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소나무

 

소원을 빌면 영험이 있다하여 소원을 적은 명함이나 쪽지를 돌틈이나 나무에 꽂아 놓았다.

 

 

 

 

 

 

군위군 고로면 학암리 뒷산(속칭 성황골)에 위치한 이소나무는 수령이 약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수고는 7m 가슴높이 둘레는 4.5m 수관 폭은 21m 이다.

 소나무가 소원을 이루어 주는 영험함이 있다고 하여 몸이 아프거나  집안의 우환,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녀자 등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쇄도하고 있고 또한 소나무를

한번 만져만 보고 기도를 드리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실제 이 마을에서는 소나무에 소원을 빌어 사법고시,기술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있으며 각계에 우수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고,
 병을 낫게하고 아기를 낳게 하는등 믿지 못할 신통을 부려 주민들
 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7월에 마을 청년들이 김매기를 마치고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소나무에 드리고,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다.

 

  *소재지 : 군위군 고로면 학암리 산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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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한국불교의 양대선맥(禪脈)을 일컬어 ‘남진제 북송담(南眞際 北松潭)’이라는 말이 회자

되고 있다.

남쪽의 대구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金堂禪院)과 부산 장수산 해운정사 금모선원(金毛禪院)

의 조실인 "진제(眞際)"스님,북쪽의 인천 용화선원장이신"송담(松潭)"스님을 중국 당(唐)나라

때의 ‘남설봉 북조주(南雪峰 北趙州)’에 빗댄 드날린 선풍(禪風)에 대한 찬사의 말이다.

이렇게 일컬어 지는 것에 대해 진제스님은 “그건 형상과 말에 떨어진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내 살림살이는 아무도 모른다. 성철 스님이나 향곡 스님이라면 알까. 과연 누가 알겠는가.”

 

현존 선승(禪僧)들 중에 우리나라에서 간화선(看話禪)으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하신 대표적인

두 분으로 꼽힌다.

 

송담스님은 경허(75대)-만공(76대)-전강(77대)-송담(78대)의 계보이고,

진제스님은 경허(75대)-혜월(76대)-운봉(77대)-향곡(78대)-진제(79대)의 계보이다.             

 

"진제" 스님으로 부터 법호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 영천 은해사 운부암의 선원장이신 금모

(金毛)스님이다. 법호(法號)는 스승이 깨달음을 인가하면서 제자에게 내리는 것이다.

 

금모 스님은 30대 후반에 이미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의 선원장을 지낼 만큼 일찍부터 선지를 드러낸 수좌다. 

그가 수도암에서 수도할 때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참선하면서 코피가 터지고 항문에서 끝없이 피가 흘러 죽음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그렇게 목숨을 건 정진으로 그는 식(識)이 맑아져 수십리 밖에서 누가 절에 오는 것이 

보이는 신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경계가 열심히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신통에 

빠지면 공부를 망치게 된다는 게 선가(禪家)의 정설이다.

 

그래서 그는 고요함에 빠지지 않고, 좀더 시끄러운 곳에서 부딪치며 공부를 하기 위해 대찰인 해인사로 가서

두 철을 지내면서 정진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할 때였다.

그런 그가 30대 후반에 동화사 선원장을 맡았다.

 

금모 스님이10여년 전 동화사 결제를 마치고 선승들과 함께 팔공산 등산에 나섰다가 멀리서 팔공산의 기운이 한데 모인 곳을 발견하고 한달음에 달려온 곳이 바로 오도암이었다. 오도암은 소수의 옛 선승들 사이에서만 알려졌던 터였다.

 

젊은 시절 오도암에 와본 적이 있는 현대의 선지식 일타스님(1929~1999)은 이곳에서 일주일만 살아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토담집에 붙여놓은 불인선원(佛印禪院)이란 편액글씨도 일타 스님이 써주신 것이다.

불인선원(佛印禪院)이란 부처로부터 직접 인가를 받은 곳이란 뜻이다.

오도암(悟道庵)에 딸린 수도석굴인 서당굴(誓幢窟)의 규모는 길이 280cm, 굴입구 높이 80cm의 둥근 원통형의

쌍봉 낙타모양의 두 돌기가 파여 올라가 있다. 굴은 청운대 천인 절벽의 정남면에 남향하여 인공으로

굴착한 횡혈(橫穴)석굴이다. 겨울에는 햇볕이 굴 안에까지 들어가고, 여름에는 굴 안에 햇볕이

들어가지 않는다.굴은 천고의 신비에 가려 운무속에 감춰져 내려왔다.

