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1월 10일대암봉(464m) : 대구시 동구 둔산동.

 

산행코스옻골마을주차장 - 능선삼거리 - 거북바위 - 대암봉 - 전망대 -

옻골재 - 이정표 - 옻골마을 관광 - 옻골마을 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옻골마을주차장 10 44분.

산행종료 옻골마주차장 14시 40분.

요시간 : 약 6.7km / 3간 56분소요(휴식시간 포함).

 

10 : 44  옻골마을주차장.

11 : 00  능선삼거리.

11 : 37  거북바위.

11 : 59  대암봉 정상.

12 : 06  전망대(점심).

12 : 50  옻골재.

13 : 10  옻골재갈림길.

14 : 01  옻골마을 하산후 관광.

14 : 40  옻골마을 주차장 산행완료.

 

10시 44분 : 대구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주차장도착.

 

 

등산로 입구에는

이마을 뒷산 거북바위에 있는 마을을 지켜준다는 거북이가

살도록 상징적인 인공연못을 조성중이다.

대암봉 등산로는 화살표 쪽으로..

 

얕으막한 동네 뒷산의 편안한 길..

 

11시 00분 : 능선삼거리.

 

삼거리 옆으로 묘비에 처사..아무개라 적힌 묘지앞에

예사롭지 않은 삼각형기둥의 설치물이 서있고

삼인검(三寅劍)이라...

 

삼인검(三寅劍)은 조선중, 후기에 호신용으로 차던 검으로..

칼에 북두칠성을 새기고 호랑이를 뜻하는 인(寅)자가 들어가는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시(寅時)에 만든 칼로

사악한것을 물리쳐 준다는 의미가 있다.

 

봉영대(鳳暎臺)... 응천비지(應天備地)라 적혀 있다.

 

봉영대(鳳暎臺)는...

봉황이 깃든 자리라는 뜻이니..

즉,, 명당이라는 뜻일 테고..

 

응천비지(應天備地)는...

하늘이 응하여 감춘땅이라는 뜻이니

역시나..천하 길지의 명당이라는 뜻일게다..

 

마을 사람들이 오고가는 편안한 등로에서

주고 받는 산중인사가 정겹다.

 

폐헬기장.

 

체육시설.

 

11시 34분 : 거북바위 쉼터.

 

5분 거리의 거북바위 가는길.

 

어느방향에서 보아도 거북이 같지는 않구만..

 

 

 

거북바위에서..

하산할 감덕봉 능선을 가늠한다.

 

왕건길로 이어지는 초례봉..낙타봉..

 

쉼터로 돌아가는길에..

다시보아도 거북이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마을에서 올려다본 전체적인 모습이

거북이 형상이 아닐까...

 

가야할 대암봉..

좌측으로는 용암산성이 있다는 용암산.

 

뒤돌아본 거북바위.

 

대구시내는 미세먼지 나쁨 수준..

 

▲ 부처손 군락지.

 

친절하게 안내하는 이정표..

왼쪽은 올라 가는길...오른쪽은 내려 오는길.

 

11시 57분 : 주능선에 도착..

 

11시 59분 : 대암봉 정상.

 

팔공산 비로봉에서 갓바위까지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의 파노라마 스크린...

 

이지역이 얽히고 겹치고 참말로 복잡다..

대구둘레길..대구올레길..대구녹색길..팔공산왕건길..

 

반듯한 대암봉정상석인데..

올라오면서 만났던 동네 주민들이..다들 어디로 갔는지..

 

대암..큰바위전망대.

 

 

12시 06분 : 여기서 여물타임을 하고..

 

내려다 보는 대구시내...

시커멓게 보이는 미세먼지.

 

반대편의 팔공산은 깨끗...

 

하산길은 내려가는길로..

 

삼거리에서 환성산쪽으로..

 

가야할 능선.

 

 

안내도상의 416봉 솔숲길 레드카펫..

스타에게 깔아준다는 레드카펫 이지만..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다.

 

 

 

 

 

 

바위에 솔씨하나가..

 

 

 

 

12시 47분 : 매여평광길.

 

매여동에서 요령봉을 경유하여 평광으로 이어지는

대구둘레길 접속구간이다.

 

▲ 기다림이 있는 벤치..

 

<산>

그를 만나고부터
날마다 흙을 날랐다.
조바심과 기다림
설렘과 그리움을 날랐다.

 

사랑이라
무거운 줄도 모르고
고된 줄도 모르고

흙이 모여 산이 되었다.
그가 나의 산이 되었다.

내가 만든 산,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푸른 산이 되었다.
그런데

메아리가 없다.
아무리 소리쳐도 돌아오는 소리가 없다.

세월이
무너졌다.


-- 최석우·시인 --

 

12시 50분 : 골재.

 

 

▲ 낙타봉..

 

13시 10분 : 옻골마을갈림길.

 

▲ 조금전 내려왔던 솔숲암릉길.

 

▲ 전망바위 아래를 보니...저런~..

 

제손으로 마시고 버리고..

제입으로 쳐마시고 버리고.....에라이!~..

 

 

▲ 그란데...이기 머꼬?..

 

▲ 대암봉..거북바위..용암산.

