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8월 09일
금오산 부처바위 능선 : 경북 칠곡군 북삼면.
산행코스 : 소림사입구 - 굴암사/용천사/석림사 - 소림사 - 부처(미륵)바위 -
주능선 - 도수령갈림길 - 도수령 - 소림사입구 - 선봉사대각국사비.
홀로산행..
▲ 소림사 입구.
숭산이라 되어 있다.
금오산은 고려 때 ‘남숭산(南嵩山)’이라 했는데
중국 오악 중 하나인 유명한 숭산과 생김새가 흡사하여
숭산이라 명명하게 됐다.
그래서 남쪽에 있다 해서 남숭산이라 하고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을 두게 되어 남북에
숭산이 하나씩 있게끔 했다.
- 다음백과 -
▲ 예년보다 길어진 휴가(5일간)를 맞아
평소에 점찍어 두었던 금오산 부처(미륵)바위 능선을 찾는다.
▲ 석암사. 굴암사. 용천사가
담장없이 모여 있는 부처님세계로...
▲ 굴암사 대웅전.
굴암사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이다.
▲ 동자승의 웃는 모습이 압권이다.
▲ 굴암사에서 경계가 없는 용천사 쪽으로..
▲ 용천사 극락보전.
용천사 역시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이다.
▲ 포대화상.
▲ 석암사.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이다.
▲ 부처님 갓에 말벌집..
▲ 석암사굴법당.
▲ 부처바위를 보기위해 소림사쪽으로.
▲ 불사가 이뤄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사찰이다.
▲ 등로는 소림사입구 오른쪽으로..
▲ 과거의 시간으로 가는듯한 분위기다.
▲ 사람이 거처하는것 같은 움막이 나오고.
▲ 거대한 바위밑에 축대가 보여 올라가 보니..
▲ 60대 초반의 처사가
팔뚝만한 굵기의 양초에 불을 붙이고 있다.
▲ 조금전의 처사가 관리하는듯..
▲ 위령비인듯한 비석 2기.
왼쪽에는 장만덕화지묘(張萬德華之墓)
오른쪽에는 정심심행지묘(鄭深心行之墓)라 음각되어 있다.
▲ 철계단이 놓여 있는걸 보아서
정규등산로로 정비한것 같다.
▲ 처음으로 나타나는 전망대
계곡을 타고 오르는 음산한 기운이 바람에 섞여
써늘한 기운까지 느껴진다.
▲ 난장이 스머프마을도 지나고.
▲ 오늘처럼 습기가 있고
음습한 날에는 키높이 오름바위를 잡고 오르려고
바위위에 손을 올려서는 안된다.
햇살에 몸을 말리려는 배암이
똬리를 틀고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 칠곡군과 성주군의 경계를 이루는 영암산능선,,
선석산 저쪽 너머에는 세종대왕 태실이 있다.
▲ 연이어 나타나는 전망대와
▲ 천길단애는 홍학을타고 내려온 신선들이
▲ 바둑을 두던 자리가 아닐까 싶다.
▲ 처음 만나는 밧줄 지대.
▲ 연잎꿩의다리.
우리나라 특산종.. 희귀식물로 분류
자생지가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되어 있다.
▲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한줄기 시커먼 구름대가 지나간다.
▲ 구름은 금오산정상으로 몰려 간다.
▲ 구와꼬리풀.
▲ 칠곡 북삼면 들판.
▲ 부처(미륵)바위.
▲ 좌측으로 돌아가며..
▲ 평평한 공터가 나오고 움막도 보이고..
▲ 산쪽으로는 <산악대신/산신당>이요.
정안수대신 음료수병이 놓여 있고
▲ 산아래쪽으로는
<천왕대신/천왕당>..막걸리가 놓여 있다.
▲ 단양 <사인암>을 연상케 하는 우람한 수직암벽.
▲ 수직암벽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면.
▲ 수직암벽 뒤통수를 지나.
▲ 널따란 암반위에 올라 선다.
▲ 그 옛날 금오산 신장의 발자욱인듯한 웅덩이.
돌샘에 앉아
우연히 물속을 보니 이름모를 곤충이 물에 빠져있다.
몸이 뒤집혀 마지막 안간힘으로 허우적거린다.
솔잎으로 균형을 잡아주니 무사히 탈출이다.
