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5월 19일(부처님 오신날).

희양산(999m)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산행코스 : 은티마을주차장 - 산성터 - 희양산 - 안성골 - 백운대(마애불) - 봉암사 - 최치원유적 주차장 산행완료.

산행시작 : 은티마을주차장 출발 09시 02분.

산행종료 : 최치원유적주차장 도착 14시 14분.

소요시간 : 약 13.8km / 5시간 12분 소요(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09 : 02 은티마을주차장 출발.

10 : 23 산성터.

11 : 08 희양산 정상.

11 : 47 안성골.

13 : 16 백운대(마애불).

13 : 31 봉암사.

14 : 14 최치원유적공원주차장 산행완료.

 

09시 02분 : 은티마을주차장 출발. 안내산악회에서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날에 경북 문경의 희양산을

거쳐 1년에 단한번 산문을 개방하는 봉암사를 간다하여 신청하여 동참...

주차장에 하차하여 신발끈 동여매고 스틱챙기고 사진 한컷 찍는 사이 선두그룹은 사라지고 없다~.

 

희양산 들머리인 은티마을로 가는 동구밖의 장승...

 

1812년 작성된 동절목(洞節目)에는 인지동 의인촌리(義仁村里)로 기록되어 오다가 1910년 경술국치후

왜인들이 의인(義仁)은 한국의 민족정신이 함유되었다하여 은티(銀峙)로 개칭되었다는 내용...

 

▲ 남근석.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은티는 여궁혈에 자리하고 있어 동구밖에 남근을 상징하는 물체를 세워야 마을이

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하여 전나무와 남근석을 세워 놓고

매년 음력 정월초 이튿날을 마을의 평안과 동민가족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고 있다.

 

▲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악휘봉과 마분봉능선...

산너머 입석마을에서 "악희봉"의 촛대바위를 거쳐 "마분봉"의 UFO바위와 마법의성 암릉을 넘어오던때가

벌써 20여년이 되어 간다... 악희봉에서 칠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09시 24분 : 지름티재 갈림길.. 산불감사원이 희양산 ~ 봉암사 구간은 가지 말라고 한다..

안내산악회 인솔자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무조건 고다..

 

▲ 희양산 표지석뒤로... 보이는 사람이 인솔대장이다.

 

▲ 지름티재에는 봉암사 출입을 막기위해 스님이 지킨다고 하여... 산성터로 가는 길을 따른다...

 

10시 23분 : 산성터.

 

▲ 시루봉 방향...이만봉으로 북진하는 백두대간 길이다.

 

▲ 전국의 유명산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대구99클럽 시그널.. 반갑다.

 

▲ 희양산으로 가는길...

 

10시 36분 : 구왕봉 갈림길..

희양산이 백두대간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서 그런지 표지판이 없고 매직 표시만 있다.

 

▲ 구왕봉 방향... 지름티재에서 올라오는 급경사 밧줄구간이다.

 

▲ 눈이 힐링되는 시간이다.... 저 멀리에는 속리의 연봉들이 아스라 하고...

둔덕산에서 통시바위 밀재 대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시원하게 달려 간다.

 

▲ 구왕봉이 지척이다...

 

▲ 바위 하나라도 놓칠까... 올라 갈수 있는 곳은 다 올라 가보자.

 

▲ 당겨 본 봉암사...

 

11시 08분 : 희양산 정상.

 

▲ 점심먹기에는 조금 이른것 같아서... 일행들을 따라서 하산하려는데... 철조망을 쳐 놓았다...

1년에 한번 부처님 오신날에는 희양산도 개방하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것 같다..

 

▲ 안내자의 말을 빌리면...

승려들의 수도정진에 방해가 된다 하여 희양산 일대의 등산로를 막아 놓았다고 한다..

이에...수도(修道)를 하는 사찰에서... 참된 길을 찾는다는 사람들이... 자연의 길을 막다니......했었는데

산행지를 정리하면서 알아보니... 희양산은 2002년 1월에 문경시와 남부지방산림청과 합동으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입산금지구역이었다. 단체따라 왔으니 우짜건노 가야재~..

 

▲ 길이 쓸려 계곡길로 내려가다보니 성터가 나오고 길이 없다... 좌측을 보니 나무사이로 산죽이 보인다...

 

▲ 길은 있었으되 1년씩 막아 놓으니.. 계곡을 건널때는 급류에 흔적도 없이 쓸려간 곳에서는 헤매고

약간의 알바도 했지만... 찾아보면 길은 있다..

