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이틀째.

용궁면소재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전한 경북도청을 둘러보고

하회마을 건너편에 자리한

부용대. 화천서원. 옥연정사. 겸암정사를 보고

영주의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로 간다.

 

 

▲ 경북도청본관 안민관(安民館). 

안민(安民)은

백성을 편하게 한다는 뜻이다.

 

 

▲ 홍익관.

 


 

 

 

▲ 본관앞에는 서울경복궁의 근정전에서

경회루로가는 복도 형식의 건물인 행각(行閣)을 옮겨 놓은듯 하다.

 

 

행각(行閣).

 

 

▲ 경북도청 정문인듯..




 

 

 

 

 

 

 

 

 

 

 

 

▲ 도의회(道議會) 여민관(民館). 

여민관의 ‘여민(與民)’은 백성과 함께한다’는 뜻이다..

 

 

 

▲ 너무나 잘 조성되어 있어서 주민들은

관공서가 아닌 생활근린공원으로 활용하면 좋을듯...

 

 

 

 

▲ 풍수지리는 잘모르지만.. 

뒤에는..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연상케하는

"검무산" 이 병풍처럼 받치고 있고.. 

앞쪽은 천하명당이라는 하회마을을 감아도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니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임에 틀림 없다.

 

 

 

 가우라(백접초).

 

 

 사과도 주렁주렁..

 

 

 

 나무수국.
꽃말은..변심.. 냉정.. 거만.


 

▲ 맥문동.

 

 

▲ 경북도청으로 오면서 보니

계획도시답게 넓따란 도로에 어마어마한 아파트 단지.

완공되고 나면 주민들에게 더없이 좋은 휴식공간이 될것이다.

 

 

 

 꽃댕강나무. 

꽃말은 평안함.

어느때 보다도 평안함이 필요한 요즘 시국이다.

 

 

▲ 부들.

 

 

▲ 개쉬땅나무.

개화기간이 오래가서 정원수로 좋다고 한다.

 

 

 

▲ 무궁화동산.

 

 

▲ 경상북도를 상징하는 날개를 뒤로하고.

하회마을 최고의 조망처인 부용대로..

 

 

▲ 화천서원. 

먼저 부용대를 보고 겸암정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들리기로 한다.

 

 

▲ 부용대 가는길.

 

 

▲ 부용대는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정상에서 안동 하회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이 64m의 절벽이다.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은 연꽃을 뜻한다.

하회마을이 들어선 모습이 연꽃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하회마을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부용대라 부른다. 

처음에는 ‘하회 북쪽에 있는 언덕’이란 뜻에서 ‘북애’라 불렸다.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 다음백과 -

 

 

▲ 하회마을. 

하회마을(河回里)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민속마을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들은 보물 2점,

국가민속문화재 9점 등을 포함하여 11점이고 이밖에 국보 2점이 있다. 

2010년 7월 31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제34차 회의에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었다.

 

 

풍산 류씨는 

이곳에 6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이 마을 주민의 70%가 풍산 류씨이다. 

류씨가 터를 잡기 전에는 허씨와 안씨가 먼저 살고 있었는데,

하회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라는 말이 구전되고 있다.

 



하회마을은 

류씨 집안의 발상지이며

그들의 자손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서애 류성룡>

<겸암 류운룡>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

 

 

▲ 물 가운데에 있는 형제바위. 

멀리서 보면 한개인듯 하나 가까이가면

크고 작은 바위두개가

정답게 붙어 있는 모습이 

형 류운룡과 동생 류성룡의 형제애와 같다 하여

형제바위라 한다.

  

 

▲ 절벽아래쪽으로는 

"층길"이라하여 류성룡의 옥연정사에서

형 류운룡의 겸암정사를 서로 왕래하던 절벽 소로가 있어서

얼마전까지만해도 그길로 다녔다고 하는데

지금은 훼손되어 츨입금지다.

 

 

 

▲ 류성룡 시비.

매일같이 오솔길을 오가며 형님을 문안했던 겸암 선생의 아우 서애 선생이

형님이 세상을 떠나자 형님을 기리며 쓴 시가 있으니 바로

“나의 형님!”

아형(我兄)

우리 형님 정자지어

겸암이라 이름붙였네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내리고

매화는 뜰 가득 피어있구나

발끝에 향그런 풀냄새 모이고

호젓한 길에는 흰 안개 피어나네

그리움 눈물되어 소리없이 내리고

강물도 소리내어 밤새 흐르네..

 
 

▲ 경차비(敬次碑). 

1564년 봄..

스승 퇴계선생을 모시고 청량산에 갔다가

퇴계선생의 운에 따라 겸암 선생이 차운하여 읊은 시. 

가파른 암벽 붉은 벼랑은 아득하고 깊은데

구름안개 사라지니 천 길이나 푸르구나

중천에 달은 밝고 산은 고요하고 적적한데

날으는 듯이 뛰어올라 소리 높여 읊었네!~.

 

 

겸암정사는 

국가민속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567년 명종 22년 겸암 류운룡이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한 조선 중기 양식의 정자채이다.

 

 

▲ 겸암정.

현판은 스승인 퇴계 이황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 겸암정사 살림채.

 

 

 

▲ 겸암정사.

