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9일(목).

적벽산/백마산/월명산 : 경남 산청군.

 

산행코스 : 피암터널입구-적벽정-적벽산-백마사-망춘대-백마산-질매재-월명산-상사바위-산불초소-인곡서원-중촌리.

산행시작 : 피암터널입구  09시 29분.

산행종료 : 중촌리입구  13시 06분.

전체거리 : 약8.61km.

전체시간 : 03시간 36분.

운동시간 : 03시간 19분.

휴식시간 : 00시간 17분.

 

09 : 29  피암터널입구.

09 : 45  적벽정.

09 : 54  적벽산.

10 : 14  백마사.

10 : 24  망춘대.

10 : 40  백마산.

10 : 49  질매재.

11 : 12  월명산.

11 : 54  상사바위.

12 : 14  산불초소(작은월명산).

12 : 46  안곡서원.

13 : 06  중촌리입구.

 

 09시 29분 : 적벽산피암터널 입구.

 

▲ 산행준비 하는동안.. 잽싸게 등산입구부터 찰칵해 놓고...

 

▲ 산행들머리가 도로와 인접하여 단체인증샷 하기가 협소하지만.. 다들 산행 9단이신 분들이라 협조도 빠르다..

 

▲ 초반 2~3분 정도는 낙엽에 가파른 치오름이다..

 

▲ 금강(경호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산청군 신안면소재지이고.. 강 건너는 단성면소재지이다.

 

계단이 없어도 산행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곳에 설치된 철계단이다..

 

두번째 계단도 역시나다..

 

 남강(경호강)의 단성교에 교각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거울같이 물이 맑다”하여 이름 붙여진 경호강(남강)은 남덕유산 참샘에서 발원하여 진주시 진양호의 남강댐을 거쳐 창녕

남지읍에서 낙동강 오백리 물길과 합쳐서 부산 을숙도에서 바다와 만나게 되는데...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발원지에서 산청읍까지 구간을 "경호강"이라 부르고 산청읍에서부터 창녕 남지 합수지점까지는 "남강"이라고 부른다..

 

남다른 추억이 많은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이다..

 

09시 45분 : 적벽정..

적벽(赤壁)이라는 명칭은 삼국지(三國誌)에서 오나라 손권(孫權)과 촉나라 유비(劉備)가 연합하여 위나라의 조조(曹操)

대군을 대파한 장소로서.. 양쯔강기슭의 절벽을 이르는 단어다. 우리나라에도 ‘적벽’이라는 단어를 가진 지명이 있다.

변산반도의 적벽강과.. 충남 금산 적벽강은 명승지이고.. 김삿갓이 절경을 노래한 전남 화순의 적벽이 있다.

이곳.. 산청군 신안면의 적벽산도 오래전부터 이름만큼 절경이었다고 한다.

 

▲ 유유히 흐르는 남강 줄기와 백마산 월명산 봉우리가 모두 눈에 들어오고.. 강 건너 석대산 능선과 그 뒤 웅석봉까지

어우러지며 시원하기 그지없는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혹자는 이 광경을 보고 "눈이라도 깜박이면 이 장관이 사라질까

저어하니, 차마 눈조차 감을 수 없어 시리고 시리구나~"라고 노래했다고 한다.

또한 백마산 아래로 달려가는 3번 국도는 이순신 장군께서 나랏님의 부름을 받들고자 걸어 가시던 구국의 얼이 서려있는

<백의종군 길>이기도 하다..

 

▲ 전망이 너무 좋은 곳에..

지자요수(知者樂水)라.. 지혜로운자는 물을 즐겨 좋아하고..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어진자는 산을 즐겨 좋아하네..라는 빗돌이다.

그림 좋은 이곳에.. 산(적벽산)과.. 물(경호강)과.. 나(요산요수)..이렇게 삼위일체가 되었으니..

내가 곧.. 산이요. 내가 곧.. 물이로구나~..ㅎㅎ

 

▲ 적벽산 아래 남강이 수태극을 그리며 유유히 흐르고~..

가을이 되면 적벽에 단풍이 물들고 보름달이 그 위로 솟아오르면 시원한 강바람과 밝은 달이 운치를 더하면 강심에 배를 

띄우고 밤을 새워 놀이가 이어지곤 했는데, 어느 날 절벽에서 강으로 떨어져 내려온 바위에 성주가 탄 놀잇배가 부서져 

그만 강물에 빠져 관인을 잃어버렸다는 고사가 전해온다.

 

중국의 지명을 쫓아 이름을 붙인 것은 이곳 경치가 뛰어난데서 유래한 것으로 소동파의 적벽놀이를 모방하여 이 지방에는

기방계라고 하는 모임이 있어 추칠월 기망인 16일이 되면 이곳에 모여서 시주와 뱃놀이를 즐긴다.

신안진 옛 나루가 가까이 있었으므로 왕래하는 길손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곳 풍광을 읊은 시가 수 없이 많은 것도 경치가

시심을 돋우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적벽에는 옛 현감들의 선정을 기리는 마애비 여럿이 여러 편의 시와 함께 새겨

져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도로를 개설하면서 모두 파손되었다고 한다.

 

▲ 적벽정에서 적벽산 정상으로 가는길이 신작로 수준이다.

 

▲ 조여사님의 배낭에 걸친 겉옷이 불안하여 다시 매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ㅎㅎ

 

▲ 적벽산에서의 내림은 급내림이다.. 낙엽길에 조심조심..

 

▲ 3번 국도변의 임도와 만난다..

 

▲ 산성교차로에서..

 

▲ 왼쪽으로 가든지.. 오른쪽으로 가나.. 어느쪽이던.. 백마사입구에서 만나게 된다..

 

▲ 나는 오른쪽의 다육카페 앞을 경유 한다..

 

10시 14분 : 백마사를 잠시 둘러보고..

 

▲ 이정표가 망춘대로 가라 한다..

 

10시 24분 : 망춘대..

단성 들녁에 봄(春)이 오는 모습을 바라기(望) 하라는 전망대 인듯 하다..

 

단성들녁..

저곳에는 문익점님께서 처음으로 목화를 심으신 목화 시배지가 있으며.. 멀지 않은 곳에 성철대종사님의 생가도 있다..

 

▲ 백마산 성루터..

임진왜란때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의 망루의 기둥을 세웠던 자리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진주에서 밀려든 왜적을 막기 위해서 창의병들이 이 산성을 지키고 있었다. 

한번은 폭염의 7월인데 왜적이 성을 포위한 채 며칠이고 기다리는 지구전을 펼치는 가운데 성안에는 물이 떨어져서 사람

과 말의 기갈이 막심하였다. 이때 한 지혜로운 장수가 말을 바위 끝에 세워두고 쌀을 말 등에 퍼서 던졌더니 산밑에서 성을

포위하고 있던 왜병에게는 그것이 마치 성안에 물이 많아서 말을 멱감기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그들은 더 오래 포위를 해도 승산이 없을 것으로 알고 퇴각하였는데 이때 성안에 있던 병사와 말이 일시에 내달아

강물을 마셨더니 신안강 물이 세 치나 줄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 일로 인하여 산 이름도 동산성에서 백마산성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곳은 정유재란 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합천 초계의 권율 장군영에서 출발하여 남해의 전세를

살피기 위하여 지나가는 길에 이 산에 올라보고 단성현에서 하룻밤을 유숙한 행로이기도 하다.

 

▲ 백마산 전망대.

 

▲ 남강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보는듯.. 내려다 보니.. 세상이 온통 내것 같음이건만..

6.25한국전쟁때 지나온 적벽산 아래의 신안면의 신안지서(현:지구대)소속의 전투경찰과 이곳 백마산에 주둔한 인민군과의

밀고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밤이면 마치 불꽃놀이를 방불케 할 정도로 백마산과 적벽산의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동족상잔의 뼈아픈 사연이 이곳에도 흐르고 있음을.. 도도히 흐르는 저 남강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 없구나~..

 

기분 좋은 소나무길을 걷다보면.

 

그 옛날 백마성 군사들의 식수원으로 사용하였다는 연못인데.. 12년전에는 그득했던 물이 지금은 말랐다..

작은산의 정상에... 이렇게 물길이 있었음은 자연적인 요새로서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10시 41분 : 백마산.

백마산성은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고.. 임진왜란 때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북진하는 왜군을 맞아 한 달 이상을 버티면서

물리친 유적지다. 당시 왜군은 깎아지른 절벽의 백마산성을 도저히 함락시킬 수 없자 물과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옥쇄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또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여름 백의종군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으로 가던 도중

이 산성에 올라 천혜의 난공불락 요새인 점을 확인하고 안심하였다는 이야기가 난중일기(1597년 7월 19일)에 기록돼 있다.

 

 백마산 내림도 급경사 수준이다..

 

 수억년전 여기도 바다속이 였으리라.. 갯가 몽돌이 세상귀경을 나왔구나..

 

 바람길 좋은 여름날.. 저 바위에 걸터 앉아 이태백의 시라도 한수 읊는다면.. 그게 신선놀음일것 같다.

 

10시 49분 : 질매재.. 백마산과 월명산 사이의 고개마루다.

신작로가 뚫리기 오래전 중촌리 일대 주민들이 산청 장터를 오갔던 중요한 길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고개는 마치 도끼로

찍어 놓은 듯이 움푹 파인 지형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어 흥미를 끈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의

백의종군길에 따라 나섰던 옥포 만호 이담 장군의 12대손이라고 밝힌 중촌리 주민 이주상씨의 전언을 소개한다.

 

"옛날에 일본인들이 조선 지도를 펼쳐놓고 조선의 기를 끊기 위해 붓으로 먹점을 찍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 질매재라고

한다. 그로 인해 질매재는 도끼자국처럼 파였다고 선조들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일본인들이 점을 찍은 이유는 큰 인물이 많이 나올 지형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지나온 백마산..

 

 월명산 오름길에 재미있는 구간이다.

 

험상궂은 바윗길 같지만... 길을 양보하며 내어 주어서 고맙고.. 이런 길을 찾아내는 개척자도 대단하다.

 

 웅석봉 달뜨기능선따라 이방산도 저기 어디쯤일텐데.. 그리고 마근담봉과 수리봉 사이에 백운계곡이 숨어 있다..

 

백마산과 남강..

적벽산과 백마산 일대는 옛날부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한양(서울)에서 880리를 걸어 온 길손이 경치에 취해 가던

길을 멈추고 하염없이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특공대님.. 산꾼의 포스(force)가 완전 뿜뿜입니다...

 

 풍혈..

월명산이 바위산이라.. 산속 어딘가에 공동이 형성되어 있는 모양이다.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11시 13분 : 월명산..

정상석에 해발 320m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해발은 334m이다..

 

"얼굴머리 바위" 라고 이름지어 본다... 코가 참 잘생겼다..

 

 소나무와 바위의 소리없는 싸움에 바위조각이 떨어졌다.. 뿌리가 들어올린 바위 틈새가 눈에 띄게 벌어 졌다.

 

 조망바위..

 

조망바위에서 둔철산능선을 바라보니 와석총에 다시 가보고싶다... 언제 또 가보려는지.. 상사바위가 바로 아래다.

 

 조망바위에서 둔철산을 조망하는데.. 발밑에 나의 분신이 보인다..

 

나의 분신..그림자..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서 빛의 존재만 있는게 아니라..

그속에서.. 또 다른 나를 보았다. 1년간 걸어 온 길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림자는 그사람의 모습이다..

그림자에서 "그"를 빼면 <임자>가 된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언제나 한결같은 믿음의 자태로

늘~ 나와 함께 있다.

 

나는..

어떤 그림자를 가지고 있어며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산불초소가 있는 월명산이다..

국토지리원에 등재된 공식산이다. 그러나 지역민들한테는 인정 받지 못하는 소외된 산이다.

 

 조망바위를 에돌아 내려 가면서 올려다 보니.. 영락없는 침팬지 얼굴이다..

 

 모든 이정표는 지나왔던 월명산을 향하고.. 산불초소봉은 그냥 무명봉일뿐이다.

 

 상사바위다.

 

 상사바위 전설...

월명산 아랫동네인 현재의 안봉 마을 부근에는 큰 못이 하나 있었다. 그 못은 얼마나 깊은지 명주 실타래 하나를 풀어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못 인근 마을 부잣집에 아주 용모가 수려한 머슴이 있었는데 뛰어난 용모와 겉으로

풍기는 힘참에 그 부잣집 별당아씨의 마음을 본인도 몰래 훔쳐 버린 것이다. 신분을 뛰어 넘는 사랑이 금지된 아주 오랜

옛날이기에 머슴은 그런 아씨의 맘을 알고 나선 좌불안석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아씨를 피해 인근 월명산 자락 미륵이 있는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절로 도망을 쳤다. 그런데 머슴에 대한 속앓이를 

하던 아씨가 수소문 끝에 이곳 미륵이 있는 절까지 쫒아 온것이다... 아씨의 열렬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머슴이 아니었

지만 그 마음을 받아 들이는 순간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는 일 인지라 머슴은 그 절에서 다시 아씨를 피해 월명산 정상부근

현재의 상사바위로 다시 도망을 하게 된다..

 

머슴에 대한 사랑에 몸앓이를 하고 있던 아씨는 미륵이 있는 절을 떠난 머슴을 찾아 다시 주변을 헤매기를 수개월...

그러던 어느날 머슴이 월명산 정상 근처 현재의 상사바위에 있음을 알고 상사바위로 찾아간다. 그리고 요염한 자태와 계급

적 직권으로 머슴을 달래보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다.. 라는 머슴의 사랑거절에 낙심하여 그만 산아래 벼랑으로 몸을 던지고

만다.. 그리고 뒤늦게 아씨의 생사를 초월한 사랑을 알게 된 머슴 또한 이곳에서 생사의 길을 달리하게 된다.

 

 뒤돌아 본 상사바위..

 

 이루지 못한 아씨의 사랑을 감춰주기라도 하듯.. 쉽게 찾을수 없도록 좁은 문을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듯 바위산은 육산으로 바뀐다.

 

 하산길 이정표에서..

 

 이정표가 가르키는 방향을 보니.. 오래동안 왕래가 없었던지.. 묵은길이다..

 

 2분정도 더 진행하니 태양광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는 초소길과 하산길이 갈라진다.

 

철조망따라가는 하산길.. 초소에서 바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면 여기로는 안올 것이다.

 

 산불초소(작은 월명산) 올라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지나온 월명산과 상사바위능선.

 

 철탑 밑으로 시그널이 걸려 있다.. 다시 내려와서 이리로 하산할 예정이다.

