캐릭터를 만들어 놓았다.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가 고향이다.

 

▲ 제2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죽도항이고.

 

▲ 제2전망대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마지막으로 가게될 제1전망대가 보이고 썰물에 가라앉은 배들이 한가롭다.

 

▲ 몸을 돌려 남쪽을 보면.. 가야할 제3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 죽도에는 화살나무도 많이 보인다..

 

▲ 시계방향으로 올라 왔던 갈림길에서 마을로 내려 간다.

 

▲ 홍합과 대합을 까며 열심히 사시는 부부의 모습을 보며 삶의 현장을 간접체감한다..

 

▲ 고기잡이 배가 항구로 돌아올때 만선을 알리는 만선 깃대다..

 

▲ 짧은 코스지만 체계적으로 정석대로 탐방하자면.. 야영장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다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 해풍머금은 파들이 싱싱한 봄내음을 풍긴다..

 

▲ 야영장으로 가는 입구에서 이정표를 확인하니.. 잘가고 있다...

 

▲ 길 좌측은 앞장벌이고..

 

▲ 길 건너는 뒷장벌이다... 아마도 마을 앞쪽 됫쪽의 넓은 갯벌을 구분하여 부르는것 같다.

 

▲ 지나온 제2전망대.

 

11시 36분 : 죽도 태양광발전소..

 

▲ 발전소앞을 되돌아 나와서 순정이네 민박 골목으로 들어간다.

 

▲ 죽도 야영장이 있고 쉼터도 있고 매점도 있고...

 

▲ 야영장을 지나가니 몽돌해변이다... 바지락 양식장이니 들어 가지 말라는 경고다..

 

▲ 무슨 양식장 같기도 하고.

 

▲ 헬기장..

 

11시 44분 : 제3전망대..

 

▲ 능수벚꽃이 필때면 또다른 선물이 될것 같다...

 

▲ 백야 김좌진장군 캐릭터... 오늘의 자유를 만들어 주신 분들이다.. 비록 캐릭터지만 옷깃을 여미게 한다.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안락한 삶을 버리고 조국 독립을 위해 한평생 일제와 맞서고..

청산리대첩 3300여명 살상,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승리다. 1930년 1월 24일 공산당원 총탄에 순국하셨다.

 

▲ 적막한 달밤.. 한칼로 쓸어 버릴 길 없다...

청산리대첩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의 "단장지통" 이다.

조국을 잃고 타국에서 왜놈들과 싸우던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충남 보령시쪽...

 

▲ 안면도 방향...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수 있는 장소다.

 

▲ 지나온.. 제2전망대..

 

▲ 파도소리길... 바람에 대나무 스치는 소리 들으며..

 

▲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쯤 멍때리고 가도 좋을것 같다..

 

▲ 길게 누운 안면도.. 저기 어느쯤에 안면암이 있을 것이다..

 

▲ 물이 빠지면 죽도와 하나가 되는 달섬...

 

▲ 제 3쉼터에...

 

▲ 각종 도자기들을 달처럼 동그랗게 붙여 놓았다.. 괜찮은 아이디어다..

 

▲ 문에 서니... 액자속의 내가 그림이 된다..

경기도에서 온 여성 대군단중에 젤로 이쁜 아짐씨한테 인증샷 부탁 했더니.. 잘 담아 주셨다..ㅎㅎㅎ~

 

▲ 달섬..

 

▲ 해풍에 말리는 홍합이다..

 

▲ 생선 내장을 말리는것 같기도 하고...

 

▲ 죽도에는 자동차가 없다.. 차가 없어니 탄소 배출도 없고.. 소음도 없다..

 

▲ 무우 시래기..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맛.. 구수하겠다.

 

▲ 3전망대와 1전망대 사이의 뒷장벌... 바다가 내어 주는 보물단지가 저 뻘속에 있다..

 

▲ 댓잎소리길.. 사그락사그락..

 

▲ 독살체험장으로 올라간다..

 

▲ 제1전망대로 올라간다..

 

12시 44분 : 제1전망대(옹팜섬전망대)...

 

▲ 쌩뚱스럽게.. 판다가 왜 여기서 나오니~~??... 아마도 대나무와 판다의 상징성 때문에 만들어 놓은듯...

 

▲ 님의 침묵의 만해 한용운님 캐릭터...

"조선인이 조선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백번 말해 마땅한 일인데, 감히 일본인이 무슨 재판이냐”라고

일본인에게 꾸짖던 사람은 스님이었고.. 독립운동가였고.. 시인이었다.

충남 홍성군(洪城郡) 결성면(結城面) 성곡리(城谷里) 49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 고요함과 한적함을 만끽하고 제1전망대에서 죽도등대 방향을 가늠해 본다.

 

 풍력발전기로 가는 데크가 보여 가보려 했더니..

 

헐!~~.. 가지 말란다.. 넘어가도 되겠더구만.. 굳이 억지쓸 필요는 없다..

 

마지막 저 봉우리만 넘어가면 트레킹은 마무리 된다...

 

제1전망대를 당겨보고..

 

대숲길만 걷다가 솔숲으로 환경이 변한다.

 

솔숲을 내려 서니 죽도항으로 시야가 확 터진다.

 

죽도항 등대도 눈앞으로 가까이 불러보고..

 

조세로 굴을 까고 있다..

이런 부지런 함으로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했을 것이다.. 이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힘이다.

 

주꾸미를 잡는 도구다.. 요즘은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얼마전에는 마을회관이었다는데.. 지금은 폐가다.. 그 위에.. 재미있는 조형물이 있다..

 

낚시꾼 일가족 설정이다..

 

설정이 재미있다..

딸은 엄마를.. 아들은 아빠를 닮았고.. 고기 한마리 잡으려는 기대감으로 가득찬 표정들이 압권이다.

 

대합과 홍합..

 

죽도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무공해 삼륜전동카.. 태양광발전과 풍력 발전으로만 사용한다고 하는 무공해 섬이다.

 

처음 올라갔던 제2전망대 입구.. 제자리로 돌아 왔다.

 

죽도등대에서..

 

13시 06분 : 선착장을 내려다 보며 트레킹을 마친다...

 

트렝글을 정리하고... 백호트레킹팀의 죽도출항시간은 14시 30분 배라서 약 1시간 가량 기다려야 된다.

 

 마침 남당항에서 여객선이 들어온다... 13시 30분에 출항하는 배인가 보다..

 

 딱히 할일도 없고 해서.. 접안과정을 지켜 본다..

 

 오후시간대여서 그런지 죽도 입항자 수가 많지는 않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동네 한바퀴~~..

 

 바지락을 캐는 모습도 보고..

 

 바람의 언덕 같은 곳에 서있는 동네 지킴이 나무도 보고..

 

 동네주민이 만든 솟대 같은 장식물도 보다보니...

 

 13시 54분 : 오후 2시가 다 되어 간다... 선착장에서 기다림을 하기위해 내려 간다..

 

 동료들과 함께.. 부부어부가 채취한 홍합도 구경하고..

 

가만히 있는 죽도등대도 호출하고..

 

 먹이사냥에 바쁜 갈매기도 불러 세우고...

 

 14시 07분 : 드디어 배가 들어 온다...

 

 뱃머리에서.. 선장실 한번 올려다 보고.. 배꼬리쪽으로 간다.

 

 죽도등대가 배웅해주는 따뜻한 한나절 잘 보내고 갑니다...

 

 오후가 되니 초미세먼지의 농도가 좋아졌는지 홍성호 댐수문인 홍성교가 선명하다..

 

14시 15분 : 몰려드는 승객들에게 선장이 방송으로 승선인원이 되었으니.. 30분이면 갔다오니 기다리라 하고 출발 한다.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정원 초과로 미처 타지 못한 승객들을 선창에 남겨놓고  뱃머리를 돌린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죽도항은 멀어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할때에는.. 차는 앞쪽에 타야 하고.. 배는 뒤에 타야 되는게 기본이다.

배는 엔진이 뒤에 있어서 흔들림이 적어서 멀미가 없고.. 차는 뒤에 타면 흔들림이 많아서 멀미가 나기 쉽다.

 

멀어지는 죽도등대여... 바이바이 굿빠이다..

 

 뱃머리는 남당항으로 달려가고..

 

 죽도는 점점 작아진다...

 

 미리 미리 하선 준비를 하고..

 

 홍성 해양경찰이 기다리는 남당항으로 접안...

 

올때도 1등으로 내려서..

 

14시 28분 : 남당항 매표소에 안착..

 

 이기 무신 일이고?... 평일이고 목요일인데.. 6대가 왔다.. 주말이 어떨지 짐작이 된다.

 

 초미세먼지도 사라졌다.. 시야가 깨끗하다.

 

 아침에 죽도항에 들어갈때 보다 갯벌이 많이 넓어졌다.. 다시 말하면 간월암에도 걸어서 갈수가 있다는 말이다..

 

15시 01분 : 간월암 주차장 도착..

 

▲ 간월도 간월암..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으며 썰물 때는 길이 열리고 밀물 때는 섬이 되는 신비한 섬이다.

 

간월암은 삼국시대에는 피안도(彼岸島) 피안사로 창건되어 당시에 원효대사가 수행하셨던곳이었다고 한다.

물이가득 찼을때는 마치 한송이의 연꽃이 또 한척의 배가 떠 있는 듯 하다 하여 따로 연화대(連花臺)및 원통대(圓通臺)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고려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를 하다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치시고 난후 암자 이름을 간월암

이라 하고섬이름 을 간월도라 하였다.

 

이후,  무학대사는 이성계(조선시대, 태조)의 스승으로서 한양도읍지를 잡는등 조선의 건국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조정에서는 간월도, 황도 등을 사페지(賜弊地)로 정하여 대사께 드렸으니 많은 수도인이 이곳 간월암에서 득력을 하였던

것이다... 그후 조선왕조의 억불정책으로 암자가 폐사된 것을 1941년 만공선사께서 선승들의 안목을 기리시며 제자인

마벽초 선사에게 중창(重創)을 명하신 후.. 친히 조국해방 천일기도를 올렸는데 회향 삼일만에 광복을 맞이 하였으니

조선의 건국과 함께 해방의 초석이 된 의미 있는 기도 도량이라 아니할수 없다.
그리고 무지개 처럼 아름다운 섬들 사이로 드러나는 일출과 일몰은 
빼어난 장관을 이루고 또한 달이 둥실 떠 올랐을 때의

그 교교한 자태란 가히 선경(仙境) 이라 아니 할 수 없으며 하루 두번씩 밀물과 썰물 때는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세계에서도

보기드문 천혜의 자연 경관 으로서 이곳 처럼 지리와 명기가 뛰어난 곳도 드물 것이니 과연 생사 바다에서 솟아오른 한송이

연화대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 간월암 일주문..

