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5월 27일옥돌봉(1242)m : 경북 봉화군.

 

산행코스도래기재 - 550년 철쭉 - 옥돌봉 - 주실령삼거리

            박달령- 오전약수 - 오전약수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도래기재 들머리 10시 44분.

산행종료 : 오전약수 주차장 15시 10분.

소요시간 : 약 9.2km / 4시간 26분소요 / 휴식시간 널널 포함)

 

10 : 44  도래기재 옥돌봉 산행들머리.

11 : 55  철쭉(562년)보호수.

12 : 16  옥돌봉 정상.

12 : 49  주실령삼거리.

13 : 50  박달령 갈림길.

15 : 04  오전약수탕.

15 : 10  오전약수주차장 하산완료.

 

10시 44분 : 도래기재 생태이동 통로 도착.

 

도래기재는..

백두대간상에 위치하며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와

서벽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본래 이 곳에 조선시대 역(驛)이 있어서

도역마을이라 불리다가 도래기재로 변음됐다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도력현(道力峴)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고개를 넘어서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으로 갈 수 있다.

- 다음백과 -

 

 

▲ 옥돌봉 산행 들머리.

 

 

초입의 계단을 오르면..

 

 

▲ 여기가 백두대간임을 실감케 하는수많은 시그널..

 

 

▲ 둥굴레.

 

 

▲ 애기나리.

 

도래기재에서 부터 박달령까지

애기나리..민백미꽃이 가장 많았고..

 

금강애기나리도 있다는데

아쉽게도 만나지를 못했다.

 

 

▲ 시기를 놓친 철쭉의 터널숲.

 

 

 

 

▲ 노랑갈퀴.

 

 

▲ 백두대간길 중에서도

가장 편하다는 구간이다.

 

 

▲ 수많은 인연의 발자욱들이 만들어 놓은

기분 좋은 백두대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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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신체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자연적으로 치유시키는 데

가장 좋은 장소로, 휴먼(Human) 건강증진센터라고 할 수 있다.

 

숲을 바라만 보아도, 숲 속에서 서있는 것만으로,

앉아있는 것만으로, 아니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 숲이다. 

-- 성기홍 --

<자연종합의학연구원 교수·한국워킹협회 부회장>

 

 

▲ 민백미꽃.

 

 

▲ 550년 철쭉은 등로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나 있다.

 

 

11시 55분 : 550년 철쭉. 

아니다..

562년이다.

 

수령이 550년 이상이면, 아마도 조선 세조때 쯤으로 추정된다.

그때에 싹을 틔운 나무가 아직까지도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 있다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 2006년 5월에 550살로 등록하였어니..

지금 2018년 5월.. 해서 562살.

 

철쭉 노거수에 대해서

몇해전 까지만 해도 강원도 정선의 반론산 철쭉(200년)이

최고령으로 알려져 오다가,

 

2005년에 가지산의 철쭉(450년)이 발견되었고.

2006년 봉화 옥돌봉(옥석산)의 이 철쭉이 발견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받고 있고

 

다시 2007년 광양 백운산에서

둘레가 173cm인 철쭉이 발견 되었다고 하는데

공식기록은 알수가 없다.

 

정선의 반론산 철쭉(천연기념물 제348호)와

울산 가지산 철쭉(천연기념물 제462호)은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 562년,,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우리민족의 정서와 오랫동안 해온 나무가 철쭉이다.

 

철쭉과 관련한 오래된 설화 중에 삼국유사에 전하는

"수로부인"의 "헌화가(獻花歌)" 이야기가 있다.

 

성덕왕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갈때

일행이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 옆에는 높은 돌산이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었는데,

그 절벽 위에 철쭉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수로부인이 그 꽃을 꺾어 달라 부탁하게 된다.

하지만 높은 절벽 위에 있는 그 꽃을 목숨을 걸고

꺾어 올 자가 감히 아무도 없었다..

 

때마침 암소 한마리를 몰고 그곳을 지나가던

늙은 노인이 그 말을 듣고는 기꺼이 그 절벽 위에 올라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리고 수로부인께 그 꽃을 바치며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 노래가 "헌화가(獻花歌)" 다.

 

자포암호변희(紫布岩乎邊希)

질붉은 바위 가에

 

집음호수모우방교견(執音乎手母牛放敎遣)

손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오힐불유참힐이사등(吾肹不喩慚肹伊賜等)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시면

 

화일절질가헌호리음여(折叱可獻乎理音如)

꽃을 꺾어 받자오리다.

 

 

 

▲ 옥돌봉 철쭉은 5월 중순에서 6월초가 적기라는데

이미 다 져버렸다..

 

철쭉꽃이 졌기로 바람을 탓하랴...

비록, 타이밍은 놓쳤지만 562년의 시 공간앞에 선

고운님들이 수로부인의 철쭉꽃 자리를 함께 채우니

 

철쭉나무도 마냥 즐거운 표시로

가지를 살랑인다. 

 

 

▲ 처녀치마 씨방. 

 

 

 

 

▲ 풀솜대..

 

옛날 춘궁기 때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은

요긴한 식량이었다.