 

 

▲ 암수재(闇修齋)

조용히 학문을 닦아 간다는 뜻이다.

 

 

 

▲ 혼자 사신다는 관리집사인듯한 남자분에게

무슨차가 되나요? 했더니.. 

오늘같이 습하고 더운 날씨에는 속을 따뜻하게 하는

대추차를 들라고 권한다.

 

 

대추차를 주문하고.. 겸암정사 마루에 올라..

강건너 하회마을을 보며.. 

부용대 한갓진 곳에 있어서인지

사람들의 왕래도 적고 너무나 조용하다.. 

적막을 깨우는 매미소리..

자연의 소리다.

 

 

▲ 한참만에야 정성껏 달여 나온 대추차.

한방대추차다. 5000원.

 


▲ 남자분 혼자인데도 정갈하고

정사마루도 깨끗하다.

 

 

▲ 부용대를 거쳐 다시 화천서원으로.

 

 

▲ 화천서원에도 차를 파는데

주차장과 가깝고 접근성이 좋아서인지 

방마다 손님으로 가득하고

다소 상업적인 메뉴도 다양하다.

 

 

▲ 화천서원.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된 것을

1996년에 복원되었다.

 

 

▲ 화천서원 지산루를 지나서..

150m거리의 옥연정사로..

 

 

▲ 범부채꽃. 

꽃말은.."정성어린 사랑" 

<범부채의 전설>

옛날 고갯마루에는 부채꽃이 많았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고개를 넘어갔다.
 

아들이 부채꽃(범부채)이 하도 신기해서
이것저것 따다가 보니 아버지는 벌써
고개를 넘어 멀리가게 되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되돌아 쫓아가 보니
아들은 이미 호랑이에게 물려 갔더라는 것이다.
 

그후로 부채꽃은 범부채로 불리게 되었고
이 고개는 부채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옥연정사..

 

 

옥연정사(玉淵精舍)는 

국가민속문화재 제88호로 서애 류성룡이

재정적인 문제로 세우지 못하다가,

탄홍 스님이 자청하여 10년동안 시주를 거두어

선조9년 1576년 짓기 시작하여, 선조 19년 1586년에 완성하였다. 

이때 서애의 나이 45세였고, 집을 완공한 뒤

4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1605년 낙동강 대홍수로 하회의 살림집을 모두 잃고,

이곳에 은거하여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내부에는 서당으로 사용하던 세심재(洗心齊)와

서애가 거주하며, 징비록을 지었던 원락재(遠樂齋)가 있다.

 

 

▲ 옥연서당.

문이 열려 있어 안을 보니..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선생이

벼슬길에서 물러나 거처하며 임진왜란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을 집필한 곳이다.


광풍제월은(光風霽月)은 서애선생의 친필이다.

빛 광, 바람 풍, 갤 제, 달 월...

마음이 넓고 쾌활하며 시원스러운 인품을 이르는 말이다.

 

 

▲ 간죽문(看竹門). 

대나무를 보는 문..

대나무의 곧음을 보며 잠시의 마음흐트러짐까지도

스스로 경계하였음을 엿볼수 있다.

 

 

▲ 부레옥잠.

 

 

▲ 경북 영주의 무섬마을..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무섬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영월의 선암마을과 청령포와 같이

마을의 3면이 물로 둘러 쌓여 있는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영주천이 합수되어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를 끼고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육지속의 섬마을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 무섬마을보다 더 유명한 외나무다리. 

외나무다리는 350여년간

무섬 마을과 강건너를 연결시켜준 외나무다리이다.

1979년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무섬마을의 유일한 통로 역활을 한

외나무 다리는 길이가 무려 150m에 이르고,

폭은 30cm에 불과한 다리 이다. 

폭이 좁아 긴 장대에 의지한채 건너야 한다.

외나무 다리는 해마다 새로 다리를 만들었는데,

장마철이면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떠내려 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수도교의 건설로 사라졌던 외나무 다리는

최근 옛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매년 10월에

'외나무다리 축제'를 만들어가는 중심이 되고 있다. 

원래 외나무 다리는 3개가 만들어 졌었다고 한다.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 장보러 가는 다리,

학동들이 학교 가는 다리. 

지금은 강건너로 농사지으러 가는 다리 하나만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 다음백과 -

 

 

▲ 무섬마을. 

무섬마을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으로 반남박씨인 박수가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후 조선 영조때 그의 증손녀 사위인 예안김씨인 김대가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예안김씨

두 집안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현재 약 48가구에 1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가옥중 38동이 전통가옥이고,

16동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예안김씨는 선성김씨라고도 하는데

현재 종친회에서 정식으로 부르는 이름은

예안김씨라고 한다. 

- 다음백과 -

 

 

 

 

 

 

 

 풍접초(風蝶草). 

일명 <족두리꽃>이라고도 하며..

열대 아메리카 원산으로 관상용으로 심는다.

  

 

▲ 무섬마을. 

한때는 50%까지 빈집이었으나

최근 관광지화 하면서 민박업을 하려고

다시 돌아와 지금은 20% 정도가 빈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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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한바퀴 휘리릭하고..

2017년의 여름휴가도 여기서 땡~하고

집으로 고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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