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05일(목).

괴음산. 송등산. 호구산 : 경남 남해군.

 

산행코스 : 평현고개-떡고개-괴음산-송등산-호구산-돗틀바위-앵강고개갈림길-용문사-용문사주차장.

산행시작 : 평현고개  09시 49분.

산행종료 : 용문사주차장  15시 47분.

전체거리 : 약13.6km.

전체시간 : 05시간 57분.

운동시간 : 05시간 38분.

휴식시간 : 00시간 19분.

 

09 : 49  평현고개.

10 : 29  떡고개.

11 : 38  괴음산.

12 : 23  송등산.

13 : 45  호구산.

14 : 19  돗틀바위.

14 : 47  임도.

15 : 23  용문사.

15 : 47  용문사주차장.

 

 07시 47분 : 화랑산악회 송년산행 회장님 인사말...

회장님의 얼굴이 "싱글벙글"이다..첫째.. 년말에 만차 산행이어서 "싱글싱글"이고.. 둘째.. 협력산악회인 산어귀산악회에서

현직 산행대장 5명이 전원참석해서 "벙글벙글"이다.. 참고로 산어귀산악회는 산행대장 5명이 산행을 리딩한다고 한다.

 

 09시 45분 : 경남 남해군 평현고개 도착.

뭐니뭐니해도 산악회의 꽃은.. 회원님들의 만차 참석이다. 웃음꽃 활짝피운 회장님처럼 화랑의 애마도 기분좋게 달려왔다.

 

남해의 최고봉인 망운산의 상봉을 배경으로..

 

사거리에서 봉성마을입구로 건너가면 마을 표시석의 맞은편 절개지에 산행들머리가 있다.

 

09시 49분 : 산행출발..

 

봉성마을표시석과 마주하는..

 

 코너지점이 산행 들머리다...

 

오늘 걷게 되는 이길은 남해지맥길이다...

남해지맥(南海枝脈)은 산경표나 신산경표에서는 바다에 의해서 그 맥이 끊겼다고 제외시켜 버린 남해도의 최북단인 남해

대교 건너편의 노량에서 시작해서 산성산(158m), 구두산(377m), 금음산(480.9m), 대국산(371m), 삼봉산(420m), 망운산

(786m), 관대봉(595m), 괴음산(605m), 송등산(617m), 호구산(622m), 금산(705m), 망산(287m)을 지나 남해도의 최남단인

미조항 밧바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8.7km인 산줄기를 말한다.

 

 10시 16분 : 191봉을 넘어서면...

 

 전형적인 섬산답게 급내림이다... 뒤에서 길을 잘못들었으니 돌아오라고 고래고래 고래를 잡는다.. 하지만...

 

 나는 외금마을에서 오는 임도와 만난다는걸 알기에 그대로 내려오니 역시나 만난다...

 

 떡고개 방향으로...

 

 올라서면 떡고개다... 약200m정도 둘러 온 셈이다.

 

 10시 29분 : 떡고개에서 좌측으로..

 

오늘의 남해 날씨는...

최저 4도에서 영상11도에.. 바람은 6m/s~8m/s이고 체감온도는 8도에 맑음이다... 출발후 현재까지는 잠잠하다.

 

 이정표에 거리 수치가 없다... 거리를 알고 지루하게 가는것 보다.. 차라리 거리를 모르고 가는게 나을때도 있다..

 

 10시 51분 : 임도 끝지점...

 

 발아래 봉성저수지 너머로 전남 여수의 진산 영취산과 제석산이 반갑다며 아는체를 한다...

 

 10시 59분 : 조망바위... 귀비산은 송등산에서 흘러내려서..

 

 대부산까지 이어진다...

 

 다시 괴음산을 향해서...

 

 운지버섯이...마치 솔방울처럼 피었다..

 

남해읍 전경..

 

 11시 38분 : 괴음산 정상..

 

괴음산의 괴는.. '홰나무 괴(槐), 그늘 음(陰)' 자로 '홰나무의 그늘로 이뤄진 산'이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홰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槐'(괴)자는 귀신과 나무를 합쳐서 만든 글자이다. 회화나무가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은 것은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궁궐의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었다.

그리고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회화나무를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홰나무가 많이 있었던 산인지는 알 수가 없다.

 

 괴음산에서 10여분 편안한 길이 이어지다가..

 

 11시 52분 : 다정마을 갈림길에서부터는..

 

 발디딤을 조심해야 하는 거친길이 안부로 내려가다가..

 

다시 오름이 시작되는 곳에서..

 

뒤를 돌아보니 괴음산이 어느새 저만치 물러나 있다.

 

12시 15분 : 송등산 암릉.. 은색의 스테인레스로 안전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드디어 호구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창선도의 대방산 뒤로 경남 사천시의 진산 와룡산이 보인다.

 

12시 23분 : 송등산 도착..

 

송등산(松登山)은.. 북쪽 괴음산에서 남쪽으로 이동면 용소리와 남면 당항리로 이어지는 산줄기 중간에 있는 산으로...

『광여도』에 고동산 선재봉산(顧東山 船材封山)으로 처음 기록되며, 『동여도』에 봉산(封山), 『대동방여전도』에 송봉산

(松封山)이 표기되어 있다. 봉산이란 숙종 이후 전선이나 조운선의 선박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민간의 이용을 금지한 국용

목재 생산처이다. 선박재료로 소나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송봉산이란 명칭도 사용되었다. 이 산등성이에 소나무가 많이

서 있는 것을 어느 도사가 보고.. 산 이름을 송등산(松登山)이라 지어주었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송등산(松登山)에서 마음점을 찍고 가야할 호구산 능선을 가늠해 본다.

 

▲ 당겨 본 호구산..

 

청미래 덩굴..

 

 개미핱기같은 녀석이 엉금엉금 기어 오르고 있다..

 

 용문사 탈출로 1..

이정표의 표기에 이상이 있다.. 염불암이 아니라 백련암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금산과 앵강만.. 그리고 노도..

 

용문사 탈출로 2..

염불암 직전에 좌측으로 올라오는 길이다.

 

용문사 탈출로 3..

염불암을 지나서 호구산을 향해 올라 오다가 좌측으로 올라오는 길이다.

 

13시 22분 : 안내도상의 조망바위..

 

아미타불!~~.. 성불 하이소~..ㅎ..

 

용문사 탈출로 4..

염불암쪽으로 가다가 호구산으로도 갈수가 있다..그러나 길은 좋은데 둘러가게 된다.. 나는 호구산 좌측길로 올라 간다..

 

▲ 소사나무군락지.

 

13시 42분 : 호구산정상에서 걸어 왔던 송등산 길을 뒤돌아 본다..

 

호구산정상에서 북쪽으로는 남해읍이고..

 

북동쪽으로 살짝 돌리면.. 사천시 방면의 창선도와 와룡산이다..

 

남쪽은 설흘산과 응봉산.. 그리고 그 너머로는 전남 여수의 금오도가 길게 누워 있다..

 

설흘산 너머의 윤슬이 유난히 빛나보여서 당겨보았다...

 

그리고.. 호구산의 봉화대..

 

▲ 호구산의 정상석은 조금 아래쪽에 있다..

 

정상석에는 납산이라 되어있다. 

납산의 ‘납’은 원숭이의 옛말이니 원숭이산이고, 원숭이는 한자로 원(猿)이니 원산(猿山)이다.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한자로 쓴 책이므로 '원산(猿山)'이라고 기록했다. 원숭이의 옛말 납(나무 사이를

날라 다니는 동물)을 빌려 ‘납(猿)산’이라고 새겼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1530년 이전에도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옛 선인들은 원숭이의 생김새나 그 존재를 알고 납산이라 했는지..

정작 이 산의 공식 이름은 한자 범호, 언덕구를 써서 호구산(虎丘山)이다.

 

▲ 앵강만과 노도...그림처럼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다.

꾀꼬리 앵(鶯)자에 물 강(江)자를 쓰면서 '비 내리는 밤에 꾀꼬리 울음소리가 나고 꾀꼬리 눈물 같은 빗물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로 흘러내렸다고 전해지며, "꾀꼬리의 눈물바다'로 불리우기도 하였다고 한다.

 

▲ 호구산의 거대한 암릉을 내려서..

 

▲ 돗틀바위를 찾아 간다.

 

 용문사 탈출로 5.. 돗틀바위는 석평쪽으로..

 

 석평마을 갈림길을 지나서 앵강고개 방향으로...

 

 용문사 탈출로 6..

여기에도 용문사탈출로가 있지만.. 이길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 묵은길이다..

 

남해장성(南海長城).

신라 말. 고려 초기, 방어용으로 만든 성곽으로 길이가 총 15㎞에 달한다. 1996년 경남도 기념물 제154호로 지정했다...

 

성은 1000년 세월, 온갖 풍상에 훼손됐지만 남은 성돌은 그것이 역사가 돼 오히려 시냇가 조약돌처럼 깨끗하다.

남해안에 축조된 성의 목적이 모두 그렇듯이 이 성 역시 왜의 진출을 막기 위한 방어용이다..

 

김만중의 유배지.. 앵강만의 노도..

생김새가 마치 배의 노(櫓)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여진 노도는(지역민들은 삿갓을 닮았다고 하여 '삿갓섬'으로 부른다)

벽련마을 서남쪽에 있는 섬으로 방패처럼 파도와 해적을 막아 주던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도서이다. 조선 중기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한글 소설문학의 선구자인 서포 김만중(金萬重.1637〜1692)이 유배 와서 56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살았던

섬이다. 그는 이 섬에서 어머니를 위해 <구운몽>과 정경부인 윤씨를 위해 <사씨남정기>를 지었다.

 

▲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진은 어디서든 담아도 그림이 된다.

 

▲ 아래쪽에 돗틀바위가 보인다.

 

▲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보아야 돗틀바위를 정면으로 만난다..

 

▲ 14시 19분 : 돗틀바위..

돗틀이란 돗자리를 짜는 틀을 말한다. 돗틀바위 위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앵강만의 조망은 너무나 절경이다.

 

▲ 호구산 산행에서 최고의 백미로 꼽는 돗틀바위 기암괴석들과 아름다운 산세를 뒤로 하고.

 

14시 47분 : 앵강고개 갈림길.

 

▲ 축사대장군과 여장군... 요사한 악귀와 잡신을 물리친다는 장승이다.

 

▲ 호구산 용문사 일주문.

 

▲ 호구산 용문사 일주문 편액은 고산당(杲山堂) 혜원대종사(慧元大宗師)의 글씨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과 계율(戒律)을 관장하는 전계대화상을 지낸 쌍계총림 방장이셨던 고산당(杲山堂) 혜원

대종사(慧元大宗師)는 포교에 힘쓰면서도 평생 수행자의 강직함을 지켜 ‘지리산의 무쇠소’로 불렸다

 

한 번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섬이 없었고,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여길 때는 단호히 거부해 붙여진 별칭이었다.

1998년 제29대 총무원장에 선출됐지만 이후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홀연히 자리를 떠나 주변을 놀라게

했다. 평생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선농일치(禪農一致)의 모범이 됐다.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선생의 용문사 시비(詩碑)다...

 

우욕래시천욕저(雨欲來時天欲低)

비가 오려하는지 하늘은 낮게 가라앉았는데

 

초제봉재석문서(招提逢在石門西)

산사는 아득히 석문 서쪽에 자리했는데

 

심사점입영원수(尋師漸入靈源邃)

스님을 찾아 점점 영원깊이 들어가니

 

만학풍연일경미(滿壑風煙一逕迷)

골짜기따라 안개가 가득해 한줄기 길이 아련하네...

 

400여년전 조선시대 때 기생 황진이에 버금가는 기생 매창(梅窓)과 천민 출신의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시인과의 운명

적인 만남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유명하다. 용문사에 <유희경>과 관련한 유물이 보관 되어 있다고 한다.

 

▲ 지장 대도량..

용문사는 우리나라 5대 지장기도도량중의 하나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 연천 심원사.. 완주 송광사.. 서산 개심사.. 그리고 남해 용문사 이며..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육도(六道)의.. 하늘(天). 인간(人間). 아수라(阿修羅).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을 윤회하면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구제해 준다는 구원의 보살이다.

 

▲ 그 옛날 어촌 특유의 상징물이었던 남근석도.. 이제는 시대의 산물로 방치되고 있다..

 

▲ 호구산이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편입되었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세뿔투구꽃"과 "팔색조"등의 멸종위기야생생물 등이 발견된 호구산은 1983년 남해군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일부 지역

(1181k㎡)이 2023년 8월에 국립공원으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 호구산 용문사 천왕각..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02년에 다시 지은 용문사의 관문이다.

 

남해 용문사 천왕문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사천왕 발밑이다. 다른 절의 사천왕은 마귀를 밟고 있는데 용문사 사천왕은

탐관오리와 양반을 밟고 있다. 고통 받고 신음하는 백성들 곁에 있고자 했던 이 사찰의 정신이 표현되어 있다.

