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7월 31일 <김제 사찰 순방> : 전북 김제시.

 

여행코스 : 심포항 출발 - 하소백련지 - 벽골제 - 귀신사(점심) - 금산사 -

진안 마이산휴게소 - 김제 사찰 순방 완료후 대구 회귀.

 

09 : 03  심포항 출발.

09 : 28  하소백련지(청운사).

11 : 04  벽골제 공원.

13 : 23  귀신사 관람.

14 : 22  금산사 관람

16 : 52  진안마이산휴게소.

20 : 21  북대구경유 집 도착.

 

09시 03분 : 아침을 먹고나서

 

꽃게장 4kg(4만원)을 아이스박스에 담고

심포항을 출발하려는데..

백미러에 낯선 손님이 집을 지었다,

 



09시 28분 : 청운사 하소백련지.

 



▲ 이곳 김제 청하에 위치한 2만여평의 백련(白蓮) 재배지는

새우가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의 곳에 백련지(白蓮池)들이 위치 하였다하여

하소백련지(蝦沼白蓮池)라고 한다.

 

백련은 독성이 없으며

다른 연에 비할 수 없는 향과 맛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 하소백련지는 다랭이 논과 같이 위에서부터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으며,

작게 나누어져있어 주변뚝을 돌며 여유로이 백련의 향과 자태를

오감으로 직접 느낄수 있는게 이곳만의 특징이다.

또한 모든 백련재배는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재배가 이루어 지고 있다.

(백련은 농약을 치면 말라 죽게 된다)

 

백련은 6월말부터 ~ 8월까지 늦게는 9월초까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가장 절정인 시기는 7월 10일경부터 ~ 8월초순까지이다.

 

 

 

연꽃의 열가지 특징은


첫째 : 이제염오(離諸染汚)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고고한 자태를 지닌다하며,

 

둘째 : 불여악구(不與惡俱)

연꽃잎 위에는 물방울이 맺혀서

굴러 떨어질 뿐 한 방울의 물방울도 스며들지 않고
또한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하며,

 

 

 

셋째 : 계향충만(戒香充滿)

연꽃이 피면 연못의 썩은 냄새는 사라지고

연못에 향기가 가득하여 한가락의 촛불이 방안의 어둠을 밝히듯이

한 송이 연꽃은 진흙탕의 연못을 향기로 채운다하며,

 

넷째 : 본체청정(本體淸淨)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하여 오물에 뿌리를 내린 연꽃의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는다하며,

 

다섯째 : 면상희이(面相喜怡)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하며,

 

여섯째 : 유연불삽(柔軟不澁)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여

좀처럼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다하며. 

 

 

 

일곱째 견자개길(見者皆吉)

연꽃을 꿈에 보면 길하다고 하여

연꽃을 보거나 지니고 다녀도 좋은일이 생긴다하며

 

여덟째 : 개부구족(開敷具足)

연꽃은 피면 필히 열매를 맺는다하며,

 

아홉째 : 성숙청정(成熟淸淨)

연꽃은 만개했을 때의 색깔이 너무 고와서
활짝핀 연꽃을 보면 마음과 몸이 맑아지고 포근해짐을 느낀다하며,

 

열번째 : 생이유상(生已有想)

연꽃은 날 때 부터 다르다하여

 

넓은 잎에 긴대, 꽃이 피지 않아도 연꽃인지

알아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존경스럽고 기품있는 사람은 옷을 남루하게 입고 있어도

 그 사람의 인격은 남루한 옷을 통해 보여진다는

 

연꽃의 순결함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게 되는 꽃이라고 한다.

 

 

 

연꽃의 꽃말이 순결, 군자, 신성, 청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순결과 순수한 마음을,

중국에서는 당신을 생각하느라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일본에서는 저를 구해주세요,,,,,라는 의미 또한 있다고 하며..


불교에서는 연꽃이 속세의 더러움 속에서 피어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청정함을 상징한다고 하여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꽃으로 쓰여

극락세계를 달리 부를 때에 연방蓮邦이라고 하고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의 모습을 연태蓮態,라고 한

 

부처가 앉아있는 좌대를 연꽃으로 조각하는 것도

이러한 상징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청운사 무량광전.

 

 

 

청운사 대웅전.