곤충을 살려주고 나니..
중국 당나라의 "마의선인" 이 쓴
"마의상서(관상학)" 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마의선인" 이 하루는 시골 길을 걷고 있는데
나무를 하러 가는 젊은 머슴의 관상을 보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래서 "마의선인" 은 머슴에게
“얼마 안 가서 죽을 것 같으니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말라”
라고 일러 준다.
머슴은 그 말을 듣고 낙심하여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을 할 때
계곡 물에 떠내려 오는 나무껍질 속에서 수많은 개미 떼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보였다.
머슴은 자신의 신세와 같은 개미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나무껍질을 물에서 건져 개미 떼들을 모두 살려주었다.
며칠 후 마의선인은 그 머슴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머슴의 얼굴에 드리워 있던 죽음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마의선인은 그 젊은 머슴에게서 개미를 구해준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달아 마의상서 마지막 장에 남긴 말이 바로...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얼굴 좋은 것이 몸 건강한 것만 못하고)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
(몸 건강한 것이 마음 착한 것만 못하고)
심호불여덕호(心好不如德好).
(마음이 착한 것이 덕성이 훌륭한 것만 못하다) 이다.
착한(?)일을 했으니
내얼굴에 <로또> 대박의 운이 보이지 않을까?
그런데..
금오산중에 오로지 나 혼자라
물어 볼 사람이 없다...
ㅎㅎㅎ~
▲ 올라온 부처바위능선.
▲ 굴암사/용천사/석암사가 옹기종기 모여서
불교마을을 이루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한데..
바로옆에 경부고속철도가 가까워서 거의 5분사이로
기차가 지나갈때 마다 굉음이 장난이 아니다.
소리만이 아니다..
우르르 덜덜덜.. 땅도 흔들린다.
부처님자리도 덜덜덜~ 거리지 싶다.
고요한 산사와는 거리가 먼~것 같다.
▲ 금오산 금오동천 주능선 도착.
소림사까지 겨우 1km인데.. 오르다가 쉬고 또 쉬고
10km쯤의 거리로 느릿느릿 올라 왔다.
▲ 주능선에 올라서면 누구라도 만나겠지 했는데
역시나 아무도 없다.
▲ 지난 1월에 답사한 서봉능선.
▲ 오늘산행의 목적지는 여기까지다.
도수령으로 하산이다.
▲ 하산길로 짙은구름이 올라 온다.
비구름은 아닌것 같다.
▲ 팥배인지..덜꿩인지..
▲ 오늘 최고의 나만의 정원식탁이다.
▲ 구름에 싸여있는 현월봉.
금오산의 최고봉이다.
▲ 돌양지도 더위에 지친듯...
▲ 금오산,,하면 으례히 따라 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우리나라 도립공원의 효시",
"경북 8경" 중 하나, "경북의 금강산" 등이다.
수려한 경관 뿐만 아니라 역사의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승려 이도화상이 구미땅에 머물때
태양에 산다는 황금까마귀, 금오(金烏)가
이 산의 노을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본 후
명명 했다고 전해온다.
▲ 바람이 구름의 끝자락을 밀어내는 곳에
금오산 최고의 가람인 약사암이 살포시 보이기 시작한다.
▲ 10여분간 금오산 현월봉에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려 본다.
▲ 기다림에 부응하듯..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현월봉.
▲ 마지막 전망대에서..
▲ 도수령 내림길이 장난이 아니다.
▲ 재미도 없었던 선유도짚라인보다 훨~재미있다..
그래도 조심조심..
▲ 칼다봉능선도 당겨보고..
▲ 효자봉 능선.
동방길지(東邦吉地)인 금오산(金烏山) 주봉 현월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도수령 맥을 이곳 사람들은
숭양산(崇陽山) 또는 수양산(首陽山)이라 한다.
이 숭양산의 주봉이 효자봉(孝子峰)이다.
▲ 능선 왼쪽은 구미시가 자리하고
▲ 오른쪽은 칠곡군 북삼면이고 아래동네가 숭산마을이다.
- 효자봉 유래 -
숭산마을에는 하늘에서 내려준 효자(孝子)로 칭송받는
유우석(劉遇錫;정조 갑인년10월1일~철종 신해년5월1일)이란 분이 있었다.
