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 01일(목요일)

청계산 두루봉 : 경북 상주시.

 

산행코스 : 갈령 - 670봉 - 두루봉 - 투구봉 - 대궐터산 - 극락정사 - 견훤사당 - 청계사.

산행시 : 갈   령 09 44분.

산행종료 : 청계사 15시 24분.

산행거리 : 약 9.95km.

전체시간 : 5시간 39분.

운동시간 : 5시간 07분.

 

09 : 44 갈령 출발.

10 : 19 670봉.

11 : 19 두루봉.

12 : 56 투구봉.

13 : 27 대궐터산.

14 : 17 극락정사.

15 : 02 견훤사당.

15 : 24 청계사.

 

09시 44분 : 갈령(葛嶺) 출발.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와 화남면 동관리를 잇는 977번 지방 도로 위에 있는 고개다.

 

▲ 상주시 화북면 우복동은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인 예언의 땅으로 소의 배처럼 편안한 곳으로전란과..

굶주림.. 천재지변으로 부터 목숨을 보전 할수있는 축복의 땅이라 일컫는 곳이다.

 

갈령(葛嶺) 표지석... 백두대간상의 형제봉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에 있는 고개다.

 

▲ 청계산 두루봉 들머리..

갈령(葛嶺)표지석에서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면 청계산 들머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 예보상으로는 상주지역이 맑음이었는데.. 막상 현지애 오니 잔뜩 흐림이다..

등로는 촉촉함에 먼지가 없어 좋지만.. 높은습도로 매우 후텁지근하다..

 

▲ 두루봉이 2km라고 가르키며... 조신하게 서 있는 이정표와 눈맞춤을 하고... 능선에 올라서면...

 

▲ 헬기장이 나오고...

 

▲ 좌측으로.. 속리산 주능선을 휘감은 운해가 한폭의 그림을 만든다.

 

▲ 진행방향으로는 도장산 가는길의 봉우리가 짙은 안개구름에 가려 있다.. 조망이 좋다고 하는 청계산을

찾아 왔는데 멋진 조망을 못보면 어쩌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 습도는 다소 높지만.. 물기 머금은 초록과 촉촉한 등로에 마음은 싱그럽다..

 

▲ 상주시에서 21년부터 갈령과 동관리까지 2km구간에 임도 개설 공사를 하고 있다.

 

▲ 절개지에 만들어 놓은 자연친화적인 사다리가 운치가 있다..

 

▲ 국가의 소중한 자원인 삼림을 관리하고 보호하는데는 임도의 역할이 크다.. 서구 유럽의 울창한 숲은

임도가 잘되어 있어서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주는 자전거의 도시다.. 임도가 개통되고 나면 저 길을 달리는 사람들이 많을것 같다..

 

▲ 거대한 방구돌을 에돌아 가면..

 

▲ 매끄럽고 상그런 밧줄구간을 조심스레 오른다.

 

▲ 뒤를 돌아보면 지나왔던 헬기장이 보이고 건너편에는 백두대간상의 형제봉이 눈높이를 같이 한다..

 

▲ 좌측으로는 봉황산이 흰구름에 싸여 아직도 졸고 있다..

 

▲ 가야할 청계산 두루봉에도 백운이 한자락 걸려 있다. 내가 저곳에 오를때 쯤이면 하늘이 열리기를 바랜다..

 

▲ 속리산 최고의 조망처다..

 

▲ 속리의 깨끗함을 보고 싶은 필자의 마음이 통했는지..

 

▲ "산은 멀리서 보라"..라는 말처럼.. 속리의 백운이 흩어지며 신비감을 드러 낸다..

 

속리(俗離).. 

도불원인(道不遠人),,, 도(道)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인원도(人遠道),,, 사람은 도를 멀리 하고

산비이속(山非離俗),,,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리산(俗離山),,,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

 

신라 헌강왕 때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속리산에 와서 남긴 유명한 시다.

 

▲ 고도가 높아지니 형제봉 너머로 구병산이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10시 19분 : 670봉.. 도장산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 어제까지 이틀동안 내린 비로 상당히 미끄럽다..