 

백련지 안에는 새우의 머리에 해당하는 위쪽으로는

조선말엽 고승 한분이 충청도 계룡산에서 바라보니 서광이 비치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김제 평야의 모서리에 있는 청하면 대청리에 있는 청하산이 있어

여기에 사찰을 짓고 불제자가 되어 중생들을 극락에 인도하기로

마음먹고 건립했다는 전통사찰이다.

 

 

 

 

관음암.

 

 

 

 

 

 

 

하소연 하는 곳 이란다..

 

아마도,,,

산세가 새우를 닮았다는 곳..

"하소백연지"에서 <하소연>을 착안 한것 같다.

 

 

 

내무 모습.

 

한을 풀어내는...

속앓이의 하소연도 좋지만..

 

34도를 오르 내리는 삼복더위에는

사용을 삼가해야 할듯하다,,

 

자칫..

하소연도 하기전에 본인이 먼저...

꼴ㄲㄷ... 할수도 있겠다,,,

ㅎㅎㅎ~,,

 

 

 

소원 적는곳.

 

하소백련 축제때

이벤트 장소로 사용하는 곳인듯. 

 

 

 

11시 04분 : 벽골제 도착.

 

 

 

▲ 바로옆...

관광안내소에 들러 가이드북 얻어들고,,

 

 

 

▲ 짚공예 전시관.

 

 

 

 

 

 

 

▲ 벽골제 쌍용.

 

벽골제에 관한 설화(說話)

 

전설에 의하면,

현재 김제시 월촌동과 부량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원평천을 가로막은 벽골제방으로 부터 약 2백미터 하류지점

신털미산(草鞋山) 북쪽 끝에 용이 살만한 큰 웅덩이가 있었는데,

 

이 웅덩이를 백룡(白龍)이 점거하면서 벽골제를 수호했다하여

일명〔벽골룡〕으로 칭하게 되었으며,

 

또 하나는 벽골제 중간 제방 약 백미터 하류지점인

부량면 용골마을 남단을 흐르고 있는 연포천(連浦川)에도

또 하나의 큰 웅덩이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청룡(靑龍)이 살고 있으면서 아주 심술 사나운 짓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두 곳을 가리켜 쌍용추(雙龍秋)라 하고

백룡과 청룡을 쌍룡이라고 불렀다.

 

백룡은 온순하고 제방에 피해를 주지 않으며

가에도 해를 끼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제방이나

인가를 지켜 주며 재난을 막아 주었다.

 

그러나 여기에 비해 청룡은 본래 성질이 사납고 심술궂어

이따금 비바람에 의해 재난을 일으켜 제방과 가옥에 피해를

줄뿐만 아니라 인명까지도 해쳤다.

 

이에 이웃 간에 살고 있는 백룡이 충고하였으나,

청룡의 난폭한 행동은 계속되었고,

끝내는 쌍룡의 싸움으로까지 번졌으며,

청룡은 김제태수(金堤太守) 유품(由品)의 외동딸

단야(丹若)까지 해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장정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쌓은 벽골제를 지키고

금만평야의 풍년을 가져오게 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려는

단야 낭자의 거룩한 정신 앞에 포악하고 심술궂던 청룡도

감탄의 눈물을 흘리며 물러섰다고 한다.

 

 

 

▲ 벽골제 제방.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저수지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흘해왕 21년(330)에

벽골제를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축조된 저수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흘해왕[訖解王] 31(AD 330),

백제의 11대 비류왕 27(AD 330)

벽골제가 축조 되었다고 보며

 

잇따라 4~5개소의 관개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신라 원성왕 (元聖王) 6년과 고려 현종 (顯宗) 원년과

고려 인종 (仁宗) 21년 조선 태종 15년에

한 차례씩 보수하였다고 기록된다.

 

 

 

▲ 단야루(丹若樓).

 

신라 원성왕 때에 벽골제 보수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때 원덕랑이 김제태수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는데

태수의 딸이었던 단야가 같이 일하면서 원덕랑을 사모하게 되었다.

 

그런데 벽골제 주변에는 청룡과 백룡이 살고 있었다.

백룡은 천재, 풍우, 변란 등을 막아 주었지만

청룡은 백성들을 괴롭히고 사람을 죽이는 등 온갖 피해를 입혔다.