 

풀솜대 역시 구황식물로 이용되었는데,

특히 절에서 죽을 쑤어 먹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생들을 구제하는 풀이라는 뜻으로

풀솜대를 ‘지장보살’이라고도 불렀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위대한 보살이니,

 

작은 풀꽃에 붙인 별칭으로

최고의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풀솜대란...

솜대에 ‘풀’을 붙인 이름인데,

솜대는 어릴 때에 흰 가루로 덮여 있는 것이

솜이 묻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 다음백과 --

 

 

 

 

 

 

 

 

 

 

▲ 져버린 철쭉을 아쉬워하는 내마음을 읽었음인지

한그루가 피어 있다.

 

 

 

 

 

 

 

 

▲ 삿갓나물,,

 

먹는 나물이 아니다.

잘못 먹어면 설사와 복통에,,

전신마비가 오는 독초다.

 

 

▲ 큰앵초.

 

 

 

 

 

 

 

 

 

 

▲ 제비꽃.

 

 

노린재나무꽃.

 

 

▲ 민백미..그 하얀 순결에서...

 

 

 

 

▲ 은대난초. 

"탄생" 이라는 꽃말,,

 

 

▲ 감자난초. 

꽃말은,, "숲속의 요정" 이다.

 

 

▲ 쥐다래인지...개다래?..

 

 

사초 속의 은대난초를 보며

지금쯤 들려 와야 될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소리를 찾기위해 일행들과 조금 떨어져서

1106봉으로 생각되는 봉우리를 넘어서니..

 

 

▲ 어디선가 고요한 숲의 적막을 깨우고,,

 

홀딱 벗고~...홀딱 벗고~

"홀딱 벗고새" 의 애잔한 여운의 노래소리가 들린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벗고 벗고.. 니도 벗고.. 나도 벗고~

ㅎㅎㅎ..

 

 

▲ 검은등뻐꾸기

러시아 동남부에서 인도, 네팔, 중국, 한국에서 번식하고,

동남아시아에서 월동한다. 

-- 다음백과 -- 

 

<검은등뻐꾸기>라는 새인데 지저귀는 소리가 마치..

"홀딱 벗고!~" 처럼 들린다고 해서 얻어진

별명이<홀딱 벗고 새>이다.

 

해마다 5월이면

암컷을 찾는 구애(求愛)의 소리다.

 

 

13시 50분 : 박달령 산령각.. 

문이 잠겨 있지 않았길래.. 열어 보니..

 

 

▲ 박달령성황신위.

 

현재의 산령각은 노후되어 1994년도에 중수한 것이고.

매년 4월 초파일에 오전리 마을에서 박달령을 찾는 사람들의 안녕과

 

마을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고, 자연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는 고사(告祀)를 지내고 있다.

 

 

 

 

▲ 박달령. 

박달령은 옛날부터 경북 봉화와 강원 영월을 이어주는 고갯길로

부보상들이 많이 다녔다고 전해진다.

 

 

 

 

 

 

 

 

 

 

 

 

 

 

 

 

 

 

 

 

 

 

 

 

 

 

 

▲ 오전약수 하산길.

 

 

 

 

▲ 영남북부의 보부상들이 넘나들던곳,

 

 

▲ 금강소나무 사이로..

 

다시 "홀딱 벗고 새" 의 구성진 소리가 들린다.

그 옛날 봇짐을 지고 다니던 보부상들의 귀에도

 

홀딱 벗고~

홀딱 벗고~로 들리었을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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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딱 벗고새>

- 원성스님 -

 

홀딱 벗고

음을 가다듬어라.

 

홀딱 벗고

이상도 던져 버리고

 

홀딱 벗고.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홀딱 벗고

정신차려라.

 

홀딱 벗고

열심히 공부하거라.

 

홀딱 벗고

반드시 성불해야 해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홀딱 벗고~~

 

 

▲ 홀딱 벗고새의 전설.

 

공부는 하지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이 환생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어느 사찰의 한 스님에게 일어난 애틋한 사연...

수행 정진하는 어느 날

그 스님에게 운명처럼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인은 불귀의 객이 된 남편의 백일기도를 위해

탑돌이를 하러 절을 찾았다.

 

그 자태가 너무 아름다워 스님은 그만

그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세상과 등진 스님으로선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번뇌을 떨쳐버리기 위해 쉼 없이 주문을 외웠다.

 

"사랑도 홀딱벗고, 번뇌도 홀딱벗고, 미련도 홀딱벗고…"

이렇게 열심히 주문을 외웠지만

한번 일어난 마음의 갈등은 차마 떨칠 수가 없었다.

 

결국 스님은 미련만 남긴 채

화풍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홀·딱·벗·고~" 는 그 모습을 지켜본 검은등뻐꾸기가

그 주문을 따라 부르다 보니 입에 익어

그렇게 나왔다고도 하고,

 

또,, 스님의 넋이 홀딱벗고새로 변해

그런 울음을 울게 되었다고도 한다.

 

 

 교토삼굴(狡兎三窟),,,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개 판다는 고사성어다,,

 

대게 너구리나 오소리는 굴을 한개만 파는데

굴이 나란히 세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토끼굴임에 틀림없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토끼가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은 숨을 굴을 셋이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위험을 대비해야 함을

깨닫게 해주는 고사성어다.

