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9일
<영암산 782m>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선석산 742m><비룡산 756m> 경북 칠곡군 약목면.
산행코스 : 천주교성모의집 - 784봉 - 영암산 - 선석산 - 비룡산 - 신유장군유적지 - 약목마을회관 주차장.
산행시작 : 천주교 성모의 집 09시 01분.
산행종료 : 약목마을회관 주차장 13시 32분.
(산행소요시간 : 4시간 31분 소요 / 휴식 및 점심시간 포함)
09 : 01 월명리 천주교 성모의 집.
10 : 08 784봉.
10 : 28 영암산.
11 : 45 선석산 정상.
12 : 38 비룡산.
13 : 32 약목면 복지회관 주차장 하산완료.
▲ 09시 01분 : 월명리 천주교 성모의 집.
▲ 입구를 지나쳐서..
▲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산으로 접근한다..
▲ 시멘트포장길이 끝나는 지점 왼쪽으로 영암산 산행 들머리가 나온다..
▲ 운지버섯.
▲ 산악인 최남준님의 표지기.
명산이건 근교산이건 산깨나 탄 분이라면 산행 도중 '준·희, 그대와 가고 싶은 산'이라고 적힌
주황색 리본을 한 번쯤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준. 희'라고 쓴 표지기의 주인공 최남준씨는 부산 국제신문 취재산행팀의 안내를 맡았고,
2001년 남한의 대간과 정맥을 모두 완주하였으며,
1대간 9정맥 중 금남정맥과 금북정맥만 빼고
아마추어 산꾼들을 이끌고 2번씩이나 종주를 한 건각이기도 하다.
그의 산사랑과 가족사랑은 지역 산악계에서도 훈훈한 사례로 회자된다.
리본에 적힌 '준·희'는 최 씨와 10여 년 전 유명을 달리한
그의 부인 이름의 이니셜. 최 씨는 부인이 지병으로 세상을 뜬 후
크게 낙심한 나머지 한동안 산을 끊었다.
부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1년 정도 부인의 유품을 치우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아내 잃은 열부.....
최남준씨는 능선길에 샘을 만드는 게 소원이라며현재 10여곳에 자비를 들여 약수터를 만들었다.
그대와 가고 싶은 山
그리움으로 솟아나고그리움.
보고 싶은 마음!
▲ 김천쪽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달려간다.
▲ 운해에 잠들어 있는 성주쪽의 산들..
▲ 정상이 가까워 오면서 올겨울 첫눈을 밟아 본다.
▲ 10시 08분 : 영암지맥의 784봉.
영암산 보다도 2m가 더 높지만 평범함 때문인지 언제나 스쳐가는 산이다.
▲ 784봉에서 영암산 가는 안부구간은 제법 암릉미를 갖추고 있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긴장감 을 주는 곳이다.
▲ 밧줄구간.
▲ 지나온 784봉.
▲ 오른쪽은 영암산.. 완쪽으로는 선석산,,,그 사이로 비룡산이 희미하게 솟아 있다.
▲ 안부 절벽의 소나무,
▲ 그 옛날 신선이 바둑이라도 두고 갔음직한 멋진 바위..
▲ 신선바위라 이름지어 본다.
▲ 금오산의 명성에 가리운 칠곡의 영암산.. 명산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 10시 28분 : 영암산 정상..
영암(鈴岩)의 영자가 방울 영자로,, 성주쪽에서 보면 봉우리가
방울처럼 보여 산이름을 <방울 바위산>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2012년 1월 29일에 올랐을때는 없던 정상석이새로 단장 되어 있다.
▲ 선석산과.. 멀리 비룡산이 피어 오르는 안개에 신비감이 더해진다.
▲ 세상 참 좋다..
영암산 정상에 멋진 벤치가 놓였다..
이 자리에 앉아,, 팔공산으로 솟아오르는 일출을 본다면..
그런데,,
이 무슨 망발들인고..사이비 산꾼들이 버리고 간 음료수병과 과일 껍질들,,
한대 쥐어 박고 싶어진다..ㅎㅎ
▲ 3년전 그대로인 급경사 철계단..
거의 수직에 가까워 조심해서 내려와야 한다.