 

12시 14분 : 산불초소.. 국토지리원에서 표기한 월명산이다.

 

 산은 낮지만 사통팔달.. 동서남북이 막힘없는 최고의 직장이다..

 

 여기서도 이정표는 지나온 월명산이 주산임을 가르킨다..

 

하촌마을로 내려가는 희미한 족적이 보인다.. 조금전의 철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것 같다..

 

 생각외로 길은 반듯하다..

 

 발풀고사리군락..

 

 오래된 화전민들의 경작지 흔적..

 

 안곡서원.

 

왼쪽의 경덕사(景德祠)와 안곡영당(安谷影堂)..

경덕사(景德祠)는.. 농서군공(隴西郡公) 장경(長庚).. 문열공(文烈公) 조년(兆年).. 경원공(敬元公) 포 (褒).. 모은공(慕隱公)

인립(仁立).. 경무공(景武公)등.. 5현(五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를 올리는 사당이다.

 

5현(五賢)중에 이조년(李兆年:1269~1343)은 고려 때의 정치가이자 문학가로.. 자는 원로(元老).. 호는 매운당(梅雲堂)..

시호는 문열(文烈).. 본관은 성주이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냥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

 

경모문(景慕門)...

경모는 마음을 기울여 존경하고 사모한다는 뜻이다.

 

안곡서원(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42호)은..

단성의 성주이씨 문중사람들이 고을의 유림과 협의하여 1913년 2월에 지었고.. 1916년에는 영당(影堂)을 지었다.

 

경지당(敬止堂).

 

유정문(由正門).

 

 경모문(景慕門)... 소슬대문을 나와서..

 

 주차장으로 나오니... 빛의 굴절이 마술을 부리며.. 무사무탈의 완주를 축하해 준다.

 

 보기만 해도 구수한 시락국맛이 난다...

 

 오늘도 역시나 열정의 혼산을 하신 산여울선배님...

 

 홍시.. 나무밑에서 아~ 하고 입 벌리고 서 있어면.. 금방이라도 입으로 떨어질것 같다..

 

 중촌리 입구에 산이좋아산악회의 애마가 보인다..

 

13시 06분 : 산행 종료.. 대단한 준족님이다.. 벌써 하산하고 기다린다..

 

 

 후미팀까지 완전 하산후... 하산주식당에서 시간이 이르다 하여.. 가까운 성철대종사님의 생가로 간다.

 

13시 54분 : 지리산 겁외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스님의 생가터에 세워진 사찰이며.. 지리산 겁외사(劫外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겁(劫)이 의미하는 것은 긴 시간을 벗어난 시공(時空)을 초월 한다는 의미다. 성철스님이 지었다

겁외사는 스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01년에 건립된 사찰이다.

 

 성철스님 입상..

성철스님은 1912년 산청군 묵실마을에서 태어났고.. 25세인 1936년 해인사에서 승려의 계를 받은 이후 한국 불교를 대표

하는 상징이 되었다. 조계종 종정으로 한국불교와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던 개혁가였고 사상가였으며 해방이후 혼란스러운

한국사회의 등대와도 같은 분이었다.

 

염주 속으로 본 성철스님 입상..

 

백송(白松)..

보기드문 백송은 해인사 백련암에도 한그루 있고.. 성철스님 세속의 따님인 불필스님이 창건한 해인사 금강굴에도 있다..

 

성철스님 생가로 들어가는 혜근문(惠根門).

 

▲ 안채인 율은고거(栗隱故居).. 성철스님 선친의 호를 따라 지었다.. 앞에는 스님의 기념비와 출가송비가 조성되어 있다.

 

▲ 성철대종사출가송(性徹大宗師出家頌)..

 

미천대업홍로설(彌天大業紅爐雪)..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 화롯불에 한 점 눈송이요..

과해웅기혁일로(跨海雄基赫日露).. 바다를 뒤덮는 큰 과업도 햇볕 아래 이슬일세..

수인감사편시몽(誰人甘死片時夢).. 그 누가 잠깐의 꿈같은 삶을 살다가 죽어가랴..

초연독보만고진(超然獨步萬古眞)..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홀로 걸어가노라~

 

▲ 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齋).

 

▲ 포영당(泡影堂).

 

대웅전(大雄殿)은..

비로자니부처를 모셨으며 성철 스님의 진영이 있고 외벽에는 스님의 출가 수행 설법 다비식 등을 묘사하였다.

 

벽해루(碧海褸)는...

평소에 즐겨 얘기하던 홍하천벽해(紅霞穿壁海)..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뜻이다.

 

 퇴옹전(退翁殿).. 성철스님 기념관이다.

 

 성철스님의 법력을 제대로 받으신 듯... 훨훨훨!~... 늘~~청춘이시고.. 성불 하소서~..ㅎㅎ..

 

적벽산과 피암터널...

경호강이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갑자기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형성된 산이 적벽산이다. 산의 서쪽면은 칼로 자른 듯한

벼랑이 만들어졌고, 그 아래의 경호강변에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봄철의 해빙기나 여름철의 집중

호우가 있을 때면 산에서 바위가 이 도로로 떨어져서 사고를 일으키기도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적벽산피암터널’이다.

2018년에 시작하여 2021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하산주는 장어탕으로..

 

 산이좋아산악회 회장님의 건배.. 청. 바. 지!!!~..청춘은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 바로 청춘이다 건배!!~..

1년간 수고많으셨구요.. 덕분에 매월 셋째 목요일이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이 행복이 쭉~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농사꾼도 뱃심이요.. 산꾼도 뱃심이다.. 뱃심 빵빵하게 잘 먹었습니다.

 

지난 1년간 걸어 왔던 수많은 길들..

그 길을 내가 가지 않으면 내 길이 아니듯이..

누군가의 길에 온전한 내 길을 만들기위해 부지런히도 걸어 왔던 것이다.

 

올해도 그랬듯이... 내년에도 나의 길을 걸을 것이고..

그것이 내 인생이 될 것이다.

2024년 12월 15일(일).

망일봉 연리지길 : 대구시 북구.

 

산행코스 : 무태네거리정류장-무태성당-망일봉-천년쉼터-국우터널위-258봉-국우동현대아파트정류장.

산행시작 : 무태네거리정류장  11시 45분.

산행종료 : 국우동현대정류장  15시 47분.

전체거리 : 약11.2km.

전체시간 : 04시간 02분.

운동시간 : 03시간 44분.

휴식시간 : 00시간 17분.

 

11 : 45  무태네거리정류장.

11 : 49  무태성당.

12 : 35  망일봉.

12 : 53  함지산갈림길.

12 : 54  천년쉼터.

13 : 55  국우터널위.

14 : 27  258봉.

15 : 47  국우동현대아파트정류장.

 

 11시 45분 : 무태네거리정류장.

 

모 안내산악회에 산행신청을 하였더니.. 토요일 오후 늦게 인원부족으로 취소가 되었다..라는 문자가 온다..

자빠진김에 쉬어간다..라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늦잠까지 자고 일어 났는데.. 몸이 근질거리며 어디든 나가자고 성화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집에서 접근이 쉽고 미답지로 남아 있는 망일봉에서 국우터널을 지나가는 순환테마길의 연리지길이

생각난다... 북구 2번 시내버스를 타고 무태네거리정류장에 내려서 망일봉 들머리로 간다.

 

▲ 무태성당 앞 망일봉 들머리.

이곳은 함지산을 경유하여 팔달교로 이어지는 대구둘레길 제5코스 출발점이고.. 북구 순환테마길의 연리지길 출발점이다.

 

▲ 대구시 북구에서 대표산으로 자리매김 되어 있는 함지산.. 도덕산.. 명봉산.. 태복산을 이어가는 "순환테마길" 이라는

주제아래 8개코스에 각 구간마다 아름다운 이름을 걸고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 돌탑이 있는 곳에서부터.. 누군가가 관리를 하고 있는듯.. 깨끗한 분위기다.

 

▲ 물흐름이 많은 곳에는 배수로를 건성이 아닌 정성으로 홈통을 만들어 놓았다.. 망일봉까지 대략 20개소는 되는것 같고...

 

▲ 낙엽까지도... 쓸어놓은..

 

▲ 깨끗한 길을 걸어니..

 

▲ 오늘은 하루종일 구름이 잔뜩낀 흐린날씨에 낮최고 7도에 바람은 1~2m/s의 다소.. 스산한 분위기 이지만.. 깨끗하게

쓸어놓은 등산로에.. 마음도 한결 상쾌하고 발걸음도 가볍다... 누군가에게 감사하다.

 

▲ 누구든지 계단길을 만나면 피하고 싶은 모양이다..

나는 절대로.. 계단길을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산행에서는 우측통행이 원칙이기에 오른쪽길을 선택한다..ㅎ~..

 

▲ 망일봉 오름길에서 가장 기분좋은 넙적바위 구간이다..

 

▲ 마치  포장을 한듯한 넙적바위가 약15도쯤의 경사각으로.. 약200m 이상 깔려 있다.

 

▲ 첫번째 탈출로.. 서변초등학교..

2017년에 대구둘레길을 조성하면서 세운 이정표가 7년이 지난 지금도 충실히 근무하고 있다.

 

참고로.. 대구둘레길은 2015년 9월에 국토교통부의 개발제한구역 주민지원사업 중 환경문화사업에 선정되어 12월에 기본

계획을 세우고 4억5000만원을 들여 대구 외곽의 산과 들.. 강.. 생태.. 역사.. 문화를 두루 볼 수 있도록... 시가지를 둘러싼

개발제한구역 녹지축을 따라 16개 구간.. 138.6km로 이루어진 둘레길이다.

 

▲ 두번째 탈출로.. 조야동의 북대구IC 뒤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12시 27분 : 망일봉 연리목(連理木)..

 

연리목(連理木)과 연리지(連理枝)의 차이.

연리(連理)는 가깝게 자라던 두 나무의 몸통이 서로 합쳐져서 한 나무처럼 자라고 있는 현상을 말하며.. 나무의 몸통인 줄기

가 서로 합쳐져 있으면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하고.. 나무의 가지가 서로 붙어서 이어져 있으면 연리지(連理枝)라고 한다.

 

 12시 35분 : 망일봉 정상.

무태(舞怠)마을의 유래는...왕건이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대구 북구 서변동을 지나 연경동방면으로 진군하던중 군사들에게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고 태만하지 말라" 라고 당부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 망일봉 소망전망대..

 

▲ 망일봉 소망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쪽 방향..

 

▲ 북동쪽방향..

 

▲ 동쪽방향..

 

▲ 당겨 본 초례봉 방향...

 

▲ 수성구방향..

 

▲ 남쪽방향..

 

▲ 당겨 본 비슬산..

 

▲ 망일봉에서 국우터널 쪽으로 가는길에..

 

▲ 249m봉의 돌탑을 지나가는데..

 

▲ 돌탑앞에 현수막이 보여서 읽어보니.. 북구청에서 돌탑을 쌓지 말라는 권고문이다.

금지내용인즉슨.. 야간등산시 부딪힘..등 안전을 위협한다..라는 내용이다.. 금지이유가 참으로 옹색하다..

 

돌탑 쌓기 금지 현수막을 걸어놓은 이유를 나름으로 유추해 보면.. 누군가가 야간 산행시에 돌뿌리에 걸려 자빠졌고 자빠진

이유가 돌탑이라고 생각하고 관에 민원을 넣었거나.. 대충 그런 이유인것 같다. 내눈에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좋기만 한데...

 

 12시 53분 : 함지산 갈림길.

여기서부터 옻골공원쪽(국우터널쪽)으로는 가보지 못한 미답 코스다..

 

▲ 정자가 보이는걸 보니 제대로 가고 있는것 같다..

 

 12시 54분 : 천년쉼터 정자.

 

▲ 밖으로는 "천년쉼터"이고..

 

▲ 올라가서는 운암루라 되어 있다..

 

 13시 04분 : 옻골공원 갈림길.

 

▲ 옻골공원길을 버리고 도덕산길로..

 

▲ 여기서부터 하산때까지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 국가지점번호의 중요성..

특히나.. 홀로산행시에는 이 표지판을 유념해서 보아야 한다. 긴급상황시 나의 위치를 구조기관에 알려 줄 수 있다.

 

▲ 국가지점번호는..

전 국토를 가로. 세로 10m 간격의 격자형으로구획한 지점마다 부여한 번호로써 전국에 약 7만 4천여개가 설치되어 있다.

위급 상황 발생 시 등산로, 해안로 등에 설치된 국가지점번호를 알려주면 119등 구조 기관에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신속

한 대응이 가능하다. 표를 보면 대구지역은 <라> <마>에 속한다.

 

▲ 홀로산행은 녹음이 우거져 금방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것만 같은 여름산행보다는 잎이 떨어져 개방된 겨울산이 낫다.

 

 13시 10분 : 넙적바위.

햇살좋은 날이었다면 양지바른 곳일것 같다..

 

누군가의 전용쉼터를 잠시 빌려서 늦은 마음점을 찍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망일봉이 보이고 천년쉼터위로 구름사이로 햇살이 살짝 내려오다가 금새 닫아 버린다.

 

우리는 자연이 내어 주는 좋은 환경을 빌려 쓰는 것이기에.. 곱게 사용해야 하는것이다.. 썩지 않는 귤껍질이 거슬린다.

 

13시 32분 : 어느분의 자리인지는 모르지만 곱게쓰고 나서.. 앞에다가 식탁까지 설치해주고 일어선다.

 

이정표가 없었다면 곧바로 직진하여  골밭실골로 가게 되는 주의구간이다. 이정표를 따라 도덕산방향으로..

 

13시 55분 : 국우터널위의 국가지점번호와 삼각점.. 그리고 오래된 산소를 지나서..

 

 안부로 내려서면...

 

옛사람들이 서변동에서 칠곡 동명으로 넘어 다녔을 것 같은 고개 마루에 성황당이 있다.

 

용도를 알수없는 기다란 장대의 끝이 갈라진걸 보니.. 어릴적 밤을 따던 장대 생각이 난다..

 

여기도.. 온갖 오도방정을 떨며 지나간 오도방구들이 할퀴고 간 흔적이 선명하다.

 

 14시 14분 : 219봉..

 

▲ 219봉과 235봉 사이의 안부로 내려가는 길이 오늘 코스증에 가장 가파른 구간이다.

 

▲ 안부에 내려 와서 219봉을 다시 올려다 보니 상당히 가파른길을 내려 왔다.

 

▲ 큰산이던.. 작은산이던 힘들게 올라서면 올라온자에게만 주어지는 작은 선물 같은 멋진 소나무와 시원한 조망이다.