 

 이 청룡이 벽골제 보수의 완성 단계에서

공사를 하지 못하도록 천둥과 번개를 동원한 폭풍우를 내리고

제방을 헐려고 온갖 심술을 다 부렸다.

이때 백룡은 청룡에게 제방을 건들이지 말라고 충고하였지만,

청룡은 오히려 백룡과 싸워서 백룡이 피를 흘리며 물러나게 하고 말았다.

백룡이 패배하자 청룡은 더욱 더 행패를 부리며 제방을 헐기 시작했다.

 

그때 청룡을 피해 달아나던 마을 주민들이

청룡의 노여움을 풀어주려면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면서

제물로 삼을 만한 처녀를 구하였다.

 

그런데 마침 신라에서 원덕랑의 약혼녀 월내가

원덕랑을 찾아온 사실을 알게 된 김제태수가

월내를 청룡의 제물로 바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략을 세웠다.

그때 단야는 이 사실을 알고 고민 끝에

자기 아버지의 음모도 막고 원덕랑과 월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단야는 제방을 마구 공격하는 청룡에게

수많은 백성들이 피땀 흘려서 쌓은 제방이니 제발 헐지 말라.

간절히 당부한 후 청룡의 제물이 되었다.

 

월내 대신 단야가 희생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백성들은

청룡이 사는 곳에 배를 띄우고 그녀의 넋을 위로하였다.

 

그리고 단야의 효심과 희생정신을 기려서

이곳에 단야각단야루를 세웠다고 한다.

 

 

 

▲ 연자방아.

 

 

 

 

▲ 다시 벽골제 정문으로 나와..

 

 

 

▲ 귀신사(歸信寺)로 가는길목에

꽃게장집이 보여,, 엊저녁의 꽃게장맛을 잊을수가 없어

무조건 입성,,,

 

근데, 아차차~ 잘못 입성이다..

1인당 15,000원, 2,000원이 더 비싼데다가..

그냥 백반이 아니고 돌솥밥인데..

뜸이 들지않아 완전 모래다..

 

이집의 아들(?)인 듯 한..

잘 생긴 형제두명이 친절하게 서빙은 잘했는데..

청년들에게는 미안 하지만...

 

젤로 중요한건 게장 맛이

완전 별로라는 거다.

 

 

 

13시 23분 : 귀신사(歸信寺).

 

지금의 이 절은 대한 불교 조계종에 속해 있는데

처음 세워질 때에는 화엄종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 절은 의상대사(義相大師)가

문무왕(文武王) 16년(676년)에 세운 것으 로 알려져 있다.

 

 

 

▲ 다람쥐가 포즈를 취해주는데..

날이 가물어서 인가..

 

 

 

▲ 꾀제제..부시시 한게..

단정치가 못하다..

 

 

 

▲ 비로자나불 삼불 좌상.

 

목조불상으로 오래되어 금을 도포하는

개금불사가 한창이다.

 

 

 

 

 

▲ 귀신사 삼층석탑.

 

 

 

▲ 귀신사 대웅전 뒤편에 있는 사자상.

 

 

 

▲ 사자상과 삼층석탑.

 

 

 

▲ 사자상 뒷면..

사자꼬리를 잘 표현 하였다.

 

 

 

▲ 아주 오래 전에는 꽤나 많은 석조물이 있었는듯,,

흩어진 석조물들로 조합한것이 눈에 보인다.

 

 

 

▲ 마지막 사찰 순례지인 금산사로 가는길..

 

 

 

 

▲ 약 30여년전 다녀갔을때

기억에 남아 있던 고목부터,, 눈으로 먼저 인사하고,,

 

 

 

14시 21분 : 보제루..

 

 

 

▲ 금산사 미륵전.

 

 

 

 

 

 

 

▲ 방등계단 사리탑(보물26호).

 

 

 

▲ 대적광전.

 

 

 

 

 

15시 38분 : 금산사계곡에서 1시간 20분 가량 머물다가

대구로 귀가...

 

 

 

16시 52분 : 진안 마이산 휴게소.

 

 

 

 

▲ 마이산 전망대.

 

 

 

▲ 마이산..

 

 

 

▲ 익산, 장수간 고속도로...

 

34~5도의 삼복에 떠난,,

전북 새만금방조제와 김제 사찰 순방은...

나름 의미 있는 휴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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