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8일(목요일).

황석산(1192m) : 경남 함양군.

 

산행코스 : 사방댐주차장-피바위-남문-동문-남봉-황석산-북문-거북바위-북장대터-사방댐주차장.

산행시작 : 사방댐주차장 출발 10시 20분.

산행종료 : 사방댐주차장 도착 15시 14분.

소요시간 : 약 6.4km / 4시간 54분 소요(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10 : 20 사방댐주차장 출발.

10 : 47 피바위.

11 : 15 남문.

12 : 02 동문.

12 : 11 남봉.

12 : 37 황석산.

12 : 51 북문.

13 : 34 거북바위.

13 : 42 북장대터.

15 : 14 사방댐주차장 산행완료.

 

 10시 15분 : 사방댐주차장 도착.

 

▲ 사방댐.

 

 10시 20분 : 안내도를 숙지하고... 출발..

 

▲ 사방댐에서 이정표가 가르키는 임도를따라 50m정도 올라가면...

 

▲ 오른쪽으로 이정표가 황석산 2.6km 들머리임을 친절하게 일러준다...

 

▲ 뒤를 돌아보니 함양의 진산 대봉산이 우뚝하다.

 

▲ 주중이라.. 인적이 없는 고요한 숲으로 아침햇살이 기분 좋게 파고 든다.

 

 초록과 단풍이 교차하는 계절에 햇살과 바람은 겨울을 준비하는 나뭇잎에 생리적인 변화를 일으켜

초록의 싱그러움을 단풍색으로 만들지만... 올해는 이상기후 때문인지 색갈이 곱지가 않다..

 

▲ 10시 47분 : 피바위..

선조와 부화뇌동한 일부 관료 및 장수들의 무능함과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초래한 1597년 7월

칠천량해전의 패배는 임란 7년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전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 후폭풍이 실로 참혹했다.

그나마 제해권의 확보를 통해 조선의 존립을 지켜주던 조선 수군이라는 존재의 사라짐은 인간 존엄에 대한

파괴적 유전자로 무장한 왜군의 칼날이 광풍처럼 우리 땅 이곳저곳을 난도질하는 결정적 시발점이 되었다.

 

남해안에서 제해권을 확보한 왜군들은 임진왜란 제1차 침공 당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치밀한

전략을 수립했다. 전쟁 지속능력 보장을 위해 우선 경상도를 경유해 조선반도 내 주요 곡창지대인

전라도 내 주요거점을 확보하는데 전력을 집중한 것이다.

 

신라시대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주요 길목이었던 육십령고개를 배후로 하는 경상도 함양의

황석 산성은 전라도 방어를 위한 핵심거점이었다.

 

1597년 9월 우리 선조들은 임진왜란 7년 전쟁사의 또 다른 주역이었던 의병을 중심으로 군민, 곽준과

유명개, 조종도를 비롯한 장수들과 수천의 관군 모두가 이 거점을 방어하기 위해 수만의 왜군에 결연하게 맞섰다.

 

인원과 전력 모두에서 절대적인 열세였던 상황에서 애초부터 죽기를 각오하고 임한 전쟁이었기에 분전을

거듭했지만 안타깝게도 곽준과 유명개 및 그 아들들은 전사하고 조종도는 스스로 전장에서 자결했다.

 

성은 이내 함락 되었고 잔인한 왜적들은 부녀자라고 그냥 둘리가 없었다.
우물쭈물 하다가는 적에게 잔인한 죽음을 당하거나 
사로잡히는 몸이 되어 치욕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옥녀부인은 적에게 수치를 당할 바에는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 결심하였다.


그는 왜병이 가까이 오기 전에 서편 성벽으로 달려가서 
벼랑에 몸을 던져 순절하고 말았다.

선혈로 벼랑을 붉게 물들이니 이를 지켜보던 다른 부녀자들도 “우리가 살아남아 어찌 왜적들의 모욕을

받으리”~ 하고.. 뒤따라 벼랑으로 몸을 던졌다.


꽃다운 여인들이 줄줄이 벼랑으로 뛰어내렸으니 
이 어찌 한스러운 비극이 아니겠는가.
수많은 부녀자들의 흘린 피로 벼랑 아래의 바위가 붉게 물들었다. 피맺힌 한이 스며들어 40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황석산 피바위에 전해지는 실존의 전설이다.

 

▲ 오늘도 함께 동행해준 동료를 우선으로 하는 인증샷이다..

 

▲ 피바위를 지나서부터는 다소 가파른 계단길이다...

 

▲ 가파른 계단길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단풍색이 단풍나무가 아니면 어떻고.. 굴참나무면 어떠리... 겨울을 준비하며 변해가는 자연을 즐기자...

 

▲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능선에 올라선다..

 

▲ 평범한 바위오름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밧줄도 잡아보고..

 

▲ 정상까지 2.6km의 딱 절반을 올라온 지점의 편안한 쉼터에 앉아.. 바람이 전하는 소리도 듣고..

 

▲ 거망산으로 이어지는 거망능선의 단풍이 가까이서 보면 별거겠지만... 멀리서 보니 그런데로 곱다..

 

 11시 15분 : 황석산성 남문(사적322호) 도착..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초기에 축조 되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선조 때에 커다란 싸움이 있었던

유서깊은 성터이다. 1597년(선조 30) 왜군이 다시 침입하자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은, 이 성이 호남과

영남을 잇는 요새이므로 왜군이 반드시 노릴 것으로 판단하여 인근의 주민들을 동원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나라의 참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 왜적들이 황석산성으로

쳐들어오자 겁을 먹은 김해부사 <백사림>은 도별장이라는 장수의 직분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몰

가족들을 이끌고 북문을 열고 달아나고 말았다.