 

다음에는 동구 도동에서 용암산을 올라

대암봉. 요령봉을 경유하여 매여동으로 하산 하고자

눈도장을 찍는다.

 

13시 25분 : 감덕산..

정상석이 없다.

 

▲ 소한 지난 한겨울인데

미쳐 떨궈내지 못한 가을의 미련이 달려 있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안도현 가을엽서 -

 

▲ 옻골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 옻골마을로 내려 선다.

 

▲ 옻골마을 입구의 회화나무.

수령 약400년..일명 최동집나무.

 

최동집(1586~1661)의 호는 대암(臺巖)이며,

아버지 최계는 임란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분이다.

 

한강 정구선생으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광해군 8년(1616년)에 이곳 둔산동 칠계, 즉 옻골에 정착했다.

효종이 대군으로 있을 때 효종을 모시고 청나라에

인질로 가다가 중도에 교체되었다.

 

명(明)나라가 망하자 숭정처사를 자처하여 부인동에서 은거하며

평생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가르치고 주민을 교화했다.

 

수령 350년 정도 된 이 회화나무는

경주 최씨 대암공파의 파조이자 지역사회 문풍진작에 크게 기여한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최동집나무"라 이름지었다.

 

 

 

 

최흥원 정려각.

 

조선후기 영남의 대학자이자 효를 위한 덕목을 정하고

부모의 병을 극진히 돌보는 등 효행으로 유명하였던 <백불암 최흥원>을

기리기 위해 1789년에 조정의 명으로 세운 것이다.

 

최흥원은 둔산동 옻골마을 입향조인 대암 최동집의 5대손으로

1705년에 태어나 82세를 사는 동안 평생 학문에 정진하면서

130여명의 많은 제자를 기르며 향약을 실시하는 등

백성의 생활안정을 도모 하는데 평생을 보냈다.

 

대산 이상정, 남야 박손경과 더불어 영남삼로로 추앙을 받으며

당대 영남 퇴계학맥을 이끌었다.

 

1784년에는 정조의 첫째 아들이었던

문효세자의 익위사익찬이 되어 스승이 되었다.

 

 

 

 

동계정(東溪亭).

 

동계(東溪)는 백불암의 아들 최주진(崔周鎭)이다.

동계정의 전서체 현판은 미수 허목(許穆))선생의 글씨다.


 

 

 

광당정사(光堂精舍)...

"빛이 가득한 집" 이라는 뜻이다.

 

 

경주최씨 종택(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 제261호).

 

대구시 민속자료 제1호로

최동집(1586~1661)이 살던 집은 대구지방에 현존하는

민가로서는 가장 오래되어 조선시대 생활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안쪽의 사랑채에 백불고택(百弗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백불고택 현판은 백불암의 9대 종손인 최진돈(崔晉惇, 1947년생) 씨의 부친인

8대 백헌(白軒) 최병찬(崔秉瓚)의 글씨라고 한다.

 

 수구당(數咎堂) 현판.

 

이곳은 백불암이 초호를 수구암(數咎庵)으로 짓고

사랑채에 수구당의 현판을 걸어 제자를 가르치던 곳이다.

 

백불암(百弗庵)은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최흥원(崔興遠 1705∼1786)선생의

호로서 환갑 년(영조41, 1765)에 새로 지은 호다.

 

송나라 철학자 주자의 어록중에

"백부지(百不知) 백불능(百弗能)" 에서 따왔다.

불(弗)에는 아니 부(不)의 뜻도 있어서 하나도 알지 못하고,

하나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수구당(數咎堂) 현판은

최종응(崔鐘應1873~1943)의 글씨다.

 

 

 안채..

 

 오른쪽에는 숭조애손(崇祖愛孫)..

조상을 숭상하고, 자손을 사랑하라는 뜻.

 

왼쪽에는 예도전가(禮道傳家).

예도를 가문에 전하라는 의미다..

 

 칼국수가 먹고 싶어서..

 

 들어갔더니 평일이라 조용하다.

 

주인장에게 마을 정비사업이

이제사 한창인 이유를 물었더니

 

마을 진입로 포장 문제가 드뎌 지면서 늦어졌는데

해결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고 한다..

 

 박새가 코앞까지 날아와서

한가닥 달란다.

 

 주차장에 세워진 옻골마을 돌담길을 뒤로하고.

 

 집에 가는길에 들른 <불로동 고분군 : 사적 262호>..

 

 17호 고분.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위치해 있다.

5~6세기경 삼국시대때..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 지배 세력의 집단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망자들의 음택..

 

 저 멀리...오늘 다녀온 대암봉이 우뚝하다.

 

 수많은 고분중에 275호 고분이 지붕 보존상태가 최고다.

 

 내려 올때 다른 능선으로 내려 오니 여기에도

수많은 과거의 망자들 시간사이로

현재를 걷는 산자들의 길이 헤집고 간다.

 

 

 대구에 살아온지도 60여년..

오늘에야 올라 보며.. 내가 걸어온 발길에

훼손은 없었는지..

 

 같은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서로 넘나들면서 만들어내는 풍경속의 고분군을 나서며..

 

 고분위에..천년의 시공이 무심한 까치를 당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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