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월 23.

축융봉(845m) 산행 : 경북 봉화군 명호면.

 

산행코스 : 축융봉주차장 - 공민왕당 갈림길 - 밀성대 - 축융봉 - 전망대 - 청량지문 - 

청량산주차장 산행완료후. 사미정 정원가든 이동 - 백숙 하산주

 산행거리 : 약 6.5km.

산행시작 : 축융봉주차장  09시 52분.

하산완료 : 청량산주차장  12시 58분.

산행소요 : 3시간 00분 소요(촬영 및 휴식포함).

 

09 : 52  축융봉 주차장 도착.

10 : 06  공민왕당갈림길.

10 : 28  밀성대.

11 : 21  축융봉 정상.

12 : 38  전망대.

12 : 49  청량지문.

12 : 58  청량산주차장 산행종료.

13 : 43  사미정 정원가든.

16 : 30  출발

19 : 23  대구도착(법원기준).

 

09시 52분 : 축융봉들머리 주차장 도착.

 

 

▲ 산대장님의 산행안내.

 

 

▲ 요즘 뜨고 있는 퇴계선생 사색길(예던길) 입구.

 

 

▲ 산행을 하기에 앞서.

비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축융봉을 향해 솟은 솟대에게

하산 때 까지만이라도 비를 멈추어 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본다.

 

솟대는,,,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까치 등으로 부르지만

대개 <오리>라 부른다. 오리일까? 

오리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물새라는 점이다.
또한 오리는 물 뿐만이 아니라 하늘이나 물 속까지 자유롭게 왕래하는 새이다.
이는 다른 새보다 종교적인 상징성을 지니기에 훨씬 유리한 것이며
물과의 관련성은 비와 천둥을 지배하는 새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것이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농경민들에게오리가 비를 가져다 주는 신으로 숭배되는 배경이 아닐까?.

벼농사를 위주로 한 한강이남의 평야지대에서
"솟대신앙" 이 널리 분포한 것도 그런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10시 6분 : 공민왕당과 청량산성 갈림길.

 

 

▲ 데크계단을 오르면 바로 만나는 청량산성.

청량산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새였다.

이곳은 천연 요새로서의 지형적 요건들을 두루 갖추어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 영토를 빼앗기 위한 각축장이 되었고

서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휘감아 돌고

천인절벽의 험준한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지세는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돌아보니 자욱한 비구름속에서

어릴때 읽었던 무협지속의 신선이 학을타고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다.

 

 

▲ 비에 젖어 미끄러운 석성을 조심조심.

 

 

▲ 사마귀가 나뭇잎밑에서 보호색으로 위장을 하고 있다.

 

 

▲ 등골나물.

등골이란 말에는 크게 2가지 뜻이 있다.

우선 우리 몸의 척추를 말하는데,

흔히 무섭고 오싹할 때 등골이 서늘하다고 한다.

또 다른 뜻으로 등 한가운데로 길게 고랑이 진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등골나물의 ‘등골’은 2번째의 뜻이다.

잎의 가운데에 수분이나 양분의 통로가 되는 잎맥이 있는데,

이것이 등골과 비슷하다.

- 다음백과-

 

 

▲ 지형지물에 맞게 조성된 산성은 오름질이 계속되고..

렌즈에는 빗방울이..

 

 

▲ 누리장나무.

짐승의 고기에서 나는 기름기 냄새를 누린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냄새를 싫어하여 고기를 요리할 때는

누린내를 줄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누리장나무는 이런 누린내가 난다.

물론 동물의 누린내처럼 메스껍고 역겨운 것이 아니라

누린내 비슷한 냄새가 나기는 해도 사람들이 싫어할 정도는 아니다.

누리장나무가 한창 자라는 봄에서 여름까지는

이 나무 근처에만 가도 금방 누린내를 맡을 수 있다.

잎을 찢어보면 냄새가 더 강하다.

북한 이름은 아예 누린내나무이고,

중국 이름은 냄새오동, 일본 이름은 냄새나무다.

하지만 꽃이 필 때는 향긋한 백합 향을 풍긴다.

누린내로 너무 각인이 되어 꽃 시절은 잘 챙겨주지 않으니

누리장나무로서는 좀 억울할 만도 하다.

- 다음백과-

 

 

▲ 누리장나무.

 

 

 

공민왕이 청량산과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 데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는 바로 고려 조정이 1361(공만왕 10) 2차 홍건적의 침입으로

수도였던 개경이 함락되기에 이르자 복주(현재의 안동)를 임시수도로 정하고

몽진을 단행하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이미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새였던 이곳은

안동 땅으로 몽진한 공민왕에게 있어 최후의 보루로 삼을 만한

천헤의 지리적 요건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민왕은 청량산을 요새로 삼아 산성을

개축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며 이곳을 거점으로

대반격의 기회를 노렸을 공산이 크다.

 

 

▲ 올라온 데크길.

 

 

▲ 가팔랐던 산성길은 능선을 만나며

순한 산책길이 된다.

 

 

▲ 고추나물.