 

▲ 오른쪽 편액에는 만공스님이 쓰신 간월암이라 되어 있고.. 왼쪽에는 원통전이다..

간월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암자이며...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간월암을 중창한 송만공(宋滿空, 1871∼1946) 스님은 전북 정읍시 태인면 사람이다. 

13세 때 부친이 돌아가시자 어머니가 여승이 됨에 따라 중이 되었다. 소년시절부터 참선에 정진한 만공은 30세에 정혜사

선원조실이 되어 수많은 납자(衲子)를 배출했다. 만공스님이 속세에 살았다면 대단한 기인이었을 것이다.

만공은 젊은 여자의 벗은 허벅지를 베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곱 여자의 허벅다리를 베고 잤다고 해서

‘칠선녀와선(七仙女臥禪)‘이라는 말이 생겼다.

 

어느날 험한 산길을 한 스님과 가는데, 이 동행승이 힘들어서 더는 못가겠다고 했다. 때 마침 밭에서 화전을 일구는 부부

가 있었는데 만공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냅다 달려가 여자를 덥석 안고 입맞춤을 했다. 놀란 남편은 쇠스랑을 들고 저 중놈

들 죽여버리겠며 쫓아왔다. 엉겁결에 동행승도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났다.

고갯마루에 올라 이제 화전 부부가 보이지 않게 되자 행승은 만공 스님에게 그게 무슨 짓이냐고 꾸짖었다.

러자 만공 스님은 "이 사람아, 그게 자네 탓이라고. 그 바람에 고갯마루까지 한숨에 왔지 않나. 이젠 괜챦은가?" 하였다.

 

스님의 이런 파격적인 행위는 그의 은사 스님인 경허 스님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었다.

만공스님은 흔연히 법도를 넘어섰다는 호기 때문에 존경을 받았다.

1946년 어느날 76세의 노스님 만공은 저녁공양을 맛있게 들고는 거울을 앞에 두고 독백하기를 "이 사람 만공! 자네와 나는

70여 년 동안 동고동락해왔지만 오늘이 마지막일세. 그동안 수고했네.".. 하고는 요를 펴고 누워 열반에 들었다.

만공스님 다운 최후다.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내용 중에서 --

 

▲ 원통전(관음전)..

간월암에는 관음보살을 모시는 "원통전"이 중심을 차지한다. "어떤 이야기라도 다 들어준다"..라고 하는 관음(觀音)보살은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자비의 화신이라 한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고뇌를 두루 막힘이 없는 상태로 씻어준다

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무학대사에 얽힌 이야기"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에서 태어난 무학대사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나라에서 진 빚을 갚지 못해 쫓겨 다니고 있었다. 

포졸들이 대신 어머니를 붙잡아서 고개를 넘어가는데 갑자기 산기가 있었다. 그때 온 산천이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둘러

보니 한 곳만 눈이 없어 그곳에서 해산을 하고 아기를 옷가지로 덮어놓은 뒤 태안현청으로 끌려갔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현감이 어머니를 풀어주어 다시 그곳으로 가보니 큰 학이 두 날개를 펴고서 아기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크게 감격한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무학(舞鶴)’이라고 지었으며, 그 고개를 ‘학이 돌본 고개’라 하여

"학돌재" 라고 하게 되었다.

 

그 후 출가를 한 무학이 이곳 간월도에 암자를 짓고 수행을 하던 중 어느 날 문득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이 암자

이름을 간월암이라고 지었다. 간월도에 절이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안면 면장 박동래와 만공스님이 암자를 세워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만공선사는 이곳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고 바로 그 후에 광복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 해수관음상.

 

▲ 간월암 용왕단..

 

▲ 간월암 산신각..

 

▲ 간월암 사철나무(수령250년 무학대사 지팡이).

무학 대사는 간월암을 떠나면서 짚고 다니던 주장자를 뜰에 꽂으며, 지팡이에 잎이 피어나 나무가 되어 자랄 것인데 

그 나무가 말라죽으면 나라가 쇠망할 것이요, 죽었던 나무에서 다시 잎이 피면 국운이 돌아 올 것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만공스님은 죽었던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간월암을 찾으니 암자는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 묘가 들어서

있었는데, 실제 귀목나무에서 새파란 잎이 돋아나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머물며 중창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기도 회향 전에 김씨 가문에서 묘를 이장해 가는 가피가 답지하였고, 절터를 되찾은 다음 제법 모습을 갖춘 암자를 짓고

손수 간월암이라는 현판을 써서 내건 후 종종 찾아와서 한소식을 했었던 추억의 장소가 간월암인 것이다.

-- 간월암 홈페이지에서 발췌 --

 

▲ 간월암 범종각.

 

▲ 간월암에서 바라 본 천수만..  천수만은 우리나라 최대의 철새도래지이다.

 

▲ 천수만의 윤슬이 보석처럼 빛나고.. 건너편에는 안면도가 길게 누워 있다.

 

 

▲ 독살..

돌로 긴 담을 쌓아두면 밀물 때에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이 돌담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를 이용해 물고기를 수확하는 전통 어로 방법이다... 지금은 물이 들어오는 밀물의 시작이다.

 

▲ 간월암을 나가면서..

 

▲ 조성된지 얼마 되지 않은 간월도 스카이워크..

 

▲ 이제 곧 물이 찰것 같은 간월암을 나와서..

 

15시 15분 : 간월도 굴탑.

 

▲ 바지락과 갯굴을 캐는 여인상..

 

▲ 길이 113m.. 끝까지 가보자.

 

▲ 간월암 포토존..

 

▲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간월암..

 

▲ 스카이 워크 투어를 마치고..

 

▲ 간월도 선착장의 해산물상가 밀집지역에서..

 

▲ 술 한잔 나누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고 많은걸 알고 배웠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16시 37분 : 갯벌이었던 곳에 밀물의 속도가 빠르게 밀려와 만수가 된 간월도 선착장을 뒤로 하고... 귀구길에 오른다.

2024년 03월 10일(일).

천은사 상생의길 / 화엄사 홍매화 / 산수유마을 : 전남 구례군.

 

탐방코스 : 천은사주차장-청류계곡-천은사-수홍루-보듬길-누림길-천은사주차장.

탐방시작 : 천은사주차장 10시 02분.

탐방종료 : 천은사주차장 11시 11분.

전체거리 : 약 3.87km. .

전체시간 : 01시간 08분.

운동시간 : 01시간 08분.

휴식시간 : 00시간 00분.

누  구  랑 : KJ산악회 따라서...

 

10 : 02  천은사 상생의 길 출발.

10 : 05  나눔길 입구.

10 : 14  청류계곡.

10 : 25  천은사.

11 : 11  천은사주차장.

 

▲ 10시 02분 : 전남 구례군 천은사 주차장 출발.

 

▲ 천은사(泉隱寺)입구.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828년(흥덕왕 3)에 덕운대사가 창건했는데 극락보전 앞뜰에

있던 샘물이 감로와 같다고 하여 감로사라고 했다. 875년(헌강왕 1) 도선대사가 중축한 이래 여러 차례 중건. 중수했다.

숙종때..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샘의 물이 자취를 감추자 절이름을 "샘이 숨었다"라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 천은사 일주문..

현판은 동국진체를 완성한 조선 후기의 서예가이자 양명학자인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이광사는 추사 김정희와 얽힌 일화로 유명한데.. 원교가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 편액을 쓴 후, 이를 본 추사 김정희가

촌스럽다고 떼어 내라고 하고 자신의 글씨로 대신하게 했다. 제주도 귀양을 마치고 돌아온 추사는 다시 대흥사에 들러

"이광사의 글은 부족함이 없는 명필" 이라 말하고 자신이 쓴 현판을 내리고 창고에 있던 원교의 현판을 다시 걸게 했다.

 

천은사는 tvN에서 2018년 24부작으로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세 코스로 구성된 "천은사 상생의 길" 중에 먼저.. 나눔길을 역순으로 걷고 천은사로 내려 올 것이다.

 

▲ 조금후에 만나게 될.. 천은사 수홍루.

 

▲ 왼쪽은 명상쉼터로 가는 데크길.. 직진은 천은사로 이어지는 나눔길..

 

▲ 명상쉼터에는.. 중년의 부부가 선점을 하고 있다.

 

▲ 청류계곡을 건너는 목교..

 

▲ 천은골 청류계곡..

 

▲ 수령 300년 이상이라는 천은사 보호수..

 

▲ 천은사 관음전.

 

▲ 천은사 관음전의 천수천안십일면 관세음보살상..

중생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무엇이든 보고 들으며.. 어느 곳에든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베푼다는 관세음보살상이다.

 

▲ 천은사 관음전 뒷쪽 옹벽에 서옹스님의 휘호가 있는 "수처작주"라는 글씨가 박혀 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당나라 임제선사의 임제록에 나오는 말로

"가는 곳마다 주체가 되라, 지금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의 세계다"..라는 의미다..

 

▲ 천은사 팔상전.

석가모니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를 봉안한 전각이머... 1774년에 지어졌다.

 

▲ 천은사 팔상전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이 단독으로 모셔져 있다.

 

▲ 천은사 포대화상.

포대화상이 앉아 있는 바위는.. 멧돼지가 바위로 변하여 마을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복돼지 바위다.

포대화상의 본명은 "계차"로 항상 포대자루를 들고 다녔기 때문에 포대화상이라 불렸고, 배가 나오고 대머리가 특징이다.

 

▲ 천은사 극락보전.

천은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고.. 신라 때 창건된 고찰이다. 신라 중기인 828년(흥덕왕3)에 인도의 덕운(德雲) 스님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명산을 두루 살피던 중 지리산에 들어와 천은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어나.. .창건주에 대한

기록은 밝혀진 바가 없어 그 시기와 유래를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절은 더욱 번성하여 충렬왕 때(1275~1308)에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되었다.

