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우회하여 30여미터 가면 바로 넓은 대로를 벗어나 무명봉 치키 봉으로 오르는 우측길이 있음.....
이곳에서 늦은걸음으로 약 1시간 오르면 치키봉이 나오며...바로 직진하면 한티재로 가는
방향(치키봉)임...
치키봉에서 완전 좌회전하여 동문이나 가산 용바위 방면으로 진행하면됨.....
가산산성[架山山城]
본문
시 대 : 조선 소 재 지 :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규 모 : 지정면적 194,777㎡ 지정사항 : 사적 제216호
조선시대에 축조된 석축 산성.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잇따라 외침을 받은 후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높이 901m의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10여km에 이르는 내·중·외성을 축조하였는데, 현재 4개의 문터와 암문·수구문터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내·중·외성은 시대에 따라 연차적으로 축성되었는데, 내성은 1640년(인조 18)에 관찰사 이명웅(李命雄)의 장계로 축성하기 시작하여 8년간의 공사를 거쳐 1648년에 완성하였다.
이후 숙종 26년(1700)에 외성이 완성되었고, 영조 17년(1741)에 관찰사 정익하(鄭益河)의 장계가 윤허됨에 따라 중성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성이 완성되면서 칠곡도호부가 설치되어 이후 180여년간 읍치를 성 안에 두었으며 군위·의흥·신녕 지방을 관할하게 되었다. 성 안에는 객사와 동헌 그리고 군관청·군기고·보루·포루·장대가 설치되어 행정적이라기보다는 방어를 위한 군사시설이 많은 군사용 성곽이라 할 수 있다.
중요시설은 내성 안에 있었으며, 중성에는 4개 진의 창고가 있어 비축미를 보관하여 유사시에 사용하게 하였다. 성이 완성된 후 대체로 보존이 잘 되어 내려왔으나 1950년 6·25 전쟁 때 최대의 격전지였던 다부동전투에서 성 안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을 섬멸하기 위하여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성벽의 많은 부분이 붕괴되었고, 성 안의 건물도 모두 파괴되었다. 이후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으나 1960년 초의 집중폭우로 남문의 홍예는 반파되고 수구문과 성벽 일부가 유실되었지만, 그 밖의 성벽과 암문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성문 위에 세우는 망루인 문루는 없고 홍예문이 남았는데, 그 양식이 특수하다. 즉 앞쪽으로만 홍예를 틀고 안쪽으로는 판석을 건너지른 미석형으로 되어 있다. 다른 홍예문도 같은 모습이나 외성의 남문만은 보통 홍예문의 법식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