 

▲ 앞산과 멀리 비슬산에 빛내림이다.

 

▲ 화창한 날씨라면 더 없이 좋았겠지만.. 구름낀날의 산그리메의 실루엣도 멋지다.

 

14시 27분 : 258봉..

여기까지가 연리지길이고 오른쪽은 연경동과 광해군태실 방향이다..

 

▲ 도덕봉으로 이어지는 행복어울숲길의 시작이다.

 

15시 01분 : 여기서.. 도덕산방향으로 갔어야 하는데.. 이정표의 도남동방향을 보고 진행해 버렸다..

 

▲ 10여분 내려가다가 하산길이 아닌것 같아서 산악앱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아니다.. 에라이~ 그냥 하산이다..

 

▲ 곰취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이 겨울에 곰취라니.. 아시는 분.. 이름 부탁합니다.

 

▲ 상류쪽은 윗솟골..

 

▲ 마을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 내려온 길을 뒤 돌아 보니 349봉 전에 내려와 버렸다.

 

▲ 못 이름이 "정지" 다..

 

▲ 도남동 솟골길을 따라 바로 보이는 현대아파트쪽으로..

 

▲ 처음 계획했던 하산길은 여기였다..

 

15시 47분 : 국우동현대아파트정류장에 도착하자 말자.. 내가 타고갈 706번 버스도 바로 도착한다..

시내에서 306번 버스로 환승하여 귀가 하였다..

 

▲ 오늘로써.. 대구 북구 순환테마길은...

전체 8개 구간중에 서로 겹치게 되는 도덕둘레길 일부와 서리지 둘레길의 일부 지능선을 제외한 98%의 완주를 마친다.

2024년 12월 12일(목).

월영교. 안동댐. 예끼마을. 선성수상길 : 경북 안동시.

 

매월 둘째 목요일이면 떠나는 백호트레킹에서 경북 안동으로 간다고 한다..

경북 안동은.. 영남 여행 일번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으로.. 부담없이 다녀올수 있는 여행지다. 월영교는 두번째 이지만

안동댐.. 예끼마을과 선성수상길은 미답지이기에.. 여행은 설렘이다..라는 말처럼 설렘을 가득 안고 백호 애마에 오른다.

 

트레킹코스 : 법흥교-안동호반나들이길-월영정-영락교-안동시립박물관-안동댐-안동폭포공원주차장.

트레킹시작 : 법흥교  09시 22분.

트레킹종료 : 폭포공원주차장  11시 26분.

전체거리 : 약6.2km.

전체시간 : 02시간 04분.

운동시간 : 01시간 48분.

휴식시간 : 00시간 52분.

 

09 : 22  법흥교.

09 : 32  보조댐.

10 : 04  월영정.

10 : 16  영락교.

10 : 20  박물관광장.

10 : 59  안동댐.

11 : 25  폭포공원주차장.

 

09시 22분 : 경북 안동시 용상동 법흥교.

 

▲ 안동호반나들이길 시작점에서 데크로 진입하면.

 

낙동강 건너로 좌측은 임청각... 오른쪽으로는 법흥사지 7층전탑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7층전탑에서 출발을 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 보조댐이 보이는곳에서.

 

 강 건너편의 안동  신세동 7층전탑(국보 제16호 1962년 12월 20일)을 눈앞까지 당겨 온다. 

일제강점기에 경부선을 놓으면서 전탑 바로앞에까지 철길을 놓아 민족 정신을 말살한 아픔의 현장이다. 

높이 17m. 국보 제16호인. 한국 최고(最古) 최대의 전탑이다. 기단(基壇)은 단층에 평면은 방형(方形)인데 현재는 지표에

팔부중상(八部衆像) 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한 화강석 판석을 1면에 6매씩 세우고 남면 중앙에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전탑(塼塔) 이라는 것은 흙벽돌을 쌓아 만든 탑을 말한다...

 

 전에 없던 다리가 보인다.

 

 잘 나가던 데크길이 갑자기 막히면서 부교쪽으로 돌아가라 한다.

 

 일반 자동차다리는 아닌것 같고 열차철교 인것 같은데 무슨 공사인지 알수가 없다.

 

 데크길을 부교로 돌려 놓은 이유를 알것 같다... 아마도 다리 상판공사를 하면서 무엇인가의 추락으로 망가졌을 것이다.

 

월영교와 월영정..

 

월영교와 월영정은 밤에 보는 야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중국의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서호(西湖)에 보름달이 뜨는날 석등에 불을 밝히면 삼담인월(三潭印月)이라 하여 세개의

달이 뜬다고 했다... 규모면에서는 서호에 못미치지만.. 이곳, 월영교 야경도 어느곳 못지 않게 너무나 아름답다.

 

09시 59분 : 안동호반나들이길 종점.. 출발지점에서 27분 소요되었다.

 

바닥에 살얼음이 끼어.. 매우 미끄럽다..

 

 월영정.. 부식방지용 도색 작업중이라서.. 누각에 오름은 출입금지다.

 

10시 04분 : 월영정(月映亭).. 달이 비치는 정자...라는 뜻이다.

 

 월영교는... 

2003년 개통되었으며 길이 387m, 너비 3.6m로 국내에서는 가장 긴 목책 인도교이다. 

다리 한가운데에는 월영정(月映亭)이 있다. 월영교란 명칭은 시민의 의견을 모아 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이라는 지명을 참고로 확정되었다.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

은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들게 한다. 천공으로부터 내려온 달을 강물에 띄운 채 가슴에 파고든 아린 달빛은 잊힌

꿈을 일깨우고 다시 호수의 달빛이 되어 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월영교는 이런 자연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

도록 기념하고자 했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이 다리 모습에 담았다.

그들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고자 오늘 우리는 이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올라 그들의 숭고한 사랑의 달빛

을 우리의 사랑과 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119구급대.. 근무중 이상무..

 

 조금후에 가게될 안동댐..

 

10시 16분 : 영락교..

 

10시 20분 : 안동시립박물관 광장 도착.. 조금후에 차량으로 안동본댐으로 이동할 것이다.

 

 

10시 53분 : 안동본댐 입구..

1971년에 착공하여 1976년에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揚水) 겸용 발전소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낙동강 상류에 건설된 댐. 이로 인해 인공호수인 안동호가 형성되었으며.. 높이 83m, 길이 612m, 체적

4,014천㎥, 저수용량 12억 4,800만㎥의 중앙차수벽형 사력댐으로 시설용량 90,000㎾의 수력발전소를 갖추고 있다.

 

▲ 고 박정희 전대통령의 기념식수인.. 주목이다..

 

아직은 몸도 마음도 청춘이여라!~..

 

 그리고.. 소녀 감성이어라!~.. 멋지십니다.

 

 안동본댐 상류..

 

 안동본댐 하류..

 

 안동루..

 

11시 30분 : 폭포공원에서..

 

 마음점을 찍고.. 폭포공원 한바퀴.. 휘리리릭~...

 

 안동본댐 공사시 순직하신분들의 위령비..

 

 안동본댐의 위용..

 

 

트레킹코스 : 예끼마을주차장-선성수상길-반환점-선성현문화단지-송곡고택-예끼마을-주차장.

트레킹시작 : 예끼마을주차장  12시 31분.

트레킹종료 : 예끼마을주차장  13시 54분.

전체거리 : 약4.2km.

전체시간 : 01시간 23분.

운동시간 : 01시간 23분.

휴식시간 : 00시간 00분.

 

12 : 31  예끼마을주차장.

12 : 38  선성수상길.

12 : 49  반환점.

13 : 09  선성현문화단지.

13 : 21  송곡고택.

13 : 54  예끼마을주차장.

 

 예끼마을주차장..

 

 선성현문화단지입구..

 

 선성현문화단지와 예끼마을은 선성수상길을 다녀온 후에 들리기로 하고..

 

선성수상길 입구..

 

예끼 마을에 자리한 선성 수상 길은 물 위에 놓인 길이다. 선성현 문화단지와 안동 호반자연휴양림을 연결하는 이 길은

약 1km 길이에 폭 2.75m에 이르는 데크로 조성되었으며 물 위에 뜨는 부교 형태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도 자연과 조화로우면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1909년 4월에 설립된 수몰되기전 예안국민학교 사진과 교가(校歌)와..

 

옛추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풍금이 놓여져 있어 이색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12시 49분 : 여기를 반환점으로 하고...

안동선비순례길1구간 종점인 월천서당까지의 아쉬운마음을 고이접어 벤치 위에 올려놓고 돌아가기로 한다..

 

 돌아가는길에 화랑산악회 회장님을 만나..

 

 네사람을 롱다리로 만들어 놓고 헤어진다..

 

 예안향교..

1415년(태종 15)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물밑에 예안면소재지가 잠겨 있다는 얘기다...

 

 선성현문화단지 가는길..

 

 선성현문화단지는...

929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고창전투를 치를 때 고려에 귀순하여 자신을 도와 견훤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신라국 선곡 현감 ‘이능선’의 공로를 인정해 선곡(善谷)을 선성(宣城)으로 개칭하였다는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토대로

옛 선성현 관아를 복원 및 재건하여 놓은 곳이다..

 

 

 

 관아의 무기류를 보관하던 곳이라 해서 기대 했더니 관복만 보관되어 있다...

 

 

 

 퇴계 이황선생의 3첩반상을 보려 했는데... 정지문이 잠겨 있다.

 

 선성현아문..

 

 송원정이라는.. 전망대가 있다 하여.. 올라갔더니..

 

주변의 나무들에 가려서 조망은 꽝이다..

 

 내려다 본 선성현문화단지.

 

 용암정은 패쓰하고 송곡고택으로..

 

 송곡고택은..

19세기 중엽에 건립된 도산(陶山)에서 대대로 살아오는 평산신씨(平山申氏) 송곡파(松谷派)의 종택(宗宅 : 큰집)이다.

원래 이집은 구(舊) 예안면 서부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5년에 현 위치로 옮겨졌다...

 

 송곡고택의 금백서당(今白書堂)은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며.. 현판은 백범 김구선생의 친필로 전해진다.

 

 예끼마을 둘러 보기.. 예술과 끼가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예끼마을의 한옥체험관은...

선성현 문화단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옛 관아를 복원해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안동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건립하여 인근에는 한국국학진흥원과 예안향교, 산림과학박물관, 도산서원 등 유교문화 탐방로를 통해

관람할 수 있어 휴양과 힐링이 가능한 최고의 한옥 숙박 체험 시설이다.

 

14시 52분 : 폐역이 된.. 구 안동역..

안동의 옛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채..1931년부터 90년간 운영된 후 2020년 12월 새 역사로 이전하며 그 역할을 마감하였다.

 

여행이란..

보면 볼수록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더 많이 감사하게 된다고 했다..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선성수상길과 선비의 길을..

겨울같지 않았던 봄날 같은 복받은 날에

힐링과 선비풍류의 멋을 알고.. 안동의 찜닭맛까지 즐김에..

감사한 하루다.

2024년 12월 05일(목).

괴음산. 송등산. 호구산 : 경남 남해군.

 

산행코스 : 평현고개-떡고개-괴음산-송등산-호구산-돗틀바위-앵강고개갈림길-용문사-용문사주차장.

산행시작 : 평현고개  09시 49분.

산행종료 : 용문사주차장  15시 47분.

전체거리 : 약13.6km.

전체시간 : 05시간 57분.

운동시간 : 05시간 38분.

휴식시간 : 00시간 19분.

 

09 : 49  평현고개.

10 : 29  떡고개.

11 : 38  괴음산.

12 : 23  송등산.

13 : 45  호구산.

14 : 19  돗틀바위.

14 : 47  임도.

15 : 23  용문사.

15 : 47  용문사주차장.

 

 07시 47분 : 화랑산악회 송년산행 회장님 인사말...

회장님의 얼굴이 "싱글벙글"이다..첫째.. 년말에 만차 산행이어서 "싱글싱글"이고.. 둘째.. 협력산악회인 산어귀산악회에서

현직 산행대장 5명이 전원참석해서 "벙글벙글"이다.. 참고로 산어귀산악회는 산행대장 5명이 산행을 리딩한다고 한다.

 

 09시 45분 : 경남 남해군 평현고개 도착.

뭐니뭐니해도 산악회의 꽃은.. 회원님들의 만차 참석이다. 웃음꽃 활짝피운 회장님처럼 화랑의 애마도 기분좋게 달려왔다.

 

남해의 최고봉인 망운산의 상봉을 배경으로..

 

사거리에서 봉성마을입구로 건너가면 마을 표시석의 맞은편 절개지에 산행들머리가 있다.

 

09시 49분 : 산행출발..

 

봉성마을표시석과 마주하는..

 

 코너지점이 산행 들머리다...

 

오늘 걷게 되는 이길은 남해지맥길이다...

남해지맥(南海枝脈)은 산경표나 신산경표에서는 바다에 의해서 그 맥이 끊겼다고 제외시켜 버린 남해도의 최북단인 남해

대교 건너편의 노량에서 시작해서 산성산(158m), 구두산(377m), 금음산(480.9m), 대국산(371m), 삼봉산(420m), 망운산

(786m), 관대봉(595m), 괴음산(605m), 송등산(617m), 호구산(622m), 금산(705m), 망산(287m)을 지나 남해도의 최남단인

미조항 밧바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8.7km인 산줄기를 말한다.

 

 10시 16분 : 191봉을 넘어서면...

 

 전형적인 섬산답게 급내림이다... 뒤에서 길을 잘못들었으니 돌아오라고 고래고래 고래를 잡는다.. 하지만...

 

 나는 외금마을에서 오는 임도와 만난다는걸 알기에 그대로 내려오니 역시나 만난다...

 

 떡고개 방향으로...

 

 올라서면 떡고개다... 약200m정도 둘러 온 셈이다.

 

 10시 29분 : 떡고개에서 좌측으로..

 

오늘의 남해 날씨는...

최저 4도에서 영상11도에.. 바람은 6m/s~8m/s이고 체감온도는 8도에 맑음이다... 출발후 현재까지는 잠잠하다.

 

 이정표에 거리 수치가 없다... 거리를 알고 지루하게 가는것 보다.. 차라리 거리를 모르고 가는게 나을때도 있다..

 

 10시 51분 : 임도 끝지점...

 

 발아래 봉성저수지 너머로 전남 여수의 진산 영취산과 제석산이 반갑다며 아는체를 한다...

 

 10시 59분 : 조망바위... 귀비산은 송등산에서 흘러내려서..