聖人求心不求佛(성인구심불구불) 성인은 마음을 찾지 부처를 구하지 않는다.

愚人求佛不求心(우인구불불구심)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만 구할 뿐 마음을 찾지 않는다

智人調心不調身(지인조심불조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지 몸을 다스리려 하지 않는다

愚人調身不調心(우인조신불조신) 어리석은 사람은 몸만 다스릴 뿐 마음을 다스리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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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신라시대의 사찰인 인각사터이다. 절의 입구에 학소대라 부르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기린이 뿔을 이 바위에 얹었다고 하여 절의 이름을 인각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는 절 앞에 우뚝 솟은

화산의 화려하고 기품있는 모습이 마치 상상의 동물 기린을 닮았으며, 절이 들어선 자리가

기린의 뿔에 해당하는 지점이라 하여 인각사 이름지었다고도 한다.

 

 

 

 

 

 

보각국사비

 보각국사비는 점판암의 석재로 손상이 심한 상태이다. 비신의 높이는 1.8m, 너비는 1.06m이다.

 자체는 중국 왕희지의 글씨로 집자하여 새겼다. 비문에 의하면 비를 새운 시기가 고려 충렬왕

  21년(1295)으로 되어 잇어 부도탑의 건립 역시 그가 입적한 해인 1289년에서 1295년

사이로 짐작된다. 심하게 손상 된것은 비석을 갈아 마시면 득남 한다하여 부녀자들이

훼손하였다는 말도 있고 일제시대에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훼손하였다는 말도 있다.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 의상대사가 처음 건립하여 고려 충렬왕 10년(1284)에

다시 고쳐 짓고 조선숙종 25년(1699)에 증축되었다. 충렬왕 때 일연(一然, 1206~1289)이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이곳에 거처하면서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두번이나 개최한 바 있었고,

또 삼국유사를 여기에서 저술하였다고 한다. 경내에는 중국 진대의 명필인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한 보각국사비와 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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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 

 

 

 

 

 

 

 

 ▲ 1978년경에 들러보고 약32년만에 다시 와 보는 죽서루...

 

 

 

 

 

 

▲ 강릉 오죽헌의 오죽이 여기에도 보인다..

 

 

 

▲ [야은, 길재]선생의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라는 싯귀가 생각이 난다..

옛기억속의 바위는 오늘도 변함없이..다시 찾은 객을 소리없이 맞는다,,

 

 

 

 

 

 

 

 

 

▲ 불과 30여년전의 물은 깨끗 했었는데.. ..건너편에는 세계동굴 엑스포가 열린곳이라고 한다,,

 

 

 

 

 

 

 

 

 

 

 ▲ 죽서루는 숱한 세월을 보냈음에도,,,전혀 흐트러짐 없이 그자리에....

 

 

 

 ▲ 죽서루와 함께 했음직한 노거수도 수많은 발길에도 농부의 거친 손바닥같은 강인한 뿌리로

세월을 부등켜 안고 오늘도,,끈임없는 생명의 잎을 피워 내고 있다...

 

 

 

 

 ▲ 배롱나무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다.

꽃이 한 번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 날에 걸쳐 번갈아 피고 져서

오랫동안 펴 있는 것처럼 보여 백일홍이라고 부른다

 

 

 

 

 

 

 

 

 ▲ 350년되었다는 보호수가 하늘을 우러러 싱싱함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인공폭포인듯 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하게 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 세계 동굴 엑스포장을 당겨보고,,,

 

 

  ▲ 삼척에서 가장 큰 중앙시장을 구경하고,,,

 

 

 

▲ 동해안 7번국도를 따라오다 후포항의 해안가에 설치된 대게 조형물과

그림같이 잔잔한 동해를 바라보면서,,,여행의 피로감에 스르르 눈을 감는다....

 

▲ 삼척시 새천년 해안도로의 전망좋은 곳에 위치한 삼척 유일의 팔래스호텔

 

 

▲ 해가사터의 임해정(수로부인 공원)...

