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4월 09일<망산 294m> : 경남 통영시 한산면.

 

산행코스제승당 - 덮을개 - 소고포갈림길 - 망산 - 휴월정 - 진두항 마을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제승당선착장 10시 33분.

하산완료 : 진두항주차장 13시 47분.

(산행소요시간 : 3시간 14분소요, 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09 : 36  거제시 둔덕면 어구항 도착.

09 : 52  여객선 을지2호 승선.

10 : 00  어구항 출발.

10 : 20  한산면 소고포 선착장 도착.

10 : 23  한산면 마을버스 승차.

10 : 33  제승당선착장(덮을개) 도착.

10 : 44  제승당 관람.

11 : 07  망산 산행 시작.

12 : 14  소고포 갈림길(점심).

12 : 54  망산 정상.

12 : 58  휴월정.

13 : 47  진두항 하산완료.

15 : 24  소고포 선착장 출발.

15 : 44  거제 어구항 도착(하산주).

17 : 06  통영어시장.

17 : 35  대구 출발. 

 

한산도 가는길. 

오늘은 매월 둘째 일요일의 협력산악회에서

우리나라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한산대첩의

제승당이 있는 망산으로 가는날... 

가본지가 30년도 넘은것 같은 그때는 통영에서 배를 타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거제시의 어구항에서 한산도로 가는 길을 공부하며.

빛바랜 앨범속의 오래된 추억을 더듬어 본다.

 

 

09시 36분 : 거제시 둔덕면 어구항 도착.

 

 

▲ 운항시간 체크. 

우리가 타고갈 어구에서 한산면 소고포 운항은

4항차로 10시에 출항이다.

 

 

▲ 승선 시간까지 약 15분간의 시간 활용으로

마을 한바퀴 돌아 보기.

 

 

 

 

 

 

 

▲ 우리를 태우고 갈 연안여객선이 들어오고 있다.

 

 

▲ 을지 2호...

승객165명 정원에 대형 버스 및 일반 차량 수송.

 

 

 

09시 52분 : 승선 시작.

 

 

 

▲ 정확하게 10시 정각에 출항한 을지2호는

타고온 버스를 덩그머니 남겨 놓고..

 

 

▲ 힘찬 엔진의 굉음으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어구항을 밀어내고 한산면의 소고포로..

 

 

▲ 낚시마을 답게 손맛을 즐기는 꾼들..

 

 

▲ 굴 양식장인지...

 

 

▲ 멍게양식장인지..모르지만

이제는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이 자리매김을 하는듯..

 

 

 

▲ 어구항을 출발한지 불과 20분만에통영시 한산면의 소고포선착장에 도착한다.

타고갈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 회원님들의 마지막 하선을 기다려서..

 

 

▲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승차하여섬의 반대편에 있는 제승당으로 간다.

 

 

10시 33분 : 제승당선착장(덮을개).통영에서 오는 배는 규모가 크다. 

참고로 <덮을개>라는 또 다른 지명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발각되지 않게 조선 수군의 함선과 무기 등을 덮어서

위장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 가운데 부분에 연록색의 숲이 제승당이 있는 곳이다.

 

 

 

 

10시 35분 : 제승당 입구 한산문. 

이곳은..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이 왜적을 무찔러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은 위기에서 나라의 운명을 구한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한산대첩(閑山大捷)의 현장이다.

여기서.. 저 문을 들어가기 전에,,, 먼저이 충무공의 생애를 살펴보고 가자.
1545년 4월 28일 한성부건 천동(서울 인현동)에서부친 덕연군 이정의 사형제중 셋째아들로 태어남.

- 32세 : 함경도에 초급장교인 권관(權管)으로 임명됨.

- 36세 : 전라도 발포만호(鉢浦萬戶城)로 임명(포구수비)

- 38세 : 만호에서 파직당함(시기하는 무리들의 모함으로)

- 39세 : 복직되어 함경북도 권관으로 근무, 호적의 괴수 울지네를  사로잡아 양민을 보호함.