 

▲ 막아 놓았어도 전혀 안다니지는 않은지 유실된 길 말고는 길은 비교적 뚜렷하다...

 

11시 47분 : 안성골...

 

12시 01분 : 물길따라 내려 오다가 하트를 닮은 바위에서 민생고 해결...

지나가던 일행이 봉암사에 가서 점심공양을 하시지요.. 한다...

공양도 인연이 되면 하는 것이고 먹기 위해서 배고픔을 참고 봉암사까지 가기는 싫습니다. 라고 했다...

내가 먹은 김밥 한줄이나.. 사찰공양이나 속에 들어가서 똥되기는 똑 같다...~~ㅎㅎ

 

▲ 다 내려 온것 같다... 마지막 철조망이다..

가이드의 말이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봉암사로 갈수 있다던데.....

 

▲ 바로앞 외딴집에 젊은 승려가 못가게 지키고 있다...

 

▲ 이 바위를 돌아가면 봉암사로 가는 길이 있다..라고 인터넷에서 보았다..

 

▲ 거대한 암봉인 희양산을 올려다 보고...

 

▲ 역시나 여기도 두분이 지키고 계신다.. 나이드신 분이 웃으시며.. 정문으로 돌아 가란다.. 합장하고...

 

▲ 원북2리 마을 회관... 돌아 가려니 엄청 멀다...

 

12시 52분 : 봉암사 입구...

 

▲ 봉암사 방역 지원센터.. 들어가는 절차가 있다.. 코로나19로 첨단기기가 필요하다..

 

▲ 제일 먼저.. 스마트폰으로 080-341-75XX 번으로 전화를 걸면 위 처럼 접수되었다는 문자가 온다..

위의 문자를 보여주면.. 체온 검사를 하고 들어가라고 한다..

여기까지 와서야 앞에 두군데서 지키고 있는 이유를 알것 같다... 사잇길로 들어가면 만에 하나 관리가

안되고 문제 발생시에는 감염경로를 알수가 없게 된다.

 

▲ 봉암사계곡의... 나이야가라 폭포..

 

▲ 희양산과 좌측의 구왕봉.

희양산은 백두대간의 ‘단전’ 부분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인지 화강암 바위들로 이뤄진 해발 999m의

암봉은 멀리서 봐도 단단한 기운이 느껴진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기세다.

신라 헌강왕 때 지증대사는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 이라며

희양산 남쪽 너른 터에 봉암사를 창건, 선풍을 크게 떨쳤다.

 

13시 04분 : 희양산 봉암사 일주문.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南無)는 인도어로 "돌아가서 의지한다." 라는 뜻이니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아미타불에게 돌아가 의지한다"..라고 보면 될것이다.

 

▲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보물2108호)..

 

▲ 백운대.. 문경 8경중에 하나다.

 

▲ 봉암사 백운대 계곡은 예로부터 ‘봉암용곡(鳳巖龍谷)’이라 불려왔다.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른다고 해서다. 20여리에 이르는 계곡에는 맑은 물줄기가

분재 같은 노송을 벗하며 넓은 암반 위를 힘차게 흘러내린다.

지증대사는 “산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 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어 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 며 경탄했다.

 

▲ 희양산문 태고선원.

봉암사 선원의 역사는 저 멀리 신라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증대사 도헌스님이 구산선문중 하나인

희양산문을 이곳에서 개창하였던 것이다. 해방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봉암사는 한국불교의

현대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한 결사도량으로 거듭난다. 이름하여 '봉암사 결사' 가 그것이다.

봉암사 결사는 성철스님의 나이 36세 이던 19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 자운. 우봉스님등 4인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 라는 원을 세우고 결사도량을 찾으니

그 곳이 봉암사였다.

 

▲ 진공문의 주련에 입차문내(入此門內) 막존지해(莫存知解)라 되어 있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세간에 존재하는 알음알이 지식으로 해석하려고 하지 말라.’ 라는 뜻이다.

 

▲ 금색전... 삼층석탑... 흰색연등이다..

연등에 색칠할 시간도 아껴 수도에 정진하기 때문에 흰등을 단다고 한다.

 

▲ 금색전... 금색인을 모시는 곳으로... 부처님을 말한다.