 

▲ 비파를 들고 있는 동쪽의 지국천왕..  칼을 들고 있는 남쪽의 증장천왕.. 각 천왕이 밟고 있는 부정한 양반과 관리..

 

▲ 용을 들고 있는 서쪽의 광목천왕..  창을 들고 있는 북쪽의 다문천왕.. 각 천왕이 밟고 있는 부정한 양반과 관리..

 

▲ 천왕각 앞에 낡은 비가 보여서 알아보니.. 전 사과 박공 필종 사시비(前 司果 朴公 弼種 捨施碑)다..

구한말 종육품 무관 사과(司果) 벼슬을 지낸 박필종 공의 시주(施主)비 라는 얘기다.

 

박필종공은 고향 하동으로 낙향해 수천석 전답을 일군 뒤 일제강점기 소작인들에게 수확의 절반을 나눠주고 세금도 모두

내주었으며 진주고 진주여고 북천초등학교 설립 때 거금의 건립비를 대었고 구례 화엄사를 비롯해 남해 용문사에도 시주

를 많이 하여.. 이 일대에서 적선대가로 칭송받은 분이었다고 한다.

 

▲ 봉서루(경남 문화재자료394호).

 

 

▲ 용문사 대웅전..

대한불교조계종 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용문사는 원효대사가 금산에 보광사라는 이름으로 802년(신라 애장왕3)에 창건 하였으나 1661년(조선 현종2) 학진(學進)

이 호구산으로 옮기면서 용연(龍淵) 위에 있다고 해서 용문사라 하였다. 용문사에는 보물1446호 괘불탱화가있고 원효대사

가 직접만든 불상도있다.

 

▲ 용문사에는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제85호), 석불(지방유형문화재 제138호), 천왕각(문화재자료 제150호), 명부전

(문화재자료 제151호), 촌은집책판(경남유형문화재 제172호)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용문사 지장삼존대불.

 

▲ 지장보살상..

 

▲ 해발600m대의 돌산이고 완만하지도 않은 급경사의 계곡인 호구산 용문사에 이렇게 물이 풍부하다는게 신비스럽다.

 

▲ 용문사의 많은 부도탑은 유명한 선사들의 배출이 많았음을 말해준다..

 

▲ 호은당대선사 행적비.

바위에 낙서한 사람들.. 군수도 있고 면장도 있다.. 지금쯤 저 높은 곳에서 아직도 두손들고 벌 서고 있을 것이다..

 

▲ 용문사주차장은.. 해마다 산악회 시산제 시즌이 되면 전국의 산악회버스들의 행렬이 줄을 이어 몰려오는 곳이다..

 

▲ 용소저수지.

 

▲ 15시 47분 : 산행종료..

 

▲ 트랭글을 정리해 보니 전체거리 13.6km에 평균산행속도 2.4km/h... 아주 양호한 성적이다.

 

▲ 17시 08분 : 사천시 삼천포항 OO건어물에서 하산주.

 

▲ 2024년 년말 송년산행.

화랑과 함께 1년간 걸어왔던 길..

무사무탈의 길로 마무리 할수 있어서 행복했구요.. 수고했습니다.

 

끝이란 또 다른 시작이다..

오늘의 마무리는 내일의 시작인 것이다.

 

또다른 시작도 무사무탈이 될것이고..

덕분에 행복한 1년이 되리라 기대 합니다.

2024년 12월 01일(일).

영축산 : 경남 창녕군.

 

산행코스 : 법성사주차장-515봉-고래바위-영축산-신선봉갈림길-구봉사갈림길-변봉갈림길-법성사주차장.

산행시작 : 법성사주차장  09시 19분.

산행종료 : 법성사주차장  13시 48분.

전체거리 : 약5.69km.

전체시간 : 04시간 29분.

운동시간 : 03시간 18분.

휴식시간 : 01시간 11분.

 

09 : 19  법성사주차장.

10 : 30  515봉.

11 : 14  고래바위.

11 : 20  영축산.

12 : 15  신선봉갈림길.

12 : 21  구봉사갈림길.

12 : 24  변봉갈림길.

13 : 48  법성사주차장.

 

 09시 19분 : 법성사주차장 출발.

 

법성사는...

대한불교관음종(大韓佛敎觀音宗)소속이며.. 덕도당 법성보살이 사재를 털어서 1985년에 창건한 절이기에 할머니 보살 절

이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법성사주차장 윗길을 따라 올라 가다가..

 

사리마을길을 우회하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계곡건너에 화왕산으로 이어지는 석대산이

향기나번개팀을 만나고 싶다며 한번 찾아와 달라고 하는것 같다.

 

09시 27분 : 영축산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에서...

 

이정표가 안내하는 오른쪽 숲길로 진행한다. 충효사 구봉사길은 하산길이다.

 

두번째 이정표가 안내하는 숲길로 숨어 들면..

 

촉촉한 낙엽이 융단을 깔아놓은듯한 편안한 숲길로 이어 진다.

 

 3년전에 지나갈때는 쓰러진 고목이 길을 막았었는데.. 톱으로 잘라서 깨끗하게 길을 틔어 놓았다.

 

쭉쭉빵빵의 소나무 숲길에서 너덜길을 만나지만..

 

생각보다 발디딤이 괜찮아서..

 

 다들 잘도 넘어 온다.

 

▲ 그늘이 짙은 소나무숲에 갇혀서 태양 광합성작용을 제대로 못했는지 붉은색은 없이 누렇게 되었다..

 

 소나무숲길에서 잠시 휴식..

오늘의 창녕날씨는 -1도에서 영상15도에 바람은 초당1m/s이다. 춥지는 않고 움직인만큼 몸이 더워지는 기분좋은 온도다.

 

 서서히 고도를 올리면서..

 

조망이 열리며 옥천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구룡산 관룡산이 시원하다.

 

 다시 잠시 편안한 수평길이 이어지다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바위들이 날카롭게 일어서며 본격적인 암릉길이 시작된다.

 

 하산길로 잡은 건너편 능선상의 장군바위에 3년전에는 없었던 데크전망대가 보인다.

 

▲ 창녕읍을 가로막은 석대산 능선을 따라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 옥천저수지 위로 창녕의 진산들이 마루금을 그리며 달려간다..

 

 경주 마석산에서 보았던 삼지창을 닮은 바위가 여기에서도 보인다.

 

10시 30분 : 515봉에서 역광의 억새 솜털.

 

 영축산 대포 1..

 

 이 바위는..

 

 오늘 총무대행을 수행하기위해 함께하지 못한 부회장님이.. 3년전에 요런 사진을 담았던 곳이다.. ㅎㅎ~.

 

▲ 정상으로 갈수록 영축산의 기암들이 점입가경이다.. 아기자기한 기암괴석의 전시장이다..

 

 영축산아래 암벽에 붙어있는 충효사와 구봉사가 제비집처럼 보인다...

경남 창녕 영축산부근에는 절집이 많다. 경남 창녕 지역은 신라와 가야의 국경지역이여서 다툼이 많았을 것으로 사료되며..

옛날 이 지역민들은 전쟁통에 힘들고 어려운 삶을 석가모니 부처님께 의지하며 나라의 안녕과 평온을 기원했을 것이다.

신선봉에 있는 영축산성에서 옛 신라와 가야의 다툼을 엿볼 수 있다.

 

 영축산 대포 2..

 

 영축산의 독수리..

 

 영축산 대포 3..

 

 영축산이 폭우와 바람과 태양과 시간을 제공하며 정성으로 키워내고 있는.. 분재송들이다..

 

 영축산이 기르고 있는고래바위다.. 기암 중 최고의 인기 명소로 인증샷 포토존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 망망대해에서 머리를 들고 튀어 오르는 모습이다...

 

11시 20분 : 좌측은 영축산 구 정상석이고.. 오른쪽은 2000년도에 새로 세운 정상석이다..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 되었다.

불교에서는 영취산(영험할 영'靈' 수리 취'鷲' 뫼山)이라 쓰고 읽기는 "영축산"이라 읽는다.

 

신선봉능선..

 

 11시 29분 : 영축산 정상에 개점한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마음에 점을 찍는다. 잘먹었습니다.

 

착한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자연의 유리통창을 활짝 열어 놓은... 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선경이다.

 

올록볼록한.. 엠보싱(embossing)의 곡선과 그속에 삶의 터전이 있고 민초들이 살아가는 스토리가 스며들어 있다..

 

따뜻한 봄날같은 영축산 최고의 식당에서 산아래에서 올라오는 삶의 소리를 들어며... 산상의 맛점을 하는 솔잎님들..

 

12시 13분 : 영축산에서 최상의 맛점을 하고.. 하산할 시간이다.

 

▲ 멀리 정상의 암릉이 너무나 좋았던 변봉이 이제는 안찾아 올거냐고 묻는다...

산꾼들에게 병봉(屛峰)으로 잘못 알려진 산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에도 병봉으로 나와 있어서.. 나역시

잘못 알고 있었다. 창녕군에 의하면.. 병풍 병(屛)이아니라.. ‘고깔 변(弁)’자인 "변봉"이 맞다고 한다.

 

 영축산 장상에서의 하산길이 까탈스럽다.. 조심조심..

 

 영축산 방구돌의 포스(force)가 예사롭지가 않다.. 이 바위에 마애불이라도 새겨져 있었더라면..

 

신선봉 갈림길에서 변봉방향으로..

 

 아차바위..

지나갈때 머리위의 바위가 금방이라도 떨어질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능선뒤로 숨으려고 하는 변봉에게 눈으로 달래주고..

 

 구봉사.. 충효사 갈림길에서 일부는 내려가고 우리는 풀코스로..

 

 작은 봉우리를 올라서면..

 

 12시 24분 : 변봉갈림길... 여기서 우리는 사리마을로 내려 간다..

 

 최근에 설치한듯한 가이드..

 

야자매트도 깔아놓았다.. 일부사람들은 낭비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보다는 득이 더 많은 토사흐름을 예방 해준다.

 

▲ 영축산에 신령님이 계신다면...

 

▲ 솔잎 삼인방 선녀님들의 재롱(?)잔치에...

 

▲ 최고의 기분이고 흐뭇한 하루였다고 하실것 같다...ㅎㅎ~..

 

▲ 찡그린 바위... 무에 그리도 심통이 났는고?..

 

▲ 청련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국가유산으로는 창녕 청련사 반자, 목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 영산회후불탱 등이 있다.

 

▲ 장군바위.. 올라갈때 당겨보았던 데크전망대가 그대로다.

 

▲ 하산길의 암릉길은 여기서 끝이 나고...

 

13시 25분 : 구봉사..충효사로가는 임도 만남.

 

▲ 구순이 다 되어 가시는 89세의 김선생님.. 꼿꼿하고 팔팔하게 흐트러짐도 없이 잘도 내려 오신다..

평균수명 연장의 시간을 비례한다면.. 내가 90이 되었을 때에는 지금의 김선생님보다 더 팔팔해야 될텐데..ㅎㅎ~~

 

▲ 구봉사.. 충효사에서 내려오는길..

 

▲ 오늘도 홍여사님의 마술배낭에서 간식먹거리의 매직쇼가 벌어진다.

 

▲ 사리마을길 삼거리...

 

▲ 사은암(四隱巖)..

6가야의 하나인 비화가야(非火伽倻)의 부족장 무덤(고인돌)으로 추정 되며... 옛날.. 이 고을에 4명의 선비 박규순. 박한우.

권우갑. 박규하가 들어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하여 바위에 이름이 새겨졌다고 전해진다...

 

▲ 산행 들머리였던 다리를 건너.. 사리마을로..

 

▲ 사리(舍里) 마을의 돌담..

신라때 불교가 융성하였던 계곡으로 절이 있는 동리라 하며 사리(寺里)라 하였던 것이 같은 음(音)인..집 사(舍)를 써서

사리(舍里)가 되었다고 한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쌓은 돌담이 정겹게 느껴진다..

 

13시 48분 : 법성사주차장 산행종료..

 

트랭글을 정리해보니 5.69km에 평균속도1.7km/h다.. 산행에서의 가장적합한 속도는 2.0km/h다.. 바위를 많이 즐겼다..

 

▲ 문암정(聞巖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신초(辛礎) 장군(1568~1637)을 배향하고 있는 곳이다.

신초(辛礎)의 호인 '문암(聞巖)'은 젊어서 전쟁터에서는 물러남이 없이 필사의 각오로 싸웠으며.. 나이가 들어서 바위에

살면서 덕을 쌓고 학문을 연마하는 선비로 살겠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영산이 본관인 장군은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움으로써 현풍 현감에 제수되었고.. 이어 보성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사후 병조판서를 증직 받았다.

 

▲ 법성사의 다보탑은 석공명장인 윤만걸 선생이 1993년에 만든 작품이다.

 

▲ 법성사를 뒤로하고..

 

 

14시 06분 : 하늘향기가든...

 

▲ 소수의 숨은 일꾼이 있어.. 다수의 입이 즐거워진다.