- 42세 : 조산만호에 임명.
- 43세 : 록도둔전을 관리하는 중에 호적의 습격을 받아 60여명이나 포로가 되어
                                   잡혀가는것을 구출하다가 화살을 맞고 좌고에 상처를 입었으나도리어 모함을 받고 투옥되었다.
- 45세 : 전라도 정읍현감에 태인관을 겸했다.
- 47세 : 유성룡의 천거로 마침내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 부임,

장차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직감하고 권한과 범위내에서
전쟁준비에 열중하였다.
- 48세 : 1592년 4월13일;  임진왜란 발발,
▷ 5월 07일 : 제1차 옥포해전 대승첩
▷ 5월 29일 : 경상도 사천에서 승첩(거북선출전)
▷ 6월 02일 : 제2차 당포해전 대승첩
▷ 7월 08일 : 제3차 한산도해전 대승첩- 서해로 가려는 왜적들을 완전소탕.
▷ 9월 01일 : 제4차 부산해전 대승첩
- 49세 : 삼도수군통제사로 승임되었다.
- 50세 : 전염병으로 십여일이나 고통을 당했다.
- 52세 : 적군의 음모와 원균의 시기로 서울로 압송되었다.
- 53세 : 우의정 정탁의 상소문이 주효하여 석방, 도원수 권율밑으로 백의종군.
다시 통제사로 복직하고, 잔여병 백여명과 12척의 전함으로 결사항전하기로 맹세.
▷ 9월 16일 : 명량해전 대승첩, 울독목에서 30척 격파하였다.
- 54세 : 1598년8월17일; 풍신수길사망, 왜적의 철군 시작.
▷ 왜함 500여척을 추격하여 남해노량에서 큰 격전을 벌였다.(23번의 해전에서 전승)
▷ 11월 19일 - 밤새 독전하다가 날이 샐 무렵에 탄환을 맞아 전사하심, 

왜함 500여척의 전함중 겨우 50 척만이 남해로 달아나 7년간의 임진란이 종식되었다.

충무(忠武)의 충렬사(忠烈祠), 여수麗水의 충민사(忠愍祠),

아산의 현충사(顯忠祠)에 배향되었다.

 

 

▲ 제승당 매표소.. 입장료 1000원.

 

 

▲ 제승당 가는길.

 

 

▲ 이곳이 역사의 현장인데..호수같이 조용하다.

400여년전 그 격랑의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승당으로 가는 바다풍경은 꿈을 꾸는듯 잔잔하기만 하다.

 

 

 

 

▲ 대첩문.

1592년(선조25년),

통영과 거제 사이 좁은 물길 견내량에 왜선 70여 척이 정박한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을 공격하다 도망가는 것처럼 꾸며

그들을 한산도 앞바다로 나오도록 유인한다.

추격해오는 왜군들이 한산도 앞바다로 나오자 충무공은 반격명령을 내린다.

이때 쓰인 전법이 그 유명한 <학익진>이다.

이름 그대로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진을 치고 적을 공격하는 전술로

고도의 기술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결과는 대승리. 한산대첩의 승리로 조선 수군은 남해 해상권을 장악한다.

일본은 조총과 칼을 쓰는 근거리 전투에 능했던 방면,

조선은 근접전을 피해서 멀리서 대포를 싸서 적선을 침몰시켰다.

<학익진>이란,

적의 배를 둘러싸서 대포로 적의 배를 침몰시키는 전술이다.

 

 

 

▲ 충무문.

안으로 들어서면

제승당을 비롯해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

통제사 조경이 세운 유허비, 충무공이 활을 쏘던 한산정,

적의 동정을 살피던 수루 등이 자리한다.

 

 

▲ 제승당(사적 113호).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곳으로

지금의 해군작전사령부와 같은 기능을 하던 곳이다.

한산대첩을 대승리를 한 이듬해 1593년 세워져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원균의 참패로 소실되기 전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이었다.

이후 1739년(영조 15년) 통제사 조경이 중건하며 유허비를 세우고

1979년 한산대첩비를 건립하는 등 확장·보수를 거듭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수루(戍樓),

수루는 적의 동정을 염탐하던 망루이다.