 

 대부산까지 이어진다...

 

 다시 괴음산을 향해서...

 

 운지버섯이...마치 솔방울처럼 피었다..

 

남해읍 전경..

 

 11시 38분 : 괴음산 정상..

 

괴음산의 괴는.. '홰나무 괴(槐), 그늘 음(陰)' 자로 '홰나무의 그늘로 이뤄진 산'이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홰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槐'(괴)자는 귀신과 나무를 합쳐서 만든 글자이다. 회화나무가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은 것은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궁궐의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었다.

그리고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회화나무를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홰나무가 많이 있었던 산인지는 알 수가 없다.

 

 괴음산에서 10여분 편안한 길이 이어지다가..

 

 11시 52분 : 다정마을 갈림길에서부터는..

 

 발디딤을 조심해야 하는 거친길이 안부로 내려가다가..

 

다시 오름이 시작되는 곳에서..

 

뒤를 돌아보니 괴음산이 어느새 저만치 물러나 있다.

 

12시 15분 : 송등산 암릉.. 은색의 스테인레스로 안전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드디어 호구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창선도의 대방산 뒤로 경남 사천시의 진산 와룡산이 보인다.

 

12시 23분 : 송등산 도착..

 

송등산(松登山)은.. 북쪽 괴음산에서 남쪽으로 이동면 용소리와 남면 당항리로 이어지는 산줄기 중간에 있는 산으로...

『광여도』에 고동산 선재봉산(顧東山 船材封山)으로 처음 기록되며, 『동여도』에 봉산(封山), 『대동방여전도』에 송봉산

(松封山)이 표기되어 있다. 봉산이란 숙종 이후 전선이나 조운선의 선박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민간의 이용을 금지한 국용

목재 생산처이다. 선박재료로 소나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송봉산이란 명칭도 사용되었다. 이 산등성이에 소나무가 많이

서 있는 것을 어느 도사가 보고.. 산 이름을 송등산(松登山)이라 지어주었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송등산(松登山)에서 마음점을 찍고 가야할 호구산 능선을 가늠해 본다.

 

▲ 당겨 본 호구산..

 

청미래 덩굴..

 

 개미핱기같은 녀석이 엉금엉금 기어 오르고 있다..

 

 용문사 탈출로 1..

이정표의 표기에 이상이 있다.. 염불암이 아니라 백련암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금산과 앵강만.. 그리고 노도..

 

용문사 탈출로 2..

염불암 직전에 좌측으로 올라오는 길이다.

 

용문사 탈출로 3..

염불암을 지나서 호구산을 향해 올라 오다가 좌측으로 올라오는 길이다.

 

13시 22분 : 안내도상의 조망바위..

 

아미타불!~~.. 성불 하이소~..ㅎ..

 

용문사 탈출로 4..

염불암쪽으로 가다가 호구산으로도 갈수가 있다..그러나 길은 좋은데 둘러가게 된다.. 나는 호구산 좌측길로 올라 간다..

 

▲ 소사나무군락지.

 

13시 42분 : 호구산정상에서 걸어 왔던 송등산 길을 뒤돌아 본다..

 

호구산정상에서 북쪽으로는 남해읍이고..

 

북동쪽으로 살짝 돌리면.. 사천시 방면의 창선도와 와룡산이다..

 

남쪽은 설흘산과 응봉산.. 그리고 그 너머로는 전남 여수의 금오도가 길게 누워 있다..

 

설흘산 너머의 윤슬이 유난히 빛나보여서 당겨보았다...

 

그리고.. 호구산의 봉화대..

 

▲ 호구산의 정상석은 조금 아래쪽에 있다..

 

정상석에는 납산이라 되어있다. 

납산의 ‘납’은 원숭이의 옛말이니 원숭이산이고, 원숭이는 한자로 원(猿)이니 원산(猿山)이다.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한자로 쓴 책이므로 '원산(猿山)'이라고 기록했다. 원숭이의 옛말 납(나무 사이를

날라 다니는 동물)을 빌려 ‘납(猿)산’이라고 새겼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1530년 이전에도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옛 선인들은 원숭이의 생김새나 그 존재를 알고 납산이라 했는지..

정작 이 산의 공식 이름은 한자 범호, 언덕구를 써서 호구산(虎丘山)이다.

 

▲ 앵강만과 노도...그림처럼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다.

꾀꼬리 앵(鶯)자에 물 강(江)자를 쓰면서 '비 내리는 밤에 꾀꼬리 울음소리가 나고 꾀꼬리 눈물 같은 빗물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로 흘러내렸다고 전해지며, "꾀꼬리의 눈물바다'로 불리우기도 하였다고 한다.

 

▲ 호구산의 거대한 암릉을 내려서..

 

▲ 돗틀바위를 찾아 간다.

 

 용문사 탈출로 5.. 돗틀바위는 석평쪽으로..

 

 석평마을 갈림길을 지나서 앵강고개 방향으로...

 

 용문사 탈출로 6..

여기에도 용문사탈출로가 있지만.. 이길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 묵은길이다..

 

남해장성(南海長城).

신라 말. 고려 초기, 방어용으로 만든 성곽으로 길이가 총 15㎞에 달한다. 1996년 경남도 기념물 제154호로 지정했다...

 

성은 1000년 세월, 온갖 풍상에 훼손됐지만 남은 성돌은 그것이 역사가 돼 오히려 시냇가 조약돌처럼 깨끗하다.

남해안에 축조된 성의 목적이 모두 그렇듯이 이 성 역시 왜의 진출을 막기 위한 방어용이다..

 

김만중의 유배지.. 앵강만의 노도..

생김새가 마치 배의 노(櫓)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여진 노도는(지역민들은 삿갓을 닮았다고 하여 '삿갓섬'으로 부른다)

벽련마을 서남쪽에 있는 섬으로 방패처럼 파도와 해적을 막아 주던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도서이다. 조선 중기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한글 소설문학의 선구자인 서포 김만중(金萬重.1637〜1692)이 유배 와서 56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살았던

섬이다. 그는 이 섬에서 어머니를 위해 <구운몽>과 정경부인 윤씨를 위해 <사씨남정기>를 지었다.

 

▲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진은 어디서든 담아도 그림이 된다.

 

▲ 아래쪽에 돗틀바위가 보인다.

 

▲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보아야 돗틀바위를 정면으로 만난다..

 

▲ 14시 19분 : 돗틀바위..

돗틀이란 돗자리를 짜는 틀을 말한다. 돗틀바위 위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앵강만의 조망은 너무나 절경이다.

 

▲ 호구산 산행에서 최고의 백미로 꼽는 돗틀바위 기암괴석들과 아름다운 산세를 뒤로 하고.

 

14시 47분 : 앵강고개 갈림길.

 

▲ 축사대장군과 여장군... 요사한 악귀와 잡신을 물리친다는 장승이다.

 

▲ 호구산 용문사 일주문.

 

▲ 호구산 용문사 일주문 편액은 고산당(杲山堂) 혜원대종사(慧元大宗師)의 글씨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과 계율(戒律)을 관장하는 전계대화상을 지낸 쌍계총림 방장이셨던 고산당(杲山堂) 혜원

대종사(慧元大宗師)는 포교에 힘쓰면서도 평생 수행자의 강직함을 지켜 ‘지리산의 무쇠소’로 불렸다

 

한 번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섬이 없었고,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여길 때는 단호히 거부해 붙여진 별칭이었다.

1998년 제29대 총무원장에 선출됐지만 이후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홀연히 자리를 떠나 주변을 놀라게

했다. 평생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선농일치(禪農一致)의 모범이 됐다.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선생의 용문사 시비(詩碑)다...

 

우욕래시천욕저(雨欲來時天欲低)

비가 오려하는지 하늘은 낮게 가라앉았는데

 

초제봉재석문서(招提逢在石門西)

산사는 아득히 석문 서쪽에 자리했는데

 

심사점입영원수(尋師漸入靈源邃)

스님을 찾아 점점 영원깊이 들어가니

 

만학풍연일경미(滿壑風煙一逕迷)

골짜기따라 안개가 가득해 한줄기 길이 아련하네...

 

400여년전 조선시대 때 기생 황진이에 버금가는 기생 매창(梅窓)과 천민 출신의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시인과의 운명

적인 만남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유명하다. 용문사에 <유희경>과 관련한 유물이 보관 되어 있다고 한다.

 

▲ 지장 대도량..

용문사는 우리나라 5대 지장기도도량중의 하나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 연천 심원사.. 완주 송광사.. 서산 개심사.. 그리고 남해 용문사 이며..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육도(六道)의.. 하늘(天). 인간(人間). 아수라(阿修羅).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을 윤회하면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구제해 준다는 구원의 보살이다.

 

▲ 그 옛날 어촌 특유의 상징물이었던 남근석도.. 이제는 시대의 산물로 방치되고 있다..

 

▲ 호구산이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편입되었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세뿔투구꽃"과 "팔색조"등의 멸종위기야생생물 등이 발견된 호구산은 1983년 남해군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일부 지역

(1181k㎡)이 2023년 8월에 국립공원으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 호구산 용문사 천왕각..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02년에 다시 지은 용문사의 관문이다.

 

남해 용문사 천왕문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사천왕 발밑이다. 다른 절의 사천왕은 마귀를 밟고 있는데 용문사 사천왕은

탐관오리와 양반을 밟고 있다. 고통 받고 신음하는 백성들 곁에 있고자 했던 이 사찰의 정신이 표현되어 있다.

 

▲ 비파를 들고 있는 동쪽의 지국천왕..  칼을 들고 있는 남쪽의 증장천왕.. 각 천왕이 밟고 있는 부정한 양반과 관리..

 

▲ 용을 들고 있는 서쪽의 광목천왕..  창을 들고 있는 북쪽의 다문천왕.. 각 천왕이 밟고 있는 부정한 양반과 관리..

 

▲ 천왕각 앞에 낡은 비가 보여서 알아보니.. 전 사과 박공 필종 사시비(前 司果 朴公 弼種 捨施碑)다..

구한말 종육품 무관 사과(司果) 벼슬을 지낸 박필종 공의 시주(施主)비 라는 얘기다.

 

박필종공은 고향 하동으로 낙향해 수천석 전답을 일군 뒤 일제강점기 소작인들에게 수확의 절반을 나눠주고 세금도 모두

내주었으며 진주고 진주여고 북천초등학교 설립 때 거금의 건립비를 대었고 구례 화엄사를 비롯해 남해 용문사에도 시주

를 많이 하여.. 이 일대에서 적선대가로 칭송받은 분이었다고 한다.

 

▲ 봉서루(경남 문화재자료394호).

 

 

▲ 용문사 대웅전..

대한불교조계종 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용문사는 원효대사가 금산에 보광사라는 이름으로 802년(신라 애장왕3)에 창건 하였으나 1661년(조선 현종2) 학진(學進)

이 호구산으로 옮기면서 용연(龍淵) 위에 있다고 해서 용문사라 하였다. 용문사에는 보물1446호 괘불탱화가있고 원효대사

가 직접만든 불상도있다.

 

▲ 용문사에는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제85호), 석불(지방유형문화재 제138호), 천왕각(문화재자료 제150호), 명부전

(문화재자료 제151호), 촌은집책판(경남유형문화재 제172호)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용문사 지장삼존대불.

 

▲ 지장보살상..

 

▲ 해발600m대의 돌산이고 완만하지도 않은 급경사의 계곡인 호구산 용문사에 이렇게 물이 풍부하다는게 신비스럽다.

 

▲ 용문사의 많은 부도탑은 유명한 선사들의 배출이 많았음을 말해준다..

 

▲ 호은당대선사 행적비.

바위에 낙서한 사람들.. 군수도 있고 면장도 있다.. 지금쯤 저 높은 곳에서 아직도 두손들고 벌 서고 있을 것이다..

 

▲ 용문사주차장은.. 해마다 산악회 시산제 시즌이 되면 전국의 산악회버스들의 행렬이 줄을 이어 몰려오는 곳이다..

 

▲ 용소저수지.

 

▲ 15시 47분 : 산행종료..

 

▲ 트랭글을 정리해 보니 전체거리 13.6km에 평균산행속도 2.4km/h... 아주 양호한 성적이다.

 

▲ 17시 08분 : 사천시 삼천포항 OO건어물에서 하산주.

 

▲ 2024년 년말 송년산행.

화랑과 함께 1년간 걸어왔던 길..

무사무탈의 길로 마무리 할수 있어서 행복했구요.. 수고했습니다.

 

끝이란 또 다른 시작이다..

오늘의 마무리는 내일의 시작인 것이다.

 

또다른 시작도 무사무탈이 될것이고..

덕분에 행복한 1년이 되리라 기대 합니다.

2024년 12월 01일(일).

영축산 : 경남 창녕군.

 

산행코스 : 법성사주차장-515봉-고래바위-영축산-신선봉갈림길-구봉사갈림길-변봉갈림길-법성사주차장.

산행시작 : 법성사주차장  09시 19분.

산행종료 : 법성사주차장  13시 48분.

전체거리 : 약5.69km.

전체시간 : 04시간 29분.

운동시간 : 03시간 18분.

휴식시간 : 01시간 11분.

 

09 : 19  법성사주차장.

10 : 30  515봉.

11 : 14  고래바위.

11 : 20  영축산.

12 : 15  신선봉갈림길.

12 : 21  구봉사갈림길.

12 : 24  변봉갈림길.

13 : 48  법성사주차장.

 

 09시 19분 : 법성사주차장 출발.

 

법성사는...

대한불교관음종(大韓佛敎觀音宗)소속이며.. 덕도당 법성보살이 사재를 털어서 1985년에 창건한 절이기에 할머니 보살 절

이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법성사주차장 윗길을 따라 올라 가다가..

 

사리마을길을 우회하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계곡건너에 화왕산으로 이어지는 석대산이

향기나번개팀을 만나고 싶다며 한번 찾아와 달라고 하는것 같다.

 

09시 27분 : 영축산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에서...

 

이정표가 안내하는 오른쪽 숲길로 진행한다. 충효사 구봉사길은 하산길이다.

 

두번째 이정표가 안내하는 숲길로 숨어 들면..

 

촉촉한 낙엽이 융단을 깔아놓은듯한 편안한 숲길로 이어 진다.

 

 3년전에 지나갈때는 쓰러진 고목이 길을 막았었는데.. 톱으로 잘라서 깨끗하게 길을 틔어 놓았다.

 

쭉쭉빵빵의 소나무 숲길에서 너덜길을 만나지만..

 

생각보다 발디딤이 괜찮아서..

 

 다들 잘도 넘어 온다.