봉암사는 지금부터 약 1100여년전 신라 헌강왕 5년에 지증국사께서 창건한 고찰로서

선종산문인 구산선문의 일맥인 희양산문으로 그 사찰의 격이 매우 당당하다.

당시 이곳은 신라 문화의 정수인 선풍을 크게 일으켜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파의 주봉을 이루었던 곳이다.

특히 신라 제 49대 헌강왕은 화풍으로 소폐하고 혜해로 유고할 유신정치를 뜻하고 이었는데 이런 헌강왕의

개혁 의지에 이념을 제공한 것이 지증대사의 선이었다.

 

▲ 수미단에는 두마리용이 수염을 휘날리며 호위하고.. 위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코끼리가 앉아 있고 주불로는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 삼층석탑(보물169호)과 흰연등..

 

▲ 봉암사 지증대사탑(보물 137호).

 

지증대사탑비(국보315호). 비문은 고운 최치원이 지었고... 글씨는 분황사의 승려 석혜강이 썼다고 한다.

 

▲ 묘유문... 묘유는 지혜를 말한다...

 

▲ 조사전.... 역대 조사님들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 금색전 뒷편에는 대웅전이라 되어 있다.

 

▲ 대웅보전..

 

▲ 초파일의 관불의식..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으로 새로운 삶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 극락전... 경순왕이 피난시절에 원당으로 지은 곳이다..

 

▲ 남훈루로 나가는 길...

 

▲ 시루떡 공양을 하고 있다...

 

▲ 불자가 아닌 내가 사찰을 찾는 이유는...

자연과 잘 어울려진 각종 문화재의 아름다운 선과 예술적 감각을 느끼고자 함이 더크다.

1년에 단 한차례 산문을 연다는 봉암사에서의 천년의 숨결을 빠짐없이 찾아보려 했지만 막상 산문을

나올려니 미련이 남는다... 천년의 시간이 녹아 있는 곳을 어찌 하룻만에 다볼수 있을까..

이것 또한 불교적 해석을 빌리자면 또한.. 욕심이려니...

 

▲ 남훈루를 나서며...

 

▲ 물을 베고 누웠다는 침류교를 건너...

 

▲ 봉암용곡의 맑은 계류를 따라 산문 밖으로...

 

▲ 일주문... 나갈때는 봉황문이다.

 

▲ 봉암사 관리실의 저 차단기가 내일부터 또다시 1년간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할 것이다.

봉암사가 수행도량으로 정해진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성철스님과 봉암사결사 정진이 1950년 한국전쟁으로

중단 되었다가...그후 1970년대초 향곡스님을 조실로 다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80년경 서암스님이 정식으로

태고선원 조실로 모셔지면서 선원은 청룡의 승천과 봉황의 날개짓처럼 웅대한 자태를 희양산 자락에 펼치게

되었다. 1982년 6월 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여 성역화 의지를 표명하였다.

1982년 7월 문경군에서는 사찰 경내지를 확정 고시하였다.. 그래서 희양산 봉암사 지역은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1년에 단 하루.. "부처님 오신날" 에만 산문을

개방 하였던 것이다.

 

14시 14분 : 봉암사 입구 산행종료... 정해진 하산시간보다 1시간 16분을 빨리 왔다.

 

▲ 안내산악회 버스가 온다는 곳으로... 봉암사 폐문 시간이 오후 7시까지라 참배객의 차량이 줄을 잇는다.

 

▲ 아까 봉암사에서 보았던 지증대사 탑비를 여기에 재현해 놓았다.

 

▲ 원북리 당집앞이 대형버스 회차장이다...

 

▲ 지각생을 기다리며...

안내산악회 가이드가 오후 3시 30분까지 시간 맞춰 오라고 했는데도 30분을 초과하여도 오지 않으니

시골의 좁은 길위에 승용차는 넘쳐나고.. 봉암사로 가려는 사람들과.. 나오는 사람들로 완전 돗대기시장이고...

그 틈에 대형버스가 밖혀 있으니 교통정리하는 경찰들은 버스 기사보고 "빨리 차 빼라"..고 채근하지...

부처님 품에서 사바세계로 나오니... 이것이 혼돈(混沌)의 세상이다... ㅎㅎㅎ~.. 으휴~~

드디어 마지막으로 네사람이 차에 타면서 38분이 늦은 오후4시 8분에 출발...

이렇게 부처님 오신날을 뒤로하고... 내가 사는 세상속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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