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2월 27일(일).

수정봉(569m)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산행코스 : 사내리소형주차장-산신각-569봉-수정봉-거북바위-법주사-사내리소형주차장.

산행시작 : 법주사소형주차장 10 25분.

산행종료 : 법주사소형주차장 15시 22분.

산행거리 : 약 6.2km.

소요시간 : 4시간 57분(중식 및 휴식시간 포함).

 

10: 25 법주사주차장 출발.

10 : 29 산신각.

11 : 49 569봉.

11 : 54 수정봉 정상.

12 : 16 거북바위.

14 : 29 법주사.

15 : 22 법주사소형주차장 행완료.

 

10시 25분 : 법주사 소형주차장 출발.

 

▲ 보은군 사내리 산제당.

 

▲ 산제당 왼쪽으로 오르면 비교적 뚜렷한 길이 열려 있다.

 

▲ 산길로 접어들자말자 커다란 바위밑으로 돌아나가면...

 

▲ 산신당에서 5분정도 치고 오르면 능선에 올라선다.

 

▲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취수탱크를 만나면 좌측으로 돌아간다...

 

▲ 커다란 전망 바위가 내눈에는 마치... 알을 품고 있는듯한 새의 모습처럼 보인다.

 

▲ 애벌레(번데기) 바위.

 

▲ 건너편의 주먹바위..

 

▲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천왕봉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의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가야할 수정봉도 가늠해 보고..

 

▲ 조이사님.. 오늘은 완전히 계돈 탄날 같습니다..ㅎㅎ~~

 

▲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며 천년을 이어가는 강한 생명력의 물오름소리가 들린다..

 

▲ 애기업은바위와 묘봉..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저 애기업은바위가 진짜 묘봉으로, 현재의 묘봉은 보은군에서 1999년 충북알프스를

개설할 때 지금의 위치에 표지석을 세우면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11시 49분 : 수정봉 정상(569m)..

육각형의 주춧돌만 남아있고 무슨연유인지 뜯어낸 자재들만 쌓여 있다. 바로가면 만판동으로 가는길이고

거북바위는 오른쪽 봉우리에 있다..

 

▲ 거북바위 가는길...

 

▲ 제2 수정봉에 올라서니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각자가 보인다..

 

▲ 오른쪽에는 령중추부사 이유원이라 되어 있고.. 왼쪽에는 관찰사 이석규라 되어 있다.

인명사전을 찾아보니..

1) 이유원(李裕元, 1814. 8. 12 ~ 1888. 9. 5)은 조선왕조 말기의 문신이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본관은 경주이며,  오성 이항복의 후손이다.

2) 이석규(李錫奎)는 이항복(李恒福)의 7대손이며 1821년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충청도관찰사로

재임중 단양군의 전세(田稅)· 대동미(大同米)· 군포(軍布) 등을 돈으로 대납할 것을 청하여 허락받았다.

 

▲ 바로 아래쪽 바위에 새겨진 수정봉 각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수정봉이라 하는 이유는 법주사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남산(南山)이 있는데 남쪽은 화기(火氣)가 있는

곳으로 법주사는 모든 건물이 목조로 되어 있어 남산의 화기 때문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 이를 우려하여

법주사 뒷산을 수성(水性)을 가진 수정으로 산 이름을 지어 남산의 화기를 눌러 법주사에 화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수정봉이라 하였다고 한다.

 

▲ 우측으로 약5m거리에 세로로 새겨진 수정봉.. 그 옆으로는 희미해서 알아볼수도 없는 글자들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바위에 이름깨나 새길 정도면 그시대에 방귀깨나 뀌었던 지방 인사들일게다..

 

12시 12분 : 거북바위... 당 태종은 이 거북이 동국(조선)에서 중국을 향해 노리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재물과 인물이 모이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에 태종은 사람을 시켜 그 거북을 찾아 없애도록 명했다.

속리산 수정봉에서 그 거북을 발견한 당 태종의 신하는 거북의 목을 잘라 골짜기에 버렸으며 거북의 남은

기운을 누르기 위해 거북이 등에 10층 석탑까지 세웠다.

또 다른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거북바위의 목을 베어 버렸다고 한다.

효종때 이 사실을 알게 된 옥천군수 이두양은 각성이라는 스님을 시켜 거북의 머리를 찾아 붙이도록 했다.

이에 거북의 머리가 제자리를 찾긴 했으나 목을 이은 흔적은 지울 수가 없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뒤 이 사실을 안 충청병사 민진익이 충청관찰사 임의백과 상의하여 거북 등에 나아 있던 석탑을 허물어

버렸다.  지금도 수정봉의 거북바위 아래에는 허물어 버린 석탑의 돌덩이가 두 개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1666년 조선 현종 때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써서 건립한 속리산사실비(각)에

새겨져 전해오고 있다.

 

 거북바위를 눌렀던 탑의 일부인 사각모양의 돌덩이 두개와 옛 유래대로 잘려나간 머리를 다시붙인

거북바위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게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건너편으로 천왕봉과 마주하고.. 문장대로 오르는 세조길계곡과 법주사..

