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7일 ~ 10월 30일<3박 4일>

일본 큐슈 가라쓰 올레길 / 운젠산(케오 올레길 대체)

 

여행경비 : 299,000원(현지스탭 2만원 별도).

교통편 : (1) 대구 <=>부산 : 대형버스(왕복차비 3만원 별도)

(2) 부산 <=> 하카타항 : 뉴카멜리아.

 

첫째 날(10월 27일) :

오후 3시 00분 성서 홈플러스 출발.

오후 5시 부산국제여객선터미날도착.

오후 10시 30분 부산항 출발.

 

둘째 날(10월 28일) :

오전 06시 00분 큐슈 하카타항 도착.

오전 10시 15분 사가현 가라쓰 올레길 입구 도착.

오전 10시 25분 가라쓰올레길 출발.

오후 2시 40분 소라구이 포장마차 트레킹 종료.

오후 6시 사가현 이마리시(伊萬里市) 4800AZ 비지니스호텔 도착후 온천욕.

 

셋째 날(10월 29일) :

오전 08시 00분 나가사키현 운젠산으로출발.

오전 10시 22분 운젠산입구 도착. 안개로 도로통행 차단.

오후 1시 40분 다케오 올레길 도착.

오후 3시 30분 다케오 올레 트레킹 종료.

오후 6시 후쿠오카현 아사쿠라시(朝倉市) 하라주루(原鶴)호텔 도착후 온천욕.

 

넷째 날(10월 30일) :

오전 08시 원학호텔 출발.

오전 08 40분 후쿠오카 동장사(東長寺) 도착 관람.

오전 10시 하카타항 면세점 쇼핑.

오전 11시 30분 하카타항 출국장 도착.

오후 6시 부산항 도착. 자갈치시장 생선구이집 저녁식사후 출발.

오후 8시 12분 대구 법원도착 해산.

 

 

18시 00분 : 부산국제여객선터미널 3층

8848트레킹 가이드 미팅.

 

 

 

▲ 승선후 방배정 받고 제일먼저..

휴게실 선점..ㅎㅎ

한잔..

 

 

 

 

 

 

 

▲ 부산항 대교.

 

 

 

 

 

 

 

 

 

▲ ㅋㅋㅋ~.

일탈이 주는 여유에 장난끼 발동...

갑판에서 금남의 방 유리창을 똑똑똑~..

ㅎㅎㅎ~

 

부산 <=> 하카타항

장장 6시간이 소요되는 배로 가는 여행은

적당히 마시고 자버리는게 최고다..

 

 

 

07시 15분 : 하카타항.

 

 

 

▲ 하카타 베이타워.

집으로 가는날(30일) 오전에 올라갈 것이다.

 

 

 

 

▲ 입국 수속을 기다리며...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환생?...

ㅎㅎㅎㅎㅎ~

 

 

 

▲ 44명...

현지 버스를 타고 가라쓰(唐津)로~~

 

 

 

▲ 태풍 22호 <사올라>의 영향으로 비가 온다.

다행히도 큐슈남부해안을 따라 도쿄쪽으로 진로를 잡고

얌전히 비만 뿌린다.

 

 

 

▲ 고속도로 진입.

 

부정통행시 30만엔 벌금..

우리돈 300만원이다.

 

 

 

 

10시 15분 : 미치노에키 모모야마텐가이치 도착.

(道노驛 桃山天下市)

 

이 곳은 옛날 중국당나라로 파견된 외교사절인 견당사(使)의

발착항이었기 때문에 <가라노쓰>라고 했었는데

이것이 <가라쓰>로 바뀐 것이라 한다.

 

<모모야마문화(挑山文化)란> 

가라쓰는 모모야마문화(挑山文化)의 발원지이다.

도요토미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으면서 가문의 멸망기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적 배경아래 꽃피웠던 예술적, 미술사적 시대를 모모야마문화기라고 칭한다.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정권을 장악한 후 신흥 부호상인들이 급성장하게 되면서,

그 부를 배경으로 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대대적인 문화적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오다노부나가의 정책에 의해 불교세력의 힘이 중앙에서 축소되면서

불교주의적인 작품이 현저히 줄어든 반면,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중심, 현세적 작품등이 활발하게 선보이게 된다.