그후 계속해서 많은 수도자가 진리의 광명을 터득하는 수행처로서의 역할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절의 역사 가운데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고, 더욱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등의 병화를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는 등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극락보전에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주인으로서 중생들의 왕생극락을 인도하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으며

오른쪽은 관세음보살, 왼쪽은 대세지보살 등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편액은 일주문 편액을 쓴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천은사 회승당.

단청이 없고, 퇴색된 나무 벽으로 되어 옛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회승당 툇마루 한켠에 자리 잡은 범종에는 한국전쟁 때 생긴 조그마한 총알자국이 있다는데 확인을 못하였다.

 

 천은사 명부전에는 주존으로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고,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다.

 

 천은사 보제루.

"보제"는... "모든 중생을 두루 제도한다"라는 뜻이다.

사찰의 중심 불전 맞은편에 있어, 법요식 같은 행사 장소 또는 강당의 역할을 한다.

 

 천은사 보제루 내부.

"무량수각"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전국 사찰에 이 글씨체의 모각 편액이 많이 걸려 있다.

무량수각은 아미타불을 봉안한 극락보전의 다른 이름이다.

 

 천은사 보제루 현판.

원교 이광사의 제자로 조선 후기 호남의 명필 창암 이삼만(1770~1847) 선생의 글씨다.

창암 선생은 19세기에 붓하나로 호남서단을 평정한 인물이다. 병중에도 하루에 천 자 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벼루를

세 개 구멍 내고 천 자루의 붓을 닳아 없앴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 구눌 조광진(1772~1840)과 함께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손꼽히는데..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서예를 연마했다고 한다.

 

 천은사 범종각.

 

 천은사 천왕문으로 올라가는 삼도보계다.

"삼도보계"란 세 줄짜리 보석 계단이란 뜻으로... 석가모니가 도리천에 머물고 있는 어머니(마야부인)을 뵈러 올라가 석 달

동안 설법을 한 후, 하늘에서 사다리같이 생긴 세 줄짜리 보석 계단으로 내려왔는데, 이 때 양옆에 제석천과 범천이 같이

내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불국사.. 범어사.. 화엄사 등에 삼도보계를 상징하는 삼도계단이 있는 것이다.

 

 천은사 수홍루.."수홍(垂虹)" 이란... "무지개가 드리워져 있다"라는 의미다.

피안교 위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2층 누각형태로 세워진 수홍루는 조선 영조 때 건물입니다. 많은 분들이 여름과 가을에 수홍루 뒷편의 다리에서 수홍루와 천은제를 함께 찍는 인생샷을 남겨 가십니다. 특히, 일몰 모습이 장관이라고 합니다.

 

수홍루에서 바라본 천은사 저수지. 아래쪽에 무언가 보여서..

 

 물을 다스리는 신장인가 보다..

 

 피안교 위에 세워진 수홍루는 조선 영조 때 건물이다.

 

수홍루 지붕을 잘라버린 인증샷...ㅠㅠㅠ..ㅎㅎ~

많은 사람들이 여름과 가을에 수홍루 뒷편의 다리에서 수홍루와 천은저수지를 함께 찍는 인생샷을 남기는 곳이라고 해서..

젊은이에게 부탁하였더니.. 아쉽게도 지붕을 날려 버렸다... 바로 확인을 해보고 다시 찍어 달라할걸~..ㅎㅎ

사진의 주제는 아름다운 누각인 수홍루이고 나는 수홍루의 손님이다..

 

▲ 수홍루에서 시계역순으로 가기위해.. 매점 옆으로 간다.

 

▲ 천은사 상생의 길.. 두번째 구간 보듬길이다.

2020년 12월에 천은사.. 환경부.. 국립공원공단.. 전라남도 등 8개 관계기관의 협력 끝에 천은사 문화재입장료 징수 폐지를

기념하고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공존하는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나눔길, 보듬길, 누림길 3개 구간에 총 3.3km로 조성

한 산책로를 말한다. 아름다운 일이다.

 

▲ 그 전에는 천은사로 들어오는 입구에 매표소가 있어서 천은사 탐방객과 노고단 등산객에게도 "문화유산지구 관람료"를

받았었는데, 이제는 모두 폐지되어 무료 입장이다. 이 곳 문화재 관람료를 가지고 대중과 마찰이 생긴 내용의 소재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서 다뤄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하는 곳이다.

 

▲ 천은사 산문 바깥 쪽에는 방장산 천은사로 되어 있고.. 여기서 부터는 상생의 길중에 세번째 구간인 "누림길" 이다.

 

예로부터 지리산은 방장산으로도 불렸다. '방장'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1장(丈, 3.3m) 크기의 정사각형 방이란 뜻으로

덕이 높은 승려의 처소나 큰 수행 도량의 최고 어른을 이르기도 한다. 천은사 산문의 앞·뒷면의 편액은 호남 서예가

학정 이돈흥(1947~2020) 선생의 글씨다. 학정 선생은 송곡 안규동 선생에게 서예를 배웠고, 원교 이광사, 추사 김정희,

송곡 안규동으로 이어지는 호남 서예를 대표하는 21세기 한국 10대 서예가 중 한 분으로 손꼽히고 있다.

 

▲ 산문 안쪽에는 천은사 이름 앞에는항상 따라붙는 수식어 "남방제일선찰"이라 되어 있다.

고려 충렬왕 때 "남방제일선찰"로 지정된 게 그 유래다.

 

▲ 다시. 천은사 일주문을 통과..

 

2022년 12월에 보물로 지정된 구례 천은사일주문은 하동 쌍계사의 일주문과 유사한 모양이며, 그 모습이 화려하여

"아름다운 일주문" 으로 평이 나 있다. 일주문의 문지방이 목재가 아닌 석재로 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찰 중 유일하다.

 

▲ 천은사 부도탑..

 

▲ 천은사 감로천.. 그 옛날의 감로수라 생각하고..한바가지 시원하게 마시고...

버스에 승차하여 화엄사 홍매화를 만나러 간다.

 

▲ 11시 30분에 천은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11시 45분에 화엄사입구 회차장에 도착..

 

▲ 11시 45분 : 화엄사입구 회차장에 도착하니..

아래쪽 주차장까지 태워다 주는 무료셔틀버스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있다.

 

화엄사 일주문인데.. 양쪽으로 담장이 있는게 특이하지만.. 사연이 있다.

편액은 선조의 아들 의창군 광(珖)의 글씨로.. 지리산화엄사는.. "지혜가 뛰어난 산속에 화엄경을 모신 사찰" 이다.

임진왜란 때 주지 설홍스님 등 300여명의 스님이 구례의 길목 석주진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부 전사하였고.. 왜군이 화엄사

전각을 모두 불태웠다. 그래서 일주문에 대문과 담장을 만들어 중생에게는 문을 활짝 열고.. 관리들의 수탈과 왜적의 침략

으로부터 지키기위해 문을 굳게 닫았다.

 

▲ 화엄사 일주문에서 오른쪽의 대문도 성문처럼 굳게 만들어 놓았다..

 

▲ 화엄사 홍매화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상춘객들로 절집 마당이 가득하다.

문화재청은 2024년 1월 24일 대한불교조계종 지리산 대화엄사의 홍매화 1주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이번에 지정된 홍매화는 화엄사 각황전(국보) 옆에 있는홍매화 사진 찍기 대회 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으며..

올해 4회 대회 2월 25일부터 3월 23일까지 홍매화와 들매화 사진 콘테스트가 있다.

수상작 발표는 4월 23일 오전 9시에 화엄사 홈페이지와 BBS불교방송에서 발표하고 시상식은 부처님 오신날에 발표한다..

 

▲ 화엄사 초입의 오른쪽에 분홍에 가까운색의 홍매화가 있다...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그 홍매화가 아니다.

 

이 홍매화는... 분홍에 가까운 색이다.

 

화엄사 3지혜.. 첫번째는 불견이다 : 남의 잘못을 보려 하지 말라.

 

▲ 화엄사 3지혜.. 두번째는 불문이다 : 남의 말에 일희일비 하지 말라.

 

▲ 화엄사 3지혜.. 세번째는 불언이다 : 남을 비방 하지 말라.

 

▲ 화엄사 벽암국일도대선사비... 구례 화엄사 중창의 주역인 벽암대사의 탑비다.

대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했었고..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도 지었다고 한다.

 

▲ 화엄사 금강문..

금강역사와 문수.. 보현동자가 있는 사찰의 대문이다.

 

▲ 좌측의 "밀적금강" 은 금강저를 가지고 부처님을 경호하는 야차신으로.. 항상 입을 닫고 "훔"소리를 낸다고 하여

"훔금강역사"라고도 한다...우측의 "보현동자"는 보현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으로 코끼리를 타고 있으며, 실천과 자비의

상징이다..

 

▲ 좌측의 "문수동자"는 문수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으로 사자를 타고 있으며.. 지혜의 상징이다.

우측의 "나라연금강" 은 천상의 역사로서 그 힘이 코끼리 100만배로 항상 입을 벌리고 "아"소리를 낸다고 하여

"아금강역사" 라고도 한다.

 

▲ 화엄사 중흥비와 영세불망비.

 

▲화엄사 천왕문.

금강문을 지나면 바로 만나는 천왕문은 사천왕상을 모신곳이며 건물의 배치는 약간 비틀어져 조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찰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 사는 신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이 되었다. 구례 화엄사의 사천왕상은

극히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성되었다. 특히 머리장식이 화려하고, 목의 머플러는 거의 현대적 감각으로 꾸며져 있다.

 

▲ 화엄사 사자문. 스님들의 수행처인데 열려있다.

 

▲ 화엄사 법고루와 당간지주.

 

▲ 화엄사 보제루.

 

▲ 구례 화엄사 대웅전(보물 제299호)과 동 오층석탑(보물 제132호).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華嚴宗)을 선양하였던 사찰이다.

 

▲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제133호).

 

▲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부처님은 스스로 깨닫고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므로 "각행원만불"이라하여 "각황(覺皇)" 이라고 한다.

숙종 임금이 "각황" 이라는 이름을 주고.. 형조참판 이진휴의 글씨라고 한다.

