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봉산은..

 

강원도 삼척시 임원리 산1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봉우리가 칼날처럼 날카롭다고 해서 검봉산(劍峰山)이라 이름했고

일명,,, "칼코딩이(고댕이)"라 부르는 임원의 진산으로.

고뎅이는 산이나 높은 언덕을 뜻하는 이지역의 사투리다.

 

2018년 10월 14일

검봉산(682m) : 강원 삼척시.

 

산행코스 : 검봉산휴양림 3주차장학바위안내판 - 통나무의자전망대 - 검봉산 정상 -

       3주차장 임도 갈림길 - 문화휴양관 - 검봉산휴양림 3주차장 하산완료.

행시작 : 검봉산휴양림 제3주차장 11시 32분.

하산완료검봉산휴양림 제3주차장 15시 36분.

소요시간 : 7.7km / 4시간 04분소요(휴식시간 포함).

 

11 : 26  검봉산휴양림 매표소 도착.

11 : 32  검봉산휴양림 제3주차장 출발.

12 : 07  학바위유래 안내판.

12 : 2통나무의자 전망대.

13 : 04  검봉산 정상.

14 : 53  제3주차장갈림길 임도.

16 : 06  검봉산휴양림 제3주차장 하산완료.

 

 

11시 26분 : 검봉산휴양림입구매표소.

입장료인지?.. 주차비인지..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입구의 주차장이 산행들머리인줄 알았더니

산악회 버스의 주차는 안되므로.. 상류쪽의 제3주차장으로 가라는

휴양림 직원의 안내다.

 

 

 

 

 

11시 32분 : 제3주차장 도착.

 

 

 

길 복판에 당당하게 버티고 선..

잘생긴 소나무를 보고 오는데.

 

 

 

갑자기...

산악 전문 카메라기자들의 특종 취재경쟁이 치열해서

뒤돌아 보니.. 그 이름이 전국에서도 유명하다는

"대구99클럽"이 이곳에 떳다고 한다.

 

 

 

과연 명불허전이다..

특종 취재..맞다.

 

여성회원님들의 미모는 그 아름답기가

신라의 절세미인이었다는 "수로부인"이요..

 

남성회원님들은 복받은 남자...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공" 처럼 준수한 미남들이다.

 

나도 슬쩍..

이분들 틈에 끼어 "순정공" 이 된다.

 

 

 

안내판을 숙지하고.

산행코스를 암기.

 

 

 

 

꽃향유.

꽃말은

"가을의 향기"라는 예쁜 이름이다.

 

 

 

투구꽃.

꽃말은.. "밤의 열림"..이다..

 

 

 

 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 당한 아픈 흔적을 안고 있는

소나무는 말이 없고 알아주는 이

얼마나 될꼬...

 

 

 

휴양림에 관리하는 산이라서 그런지

등산로 정비는 잘되어 있는 편이다.

 

 

 

 

설악산 단풍소식을 이곳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나 보다...

 

 

 

폭포 1.

태풍 "콩레이"에 물에 빠진 나무가 거슬린다.

 

 

 

 

 

 

폭포 2.

 

 

 

 

 

▲ 이 등산로는 한국전쟁때 검봉산 정상부를 지키는

국군을 위해 기름을 져 나르던 길이었다고...한다.

 

 

 

 

 

12시 07분 : "학바위" 라는데...

그림속의 학바위는 찾을 길이 없다.

 

 

 

12시 27분 : 통나무의자 전망대에서.

 

 

 

▲ 시원하게 조망되는 동해와.

 

 

 

▲ 검봉산 정상 방향도 확인하고..

 

 

 

 

 

 

 

12시 36분 : 임도와 만난다.

 

 

 

 

 

 

▲ 오늘 아침에도 지나간듯한 선명한 자동차 바퀴자국..

 

 

 

▲ 산악기상 관측장치.

 

 

 

▲ 쭉쭉빵빵 잘 빠진 금강송.

 

 

 

 

▲ 용담.

 

 

 

▲ 2000년 4월 7일에 발생한

동해안 산불의 흔적이 보여서..

 

 

 

▲ 당겨 본다.

 

동해안 산불은..

2000년 4월 7일에 발화하여 4월 15일까지

고성군과 삼척시, 동해시, 강릉시, 경상북도 울진군 일대

산림을 불태운 대형 산불이다.

 

산불은 7일 오전 1시 45분께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학야리

육군 모부대 뒤 운봉산에서 발생했다.

 

조사 결과 산불 원인은 부대 내 소각장에서

불씨가 날린 것으로 밝혀졌다.

 

군부대 측은 당시 쓰레기 소각을 담당했던

사병 1명을 구속하고 지휘계통의 관계자 5명을 문책하였다.

 

 

 

 

▲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죽은자와 산자의 공존.

 

그 아래에는 18년의 흔적을 지우고 채워온

어린 소나무들이 쑥쑥자라고 있다~.

  

 

 

 

 

 

 

 

 

 

 

2000년에 발생했던 동해안산불은

발화된 지점이 고성이어서 고성산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동해안 전역으로 번졌기에 동해안 산불이라고도 부른다.


 

 

 

▲ 검봉산 정상쪽.

 

  

 

▲ 산불 진화에 9일이 걸린 것은

당시 동해안 지역은 건조주의보가 발령되어 있었으며

순간최대풍속이 23.7m/s에 이를 만큼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은 폭 400m의 강물도 건너서

산불을 번지게 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13시 04분 : 검봉산 정상.

 

산불이 난 지역은 과거보다 더 많은 곤충이 살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 2000년 강원도 고성, 강릉, 삼척 일대에 발생한 산불이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조사해 보았다.