 

▲ 솔잎산악회 회장님의 건배.

 

▲ 송고문님의 건배..

 

▲ 황 선임자문님의 건배..

 

▲ 홍이사님의 건배..

 

▲ 감사보고...

 

▲ 공로상 시상...

 

▲ 개근상 시상후.. 뒷풀이 노래자랑..

윤수일의 터미널을 시원하게 뽑아내고.. 다시 먹고 마시고 즐기고~..

 

▲ 먹을만큼 먹었고.. 마실만큼 마셨고.. 즐길만큼 즐겼으니 동네한바퀴~~..

 

▲ 메리골드..

 

▲ 구룡산.. 겸재 정선의 산수화 한폭이다.

 

16시 45분 : 옥천저수지상류에서 바라 본 석양의 노을이 곱다..

 

지난 1년간 산하를 누비며..

솔잎산악회를 잘 이끌어준 윤회장님 수고하였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2024년 11월 24일(일).

경주국립공원 단석산 : 경북 경주시.

 

산행코스 : 방내리주차장-화랑바위-불선바위-급제바위-배바위-송곳바위-단석산-방내리주차장.

산행시작 : 방내리주차장  09시 26분.

산행종료 : 방내리주차장  15시 23분.

전체거리 : 약8.05km.

전체시간 : 05시간 57분.

운동시간 : 04시간 31분.

휴식시간 : 01시간 26분.

 

09 : 26  방내리주차장.

10 : 10  화랑바위.

10 : 26  불선바위.

10 : 56  급제바위.

11 : 24  배바위.

11 : 49  송곳바위.

12 : 00  척판대.

12 : 26  단석산.

15 : 23  방내리주차장.

 

09시 20분 : 방내리주차장 도착.

단석산은 오늘로써 네번째 오름이지만... 이곳에서 올라가는 방내리코스는 처음이다.. 산세가 보통이 아니다.

 

09시 26분 : 산행 출발..

 

산행들머리는 천주암입구에서 우측으로 열려 있다.

 

 가을이다 했는데.. 어느새 단풍산행도 지나고.. 이제는 겨울로 가는 낙엽산행이다.

 

단석산은 경주국립공원에 속한 산이라.. 이정표는 잘되어 있지만..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낙엽이 가득하여 길을 이어가기가 만만치가 않다.

 

아마도 동네 주민이 만들어 놓은것 같은 쓰레기 투기금지 표시.. 산에 올라올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왜 올라오는지...

 

 10시 10분 : 화랑바위.. 선바위.. 장군바위.. 천주바위.. 기둥바위로도 불리우는 이름이 많기도 많다.

 

바위뒤쪽은 낭떠러지 이지만.. 돌아가면 지나갈수 있는 길이 있다..

 

건천읍 전경..

 

좌측으로는 수리바위가 우람하다.

 

억겁의 시간을 버텨온 화랑바위인데... 조금씩 균열이 가고 바위조각이 떨어지고 있다..

 

꼭대기를 당겨보니.. 조금씩 살점이 떨어지고 있다..

 

 10시 20분 : 불선바위 갈림길..

 

 불선바위쪽으로는 7명중에 4명만 도전이고 3명은 안가고 내가 올린 사진으로 보겠다고 한다..ㅎㅎ~

 

 불선바위..

해서.. 불선바위 사진들은 세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마술을 부린다..

압얍얍!~~ 세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마라..ㅎㅎ

 

사람의 흔적.. 축대가 보인다.

 

 불선바위 동굴이라는데.. 김유신이 난승을 만나 보검을 받은 굴로 추정하는 곳이다.

삼국통일의 공신인 김유신(金庾信)은 595년(진평왕 17년) 충북 진천에서 만노군(萬弩郡)의 태수이던 서현(敍玄) 장군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로왕의 13대손인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17세에 고구려, 백제의 잦은 침략에 삼국 통일

의 큰 뜻을 품고 서라벌 서쪽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 하고 천지신명에게 고구려, 백제,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 만에 한 난승이 나타나 김유신의 인내와 정성을 가상히 여겨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劍)을

주었다고하는 기록이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에 소개되어 있다.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고구려, 백제와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고 하여, 이름이 단석산(斷石山)이 되었다.

 

 불선바위에서 수리바위를 올려다 보며.. 마술을 풀어주고 돌아온다..ㅋㅋ~ 어때요.. 세사람은 불선바위가 안보이지요?..

 

다시 불선바위 갈림길로 돌아와서 단석산으로 오른길이 매우 가파르다.

 

방내리코스는 찾는이가 적어서인지 그 흔한 산악회 시그널도 전무하고 쌓인 낙엽으로 미끄럽다..

 

급한 오름을 쉬어쉬엄 지능선에 올라서니.. 쉬어 가라며 벤치가 놓여있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니.. 전형적인 가을하늘이다.. 천여년전 화랑 김유신이 누비던 그때의 하늘도 오늘과 같았으리라..

 

다음지도에는 "고단석"으로 나오는 바위를 향해...

 

"고단석"에 올라서면.. 두바위 사이로 기는 길이 보여서...

 

고단석의 끝단부가.. 멋진 조망바위다.. 그런데 삼면이 절벽이라서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출입금지다..

 

"고단석"에서부터 또 한번의 급경사 오름을 만난다.

 

구분이 안되는 낙엽길에 안전 가이드가 없다면 난감할것 같다..

 

11시 11분 : 단석산 주능선에 올라선다.. 건천IC쪽으로 가는 장군봉 종주길이 샛길로 분류되어 출입금지가 되었다.

 

 늦가을 낙엽위에서 마시는 커피.. 향기나 팀의 맛이다.

 

 하늘에서 보면 배처럼 생겼다해서 붙여진 배바위로 올라가는길..

 

 배바위의 명품송..

 

 오늘의 포토제닉상 후보작 1..

향기나 팀은 이 멋진 한장의 사진을 담으려고.. 우리는 가파른 낙엽길을 올라 왔다..

 

오늘의 포토제닉상 후보작 2..

 

이쁜님들의 멋진 작품은 한번 더... 올린다.. 내맘대로니까..ㅎ~

 

오늘의 포토제닉상 후보작 3..

 

나~~안.. 알아요..

난 정말 그대 향기나만을 좋아했어..

언제나 우리에게 이런 기쁨을 안겨 주는 그대 향기나여..

제발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빌어요..

나에겐 오직 향기나팀만이 전부이니까...

 

 오늘의 포토제닉상 후보작 4..

우리모두 마주잡은 두손 꼭잡고 건강하게 향기나의 길을 걸어 갑시다..

 

11시 49분 : 단석산의 명물.. 송곳바위(천주암)..

김유신이 난승에게 받은 보검으로 칼 쓰기를 공부하면서 깎아낸 바위중에 남은 부분이라고 전해진다.

 

송곳바위에서 척판대(천탑봉) 가는길..

 

 12시 00분 : 척판대(천탑봉)..

 

척판대(천탑봉)의 전설..

옛날 당나라 어느 곳에 흉칙스러운 요승(妖僧)이 있어 천 사람의 젊은 제자들을 괴롭혔다.

천 명의 제자들을 혹사시켜 재물을 긁어모을 뿐 먹을 것도 주지 않고 잠도 잘 재워주지 않았다. 그 요승은 요술(妖術)을 잘

부리기 때문에 도망갈수도 없었다. 이 때 원효스님은 경주 단석사에 있었다. 당나라에 요승이 있어 많은 젊은이들을 괴롭

히고 있다는 말을 들은 원효스님은 이 바위 더미에 올라서서 서쪽을 향하여 지팡이를 던졌다.

 

지팡이가 비행접시 모양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날아갔다. 스님의 지팡이는 서해를 건너 요승의 절을 덮어 버렸다.

일 천명의 제자들은 이제 지옥 같은 요승의 우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땅에 떨어진 지팡이를 살펴보니 지팡이에는

해동(海東) 원효(元曉)라 새겨져 있었다. 요승의 1천명 제자들은 감격하여 원효스님을 뵈옵기 위해 바다 천리를 건너고

육지천리를 걸어 단석사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원효스님은 열반하시고 이 세상에 아니 계셨다. 1천 제자들은

슬픔을 못이겨 각각 바위더미에 돌탑을 쌓아 원효스님의 명복을 빌고 갔다. 그래서 이 바위는 천탑암이 되었다.

 

 천탑봉에 천탑은 보이지도 않고..

 

오늘의 천탑봉에는 향기나팀의 웃음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진다.

 

 천탑봉에서 단석산 오름길은 진달래 군락지로 봄이면 장관을 이룬다.

 

여기가 천탑암지가 아닐까..

 

 무심한 기왓장 조각들만 뒹군다..

 

12시 24분 : 백석마을 큰골로 가는 갈림길..

백석마을 비지고개에서 큰골을타고 내려가면 방내리주차장으로 가는데.. 몇해전 홍수로 계곡길이 훼손되어 폐쇄중이다.

 

12시 26분 : 단석산..

중국의 삼국지연의에는 유비와 손권이 동오에서 바위를 앞에 놓고 차례로 칼로 내려치는 대목이 나온다.

유비와 손권은 '대업을 이루게 해 달라'는 저마다의 속마음을 숨기고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기세로 단칼에 바위를 두 동강

낸다. 여포나 관우처럼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용장이 아니었던 이들이 바위를 쪼갰다는 걸 쉬이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난세 효웅들의 야심과 결의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는 전국시대 검성(劍聖)으로 명망이 높았던

야규 무네요시(柳生宗嚴)가 검법의 극의를 터득한 뒤 칼로 큰 돌을 잘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12시 26분 : 단석산 원조 정상석...

삼국통일의 주역인 신라 김유신 장군이 신검을 얻어 단칼에 벴다는 설화가 전해져 오는 단석산 정상의 단석(斷石)이다.

산 이름이 원래 월생산인데, 김유신이 신검으로 바위를 자른 뒤 단석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김유신이 고구려와 백제를 치려고 신검을 구해 월생산(月生山)의 석굴

속에 숨어 들어가 검술을 수련했다. 칼로 큰 돌들을 베어서 산더미같이 쌓였는데, 그 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아래에 절을 짓고 이름을 단석사(斷石寺)라 하였다'.. 라고 적고 있다.

 

신라는 일찍부터 국가 제사를 지내던 다섯 산을 정했는데, 이를 ‘신라오악(新羅五岳)’이라 하며 그 안에 중악(中岳)을

두었다. 신라오악은 삼국통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통일 이전 신라오악은 ‘왕경오악’이라 해 서라벌(현 경주) 주위의

산인 동악 토함산(745.8m), 서악 선도산(380.6m), 남악 남산(468m), 북악 소금강산(176.7m), 중악 낭산(99.5m)인데

김유신 열전에는 단석산이 중악으로 나온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이후에는 동악 토함산, 서악 계룡산(846.5m), 남악 지리산(1915.4m), 북악 태백산(1566.7m), 

중악을 팔공산이라 해 그 범위가 넓어졌다. 화랑의 수련장으로 알려진 데다 단석까지 존재하는 경주의 단석산이 삼국통일

이전과 이후의 중악이라고 유추해 보면 김유신 동굴이 있어 가장 가까워 보인다.

 

12시 59분 : 마음점을 찍는 정나눔의 시간..

 

 단석산에서.. 김유신은 보검을 내려치고.. 향기나팀은 술잔을 부딛친다...

 

향기나팀의 산대장님의 뒷모습에서 향기나의 걸어온길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코로나로 벙개팀이 만들어지고.. 한달에 한번 산행을 원칙으로 정례화되면서 언제나 솔선수범이다..

 

 급내림길도 조심하고..

 

 조망이 좋았던 고단석바위도 지나고..

 

출발지였던 방내리 주차장도 보인다.

방내리라는 지명은.. 단석산이 마을을 둘러 아늑한 방안에 들어 온 것 같아서 방내(房內)라 불렀다 하며, 꽃다운 화랑들이

단석산에서 무술 연마를 한 데서 ‘꽃안’을 뜻하는 방내(芳內)라 했다는 설도 있다.

 

 불선바위 갈림길로 내려가는 급내림도 조심하고..

 

 화랑바위 전망대도 통과하고..

 

 들머리에서 하이 파이브(high five)를 하는 산대장님.. 수고했습니다..

 

잠깐 천주암 대웅전을 보고갈려고 했더니.. 일주문이 높다랗게 버티고 섰다.. 불자도 아니고 수행승도 아니니 돌아선다.

 

천주암 일주문에서 바라본 눈뜬바위 능선..

 

 15시 23분 : 방내리주차장 종료.

 

 

옛날 신라 화랑들의 수련장이었던 안전한 방내리주차장에서... 우리는 삼겹살 목넘김 훈련을 한다.

 

푸짐한 먹거리들...

조목조목 열거하지 않아도 향기나님들이 정성의 손길로 바리바리 준비한 싱싱한 먹거리들이다..

 

수고로움 덕분에 목젖이 호강하고 잘 마시고 잘 먹었습니다...