 

▲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과 석등(국보 제12호).. 둘다 국보급이다.

 

각황전 앞 석등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의상대사가 조성하였으며, 높이가 6.36m로 우리나라 석등 중에서 가장 크다.

각황전과 조화를 위해 크게 조성했으며,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밝혀 지혜로 이끈 부처님의 다른 모습을 의미한다.  현재는

오염물제거, 파손부재 접합, 복원 등 작업을 위해 해체하여 보존처리 중으로 2025년 6월 이후에나 볼수 있다고 한다.

 

▲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각황전은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으로 단청은 없지만,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며, 외부는 중층구조이나, 내부는 위 아래가 트인

통층 구조다. 법주사 대웅보전.. 마곡사 대웅보전.. 무량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불전중의 하나다.

각황전이 있기전 통일신라 때는 4.6m나되는 석가모니를 모시는 3층의 장육전이 있었고, 사방벽에 화엄석경을 둘러 깨달음

의 세계가 장엄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숙종 때 계파대사가 4년에 걸쳐 중층건물로 재건하였다.

 

▲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불단.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다보불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적보살,

관세음보살이 모셔저 있다.

 

▲ 구례 화엄사 각황전 내부 불전.

 

▲ 적멸보궁 가는길.. 각황전 왼쪽으로 올라간다.

 

▲ 108계단을 오르다가 뒤 돌아본 각황전.

 

▲ 108계단에서 올려다본 명품송.

 

▲ 견성전(적멸보궁) 가는길의  4사자상(국보 제35호)과 석등.

 

▲ 구례 화엄사 견성전(적멸보궁).

 

▲ 적멸보궁.

부처님 사리탑을 볼 수 있는 통창이 있고.. 불상은 모셔져 있지 않다.

 

▲ 견성전(적멸보궁) 4사자상(국보 제35호)과 어머니상(가운데).

 

▲ 확대해본  4사자상(국보 제35호)과 어머니상.

4사자삼층석탑은 2층 기단에서 희노애락 표정의 4마리의 사자가 머리 위에 탑을 이고 있고, 탑안에는 합장을 하고있는

어머니상이 조각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연기조사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높이 5.5m의 불사리 공양탑이다.

 

연기조사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효대(孝臺)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풍경이 한폭의 그림이다.

 

▲ 석등..

연기조사가 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탑을 이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차 공양을 하는 모습을 조각한 석등 조각상이다.

 

▲ 다시 108계단을 내려와서..

 

▲ 각황전에서 바라본 대웅전 마당.

신라말 후삼국시기에 화엄종은 해인사 중심의 북악파(왕건)와 화엄사 중심의 남악파(견훤)로 나뉘었는데, 견훤의 패배로

화엄사의 주인이 바뀌면서 신도들은 수행 중심의 각황전이 아닌 예불 중심의 대웅전으로 오게 된다.

각황전과 대웅전이 한 사찰에 두개의 대법당이 공존하는 사찰이 되어.. 이러한 가람 배치를 통해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이다.

 

▲ 드디어..  문화재청이 2024년 1월 24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홍매화를 보려고 왔는데 10%도 안 핀것 같다.

 

홍매화는 조선 숙종 때 계파선사가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하고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다.

화엄매라고도 불리는 이 매화나무는 꽃과 열매가 다른 재래종보다 작지만 꽃향기는 그보다 더 강하다고 한다.

봄이면 아름다운 꽃과 향긋한 향기로 화엄사에서 인기있는 명물이라고 한다.

 

▲ 천연기념물 지정 공식명칭은 "화엄매" 이다..

아쉬움에 먼저 핀 화엄매 하나를 접사로 찍어 보았는데.. 잘 나온것 같다.

 

▲ 각황전을 배경으로..

 

▲ 다음주 17일(일)을 넘어서야 만개할것 같다..

 

▲ 발걸음이 쉽게 떼이지 않는 아쉬움에 만개 했을때의 모습을 다른 블로거님에 사진을 빌려 왔다.

 

▲ 화엄사 원통전..

 

▲ 화엄사 원통전 불단..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이 협시보살 없이 홀로 모셔져 있다.

 

▲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사자탑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조성한 것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감로수를 받들고 있고, 네모난 돌에는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다... 네 마리 사자의 얼굴에는 인간의 희, 노, 애, 락을 표현하고 있다. "4사자 감로탑" 으로도 불리운다.

 

▲ 화엄사 대웅전..

대웅전 편액은 인조의 숙부인 의창군 광(珖)이 썼다.. 원래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모신 법당을 말하는데..

이 곳은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모시므로 "대적광전" 이나 "대광명전" 이라고 썼어야 되는데.. 대웅전이라고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고 한다.

 

▲ 화엄사 대웅전의 목조 비로자나 삼신불 좌상(국보 제336호).

중앙에 법신 비로자나불이 지권인을 하고 계시고, 우측에는 보신 노사나불이 우리나라에서 는 유일하게 보관을 쓰고 손을

펼친 설법인을 하고 계시며, 좌측에는 화신인 석가모니불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계신다. 위 삼신불은 1635년 청헌스님 등

18분의 스님이 조성하였으며, 위계에 맞추어 비로자나불은 3.8m, 노사나불은 3.7m, 석가모니불은 3.5m로 조성하였다.

후불탱화는 18세기 유명한 의겸스님이 참여해 조성하였다.

 

▲ 화엄사 대웅전 불전 내부..

 

▲ 화엄사 영전.

영전에는 의상대사, 자장율사, 도선요공선사, 대각국사 의천, 서산대사 등 역대조사들의 진영을 모셔 놓은 곳이다.

 

▲ 화엄사 영전에서 뒷쪽으로 화엄사의 또 다른 천연기념물인 "들매화"를 보기위해 화엄사 산내 암자인 구층암으로 간다.

 

▲ 화엄사 구층암과 삼층석탑...

 

▲ 화엄사 들매화는 구층암 바로 뒤에 가는길이 이어진다.

 

▲ 화엄사 들매화는 2007년 10월 7일에 천연기념물 제485호로 공식지정 되었다.

 

▲ 화엄사 들매화가 만개하고 연못에 만수가 되면 물에 비치는 반영도 아름다울것 같다.

 

▲ 돌아가는길에 구층암 뒤 툇마루에 기둥이 예사롭지 않다. 죽은 모과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기둥으로 썻다고 한다.

 

▲ 화엄사 삼전.. 화엄사 주지스님의 거소라고 한다.

 

▲ 정면의 각황전과 우측의 화엄사 대웅전을 보며.. 나가는데..

 

▲ 화엄사 대웅전앞 계단에서 스님의 설법을 경청하고 있다.. 단체복인걸 보니.. 탬플스테이 인가보다.

 

▲ 화엄사 화산학림.

 

▲ 화엄사 성보전(박물관)에 잠시 들른다..

 

▲ 화엄사 성보전 마당의 사자상.

돌사자상은 일본 도쿄 영친왕의 신축 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의 사자를 모방하여

일본 조각가가 제작하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화엄사에서 위탁관리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지리산 화엄사 탐방을 마치고 일주문을 나선다.

 

▲ 화엄사 주차장까지 무료로 태워다주는 셔틀버스를 타면 5분이면 가지만.. 줄서기가 귀찮아서 걸어간다.. 약30분 예상..

 

▲ 화엄사 방장교에서 걷기 시작..

 

▲ 화엄석경관을 새로 조성하는 모양이다.

 

▲ 화엄사 부도탑.

 

 

▲ 화엄사 일주문.

안쪽(좌측사진)에는 "해동선종대가람"이라 되어 있고.. 바깥쪽(우측사진)에는 "지리산대화엄사"라 되어 있다.

 

▲ 화엄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14시 00분 : 화엄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산수유축제장으로 가는길이 엄청 밀린다...

 

▲ 15시 03분 : 화엄사 주차장에서 산수유축제장까지 평일같으면 20여분이면 올거리인데 길이 막혀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내려서 걷기로 한다..

 

▲ 차와 상춘객들이 서로 엉켜 완전 북새통이다.

 

▲ 그런 와중에도 사브작사브작 걷다가 보니..

 

▲ 메인 축제행사장이 보인다.

 

▲ 어떤가수인지는 몰라도.. 산수유 같은 노랑치마 저고리가 이쁘다..

 

▲ 전망대가 있어 올라가 본다..

사람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북적대는것 보다는 위에서 휘들러 보는게 상책이다.

 

▲ 지리산 종석대가 올려다 보이는 구례군 산동면의 마을 전체가 온통 노랑의 물결이다.

 

▲ 메인행사장쪽...

 

▲ 지나왔던 분수연못.. 완전 개화는 다음 주중쯤이 절정일것 같다..

 

▲ 칭얼대지 않고 혼자서도 잘 노는 착한 나도 인증샷 해주고...

 

▲ 사랑공원이라는 곳을 찾아서..

 

▲ 사랑공원의 산수유꽃 조형물..

 

▲ 사랑공원 제일 높은곳에 전망대가 있다..

 

▲ 언젠가 산행중에 만복대 아래 상위마을로 내려왔던 케케묵은 추억도 소환해 보고...

 

▲ 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를 이어가던 산행의 추억도..

 

▲ 방호정 입구..

 

▲ 방호정은..

일제강점기에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시로 달래는 시 모임을 위해 지리산 자락에 지은 작은 정자이다. 구례 운조루를

건립한 유이주의 후손 유형업이 1935년 지인들과 뜻을모아 세웠으며 방호산의 이름을 따 방호정이라 하였다.

 

▲ 구산공원에서 계곡의 물을 찾아 내려오는 거북이들을 보며 봄나들이를 마친다...

 

많은 수량의 사진과 긴글 보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년 03월 07일(목).

운길산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산행코스 : 팔당2리마을회관-예봉산-철문봉-활공장-적갑산-운길산-절상봉-수종사-조안면보건지소.

산행시작 : 팔당2리마을회관 10시 12분.

산행종료 : 조안면보건지소 15시 40분.

전체거리 : 약 13.5km.

전체시간 : 05시간 25분.

운동시간 : 05시간 17분.

휴식시간 : 00시간 08분.

 

10 : 12  팔당2리마을회관 출발.

11 : 38  예봉산.

11 : 54  철문봉.

12 : 00  패러글라이당활공장.

12 : 17  적갑산.