 

더불어, 임진왜란이후 조선에서 끌려간수많은 도공들이 만들어 낸

가라쓰야키는 시대적, 문화적배경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가게 된다.

이렇게 모모야마문화가 가장 활발히 꽃피웠던 지역이 바로 가라쓰이다.

 

 

 

▲ 특산물 판매장.

 

  

 

 

▲ 홧팅도 날리고..

 

 

 

▲ 하트도 날리고..

 

 

 

10시 25분 : 가라쓰올레길 출발.

 

2013년 12월에

11.2km의 가라쓰올레길이 개통되었다

 

 

 

▲ 낮으막한 야산을 넘으면..

 

 

 

▲ 마에다 도시이에가(前田利家)의 진영.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

 

센고쿠 시대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무장이며,

에도 시의 최대의 번으로 일컬어지는 가가 번의 번주였던

마에다(前田) 가문의 시조(始祖)이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따르던 심복 장수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무기로써 즐겨 써 '창의 마타자에몬'(槍の又左衛門 또는

'창의 마타자'(槍の又左)란 별칭으로도 불리었다.

조정으로부터 대납언(大納言)의 품계를 받았으며,

도요토미 정권 당시 고다이로의 한 명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쌍벽을 이루는

인망과 능력을 가졌다.
- 위키백과 -

 

 

 

 

 

 

방향 표시는 제주도 올레길과 같은 걸 사용한다.

 

푸른색 화살표는 진행방향이고

붉은색 화살표는 역방향 표식이다.

 

 

 

▲ 똑순이 가이드..

함께하는 동안 행복했네요.

 

 

 

 

 

 

 

 

▲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진영.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아즈치 · 모모야마 시대에 활동한 무장이다.

 

어려서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총애를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전국통일 이후 일본 전역에서 태합검지를 수행하는데 공헌했고,

임진왜란 때는 조선으로 건너와 군감의 역할을 맡았다.

 

 

 

 

 

 

 

 

 

 

 

호리 히데하루 진영터.

 

 


▲ 골등골나물.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져버렸는데

여기는 한창이다.

 

 

 

 

 

 

 

 

 

 

호리 히데하루 진영의 배치도.

규모가 상당히 크다.

 

 

 

 

▲ 호리 히데하루 진영 건물터. 

나고야 성터 주변에는 전국 160명이 넘는 다이묘(지방 영주)가

집결하여 만든 130개의 진영터가 있다.

 

이 중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다테 마사무네(伊達正宗),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

구로다 나가마사(黒田長政), 호리 히데하루(堀秀春) 등 23개의 진영터는 국가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어 돌담과 토루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호리 히데하루 진영터는 유일하게 전체 터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다실과 일본의 전통 가면극의 무대 터 가 있어

일본의 전통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관도(串道)라고하는데 나고야에서 관포(串浦)까지 이르던 길로

소화(昭和)시대까지 사용되던 길이라고 한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다리.

 

 

 

 

 

 저수지 너머로 히젠 나고야성이 있었던 언덕이 보인다.

 

 

 

 

 

 역사탐방의 길 안내문.

 

 

 

 

 

 나고야성 표지석.

 

 

 

 

 

 저 언덕을 올라 가면..

 

1592년 임진왜란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전국 160개 지방 다이묘(영주)군사들의

진영을 관리했던 사령부(히젠 나고야성)이 있던 곳이다.

 

 

 

 

 

 가베섬으로 가는 다리.

 

 

 

 

 

 

 여기에도 철없는 철쭉이...

 

 

 

 

 

 

 

 

 

 나고야성 기념비.

 

나고야성은

조선침략의 사령부와 같은 곳이다.

 

당시 일본의 강력한 지도자였던 도요도미 히데요시 엄명으로

히젠이라는 이곳 언덕에 크다란 성을 짓고

군사도시가 형성 되었다. 

 

성의 이름도 이곳 지명인 히젠을 버리고

히데요시의 고향인 나고야를 따라서 <나고야성>이라고 하였다.

 

 

 

 

 

 

 

 

 

 

 

 

 

 

 

 

 

 

 

 

 

 

 

 

 

 

히나타요(炎向窯)\

 

일본의 3대 다기(茶器)로 불리는 가라쓰 도자기를 구워내는

가마인 히나타요(炎向窯)다.