 

행복한 단석산의 하루...

함께 걸어온 향기나팀의 길은.. 앞으로도 쭉쭉쭈~~욱..

2024년 11월 13일(수).

해인사12암자 : 경남 합천군.

 

트레킹코스 : 해인사입구-성보박물관-보현암-금강굴-삼선암-금선암-원당암-

홍제암-용탑선원-해인사-성철스님사리탑-지족암-희랑대-백련암-국일암-약수암.

트레킹시작 : 해인사입구  09시 20분.

트레킹종료 : 해인사입구  14시 28분.

전체거리 : 약11km.

전체시간 : 05시간 08분.

운동시간 : 04시간 24분.

휴식시간 : 00시간 44분.

 

09 : 20  해인사입구.

09 : 31  성보박물관.

09 : 42  보현암.

09 : 46  금강굴.

09 : 57  삼선암.

10 : 01  금선암.

10 : 10  원당암.

10 : 28  홍제암.

10 : 42  용탑선원.

10 : 51  해인사.

11 : 34  성철스님사리탑.

12 : 35  지족암.

12 : 53  희랑대.

13 : 19  백련암.

13 : 55  국일암.

14 : 03  약수암.

14 : 28  해인사입구.

 

09시 20분 : 해인사입구 도착.

대구서부정류장을 08시 01분에 출발하여 약 1시간20분이 소요되었다. 요금은 8900원..

 

지난주인 11월 07일에 경북 성주군 법전리에서 가야산정상을 오르고 토신골을 경유하여 이곳으로 하산하였는데..

해인사에 들리지 못한 아쉬움에 6일만에 다시.. 해인사와 12암자를 탐방하기 위해 역순으로 올라간다.

 

불자가 아닌 내가 사찰을 찾는 이유는...

자연과 잘 어우러진 각종 문화재와 사찰건물의 아름다운 선과 예술적 감각을 느껴보고자 함이 더크다...

계절로는 가을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계절이기에 길을 나선 이유다.

 

해인사 상가를 지나..

 

09시 31분 : 해인사성보박물관..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법보종찰 해인사의 박물관으로, 보물 11건 및

9건의 지방유형문화재를 포함한 약 7천여 점에 달하는 불교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사찰 박물관이다.

 

허덕교..

성보박물관 좌측으로 올라오면 풍광이 멋진 계곡을 건너는 허덕교는.. 예전에 이 자리에 허덕사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아직은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조용한 가을길은... 이제는 단풍길이 아닌 낙엽길이 되어 간다.

 

 오늘은 해인사를 포함한 가까운 주변의 12암자를 찾아보기 위해.. 먼저 보현암과 금강굴을 찾아간다.

 

 향지교(向止橋)를 건너.. 좌측의 보현암과 금강굴을 다녀와서 오른쪽의 삼선암으로 갈것이다.

 

 보현암 가는길..

 

향노교에서 3분정도 올라오니 노랑물감이 한창인 은행나무 뒤쪽으로 보현암이 보인다..

 

09시 42분 : 해인사 보현암은...

1973년 혜춘(慧春)스님(1919~1998)이 비봉산 남쪽자락에 창건하여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구니 수행처인 보현암 법당과 연못..

보현암의 연못은 마음심(心) 모양으로 참선하는 것은 마음을 닦는 것으로 더욱더 수행 정진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함께 길을 나서준 짝지부터 챙겨준다...

 

보현암과 이웃한 금강굴(금강암).. 규모가 작은 사찰을 굴(窟)이라고 표현 한다.

 

금강굴은..

성철스님 세속의 따님인 불필(不必)스님이 보현암에서 수행하던중에.. 비구니 스님들의 수가 많아져서 성철스님이 계시는

백련암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1976년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금강굴의 삼층탑과 백송.. 백련암에도 백송이 있다.

 

금강굴의 법당인.. 금강보전에는 성철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금강굴 석조여래입상.

 

 금강굴에서 바라본 환선대 아래 백련암 방향...

 

비구니 사찰답게 정갈한 금강굴을 뒤로하고..

 

 혜춘스님의 보현암창건 연혁과 시비..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는가.. 오고감이 하나일새.. 청풍은 만리로다.

 

보현암과 금강굴을 둘러보고 향지교로 돌아와서 향지교를 건너지 않고 삼선암 방향으로 향한다.

 

삼선암입구에 예쁘게 만들어 놓은 식수대.. 이쁘니까 물맛도 달다.

 

09시 57분 : 삼선암 입구 현판에는 반야선원(般若禪院)이라 되어 있다.

 

삼선암 약사전아래에서 스님들이 낙엽을 쓸고 있다.

 

해인사 삼선암(三仙庵)은..

1893년(고종 30) 자홍(慈紅)스님께서 창건한 뒤로 1904년에 보찬(普讚)스님과 지종(智宗)스님 두 분이 중건한 바 있으며, 1945년에 정성문(鄭性文)스님이 반야선원(般若禪院)을 개원하였으며 6·25한국전쟁 당시에도 많은 비구니 스님이 이 선방

에서 참선에 들었다고 한다... 삼선암(三仙庵)이라는 이름은 마당에 있는 3개의 바위에 3명의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삼선교를 건너와서 바로 이웃해 있는 금선암으로 간다..

 

 방금 다녀온 삼선암... 가을이 주는 참으로 멋진 그림이다.

 

 금선암은.. 1945년에 하담스님께서 창건한 비구니 수도처다.

 

10시 01분 : 금선암 법당.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지만 대웅전이라 칭하지 않고 법당이라고 쓰여진 이유는 해인사에 큰 법당(대적광전)이 있어서

다른 명칭을 쓸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선암을 지나서 올라오니 단풍이 한창 곱다.

 

카페.. 수다라.

수다라(修多羅)라는 부처님 말씀을 적은 경전으로.. 이 좋은 가을날에 이곳에서 차 한잔 하면서 수다를 떠는것도 좋을듯...

 

 원당암 달마선원으로...

 

불자가 아니어도 무생교를 건너면 속세의 허물이 벗겨질까나...

 

10시 10분 : 원당암 전경..

원당암이 지금은 암자이지만 해인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원래 하나의 절이었다고 한다.

신라 애장왕(哀莊王)은 공주의 난치병이 낫자 부처님의 가호(加護)라 여기고 해인사의 창건을 발원한 순응(順應) 대사를

몸소 크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왕은 서라벌을 떠나 가야산에 임시로 작은 집(원당)을 지어 절(해인사) 공사를 독려하고

정사(政事)를 보기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당암이라는 것이다.

 

창건당시에 이곳의 산 모양이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비봉산 자락에 있다 하여 봉서사라 하였으며 진성여왕때 부터

본격적인 신라왕실의 원당이 되어왔기에 원당암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원당암 미소굴과...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스님의 법문 말씀이다.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가 죽는것이 사는 길이다.. 옳은 마음으로 옳은 일 하면 안 죽어요."

 

▲ 미소굴..

혜암스님의 유품을 진열해둔 곳이다.

 

▲ 조금전에 지나왔던 전망대에 다시 올라가 본다.

 

▲ 고분처럼 생긴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운봉교라는 전망대다. 이곳에서 내려다 본 해인사 풍경이 장관이다.

 

▲ 내려다 본 원당암전경..

원당암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혜암(慧菴) 스님이 머무른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혜암 스님은 해인사의 정신적 지주

라고 할 수 있는 해인총림 방장(''93년~''96년)스님을 지내시고 1999년 4월에 조계종 제10대 종정 스님으로 추대되었다.

 

▲ 보광전 앞의 다층석탑(청석탑)과 석등은 신라시대 유물로 보물 제518호이다.

 

▲ 볼거리와.. 생각꺼리가 많았던 원당암 산문을 나선다.

 

▲ 홍제암으로..

 

10시 28분 : 홍제암(보물 제1300호)은...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수도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에서 따왔다.

광해군 6년(1614)에 혜구대사가 사명대사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

 

▲ 홍제암 보승문.

 

▲ 홍제암 법당.

 

▲ 홍제암 서래당은...

도봉당(道峰堂) 종성(宗性) 대종사가 주석처인 홍제암 서래당에서 입적했다.

 

▲ 홍제암 자운대율사영각(慈雲大律師影閣).

 

▲ 홍제암 사명대사탑석정비.

 

사명대사 석장비와 함께 있는 승탑과 비석들.

 

▲ 사명대사 석장비(보물)..

비석은 1612년에 건립되었다가 1943년에 일본인이 깨트린 것을 1958년에 복원한 것이다.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으로 비문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지었다고 한다.

 

▲ 백용성 선사 승탑과 탑비..

 

▲ 해인사로 가는 외나무다리..

과거에는 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못된 관리들이 말을 타고 사찰경내에 들어오는 걸 저지하기

위하여 만든 다리라고 전해진다..

 

▲ 10시 28분 : 용탑선원.

3.1독립운동의 민족대표 용성스님의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암자라고 한다.

 

▲ 용탑선원 육화당.

육화는 불교의 진리를 깨치고자 수행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경하며 화합하여 깨달음을 성취해야 하는 여섯 가지 도리다.

 

▲ 용탑선원 미타굴 법당.. 납골당을 겸하고 있는 석조 미타굴  법당이 있다.

 

▲ 석조 미타굴 법당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 용탑선원 극락교 입구에..

3.1독립운동 민족대표..  백용성조사 유적도량이라는 글이 기둥에 나란히 새겨져 있다...

 

▲ 토신골탐방지원센터.. 지난주 11월 7일에 가야산정상에서 하산하였던 들머리다.

 

▲ 6일전에 들러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기위해 해인사로..

 

10시 51분 : 해인사.. 가까운 대구에 60여년을 살면서도 한번 와보지 못했던 곳이다.

 

▲ 타이밍이 좋았는지.. 법고행사를 하고 있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부처님의 말씀이 세간에 널리 전하는 것을 북소리가 울려퍼지듯 한다..라고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이 북소리를 듣고 중생이 모든 번뇌를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 해인범종.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 해인사 스님들의 법고 치는 솜씨는 예전부터 최고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큰 울림으로

전해져 오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 마당에는 만(卍)자 형식의 해인도(海印圖)를 크게 그려져 있고 경전을 외우며 이 구역을 한바퀴 따라 돌게 되어 있다.

 

▲ 해인사 구광루.

원래는 기능상 재식시(齋式時) 법요(法要)를 집행하던 곳이었으나.. 사찰의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하층의

경우 홍보를 위한 홍보시설과 서점 등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층은 설법과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 해인호국도량 대적광전으로 올라가는 문...

 

▲ 해인사 대적광전 마당의 석등.

 

▲ 해인사 대적광전 마당의 삼층석탑.

 

▲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木造毘盧舍那三尊佛)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해인사는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이정(利貞) 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10월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된 화엄도량이다.

 

1398년 고려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운되면서 법보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특히 해인사는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화재로 그때마다 다시 지어졌는데,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조선 말에 중건된 것이다.

 

합천 해인사는 양산의 통도사, 순천의 송광사와 더불어 국내 3보(三寶) 사찰 중 법보사찰로 팔만대장경 경판(국보)과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경판전(국보)등 15점의 보물과 2백여 점의 사보 등 수많은 국가유산과

고적이 있다.

 

▲ 해인사 대적광전과 왕이 주로 사용한 우물.. 어수정이다.

 

▲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판전으로 가는 문.

 

▲ 보안당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읽음으로써 두루 관찰하는 눈이 생긴다는 뜻이다.

 

▲ 수다라장은... 부처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다.

 

▲ 법보전.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판'이 소실되자 국난 극복을 염원하며 고려 고종(1237~1248) 때 새롭게 판각한 경판이다.

조성된 경판이 8만여 개에 달하고,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이 수록됐다고 해서 팔만대장경으로 불린다. 제작된 지 80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 국보로 지정됐다.

 

유네스코는 1995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2007

년에는 팔만대장경을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했다.

 

▲ 해인사는 신라때 지어졌고 팔만대장경은 고려때에.. 그리고 대장경을 보관하는 이곳 장경판전은 조선시대 만들어 졌다. 

 

▲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가이드 라인을 따라 마당에서 한바퀴 돌아나간다.

 

▲ 뒤돌아 본  팔만대장경판전 전경.

해인사 천년고찰과 함께 해온 고려팔만대장경은 우리의 희망의 역사다..뿌듯한 자긍심을 안고 돌아선다..

 

▲ 가야산 감로수도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 바로옆 해인사 홍보판에 대장경 실내사진이 있다.. 실물크기 그대로 찰칵..

 

▲ 해인사 독성각앞을 돌아가니..

 

▲ 해인사 학사대(學士臺) 고운 최치원상.

신라의 학자 고운 최치원이 해인사에 머물며 집필하면서 말년을 보낸 장소로 평소 짚고 다니던 전나무 지팡이를 꽂아두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는데..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 큰 나무로 자랐다고 하는 나무였는데.. 그러나 2019년 태풍 "링링" 의

피해로 인해 쓰러진 나무의 밑둥치로 좌대를 만들고 그위에 최치원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 해인사 학사대(學士臺)에서 바라본 남산제일봉 아래가 최치원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홍류동계곡으로 농산정이 있다.