 

▲ 그늘이 짙은 소나무숲에 갇혀서 태양 광합성작용을 제대로 못했는지 붉은색은 없이 누렇게 되었다..

 

 소나무숲길에서 잠시 휴식..

오늘의 창녕날씨는 -1도에서 영상15도에 바람은 초당1m/s이다. 춥지는 않고 움직인만큼 몸이 더워지는 기분좋은 온도다.

 

 서서히 고도를 올리면서..

 

조망이 열리며 옥천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구룡산 관룡산이 시원하다.

 

 다시 잠시 편안한 수평길이 이어지다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바위들이 날카롭게 일어서며 본격적인 암릉길이 시작된다.

 

 하산길로 잡은 건너편 능선상의 장군바위에 3년전에는 없었던 데크전망대가 보인다.

 

▲ 창녕읍을 가로막은 석대산 능선을 따라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 옥천저수지 위로 창녕의 진산들이 마루금을 그리며 달려간다..

 

 경주 마석산에서 보았던 삼지창을 닮은 바위가 여기에서도 보인다.

 

10시 30분 : 515봉에서 역광의 억새 솜털.

 

 영축산 대포 1..

 

 이 바위는..

 

 오늘 총무대행을 수행하기위해 함께하지 못한 부회장님이.. 3년전에 요런 사진을 담았던 곳이다.. ㅎㅎ~.

 

▲ 정상으로 갈수록 영축산의 기암들이 점입가경이다.. 아기자기한 기암괴석의 전시장이다..

 

 영축산아래 암벽에 붙어있는 충효사와 구봉사가 제비집처럼 보인다...

경남 창녕 영축산부근에는 절집이 많다. 경남 창녕 지역은 신라와 가야의 국경지역이여서 다툼이 많았을 것으로 사료되며..

옛날 이 지역민들은 전쟁통에 힘들고 어려운 삶을 석가모니 부처님께 의지하며 나라의 안녕과 평온을 기원했을 것이다.

신선봉에 있는 영축산성에서 옛 신라와 가야의 다툼을 엿볼 수 있다.

 

 영축산 대포 2..

 

 영축산의 독수리..

 

 영축산 대포 3..

 

 영축산이 폭우와 바람과 태양과 시간을 제공하며 정성으로 키워내고 있는.. 분재송들이다..

 

 영축산이 기르고 있는고래바위다.. 기암 중 최고의 인기 명소로 인증샷 포토존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 망망대해에서 머리를 들고 튀어 오르는 모습이다...

 

11시 20분 : 좌측은 영축산 구 정상석이고.. 오른쪽은 2000년도에 새로 세운 정상석이다..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 되었다.

불교에서는 영취산(영험할 영'靈' 수리 취'鷲' 뫼山)이라 쓰고 읽기는 "영축산"이라 읽는다.

 

신선봉능선..

 

 11시 29분 : 영축산 정상에 개점한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마음에 점을 찍는다. 잘먹었습니다.

 

착한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자연의 유리통창을 활짝 열어 놓은... 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선경이다.

 

올록볼록한.. 엠보싱(embossing)의 곡선과 그속에 삶의 터전이 있고 민초들이 살아가는 스토리가 스며들어 있다..

 

따뜻한 봄날같은 영축산 최고의 식당에서 산아래에서 올라오는 삶의 소리를 들어며... 산상의 맛점을 하는 솔잎님들..

 

12시 13분 : 영축산에서 최상의 맛점을 하고.. 하산할 시간이다.

 

▲ 멀리 정상의 암릉이 너무나 좋았던 변봉이 이제는 안찾아 올거냐고 묻는다...

산꾼들에게 병봉(屛峰)으로 잘못 알려진 산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에도 병봉으로 나와 있어서.. 나역시

잘못 알고 있었다. 창녕군에 의하면.. 병풍 병(屛)이아니라.. ‘고깔 변(弁)’자인 "변봉"이 맞다고 한다.

 

 영축산 장상에서의 하산길이 까탈스럽다.. 조심조심..

 

 영축산 방구돌의 포스(force)가 예사롭지가 않다.. 이 바위에 마애불이라도 새겨져 있었더라면..

 

신선봉 갈림길에서 변봉방향으로..

 

 아차바위..

지나갈때 머리위의 바위가 금방이라도 떨어질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능선뒤로 숨으려고 하는 변봉에게 눈으로 달래주고..

 

 구봉사.. 충효사 갈림길에서 일부는 내려가고 우리는 풀코스로..

 

 작은 봉우리를 올라서면..

 

 12시 24분 : 변봉갈림길... 여기서 우리는 사리마을로 내려 간다..

 

 최근에 설치한듯한 가이드..

 

야자매트도 깔아놓았다.. 일부사람들은 낭비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보다는 득이 더 많은 토사흐름을 예방 해준다.

 

▲ 영축산에 신령님이 계신다면...

 

▲ 솔잎 삼인방 선녀님들의 재롱(?)잔치에...

 

▲ 최고의 기분이고 흐뭇한 하루였다고 하실것 같다...ㅎㅎ~..

 

▲ 찡그린 바위... 무에 그리도 심통이 났는고?..

 

▲ 청련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국가유산으로는 창녕 청련사 반자, 목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 영산회후불탱 등이 있다.

 

▲ 장군바위.. 올라갈때 당겨보았던 데크전망대가 그대로다.

 

▲ 하산길의 암릉길은 여기서 끝이 나고...

 

13시 25분 : 구봉사..충효사로가는 임도 만남.

 

▲ 구순이 다 되어 가시는 89세의 김선생님.. 꼿꼿하고 팔팔하게 흐트러짐도 없이 잘도 내려 오신다..

평균수명 연장의 시간을 비례한다면.. 내가 90이 되었을 때에는 지금의 김선생님보다 더 팔팔해야 될텐데..ㅎㅎ~~

 

▲ 구봉사.. 충효사에서 내려오는길..

 

▲ 오늘도 홍여사님의 마술배낭에서 간식먹거리의 매직쇼가 벌어진다.

 

▲ 사리마을길 삼거리...

 

▲ 사은암(四隱巖)..

6가야의 하나인 비화가야(非火伽倻)의 부족장 무덤(고인돌)으로 추정 되며... 옛날.. 이 고을에 4명의 선비 박규순. 박한우.

권우갑. 박규하가 들어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하여 바위에 이름이 새겨졌다고 전해진다...

 

▲ 산행 들머리였던 다리를 건너.. 사리마을로..

 

▲ 사리(舍里) 마을의 돌담..

신라때 불교가 융성하였던 계곡으로 절이 있는 동리라 하며 사리(寺里)라 하였던 것이 같은 음(音)인..집 사(舍)를 써서

사리(舍里)가 되었다고 한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쌓은 돌담이 정겹게 느껴진다..

 

13시 48분 : 법성사주차장 산행종료..

 

트랭글을 정리해보니 5.69km에 평균속도1.7km/h다.. 산행에서의 가장적합한 속도는 2.0km/h다.. 바위를 많이 즐겼다..

 

▲ 문암정(聞巖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신초(辛礎) 장군(1568~1637)을 배향하고 있는 곳이다.

신초(辛礎)의 호인 '문암(聞巖)'은 젊어서 전쟁터에서는 물러남이 없이 필사의 각오로 싸웠으며.. 나이가 들어서 바위에

살면서 덕을 쌓고 학문을 연마하는 선비로 살겠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영산이 본관인 장군은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움으로써 현풍 현감에 제수되었고.. 이어 보성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사후 병조판서를 증직 받았다.

 

▲ 법성사의 다보탑은 석공명장인 윤만걸 선생이 1993년에 만든 작품이다.

 

▲ 법성사를 뒤로하고..

 

 

14시 06분 : 하늘향기가든...

 

▲ 소수의 숨은 일꾼이 있어.. 다수의 입이 즐거워진다.

 

▲ 솔잎산악회 회장님의 건배.

 

▲ 송고문님의 건배..

 

▲ 황 선임자문님의 건배..

 

▲ 홍이사님의 건배..

 

▲ 감사보고...

 

▲ 공로상 시상...

 

▲ 개근상 시상후.. 뒷풀이 노래자랑..

윤수일의 터미널을 시원하게 뽑아내고.. 다시 먹고 마시고 즐기고~..

 

▲ 먹을만큼 먹었고.. 마실만큼 마셨고.. 즐길만큼 즐겼으니 동네한바퀴~~..

 

▲ 메리골드..

 

▲ 구룡산.. 겸재 정선의 산수화 한폭이다.

 

16시 45분 : 옥천저수지상류에서 바라 본 석양의 노을이 곱다..

 

지난 1년간 산하를 누비며..

솔잎산악회를 잘 이끌어준 윤회장님 수고하였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2024년 11월 24일(일).

경주국립공원 단석산 : 경북 경주시.

 

산행코스 : 방내리주차장-화랑바위-불선바위-급제바위-배바위-송곳바위-단석산-방내리주차장.

산행시작 : 방내리주차장  09시 26분.

산행종료 : 방내리주차장  15시 23분.

전체거리 : 약8.05km.

전체시간 : 05시간 57분.

운동시간 : 04시간 31분.

휴식시간 : 01시간 26분.

 

09 : 26  방내리주차장.

10 : 10  화랑바위.

10 : 26  불선바위.

10 : 56  급제바위.

11 : 24  배바위.

11 : 49  송곳바위.

12 : 00  척판대.

12 : 26  단석산.

15 : 23  방내리주차장.

 

09시 20분 : 방내리주차장 도착.

단석산은 오늘로써 네번째 오름이지만... 이곳에서 올라가는 방내리코스는 처음이다.. 산세가 보통이 아니다.

 

09시 26분 : 산행 출발..

 

산행들머리는 천주암입구에서 우측으로 열려 있다.

 

 가을이다 했는데.. 어느새 단풍산행도 지나고.. 이제는 겨울로 가는 낙엽산행이다.

 

단석산은 경주국립공원에 속한 산이라.. 이정표는 잘되어 있지만..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낙엽이 가득하여 길을 이어가기가 만만치가 않다.

 

아마도 동네 주민이 만들어 놓은것 같은 쓰레기 투기금지 표시.. 산에 올라올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왜 올라오는지...

 

 10시 10분 : 화랑바위.. 선바위.. 장군바위.. 천주바위.. 기둥바위로도 불리우는 이름이 많기도 많다.

 

바위뒤쪽은 낭떠러지 이지만.. 돌아가면 지나갈수 있는 길이 있다..

 

건천읍 전경..

 

좌측으로는 수리바위가 우람하다.

 

억겁의 시간을 버텨온 화랑바위인데... 조금씩 균열이 가고 바위조각이 떨어지고 있다..

 

꼭대기를 당겨보니.. 조금씩 살점이 떨어지고 있다..

 

 10시 20분 : 불선바위 갈림길..

 

 불선바위쪽으로는 7명중에 4명만 도전이고 3명은 안가고 내가 올린 사진으로 보겠다고 한다..ㅎㅎ~

 

 불선바위..

해서.. 불선바위 사진들은 세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마술을 부린다..

압얍얍!~~ 세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마라..ㅎㅎ

 

사람의 흔적.. 축대가 보인다.

 

 불선바위 동굴이라는데.. 김유신이 난승을 만나 보검을 받은 굴로 추정하는 곳이다.

삼국통일의 공신인 김유신(金庾信)은 595년(진평왕 17년) 충북 진천에서 만노군(萬弩郡)의 태수이던 서현(敍玄) 장군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로왕의 13대손인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17세에 고구려, 백제의 잦은 침략에 삼국 통일

의 큰 뜻을 품고 서라벌 서쪽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 하고 천지신명에게 고구려, 백제,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 만에 한 난승이 나타나 김유신의 인내와 정성을 가상히 여겨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劍)을

주었다고하는 기록이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에 소개되어 있다.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고구려, 백제와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고 하여, 이름이 단석산(斷石山)이 되었다.

 

 불선바위에서 수리바위를 올려다 보며.. 마술을 풀어주고 돌아온다..ㅋㅋ~ 어때요.. 세사람은 불선바위가 안보이지요?..

 

다시 불선바위 갈림길로 돌아와서 단석산으로 오른길이 매우 가파르다.

 

방내리코스는 찾는이가 적어서인지 그 흔한 산악회 시그널도 전무하고 쌓인 낙엽으로 미끄럽다..

 

급한 오름을 쉬어쉬엄 지능선에 올라서니.. 쉬어 가라며 벤치가 놓여있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니.. 전형적인 가을하늘이다.. 천여년전 화랑 김유신이 누비던 그때의 하늘도 오늘과 같았으리라..

 

다음지도에는 "고단석"으로 나오는 바위를 향해...

 

"고단석"에 올라서면.. 두바위 사이로 기는 길이 보여서...

 

고단석의 끝단부가.. 멋진 조망바위다.. 그런데 삼면이 절벽이라서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출입금지다..

 

"고단석"에서부터 또 한번의 급경사 오름을 만난다.

 

구분이 안되는 낙엽길에 안전 가이드가 없다면 난감할것 같다..

 

11시 11분 : 단석산 주능선에 올라선다.. 건천IC쪽으로 가는 장군봉 종주길이 샛길로 분류되어 출입금지가 되었다.

 

 늦가을 낙엽위에서 마시는 커피.. 향기나 팀의 맛이다.

 

 하늘에서 보면 배처럼 생겼다해서 붙여진 배바위로 올라가는길..

 

 배바위의 명품송..

 

 오늘의 포토제닉상 후보작 1..

향기나 팀은 이 멋진 한장의 사진을 담으려고.. 우리는 가파른 낙엽길을 올라 왔다..

 

오늘의 포토제닉상 후보작 2..

 

이쁜님들의 멋진 작품은 한번 더... 올린다.. 내맘대로니까..ㅎ~

 

오늘의 포토제닉상 후보작 3..

 

나~~안.. 알아요..

난 정말 그대 향기나만을 좋아했어..

언제나 우리에게 이런 기쁨을 안겨 주는 그대 향기나여..

제발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빌어요..

나에겐 오직 향기나팀만이 전부이니까...

 

 오늘의 포토제닉상 후보작 4..

우리모두 마주잡은 두손 꼭잡고 건강하게 향기나의 길을 걸어 갑시다..

 

11시 49분 : 단석산의 명물.. 송곳바위(천주암)..

김유신이 난승에게 받은 보검으로 칼 쓰기를 공부하면서 깎아낸 바위중에 남은 부분이라고 전해진다.

 

송곳바위에서 척판대(천탑봉) 가는길..

 

 12시 00분 : 척판대(천탑봉)..