충무공이 수로에 홀로 앉아 우국충정의 시를 읆은 곳이기도 하다.

 

 

▲ 유명한 우국충정의 시..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수루에 올라 바라본 풍경.

오늘날 처럼 항공촬영을 해본것도 아니면서

어찌 이토록 절묘한 곳에서 진두지휘를 했는지..

 

 

▲ 왜군의 주요 침입로.

 

 

▲ 임진왜란 주요 격전지.

1592413, 부산포에 첫 발을 디딘 왜군은

이틀 만에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세 길로 나누어 서울을 향해 북상한다.

불과 20일 만에 한양(서울)도 함락되고, 6월에는 평양과 함경도까지 진출했다.

한마디로 파죽지세.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였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천히 걸어가도 20여 일 걸린다.

조선의 군대는 왜군의 기세에 눌려 힘 한번 쓰지 못하고

혼비백산 사라진 기막힌 상황이었다.

그러나 왜군은 더 이상 진격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식량과 군수물자 등 더 이상의 보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육군이 지리멸렬하면서 연전연패하는 반면,

수군은 연전연승하면서 왜의 주요 보급로를 차단,

왜군의 진격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수군의 중심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그는 풍전등화의 조선을 살린 구세주였다.

이순신과 한산대첩, 임진왜란의 대세를 조선으로 바꾼

최대의 인물이고 최대 전환기적 사건이다.

한산대첩은 행주대첩·진주성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한산대첩은

기원 전 480년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의 살라미스(Salamis)해전,

1588년 영국 하워드의 칼레(Calais)해전,

1805년 영국 넬슨의 트라팔가(Trapalgar)해전과 더불어

세계 4대 해전에 꼽힐 정도로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쟁으로 기록돼 있다.

 

 

▲ 공덕비.

이충무공의 후손으로서 삼도 수군통제사를

역임한 다섯 분과 부사를 역임한 한분등 여섯분의 공덕비 7기를 보존하고 있으며

정화사업때 비각을 다시세워 이곳에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 한산대첩도. 

양쪽 기둥 주련에

욕일보천(浴日補天)  맹산서해(盟山誓海)라 쓰여 있다. 

욕일보천(浴日補天)은..

조명(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수군 도독으로 왔던 명나라의 진린 도독이

충무공의 전사 후 선조 임금께 충무공을 찬양하여 한 말이며

중국의 신화에서 나오는 말로 아주 큰 공로를 세웠다는 뜻이다. 

맹산서해(盟山誓海)는..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충무공이..

반드시 임금의 원수를 갚을 것을.. 

"바다에 다짐하니 어룡이 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더라..." 라는 뜻이며

이충무공의 검에 새겨진 글이다.

 

 

 

 

 

▲ 제승당 유허비.

 

 

▲ 충무사.

 

 

▲ 충무공 영정. 

우리 역사상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만큼 영웅적인 역사의 인물도  없으리라

이순신 장군은 전란 내내 당리당략에 빠진 위정자들로부터 충심을 외면 받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어진 군기를 바로 세우며 왜군과 맞서 싸웠던 충신이었다. 

 또한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던 백성들의 안위를 살폈던 의인이었고,

어린 왜군 포로에게까지 온정을 베풀었던 인도주의자였다. 

약 100년만에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의기양양하였다.

그는 중국의 명나라를 정복하고 천황과 함께 대륙으로 이주하여

동아시아부터 인도까지 지배하려는 거대한 꿈을 갖기에 이른다.

 1592년 15만의 대군을 조선을 보냈다. 

‘가등청정’.‘소서행장’등 무장이 이끈 히데요시의 군대는

순식간에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북부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의 활약과 민중의 저항, 명의 원군등으로

불리한 상황이 되자 협상을 위해 철병하였지만

명과의 협상이 성립되지 못하자 다시 14만의 대군을 파견하지만

이번엔 남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이듬해 히데요시가 죽어

군대를 철수하고 도요토미가의 지배력은 약화된다. 