 

연구팀은 "산불로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었을 것이다" 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산불이 나기 전보다 더 다양한 곤충이 살고 있었다.

큰 나무가 줄고 여러 종류의 풀과 식물이 자라면서

이 풀들과 어울려 사는 곤충도 늘어난 것이다.

 

  

 

 

 

 

 

 

 

▲ 검봉산의 명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고사목과 명품소나무.

 

 

 

 

▲ 아픔이 있는 이곳 정상에서

웃음꽃을 피워주신 두분에게 박수 보냅니다..

 

 

 

 

▲ 대형 산불의 참사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복원력은 대단하다.

 

산은 스스로 서서히

숲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 이 산의 아픔을...

수로부인의 마음으로 쓰담하고 달래주는

이쁜 모습도 아름답고..

 

 

 

▲ 그 이쁜 마음을..

곱게 담아 내려는 마음도 아름답습니다.

 

 

 

 

 

 

 

 

▲ 부부송.

 

 

 

 

 

 

 

 

 

▲ 바다와 산과 어우러진 고사목은...

멋진 진풍경을 연출 한다.

 

 

 

▲ 산불로 잃어버린 땅에

새로운 18년의 세월을 넘어 바라보는 동해가

너무나 아름답다.

 

 

 

▲ 사는동안 열심히 살았노라고,,

 

 

 

 

▲ 아직도 듬성듬성한 흔적들이 보인다.

 

총 2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당했으며,

민가 56채가 불에 탔고 이재민 110명이 발생했으며

8천명이 대피했고 학교들은 임시휴교에 들어갔다.

 

8일에는 주민 만여 명이 대피하였고,

12일에는 울진 원전이 한 때 위험에 처했다.

 

국내 최대 시멘트 생산공장인 쌍용양회가 가동을 중단했고,

13일에는 10만 명이 대피했다.

 

 

 

▲ 원덕읍 임원리 남화산은 헌화가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헌화가"와 "해가사"에 나오는 수로부인의 이야기를

조각품으로 재현해 놓았다.

 

"수로부인 헌화가"

신라 33대 성덕왕대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도중

바닷가에 당도해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옆에는 돌산이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서 그 높이 천 길이나 되는데

맨 꼭대기에 진달래꽃이 흠뻑 피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꽃을 보고서 좌우에 있는 사람들더러 이르기를

"꽃을 꺾어다가 날 줄 사람이 그래 아무도 없느냐?"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올라 갈 데가 못 됩니다."

 

모두들 못 하겠다고 하는데

새끼 벤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늙은이가 옆에 있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 오고 또 노래를 지어 드렸다.

 

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 경사가 만만치 않은 검봉산 내림길이다.

 

 

 

 

 

 

 

▲ 소공대(召公臺) 비각(碑閣)이 있는 자리인데

검봉산 높은 곳에서 비각의 지붕이 보이지 않을까 하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아서

 

저기 어디쯤 아닐까

짐작해 본다.

 

소공대는

옛날 시인.문사들이

동해바다 망망대해 울릉도를 바라보면서

수많은 시(詩)를 지었던 곳으로

동해의 천혜절경 해안선을 조망하는데

아주 좋은 위치다.

 

 

 

▲ 소공대(召公臺) 비각(碑閣).

 

조선조 초기.. 고려를 뒤엎고 역성혁명을 성공시킨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새로운 정치로 민심을 사려고 하던 시절에

동해안은 때아닌 기근으로 아사자가 속출하였다고 한다.

 

이때 강원도 관찰사로 황희대감이 재직 하던중

관동의 기근소식을 듣고는 조정에 장계를 올려

상평창에 보관된 비축미를 풀어 양민의 구호에 앞장서고

선정을 베풀어 멀어져 가는 민심을 수습하고 흉년을 잘 넘겼다고 한다.

 

황희 정승이 떠나고 이에 고마움을 느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황희가 쉬어 갔던 와현에 돌을 모아 대를 만들고

비를 세워 황대감의 공덕을 찬양하여 세운 비석으로

이름을 소공(召公이라 하였다.

 

  

 

▲ 인류의 역사에서 정치를 잘하여 국가를 번영시키고

벡성을 편안하게 잘 다스려 잘 살도록 한 정치가는

중국 주나라 시대의 문왕의 아들이며 무왕의 동생이었던

소공(召公)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소공(召公)은 조카인 성왕을 도와 국가의 기틀을 튼튼이 하고

백성을 편안이 살수 있도록 국태민안에 이바지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권에서는 정치를 잘하는 위정자를

소공(召公)에 비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국의 군주(君主)가

줄줄히 옥살이를 하는 나라..

 

소공같은 황희..

황희같은 소공이시여~~

 

그런 인물..

이땅에 언제 오시나이까..

 

 

 

▲ 18년이 지난 지금..

적송,,,금강송이 겉으로는 멋진모습을 보이지만..

 

 

 

▲ 아래를 보면,,

아직도 못다 지운 그을린 흔적은

보는이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 수탈을 당한 송진이 눈물되어 흐르고...

 

 

 

▲ 산불에 그을리고..

얼마나 아팠을꼬...

 

 

 

14시 53분 : 3주차장 갈림길 임도..

임도로 새치기 할껄..

 

 

 

▲ 내려온 길..

 

 

 

 

 

 

▲ 식물생태계 표본 조사.

 

 

 

▲ 철 모르는 진달래,,

 

 

 

 

 

15시 36분 : 검봉산휴양림 제3주차장 하산완료.

 

대 참사를 일으킨 인간의 허물을

하늘에 고발하지 않고

 

스스로 감수하며 보듬어 가는

자연의 인내와 복원력과 너그러움에

 

너무나 작은 존재였음을

다시한번 깨닫고 배우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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