▲ 두번째 이어지는 철계단.
▲ 정비가 잘 되어 있는 암릉구간.. 우회로가 있어 안전하게 하산 할수 있다.
▲ 영암산을 한번 돌아 보고 그대로 암릉구간으로 직행한다.
▲ 약 30미터 정도의 암릉 밧줄구간..
언제나 도전한 만큼의 멋진 그림을 선물로 준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성주쪽.
세계가 그 맛을 인정해 주는 성주 참외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바다처럼 펼쳐 지는 곳이다.
▲ 밧줄 구간,,
▲ 오랜 만에 맛보는 유격훈련의 완전 스릴,,,
▲ 왼쪽이 안전하게 내려 올수 있는 우회로다.
영암산 암릉 구간을 내려서면 육산으로 오르내림의 편한 오솔길이다..
▲ 성주군에서 주민 편의를 위한 마음이 보인다..
▲ 구급약함도 깨끗하고..관리는 산에 오는 사람들의 몫인데..
▲ 이정표도 깔끔하고..
▲ 기분 좋은 낙엽길..
▲ 영암산에서 선석산 구간은 갈림길이 많아서 이정표의 역활이 매우 중요하다.
▲ 성주쪽 세종대왕 왕자 태실 가는길..
▲ 너무나 평범한 육산 낙엽길이고
다소 단조롭기에,, 간간히 나타나는 바위 하나도 정답다.
▲ 낙엽의 소리
바스락 ,바스락,
세상속~
기쁨에,
슬픔에,
적응하는 낙엽의 소리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시간들을
사랑으로 감싸며, 퇘색 되어가고,
한줌의 흙으로,
다시금 태어날 먼날을 위해
기나긴 여정 속으로 떠나기 위한
낙엽의 소리.
바스락 ,바스락.
--- 정 정숙 ---
▲ 떡갈 나무잎 두장이 나란히 누워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것 같다.
<낙엽의 의미>...
머물고 떠나는 것도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도
만나고 이별하는 것도
낙엽이 지는 것도…
그리하여,
낙엽의 의미를 아는 이는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알고,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고,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낙엽의 의미 / 박인걸
▲ 영암산 선석산 비룡산 구간에는 이정표가 참 잘되어 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이정표가 있어서 힘겨울때 마다 명확하게 진로를 결정해 주는 인생이정표는 없을까..
▲ 선석산 유래.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에서 유래한다.의상대사가 신라 효소왕 1년(692년)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신광사라 했는데, 신라 화엄10찰의 하나로 이름난 절이었다.
그때의 절은 지금의 절 서쪽에 있었다 한다.
공민왕 10년(1361년) 나옹대사가 주지로 오면서 지금의 자리로 절을 옮겼다.
이때 절터를 판판하게 닦는데 큰 바위가 나왔다 해서
절이름을 터를 닦는다는 뜻의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선석사라 했다 한다.
▲ 11시 55분 : 용 같지 않은 용바위.
성주쪽에서 보면 묭머리를 닮았다고 한다..
▲ 세종대왕 왕자 태실봉과 선석사..
세계에서 유일한 세종대왕 왕자태실은 수양대군을 비롯한 세종의 직서 18왕자와
왕손인 단종의 태를 안장한 태실봉과 태실 배치모양(아래 사진).
비운의 왕 단종의 태실은 안쪽 귀퉁이에 외로히 있으며,,
세조는 왕위 찬탈을 반대한 다섯왕자..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 안평대군의 태와
빗돌을 모두 파헤쳐서 산아래 버린것을 1975년에 찾아내어 복원하였다고 한다.
역사는 돌고 돌아.. 왕위를 찬탈하고 태실을 훼손했던 세조도,,훗날,, 백성들에 의해서
세조의 태실에도 오물이 투척되고 돌로 찧어서 훼손되었다고 한다..
▲ 세종대왕 왕자태실 배치도.
오른쪽은 비운의 왕 단종의 태실인데 숙부들의 태실과는,,약간 떨어지게 있다..