12 : 53  새재고개갈림길.

13 : 42  새우젓고개.

14 : 15  운길산.

14 : 34  절상봉.

14 : 48  수종사.

15 : 40  조안면보건지소.

 

▲ 10시 12분 : 남양주시 팔당2리마을회관앞 산행출발.

 

오늘은 장거리 산행이라 대구 성서홈플에서 1시간 당겨진 06시 40분에 출발하여 문경휴게소에 도착하여서는 진눈깨비가

흩날리더니.. 경기도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소강상태를 보이며 구름사이로 간간히 햇살도 파고드는 요상한 날씨를 뚫고

숨가쁘게 달려온 화랑의 애마는 예봉산 들머리인 팔당2리마을회관에서 가쁜숨을 고르며 회원님들을 내려놓는다.

 

▲ 팔당2리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예봉산 하늘은 여전히 못된 시어미처럼 찌프리고 있지만... 비는 오지 않을것 같다.

이곳 남양주의 일기는 종일 흐리고 비 약간(-0.1mm/Hr)... 풍속 2~3m/s.. 0도~8도의 일기에보다.

 

▲ 우람한 예봉산 문패가 마을 동구밖에 덩그라니 앉아 있다..

 

▲ 10시 21분 : 예봉산(2km) 들머리... 계곡으로 직진하면 율리봉길이다.

 

▲ 들머리입구에서 7~80m.. 올라온 첫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 본격적으로 산속으로 스며들게 되고.

 

▲ 4~5분정도 더 진행하면 제멋대로 생긴 너덜길을 잠시 지나게 된다.

 

▲ 잠시 깔딱계단을 치고 오르면...

 

▲ 10시 35분 : 예봉산 지능선에 올라선다..

 

▲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되고... 추울거라는 예보에 보온에 신경써서 두꺼운 겨울옷을 입은 탓도 있지만.. 이곳지역은 물이

많은지역이라 습도가 높아서 벌써부터 등줄기에 땀이 주루룩이다.

 

▲ 잠시 땀을 훔칠 장소를 찾다보니.. 바위조망처가 보인다.

 

▲ 한강 너머로 하남시의 검단산이 눈높이로 다가온다. 검단산은 예봉산 산군을 조망하기에는 가히 환상적인 곳이다.

 

▲ 케언(cairn : 돌무더기)...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의 "케언"은 주로 방향 표시를 하기 위함인데...

한국의 케언은 초자연적인 존재인 자연신(성황당)께 가정의 무사무탈과 복을 비는 기복의 샤머니즘적인 표현이 더 크다..

 

▲ 배경이 파란 하늘색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조금은 아쉽다..

 

▲ 예봉산 명품송..

 

▲ 사진 담아주신 조여사님.. 감사합니다..

 

▲ 한강너머 하남시 뒤쪽으로 63빌딩이 희미하다..

 

▲ 예봉산 들머리인 팔당2리마을회관.

팔당(八堂)이라는 지명은 옛날 이 지역의 아래 위 마을에 8개의 사당이 있었다 하여 유래되었다.

 

▲ 축구공을 머리에 이고 있는 예봉산 기상관측소와 모노레일..

 

▲ 직녀봉과 견우봉은 두봉우리를 합쳐서 예빈산이라 하며. 산너머에는 천주교 묘지가 있고 그아래에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가 있다..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형제가 본가인 여유당에서 예빈산을 넘어 다니던 능선이다.

 

▲ 현재 우리나라의 강우레이더관측소는..

이곳 예봉산 외에도.. 소백산.. 비슬산.. 모후산.. 서대산.. 가리산.. 임진강등.. 총 7개의 관측소가 있다.

 

▲ 개방 되어 있어서 전망대로 가본다.

 

▲ 예봉산에서 내려다 보는 양수리 두물머리 풍경도 멋지다.

 

▲ 당겨본 양수리 두물머리와 남한강..

남한강은.. 강원도 태백시 금대산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북동부와 경기도 남동부를 흘러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든다.

 

▲ 북한강은..

북한의 강원도에 있는 금강군 신읍리 단발령에서 발원하여 강원특별자치도와 경기도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든다.

 

▲ 예봉산 매점.. 겨울이라 휴업중인가 보다.

 

▲ 예봉산 옛 정상석..

 

11시 38분 : 예봉산 인증.

예봉산(禮峰山)은 경기도 남양주시의 와부읍 팔당리와 조안리..진중리에 걸쳐 위치한 산이며, 한북정맥 운악산에서 천마산

을 거쳐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에 위치하는 산이다. "산을 위해 제사 지낸다" 하여 예봉산으로 이름 붙여

졌다. 마을 사람들은 "사랑산"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신령을 모시는 산이라 해서 "영산"이라고도 불린다.

 

▲ 서울시로 흘러가는 한강..

한강은 한반도를 흐르는 강들중에 가장 넓은 유역을 가지고 있고 고어로는 "아리수"라고도 한다..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합쳐진 한강은 팔당호를 지나 서울시를 거쳐 파주시에 이르러서 임진강과 합류한뒤 김포반도를 돌아 강화만에서 황해로

흘러 들어간다.

 

▲ 예봉산에서 철문봉가는 능선길이 얼음과 눈의 빙판길이다. 예봉산에서 아이젠을 장착한다.

 

▲ 철문봉 아래 억새밭..

 

11시 54분 : 철문봉..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형제가 본가인 여유당에서 집뒤 능선을 따라 여기까지 와서 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하여

철문봉이라 하였다.. 라는 글이 적혀있다.

 

12시 00분 :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보니 12년전 전남 구례 오산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사성암 직전의 활공장이정표를 보고 7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왈....

어따매... 암만 공장을 지을데가 없다캐도 산꼭대기에 활 공장을 짓는다요~~.. 하신다.. ㅋㅋㅋ~..

 

▲ 같이간 회원님들이 공중부양의 자세를 취하길래...

 

▲ 양탄자도.. 빗자루도 아닌.. 스틱을 타고 마법사 여행을... ㅎㅎ~.. 멋집니다.. 일주일전에는 나도 날았었는데..ㅠㅠ..ㅋ~

 

▲ 예봉산 기상 관측소...

 

▲ 적갑산 가는길은 간간히 구름사이로 한줌 햇살과 너무나 착한.. 기분 좋은 능선길이다...

 

▲ 능선을 기준으로 좌측의 응달에는 겨울잠을 자고 있고...

햇살 받은 양달에는 봄꽃을  피우기 위한 물오름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 적갑산 직전 오름..

 

▲ 화랑의 3월 산대장님.. 멋집니다.

 

12시 18분 : 적갑산에 눈발이 날린다...

적갑산은 예봉산과 운길산 종주코스의 중간에 위치하여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옛날에는 절터가 있다고 해서 절골산..

또는 적골산으로 불렸는데 일제 강점기 부터 유래를 무시한 채 적갑산이라 기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적갑산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고.. 새재고개로 향한다.

 

▲ 심심풀이 땅콩처럼 눈발이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적갑산을 내려서먼..

 

▲ 거의 수평이동이나 다름없는 착한길이 이어지다가..

 

12시 50분 : 3.0km의 운길산 갈림길이 나온다..

앞서가는 일행들이 이길로 가지만.. 질러가는길 같아서.. 앱을 확인해보니 지름길이 맞다.

새재고개를 향해서 그냥 직진이다.

 

12시 53분 : 100여미터... 3분가량 진행하니 새재갈림길 능선이다...

 

▲ 여기서도 운길산 3.0km다.. 100m 정도 더 돌아온 셈이다.

 

▲ 사거리 갈림길..

 

천마지맥은 이 한북정맥의 운악산(934.5m)을 지나 수원산(711m)에 오르기 전 56번 국도와 22번 군도가 만나는 명덕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주금산(813.6m), 철마산(709.5m), 천마산(810.2m), 백봉(587m), 갑산(547m),

적갑산(561m), 예봉산(683.2m)을 거쳐 팔당호에 이른다. 천마지맥은 북한강 북쪽의 마지막 물막이 역할을 하며 제일 높은

천마산(810.2m)의 이름을 따 천마지맥이라 부르며 도상거리로 49.4km쯤 된다.

 

▲ 조망이 없는 봉우리는 굳이 올라갈 이유가 없다..

 

▲ 지도상 454m봉으로 짐작되는 지점에 재미있는 표지판이 있다...

봉우리 찍고 갈래? 그냥 갈래?..하고 묻길래.. 올려다 보니 조망이 없는것 같다.. 그냥 갈란다.

 

▲ 이번에는 488m봉인듯한 곳에서 또 묻는다.. 안올라 갈란다.. 하고 지름길로 직행...

 

▲ 암에 걸린 참나무가 안쓰럽다.. 열심히 운동하고 조심하고.. 다치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자..

작금의 대한민국에는 "히포크라테스 정신의 선서"는 사라진지 오래다.. 밥그릇이 먼저인 나라에 살려면 건강이 제일이다.

 

▲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운길산..

 

▲ 고목 두그루가 "나도 한땐 운길산에서 날린 나무야~"라며 춤을 추고 있다.

 

나무

▲ 한동안 착하게만 이어지던 능선이 501m봉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13시 35분 : 501m봉.

 

▲ 헐!~~.. 501봉에서 운길산을 보니.. 끝간데 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 내려간 만큼 올라가야 되는게 산이다.. 많이 내려 가지 않기를 바라며 아래로..

 

13시 42분 : 안부 도착... 생각보다 많이 내려가진 않았다..

 

▲ 이제부터 운길산 오름의 시작이다.

 

▲ 오름길에 지나온 예봉산이 아득하다... 흐려서 가시거리가 더 멀어 보인다.

 

▲ 운길산이 드디어 130m대로 가까워 졌다.

 

▲ 이런 협곡도 지나가고..

 

▲ 해남의 두륜산 가련봉 암벽길처럼.. 쇠고리발판을 조심조심..

 

▲ 운길산 전망데크..

 

▲ 운길산 전망데크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산과 골짜기를 가로질러 흐르던 두 강이 만나는 장관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광이 아니다..

 

14시 16분 : 운길산..

운길산(610m)은 서울에서 동쪽으로 40km,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양수리에서 서북쪽으로 4km 거리에 솟아 있는

산이다. 1890년(고종 27)에 지은 《수종사중수기》에는 운길로 나오고, 그보다 오래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곡산이라고

적혀 있다.