 

▲ 며느리밥풀꽃... 꽃말은... "원망".. "질투"다...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고 질투하는 시어미에게 며느리들이 한곳에 모여서 집단 항의라도 하는가 보다.

 

10시 26분 : 산불 초소..

 

▲ 산불초소에서 바라보니.. 도장산과 청화산 사이에 무릉도원 "우복동"이다..

서양에 유토피아(Utopia)가 있다면, 조상들은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이상향으로 꼽았다.  ‘십승지지’는 전쟁

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10곳의 땅을 의미하므로 오지로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다.
십승지지를 언급한 옛 책은 정감록(鄭鑑錄;조선시대 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온 예언서), 이중환의 택리지

(擇里志),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 유산록(遊山錄), 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 도선비결(道詵秘訣) 등 다양

하며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 민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비기(秘記)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지가 유명해

지금도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 이렇게 풍광 좋은 곳에서.. 근무하면..

 

▲ 신선이 따로 있더냐..

 

▲ 호롱박에 국화주 담아.. 저 바위에서 한잔 한다면... 여기가 선경이다..

 

▲ 선경을 지나 신선의 걸음으로 휘적휘적.. 작은 안부를 지나 다시 숲으로 드니..

 

▲ 신선은 백운이 제격이라며.. 순식간에 몽환의 세계가 된다..

 

▲ 거북바위..

 

▲ 도승이 가부좌를하고 수도하는 모습이다..

 

▲ 올라 갈수 없는 거대한 암봉을 올려다보니 말벌집이 보인다..

 

▲ 줌으로 당겨 본 말벌집.

 

▲ 두루봉까지 600m를 마지막으로 가르키고는 여기서부터 이정표는 홀연히 사라진다..

 

▲ 나뭇가지 사이로 멋진 조망바위가 보여서 당겨 본다.

 

▲ 하마 같기도 하고...

 

▲ 단풍취... 꽃말은... "순진".. "감사" 다.

 

▲ 애국가 삽화로 쓰도 될것 같은 풍경이다..

 

▲ 두루봉이 바로 눈앞이라서..

 

▲ 당겨 본 두루봉...

 

▲ 안개구름이 스멀스멀 두루봉으로 올라 온다..

 

▲ 안개구름에 잠기기전에 얼른 당겨 본다..

 

▲ 두루봉 가기전의 암봉..

 

▲ 왼쪽으로 돌아서.. 올라갔다가..

 

▲ 두루봉 전위봉격인 암봉을 뒤쪽으로 가본다..

 

▲ 두루봉 오름의 거대한 맘모스바위..

 

▲ 두루봉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산이 두리뭉실 하다고 하여 두루봉이라고 했다는데 실제로는 매우 거칠다..

 

▲ 급경사를 치고 올라.. 드디어 안부에 안착..

 

11시 15분 : 두리봉 안부 도착..

올라오는 방향에서 왼쪽으로 두루봉정상에 갔다가 돌아온다.

 

▲ 두루봉에 등산로 정비를 할 모양이다..

 

11시 19분 : 두루봉 정상.. 김문암님의 트레이드 마크.. 정상 표지판이 반갑다..

 

▲ 정상에서 북쪽으로 약20m정도의 전망바위로 간다..

 

▲ 속리산이 또다시 운해에 가리우고.. 신비감만 더한다..

이 아름다운 산하의 골골마다에는.. 우리들의 인생이 있고 사람사는 이야기가 배여 있다.

 

▲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방향..

6.25 한국전쟁 때 갈령에서 하송리까지 이어지는 계곡에서 화령장 전투가 벌어져 국군 제17연대가 처음으로

인민군을 이긴 곳이다. 1950년 7월17일 상곡리전투와 7월21일 동관리전투로 나눌 수 있으며, 국군이 후퇴를

거듭하던 암울한 시기에 6 · 25전쟁의 판도를 바꾸고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였으며,

멀게는 인천 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쳤으며.. 6 · 25전쟁 중 주민과 군, 경찰의 합작,

정찰과 매복작전으로 아군의 불리한 전세의 흐름을 바꾼 값진 승리로, 연합군의 낙동강방어선 구축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 전투로 평가 한다.
보병 제17연대 전장병이 1계급 특진(2,600명)하였다고 한다.