꽃말은 친절,쾌유.

 

 

밀성대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들어와

산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하며 대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

명령을 듣지 않는 군졸이나 백성들을 밀어서 처형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장소이다.

밀성대 주위에는 공민왕이 쌓았다는 산성의 흔적이 아직도 완연한데,

밀성대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 맑은 날이라면 건너편의 청량산이 보일것이고

이곳 밀성대는 깎아지른듯한 천길단애 위에 올려져 있음을

알수 있을텐데.. 높낮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 원추리.

 

 

▲ 산성과 데크길을 같이 조성해 놓았다.

 

 

▲ 산초나무.

 

 

 

▲ 미끄럽고 가파른 산성에서는

데크길로 올라가는데 산성길은 어느새 꼬리를 감추고..

 

 

▲ 청량산 최고의 조망터인데

비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일월비비추. 

"비비추" 라는 이름이

언뜻 들으면 외국말 같지만 순우리말이다.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데, 잎에서 거품이 나올 때까지

손으로 비벼서 먹는다고 해서

‘비비추’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비추 사랑>.

신라시대 때 어느 마을에 설녀라는 처녀가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변방으로 부역을 가게 되었는데,

설녀를 사랑했던 한 청년이 그녀의 아버지를 대신해

부역을 가게 되었다.


청년이 대신 간 후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 여러 해가 지났지만,

어찌된 일인지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그 청년때문에 혼기를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갈 것을 재촉하였다.
이에 설녀는  마당에 곱게 핀 비비추 꽃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꽃이 다 질때 까지만 그를 기다릴께요" 

그러나 그 꽃은 지고나면 이듬해에 다시 피고 지기를 반복했고,

설녀의 청년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여러 해를 또 넘기게 되었다.
결국 마지막 꽃이 질 무렵 변방으로 부역을 떠난 청년이 돌아오게 되었고,

설녀와 그는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전설따라 삼천리-

 

 

▲ 물레나물.

 

 

▲ 큰뱀무.

 

 

공민왕당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곳

공민왕당은

고려시대의 개혁군주 공민왕을 동신으로 모시는 사당으로

청량산 축융봉 산성마을 안에 위치해 있다.

공민왕당이 정확히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민왕과 청량산의 각별한 인연으로 인해

세워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 말나리..

 

 

 

11시 21분 : 축융봉 정상.

 

 

▲ 여기서 보면

청량산의 모든것이 내품 안으로 들어 오련만..아쉽다..

 

 

▲ 바위채송화.

꽃말은 ...'가련함, 순진함'

 

 

▲ 축융봉 내림길은 가파른 철계단과..

 

 

▲ 급한 데크계단길이 이어지다가...

 

 

▲ 안내소 2.6km 지점부터는 길도 착해지고

비도 소강상태를 보이더니...

 

 

▲ 능선길로 접어 들며 다시 자욱한 안개속이다.

 

 

▲ 7~80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아물지 않은일제강점기때의 상처가 있는 소나무들이..

 

 

▲ 몽환적인 분위기속에서..

열심히 살아왔고,, 또 살아 갈거라며..

춤으로 아픔을 승화시키는것 같다.

 

 

 

▲ 기름나물.

 

 

▲ 그런데..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는 이 영감소나무는

껍질에 상처하나 없이 깨끗하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라더니..

쭉쭉빵빵 곧은나무가 아니라서 송진채취꾼들도 피해 갔는가 보다.

 

 

▲ 오늘 같은 날은

노랑망태버섯이라도 만날까 기대 했는데...

 

 

 

 

12시 38분 : 전망대.

 

 

퇴계선생 사색길(예던길) 8코스..

 

 

▲ 양삼마을 8코스..

언젠가는 걸어야 할 숙제의 길이다.

 

 

12시 49분 : 청량지문.

 

 

 

 

 

 

 

 

▲ 사미정으로.

 

 

 

 

▲ 사미정. 

1658(효종 9)∼1737(영조 13).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옥천 조덕린(趙德鄰)이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1727년(丁未年), 6월(丁未月), 22일(丁未日), 14시경(丁未時)에

사미정(四未亭)에 입주하게 하고 정자이름을 ‘사미정’이라 했다.

 

 

▲ 봉화 운곡천(일명 사미정계곡).

 

 

 

13시 43분 : 정원가든.

 

 

 

 

▲ 운곡천 둘러 보기..

  

 

 

 

 

 

 

▲ 드디어 비장의 부추전 뒤집기..

 

 

 

 

▲ 걸팡지게 먹고 마시고..

고래고래.. 고래도 잡고, 발바닥도 비비고 흔들고..

 

 

▲ 죽단화(겹황매화).

 

 

▲ 길벗과 함께 만든 풍경의 하루도 마무리 된다..

 

하루종일 구름낀 날씨에

비도 오락가락.. 

웃으면서 올랐던 축융봉과,,

사미정계곡 뒷풀이,,, 

모두가 감추고 있었던 신명과 끼를

마음껏 발산하고 

웃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 갈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던 하루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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