 

▲ 지나온 예봉산 능선..

 

▲ 수종사 방향으로 가다가 능선을 직진하여 절상봉에 올랐다가 수종사로 갈것이다..

 

▲ 절상봉 오름길에 뒤 돌아본 운길산...

 

 14시 34분 : 절상봉..

 

▲ 수종사 하산길에 선답자가 매달아 놓은 시그널..

 

▲ 드디어 수종사 지붕이 보이는 곳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간다..

 

▲ 수종사 가는길에 고목의 용트림이 걸작이다..

 

▲ 14시 46분 : 수종사 입구의 은행나무..

세조가 금강산구경을 마치고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길이었다.

양수리까지 오니 밤이 이슥해 쉬어 가는데 운길산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신하가 알아보니, 천년고찰 터 암굴 속에

십팔 나한상이 앉아 있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이라 했다.

세조는 이곳에 절을 복원해 수종사라 부르고 이 은행나무(500년)를 하사했다고 한다.

 

수종사와 서거정(徐居正,1420~1488)..

서거정은 수종사에 올라 “동방 사찰 가운데 제일의 경치”라 격찬 하였다. 수종사를 중창한 세조가 매우 아끼던 신하였던

당대 최고의 문장가요 시인이다. 그는 45년간의 공직생활 가운데 대제학을 23년간 지냈다. <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

<동문선>,<경국대전>등 조선을 대표하는 저술들의 편찬을 주도했고, <동인시화>,<역대연표> 등의 개인 저술과 시문집

<사가집>을 남겼다. 그가 쓴 시문(詩文)은 무려 1만여 편에 이른다는데 전하는 것이 6,000여 편이다.

 

▲ 수종사 경학원..

 

▲ 14시 48분 : 수종사 대웅보전..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439년(세종 21) 세워진 정혜옹주(貞惠翁主)의 부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459년(세조 5)에는 왕명으로 크게 중창되었다.

세조가 금강산을 구경하고 수로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던 길에 왕은 이수두(현재의 양수리)에서 1박을 하였는데, 한밤중에

종소리가 들려오므로 날이 밝자 산으로 올라갔다. 한 암혈(巖穴) 속에서 16나한(羅漢)을 발견한 왕은 굴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을 울려 마치 종소리처럼 들려온 것임을 알고, 여기에 절을 짓게 하고 수종사라 하였다. 이 때 5층의 돌계단을

쌓아 터를 닦고 절을 지어 16나한을 봉안하는 한편, 5층 석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그 뒤 퇴락한 절을 1890년(고종 27)에 혜일(慧一)이 고종에게 8,000냥을 하사받아 중창하였다.

다음해 다시 4,000냥과 금백홍사(金帛紅絲: 황금과 비단 및 홍실 등의 재물)를 시주받아 사존불(四尊佛)을 개금(改金)

하였는데, 이 때 방광(放光)이 있었다고 한다. 1939년에 태욱(泰旭)이 중수하고, 6·25전쟁 때 불타버린 뒤 1974년 주지

장혜광(張慧光)이 대웅보전(大雄寶殿) 등을 복원하였다. 1981년에 대응이 산신각. 종각 등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왼쪽부터 수종사 사리탑(보물 제2013호), 남양주 수종사 삼층석탑(보물 미지정)..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 1808호).. 가운데 삼층석탑은 연원이 불분명하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 1808호)..

팔각오층석탑에서는 금동석가좌상 등 불상 13개구가 발견됐다.. 수종사는 조선 세조5년 (1459)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석탑은 원래 사찰의 동쪽 능선에 있었으나 후대에 대웅전 옆으로 옮겼다. 1957년 해체 수리 중에 1층 탑신과 옥개석

등에서 19구의 불상과 1970년 이전 도중에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각각 발견되었는데 함께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 성종 23년(1493)에 건립되었고 인조 6년(1628)에 중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으로 건립연대가 확실하고 비교적 작은 규모임에도 안정적인 비율과 지대석에서

상륜부까지 섬세한 조각으로 인해 역사적, 학술적 가치는 물론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수종사 삼층석탑(보물 미지정)..

 

수종사 사리탑(보물 제2013호)..

수종사 사리탑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딸 정혜옹주를 추모하고자 제작한 승탑이다.

사리탑은 부처나 고승의 사리를 모셔 두는 조형물로 승탑 또는 부도라고도 한다. 금성대군 부부의 시주(施主)로 세워졌다.

건립시기가 분명하고 탑의 각 부분에 새겨진 문양이 우수하여 조선 전기의 사리탑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승탑을 만들어 옹주를 추모한 것은 당시 조선 왕실의 불교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그 가치가 높다.

 

조선후기 문인 가운데 수종사와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수종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조안면 능내리에는 정약용의 묘와 생가 여유당이 있다. 이곳에서 수종사까지는 약7.6km거리다.

다산은 14세에 수종사를 유람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의 여러 이름난 사찰을 방문하였다. 동림사..봉은사..천정암..천진암

등에서 다산은 청정한 삶을 견지하였고, 세속의 명리와 부귀공명을 멀리 하였으며, 고단한 심신을 위로 받았다.

정약용은 유난히 수종사를 좋아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아스라이 보이는 저 수종사에는

뜬 아지랑이에 기와 고랑이 분간되네

호남에는 사백 군데의 사찰이 있지만

끝내 이 높은 누각보다는 못하리!~"라는 시에는 수종사에 대한 그의 애정이 담겨있다.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수종사와 전라도 사찰을 비교했는데, 호남의 4백 곳 사찰이 수종사의

높은 누각만 못하다고 평하고 있는 것이다.

 

수종사에서 바라본 양수리 두물머리.

 

한음 이덕형(1561~1613) 선생은 산수가 빼어난 운길산을 사랑하시어 바쁜 중앙정치의 와중에도 여가를 내어 사제촌에서

수종사로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자주 걸으셨다. 수종사의 주지가 되어 사제촌(莎提村)의 한음 선생을 인사차 찾아온

덕인(德人) 스님에게 준 시에서 선생과 스님과 사제촌을 둘러싼 겨울 풍광이 그대로 드러난다.

 

운길산 스님이 사립문을 두드리네..

앞개울 얼어붙고 온 산은 백설인데

만 첩 청산에 쌍련대(雙練帶) 매었네

늘그막의 한가로움 누려봄 즉 하련만~~..

 

선생은 7년여의 임진왜란을 수습하는데 큰 공훈을 세웠으나 극심한 정쟁에서 오는 국정의 혼미에 몹시 상심하셨다.

봄날이 가는 어느 초여름 선생은 이곳 수종사를 찾아 주지 스님에게 우국충정에서 오는 자신의 괴로운 심경을 드러내는

시를 지어 주셨다.

 

 수종사 선불장.

직역하면.. 부처를 뽑는 장소란 뜻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수양하고 도를 득하면 당연히 부처가 된다는 말일 것이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 주지이며.. 다선(茶仙)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서울에 올라오면 수정사에 머물면서 마음의 스승인

정약용과 친구인 추사 김정희와 함께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신 장소로서, 차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으며,

수종사에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도 이름이 높다.

또한.. 초의선사는 다산의 아들인 유산 정학연과도 교우하며 강가에 조각배를 띄우고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예봉산에서 운길산 절상봉을 돌아서 찾아온 수종사에서.. 선현들의 흔적을 둘러보고 산문을 나선다.

 

 수종사 해탈문.

 

수종사 해탈의 문을 나와서 사바세계로...

 

수종사에서 운길산으로 직등하는 길이다..

 

 수종사 불이문(不二門)..

불이(不二)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세속과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며, 선악(善惡), 유무(有無), 깨끗함과 더러움..

등등 상대적 개념에 대한 모든 대상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다. 즉 여기부터는 불가의 세상이 아닌 사바세계다..

 

 수종사 미륵불..

 

수종사 일주문...

현판의 표기를 중국식의 우측에서 좌로 쓴 글씨가 아니고 한국식으로 좌에서 우로 표기하였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수종사 일주문을 나서니... 구름사이로 파란하늘이 보인다..

 

내려갈수록 날씨는 깨어나는데... 시멘트길은 고행의 길이다.. 무릎보호차원에서 우측의 계곡길로 탈츨한다.

 

계곡길로 들어서면... 아랫마을 진중리 주민들의 산제사를 지내는 상석이 있다.

 

조안리에서 운길산으로 오르는 계곡에 빛바랜 안내도가 있고...

 

계곡 안쪽의 독립가옥을 지나서 마을길을 따라 내려 간다.

 

또 다른 수종사길 탈출로 데크.

 

운길산역 앞길에서 체육공원쪽으로...

 

조안면 체육공원도 지나고.

 

 조안면 복지회관도 지나서 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준비한 우산을 쓰고..

 

15시 40분 : 조안면 보건지소근처에서 하산완료.

 

 13.5km... 근래에 가장 많이 걸었다. 평균속도 2.6km.. 아주 양호한 성적이다.

 

16시 45분 : 20여분간.. 후두둑 제법 내리던 비도 그치고... 두물머리에 왔다.

 

▲ 13년만에 다시 만나는 두물머리 보호수다..

7~80년대 까지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에 화장후 유골을 뿌리는 곳으로 가장 많이 나오던 수령 약450년의 느티나무다.

 

▲ 그때는 볼거리도 많았는데.. 지금은 상가로 많이 변했다.

 

화랑맨들의 단체 인증샷..

일기 고르지 못한 날씨에 "A" "B" "C"코스로 분산 되었음에도 무두가 무사 안착한 화랑맨들의 파이팅이 넘친다..

 

▲ 산행을 함께 하지 못한 짝지에게 촬영권을 선착순으로 배정하여 찰칵.. ㅎㅎ~~.

 

▲ 사진 담아 주신분 감사합니다.

 

▲ 남한강 물줄기..

강원도 태백시 검룡소의 작은샘에서 태어난 어린물이 몸집을 키워서 거대한 대하드라마를 만들었다.

 

▲ 두물머리 투어를 마치고...

 

▲ 가까운 양수리의 고강식당에서..

 

▲ 뜨끈뜨끈한 순대국밥으로 충전100%가 된다.