 

▲ 다시 두루봉으로 돌아와서.. 작약지맥길을 확인해 본다.

 

▲ 안부를 지나 암봉으로 오른다.

 

▲ 하산지점인 청계사계곡..

 

▲ 두루봉쪽을 다시 돌아보고..

 

▲ 안원덕 산대장님이.. 미끄러운 절벽구간에서 제일 후미인 우리들까지 기다렸다가 ..

 

▲ 안전하게 안전 가이드를 하고.. 맑은 날이라면 충분히 내려 올수 있는 곳인데 습기로 매우 미끄럽다.

 

▲ 후미를 다 내려 보내고 산대장님이 휴대용 간이밧줄을 회수하고 내려 온다.. 감사합니다..

 

▲ 바로 안부가 나오고.. 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 수 많은 시그널이 이정표를 대신한다..

 

▲ 난쟁이바위솔.. 꽃말은... "근면" 이다.

 

▲ 투구봉.

 

▲ 투구봉은 전면은 절벽이라 오를수가 없고 뒷쪽으로 돌아가서 오를수가 있다.

 

▲ 왼쪽으로 내려갔다가

 

▲ 바위를 따라 가면 통천문이다.

 

▲ 투구봉 갈림길.. 올라 가보기로 한다..

 

▲ 상주는 삼백의 고장이다.. 그 중에 누에고치가 생각나서.. "누에바위" 라고 이름지어 본다..

 

▲ 투구봉에 벤치를 설치할 모양이다.. 그런데 이것은 찬성하고 싶지 않다..투구봉은 암봉이라서 자연 그대로

바위에 앉으면 될것이다.. 비바람 맞은 벤치는 몇해 가지 않아서 부서지고 빛이 바랜 흉물이 될것이다..

 

▲ 투구봉 표지만..

 

▲ 지나온 두루봉이 우뚝하다..

 

▲ 가야 할 대궐터산.

 

▲ 내가 명명한 "누에바위"를 다시 담아보고..

 

▲ 모퉁이를 돌아서니..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 등산로 정비공사가 한창이다.. 수고한다 인사를 건네고.. 우짜든동 야물딱지게 튼튼하게 설치해주이소~

했더니.. 알았다며.. 앞서간 선두팀들의 정보도 주고.. 길까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 헷갈릴수 있는 삼거리에서 선두팀의 시그널을 따라서 안전하게 진행한다.

 

▲ 안내도상의 연못이다.

 

▲ 빗살무늬 와편(瓦片).

이곳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 장군이 이산에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고 하여 대궐터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여기저기 와편(瓦片)이 흩어져 있다.

 

▲ 성터 흔적..

 

▲ 대궐터산 가는길에도 축성의 흔적이 보인다.

 

13시 27분 : 대궐터산.

 

▲ 대궐터산 표지판.

 

▲ 이곳이 암문터일까?..

 

▲ 다시 산대장님이 안전 가이드를 하고..

 

▲ 멋진 조망바위에 서니.. 앞쪽에 봉황이 날아 오른다..

 

▲ 조선 후기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한폭이다.

 

▲ 오늘 산행중 가장 긴 밧줄과 난이도가 있는 상그런 구간이다..

 

▲ 뻥~뚫린 저~ 파란하늘처럼만 같았던 코로나19 이전의 완전한 일상이 그립다.

 

▲ 비박굴..

 

▲ 비박굴 안에서... 앞에 계신분이 대구의산(大邱宜山)님이시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극락정사 갈림길..

 

▲ 화살표시가 내려온 곳이다.

 

14시 17분 : 극락정사의.. 극락보전.

 

▲ 극락정사 주차장.

 

▲ 누군가 수도처로 사용하던 곳인듯...