 

척판대(천탑봉)의 전설..

옛날 당나라 어느 곳에 흉칙스러운 요승(妖僧)이 있어 천 사람의 젊은 제자들을 괴롭혔다.

천 명의 제자들을 혹사시켜 재물을 긁어모을 뿐 먹을 것도 주지 않고 잠도 잘 재워주지 않았다. 그 요승은 요술(妖術)을 잘

부리기 때문에 도망갈수도 없었다. 이 때 원효스님은 경주 단석사에 있었다. 당나라에 요승이 있어 많은 젊은이들을 괴롭

히고 있다는 말을 들은 원효스님은 이 바위 더미에 올라서서 서쪽을 향하여 지팡이를 던졌다.

 

지팡이가 비행접시 모양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날아갔다. 스님의 지팡이는 서해를 건너 요승의 절을 덮어 버렸다.

일 천명의 제자들은 이제 지옥 같은 요승의 우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땅에 떨어진 지팡이를 살펴보니 지팡이에는

해동(海東) 원효(元曉)라 새겨져 있었다. 요승의 1천명 제자들은 감격하여 원효스님을 뵈옵기 위해 바다 천리를 건너고

육지천리를 걸어 단석사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원효스님은 열반하시고 이 세상에 아니 계셨다. 1천 제자들은

슬픔을 못이겨 각각 바위더미에 돌탑을 쌓아 원효스님의 명복을 빌고 갔다. 그래서 이 바위는 천탑암이 되었다.

 

 천탑봉에 천탑은 보이지도 않고..

 

오늘의 천탑봉에는 향기나팀의 웃음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진다.

 

 천탑봉에서 단석산 오름길은 진달래 군락지로 봄이면 장관을 이룬다.

 

여기가 천탑암지가 아닐까..

 

 무심한 기왓장 조각들만 뒹군다..

 

12시 24분 : 백석마을 큰골로 가는 갈림길..

백석마을 비지고개에서 큰골을타고 내려가면 방내리주차장으로 가는데.. 몇해전 홍수로 계곡길이 훼손되어 폐쇄중이다.

 

12시 26분 : 단석산..

중국의 삼국지연의에는 유비와 손권이 동오에서 바위를 앞에 놓고 차례로 칼로 내려치는 대목이 나온다.

유비와 손권은 '대업을 이루게 해 달라'는 저마다의 속마음을 숨기고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기세로 단칼에 바위를 두 동강

낸다. 여포나 관우처럼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용장이 아니었던 이들이 바위를 쪼갰다는 걸 쉬이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난세 효웅들의 야심과 결의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는 전국시대 검성(劍聖)으로 명망이 높았던

야규 무네요시(柳生宗嚴)가 검법의 극의를 터득한 뒤 칼로 큰 돌을 잘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12시 26분 : 단석산 원조 정상석...

삼국통일의 주역인 신라 김유신 장군이 신검을 얻어 단칼에 벴다는 설화가 전해져 오는 단석산 정상의 단석(斷石)이다.

산 이름이 원래 월생산인데, 김유신이 신검으로 바위를 자른 뒤 단석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김유신이 고구려와 백제를 치려고 신검을 구해 월생산(月生山)의 석굴

속에 숨어 들어가 검술을 수련했다. 칼로 큰 돌들을 베어서 산더미같이 쌓였는데, 그 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아래에 절을 짓고 이름을 단석사(斷石寺)라 하였다'.. 라고 적고 있다.

 

신라는 일찍부터 국가 제사를 지내던 다섯 산을 정했는데, 이를 ‘신라오악(新羅五岳)’이라 하며 그 안에 중악(中岳)을

두었다. 신라오악은 삼국통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통일 이전 신라오악은 ‘왕경오악’이라 해 서라벌(현 경주) 주위의

산인 동악 토함산(745.8m), 서악 선도산(380.6m), 남악 남산(468m), 북악 소금강산(176.7m), 중악 낭산(99.5m)인데

김유신 열전에는 단석산이 중악으로 나온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이후에는 동악 토함산, 서악 계룡산(846.5m), 남악 지리산(1915.4m), 북악 태백산(1566.7m), 

중악을 팔공산이라 해 그 범위가 넓어졌다. 화랑의 수련장으로 알려진 데다 단석까지 존재하는 경주의 단석산이 삼국통일

이전과 이후의 중악이라고 유추해 보면 김유신 동굴이 있어 가장 가까워 보인다.

 

12시 59분 : 마음점을 찍는 정나눔의 시간..

 

 단석산에서.. 김유신은 보검을 내려치고.. 향기나팀은 술잔을 부딛친다...

 

향기나팀의 산대장님의 뒷모습에서 향기나의 걸어온길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코로나로 벙개팀이 만들어지고.. 한달에 한번 산행을 원칙으로 정례화되면서 언제나 솔선수범이다..

 

 급내림길도 조심하고..

 

 조망이 좋았던 고단석바위도 지나고..

 

출발지였던 방내리 주차장도 보인다.

방내리라는 지명은.. 단석산이 마을을 둘러 아늑한 방안에 들어 온 것 같아서 방내(房內)라 불렀다 하며, 꽃다운 화랑들이

단석산에서 무술 연마를 한 데서 ‘꽃안’을 뜻하는 방내(芳內)라 했다는 설도 있다.

 

 불선바위 갈림길로 내려가는 급내림도 조심하고..

 

 화랑바위 전망대도 통과하고..

 

 들머리에서 하이 파이브(high five)를 하는 산대장님.. 수고했습니다..

 

잠깐 천주암 대웅전을 보고갈려고 했더니.. 일주문이 높다랗게 버티고 섰다.. 불자도 아니고 수행승도 아니니 돌아선다.

 

천주암 일주문에서 바라본 눈뜬바위 능선..

 

 15시 23분 : 방내리주차장 종료.

 

 

옛날 신라 화랑들의 수련장이었던 안전한 방내리주차장에서... 우리는 삼겹살 목넘김 훈련을 한다.

 

푸짐한 먹거리들...

조목조목 열거하지 않아도 향기나님들이 정성의 손길로 바리바리 준비한 싱싱한 먹거리들이다..

 

수고로움 덕분에 목젖이 호강하고 잘 마시고 잘 먹었습니다...

 

행복한 단석산의 하루...

함께 걸어온 향기나팀의 길은.. 앞으로도 쭉쭉쭈~~욱..

2024년 11월 13일(수).

해인사12암자 : 경남 합천군.

 

트레킹코스 : 해인사입구-성보박물관-보현암-금강굴-삼선암-금선암-원당암-

홍제암-용탑선원-해인사-성철스님사리탑-지족암-희랑대-백련암-국일암-약수암.

트레킹시작 : 해인사입구  09시 20분.

트레킹종료 : 해인사입구  14시 28분.

전체거리 : 약11km.

전체시간 : 05시간 08분.

운동시간 : 04시간 24분.

휴식시간 : 00시간 44분.

 

09 : 20  해인사입구.

09 : 31  성보박물관.

09 : 42  보현암.

09 : 46  금강굴.

09 : 57  삼선암.

10 : 01  금선암.

10 : 10  원당암.

10 : 28  홍제암.

10 : 42  용탑선원.

10 : 51  해인사.

11 : 34  성철스님사리탑.

12 : 35  지족암.

12 : 53  희랑대.

13 : 19  백련암.

13 : 55  국일암.

14 : 03  약수암.

14 : 28  해인사입구.

 

09시 20분 : 해인사입구 도착.

대구서부정류장을 08시 01분에 출발하여 약 1시간20분이 소요되었다. 요금은 8900원..

 

지난주인 11월 07일에 경북 성주군 법전리에서 가야산정상을 오르고 토신골을 경유하여 이곳으로 하산하였는데..

해인사에 들리지 못한 아쉬움에 6일만에 다시.. 해인사와 12암자를 탐방하기 위해 역순으로 올라간다.

 

불자가 아닌 내가 사찰을 찾는 이유는...

자연과 잘 어우러진 각종 문화재와 사찰건물의 아름다운 선과 예술적 감각을 느껴보고자 함이 더크다...

계절로는 가을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계절이기에 길을 나선 이유다.

 

해인사 상가를 지나..

 

09시 31분 : 해인사성보박물관..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법보종찰 해인사의 박물관으로, 보물 11건 및

9건의 지방유형문화재를 포함한 약 7천여 점에 달하는 불교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사찰 박물관이다.

 

허덕교..

성보박물관 좌측으로 올라오면 풍광이 멋진 계곡을 건너는 허덕교는.. 예전에 이 자리에 허덕사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아직은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조용한 가을길은... 이제는 단풍길이 아닌 낙엽길이 되어 간다.

 

 오늘은 해인사를 포함한 가까운 주변의 12암자를 찾아보기 위해.. 먼저 보현암과 금강굴을 찾아간다.

 

 향지교(向止橋)를 건너.. 좌측의 보현암과 금강굴을 다녀와서 오른쪽의 삼선암으로 갈것이다.

 

 보현암 가는길..

 

향노교에서 3분정도 올라오니 노랑물감이 한창인 은행나무 뒤쪽으로 보현암이 보인다..

 

09시 42분 : 해인사 보현암은...

1973년 혜춘(慧春)스님(1919~1998)이 비봉산 남쪽자락에 창건하여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구니 수행처인 보현암 법당과 연못..

보현암의 연못은 마음심(心) 모양으로 참선하는 것은 마음을 닦는 것으로 더욱더 수행 정진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함께 길을 나서준 짝지부터 챙겨준다...

 

보현암과 이웃한 금강굴(금강암).. 규모가 작은 사찰을 굴(窟)이라고 표현 한다.

 

금강굴은..

성철스님 세속의 따님인 불필(不必)스님이 보현암에서 수행하던중에.. 비구니 스님들의 수가 많아져서 성철스님이 계시는

백련암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1976년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금강굴의 삼층탑과 백송.. 백련암에도 백송이 있다.

 

금강굴의 법당인.. 금강보전에는 성철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금강굴 석조여래입상.

 

 금강굴에서 바라본 환선대 아래 백련암 방향...

 

비구니 사찰답게 정갈한 금강굴을 뒤로하고..

 

 혜춘스님의 보현암창건 연혁과 시비..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는가.. 오고감이 하나일새.. 청풍은 만리로다.

 

보현암과 금강굴을 둘러보고 향지교로 돌아와서 향지교를 건너지 않고 삼선암 방향으로 향한다.

 

삼선암입구에 예쁘게 만들어 놓은 식수대.. 이쁘니까 물맛도 달다.

 

09시 57분 : 삼선암 입구 현판에는 반야선원(般若禪院)이라 되어 있다.

 

삼선암 약사전아래에서 스님들이 낙엽을 쓸고 있다.

 

해인사 삼선암(三仙庵)은..

1893년(고종 30) 자홍(慈紅)스님께서 창건한 뒤로 1904년에 보찬(普讚)스님과 지종(智宗)스님 두 분이 중건한 바 있으며, 1945년에 정성문(鄭性文)스님이 반야선원(般若禪院)을 개원하였으며 6·25한국전쟁 당시에도 많은 비구니 스님이 이 선방

에서 참선에 들었다고 한다... 삼선암(三仙庵)이라는 이름은 마당에 있는 3개의 바위에 3명의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삼선교를 건너와서 바로 이웃해 있는 금선암으로 간다..

 

 방금 다녀온 삼선암... 가을이 주는 참으로 멋진 그림이다.

 

 금선암은.. 1945년에 하담스님께서 창건한 비구니 수도처다.

 

10시 01분 : 금선암 법당.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지만 대웅전이라 칭하지 않고 법당이라고 쓰여진 이유는 해인사에 큰 법당(대적광전)이 있어서

다른 명칭을 쓸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선암을 지나서 올라오니 단풍이 한창 곱다.

 

카페.. 수다라.

수다라(修多羅)라는 부처님 말씀을 적은 경전으로.. 이 좋은 가을날에 이곳에서 차 한잔 하면서 수다를 떠는것도 좋을듯...

 

 원당암 달마선원으로...

 

불자가 아니어도 무생교를 건너면 속세의 허물이 벗겨질까나...

 

10시 10분 : 원당암 전경..

원당암이 지금은 암자이지만 해인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원래 하나의 절이었다고 한다.

신라 애장왕(哀莊王)은 공주의 난치병이 낫자 부처님의 가호(加護)라 여기고 해인사의 창건을 발원한 순응(順應) 대사를

몸소 크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왕은 서라벌을 떠나 가야산에 임시로 작은 집(원당)을 지어 절(해인사) 공사를 독려하고

정사(政事)를 보기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당암이라는 것이다.

 

창건당시에 이곳의 산 모양이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비봉산 자락에 있다 하여 봉서사라 하였으며 진성여왕때 부터

본격적인 신라왕실의 원당이 되어왔기에 원당암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원당암 미소굴과...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스님의 법문 말씀이다.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가 죽는것이 사는 길이다.. 옳은 마음으로 옳은 일 하면 안 죽어요."

 

▲ 미소굴..

혜암스님의 유품을 진열해둔 곳이다.

 

▲ 조금전에 지나왔던 전망대에 다시 올라가 본다.

 

▲ 고분처럼 생긴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운봉교라는 전망대다. 이곳에서 내려다 본 해인사 풍경이 장관이다.

 

▲ 내려다 본 원당암전경..

원당암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혜암(慧菴) 스님이 머무른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혜암 스님은 해인사의 정신적 지주

라고 할 수 있는 해인총림 방장(''93년~''96년)스님을 지내시고 1999년 4월에 조계종 제10대 종정 스님으로 추대되었다.

 

▲ 보광전 앞의 다층석탑(청석탑)과 석등은 신라시대 유물로 보물 제518호이다.

 

▲ 볼거리와.. 생각꺼리가 많았던 원당암 산문을 나선다.

 

▲ 홍제암으로..

 

10시 28분 : 홍제암(보물 제1300호)은...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수도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에서 따왔다.

광해군 6년(1614)에 혜구대사가 사명대사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다.

 

▲ 홍제암 보승문.

 

▲ 홍제암 법당.

 

▲ 홍제암 서래당은...

도봉당(道峰堂) 종성(宗性) 대종사가 주석처인 홍제암 서래당에서 입적했다.

 

▲ 홍제암 자운대율사영각(慈雲大律師影閣).

 

▲ 홍제암 사명대사탑석정비.

 

사명대사 석장비와 함께 있는 승탑과 비석들.

 

▲ 사명대사 석장비(보물)..

비석은 1612년에 건립되었다가 1943년에 일본인이 깨트린 것을 1958년에 복원한 것이다.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으로 비문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지었다고 한다.