 

▲ 해인사 구광루에서..

 

▲ 해동원종대가람 해탈문을 나선다..

 

▲ 해인사 국사단과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원나무..

국사단은 산을 관리하는 산신과 가람을 수호하는 국사대신을 모신 단으로 보통 사찰의 산신각에 해당하는 전각이다.

 

▲ 해인총림 봉황문.. 안에서부터 구광루.. 해탈문.. 봉황문이 차례로 보인다.

 

▲ 해인사 애장왕 고사목.

신라 40대 애장왕 8년(서기 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애장왕이 이 은덕에 보답

코자 법당과 승료 등 많은 가람을 헌공하여 해인사를 창건하고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진다.

 

이 느티나무는 1200 여년의 긴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해 오다가 1934년 수명을 다해 고사하고 지금은 밑둥치만

남아 해인사의 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해인사 일주문.. 산문 안쪽은 "해동제일도량"이고..

 

▲ 산문을 나가서 사바세계에서 보면 "가야산해인사" 다..

 

▲ 일주문 축대에 불기2975년이라 음각되어 있다. 아마도... 서기 1948년에 일주문을 개축하였던게 아닐까..

 

▲ 일주문앞의 구조물.. 무슨 용도였을까..

 

▲ 일주문 밖 당간지주..

 

▲ 영지..

일주일 전만해도 화려했던 단풍이 다 떨어져 앙상하다.

 

▲ 원경왕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碑)로,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해인사 경내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거북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색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숙종 9년(1104)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 길상탑.

최치원이 지은 탑지(塔誌)에 따르면, 신라 진성왕대에 오랜 내란으로 해인사 주변에서 전몰한 승려와 백성을 위해

문수보살의 가피를 빌고자 해인사 승훈 스님이 895년에 세운 위령탑이라고한다.

 

▲ 해인사 비림(碑林)... 사적비를 비롯 20기의 공적비가 안치되어 있다.

 

11시 34분 : 1993년에 입적하신 성철스님 사리탑..

기존의 사리탑과는 사뭇 다르게 현대적 미적감각으로 조성되었다. 구(球)는 완전한 깨달음과 참된 진리를 상징하고 등을

맞대고 있는 반구(半球)는 활짝핀 연꽃을 표현하고.. 크기가 다른 정사각형 3단은 3학과 수행과정을 의미 한다고..

성철스님의 '자기 공덕은 자기가 쌓아야하고..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해야한다'라는 말씀을 새기며 지족암을 찾아 간다.

 

▲ 지족암으로 가기위해 대장경연구원쪽으로..

 

▲ 도로를 따라 대장경연구원을 지나 올라가면..

 

▲ 해인사 경내인 구내식당쪽이 보이는 곳도 스치듯 지나가고...

 

▲ 오른쪽으로 희랑대로가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 오른쪽 아래로는 극락전 건물 뒤쪽이 보인다.

 

▲ 처음에는 아마도.. 스님들이 암자를 왕래하기위해 걸었던 길이었을 것이다.

 

▲ 전남 강진의 만덕산 자락의 다산초당으로 가기 위해 다산 정약용이 걸었던 "뿌리의 길"이 생각나는 길이다.

 

11시 51분 : 자그마한 봉우리에서 마음에 점을 찍고..

 

▲ 솔향기와 만추의 가을이 내려앉은 낙엽길을 걷다보면..

 

▲ 차도와 만나게 되고...

 

▲ 지족암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와서 희랑대로 갈 것이다..

 

▲ 지족암 가는길...

 

12시 35분 : 지족암 일주문.

 

지족암은 신라말 고려초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로서 원래 이름은 도솔암이었다고 하는데.. 옛모습은 하나도 없다..

 

▲ 지족암 법당인 대몽각전.. 큰꿈에서 깨어난 자 즉.. 부처님 계신 곳이라는 얘기다.

 

▲ 마당을 지나가면..

 

▲ 돌아서 내려오게 된다.

 

▲ 동곡교에서 좌측 계단으로 오르면 희랑대다.

 

▲ 문이 닫혀 있어서.. 약간은 난감했는데 안내문을 보니 멧돼지 때문이니 열고.. 그리고 잘 닫고 들어오란다..

 

▲ 쌓아올린 축대를 보니 상당한 불사였겠다..라는 생각이다..

 

▲ 축대를 이용하여 공간 텃밭도 만들어 꽃도 심어 놓았다..

 

▲ 해남 달마산 도솔암과.. 경기 관악산 연주대처럼 자연 암릉 사이를 쌓아올려 희랑대를 지었다.

 

▲ 희랑대는... 희랑대사가 머물렀다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이자..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준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12시 54분 : 독성각.

신라 말에 희랑(希朗)이 창건하여 수도하였던 곳으로서,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으나 나한 기도처로서 유명하다.

 

해인사 희랑대는.. 청도 사리암, 서울 삼성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나반존자(독성) 기도도량이다.

 

▲ 희랑대 너머로 지족암이 보인다.

기묘한 지형과 빼어난 풍치가 경관을 이루고 있어 흔히 금강산 보덕굴(普德窟)과 비교된다.

천연의 절벽을 뒤로 하고 바위와 바위 사이로 돌을 쌓아 평평한 터를 만들어 그 곳에 삼성전(三聖殿)을 세웠는데, 이 삼성전

에 모셔진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는 그 영험이 불가사의하다고 하여 수많은 기도객이 찾고 있다.

 

▲ 계단을 올라 능선길을 따라가면 백련암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 그 자체다..

 

산이 구름을 탓하지 않고..

물이 굴곡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은.. 자연을 닮은 삶.. 그것이 곧 긍정이라 했다..

 

▲ 길은 뚜렷하고 전선줄을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 산죽길을 올라서면.. 지능선에 닿게되고..

 

▲ 희랑대를 출발하여 13~4분이면...

 

▲ 백련암이 내려다 보이는 암릉이 나온다.

 

▲ 한눈에 들어오는 백련암이 바로 아래다..

 

▲ 잠시 바위를 즐기고 내려가면..

 

▲ 백련암 적광전..

 

▲ 백련암 천태전..

 

13시 19분 : 백련암 고심원..

행사가 있는지 엄청많은 남여 신도들이 북적댄다.

 

▲ 백련암 고심원 앞의 연꽃바위라는데... 우매한 나의 눈에는 두꺼비처럼 보인다.

 

▲ 백련암 고심원은 성철 스님깨서 입적하신 후에 지었으며.. 스님의 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 백련암 고심원에 모셔져 있는 성철스님 좌상..

성철스님은 1980년대 조계종 종정일때 조계종 분규를 비탄하며 백련사에 오신후 열반전까지 이곳 백련사에 머물었다.

1936년 출가해서 해인사에서만 57년 동안 칩거해 온 스님은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가부좌한 채 입적하셨다.

 

▲ 백련암의 백송..

 

▲ 백련암의 자연석으로 부처님을 닮은 불면암(佛面岩)이라는데..

 

▲ 동서남북 아무리 둘러 보아도.. 불자의 눈이 아니어서 그런지.. 내사마 도통 모리거따..

 

▲ 내눈에는 오히려 해학적인.. 안동 하회탈처럼 보인다.

 

▲ 원통전.. 백련암 가람중에 가장 고색창연 하다..

 

▲ 일주문이라는 안내표시가 있어서 정념당 아래로 내려간다.

 

▲ 무슨 행사인지 전국에서 모여든 차량들로 주차장이 초 만원이다.

 

▲ 잎이 붙어있는걸 보니 고사목은 아니고.. 그냥 고목이다...

 

▲ 백련암을 내려서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성철스님의 화두의 의미를... 알듯.. 모를듯..

 

13시 55분 : 국일암 법당.

국일암 법당은 1637년 벽암(碧巖)스님께서 중건하였으며, 조선 인조가 벽암스님에게 국일암대선사의 호를 내렸다고

하여 국일암이라 부르게되었다고 한다. 국일암은 비구스님들의 선원이다..

 

▲ 국일암 와송..

 

▲ 매우 오래 된듯한 해우소..

 

14시 04분 : 약수암..

1904년 흥선대원군의 수양딸인 성주스님이 궁의 지원을 받아 창건하였으며 1927년 도삼스님이 중건하였다.

이곳은 비구니 도량으로 약물이 나온다고하여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 약수정..

 

▲ 처음보는 약수터 모습이다..

 

약수물이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어 한센병 환자들이 이 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 죽림선원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죽림선원은 약수암 창건시 양철로 지붕을 덮은 선원이 개원되었다. 그 후, 허물어진 선원을 일으키기 위해 비구니 스님들이

탁발을 도모하여 개축하였으며, 1972년 법공스님이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선원을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 약수암을 끝으로 12암자 탐방을 마치고..

 

▲ 주차장으로 가는길이 가을스럽게 아름답다.

 

깃대종(flagship species)이란...

유엔환경계획이 만든 개념으로서,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주요 동·식물을 뜻한다.

'깃대'라는 단어는 해당 지역 생태계 회복의 개척자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상징적 표현이다.

가야산의 깃대종에는 "가야산은분취" 와.. "삵" 이 있다.

 

14시 12분 : 치인주차장까지 1.1km..이정표

14시 40분에 대구로 가는 차가 있다.. 약15분이면 갈수있는 거리다..

 

▲ 허덕교에서 바라본 해인사 단풍인데.. 6일만에 이렇게 변했다..

 

▲ 14시 28분 : 해인사입구 정류장..

 

▲ 트랭글을 정리해보니 1사 12암자를 걸어온 거리가 만만찮다.. 운동거리 11km에 평균속도 2.5km/h다.

 

▲ 해인사입구 정류장 지킴이 들냥이..

 

▲ 버스를 기다리는동안 10배줌으로 당겨온 가야산 정상부..

 

비록 불자는 아니지만..

언젠가 걷고 싶었던 명산 대찰인 해인사와 12암자 도보탐방을..

 

보현암 혜춘스님 말씀처럼..

불현듯..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다녀간다..

 

가을의 끝자락..

자연이 내어준 아름다운 길위에서 마무리 할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다..

2024년 11월 07일(목).

가야산국립공원 : 경남 합천군/경북 성주군.

 

산행코스 : 법전리2주차장-마수폭포-법전리개방코스-칠불봉-상왕봉-토신골-성보박물관-해인사주차장.

산행시작 : 법전리2주차장  09시 36분.

산행종료 : 치인리주차장  15시 45분.

전체거리 : 약12.6km.

전체시간 : 06시간 09분.

운동시간 : 05시간 02분.

휴식시간 : 01시간 07분.

 

09 : 36  법전리2공영주차장.

09 : 41  법전리1공영주차장.

09 : 45  법전탐방지원센터.

09 : 49  마수폭포.

10 : 28  법전리개방코스입구.

12 : 53  칠불봉.

13 : 10  상왕봉.

13 : 46  토신골석조마애불.

15 : 34  성보박물관.

15 : 45  치인리주차장.

 

09시 32분 : 경북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2공영주차장 도착..

 

아박산이 올려다 보이는 법전리 마수골 일대는 조선시대의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서 언급한 십승지지(十勝之地)중의

한 곳인 '가야산 만수동'을 가리키는 마을이다. 실제로.. 마수리(법전동) 뒷산에 만수동이란 글씨가 쓰여진 표지석이 있다.

 

가야산을 배경으로 화랑님들의 단체샷..

오늘은 겨울의 문턱인 입동날이다.. 풍수지리 사상에 기반해 전란이나 흉년, 질병을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다는 십승지지

(十勝之地)의 명당마을인 법전리에서 역전의 용사들 답게 화랑님들의 홧팅!~ 소리도 우렁차다..

 

올라야 할 가야산 마루금을 가늠해보고..

 

 09시 36분 : 간결하면서도 실속있는 안내도를 보며 가야산을 향해 출발!~..

그런데.. 내용중에 이해가 안가는 옥의 티가 보인다.. 칠불능선과는 거리가 먼 "칠불능선 탐방로입구"라고 되어 있다.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 안내도.

선비산수길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총 11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독용산성에서 성주호 제방까지를 1코스로

‘성주호 둘레길(26.2㎞)’을 만들고.. 2코스는 마수폭포에서 청휘당까지 ‘가야산 에움길(11.3㎞)’을 조성하었다.

 

오늘의 등반코스인 법전리~가야산 개방구간은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인 에움길을 따라가다가 법전리 탐방로입구에서

가야산까지 새로 조성한 개방구간으로 올라갈 것이다..

 

 올가을에 본 단풍중에 제일 고운것 같다..

 

가야산 상왕봉과 칠불봉.

가야산의 최고봉은 칠불봉으로 해발 1433m이지만 가야산 주봉으로서의 지위는 1430m인 상왕봉에게 뺏겼다.

