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8월 11일(수요일).

개경포 너울길 : 경북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

 

트레킹코스 : 개호정 - 개산포전투전적지 - 출렁다리 - 어더벤쳐 - 청운각 - 개호정 트레킹완료.

트레킹시작 : 개호정 출발 09시 00분.

트레킹종료 개호정 도착 12시 14분.

소요시간 : 약 11.3km / 3시간 14분 소요(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09 : 00 개호정 출발.

09 : 12 개산잔시비.

09 : 18 개산포전투전적지.

09 : 40 출렁다리.

10 : 14 어더벤쳐체험장.

10 : 40 청운각.

12 : 14 개호정 트레킹완료.

 

09시 50분 : 옛 개경포나루터의 개호정.

 

▲ 개경포 너울길 안내도와 팔만대장경 순례길 안내도.

 

▲ 강화도에서 이곳에 도착한 팔만대장경을 해인사까지 운반한 "이운순례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 개호정에서 바라본 낙동강... 옛 개경포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이곳.. 개경포나루터는 ​팔만대장경이 강화도로부터 운반될 때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온

배가 도착한 곳이며.. 승려들이 개경포나루에 도착한 경판을 머리에 이고해인사까지 운반했던 곳이다.

또한.. 가야시대 부터 수로 교통로로 중국과 왜와도 왕성한 교역 활동을 하였던 곳이며..

경상도 내륙지역의 곡식과 소금이 운송되던 커다란 포구였다.. 또 선비들이 뱃놀이를 즐기며 시를

읊었던 곳이다.

 

▲ 개경포 유래비.

원래의 지명은 개산포구(開山浦口)였다.. 과거 고령에서 가장 큰 포구로 곡물과 해산물등 물류 유통이

활발하던 포구였다..  고려때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판을 서해를 거쳐 낙동강을 타고 고령에서

해인사까지 이운하여 개경포(開經浦)로 불려지게 되었다.

 

▲ 개경포에 또다른 눈길을 끄는 오석(烏石)의 비가 있다..

천반좌(天磐座)라 되어 있고 "아마노 이와 구라"라는 일본어가 적혀 있다.

 

▲ 뒷면에는 학교법인 대구학원 이사장이 세운비로...

일본의 역사책인 고사기(古事紀)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옛날 대가야(大加耶)시대였던 서기 174년경

고천원(高天原 : 오늘날의 고령지방)에 살던 천조대신(天照大神 : 일본명.. 아마데라스 오호미가미)의 손자

경경저존(瓊瓊杵尊 : 일본명.. 니니기노 미꼬도)가 일본 구주 일향을 향해서 고천원(고령)을 떠날 때

이 바위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짧은 지식으로 연결해 보자면...

일본 시조인 천조대신의 손자가 이곳 고령에 살다가 일본으로 갔다... 라는 말인것 같다..

역사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일본 천자의 시조는... 대가야 인(大伽倻 人)인 것이다..

 

09시 00분 : 개호정 주변을 돌아보고 본격적인 트레킹 시작이다.

 

▲ 8월의 녹음은 무성하고 탐방객이 뜸한지.. 잡초가 깔려있는 야자매트 사이를 비집고 자란다..

 

▲ 비는 오지 않을것 같은데 높은 습도에 삐질삐질 흐르는 비지땀을..

 

▲ 낙동강변을 타고 불어주는 시원한 강바람에 금방 말라 버린다.

 

▲ 꾸불꾸불 오르락 내리락 길이름처럼 걷기좋은 너울길은 이어진다.

 

▲ 개산잔(開山棧) 시비...개산의 험한길 시작점이다...

혼자 걷는길.. 바쁠게 없다.. 시한수 읊어 보고 가자...

조선 영조때의 고령 출신의 지촌(芝村) 박이곤(朴履坤 : 1730~1783)이 고령군 우곡면 예곡리(禮谷里)

부래(浮來)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며 개경포(開經浦)를 거쳐 고령군 개진면

부리(釜里) 건너편 상산(商山)까지의 아름다운 풍광(風光)을 시로 읊은 것이다.