 

▲ 백용성 선사 승탑과 탑비..

 

▲ 해인사로 가는 외나무다리..

과거에는 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못된 관리들이 말을 타고 사찰경내에 들어오는 걸 저지하기

위하여 만든 다리라고 전해진다..

 

▲ 10시 28분 : 용탑선원.

3.1독립운동의 민족대표 용성스님의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암자라고 한다.

 

▲ 용탑선원 육화당.

육화는 불교의 진리를 깨치고자 수행하는 사람들이, 서로 공경하며 화합하여 깨달음을 성취해야 하는 여섯 가지 도리다.

 

▲ 용탑선원 미타굴 법당.. 납골당을 겸하고 있는 석조 미타굴  법당이 있다.

 

▲ 석조 미타굴 법당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 용탑선원 극락교 입구에..

3.1독립운동 민족대표..  백용성조사 유적도량이라는 글이 기둥에 나란히 새겨져 있다...

 

▲ 토신골탐방지원센터.. 지난주 11월 7일에 가야산정상에서 하산하였던 들머리다.

 

▲ 6일전에 들러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기위해 해인사로..

 

10시 51분 : 해인사.. 가까운 대구에 60여년을 살면서도 한번 와보지 못했던 곳이다.

 

▲ 타이밍이 좋았는지.. 법고행사를 하고 있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부처님의 말씀이 세간에 널리 전하는 것을 북소리가 울려퍼지듯 한다..라고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이 북소리를 듣고 중생이 모든 번뇌를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 해인범종.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 해인사 스님들의 법고 치는 솜씨는 예전부터 최고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큰 울림으로

전해져 오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 마당에는 만(卍)자 형식의 해인도(海印圖)를 크게 그려져 있고 경전을 외우며 이 구역을 한바퀴 따라 돌게 되어 있다.

 

▲ 해인사 구광루.

원래는 기능상 재식시(齋式時) 법요(法要)를 집행하던 곳이었으나.. 사찰의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하층의

경우 홍보를 위한 홍보시설과 서점 등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층은 설법과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 해인호국도량 대적광전으로 올라가는 문...

 

▲ 해인사 대적광전 마당의 석등.

 

▲ 해인사 대적광전 마당의 삼층석탑.

 

▲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木造毘盧舍那三尊佛)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해인사는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이정(利貞) 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10월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된 화엄도량이다.

 

1398년 고려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운되면서 법보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특히 해인사는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화재로 그때마다 다시 지어졌는데,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조선 말에 중건된 것이다.

 

합천 해인사는 양산의 통도사, 순천의 송광사와 더불어 국내 3보(三寶) 사찰 중 법보사찰로 팔만대장경 경판(국보)과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경판전(국보)등 15점의 보물과 2백여 점의 사보 등 수많은 국가유산과

고적이 있다.

 

▲ 해인사 대적광전과 왕이 주로 사용한 우물.. 어수정이다.

 

▲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판전으로 가는 문.

 

▲ 보안당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읽음으로써 두루 관찰하는 눈이 생긴다는 뜻이다.

 

▲ 수다라장은... 부처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다.

 

▲ 법보전.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판'이 소실되자 국난 극복을 염원하며 고려 고종(1237~1248) 때 새롭게 판각한 경판이다.

조성된 경판이 8만여 개에 달하고,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이 수록됐다고 해서 팔만대장경으로 불린다. 제작된 지 80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 국보로 지정됐다.

 

유네스코는 1995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2007

년에는 팔만대장경을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했다.

 

▲ 해인사는 신라때 지어졌고 팔만대장경은 고려때에.. 그리고 대장경을 보관하는 이곳 장경판전은 조선시대 만들어 졌다. 

 

▲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가이드 라인을 따라 마당에서 한바퀴 돌아나간다.

 

▲ 뒤돌아 본  팔만대장경판전 전경.

해인사 천년고찰과 함께 해온 고려팔만대장경은 우리의 희망의 역사다..뿌듯한 자긍심을 안고 돌아선다..

 

▲ 가야산 감로수도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 바로옆 해인사 홍보판에 대장경 실내사진이 있다.. 실물크기 그대로 찰칵..

 

▲ 해인사 독성각앞을 돌아가니..

 

▲ 해인사 학사대(學士臺) 고운 최치원상.

신라의 학자 고운 최치원이 해인사에 머물며 집필하면서 말년을 보낸 장소로 평소 짚고 다니던 전나무 지팡이를 꽂아두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는데..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 큰 나무로 자랐다고 하는 나무였는데.. 그러나 2019년 태풍 "링링" 의

피해로 인해 쓰러진 나무의 밑둥치로 좌대를 만들고 그위에 최치원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 해인사 학사대(學士臺)에서 바라본 남산제일봉 아래가 최치원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홍류동계곡으로 농산정이 있다.

 

▲ 해인사 구광루에서..

 

▲ 해동원종대가람 해탈문을 나선다..

 

▲ 해인사 국사단과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원나무..

국사단은 산을 관리하는 산신과 가람을 수호하는 국사대신을 모신 단으로 보통 사찰의 산신각에 해당하는 전각이다.

 

▲ 해인총림 봉황문.. 안에서부터 구광루.. 해탈문.. 봉황문이 차례로 보인다.

 

▲ 해인사 애장왕 고사목.

신라 40대 애장왕 8년(서기 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애장왕이 이 은덕에 보답

코자 법당과 승료 등 많은 가람을 헌공하여 해인사를 창건하고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진다.

 

이 느티나무는 1200 여년의 긴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해 오다가 1934년 수명을 다해 고사하고 지금은 밑둥치만

남아 해인사의 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해인사 일주문.. 산문 안쪽은 "해동제일도량"이고..

 

▲ 산문을 나가서 사바세계에서 보면 "가야산해인사" 다..

 

▲ 일주문 축대에 불기2975년이라 음각되어 있다. 아마도... 서기 1948년에 일주문을 개축하였던게 아닐까..

 

▲ 일주문앞의 구조물.. 무슨 용도였을까..

 

▲ 일주문 밖 당간지주..

 

▲ 영지..

일주일 전만해도 화려했던 단풍이 다 떨어져 앙상하다.

 

▲ 원경왕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碑)로,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해인사 경내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거북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색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숙종 9년(1104)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 길상탑.

최치원이 지은 탑지(塔誌)에 따르면, 신라 진성왕대에 오랜 내란으로 해인사 주변에서 전몰한 승려와 백성을 위해

문수보살의 가피를 빌고자 해인사 승훈 스님이 895년에 세운 위령탑이라고한다.

 

▲ 해인사 비림(碑林)... 사적비를 비롯 20기의 공적비가 안치되어 있다.

 

11시 34분 : 1993년에 입적하신 성철스님 사리탑..

기존의 사리탑과는 사뭇 다르게 현대적 미적감각으로 조성되었다. 구(球)는 완전한 깨달음과 참된 진리를 상징하고 등을

맞대고 있는 반구(半球)는 활짝핀 연꽃을 표현하고.. 크기가 다른 정사각형 3단은 3학과 수행과정을 의미 한다고..

성철스님의 '자기 공덕은 자기가 쌓아야하고..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해야한다'라는 말씀을 새기며 지족암을 찾아 간다.

 

▲ 지족암으로 가기위해 대장경연구원쪽으로..

 

▲ 도로를 따라 대장경연구원을 지나 올라가면..

 

▲ 해인사 경내인 구내식당쪽이 보이는 곳도 스치듯 지나가고...

 

▲ 오른쪽으로 희랑대로가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 오른쪽 아래로는 극락전 건물 뒤쪽이 보인다.

 

▲ 처음에는 아마도.. 스님들이 암자를 왕래하기위해 걸었던 길이었을 것이다.

 

▲ 전남 강진의 만덕산 자락의 다산초당으로 가기 위해 다산 정약용이 걸었던 "뿌리의 길"이 생각나는 길이다.

 

11시 51분 : 자그마한 봉우리에서 마음에 점을 찍고..

 

▲ 솔향기와 만추의 가을이 내려앉은 낙엽길을 걷다보면..

 

▲ 차도와 만나게 되고...

 

▲ 지족암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와서 희랑대로 갈 것이다..

 

▲ 지족암 가는길...

 

12시 35분 : 지족암 일주문.

 

지족암은 신라말 고려초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로서 원래 이름은 도솔암이었다고 하는데.. 옛모습은 하나도 없다..

 

▲ 지족암 법당인 대몽각전.. 큰꿈에서 깨어난 자 즉.. 부처님 계신 곳이라는 얘기다.

 

▲ 마당을 지나가면..

 

▲ 돌아서 내려오게 된다.

 

▲ 동곡교에서 좌측 계단으로 오르면 희랑대다.

 

▲ 문이 닫혀 있어서.. 약간은 난감했는데 안내문을 보니 멧돼지 때문이니 열고.. 그리고 잘 닫고 들어오란다..

 

▲ 쌓아올린 축대를 보니 상당한 불사였겠다..라는 생각이다..

 

▲ 축대를 이용하여 공간 텃밭도 만들어 꽃도 심어 놓았다..

 

▲ 해남 달마산 도솔암과.. 경기 관악산 연주대처럼 자연 암릉 사이를 쌓아올려 희랑대를 지었다.

 

▲ 희랑대는... 희랑대사가 머물렀다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이자..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준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12시 54분 : 독성각.

신라 말에 희랑(希朗)이 창건하여 수도하였던 곳으로서,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으나 나한 기도처로서 유명하다.

 

해인사 희랑대는.. 청도 사리암, 서울 삼성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나반존자(독성) 기도도량이다.

 

▲ 희랑대 너머로 지족암이 보인다.

기묘한 지형과 빼어난 풍치가 경관을 이루고 있어 흔히 금강산 보덕굴(普德窟)과 비교된다.

천연의 절벽을 뒤로 하고 바위와 바위 사이로 돌을 쌓아 평평한 터를 만들어 그 곳에 삼성전(三聖殿)을 세웠는데, 이 삼성전

에 모셔진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는 그 영험이 불가사의하다고 하여 수많은 기도객이 찾고 있다.

 

▲ 계단을 올라 능선길을 따라가면 백련암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 그 자체다..

 

산이 구름을 탓하지 않고..

물이 굴곡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은.. 자연을 닮은 삶.. 그것이 곧 긍정이라 했다..

 

▲ 길은 뚜렷하고 전선줄을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 산죽길을 올라서면.. 지능선에 닿게되고..

 

▲ 희랑대를 출발하여 13~4분이면...

 

▲ 백련암이 내려다 보이는 암릉이 나온다.

 

▲ 한눈에 들어오는 백련암이 바로 아래다..

 

▲ 잠시 바위를 즐기고 내려가면..

 

▲ 백련암 적광전..

 

▲ 백련암 천태전..

 

13시 19분 : 백련암 고심원..

행사가 있는지 엄청많은 남여 신도들이 북적댄다.

 

▲ 백련암 고심원 앞의 연꽃바위라는데... 우매한 나의 눈에는 두꺼비처럼 보인다.

 

▲ 백련암 고심원은 성철 스님깨서 입적하신 후에 지었으며.. 스님의 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 백련암 고심원에 모셔져 있는 성철스님 좌상..

성철스님은 1980년대 조계종 종정일때 조계종 분규를 비탄하며 백련사에 오신후 열반전까지 이곳 백련사에 머물었다.

1936년 출가해서 해인사에서만 57년 동안 칩거해 온 스님은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가부좌한 채 입적하셨다.

 

▲ 백련암의 백송..

 

▲ 백련암의 자연석으로 부처님을 닮은 불면암(佛面岩)이라는데..

 

▲ 동서남북 아무리 둘러 보아도.. 불자의 눈이 아니어서 그런지.. 내사마 도통 모리거따..

 

▲ 내눈에는 오히려 해학적인.. 안동 하회탈처럼 보인다.

 

▲ 원통전.. 백련암 가람중에 가장 고색창연 하다..

 

▲ 일주문이라는 안내표시가 있어서 정념당 아래로 내려간다.

 

▲ 무슨 행사인지 전국에서 모여든 차량들로 주차장이 초 만원이다.

 

▲ 잎이 붙어있는걸 보니 고사목은 아니고.. 그냥 고목이다...

 

▲ 백련암을 내려서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성철스님의 화두의 의미를... 알듯.. 모를듯..

 

13시 55분 : 국일암 법당.

국일암 법당은 1637년 벽암(碧巖)스님께서 중건하였으며, 조선 인조가 벽암스님에게 국일암대선사의 호를 내렸다고

하여 국일암이라 부르게되었다고 한다. 국일암은 비구스님들의 선원이다..

 

▲ 국일암 와송..

 

▲ 매우 오래 된듯한 해우소..

 

14시 04분 : 약수암..

1904년 흥선대원군의 수양딸인 성주스님이 궁의 지원을 받아 창건하였으며 1927년 도삼스님이 중건하였다.

이곳은 비구니 도량으로 약물이 나온다고하여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 약수정..

 

▲ 처음보는 약수터 모습이다..

 

약수물이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어 한센병 환자들이 이 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 죽림선원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죽림선원은 약수암 창건시 양철로 지붕을 덮은 선원이 개원되었다. 그 후, 허물어진 선원을 일으키기 위해 비구니 스님들이

탁발을 도모하여 개축하였으며, 1972년 법공스님이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선원을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 약수암을 끝으로 12암자 탐방을 마치고..

 

▲ 주차장으로 가는길이 가을스럽게 아름답다.

 

깃대종(flagship species)이란...

유엔환경계획이 만든 개념으로서,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주요 동·식물을 뜻한다.

'깃대'라는 단어는 해당 지역 생태계 회복의 개척자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상징적 표현이다.

가야산의 깃대종에는 "가야산은분취" 와.. "삵" 이 있다.

 

14시 12분 : 치인주차장까지 1.1km..이정표

14시 40분에 대구로 가는 차가 있다.. 약15분이면 갈수있는 거리다..

 

▲ 허덕교에서 바라본 해인사 단풍인데.. 6일만에 이렇게 변했다..

 

▲ 14시 28분 : 해인사입구 정류장..

 

▲ 트랭글을 정리해보니 1사 12암자를 걸어온 거리가 만만찮다.. 운동거리 11km에 평균속도 2.5km/h다.

 

▲ 해인사입구 정류장 지킴이 들냥이..

 

▲ 버스를 기다리는동안 10배줌으로 당겨온 가야산 정상부..

 

비록 불자는 아니지만..

언젠가 걷고 싶었던 명산 대찰인 해인사와 12암자 도보탐방을..