임해정은 『삼국유사 수로부인전』에서 전하는 “해가”라는 설화를 토대로 복원되었으며,

문헌상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나 삼척해수욕장의 와우산 끝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고 조용한 증산마을의 아담함과 임해정 옆으로 펼쳐지는 해변 절경은 찾는이의 마음까지 평온하게 한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로 부임하는 도중, 임해정(臨海亭)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해룡(海龍)이 나타나 부인을 물고 바다속으로 들어가자

남편인 순정공이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막대로 언덕을 치며

해가(海歌)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니 용이 수로부인을 모시고 나타났다 한다.

 龜乎龜乎出水路(구호구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약인부녀죄하극)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汝若悖逆不出獻(여약패역불출현)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략번지끽)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 드래곤 볼(Dragon Ball) : 직경 1.3m /  높이 1.67m  /  무게 5톤 

독특한 조각기법으로 구형표면에 표현함으로써 그 예술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볼을 돌리면서 연인들의 사랑과 소망을 기원하는 의미있는 기념비로 거듭나고 있다.

더욱이 해안절경과 더불어 동해시 소재의 추암 촛대바위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장소로 사진촬영지로 유명하다...

 

 

▲ 추암(일명 ;  촛대바위)  

 

 

 ▲ 해룡바위

 

 

▲ 해수욕장의 백사장 가운데 돌출되어 보이는 바위를 경계로 이래쪽은 삼척시 증산 해수욕장이고..

위쪽은 동해시 추암 해수욕장이다...촛대바위의 소유권을 놓고 삼척시와 동해시가..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애꿎은 지역주민들만 생활의 불편함을 호소 하고 있다...

 

 

▲ 삼척시 증산 해수욕장의 모습,, 도로는 더이상 이어 지지 못하고 끈어진 상태다,,,

 

  

▲ 왼쪽의 뾰죽한 바위가 촛대 바위다..

 

  

 

 

 

 ▲ 뒤에보이는 곳이 삼척시 증산 해수욕장.. 내가 서있는 곳이 삼척시와 동해시 경계 지점이다..

삼척시 증산 마을 수로공원과 동해시 추암마을을 잇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도보로 약 15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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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가까이에서 볼수있는 촛대바위..

거센파도와 해식으로 추암의 아래 부분이 균열이 심해서 몇년 안 가면 무너질거라는

판단으로 동해시에서 아래부분에 보강대를 설치할 에정이라고 한다..

 

 

 

 

 

 

 

 

 

 

 

 

 

 

 

 해암정(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63호) 

1,361년(공민왕 10년)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沈東老)가 벼슬을 버리고 이 지역에 내려와

생활할 때.. 처음지은 것으로. 후학 양성과 풍월로 여생을 보낸 곳이다,.

그후 화재로 타버렸다가,  1,530년(중종 25년)에 심언광(沈彦光)이 다시 짓고

1,794년(정종 18년)에 크게 수리하였다..

20세기 말에 다시 보수한 해암정은 정면 세칸. 측면 두칸의 건물로,

기둥은 모두 둥글며, 정면을 제외한 삼면을 모두, 4척 정도의 높이까지.

벽체를 세우고 상부는 개방하고 있다...

초익공 양식의 홀처마에 팔작지붕의 이 곳은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함경도 덕원으로 귀양가다가 들러 글을 남긴 곳 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동해의 장엄한 일출울 맞이하는 곳 이기도 하다,,

 

 

 

 

 추암해수욕장쪽 횟집인데 ,,,정갈해보여서 한컷,,

이제는 바가지 상혼은 없어 진것 같다,, 횟 값도 비싸지 않은것 같다..

오징어 큰놈으로 3마리에 일만원...일반회도 한접시에 3만원, 5만원인데.. 량이 푸짐하다..

 

 

▲ 되돌아 오는길에 .... 추암 해수욕장..

 

 

 

 

 

 

 해가사터에서 멀리 추암을 뒤돌아 보고...

 

 

 

 

 동해 삼척간 열차 선로,,,

해변역인데..너무나 조용하다,,


 

 

 

▲ 장호항.. 어촌마을 체험장

삼척에서 남쪽으로 25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며, 용화해변과 함께 아름다운 백사장을 자랑하고 있다.

 

 

 

 

 ▲ 물이 너무나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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