여담,,한토막,,
내가 2011년 8월 1일 오후 2시경에 이곳을 다녀왔는데
그 다음날인 8월 2일,,, 성주경찰서수사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누군가가 1일 아침에 태실의 비석을 훼손했다면서 나를 의심하는 전화다.,,,,,,
형사에게 내가 담은 사진을 보여 주고 다녀간 시간을 확인시켜 주었다.
확인한 형사 왈 그날 수상한 사람 못보았냐며 미안 하단다..
그 누군가는 누굴까?,,
세조에게 핍박 받았던 양반의 후손이었을까?....
▲ 의자바위..
▲ 태봉바위.
육관도사가 이 바위에서 우리나라 30대 명당이라 했다는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봉을 살펴 보았다고 하는 곳이다.
▲ 태봉바위에 서서아래를 내려다 보니 태실봉이 보인다
태실봉은 연꽃의 중심에 해당 된다고 한다.
▲ 여기 갈림길에는 이정표에 비룡산 방향이 없다. 자세히 살펴보니...
▲ 설치목으로 된 비룡산 방향,,
▲ 마지막잎새의 오헨리(O Henry)가 보았다면..제목이 무엇이 될까...
"희망의 잎새"라고,,, 하지 않았을까..
아님 말구~,,ㅎㅎㅎ
▲ 비룡산 오름길..
▲ 12시 38분 : 비룡산 정상.
▲ 비룡을 상징하는 돌탑인가 보다,,
▲ 산불 감시초소 밑에... 감춰놓은 보물,,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 벌개미취 같기도 하고..가는 가을의 아쉬움 때문인가..
▲ 두만지.
▲ 신유장군 유적지 전경,,
신유장군은 광해군11년(1619)이고장에서 출생 27세에 무과에 급제 선전관등
여러무직을 거쳐 효종9년(1658)함경북도 명마우후로 있을때
청나라요청을 받아 원군을이끌고 흑룡강부근에서 그곳에 침입한스테파노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을 거의점멸 시키는 큰공을 세웠다,
장군은 그공으로 가선대부로 특진되어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황해도 명마절도사, 경상우도명마절도사, 삼도수군 통제사, 포도대장을 지내셨고
유적으로는 숭무사5동(숭무사,존재성,북정문,선위문,비각)이있다.
숙종6년(1680)향년62세로 생을마감하니왕이 예관을 보내 치제케하였으며 왕의 사제문에는
나선정벌의 승전을 높이찬양하고있다,
묘소는 숭무사 후록300m지점 봉명산 중턱에 정부인과 상,하로 조성되어 있어며
매년 음력 정월보름일에 향사를 3월에는후손들이 추모제를 올리고있다,
사당은 6,25전쟁시 포격으로 파손되어1979년~1981년에 보수하였다.
▲ 약목면의 역대 관리들의 치적비.
▲ 13시 32분 : 약목면 복지회관 하산완료,,
▲ 오늘은 11월의 5주차로 공식산행이 없는 날인데..
오랜 산행 친구가 소개하는 산악회 모임으로 5주째일때만 가는
대구와룡산모임 이라는곳을 따라 왔는데. 잘 온것 같다.
2015년의 공식산행은 오늘이 끝이다.
▲ 대구 달서구의 와룡산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모임으로
한해 결산의 의미로 밴드도 불러서 흥겨운 시간이다.
▲ 와룡산 모임의 회장님.
▲ 달서구 구의원님.
여기서는 회원님이다.. 즐거웠습니다.
▲ 초청밴드 합연.
▲ 좋은 음악 들려 주어서 감사합니다.
▲ 신유노래비..라..해서 다가 가보니..
가수 신유(본명 : 신동철)는 평산 신씨 시조 휘 숭겸장군의 35세손으로
1982년 11월 10일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에서 태어나
유명가수가 되어 고향인 칠곡군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 비룡산으로 넘어가는 하루,,,
2012년 1월 29일에 이어.. 두번째 오른 영암산, 선석산, 비룡산,,이었지만
올랐던 시간이 다르고 계절이 다르니 느낌도 다르다,,
같은 산이었지만,,, 다른 느낌의 산행,,
인생이 그렇듯이 똑 같은 인생이지만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내일은,,
또 다른 느낌이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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