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2월 19일 경남 울산시 <강동사랑길> : 경남 울산시.
트레킹코스 : 주전항 - 주전몽돌해수욕장 - 용바위 - 당사항 - 우가포항-
제전항 - 정자항 - 정자수협 주차장 트레킹완료.
트레킹시작 : 주전항 11시 01분.
트레킹완료 : 정자항 14시 17분.
(3시간 16분 소요 : 휴식시간포함)
11 : 01 주전항 출발.
11 : 17 주전몽돌해수욕장.
11 : 52 용바위(중식).
12 : 43 당사항.
13 : 15 우가포항.
13 : 51 제전항.
14 : 17 정자항 트레킹 완료.
▲ 11시 01분 : 주전항 출발.
▲ 잘 조성된 데크길을 따라서..
울산 북구 해안을 이어가는 <강동사랑길>은
우리나라 동해가 시작되는 부산 <오륙도>에서 부터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를 잇는..
전체 거리 770km인 <해파랑길>의 10개 구간 50개 코스중에 9코스로
주전항에서 정자항까지의 해안구간을 말한다.
아울러,,
해파랑길이 지나가는 각 지역마다 지역 특색을 살려서..
부산의 갈맷길.. 영덕의 블루로드길,, 강릉의 부채길 처럼
세분화 되어 있다.
▲ 오늘의 울산쪽 낮기온 최고 11도.
강한 바람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어면 선듯하고..
걸어면 땀이 배이는 기분좋은 날이다.
▲ 몽돌여인 <김순연> 시인의 집.
프로필을 찾아보니 호는 월영당(月影堂) 이고
1999년 부산국제신문 시조부문 당선 시조 등단
한울문학 시부문 당선 시인 등단.
주요 저서로는,,
1) 몽돌여인.
2) 달그림자 머무는 그곳.
3) 누가 주전동 좀 사 가소.
▲ 석가탑을 닮은 듯한.. 주전등대..
분홍, 초록, 파랑, 노랑의 페인트를 칠해놓은
데트라포트가 이색적이다.
▲ 누가 주전동 좀 사 가소.
- 김순연 -
천 날 만 날 새벽 밭에 나가
부랴부랴 준비한 무거운 보따리 이고 들고
멀리서 자취하는 삼 남매 공부시킨다
가리게 하나 없이 눈, 비바람 맞아가며
멀리서 자취하는 삼 남매 공부시킨다
가리게 하나 없이 눈, 비바람 맞아가며
시장 바닥을 전전하던 내 어머니
매서운 추위가 간을 찔러도
얼음 덩어리 헤쳐 삶은시래기를 짜셨던
손마디마디 터진 인고의 고랑을
장대비 타고 내리는 바위틈에 비할까
신머리 폭포 길에 비할까
니거들 다 키워 놓으면 글을 가르쳐 달라고 하시던 어머니
무엇이 그리 바빠 터진 손발 보듬을 새도 없이 가셨을까
이제사, 크림을 한 아름 사간들
아야 어여 ㄱ ㄴ ㄷ 도표를 구해서
벽에 걸어 놓고 허허로움에 든들
“ 누가 주전동 좀 사 가소“
외치던 어머니의 시래기와 특산품에 비할까.
▲ 11시 17분 : 주전몽돌해수욕장 입구.
▲ 주전몽돌해수욕장.
몽돌해변은 울산 12경중의 한곳으로
몽돌을 개인이 채취하여 반출하다가 걸리면
3년이하 징역에 3천만원이하의 별금에 처해진다.
▲ 자연산 돌미역을 손질하는 동네주민들..
▲ 홍매화,
▲ 젊음이 보기 좋아 홧팅으로 응원.
▲ 갯바람에 돌미역을 말린다.
▲ 용바위 가는길.
▲ 용바위 뒤쪽.
▲ 낚시공원 입구.
입장료 1000원. 그냥 패스~.
▲ 용바위의 용송(龍松).
▲ 11시 52분 : 용바위의 흑룡.
▲ 용바위 전설.
큰 뱀과 거북이 살았다.
이 둘은 하늘나라에서 서로 앙숙이어서 옥황상제가 지상으로 쫒아냈다.
둘 중 누가 음모를 꾸미고 나쁜 행동을 하는지
분간할 수 없었던 옥황상제는 둘 다 벌을 주었다.
평소 말이 없고 묵직한 행동에 난처하며 고개를 안으로 당겨 넣고
말이 없는 거북이 옥황상제에게 더 신임을 얻었다.
그런데 거북은 두꺼운 판을 뒤집어쓰고 밤낮 모함과 음모를 꾸며댔다.