 

▲ 건너편으로 함양의 또 다른 진산인 대봉산과 천왕봉이 마주한다.. 대봉산 너머에는 휴양밸리가 있고

천왕봉 정상을 왕복하는 모노레일과 짚라인등의 위락시설이 있다... 예매는 인터넷으로 해야 된다.

 

▲ 가을에.. 성벽길이 참 좋다..

 

▲ 이정표에서.. 성벽길을 벗어나 성안으로 길은 이어 진다..

 

▲ 아쉽지만 오늘의 베스트 단풍이다..

 

▲ 황석산으로 오를수록 단풍으로 물들기도 전에 갑작스런 10월 한파로 나뭇잎이 말라 비틀어졌다..

 

 11시 43분 : 건물지 삼거리.. 매달려 있던 나뭇잎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이 스산하다..

 

▲ 정상까지 0.4km.. 여기서 부터 가장 급한 오름이 시작된다.

 

▲ 목요일 주중인데도 3팀의 산객을 만난다. 한팀은 혼자 왔다는 대구분이고... 두팀은 서울산악회 팀이다..

 

 12시 01분 : 동문 도착...

 

▲ 여기서 왼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바위산이 황석산 정상이고...

 

▲ 오른쪽의 남봉을 먼저 다녀오기로 하고 안전하게 접근할수 있는 우회로를 따른다..

 

▲ 남봉 오름길...

 

▲ 경남 함양군 안의면 소재지..

 

▲ 나의 첫 인증샷...

 

▲ 용추계곡으로 가는 어귀에 있는 유동마을로 내려 가는길...

 

▲ 남봉 정상... 뒷쪽으로 황석산 정상이 보인다..

 

▲ 암릉을 타고.. 황석산으로... 칼날같은 칼봉이지만.. 자세히 보면 내어주는 길이 있다..

 

▲ 올라 왔던 우전마을과 황석산성 건물터..

 

▲ 나막신 바위...

 

▲ 발을 넣어보니 너무 크다.. 거인의 신발인가보다...

 

▲ 지나온 남봉 능선... 저멀리 지리산과 반야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 때 맞추어 올라 오신.. 서울산악회의 회원님 한분에게 부탁..

 

▲ 황석산에 오늘까지 4번이나 왔으면서 눈팅만 하고 갔던 남봉인데... 드디어 올랐다..

 

▲ 남봉에서 바라본 황석산...

 

▲ 데크도 없었던 과거에... 타고 올라 갔던 암릉에 소나무가 옛모습 그대로 푸르다...

 

▲ 황석산 정상 데크.. 2020년 작년에 재보수 설치하였다..

 

▲ 황석산 오름길에 바라본 남봉과 동문...

 

▲ 황석산에서 거망산.. 월봉산까지 이어 지는 능선..

 

 12시 37분 : 황석산 정상...

 

▲ 그림같은 남봉과 동문인데... 아름다운 이곳에 아픔이 있었으니... 정유재란에 일어난 황석산전투다..

황석산성(黃石山城) 전투는... 육전에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전투이다.

8월 16일, 일본군은 황석산성을 포위하고 성을 비우고 나가면 추격하지 않겠다고 최후 통첩을 보냈으나,

성의 군민들은 항전 의지를 다져 일본군은 전투가 불가피함을 알고 동, 서, 남으로 포위하였다.

 

일본군에 맞서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항전해으나 조선군은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전멸했다.

이 때 곽준과 그의 아들 곽이상, 곽이후도 전사했으며 조종도도 전사했다. 성을 함락한 이후 일본군은

성을 뒤지며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고 이러면서 성이 함락되었다.

일본군은 황석산성을 함락한 이후 곡물을 확보하고 전라도로 진군했다. 이러면서 후방의 위협도 제거

하고 곡물을 확보하는 일거양득을 거두었다. 이 여파로 전주성까지 함락되는 무참한 결과로 이루어졌다.

 

혼자 살고자 도망친 김해부사 백사림(白士霖)은...

당연하게도 무수한 비난을 당했으나 백의종군과 사면령을 통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 황석산.. 거망산.. 금원산.. 기백산을 이어면 마름모꼴의 다이아몬드 모양이 된다..

 

▲ 황석산을 내려와서...

 

▲ 거북바위를 보고 북봉까지 다녀 오기로 한다..

 

▲ 황석산아래 북문에서 요란스레 울려대는 배꼽시계를 달랜다...

 

▲ 북봉과 거북바위를 당겨 본다..

 

▲ 당겨 본 거북바위..

 

 13시 34분 : 거북바위...

 

▲ 거북바위에서 바라 본 기백산.. 금원산..

 

▲ 거북바위와 황석산.. 멋진 조화다..

 

▲ 북봉..

 

▲ 여기서 되돌아 간다..

 

▲ 다시 동문으로 돌아와서...

 

 14시 01분 : 우전마을의 사방댐주차장으로 하산.

 

▲ 내려 갈때는 성벽을 타고...

 

▲ 뒤돌아 본 황석산이 너무 멀어서...

 

▲ 정상부를 눈앞에 불러 온다..

 

▲ 다시 피바위에서 나도 흔적 하나 남기고...

 

 15시 14분 : 사방댐주차장 하산 완료..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