 

▲ 전국적으로 이틀간 내린비로 골골마다 계류가 넘친다..

 

▲ 임도 만남.. 위쪽으로 가면 돌아가게 된다..

 

▲ 임도에서 아래쪽으로..

 

▲ 내려 가면서 뒤돌아보니 대궐터산이 올려다 보인다.

 

▲ 견훤사당..

 

▲ 현판에는 "후백제 견훤왕묘" 라고 되어 있다.

 

견훤(甄萱, 867년 ~ 936년 9월 27일(음력 9월 9일)은 신라 말기의 군인이자 후백제의 초대 국왕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견훤은 상주(尙州) 가은현(지금의 문경시 가은읍) 사람으로, 867년에 태어났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 는 원래 농사로 먹고 살다가 광계(光啓) 연간에 집안을 일으켜 장군을 일컬었다고 

하며, 견훤 자신의 성도 원래 이씨(李氏)였으나 뒤에 견씨(甄氏)로 고쳤다고 한다.

 

▲ 내부가 궁금하여 빗장을 열고 들여다 보니 신위가 모셔져 있다..

892년에서 935년 음력 3월까지 후백제의 왕으로 재위한 그는 본래 통일신라의 장군이었으나 889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반란을 일으키고, 892년에 통일신라의 무진주를 습격하였으며, 900년에 통일신라의 

완산주를 도읍으로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927년 서라벌로 쳐들어가 붙잡은 신라의 경애왕을 스스로 자진

토록 하고, 경순왕을 신라의 왕으로 세웠다. 935년 음력 3월에 적장자(嫡長子)인 신검이 일으킨 정변으로 

황위에서 축출되었다가 그 해 6월에 고려 측과 사위 박영규 등의 도움으로 후백제를 탈출했고 대리청정을 

하던 신검은 같은 해 음력 10월 17일에 정식으로 즉위하였지만, 936년 음력 9월 8일에 견훤을 앞세운 

왕건측의 총공격으로 후백제는 패망하였다. 신검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왕건의 후백제 정벌에 앞장을 

섰던 견훤은 신검이 왕건에 의해 일단 사면되는 조치를 받자 극도의 울분과 번민으로 등창이 일어나 

크게 번졌고, 이에 그 다음 날인 음력 9월 9일에 사망하였다.

 

▲ 왼쪽 벽면에 관련 자료가 걸려 있다. 견훤왕릉은 충남 논산에 있고.. 후백제 수도는 전주였다.

"과거를 알면 미래가보인다"라고 했다...성공한 왕이든.. 실패한 왕이든.. 이땅의 역사를 만든 사람이다..

조용히 빗장을 다시 걸고.. 청계사로 향한다.

 

▲ 청계정.

 

▲ 삼봉에서 발원한 이안천..

 

▲ 배 모양의 바위가 멋지다.. 돛을 달고 이안천을 따라 가면 낙동강으로 흘러들게 된다..

 

15시 24분 : 청계사 주차장. 산행 종료.

 

▲ 9.95km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에.. 다소 험한 산세에 어제내린 비로 길은 미끄러웠지만..

속리산을 바라보는 조망도 압권이었고.. 산행내내 시시각각 마술을 부리는 운해는 별천지를 보여 주었고..

골골마다 녹아있는 견훤의 전설을 따라가는 조금도 지루함이 없었던 산이었다..

 

▲ 이안천으로 내려가 땀을 닦아내고..

 

▲ 청계사... 여기도 극락보전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절의 연혁이 전해지지 않아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는 알 수 없다.

 

15시 40분 : 하산주 장소로 출발..

 

16시 31분 : 상주 다담뜰..

 

▲ 대구로 가는길에.. 상주의 진산 갑장산너머로 또 하루의 해가 내려 앉으려 한다..

 

잠깐의 인연으로 알게된 안원덕 산대장님의 초대로 함께한 화랑산악회... 귀가길에 전임회장님의 말씀대로

전문산악인들만의 산악회라는 말씀에 딱 부합되는 그런 산악회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융숭한 대접에 행복했었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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