지상에 쫒겨나서도 계속 되었다.
후에 모든 것이 밝혀지고 뱀이 용으로 승천하던 날
한바탕 바람과 비가 내렸고 천둥이 쳤다.
바위가 물로 갈라지면서 용은 하늘을 올랐고
바위 때문에 막혔던 물길이 뚫렸다.
이때부터 용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 저곳이 용이 승천 하던날
갈라진 바위인가 보다.
▲ 용바위의 기를 받으며 에너지 충전..
▲ 돌미역을 손질하는 삶의 현장.
▲ 12시 43분 : 당사항.
▲ 여기서부터는 강동사랑길을 새로 조성하는지
약 2km의 자갈길이 이어진다.
▲ 한국전쟁의 산물인,, 철조망,, 군부대.
▲ 사대(射臺).
▲ 해안경비초소는 10m 간격으로 있다.
▲ 해안초소와 우가포 전망대.
▲ 우가포 전망대 인증샷.
▲ 13시 10분 : 우가포항.
▲ 우가포항 끝머리에서 트레킹길은
차도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 차도를 따라 50m가량 진행하면.
▲ 멋진 전망대.
▲ 전망대에서 다시 되돌아 나와서..
도로를 따라 10m정도 가면..
▲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이..
사는 집은 아닐터이고..ㅎㅎ
▲ 체육시설이 있는 곳에서 해안가로 내려간다.
▲ 여름철에 시원한 해풍맞으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 달그림자 머무는 그곳.
- 김순연 -
파도소리 베고 누우면
물밑 웅굴암 돌미역 사이로
망상어. 놀레미. 칵다구들이
해조음 따라 요리조리 지느러미 흔들고
성게. 안장구들은 등줄기에 맺힌 땀방울 잊고
노 젓는 것이 환하게 보이지요
좌아! 좌아! 하늘로 치솟아
달그림자 핥아내는 몽돌소리가
생생 절박한 큰 파도소리로 울려 퍼지고 난
다음날 아침이면 바다는 언제 그랬던가 하고
물결을 사뿐 사뿐 채이질 하며
누구든지 바다에 들어오길 원하지요
해녀들은 너나없이 신이 나 휘파람을 불며
두른 박을 들고 바다에 빠지고
산으로 뒷걸음치던 고깃배들은
미끄러지듯 수평선으로 향해 달린다
나도 해녀들과 함께 물속에 들어가
소라, 전복을 한 망사리
아니, 도박. 우무가사리. 진두바리를
한 망사리 뜯어오는 내 어릴 적
깊은 바다 물속 바위에 붙은 해초를 뜯는
위대한 해녀가 되겠다는 꿈을 놓지 못하고
숨비기소리 따라 물밑을 오르내리며
퐁당! 퐁당! 담박구질을 하지요.
▲ 걷기 힘던 너덜길은 계속 이어지고..
▲ 처음보는 식물이다.
▲ 13시 17분 : 제전항.
▲ 정자항까지 1.3km.
▲ 단종된지 오래된 버스가
쌩쌩달리던 시절을 꿈꾸고 있다.
▲ 제전마을 성황당.
▲ 멀리 정자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 신라 충신 <박제상>의 발선처(發船處).
이곳은
신라 눌지왕때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이 왜국에 볼모로 잡혀있던
미사흔을 구하기위해 배를 띄웠던 곳이다.
<박제상> 이야기.
박제상 선생은 신라의 충신으로 파사왕의 5대 손이다.
거문고의 달인 백결 선생은 바로 박제상의 아들이다.
백결이란 "현순백결(懸 百結:가난하여 입은 옷이 갈가리 찢어짐)"의 문자를 빌려
백결선생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실성왕 원년 신라는 왜국과 강화를 하였는데
왜왕은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인질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실성왕은 일찍이 형님인 내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인질로 보낸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한을 풀려고 왜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미사흔을 왜국으로 보냈다.
실성왕은 또 고구려에서 미사흔의 형 복호를
인질로 보내라고 하자 두말하지 않고 보냈다.
그런 뒤 눌지왕이 즉위했다.
눌지왕이 박재상을 불러 동생을 구해줄 것을 요청하자 흔쾌히 응낙했다.
박제상은 즉시 고구려로 들어가서 고구려왕의 허락을 받고
복호와 함께 신라로 귀국하였다.
그러자 눌지왕이 또 부탁했다.
"내가 두 아우를 좌우의 팔과 같이 생각하는 데
지금 다만 한 팔을 얻었으니 이를 어찌하리오."