2024년 03월 03일(일).

벽방산 : 경남 통영시 광도면.

 

산행코스 : 안정사주차장-가섭암-의상암-벽방산-돌탑군-안정재-은봉암-안정사-안정사주차장.

산행시작 : 안정사주차장 10시 22분.

산행종료 : 안정사주차장 14시 13분.

전체거리 : 약 6.03km.

전체시간 : 03시간 50분.

운동시간 : 03시간 36분.

휴식시간 : 00시간 14분.

 

10 : 22  안정사주차장 출발.

10 : 42  가섭암.

11 : 14  의상암.

11 : 53  벽방산.

12 : 05  돌탑군.

13 : 21  안정재.

13 : 33  은봉암.

14 : 04  안정사.

14 : 13  안정사주차장.

 

10시 22분 : 벽방산 안정사주차장 출발.

벽방산(碧芳山)은 통영시 광도면과 고성군 거류면에 걸쳐 있는 산이며.. 높이는 650.3m로 통영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벽발산(碧鉢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석가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벽발(碧鉢:바리때)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 표지석에는 벽방산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의상암과 안정사의 안내판에는

모두 "벽발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 솔잎부회장님.. 통영의 진산 벽방산에서 멋진 산행 해보자구요..

 

▲ 벽방산 들머리는.. 가섭암으로 가는 임도로 이어진다.

 

▲ 은봉암은 하산길에 들리기로 하고... 가섭암 방향으로..

 

▲ 들머리 입구 오른쪽의 기원제단...

이곳은 전국의 산악회에서 시산제 장소로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 청매화.

꽃말은 "맑은 마음"이다.

 

▲ 먼저 가섭암에 들렀다가 가기로 한다... 등로는 위에서 만나게 된다.

 

▲ 10시 42분 : 가섭암.

가섭암(경남유형문화재 제471호)은 벽방산에서 가장 오래된 암자다.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가섭존자가 벽발(바리때)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처럼 생겼다고 한데서 유래한

산을 이루고 가장 먼저 가섭암을 지었으니.. 이는 신라 문무왕 9년(669년) 봉진화상(원효대사의 제자)이 창건하였다는

기록에서 분명히 전해온다.

 

지금의 당우는.. 임진왜란 중 불탄 것을 인조(1644년) 때 벽봉화상이 중건하였고, 고종 27년(1846년)에 추암화상이 중수

하였으며, 광무 10년(1906년)에 취운화상이 동편에 승방 3칸을 증축하였다. 최근에는 허물어져 폐사가 되다시피 하였다가,

2008년부터 3개년을 통해 혜안스님이 다시 중건, 중수하여 지금은 단아한 모습으로 산을 지키고 있다.

 

또한 가섭암은.. 벽방8경중에 제5경인 가섭모종(迦葉暮鐘)이라 해서..

해 저물때 하산하며 가섭암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빠지는 즐거움이라고 한다.

 

▲ 가섭암 약수..

 

▲ 가섭암에서 의상암을 경유하는 오름길은... 너덜겅으로 거칠어 보이지만.. 등산로정비는 잘되어 있다.

 

▲ 무한불성(無汗不成).. 땀을 흘리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사 어느것 하나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것은 없다.

정상을 밟는 것 또한.. 땀의 댓가로 이루어 지는 것이기에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 솔잎의 고문님들이 회원님들에게 막걸리 한잔의 보시를 하신다.. 보기좋은 모습에 흐뭇해지는 마음이다.

 

▲ 의상암으로 오르는 마지막 임도..

 

▲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솔잎의 에너자이저 당주 산행이사님..

 

▲ 의상암에 들렀다가.. 다시 정상오름길로 갈것이다.

 

▲ "남도제일의 도량"이라 적혀 있는 의상암 입구는..

2010년 4월과.. 2016년 2월에 이어 오늘로 세번째 방문인데.. 어느것 하나 변함없이 그대로다.

참고로...한자로 도장(道場)이라고 쓰여 있지만 불도를 수행하는 사찰의 경내를 가리킬 때는 도량(道場)으로 읽는다.

 

▲ 의상암은.. 신라승 의상이 665년(문무왕 5)에 창건하였다는 설과, 원효가 안정사를 창건한 654년(태종무열왕 1)에

의상이 창건하였다..라는 상이한 연대가 전해지고 있다.

 

▲ 의상암 칠성각.

 

▲ 의상암 산령각...

 

▲ 의상암 뒷길을 따라 올라가면... 벽방8경중에 제 6경에 속하는 의상선대(義湘禪臺)로 가는 길인데 막아 놓았다.

 

▲ 되돌아가는 길에 보니..

의상암 지붕은 여전히 천막을 두르고 있고.. 시주받은 기와가 쌓여 있으나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 요즘 보기드문 알루미늄 솥..

 

▲ 이보시오..낭자.. 지나가는 과객이온데.. 물 한잔 주실수 있소이까?.. ㅎㅎ~

겨울이라 버드나뭇잎이 없어 바가지에 뛰워주지는 않했지만.. 벽방산 9부능선에서 솟는 샘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천년 고찰(古刹) 의상암이라 하는데.. 사찰의 느낌은 고요와 적막만이 수북이 쌓여 있다.

손바닥만한 법당 마루에 켜켜이 쌓여 있는 천 년 두께의 고요를 뒤로 하고 산문을 나와서 벽방산으로 향한다.

 

▲ 의상암에서 다소 가파른 길을 7~8분가량 치고 오르면 벽방산 주능선에 올라선다.

 

▲ 의상봉 가는길... 의상선대(義湘禪臺)를 찾아 보고 싶어나.. 조망이 좋지 않을것 같아서 포기...

 

▲ 벽방산 가는길에 조망바위에 올라본다.

 

▲ 지나온길을 돌아보니 의상봉 너머로 한려수도의 조망이 좋은 곳인데 짙은미세먼지로 가늠조차 어렵다.

 

▲ 안정공단..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끝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 거대한 아나콘다가.. 혀를 날름거리며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것 같다.

 

▲ 벽방산 금송인데.. 많이 시들어 버렸다.

 

▲ 2010년 4월의 금송은 이랬다.

 

▲ 초미세먼지에 같힌 고성의 구절산이 성에낀 유리창으로 들여다 보는것 같다.

 

▲ 매바위.. 천개산에서 벽방산으로 이어지는 종주길이 아련하고 하산길에 들릴 은봉암이다..

 

▲ 조망바위.

벽방8경중에 제4경인 인암망월(印岩望月)에 대한 자료를 보면.. 벽방산 정상 동쪽 능선의 도장처럼 생긴 바위에서 동해에

비춰지는 달빛을 즐기며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풍류의 멋이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이 바위를 말하는게 아닐까?..

 

11시 53분 : 벽방산 정상.. 

벽방산(碧芳山)은 불가에서는 碧鉢山(벽발산)으로 부른다.

가섭존자가 벽발(碧鉢,발우,바리떼)을 받쳐들고 있는 모습을 닮아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명산에는 대찰이 있다'는 옛말처럼 벽방산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 안정사와 암자인 가섭암, 의상암,

은봉암, 천개암을 품고 있다. 벽발산은 육덕을 갖춘 골산이며. 거대한 암반이 장엄하게 얽어 놓은 산정이 칼끝같은 남부

바위능선을 거느렸으며 남으로는 천개산, 도덕산, 발암산, 제석봉으로 줄기를 뻗고 있어 가히 통영의 조산(祖山)다운 위용

을 지니고 있다. 또 안정사 부근의 적송림과 맑은 계류는 속세를 떠난 경계이고 봄철 산등성이를 분홍비단으로 휘감는

진달래와 가을을 수놓는 단풍은 이 산이 지닌 또 다른 모습이다.

 

▲ 벽방산 인증샷..

 

12시 05분 : 벽방산 아래 돌탑군..

 

▲ 벽방산의 8경중에 최고의 뷰(view) 포인트는 제2경인 옥지응암(玉池鷹岩)이다.. 저 바위봉 어딘가에 있다.

 

▲ 벽방산 2경.. "선바위"라고도 불리우는 옥지응암(玉池鷹岩)을 찾았다...

 

▲ 저곳까지 가보기는 어려울것 같아서 당겨 보고..

 

▲ 옥지응암(선바위).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에.. 타 블로거님의 사진을 빌려 왔다. 마치 망부석같은.. 정말 명품 바위다.

 

▲ 이곳의 돌탑은 고성읍 정동마을에 사시는 박영배씨가 마이산의 돌탑을 본 후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 고성군의

안녕과 등산객의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혼자서 쌓은 돌탑이라고 한다.

 

▲ 누군가의 정성으로 만든 비탑을 바라보며.. 마음점을 찍는다.

 

12시 43분 : 안정사 방향으로 가는 하산길도 잘 정비해 놓은 누군가에게 감사드린다.

 

▲ 벽방산의 너덜겅도 비슬산 너덜겅에 못지 않은 규모다..

 

12시 50분 : 홍류마을 갈림길에서 벽방산정상 방향으로 올라간다..

 

▲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때문인지.. 옥지응암(玉池鷹岩)쪽으로 자꾸만 눈이 간다.

 

12시 56분 : 벽방산 주능선에서 안정재로 내려 간다..

 

▲ 만리암터..

볼수록 절경이다.. 아래쪽 산죽이 있는곳에 과거에는 만리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휘영청 달 밝은 밤.. 바닷바람에 암자의 풍경소리와 청아한 염불소리에 대나무 바스락 거림도 잦아들고 세파에 찌든 몸..

쉬어가고 싶은 절묘한 위치다..

 

▲ 벽방8경중에 제1경인.. 만리창벽(萬里蒼壁)이다.

벽방산 정상에서 안정재 방향으로 대나무 밭위에 병풍처럼 솟아 있는 절경인 바위절벽이다.

 

▲ 조망만 좋았다면 파란색 바다위에 징검다리를 놓은듯.. 연도..읍도..비사도가 그림이 되었을 것이고..

멀리 사량도를 바라보는것 만으로도 막혔던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풍경으로 남해바다의 아름다움을 확 풀어 놓았지만

하늘이 시샘하여 시계(視界)가 좋지 않아서 아쉽다.

 

▲ 마침.. 뒤따라 내려오는 솔잎의 마스코트 총무님..