 

중국의 사기(史記)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그 내용을 인용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전국시대 말엽 제(齊)나라의 재상인 <맹상군(孟嘗君)>

그 집의 식객으로 있었던 <풍훤>이라는 사람과 있었던 일을 배경으로 한다.

<맹상군(孟嘗君)>은 설읍(薛邑)이라는 도시에 1만호를 다스리며,,

집안에는 항상 수천명의 식객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제나라의 재상 <맹상군>으로부터

설(薛)땅의 차용금을 거두어 오라는 명령을 받은 <풍훤>

설(薛)까지 수레를 몰고가 현지의 관리들을 시켜

부채가 있는 자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모은 후,

그 부채의 증서들을 한자리에 모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설(薛)의 백성들은 이 일을 보고 매우 기뻐했으나

맹상군은 매우 못마땅했는데, <풍훤>은 맹상군에게

'당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은의(恩義)올시다.

차용증서를 태워버리고 그 대신 당신을 위해
은의(恩義)를 사왔습니다.' 라고 말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맹상군>이 제나라 민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 영지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설(薛) 땅 사람들은 백리 앞까지 마중을 나와 그를 따뜻이 맞이했다.

 

이것이 <풍훤>이 <맹상군>을 위해 마련한
첫 번째 굴이었고, <맹상군>은 그때서야 <풍훤> 의도를 이해했다.

이때, 맹상군이 재상에서 물러나자 수천명의 식객도 떠나고,,

오직 <풍훤>만이 곁에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풍훤>은 위나라의 혜왕(惠王)에게

<맹상군>을 재상으로 맞으면 부국강병을 이룰 것이라고 설득하여,

위나라는 맹상군을 맞이하기 위해 황금 천금과 수레 백량을

세 번이나 보냈으나 맹상군은 풍훤이 미리 알려준 책략대로
위나라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소문을 듣고 민왕은 두려움을 느껴
사신을 보내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재상으로 임명하였다.
이것이 두 번째의 굴이었다.

 

<풍훤>은 설(薛)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도록

<맹상군>에게 건의하여 세움으로써,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민왕도 감히 그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므로 세 번째 굴이 되었다.

 

이리하여 <맹상군>
재상에 머문 수 십년 동안 아무런 화도 입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풍훤><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의

숨을 굴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자연 절개지의 백척간두에 선 두 나무가

보이지 않는 치열한 생존의 전쟁을 하고 있다.

너죽고 나살자..

 

 

 

 

 드디어 마을이 보이고..

 

 

 마을 상류에 위치한 오전약수..

 

 

 오전리.

 

 

 

 

 

 

 매발톱.

 

 

 15시 04분 : 오전약수.

오전약수탕이 있는 마을은

 

예전에 쑥밭이란 뜻의 애전(艾田)으로 불리던 곳인데

이 쑥밭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 지역이 물이 합수되는 지역이라 하천이 범람하여

항상 늪지대였기에 그런 뜻으로 수전(水田)이라 하였는데,

다른말로 쑤뱅이라 불리던 것이 쑥밭으로 변경되었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이곳 약수물이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문둥병 환자들이 약수를 먹고 몸을 씻고

이 지역에 있는 쑥으로 피부에 뜸을 뜨고 달여먹고 하여

병을 고쳤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쑥밭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 전설에의하면 오전 약수터는 

물야면 오전리 후평장과 춘양 서벽장을 드나들며 장사를 하던

봇짐장수(褓負商) 곽개천이라는 사람이 서벽장을 보고

주실령을 넘어 후평장으로 가던 어느날 쑥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와 이르기를

"네 옆에 만병을 통치할 수 있는 약수가 있다"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 옆을 보니 과연 약물이 솟고 있었다,

 

조선 제9대 성종(1469 ~ 1494)때 발견된 이 약수는

이듬해 가장 물맛이 좋은 약수를 뽑는 대회에서

전국 최고의 약수로 뽑혔다고 한다.

 

이 약수는 탄산성분이 많아 톡쏘는 맛이 일품이며

주요성분은 유리탄산, 망간, 마그네슘이온,

염소, 중탄산, 칼슘이온, 철분으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편, 오전약수탕 주변 등산로는 백두대간 구간으로

최근에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고

맥반석 찜질방이 있어 약수샤워도 즐길 수 있다.

 

 

인생불로 요산약수(人生不老 樂山藥水).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라" 는 뜻으로 쓴

주세붕의 친필 휘호.

 

풍기군수였던 신재 주세붕(周世鵬)은 이 약수를 마시고

"그 옛날 조선시대 부터 유명 했던 오전약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 라고

칭송했다는 글귀다.

 

 

 

 

15시 10분 : 오전약수 주차장 하산완료.

 

도래기재에서 부터 오전약수까지

숲에 가려 조망없는 산이었지만 짙어지는 녹음과

후텁텁한 더위에 다소 힘든 산행이었음에도

 

끝까지 완주하시고

께 해주신 모든 회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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