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7월 20일 무학산(589m) : 경북 경산시 와촌면.
산행코스 : 불굴사주차장 - 홍주암 - 독성각 - 640봉 - 583봉 -
무학산 정상 - 불굴사주차장 - 환성사 - 사이동유래비 - 귀가.
산행시작 : 불굴사주차장 13시 20분.
하산완료 : 불굴사주차장 15시 53분.
(2시간 33분 소요 : 휴식시간포함)
13 : 20 불굴사주차장 도착.
13 : 37 홍주암.
13 : 40 독성각.
14 : 28 640봉.
14 : 51 583봉.
15 : 21 무학산정상.
5 : 53 불굴사주차장 하산완료.
귀가길에 환성사 관람.
▲ 13시 20분 : 불굴사 주차장 도착.
▲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南無)는
인도어로 "돌아가서 의지한다." 라는 뜻이니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은
"아미타불에게 돌아가 의지한다"..라고 보면 될것이다.
▲ 마당에 올라서니
부처님의 특명을 받은 신장(神將)이
눈을 부라리며..
나를 따라 오지만
나는 보지못하는...
사바(娑婆)의 사악(邪惡)한 기운을
추상같은 호령으로 물리친다.
▲ 범종(梵鐘)..
우주의 근원, 진리의 소리를
내는 것이 범종이다.
지금은 타종시간이 아니지만
마음으로 진리의 소리를 들으며
번뇌를 없애고 지혜를 일으켜 중생의 고통을 벗어나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하는
정화된 마음이다.
▲ 적멸보궁.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90년(신문왕 10)원효가 창건하였다.
그 뒤의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는데,
한창 때는 50여 동의 전각과 12개의 부속 암자,
8대의 물방아를 갖추고 쌀을 찧어
승려와 신도들의 공양미를 한 대사찰이었다.
-- 다음백과 --
▲ 약사보전.
약사보전은 조선시대 후기의 건물로
내부에는 독특하게도
족두리를 쓴 여성상을 하고 있는
약사여래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 약사여래입상(문화재자료 401호).
이 불상은 땅 위에 있는 화강암의 바위에 받침대를 조각하고
그 위에 불상을 세운 형태이다.
받침대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랫단은 네모난 형태이며 각면에 안상을 새겨 놓았고,
윗단은 둥근 형태로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았다.
이 석불입상의 규모는 전체높이 233㎝,
어깨폭 75㎝, 머리높이 53㎝이다.
,
,
,
1736년에 내린 큰비로 사찰 전각이 무너질 때 매몰된 것을
순천 송광사 노스님이 현몽하여 발굴한 불상이라 전한다.
상호의 표정과 신체의 표현,
그리고 대좌 양식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 다음백과 --
▲ 적멸보궁의 주련이 한글로 되어 있다.
이 자리가 본래 있던 대웅전 자리라고 한다.
1988년 인도에서 모셔온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여기에 적멸보궁을 지었다고 한다.
▲ 통도사처럼 유리로 되어 있고
뒤에는 진신사리가 안치된 삼층석탑이 보이고
후불탱화, 아미타탱화, 칠성탱화가 있다.
▲ 불굴사삼층석탑(보물 제429호).
불굴사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9세기의 작품이며
보물 제429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743㎝의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을 장식한 일반형이다.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석등으로서
현재 약사보전 앞에 있는데
이 자리가 원위치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 다음백과 --
▲ 염불당(念佛堂).
여기 주련도 한글로 되어 있다.
어려운 한자보다
정겨운 신선함이 있어 좋다.
▲ 홍주암 가는길.
대구 날씨 사람체온보다 높은 38도.
여기는 아마도 34~5도 쯤.
▲ 홍주암 108계단.
▲ 홍주암(紅珠庵).
▲ 약수..(일명 : 장군수).
▲ 약수 상단부.
▲ 아동제일약수(我東第一藥水).
▲ 홍주암(紅珠庵).
홍주(紅珠)는 해가 빨리 뜨는 곳의 의미로
태양을 말하기도 하고, 몸 속의 단(丹)을 말하기도 한다.
▲ 삼라(森羅)를 굽어보고 계는 부처님.
원효와 김유신의 설화도
함께 깃들어 있다.
▲ 가운데는 부처님..
▲ 왼쪽에는 인왕상(仁王像)이
반라(半裸)의 몸에 천의(天依)를 두르고 팔을 들어
왕성한 힘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 오른쪽에는 금강역사.
▲ 바위틈새를 이용하여
올라가는길과 내려가는길을 구분하였다.
▲ 천년송이 용이 되어
승천의 용트림을 하고 있다.
▲ 올라온 곳.
▲ 하심(下心)나무.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올라가기 힘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다시 석굴을 지나..
▲ 바깥 세상으로 나오면
서민들의 소박한 바램이 적혀 있는 소원지(所願紙)가
무수히 걸려 있다.
▲ 독성각.
▲ 하심(下心)나무 밑으로.
▲ 홍주암 계단을 내려오면..
▲ 13시 47분 : 무학산 가는길.
오른쪽으로 무학산 등로가 열려 있다.
무언가 공사를 하는 모양인데
등산로 폐쇄공사는 아닐 것이다.
▲ 홍주암을 다시 올려다 보고.
▲ 13시 55분 : 등로입구에 8분만에
640봉 지능선 도착.
▲ 능선길은 바람 살랑살랑에
시원한 그늘에 완전 착한 길이다.
▲ 팔공산 명마산 줄기가 조망되는
멋진 전망대.
▲ 팔공 주봉인 비로봉이 가물가물..