높은 바위에서 용궁을 굽어보고..

위태로운 길을 걸어 비탈을 간다.

모름지기 전전긍긍.. 조심하는 뜻을 알아야 하니

세상에는 양의 창자같이 험한 길도 많다네~~..

그렇다... 세상사 모든것이 "조심이 제일" 이다..

 

09시 12분 : 친절한 이정표.. 잘 만들어 놓았다.

 

▲ 울창한 활엽수길도 너울 너울.. 나도 너울너울.. 춤을추듯 휘적휘적 여유롭다.

 

▲ 2~3일전에 내린비로 번개폭포도 만나고..

 

09시 18분 : 개산포전투전적지.

이곳은 임진왜란 때 고령지역의 의병들이 창의하여 대승을 거둔 전적지다.

1592년 6월 9일 고령 도진리출신의 양죽당 박정완(養竹堂 朴廷琬)과 동생 예빈시주부인

학암 박정번 (鶴巖 朴廷璠)이 왜적 80여 명을 수장시키고 궁중보물을 되찾은 현장이라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 친절한 이정표보다 더 친절한 방향표시가 곳곳에서 안내를 한다.

 

▲ 활엽수길이 솔향숲으로 바뀌고... 느낌이 왠지 노랑망태를 만날것 같은 분위기다..

 

▲ 노랑망태버섯... 역시나 예감적중이다..

캬!~~ 혼자서도 느낌있는 나의 정확한 촉수에 쾌재를 부른다.

 

▲ 낙동강 수면의 흐름은 정지한 듯 유유하게 보이지만.. 물속은 유속이 빠르다..

 

▲ 구비구비 돌고 돌면서 몇번째의 개울인지 셀수도 없이 건넌다..

 

▲ 마치 봄날의 신록같은 연두색숲이 내뿜는 아침공기가 참 좋다..

 

▲ 개산포전투에서 공을 세운 양죽당 박정완(1543~1614)이 노년에 옛 전적을 회상하며 이곳에

어목정을 짓고 유유자적 하던 곳이다.

 

09시 40분 : 출렁다리.

 

▲ 폭이 좁아서 두사람이 교행하려면 어깨가 부딪힐 정도다.. 이다리 놓을때 예산이 부족했던가 보다..

 

▲ 칡덩굴의 영역 넓히기...

 

▲ 강건너로는 대구시 달성군의 진등산과 석문산 위로 흐렸던 하늘이 개여온다.

 

▲ 부례관광지 1.42km.. 거진 다와 가는것 같다.

 

▲ 개산의 위험한 길... 절벽위로 길이 이어진다..

 

▲ 아차!~ 미끄러지면.. 낙동강으로 슈~~웅... 이다.

 

▲ 친절한 이정표는 부례관광지 720m 인데...

 

▲ 고목의 이정표는 0.8km... 80m가 늘어 났다..

 

10시 12분 : 부례관광지 입구..

 

지촌(芝村) 박이곤(朴履坤 : 1730~1783)의 낙강9곡중 1곡시비..

 

▲ 부례어더벤처..

 

▲ 부례골로 진입한다.

 

▲ 10시 39분 : 청운각 쉼터.

 

▲ 이 산중에 시설한번 좋다.. 틀면 쏴!~~ 잘 나온다.

 

▲ 청운각..

 

▲ 데크 쉼터가 두개로 나뉘어 있다.

 

▲ 남쪽으로 흐르는 낙동강...

 

▲ 낙동강 상류쪽...

 

▲ 쉼터에서 좌측으로 가면 부례고개로 가는길...

 

▲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 곳곳에 잘 만들어진 쉼터..

 

▲ 누리장나무..

 

▲ 국제신문 시그널이 걸려 있는 쪽으로 하산이다..

 

▲ 어제가 말복이었는데... 밤나무에서 밤알이 영글어가는 가을색이 묻어 난다.

