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4월 08일

남산 고위봉(494m)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행코스 : 용장리주차장 - 이무기능선 - 고위봉 - 칠불암 - 삼화령 - 삼륜대석불좌상 - 용장리주차장 산행완료.

산행시작 : 용장리주차장 출발 09시 07분.

산행종료 용장리주차장 도착 14시 30분.

소요시간 : 약 10.4km / 5시간 23분 소요(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09 : 07 용장리주차장 출발.

09 : 52 이무기능선.

10 : 46 고위봉 정상.

11 : 08 백운재.

11 : 18 칠불암 갈림길.

11 : 27 칠불암.

11 : 43 마애보살 반가상.

13 : 18 삼화령.

13 : 18 용장사 석조여래좌상.

14 : 30 용장리주차장 산행완료.

 

09시 07분 :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주차장.

 

좋아 하는 봄의 향기 라일락... 꽃말은... 친구의 사랑. 친구의 우애.

 

▲ 파란하늘의 캔버스에 음나무새순이 무에서 유를 그리고 있다.

 

▲ 용장골입구의 출렁다리와 국립공원지킴터.

 

▲ 사진을 찍고 있어니... 친절한 지킴이 아저씨가 먼저 인증샷을 찍어 주겠다고 한다.. 고맙습니다.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고위봉이다.

 

▲ 솜방망이... 꽃말이 재미있다.. "안전하다" 이다.

 

▲ 출렁다리를 건너 3~4분 올라가면 입산 체크대를 통과한다...

체크대를 지나가면 지하철 개찰할때 처럼 "마스크를 껴라" 는 안내멘트가 나온다. 코로나가 주는 새로운 풍속이다.

 

▲ 체크대에서 용장골의 맑은 계류를 따라 4~500미터 정도 진행하면...

 

09시 32분 : 이무기능선 안내표지를 따라 계류를 건넌다.

 

▲ 2015년 4월 12일에 만났던 이정표.. 만 6년만에 이자리에 다시 섰다.

 

▲ 반겨주는 연달래가 있어...

 

▲ 6년전의 그날 같은 오늘이다.

 

▲ 목계단으로 정비된 가파른 등로를 따라 한바탕 치고 오르면 출발지인 용장리 마을이 보이는 전망좋은 곳..

 

▲ 이무기능선이 시작되는 암릉..

 

09시 52분 : 291봉..

 

▲ 건너편의 태봉..

 

10시 14분 : 이무기능선의 366봉..

 

▲ 올라야할 고위봉.

 

▲ 소나무들의 소리없는 경쟁..

 

▲ 6년전 상습 정체구간이었는데.. 지금은 데크계단으로 쉽게 오른다.

 

▲ 그래도 맛보기 밧줄도 있다.

 

▲ 밧줄... 감아놓은 테잎을 보니 새로 정비하였다. 관리가 제대로 되는 것 같다.

경주남산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 되었고 대한민국의 사적 제311호다.

 

▲ 경주 남산에는 소나무가 많다.. 그중에 이무기능선에는 분재같은 소나무가 유독 많은 능선이다.

 

▲ 천년바위와 노송의 힘겨운 밀어내기 한판이 그림이다...

 

▲ 키를쓰고 소금을 얻으러 가는 어린아이 같다..

 

▲ 알바위..

 

▲ 올라왔던 이무기능선... 6년전에 없던 계단이 설치되어 암릉을타는 재미는 반감 되었지만... 안전하게 올라올수 있다.

 

▲ 자연이 키워내는 독야청청의 천년분재.

소나무야.. 키 커려고 하지 말고 몸집 키우려 하지 마라.. 키 크고 몸집 커지면 바위가 너를 싫어 할 것이다..

그러니... 너의 주어진 환경에서 욕심 내지 말고... 지금의 그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살아 주기 바란다.

 

10시 46분 : 고위산 정상.

 

▲ 오늘도 리모컨 셀카놀이... 그런데... 아직도 2%부족한것 같다... 자꾸 하다 보면 잘 되겠지..ㅎㅎ~

 

▲ 산불초소...나쁜 상황(산불...)만 없다면 최상의 근무처다... 운동하지.. 경치 좋지.. 공기 좋지.. 따박따박 월급주지..

 

▲ 칠불암 방향으로...

 

▲ 고위봉에서 칠불암 가는길은 솔바람의 기분좋은 길이다.

 

11시 08분 : 백운재.

 

▲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11시 19분 : 칠불암 갈림길... 칠불암과 마애보살반가상을 만나고 오려고 한다.

 

▲ 칠불암 가는길..

 

11시 31분 : 칠불암.

 

▲ 남산 칠불암마애불상군(南山七佛庵磨崖佛像群).

 

▲ 삼존불상(국보312호).

 

▲ 마애불상군을 뒤로하고..

 

▲ 딱새..

산이나 들에 살며, 나무 열매나 벌레를 잡아먹는다. 5~7월경에 5~7개의 알을 낳는다.

중국 · 일본 · 타이완 등지에서 겨울을 나고, 우리 나라 · 몽골 · 만주 · 우수리 · 시베리아 등지에서 번식한다.

 

▲ 칠불암에서 올라 와서 다시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만나러 내려간다.