▲ 당겨본 팔공산 비로봉.
▲ 멋진소나무.
뒷쪽 배경에 나무들만 없다면
멋진 그림이 될텐데.
▲ 14시 28분 : 환성산 주능선 도착.
여기서 오른쪽은 환성산 가는길.
왼쪽의 무학산으로 간다.
▲ 조망좋은 쉼터에서..
▲ 가야할 무학산쪽의 583봉.
▲ 암릉지대..
저기를 가보려 함이었는데..
▲ 그늘 좋은 착한 길위에서
혼자 인줄 알았는데..
▲ 583봉 오름길에
햇살 밖으로 나오니 누군가가
나를 휙!~하니 추월한다.
마사토 바닥에 햇살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나의 그림자다.
빛의 존재만 있는게 아니라..
그속에서.. 또 다른 나를 본다..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림자는 그사람의 모습이다..
그림자에서 "그"를 빼면 <임자>가 된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언제나 한결같은 믿음의 자태로
늘 나와 함께 있다.
▲ 640봉에서 부터 무학산 정상까지
오른쪽으로 줄기차게 따라온다.
▲ 15시 09분 : 불굴사 갈림길.
무학산 정상 찍고
되 돌아와서 여기서 하산할 것이다.
▲ 무학산 바로 직전에도
넉넉하고 인간성 좋아보이는 옆집 사람처럼
두루뭉실한 수문장과 수하들의 검문에
기분좋게 응해주고..
▲ 무학산 정상의 산불감시초소.
▲ 해발이 다르다.
안내도에는 589m 였는데
574.5m 이다.
▲ 불굴사로 되돌아가는길에.
▲ 바위를 자르려고 파놓은 홈이 보인다.
▲ 15시 32분 : 다시 불굴사 갈림길.
▲ 석불뒤로 내려다 보이는 불굴사.
▲ 갓바위쪽을 바라보고 있는 미륵부처님.
▲ 15시 53분 : 불굴사 주차장..
2시간 33분간의 짧은 산행을 완료하고
귀가길에 환성사를 들리려 한다.
▲ 불굴사 산문을 나서며 담아본 홍주암.
▲ 환성사를 찾아기는길에
"상엿집" 이라는
색다르고 으시시한 이정표가 보여서..
▲ 환성사 일주문.
자연 초석위에 4개의 돌기둥을 세웠는데
가운데 2개는 8각으로 바깥쪽 2개는 4각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대의 돌기둥이다.
돌기둥만 뒹굴다가
2013년에 복원하였다.
▲ 환성사 올라가는 계단 가운데에는
둘이면서도 하나인 듯한.. 노거수가 멋이 있다.
▲ 수미단의 아름다운 문양.
▲ 무학산 산행중에 저 암릉에 앉아서
환성사를 내려다 볼려고 했었는데 길을 찾지 못하였다.
▲ 부도탑군.
▲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유물들을
조합하여 놓아 어색함이 있지만..
그래도 수습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언젠가는 복원도 가능 하리라..
▲ 사이동(四而洞) 유래비와 하마비(下馬碑).
▲ 하마비.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려서 경건한 마음으로 지나가라~..
사이동 하마비는..
1684년(숙종 10) 하양현 금호동(현 하양읍 금락리)에
도내유림에서 조선조 세종때 좌의정 경암 허조선생을 제향하는
금호서원을 창건할 때 서원앞에 세웠던 것이며..
1724년 금호서원을 사이동(현 서사리)으로
이전과 동시 옮겨졌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당은 헐리고
그 자리에 유허비를 세웠으며 강당 등은 부호리로 옮겨진 후
이 하마비는 유허비 동남쪽
약 50m 지점 반석위에 설치되어 있던 것을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2000년 6월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 사이동 유래비.
이 바위 역시 금호서원 입구에 세워져 있었으나
서원이 옮겨진 뒤 길가에 방치된 것을
2000년 6월 하마비와 같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 하양읍장이
정성스럽게도 동판(銅板)을 주조하여
붙박이 한것이다.
,
,
,
1724년 금호서원을 옮겨올 당시 도내 유림(儒林)에서
평화로운 농촌풍경을 시로 읊으며 지은 지명이
"사이동(四而洞)" 라고 전해 온다.
일출이작(日出而作) :
해가뜨면 작업하고
일입이식(日入而息) :
해가지면 쉬며..
착정이음(鑿井而飮) :
우물을 파서 마시고
경전이식(耕田而食) :
밭을 갈아 먹는다.
,
,
,
얼마나
아름다운 글귀 인가...
해뜨면 일하고
해지면 한 잔 술에 밥말아 먹으니
이 또한 천국이 아닐런지?
어릴적 고향 뒷산
동네 형들 따라 나무 하러 갔다가
양지 바른 곳에서 지게를 등에 받치고
지게작대기 장단 두들기던 그시절이
어느새 옛날이다.
한가락
뽑아보자
아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배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지 아니한가?
'산행기 >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남 통영시 연화도에서 아쉬움 하나 내리고~.. (0) | 2018.08.05 |
---|---|
경북 울진 구수곡에서 폭염을 이겨낸 구수한 이야기들~... (0) | 2018.07.23 |
경북 문경 대야산 용추계곡 / 선유동에는 염제(炎帝)도 비껴가더라~.. (0) | 2018.07.16 |
경남 산청 정수산(841m)에서 풋풋한 에너지의 숲길을 헤치고~.. (0) | 2018.07.09 |
포항 <호미곶 해안둘레길>에서 만난... 미인,,역사..새천년 상생의 손~.. (0) | 2018.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