절망적인 첫 백의종군과 함께 다가왔던 홀어머니의 부음,

사랑하는 아들 ‘이면’의 비보를 접하고는 간장이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토로한다.

그처럼 이순신은 장수로서 어버이로서 수시로 닥쳐오는 불행과 고통을

홀로 오롯이 감내해야 했던 한 명의 고독한 인간이기도 했다.

 

 

 

 

▲ 충무사를 나서니

입구에 적송이 한산대첩을 말해주려는 듯 하다.. 

임진왜란중 이순신장군의 한산대첩에서 대패(大敗)하였던

왜국의 무장(武將)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 장수 정도였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날 며칠 먹을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 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할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 한글 유허비.

 

 

▲ 이충무공 활터.

 

 

▲ 건너편의 과녁.

 

 

▲ 다시, 좌측의 제승당과 정면의 수루를 뒤로 하고.

 

 

▲ 대첩문을 나서며.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도독으로 조선에 온 진린이

충무공 이순신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감동적인 평가를 되새겨 본다. 

진린이 명나라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 적혀있는 글이다.

"황제폐하, 이 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 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 지략이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성품 또한 장수로서 지녀야 할 품덕을 고루 지닌 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 명(明)나라의 화근인 저 오랑캐(훗날 청)를 견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 오랑캐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국으로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 이 충무공의 구국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음이 아니겠는가..

수문장의 마음으로 인증샷 하나 날려 본다.

 

 

▲ 우물터. 

이 우물은 바다와 바로 인접해 있어도 짠맛이 전혀없고

수질이 매우 좋다고 한다.

수량도 풍부하여 충무공이 제승당에 계시던 3년 8개월동안

식수 공급을 했다는곳이다.

 

 

▲ 제승당 관람을 마치고 망산 산행들머리로..

 

 

 

 

 

 

▲ 제비꽃.

 

 

▲ 전형적인 육산의 편안함. 

쭉쭉빵빵의 소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

최고의 힐링 산행이다.

 

 

 

12시 14분 : 소고포선착장 갈림길 

일행중 1명이 컨디션 난조로 소고포로 탈출하려기에.

여기서 점심을 먹고 일단 이별.

 

 

12시 29분 : 망산 목책교.

 

 

▲ 등산로 옆으로 산소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 잔잔한 깨달음을 준다.. 

"화를 내어 많이 잃었고

조급해서 힘이 들었네

웃음으로 행복했고

느긋해서 수월했네.."

인간도처유상수(人間到處有上手)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가 겸손하고 낮은 자세면...

어디서든 곳곳에 뛰어난 사람이 있어 교훈을 얻는 것이다. 

오래된 비석은 아닌것 같은데 

상을 허허롭게 살다 간듯한 누군가의 글.

분노조절, 마음 조절을... 배우며 길을 재촉한다.

 

 

▲ 망산 오름길.. 약간의 된비알이다.

급한 경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상은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 망산 정상의 봉수대인데 유적 발굴을 하는듯..

 

 

12시 55분 : 망산 정상.

동·서·남으로 점점이 떠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섬 뿐만 아니라

한산대첩 구국의 현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추봉도의 봉암마을.

쾌청 하지를 않아서 조망이 별로다.

 

 

12시 58분 : 휴월정.

 

 

▲ 지나온 망산.

 

 

▲ 산벚꽃나무가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늘어진 가지 하나가 밑으로 내려오다가 신기하게도

허공에서 뿌리를 내리듯 다시 올라 간다.

 

 

▲ 양지꽃.

 

 

 

▲ 개별꽃..