박제상은 이번에도 기꺼이 응했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고 어리석으나 이미 몸을 나라에 맡겼사오니
임금의 명령을 욕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큰 나라이고 왕도 어진 임금이어서
신의 말이 통했으나 왜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꾀로써 그들을 속여 왕자를 돌아오도록 하겠나이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신이 왜국으로 가면
곧 신이 나라를 배반하고 간 것처럼 말을 퍼뜨려
그들로 하여금 믿도록 하여 주십시오."
박제상은 죽기를 맹세하고 아내도 보지않고 떠났다.
그는 율포에서 배를 타고 왜국으로 향하였다.
그 아내가 사실을 알고 급히 포구에 나가
떠나는 배를 바라보고 대성통곡하며 말했다.
"잘 다녀오시오" 박재상이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임금의 명을 받고 적국으로 들어가니 그대는 나를 다시 볼 기약을 하지 마오."
박제상은 왜국으로 들어가서 나라를 배반하고 온 것처럼 말했다.
왜왕은 처음엔 박제상을 의심하였으나
먼저 왜국으로 들어온 백제사람이, 신라가 고구려와 함께
왜를 침범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자 왜왕은 군사를 파견하여 국경수비를 강화했다.
이때 마침 고구려가 침입하여 왜의 수비병을 사로잡아 죽이니
왜왕은 백제 사람의 말을 사실로 믿었다.
또한 신라왕이 미사흔과 박제상의 처자를 가뒀다는 소문도 들려
왜왕은 박제상이 신라를 반역하고 온 것이라 믿었다.
왜왕은 이에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습격하려고
박제상과 미사흔을 장군으로 삼고 그들로 하여금 인도하게 하여
바다 가운데 섬에 이르렀다.
이 섬을 일본서기에서 죽도(竹島)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대마도(對馬島)이다.
이때 왜장들은 비밀리에 다음과 같이 모의했다.
"신라를 멸망시킨 뒤에 박제상과 미사흔의 처자를 몽땅 우리나라로 데려오자."
박제상은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미사흔과 배를 타고 놀며
고기와 오리를 잡는 척 했다.
왜인들이 이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왜인들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미사흔에게 신라로 돌아가라고 했다.
미사흔이 함께 가자고 했으나 박제상은 두사람이 함께 탈출하면
실패할 염려가 있다고 하며 미사흔을 재촉했다.
미사흔은 박제상의 목을 끌어안고 울면서 이별을 하고 귀국하였다.
박제상은 다음날 시간을 벌기 위해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그러자 왜인들이 늦게 일어난 이유를 물었다.
박제상은 어제 뱃놀이를 너무해서 피곤해서였다고 둘러댔다.
얼마 후 왜인들은 미사흔의 탈출을 알았다.
그들은 박제상을 포박하여 미사흔의 배를 추적했지만
안개가 짙어서 놓치고 말았다.
미사흔을 놓친 왜인들은 박제상을 왜왕에게 보냈다.
왜왕은 그의 충성심에 탄복하여 회유하려 하였으나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의 신하는 될 수 없고,
신라왕의 회초리를 맞을지언정 왜왕의 칭찬은 들을 수 없다"고 하여
왜왕을 분노케 하였다.
왜왕은 박제상의 발바닥을 벗겨 불타는 대나무 위를 걷게 하였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나무에 불을 질러 온몸을 태운 후
목을 베어 죽였다고 전해진다.
눌지왕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며 박제상에게
대아찬의 벼슬을 추증하고 박제상의 둘째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은혜를 갚게 했다.
이야기가 좀 길었지만..
이 시대에는.. 왜? 이런 충직한 관리가 없을까?..를
생각하며.. 읽어 주시길..
▲ 정자항.
▲ 14시 17분 : 강동사랑길의 트레킹은 사실상
여기서 마무리 되고..
▲ 약 2시간 가량의 추가 시간이 주어져..
▲ 이것 저것 구경 하다가..
▲ 그중에 사람 좋아 보이는 어판장의 털보집에서
회감(세꼬시, 아나고, 개불) 6만원에
소주, 맥주, 야채 초장을 사서는
햇살 좋은 방파제를 찾아서,,
▲ 회 한점에 술 한잔 주고 받고..
▲ 그래도 시간이 남길래..
▲ 갓 잡아온 생선 가자미 경매도 보고.
눈으로 체험하는 삶의 현장이다..
▲ 사람사는 모습이다..
▲ 한쪽에서는..
울릉도 호박엿 아저씨의 신바람 나는 가위치기도 보고.
▲ 베트남 모자를 쓴 아낙네들이
방금 잡아온 생선의 내장을 손질하니 비릿한 내음에
갈매기들의 먹이 사냥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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