 

마애보살반가상(보물199호). 오똑한 콧날에 도톰한 입술.. 통통한 볼살.. 지그시 감은 두눈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대자대비의 미소로 1,300여년동안 인간세계를 굽어 보고 계신 모습에 한참을 머문다.

남산의 불상을 다 만나 보지는 않았지만.. 최고의 걸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하다.

 

▲ 앞으로 약간 기울어진 머리위에 홈통을 파서 빗물이 바로 흐르지 않고 처마 역할을 한 옛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 조금전 다녀왔던 칠불암을 내려다 본다.

 

▲ 칠불암갈림길로 다시 올라와 남산 금오봉쪽으로 길을 잡는다.

 

▲ 봉화대능선 오름길에 뒤돌아 본 고위봉..

 

▲ 진행방향으로 남산 금오봉이 보이고 용장사능선이 조망된다.

 

12시 23분 : 최고의 식탁에서 세상 편한자세로 마음점(민생고)을 찍고 간다.

민생고를 해결하고 부터는 등산객도 많이 만나고...

 

▲ 편안한 등로에는 진달래 꽃길이었다가..

 

▲ 연달래꽃길이 되어 서로 번갈아 가며 눈동무가 되어 주고...

 

▲ 아름드리 소나무끝에서 솔바람도 불어주는 시원한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12시 48분 : 이영재.

 

▲ 남산 임도.....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통일전으로 이어 진다.

 

13시 09분 : 삼화령 연화대.

 

▲ 연화대좌..... 선덕여왕 시절 생의스님이 꿈의 계시를 받고 이곳에서 미륵불을 발견하고 사찰을 짓고 연화대 위에

미륵불을 모셨지만 지금은 연화대만 남아 있다고 한다.

 

▲ 삼화령에서 바라본 고위봉... 삼화령은 '삼화수리'라고도 불리우는데 수리(頂)는 높은 곳을 의미하는 말로

남산에는 금오봉, 고위봉과 삼각지점을 이루는 여기를 합하여 삼화령이라 불렀다.

 

13시 18분 : 용장리 갈림길... 여기서 약700m를 더가면 남산의 주봉격인 금오봉에 오르지만...

금오봉(468m)은 세번이나 올랐고... 오늘은 더 높은 고위봉(494m)을 올랐으니... 자동 통과다.

 

▲ 용장사지를 경유하여 용장리로 하산이다.

 

13시 29분 : 용장사곡삼층석탑(보물186호)... 남산의 자연암반을 다듬어서 그 위에 탑을 세운것이 특이하다.

 

▲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믈제913호)... 매우 근엄해 보인다.

 

▲ 조금전에 올랐던 삼화령연화대를 당겨본다.

 

▲ 안타깝게도 불두(佛頭)가 없는 삼륜대좌불(보 제187호)의 뒷모습.

 

▲ 불두(佛頭)가 있었다면 그야말로 국보중에 국보급이 아니었을까..

불두가 없어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자연재해, 왜란이나 호란과 같은 전란, 그리고 조선시대의 인위적인 훼손이라고 한다.

 

▲ 용장사지.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의 남산 용장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절터이다.

일제강점기 '용장사(茸長寺)'라는 명문이 새겨진 와편이 발견되어 이곳이 용장사 터임이 밝혀졌다.

신라 때 유가종(瑜伽宗)의 고승 대현(大賢)이 이곳에 머물며 석조장륙상(石造丈六像)의 주변을 돌았더니

불상도 그를 따라서 머리를 돌렸다고 하는 설화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며,

조선 초기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이곳에서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집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동서 70m, 남북 약 40m의 범위 안에 축대와 초석들이 산재하며, 동쪽 능선 위에 용장사곡삼층석탑(보물 제186호),

용장사곡석불좌상(보물 제187호),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등의 유적이 있다.

 

▲ 설잠교.....설잠(雪岑)은 '눈 덮인 봉우리'란 뜻으로 금오신화를 집필한 김시습의 법명이다.

조선초(1465~1470) 용장사에 머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 김시습을 기려

설잠교라 하였다. 김시습(1435~1493)의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계유정난(1453년)으로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21세의 김시습은 읽던 책을 불살라버리고 불가에 귀의해 전국을

유랑했다고 한다.

 

▲ 계곡의 급류에도 넘어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는 뿌리 깊은 소나무가 대견해 보인다.

 

▲ 일년 내내 수량이 풍부하다는 용장골이다. 하산길은 계류를 따라 내려간다.

 

▲ 오늘의 기온이 20도다... 능선을 오르내리며 열받은 무릎을 용장골 맑은 계류에 담그니 물이 매우차다...

 

14시 15분 : 아침에 건너갔던 이무기능선 갈림길.

 

▲ 들머리인 공원지킴터와 출렁다리.

 

14시 30분 : 용장리주차장에서 바라본 이무기능선과 고위봉.

 

▲ 시간은 삶의 초석이고, 삶은 인생여정에 있다.

홀로... 6년만에 다시 찾은 경주 남산의 골골에 새겨진 천년의 흔적따라 새로운 추억을 간직하였고...

불국토의 나라에서 유유자적하며 느림의 힐링을 하였고... 눈부신 봄풍경이 햇살에 빛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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