개별꽃의 꽃말은 <귀여움>,, 

개별꽃의 개는"야생의" 또는 "들"이라는 뜻으로

따라서 들에나는 별을 닮은 꽃이라 하여 <들별꽃> 이라고도 불린다.
특이하게도 다섯 개의 하얀 꽃잎의 끝이 요철형으로 움푹 들어가 있으며
맛은 달고 약간쓰며 성질은 평하다
개별꽃의 어린 순은 식용하며,

아미노산 오르니틴(ornithine : 비만을 예방하는 성분) 외에 17종, 무기성분

K(칼륨), Zn(아연), Mn(망간), Fe(철), Cu(구리) 등을 함유하고 있으며,

큰개별꽃과 함께 한방에서 태자삼(太子蔘)이라하여

비(脾), 폐장(肺腸)의 허약, 익기, 강장, 정신피로, 통경, 치질, 종기 등에 약재로 사용한다.

 

 

 

▲ 추봉도와 추봉교. 

추봉도는 거제 포로수용소가 수용규모를 넘어서자

미군은 포로 중 가장 악질적인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추봉도에

1만 명 규모의 포로수용소를 따로 만들었다. 

당시 포로수용소의 돌담은 마을 주민들이 논밭의 경계로 쓰면서

거의 허물어지고, 지금은 약 7㎡(2평)정도의 돌담만 남아 있다. 

그나마 미군사령부 건물이 있었던 자리의 원형 돌담은 형태가 잘 남아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 철쭉.

 

 

▲ 홀아비 꽃대인지..

옥녀꽃대인지 또 까먹었다..ㅎㅎ

야생화 이름 알기가 어렵다.

 

 

 

 

▲ 각시붓꽃.

 

 

▲ 줄딸기 꽃.

 

 

▲ 별꽃..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을 정도의

아주 작은 꽃인데 근접촬영에 잘 잡혔기에

오늘 산행중 최고의 선물이다..

 

 

▲ 괴불주머니..

 

 

 

 

 

 

▲ 한산 초, 중학교.

 

 

 

13시 47분 : 진두항 하산완료.

 

 

▲ 주어진 하산시간보다 약 2시간 10분이나 일찍 내려와서

정자에서 뒹굴다가...

 

 

▲ 추봉교와 대봉산도 보다가,,

 

 

▲ 건너편 봉암마을로 눈을 돌리니..

노란 점선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혹시? 한산도에서 인어를 만나는 쇼킹한 사건은 아닐까?...

 

 

▲ 헉!~~ 이럴수가 인어 다리가 보인다..ㅎㅎㅎ~

 

 

▲ 헐~~ 이럴수가..

인어가 아니라 해녀다.

 

 

 

▲ 진두항 둘러보기..

 

 

 

 

 

▲ 깨끗한 거리..

여름이면 피서객들의 거리가 될것이다.

 

 

▲ 한산면사무소도 있고..

 

 

▲ 잘 가꾸어진 꽃도 있고..

 

 

▲ 아귀를 손질하는 젊은 새댁도 있고...

깔끔하게 손질해서 육지 식당에 공급한단다.

 

 

 

15시 19분 : 소고포선착장 을지2호 승선 대기.

 

 

 

▲ 멀어지는 통영시 소고포선착장.

30여년만의 한산도 나들이.. 언제 다시 올수는 있어려나..

 

 

 

 

15시 44분 : 거제시 어구항으로 귀환.

 

 

▲ 어구항에서 하산주.

 

 

▲ 주어진 하루가 섬 저편으로 넘어가려 하고

오는자 가는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을지 2호는 다시 소고포로 향한다,,

 

 

17시 06분 : 통영시 활어시장.

 

 

▲ 사람냄새와 비릿한 생선냄새에 삶의 소리가 있다.

  

 

 

▲ <민어>다..

16만원인데.. 14만원까지 해주겠단다.

 

 

▲ 서대.. 

4월 23일 여수 하화도 트레킹에서

서대회무침을 맛볼 계획이다.

 

 

 

 

▲ 산 위쪽이 통영시의 유명한 관광지중에 하나인 동피랑 벽화마을이다.

언젠가 가본다 하면서도 못가본 곳이기에 눈도장만 찍고...

귀가길을 서두른다.

 

오늘 산행한 한산도 망산과 제승당..

그 역사의 현장에서

인간 이순신(李舜臣)의 절대 고독은 가슴 쓰린 느낌이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나라에 평화는 계속되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은

언제까지나 이어 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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