그의 자는 상언(祥彦)이오 호는 계정(溪亭)이다.
어느 날 8순의 조모가 기력이 다하고 노쇠 위독한데 소원하기를
“잉어(鯉魚)탕이 먹고 싶다.” 라고 하였다.
허나 엄동설한(嚴冬雪寒)이라 잉어를 구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우석은 20여리 눈밭(雪田)을 걸어서 낙동강 빙판에 나와서
잉어를 구할 수 없을까 서성거리다가 할머니의 소원을
애석(哀惜)해 하며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곤 했다.
몇 번이나 그랬을까?
어느 날 하늘이 감동하였는지 우석 앞 저만치 얼음 숨구멍에서
갑자기 큰 잉어 한 마리가 튀어 올라 펄떡이고 있었다.
우석은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고 수없이 되 내이며,
그 잉어를 집으로 안고와 참기름에 맛있게 뽁아 탕을 만들어
지극정성 공양하니 조모의 환우(患憂)가 사라지게 되었다.
고을사람들은 “우석의 효심과 정성에 감응하며 잉어 스스로가
얼음구멍에서 뛰어 올라 나왔다.” 고 그 효행이 자자하였다.
그 뒤 어느 날 조모께서 갑자기 “비둘기 고기가 먹고 싶다.” 고 말하기에
몇날며칠을 비둘기 구할 길을 찾아 해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비둘기 한 쌍이 처마에 부딪치고 마당에 떨어지니
잡아다 8순의 할머니에게 정성껏 공양했다.
이일을 알게된 나라님께서 팥과 찹쌀을 내려 노조모를
잘 공양하도록 우석에게 포상을 했다.
우석이 사는 뒷산봉우리를
효자봉(孝子峰)이라 이름 하게 되었다.
▲ 도수령 도착..
여기서 마을로 원점 하산이다.
▲ 숭산마을..
한낮의 더위 때문인지 움직이는게 없다..
좀비가 지나간 마을 처럼
고요하다..
시간개념이 필요 없는 홀로산행을 마치고
자동차로 5분정도 거리의 잊혀진 역사의 흔적이 있는
선봉사 대각국사비를 보러 간다.
▲ 후투티.
▲ 여염집같은 선봉사.
선봉사는 과거 영산의 기운이 감도는 남숭산(금오산)에
대각국사와 그의 제자들의 수도장이었을 만큼 명당이었다고 한다.
‘봉황(鳳)이 훨훨 춤춘다(僊)'는 뜻의 선봉사는
곧 '도인(道人)이 해탈했다'는 뜻이다.
역사도 추억도
세월따라 잊혀지고 사라진다.
하지만 잊혀지고 사라진것이
남의 나라 침략자의 소행인 것에 화가 난다.
화려했던 선봉사는 임진왜란떄 소실되고
땅에 묻혔던 대각국사비가 300여년이 지난 1922년경에 발견되어
세상에 밝히고 있어니 이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 칠곡 선봉사 대각국사비(漆谷僊鳳寺大覺國師碑).
보물 제251호.
대각국사비는 천태교를 수립한
대각국사(1055∼1101))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다.
대각국사(의천)는 고려 11대왕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의천, 시호는 대각, 이름은 후다.
11살때 왕사인 경덕국사 밑에서 승려가 되어
구족계를 받고 영통사에서 배웠다.
1085년 송나라에 가서 계성사의 유성법사에게
화엄, 천태, 양종의 뜻을 배운뒤 여러절을 다니며 공부하였다.
1086년 귀국하여 개경 흥왕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교장도감을 두고 송나라, 요나라, 일본 등지에서 수집한
불경유서들을 4,700여권 간행하였다.
고려의 불교가 교종과 선종으로 갈라져 대립하던때에
교선(敎禪) 일치를 주장하고 천태종을 개창하여 고려불교가
융합하도록 만든 업적이 크다.
1천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비문과 문양이
뚜렷하게 남아 보존상태가 양호한데,
비석의 재료가 백령도 부근에서 나는 바다 돌이기 때문이다.
바다 돌은 육지 돌과는 달리 철분이 적어 갈라짐과 부서짐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대각국사비에는 6·25전쟁 때 총에 맞아
부서진 자국을 제외하고는 말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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