2층은 도자기 전시장이다.

 

(사가현의 도자기와 조선인 '이삼평' 이야기)

일본이 자랑하는 사가()현 아리타(有田)자기의 시조로

추앙 받는 이삼평(,출생년 미상~1655).

 

그는 정유재란 당시 조선 침략에 나선 히젠 국() 사가번()의

번주() 나베시마 나오시게( 1536~1618)의 군대에 사로잡혔다.

 

나베시마는 임진왜란 때에도 가토 기요마사() 휘하로 조선을 침략했다.

이삼평이 조선에 살 때의 행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생지가 충남 공주(1990년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에 기념비가 세워짐)로 추정되지만,

경남 김해설과 전북 남원설도 있다.

공주 근처에서 발견된 조선 시대 도편()들과

아리타 지역의 초기 도편들이 같다는 점이 공주설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일본으로 끌려간 이삼평은 나베시마의 사위이자 가신인다쿠 야스토시()에게 맡겨졌다.

나중에 이삼평은 가나가에 산베이()라는 일본 이름을 얻는데,

출신지 공주의 금강()에서 한자를 바꾸고

‘삼평’이라는 조선 이름의 발음을 따랐다는 설이 있다.

 

가나가에 산베이, 즉 이삼평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653년경의 기록으로,

이삼평 자신이 다쿠 가문에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이삼평은 일본에 도착한 다음

몇 년간 다쿠 야스토시를 위해 일했으며,

18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쿠 지역에서 아리타로 1616년에 이주했다.

일부 학자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전에도

큐슈 사가현 북부 가라쓰()의 하타()가문 영지에

조선인 자기장들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버려진 페차인줄 알았더니 폐비닐을 보관하고 있다.

이렇게 관리를 하니 농촌에 폐비닐 조각하나도 없이 깨끗하다.

 

 

 

 

 

 

 

 

 

 

▲ 하토미사키 소년자연의 집.

 

 

 

 

 

 

 

 갈대가 대나무 수준이다.

 

 

 

 

 

 

 

 

 주상절리.

 

 

 

 

 

 

 

 

 

 

 

 

 

 

 

 

 

 

 큐슈 가라쓰 올레길 11.2km 종점인'하도 미사키' 해수욕장 이다.

 

 

 

 

 

 제주 돌하르방.

 

 

 

 

▲ 연인의 성지로 가는길.

 

 

 

 

▲ 수족관 전시장.

입장료 550엔. 5천5백원.

 

 

 

 

▲ 연인의 성지.

 

 

 

▲ 길 위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진영터를 바라보면서의

느낌은 바다 건너에서 호시탐탐 침략의 야욕으로

전쟁준비를 하는 동안,,

 

그 당시의 위정자들은

백성들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가르쳤는가.

 

카리스마 넘치는 한사람의 강력한 지도자가

천년강국을 만든다..

 

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그것도 세계유일의 분단국인 우리나라..

 

북의 핵위협은 도를 더해 가는데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가 밝은 혜안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 모두가 가야할 길로 이끌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침략의 땅..

일본 큐슈 가라쓰 올레길.

 

길위에서

길을 묻는다.

 

 

 

 

▲ 소라구이 포장마차.

 

시간에 얽매여 지척에 있는

나고야성 박물관에 들리지 못해 아쉽다.

 

해서..

나고야성 박물관 안에 걸린

이순신장군 영정과 소개글..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사진이다.

 

 

 

▲ 이순신 장군.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각 영주들에게 명령하여 조선에 대한 침략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의병으로 봉기한 민중이

반격을 가해.. 일본군을 남해안까지 격퇴 시켰다.

 

1597년 강화교섭이 결렬되므로서 히데요시는 재차 침략을 명했으나

이때도 일본군은 패퇴를 거듭해 다음해 가을에 철수했다.

 

7년간 진행된 전화는

조선반도 전역에 큰 피해를 주었다...라고 적혀 있다.

 

해전에서 진 부끄러움은

쏙 빼었다..

이것이 일본이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

 

소개는 생략...

히데요시 이전의 절대 권력자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로 있을때 그의 별명은 원숭이

일본말로 사루. 키 150cm

생긴 모습이 원숭이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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