 

▲ 내려오는 길에 노랑망태버섯 군락지를 만난다..

 

▲ 약 20여송이가 숲속의 요정처럼 보인다..

 

▲ 아침에 지나 갔던 너울길과 만난다..

 

▲ 출발지였던 개호정 도착.

 

▲ 12시 14분 : 트레킹 완료..

강화도의 팔만대장경이 이곳 개산 나루터에 도착했던 곳.. 일본 천신의 손자가 일본으로 향했던 곳...

천년역사의 숨결이 있는 낙동강 나루터의 하늘이 곱다... 타임머신을 타고 천년전의 그 날들도..

평화롭고 아름다웠을 것 같다.

 

 

▲ 개호정을 떠나 제방둑을 지나가며... 낙동강 상류쪽도 바라보고..

 

▲ 건너편의 석문산도 보고..

 

▲ 오른쪽 개호정과 낙동강 하류도 보고..

 

▲ 고령 개포동 시례골의 석조관음보살 좌상을 찾아서...

 

▲ 관모의 중앙에 새겨져 있는 작은 부처님이 앙징스럽고 연꽃 두송이가 아름답다.

 

▲ 뒷면에 선각으로 사각형을 그려놓고 그 안에 옹희이년을유유월이십칠일

"雍熙二年乙酉六月二十七日"이라고 쓰여져 있다. 이는 고려 성종 4년으로 서기 985년이다.

연대가 가장 확실하게 밝혀진 고려시대 불상이다.

 

석조관음보살 좌상을 뒤로하고..

 

▲ 개경포공원.

 

▲ 국보 제32호인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제작 과정이나 보관중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두가지의 불가사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그 방대한 수량을 어떻게 만들었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강화도에서 합천 해인사로 옮겨 온 과정이다. 현재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는 대장경은

총 81,352판(장)으로... 무게만 285톤으로 8톤 트럭 35대 분량이라고 한다. 운송수단이 빈약했던 아득한

그 옛날에는 얼마나 힘든 이운 작업이었을까.....

고려 국책사업으로 시작된 대장경 작업은 1차로 고려 헌종때인 1011년에 시작하여 77년에 걸쳐

만들어져 팔공산 부인사에 보관하다가 1232년 몽골군이 불을 질러 소실되고, 이후 2차로 고려 고종때인

1236년부터 16년에 걸쳐 만들어 1251년에 완성 된것이 현재의 팔만대장경이다. 경남 남해에서 만들어

강화도에 보관하다가 외척의 잦은 침입으로 다시 안전한 곳으로 옮긴 곳이 해인사이다. 첩첩산중, 은둔의

지역에 자리한 해인사를 가장 적지로 여긴 것이다. 강화도에서 서해와 남해를 거쳐 부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해인사와 가장 가까운 포구인 고령의 개경포나루에 하선을 하여 이곳부터 영남 일대의

승려들과 인근의 부녀자들이 총동원되어 경판을 머리에 하나씩 이고 해인사까지 장장 8개월에 걸쳐서

운반을 하였다고 한다..... 이 시절 이곳 개경포에서 해인사까지 걸어서 약 15일정도 걸렸다고 한다..

 

▲ 대장경판의 글씨를 보이는 곳만 디테일(detail)하게 하고 안보이는 위쪽은 대충하지 않았을까 하고

카메라를 위로 올려 찍어보니 위쪽도 세밀하게 제작 되어 있다..

 

▲ 개경포 공원의 주막집..

 

▲ 팔만대장경을 수레로 옮기는 벽화..

 

▲ 조운선 모형..

팔만대장경을 옮길때 사용하였으며... 조운선은 조세로 거둔쌀을 옮기기 위해 만든 배로..

얕은 물길을 따라 내륙으로 이동하기에 적합한 배였다.

 

▲ 전체 거리 42km의 팔만대장경 이운 순례길 안내도..

 

팔만대장경을 내렸던.. 개경포나루터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걷는 너울길..

강바람이 시원하고 강변의 풍경과 운치가 힐링되는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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