칠불봉은 경북의 성주군에 속하고 상왕봉은 경남 합천에 속한다.. 주봉의 지위 뿐만 아니라 산의 이름까지도 성주 가야산이

아닌 합천 가야산으로 빼앗겼는데.. 가야산에는 가야산보다 더 유명하고 우리나라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해인사가 있고

그 해인사가 합천군에 있으니 가야산은 합천 가야산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가야산은 몰라도 해인사는 다 안다..

가야산 자락에 해인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해인사가 가야산을 품고 있는 것이다.

 

09시 36분 : 법전리1 공영주차장(승용차 전용).

 

 09시 45분 : 법전탐방 지원센터.

 

봉양법전탐방로입구.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 에움길의 시작점이다.

에움길은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가야산 법전탐방지원센터에서 성주군 수륜면 신파리 청휘당까지 11.3km다.

 

마수폭포에 다녀오기로 한다..

 

 09시 49분 : 마수폭포(일명 죽전폭포).

 

다시 봉양법전탐방로입구로 돌아와서...

 

입동날 아침에 매우 추울거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걸음수가 더해짐에 따라 몸이 기분좋게 더워지고.. 산과 숲과 햇살이 보듬어주는 분위기 좋은 가을길이다.

 

지난해 환경부가 국립공원 가야산 내 신규탐방로로 지정.고시한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칠불봉 간 2.8km 구간을 성주군

에서 국립공원 가야산을 종주할 수 있는 길이 52년 만에 열려 명실공히 ‘성주 가야산 시대'가 열렸다.

 

화랑의 히어로(hero)인 산대장님이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산대장은 산악회의 얼굴이요.. 거울이다.. 늘~ 웃음띤 얼굴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09시 49분 : 법전리탐방로 입구..

아래는 또.. 칠불능선탐방로라고 되어있다.. 차라리 "칠불봉탐방로" 라고 하던지.. 성주군은 가야산국립공원의 신규탐방로

인 ‘가야산 법전리~칠불봉’ 간 2.8km의 구간을 2024년 6월 24일부터 개방햐였다.

 

써~억.. 고운 단풍색깔은 아니지만... 지난 여름날의 모진 폭염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그래도 이 만큼의 단풍색을 보여주려고 몸부림을 쳤을 나무들에게 수고했노라고 격려해주고 내년울 기대 한다.

 

단풍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광합성과 관련이 있다. 나무는 봄과 여름 동안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잎 속의 엽록소를 사용한다. 엽록소는 녹색을 띠며.. 이 성분이 햇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잎이 녹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더 이상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엽록소가 분해되기 시작하면서.. 나뭇잎의 초록색이 점차 사라진다.

엽록소가 사라진 후에는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이라는 다른 색소가 나타나게 되고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등의

아름다운 단풍이 만들어 진다.

 

탐방로 안내도를 보니 법전리개방구간을 3분의 1정도 올라 왔고.. 지금부터 난이도가 가팔라진단다.

 

 개방된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날것 그대로의 원시림이다..

 

아직도 아물어지지 않은 상처..

 

 11시 21분 : 처음으로 조망이 터지는 바위전망대..

 

 칠불봉에서 동성봉으로 이어지는 동장대능선..

 

 경북 성주군 방향...

 

 전망바위를 지나서부터는 오름길이 더욱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조여사님의 배낭꼬리도 잡고.. 핵폭탄님의 포도로 당보충을 한다.. 잘먹었습니다..

 

 첫 계단..

 

 두번째계단은..

 

 제법 길게 이어진다..

 

 세번째 계단..

 

 네번째 계단에서는 뒤를 돌아보는 핑계로 숨을 고른다.

 

노각나무.. 지대가 높고 척박한 곳인데도 이렇게 굵게 자랐다.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학명에 ‘koreana’라는 지역 이름이 들어간 순수 토종나무인 노각나무 이름의 유래로는 사슴뿔처럼

보드랍고 황금빛을 가진 아름다운 수피라는 뜻에서 녹각(鹿角)나무라고 하다가 발음이 쉬운 "노각나무"로 되었다.

 

고도가 높아지니 고드름이 꽁꽁이다..

끝날것 같던 계단은 올라서면 또 나타나고... 그렇게 지겹게 나타나던 계단을 서너개 지나고 나서..

 

 여덟번째 철계단을... 마지막으로 올라서니...

 

 경북 김천방면으로 시야가 터진다..

 

 서릿발..

 

 12시 40분 : 주능선에 다 올라 온것 같아서..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민생고 해결..

 

길가에 풍혈이 보여서 안쪽을 들여다 보니 대략6~7m의 깊이다.

 

 12시 46분 : 드디어 능선에 도착..

칠불봉100m...상왕봉 200m.. 먼저 칠불봉에 다녀 온다.

법전리 개방코스는 한마디로 두번 다시 오르고 싶은 생각은... 1도없는 코스다.. ㅠㅠ~.

 

경북과 경남의 경계지점에서 바라 본.. 상왕봉...

 

 대구방향..

 

가야산의 이름은 가야산(伽倻山) 외에도 우두산(牛頭山). 설산(雪山). 상왕산(象王山). 중향산(衆香山). 기달산(怾怛山)등

여섯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監)"권30 택리지에 가야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높고 수려함과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영험함을 말하여. 명산으로 불렸다 한다.

 

 12시 53분 : 칠불봉 도착..

칠불봉(七佛峯)은 가야국(伽倻國)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아들 거등(居登)은 왕위를 계승하여. 김씨(金氏)의 시조(始祖가 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의 성씨(姓氏)를 따라서

허씨(許氏)의 시조가 되었고. 나머지 7명의 왕자는 허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후 도를 깨달아 생불(生佛)이 되었다. 하며 그 밑에 칠불암(七佛庵) 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되어 이름 지어졌다.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열반에 들기 위해 칠불봉에서 수행을 했는데 오르기가 너무 험해서.. 어머니 허황후가 왔다가

되돌아갔다는 안타까운 옛이야기가 전해지는 봉우리다.

 

 동성봉의 동장대 능선..

 

서장대(상아덤)와 만물상 능선..

가야산은 여신인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하가 처음 만난 곳이다.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르는 신이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여신의 바위란 뜻의 상아덤에 내려앉았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기록은 최치원의 석순웅전'과 '동국여지승람'에 전해 오고 있다.

 

가야국 수로왕에게는 아들이 열 명 있었는데 1인은 태자가 되고  2인은 허씨를 내리고 일곱 사람은 인간 세상을 끊는 데

뜻을 두어, 보옥선인을 따라 가락산으로부터 운상원에 들어가 도를 배워 부처가 되었는데 그들을 일곱명의 부처 칠불

이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가야산에 존재하는 명칭인 상아덤 그리고 칠불봉이 생겨난 것이란다.

 

▲ 경북 성주군의 칠불봉에서.. 경남 합천군의 상왕봉으로..

 

▲ 난공불락의 철옹성처럼 우뚝 솟아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상왕봉..

 

▲ 상왕봉 오름계단.. 작년에는 고무발판이었는데 새로 바뀌었다..

 

13시 11분 : 상왕봉 정상석에는 가야산 우두봉이라 되어 있다.

가야산국립공원은 1972년 10월 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됐으며 전체면적은 7만 6256㎢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가 서로

잇대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산의 우뚝 솟은 상왕봉은 해발 1430m의 늠름한 위용을 자랑하며 가야산 전체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가야산은 오래전부터 해동(海東)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난 곳으로, 현재 우리나라

10대 명산으로 꼽혀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옛 선현들은 "산형은 천하에 절승(絶勝)하고 지덕(地德)은 해동에서 제일"이라고

가야산을 극찬했다. 범상치 않은 기상과 수려한 풍광은 예나 지금이나 훌륭하다. 가야산에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

으로 '팔만대장경'를 봉안한 해인사가 있으며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 도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경 가운데 가히

으뜸이라 불린다.

 

▲ 봉천대 가는길.

 

상왕봉에서 바라 본 칠불봉.

 

▲ 우두봉의 우비정... 소의 콧구멍에 해당된다고 한다.

자연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다.. 바위뿐인 이곳에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이다.

 

▲ 해인사 하산길..

 

▲ 뒤돌아 본 상왕봉.

 

▲ 가야산 제18경인 봉천대(奉天臺)... 가야산 중턱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 봉천대의 깍아지른 바위절벽이.. 마치.. 인디언 추장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이다.

 

▲ 시절이 하수상 하니... 꽃들도 정신을 못차린다.

 

13시 35분 : 일명.. 만세바위.

 

▲ "만세바위"라고 어느분이 지었는지.. 두손을 번쩍들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다.

 

▲ 봉천대 암릉이 어마무시하다..

 

▲ 가야산 생태계 감시카메라..

 

13시 44분 : 가야산 석조여래입상 가는길. 50m다..

 

▲ 13시 46분 : 가야산 석조여래입상..

 

▲ 마당바위..

 

▲ 유(柔:부더러움)함이 강(强:단단한것)함을 시간으로 이기는 방법이다..

 

▲ 용탑선원 칠불보궁..

용탑선원은 3.1독립운동 민족대표 백용성 조사(1864~1940)의 유덕과 유훈을 기리는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해

1945년 경성선사를 비롯 문도들이 세운 절이다.

 

용성조사의 용(龍)자와 사리탑의 탑(塔)자를 취해서 용탑선원이라 하고 참선정진하는 도량으로 창건하였다.

용성선사 용탑과 비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보물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72권을 소장하고 있다.

칠불보궁전에는 용성스님과  12제자의 초상이 보전되고 있으며  석굴암인 미타굴이 있다.

 

15시 14분 : 토신골탐방로 입구..

 

▲ 하산시간 15시 30분까지 주차장 도착은 무리일것 같아서 해인사 탐방은 통과.

 

▲ 해인사 일주문..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곧.. 있는 그대로의 세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세계이니

바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해인삼매는 또한 오염됨이 없는 청정무구한 우리의 본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우리의 마음이 명경지수의 경지에

이르러 맑고 투명해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한없이 깊고 넓으며 아무런 걸림 없는 바다에 비유되어 거친 파도, 곧 우리들 마음의 번뇌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해인삼매라 하였다.

 

▲ 영지..

가락국 허황후가 가야산 칠불봉으로 출가한 일곱 왕자들을 그리워하여 그림자라도 보게 해달라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했다는 곳이다... 가야산 정상이 이 연못에 비쳤다고 한다.

 

15시 34분 : 해인사성보박물관..

 

15시 45분 : 치인리주차장 산행종료..

 

▲ 트랭글을 정리해 보니..

전체거리 12.6km중에 개방구간 2.8km의 난이도가 높은 철계단구간을 포함해도 평균속도 2.5km/h의 아주 양호한편이다.

 

▲ 거창 오도산 너머로 하루해가 숨어든다...

 

중용(中庸)에..

등고자비(登高自卑).. 행원자이(行遠自邇)라 했다..

높은 곳을 오를 때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먼 곳을 갈 때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가야산은.. 한국의 명산으로..

첫째.. 산신을 상징하는 정견 모주라는 여신의 산이고...

둘째.. 호국불교의 성지로서 상징되는 산이고...

셋째.. 최치원(崔致遠)의 은둔 이후 역대 문인들의 유람과 풍류의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산이다.

 

가야산..

그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가장 낮은 자세인 민초들의 삶이 녹아있는 법전리에서 출발 하였고

그 멀고도 먼 이상과 진리의 세계를 엿보기 위한 천리길을 한걸음부터 시작하였다.

 

시간에 쫏겨 해인사에 들리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지만..

무사무탈에 감사한 하루다.

2024년 10월 27일(일).

용지봉 : 대구시 수성구.

 

산행코스 : 용지역-대덕지-용지봉-애기봉-체육시설-조망바위-법니산-지산동대포항횟집.

산행시작 : 용지역  08시 58분.

산행종료 : 대포항횟집  16시 14분.

전체거리 : 약8.59km.

전체시간 : 07시간 16분(의미없음).

운동시간 : 04시간 18분.

휴식시간 : 02시간 57분.

 

08 : 58  용지역.

09 : 11  대덕지.

13 : 29  용지봉.

14 : 00  애기봉.

14 : 36  체육시설.

15 : 00  조망바위.

15 : 34  법니산.

16 : 14  지산동대포항횟집.

 

 08시 58분 : 3호선 용지역에서 산행출발..

집에서 나올때 까지만 해도 오늘의 대구날씨는 흐리지만 비소식은 없다는 예보였다..

그런데 흐리기는커녕 의외로 용지역의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빛이다..

 

수성구의 복명초등학교 높은 담장위로 한줌의 아침햇살이 머물고 있는 용지봉을 향해서...

 

 09시 07분 : 814시내버스 종점이면서 공영주차장을 가로질러서..

 

대덕지 제방에 가득한 국화향에 취하고..

 

향기나의 미소도 피우고...

 

진밭골입구의 대덕지.. 그런데 수성구청에서는 "가라지"라고 부른다...