 

▲ 솔잎님들이 있는 곳으로..

 

▲ 이곳이 만리암터다.

 

만리창벽(萬里蒼壁)의 포스(force) 가 대단하다..

 

▲ 미세먼지가 조금 사라진것 같아서 안정공단을 다시 조망해 보았으나 여전히 조망은 빵점이다.

 

▲ "공든탑이 무너지랴" 라는 말처럼 벽방산에서 가장 오래된 돌탑인데도 세월의 무게에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여러가지 직업군중에서 조망하나는 만점인 직업이다.

 

13시 21분 : 안정재..

 

안정재에서 벽방산에게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즐거웠다고.. 손을 흔들어 주고...

 

▲ 하산은 안정재에서 임도를 따라 은봉암으로 간다.

 

▲ 13시 33분 : 은봉암..

 

▲ 벽방8경중에 제3경인.. 7m높이의 은봉성석(삼도사 바위)...

은봉암에는 원래 세개의 자연석 바위가 서 있었는데. 첫번째 것이 넘어지면서. 해월선사가 득도하셨고 두번째 것이 넘어

지면서 종열선사가 도를 통하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이 돌들을 성석(聖石)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현재 한개만 남아 새로이 나타날 성인을 기다리고 있다.

 

은봉암의 지붕모서리와 맞닿아 있다.

 

▲ 뒤에서 바라본 은봉성석..

 

▲ 은봉성석이 얼마나 큰지를 알수 있다..

 

▲ 안정사..

 

▲ 해탈교를 건너 안정사로..

 

▲ 안정사 만세루..

조선 숙종 12년(1686)에 처음 지었고 헌종 7년(1841)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안정사 범종루..

안정사 동종은 원래 선조 13년(1580)에 전라남도 담양 추월산 용천사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임진왜란 때 절이 불타서

이곳으로 옮겨 왔디고 한다. 전체 높이 115cm, 입지름 68cm이며 한국 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범종이다.

 

▲ 안정사 대웅전.

안정사는 654년(태종무열왕 1)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하지만 명확한 확인은 어려운 상황으로, 1309년(충선왕 1) 

회월선사가 중건하였고, 1626년(인조 4)과 1733년(영조 9), 1841년(헌종 7), 1880년(고종 17)에 각각 중건되었다. 

안정사는 본당에 이어 명부전, 나한전이 있고, 사물이 잘 갖춰져 있으며, 쾌불(영산회 괘불도)은 보물로 지정되어, 지금도

큰 행사에선 당간지주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 안정사 응향각.

 

▲ 안정사 소나무는 벽방8경중에 제8경으로 한산무송(寒山舞松)이라해서 안정사를 감싸고 있는 소나무(적송)의 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정사의 솔숲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대한제국 고종황제 때인 광무4년, 1900년에 선희궁(조선 영조 후궁 영빈이씨 위패사당)에서 숲을 보호하기 위해 안정사에

금송패(禁松牌)를 내렸다고 한다.

금송패는 소나무 벌목을 단속하고 감시하는 권한을 부여한 조선왕실의 신분증이자, 증명서를 말한다.

 

▲ 안정사 일주문... 벽발산(碧鉢山) 안정사라 되어 있다.

 

▲ 남무아미타불..

 

▲ 안정사 부도탑.

 

▲ 솔잎산악회 시산제 장소.

 

14시 13분 : 안정사 주차장.

 

 

▲ 시산제 진설이 끝나고..

 

▲ 정성을 대례로.. 솔잎산악회 2024년도 무사산행기원제를 올리고..

 

▲ 안정사 주차장의 하산주 자리로 이동한다.

 

▲ 통영의 진산 벽방산에서 부처님의 가피로 2024년 무사산행 시산제행사를 마치고

하산주 한잔에 취하고 봄의 꽃향기에 취해 집으로 가는길이 아름다운 봄날이다.

2024년 03월 01일(금).

천수봉/삼필봉 : 대구시 달서구.

 

산행코스 : 대곡역3번출구-이상화시비-합동청사앞-천수봉-일필봉-담봉(이필봉)-삼필봉-월광수변공원.

산행시작 : 대곡역3번출구 09시 31분.

산행종료 : 대곡역3번출구 14시 28분.

전체거리 : 약 8.3km.

전체시간 : 04시간 57분.

운동시간 : 03시간 52분.

휴식시간 : 01시간 05분.

 

09 : 31  대곡역3번출구 출발.

09 : 34  이상화시비.

09 : 51  합동청사앞.

10 : 21  천수봉.

11 : 07  일필봉.

11 : 54  담봉(이필봉).

13 : 29  삼필봉.

14 : 28  월광수변공원정류장.

 

09시 33분 : 대곡역3번출구를 나와서 합동청사방향으로 가다가.

 

▲ 고산고개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서.

 

▲ 오른쪽의 이상화묘 방향으로 5~60m 정도 진행 하면..

 

▲ 민족시인 이상화님의 시비를 만나고...

 

▲ 바로 이어서 산책로 들머리가 있다..

 

▲ 소나무숲길을 한차례 치고 오르면...

 

▲ 체육시설이 있는 봉우리에서 내림길을 따라 내려 가면...

 

▲ 오른쪽 철책 너머로 이상화묘와 가족묘가 보인다.

 

▲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

 

09시 51분 : 대구지방합동청사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천수봉 들머리다.

 

▲ 천수봉 들머리.

이 길은.. 청룡산 쌍용녹색길의 1번 출발점이기도 하다.

 

▲ 10시 10분 : 주능선에 올라서면 본리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접속된다.

 

▲ 오늘은 반짝 꽃샘추위로 오전 -2도 낮최고 3도에 바람이 5~6m/s로 예보되어 있어.. 다소 쌀쌀한 느낌이지만...

현재까지는 바람도 약하게 불고 걷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다.

 

▲ 10시 21분 : 천수봉 정상.

 

▲ 체육시설이 있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대로 운동을 하고 있다.

 

▲ 야대장님도 철봉에 매달려서 허리한번 늘려 보고...

 

▲ 바로 이웃한 곳에 또다른 정자가 있다... 왕건정이라는 이름표가 달려 있다.

 

▲ 여기는 삼필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 문씨세거지 갈림길 쉼터..

이곳은.. 여러 갈래의 이름들을 가진 길들이 교차하는 갈림길이다.

<대구 둘레길 10구간>.. <대구수목원 둘레길>... <청룡산 쌍용녹색길>.. <달성보 녹색길>등등...

 

▲ 달성보 녹색길은 남평문씨세거지~기내미재~함박산을 넘어 달성보를 찾아가는 길이다..

 

▲ 바로 이어서.. 감은사 갈림길에서 부터는.

 

▲ 삼필봉으로 가는 주능선에 있는 178m봉으로 올라 가는길이 제법 가팔라서...

 

▲ 용문사와 마비정가는길의 길목에 있는 화원읍 본리리 전경을 보며 허리한번 펴고..

 

▲ 쉬엄쉬엄 오르면...

 

▲ 11시 07분 : 일필봉 삼각점이다.

 

▲ 일필봉 조금아래에 누군가의 정성이 가득한 쉼터에서..

 

▲ 홍여사님의 찰떡으로... 그야말로 찰떡 같은 맛이다.. 잘 먹었구요.. 찰떡같은 하루 만들어 보입시다.

 

▲ 쉼터 바로위에는 미분양된 보금자리가 하염없이 입주자를 기다리고...

 

▲ 앞산이 하얀눈을 쓰고 있다.

 

▲ 트랭글이 약수골산이라고 알림을 주는데... 웬일인지 출입금지다.

 

▲ 멀리.. 손에 잡힐듯한 팔공산도 선명하게 보이는 모처럼의 깨끗한 날씨다.

 

▲ 춥다고 두꺼운 옷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 "섬아지매"님을 만났다.. 반갑다..

 

▲ 윗한실못 탈출로를 지나서..

 

▲ 송봉조망점 쪽으로 방향을 살짝 돌린다.

 

▲ 5분만에 나타나는 이정표에는 송봉까지 500m라고 한다.. 왕복하기에는 멀다.. 삼필봉으로 기수를 돌린다.

 

11시 54분 : 담봉(이필봉)아래 최고의 쉼터에서...

 

▲ 비슬산쪽의 산그리매가 풍류를 부른다...

 

세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따사로운 햇빛 받으며... 비록 시인묵객이 아닌 필부지만.. 어찌 한잔 술이 없으랴~

쐬주 한잔 입에 부어 넣고.. 홍여사님의 특제 도토리묵이 목젖을 달래주니.. 어허!~.. 이태백이 부럽지 않다..ㅎㅎ~

1시간 가량의 신선 놀음을 마치고...

 

▲ 13시 10분 : 삼봉쉼터 갈림길...

 

▲ 지역민들의 삼봉(작봉. 시루봉. 송봉)에 대한 사랑이 빼곡히 적혀 있다...

송간 최준숙선생은 대곡동 갈밭 마을에서 태어나 삼필봉에서 이름을 가져온 '삼봉 서숙'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 삼필봉 오름길...

 

▲ 일엽초...

항산화와 면역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뿌리까지 캐어가는 바람에 요즘은 보기가 어렵다.

 

▲ 삼필봉에서 수밭골로 하산이다.

 

▲ 삼필봉 우회길을 따라가다가 청룡산 쌍용녹색길 49번에서 오른쪽으로 하산...

 

▲ 당겨본 앞산...

 

▲ 수밭골...

500여년전 박씨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숲이 울창하여 "숲밭" 이라 부르던것이 현재의 "수밭" 으로 되었다고 한다.

 

▲ 건너온 다리 난간에 차량 반사기가 달려 있다...

 

▲ 내려가는 길이 있다.. 스틱도 씻고.. 먼지도 털고.. 신발 밑창도 닦고..

 

▲ 수령 450여년의 수밭골 마을 지킴이 느티나무.

1982년 10월 30일에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며.. 느티나무에 잎이 동시에 피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정월 대보름에 당제를 지낸후 금줄을 치고 신성시 하는 당산나무다.

 

14시 28분 : 월광수변공원..

2020년 2월 23일.. 바로 이곳에서 "코로나19 극복 프로젝트"로 야등팀이 출발했던 자리다..

만 4년이 지난 오늘에... 그날의 그자리에서 산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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