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불교의 양대선맥(禪脈)을 일컬어 ‘남진제 북송담(南眞際 北松潭)’이라는 말이 회자
되고 있다.
남쪽의 대구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金堂禪院)과 부산 장수산 해운정사 금모선원(金毛禪院)
의 조실인 "진제(眞際)"스님,북쪽의 인천 용화선원장이신"송담(松潭)"스님을 중국 당(唐)나라
때의 ‘남설봉 북조주(南雪峰 北趙州)’에 빗댄 드날린 선풍(禪風)에 대한 찬사의 말이다.
이렇게 일컬어 지는 것에 대해 진제스님은 “그건 형상과 말에 떨어진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내 살림살이는 아무도 모른다. 성철 스님이나 향곡 스님이라면 알까. 과연 누가 알겠는가.”
현존 선승(禪僧)들 중에 우리나라에서 간화선(看話禪)으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하신 대표적인
두 분으로 꼽힌다.
송담스님은 경허(75대)-만공(76대)-전강(77대)-송담(78대)의 계보이고,
진제스님은 경허(75대)-혜월(76대)-운봉(77대)-향곡(78대)-진제(79대)의 계보이다.
"진제" 스님으로 부터 법호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 영천 은해사 운부암의 선원장이신 금모
(金毛)스님이다. 법호(法號)는 스승이 깨달음을 인가하면서 제자에게 내리는 것이다.
금모 스님은 30대 후반에 이미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의 선원장을 지낼 만큼 일찍부터 선지를 드러낸 수좌다.
그가 수도암에서 수도할 때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참선하면서 코피가 터지고 항문에서 끝없이 피가 흘러 죽음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그렇게 목숨을 건 정진으로 그는 식(識)이 맑아져 수십리 밖에서 누가 절에 오는 것이
보이는 신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경계가 열심히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신통에
빠지면 공부를 망치게 된다는 게 선가(禪家)의 정설이다.
그래서 그는 고요함에 빠지지 않고, 좀더 시끄러운 곳에서 부딪치며 공부를 하기 위해 대찰인 해인사로 가서
두 철을 지내면서 정진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할 때였다.
그런 그가 30대 후반에 동화사 선원장을 맡았다.
금모 스님이10여년 전 동화사 결제를 마치고 선승들과 함께 팔공산 등산에 나섰다가 멀리서 팔공산의 기운이 한데 모인 곳을 발견하고 한달음에 달려온 곳이 바로 오도암이었다. 오도암은 소수의 옛 선승들 사이에서만 알려졌던 터였다.
젊은 시절 오도암에 와본 적이 있는 현대의 선지식 일타스님(1929~1999)은 이곳에서 일주일만 살아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토담집에 붙여놓은 불인선원(佛印禪院)이란 편액글씨도 일타 스님이 써주신 것이다.
불인선원(佛印禪院)이란 부처로부터 직접 인가를 받은 곳이란 뜻이다.
오도암(悟道庵)에 딸린 수도석굴인 서당굴(誓幢窟)의 규모는 길이 280cm, 굴입구 높이 80cm의 둥근 원통형의
쌍봉 낙타모양의 두 돌기가 파여 올라가 있다. 이 굴은 청운대 천인 절벽의 정남면에 남향하여 인공으로
굴착한 횡혈(橫穴)석굴이다. 겨울에는 햇볕이 굴 안에까지 들어가고, 여름에는 굴 안에 햇볕이
들어가지 않는다.굴은 천고의 신비에 가려 운무속에 감춰져 내려왔다.
聖人求心不求佛(성인구심불구불) 성인은 마음을 찾지 부처를 구하지 않는다.
愚人求佛不求心(우인구불불구심)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만 구할 뿐 마음을 찾지 않는다
智人調心不調身(지인조심불조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지 몸을 다스리려 하지 않는다
愚人調身不調心(우인조신불조신) 어리석은 사람은 몸만 다스릴 뿐 마음을 다스리려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