 

대덕지 상류를 지나자 말자 급경사로 치오름을 하는 입구에서부터 하늘빛이 이상해 진다..

방구돌을 돌아가는 급경사구간을 마지막으로 치고 오르면..

 

용지봉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지능선 마루금에 올라선다..

 

▲ 잣나무숲길에서는 완전히 습도가 높아지고..

 

 가지버섯..

포자식물이 좋아하는 조건이 되었는지 길가에 온통 가지버섯 군락지를 만난다..

 

 가지버섯 대박에..

 

기분좋은 항기나팀은 현풍아우가 가져온 음양곽주로 즉흥파티가 벌어진다..

음양곽(삼지구엽초)은 염소가 이풀을 먹고 하루에 백번을 교미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풀이다.. 좌우지간 좋다..ㅎㅎ~

 

 그렇게 시작된 한잔이... 음양곽 1병을 비워버리고.. 조고문님의 특제양주까지 나오고.

 

 이렇게 판이 커져 버렸다.. 바쁠것 없는 근교산행이라 느긋하다..

 

다시 길을 이어가는데 가지버섯이 또다시 유혹한다...

용지봉이 내어주는 것을 우리는 향기나원칙에 따라서 합동생산을 하고 공동분배를 한다.

 

12시 20분 : 이번에는 꼬부랑술과..

 

 꼬부랑과자 잔치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느맛과도 비교불가한 산상 커피다.

 

하늘님은 무슨 배알이 그렇게나 틀렸는지.. 잔뜩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방울 두방울 듯기 시작한다..

 

진밭골에서 올라오는 주등로와 만난다.

 

용지봉으로 가는 가을길... 분위기 좋고 조코!~..

 

비는 다행히 는개비수준이라서... 산행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대덕산에 드리운 구름띠..

 

헐티재를 넘어 비슬산으로 이어지는 가창방면의 병풍산 능선..

 

언제나 그렇듯이 용지봉 돌탑이 여전히 반겨준다.

 

13시 29분 : 용지봉(龍池峰).

과거 큰 홍수가 나서 한 마리의 용이 앉을 공간만 남기고 모두 침수되었다. 그때 침수되지 않고 남은 부분이 마치 용의

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철탑이 있는 올라왔던 능선 그 뒤쪽은 대덕산이고... 오른쪽 골짜기끝에는 진밭골이다.

 

수성구 최고의 조망터인 용지정.

 

 당겨 본 청룡산.

 

 향기나의 살림꾼 안방마님들..

 

용지봉은 구름에 잠기고..

 

 꽃향유 군락지..

 

14시 36분 : 체육시설..

 

 청음정(淸音亭).. 맑고 청아한 자연의 소리를 듣는 곳이다.

 

15시 00분 : 조망바위.

 

15시 34분 : 법니산..

 

지산배수지 방면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불교한방병원이 보이는 지점으로.. 산행종료

 

 

하산식의 향기나님들..

 

오늘의 용지봉 산행은..

맑았다가 흐리고 급기야 비까지 내렸지만..

 

다행히 큰비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내어준 선물에 감사하고

하산하여서는 현풍에서 먼길에도 한달음에 달려와준 아우님들 고마우이~

2024년 10월 25일(금).

가야산국립공원 : 경남 합천군.

 

산행코스 : 길상암주차장-보궁-노구승천암-입술바위-오봉산-남산제일봉-돼지골갈림길-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산행시작 : 길상암주차장  09시 24분.

산행종료 : 해인사터미널  15시 15분.

전체거리 : 약6.91km.

전체시간 : 05시간 51분.

운동시간 : 04시간 02분.

휴식시간 : 01시간 48분.

 

09 : 24  길상암주차장.

09 : 35  마야불모전.

09 : 59  보궁.

11 : 13  돌고래바위.

11 : 17  노구승천암.

11 : 50  입술바위.

13 : 15  오봉산.

13 : 56  남산제일봉.

14 : 20  돼지골.

15 : 15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07시 30분 : 서부정류장에서 함께할 동료를 만나고..

 

▲ 해인사로 갈때는 08시 00분에 출발... 올때는 오후 16시 00분차로...

 

▲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까지의 요금은 8900원.. 예매..

 

▲ 서부정류장 2번승차장에서 해인사행 리무진버스탑승.

 

09시 21분 : 해인사 길상암주차장..

한글 길상암은.. 국산표기법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자는 중국식표기법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이다...

"불타미아무나".. 헷갈린다.. 부처님도 한국에서는 한국법을 따르라고 하실텐데..ㅎㅎ.. 나무 아미타불!~~..

 

▲ 오늘의 산행코스는 길상암을 병풍처럼 둘러선 암릉.. 길상암에서는 묘길상봉이라 부르는.. 저곳으로 오를것이다.

 

▲ 길상암 불광보탑.

미얀마 불교협의회의장 종정 우쇼비타 대종사가 모시고 있던 사리를 불기 2538년(서기1994년) 1월 15일 미얀마를 방문한

명진 스님께 9과와 가사발우 일체를 전하고 2539년(1995년) 11월 3일 25과의 사리를 합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

34과를 모신 탑이다.

 

▲ 길상암 입구.

창건 일화를 보면 자운스님이 1969년에 스리랑카 사타티싸 스님으로부터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사리 2과를 모셔왔고 영암

스님과 함께 봉안할 장소를 찾다가 1972년에 이곳에 창건하였고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보궁이 있다.

 

▲ 길상암 오름계단에서 좌측으로 열려있는 길을 따라서 한국에서는 여기 한곳 뿐이라는 불모전에 들린다..

 

▲ 마야불모전.

 

▲ 마야부인상.

아기 석가모니가... 왼손은 땅을.. 오른손가락은 하늘을 가르키며.."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라!~~ 하고.. 이 연사 힘주어 외칩니다!~.. 하는 모습이다..

 

▲ 다시 길상암으로...

 

▲ 길상암과 마주보이는 835봉.. 서장대에서 흘러내린 능선상의 봉우리로 기운이 좋은 곳이라고 한다.

 

▲ 길상암 나한전에서 보궁으로 가는길로 올라서면...

 

▲ 관음전 터.

1999년 8월 2일에 발생한 화재로 복원중이라고 한다.

 

▲ 대각천이라는 샘이 있다... 깨달음을 얻는 샘이라는 뜻인듯 하다..

 

▲ 계단을 올라서면 제일먼저 동종이 반긴다..

 

09시 59분 : 길상암 보궁에는 진신사리와 세분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다.

 

▲ 길상암 보궁 오른쪽계곡에 출입금지라는 표지앞을 지나서..

 

▲ 노구승천암으로 가는 들머리는 길상암 보궁앞을 지나면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 며칠전에 내린 비로 낙엽과 마사토가 쓸려 내려와 길을 덮었지만.. 흔적은 보인다.

 

▲ 안부에 올라서면 엄청난 바위가 길을 막고 섰지만..

 

▲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충분히 오를수 있는 홈통을 오른다.

 

▲ 삼지창바위가 거친모습으로 서있고 천천히 살펴보면 바위틈 사이시이로 내어주는 길을따라 올라선다.

 

▲ 삼지창바위에 올라서면 밑에서 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암봉이다.

 

▲ 암봉을 넘어서..

 

▲ 두번째 암봉 중간 지점에 올라서니 선답자님이 저 슬링밧줄을타고 올라가지 말라고 했던 간이밧줄이 보인다.

저기로 올라가면 그위에 더 높은 절벽길이 있어 올라가지 못하고 결국은 돌아서 내려 와야 한다고 한다.

 

▲ 오른쪽 절벽에서 내려다 보니 암릉 밑으로 돌아가는 안전한 길이 보인다.. 다시 내려 간다..

 

▲ 암봉밑을 돌아서 선답자가 올라가라고 했던 지점을 만난다.

 

▲ 아래로는 암릉위의 멋진 소나무가 있고...

 

▲ 바로 위에는 돌고래를 만난다.

 

▲ 여기.. 돌고래바위가 풍경맛집이다..

서북쪽으로 치인리 집단상가 마을이 보이고 김천의 단지봉도 보인다.

 

▲ 북쪽으로는 해인사가 눈에 들어오고...

가야산에서 거창의 우두산과.. 김천의 단지봉으로 이어지는 두루봉 능선이 마루금을 그리며 달려 간다.

 

가야산은 백운에 싸여 있다.

 

▲ 당겨 본 해인사 성보박물관.

 

▲ 가야할 암릉을 올라서니..

 

11시 17분 : 노구승천암..

 

▲ 꼭 만나고 싶어서 힘들게 올라온 노구승천암이기에 자꾸만 눈이 간다.

하늘로 오르려는 거북이의 형상이라는 늙은거북이다.. 그래서 노구승천암(老龜昇天巖)이라 부른다고 한다.

 

▲ 넌 뭐냐?...

 

▲ 입술바위 오름길..

온통 바위뿐인것 같아도... 이렇게 길을 내어 준다.

 

▲ 입술바위 오른쪽으로 그 누구의 오름도 허락하지 않을것 같은 별개의 암봉이 있다.. 그래도 누군가는 오를것이다..

 

▲ 근래에 만나지 못한 노거송을 여기서.. 만난다.. 굵기가.. 성인남자 5~6명을 합친 정도다..

 

13시 15분 : 오봉산..

 

 13시 45분 : 돼지골갈림길 쉼터..

 

남산제일봉까지 0.7km.. 왕복 1.4km.. 다녀와서 치인리 주차장으로 하산할 것이다.

 

▲ 돼지골쉼터에서 올라가는 마지막 마의계단이다.

 

▲ 남산제일봉은...

멀리서 보면 정상의 형상이 이글거리는 불꽃과 같아서 화기(火氣)의 기운이 강한 산이라고 한다.

 

▲ 남산제일봉의 오엽송이 여전히 늠름하다..

 

13시 55분 : 남산제일봉에 전에 없던(?) 죠스바위가 있다...

 

▲ 남산제일봉에 묻혀 있는 소금단지 전설.

해마다 단옷날이 되면 해인사 스님들이 산꼭대기에 다섯 개의 소금 단지를 동서남북의 네 방향과 중앙에 묻으며 한 해 동안

불이 나지 않기를 기원하는데.. 소금을 묻는 행사는 불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남산제일봉의 기운이 해인사 대적광전의 기운과

맞부딪쳐 큰불이 일어난다 하여 남산제일봉이 품고 있는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해마다 계속되어 왔다고 한다.

 

▲ 청량사방향 하산능선...

만물상에 버금가는 멋진능선인데.. 버스시간을 못마출것 같아서 아쉽지만 돼지골로 하산한다.

 

▲ 불꽃바위..

 

▲ 절묘하게 받치고 있는 바위조각..

 

▲ 척박한 바위사이에 홀로선 오엽송에게 응원을 보내준다..

2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푸르름 잃지 않고 그모습 그대로 서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움이 든다.

 

▲ 앞뒤의 바위가 겹친 모습이 새처럼 보인다...

 

▲ 길가에 노송의 고목이...나는... 속을 다 비워버리고 수많은 시간을 견디며 이자리를 이렇게 지켜 왔노라며... 인간의 얕아

빠진 마음보를 나무라는 것 같다..

 

▲ 돼지골의 가을은 시작도 하기전에 말라 비틀어 떨어지는 잎이 더 많은것 같다.

 

▲ 작년 2023년 4월에만 해도 영업중이었던것 같았는데... 일부는 허물어지고 있다.

 

15시 07분 : 돼지골탐방지원센터.

 

▲ 치인리 집단상가지역..

 

15시 15분 : 치인리.. 해인사시외버스터미널..

 

 

▲ 어느날 인터넷 서핑중에 눈에 확~ 들어온 노구승천암... 그곳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듬뿍 받은 탓인지 몸도 가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16시 정각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치인리를 떠난다.

2024년 9월 22일 오늘의 동선이다.

 

오늘의 향기나번개팀은 경북 경주시 외동읍 아기봉산(236m)에 올랐다가 감포읍 전촌항의 사룡굴과 단룡굴을 보고 감포항

수협활어직판장에서 회를 구매하여 대구로 오면서 물좋고 정자 좋은곳에서 하산식을 할 예정이다.

 

2024년 09월 22일(일).

아기봉산/전촌용굴 : 경북 경주시 외동읍/감포읍.

 

산행코스 : 수곡사주차장-아기봉산-아암-건국사-수곡사주차장.

산행시작 : 수곡사주차장  09시 25분.

산행종료 : 수곡사주차장  11시 07분.

전체거리 : 약2.52km.

전체시간 : 01시간 42분.

운동시간 : 01시간 42분.

휴식시간 : 00시간 00분.

 

09 : 25  수곡사주차장.

09 : 56  아기봉산.

09 : 58  아암쉼터.

10 : 15  아암정상.

10 : 49  건국사.

11 : 07  수곡사주차장.

 

09시 25분 : 수곡사주차장.

 

대구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경주IC를 빠져 나오니 14호 태풍 "풀라산"의 영향으로 "는개비"가 내리더니 수곡사

에 도착하여서는 이슬비로 바뀐다...