 

보현암 혜춘스님 말씀처럼..

불현듯..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다녀간다..

 

가을의 끝자락..

자연이 내어준 아름다운 길위에서 마무리 할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다..

2024년 11월 07일(목).

가야산국립공원 : 경남 합천군/경북 성주군.

 

산행코스 : 법전리2주차장-마수폭포-법전리개방코스-칠불봉-상왕봉-토신골-성보박물관-해인사주차장.

산행시작 : 법전리2주차장  09시 36분.

산행종료 : 치인리주차장  15시 45분.

전체거리 : 약12.6km.

전체시간 : 06시간 09분.

운동시간 : 05시간 02분.

휴식시간 : 01시간 07분.

 

09 : 36  법전리2공영주차장.

09 : 41  법전리1공영주차장.

09 : 45  법전탐방지원센터.

09 : 49  마수폭포.

10 : 28  법전리개방코스입구.

12 : 53  칠불봉.

13 : 10  상왕봉.

13 : 46  토신골석조마애불.

15 : 34  성보박물관.

15 : 45  치인리주차장.

 

09시 32분 : 경북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2공영주차장 도착..

 

아박산이 올려다 보이는 법전리 마수골 일대는 조선시대의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서 언급한 십승지지(十勝之地)중의

한 곳인 '가야산 만수동'을 가리키는 마을이다. 실제로.. 마수리(법전동) 뒷산에 만수동이란 글씨가 쓰여진 표지석이 있다.

 

가야산을 배경으로 화랑님들의 단체샷..

오늘은 겨울의 문턱인 입동날이다.. 풍수지리 사상에 기반해 전란이나 흉년, 질병을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다는 십승지지

(十勝之地)의 명당마을인 법전리에서 역전의 용사들 답게 화랑님들의 홧팅!~ 소리도 우렁차다..

 

올라야 할 가야산 마루금을 가늠해보고..

 

 09시 36분 : 간결하면서도 실속있는 안내도를 보며 가야산을 향해 출발!~..

그런데.. 내용중에 이해가 안가는 옥의 티가 보인다.. 칠불능선과는 거리가 먼 "칠불능선 탐방로입구"라고 되어 있다.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 안내도.

선비산수길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총 11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독용산성에서 성주호 제방까지를 1코스로

‘성주호 둘레길(26.2㎞)’을 만들고.. 2코스는 마수폭포에서 청휘당까지 ‘가야산 에움길(11.3㎞)’을 조성하었다.

 

오늘의 등반코스인 법전리~가야산 개방구간은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인 에움길을 따라가다가 법전리 탐방로입구에서

가야산까지 새로 조성한 개방구간으로 올라갈 것이다..

 

 올가을에 본 단풍중에 제일 고운것 같다..

 

가야산 상왕봉과 칠불봉.

가야산의 최고봉은 칠불봉으로 해발 1433m이지만 가야산 주봉으로서의 지위는 1430m인 상왕봉에게 뺏겼다.

칠불봉은 경북의 성주군에 속하고 상왕봉은 경남 합천에 속한다.. 주봉의 지위 뿐만 아니라 산의 이름까지도 성주 가야산이

아닌 합천 가야산으로 빼앗겼는데.. 가야산에는 가야산보다 더 유명하고 우리나라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해인사가 있고

그 해인사가 합천군에 있으니 가야산은 합천 가야산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가야산은 몰라도 해인사는 다 안다..

가야산 자락에 해인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해인사가 가야산을 품고 있는 것이다.

 

09시 36분 : 법전리1 공영주차장(승용차 전용).

 

 09시 45분 : 법전탐방 지원센터.

 

봉양법전탐방로입구.

가야산 선비산수길 2코스 에움길의 시작점이다.

에움길은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가야산 법전탐방지원센터에서 성주군 수륜면 신파리 청휘당까지 11.3km다.

 

마수폭포에 다녀오기로 한다..

 

 09시 49분 : 마수폭포(일명 죽전폭포).

 

다시 봉양법전탐방로입구로 돌아와서...

 

입동날 아침에 매우 추울거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걸음수가 더해짐에 따라 몸이 기분좋게 더워지고.. 산과 숲과 햇살이 보듬어주는 분위기 좋은 가을길이다.

 

지난해 환경부가 국립공원 가야산 내 신규탐방로로 지정.고시한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칠불봉 간 2.8km 구간을 성주군

에서 국립공원 가야산을 종주할 수 있는 길이 52년 만에 열려 명실공히 ‘성주 가야산 시대'가 열렸다.

 

화랑의 히어로(hero)인 산대장님이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산대장은 산악회의 얼굴이요.. 거울이다.. 늘~ 웃음띤 얼굴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09시 49분 : 법전리탐방로 입구..

아래는 또.. 칠불능선탐방로라고 되어있다.. 차라리 "칠불봉탐방로" 라고 하던지.. 성주군은 가야산국립공원의 신규탐방로

인 ‘가야산 법전리~칠불봉’ 간 2.8km의 구간을 2024년 6월 24일부터 개방햐였다.

 

써~억.. 고운 단풍색깔은 아니지만... 지난 여름날의 모진 폭염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그래도 이 만큼의 단풍색을 보여주려고 몸부림을 쳤을 나무들에게 수고했노라고 격려해주고 내년울 기대 한다.

 

단풍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광합성과 관련이 있다. 나무는 봄과 여름 동안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잎 속의 엽록소를 사용한다. 엽록소는 녹색을 띠며.. 이 성분이 햇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잎이 녹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더 이상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엽록소가 분해되기 시작하면서.. 나뭇잎의 초록색이 점차 사라진다.

엽록소가 사라진 후에는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이라는 다른 색소가 나타나게 되고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등의

아름다운 단풍이 만들어 진다.

 

탐방로 안내도를 보니 법전리개방구간을 3분의 1정도 올라 왔고.. 지금부터 난이도가 가팔라진단다.

 

 개방된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날것 그대로의 원시림이다..

 

아직도 아물어지지 않은 상처..

 

 11시 21분 : 처음으로 조망이 터지는 바위전망대..

 

 칠불봉에서 동성봉으로 이어지는 동장대능선..

 

 경북 성주군 방향...

 

 전망바위를 지나서부터는 오름길이 더욱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조여사님의 배낭꼬리도 잡고.. 핵폭탄님의 포도로 당보충을 한다.. 잘먹었습니다..

 

 첫 계단..

 

 두번째계단은..

 

 제법 길게 이어진다..

 

 세번째 계단..

 

 네번째 계단에서는 뒤를 돌아보는 핑계로 숨을 고른다.

 

노각나무.. 지대가 높고 척박한 곳인데도 이렇게 굵게 자랐다.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학명에 ‘koreana’라는 지역 이름이 들어간 순수 토종나무인 노각나무 이름의 유래로는 사슴뿔처럼

보드랍고 황금빛을 가진 아름다운 수피라는 뜻에서 녹각(鹿角)나무라고 하다가 발음이 쉬운 "노각나무"로 되었다.

 

고도가 높아지니 고드름이 꽁꽁이다..

끝날것 같던 계단은 올라서면 또 나타나고... 그렇게 지겹게 나타나던 계단을 서너개 지나고 나서..

 

 여덟번째 철계단을... 마지막으로 올라서니...

 

 경북 김천방면으로 시야가 터진다..

 

 서릿발..

 

 12시 40분 : 주능선에 다 올라 온것 같아서..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민생고 해결..

 

길가에 풍혈이 보여서 안쪽을 들여다 보니 대략6~7m의 깊이다.

 

 12시 46분 : 드디어 능선에 도착..

칠불봉100m...상왕봉 200m.. 먼저 칠불봉에 다녀 온다.

법전리 개방코스는 한마디로 두번 다시 오르고 싶은 생각은... 1도없는 코스다.. ㅠㅠ~.

 

경북과 경남의 경계지점에서 바라 본.. 상왕봉...

 

 대구방향..

 

가야산의 이름은 가야산(伽倻山) 외에도 우두산(牛頭山). 설산(雪山). 상왕산(象王山). 중향산(衆香山). 기달산(怾怛山)등

여섯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監)"권30 택리지에 가야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높고 수려함과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영험함을 말하여. 명산으로 불렸다 한다.

 

 12시 53분 : 칠불봉 도착..

칠불봉(七佛峯)은 가야국(伽倻國)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아들 거등(居登)은 왕위를 계승하여. 김씨(金氏)의 시조(始祖가 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의 성씨(姓氏)를 따라서

허씨(許氏)의 시조가 되었고. 나머지 7명의 왕자는 허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후 도를 깨달아 생불(生佛)이 되었다. 하며 그 밑에 칠불암(七佛庵) 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되어 이름 지어졌다.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열반에 들기 위해 칠불봉에서 수행을 했는데 오르기가 너무 험해서.. 어머니 허황후가 왔다가

되돌아갔다는 안타까운 옛이야기가 전해지는 봉우리다.

 

 동성봉의 동장대 능선..

 

서장대(상아덤)와 만물상 능선..

가야산은 여신인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하가 처음 만난 곳이다.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르는 신이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여신의 바위란 뜻의 상아덤에 내려앉았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기록은 최치원의 석순웅전'과 '동국여지승람'에 전해 오고 있다.

 

가야국 수로왕에게는 아들이 열 명 있었는데 1인은 태자가 되고  2인은 허씨를 내리고 일곱 사람은 인간 세상을 끊는 데

뜻을 두어, 보옥선인을 따라 가락산으로부터 운상원에 들어가 도를 배워 부처가 되었는데 그들을 일곱명의 부처 칠불

이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가야산에 존재하는 명칭인 상아덤 그리고 칠불봉이 생겨난 것이란다.

 

▲ 경북 성주군의 칠불봉에서.. 경남 합천군의 상왕봉으로..

 

▲ 난공불락의 철옹성처럼 우뚝 솟아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상왕봉..

 

▲ 상왕봉 오름계단.. 작년에는 고무발판이었는데 새로 바뀌었다..

 

13시 11분 : 상왕봉 정상석에는 가야산 우두봉이라 되어 있다.

가야산국립공원은 1972년 10월 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됐으며 전체면적은 7만 6256㎢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가 서로

잇대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산의 우뚝 솟은 상왕봉은 해발 1430m의 늠름한 위용을 자랑하며 가야산 전체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가야산은 오래전부터 해동(海東)의 10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난 곳으로, 현재 우리나라

10대 명산으로 꼽혀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옛 선현들은 "산형은 천하에 절승(絶勝)하고 지덕(地德)은 해동에서 제일"이라고

가야산을 극찬했다. 범상치 않은 기상과 수려한 풍광은 예나 지금이나 훌륭하다. 가야산에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

으로 '팔만대장경'를 봉안한 해인사가 있으며 특히 해인사 앞자락을 굽이쳐 도는 홍류동 계곡은 우리나라 팔경 가운데 가히

으뜸이라 불린다.

 

▲ 봉천대 가는길.

 

상왕봉에서 바라 본 칠불봉.

 

▲ 우두봉의 우비정... 소의 콧구멍에 해당된다고 한다.

자연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다.. 바위뿐인 이곳에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이다.

 

▲ 해인사 하산길..

 

▲ 뒤돌아 본 상왕봉.

 

▲ 가야산 제18경인 봉천대(奉天臺)... 가야산 중턱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 봉천대의 깍아지른 바위절벽이.. 마치.. 인디언 추장이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이다.

 

▲ 시절이 하수상 하니... 꽃들도 정신을 못차린다.

 

13시 35분 : 일명.. 만세바위.

 

▲ "만세바위"라고 어느분이 지었는지.. 두손을 번쩍들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다.

 

▲ 봉천대 암릉이 어마무시하다..

 

▲ 가야산 생태계 감시카메라..

 

13시 44분 : 가야산 석조여래입상 가는길. 50m다..

 

▲ 13시 46분 : 가야산 석조여래입상..

 

▲ 마당바위..

 

▲ 유(柔:부더러움)함이 강(强:단단한것)함을 시간으로 이기는 방법이다..

 

▲ 용탑선원 칠불보궁..

용탑선원은 3.1독립운동 민족대표 백용성 조사(1864~1940)의 유덕과 유훈을 기리는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해

1945년 경성선사를 비롯 문도들이 세운 절이다.

 

용성조사의 용(龍)자와 사리탑의 탑(塔)자를 취해서 용탑선원이라 하고 참선정진하는 도량으로 창건하였다.

용성선사 용탑과 비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보물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72권을 소장하고 있다.

칠불보궁전에는 용성스님과  12제자의 초상이 보전되고 있으며  석굴암인 미타굴이 있다.

 

15시 14분 : 토신골탐방로 입구..

 

▲ 하산시간 15시 30분까지 주차장 도착은 무리일것 같아서 해인사 탐방은 통과.

 

▲ 해인사 일주문..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곧.. 있는 그대로의 세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세계이니

바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해인삼매는 또한 오염됨이 없는 청정무구한 우리의 본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우리의 마음이 명경지수의 경지에

이르러 맑고 투명해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한없이 깊고 넓으며 아무런 걸림 없는 바다에 비유되어 거친 파도, 곧 우리들 마음의 번뇌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해인삼매라 하였다.

 

▲ 영지..

가락국 허황후가 가야산 칠불봉으로 출가한 일곱 왕자들을 그리워하여 그림자라도 보게 해달라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했다는 곳이다... 가야산 정상이 이 연못에 비쳤다고 한다.

 

15시 34분 : 해인사성보박물관..

 

15시 45분 : 치인리주차장 산행종료..

 

▲ 트랭글을 정리해 보니..

전체거리 12.6km중에 개방구간 2.8km의 난이도가 높은 철계단구간을 포함해도 평균속도 2.5km/h의 아주 양호한편이다.

 

▲ 거창 오도산 너머로 하루해가 숨어든다...

 

중용(中庸)에..

등고자비(登高自卑).. 행원자이(行遠自邇)라 했다..

높은 곳을 오를 때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먼 곳을 갈 때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가야산은.. 한국의 명산으로..

첫째.. 산신을 상징하는 정견 모주라는 여신의 산이고...

둘째.. 호국불교의 성지로서 상징되는 산이고...

셋째.. 최치원(崔致遠)의 은둔 이후 역대 문인들의 유람과 풍류의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산이다.

 

가야산..

그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가장 낮은 자세인 민초들의 삶이 녹아있는 법전리에서 출발 하였고

그 멀고도 먼 이상과 진리의 세계를 엿보기 위한 천리길을 한걸음부터 시작하였다.

 

시간에 쫏겨 해인사에 들리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지만..

무사무탈에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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