세조길은... 세조의 꿈에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가 나타나 점지해 준 곳에서 목욕을 했더니 그날로

피부병이 낳았다는 목욕소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길이다.

 

▲ 과거의 흔적은 말이 없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민생고가 시급하다..

 

▲ 다시 거북바위를 지나.. 밥자리를 찾아 간다..

 

▲ 거북이 엉덩이(?)의 곡선이 이뻐서 담아보고...ㅎㅎ

 

▲ 시멘트로 땜질한 자리에 페인트로 칠해 놓았다.. 허~~참.. 차라리 회색으로 칠하던지...

 

▲ 샅바싸움만 하고 있는 소나무와 방구돌의 한판 씨름은 언제 끝나누?..

 

▲ 오늘의 홧팅 선창자는 명화토끼님이다...

 

▲ 이제는 하산이다...

 

▲ 하산길에 오른쪽의 탈출로가 있다.. 아마도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쪽으로 연결되는 길일 것이다...

 

▲ 문장대능선이 그려내는 속리(俗離)의 의미와 전망을 감상하는 멋진 곳에서.....

 

▲ 속리(俗離)..

도불원인(道不遠人)... 도(道)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인원도(人遠道)... 사람은 도를 멀리 하고

산비이속(山非離俗)...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리산(俗離山)...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

신라 헌강왕 때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속리산에 와서 남긴 유명한 시다.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친구는 가까이서 보고... 산은 멀리서 보라 했는데.. 역시.. 산은 멀리서 보아야 한다..

천왕봉에서 문장대로로 이어지는 기묘한 산세가 멋지다..

 

▲ 당겨본 문장대... 많은 산객들이 보인다..

 

▲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바위틈에서 힘겹게 살아가지만...

 

▲ 일제강점기시대의 산물.. 송진채취의 흔적은 8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픔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 신구선생의 "늬들이 게맛을 아러!~~?"의 광고 패러디... "늬들이 산에서 마시는 커피맛을 알어?~...

 

▲ 법주사 경내가 보인다..

 

▲ 총지선원(總持禪院).. 총지(總持)는 다라니를 번역한 말이다.

출가수행자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한 곳에 모여 외출을 삼가하고 정진하는 곳이다.

 

▲ 햇살이 좋은 절집의 목련이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 요사채위로 보이는 수정봉..

 

▲ 거북바위가 있는 곳을 당겨본다.

 

▲ 법주사 경내.. 팔상전과 대웅전..

 

▲ 팔상전(국보 제55호)을 지나서..

 

▲ 법주사 대웅보전(조계종 제5교구본사).

법주사(法住寺)라는 이름은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義信) 조사가 천축으로부터 귀국할 때 나귀에 경전

을 싣고 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비롯됐다.

이후 금산사 창건주인 진표(眞表) 율사가 제자 영심(永深) 등에게 속리산에 들어가 길상초(吉祥草)가 난

곳을 택해 절을 짓고 교법을 펴라고 지시했다. 진표율사의 제자들이 사찰을 중창한 것은 신라 혜공왕

12년. 이때 대표적인 미륵도량이었던 금산사를 따라 법주사도 미륵불을 모시는 도량이 되었다.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 청동미륵대불..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인도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승려 <의신>이 처음 지은 절이다.

 

▲ 팔상전(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 수리한 것이다. 벽 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1층과 2층은 앞·옆면 5칸, 3·4층은 앞· 옆면 3칸, 5층은 앞·옆면 2칸씩으로

되어 있고, 4면에는 돌계단이 있는데 낮은 기단 위에 서 있어 크기에 비해 안정감을 준다.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장식이 달려 있다.

 

▲ 자정국존비

법주사라는 절이름은 고려 후기에 비로소 사용되는데, 이 비문에서 처음 확인되었단다.

 

▲ 석연지(石蓮池)와 석조(물통)..

 

▲ 마애불(보물재216호).. 석면에 법주사 창건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추래암..

 

신선의 노여움을 받아 수정봉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전설을 지닌 바위다.

 

▲ 수정암.

 

▲ 법주사 일주문....  호서 제일가람이라 되어 있다.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법주사 매표소... 5천원이다..

 

▲ 속리산국립공원이 법주사 토지안에 속해 있다... 땅부자다..

 

15시 22분 : 법주사소형주차장 하산완료..

 

▲ 귀가하는 길에 말티재전망대를 들리기로 한다..

 

▲ 이곳 말티고개는 충북 보은군 장안면 속리산의 언덕으로...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을 구경오면서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엷은 박석 돌을 깐 것이 시초가 되었고...

 

조선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 타고 왔던 가마를 말로 갈아타고 이 고갯길을 넘었다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된 곳이다.

 

▲ 말티고개 전망대..

 

현재 말티고개길은 1924년에 정비된 것으로 고개의 높이는 해발 430m에 이른다.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야대장님 작품..

 

▲ 말티고개 꼬부랑길이 끝나는 지점의 쉼터에서.. 야등팀의 우정 나눔으로 하루를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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