 

아가봉산은 등산로 정비도 잘되어 있고 전체 산행거리도 짧은 산이라서 우산을 쓰고서라도 올라가자는 쪽으로 일치...

그런데 등산로 입구에 커다란 거울이 설치되어 있다.. 어떠한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으로 추측컨데 바른 마음과

단정한 산행복장인지를 비춰보고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다시 거울앞에 서서 오늘의 걸음이 자연에 부끄럽지 않은 산행을

하였는지를 반성해 보라는게 아닐까... 라는 의미를 부여해 본다.

 

수곡사주차장에서 원점회귀산행을 하는 소요시간이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산인데도 갈림길 요소요소에 이정표 하나는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아담싸이즈의 앙징스런 꼬마 이정표도 안내를 거들고 있다...

 

▲ 기암(권총바위)...

바위는 바라보는 각도와... 보는 사람마다의 느낌이 각기 다르다..

 

▲ 지능선에 올라서니... 비 멎은 싱그런 숲속공기가 너무 상큼하다..

 

▲ 등산화 바닥으로 전해지는 촉촉한 마사토흙을 밟는 촉감도 좋고..

 

▲ 안개가 자욱하지만 솔바람에 묻어오는 피톤치드향에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아기봉산의 아기가 사용하던 요강바위일까.. 아니면.. 아기장수의 태를 담은 신주단지 일까..

 

 09시 56분 : 아기봉산(236m) 정상인데 아무런 표시가 없다.

여기서 화살표를 따라 가면 커다란 방구돌들이 있는데 습기를 머금은 이끼가 미끄러워서 통과다.

 

 09시 58분 : 아기봉산의 아기바위(兒巖) 쉼터.

 

아기바위 쉼터에서 아기봉전설을 알리는 안내판을 읽어보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 아이가 죽임을 당한 뒤 포대기에 싸여 줄로 묶였다는 형상의 바위다.

 

앞쪽에 있는 아기봉 전설을 보면..

옛날에 하늘나라 선녀가 한 남자와 연애를 하다가 임신을 하게 되어 하늘나라에서 쫓겨나서 이곳 바위에서 아기를 낳았고그 아기는 너무 똑똑하여 삼칠일(21일)만에 일어나 걸으며 말을 하고.. 힘이 장사여서 석굴 앞에 있는 바윗돌(지름 50cm..

길이 1m)을 밧줄로 묶어지고 이웃 동몽산 꼭대기에 갖다 놓기를 반복하였다고 한다.

 

이 내용이 소문이 나서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갔는데 장차 왕의 자리가 위협이 될 듯하여 아이를 죽이라고 했다.

이에 군사들이 선녀가 잠자는 틈을 타서 아이를 죽여서 끈으로 묶고 포대기에 싸서 시체를 들고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

 

군사들은 놀라서 아이 시체를 버려두고 모두 도망쳤는데 이때 잠에서 깬 선녀는 돌로 변한 아이의 시체 위에 엎드린 채

죽고 말았다. 그 뒤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 봉우리를 아기봉이라 불렀고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이 바위에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 그런데.. 난데 없는 한국풍수선양재단 성지라는 비석이 서있다.. 자장율사.. 원효대사.. 의상대사 까지..

 

▲ 아기봉산 제1석문..

우리나라 에서 가장 석문이 많은 곳이 이곳 아기봉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곳곳에 석문이 형성되어 있다.

 

▲ 아래쪽에 쫏겨난 선녀가 기거했던 곳이 아닐까 싶은 커다란 굴이있다..  누군가가 관리를 하는것 같은 흔적이 보인다.

 

▲ 아기봉 암릉.. 사진 찍기 정말 멋진 장소다.

 

▲ 향기나 팀.. 참 보기좋은 팀이다.

 

▲ 이암릉에도 올라서면.. 사진 찍기가 좋은곳인데 이끼가 미끄럽다.

 

▲ 역시나 향기나산대장님이다.. 나도 일주일만 젊었어면 올라갔을텐데 ㅠㅠ~.. 오늘은 참는다.

 

▲ 차~암 보기 좋다.

 

▲ 다들 협곡건너 아기봉암릉 아래 포토존에서 향기나 모드(1)로...

 

향기나 모드(2) 기차놀이로...ㅎㅎ~.

 

▲ 이번에는 향기나 모드(3) 아이돌 자세로...

내가 카메라를 놓지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키는 자세로 다 한다ㅋㅋ~.

 

▲ 누가 더 오늘의 향기나 아이돌인지 당겨 본다...ㅎㅎ~.

 

우리는 향기나~야...

우리는 아기봉에 올랐어~...

우리는 어른돌이 아니야.. 향기나는 아이돌이야~.. 오~예..

 

▲ 아기봉산 제2석문..

 

▲ 차~~~ 암.. 더더욱 보기 좋다.

 

▲ 저 멀리 기암 전시장같았던 마석산마루에 구름이 쉬고 있다.

 

▲ 아기봉산 제3석문..

 

▲ 아기봉산 제4석문..

 

▲ 아기장사가 괴나리봇짐처럼 등에 지고 다녔다는 돌이다.. 줄을 맨 흔적이 뚜렷하다..

 

▲ 외동읍 전경.. 국제신문에서 소개한 봉서산.. 삼태봉이 오라고 손짓한다.

외동읍이라는 지명은.. 경주에서 동쪽 끝에 가장 멀리 있는 동네라서 외동이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 아기를 씻겼다는 돌 대야가 보이고 물이 흐른자국이다.

 

▲ 아기장수가 향기나팀을 따라 왔는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위를 밀고 있다.

 

▲ 수많은 시간과 사연이 켜켜히 쌓여있는 아기바위에서 천상선녀의 마음으로 하늘의 소리를 들어 보려고 하였으나

잔뜩 흐린 하늘을 뒤로하고 툭툭 털고 일어 난다.

 

▲ 아기봉산 제5석문을 통하여 쉼터로 내려 간다... 5석문외에도 더 있지만.. 바위가 미끄러워 찾아다니지를 못했다.

 

▲ 아기봉산 쉼터 내려가는길이 매우 미끄럽다 조심조심..

 

▲ 아기봉산 쉼터에서 양맥에 막걸리까지..

 

▲ 하산은 건국사쪽으로..

 

▲ 바위에 붙어서 힘겹게 살아가는 생명에게 악착같이 살아남아라는 응원을 보낸다..

 

▲ 과거에 석봉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자연인의 집처럼 되었다.

 

▲ 건국사 극락보전..

절간같이 조용하다.. 라는 말처럼 정말 적막강산이다..

 

▲ 사찰에서는 처음보는 성사전이다... 건물 뒤쪽의 바위가 아미타불을 닮은것 같다.

 

▲ 건국사주차장이 제법 넓은것으로 보아서는 한때는 잘나갔던 사찰이었던 모양이다.

주차장에서 아래로 바로 내려가면 수곡사주차장까지는 한참을 돌아서 가야 되기에...

 

▲ 주차장 윗쪽에 있는 철계단을 타고 숲으로 가면 지름길이고 수곡사 경내로 연결 된다.

▲ 수곡사 뒷길로 들어가면...

 

▲ 수곡사 장돗대... 규모를 보니 꽤나 많은 신도들이 다녀가는가 보다..

 

▲ 수곡사 대웅전...

 

수곡사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제시대.. 일본 미쓰비시사에 강제징용 되었던 징용자들이 해방을 맞이하여 1945년 10월 11일 귀국선을 타고 돌아오다가

큐슈섬과 대마도 사이에 있는 이끼섬 부근에서 태풍을 만나 배가 침몰하며 탑승했던 징용자 168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

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 일을 가엾게 여긴 이끼섬 아시베항에 위치한 천덕사 주지 니시다니 도구린 스님께서 사고 이듬해부터 매년 11월 18일에

위령제를 모셔왔다고 한다. 1987년 수곡사 주지스님이 이 소식을 듣고 감사패 전달 후 위령패를 외동 수곡사에 옮겨와서

지금까지 격년제로 위령제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 수곡사 경내가 잘 정돈되어 있고 정갈하다...

 

11시 07분 : 수곡사 주차장 산행종료.

 

11시 10분 : 수곡사를 뒤로 하고 전촌항의 용굴을 찾아 간다...

 

 12시 02분 : 전촌항..

평생을 바다의 삶을 살아오신듯한 노어부가 그물 손질을 하고 있다.

 

태풍 "풀라산"이 동해로 빠져 나갔는지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 전촌용굴 가는길은 해파랑길 11구간의 일부다..

 

▲ 사룡굴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런데 소나무가 이상하다.

 

▲ 산불이 났었나? 하고 자세히보니 아니다.

 

▲ 재선충이다.

 

▲ 당국에서 사전 예방이나 막을수는 없었는지.. 안타깝다.

 

▲ 사룡굴 가는길을 지나서.. 단룡굴부터 먼저 다녀오기로 한다.

 

▲ 단룡굴은... 감포마을을 지키는 용이 한마리 살고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파도와 갯바위 접근이 상당히 까다롭고 위험하여 가까이는 갈수가 없다..

 

▲ 2022년 8월 15일 광복절에 다녀왔던 단룡굴 내부 인증샷이다...겨울날 아침에 이곳에서 보는 일출이 아름답다고 한다.

 

▲ 파도가 발밑까지 튕긴다... 이크!~~ 깜짝이야... ㅎㅎ.

 

▲ 역시나 바다는 파도다.. 강한 에너지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

 

▲ 파도를 뒤집어쓴 갯바위에 폭포가 생겼다.

 

▲ 사룡굴 내려 가는길...

 

▲ 사룡굴...

파도와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 조각품으로... 해식동굴인 "용굴" 이다..

사룡굴에는 동서남북의 각 방위를 지키는 네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 사룡굴위에... 용보다 더 용같은 용송이었는데 재선충으로 말라버렀다..

 

▲ 사룡굴앞에서...

젊은 아가씨에게 인증샷 부탁하였더니 파도가 칠때 타이밍을 잘 잡았다..

 

앞으로 7~80년 후쯤이면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가 이땅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나무가 사라지면 어떤 수종이 그 멋진 그림을 만들어 줄까..

 

▲ 전촌항으로 돌아가는길..

 

▲ 절묘한 순간 포착..ㅎㅎ.

바다를 바라보는 두사람의 뒷모습을 찍으려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획~ 돌아선다.. 오히려 기가막힌 타이밍이 되었다..

 

12시 58분 : 전촌항에서..

 

▲ 전촌항 길냥이가.. 이동네 터줏대감을 몰라본다며 괘씸하다고 노려본다..

 

▲ 용의 마을답게 전촌항 방파제에도 온통 용이다..

 

14시 07분 : 감포항활어직판장..

전촌항에서 출발 할때는 쾌청했던 날씨가 감포항에 도착하자 말자 빗방울이 굵어 진다..

 

▲ 태풍으로 조업을 못해 어종이 다양하지 못하다.. 전어는 아예 없다. 그래도 여성향기나님들이 횟감을 사고..

 

▲ 먹을곳을 찾아야 된다...

여기서 7~8분이면 가는 송대말등대로 가다가 방파제에서 자리를 펴면 되는데..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진다..

 

▲ 비내리는 감포항을 바라보다가 송대말등대는 포기하고 대구로 가다가 적당한 장소를 찾기로 하고 출발..

 

▲ 감포항에서 토함산을 넘고 불국사를 지나고 경주보문단지도 건너뛰고 경주IC 직전에서 농로로 접어드니.. 오는 내내

따라다니던 비도 그치고.. 그야말로 물좋고 정자좋은곳을 만났다. 마치 우리를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것 같은 장소다.

 

▲ 싱싱한 횟감으로 하산식 잔치다.. 홍여사님이 바리바리 준비한 깻잎 고추 된장.. 그리고 쐬주 한잔..

오늘의 향기나팀들의 컨셉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짜라짜라 짠짠이다.

 

▲ 푸짐한 회와 쐬주로 기분좋게 먹고 마시고..

누렇게 익어가는 벼처럼 풍성한 마음으로 마실을 둘러본다. 바로 건너보이는 기와집은 경주IC건물이다.

 

▲ 대천 상류쪽을 보니 경주 서면의 인내산에서 흘러내리는 대천을 사이에 두고 벽도산과 선도산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선도산은 태종무열왕릉이 있는 산이다.

 

대천 하류쪽은 형산강으로 합류된다.

 

▲ 서울방향의 경산휴게소에서 평소에 보기만하고 가보지는 못했던 신상리고분군에 올라가 본다.

 

▲ 초례봉.. 환성산.. 무학산너머로 하루가 넘어간다.

 

▲ 향기나 아이돌 놀이에 재미가 붙었다..ㅎㅎ.

 

▲ 오며가며 하루종일 핸들잡느라 고생많았습니다.

 

▲ 태풍따라 갔다가 태풍을 동해에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늘에서 가을이가 보인다.

 

오늘도 그렇게..

더더욱 항기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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